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1 히든리거 =========================================================================
“한 명이 바뀌면, 점 차…….하나씩 모두 것이 바뀔 수 있을까?”
어두운 소대 내에 취침 등만 켜져 있었고,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연동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바뀌지 않겠습니까.”
지동현이 그의 말에 답하였다. 그리고 이민우는 아무런 말없이 어두운 천장을 향해 보고만 있었고, 세 명의 신병은 그 어떤 소대원들보다 더 힘든 하루를 보냈기에, 소등과 동시에 거의 깊은 잠에 빠져들어 갔다.
“금일 교육은 지뢰, 폭파와 전술, 그리고 인성교육이 있습니다. 각 소대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교육장소로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날. 아침점호를 끝내고, 조식을 마친 후, 정규일과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고, 각 소대별로 정해진 교육장소로 움직이고 있었다.
“연병장.”
오전 첫 교육인 전술교육을 받기 위하여 교육장소로 향하던 연동훈을 화기소대 민관식이 불렀다.
“어제 3소대장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의외더라. 툭 치면 그냥 넘어질 것 같은 야윈 몸이지만, 카리스마가 넘쳐나더군. 그리고 식당에서는 압권이었다. 땀 냄새보다 더 역겨운 썩은 인간의 냄새를 풍기지 말라는 말. 3소대는 언제나 그 역겨운 썩은 냄새가 진동했잖아.”
“교육이나 가라.”
연동훈은 민관식의 말을 듣고 난 뒤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실없는 듯 보이는 미소를 지은 뒤, 교육장으로 향하였고, 단 이틀사이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자신의 동기인 연동훈의 행동과 말에 민관식은 의아한 듯 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오전 일과는 각기 두 개의 교육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3소대는 오전에 전술교육과 지뢰, 폭파 교육을 받았고, 곧 중식을 먹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인성교육 시간엔 집중이 안돼서 혼났다. 군대에서 듣기 쉽지 않은 여인의 목소리로 사근사근 말하는데, 애간장이 녹더라. 야.”
소대에 대기 중인 연동훈과 소대원들의 귀에 인성교육을 막 마치고 나오는 2소대 이상수의 말을 듣고 연동훈의 눈살이 찌푸려지고 있었다.
“어이 연병장. 그냥 마구마구 부럽다.”
어쩔 수 없었다. 이상수는 연동훈보다 한 달 위 선임이다. 그리고 현재는 중대 내 가장 선임이기도 하였다.
인성교육을 받은 소대들은 하나같이 세령의 목소리와 외모에 관한 말들뿐이었다. 그녀가 교육한 내용에 대한 그 어떤 말도 없었다. 오로지 그녀에 관한 말들뿐이었다.
중식을 마친 후, 3소대도 인성교육을 받기 위하여 교육장으로 향하였다.
중식을 먹은 후며, 5월 초순의 선선한 바람에 곧바로 식곤증은 모든 소대원들의 덮쳤지만, 연동훈과 이민우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드디어 우리 소대네. 정말 이 시간만 기다렸다.”
세령도 자신이 맡은 3소대를 교육하는 것에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교육장으로 들어서는 소대원들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연동훈의 눈빛은 그렇지 못하였다. 그녀를 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넌. 하루하루 성격이 달라지냐? 어제는 말 잘 듣는 훈련병의 눈빛이더니, 오늘은 아주 눈에서 레이저 나가겠다.”
세령의 눈에 보인 연동훈의 눈빛이었다.
“군인답게 교육을 해 주십시오.”
연동훈은 이미 이상수나 민관식이 했던 말을 기억하기에, 그녀에게 여전히 매섭고 날카로운 어투로 말하였다.
“저 놈…….밥 잘 못 먹었냐?”
자신의 앞을 지나쳐가며 어제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연동훈을 보며, 세령은 곧바로 들어서는 이민우에게 물었다.
“잘 먹고, 잘 싸고 왔습니다.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는 있다고 봅니다.”
“넌 또 왜 삐딱선이야?”
어찌 보면 오늘은 처음 소대원들을 보고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어제와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에 세령은 적응하기 힘든 듯, 하나같이 불편한 시선을 주고 있는 소대원을 보고 있었다.
“교육하자. 오늘 내가 너희들에게 할 교육 내용은 인성교육이다. 그 어떤 것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은…….”
“소대장님. 질문 있습니다.”
세령이 교육을 시작하자마자, 연동훈이 손을 들어 그녀를 불렀다.
“급한 것 아니면 따로 질문할 시간을 주겠다.”
“급합니다.”
“뭔데?”
세령은 하루아침에 변한 연동훈의 질문을 받지 않으려 하였다.
“왜 군인이 되셨습니까?”
뜻밖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를 보았다. 생각도 하였다. 왜 군인이 되려 하였을까? 그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지만, 그가 이런 질문을 하기 전에는 왜 자신이 군인이 되어야 했는지 잊고 있었다.
“내 머릿속의 기억 중에, 군대란 곳의 기억이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세령은 잠시 동안, 연동훈을 보고 있었고, 곧 답을 주었다. 남자라면 거의 대부분이 공감할 수 없는 답이었다. 군대에서의 기억이 가장 행복했다는 말. 정말 대한민국 남자 중, 군대제대를 한 인물이 몇 명이나 공감할까. 아마 단 한명도 없을 것이었다.
“소대장이 되시기 전, 남자친구가 군인이라 면회 온 기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연동훈이 다시 물었다. 이들은 세령이 대대장, 이해석의 딸인 것은 추호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친구…….그래.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하고, 지금까지 사랑하고 있는 한 남자로 인하여 군인을 택했다. 이제 됐어?”
그녀의 이 한마디는 3소대원 전체 분위기를 바닥에 내려앉게 만들었다. 연동훈은 물론 이민우와 지동현도 그녀의 말을 들은 후, 표정이 굳어졌고, 하물며 일병과 이등병도 표정이 굳어졌다.
“왜? 난 남자 있으면 안 돼? 25살의 나이에 남자가 있으면 안 되냐고?”
“교육이나 하십시오.”
“이것들이! 내가 먼저 말했어? 너희들이 질문하였고, 난 그 질문에 답해 준 것이야! 그런데 말이 왜 그 모양이야!”
기분 좋게 교육을 하려는 세령의 기분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연동훈과 이민우도 기분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이런 분위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타 소대원들이 세령에 대해 말하는 것에 화가 나, 그에 대한 충고를 하기 위하여 시작된 사적인 질문이 이런 파장을 몰고 온 것이었다.
“오늘 교육…….그냥 명상으로 한다. 모두 말없이 눈감고, 서로 지난 과거를 생각하고 회상해. 내가 잘 살아왔는지, 나로 인하여 누군가가 불행해지지는 않았는지. 난…….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지…….오늘 첫 인성교육은 명상이다. 모두 실시.”
세령은 한껏 준비한 자료를 덮었다. 그리고 교육장을 나섰고, 모두는 그녀의 뒷모습만 보고 있었다.
“젠장…….”
그리고 연동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금일 오후 일과 종료는 14시 30분에 끝내겠습니다. 특별히 대대장님의 허락 하에, 곧 있을 체육대회 준비를 위하여 당분간 오후 교육일과는 14시 30분에 종료하며, 그 후의 시간은 전투체육 시간으로 정하겠습니다.”
평소보다 교육이 일찍 끝나고 있었다. 대대 체육대회라고 특별한 것은 없었었다. 하지만 올해는 대대장의 특별 허가 하에 교육시간이 단축되었고, 그 후의 시간을 전투체육 시간으로 변경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가장먼저 연병장을 장악하고 있는 소대는 1소대와 2소대였다. 간발의 차로 12중대 화기소대와, 13중대 3소대가 연병장을 장악할 타이밍을 놓쳤다.
이번 체육대회는 물론, 지난 체육대회에서 12중대와 15중대의 접전이었다. 그리고 15중대가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는 소대별로 치러지기에, 그 만큼 이 네 곳의 불꽃 튀는 접전이 예상되고 있었다.
모든 소대가 축구공을 들고 연병장으로 향하고 있을 때, 유독 3소대만은 침울한 분위기로 남아 있었다.
“3소대의 연습은 어제 반나절로 끝인가?”
최태윤이 각 소대를 둘러본 후, 3소대 입구에 서서 물었다.
“전진.”
연동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하였다.
“아닙니다. 아직 소대장님의 지시가 없어 대기 중입니다.”
“3소대장은 어디에 있나?”
“전진. 소위 이세령.”
최태윤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뒤에서 세령이 경례를 하였다.
“3소대는 오늘도 테니스장을…….”
“아닙니다. 금일 저희 3소대는 축구연습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세령의 말에 연동훈과 이민우가 그녀를 보았다.
“저희 3소대는 오후에 다 하지 못하였던 인성교육을 연장할 것입니다. 다들. 교육장으로 집합.”
세령은 최태윤에게 경례한 뒤, 먼저 교육장으로 향하였고, 그녀의 뒷 모습을 보고 있던 최태윤의 시선이 다시 소대로 향하였다.
“교육시간에 무슨 문제 있었나?”
“없었습니다.”
연동훈은 물음에 답하였고, 최태윤의 시선은 다시 세령에게로 향하였다. 그녀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그였지만, 언제나 긍정마인드를 유지하던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모두가 공 하나를 두고 열심히 뛰고 있을 때, 3소대는 인성교육장으로 향하였고, 먼저 도착한 세령의 독한 눈빛을 보고 하나, 둘 자리에 앉았다.
“내가 한 말을 단 하루 만에 모두 잊어버리는구나. 그 사람을 알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그 어떤 편견도 버리라 하였다. 하지만 너흰. 아직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어.”
각자 자리에 앉았고, 그녀의 첫 말에 조금 전 있었던 교육시간에 연동훈이 물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소대원들이 보인 행동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 정규일과가 마무리되는 시간까지 명상의 시간을 가진다. 다시 생각하고, 또 다시 생각해. 내가 버리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또 내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야.”
세령은 그 말만 남기고 교육장을 나섰다.
그녀의 행동에 대한 이유는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세령이 하는 말만으로 모든 대원들이 그녀를 색안경 끼고 보았다. 그녀가 말한 남자. 그 남자로 인하여 군인이 되었다는 말에, 모두의 행동은 어제와 달라졌다. 그것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이세령 소위.”
소대원들에게 명상의 시간을 준 후, 다시 중대로 들어서는 그녀를 최태윤이 불렀다.
“네 중대장님.”
“잠시 나 좀 보게.”
최태윤의 뒤를 따라 중대장실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