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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리거-13화 (13/163)

00013  히든리거  =========================================================================

“태권도 하면…….발차기잖아. 발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태권도인데…….왜 공 앞에 있는 네 다리는 불구냐? 너 진정 태권도 4단 맞아?”

선입견을 버리라 하였지만, 도저히 태권도 4단의 움직이라 볼 수 없어 연동훈이 한 말이었다. 처음 그의 움직임과 별 반 다를 것도 없었고, 보폭이 30센티 정도 되는 그 짧은 거리에서 양발을 향해 서로 보내지고 있는 공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었다.

“공이 없다 생각하고, 다시 움직여 봐.”

세령은 그의 엉거주춤한 모습에 다른 생각을 하였고, 곧바로 설태구에게 주문하였다. 그러자 설태구는 축구공이 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서 하면 되잖아.”

그의 행동에 연동훈이 어이없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그의 말에 그냥 실없는 웃음을 보인 뒤, 공이 없는 자리로 옮긴 설태구는 땅을 보았고, 곧 앞을 보았다. 그리고 자세를 잡았다.

“이야앗!”

“!!!”

공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너무나 달랐다. 설태구는 공이 없는 지역에서 과히 태권도 유단자라 말할 수 있는 엄청난 발재간을 보여주었다. 앞차기,옆차기,뒷차기와 돌려차기. 그리고 몸을 날려 나래차기까지. 진정 태권도 고수들의 몸동작을 보여주며, 모두의 눈을 멍하게 만들었다.

“자…….이제 공 줘봐.”

다시 연동훈이 공을 그의 앞으로 차 주었다.

“미치겠네…….”

다른 것은 단 하나였다. 공이 앞에 있는 것. 설태구는 조금 전 그 화려한 동작은 아예 모두 까먹은 듯, 또 다시 엉거주춤한 자세로 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움직이고 있었고, 연동훈이 머리를 긁으며 말하였다.

“설태구 일단 보류.”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안 되는 것을 짧은 시간에 억지로 되도록 만들 수도 없었다. 일단 그 어떤 것보다 공과 먼저 친해지는 것이 우선이라 여겨졌다.

“추강.”

“이병 추강.”

부르긴 불렀지만,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배 좀 들어갔어?”

한 참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내 뱉은 말. 인격모독일 수 있지만, 이미 지난 날 세령이 그에게 한 말이었다. 배로 인하여 자신의 발 앞에 있는 공이 보이지 않아, 헛발질만 하였으니, 공이 보일 때까지만 배를 집어넣자고 하였다.

“조금…….들어간 듯합니다.”

추강은 자신의 배를 만지며 답하였다.

“공보여?”

“공? 공을 밀어 주십시오. 그래야 볼 수 있는지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세령의 말에 추강이 말하였고, 모두는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미 추강의 발 옆에는 축구공 하나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배가 들어갔다고 하였지만, 여전히 발 옆에 고이 놓여 있는 축구공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더 넣자.”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추강은 세령의 힘없는 목소리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저 답만 한 뒤, 조금 옆에 보이는 축구공을 향해 움직이려 할 때, 자신의 발에 걸린 축구공이 떼구르르 굴러갔다.

그리고 추강의 눈은 천천히 굴러가는 축구공을 보았다. 그제야 자신의 발 옆에 이미 축구공 하나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그만하자. 용지현이란 보물을 발견한 것이 오늘의 수확이다.”

다른 소대보다 늦게 연습을 시작한 탓에, 그 시간도 금방 지나갔다. 석식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세령은 연동훈을 보며 말하였다.

“쉬십시오. 이제부터 소대인솔은 제가 하겠습니다. 소대장님께서는 일과를 마치시면 곧장 B.O.Q로 가셔서 휴식을 취하십시오.”

연동훈이 소대원을 이끌고 식당으로 향하려던 그녀에게 말하였다. 이민우와 지동현이 의아한 듯 보았지만, 이내 표정을 밝게 하였다.

세령도 그를 보며 미소를 지은 뒤, 손을 높이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할 때, 연동훈은 머리를 빠르게 빼며 그녀의 손길을 피하였다.

“어쭈.”

“쉬십시오. 소대 정렬! 앞으로 갓!”

연동훈은 곧바로 소대원들을 인솔한 채, 식당으로 곧장 향하였고,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세령은 미소를 지었다.

“세령아…….”

소대원들이 중대를 지나쳐 식당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계속 보고 있던 그녀의 뒤로 이해석이 관사에서 머리만 빼꼼 내민 채, 그녀를 불렀다.

“아빠.”

“이리 좀 와봐.”

세령은 주위를 둘러 본 뒤, 관사 쪽으로 향하였고, 곧 안으로 들어섰다.

“힘들지 않아?”

“괜찮아요. 그 보다 계속 보고 계셨어요?”

“내가 마음이 불안해서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왜 너에게 군인이 되도록 허락했는지 이해도 할 수 없어. 그냥 사회에 나가 쓸데없는 놈들 만나게 하지 않으려 한 결심이었지만, 오히려 이게 더 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구나.”

이해석은 자신의 보물 1호인 세령을 곁에 두려, 군인의 길을 선택하도록 한 것이었다. 하지만 때늦은 후회를 하는 듯하였다.

“재밌어요. 애들도 재밌고, 착해요.”

“착해? 저런 꼴통들이 착해? 절대 아니다 세령아. 저 놈들 네가 예쁘고 귀여운 여자니까 그냥 말 잘 듣는 척 하는 거야? 저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아빠.”

“응?”

“저에게 하신 말씀은 모두 거짓이었어요? 그 사람을 알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모든 편견은 접어두라고. 그렇게 저에게 알려주셨어요. 헌데 지금 말은…….”

“그래? 아 그렇지. 미안하구나. 내가 너무 경황이 없어서 말이야. 네가 힘든 것 같으니 괜히 저 놈들이 미워보여서…….”

“아니에요. 진정으로 착해요. 여리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저들을 선입견으로 대한 사람들이 저 놈들을 그렇게 만들어 두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전 괜찮으니까. 이제부터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테니스장은 체육대회가 끝난 후, 우리 소대원들이 잔디 하나하나까지 다 원상복구 시켜 놓도록 할게요. 그럼 배고파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전진.”

세령은 이해석에게 경례한 후, 관사를 나섰다. 이해석은 마냥 말괄량이 외동딸로만 여겼던 세령이 어느새 저렇게 커 버렸는지, 한 참을 그녀의 뒷모습만 보고 있었다.

“3소대장.”

자대배치 후, 처음으로 간부식당을 찾은 세령을 1소대장 서재호가 불렀다.

“네. 소위 이세령.”

“어째 간부식당에서는 처음 보는 듯한데, 그보다 꼴통소대를 맡은 소감이 어떠신가? 죽을 맛이지? 그 소대 벌써 소대장만 다섯 번째야. 희한하게도, 소대장이 바뀔 때마다 사고가 꼭 한 번씩 터지니…….이번에도…….”

“이번엔 그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서재호가 세령을 살짝 긁어볼 심상으로 말하였지만, 의외로 그녀의 짧은 답만이 들린 후, 식판을 들고 다른 식탁으로 가 앉았다.

“이게 아닌데…….”

“뭐. 얼마 가겠어. 전설의 3소대가 왜 전설이 됐는데. 그 기록은 쉽게 없어지지 않아.”

서재호가 세령의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 옆에 함께 앉은 2소대장 이연호가 말하였다. 두 사람은 육군사관학교 동기로 함께 소대장 임명이 되었고, 각각1소대와 2소대를 맞고 있었다.

“인간은 인간이 만드는 거야. 썩기 전에만 잘 다듬으면, 곧 새싹도 피운다.”

홀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준비를 하고 있던 그녀의 앞에 인상 험하고, 우락부락한 체격에, 정말 곰만한 덩치의 사내가 앉으며 말하였다.

“이래저래 오늘 처음 보는 듯하네. 나 화기소대 소대장 강찬호야.”

“전진. 소위…….”

“밥 먹을 땐, 밥 먹자. 밥 먹을 때 개도 건드리지 않는데. 무슨 놈의 경례야. 그냥 밥이나 먹어.”

세령이 밥을 먹다말고 경례를 하려하자, 강찬호가 밥 한 숟가락을 크게 뜬 후, 입에 넣기 전 말하였다. 소대장 모두가 소위였지만, 유일하게 화기소대장 강찬호는 중위였다.

“잘 만들어 봐. 내가 보기에는 3소대. 능력 있는 놈들 많다. 다만 과거에 잡힌 놈들이라 단점이지. 자네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어.”

강찬호는 일반사람의 한 공기에 해당하는 밥을 한 숟가락에 담은 뒤, 한 입에 오물오물 씹으며 말하였다. 그의 말을 들은 후, 세령의 입가에는 미소가 드리웠다. 조금 전 만났던 두 소대장과 지금 강찬호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도움 주십시오. 강중위님.”

“도움?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란 하나밖에 없어. 바로 자네가 자대배치 받던 날. 3소대에게 보여주었던 군장구보. 그거 사실 내 주특기야. 때리면 폭행이고, 욕하면 폭언. 군 생활 많이 좋아졌지. 하지만 군장구보는 군대 훈련에도 있다. 전시에 완전군장으로 이 땅을 누벼야 하기에, 언제나 실시하는 훈련. 그 훈련을 난 얼차려로 승화시킨 인물이지.”

사실. 세령도 부임 첫 날 군장구보를 시킨 것이 그 이유였다. 폭행과 폭언이 아닌, 훈련으로 소대원들에게 얼차려를 준 것이었다. 가혹행위도 아니며, 정당한 군대 훈련방식이었다. 비록 평소에는 하지 않는 훈련이며, 군기교육대나. 유격 및 혹한기 훈련 때 주로 하는 훈련이지만, 의외로 소대원들 군기교육에 한 몫 하는 얼차려였다.

세령은 간부식당에서의 첫 식사를 의외로 기분 좋게 마쳤다.

시간은 흘러, 소대장 부임 후, 첫 주말을 맞이하였다. 아침식사 후, 3소대원들은 중대 주변 청소와 각 개인정비를 마친 후, 소대에 대기 중이었지만, 이미 1,2소대는 연병장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저 놈들은 밥 먹고 하는 일이 축구네. 군대에서 훈련보다 축구를 많이 하는 놈들 일거야.”

소대 창문을 통해 1,2소대를 본 이민우가 중얼거렸다.

“우린 언제 연습합니까?”

지동현이 연동훈의 앞에 서며 물었다. 얼마 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소대장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한다.”

연동훈은 시계를 보며 말한 뒤, 책을 펼쳤다. 주로 개인시간에는 책을 읽는 그였다.

“3소대 통신병 지목했나?”

“전진.”

소대장의 지시가 없어 소대에 머물고 있던 중, 통신장교가 소대에 들어서며 물었고, 연동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하였다.

“아직 입니다.”

“소대장도 임명되었고, 또 신병도 들어왔으니, 오늘 중으로 통신병 지정하여 나에게 보내. 대대에서 유일하게 통신병 없는 소대가 3소대야. 이제 제대로 굴러 가 봐야하지 않겠나. 연병장.”

“알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소대장님과 의논하여 통신대대에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네 전진!”

통신장교 중위 이강형이 소대를 나간 후, 연동훈은 소대를 둘러보았다.

“통신병 교육 받고 온 놈 없지?”

“없습니다.”

연동훈의 물음에 지동현이 답하였다.

“통신병 할 사람.”

“통신병이 무슨 제비뽑기야? 소대 내 주요 전달 사항이나, 기타 훈련시 소대원들과 소대장 및, 중대장과의 소통, 그리고 훈련 중, 주요 전달상황을 소대에 전파해야할 임무를 가진 통신병을 그렇게 뽑는 것이 어디 있어?”

연동훈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대로 들어서는 세령이 말하였다. 그녀의 말처럼 통신병은 아무나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통신병 특수교육을 받고 자대배치를 받지만, 3소대는 그마저도 사건으로 없어진 케이스였다. 그래서 공석이 되어버린 통신병을 아직도 선출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소대장도 임명되었으니, 여전히 공석으로 둘 순 없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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