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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리거-12화 (12/163)

00012  히든리거  =========================================================================

“이유가 뭐야?”

“모르겠습니다. 그냥…….모르겠습니다. 저 놈들에게 잘해주고 싶은데,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면서 왜 이런 행동을 하나. 그냥 자네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해. 그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세령이야.”

최태윤의 말을 들은 그녀는 한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진작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인물은 소대원들이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느꼈다.

세령은 교육장으로 향하였고, 자신의 명령으로 모두 눈을 감고 있는 소대원들을 보았다. 단 한명도 눈을 뜨고 있는 인물은 없었다.

세령은 천천히 걸어 연동훈의 옆으로 앉았다.

“…….”

자신의 옆으로 앉은 세령을 인기척으로 느낀 연동훈이 눈을 떴고, 그녀를 보았다.

“나도…….버리지 못한 것이 있는가봐. 그것을 버리려고…….”

세령은 그의 말 없는 눈빛이 무엇을 묻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옆에 앉으며 묻지 않은 말에 답을 주었고, 그녀의 말을 모두가 들었다. 하지만 연동훈 외에 그 어떤 누구도 눈을 뜬 인물은 없었다.

한 시간이란 시간이 지났다. 세령이 눈을 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잘 잤어?”

눈을 뜬 세령이 눈을 감고 있는 모두를 향해 말한 첫 마디였다.

“잘 잤으면, 세수하고 머릿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버려야 할 것들이 얼굴을 피지처럼 묻어난 것을 모두 씻고 온다. 그리고 다시는 그 잡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도록, 철저히 방어한다. 군대는 공격도 중요하지만, 진지방어도 중요하다. 이상! 모두 테니스장으로 집합!”

세령의 마인드였다. 최태윤의 말처럼, 그 어떤 일이라도 깊게 몸속에 묻어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좋은 일은 기억하되, 나쁜 일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머릿속에서 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그게 세령이었다. 그녀의 환한 미소를 다시 보게 된 소대원들의 얼굴도 덩달아 환해지고 있었고, 연동훈이 모두를 인솔하여 세면을 마친 후, 운동복으로 환복 한 뒤, 테니스장으로 향하였다.

“다른 소대보다 1시간을 손해 봤으니, 그 손해 본 만큼 속전속결로 움직인다.”

테니스장에 모인 후, 세령이 도착하기 전, 연동훈이 소대원들을 향해 소리쳤고, 갑작스러운 변화지만, 천천히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소대원들도, 어색한 행동과 미소로 그의 소리에 화답하듯 함성을 질렀다.

“오늘은 안 돼.”

세령도 운동복으로 환복 한 후, 테니스장으로 향하였고, 가는 길에 마주친 소재은이 그녀를 잡으며 말하였다.

“잘 못 들었습니다.”

“오늘은 안 된다고. 그러다가 발에 난 상처가 더 번지고, 나중에는 잘라야할지도 몰라.”

“!!!”

세령은 그녀의 말에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새삼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다시 보며 소재은이 앞으로 다가섰다.

“이 소위.”

“네 의무장교님.”

“농담이야.”

“네? 잘 못 들었습니다.”

“농담이라고. 하하하. 세상에 고만큼의 물집으로 무슨 발을 잘라? 농담이야. 농담. 내가 준 약은 특효약이야 상처치유도 빠르고 더욱 더 강하게 아물도록 만든다. 하지만…….무리하진 마. 봉와직염도 있지만, 무엇보다…….여자의 다리는 예뻐야 한다. 그래야 시집간다.”

“…….”

심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농담이었다. 아직 소재은이란 인물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아, 그녀의 장난에 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말에 세령은 운동복 속에 숨겨진 자신의 다리를 보기 위하여 운동복을 걷어 올렸다.

“예쁘기만 하네.”

이리저리 종아리를 돌려보고 난 뒤, 홀로 말하였고, 곧 의무대로 향하고 있는 소재은을 보았다.

거의 1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보지 못했던 3소대의 분위기에 중대장과 주임원사의 눈빛도 달라졌다. 이들에게 지금과 같은 변화를 주기위하여 많은 시도도 하였고, 노력도 하였지만, 다 필요 없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한가지, 바로 자신들의 마음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토닥거려주는 손길. 그리고 소대원간의 소통. 단지 원한 것은 이것뿐이었지만, 지금까지 그것을 해 주지 못했다. 하지만 단 이틀.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에 군복을 입은 이세령이란 여인이 이들을 바꿔놓았다.

“전진. 중대장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테니스장으로 향하던 중, 최태윤의 모습이 보였다.

“음…….그냥 지나가다 들려보았네. 워낙 파이팅이 넘치는 소리가 들리기에, 난 또 다른 소대가 감히 대대장님의 테니스장을 망치는가 싶었는데…….와서 보니 꼴통소대더군.”

최태윤은 그녀를 보며 헛기침을 한 뒤 말하였고, 곧 원사와 함께 중대로 돌아갔다.

“내가 없는데 이놈들이 파이팅을?”

세령은 그의 말을 들은 후, 곧바로 테니스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크게 소리를 치려는 순간…….

“위험합니다! 소대장님.”

이민우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연동훈이 테니스장 끝에서 찬 공이, 당시 아무도 없었던 테니스장 입구 쪽으로 향하였고,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를 향해 정확히 날아가고 있었다.

‘촥!’

“!!!”

세령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보았다. 하지만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을 감았고, 그 외, 모두는 조금 전의 상황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용지현?”

살며시 눈을 뜬 그녀의 앞에 거구의 용지현이 넘어져 있었다. 그리고 곧 연동훈과 이민우가 달려왔다.

“어찌 된 거야? 야 용지현. 왜 넘어져 있어?”

세령이 그를 보며 물었고, 곧 용지현은 몸을 돌려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품에는 두 손으로 고이 감싸고 있는 축구공이 있었다.

“설마…….”

“이봐 용지현.”

“이병 용지현.”

“조금 전 뭐야? 어찌 그 거리에서 날아올라 공을 잡을 수 있었어?”

세령은 연동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 자신이 들어섰을 때, 용지현의 위치도 알지 못하였다.

“무슨 말이야?”

그녀가 물었다.

“용지현이 지금 지동현이 있는 자리에서 뛰어올라, 소대장님께 향하던 공을 잡았습니다.”

연동훈의 말에 세령은 지동현을 보았다. 자신이 서 있는 거리와 약 3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고, 지금 자신 앞에 공을 들고 아무렇지 않게 용지현이 서 있었다.

모두의 눈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뀌어, 용지현을 보고 있었다.

“너…….공찬 적 없다고 했잖아?”

“이병 용지현! 네! 그렇습니다! 공찬 적 없습니다!”

“장난해! 어째 공도 차 본적이 없는 놈이 저 거리에서 몸을 날려 이 공을 잡을 수가 있어?”

연동훈이 다시 물었다. 도저히 자신의 눈으로 보고서도 전문적이 골키퍼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절대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장면이었다. 아니…….웬만한 프로축구 골키퍼라도 저 거리에서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공을 쳐내는 것이 아니라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공을 차 본적은 없지만, 몸은 유연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뭐? 너 군대오기 전, 전공이 뭐야?”

세령이 그의 말을 듣고 물었다.

“기계체조입니다.”

“기계체조? 만화 그리다 왔다고 했잖아? 설마 체대 출신이야?”

“네 그렇습니다! 한국체대 출신입니다.”

“그럼 만화는?”

“사회에서 아는 선배들이 군대입대 전, 만화 그리다 왔다고 하면, 대부분 행정병으로 분류되어 군 생활 편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해 본 말이었습니다.”

“이런 또라이 새끼! 너 그러다 정말 행정병 돼서, 작계를 그렸는데,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면 그 땐 어쩌려고? 너 한방에 영창이야.”

연동훈이 그의 말을 들은 후, 인상을 찌푸린 채, 소리쳤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세령의 눈빛이 변하고 있었다. 연동훈과 이민우의 표정도 어이가 없는 표정을 넘어서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비록 축구를 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 보다 더 뛰어난 인재를 발견한 듯 한 세 명의 눈빛이었다.

“이민우.”

“병장 이민우.”

“네가 책임지고 이 놈 골키퍼 만들어라.”

“그걸 왜 제가 합니까? 저는…….”

“너 움직이는 거 별로라고 했잖아. 그러니 가만히 서서 저 놈에게 공만 차. 이리저리 구석으로 팍팍 차. 그렇게만 훈련해.”

세령이 이민우를 골키퍼 지정코치로 임명한 이유였다. 다른 포지션에 비해 움직임이 덜한 골키퍼를 훈련시키기에는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민우에게 딱이었다.

처음에 반박하였지만, 생각해보니 이 보다 더 편한 것은 없다고 여긴 이민우가 흔쾌히 승낙하였고, 그는 공 몇 개를 들고 테니스장 한쪽 구석으로 용지현과 함께 이동하였다.

“의외로 보물이 더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지 못한 보물, 용지현을 발견한 것에 세령의 눈빛은 두 명의 신병에게 향하였다.

“둘. 전공이 뭐야?”

세령은 설태구와 추강을 앞에 두고 물었다.

“축구는 해 본적이 없습니다. 농구도 해 본적이 없고, 족구도 해 본적이 없습니다. 구기 종목이라고는 배드민턴이 전부이며…….”

“꼭 구기 종목 아니라도 돼.”

설태구가 세령의 질문에 먼저 답하였고, 연동훈이 그를 보며 말하였다.

“태권도…….를 하였습니다.”

“태권도? 몇 단인데?”

축구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았지만, 물었다. 용지현 역시 축구와 관계없는 기계체조였지만,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프로못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었다.

“4단입니다.”

설태구는 작은 키에 적은 몸무게, 왜소한 것으로 따지면 거의 세령과 같은 분류였다. 하지만 태권도 4단이라는 말에는 꽤 많은 유용함이 묻어 있는 것이었다.

세령은 설태구에게 공을 던져주며, 그 공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라는 듯. 가만히 그를 보고만 있었다.

설태구는 난생처음 공을 차보는 인물인 마냥, 오른발에서 왼발로 공을 보내고, 또 왼발에서 오른발로 공을 보내며 천천히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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