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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리거-8화 (8/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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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줘봐.”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잠시 동안 테니스장에 널브러져 있는 축구공을 본 후, 용지현을 보며 말하였다.

용지현은 그에게 다가가 공을 건네주었고, 이민우는 자신의 손에 들린 축구공을 땅을 향해 강하게 내리찍듯 팽개쳤고, 땅에 퉁긴 공은 다시 하늘을 향해 올랐다.

‘펑!’

“!!!”

그리고 내려오는 공이 땅에 닿기 전, 이민우는 그 공을 아주 강하게 때렸고,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민우의 발끝을 떠난 축구공은 정확히 테니스장 철망을 강하게 흔들었고, 잠시 동안 철망에서 몇 바퀴를 회전한 후, 바닥에 떨어졌다.

“너…….공 잘 차는구나!”

조금 전까지 세상 무너질 듯 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세령이 이민우의 곁으로 다가간 뒤, 손을 위로 쭉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순간 이민우의 표정이 난색을 표하는 듯, 머리를 재빨리 뺏고, 그녀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제발 좀! 이곳은 군대입니다. 아무리 여자라고 하여도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것은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 곳입니다!”

이민우의 큰 목소리에 세령이 그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다가섰다.

“그러니까 내가 이러는 거잖아! 내가 여자였으면 네 머리를 쓰다듬었겠니! 나도 여자처럼 행동하지 않으려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것이야! 어디 병장 나부랭이 주제에 소대장에게 큰 소리야!”

이민우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계급에서는 자신이 하급병일지라도, 군 생활 경력은 오히려 더 많은 병장이었다. 또 한 소대장도 대부분 병장에게는 딱딱하게 구는 경우가 드물었다.

“도와주려면 도와주고! 아니면 그냥 돌아가서 군장 싸서 연병장이나 돌아!”

말 한마디에 오히려 한 방 맞은 인물은 이민우였다. 그는 진정 그녀를 돕고자 온 것이었다. 그 어떤 누구보다 움직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민우였지만, 중대장을 말처럼 썩은 과거를 조금이나마 고치고, 제대를 하려한 그였다.

“너희 셋! 이리와 봐!”

세령에게 한 방 먹은 이민우는 신병 세 명을 큰 소리로 불렀다.

“간단한 군대스리가 실습에 앞서, 이론을 말해 줄테니 지금부터 내가하는 말을 잘 듣는다. 군대에서 축구는 무조건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된다. 수비수는 공을 멀리 차내고, 공격수는…….뭐 너희가 신병이라 공격수를 할 일이 없으니 패스하고, 골키퍼는…….너희 같은 몸치가 골키퍼 하는 것도 무리니 패스하고…….남는 건 수비밖에 없네. 그래 수비. 수비는 다른 것 없다 그냥 자기 앞에 오는 상대선수. 선임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 그냥 안되면, 정강이 걷어차고, 밀어붙이며 공만 걷어내서 멀리 차버려. 그게 다다. 이상 교육 끝.”

세 명의 신병은 멍하니 서 있었고, 세령도 멍하니 서 있었다.

“이민우.”

“병장 이민우.”

“너 공찰 줄 모르지?”

“하하. 조금 전에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축구라면 우리 소대에서 저보다 잘 차는 놈은 연동훈…….젠장…….”

“연동훈? 연동훈이가 공을 잘 차?”

“말실수입니다.”

“시끄럽고. 진실을 말해. 그렇지 않으면 너만 군장 싼다.”

이민우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로 인하여 곤욕을 치를 지경이었다. 연동훈과 한바탕 난리치고 나왔는데, 또 다시 그 이름이 자신의 입에 붙어 있는 것이었다.

“사실. 연동훈병장…….축구광입니다. 하지만 소대장님도 아시다시피 소대에 문제가 많았고, 연이은 사고로 소대는 얼어붙었습니다. 당연히 웃을 일이 없었고, 지금처럼 누가 공차자고 말하는 소대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연동훈병장이 점점 더 거칠게 군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됐어. 거기까지! 소대의 선임 두 명이 축구광이면 그 소대는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다. 다른 것 다 집어치우고, 지금당장 공 찰 놈들 다시 테니스장으로 나오라고 해! 그리고…….이건 명령이다. 연동훈이 꼭 나오라고 해. 소대 선임 두 명이 공을 차는데, 그 후임병들이 안 움직이면, 오늘 밤 편히 잠을 청하지는 못하겠지?”

마치 악마의 미소를 보는 듯하였다. 자대배치를 받고 정식적인 소대장으로 생활한지 고작 하루 만에 이미 그녀는 군대에 녹아내린 인물로 보였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이 통할 것 같습니까? 그리고 한 번 더 우리 3소대에 문제가 생기면, 아예 3소대 전체 영창이라고 중대장님께서 못을 박았습니다. 그 놈들이 공차로 나오지 않아도 선임이 뭐라 할 수…….”

“그러니까…….문제 만들지 말자. 모두가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왜 피하려고만 해? 너희들 입으로 더 이상 문제 만들지 말자고 하고서는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있잖아. 그러니 다시 한 번 가서 내 진심을 말해주라. 제대를 앞둔 놈들은 마지막으로 후임 병들에게 휴가증이란 선물을 안기고, 제대를 하는 놈들은 그 지옥 같았던 군 생활에 마지막으로 좋은 추억하나 가지고 가라고 일러. 내 말 잘 알겠지?”

이민우는 그녀를 한 동안 보고만 있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소대장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중대장도 당근보다는 채찍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세령은 달랐다. 그녀는 진정으로 3소대에게 새로운 기억을 심어주려 하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거칠고 거친…….군대스리가로…….

세령은 멍하니 서 있는 그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은 후, 이민우의 옆에 있던 공을 아주 강하게 찼다. 그 공은 조금 전 이민우가 테니스장 철망을 향해 찼던 곳과, 같은 곳에 정확히 꽂혔고, 그녀가 찬 공 역시 몇 바퀴 그 자리에서 회전 한 후, 바닥에 떨어졌다.

이민우는 물론 세 명의 신병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저 축구에 ㅊ 도 모르는 소대장이라 여겼지만, 모두의 생각을 그 자리에서 고쳐놓은 단 한방이었다.

“내가 어제, 너희들을 왜 군장구보를 시켰는지 그 이유를 기억한다면, 조금 전 내가 보인 행동도 쉽게 이해할 것이야. 사람은...절대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먼저 알고 싶다면, 대화를 하고, 친해지고 싶다면 서로를 안아 줄 수 있어야한다. 3소대에는 지금까지 그런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부터…….군대가 명령에 죽고 사는 곳이 아닌, 진정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것을 느끼도록 해줄게.”

이민우는 지금 이 자리에 연동훈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보다 지금 세령이 한 말을 연동훈이 들었다면, 3소대의 변화는 더 빨리 찾아올 것만 같았다.

세령의 말을 들은 후, 이민우는 소대로 다시 향하였다. 그녀가 한 말을 몇 번이고 또 생각하며 소대로 들어섰다.

“이렇게 시간 흘려보내면 좋냐?”

소대에서는 책을 읽고 있는 연동훈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티비시청을 하거나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개인 활동을 하라고 하였지만, 마땅히 할 것이 없었다. 이민우는 그들을 훑어보며 말하였고, 모두의 시선이 이민우에게 집중되었다.

“한 번은...군대 입대 후, 딱 한번만이라도, 내가 군 생활 즐겁게 하고 왔다는 기억하나만 만들자. 그리고 그 기억을, 이번 체육대회로 하자.”

전혀 생각지 못하였던 이민우의 말이었다. 소대원 모두가 그를 멍하니 보고만 있었고, 연동훈도 책에서 시선을 돌려 그를 보았다.

“약 먹었냐?”

“그래. 약 먹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된 명약하나 먹고 왔습니다. 제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우울한 군 생활을 하였다고, 이놈들도 똑같이 겪고 제대하라는 건 솔직히 이기적인 욕심이라 생각이 듭니다. 어떻습니까? 연동훈병장님이나 저나. 군 생활 막바지입니다. 이미 꼴통소대로 소문이 났으니, 제대 전에 제대로 꼴통 짓 한 번 하고 가는 것 말입니다.”

연동훈은 그를 계속하여 보았다. 이민우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단 하나의 추억도 가지지 못하고 보낸 군 생활. 오로지 머릿속에는 사건, 사고밖에 남지 않은 얼룩진 군 생활이었다. 그의 말처럼 남은 3개월 안에 그 모든 얼룩을 지울 수 있는 명약이 있다면, 자신도 명약 한 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들었다.

“곧 중식시간이다. 모두 밥 먹을 준비해.”

모두가 연동훈의 입만을 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의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그들도 지금까지 지낸 우울한 기억 속 군대를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대 내의 최고선임이었던 연동훈과 이민우의 냉랭함에 언제나 주눅 들어 있었던 시절이었다. 이민우의 말에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라 여긴 소대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책을 덮은 연동훈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가 먼저 식사집합 방송이 나오기 전, 중대 앞으로 나섰고, 3소대 인솔자 자리에 섰다.

“밥 먹으러가냐?”

또 다시 이상수가 그에게 시비 섞인 말을 하였다. 하지만 연동훈은 그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지랄…….뭣도 아닌 놈이 폼은. 잘해봐라 연병장. 예쁜 소대장에게 귀여움 받으면서 말년을 잘 보내야 하지 않겠어?”

계속되는 이상수의 도발에도 연동훈은 주먹만 꽉 쥐고 있을 뿐 여전히 그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

“15중대 식사집합 하십시오.”

곧 식사집합 방송이 나왔고, 하나, 둘 중대원들은 식당으로 향할 준비를 하였다.

“밥 먹자.”

테니스장에 있던 네 사람에게도 방송은 들렸고, 그 어떤 방송보다 더 기다렸던 방송인 마냥, 세령의 말이 나오자마자, 세 명의 신병은 테니스장 앞으로 나와 줄을 섰다.

“배 많이 고팠어?”

“이병 추강! 배가 등가죽에 붙는지 알았습니다!”

“그래? 그럼 잘 됐네. 추강!”

“이병 추강.”

“중식 굶자. 그래서 그 배 좀 등가죽에 붙이자.”

“자…….잘 못 들었습니다!”

“농담이야 농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이 먹는 거다. 잘 먹고 맛있게 먹어야 그 모든 것이 몸으로 잘 간다. 중식 맛있게 먹고 오후에도 한바탕 뛰어보자!”

힘든 오전이었다. 차라리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로 고된 훈련이었다.

세령의 인솔 하에 신병 세 명은 중대 앞으로 향하였고, 그들이 움직이고 있을 때, 이미 3소대원 전체가 식당 앞에서 입장 대기를 하고 있었다.

“저,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 소대장이 이리 고생하는데, 밥 먹겠다고 지놈들끼리 앞서 가다니.”

세령은 소대원들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며 홀로 중얼거렸고, 곧 중대를 지나쳐가려 할 때, 이민우가 그 행렬에 합류하였다.

“너 밥 먹으러 안 갔어?”

“임무 실패입니다.”

“임무실패? 아…….조금 전 내가 했던 말을 소대에 전한 모양이구나. 괜찮다. 여러 번 말해도 싫다는 것은 진정으로 싫다는 의미야. 싫다는 것 강요해서 사고 생기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밥이나 먹자.”

세령은 그의 말에 웃으며 답하였다. 비록 입가에 미소가 생긴 상태에서 한 말이지만, 그녀의 시선은 다시 식당 입구에 서 있는 3소대원을 향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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