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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리거-6화 (6/163)

00006  히든리거  =========================================================================

“괜한 체력낭비에 시간낭비 하지마라 연병장. 그냥 가만히 서서 지난해처럼 30골 밀어줘. 상대가 어떤 소대가 될지 모르겠지만, 거의 부전승으로 다음 라운드 진출할 수 있는 특혜를 올해도 주란 말이야.”

이상수는 삐딱하게 앉은 자세로 자신의 소대인 2소대의 연습과정을 보고 있었고, 연동훈을 향해서는 계속된 비웃음을 던지고 있었다.

“이상수 병장.”

“와우. 웬 아리따운 여인의…….”

이상수는 사내들만 있다고 여긴 군부대에서 갑자기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먼저 반응한 뒤, 몸을 돌렸다.

그리고 시선이 돌아간 곳엔 연동훈의 옆에 선 세령이 보였다. 운동복으로 환복 한 그녀는 비록 작은 체구였지만, 볼륨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앳된 미모와 잘 어울리는 단발머리는 그 곳 일대에 있는 모든 군인들의 눈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이상수는 3소대에 새로 부임한 소대장이 여장교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잊고 실수를 한 것이었다.

“이번에…….되도록 우리 3소대와 붙자.”

자신을 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세령은 이상수를 향해 손가락으로 지적하며 말하였고, 이상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이없는 그녀의 말로 자신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곧 그녀의 외모에 표정은 다시 환해졌다.

“저 새끼들을 당장…….”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고 있던 대대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 곳으로 가려하자, 최태윤이 그의 앞으로 서며 발걸음을 막았다.

“지금 세령은 자신이 아직도 내 딸로 이 군부대의 축구 시합을 보고 있다고 여기고 있어. 지금은 과거의 내 딸이 아닌 한 소대를 책임지는 소대장인데, 저런 복장과 외모로…….”

이해석은 세령의 복장과 외모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그 모습을 보고 허벌레 하고 있는 사병들을 더 혼내기 위하여 다가가려 한 것이었다.

“지금 이 소위가 입은 운동복은 군에서 지급한 운동복입니다. 또 한 외모는 대대장님께서 직접 키우셨으니, 이소위의 책임은 아니라 봅니다.”

최태윤의 말에 이해석은 이를 꽉 깨물고 있었지만,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근데. 3소대도 이번에는 연습을 하는 건가?”

“네. 대대장님. 뭐. 이 소위를 잘 아시니까 다른 설명은 필요치 않다고 봅니다. 작은 체구이며, 보통 여성들의 관심이 많지 않은 축구에 푹 빠져 살아온 세월이 이 소위 나이와 같습니다. 대대장님께서 그리 키우셨으니, 누굴 탓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아주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해석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정답밖에 없었다. 세령의 모든 삶이 군대에서만 이루어졌으니, 당연히 군대가 그 어떤 곳보다 편할 것이었다. 또 한 군인이라면 거의 다 알아주는 군대스리가를 한 때 평정했던 자신의 과거 속에 늘 옆에는 세령이 함께 있었다.

“연습 할 곳이 없어서 기다리나본데. 관사 뒤쪽 테니스장을 내줘.”

“네? 대대장님께서 직접 관리하실 정도로 아끼시는 테니스장을…….”

‘아무리 아껴도 내 딸만큼 아끼고 싶겠나. 다른 소대 눈치 채지 못하게 살짝 불러서 이동시켜. “

“알겠습니다. 대대장님.”

이 또 한 특혜라면 특혜일 것이다. 구단주를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은 신인감독과 같은 그녀였다.

최태윤은 이해석의 부탁과 같은 명령으로 연병장 사용을 기다리고 있는 세령에게로 다가갔다.

“3소대장.”

최태윤은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세령을 불렀고, 중대장의 모습이 보이자, 근처 병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 하였다.

“연병장을 사용하려면 기다려야 되는가보군.”

“네. 지금 1소대와 2소대 후에, 또 12중대와 13중대가 연습을 기다리고 있어, 아마 오전 중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잠시 3소대는 내 일 좀 도와주겠나.”

최태윤의 말에 3소대원 전원이 그를 보았다. 중대장의 명령이니 싫다는 말은 꿈에도 꿀 수 없었다. 모처럼 활동복을 갈아입고 되지도 않은 공이나 차 볼 심상이었지만, 모두는 어쩔 수 없이 중대장과 함께 움직였다.

“중대장님께서도 3소대에게 연습은 필요치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고 계시는구나.”

최태윤을 따라 마치 도살장 끌려가는 소 마냥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가는 3소대원을 보며 이상수가 킬킬 거리며 비웃었다.

“이 곳에서 일 좀 하게나.”

최태윤은 이해석의 말처럼 그들을 데리고 관사 뒤쪽 테니스장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이 곳은 대대장님께서 직접 관리하시는…….”

“그렇지, 대대장님께서 직접 관리하시기에 그 누구도 들어올 수도 없는 곳이지.”

“헌데 이곳에서 무슨 일을…….”

세령은 최태윤의 의도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언제 연병장을 사용할지도 모르는데,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참인가. 특별히 대대장님께 부탁하여 이곳을 사용토록 허락 받았으니, 자네의 꿈처럼 3소대가 이번 체육대회 이변의 주인공이 되도록 변화 좀 시켜봐.”

최태윤의 말에 세령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작은 체구에 앳된 얼굴, 눈동자마저 큰 그녀의 눈이 더욱 더 커지자, 최태윤은 괜한 헛기침을 하며 자리를 피해주었다.

“중대장님과 평소 아는 사이셨습니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중대장의 배려로 인하여, 연동훈이 멍하니 서 있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유부남은 관심 없다. 자자. 이런 횡재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니 마음 놓고 이 테니스장을 엎어보자!”

세령은 연동훈의 말에 손 사례를 친 뒤, 모두를 향해 큰 소리를 외쳤고, 곧 축구공을 테니스장에 뿌렸다.

“내가…….괜한 짓을 했나. 내 테니스장…….”

세령의 목소리가 관사 안에서 몰래 보고 있던 이해석의 귀에 들어갔고, 그녀의 테니스장을 엎어버리자는 말에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달래고 있었다.

근무자를 제외하고 총 10명이 테니스장에 모였다. 공은 8개가 뿌려졌고, 각기 공을 한 번씩 툭툭 차보는 것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무성의하게 공을 차는 것은 축구에 대한 모독이다. 한 번을 차도 신중하게. 내 발에서 떠난 공이 골인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찬다!”

세령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축구에 별 관심이 없는 병사가 대부분이라 열정을 가지고 공을 다루는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어이 신병!”

또 다시 세령은 세 명의 신병을 불렀다. 마치 강아지를 부르면 달려오는 것처럼 세령의 목소리에 세 명의 신병은 쪼르르 달려와 그녀의 앞에 섰다.

“공 차 본적 있어?”

“어릴 적에 차 보았습니다.”

“그럼 됐어. 차 본 경험이 있다면 성장도 빠르게 할 수 있어.”

“대체…….그게 무슨 논리입니까? 어릴 때 야구공을 만졌다면 야구도 잘 하겠다는 뜻과 같지 않습니까.”

“물론이지.”

연동훈은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무슨 논리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긍정적인 마인드는 연동훈을 조금씩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추 강!”

“이병 추 강.”

몸이 무거워 원하는 대로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추강을 불렀고, 그에게 공을 던져주었다.

“몸이 무겁다고 몸이 느려야 한다는 공식은 없다. 해 봐.”

추 강은 자신의 앞에 놓인 축구공을 가만히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공을 드리블하기 시작하였고, 약 5미터 정도를 끌고 간 후, 테니스장 철조망을 향해 공을 세차게 찼다.

“!!!”

그 순간, 모든 움직임은 멈추었다. 세령의 눈이 멍해졌고, 연동훈도 자신의 앞에 있는 공이 굴러서 발끝을 떠났지만, 가만히 서서 조금 전 상황에 머리가 멍해져 있었다.

육중한 몸으로 큰 모션을 취하며 찬 것처럼 보였지만, 공은 바로 앞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고, 추강의 몸은 테니스장에 웅덩이를 만드는 듯, 아주 강하게 넘어졌다.

“몸이 무겁다고 느려야 하는 법은 없지만, 저 놈에게는 있는 것 같습니다.”

연동훈이 추강의 모습을 보며 말하였다. 추강은 넘어진 몸을 힘겹게 다시 일으키고 있었고, 그의 모습을 보고 있던 세령은 연동훈의 말에 그를 매서운 눈으로 보았다.

“또 군장 한 번 쌀까? 적어도 우리 소대원들 간에는 인격모독에 대한용서는 하지 않는다.”

세령의 말에 연동훈의 눈빛이 다시 매섭게 변하였다. 세령은 시선을 돌려 다른 대원들을 보았다. 모두가 공을 차는 것을 싫어하는 듯, 그냥 자신의 앞에 있는 축구공을 툭툭 치는 것만 하고 있었다.

“하기 싫어?”

세령이 물었다.

“사실 이런 강제적인 것은 고쳐져야 합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게 하는 것은 반항심만 더 불러일으킵니다. 명령에 앞서, 대원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라 봅니다.”

세령의 말에 연동훈이 날카로운 지적을 하였다. 당연히 군대에서 있을 수 없는 말이었다. 병장이지만, 세령은 소대장이다. 군대는 계급사회이기에, 상관의 명령은 곧 법이다.

하지만, 조금 전 연동훈이 말한 것은, 군대에서 고쳐져야 할 수 많은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기 싫다는 놈들 이끌고 나도 하기는 싫다. 지금부터 자유 권한을 주겠다. 공을 차기 싫은 놈들은 당장 테니스장을 나가서 개인시간을 가져. 연동훈의 말처럼 나도 강요는 싫다.”

모든 대원들이 세령을 보았다. 절대 군대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외모를 지닌 25살의 작은 여인. 하지만 그녀의 말에 모든 대원들은 쉽게 테니스장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뭣들해! 소대장님 말씀 못 들었어! 축구하기 싫은 놈은 지금당장 테니스장을 나선다. 그리고 밀린 빨래를 하고, 개인시간을 가진다. 실시!”

아무도 움직이지 않자, 연동훈이 큰 소리로 외친 후, 자신이 가장먼저 테니스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후로 하나, 둘 대원들이 테니스장을 나서고 있었고, 총 10명이었던 대원들은 이제 고작 네 명만 남았다. 신병 세 명과 구석에 앉아있는 이민우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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