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3 히든리거 =========================================================================
“연병장.”
“…….”
이세령이 그를 불렀지만, 그의 표정이 굳어졌고, 다른 소대원들의 표정 또 한 굳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어찌할지 몰라 하였고, 연동훈은 눈빛마저 날카롭게 변한 뒤, 이세령을 보았다.
“무슨 문제 있는가?”
“이왕이면 이름을 다 부른 후, 계급을 붙여주십시오.”
그의 차가운 말에 세령은 조금 전 자신이 그를 불렀던 말을 기억하였다. 연병장…….그리고 그녀는 그가 한 말을 이해하였다. 연병장은 군인들이 훈련 및,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군대 내에 마련된 운동장을 뜻한다. 그런 의미를 가진 연병장과 연동훈병장을 줄여 부르는 말이 동일하였다.
“연동훈 병장.”
“병장. 연동훈…….”
“그래. 내가 실수한 것을 인정한다. 사과하지. 하지만 모르고 하는 실수보다 알고 하는 실수는 용서가 더 힘든 법이다. 지금 연동훈 병장을 비롯하여 이 곳 소대에 있는 16명의 소대원들 모두가 여기 서 있는 세 명의 신병보다 먼저 군 생활을 한 선임들이다. 그런데…….단지 이들의 외모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앞으로 절대 없었으면 한다. 키가 크고, 작고, 그리고 살이 쪄 뚱뚱하다고 하여, 이유 없이 놀림 받는 것은 인격모독이며, 내가 이 3소대를 맡고 있는 한,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일은 없어야한다.”
“알겠습니다.”
이세령의 말에 연동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세령의 명령으로 세 사람의 각자 소개가 이어졌다.
“이병 설태구. 사는 곳은 경기도 안양이며. 나이는…….”
“군대에서는 나이 필요 없다. 그냥 뭐하다 왔는지 만 말하면 돼.”
설태구가 자신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나이가 나오려하자, 연동훈이 또 다시 제동을 걸었다.
“그냥…….백수였습니다.”
“그래그래…….다음.”
설태구의 말에 연동훈이 손을 저었다. 170센티도 안돼 보이는 키에 몸무게는 고작 50kg 좀 넘어 보이는 왜소한 체격으로 군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기는 설태구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인물은 설태구와 정 반대였다.
“이병 용지현. 만화를 그리다 왔습니다.”
용지현은 190센티가 넘는 키에 몸무게가 80kg이었다. 큰 키로 인해 80kg의 몸무게가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만화? 야. 너 야한그림도 그리냐?”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다.”
연동훈이 히죽거리는 표정으로 질문하였고, 이세령이 그를 노려보며 말하였다.
“다음…….”
연동훈은 그녀의 말에 시선을 마지막 인물에게 돌렸다.
“하…….갑갑하다.”
마지막 인물은 추 강이었다. 175센티의 키에 몸무게가 125kg. 도저히 보는 것만으로 힘이 빠지는 듯 연동 훈이 또 다시 그를 보며 손을 휘저었다.
“모두 완전군장 실시!”
“!!!”
연동훈이 추강을 보며 취한 행동에 이세령의 갑작스러운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왜 뜬금없이 완전군장입니까?”
연동훈이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너희 같은 놈들이 어찌 서로 의지하며 믿어주고, 나라를 지키겠는가! 소대원을 감싸지는 못할망정, 모욕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았다. 뭣들해! 다들 완전군장으로 연병장 집합!”
작은 체구에 여인이라 우습게 볼 인물은 아니었다. 이세령이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외쳤지만, 16명의 소대원의 눈빛은 그녀가 아닌 연동훈에게 향해 있었고, 연동훈의 눈빛은 이세령에게 매섭게 고정되어 있었다.
“군대는 계급사회이며. 명령불복종은 곧 영창이다. 뭣하나! 당장 완전군장으로 연병장 집합 해!”
독한 눈빛으로 이세령을 보고 있던 연동훈이었지만, 곧 그녀의 뒤로 중대장 최태윤의 벼락같은 목소리에 조금 전까지 꿈적도 하지 않고 있던 모두가 재빨리 움직이며 완전군장을 싸기 시작하였다.
“너희 셋은 뭐해! 너희는 3소대원 아니야! 너희 셋도 완전군장하고 집합!”
신병에게도 열외는 없었다. 군대는 계급사회이며, 공동체사회다. 한 명의 잘 못으로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곳이 군대다. 한 명이 잘하면 모두가 칭찬받지만, 반대로 한 명의 실수는 모두의 얼차려로 이어진다.
이세령의 고함소리에 신병도 완전군장을 착용하기 시작하였고, 곧 이세령도 자신의 군장을 직접 싸기 시작하였다.
“3소대장…….뭐하는 건가?”
최태윤이 물었다.
“저 또 한 3소대의 일원입니다. 함께 받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연동훈의 눈이 돌아섰다.
오후 일과를 시작해야할 시간에 때 아닌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돌고 있는 3소대를 대대 내의, 모든 대대 원들이 보고 있었다.
“신고식 제대로 하는구만.”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중대장실 창문을 통해 연병장을 돌고 있는 3소대원들을 보고 있던 최태윤의 뒤로 대대장이 들어섰다.
“전진.”
최태윤은 그를 향해 경례하였고, 대대장 이해석이 그와 함께 창가에 나란히 섰다.
“괜찮습니까?”
최태윤이 우울한 듯 한 표정으로 연병장을 향해 보고 있는 그의 옆모습을 보며 물었다.
“원래 저런 놈 아닌가. 아빠 따라, 어릴 적부터 봐 왔던 것이 군인이며 군대네. 저 놈이 보고 자란 것이 이것밖에 없는데 누굴 탓하겠는가. 그래도 여린 몸으로 소대장 교육도 수석으로 마치고, 자진하여 가장 훈련이 많은 우리 대대에 자원했다고 하더군. 내 반대에도 무릅쓰고, 군인이 되었고, 그 첫걸음을 오늘부터 내딛는데,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도는 것으로 시작이니…….마음은 아프지만, 어쩌겠나.”
최태윤의 시선은 다시 연병장으로 향하였다. 최태윤이 그녀의 프로필을 보며 처음에 하려던 말이었다. 이세령은 대대장인 이해석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다. 이해석은 비록 육사가 아닌 삼사 출신이라 진급이 빠른 편은 아니었다.
나이 40대 후반에 대대장에 머물러 있었고, 20대 중반에 이세령을 얻은 그였다. 최태윤은 그녀가 자라온 환경도 잘 알며,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1사단 전체를 통틀어 가장 문제가 많은 3소대를 이세령이 맡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석의 말처럼, 그 또 한 이세령을 믿고 있는 것이었다.
두 시간이 지났다. 연병장을 돌고 있는 3소대원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당장이라도 연병장에 쓰러질 듯 하였지만, 단 한명도 낙오 없이 연병장을 돌고 있었다. 모두의 눈빛은 날카로웠고, 표정은 굳어있었다. 특히 연동훈의 매서운 눈빛은 자신의 옆에서 힘겹게 헉헉거리며 뛰고 있는 세령에게 집중되었다.
키에 비해 무거운 몸을 지닌 추 강은 자신의 몸무게에 또 다시 20kg이 넘는 군장까지 착용했으니, 보통의 이들과 거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최태윤의 눈에 보이고 있었다.
“저 사병은 열외 해야 하지 않겠나?”
중대장실에서 행정반으로 이동한 그가 이무연에게 말했다.
“누굴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무연의 물음에 최태윤은 다른 이들과 거의 연병장 반 바퀴 이상 차이나고 있는 추 강을 가리켰다.
“아…….사실 저도 중대장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몸에 군장까지 착용했으니, 잘 못하면 무릎이나 발목에 큰 치명상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연병장으로 내려가 3소대장님께 말하려 하였지만, 그 곳에 대기 중인 의무대 최상병의 말을 듣고 그냥 올라왔습니다.”
“무슨 말을 한 것인가?”
“추 강 이병이 반 바퀴 뒤쳐진 것이 아니라, 다른 소대원보다 한 바퀴 반을 먼저 돌고 있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
진정으로 놀란 눈이었다. 두 시간 째 돌고 있지만, 이제 갓 이등병의 계급을 달고 자대배치를 받은 인물이며, 무엇보다 신체적으로 그 누구보다 더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선두에 서 있다는 말이었다.
최태윤은 곧장 연병장으로 향하였고, 쉴 새 없이 계속하여 돌고 있는 그들을 향해 보고 있었다.
“3소대장!”
곧 이세령을 큰 소리로 불렀고, 그녀는 지친 몸을 이끌고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이만하면 충분하네. 교육도 좋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병들의 건강상태야. 이렇게 계속 돌고 난 뒤, 갑작스러운 근육운동에 의해 발작을 일으키는 사병도 종종 있네.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소대원들을 쉬게 하게.”
최태윤의 말에 이세령은 지친 몸을 돌려 연병장을 돌고 있는 소대원들을 보았다. 자신의 몸도 천근만근이 되었고, 소대원들의 몸 또 한 천근만근인 듯, 한 발짝 내 딛는 보폭이 겨우 10센티도 안 돼 보였다.
“모두 정지!”
최태윤의 명령으로 이세령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고, 연병장을 돌고 있던 모두가 멈췄다.
“지금 즉시 군장을 해제하고 씻은 후, 석식 전까지 휴식을 취한다.”
그녀의 명령이 있은 후, 그 때부터 한두 명씩 바닥에 주저앉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연동 훈은 그 즉시 소대로 향해 걸었고, 그의 뒤로 하나둘, 소대원들이 움직이며 독한 눈빛으로 세령을 쏘아보고 들어갔다.
세령은 그들의 눈빛을 모두 받으며, 요동치는 심장이 더욱 더 빠르고, 심하게 요동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저 놈들은 왜 안 멈춰! 모두 정지!”
앞 서 움직이고 있는 신병 세 명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하였다. 다시 한 번 최태윤이 큰 소리로 외치자, 비로써 세 사람의 걸음도 멈췄다.
세 사람은 연병장을 가로질러 최태윤과 이세령의 앞으로 다가섰다.
“지금 즉시 씻고, 석식시간 까지 휴식을 취한다.”
세령이 세 명에게 다시 전달하였고, 그들도 군장을 들고 소대로 향하였다.
“이거 너무한 거 아냐? 3소대장. 우린 곧 있을 대대 체육대회를 대비하여 축구연습을 해야 하는데, 오후 내내 연병장을 장악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녀의 지친 몸이 바닥에 내려앉은 후, 곧바로 1소대장 서재호가 단상위에 올라 그녀를 내려 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다음부터는 그러지마. 군장 싸서 돌려면 연병장 말고, 산을 올라. 부대 뒤에 얼마나 좋은 동산이 있어. 연병장 100바퀴 도는 것보다, 그 동산을 10번만 오르락내리락하면 애들 정신 바짝 차린다. 그리고 저런 꼴통들에게 군장구보는 소용없어, 오로지 영창만이 정답이야.”
서재호는 옆구리에 축구공을 차고, 그녀를 여전히 내려 보며 말하였다. 그의 말에 세령의 눈빛이 변하였고, 곧 무거운 몸을 천천히 앉히며 잠시의 휴식을 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