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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리거-10화 (1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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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반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태윤은 세령을 보고 있었고, 박만둘을 향해 말하였다. 박만둘은 세령을 보고, 3소대원을 보았다. 모두가 사고뭉치 고문관 소대라 관심을 끊었지만, 그 자체가 저들을 오랫동안 방치해 둔 것이었다. 그 어떤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대한민국 군대에서 무관심만큼 큰 얼차려는 없을 것이었다.

“대대장님께서 이 모습을 얼마나 흐뭇하게 보실지, 보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습니다.”

최태윤은 이 모습을 어디선가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이해석을 떠 올렸다.

“이게 아니야. 내가 원한 것은 이게 아니야. 내 테니스장. 세령아. 제발 깨끗하게 쓰자. 너도 잘 알잖아. 내가 이 테니스장을 얼마나 아끼는지 말이야.”

하지만 최태윤의 생각과 이해석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세령이 소대를 이끄는 것은 만족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자신이 직접 내어준 테니스장이 움푹 파이고, 잔디가 벗겨지며, 철망을 향해 내질러지는 축구공들을 보며 이해석의 가슴은 멍들고 있었다.

어느새 석식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석식 집합 준비!”

시간을 보며 곧 석식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안, 세령이 큰 소리로 외쳤고, 그 때야 모두의 움직임도 멈추었다.

지금까지 훈련 때 외에는 흘려보지 못했던 땀들. 이들은 옷이 흠뻑 젖었고, 시큼한 땀내음이 진동하고 있지만, 표정들이 밝았다.

“어때? 내면 속, 썩은 냄새보다 오히려 이 냄새가 더 상큼하지?”

세령은 연동훈을 보며 물었다. 그녀의 말뜻은 이미 해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동감하였다. 지금까지 내면 속, 썩은 냄새에 코가 적응되어 그 지독한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땀내음에 의해 새로 소독된 코가, 각자의 내면속 썩은 냄새를 떨쳐내고, 진정한 사람의 냄새를 맡고 있는 것이었다.

“석식은 연동훈이 인솔해서 가라! 저녁 맛있게 먹고!”

테니스장에서 모두 나온 후, 식당으로 향하기 위하여 줄을 맞춰 섰다. 그리고 세령이 소대원을 향해 큰 소리로 말하였고, 연동훈을 보았다.

“소대장님도…….”

“조용히 해.”

연동훈에게 인솔을 맡기고 세령이 B.O.Q방향으로 향하자, 지동현이 그녀를 부르려 하였지만, 연동훈이 지동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그의 말을 잘랐다.

“소대장이다. 언제까지 소대원들과 함께 사병식당에서 밥을 먹게 둘 것이야. 하루 동안이었으면 충분하다. 적어도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은, 스쳐간 소대장들에게는 그 하루가 아닌 단 한 끼도 없었으니까 말이야.”

연동훈의 말을 모두가 이해하였다. 이등병부터 연동훈까지, 적게는 1명의 소대장부터, 많게는 5명의 소대장을 경험하였다. 그만큼 사고가 많은 소대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 단 한명의 소대장도 소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한 인물은 없었고, 교육이나, 기타 작업과 점호외네는 자신이 맡은 소대를 찾아온 소대장조차 없었던 과거였다.

“이동 중에 군가 한다! 군가는 진짜사나이!”

이 또 한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3소대가 이동 중, 군가를 하는 것은 다른 소대들도 거의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3소대원의 표정까지도 밝아보였다.

“드디어 3소대가 미쳤구나. 저러다 또 사고치는 거 아냐.”

전혀 새롭게 보이는 3소대에 주위 반응은 의아하였다. 군가에 이어 표정까지 밝은 것에 이상수가 놀란 눈으로 보았고, 오히려 불안한 마음을 드러내었다.

“3소대 미쳤냐?”

이상수에 이어 연동훈의 동기인 화기소대 민관식이 큰 소리로 물었다.

“제대로 미쳐볼 준비하고 있다. 괜히 3소대 꼴통들의 불똥을 맞기 싫으면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라,”

모든 것이 변했다. 민관식의 말에 짜증과 화만 내던, 연동훈은 그의 말에 오히려 웃으며 답한 뒤, 그대로 식당으로 향하였고, 그 장면은 모두의 눈을 몇 번이나 비비도록 만들고 있었다.

“아프다…….”

그리고 홀로 B.O.Q로 향한 세령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후, 신발을 벗은 후 양말을 벗었다. 눈에 띄게 커져버린 물집. 소재은 의무장교가 애써 준비해준 약이 그 약효가 발휘 되기 전에 발을 혹사시킨 것이었다.

퉁퉁 부어버린 발과 함께, 지난 날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돈 탓에 종아리에 알까지 베이고 있었다. 여자의 다리는 매끈하고 예뻐야 하지만 지금 세령의 다리는 물집에 냄새나는 발, 그리고 땅땅하게 굳어버린 듯 보이는 종아리였다.

“샤워하고 싶다.”

그녀는 자신의 방 한 켠에 마련되어 있는 샤워장을 보며 말하였지만, 그 곳까지 기어갈 힘조차 없었다. 눈은 점점 감기기 시작하였고, 몸의 힘은 누군가 쭉쭉 빼가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3소대!”

석식 후, 점호까지 개인정비 시간이 주어졌고, 곧 행정병 이무연이 3소대를 찾았다.

“무슨 일이냐?”

그의 목소리에 답한 인물은 이민우였다.

“이민우 병장님, 다름이 아니라 내일 있을 교육 내용이 내려왔는데, 3소대장님께서 인성교육을 맡으셨습니다. 해서 인성교육 시간 배정 표와 소대 교육 시간표를 전달해 드려야 하는데, 3소대는 아직 전령이 없어, 제가 직접 가지고 왔습니다.”

이무연은 대대 내 각 소대장이 맡은 교육일지를 가지고 3소대를 찾은 것이었다. 그의 말처럼 3소대는 전령이 없었다. 지난 과거의 사건 때, 전령이 전출을 간 후, 공석이 된 상황이었다.

“내가 전달 할 테니 가봐.”

“네 그럼. 전진.”

이민우가 대신 전달받았고, 그는 교육시간표를 보았다. 3소대는 내일 중식 후, 곧바로 시작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어이 뚱보…….가 아니라 추강.”

“이병 추강.”

이민우는 추강을 향해 뚱보라는 말이 먼저 나왔지만, 곧바로 수정하였다. 이 역시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점차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즉시 B.O.Q로 가서 소대장님께 이 내용을 전달해.”

“알겠습니다. 그런데…….B.O.Q가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이민우는 추강을 가만히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곧바로 인정한 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다녀올게.”

두 사람의 뒤로 연동훈이 나섰다.

“선임분대장 짬밥에 딸랑이 역할은 우습지 않습니까? 그냥. 애들 시키겠습니다.”

“다들 개인정비하느라 바쁜데 할 일 없는 내가 다녀와야지.”

이민우의 만류에도 연동훈이 나섰다. 모든 소대원들이 그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이미 연동의 눈빛이 달라졌기에, 그 모든 변화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연동훈은 전달내용을 들고 B.O.Q로 향하였다. 막상 B.O.Q에 도착했지만, 여장교 전용이라 아무리 급한 전달내용이라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연병장?”

“병장 연동훈.”

그가 입구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의무장교 소재은이 보고 그를 불렀다.

“꼴통소대 대빵이 여긴 웬일이야?”

“소대장님께 전달 내용이 있는데, 들어갈 수가 없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연동훈은 소재은의 꼴통소대 대빵이라는 말에 화를 내지 않았고. 자신을 연병장이라 불러도, 인상은 찌푸려지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으면, 나오지 않을 사람이 나온데? 그리고 3소대는 전령부터 서둘러 선출해야겠다. 병장에 선임분대장 짬밥으로 이런 거…….자존심 상하잖아.”

소재은도 이민우와 같은 말을 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대신 전달 내용을 받아 들어갔다.

“이 소위. 자? 벌써 자면 안 되는데. 이 소위?”

소재은이 방 입구에서 노크와 함께 몇 번이나 세령을 불렀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리고 살며시 문을 열어보았고, 어두컴컴한 내부가 먼저 보였다.

“불도 켜지 않았네, 어디 갔나.”

소재은은 어두운 내부를 확인 한 후, 문을 다시 닫으려 하였지만, 곧 시선을 아래로 돌리자, 그 곳에 세령이 시체마냥 쓰러져 있었다.

“이봐 이 소위!”

소재은은 소리치며 불을 밝혔고, 곧 그녀의 큰 목소리에 입구에 대기 중인 연동훈이 급하게 들어섰다.

“무슨 일입니까!”

소재은이 세령을 안아 흔들며, 깨우고 있는 것을 본 연동훈이 물었다.

“아…….소대위님. 어쩐 일이십니까?”

“뭐야? 정말 자고 있었던 거야?”

깜짝 놀란 두 사람에 비해, 세령은 눈을 비비며 말하였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소재은이 바닥에 주저앉았고, 연동훈의 눈에는 심한 물집과 함께, 퉁퉁 부은 그녀의 발이 보였다.

“아무리 소대장이지만, 여인의 발을 그렇게 뚫어지게 보는 것은 좋지 않다 연병장.”

“네? 아네…….시정하겠습니다!”

소재은은 세령의 옆에 나란히 앉았고, 곧 연동훈의 눈빛이 세령의 발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연동훈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기 바빴다.

“잘해라 연동훈. 적어도…….네가 제대하는 날까지는 말이야.”

소재은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연동훈을 향해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난 간다. 나머지는 알아서 해.”

“전진.”

소재은은 자신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하였고, 세령이 힘겹게 몸을 일으킨 후, 경례하였다.

“괜…….찮으십니까?”

연동훈은 그녀의 발을 다시 보았고, 조금은 절룩거리는 듯 한 자세로 움직이는 그녀에게 물었다.

“죽지 않아. 그리고 무슨 일이야?”

소재은은 그렇다 쳐도, 연동훈이 B.O.Q에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해 물었고, 연동훈은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말해주었다.

“교육? 그렇군. 내일은 정규일과가 시작되는 날이니 교육도 있지. 알았어. 검토 할 테니 가서 점호 준비해.”

연동훈은 서서히 닫히고 있는 방문을 보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방문이 닫힌 후에도 한 동안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초점 없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15중대 점호 시작하겠습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점호지만, 단 하루도 긴장을 놓지 못하는 순간이 지나갔다. 등화관제를 하기 전, 마지막 움직임을 모두 마친 소대원들은 각기 침상에 나란히 누웠고, 곧 소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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