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4화 (4/163)

00004  히든리거  =========================================================================

“중대장님. 축구 한게임 하시겠습니까?”

“일과는 다 끝났나?”

“네. 제가 언제 일과를 마무리하지 않고, 공들고 나오는 것 보셨습니까? 이미 모든 교육을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서재호는 웃으며 최태윤에게 물었고, 그의 물음에 답한 뒤, 연병장으로 하나, 둘 나서고 있는 1소대원들을 향해 자신이 들고 있던 축구공을 힘차게 차 넘겼다.

“참. 3소대장.”

“네 1소대장님.”

“곧 체육대회인데, 3소대도 준비해야지. 뭐. 인재는 없겠지만, 그래도 룰에 의해 4대대 내, 모든 중대에 속한 소대는 단 한소대도 열외 없이 참가해야하니 잊지 말아.”

서재호는 여전히 가픈 숨을 내쉬며 앉아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한 뒤, 곧 단상에서 내려가 연병장으로 달려갔다.

“자네도 쉬게. 그리고 1소대장 말이 맞아. 단 한 소대도 열외는 없어, 군대에서는 하지 않고 포기한다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기권도 없어. 무조건 참가한다. 그리고 말이 체육대회지, 모든 소대가 축구를 내세우고 있어. 그러니 3소대도 축구인원을 선발해서 준비시키게.”

최태윤은 서재호의 말에 몇 설명을 덧붙인 후, 행정반으로 향하였고, 다시 힘들게 몸을 일으킨 이세령은 B. O. Q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대대내 마련되어 있는 간부숙소인 B. O. Q중, 여장교 전용 B. O. Q로 향한 그녀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부여잡고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그녀의 옆에서 누군가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오늘 와서, 너무 제대로 된 신고식을 한 것 같네. 이소위.”

그녀를 부축해 준 인물은 대위 소재은으로 의무장교였다.

“전진…….소위 이세령…….”

“됐어. 어서 들어가. 의무장교인 내가 보기에 이소위의 다리는 당분간 고통스러울 것 같다. 군화를 신고 아무런 대책 없이 연병장을 도는 것은 무리야. 그것도 자네처럼 왜소한 체격은 더욱 더 그렇지. 군장의 무게감에 무릎과 발목이 오늘 밤 심한 통증을 느낄 것이야. 내가 약 좀 갔다 둘 테니 씻고 난 후, 발라.”

“감사합니다.”

소재은의 도움으로 자신의 B. O. Q에 들어선 세령은 군장을 내려놓자마자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긴장이 풀리면서 조금 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발목과 무릎에 심한 통증이 전달되고 있었고, 소재은이 말한 고통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아픈 다리를 어루만지며 자신도 모르게 눈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연동훈 병장님.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땀으로 범벅된 몸을 씻은 후, 소대에 앉아 있는 연동훈의 앞으로 두 명의 상병이 다가서며 말했다.

“시끄러. 다들 잔 말 말고, 까라면 까. 그게 군대고 그게 계급사회의 룰이다.”

연동훈의 눈빛은 독하였다. 두 상병보다 더 화가 치밀어 오른 인물이 바로 자신이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오로지 독한 눈빛으로 초점 없이 한 곳만을 주시한 채 보고 있었다.

“제대 3개월 남겨두고 고생길이 확 열려버렸구나.”

자세를 고쳐, 침상에 드러누워 천장의 형광등만 보고 있던 그에게 4소대인 화기소대 민관식 병장이 그의 옆으로 앉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하려면 돌아가라.”

“동기가 힘들어하는데, 위로는 해 줘야지. 그보다 제대 말년에 어여쁜 여인을 소대장으로 모시게 된 심정이 어떠냐? 난 군대오기 전, 소원이 소대장이 여자였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 소대장은 인간전차야. 무식해도 그리 무식할 수가 없어. 그에 반해 넌 말년에 예쁜 소대장을 얻었는데, 얼핏 보니 어째 너보다 더 고문관 같다. 고생해라.”

민관식은 그의 옆에 나란히 누우며 말하였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연동훈은 아무런 답 없이 천장의 형광등만 보고 있었다.

“물집이네…….”

세령도 샤워를 마친 후, 소재은이 두고 간 연고를 바르기 위하여 자신의 발을 보았다. 그리고 뒤꿈치 안쪽으로 작은 물집이 잡혀 있었다.

‘똑 똑’

물집을 보며 손으로 콕콕 찌르고 있던 중, 노크소리가 들리자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앞에 서 있는 인물은 이해석 대대장이었다.

“아빠…….”

군대에서는 아빠라는 계급은 없다. 대대장이라 불러야 하지만, 그를 본 그녀는 갑자기 밀려오는 서러움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아빠라 불렀다.

“네가 선택한 길이다. 이겨내라.”

이해석은 그녀의 눈물을 보면서도 위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단 한마디만 남긴 후 몸을 돌려 가려 할 때, 다시 그녀의 발 아래로 시선을 주었다.

“발이 군화에 적응하지 않으면 군 생활은 힘들다. 의무대가서 약 바르고, 치료하거라.”

물집이 오른 것이 그의 눈에도 보였다.

이해석은 이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그리고 바로 앞쪽에서 서서히 문이 열리며 소재은이 머리를 내밀었다.

“대대장님이 아버지?”

그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다고 세령이 일부러 숨기거나 밝히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을 소재은이 들었을 뿐이었다.

“비밀을 원한다면 지켜줄게. 그보다 얼핏 듣기로는 물집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

그녀의 눈이 세령의 뒤꿈치로 향했다. 그리고 이해석도 보았듯이 그녀의 눈에도 물집이 보였다.

“치료 잘 못하면, 봉와직염 온다. 약 줄 테니 잘 발라.”

소재은은 그녀에게 다시 약을 건네주며, 문을 닫았고, 세령도 문을 닫은 후, 다시 물집 잡힌 자신의 발을 보았다.

“너희 셋. 당장 튀어와!”

같은 시각. 신병 세 명이 가장 마지막에 샤워를 마치고 소대로 들어섰고, 그들이 들어오자마자, 조금 전 연동훈에게 하소연 하였던 상병 지동현이 소리치며 불렀다.

“이병…….”

“시끄럽고! 이 모든 것이 너희 셋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어찌 책임질까?”

지동현의 말에 세 사람은 아무런 말없이 그저 서 있기만 하였다.

“내 말이 안 들려? 선임 말을 그냥 냠냠 씹어 드시겠다? 이 새끼들이…….”

“그만해.”

지동현이 세 사람의 앞으로 서서 그들을 향해보며 소리치자, 곧 소대 안으로 들어서는 또 다른 병장이 짧고 굵은 목소리로 말하며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하지만 이민우 병장님. 이 새끼들 때문에…….”

“그 놈들이 무슨 잘 못이냐? 저렇게 생겨서? 아무것도 알지 못해서? 네 놈들도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를 생각해. 네 놈들이 힘든 시기를 지냈다고, 그 모든 것을 내리사랑처럼 내려주면, 그 관습 같지도 않은 관습은 악습으로 계속 이어진다.”

이민우의 말에 지동현은 인상을 찌푸린 채, 다시 세 명의 신병을 고루 보고 난 뒤, 소대를 나섰다.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각자 관물대에 개인물품 정리하고, 석식 집합 준비 해.”

이민우는 멍하니 서 있는 세 사람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고, 그 즉시 세 사람은 빠른 움직임으로 자신의 개인 관물대에 개인물품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신병은 오늘 본 모든 선임이 마치 악마와 같이 보였지만, 조금 전, 이민우 병장을 보며 그가 천사일 것이라 믿고 있었다.

힘들었던 자대배치 하루 일과를 마감하는 석식 집합 알림이 방송을 타고 있었고, 15중대의 모든 인원들이 중대 앞에 집합하고 있었다.

“저 놈들 아직도 공차네.”

하지만 유일하게 1소대는 식사집합을 하지 않은 채, 연병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2소대 이상수는 비웃는 듯 한 억양으로 말했다.

“어이, 연병장. 저런 것 보면 3소대도 연습 좀 해야 하지 않아?”

이상수는 연동훈을 보며 물었고, 연동훈의 눈빛이 그를 매섭게 바라보았다.

“선임을 그런 눈으로 보지마라. 내가 굳이 네 이름까지 다 부르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잖아. 계급이라도 붙여주면 고맙게 생각해.”

이상수는 연동훈보다 한 달 위 선임이었다. 제대 두 달을 남겨둔 인물로 이번 대대 체육대회에서 1소대를 누르고 처음으로 2소대에 우승상품으로 지급되는 휴가증을 두둑하게 넘겨주고 가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3소대의 불운은 끝을 알 수 없구나. 새로운 소대장이 뭔 깡다구로 부임 첫날부터 애들을 군장 싸서 돌리지 않나, 신병이라고 들어 온 놈이 난쟁이에 허대만 멀쩡한 키다리에, 보기만 해도 지치는…….”

“그만 하십시오!”

이상수가 세 명의 신병을 보며, 그들의 신체적 모습을 비웃는 듯 말하자, 연동훈의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목소리는 거의 대대 전체에 퍼졌다.

자신이 세 사람을 보며 처음 했던 말이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상수가 똑같은 말을 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새끼가 미쳤나. 야, 연동훈! 너 약 먹었냐? 네가 신교대에서 총질 배울 때, 난 자대에서 뺑이 까고 있었어! 새끼야!”

“이상수.”

이상수가 그의 큰 목소리에 이를 갈며 말하였고, 곧 그의 뒤에서 이연호 2소대장이 그를 불렀다.

“네 소대장님.”

“잔말 말고, 밥이나 먹으러가라. 말년에 군 생활 꼬이지 않게 행동 조심해,”

이상수는 이연호의 한 마디에 꼬리 내리며 매섭게 보고 있던 연동훈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연동훈의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고, 그 매서운 눈빛을 세 명의 신병에게 돌렸다.

“꼴통 소대에 왔으면, 진정한 꼴통이 돼라. 하지만 절대 병신 같은 행동은 용서치 않는다.”

연동훈의 나지막하지만, 마치 쇠를 깎는 듯 한 음성으로 들린 말에 세 명은 또 다시 긴장하여 몸이 경직되는 듯하였다.

자대배치 후, 처음으로 먹는 밥이었다. 중식 시간을 전후로 자대에 왔지만,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하여 중식을 먹지 못하였다. 군대에서는 단 한 끼라도 이유 없이 건너뛰는 경우는 없다. 무조건 정해진 시간에 식사와 함께 잠도 청해야한다.

“점호 10분 전. 각 소대는 점호 준비 하십시오.”

석식을 마친 후, 정말 기나긴 하루를 마감하는 멘트가 들려왔다. 저녁 21시30분에 행해지는 저녁 점호를 받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소대원들은 각 소대 침상위에 올라 줄을 맞추어 서 있었다.

금일 자대배치를 받고 각 소대로 배정된 신병들은 처음으로 자대에서 받는 점호에 긴장하고 있었다. 신병 교육대와 별 반 다를 것이 없는 점호지만, 자신들을 제외한 모두가 선임이라는 것이 가장 큰 불편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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