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돈의 라이안-56화 (55/57)

제56장 더욱 강해지는 발크르스 마왕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

이미 발크르스 마왕의 마성이 되어버린 이곳의 최상층에서는 발크르스 마왕이 창을 통해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 그림자와 같이 나타나 무릎을 꿇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칸드였다.

“찾아보았느냐?”

“죄송합니다. 이곳 대륙 내에는 없는 듯합니다.”

“흠.”

발크르스 마왕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혼돈의 검 메르지아였다.

“어째서 혼돈의 검 메르지아가 그 인간을 보호했단 말인가.”

발크르스 마왕의 중얼거림에 칸드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말해 보아라.”

“그 라이안이라는 인간이 가졌던 혼돈의 날과 혼돈의 신녀가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칸드의 말에 발크르스 마왕이 돌아서며 턱을 만졌다.

“나 역시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혼돈의 물건들이 마치 그 인간의 주위에 머물렀다는 생각이 드는지 그것을 모르겠구나.”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아무리 그 인간이 강하다 한들 마왕님께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나 역시도 그 인간 하나뿐이라면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혼돈의 검 메르지아에 어떠한 힘이 숨겨져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그것이 걱정이다. 그것을 대비해 좀 더 강한 힘을 손에 넣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구나.”

“…….”

칸드 역시도 세 개의 혼돈의 물건이 한곳으로 모이게 될 줄은 몰랐던 일이었다.

칸드가 생각하고 있을 때 발크르스 마왕이 다시 칸드에게 물어왔다.

“칸드, 마계의 문은 어찌 되고 있느냐?”

“전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마력이 흘러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마치 열리기 전의 상태와 같습니다.”

마계의 문에서는 아직도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그로 하여금 발크르스 마왕의 휘하에 있는 마족들과 마물들은 충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마계의 문을 열고 있는 마법진이 파괴되지 않는 한 그곳을 통해 계속해서 마력이 새어 나오리라.

“그렇다면 우리 또한 마계로 돌아갈 수 없으며 이곳 중간계에 갇혀버린 것이나 다름없구나.”

칸드 또한 같은 생각을 했다.

“마계의 문은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마신의 힘 또한 이곳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거기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다, 그만 됐다. 나가 보거라.”

“알겠습니다.”

칸드가 모습을 감추려 할 때 발크르스 마왕이 다시 그를 불렀다.

“기다려라.”

“더 하실 말씀이 계신지요?”

발크르스 마왕은 한참을 심각하게 고심하더니 말을 꺼냈다.

“삼 마왕 하비마고에게 이곳으로 오라고 전하라. 급한 명이라는 것 또한 알리도록.”

“알겠습니다.”

칸드가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발크르스 마왕은 다시 창밖으로 보이는 검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마신의 율법이 이곳까지 미치지 못한다면 한번 시도해볼 만도 하겠지. 크흐흐흐.”

발크르스 마왕이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드래곤들 때문이었다. 그들 또한 신을 배신하고 드래곤들의 율법을 깨지 않았던가.

발크르스 마왕의 사악한 웃음이 방 안을 울렸고 그 웃음소리는 곧 성 전체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칸드가 삼 마왕이 있는 곳까지 도착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변신을 한 채 날아가고 있기는 했지만 에드코르 제국에서 제루이판 왕국의 왕성까지는 엄청난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삼 마왕 하비마고는 한 곳의 밀실에서 쇠사슬에 묶여 나체로 걸려 있는 인간들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크흐흐, 인간의 육체는 너무도 약하단 말이야.”

삼 마왕 하비마고가 손가락 하나를 들자 그의 손톱이 칼날과도 같이 날카롭게 튀어나왔고 그는 그것으로 한 남자의 옆구리를 수직으로 그었다.

“끄아아아악!”

겨드랑이부터 허리 골반까지 베어진 남자는 고통스러움에 비명을 질렀고 하비마고는 그 비명소리를 들으며 즐거워했다.

“끄르르르륵.”

남자는 곧 고통스러움에 기절했고 흥미를 잃은 하비마고는 고개를 흔들더니 남자의 심장에 손을 꽂았다.

“크헉!”

툭.

기절해 있던 남자는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깨어났는지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뜨며 놀라다가 곧 고개를 떨어뜨렸다.

하비마고의 손에는 그 남자의 심장이 들려 있었다.

“인간의 몸 중 가장 맛있는 곳이 바로 이것이지. 씹을수록 피가 튀는 이 맛. 너도 맛보겠느냐?”

하비마고는 손에 피가 흐르고 있는 심장을 든 채 매달려 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그것을 내밀었고 매달려 있는 여성은 심하게 몸을 떨며 흐느꼈다.

“흐흐흐흑. 살려 주세요.”

“살려 달라라, 한 가지는 알아야겠구나. 난 너희들 모두 먹어버릴 것이라는 것이다. 크흐흐흐.”

하비마고는 매달려 있는 인간들 앞에서 피가 흐르는 심장을 씹어 먹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인간들은 공포에 몸을 떨며 삶의 희망을 버렸다.

단지 다음 차례가 자신이 되지 않길 속으로 빌고 있을 뿐이었다.

“크하압!”

하비마고가 다시 한 여자의 허리를 잡아 산 채로 여자의 배를 씹어 먹었다.

“끼아아악!”

여자는 순간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쳤고 자신의 배를 씹어 먹고 있는 하비마고를 내려다보며 생기를 잃어갔다.

그런데 그때 하비마고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그의 뒤에 나타난 하나의 그림자 때문이었다.

삼 마왕 하비마고는 입가에 피를 흘리는 상태로 빠르게 뒤를 돌아보았고 그의 눈에 발크르스 마왕이 보낸 칸드가 서 있었다.

“네놈이 이곳에는 무슨 일이냐?”

하비마고는 칸드를 경계했다.

언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지 모르는 최상급 마족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아직 힘의 차이가 커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얕잡아 볼 수 있는 상대 또한 아니었다.

칸드가 삼 마왕 하비마고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발크르스 마왕님께서 하비마고 님을 모시고 오라 하셨습니다.”

“흠. 일 마왕께서 나를 왜?”

“그것은 저도 잘 모릅니다.”

“알겠다. 밖에 누가 없느냐!”

삼 마왕 하비마고가 부르는 소리에 문 밖에서 두 마족이 빠르게 나타났고 곧 무릎을 꿇었다.

칸드가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비마고는 손톱을 세우며 가차 없이 자신 앞에 부복해 있는 두 마족 중에 한 마족의 목을 베어버렸다.

스악.

투둑.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있던 마족은 순간 움찔했다.

“멍청한 놈들. 다른 놈이 들어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다니.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생기면 너 역시 이리 될 줄 알아라.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그것은 함부로 들어온 칸드에게 하는 경고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한 번 함부로 몰래 들어오면 이렇게 만들어 주겠다는.

하지만 칸드는 그러한 것에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가시지요.”

“앞장서라.”

하비마고는 칸드의 뒷모습을 보며 언제고 빌미를 잡아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날이 어두워지고 깊은 어둠이 찾아와서야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에 도착한 칸드와 삼 마왕 하비마고였다.

하비마고는 발크르스 마왕을 보며 인사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일 마왕님.”

“어찌 지내나 한 번 보고 싶어서 불렀다.”

“저와 이 마왕이신 체리아나 님을 이곳에서 멀리 보내신 분이 바로 일 마왕님이 아니셨습니까?”

발크르스 마왕은 한쪽에 있는 칸드에게 명했다.

“수고했다. 그만 나가보도록.”

“알겠습니다.”

칸드가 나가고 발크르스 마왕은 자리에 앉으며 삼 마왕 하비마고에게도 앉기를 권했다.

“우선 앉지.”

“흠.”

삼 마왕 하비마고는 발크르스 마왕이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궁금했지만 발크르스 마왕이 말하기 전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비마고, 마계의 문이 닫혀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흠. 우리는 소환되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개체가 없으니 돌아갈 수 없는 것이 맞겠지요. 우리가 본래의 모든 힘을 가진 채 중간계에 있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발크르스 마왕은 삼 마왕 하비마고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고 하비마고는 왠지 몸이 떨려오는 듯했다.

“그렇다면 마신의 율법은 어찌 생각하는가? 지금에 와서 그것을 꼭 지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순간 삼 마왕 하비마고는 발크르스 마왕을 보며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마왕들끼리는 서열 아래 마왕의 힘을 흡수할 수 없다는 것.

“무,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 당연히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삼 마왕 하비마고가 불안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럼, 이만.”

고개를 숙이고 뒤로 돌아서서 빠르게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삼 마왕 하비마고였다.

촤악!

“커억!”

하지만 뒤에서 발크르스 마왕이 목을 움켜쥐었고 삼 마왕 하비마고는 때를 놓쳤음을 알고 당황해 했다.

“커억. 이게 무슨 짓이십니까? 크윽.”

“한번 실험을 해 보고 싶은 것이 있지. 과연 내가 너의 힘을 흡수하려고 하면 마신이 나타나는지 안 나타나는지. 그런데 지금까지는 별 반응이 없는 것 같군. 크흐흐흐.”

삼 마왕 하비마고는 이렇게 어이없게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둘러 손톱을 세우며 자신의 목을 움켜잡고 있는 발크르스 마왕의 손을 공격했다.

차악!

쉬이익!

공격이 먹혀들었는지 발크르스 마왕이 손을 놓았고 삼 마왕 하비마고가 경계를 하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하비마고의 시선에 당연히 있어야 할 발크르스 마왕이 보이지 않았다.

하비마고는 곧 자신의 뒤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를 찾는가.”

스삭! 스삭!

“크아악!”

하비마고의 두 팔이 발크르스 마왕의 공격에 무참히 잘려나가고 그는 고통스러움에 무릎을 꿇었다.

발크르스 마왕은 고통에 겨워하는 하비마고의 주위를 천천히 돌며 말했다.

“아직도 마신은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구나. 크흐흐.”

삼 마왕 하비마고는 고통스러움을 느끼며 발크르스 마왕을 노려봤다.

“마신님의 율법을 깬 죗값을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오!”

“크흐흐, 두고 보지.”

스삭!

터르렁.

삼 마왕 하비마고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졌다.

그렇게 삼 마왕 하비마고가 발크르스 마왕의 손에 어이없게 목숨을 잃었고 발크르스는 죽은 삼 마왕 하비마고의 힘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하비마고의 몸에서는 곧 검은 연기가 올라왔고 그것들은 모두 발크르스 마왕의 눈과 코 그리고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주 오랫동안 하비마고의 마력을 흡수한 발크르스 마왕은 곧 자신의 몸에서 엄청난 힘을 느끼며 흡족해 했다.

“크흐흐흐. 이런 식으로 힘을 모은다면 아무리 혼돈의 검 메르지아라 한들 못 이길 게 없지. 크하하하하!”

보다 강해진 발크르스 마왕이었고 모든 마력을 잃은 하비마고의 몸은 마치 미라가 된 듯 메말라버렸다.

* * *

제루이판 왕국의 왕성 근처에서 나타난 라이안 일행은 멀리서 보이는 왕성을 보며 긴장했다.

라이안 또한 삼 마왕 하비마고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고 있었기에 주위를 살피는 것에 신중을 기했다.

갈천혁이 멀리서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놀라워했다.

“아니, 이제 마성이 되어버린 이곳에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니!”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그들은 이상함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라이안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사육당하고 있는 거네요. 마족들이 마물들을 부리며 사람들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아요. 인간들은 단지 저들의 먹이일 뿐이죠.”

“어찌 해야 하는가, 라이안.”

타미르안이 물었고 라이안은 왕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될 수 있으면 몰래 잠입해야지. 대부분 하급마족들이지만 중급마족들도 상당수 일거야. 만약 내가 하비마고와 싸우고 있을 때 저들이 전부 덤벼든다면 할아버지들과 타미르안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 가자.”

라이안이 모습을 감추자 모두가 같이 뒤를 따랐다.

라이안은 몰래 왕성으로 다가가며 중간 중간 사람들이 굶주림을 참지 못한 마물들의 먹이가 되는 것을 보며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나서서 도와주고 싶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저런 처 죽일……!”

혁마소가 참다못해 입 밖으로 욕설을 내뱉었고 곧 한 마물이 그들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마물은 곧 그들이 있던 곳으로 다가와 주위를 둘러보았고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자 곧 다시 되돌아갔다.

갈천혁이 혁마소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우리 심정도 자네와 똑같지만 지금 여기서 나서면 안 되네. 마왕부터 처리하고 저 악마들을 처 죽여도 늦지 않는단 말일세.

그들은 다시 모습을 감춘 채 왕성 안으로 잠입했다.

어느 정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을까.

삼 마왕 하비마고가 있는 곳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한 그들이었기에 하는 수 없이 성안을 많이 돌아다녀야 했다.

그들이 천장에 기척을 숨기고 숨어 있을 때였다.

두 마족이 한 마족의 시신을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제르테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삼 마왕이신 하비마고 님 방에 발크르스 마왕의 측근인 칸드가 있더군. 우리는 그가 잠입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흠. 그렇다면 본보기로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군.”

“그렇지. 어쩌면 내가 이렇게 될지도 몰랐으니 이거 간 떨려서, 원.”

“그런데 발크르스 마왕의 측근이 여기는 왜 왔지?”

“나도 몰라. 단지 삼 마왕 하비마고 님께서 칸드를 따라 발크르스 마왕이 있는 곳으로 갔다는 것밖에는.”

자신들의 말을 듣고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아무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는 마족들이었고 그들이 사라지자 곧 바닥에 내려서는 라이안 일행이었다.

“삼 마왕이 이곳에 없는 것 같군요.”

“흠. 시기를 잘못 잡은 것 같구나.”

하지만 라이안은 오히려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요. 오히려 잘됐어요. 그가 없는 동안 빈집을 터는 것도 좋은 일이죠. 하비마고가 없는 동안 우리는 그의 세력을 없애버리는 거죠.”

왕성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침입자가 있다!”

“크악!”

창! 차앙!

스걱!

“크악!”

오히려 넓은 성 밖보다 좁은 곳에서의 싸움이 라이안 일행에게는 더욱 유리했다. 한 번에 많은 마족들을 상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콰과과광!

타미르안의 헬 파이어가 작렬했고 성의 한 쪽이 날아가 버렸다.

혁마소가 그런 타미르안을 보며 소리쳤다.

“이 멍청한 도마뱀아, 성을 날려버리면 할 수 없이 내려가서 싸워야 하지 않느냐!”

“닥쳐라! 혁 인간. 이렇게 한 번에 쓸어버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갈천혁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전히 싸우는 둘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라이안은 이들과 다르게 혼자서 성을 누볐다.

“저기다!”

몇몇의 마족들이 라이안을 발견하고 달려들었으나 라이안은 마치 유령이라도 된 듯 그들을 스쳐지나갔다.

쭈삣.

쭈삣.

스르르륵.

투두두둑.

어느 사이에 그들을 베고 지나갔는지 한순간 움직임을 멈춘 마족들은 종잇조각처럼 수십 조각으로 나누어졌고 라이안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렇게 라이안이 지나친 곳은 너무도 고요하게 마족들이 정리되어 갔고, 타미르안이 있는 곳은 이미 성을 절반이나 날려먹은 상태였다.

성벽 밖에 있는 사람들은 왕성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일제히 밖으로 나왔고, 그들을 지키던 마족들과 마물들은 서둘러 왕성으로 몰려가기 바빴다.

타미르안은 공중으로 떠오르며 왕성으로 몰려드는 마족들과 마물들을 보았고 성안에 있는 일행들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모든 마족들과 마물들이 성으로 모여들고 있다. 메테오 마법을 시전할 것이니 갈천혁과 혁 인간은 피하고 라이안은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막아줘!

“이런 미친 도마뱀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혁마소가 소리치며 되물었고 라이안이 목소리에 마나를 실으며 소리쳤다.

“할아버지들 어서 피해요!”

라이안은 타미르안이 너무 무리수를 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타미르안은 하늘 위에서 주문을 외우며 어떤 우주공간에 있을 운석을 소환하고 있었으니 라이안은 최대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 그들을 보호해야 했다.

모든 마물들이 왕성으로 몰려가고 성 밖에 남게 된 마을 사람들은 곧 왕성에서 날아오는 하나의 빛줄기를 볼 수 있었고 그것은 그들 앞에서 멈췄다.

“사, 사람이다!”

“사람이 날아왔어!”

라이안은 하늘을 보다 어떠한 공간이 열리는 것을 보며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내 뒤로 피해요. 어서!”

라이안의 말에 놀랐는지 사람들이 서둘러 그의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라이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검붉은 불덩어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제길, 너무 크잖아. 타미르안!”

갈천혁과 혁마소는 크게 놀라며 초광속을 시전해 하늘로 날아올랐고 곧 불타오르는 운석은 왕성으로 떨어지며 폭발했다.

쿠과과과광!

라이안은 서둘러 물의 상급 정령인 엔다이론을 불렀다.

“엔다이론.”

엔다이론은 나오자마자 뭐라고 하기도 전에 라이안의 명령을 받아야 했다.

“어서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줘. 빨리!”

엔다이론은 앞에서 엄청난 불길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는 서둘러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물로 사람들을 감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불길이 사그라지고 주위의 흙먼지도 모두 사라졌다.

왕성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고 단지 무엇인가 그곳에 떨어진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있던 집들 또한 모두 날아가 버렸다. 만약 집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면 흔적도 없이 불타 사라졌을 것이다.

타미르안이 하늘에서 내려오며 곁으로 다가오자 라이안이 화를 냈다.

“타미르안, 사람들이 다칠 뻔했잖아. 왜 그렇게 무모한 행동을 한 거야!”

다른 곳에서 갈천혁과 혁마소가 날아왔고 곧 혁마소가 타미르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야, 이 빌어먹을 도마뱀아! 갑자기 그딴 걸 떨어뜨리면 어쩌자는 거냐. 이 미친 도마뱀아!”

하지만 타미르안은 그런 그들을 보며 웃을 뿐이었다.

“허허허, 뭐가 어때서 그리들 화를 내는가? 마족들과 마물들은 한 번에 쓸어버렸고 사람들도 구해내지 않았나? 라이안, 자네가 있으니 난 당연히 사람들이 다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네.”

“지금 나 믿고 메테오를 떨어뜨렸다는 거야?”

라이안에 말에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타미르안이었다.

“어휴. 어째 내 주위에 막나가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만 같으니.”

라이안은 한숨을 쉬며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상황이 정리되고 라이안은 다시 챠둠을 불러 사람들을 타미르안의 레어로 이동시켰다.

그들이 왔다는 소식에 나머지 친구들이 모두 급히 올라왔지만 그들은 라이안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나?”

디로안이 라이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고 라이안이 대답했다.

“우리가 갔을 때에는 이미 삼 마왕이 그곳에 없더라고. 그의 본거지를 없애버리기는 했지만 두 마왕들을 미리 처리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승산이 없으니 그것이 걱정이야.”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우선 이 마왕이 있는 히매인 왕국으로 다시 가봐야지. 어쨌든 하나라도 수를 줄여 놓아야 승산을 가질 수 있게 되니까.”

며칠이 지나고 이 마왕 체리아나가 있는 곳으로 갔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허탕을 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라이안은 삼 마왕과 이 마왕 모두를 찾지 못했다.

라이안이 어찌 알겠는가.

이미 이 마왕과 삼 마왕이 발크르스 마왕에 의해 흡수당했다는 것을.

* * *

라이안은 레어 밖에서 항마칠검을 익히고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을 보며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마왕들이 모두 한자리에 같이 있다면 전쟁은 하나 마나인데… 이걸 어쩐다.”

발크르스 마왕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라이안이었다.

그래서 각계격파를 생각해 조금이라도 그들의 힘을 줄여 놓으려고 했었는데 결국은 잔챙이들만 처리하고 왔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라이안은 메르지아를 손에 쥐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메르지아?”

‘시간이 없어요. 더 이상 시간을 끈다면 신성력의 결계는 소용이 없게 될 거예요.’

“하지만 마왕들을 이기지 못하면 인간들이 멸망하는 것은 막을 수 없어. 방법을 찾아야 해.”

라이안이 깊은 고뇌에 빠져 있을 때 그의 뒤에서 샤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도와줄까요?”

“샤린, 도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샤린이 밝게 웃으며 다가왔고 곧 라이안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라이안의 일을 덜어주려고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왔지요.”

“샤린만이 할 수 있는 일?”

“한번 볼래요?”

샤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곧 라이안의 앞에 서서 자신의 힘을 개방했다.

수아아아앗!

라이안은 점점 높아지는 샤린의 힘에 크게 놀랐다.

“샤린, 이 힘은!”

“어때요? 물론 아직 라이안에게는 멀었지만 저 많이 강해졌죠?”

라이안은 샤린의 강해진 힘에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그 엄청난 힘은?”

“라이안이 없을 때 지도에 붉은 점으로 찍어놓은 곳을 다녀왔죠. 어차피 라이안도 처리하고 싶었잖아요?”

“그럼 설마, 그 상급마족들의 힘을 모두 흡수했다는 거야?”

“네, 저 잘했죠.”

라이안은 어이가 없었다. 샤린이 한 행동은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오히려 네가 흡수당하면 어쩌려고 그랬어?”

라이안의 말에 샤린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저 걱정해주는 건가요?”

“휴우. 다치지 않았으니 정말 다행이야. 얼마 전에는 타미르안이 무모한 행동을 하더니 내가 모르는 사이 샤린까지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니.”

“후훗, 저도 다 알아보고 행동했던 거예요. 둘씩 모여 있는 상급마족들도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혼자 있는 상급마족들만 골라서 처리했죠.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니 둘이나 셋이 모여 있어도 혼자 처리가 가능하더라고요. 결국 이런 힘을 얻게 되었고요. 마계였다면 꿈도 못 꿀 일이죠.”

라이안은 그런 샤린을 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샤린, 그렇게 큰 힘을 얻게 되었는데도 아직도 나를 도와줄 생각이 있는 거야?”

라이안의 말에 샤린은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

“물론이죠. 헤헤, 사실은요. 처음에 라이안이 좋았었는데요. 이제는 다른 사람이 좋아졌어요.”

“하하하, 그래?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다칠 일은 없겠는데? 샤린이 보살펴줄 테니까 말이야.”

“호호호, 그런 사람이 있어요. 아주 귀여운 사람이요. 후훗.”

라이안은 샤린으로 인해 한결 기분이 나아진 듯했다. 그리고 처음 샤린이 했던 말을 생각하며 물었다.

“그런데 나를 도와준다고 했던 말은 뭐야?”

“아, 그거요? 지금 라이안이 가장 궁금한 것이 아마도 마왕들이 어디에 있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아닌가요?”

“그렇지.”

“그리고 전 마족이고요.”

“응.”

“그럼, 간단해요. 제가 그곳에 들어갔다가 오면 되죠. 그들은 제가 라이안의 편에 있다는 것을 모르니 제가 간다 해도 전혀 경계를 하지 않을 거예요. 어때요?”

“흠.”

라이안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뒤쪽 구석에서 라이안과 샤린이 정답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에나였다.

‘라이안 오빠.’

에나는 언제나 자신이 낄 자리가 없음을 슬퍼하며 곧 자리를 피했다.

라이안은 그것도 모른 채 샤린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너무 무모한 일인 것 같아. 그러다가 샤린이 잘못되면 우리로서는 큰 전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저 자신 있어요.”

샤린의 말에 라이안은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 적의 정보를 알아야 신성력의 결계가 사라지기 전에 어떠한 행동을 취할 수 있었다.

“샤린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 같아서 미안해. 그럼 부탁할게. 위험할 것 같으면 당장이라도 나오고. 알았지?”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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