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9화 (9/163)

00009  히든리거  =========================================================================

“3소대 입장!”

곧 3소대가 식당입장을 하였고, 그 뒤로 곧바로 소대장과 함께 이민우, 그리고 신병 세 명도 막바지 줄에 합류하여 입장하였다.

“맛있게들 먹어.”

세령은 가장 뒤에 서서 소대원들을 향해 말하였고, 그녀를 향해 소대원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자신들과는 반대로 땀에 젖어 있었고, 흙먼지가 얼굴에 묻어나 있었다. 소대장과 함께 세 명의 신병도 시큼한 땀 냄새와 함께 더렵혀진 운동복을 입은 채, 식판을 들고 밥과 반찬을 담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모습에 반해, 깔끔한 나머지 3소대원의 표정이 변화되고 있었다.

“냄새 나! 저 쪽으로 가서먹어!”

3소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식판을 들고 움직이던 추강이 옆 자리에 앉자마자, 3소대 일병이 짜증 섞인 어투로 말하였고, 그 즉시 추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앉아.”

그리고 곧 세령이 식판을 들고 그의 옆에 서며 말하였다.

“니들에게는 향긋한 냄새가 나지? 그래서 이들의 땀 냄새가 역겹게 느껴질지도 몰라. 하지만…….다른 소대는 어떨까? 저들은 모두 땀에 젖어 같은 향을 내뿜고 있어, 그래서 소대원들이 더럽다는 생각을 안 해. 자신에게도 이런 냄새가 날 테니까 말이야. 저들처럼…….군대는 하나다. 함께 뛰지 않았어도, 함께 있어주는 것이 군대야!”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하였다. 냠냠, 쩝쩝거리며 맛있게 식사를 해야 할 식당 안은 조용해졌다. 모두가 사내들만 모인 식당 안에 울려 퍼진 여인의 목소리. 그 목소리 하나에 식당에는 정막이 흐르고 있었다.

“냄새난다면. 비켜줄게. 하지만…….이 냄새보다 더 역겨운 냄새는 절대 풍기지마라. 인간이 되지 않고, 내면이 썩어 들어가는 냄새. 그 냄새만큼 역겨운 것은 없다. 적어도…….내가 3소대란 이 꼴통소대를 버리는 날까지. 우리 3소대에서 그런 냄새는 절대 나지 말았으면 한다. 부탁이다.”

차가운 분위기였다. 식당 안은 마치 시베리아 한 복판처럼 차가웠다. 세령은 세 명의 소대원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향하였고, 그녀의 뒤를 따라 이민우가 움직였다.

“내 코에는 이곳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소대장님의 말처럼 그 썩은 내는 빨리 없애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 누구도 이민우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선임이라는 이유에서보다. 어쩌면 그 말이 자신들을 향해보는 진정한 시선일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연동훈은 아무런 말없이 식사를 하였다. 3소대원 전원이 그를 보고 있었지만,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곧 침울한 분위기 속에 점심을 먹기 시작하였다.

중식 시간이 지난 후, 또 다시 연병장에는 각 소대별로 축구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오후에도 연습은 계속 이어지는 듯합니다.”

때 아닌 무더위를 느끼는 듯, 벌써부터 선풍기를 켜 둔 채, 중대장 실에서 연병장을 보며, 군화를 벗고 시원한 물을 담은 세숫대야에 발을 담구고 있는 원사 박만둘을보며 최태윤이 말하였다.

“정확히 따지면 앞으로 20일 정도 남지 않았습니까? 그 기간 동안에 휴일이 몇 없으니, 황금 같은 휴일을 잘 활용해 보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만둘은 찬 물에 담가두었던 발을 꺼낸 후, 수건으로 닦으며 말하였다. 그의 말처럼 대대 체육대회는 5월 마지막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잡혀 있었다. 원래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을 결정짓지만, 축구라는 한 종목으로 인하여 이틀의 기간을 잡은 것이었다. 그 때까지 주말은 고작 6번, 그 여섯 번의 휴일동안 휴가증 10장이 걸린 체육대회의 주인공이 되려하는 것은 그 어떤 소대들도 마찬가지였다.

“3소대는 여전히 저 세 명…….아니 네 명이군요. 저기 한 명은…….”

“이민우네요. 녀석…….움직이는 것을 그 어떤 것보다 싫어하던 놈이 웬일로 공을 다 차고 있는지…….”

테니스장으로 시선을 돌리자, 소대장 이세령을 제외한 네 명의 인원이 보였다. 세 명은 신병이었으며, 한 명은 3소대 서열 두 번째인 이민우였다.

“저기…….이 아래 3소대 아닙니까?”

잠시 동안 테니스장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중, 중대 앞에 3소대가 정렬하고 있었다. 인솔자는 연동훈이었으며, 3소대 대부분이 나와 있었다.

“3소대 작업 시켰습니까?”

“아닙니다. 오늘은 소대 전체에 공평한 기회를 주고자, 작업은 일체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그럼 저 놈들이 어디가려고 줄을 선거야.”

최태윤의 눈에 보인 소대는 3소대가 확실하였다. 그들은 줄을 맞춰 선 후, 테니스장으로 향하였다.

“설마…….”

최태윤은 눈을 닦고 다시 보았다. 그리고 정확히 그들이 향하는 길 끝에는 테니스장이 있었다.

“좋은 구경이 있을 법 한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중대장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고, 발을 닦은 후, 막 전투화를 신은 박만둘이 허겁지겁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오후에는 이민우의 트레이닝 아래 조금 더 체계적으로 연습을 하겠다.”

“네 알겠습니다.”

세령은 고작 신병 세 명을 세워두고 이민우를 보며 말하였지만, 이민우의 표정은 처음과 많이 달라보였다. 항상 무표정에 가깝던 그의 표정에 미소도 보였고, 찌푸리는 얼굴도 보였다.

“축구는 11명이 차는 것입니다. 고작 네 명에서 축구시합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민우가 세 명의 신병에게 축구에 대해 첫 말을 꺼내려는 순간, 테니스장 입구에서 연동훈이 들어서며 말하였다. 그리고 그 뒤로 소대원들이 하나, 둘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그들을 본 세령은 아무런 말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고, 연동훈이 이민우 앞으로 왔다.

“네가 한 말. 지켜라. 제대 전. 머릿속에 가득한 이 쓸데없는 기억을 다 지울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

이민우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자대배치를 받고 3소대에 들어온 후, 이민우와 가장 가까이 붙어 있던 인물이 바로 연동훈이었다. 위 선임들의 심한 횡포에도 연동훈은 이민우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하여 군 생활에 하나의 추억을 가지고 있던 이민우지만, 반대로 연동훈의 모든 군 생활은 지옥 그 자체였다. 자대배치 후, 첫날부터 일어난 구타와 폭언. 정말 계급장 떼고 맞장까지 뜨고 싶은 생각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꾹 참고 지낸 세월이 오늘까지였다. 그에게 군대의 추억은 오로지 구타와 폭언이 전부였다.

이민우는 그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인지, 소대장 이세령은 모든 것을 변화시켜 나갈 구세주로 등장하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제대할 날짜만 기다리고 있던 두 병장에게, 세령으로 인하여 새로운 군 생활 추억이 만들어지려는 순간이었다.

“냄새가 역겹더라도, 참고 함께 해 주십시오. 절대 축구가 좋아서, 소대장님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제대 전, 추억하나는 만들어 놓고 가고 싶다는 생각에 동참하는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꼴통이 꼴통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연동훈은 정식으로 세령의 앞에 서서 말하였다. 세령은 잠시 동안 연동훈을 보고 있었고, 곧 이민우에게 했던 것처럼 손을 높이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제발…….제발 이런 것 좀…….”

“하지 말라고? 다른 멘트 좀 날려봐. 그 말은 이미 이민우가 써 먹었다.”

연동훈은 이민우를 향해 독한 시선을 돌렸다. 그 역시 세령에게서 여인의 모습을 지우고자 하여 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세령이 말 했듯이 여인이라 느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허물없는 행동을 취하는 그녀였다.

“연동훈, 이민우, 지동현. 원래 이 세 놈이 축구광 아니었습니까? 이제야 저 놈들이 자대배치 받고 행정반에 들어섰을 때, 그 얼굴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박만둘은 저 세 사람이 신병으로 자대에 왔을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최태윤은 중대장 1년차라 세 명의 신병생활을 접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박만둘에게 저 세 사람의 과거는 너무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사실…….3소대가 공을 차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최태윤이 박만둘의 말을 듣고 답하였다.

“찰 수 있는 분위기가 3소대에는 없었지 않았습니까? 연일 사건, 사고만 터지는데 어찌 공을 차겠습니까?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 듯합니다. 진정…….저 세 놈이 군대에서 누리고자 하였던 그 모습을, 지금 저들 스스로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박만둘에게 세 사람의 머릿속은 훤히 보이는 듯하였다. 비록 그 동안의 얼룩이 짙어 그 얼룩을 씻고, 새로운 색을 입히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겠지만, 이들은 천천히, 그리고 깨끗하게 그 얼룩을 지우고, 아름다운 색을 입을 것이라 확신이 서고 있었다.

“오랜만에 축구공을 앞에 두니 느낌이 어떠십니까?”

연동훈은 자신의 발아래 축구공이 놓인 것을 한 참 동안 보고만 있었다.

이민우가 그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고, 그는 이민우를 보았다.

“왜…….진작 이러지 못했을까. 내가 당했다고 소대원들 모두가 그 아픔을 함께 겪을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야.”

연동훈은 진심으로 지난 과거를 반성하는 듯하였다. 자신이 군대오면 꼭 하고 싶었던 것도 축구였다. 아버지와 삼촌에게 들었던 군대의 또 다른 전쟁터라 불리는 군대스리가. 그 명칭에 어울리는 군대에서의 축구를 경험해보고 싶었던 연동훈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기다림 끝에 지금 자신의 발아래 그 축구공이 놓여 있었다.

“늦지 않았다. 3개월이라는 시간, 결코 빠르게 지나가지 않는다. 적어도…….군대에서는 말이야.”

“네!? 소대장님. 그런 말씀은 저희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세령은 연동훈에게만 적용되는 시간을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아직 군 생활 창창하게 남은 일병과 이등병. 그리고 이제 갓 자대배치를 받고, 군 생활 100일도 채우지 못한 신병들에게는 최악의 말이었다.

“시끄러! 너희들만 군인이야! 나도 군인이며, 이 나라에 60만 명이 넘는 군인이 똑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시간 조율을 내가 하는 것도 아니고, 너희들이 하는 것도 아니야! 다만…….똑같이 주어진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시간의 속도도 조절된다는 것을 명심해라!”

세령은 소대원들의 원성을 들으면서도 더 큰 목소리로 말하였고, 곧 소대의 중심이 될 두 병장을 보며 다시 한 번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여지없이 두 병장은 몸을 뒤로 빼며 그녀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았다.

“자자! 오늘부터 우리 3소대는! 지난 과거를 모두 잊은 아주 깔끔한 소대로 다시 태어난다. 꼴통소대라 모두 말했지만, 그 꼴통이 어찌 변하는지 똑똑히 보여주자!”

단 하루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단 하루가 아닌 기나긴 시간이라 말해야 한다. 이세령이란 단 한사람에 의해 소대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로 인하여 그 동안 변하고자 바랐던 이들의 마음이 하루라는 아주 긴 시간 안에 변한 것이었다.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우울한 군 생활이 아니었다. 어두운 내면을 가지고 있는 군 생활이 아닌, 모든 것을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그런 군 생활을 꿈꾸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꿈은 단 한사람의 긍정적인 태도로 점차 변해갔고, 전염병처럼 모두를 전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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