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17화 (17/163)

00017  히든리거  =========================================================================

“여자는 다리가 예뻐야 한다고 의무장교님이 말씀하셨는데, 이러다 정말 무 다리가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세령은 운동복을 걷어 올려, 딱딱하게 알이 베인 자신의 종아리를 어루만지며 말하였고, 누운 채, 하늘을 보고 있던 연동훈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자신도 모르게 피식거리고 웃었다.

“왜 웃어?”

“아닙니다. 그냥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내 말이 웃겼어?”

“세상에 다리 예쁜 여자는 많습니다. 다리 뿐 아니라 몸매 좋은 여자도 많습니다. 하지만…….그 어떤 것보다 더 예쁘게 꾸며야 할 곳에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연동훈은 무거운 군장을 또 다시 둘러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소대를 향해 걸었고, 그의 뒤를 세령이 따라 걸었다.

“그래도 소대원을 생각해서 그런 행동도 하다니, 점점 멋져진다.”

“그만하십시오. 군대에서 아무리 멋져봤자, 군복입고 사회 나가면 그냥 군바리입니다.”

세령은 그의 옆으로 다가서며 말하였고, 연동훈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매몰차게 차 버리는 듯 한 답을 주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군인은 군대에서 아무리 멋지고 각이 잡혀도…….사회에서는 그냥 모두가 군바리다.

“괜찮으십니까?”

소대원들도 중식을 먹기 위하여 소대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연동훈이 들어서자마자 이민우가 물었다.

“어디 하루 이틀이냐. 그보다 난 오후에 연습 못 할 것 같다. 네가 오전처럼 인솔해라.”

연동훈은 보지 않았었다. 이민우가 소대원을 인솔하여 축구 연습을 한 것을 보지 않았지만, 그가 무엇을 했는지 모두 아는 듯 말하였고, 이민우는 그의 군장을 받아 내려주었다.

“뭣들해! 선임분대장이 이런 고생을 하고 들어왔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어! 물이라도 떠 와!”

이민우가 다시 소리쳤고, 소대원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먼저 일어나 후다닥 달려 나갔다. 이 모습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 동안 근무를 마치고 들어와도 그 누구하나 수고했다는 말이 없었다. 그만큼 꽉 막혀있던 소대가 변해가고 있었다.

중식을 마친 후, 연동훈의 말처럼 이민우의 인솔하게 다시 축구 연습을 하기 위하여 움직였고, 소대에는 연동훈만 남아 있었다.

“3소대가 변해가는 것이 보인다.”

“전진…….”

홀로 남은 소대에 강찬호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의 한 마디에 힘겹게 몸을 일으킨 연동훈이 경례하였다.

“여러 명의 바보가 단 한 명의 천재를 바보로 만들기는 쉽다. 하지만 여러 명의 천재가 단 한명의 바로를 천재로 만들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쉬운 일이 아닌 것을 3소대장은 하고 있다. 단 한명의 천재가 19명의 바보를 천재로 만들고 있다. 그건 네가 스스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연동훈은 강찬호의 말을 백분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3소대는 그냥 바보였다. 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단 한명의 천재만 있었다면 아마 바뀌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천재가 지금에야 자신들의 앞에 선 것이었다.

“아닙니다.”

두 사람이 조금 전의 말에 서로 공감하고 있을 때, 세령의목소리가 들렸다.

“3소대장.”

“전 천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3소대원들도 바보가 아닙니다. 다만…….누군가 그렇게 붙여주었기에 그렇게 살아왔을 뿐입니다. 주위의 그 누군가가 이들에게 바보라 하지 않았다면, 이들이 스스로 바보라 여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강찬호는 세령의 말에 조금 전 자신이 한 말을 다시 담고 싶었다. 여전히 자신을 포함한 나머지 인물들은 3소대를 바보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말한 꼴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모로 3소대장에게 많이 배우는군. 진정한 리더는 자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따르도록 만드는 것인데, 우린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자네는 단 10일 만에 이 모두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어. 자네가 존경스럽네.”

강찬호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린 뒤 소대를 나섰고, 세령은 그에게 경례한 후, 다시 시선을 연동훈에게 돌렸다. 그리고 역시나 모든 남자를 홀리는 미소를 지으며 웃었고, 연동훈은 눈길을 그 즉시 다른 쪽으로 돌렸다.

며칠 동안 3소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테니스장에서 특급훈련을 하였다. 점차 소대원들 간의 호흡도 맞아가고 있었고, 서로 땀을 닦아주거나, 물을 먼저 권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제 이 번 주군요.”

체육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5일. 행정반에 앉은 주임원사 박만둘이 달력을 보며 말하였다.

“시간 빠르기도 합니다. 국방부 시계는 지구가 멸망해도 흘러간다는 옛 말이 딱 맞는 듯합니다. 그리고 단 보름 만에 참으로 많은 변화도 있었지 않습니까.”

최태윤은 박만둘의 말에 지난 보름간의 일을 떠 올리는 듯 의자에 몸을 누우며 눈을 감았다. 신병인도부터 요상한 인물을 보았고, 어린 시절부터 봐 왔던 꼬맹이 아가씨가, 꼴통소대를 맡아 최고의 소대로 만들고 있었다.

“참. 내일 수요일 전투체육 시간에는 아마 전 대대에서 마지막 연습을 할 것 같습니다. 되도록 작업은 다음날로 미뤄주고 사병들에게 마지막 훈련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주십시오.”

“네 중대장님.”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 군대에서의 작업이다. 이 모든 작업의 기준은 주임원사의 눈에 거슬리느냐, 아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최태윤은 박만둘에게 부탁하였고, 박만둘도 눈에 훤히 보이는 작업거리가 많지만, 모두 체육대회 다음으로 미룰 생각이었다.

수요일. 오전일과만 끝낸 후, 오후에는 전투체육이 있는 날이었다. 마지막 담금질로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각 소대의 연습이 시작되었고, 3소대는 마지막으로 테니스장을 사용하고자 소대원들이 모두 들어섰다.

“오늘 마지막 연습이라 생각하고 모두 각기 그 동안 연습한 것을 테스트한다.”

세령은 모든 소대원들을 일렬로 쭉 세운 뒤 말하였고, 가장먼저 배가 나와 발 옆에 있던 공을 보지 못했던 추강을 앞으로 나오도록 하였다.

“배 좀 들어간 것 같은데.”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그 누가 봐도 추강의 배는 홀쭉해졌다. 그 동안 통신병으로 쉴 새 없이 뛰어다녔고, 전령의 역할로 소대의 알림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 보람으로 추강의 배는 누가 봐도 쏙 들어가 있었다.

“공보여?”

“너무나 잘 보입니다.”

모두가 웃었다. 드디어 추강의 발 옆에 있는 공이 고개만 숙여도 보이고 있었다.

“그럼 해 봐.”

연동훈이 말하였고, 추강은 자신의 발 옆에 있는 공을 툭 찬 후, 조금씩 드리블을 하며 앞으로 나갔다.

“그냥 놀랍다…….”

이민우가 그의 움직임을 보고 말하였다. 배가 들어가긴 하였지만, 여전히 육중한 그의 몸이었다. 하지만 그 몸으로 자신의 양 발에 정확히 공을 갔다대고 있었고, 드리블 수준도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슛 해봐.”

이제 막 배를 넣고, 드리블하는 단계였다. 하지만 세령은 추강에게 슛을 주문하였고, 모두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추강을 보았다.

추강은 잠시 동안 자신의 발 옆에 있는 공을 본 후, 지금까지 연습했던 것처럼 몇 번의 드리블을 한 후, 공을 앞으로 툭 찼고, 그 즉시 시야에 보인 공을 향해 달려가 강한 슛을 날렸다.

“!!!”

그리고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보다 자신의 몸을 날린 추강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추강이 때린 슛은 정확하게 테니스장 철조망에 닿았다. 비록 강력하게 직선으로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공을 찬 것이었다.

“한 번 더.”

모두가 놀란 눈이었지만, 세령은 아니었다. 세령은 다시 하나의 공을 그의 앞으로 밀어주었고, 또 다시 몇 번의 드리블과 함께 슛을 날렸다.

변함은 없었다. 조금 전 꽂혔던 자리에 공은 다시 꽂혔고, 처음보다는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간 공이었다.

그의 육중한 체중이 실린 슛은 연동훈이나, 이민우가 때렸던 슛에 비해 정확도나 강력함은 떨어지지만, 단 보름만에 만들어진 성과로 본다면 대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다.”

세령의 이 한 마디는 모두의 시선을 다시 추강에게 향하도록 하였다. 모두가 절대 불가능이라 말하였던 추강의 움직임은 이제 공 좀 만져본 인물로 레벨업을 한 듯 보였다.

“다음 설태구.”

이미 용지현은 지난 날 골키퍼로써의 자격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민우에 의해 개인 특훈까지 받았다.

하지만 놀라운 운동신경에 반해 완전 몸치였던 설태구의 변화를 보려 그를 불렀다.

“이병 설태구.”

조금은 긴장된 듯 한 표정으로 앞에 나섰고, 곧 자신의 발 옆에 있는 축구공을 뚫어지게 보았다.

“해 봐.”

역시 짧은 주문을 하였다. 설태구는 자신의 양 발로 축구공을 이리저리 보내며 움직였다.

태권도라는 운동으로 다져진 기본 움직임은 역시 빨랐다.

무엇보다 공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움직임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 주었던 그는, 지금 현재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발전을 일궈냈다.

“설태구. 그 공을 추강에게 패스해봐. 추강은 설태구의 공을 받을 준비하고!”

아직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주문이었다. 추강은 세령의 명령으로 테니스 장, 한 쪽 면에서 계속적으로 드리블 연습과 함께 슛 연습을 하고 있었고, 그 반대쪽에 서서 양발로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던 설태구에게 추강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설태구의 공이 추강에게 간다는 보장이 없지만, 세령은 추강에게 설태구의 공을 받도록 하였다.

잠시 동안 추강의 위치를 보던 그는, 이내 시선을 공에게 돌렸고, 그대로 차 올렸다.

‘펑.’

“젠장…….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그의 센터링을 본 연동훈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였다. 설태구가 차 올린 공은 정확히 그 자리에 서 있던 추강의 오른 발에 떨어지도록 내려앉았고, 공을 받기만 하려던 그는 공이 바닥에 닿기 전, 육중한 체중을 실어 아주 강하게 찼다.

순간. 묵직한 소리와 함께 테니스 장 철조망을 흔들어 놓았다.

“정말 미치겠다. 이놈들 대체 뭐하다 온 놈들이야?”

연동훈은 자신의 두 눈으로 조금 전의 상황을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양 발에 축구공을 두는 것조차 어리숙해 보였던 그가, 정확히 원하는 자리에 공을 떨어뜨려주었고, 그것도 모자라, 추강은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강하게 찼다.

“설태구 한 번 더.”

역시 모두가 놀란 것과는 반대로 세령의 눈동자는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공을 건네며 다시 주문하였고, 이번에도 추강을 잠시 보는가 싶더니, 이내 정확하게 크로스를 올리고 있었다.

이번 엔 추강의 발이 아닌 머리를 향해 떨어뜨려 주었고, 추강은 또 다시 육중한 몸을 살짝 띄우더니 공중에서 머리를 털어 헤딩슛을 하였다.

“저 몸을 띄우네…….”

두 번 연속, 추강에게 정확히 전달된 공도 우연이라 할 수 없지만, 그 공을 보고 두 발을 땅에서 떼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던 추강이 몸을 띄워 헤딩을 하자, 지동현이 멍한 눈을 한 채 중얼거렸다.

비록 보름이라는 시간동안 연습을 하긴 하였지만, 절대 공을 한 번도 다뤄 본적이 없는 사람이 하는 행동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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