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돈의 라이안-47화 (46/57)

제47장 발크르스 마왕의 현신

“으아아아아아!”

라이안의 절규가 산 전체를 울렸다.

파밧!

라이안의 몸에서 엄청난 압력이 주위로 퍼져 나갔고 혁마소조차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뒤로 계속 밀려났다. 갈천혁은 천근추를 사용하며 몸을 낮추었지만 땅에 박힌 발이 계속 밀려나고 있었다.

라이안의 팔목에 있던 깨어나는 카오스갈리스 행성의 돌로 만든 팔찌가 강하게 빛을 발했고 곧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갈천혁도 라이안의 팔찌가 빛을 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것은 라이안의 친부가 남긴 것이거늘.”

쩌적!

쩌저저적!

파앙!

라이안의 팔찌가 산산조각 나며 바닥에 떨어졌고 주위로 밀려나던 압력들은 다시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수아아아악!

마치 조금 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주위는 고요했다.

갈천혁은 갑자기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라이안이 루시 공주를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라이안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크흐흐흑.”

라이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의 정신은 이미 너무도 큰 슬픔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것이다.

라이안에게 다가선 갈천혁은 그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갈천혁은 마족들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복수를 불태웠다.

‘죽여 버리리라. 기필코 이 악귀에 불과한 것들을 찢어죽이고 말리라.’

갈천혁은 자신이 챠둠으로부터 만들어진 이후 이보다 더 큰 분노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라이안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맹목적인 분노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이진 일이었기에 악에 받친 분노였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고 어서 빨리 마족들을 뒤쫓고 싶었다. 하지만 갈천혁은 라이안이 있어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가장 슬픈 것은 라이안이었기 때문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해가 지고 있음에도 라이안은 루시 공주를 땅에 눕힌 채 그녀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안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

“루시, 기억나요?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말이에요. 뭔가 운명적인 만남처럼 서로에게서 이상한 소리가 났었지요. 기억나죠? 정말 처음이었어요.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이성에게 끌려본 적은요. 당신이 처음 검은 기사들에게 쫓길 때 제가 나선 것은 팔튼 때문이 아니었어요. 바로 당신 때문이었어요. 전… 이미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나 봐요.”

라이안의 말을 듣고 있는 갈천혁은 오히려 너무도 조용한 그의 목소리에서 더 큰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어찌하지 못하고 시선 또한 어디에 둘지 모르는 갈천혁이었다. 갈천혁은 결국 하늘을 보며 깊은 한숨만을 내뱉었다.

라이안은 반지를 통해 챠둠에게 말을 걸었다.

“챠둠, 루시를 살릴 수는 없는 걸까?”

“… 이미 생명이 끊어진 사람은 살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엄마처럼… 할아버지들처럼… 그렇게 살려낼 수는 없는 걸까?”

“주인님…….”

“그래, 알아… 그렇게 하면 더 이상 내가 아는 루시가 아니라는 것을…….”

라이안은 결심이 섰는지 그녀의 시신을 들어 갈천혁에게 넘겼다.

“할아버지, 루시를 부탁해요.”

“어찌하려고 하는 것이냐?”

“그들이… 루시의 심장을 가져갔어요. 전… 루시의 눈물 한 방울조차 그들에게 줄 수 없어요.”

“설마, 혼자 가려는 것이냐? 안 된다. 그들은 너무 강해. 네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차단 말이다.”

라이안은 자신의 손을 들어 잠시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자신의 몸 안에서 무한에 가까운 힘을 느끼며 확신했다.

“제 몸 안에서 무엇인가 엄청난 힘이 깨어난 듯해요. 아마도 괜찮을 것 같네요. 그리고 제 몸에 있던 신성력이 어떤 것인지 알았어요. 너무도 자세히 느껴져요. 루시의 심장이 있는 곳도 어딘지 알 것 같아요.”

라이안은 자신이 가진 신성력 또한 혼돈의 신성력임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아는지도 몰랐지만 그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자신과 루시 공주가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감정이 바로 이것 때문이라는 것도 지금에야 알 수 있었다.

라이안의 등에 메어 있던 창이 갑자기 파르르 떨었다.

라이안은 자신의 창을 손에 쥐고 바라봤다.

“너 역시 같은 힘을 가지고 있구나. 그래서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때 그렇게 친근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고.”

자신의 창으로부터 자신과 동일한 힘을 느끼는 라이안이었다.

라이안은 루시 공주를 안고 있는 혁마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루시의 심장을 받아올게요.”

피잉!

파방!

“이, 이 정도의 빠름이라니!”

갈천혁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라이안의 신형이 순식간에 하늘로 솟는다 싶더니 단 몇 초 만에 자신의 시선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라이안 역시 하늘을 날아가면서도 자신의 몸 안에서 느끼지는 힘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힘은 그저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라이안은 더 이상 자만하지 않았다.

라이안은 루시 공주가 잡혀가고 죽은 것에 대한 잘못을 혁마소가 아닌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자신이 루시 공주의 곁을 끝까지 지켰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자만이… 루시를 죽게 만든 거야.”

스스로의 자책은 점점 라이안의 심장을 조여 왔다. 그리고 그럴수록 앞으로 더 빠르게 쏘아져갔다.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 안에는 성대한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다른 나라로부터 압력이 점점 심해질수록 오리닌 황제의 횡포는 더욱 심해졌으며 명에 대한 불복은 죽음으로 다스렸다.

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오리닌 황제의 명대로 제단을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설치하는 제단으로 인해 발크르스 마왕이 현신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야만 지금보다 오래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포스안 제국의 군대는 에드코르 제국의 중앙까지 밀고 들어왔으며 황성의 지척까지 당도해 있었다.

에드코르 제국은 다른 나라들을 막고 있는 몬스터군단을 포스안 제국쪽으로 돌렸으나 신성력을 사용하는 성기사들과 신관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리치들과 흑마법사들은 단지 몬스터군단을 움직일 뿐 자신들이 직접 싸우지 않았다.

멀리서 몬스터군단과 성기사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그들 중 한 흑마법사가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자에게 공손히 물었다.

“몬스터군단을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흑마법사의 말에 가장 앞에 있던 리치 하나가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로브 사이로는 리치의 녹색 눈만 보일 뿐이었다.

“우리는 단지 시간만 끌어주면 되는 것이다. 칸드 님이 오시면 몬스터군단을 조종하는 것도 끝이다. 그분이 현신하실 것이니까.”

말을 한 리치는 바로 케리어스였다.

케리어스는 멀리서 수많은 밝은 빛들이 몬스터들에게 쏘아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에 물든 몬스터들은 이미 마수나 다름없었기에 신성력에 치명적이었다.

신성력 공격을 받은 몬스터들은 모두 뼈만 남기며 검은 연기로 산화했다. 그런데 그 중간에 가끔씩 커다란 불덩어리가 몬스터들에게 쏘아졌고 그때마다 수십의 몬스터들이 불에 녹아들었다.

“끄으으으. 가시네이스로군.”

케리어스가 리치 특유의 거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신을 죽인 자를 어찌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케리어스는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가시네이스를 찢어죽이고 싶었지만 아직 시기상조였다.

“그분을 영접해야 한다. 황성으로 가자.”

케리어스가 몸을 돌리자 그 뒤에 있던 흑마법사들이 몸을 숙이며 길을 열어주었고 케리어스가 지나가자 곧 그 뒤를 따랐다.

오리닌 황제는 중간계와 마계의 경계를 무너뜨릴 제단 앞에 서서 마른 침을 삼키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황성의 성문으로 빠르게 들어오는 자들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왔구나!”

오리닌 황제는 제단으로 다가오는 마족들을 보며 황홀한 듯 웃다가 돌연 얼굴을 굳혔다.

“아니, 혼돈의 신녀는 어디 있는 것이오?”

“여기 있다.”

“그, 그것은!”

치카의 손 위에는 아직도 루시 공주의 심장이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혼돈의 힘에 의해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신녀의 심장이다. 이것이 두 차원의 경계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때서야 오리닌 황제는 다시 얼굴에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들이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다른 곳에서 케리어스와 흑마법사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멈춰서며 마족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칸드 님,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좋다. 그럼 빨리 시작하자.”

제단의 중앙에는 커다란 마법진이 형성되어 있었다.

바로 마계의 문을 소환하는 마법진이었다.

지금까지 마계의 문을 소환할 수는 있었지만 그 문을 열 수도 깨뜨릴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주신인 라피네 신의 힘으로 봉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봉인을 깨려면 보다 강한 힘이 필요했다.

바로 혼돈의 힘이었다.

마법진은 이미 수백 명의 순결한 여인의 피로 채워져 있었다.

케리어스와 흑마법사들이 마법진 주위로 둘러서 있었고, 치카가 그 마법진 한가운데로 가더니 루시 공주의 심장을 내려놓았다.

치카가 마법진에서 나오자 케리어스와 흑마법사들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던 오리닌 황제와 마족들은 기대에 찬 표정을 하고 있었으며 에드코르 제국의 귀족들은 불안에 떨었다.

혼돈의 힘을 느끼며 빠르게 날아오던 라이안은 멀리서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을 볼 수 있었다.

잠시 멈추어 다른 곳을 보니 몬스터군단과 포스안 제국의 군사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안은 그들을 도울 생각이 없었다. 그들을 돕는다면 그것은 루시 공주의 심장을 되찾고 난 이후라 생각하는 라이안이었다.

다시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 쪽으로 날아가던 라이안은 황성의 하늘에 거대한 검은 구름이 모여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루시의 심장으로 무슨 짓을……!”

라이안은 그 징조가 중간계와 마계의 문이 열리는 것이라 짐작하며 더욱 빠르게 쏘아져갔다.

그와 동시에 칸드를 비롯한 마족들은 엄청난 힘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법진 위로 투명하면서도 검은 홀이 형성되었고 그 투명함 너머에는 거대한 붉은 두 눈이 보였다.

바로 발크르스 마왕이 중간계로 넘어오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칸드는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엄청난 힘이 발크르스 마왕의 힘이 아님을 알고는 표정을 굳히며 뒤를 돌아보았다.

“설마!”

칸드와 같이 다른 마족들도 뒤를 돌아보았고 오리닌 황제 또한 무슨 일인가 싶어 같은 방향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날아오는 무언가를.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칸드가 말을 잊지 못하고 있을 때 치카가 크게 긴장하며 말했다.

“발크르스 마왕님과 비등한 중압감이라니……!”

빠르게 날아오던 무언가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 위에 떠 있자 그들은 더욱 경악했다.

바로 날아온 그 무언가가 라이안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어찌 인간이 이런 힘을!”

“이건 말도 안 돼!”

라이안은 아래에 있는 마족들을 확인했다.

마족들에게서 혼돈의 힘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혼돈의 칼자루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마법진 중앙에 루시의 심장이 놓여 있는 것을 확인한 라이안은 곧 그곳으로 날아갔다.

“막아라!”

칸드가 몸을 날려 라이안의 앞을 막았고 다른 마족들 역시 동시에 라이안을 공격해갔다.

치이이잉.

그들이 라이안을 공격하려던 찰나 라이안은 순간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족들이 아주 느리게 자신을 공격해왔고 제단 주위에서 타오르던 불꽃도 멈추었다.

파바밧!

다시 시간이 흘러가고 마족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튕겨져 나갔다.

콰광!

쾅!

부스스스.

치카는 땅으로 떨어지며 먼지를 일으켰고, 펠랜은 성벽으로 날아가 성벽을 무너뜨린 후 떨어지는 돌에 깔렸다. 바테르는 황성의 내성에 처박혔고, 칸드는 허공으로 날아가다가 자력으로 멈추었다.

“크윽! 이리도 강해지다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바로 오늘 낮에만 해도 자신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마족 전부가 덤벼도 라이안을 막기 힘들 듯 여겨졌으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라이안이 다시 제단으로 몸을 움직이려 하자 마족들이 다시 그를 막아섰다. 그들의 몸은 칸드를 제외한 모두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머지 마족들은 이미 전투형태로 변신해 있었고 칸드 역시 라이안의 뒤로 날아오며 전투형태로 변신했다.

라이안은 앞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죽일 것이다. 지금은 최대한 도망가는 것이 너희가 조금 더 오래 살 길이다.”

“의식을 방해하게 놔둘 수는 없다!”

마족들이 다시 라이안에게 달려들었고 라이안은 창으로 그들의 공격을 막았다.

마법진 위에 나타난 홀 안에서는 발크르스 마왕이 라이안과 마족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졸였다.

“빨리 결계를 깨지 않고 무엇하고 있는 것이냐!”

마계에 있는 발크르스 마왕의 말이 중간계에 들릴 리 만무했다.

의식은 점점 절정에 다다랐고 루시의 심장이 서서히 떠오르며 홀 중앙에 자리 잡았다.

라이안은 뭔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짐작하며 더욱 강하게 마족들을 공격했다. 라이안의 몸 전체에서 붉은 강기가 솟구쳤고 그 붉은 강기는 가장 먼저 치카를 덮쳤다.

쉬아아악!

치카는 위험을 느끼며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라이안의 붉은 강기는 너무도 빨랐다.

퍼버버벅!

“크헉!”

붉은 강기는 10여 개로 나누어지며 치카의 온몸을 꿰뚫었고, 치카는 눈을 치켜뜨며 입으로 검은 피를 토해냈다.

“크윽… 이렇게 쉽게… 인간에게…….”

고통스러워하며 중얼거리던 치카는 끝까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촤아아악!

붉은 강기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찢어졌고 치카의 육체 또한 갈기갈기 찢겨졌기 때문이었다.

치카의 육체는 그렇게 땅으로 떨어졌고 곧 재와 같이 바람에 날아갔다.

“치카!”

“인간 따위가!”

펠랜과 바테르가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며 라이안에게 달려들었다.

창!

파방!

스걱! 스걱!

둘이서 동시에 라이안을 공격해갔지만 주위로 튀겨지는 핏방울의 색은 검은색뿐이었다.

상처가 계속 늘어가는 펠랜과 바테르는 공격을 하면서도 점점 망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칸드는 제단을 바라보며 의식이 절정에 다다랐음을 알았다.

“의식이 다 되어 간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칸드 역시 싸움에 합세해 라이안을 공격했다.

칸드가 합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칸드 역시 점점 상처가 늘어갔다.

칸드가 들고 있는 검은색의 도는 더 이상 라이안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는지 여기저기 금이 가고 있었다.

라이안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하며 온 힘을 쏟아 마족들을 공격해갔다.

“비켜라!”

스걱! 스걱!

카강!

수많은 붉은 빛줄기가 라이안의 몸에서 주위로 퍼져나갔고 마족들은 모두 움직임을 멈추었다.

“마왕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릴 줄 알았는데…….”

펠랜이 말을 함과 동시에 펠랜과 바테르의 몸이 피를 튀기며 조각조각으로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투두두둑.

그들의 조각난 육체는 땅으로 떨어졌고 치카의 육체가 그랬던 것처럼 검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칸드는 고통스러워하며 뒤로 물러났다.

검을 들고 있던 팔은 이미 어깨채 잘려져 있었고 칸드가 들고 있던 검은 두 동강이 난 채 땅에 떨어져 있었다. 그나마 가까스로 검으로 막았기에 무사할 수 있었던 칸드였다.

“하아… 하아.”

칸드는 다른 한 손으로 잘려진 어깨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렵지 않게 혼돈의 신녀를 찾아 임무를 완수할 줄 알았거늘… 나 혼자만 남게 될 줄이야.’

자신들의 힘은 마왕들을 제외하고 당할 자들이 없었다. 비록 많은 힘을 가지고 소환될 수 없었으나 중간계에서 무적을 자랑할 힘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보니 처량하게 보일 뿐이었다.

라이안이 몸을 돌려 칸드를 쳐다봤다.

“왜… 왜 우리를 가만두지 않았느냐… 조용히 살아가고 싶었거늘!”

라이안은 창을 뒤로 젖히며 칸드에게 달려들었다.

칸드는 그 순간 자신이 소멸될 것임을 느꼈다. 자신의 힘으로는 라이안에게 대항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 홀 중앙에 떠 있던 루시의 심장이 갑자기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도 강렬한 빛에 라이안 또한 공격을 멈추고 루시의 심장을 쳐다보았다.

“아차!”

라이안은 순간 몸의 방향을 틀었고 루시 공주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밝은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라이안은 빛을 가르듯 루시 공주의 심장에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손만 뻗으면 될 만큼 가까워졌을 때였다.

쩌적!

쩌저적!

홀을 막고 있던 투명한 무엇인가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라이안의 눈앞에서 루시 공주의 심장이 빛과 함께 찢겨지며 녹아들었다.

“안 돼에에!”

왜 그토록 이미 죽어버린 루시 공주의 심장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라이안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른 채 절규했다.

절규하던 라이안은 사라진 루시 공주의 심장이 있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하나의 구슬을 발견했다.

‘저것은……!’

라이안은 손을 뻗어 그것을 잡으려 했다.

어떠한 힘에 의해 몸이 앞으로 잘 나아가지 않았지만 이제 손만 뻗어도 잡을 수 있는 거리였다.

콰광!

그러나 커다란 소리와 함께 갑자기 검은 무언가가 밝은 빛을 내는 구슬과 함께 라이안을 덮쳐가는 것이 아닌가.

“크악!”

라이안은 고통을 느끼며 뒤로 튕겨져 나갔고 성벽을 뚫고도 황성 밖으로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 * *

멀리서 어느 정도 몬스터군단을 섬멸해가던 포스안 제국의 성기사들과 대신관들은 멀리서 보이는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에서 어떠한 검은 홀이 점점 그 크기를 늘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포스안 제국의 군사들을 이끄는 파이르 성관은 그것을 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설마!”

앞으로 넘어질 듯 걸어 나오는 파이르 성관을 주위에 있던 성기사들이 부축했다.

“파이르 성관님,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파이르 성관은 그들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중얼거렸다.

“발크르스 마왕이… 이제 중간계는… 끝이다.”

파이르 성관이 말을 끊어서 말했지만 성기사들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성기사들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졌고 멀리서 어둠에 둘러싸여 가는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만을 쳐다볼 뿐이었다.

사천사장인 로빈슨은 멀리서 보이는 무엇인가에 동요하는 성기사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신경 쓰지 말라! 마왕이 현신하기 전에 그것을 막아야 한다!”

“와아아아아!”

“라피네 신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이다!”

로빈슨은 자신의 옆에 있는 가시네이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고 가시네이스 역시 로빈슨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 둘이 앞으로 나가려고 했고 성기사들과 대신관들 역시 그들을 따르려고 했다. 하지만 파이르 성관이 미친 듯이 달려오며 그들을 말렸다.

“멈추시오!”

로빈슨은 그런 파이르 성관을 보며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한시가 급합니다. 당장 저것을 막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파이르 성관은 그런 로빈슨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어서… 어서 모든 군사들을 포스안 제국으로 되돌려야만 한다네. 그래야… 그래야만 이들 모두를 살릴 수 있단 말이네!”

“파이르 성관님, 왜 이러십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로빈슨은 파이르 성관이 왜 이리도 과하게 겁을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파이르 성관이 로빈슨에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대성관께서 우리가 떠나기 직전 나에게 말씀하셨다네. 마계의 문이 열리면 때는 이미 늦었으니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군사를 되돌리라고. 지금 보이는 저 현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었단 말이네!”

로빈슨과 가시네이스는 파이르 성관의 말을 들으며 표정이 심각해졌다. 로빈슨은 멀리 보이는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조금이면… 조금만 더 가면 되는 것을…….’

하지만 그때 가시네이스가 로빈슨의 어깨를 잡았다.

“가시네이스 님.”

가시네이스는 로빈슨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로빈슨 님, 대성관께서는 신계론에 정통하시지만 마계론에 대해서도 그 지식이 방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그리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대로 등을 돌리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들이 그렇게 잠시 멈춰 있을 때 제루이판 왕국의 군사들과 인두루인 제국의 군사들이 황성 근처에 다다랐고, 멀리서부터 수십의 말들이 포스안 제국의 군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바로 제루이판 왕국을 이끄는 아크포민 공작과 인두루인 제국을 이끄는 노이스 공작이 포스안 제국의 깃발을 발견하고 오는 길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에드코르 제국의 성을 공격하려고 했으나 황성 안에서 점점 커져가는 홀을 보았고 상황을 두고 보기 위해 공격을 중단했다. 그러던 차에 멀리서 포스안 제국의 깃발을 보고는 이 일을 상의하고자 기사들을 대동하고 그들을 찾아온 것이었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난 인두루인 제국의 총사령관 노이스 공작이라 하오.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자 왔으며, 지금 당장 포스안 제국을 이끄는 수장을 만나고자 하오.”

“난 제루이판 왕국의 총사령관 아크포민 공작이오. 나 역시 같은 이유에서 왔소.”

그들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멀리서 마나를 담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로빈슨은 그들을 보며 다시 가시네이스와 파이르 성관을 보았다.

“어찌해야 합니까? 저들에게 뭐라 말한단 말입니까? 발크르스 마왕이 이제 곧 마계의 문을 뚫고 나올 것이니 서둘러 도망치라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까?”

“어쩔 수 없네. 어서 저들에게도 후퇴할 것을 경고해야 하며 빠른 시일 내에 모든 사람들이 우리 포스안 제국으로 도망쳐 와야 한다고 말해야 하네.”

파이르 성관의 말에 로빈슨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들이 말을 듣겠습니까!”

언성을 높여가는 그들을 가시네이스가 말렸다.

“저들에게는 제가 가서 말하겠습니다. 두 분은 서둘러 군사들을 후퇴할 준비를 하십시오.”

“가시네이스 님!”

“로빈슨 님, 저 역시 소환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저로서도 지금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에 나타나는 저 현상에는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파이르 성관님의 말을 들으십시오.”

가시네이스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로빈슨도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그래도 차마 로빈슨은 기사로서 자신들은 도망칠 것이니 당신들도 도망치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기사의 기백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가시네이스도 그것을 알기에 자신이 가서 말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어서 서두르십시오, 로빈슨 님. 그럼 전 저들에게 가서 말을 전하겠습니다.”

파이르 성관이 돌아서려는 가시네이스에게 서둘러 한 가지를 더 말해주었다.

“가시네이스 님, 그들에게 한 가지 말을 전해주시오. 우리 포스안 제국에서는 국경으로부터 신성력의 결계를 칠 것이라고. 포스안 제국으로 온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이오.”

“알겠습니다.”

포스안 제국의 군사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노이스 공작과 아크포민 공작은 포스안 제국의 군사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그들이 곧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을 치려는 준비를 하는 줄로 알았다.

그리고 곧 포스안 제국의 진영으로부터 한 사람이 말을 타고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며 노이스 공작과 아크포민 공작이 거리를 좁혔다.

노이스 공작을 따라온 한 귀족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겨우 한 사람만 달랑 보내다니… 우리 인두루인 제국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닌지요?”

“흠.”

노이스 공작도 비슷한 마음이 드는 듯했으나 곧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마음을 달리 먹었다.

“저분은 가시네이스 님이 아니신가?”

인두루인 제국의 황제인 마시리온 황제의 즉위식 때 포스안 제국의 사절단에 섞여 왔던 가시네이스를 기억하는 노이스 공작이었다. 아크포민 공작 역시 마시리온 황제의 즉위식 때 참석했었으며 그때 보았던 가시네이스를 기억하고는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이거 가시네이스 님이 아니시오? 전쟁에 참여하셨다는 말을 듣기는 했습니다마는 이렇게 만나 뵐 줄은 몰랐소이다.”

아크포민 공작이 먼저 가시네이스에게 인사하자 노이스 공작 역시 서둘러 가시네이스에게 인사했다.

“이거 대륙 최고의 마도사이신 가시네이스 님을 다시 뵙게 되어 큰 영광이오.”

하지만 가시네이스의 인사는 무척이나 짧았다.

“안녕하시오. 노이스 공작, 아크포민 공작. 지금 한시가 급해 짧게 설명해야 함을 용서하시오.”

이제 황성만 치면 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노이스 공작과 아크포민 공작이었다.

“한시가 급하다니요? 이제 저 성만 함락하면 끝이 아니오?”

“그렇소. 단지 저 황성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이상해 조언을 구하고자 왔을 뿐이오. 혹 저들이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말이오.”

아크포민 공작과 노이스 공작의 질문에 가시네이스 역시 난감했다.

“지금 말하는 설명을 잘 들어주시오. 지금 포스안 제국은 이곳에서 급히 회군을 할 것이오. 그러니 그대들 또한 여기서 진군을 멈추고 각자의 나라로 서둘러 회군하시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것이오?”

노이스 공작이 황당한 듯 물었으나 가시네이스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저기 황성 안에 보이는 현상은 바로 발크르스 마왕이 마계와 중간계의 문을 뚫고 나오려는 현상이라고 들었소. 마계와 중간계의 문이 열리면 마계의 모든 마족들과 마수들이 뛰쳐나올 것이오. 그것도 그들 본연의 모든 힘을 갖고 말이오. 포스안 제국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회군하는 것이며 국경에 신성력의 결계를 친다고 하오. 그러니 그대들도 모든 군사들과 영지민들을 포스안 제국으로 대피시키도록 하시오.”

아크포민 공작은 가시네이스의 말을 들으며 표정을 굳혔지만 노이스 공작은 오히려 소리를 쳤다.

“어차피 싸워야 할 상대들이 아니오! 그리고 마계 모든 것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대들의 성기사들과 신관들의 신성력이잖소! 지금 이렇게 모두 모였을 때 저들을 막지 않는다면 언제 또 다시 막을 수 있단 말이오!”

일반적인 전투로 보았을 때는 노이스 공작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시네이스로서도 별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지금은 논쟁을 벌일 시간이 없소. 지금 내가 한 말은 바로 포스안 제국의 대성관께서 전하는 말이니 가볍게 듣지 말아주시기 바라오. 판단은 그대들이 하겠지만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기대하겠소.”

가시네이스는 그 말을 끝으로 말을 돌려 포스안 제국의 군사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으로부터 엄청난 밝기의 빛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손으로 눈을 가리며 황성을 바라보고 있을 때 성벽 한쪽이 터져나가며 성벽으로부터 무엇인가가 뚫고 나오더니 곧 땅에 처박혔다. 그리고는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에서 흘러나오던 빛이 사라졌고 각 나라의 군사들과 수장들은 황성의 성벽을 뚫고 나온 무엇인가를 확인했다.

그들은 먼지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사람을 볼 수 있었고 그가 파란색의 창을 들고 있는 것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은……!”

“검은 사신이 어찌 이곳에 있단 말인가!”

아크포민 공작은 라이안을 보며 생각했다.

‘스승님의 손자인 스피어마스터, 검은 사신.’

아크포민 공작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노이스 공작은 멀쩡히 서 있는 라이안을 보며 놀라워했다.

“어찌 인간이 저런 타격을 받고 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으로부터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우는 한 존재를 보며 더욱 경악했다.

“캬아아아아앙!”

모두가 그의 울부짖음에 귀를 막기 바빴다.

발크르스 마왕.

그가 중간계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황성의 성벽 위로 보이는 발크르스 마왕의 머리와 어깨를 보았다.

모두가 그렇게 공포에 휩싸이고 있을 때 라이안은 서서히 하늘로 떠올라 황성으로 다가갔다.

세 나라의 군사들은 그런 라이안을 보며 탄성을 자아냈다.

“지금껏 홀로 발크르스 마왕과 싸우고 있었단 말인가.”

“진정 위대한 존재는 그다.”

오해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라이안이 떠오르자 발크르스 마왕이 라이안을 쳐다봤다.

“크르르르. 네놈이 지금껏 내 일을 방해했던 그놈이로구나.”

라이안 또한 극한의 살기를 뿌리며 발크르스 마왕을 쳐다봤다.

“네가 발크르스인가?”

“내가 마계에 있는 동안 내 수하들을 잘도 죽이더구나. 인간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니, 그것 하나는 칭찬해줄만 하군. 어떠냐? 지금 당장이라도 나에게 무릎 꿇고 내 수하가 된다면 지금까지 네가 저지른 모든 죄를 용서해주마.”

“너로 인해 루시가 죽었다. 네놈은 살려둘 수 없다.”

“크르르르. 역시나 인간은 어리석구나. 그럼 내가 친히 너를 씹어 먹어주마.”

발크르스 마왕의 몸이 황성 위로 떠오르자 각국의 군사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라이안은 재빨리 발크르스 마왕을 따라 떠올랐다.

발크르스 마왕이 같이 하늘로 떠오른 라이안을 보며 말했다.

“어디 얼마나 강한지 공격해 보아라. 너의 힘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내 깨닫게 해주마. 크르르르.”

라이안은 최대한 혈기공을 운기하며 파황혈천무의 기운을 일으켰다. 그러자 라이안의 몸은 붉은 기운으로 뒤덮였고 발크르스 마왕은 검은 기운으로 뒤덮였다.

정말 한순간이었다.

하늘에서 천둥이 치듯 그들이 격돌한 것이다.

아래에서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인간들은 멍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라이안과 발크르스 마왕이 두 개의 빛줄기가 되어 한 차례씩 부딪칠 때마다 밀려오는 압력에 하늘이 울리고 땅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의 문이 터지듯 부서졌다.

콰광!

“캬우우우!”

“키아아아!”

두두두두.

두두두두.

갑작스럽게 이곳저곳에서 터져나가는 문에서는 수많은 마수들이 뛰쳐나왔고, 각 국의 군사들은 차마 싸울 엄두도 못 내고 공포에 떨며 뒤로 도망쳐갔다.

노이스 공작은 겁을 집어먹고 싸울 생각도 없이 후퇴하는 자신의 군사들을 보고는 인상을 굳혔다.

“이놈들이!”

그는 서둘러 자신의 군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그와 같이 있던 귀족들과 기사들 또한 그를 따랐다.

아크포민 공작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에 서둘러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가시네이스가 바라보는 포스안 제국의 군사들은 이미 빠르게 후퇴를 하고 있었고 가시네이스 역시 하는 수없이 뒤로 물러났다.

인두루인 제국의 병사들이 마수들에게 도륙당하고 있을 때 노이스 공작이 도착해 기사들과 병사들을 독려했다.

“겁먹지 말라! 우리는 위대한 인두루인 제국의 군사들이 아닌가. 맞서 싸워라!”

노이스 공작은 이미 앞에서부터 밀리는 병사들을 보며 서둘러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며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병사들에게 섞여 들어가 후퇴하는 병사들을 베면서라도 진군시켜라! 마법사부대는 서둘러 기사들과 병사들을 지원하라!”

노이스 공작의 명령에 따라 기사들이 달려 나갔고 뒤로 등을 돌려 도망치는 병사들을 베어가며 소리쳤다.

“등을 돌리는 자는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진군하라!”

“크악!”

“으악!”

기사들이 등을 돌려 도망치려는 병사들을 하나 둘씩 이곳저곳에서 베어가자 병사들이 겁을 먹고 하나둘씩 다시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뒤로 후퇴하던 흐름이 바뀌어 더 이상 뒤로 밀리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병사들이 용기를 내어 싸우고 있음에도 마물들은 너무도 강했다.

“크악!”

“커헉!”

병사들의 목이 여기저기로 날아다녔고, 뿔이 달린 어떤 마물은 병사 둘을 자신의 뿔에 꼽은 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들을 구원해주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마법사부대였다.

부유마법으로 떠오른 그들은 메모리즈 해 두었던 마법을 일제히 병사들 앞에 있는 마물들에게 쏘아냈다.

콰과과광!

“키아악!”

“쿠에엑!”

마물들이 마법에 맞고 불타오르며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병사들이 잠시 주춤거리고 있을 때 선두까지 달려 나온 기사들이 부상 당한 마물들을 도륙해갔다.

“이 추악한 마물들!”

“죽어라!”

“우리를 따르라! 마물들을 섬멸시키자!”

한순간에 마법사들과 기사들로 인해 사기가 충만해진 인두루인 제국의 병사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기사들을 도와 마물들을 공격해갔다. 하지만 아직도 계속해서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물들의 수가 상당해 크게 밀어붙이지는 못했다.

뒤쪽 먼 곳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노이스 공작은 심각하게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마물들의 숫자가 이대로 계속 늘어난다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승산이 없다.”

주위에 있던 귀족들 또한 노이스 공작과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하나 둘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전멸 당할 수도 있습니다. 총사령관님.”

“그렇습니다. 지금은 조금씩 밀어붙이고 있으나 마물들 하나하나가 기사와도 같은 전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마물들의 숫자 또한 늘어나고 있으니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우리의 병사들만 소진할 것입니다.”

노이스 공작은 귀족들의 말을 들으며 마법사부대를 바라보았다.

“저들과 기사들로 인해 잠시 전황이 바뀌기는 했지만 이제 곧 저들도 지치겠지. 그 이후는 차츰 또 다시 밀리기 시작할 것이고.”

한 귀족이 노이스 공작의 말을 듣다가 다른 곳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

“저곳을 보십시오. 제루이판 왕국의 군사들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약간 고지대에 자리 잡았던 인두루인 제국의 진영이었기에 멀리 있어도 그 수가 많은 제루이판 왕국의 군사들이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는지는 모두 알 수 있었다.

노이스 공작은 그런 제루이판 왕국을 보며 크게 대노했다.

“저런 겁쟁이 같은 놈들, 어찌 싸워보지도 않고 후퇴만 거듭하려 한단 말인가. 저 나라에는 진정 용기 있는 기사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항상 자신들의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며 깔보던 제루이판 왕국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한 손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제루이판 왕국이 후퇴를 거듭하며 마물을 상대하고 있기에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에서 보다 가까운 인두루인 제국이 더 많은 마물들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총사령관님, 저들이 물러선다면 우리로서도 더 이상 버티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군사들을 뒤로 물려야 합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피해만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귀족들의 말을 듣고 있던 노이스 공작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 굳은 얼굴로 전투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그의 행동에 귀족들은 입안에 침이 말라갔다.

“총사령관님!”

“총사령관님,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노이스 공작도 점점 많은 군사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는지 어렵게 몸을 돌리며 그들에게 명령했다.

“젠장, 우리 군도 후퇴한다. 빌어먹을!”

말과 함께 말에 올라타는 노이스 공작이었다. 그리고 다른 방향에 있던 포스안 제국의 군사들이 있었던 곳으로 고개를 돌린 노이스 공작이 더욱 얼굴을 찡그렸다.

“다 함께 힘을 합쳤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을…….”

노이스 공작이 보기에는 지레 겁먹고 물러선 포스안 제국이 한심하고 어리석어 보였다.

노이스 공작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아직도 우레와도 같은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고 여전히 두 개의 빛이 빠르게 부딪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저것이 진정 인간이란 말인가. 참으로 위대한 인간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구나.”

혼신의 힘을 다해 발크르스 마왕과 싸우고 있는 라이안을 차마 혼자 두고 후퇴하기가 부끄러운 노이스 공작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는 한 나라의 모든 군대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이었고 곧 전황이 뒤바뀔 것이 눈에 보였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발크르스 마왕이 점점 뒤로 후퇴하는 인간들을 보고는 잠시 공격하던 것을 멈추었다.

“크르르르. 보아라, 인간들이 도망을 치고 있는 것이 보이느냐?”

발크르스 마왕의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아래를 내려다본 라이안이었다. 하지만 곧 다시 전혀 변화 없는 얼굴로 발크르스 마왕을 쳐다보았다.

라이안의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다.

패왕철기신공으로 인해 강철보다도 강했던 그의 육체는 곳곳이 갈라진 상처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반면에 발크르스 마왕은 처음 현신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너무도 건재한 모습이었다.

힘에 있어서는 발크르스 마왕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라이안은 현재 자신이 갖게 된 혼돈의 힘과 지금까지 수련했던 파황혈천무의 모든 것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발크르스 마왕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발크르스 마왕 또한 라이안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잘 알고 있기에 방심할 수는 없었다.

“너 같은 인간이 어찌해서 생겨났는지는 모르나 만약 다른 마왕이었다면 이미 너의 손에 죽었을지도 모르겠군. 넌 이전에 소환마법진으로 현신하려던 나를 가만히 놔두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나를 막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마계의 문이 열려 본연의 힘을 모두 가지고 나온 나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하지. 크흐흐.”

라이안은 수정 같은 눈으로 발크르스 마왕을 쳐다보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

“상관없다. 난 싸울 것이다. 그리고 너를 죽일 것이다. 그것이… 내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라 해도…….”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 어리석은 종족인 진정한 인간이겠지.”

발크르스 마왕은 지금의 상황을 빨리 마무리 짓고자 생각했다.

‘아직 인가.’

발크르스 마왕은 지금 다른 마왕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아직도 마계의 문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혹시, 내 힘이 소진되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자신의 힘이 잠시나마 마왕들보다 약해진다면 분명 마왕들은 때를 놓치지 않을 것이었다.

마신은 마계에 한 가지 율법을 내렸다.

마왕들끼리는 힘의 율법을 지키되 위에 있는 자가 아래에 있는 자의 힘을 뺏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래에 있는 자가 힘을 키우면 위에 있는 자의 힘을 뺏을 수는 있었다. 그래서 위에 있는 마왕은 항상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마왕들을 견제해야만 했다.

이것은 마신이 힘의 독재를 막기 위함이었다.

가장 강한 위치에 있다 해도 아래를 견제해야 했고 그 아래에 있는 마왕은 위에 있는 마왕이 너무 강하기에 허리를 굽히면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가장 위에서 마계를 다스리는 마왕들의 위치는 쉽게 변하지 않았고 마계는 마계답게 흘러갈 수 있었다.

발크르스 마왕은 빠르게 생각했다.

‘이제 칸드밖에 남지 않았으니 마왕들을 견제하는 것이 힘들어졌군. 모두가 저 녀석 때문이지.’

칸드가 마계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로 본연의 힘을 되찾는다면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칸드는 라이안에게 크게 당했던 터라 이제 겨우 상처를 치료하고 있어 도움이 될 수는 없었다.

자신이 기른 5명의 최상급 마족들은 마왕들을 견제하기에 적합했으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칸드 하나밖에 안 남은 것이다.

발크르스 마왕은 순간 자신의 손 안에 있는 구슬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손을 펴서 라이안에게 보여주었다. 아주 살짝 보여준 것이었지만 라이안의 시선은 발크르스 마왕의 손으로 향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것은……!”

라이안은 순간 루시 공주의 심장이 사라질 때를 생각했다.

‘루시의 심장이 사라지면서 저 구슬이 나타났고 발크르스가 마계의 문을 뚫으며 나를 공격했었지. 그렇다면 저것이 바로 루시의 심장 안에 있던 혼돈의 힘.’

라이안의 표정과 행동을 살핀 발크르스 마왕은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크르르르, 이것을 원하는구나.”

라이안이 살기를 강하게 풍기며 말했다.

“내놔라.”

“주긴 주겠지만 쉽게 줄 수는 없지. 크르르르”

발크르스 마왕이 손을 펴자 회색빛 구슬이 살며시 떠올랐다. 구슬은 서서히 빛이 흘렀고 곧 검은 기운으로 뒤덮여졌다.

“무슨 짓이냐!”

“크흐흐, 넌 이것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나의 마력이 이것의 힘을 감출 것이며 먼 곳으로 날아간 이것은 영원히 찾을 수 없겠지.”

발크르스 마왕은 마기를 모아 날카롭게 형상화 시켰고 하나의 창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창 안에는 구슬이 들어 있었다.

라이안은 그것을 피하려고 생각했다.

지금도 발크르스를 상대함에 있어 벅찬데 상처를 입은 상태라면 분명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라이안은 이전 세계의 한국말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챠둠, 듣고 있어?”

“예, 지금 주인님과 가까운 위치에 이미 워프로 이동해 왔습니다.”

“타미르안이나 다른 사람들은.”

“위험할 것 같아 저만 왔습니다.”

“잘했어. 인공위성을 이용해 저것이 날아가는 위치를 잘 파악해줘. 나중에 쉽게 찾을 수 있게.”

“주인님, 저 역시 전투에 참여하겠습니다.”

“안 돼, 이놈은 너무 강해. 지금도 내가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너의 힘은 이전보다 약한 상태야. 게다가 초분자광선포도 사용할 수 없잖아.”

초분자광선포가 없더라도 드래곤 몇은 상대할 수 있는 챠둠이었다. 하지만 본연의 힘을 모두 가지고 나온 발크르스 마왕은 챠둠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라이안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말리는 것이었다.

갈천혁과 혁마소가 오더라도 발크르스 마왕을 상대함에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발크르스 마왕은 라이안이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이 쓰는 모든 언어는 다 알고 있거늘.’

하지만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느낀 발크르스 마왕은 곧 사악하게 웃으며 검게 타오르는 창과도 같은 것을 라이안에게 던졌다.

라이안은 순간 빛과도 같이 쏘아지는 발크르스 마왕의 공격을 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라이안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라이안.

“이것은… 설마!”

분명히 루시 공주의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울리고 곧 자신에게 날아오는 검붉은 창에서 루시 공주의 환영이 비춰지는 것이 아닌가.

라이안은 멍해짐을 느꼈다.

그 순간 챠둠의 급박한 목소리가 라이안의 반지로부터 흘러나왔다.

“주인님, 피하셔야 합니다!”

라이안이 번쩍 정신을 차렸을 때는 루시 공주의 환영이 사라진 상태였고 검붉은 창은 이미 라이안의 지척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착각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처한 라이안은 급히 자신의 모든 마나를 모아 창으로 검붉은 창을 막아갔다.

콰과광!

“크아아아악!”

고통이 밀려왔다.

라이안의 몸은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고 손아귀는 이미 찢어졌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쩌저적!

라이안이 들고 있던 창이 끝에서부터 금이 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세했던 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챠둠은 라이안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커다란 몸체를 나타냈다.

스팟!

갑자기 나타난 챠둠으로 인해 발크르스 마왕조차 크게 놀랐다.

“아니!”

챠둠의 전함은 재빨리 뒤로 밀려나가는 라이안의 몸을 덮쳤다. 라이안은 엄청난 충격에 점점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라 많은 계산은 하지 못했지만 아주 빠르게 시뮬레이션을 통해 라이안을 구해낼 수 있다고 믿은 챠둠이었다.

콰과광!

라이안과 챠둠은 동시에 땅에 처박혔고 수많은 먼지가 피어올랐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먼지가 불어오는 바람에 걷히고 라이안과 챠둠이 나타났다.

라이안은 한쪽 어깨가 뼈가 보일 정도로 파여 피를 흘리고 있었고, 챠둠의 전함은 한쪽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채 움직이지 않았다.

발크르스 마왕의 검붉은 창은 챠둠을 뚫고 지나가다가 그 힘을 소실하고 챠둠의 전함에 박힌 채 사라졌다. 그리고 라이안 옆에는 이미 깨져버린 창의 손잡이와 날만이 떨어져 있었다.

치지지직.

치지지직.

“최대치의 베리어를 가동시켰는데도 시스템의 70%가 파괴되다니.”

챠둠의 목소리였다.

챠둠의 전함은 잠시 진동을 일으키며 움직이려고 했으나 곧 어떠한 진동소리는 움직이려다 말고 사라져갔다.

챠둠의 전함은 현재 커다란 구멍으로 인해 언제 파괴되어도 늦지 않을 듯 보여 졌다.

발크르스 마왕은 서서히 땅으로 내려오며 갑자기 생긴 일이 신기하기만 했다.

“어디서 이런 것이 나타난 것인가?”

하지만 대답해줄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발크르스 마왕은 쓰러져 있는 라이안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이제야 죽일 수 있겠군. 그런데 분명 피하려고 했던 것 같았는데… 역시나 멍청한 족속들이야, 인간들은.”

발크르스 마왕 또한 상당한 힘을 모아서 공격했던 모양이었는지 조금 지쳐보였다.

그때 발크르스 마왕의 뒤로 갑자기 나타나는 두 존재가 있었다.

스팟!

스팟!

발크르스 마왕은 순간 행동을 멈추며 눈만 옆으로 돌렸다.

“그대들인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발크르스 님.”

“너무 늦었군. 내 분명 중간계를 나오자마자 나를 따르라 일렀거늘.”

발크르스 마왕 뒤에 나타난 것은 바로 이 마왕 체리아나와 삼 마왕 하비마고였다.

삼 마왕 하비마고가 발크르스 마왕 앞으로 오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도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내가 저 인간과 싸우고 있을 때 너희가 나를 돕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냔 말이다!”

발크르스 마왕이 화를 내며 자신의 마력을 발산하자 이 마왕 체리아나와 삼 마왕 하비마고는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힘을 소진했음에도 아직도 이런 강함이라니!’

‘젠장. 역시 오를 수 없는 강함이로다.’

이 마왕 체리아나가 발크르스 마왕에게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른 마족들을 지휘하며 마계의 문을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곳을 보십시오.”

이 마왕 체리아나의 손짓에 발크르스 마왕이 서서히 몸을 돌려 마계의 문을 쳐다봤다.

“무엇이 말이… 아니, 마계의 문이.”

“그렇습니다. 다행히 마기는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으나 서서히 봉인이 복구되어 이미 막혀버렸습니다. 우리가 복구되는 봉인의 속도를 조금 늦춰 더 많은 마족들과 마물들이 중간계에 나오게 만들 수는 있었지만 결국 닫혀버렸습니다.”

그랬다.

마계의 문인 홀에서는 계속해서 마기가 흘러나오고는 있었지만 처음처럼 투명한 무엇인가로 막혀 있었다.

발크르스 마왕은 그것을 보며 라이안에게로 던졌던 혼돈의 힘이 담긴 구슬을 생각했다.

“혼돈의 구슬이 계속해서 필요할 줄이야. 크르르르, 저 인간이 맞아주지 않았다면 오히려 귀찮을 뻔했군.”

발크르스 마왕은 말을 하면서도 마왕들의 눈치를 살폈다.

‘흥! 너희가 봉인이 복구되는 것을 막을 리 없지. 분명 가만히 쳐다만 보면서 내가 힘을 소진하기를 기다렸다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는가?’

발크르스 마왕은 챠둠의 전함에 박혀 있을 혼돈의 구슬을 찾으려고 다가갔다.

발크르스 마왕이 다가오고 있을 때 챠둠은 다급함을 느끼며 전함 안에 있던 아만다리움 금속으로 이루어진 작은 우주선 몸체를 분리했다.

“어떻게 해서든 주인님만은 구해야만 한다!”

발크르스 마왕의 발아래에는 라이안이 정신을 잃을 채 쓰러져 있었다.

“먼저 이 인간을 죽여야겠지.”

발크르스 마왕의 검지손톱이 날카롭게 길어진다고 느낀 순간 그것은 어느새 칼날과도 같이 변했다.

만약 그 긴 손톱으로 찌른다면 라이안의 몸이 두 동강 나리라.

절체절명의 순간, 때마침 챠둠이 커다란 몸체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순간과 딱 맞아 떨어졌다.

분리되어 나오자마자 챠둠이 그 모습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안 돼!”

발크르스 마왕은 갑자기 하늘에 떠올라 있는 챠둠을 발견하고 움직임을 멈추었지만 곧 다시 자신의 행동을 이행했다.

그때였다.

피이이이잉!

챠둠의 전함 안에서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이 흘러나오더니 그 빛이 발크르스 마왕을 덮치는 것이 아닌가.

“크윽!”

발크르스 마왕은 무엇인가가 자신의 가슴을 때렸다고 느낀 순간 뒤로 몸이 상당히 밀려났다.

“뭐냐? 이 힘은!”

뒤에 있던 마왕들 또한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크게 놀랐다.

“이럴 수가, 일 마왕님을 밀어낼 정도의 힘이라니!”

그리고 곧 발크르스 마왕의 가슴을 강타한 무엇인가가 모습을 나타냈다.

“혼돈의 구슬이!”

발크르스 마왕을 공격한 것은 바로 혼돈의 구슬이었다.

-라이안을… 라이안을 건드리지 마.

무엇인가 사념 같은 것이 주위로 퍼져 나갔고 그곳에 있던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라이안의 창에 있던 칼날이 어떠한 빛에 휩싸이며 부르르 떨었다. 홀로 땅에 떨어져 있던 혼돈의 칼자루 역시 같은 현상을 보였다.

발크르스 마왕은 빛을 뿌리는 세 개의 빛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세 개의 혼돈의 물건.

그것들은 곧 빛이 되어 혼돈의 구슬이 있는 곳으로 쏘아져 갔고 그 빛이 모인 순간 또다시 밝은 빛이 주위로 아니 세계로 뻗어나가는 듯했다.

“크윽!”

“이게 무슨!”

후퇴하던 인두루인 제국의 군사들과 제루이판 왕국의 군사들도 멀리서부터 흘러드는 빛을 보았고 팔로 눈을 가렸다.

“뭐지, 이 빛은?”

“윽, 눈부셔.”

노이스 공작도 그 빛이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 쪽에서 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크포민 공작 또한 그러한 것을 느끼며 빛이 흘러나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곧 그 빛은 빠르게 사라졌다.

“도대체 저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아크포민 공작은 라이안이 반드시 승리하기를 기원하며 자신의 군사들을 이끌고 빠르게 후퇴했다. 아직도 마물들과 전투를 벌이며 후퇴를 하고 있었기에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다.

포스안 제국의 군사들도 갑작스런 빛에 모두 팔로 눈을 가렸고 사천사장인 로빈슨은 라이안을 생각하며 부끄러운 마음을 가졌다.

로빈슨은 파이르 성관과 가시네이스를 보며 말했다.

“그는 아직도 발크르스 마왕과 싸우고 있나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시네이스가 그런 로빈슨을 보며 말했다.

“아마도 그가 발크르스 마왕을 저지하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쯤 도망조차 갈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살아남는다면 우리는 그를 영웅으로 추앙해야 합니다.”

하지만 로빈슨의 말에 파이르 성관이 소리를 치며 반박했다.

“그게 말이나 되는가? 진작 루시 공주를 죽였다면 지금 같은 대륙의 위기는 오지도 않았을 것이거늘!”

발크르스 마왕이 현신했다는 것은 즉 루시 공주가 그것에 이용되었다는 뜻이기에 죽었을 것이라 예상하는 그들이었다.

로빈슨도 파이르 성관의 말이 맞음을 알았지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누가 있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지금 저렇게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으니 그 누구도 그를 욕할 수는 없지요.”

로빈슨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파이르 성관이었고 그는 계속해서 말도 안 된다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에서는 빛이 사라져갔고 세 마왕들은 눈앞에 나타난 무엇인가를 볼 수 있었다.

“검…이라니… 검?!”

“설마! 혼돈의 검, 메르지아란 말인가!”

전설로만 내려오던 카오스의 검 메르지아.

창조주와의 싸움 이후 이곳 세계에 떨어졌으나 그 누구도 발견조차 할 수 없었던 검이 바로 지금 그들의 눈에 나타난 것이다.

“이럴 수가… 저 인간이 가지고 있던 창이 혼돈의 칼날일 줄이야!”

혼돈의 검인 메르지아는 순간 빠르게 라이안에게 다가갔고 곧 라이안의 몸 또한 혼돈의 검과 같은 빛으로 감싸졌다. 그리고 그 순간 빛이 되어 아주 빠르게 포스안 제국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아차!”

발크르스 마왕이 서둘러 혼돈의 검 메르지아가 날아간 방향으로 쫓아갔으나 이미 쫓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다.

혼돈의 검 메르지아가 이미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그 인간을 놓쳐서는 아니 되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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