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장 주위에 떠도는 숲 속의 빛
가이어와 같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라이안은 바로 식사를 하게 되었고 오늘따라 왠지 모든 음식이 다 맛있게 느껴졌다.
“오늘은 두 분 다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그럼, 좋지. 오늘 이 애비가 상단에서 짐을 나르다가 죽을 뻔하지 않았겠냐? 그런데.”
웃으며 물었다가 표정이 급격히 변해버린 클로리아가 가이어의 몸을 이곳저곳 만져보며 물었다.
“정말이에요? 어디 다치시지는 않았어요? 일할 때에는 조심 좀 하라고 그렇게 말씀드렸었잖아요!”
“어, 어… 얘, 클로리아야. 애비의 말을 끝까지 듣고 좀 말해 주지 않겠니?”
가이어가 잠시 클로리아를 자신에게서 떼어놓고는 다시 말을 이었고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 글쎄 그 큰 짐을 라이가 한 손으로 번쩍 드는 것이 아니냐? 내 죽을 뻔하다가 어찌나 놀랐는지. 라이가 아니었으면 오늘 땅에 묻힐 뻔했다니까?”
“아버지! 그게 딸 앞에서 할 말이에요. 땅에 묻힐 뻔하다니요?”
“아니, 뭐… 일이 났다면 그랬다는 것이지.”
괜히 즐겁게 말하려다가 클로리아에게 혼만 난 가이어였다.
클로리아가 곧 진정을 하고는 굳은 표정으로 같이 식사에 임했고 라이안을 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라이. 라이 덕분에 아버지가 크게 다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에요.”
“아니에요. 전 단지 떨어지는 짐을 손으로 받쳤을 뿐인걸요. 누구나 먼저 봤다면 그렇게 했을 거랍니다.”
그때 가이어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누구나 그렇게 했을 거라는 것이 아니라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느냐라네. 정말 묻지 않으려고 했는데 궁금해서 못 참겠군. 내 자네의 덩치만 보고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 같은데 자네 도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인가?”
라이안이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뭐라 말할까 생각하고 있을 때 클로리아가 대신 말해주었다.
“라이는 이전에 검사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힘이 센 것이 당연하지요.”
“하지만 클로리아야. 라이의 몸을 보아라. 전혀 검을 사용하는 사람 같지 않거니와 단련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단 말이다.”
가이어의 말을 들은 클로리아도 그러한 점에서는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가만히 라이안을 쳐다볼 뿐이었다. 클로리아 또한 궁금했던 것이다.
이에 라이안은 더욱 난처함을 느끼며 생각 끝에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좋아요. 말씀드리죠.”
라이안의 말에 가이어의 귀가 엘프의 귀처럼 커졌고 클로리아도 라이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가이어 씨, 혹 마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나요?”
“마나? 그 기사들의 검에서 흘러나온다는 빛이나 마법사들이 불덩어리를 쏘아낼 때 사용된다는 그 마나 말인가?”
“네,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네요. 전 마나를 다룰 줄 압니다. 그럼 이제 이해가 가시나요?”
라이안의 말을 들은 가이어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정말인가? 자네가 정말 마나를 사용할 줄 안다고?”
“네, 맞아요. 마나는 검에 더 강한 날카로움을 주기도 하지만 육체적으로도 큰 힘을 낼 수 있게 해주죠. 그래서 저 역시 보통 사람에 비해 더 강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정말 대단하군. 라이, 자네가 마나를 쓸 줄 아는 검사일 줄이야.”
클로리아 또한 많이 놀랐는지 감탄스러운 듯 말을 했다.
“검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줄을 몰랐네요.”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곧 클로리아는 전날을 생각하며 라이안에게 물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때 제스를 혼내주지 않았던 거죠? 라이의 실력이라면 제스를 충분히 혼내줄 수 있었을 텐데요.”
클로리아의 말에 라이안은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선은 서로 다투지 않고 좋게 끝낼 수 있었잖아요?”
“하지만.”
“후훗, 클로리아. 힘이 있다고 그 힘을 자주 사용하게 되면 그것은 곧 폭력으로 바뀌게 된답니다. 힘을 사용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평화로운 방법으로 일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바른 것이 아니겠어요?”
가이어가 라이안의 말을 들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이거 힘만 좋은 줄 알았더니 사람까지 괜찮은 걸? 좋았어. 내 기분이네, 내 자네라면 내 딸을 주어도 되겠어!”
가이어의 말에 클로리아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했다.
“아빠!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왜? 넌 라이가 싫으냐?”
“그게 아니라… 몰라요!”
가이어의 말에 클로리아가 차마 싫다는 말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라이안 역시도 난처해하며 말했다.
“가이어 씨, 갑자기 그러시면.”
“왜 그러는가? 내 딸이 싫기라도 한 것인가?”
가이어가 라이안에게 질문하자 클로리아 또한 방 안에서 그 말을 듣고는 방문에 귀를 기울였다.
“저는…….”
라이안이 상당히 슬픈 얼굴을 하며 가이어를 쳐다보았다.
“저는 누군가를 만날 자격이 없는 사람이랍니다.”
가이어가 그런 라이안을 보며 뭔가를 느꼈다.
“라이, 자… 그 표정은 마치 얼마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표정이로군. 내 말이 맞는가?”
“…….”
가이어의 말에 라이안은 슬픈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가이어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미안한 듯 말했다.
“이거 미안하네. 내 장난으로 그런 것이 자네 마음을 상하게 했나보네.”
“아니에요. 그냥 저 혼자 자책하고 있는 것일 뿐이니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클로리아 또한 방 안에서 라이안에게 깊은 슬픔이 있음을 알고는 안타까워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클로리아도 궁금했지만 라이안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클로리아는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고 가이어 또한 피곤한지 일찍 들어가 잠을 청했다.
가이어가 처음에 도와주겠다고 말했었으나 라이안이 혼자 해도 된다고 가이어를 들여보냈다.
라이안은 홀로 식탁에 앉아 있다가 식탁 위에 있는 접시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니, 치우기보다 지저분해진 식기들을 모두 한곳에 모으고 있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유는 바로 라이안만의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디네.”
라이안이 물의 정령을 불렀고 곧 소녀와도 같은 귀여운 운디네가 모습을 나타냈다.
물의 정령 운디네는 무척이나 오랜만에 보는 라이안이 반가운 듯 그의 몸 주위를 돌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후훗, 나도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반가운 걸?”
운디네가 라이안의 얼굴 가까이 오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을 시킬 것인지 묻는 것이었다.
“여기 있는 접시들과 식기에 있는 음식물들을 모두 깨끗이 씻어주었으면 좋겠어.”
라이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운디네는 부드럽게 웃더니 물로 변하며 식기들과 접시들을 감쌌고 곧 빛이 반짝거릴 정도로 깨끗하게 만들었다.
라이안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늘 고마워, 운디네. 그럼 이만 돌아가도 좋아.”
운디네가 라이안의 볼에 살짝 뽀뽀를 하더니 곧 작은 물방울로 변하며 사라져갔다.
“어째 운디네는 점점 더 귀여워지네.”
라이안 또한 잠을 청하려 방에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라이안이 창밖을 바라보았고 또 다시 밝은 빛이 있음을 확인했다.
스팟!
소리와 함께 라이안의 신형이 그곳에서 사라졌고 집의 문만이 강하게 열렸다가 닫혔다.
* * *
쉬이이이익.
라이안은 빠르게 빛을 쫓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빛을 쫓는 라이안이었으나 그 빛은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왜 도망가는 거야! 거기 서!”
라이안의 말을 들은 것일까.
빛이 점점 속도를 늦추어갔고 라이안 또한 속도를 늦췄다.
이미 깊은 산속까지 와버린 라이안은 빛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네가 클로리아로 하여금 나를 돕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난 단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빛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왠지 빛이 피하는 것 같아 그만두기로 하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라이안.”
라이안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고 곧 빠르게 반쯤 돌아선 몸을 돌렸다.
“이 목소리, 설마… 아닐 거야, 루시는……!”
라이안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빛이 서서히 멀어지려고 했다.
“잠시만 기다려!”
빛은 또 다시 라이안의 말에 반응하며 멈추었고 라이안은 빛에 다가서며 말했다.
“다시 말해봐. 다시… 내 이름을 불러봐.”
라이안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인 빛은 곧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라이안.”
라이안은 확실하다고 느꼈다.
“루시, 정말 그대인가요? 정말 루시에요? 어서 말 좀 해봐요!”
“라이안, 제 몸이 이상해요… 어떻게 된 것이지 기억이 안 나요.”
라이안은 루시 공주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아니,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닌 꿈이라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루시, 이리로 좀 와 봐요. 어서요. 루시를 보고 싶어요.”
“저는… 갈 수 없어요. 제 이 모습을…….”
라이안이 빛에 점점 다가가자 빛이 서둘러 도망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라이안이 먼저 움직였고 빛은 움직이려다가 멈췄다.
라이안은 바로 눈앞에서 물러서려는 빛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검?”
“라이안.”
“루시? 이게 어떻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지만 라이안은 곧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검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족들이 들고 있던 칼자루…그리고 내 창이었던 날. 그리고… 그리고… 루시의 심장에 있던 구슬.”
“라이안, 제가 왜 이렇게 된 것이죠? 전… 이 모습으로는… 도저히 라이안에게 다가갈 수 없었어요.”
“설마 그 세 개의 조각들이 이렇게 하나로 합쳐졌단 말인가.”
“라이안… 전 어떻게 해야 하죠? 두려워요.”
라이안은 두려워하는 루시 공주의 말에 슬프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내가, 내가 있잖아요. 이리와요.”
라이안의 말에 검이 서서히 그에게 다가왔고 라이안이 검을 포근히 안았다.
번쩍!
수아아아아!
라이안은 순간 빛 무리에 휩싸여버렸다. 그리고 그가 눈을 떴을 때 라이안을 깨우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일어나라. 나의 인연자여.”
“으… 누구?
“나를 보아라, 그러면 기억이 날 것이다.”
목소리와 함께 눈을 뜬 라이안은 자신 앞에 있는 어떠한 존재를 볼 수 있었다.
“당신은… 크윽!”
라이안은 곧 머리가 아파오는 것과 동시에 하나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라이안이 이곳 세계에 오면서 챠둠의 전함에서 떨어졌을 때의 기억이었다.
“그렇구나. 그때 나와 가족들을 구해주는 대신 당신이 내 기억의 일부분을 가져갔었지.”
“그렇다. 난 태초의 혼돈이다.”
“혼돈.”
혼돈이라는 말이 가깝게 느껴지는 라이안이었다.
“인연자여. 그대는 결국 나와의 인연으로 나의 검인 메르지아까지 얻게 되었구나. 정해지지 않은 운명 속에서 그대와의 인연은 끝을 알 수 없도다. 그대가 만난 루시는 내가 만들었던 메르지아의 자아였으니, 메르지아는 곧 기억을 되찾을 것이다. 그 힘을 사용하려면 메르지아와 하나가 되어라.”
“무슨 말이야? 이봐!”
라이안은 자신을 혼돈이라 말하는 자가 점점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라이안은 계속해서 소리쳤지만 그는 이미 사라진 후였고 라이안은 곧 정신을 차리며 숲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흠.”
라이안은 몸을 일으키며 자신의 가슴에 있는 검을 보았다.
“혼돈의 검… 메르지아.”
라이안은 조용히 중얼거리다가 곧 그것을 품에 안고 클로리아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