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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리거-7화 (7/163)

00007  히든리거  =========================================================================

“꼴통소대가 어디 가겠습니까.”

이민우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홀로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탈탈 털며 세령의 앞으로 다가왔다.

“소대장님. 3소대에 오신 것을 늦게나마 환영합니다. 그리고 우리 같은 꼴통을 떠안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럼…….”

이민우도 마저 나갔다. 세령은 신병 세 명과 한 동안 멍하니 서 있기만 하였고, 세 명의 신병은, 어제까지 천사라 여겼던 이민우의 말에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3소대를 한 번 엎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테니스장 외부 한 쪽 구석에서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던 최태윤과 박만둘. 박만둘은 최태윤의 표정이 굳어져 있는 것을 보며 말하였다.

“3소대장이 협조를 요청할 때까지. 모른 체하십시오. 그것이 3소대장이 원하는 것이며, 대대장님께서 원하는 것일 겁니다.”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최태윤은 몸을 돌려 저 멀리 보이는 연병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각 소대는 쉴 새 없는 연습과 함께 공을 차고 있었지만, 3소대는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너희 셋도, 공차기 싫으면 가도 좋아.”

세령은 멍하니 서 있는 세 명의 신병에게 힘없는 어투로 말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소대장님. 저희 세 명은 공차고 싶습니다.”

힘없는 세령에게 추강이 말하였다. 조금 전, 엄청난 몸 개그를 보여주었던 추강의 입에서 쉽게 나올만한 말은 아니었다. 세령은 그를 보며 슬퍼 보이는 듯 한 미소를 지었고, 테니스장에 널브러져 있는 축구공을 보았다.

또 다시 네 명은 아무런 움직임 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추강이 갑자기 하나의 축구공을 툭툭 차며 움직였다.

“몸이 무거워서 넘어진 것이 아니라, 디딤발 위치를 잘 못 잡아 넘어진 것 같았습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세령은 그를 보았다. 육중한 몸에 쿵쿵거리는 듯 한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추강은 자신의 발아래 있는 축구공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배가 나와 있었다. 그가 발로 툭 밀어 공을 앞으로 보내자 공이 보였고, 그 공을 차기 위하여 다가서며 튀어나온 배로 인하여 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공의 위치를 알 수 없었기에, 디딤 발도 문제였으며, 공을 차야하는 발도 공을 정확히 맞추지 못한 것이었다.

“추강.”

“이병 추강.”

“노력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 배부터 밀어 넣자.”

추강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 그녀지만, 배가 나온 이들에게 그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너희 둘은?”

“이병 설태구, 이병 용지현.”

“공 차 본적이 있어?”

역시 세령도 1소대장이나, 2소대장이 했던 물음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아니다. 그런 물음은 이제 필요치 않다. 공차고 싶어?”

곧바로 물음을 바꿨다. 축구를 해 본 경험이 중요한 것이라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 현재.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이들에게 남아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

“하고 싶습니다.”

신병 세 명은 서로의 눈을 한 번씩 본 뒤,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괜찮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소대장이며, 조금 전 분대장님께서 말한, 세 달 동안은 아무 일 없이 편히 지내고 제대하고 싶다 하셨는데, 만에 하나 소대장이…….”

“시끄러. 어차피 개망나니 소대야. 그 누구도 관심조차 없는 소대. 이런 소대를 맡은 소대장만 불쌍한 거지.”

한 편. 다시 소대로 돌아온 소대원들은 각기 자신의 개인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연동훈은 침상에 몸을 기대어 책을 폈고, 그 옆으로 지동현 상병이 다가서며 물었지만, 오히려 짜증 섞인 어투로 답한 뒤, 책을 다시 덮었다.

“우린 또, 혹여나 분대장님이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소대장 비유나 맞춰주다 가려나 했습니다.”

지동현은 연동훈이 세령의 기분을 맞춰주는 행동을 취하였던 오전의 일을 떠 올리며 말하였다. 진정, 이들 눈에도 연동훈의 행동은 평소와 달랐던 것이었다.

“…….”

지동현의 말을 들은 후, 연동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하였다. 그리고 저 멀리 구석으로 보이는 테니스장을 보았다. 거리가 꽤 멀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테니스장에서는 소대장과 함께 신병 세 명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고 있었다.

“신병은?”

“어? 그러고 보니 따라오지 않은 듯합니다.”

“뭐하는 거야! 자대배치 받은 신병은 한 달 동안 관심보호 대상인 것 몰라? 당장 가서 끌고 와!”

연동훈은 신병 세 명이 소대장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지동현을 향해 소리쳤고, 지동현의 시선이 다시 두 명의 일병에게 전달되었다.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아무리 신병이라고 해도, 소대장과 함께 있습니다. 소대의 최고 수장과 함께 있는데 어찌 분대장이 그 속에서 소대원을 빼 오겠습니까?”

일병 두 명이 신병을 데리러 가기 위하여 소대를 나서려 할 때, 이민우가 소대로 들어서며 말하였고, 그의 말에 연동훈의 매서운 눈빛이 그에게 향하였다.

“이민우.”

“네.”

“네? 관등성명은 잊었나?”

이민우는 연동훈의 부름에 짧게 대답만 하였고, 그의 대답이 못마땅한 연동훈이 날카로운 음성으로 물었다. 두 사람 모두 병장이지만, 연동훈이 이민우보다 한 달 앞선 선임이며, 3소대 선임분대장이었다.

“병장…….이민우.”

“세 달 남은 만큼, 지랄 같은 성격도 세 달 남았다. 내 성격 건드리지마라. 부디 조용히 지내다 전역증 받고 집에가고싶다.”

“누가 뭐라 했습니까? 단지…….분대장보다는 소대장이 더 계급이 높다는 것을 잊은 듯 하여 말한 것뿐입니다.”

두 사람의 기류는 소대 분위기를 완전히 얼려버리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지금까지 있었던 3소대의 모든 사건을 다 겪었던 인물이며, 연동훈은 그 중심에 있었던 경험도 있었다.

“3소대는 축구시합 포기인가?”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을 때, 최태윤이 들어섰다.

“전진.”

“쉬어.”

연동훈이 경례를 하였고, 경례를 받은 최태윤이 마치 서로 죽일 듯 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두 사람의 사이에 섰다.

“연동훈.”

“병장 연동훈.”

“넌. 지금까지 3소대가 어떤 소대였는지 잘 알고 있는 놈이다. 이민우도 마찬가지고, 그런 쓸데없는 과거를 계속하여 부대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가? 적어도…….그 고통을 경험한 너희들은 그 어떤 누구보다 더 소대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놈들이다.”

중대장의 말에도 두 사람의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어제까지는 소대장 자리가 공석이라 내가 계속하여 지침을 내렸지만, 오늘부터는 다르다. 너희 3소대를 맡은 소대장이 새로 부임되었고, 너희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말을 취임소감으로 말 한 사람이다. 헌데…….너희들은 이게 뭔가?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너희들을 위해 헌신한다는 소대장에게 지금의 행동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가?”

최태윤은 세령의 지원요청이 있기 전까지, 절대 소대 일에 관섭하지 않으려 하였다. 하지만 우연히 소대를 지나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고, 지난 과거를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참견하게 된 것이었다.

“자네들이 겪은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최태윤은 연동훈과 이민우의 어깨를 토닥거린 후, 다시 소대를 나섰고, 두 사람은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로를 보고 있었다.

“분대장님. 신병들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일병이 다시 말하자, 이민우의 날카로운 눈빛이 두 사람에게 향하였다.

“병신들…….사람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거냐. 내가 간다.”

이민우가 소대를 나서며 두 일병을 향해 매서운 눈초리를 보냈고, 그가 나간 뒤, 소대 안에서는 뭔가 강하게 부서지는 듯 한 소리가 들린 후, 곧이어 연동훈의 고함소리가 중대에 울려 퍼졌다.

“어려운건가…….”

중대장은 중대장실로 들어서며 그의 고함소리를 들었고,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홀로 말하였다.

“헉 헉.”

단 네 명 밖에 없는 테니스장이었다. 신병 세 명과 소대장. 하지만 네 명 모두 땀을 흘린 후, 서늘한 그늘에 앉아 공 하나를 두고 노려보고만 있었다.

“세상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너희 같은 몸치는 처음 본다. 공을 차는 게 어려워? 그게 마음대로 안 돼?”

세령은 세 명을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며 물었다. 튀어나온 배로 인하여 공이 보이지 않는 추강은 제외하더라도, 날렵해 보이는 설태구와 큰 키에 허우대 멀쩡한 용지현의 몸치는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그녀였다.

“누구나 쉽게 찰 수 있다면 개나, 소나, 다 태극마크 달고 뛰지 않겠습니까?”

“이민우…….”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이민우가 테니스장 안으로 들어서며 말하였다. 조금 전, 꼴통소대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손수 보여주고 간 인물이 다시 찾은 것이었다.

“왜 왔냐?”

“중대장님의 명령입니다. 축구를 하던가. 군장을 매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해서 군장보다는 축구가 더 편할 것 같아 왔습니다.”

이민우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최태윤은 3소대원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 또 한 이유 없는 강요이기에 중대장이라 하여도 쉽게 내 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도와줄래?”

세령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에게 물었다. 결코 소대장이란 타이틀과 어울리지 않는 여인. 하지만 그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타이틀에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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