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돈의 라이안-49화 (48/57)

제49장 걱정

다음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깬 라이안은 소리로 가이어와 클로리아가 아직도 자고 있음을 확인했다.

“호흡이 규칙적인 것으로 보아 아직 잠을 자고 있군. 이 사이에 다녀오는 것이 좋겠지.”

라이안이 가려고 하는 곳은 다름 아닌 타미르안의 레어였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기에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타미르안의 레어로 텔레포트하려고 준비를 했다.

막 심벌마법을 하려던 라이안이 행동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내 힘이 상당히 커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 않았군. 그냥 텔레포트를 해도 그리 무리가 없겠어.”

라이안은 자신의 손목을 보며 팔찌가 있던 자리를 다른 손으로 만졌다.

“팔찌가 사라지자 이러한 힘을 갖게 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그리고 주위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몰랐지만 자신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자세히 느끼려고만 하면 사라지는군.”

곧 고개를 흔들어 떨쳐버린 라이안이 텔레포트를 시행했다.

“텔레포트!”

말과 함께 곧 하얀 빛이 되어 사라지는 라이안이었다.

* * *

스팟!

타미르안의 레어에서 밝은 빛과 함께 라이안이 나타났다. 라이안이 주위를 둘러보려고 고개를 막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키아아악!”

갑자기 검은 무엇인가가 라이안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라이안은 한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자신을 덮치려던 무엇인가의 옆으로 나타나며 주먹을 내질렀다.

“쿠에엑!”

콰광!

검은 생명체는 비명을 지르며 한쪽 벽에 부딪쳤고 곧 죽은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라이안은 그것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마물이로군. 사악한 마기가 몸 전체에 흐르고 있어.”

라이안이 기척을 감지하자 레어 곳곳에 수십의 마물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벌써 이곳은 마물들이 점령했구나. 그렇다면 타미르안과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은 모두 어떻게 된 것이지?”

라이안이 잠시 생각하고 있을 때 마물들은 동료의 비명을 들었는지 라이안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모여들고 있었다.

라이안이 순간 눈에서 빛을 발했다.

“강한 마기!”

세에엑!

픽!

갑자기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라이안에게 날아왔고 그는 그것을 단 두 손가락으로 잡아냈다. 그리고 나타나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마족이었다.

검은 피부를 하고 있는 여성체 마족은 옷을 거의 입고 있지 않았고 딱 가릴 곳만 간신히 가리고 있는 것 같았다.

“호오? 잡아낸 것인가? 대단한데?”

“누구냐? 이곳에 있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이곳에 있던 사람들? 흠, 내가 이곳에 왔을 때 드래곤 한 마리와 인간 몇몇이 있던 것 같기는 했었는데.”

“어떻게 되었나?”

라이안의 물음에 마족은 라이안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왜 너 따위한테 그것을 말해야 하지?”

마족의 말에 라이안은 서서히 마족에게 다가가며 강하게 말했다.

“말하지 않으면 네가 죽을 것이니까.”

라이안의 말을 들은 마족이 순간 황당해 하다가 곧 크게 웃었다.

“호호호, 지금 네가 나를 죽인다고? 고작 인간 주제에?”

라이안은 눈앞에 있는 마족이 상당히 강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상대했던 최상급 마족들보다도 더욱 강하게.

당연했다.

왜냐하면 이곳의 하늘은 이미 마계의 문에서 흘러나온 마력으로 인해 검게 변해 있었고, 마치 마계와도 같이 곳곳에서 마력이 넘쳐났다.

말인 즉, 마족들이 마계와 같이 이곳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라이안에게는 자신 앞에 있는 마족이 우습게 보였다.

자신이 가진 힘을 모두 가지고 나온 발크르스 마왕과도 싸웠던 자신이 아닌가.

마족들은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강하기는 하나 지금의 나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타미르안이나 할아버지들에게는 다르겠지.’

하지만 라이안은 타미르안과 할아버지들을 믿고 있었다.

‘그렇다고 쉽게 질 분들이 아니지.’

라이안이 잠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족이 라이안을 보며 말했다.

“인간치고 상당히 고운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어때? 내 수집품이 된다면 살려줄 생각도 있는데”

“그것은 네가 나보다 강할 때나 말해야지.”

“기회는 한 번뿐이야.”

“거절하지.”

라이안의 칼 같은 거절에 마족이 입맛을 다셨다.

“아깝네. 그럼 맛있게 먹어줄 수밖에.”

마족이 말과 함께 라이안에게 달려들었다.

여성체의 마족은 두 개의 짧은 검을 사용했다.

빠르게 라이안의 목부터 베려고 했는지 양쪽에서 동시에 라이안의 목을 베어왔다. 하지만 마족이 베어낸 것은 라이안의 허상뿐이었다.

“아니!”

마족은 라이안의 기척이 자신의 뒤에 있음을 느끼며 빠르게 돌며 검을 뒤로 찔렀다.

턱.

하지만 라이안은 아주 여유롭게 마족의 검을 손으로 잡았다.

“이럴 수가, 맨손으로 잡다니!”

마족은 위험을 느끼며 검에서 손을 떼고는 천장 구석으로 몸을 날려 그곳에 매달렸다.

라이안은 자신이 잡은 검의 날에서 손을 떼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마계의 금속인가? 흠, 조금 쓰라리군.”

라이안의 손은 아주 조금 베어져 있었다. 패왕철기신공의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상처가 났던 것이다.

“앞으로는 수강으로 잡아야겠어.”

말과 함께 천장을 바라보는 라이안이었고 천장에 매달린 마족은 그런 그를 보며 살며시 웃고 있었다.

“인간치고는 굉장히 강하군. 하지만 더 이상은 봐주지 않겠다!”

마족이 본래의 아름답고 야한 몸을 변형시켜 전투형태로 변신했다.

투둑. 툭. 투두둑.

라이안은 마족이 변신하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마족들은 모두 저렇게 흉측하게 변신하는가 보군.”

라이안이 느끼기에 힘이 두 배 정도로 상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덤벼든 마족은 처음보다 더욱 빠르게 라이안을 공격해 갔고 라이안은 아무런 표정 없이 마족의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끼아아악!”

공격이 계속해서 먹혀들지 않자 마족이 크게 소리를 치며 달려들었고 라이안은 마족의 소리에 인상을 찡그렸다.

“시끄럽군.”

마족은 점점 불안감을 느꼈다.

‘어찌 인간이 이토록 강할 수가 있는 것이지? 이것은 말도 안 돼!’

하지만 그녀가 어찌 알겠는가.

라이안은 발크르스 마왕과도 대등하게 싸웠던 유일한 인간이었음을.

라이안은 마족의 공격력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곧 마족의 공격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한 라이안이 서서히 마족을 공격해갔다.

마족의 공격을 허상을 그려내며 피한 라이안이 순간 마족의 옆에서 나타나더니 엄청난 속도의 발차기를 날렸다.

파바바바밧!

“끄어어어억!”

얼마나 맞았을까.

라이안이 마지막으로 몸을 휘돌며 뒤차기를 날렸고 마족은 벽을 허물며 레어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레어 밖으로 날아간 마족은 높은 곳에서 땅으로 떨어지며 또 한 번의 신음을 토했다.

콰당!

“크헉!”

마족은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생각했다.

‘내가 상대할 인간이 아니야. 어서 도망가야 해.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어떻게 나온 중간계인데!’

마족은 곧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 뜬 상태로 라이안이 마족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이안이 하늘에서 내려오려고 하자 마족은 빠르게 일어나며 도망을 치려고 했지만 곧 위에서부터 엄청난 압력을 느끼고는 움직일 수 없었다.

암경이었다.

라이안이 암경을 펼치자 마족이 있는 곳의 대기가 떨려왔고 주위에 있던 나무들은 마치 무엇인가에 밟힌 듯 땅으로 파고들었다.

“으윽,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크윽.”

마족이 영문을 몰라 하고 있을 때 땅에 내려선 라이안이 빠르게 마족에게 다가와 눈을 마주쳤다.

“허억!”

“이제 고분고분 말을 좀 듣겠나? 아니면 팔다리가 모두 잘려야 말을 듣겠나.”

마족은 라이안의 능력에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마족은 무릎을 꿇으며 싸움을 포기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라이안은 주로 질문을 했고 마족은 고분고분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었다.

주위에 있던 마물들은 그러한 마족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멀뚱히 각자의 편한 자세로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래, 마물들과 네가 그들과 싸웠고 그들은 드래곤의 마법으로 함께 도망쳤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이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은 물론 말투 또한 높이는 마족이었다.

“마족에게는 각자 급수가 있다고 알고 있다, 상급부터 하급까지. 너의 급수는 어찌 되지?”

“저는 간신히 상급으로 봐주고 있습니다. 웬만한 중급 마족에게는 모두 이기지만 보통의 상급 마족에게는 조금 힘겹습니다.”

“흠. 어쩐지 강하다 싶더니 상급마족이었군.”

잠시 생각을 하던 라이안이 곧 다시 물었다.

“마계의 마족들은 모두 중간계에 나온 것인가?”

“아닙니다. 마계의 문이 닫혀버리는 바람에 그리 많이 나올 수는 없었습니다.”

마족의 말에 라이안이 조금 놀라며 물었다.

“마계의 문이 닫혀? 어떻게?”

“그것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마계의 문이 열리고 얼마 안 있어 봉인이 다시 복구되었다는 것 외에는.”

“그럼, 너와 같은 상급 마족은 얼마나 나왔나?”

라이안의 물음에 마족이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조용히 말했다.

“아마도 한 20정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별로 안 되는군. 어째서 밖으로 그렇게 적은 수밖에 못 나온 것이지?”

“저같이 중간계에 나오는 것에 들뜬 마족들이 있는 반면 느긋하게 자신이 거느리는 세력을 모두 데리고 오려는 마족들도 있는 것이지요. 그들이 어떻게 알았겠어요. 자신들이 세력을 정비하고 있을 때 이미 마계의 문이 닫혀버릴 줄을.”

라이안은 마족으로부터 대륙의 상황을 아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현재 발크르스 마왕은 마계의 문이 열려 있는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에 있으며, 나머지 마왕들은 제루이판 왕국과 히매인 왕국에 있다는 말을 들으며 아주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각계격파가 가능하겠군. 왜 마왕들이 한곳에 모여 있지 않은 것이지?”

“발크르스 마왕님의 명이 그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마계의 문은 닫혔지만 한 번 열렸던 마계의 문에서는 아직도 계속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죠. 중간계에 마력이 섞여들고 있고 거의 다 퍼진 상태지만 순수한 마력을 흡수한 마족일수록 더욱 강한 힘을 모을 수 있으니 제가 생각하기에는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어찌해서 당연한 조치라고 하는 것이지?”

라이안의 물음에 마족은 마족들의 계급상승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고 그러한 설명을 들은 라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이전의 마교와 비슷하군. 힘만 있다면 언제든 아래에서 치고 올라올 수 있다라. 그렇다면 발크르스 마왕이 두 마왕을 멀리 떨어뜨려 놓은 것도 말이 되는군.”

라이안이 말과 함께 검게 변해버린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들을 이제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나.”

라이안의 말에 마족이 찔끔거리며 몸을 떨었다. 그들을 내쫓은 것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마족은 곧 모든 것을 다 들은 라이안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마족들의 대표적인 습성이었다.

죽이던가, 아니면 수하로 거두던가.

하지만 자신이 이긴 상대의 힘을 흡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언제 또 다시 도전해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라이안은 곧 하늘에서 시선을 옮겨 마족을 바라보았다.

마족은 그런 라이안의 시선을 느끼며 몸을 떨었고 곧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마족에게도 이름은 있을 터, 네 이름이 무엇이냐?”

“샤린.”

라이안이 마족의 이름을 듣고는 의외라는 듯 웃었다.

“샤린이라… 후훗, 마족이지만 상당히 예쁜 이름이군.”

“…….”

아무런 말없이 무릎을 꿇고 있는 샤린에게 라이안이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모르는 것들을 가르쳐 주었으니 죽이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

라이안의 말에 샤린이 고개를 들며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인가요?”

“단, 이곳 레어에 있는 마물들을 모두 데리고 가.”

라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샤린은 그런 그를 계속해서 바라만 보았다.

마족의 여성은 강한 자에게 끌린다 했던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라이안이 갑자기 멋있어 보이는 샤린이었다.

‘이 말을 한다면 다시 나를 죽일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샤린은 아직 라이안을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말은 하고 싶었다.

“잠시 만요.”

“응?”

샤린의 부름에 라이안이 레어로 이동하려는 것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저를… 주세요.”

너무 작은 목소리라 라이안이 자세히 듣지 못했다. 아니, 중간의 말은 샤린이 속으로만 말했던 것이었다.

“뭐라고 했어?”

라이안의 되물음에 샤린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저를… 거두어주세요.”

“뭐?”

“마족은 원래 승리한 자에게 힘을 흡수당해 죽거나 아니면 그의 수하가 되는 게 원칙이에요, 다른 경우는 없지요. 저를 죽이시지 않을 것이라면 저를 거두어주세요.”

라이안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내 수하가 되겠다는 거야?”

“네.”

“허! 이것 참.”

라이안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일 듯 싸웠는데 자신의 수하가 되겠다고 하니 이 상황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저기 혹시 머리라도 다쳤어? 머리는 안 때린 것 같은데.”

“이미 따르기로 마음먹은 이상 그렇게 할 거예요. 어딜 가셔도 따라갈 거예요.”

샤린은 라이안이 거절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강하게 나갔다.

보통 마족들의 경우 마왕들의 직속 부하들인 경우도 있었지만 샤린과 같이 어떠한 마왕의 아래에도 있지 않은 상급 마족들이 있었다.

그런 샤린은 라이안을 따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흠. 이거 난처하군. 괜히 왔다가 혹 하나 달게 생겼으니, 원.”

라이안 자신은 곧 다시 클로리아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샤린이 이곳 레어를 나간다고 해도 다른 마물들이나 마족들이 이곳에 들어앉겠지. 그렇다면 샤린에게 계속 이곳을 지키라고 하는 것도 좋을 듯한데.’

라이안은 순간 떠오른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생각이라고 느꼈다.

“좋아, 샤린. 나를 따라준다고 하니 오히려 내가 고마워. 하지만 조건이 있어.”

“어떤 것이라도 들을게요.”

라이안은 샤린의 무조건적인 충성심이 느껴지자 조금 부담스러웠다.

“뭐, 이상한 거 시키는 것은 아니고. 그러니까 지금 네가 관리했던 것처럼 이곳을 계속 관리해 달라는 것이 조건이야. 대신 본래 이곳의 주인이 돌아온다면 최대한 그에게 협조할 것.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알았어요. 그런데 주인님은 어디론가 가시는 건가요?”

“컥!”

라이안은 샤린이 주인님이라고 말하자 숨이 덜컥 막혔다.

“에헤! 에헤! 저기 있잖아. 주인님은 조금 그렇고 그냥 라이안이라고 불러. 알았지?”

라이안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고 샤린은 그런 그가 귀엽게 느껴졌다.

정말 아이러니한 관계가 빠르게 형성되어 버렸고 라이안은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어디 좀 가봐야 해. 가끔 오기는 할 것이지만 자주는 못 올 것 같아.”

“네, 알겠어요.”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혹시 인간들이 이곳 영토에 들어오면 죽이지 말고 잘 챙겨주었으면 좋겠어. 그게 가능할까?”

라이안은 포악한 마물들이 인간을 보자마자 죽이려고 들 것이라고 생각하며 말한 것이었다.

“제 휘하의 마물들에게 그렇게 일러둘게요. 제 아래에 있는 마물은 제가 조절할 수 있거든요.”

“그래? 그거 다행이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라이안이 텔레포트를 시전해 이동하려 할 때 샤린이 황급히 그를 말렸다.

“잠시 만요.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어요.”

“응? 뭔데?”

“그게, 레어 가장 아래에 멍청하게 눈만 깜빡거리는 레드 드래곤 한 마리가 있던데요. 그것은 어떻게 처리하죠?”

“아! 미켈리우스!”

라이안은 자신이 백치로 만든 레드 드래곤 미켈리우스를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이 이곳에 있었구나. 흠, 챠둠이 없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우선은 샤린이 그 녀석을 잘 보살펴줬으면 좋겠네, 부탁할게.”

“네.”

“그럼, 난 간다. 텔레포트!”

스팟!

곧바로 빛과 함께 사라지는 라이안이었고 샤린은 그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공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평생 자신을 따르기로 마음먹었음을 라이안은 알 길이 없었다.

* * *

포스안 제국에 신성력의 결계가 쳐지고 난 뒤 며칠이 지나고 에드코르 제국 황성의 어느 밀실.

발크르스 마왕은 황성을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전혀 다른 곳으로 변화시켜 놓았다.

밖에서 본다면 진정 마왕의 성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둡고 음침했다.

모습을 작게 만든 발크르스 마왕은 자신이 만든 마력의 결계를 보며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지?”

한쪽 공간 마력의 결계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챠둠이었다.

라이안이 혼돈의 검 메르지아로 인해 탈출했을 때 챠둠은 곧바로 발크르스 마왕에게 붙잡혔던 것이다.

발크르스 마왕은 단지 금속으로만 보이는 챠둠이 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신기해했다.

“마법으로 자아를 인식시킬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금속은 도대체가…….”

발크르스 마왕이 챠둠을 마력의 결계에 가두기 전 도망치려는 챠둠을 몇 번이나 붙잡아 부셔버리려 했었다. 하지만 조금 깨진 챠둠은 재생해 돌아가고 또 다시 부수면 재생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재생하는 금속이 더욱 신기한 발크르스 마왕이었다.

발크르스 마왕은 챠둠을 보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혹 나를 따를 생각은 없는가?”

“내 주인님은 단 한 분이시다.”

“그렇다면 그 인간이 죽는다면, 그럼 어찌 되는가?”

“그 분이 죽는다면 난 자체적으로 소멸할 것이다.”

“흠.”

발크르스 마왕은 화가 났지만 곧 그 화를 떨쳐버렸다. 왜냐하면 부수려 해도 어차피 또 재생할 것이니 소용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넌 평생. 아니, 영원토록 그곳에 갇혀 있어야 할 것이다.”

발크르스 마왕이 밀실을 빠져나가자 챠둠은 서둘러 무엇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력으로 인해 전파 같은 것이 어떤 곳에도 전송되지 않으니 최대한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랬다.

챠둠은 강식장갑에 마나를 인식시키는 것도 가능했기에 어떠한 기운을 중화시키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아만다리움 금속을 증식시켜 그것으로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이곳을 탈출하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챠둠에게도 어려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에너지였다.

기계인 이상 에너지가 있어야 활동이 가능했기에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그로 인해 많은 에너지가 소비될 수밖에 없었다.

챠둠은 생각 끝에 마력을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고자 했다. 마나를 받아들이듯 마력도 받아들여 자신의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현재 챠둠이 하고 있는 연구에 중점이었다.

‘생명체만 다를 뿐 그 개체들이 사용하는 모든 것이 하나의 에너지와도 같다. 그러니 마력 또한 에너지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정말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기계적인 연산능력을 가진 챠둠이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챠둠이 이곳에 갇히고 며칠이 지났을 때 챠둠은 드디어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드디어 다 만들었다. 이제 실험을 해봐야 한다.’

챠둠은 혹시나 발크르스 마왕이 오면 어쩌나 하고 크게 긴장했다.

‘그가 알게 된다면 더 이상 탈출할 수 있는 확률이 사라진다.’

챠둠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곧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기계 같은 팔로 하나의 물건을 들고 마력의 결계로 가져갔다.

챠둠이 들고 있는 물건은 네모난 몸체에 조금 기다란 봉이 달려 있었고 지금 그 봉의 끝을 마력의 결계에 닿게 만들고 있었다.

치지지직.

마력의 결계는 상당한 반발력을 형성시켰고 챠둠의 몸체 전체가 균형을 잃을 듯 흔들렸다. 하지만 챠둠은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세를 유지했다.

시간이 지나고 챠둠은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봉에서 불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쾌재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성공이다!’

그러나 마력에서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 흡수하는 양이 너무도 적었다. 더구나 마력은 전혀 줄어든 기색도 없었으니 챠둠은 상당히 난감해했다.

‘그래도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니 그것으로 된 거다. 좀 더 흡수할 수 있는 양을 늘리고 그것을 최대한 나의 에너지로 전환한다.’

챠둠은 이제 봉이 아닌 자신의 몸을 대신하기로 작정했다.

처음에는 확신도 없었거니와 과학이라는 것이 원래 시행착오를 겪는 학문이라 자신의 몸체로 실험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력을 흡수하는 봉으로 하여금 자신의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었고, 전혀 문제가 없음을 알기에 자신의 몸체를 이용해 보다 큰 마력을 흡수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또 다시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발크르스 마왕이 챠둠을 찾았다. 결계 앞에 의자를 놓고 앉은 발크르스 마왕은 챠둠에게 질문을 했다.

“너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초지능 컴퓨터로 만들어진 기계생명체이다.”

“초지능 컴퓨터? 그것이 무엇이지?”

“이곳과는 다른 차원의 학문으로 만들어진 창조물이다.”

챠둠의 말에 발크르스 마왕이 크게 놀랐다.

“지금 다른 차원이라고 했는가?”

“그렇다. 나는 다른 차원에서 이곳으로 넘어왔다.”

발크르스 마왕은 챠둠의 말을 들으며 한 가지 이상했던 점을 물었다.

“혹시 네가 모시는 그 인간도 다른 차원의 인간인가?”

“그렇다. 나와 동 차원에서 태어나신 분이시다.”

“어쩐지. 이곳 차원의 인간이 아니니 그렇게 강할 수 있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가는군.”

잠시 생각에 젖어 있던 발크르스 마왕이 챠둠을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모습이 바뀐 건가?”

발크르스 마왕의 중얼거림에 챠둠이 속으로 크게 긴장했지만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었다.

“중간계를 손에 넣고 나니 이제 마땅히 나의 관심을 끌 것들이 없군. 신성력의 결계가 쳐진 곳은 나중의 재미를 위해 남겨두어야 할 것 같고. 너의 그 인간 주인은 어딘가에 분명 살아 있겠지?”

“…….”

발크르스 마왕의 질문에 챠둠은 여전히 조용히 있었다.

“나에게 네가 살던 세상의 이야기를 해 준다면 너의 주인을 죽이는 것을 한 번 고려해 줄 수도 있다. 이 제안은 어떠냐?”

이번에는 발크르스 마왕의 질문에 답하는 챠둠이었다.

“좋다.”

“크하하, 좋아. 아주 좋아! 그럼 다음에 내가 올 때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정리해 두고 있기를 바란다.”

발크르스 마왕은 아주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생긴 듯 크게 즐거워했고 웃으며 밀실을 벗어났다.

발크르스 마왕이 그렇게 밀실을 나가고 조금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챠둠이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발크르스 마왕이 챠둠의 모습이 변했다고 말했던 이유는 챠둠의 몸체 앞으로 무언가 날카롭게 뿔과도 같이 튀어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마력을 흡수할 장치였다.

‘이것만 성공하면 이곳을 탈출할 수 있다. 이 결계를 깨고 나면 투명화 장치를 이용해 최대한 하늘 높이 올라가야만 한다.’

챠둠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서서히 앞으로 나가 우주선에 튀어나와 있는 뿔을 결계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순간!

치지지지직!

챠둠의 몸체가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왠지 위험할 것만 같은 상황.

갑자기 챠둠의 몸체가 서서히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성공이다!’

챠둠은 자신의 몸체에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며 쾌재를 외쳤다. 그리고 서서히 마력의 결계가 그 농도를 줄여가더니 흐릿해졌고 곧 결계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는 듯 사라져버렸다.

챠둠은 서둘러 자신의 모습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이제 도망만 치면 된다.’

서서히 밀실 밖을 스캔한 챠둠은 밖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밀실을 벗어났다.

챠둠이 한참 마력의 결계를 깨고 도주를 하고 있을 때 발크르스 마왕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는 어떤 곳에서 자신의 마력이 소실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곧 그곳이 바로 자신이 조금 전 나왔던 챠둠이 있던 곳임을 알고는 그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빠르기로 단숨에 밀실로 날아온 발크르스 마왕은 얼굴을 굳히고는 크게 소리쳤다.

“네 이노오오옴!”

챠둠은 황성을 벗어나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고 발크르스 마왕의 소리를 듣고는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 * *

클로리아의 집 자신의 방으로 다시 텔레포트해 온 라이안은 도착하자마자 노크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똑똑똑.

“아직도 자요? 아침 먹어야죠. 어서 일어나요.”

“아, 네! 지금 나갈게요. 휴우,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나보네.”

라이안이 서둘러 방문을 열고 나갔고 주방은 구수한 빵 냄새와 스프 냄새로 가득했다.

“아주 좋은 냄새가 나는데요?”

그렇게 웃으며 나오는 라이안에게 가이어가 한소리 했다.

“거 젊은 사람이 오래도 자는군. 그래 가지고 굶지 않고 살 수 있겠나?”

“하하하, 앞으로는 좀 더 일찍 일어날게요.”

라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에 앉자 가이어가 라이안에게 말했다.

“음, 그래야지. 그건 그렇고 자네도 일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곳에 정착하고 살려면 뭐라도 해야 먹고 살지?”

“일이라… 뭐, 뭐라도 해야겠죠.”

“일하기는 싫은가?”

“아니요, 싫기는요. 단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할까 그것이 걱정이라서 그러죠.”

“그것은 걱정하지 말게. 내 이미 상단에 말을 해 놨다네. 상단에서 짐을 나를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거든. 오늘 나를 따라 그곳에 가면 될 거라네.”

“그래요? 재미있겠네요.”

“너무 우습게보고 대충대충 일하면 쫓겨날 수도 있을 거야. 그러니 열심히 일해야 돼.”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래보여도 힘은 잘 쓴다고요.”

“뭐, 믿음은 가지 않지만 한 번 열심히 해보게.”

가이어의 말에 클로리아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아이, 아버지도 참. 쓰러져서 어제 일어난 사람을 꼭 그렇게 일을 시켜먹어야겠어요?”

클로리아의 말에 라이안이 난처해하며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클로리아.”

라이안의 말에 다시 가이어가 클로리아에게 말했다.

“거봐라. 괜찮다지 않느냐?”

“에휴, 됐어요. 말해봐야 뭐해요.”

식사를 마치고 일터에 끌려가는 라이안이었다.

알고 보니 가이어가 하는 일은 상단에서 짐꾼들에게 잡일을 시키는 것이었고 라이안은 그 밑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가이어는 약해만 보이는 라이안이 힘들어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자 무척이나 뿌듯해했다.

점심시간이 다 될 무렵 말이 끄는 하나의 수레가 오면서 커다란 부피와 함께 상당히 무거운 짐이 도착했고 그것 하나를 내리기 위해 장정 다섯이나 달라붙어야 했다.

라이안은 다른 것을 나르고 있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가이어가 물건을 내리는 짐꾼들의 행동이 어설퍼보였는지 소리를 치며 같이 끼어들었다.

“아니, 그것도 제대로 내려놓지 못하고 뭐하고 있는 거야. 그래 가지고 어느 천리에 물건을 내리겠어.”

“가이어 씨, 이거 정말 무거워요. 밀인 것 같은데 뜯어서 걸러내면 어떨까요?”

“잔말 말고 어서 들어. 어서!”

가이어는 고집을 피우며 가장 힘이 많이 드는 위치에서 짚 끈을 잡았고 짐꾼들과 함께 소리쳤다.

“하나, 둘… 엇!”

이히히히힝.

숫자와 함께 짐을 내리려고 할 때 갑자기 말이 수레가 뒤로 조금 밀리는 것에 놀랐는지 앞다리를 치켜드는 것이 아닌가!

그 일로 인해 수레의 앞부분이 올라가며 짐이 갑자기 가이어를 덮쳐왔다.

“어, 어!”

“가이어 씨, 피해요!”

가이어 또한 갑자기 뒤로 밀려나는 바람에 뒤로 넘어져버렸고 커다란 짐은 그대로 그를 깔아뭉갤 순간이었다.

“으, 으악!”

가이어는 자신을 덮쳐오는 짐을 보며 한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턱.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히 자신을 덮쳤어야 할 짐이 자신의 몸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주위에서 놀라고 있는 짐꾼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는 가이어였다.

“이럴 수가, 저 무거운 짐을 혼자서 들다니.”

“엄청난 힘이다.”

가이어는 볼 수 있었다.

그 커다랗고 무거운 짐을 라이안이 혼자서 한 손으로 지탱하고 있는 모습을.

“라, 라이……?”

“가이어 씨, 괜찮아요?”

죽는 줄만 알았던 가이어는 라이안을 보며 크나큰 고마움을 느꼈다.

라이안이 다른 손으로 가이어를 일으켜 세워주며 짐을 밀어내었고 주위에 있던 상단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쳐 주었다.

짝짝짝짝.

짝짝짝짝.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아주 잘했네!”

“거 역시 일은 젊은 사람을 써야 한다니까.”

“젊어서 그런지 힘 한 번 대단하구만!”

모두가 라이안의 힘에 크게 놀라워하며 박수를 쳤고 가이어는 라이안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살았어. 내 오늘 자네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다신 클로리아의 얼굴을 보지 못할 뻔했네. 정말 고마워.”

라이안은 주위 사람들과 가이어의 칭찬에 쑥스러움을 느꼈다.

“에이, 뭘요. 제가 뭐 자랑스러운 일을 했다고요.”

그 사건 이후 점심시간이 되자 라이안은 상단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는지 모두와 친해질 수 있었고 맛있는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라이안의 모습을 보며 멀리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이 전날에 라이안에게 시비를 걸었던 제스였다.

“쳇, 저 늙은이를 보내버려야 보다 쉽게 클로리아를 손에 넣을 수 있거늘. 역시나 거슬리는 놈이군.”

그랬다.

말이 놀란 이유는 바로 제스가 멀리서 말의 머리를 향해 돌멩이를 던졌기에 그랬던 것이었고 그로 인해 가이어가 죽을 뻔했던 것이었다.

상단의 짐을 나르는 곳을 쳐다보고 있던 제스는 곧 라이안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몸을 숨겼다.

“뭐야? 본 거야? 설마.”

제스는 불안감을 느끼며 자리를 피했다.

라이안은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쉴 시간이 있을 때 혼자 짚을 깔고 그 위에 누웠다.

다른 짐꾼들은 모두 그늘에서 수면을 취했지만 라이안은 햇빛 아래에서 하늘을 보는 것이 더 좋았기에 그렇게 사람들과 떨어져 누워 있었다. 그리고 라이안은 생각했다.

‘제스라는 그 친구. 진정으로 가이어 씨를 다치게 만들려고 했었어. 이거 이대로 놔두어서는 안 될 것 같군. 앞으로 클로리아가 어떤 해를 당할지도 모르고.’

당장 오늘밤이라도 제스를 손보고자 생각하고 있을 때 라이안이 크게 놀랄 만한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들리십니까?”

챠둠의 목소리를 들은 라이안이 번개같이 일어나며 반지에 대고 말했다.

“챠둠! 너냐, 도대체 어떻게 됐었던 거야?”

“말하자면 상당히 깁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발크르스 마왕에게 붙잡혀 있었습니다.”

“발크르스 마왕에게?”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은 어디에 있는 거지?”

“지금은 우주 공간에 떠 있습니다. 최대한 발크르스 마왕과 떨어지고자 했기에 무조건 하늘로만 올라갔습니다.”

라이안은 챠둠이 발크르스 마왕에게 무슨 일을 당하지는 않았나 싶어 물었다.

“너 그놈에게 고문이라도 당한 거야?”

“고문은 아니고 몇 번 부서지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아시잖습니까? 본래 형태로는 빠르게 재생되는 것을요.”

“어쨌든 무사하니 다행이야. 그건 그렇고 할 수 있으면 가족들과 친구들 좀 찾아줘. 타미르안의 레어에 갔었는데 이미 자리를 피했더라고.”

걱정스러운 라이안의 목소리에 챠둠이 바로 응답했다.

“이미 찾아봤습니다.”

“그래? 다들 어디 있어?”

“현재 제루이판 왕국에 있으며 상당수의 인간들과 함께 있습니다.”

무사한 것을 확인한 라이안이 밝게 웃으며 물었다.

“다들 함께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지금 마물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듯합니다.”

순간 그들이 위험하지는 않을까 걱정한 라이안이 급히 물었다.

“그래? 지금 위험한 거야?”

라이안은 서둘러 그곳으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곧 챠둠의 말을 듣고는 행동을 멈추었다.

“아닙니다. 압도적으로 마물들을 해치우고 있습니다.”

“정말이야? 그거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모두들 무사해서.”

라이안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가이어가 라이안에게 다가와 물었다.

“무엇을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나? 이제 점심시간이 끝났네. 어서 일부터 끝내자고.”

“아, 네. 알겠습니다!”

소리 높여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나르러 가는 라이안이었고 그것을 본 가이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

* * *

제루이판 왕국의 한 성에서 마물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인간들이 있었으니 바로 라이안이 애타게 찾아 헤매던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이었다.

마물들은 성을 둘러싼 채 성벽을 기어오르려 하고 있었고 인간들은 불화살을 날리며 그것을 막고 있었다.

그런데 성벽 아래에서 마물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갈천혁과 혁마소 그리고 헤인드와 디로안이었다.

그들은 각자 떨어져 마물들 속에서 마치 전쟁의 신이 강림한 것처럼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갈천혁과 혁마소의 검에는 마물들이 몸체 터져나가기 바빴지만 헤인드와 디로안의 검에는 마치 마물들이 연기와도 같이 소멸되는 것 같았다. 바로 항마칠검의 효능 때문이었다.

항마칠검에는 마를 제압하고 소멸시키는 효능이 있었으니 헤인드와 디로안은 이 검법을 쓰면서 마치 팔라딘이라도 된 듯 마물들을 소멸시키고 있었다.

이즈리스 남작 또한 마물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마물들을 베어가고 있었고 그는 두 개의 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가끔씩 한 개의 검을 날려 마물들을 베어가는 것이 눈에 띄는 이즈리스 남작이었다. 그는 이미 이기어검술을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라드이라는 성벽 위에서 강한 신성력을 발산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마물들이 쉽게 성벽을 오르지 못하게 했고 아크포민 공작이 병사들을 지휘했다. 그리고 또 다른 강력한 조력자가 있었으니 바로 타미르안과 에나 그리고 라이안의 어머니인 이미화였다.

에나와 이미화는 허공에 떠 있는 상태로 마물들에게 마법을 퍼부었고, 타미르안은 이따금씩 브레스를 날려 마물들을 소멸시켜갔으니 아무리 그 수가 많은 마물들이라 한들 씨가 마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모든 마물들이 연기와도 같이 사라지고 성벽 밖에는 다섯 사람만이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그러한 모습을 보며 크나큰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마물들을 물리쳤다!”

병사들의 환호성을 들은 헤인드와 디로안이 강하게 검을 치켜들자 병사들의 환호성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10인의 영웅 만세!”

“10인의 영웅이 대륙을 구하리라!”

그랬다.

이들이 바로 마물로 넘쳐나는 대륙에서 마물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영웅들이었다.

성벽 밖에 있는 다섯 사람이 성으로 다가오며 성벽으로 날아오르듯 뛰어올랐고 곧 아주 쉽게 성벽 위에 내려섰다.

타미르안은 다시 인간으로 폴리모프하며 성벽으로 내려섰고 에나와 미화 역시 성벽으로 내려왔다.

갈천혁이 모두를 보며 말했다.

“모두 잘해 주었군. 드디어 이 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어.”

“그러게 말이야. 정말 치가 떨리는 것들이로군. 마물들이라는 것들. 퉤.”

혁마소가 침을 뱉으며 인상을 구겼고 모두가 그를 보며 함께 웃었다.

타미르안이 그들의 말을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힘겨운 싸움이었네. 성을 함락했다고 생각하자마자 밖에서 마물들이 또다시 밀려왔으니. 난 이제 더 이상 브레스를 쓸 여력도 없다네.”

드래곤은 본래 하루 세 번의 브레스를 쓸 수 있었다. 그런데 타미르안은 오늘만 해도 벌써 5번의 브레스를 썼던 것이다. 6천년 이상 산 에이션트 드래곤이었기에 그나마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아크포민 공작이 다가오며 말했다.

“정말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어디 다치신 곳들은 없으십니까?”

혁마소가 나머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뭐, 다들 지쳐 보이는 것 빼고는 괜찮구만.”

이즈리스 남작이 아크포민 공작에게 병사들을 보며 물었다.

“병사들과 기사들의 피해는 어떻습니까?”

“그리 큰 피해를 보지는 않았다네. 병사가 150정도 그리고 기사를 20정도 잃었다네.”

“흠. 그래도 상당한 피해로군요. 그렇게 힘겹게 싸웠는데도.”

이즈리스 남작은 조금 더 병사들을 구해내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이 아팠다.

그런 이즈리스 남작의 어깨를 갈천혁이 잡으며 말했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우선 머물 수 있는 곳을 마련했으니 앞으로는 피해가 적을 것이 아니겠느냐? 너무 마음 쓰지 말거라.”

“네, 스승님.”

이들 병력의 수는 모두 6만이었다.

현재 아크포민 공작이 이들을 지휘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들 모두가 제루이판 왕국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세계각지에서 마물들과 싸우며 도망쳐온 자들이었고 아크포민 공작이 이들을 모아 끝까지 마물들에게 대항하고 있었다.

한때 아크포민 공작은 단 일만의 병사와 기사들과 함께 너무도 많은 마물들과 전투를 벌였던 적이 있었다.

전세는 크게 밀리고 있는 상황.

아크포민 공작이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하늘에서 나타난 사람들이 바로 이 9명이었고 그들은 나타나자마자 모든 마물들을 쓸어버렸다.

아크포민 공작은 곧 그들 중에 자신의 스승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병사들이 주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울부짖었었다.

그렇게 아크포민 공작과 합쳐 이들을 10인의 영웅이라고 불렀으며, 주위에 살아남은 병사들과 기사들이 모두 뭉쳐 마물들을 무찔러갔고 지금도 군사의 수를 계속해서 늘여가고 있는 중이었다.

대륙에는 이제 왕실과 황실이 없었다.

모든 왕족들과 귀족들도 도망치다가 마물들의 먹이가 되었고 끝끝내 싸웠던 이들만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크포민 공작은 그래도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피해는 마음 아프나 그래도 식량이 그대로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마물들이 사람이나 가축들만 잡아먹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아크포민 공작이 한쪽에 서 있던 기사를 손짓으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지금 당장 성안에 있는 모든 시신들을 한곳에 모아 태우도록 병사들에게 명을 내리게나. 빨리 태우지 않으면 곧 전염병이 돌아 이 성이 죽음의 성으로 변해버릴 것이야. 그리고 그것을 빨리 마무리할수록 술과 음식을 더 빨리 맛볼 수 있을 거라는 것도 알리게.”

“알겠습니다!”

기사 또한 술과 음식이라는 말에 흥이 겨웠는지 크게 소리치며 다른 기사들에게 명을 전달했다. 하지만 남은 10인의 영웅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성벽 밖을 내다보았다.

“이 평화로움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런지.”

갈천혁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제 또 마물이 쳐들어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갈천혁과 혁마소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지지직. 이봐, 들려?

“아니, 혹시 챠둠이냐!”

“지금 어디십니까?”

갈천혁과 혁마소가 동시에 소리쳤고 타미르안이 혁마소의 말을 들으며 급히 물었다.

“챠둠이라니! 혁 인간, 챠둠이 무사하단 말인가?”

갈천혁과 혁마소는 잡음이 섞여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치지지직. 하늘의 마기로 인해 통신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네 이놈! 네놈이 라이안과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안을 죽게 놔두었단 말이냐!”

라이안의 이름이 나오자 그곳에 있던 모두가 슬픈 얼굴이 되었다. 소문이 나기로 라이안은 발크르스 마왕과 싸우다가 죽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그들 또한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치지지직. 혁마소, 어디서 쓸데없는 소리 좀 주워듣지 마라. 왜 허구한 날 헛소리냐?

“네놈은 라이안이 죽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것이었냐? 이 처 죽일 놈아!”

-치지지직. 내가 너 때문에 미치겠다. 왜 멀쩡히 살아 있는 주인님을 너는 왜 말로 그리 자주 죽이는지 알 수가 없구나. 주인님과는 바로 조금 전 통신을 했다. 이 멍청한 놈아.

“뭐라? 라이안이 살아 있다고! 어디냐? 라이안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멍청하다는 말에 화를 낼 법도 했지만 혁마소의 관심사는 오로지 라이안이 살아 있다는 것에 있었다.

-치지지직. 지금 주인님께서는 포스안 제국에 계신다. 그러니 주인님이 슬퍼하지 않게 목숨이나 잘 부지하고 있어라. 그리고 발크르스 마왕에게는 덤비지 마라. 나 역시 지금까지 잡혀 있다가 도망쳐 나왔다. 이만 통신을 끊는다. 치지지직.

“이봐! 이 깡통아! 왜 늘 네 맘대로만 통신을 끊는 것이냐, 이 빌어먹을 놈아!”

이미 통신이 끊겼음에도 소리치는 혁마소를 갈천혁이 말렸다.

“그만하게. 이미 통신이 끊겨서 챠둠 님도 듣지 못할 것이네.”

“으으으으.”

에나가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갈천혁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어떻게 된 것이죠? 라이안 오빠가 살아 있는 것인가요? 정말, 라이안 오빠가 죽지 않았나요?”

그런 에나에게 갈천혁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해주었다.

“챠둠 님의 말이 그러하다고 하니 정확할 것이란다. 허허허.”

갈천혁의 말에 에나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헤인드가 크게 소리쳤다.

“역시 라이안이라니까! 그럼. 난 진작부터 라이안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니까. 하하하!”

크게 소리치며 웃고는 있었지만 헤인드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는지 그의 눈에 곧 눈물이 맺혔다.

이들 모두가 라이안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나타냈고 라이안과 전혀 정을 나누지 못했던 아크포민은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분이 살아 있다면 중간계에 희망이 전혀 없는 것만도 아니로구나.’

아크포민은 보았었다. 라이안이 발크르스 마왕과 엄청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아크포민이 보기에 그것은 마치 신들의 전투와도 같이 느껴졌으니 그에게 있어 라이안은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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