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장 검은 사신의 이름은 또 다시 대륙으로
라이안이 집 안에 들어서자 클로리아가 놀라며 반겼다.
“어머, 어떻게 일찍 오시네요?”
“네, 오늘은 일을 가지 않았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어디 편찮은 곳이라도 있어요?”
“전혀요. 그냥 오늘따라 힘이 조금 없네요. 왜, 그런 날 있잖아요.”
“네.”
클로리아는 라이안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클로리아가 집안일을 보고 있는 사이 라이안은 그냥 집 앞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루시, 왜 말이 없는 거죠.’
라이안의 물음에 라이안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바로 메르지아의 목소리였다.
‘라이안, 제 이름은 루시가 아니라 메르지아에요.’
“흠.”
라이안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메르지아의 음성에 마음이 아팠다.
처음 메르지아를 만났을 때는 분명 루시 공주의 목소리였고 그녀의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라이안이 숲 속에서 깨어난 이후에는 목소리만 같을 뿐 자신이 알고 있는 루시 공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시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는 건가요?’
‘그 기억은 아직 남아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욱 이전의 기억이 더 많이 떠올라요. 제 이름은 루시가 아니라 메르지아에요. 혼돈의 검 메르지아. 그것이 제 이름이에요.’
‘좋아요, 메르지아. 그럼 앞으로 그 이름으로 부르죠. 하지만 너무 달라진 것 같아 조금 슬프네요.’
라이안의 감정을 메르지아 역시 느낄 수 있는지 부르르 떨며 그에게 말했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원래 저는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마치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하네요. 전 그것을 믿지 않아요. 운명은 사람이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이라 믿고 있거든요. 제가 루시를 끝까지 보호했다면 지금의 메르지아가 되지 않았을 것이니까요.
라이안의 슬픈 음성에 메르지아가 말했다.
‘이미 이렇게 된 일, 바꿀 수는 없어요. 저에 대한 미련은 이제 버리세요.’
메르지아의 음성이 머릿속에서 울려왔고 라이안은 슬프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죠. 되돌릴 수는 없겠죠.”
처음에는 루시 공주와 이야기만 할 수 있어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라이안이었다. 하지만 누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했는가.
라이안은 이전보다 더욱 큰 슬픔을 느끼며 루시 공주를 그리워했다.
라이안이 하늘을 보다가 곧 멀리서 보이는 신성력의 결계로 시선을 옮겼다.
“이곳에만 있다면 평화는 유지될 수 있는 것인가.”
라이안은 지금 이대로 이곳 포스안 제국에서 살아가도 되는지 생각했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이곳에 데려와 같이 살면 발크르스 마왕이 저 너머의 대륙을 갖든 망치든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라이안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메르지아의 음성이 라이안의 머릿속을 또다시 울렸다.
‘저것은 오래 버틸 수 없어요. 얼마 안 있어 결계는 사라질 것이에요. 늦기 전에 결계를 깨트려 대륙 전체로 퍼트려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승산이 없어요.’
메르지아의 말에 라이안이 얼굴을 굳히며 머릿속으로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메르지아. 혹, 뭔가 알고 있는 것이 있는 건가요?’
‘시간이 없어요. 신성력이 더 많이 소비되기 전에… 결계를 깨트려야.’
메르지아는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고 그 말로 인해 라이안은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결계가 곧 사라진단 말인가!”
라이안은 결계를 바라보며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라이안이 우려하던 일은 다음날 아주 빠르게 일어났다.
* * *
라이안이 아침에 일어나 가이어와 같이 일을 나가려고 마을의 중앙 길을 걷고 있을 때 먼 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마물이다! 마물이 결계를 뚫고 들어왔다! 크악!”
크아아앙!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짐승의 포효가 들려왔다.
가이어 또한 놀라며 허둥댔다.
“아니, 어떻게 마물이 결계를 뚫고 들어왔지? 이거 큰일이야. 어서 피해야 해!”
가이어는 서둘러 반대방향으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곧 뛰던 것을 멈추며 말했다.
“아차, 클로리아! 이봐, 라이! 어서 클로리아를 데리고 도망치자고. 마물은 성에서 성기사들을 보내 막을 거야!”
라이안은 멀리서 보이는 마물을 보며 인상을 썼고 곧 전날 메르지아가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결계가 약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군. 제길.’
라이안은 서둘러 가이어와 함께 집으로 향했고 집 앞에는 소란스러워진 마을이 이상해 나와 있는 클로리아가 서 있었다.
“클로리아, 어서 이리 와!”
“무슨 일이에요?”
가이어가 영문을 몰라 하며 가만히 서 있는 클로리아의 손을 잡아챘고 곧 빠르게 성으로 달려갔다.
성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결계를 뚫고 마을을 덮친 마물은 다름 아닌 마계의 마수라고 알려진 켈베로스였다.
덩치는 드래곤에 육박하며 마수 중 최강을 자랑하는 켈베로스는 머리가 둘 달린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크아아앙! 역시 인간이 가장 맛있구나! 위험을 감수하고 결계를 넘은 보람이 있었어. 크르르릉.”
마수와 일반 마물들이 다른 것이 하나 있었으니 마수는 말을 할 수 있으며 상당히 좋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멀리서부터 강한 이빨로 집을 부수며 집 안에 있는 인간들을 하나씩 집어 삼키는 켈베로스는 이미 인육 맛에 정신이 팔려 정신없이 잡아먹고 있었다.
라이안은 멀리서 보이는 켈베로스를 보며 인상을 썼고 서둘러 클로리아를 데리고 가이어와 함께 성으로 달려갔다.
끄그그그극!
아직 사람들이 다 들어가지 못했음에도 성문이 닫혀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성에서는 성기사들을 보내지 않은 채 공성전을 생각했는지 미리 성문을 닫고 성벽 위에서 공성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가이어는 성문이 닫히는 것을 보며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이놈들아 어서 문을 열어라! 니들만 살겠다고 문을 닫으면 우린 어찌한단 말이냐!”
이미 수백 명이 성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어서 문을 열어라! 이 개 같은 놈들아!”
“살려주세요! 제발 문을 열어주세요!”
남자들은 욕설을 퍼붓기 바빴고 여자들은 성문을 두드리며 애원했다.
켈베로스는 성문 앞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는지 곧 두 개의 머리에서 침을 흘렸다.
“크르르릉. 맛있는 음식들이 저기에 다 모여 있구나. 크르르릉.”
켈베로스가 다가오자 성문 앞에 있는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며 더욱 거세게 성문을 두드렸지만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가이어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성문을 두드리기에 바빴고 클로리아는 켈베로스를 바라보고 있는 라이안의 옷을 잡으며 말했다.
“라이, 우린 이제 죽는 건가요?”
클로리아의 말에 라이안은 부드러운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클로리아는 두려운 이 상황에서 라이안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편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곧 라이안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아마도 전… 편히 살기는 틀렸나 봐요.”
말과 함께 라이안은 자신의 옷을 잡고 있는 클로리아의 손을 떼어놓고는 조용히 그녀에게서 멀어지며 켈베로스가 다가오고 있는 방향으로 뒷걸음질 쳤다.
“라이, 어쩌려고요!”
“미안해요. 전 클로리아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제 이름은 라이가 아니랍니다.”
사람들의 욕설로 무척이나 시끄러웠지만 클로리아는 점점 멀어지는 라이안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클로리아는 그곳을 메운 다른 사람들의 모습으로 인해 라이안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성벽 위에서는 공성무기를 준비해 켈베로스가 적당한 위치까지 다가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 지휘하던 한 성기사가 검을 들고는 소리쳤다.
“신호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쏘지 말라! 마수를 공격할 수 있는 거리까지 기다려야 한다!”
병사들은 서로 도와 공성쇠뇌의 줄을 잡아당기고 있었고 준비가 되는 즉시 그것을 쏘려고 준비했다.
켈베로스는 점점 느린 걸음으로 침을 흘리며 걸어오고 있었고 지휘를 하던 성기사의 검이 드디어 아래로 내려갔다.
“쏴라! 마수를 죽여라!”
성기사의 신호와 함께 수십 개의 쇠뇌들이 켈베로스를 향해 날아갔다.
켈베로스는 가장 처음 날아오는 쇠뇌를 입으로 잡아 물고는 으스러뜨렸고 나머지 쇠뇌들은 피하기 바빴다.
몇 개의 쇠뇌가 켈베로스의 몸에 박혀들기는 했지만 곧 켈베로스가 몸을 흔들자 그것들은 떨어져 나갔다.
공성쇠뇌는 켈베로스에게 그리 큰 상처를 주지 못했다. 도리어 조금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에 화가 난 켈베로스였고 곧 포효를 하며 성으로 달려들었다.
성안에 있는 마법사들이 켈베로스에게 마법을 퍼부었지만 그리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성벽에 있는 병사들은 그런 켈베로스의 위용을 보며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고 사기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을 지휘하던 성기사 역시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젠장. 전혀 통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때 한 병사가 소리쳤다.
“마수에게 사람이 다가간다!”
그리고 여러 병사들이 그쪽을 보며 술렁거렸다.
“아니, 저… 저.”
“저 사람이 미치지 않고서야!”
“아니, 왜 마수에게 걸어가는 거야?”
아래에서 성문을 두드리며 욕을 하던 사람들도 병사의 말을 들었는지 모두 뒤를 돌아보았다.
가이어 또한 양옆을 둘러보다가 뒤를 돌아보았고 그 순간 심장이 멎어버릴 만큼 덜컥 놀랐다.
“이, 이봐! 라이, 어서 돌아와! 자네 미친 거 아냐!”
가이어는 당장이라도 뛰어가 라이안을 데려오고 싶었으나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라이안 역시도 가이어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뒤돌아보지 않은 채 한 손을 들고 흔들 뿐이었다.
켈베로스는 스스로 걸어오는 먹이가 있자 분노를 가라앉히고 잠시 멈추었다.
“크르르릉. 아주 재미있는 먹잇감이로구나. 어떻게 먹어줄까?”
켈베로스의 말에 라이안 또한 한마디 했다.
“내가 개고기는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과연 켈베로스의 고기는 어떨지 모르겠군.”
“크르르릉. 네가 지금 나를 먹어보겠다는 거냐?”
켈베로스는 라이안의 말이 상당히 우스웠다.
한낱 먹이에 불과했던 인간이 자신을 먹겠다고 말하니 어찌 웃기지 않겠는가. 하지만 곧 켈베로스는 자신의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라이안이 순간 메르지아를 뽑아들었기 때문이었다.
메르지아가 검집에서 나오자 켈베로스는 메르지아에서 어마어마한 힘을 감지할 수 있었다.
“크르르릉. 마법 검… 아니, 보다 위험한… 크아아앙!”
켈베로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며 크게 울부짖었다.
라이안의 뒤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켈베로스의 반응에 크게 놀랐다.
“마수가… 마수가 겁을 먹은 건가?”
“아니, 왜 마수가 오히려 뒤로 물러나지?”
클로리아는 마수 앞에서 칼을 뽑아든 라이안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전혀 불안감이 들지 않았다.
마치 라이안이 마수를 무찌르고 당당히 걸어 돌아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라이.”
켈베로스는 자신이 인간에게 겁을 먹었다는 것이 화가 났는지 울부짖으며 라이안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아앙!”
그 모습을 본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거나 손으로 눈을 가렸다.
까앙!
그러나 오히려 무엇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눈을 뜬 그들은 라이안이 검으로 켈베로스의 이빨을 막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막았다!”
“대, 대단해!”
켈베로스는 이빨 전체가 시린 것을 느끼며 물러났고 라이안은 검을 한 바퀴 돌리며 말했다.
“메르지아,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어. 이제 알았어. 평화를 얻기 위해선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 대륙, 내가 돌려놓겠어.”
켈베로스가 라이안의 말을 들으며 소리쳤다.
“무슨 헛소리냐, 인간!”
라이안이 켈베로스의 물음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내 이름은 인간이 아니다. 난 검은 사신 라이안이다! 차앗!”
마나를 실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라이안의 목소리는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었다.
“검은 사신!”
“그는 발크르스 마왕과 싸우다가 죽었다고 했거늘!”
“저분이 진정 대륙 제일의 영웅이시란 말인가!”
대륙에는 라이안이 하나의 전설이 되어 있었으며 하나의 동화와도 같은 이야기가 퍼져 있었다.
바로 사랑과 대륙을 지키기 위해 발크르스 마왕과 단신으로 싸운 인간들의 영웅으로.
사람들은 라이안이 켈베로스와 단신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며 조금 전 라이안이 한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라이안은 검을 들고 켈베로스에게 달려들었고 켈베로스의 다른 머리가 라이안을 공격했다. 하지만 라이안은 이곳저곳으로 순간이동을 하며 켈베로스의 공격을 모두 피했고, 어느 한순간 켈베로스의 옆에서 나타나며 하나의 빛줄기를 날렸다.
스걱!
“크아아아앙!”
켈베로스의 한쪽 머리가 잘려나가고 다른 쪽 머리가 큰 고통에 울부짖었다.
더욱 성이 난 켈베로스가 발톱을 세우며 라이안을 공격해 갔으나 라이안은 허공에 떠 있는 상태로 아주 간단히 켈베로스의 발톱을 검으로 막았다.
까강!
라이안은 막고 있는 검에 힘을 더 실어 아예 켈베로스의 다리를 사선으로 잘라버렸다.
스걱!
“카오오오오!”
아주 찰나의 순간에 켈베로스의 목을 베고 다리까지 잘라낸 라이안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모든 사람들이 몸을 떨었다.
“마수를 이기고 있다니.”
“저분이 진정 대륙의 영웅 검은 사신이란 말인가!”
가이어 또한 라이안이 켈베로스와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며 믿기 힘든 표정으로 서 있었다.
“우리 집에 머물렀던 식객이… 설마 라이안 님일 줄이야.”
켈베로스는 한쪽 다리가 잘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다리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귀가 상당히 좋았던 켈베로스 역시 라이안이 발크르스 마왕과 싸웠었던 인간이라는 말을 듣고는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라이안은 두려움에 떠는 켈베로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떤 맛일까 한 번 먹어볼까 했더니, 먹지는 못하는 것이로군.”
라이안이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켈베로스의 잘려나간 머리와 다리가 땅에 떨어지면서 검은 먼지와도 같이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켈베로스는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야. 제길,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처음 중간계에 나왔을 때 인육 맛을 잊기 힘들었던 켈베로스였다.
지금은 대륙에 인간을 찾아보기 힘들기에 약해진 결계의 틈을 이용해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을 크게 후회하는 켈베로스였다.
켈베로스는 뒷걸음질 치다가 순간 빠르게 몸을 돌려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소리쳤다.
“마, 마수가 도망친다!”
“어서 잡으십시오! 라이안 님!”
행여나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을 도륙한 켈베로스를 놓칠까봐 소리치는 사람들이었다.
라이안 역시 켈베로스를 그냥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라이안은 켈베로스와 비슷한 높이에 떠 있다가 검에 마나를 집중했다.
메르지아에 마나가 모여들며 서서히 빛을 발했고 곧 그 빛은 절정에 다다른 듯싶었다. 그리고 한 순간이었다.
라이안이 검을 앞으로 찌르자 하나의 굵은 섬광이 켈베로스에게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크아아아아!”
켈베로스는 그 섬광에 몸이 뚫리며 마지막 비명과 함께 쓰러져버렸다. 아니, 섬광에는 이미 몸이 녹아버렸고 나머지 다리 같은 것은 바닥에 넘어진 채 가루로 변해버렸다.
그런 켈베로스를 보며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마수를 무찔렀다!”
“검은 사신, 만세!”
“위대한 영웅, 만세!”
라이안은 허공에 떠 있다가 아래로 내려왔고 다시 성문이 열리며 많은 사람들이 라이안을 향해 달려 나왔다.
“진정 라이안 님이십니까?”
“우리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마치 전신이 싸우는 것만 같았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라이안은 오히려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라이안이 마나를 담아 소리치자 그 소리가 마을 전체를 울렸고 사람들이 제각기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움찔거렸다.
잠시 후 고요함이 묻어나올 때 라이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성안에 있던 그대들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성 밖에 남겨진 저 사람들을 위해 싸운 것이오. 자신들만 살겠다고 성문을 걸어 잠그는 괘씸한 그대들이거늘, 내가 무슨 이유로 그대들을 도와야 한단 말이오? 이제 대륙의 인간들은 그 수가 얼마 남지 않았소. 서로 도와도 부족할 판에 아직도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더 이상 인간들은 발붙일 곳을 잃게 될 것이오.”
성안에 있던 사람들은 라이안의 말에 미안함을 느꼈고 성 밖에 있던 사람들은 고마움을 느꼈다.
라이안의 말이 끝나자 클로리아가 다가왔다.
“라이… 아니, 라이안…….”
라이안은 클로리아를 발견하고 미안해했다.
“미안해요, 클로리아. 단지 내가 누구라는 것을 주위에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라이안의 말에 클로리아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에요. 오히려 기쁜 걸요. 대륙의 영웅이 살아 있어서요.”
“대륙의 영웅이라… 전 그런 거 잘 몰라요. 하지만 이제는 한번 그 대륙의 영웅이 되어볼까 해요.”
라이안이 발크르스 마왕에게 점령당한 나머지 대륙을 되찾고자 마음먹는 순간이었다.
라이안은 곧 다시 마나를 실어 소리쳤다.
“모두 들으세요! 지금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괴수는 바로 마계 최강의 괴수 켈베로스였습니다. 그 괴수가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결계가 서서히 약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만 합니다. 포스안 제국 전체에 소문을 퍼뜨려 주세요. 발크르스 마왕은 내가 맡을 것이니 모두 힘을 합쳐 대륙을 되찾자고 말입니다!”
라이안의 음성에 매료된 듯 모든 사람들이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와아아아아!”
“우리는 검은 사신님을 따를 것입니다!”
“어차피 죽었을 목숨. 라이안 님에게 바치겠습니다!”
라이안의 이 말은 아주 빠르게 포스안 제국 전체에 퍼져 나갔다.
포스안 제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라이안이 살아 있음을 알았고 그의 이름으로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마치 라이안이 나타나 손만 내민다면 언제든 뒤에서 따라 나갈 듯했다.
사람들의 뜻을 하나로 뭉친 라이안은 좀 더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라이안은 타미르안의 레어로 이동해 샤린과 상의했다.
“그러니까 상급 마족이 20정도에 중급 마족이 100… 하급 마족은 그 다섯 배라는 것이지?”
“네, 맞아요. 하지만 성기사들은 열 이상이 모여야 하급 마족 하나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니 인간들에게는 승산이 없는 전쟁이에요. 아니, 마물들만 해도 상대하기 힘들 거예요.”
라이안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휴우. 나 혼자 대륙을 떠돌며 그것들을 다 상대하고자 한다면 그 전에 신성력의 결계가 사라지고 말겠지. 어찌해야 한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라이안이 발크르스 마왕과 부딪치는 것이었다. 아직은 자신이 없는 라이안이었다.
이전 발크르스 마왕과 싸웠을 때도 크게 밀리지 않았는가.
라이안이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챠둠의 음성이 들려왔다.
“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그들이 위험합니다.”
“으음? 누구? 할아버지들하고 친구들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지금 두 명의 마족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점점 밀리는 것 같습니다. 서두르십시오!”
“아니,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어서 좌표 불러!”
“저도 같이 갈게요. 도움이 될 거예요.”
샤린 역시 라이안을 따르기로 했고 라이안은 챠둠이 말해준 좌표를 이용해 급히 텔레포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