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1 히든리거 =========================================================================
스무 살.
꽃다운 청춘이라 말한다.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나이. 도전과 실패를 경험하고 자신을 더 알아가기 시작하는 나이.
20대 초반의 나이는 모두에게 같은 꿈과 같은 기회를 제공하고, 더 높이 뛰어올라라 말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 그 중에서 남자. 이들에게는 자신의 꿈을 펼치기 전, 하나의 시험대에 오르는 과제가 있다.
바로 군대다.
신체적, 정신적 문제가 없다면 대한민국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유일한 곳. 같은 옷과 같은 먹거리. 심지어 자다가 뀌는 방귀의 향기도 같다.
모두에게 주어진 공평한 기회 속에서도 그 기회를 잡는 사람과 놓치는 사람이 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정해진 시간동안 그들에게 인생은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그 시간이 기회의 시간인지, 허송의 세월인지는 각자, 스스로 결정짓는 것이다.
한 편으로 군대라는 곳은 모든 사회와의 단절이라 말한다. 하지만 지금의 군대는 다르다. 군대에 있어도 사회를 경험한다. 그만큼 예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진 군대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 하여도, 적응실패는 곧 사고로 이어진다. 폭행과 폭언. 지난 과거의 군대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마치 내리사랑처럼 내려오는 악습. 썩어 빠진 악습을 버리고,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군대적응이 아닌 사회적응을 위한 단계로 만든다면, 군대는 그리 모진 곳이 아닐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군대에서 공만 잘 차도, 군 생활 활짝 핀다고 하였다. 특출한 재능이 없어도, 악착같이 공을 차고, 열심히 뛰면, 미모가 뛰어난 누이를 둔 것과 버금가는 특혜를 누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말을 뒷받침 하는 듯, 대한민국 군대에서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숨겨진 비공식 축구리그도 존재한다.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 이 두 리그는 대한민국 프로축구리그다. K리그 클래식은 점점 발전하고 있었고, 명문구단들의 격전은 유럽클럽대항 못지않은 구름관중을 동원한다.
그리고 앞 서 말한, 우리나라의 숨겨진 또 하나의 리그. 군대스리가. 구름관중은 없다. 민간인은 쉽게 볼 수 없는 대한민국 비밀의 리그다. 오로지 짧게 자른 머리카락과 똑같은 복장. 서로 외치는 구호만 다를 뿐. 이들은 모두 같다. 하지만 이들이 내 지르는 함성은 상암구장 5만 관중이 내지르는 함성보다 더 우렁차다.
“오늘 신병 오는 날이지?”
“네 주임원사님.”
보병 1사단 15연대 4대대 15중대. 오전 일과가 끝나고 식사를 마친 후, 행정반에 들린 원사 박만둘이 행정병인 상병 이무연에게 물었다. 보통 대대 내 주임원사는 군 생활 30년을 넘게 한, 뼛속까지 군인인 인물이 많다. 비록 나이가 들어 총을 들고, 빠른 발로 후다닥 뛰어다니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군대의 역사는 그 어떤 뛰어난 장교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주임원사는…….말년 병장을 잡는 유일한 저승사자이기도 하였다.
“이번엔 몇 명이냐?”
“일곱 명입니다.”
“일곱 명? 그것밖에 안 돼? 제대 한 놈이 몇 놈인데 고작 일곱 명이야?”
“그래도 그 일곱 명이라도 받으니 다행이지 않습니까. 듣자하니 11연대는 이번 신병교육을 마친 사병 중, 연대 전체에 고작 8명이 갔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한 중대에 일곱 명은 아주 많은 인원입니다.”
원사 박만둘이 이무연에게 들은 인원수에 짜증 섞인 어투로 말하였지만, 곧 행정반 문이 열리며 중대장 대위 최태윤이 전투모를 벗으며 들어섰고, 자리에 앉으며 말하였다.
“원사님께서 이번에 오는 놈들 관리 좀 잘 해주십시오. 요즘 신병들의 사고가 워낙 많아, 사령부에서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말 듣지 않으면 패면 됩니다. 요즘처럼 군 생활이 편해 질 것이라고는 제 군 생활 30년 동안 전혀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못하면 맞고, 안되면 때려서라도 인간 만든 곳이 군대였는데, 요즘엔…….”
중대장의 말에 박만둘은 쉰 살이 넘은 나이에 주먹에 힘을 주고, 인상까지 찌푸린 채 말하다 말고 이무연 상병을 보았다.
“왜?”
“아닙니다. 사실 요즘 군 생활 편한 것은 20년 전, 군대 제대한 아버지나 삼촌의 말을 들어 잘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군대란 곳도 변해야합니다. 구타와 폭언이 아닌, 인성으로…….다듬고 다듬어…….”
“지랄하네. 야, 이무연.”
“상병 이무연.”
“넌 30년 전, 군대에서 나를 만났다면, 하루에 한 대씩 맞았을 것이다.”
“아쉽게도…….30년 전에는 제가 아버지 몸 속, 어딘 가에도 생성되지 않았을 때라…….그 어떤 방법으로라도 원사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뭐야! 이놈이.”
“하하하.”
이무연의 장난 섞인 말에 박만둘이 옷소매를 걷어 올리며 두 주먹을 쥐고 소리치자, 중대장이 큰 소리로 웃었다.
지금의 아버지나, 삼촌등 30대 중반을 넘긴 사람들이라면 이런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상병이 원사에게 장난을 걸고, 또 그것을 보고 웃음을 보이는 중대장. 결코 과거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지만, 현재의 군대에서는 충분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었다.
‘똑 똑’
한 참을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을 때, 행정반 노크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전진! 15연대 행정병 상병 조우식. 신병 인도차 행정반을 방문하였습니다.”
“전진. 쉬어.”
그의 보고에 중대장이 인사를 받았고, 조우식의 뒤로 더블 백을 메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몇 인물이 중대장의 시선에 보였다.
“안으로 들어와.”
박만둘이 손짓하자, 조우식의 뒤에 서 있었던 신병 일곱 명이 잔득 고무된 표정과 경직된 자세로 행정반에 들어섰고, 가장 마지막에 들어서는 신병을 본 세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잠깐…….조우식.”
“상병 조우식.”
“저기 맨 뒤에…….저 놈도 신병이야?”
“네 맞습니다.”
모두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 인물을 보며 중대장이 물었고, 조우식은 확실한 답변을 하였다.
최태윤은 여섯 명의 신병들 얼굴을 고루 보면서 지나쳤고, 곧 가장 마지막에 선 인물 앞에 멈춰 섰다.
“너…….”
“이병. 추 강!”
자신의 앞에선 중대장의 짧은 한 마디에 요주의 인물이 큰 소리로 자신의 관등성명을 말하였다.
“너. 군대 왜 왔냐?”
“꼭 오고 싶었습니다!”
“꼭 오고 싶어? 군대를?”
그의 말에 최태윤이 다시 의아한 눈빛을 보이며 물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꼭 해 봐야 하는 것이 군 생활이라 하였습니다. 비록…….몸은 이렇지만 충분히 이겨낼 것이라 믿고, 자원입대 하였습니다!”
군대 면제를 받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전에는 국가고위직 공무원 자녀나, 대기업 자녀들이 대부분 군대 면제를 받으려 별에 별 수단을 다 동원하였지만, 요즘엔 연예인들이 소속사의 힘으로 면제를 받는 경우도 있다. 또 한, 없던 병도 만들어 입대를 거부하는 청년이 늘고 있는 추세였다.
하지만 지금. 모두의 눈을 의심케 만들고 있는 한 인물. 그의 모습에 진정으로 모두 할 말을 잃고 있는 상태였다.
“키가 얼마냐?”
“175센티입니다.”
“미안하지만, 몸무게는?”
“125kg 입니다!”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진 이유였다. 175센티의 키에 몸무게가 125kg. 혼자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이는 신체를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터질 듯, 타이트 한 군복이 불편해 보이고 있었다.
“군복은 어디서 났냐?”
“요즘엔 빅사이즈 군복이 보충대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요?”
중대장이 그의 몸에 맞는 군복의 출처에 대해 묻자, 원사가 답하였고, 중대장은 알지 못한 부분을 알게 되어 놀란 눈으로 추 강을 다시 보았다.
“전진!”
모두의 시선이 추강에 집중되어 있을 때, 행정반 문 앞에서 갑작스레 한 사내가 급하게 들어서기 전, 최태윤을 보고 경례하였다.
“신병 왔습니까?”
“1소대장.”
“네. 소위 서재호.”
“밥은 먹고 온 거냐?”
“밥이 문젭니까? 오늘 온 신병 중, 뛰어난 놈을 가장 먼저 선출하기 위하여 한 걸음에 달려왔습니다.”
“그래. 언제나 유능한 놈은 1소대로 가지. 가장 부지런한 놈이 언제나 신선한 먹잇감을 챙겨가는 것이니까. 데려가.”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야, 무연. 우리 몇 명이냐?”
서재호는 중대장을 향해 꾸벅 인사한 후, 곧바로 행정병 이무연에게 물었다.
“이번 신병 중, 두 명이 1소대 배치입니다.”
“오케이! 자자…….신병들 주목!”
이무연에게 답을 들은 후, 서재호는 신병 일곱 명의 시선을 모두 자신에게 향하도록 하였다.
“우리 1소대는 전설적인 소대다! 모든 면에서 중대는 물론, 대대와 연대, 사단에서도 최고의 소대다! 다른 것은 묻지 않는다!”
서재호의 우렁찬 목소리에 신병들의 표정은 더욱 더 상기되어 있었고, 사단 최고 소대라는 말에 침을 꿀꺽 삼키는 신병도 있었다.
“공 찰 줄 아는 놈. 손!”
“역시…….서소위의 머릿속에는 온통 축구야. 무슨 군대에서 사격이나 전투능력을 먼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축구에 관한 것만 물어보나.”
서재호가 신병들을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은 질문에, 최태윤이 자신의 자리로 이동하며 말하였다. 박만둘과 이무연도 그를 잘 알고 있으며, 언제나 신병이 도착하면 그 누구보다 먼저 행정반을 찾아 축구광을 선출해 가기에, 1소대는 소대 단독으로도 거의 국가대표 수준에 이를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