소설리스트

히든리거-19화 (19/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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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소대장을 잘 알지 않습니까. 비록 여인의 몸이지만, 대대장님의 피를 그대로 이어 받은 여인입니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 그리고 축구 광 못지않은 축구실력과 광적인 집착. 어쩌면 꼴통 소대인 3소대에 새로운 바람이 불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최태윤은 테니스장에서 그 어떤 소대보다 더 열심히 공에 집중하고 있는 3소대장과 3소대원을 보며 박만둘의 물음에 답하였다.

“그러고 보니, 연동훈의 표정이 많이 변했습니다.”

박만둘의 눈에 연동훈이 보였다. 3소대 모든 사고의 거의 중심에 있었지만, 결정적인 사고에서는 늘 빠져있던 인물이 연동훈이었다. 보름 전까지는 소대 단합도 이끌어내지 못한 소대선임이며, 언제나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행하던 인물이었다.

“축구 아니겠습니까.”

박만둘의 말에 최태윤이 답하였다.

“축구…….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연병장이 처음 자대에 배치될 때가 기억납니다.”

박만둘은 연동훈의 신병 시절을 떠 올렸다. 축구에 미쳐있던 한 젊은이가 부대에 들어섰고, 그 어떤 신병보다 더 축구에 대한 열정을 밝혔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당시 3소대장이 갈라놓았다.

가장먼저 신병인도를 위해 찾은 소대장이 3소대장이었고, 그는 체격이 좋고, 또랑또랑하게 생겼던 연동훈을 곧바로 데리고 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당시 3소대장은 축구를 싫어하는 소대장으로, 모든 소대원에게 축구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를 하도록 만든 인물이었다.

자대배치를 받은 후, 단 한 번도 공을 차지 못했던 연동훈은 날로 예민해져갔고, 결국엔 수많은 사고의 중심에 있었다. 몇 선임들의 구타를 이기지 못하여 소원 수리함에 구타 내용을 적었고, 그 내용은 당시 행정병이 먼저 읽은 후, 3소대 선임에게 전달되었다. 그로 인하여 그는 또 수많은 구타를 당했고, 결국 중대장에게 사실을 알렸다.

그 후, 첫 번째로 선임이 영창과 함께 전출을 갔고, 그 후에 소대의 분위기는 더욱 더 변화였다. 구타는 계속적으로 이어졌고, 가혹행위의 정도도 심해졌다. 결국 4명의 전출자와 소대장이 보직 해임되는 아주 큰일까지 만들어졌다.

또 한 선임의 구타와 가혹행위를 참지 못했던 일부 병사가 휴가 중, 국방부 홈페이지에 직접 이와 같은 행위를 고하는 글을 올렸고, 군은 뒤집혀졌다. 휴가 복귀하자마자 군 헌병대가 온 부대를 들쑤셔 놓았고, 해당 병사는 영창과 함께 군 검찰에 넘겨졌다.

이 모든 사건을 방지하지 못했던 소대장 역시, 군 검찰에 소환되었고, 그 일로 인하여 국방부 홈페이지에 군대 구타 및 가혹행위를 고발한 병사와, 그 행위에 가담한 병사등, 소대장을 포함하여 총 네 명이 전출 가는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아마 연동훈의 과거는 현 3소대장이 모두 씻겨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축구에 미친 사람들이 서로 인연을 맺으면, 그 몇 곱절의 파급적인 효과가 만들어집니다.”

최태윤은 연동훈의 표정을 다시 보며 말하였다. 그가 알고 있는 지금까지의 연동훈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군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그의 표정이었고, 그의 군 생활 중, 처음으로 보는 환한 모습이었다.

“3소대가 변할 것 같은가?”

“전진.”

한 참을 테니스장 한쪽 면에서 안을 보고 있던 두 사람의 곁으로 이해석이 다가섰고, 최태윤이 경례하였다.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사내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지내니, 시집이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해석은 진심을 담은 말을 하고 있었다. 비록 군인이 된다는 그녀를 말리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남정네가 애교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여장교를 아내로 맞아 줄 것인지를 말하였다.

“너무 부정적인 생각만을 하시는 듯 합니다. 요즘엔 군인의 인기가 높은 편입니다. 세상 물정모르고 그냥 흘러가는 시간 보내는 여성들보다, 모든 것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강인함을 지닌 여장교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태윤이 위로의 말을 하였다. 이해석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도 테니스장 안을 보았지만, 여전히 위로보다는 걱정이 앞서 보이는 표정이었다.

“모두 그만.”

세령은 시계를 보며 외쳤다. 모두가 흠뻑 땀에 젖어 있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보름 전, 군장을 메고, 연병장을 돌 때 나타났던 표정은 없었다. 그 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고서도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세령은 연동훈에게 마지막 정리를 맡긴 후, 먼저 나섰다.

“너희 신병 세 명은 남아서 이곳을 마저 정리한다.”

“알겠습니다!”

연동훈이 세령을 보내고 있을 때, 이민우는 신병 세 명에게 말하였고 그들은 큰 소리로 답하였다.

“신병들만 따로 한 곳에 모아두면 안 돼. 지동현. 네가 함께 남아서 정리해라.”

“네? 네 알겠습니다.”

지동현은 놀란 눈으로 그를 본 뒤, 힘없는 목소리로 답하였다. 첫 날, 연동훈과 함께 세 명의 신병은 물론 이세령을 반기지 않았던 인물이 지동현이었다.

모두가 떠난 후, 지동현은 테니스장에 널브러져 있는 축구공 중, 자신의 앞에 있던 축구공을 강하게 찼다.

세 명의 신병은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기만 하였고, 테니스장 한쪽 구석으로 가 자리 잡은 지동현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뭣들해! 당장 공 줍고, 테니스장 잔디 잘 다듬어 놔!”

여전히 멍하게 서 있는 세 명에게 소리친 후, 담배를 태우기 시작하였고, 세 명은 부랴부랴 군데군데 퍼져 있는 축구공을 줍기 시작하였다. 아직 지동현의 마음은 다 열리지 않은 듯하였다.

5분 동안 지동현은 3개비의 담배를 태웠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든 공을 한 곳에 모아 그물망에 넣고 대기 중인 세 명의 신병에게 향하였다.

“다 됐으면 가자.”

“이병 추강. 질문 있습니다.”

모든 정리가 끝난 후, 소대로 향하려 할 때, 추강이 손을 들어 말하였다.

“쓸데없는 질문이라면, 오늘 밤 너희 셋은 편히 잠들기 힘들다.”

지동현의 말에 추강을 제외한 두 명의 시선이 추강에게로 향하였다.

“3소대가 꼴통소대라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추강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지동현의 주먹이 추강의 눈 바로 앞에서 멈췄다.

“꼴통들만 모였으니, 그런 말이 나왔겠지. 젠장! 나도 군 생활 잘하고, 떳떳하게 제대하고 싶다. 하지만 지난 1년은 내 생에 최악의 시간이었다. 군대가 이런 곳이라면, 애초에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야.”

지동현은 추강에게 뻗어진 주먹을 거둔 후,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 태울 수 있는 놈은 태워.”

하지만 세 명 모두 담배를 태우지 않았다.

“내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부터, 이곳은 군대가 아니었어. 최악이었지. 단 하루라도 사고가 없던 날이 없었다. 누군가는 구타당해서 혼자 훌쩍거리고, 또 누군가는 그 훌쩍거리는 놈을 또 때린다. 그런 날이 반복되니, 다들 미쳐가겠지. 왜 골통소대라 말만하고, 그 원인을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을까. 사회나 군대나 똑같다. 보이는 것만 보이지 않게 되면, 모든 것이 정리될 것이란 바보 같은 생각. 결국 그 원흉을 없애지 않는 한, 또 되풀이 될 것을 알면서도 해결하지 못하지.”

지동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유 없이 구타가 있을 수 없을 것이며, 그 이유를 찾으면 해결 될 것이라 말하지만, 왜 그 이유를 찾지 못했는지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군대는 계급사회야. 까라면 까야 돼. 하지만 군인도 인격이 있어. 그 인격을 무시하면서까지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은 이제 없어야해. 연동훈병장. 3소대의 모든 사건의 거의 다 겪은 인물이다.

그래서 악마가 되었지, 하지만 지금은 나도 모르겠다. 새로운 소대장에게 하는 행동. 그리고 꼴통소대를 떠안고도 뭐가 좋다고 웃고 있는 소대장의 행동. 지금은 도저히 모르겠다. 젠장…….그만 가자 머리 터지겠다.”

지동현은 세 신병에게 간략하게나마, 지난 3소대의 일화에 대해 말하였다. 원래는 사고가 없던 소대였지만, 단 몇 명의 흐름에 의해 완전히 뭉개져버린 소대였다.

그리고 지금. 그 뭉개져버린 꼴통 소대의 분위기를 세령이라는 25세 여성이 바꾸고 있는 것이었다.

“연동훈 병장님.”

연동훈은 샤워만 한 후, 개인정비는 일체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침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지동현이 다가서며 그를 불렀다.

“이유라도 알고 싶습니다.”

“이유?”

“왜 그토록 악마 같았던 지난날과 달라진 것입니까? 이유라도 알아야 저희들도 그에 맞는 적응을 할 것 아닙니까.”

지동현의 물음에 연동훈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리고 지동현의 질문은 아마 모두가 답을 듣고 싶었던 질문으로 보였다.

소대 안에 있던 모든 대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연동훈과 이민우의 변화가 어떤 연유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른 채, 보름동안 따라왔던 것이었다.

“지금까지 해 왔던 생활이 만족스러웠어?”

답을 하기 전, 연동훈은 모두를 보며 물었다.

“지금까지…….구타와 가혹행위로 엉망이 되어버린 군 생활이 그리워? 똑같이 다시 겪게 해줘? 내가 말했었다. 다른 것은 없어. 난 이제 3개월 후면 집에 간다. 그 기간 동안만 제발 입 다물고, 조용히 지내자. 지난 과거가 그립다면, 내가 이곳을 떠난 3개월 후부터 다시 시작해. 그 때는 너희가 무슨 짓을 해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을 테니까.”

연동훈의 답을 들은 후, 모두의 시선은 지동현에게 다시 향하였다. 연동훈과 함께 대표적인 악마였던 지동현이었기에, 악마 이미지를 내려놓은 듯 보이는 연동훈보다 이제는 지동현의 눈빛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곧바로 안 것이었다.

“연동훈 병장님 말을 잘 이해해라. 지동현.”

그리고 곧 이민우가 연동훈의 맞은 편 침상에서 누운 몸을 일으키며 말하였다.

“이병장님이야 원래 소대에 관심조차 없었던 것 아닙니까?”

그의 말에 지동현의 날카로운 시선이 옮겨지며 말하였다.

“관심 없다. 예전에도 관심 없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관심가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제대 100일 남았다. 내가 있는 동안은 조용히 지내라. 나도 연동훈병장님처럼, 조용히 지내다 말년 보내고 편히 가고 싶다.”

소대 두 병장의 말에 이제 진정 소대의 주인은 마치 지동현이 된 듯 보였다. 이미 소대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이민우였기에 그에 대해서는 소대원들도 큰 관심이 없었었다. 하지만 연동훈은 달랐다. 정말 지독하리만큼 악마였던 그가 단 보름사이에 악마에서 천사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었다.

“21시 30분 점호를 실시하겠습니다. 모든 소대원은 점호 준비 해주십시오.”

바삐 보낸 하루일과를 마무리하는 점호준비를 마쳤고, 세 명의 신병은 지친 몸으로 버틴 하루를 무사히 마친 후, 몸을 뉘우자마자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다음 날. 화창한 날씨가 이어졌고, 조식을 서둘러 마친 후, 각 소대 소대장 및 선임분대장은 행정반으로 달려왔다.

“대전표 나왔어?”

바로 이틀 후, 시행 될 체육대회의 축구 대진표를 보기 위해서였다. 원래는 1주일 전에 대진표가 정해지지만, 이번엔 대대장의 명령으로 경기 이틀 전에 대진표를 공개하기로 하였다.

“워…….화기소대는 그냥 오르겠네요.”

대진표는 1소대와 2소대. 그리고 3소대와 화기소대였다. 대진표를 본 1소대장 서재호가 부러운 눈빛으로 화기소대장인 강찬호를 보며 말하였고, 강찬호는 화기소대 분대장 민관식과 어깨동무를 하며 미소를 지은 뒤, 행정반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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