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장 평화, 그 뒤의 죽음
어느 순간 타미르안의 레어 안에서 밝은 빛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나타나는 세 사람이 있었으니 타미르안이 준 스크롤로 인해 단번에 타미르안의 레어에 도착한 라이안, 그리고 갈천혁과 혁마소였다.
타미르안이 가장 먼저 마나의 흐름을 감지하고 그곳에 나타났다.
“드디어 왔군.”
“왜? 무슨 일 있었어?”
마치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한 말투였다. 이에 라이안이 질문을 던졌으나 타미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을 본 라이안은 정말로 뭔가가 있음을 짐작했다.
“무슨 일인데?”
“그게… 자네 친구 중 루시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상태가 별로 좋지 않더군. 정신적인 문제라 마법으로 어떻게 해볼 수도 없고 말이야. 우선 방으로 가보게. 계속 자네만 찾더군.”
“어느 방이지?”
“오른쪽 복도 끝에서 두 번째 방이네.”
타미르안의 레어에는 약 50여 개의 방이 있었다.
제각기 꾸며진 것이 달랐으며 몇 개의 방은 여러 가지 귀중품이 쌓여 있기도 했다.
라이안은 자신이 가장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깨어났던 방에 루시 공주가 있음을 알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루시, 괜찮아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루시 공주가 눈물을 흘리며 라이안에게 달려와 안겼다.
“라이안! 흐흐흐흑!”
“진정해요, 루시.”
라이안이 달래보려고 했지만 그 또한 이런 일이 많았던 것이 아닌지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루시는 그렇게 한참을 라이안의 품에서 눈물을 흘렸다.
루시 공주가 어느 정도 흥분을 가라앉혔다고 생각한 라이안은 루시 공주의 어깨를 잡으며 헝클어진 머리를 만져주었다.
“이제 진정해요. 제가 왔잖아요.”
루시 공주는 라이안의 말대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눈물을 멈추었다.
그런데…….
루시 공주는 라이안의 몸에 묻어 있는 피를 보며 라이안을 급히 밀어냈다.
“피…….”
루시 공주는 피를 보자 갑자기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제 피가 아니에요. 물론 루시의 피도 아니고요. 진정해요. 이것은 다른 사람의 피예요.”
“전 피가 싫어요… 저로 인해 너무 많은 피가 흘렀어요…….”
“그래요. 이해해요. 루시는 요즘 너무도 많은 것을 겪었어요. 이제는 쉬어야 할 때랍니다.”
라이안은 루시 공주를 안아들고는 침대에 눕혔다.
“이곳은 아주 안전한 곳이에요.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없는 곳이죠. 루시는 안전할 거예요.”
라이안은 루시 공주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이곳은 아주 조용한 곳이죠. 바로 내 친구 타미르안이 사는 곳이거든요. 그는 드래곤이에요. 루시도 드래곤이 얼마나 강한지 알죠? 그러니 아무도 못 와요. 우리만 있을 수 있는 곳이랍니다.”
루시 공주는 라이안의 목소리를 들으며 편안함을 느끼며 서서히 잠들어갔다.
은연중 라이안이 루시 공주의 수혈에 마나를 불어넣어주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미 심력이 상당히 쇠약해진 루시 공주였다.
루시 공주가 잠들었음을 느낀 라이안은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며 중얼거렸다.
“루시, 당신은 내가 지킬 거예요. 영원히… 그대가 생을 마감하는 그 마지막까지…….”
라이안은 차마 히매인 왕국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옷에 묻은 피가 바로 크호른 왕을 시해한 데브릭 공작의 피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복수를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라이안은 루시 공주가 있는 방을 나오며 중얼거렸다.
“이대로 초야에 묻혀 살았으면 좋겠구나…….”
정말 간절한 바람이었다.
잠시 쓸쓸한 표정으로 서 있던 라이안의 앞으로 타미르안이 걸어왔다.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나?”
“응…….”
타미르안이 걷자 라이안 또한 걸었다.
타미르안의 레어 중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온 둘은 가만히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타미르안이 먼저 말을 꺼냈다.
“라이안, 난 자네에게 지금 이 말을 함에 있어서 많이 조심하고 있다네. 그러니 내 말을 듣고 너무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말아주기를 미리 부탁하겠네.”
타미르안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라이안 역시 챠둠과 항상 장난스럽게 지내던 타미르안이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자 정말 중요한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 만한 이야기라는 것도 함께 말이다.
라이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다시 그 숨을 뱉고는 타미르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말해봐.”
타미르안은 라이안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름이 루시라고… 히매인 왕국의 공주이고… 저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네. 그리고 루시 공주가 혼돈의 신녀라는 것도… 어찌할 것인가?”
“지킬 거야.”
“단지 그것뿐인가? 자네는 지금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자세히 모르고 있다네. 난 자네 친구들에게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크게 놀랐네. 지금 인간들을 혼란에 휩싸이게 한 마족들은 평범한 존재들이 아니란 말일세. 그들은 발크르스 휘하에 있는 다섯 마족이며, 다른 마왕들과 필적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네. 그들은 결국 루시 공주를 찾아올 것이야. 내 말 알겠나?”
타미르안은 열변을 토했으나 라이안의 말은 같았다.
“지킬 거야.”
“이보게, 라이안… 그들은 절대 약하지 않다네. 나조차 그들 하나를 막아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네. 루시 공주는 열쇠야. 마계와 중간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루시 공주란 말일세. 자네가 아무리 강할지라도 그들이 찾아온다면 언제까지 그녀를 지켜낼 수만은 없을 것이네. 그러고 나면… 세상은… 이 중간계는 멸망한다네.”
타미르안의 말의 초점은 계속해서 한 가지 결과에 대해 맞춰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것…….
바로 루시 공주를 죽여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이안의 친구들로 하여금 라이안이 루시 공주를 얼마나 소중히 대하는지 들었기에 차마 그러한 말을 입에 담을 수는 없었다.
라이안은 끝까지 타미르안의 눈을 보며 말했다.
“멸망하지 않아. 그럴 일도 없을 거야. 왜냐하면 내가 루시를 지킬 것이니까. 더 강해지겠어. 파황혈천무를 완성하겠어.”
타미르안은 라이안이 말하는 파황혈천무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짐작하기로는 싸우는 데 큰 힘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어쩔 수 없군. 앞으로 그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 나라도 자네 곁에서 자네의 힘이 되어야겠네.”
타미르안의 말에 라이안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타미르안.’
타미르안 역시 그런 라이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너무 정이 많이 들어서일까…….’
그들이 그렇게 말없이 미소를 짓고 있을 때 그들에게 모든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곳에는 라이안의 어머니인 이미화도 같이 있었다.
타미르안이 그들에게 다가가며 라이안에게 말했다.
“자네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네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하는 것은 친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네. 이들은 자네의 가족들이며 친구들이 아닌가? 다 같이 한번 싸워보세.”
“모두들…….”
“이미 이야기는 모두 마쳤네. 그러니 앞으로의 본격적인 수련을 통해 이들을 강하게 만들어야지.”
그렇게 모두가 의미 있는 미소를 지었고 라이안 역시 그들에게 같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먼발치에서 이러한 것을 바라보던 혁마소가 다가오며 타미르안을 살폈다.
갑자기 다가와 고개를 내밀며 자신을 살피는 혁마소로 인해 타미르안은 상당히 거북해했다.
“이 녀석은 상당히 특이한 마나를 가지고 있구나?”
“너는 나를 거북하게 하는군. 몸에서 냄새도 조금 나고.”
“뭐야? 이 애송이가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라이안은 혁마소와 타미르안 사이에 마찰이 생길 듯하자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고 보니 보는 것은 처음이구나… 우선 인사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할아버지, 이쪽은 타미르안이라고 제 친구입니다. 물론 제 친구이기 전에 챠둠의 친구이지요. 그리고 타미르안, 혁마소 할아버지야. 말 그대로 나의 할아버지이시지. 그리고…….”
라이안이 갈천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쪽은 갈천혁 할아버…….”
그렇게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혁마소와 타미르안은 이미 시비가 붙고 있었다.
“깡통의 친구여서 그런지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더라니…….”
타미르안은 자신을 우습게 보는 듯한 혁마소의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혁 인간, 그러다가 다치는 수가 있다. 말조심하도록.”
“조심 안 하면? 한번 붙기라도 하자는 것인가?”
혁마소의 말에 타미르안이 라이안을 보며 말했다.
“라이안, 난 자네가 존중하기는 하나 자네의 할아버지에게까지 마찬가지로 적용시킬 수는 없다네. 챠둠을 친구로 둔 내가 자네 역시 친구로 대하듯 말일세.”
라이안도 타미르안의 말대로 그러기는 힘들 듯했다.
그리고 살아온 나이로만 봐도 타미르안이 월등히 많지 않은가?
“어쩔 수 없군요. 그렇다면 두 분의 호칭문제는 두 분이서 알아서 하세요. 됐죠?”
혁마소가 타미르안을 보며 웃었다.
“크흐흐, 밖으로 따라 나오너라. 오늘 너에게 예의란 무엇인지 가르쳐주마.”
“후후후, 인간이라는 족속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가르쳐주지. 물론 라이안만 빼고 말이야.”
그렇게 서로 눈에서 스파크를 튀기던 그들에게 라이안이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어 알려주었다.
“혁 할아버지, 타미르안은 드래곤이에요. 그것도 아주 강한 드래곤이죠. 전에 만난 드래곤들은 새끼 드래곤들이었으니 그들과 같이 보시면 큰 코 다치실 거예요! 그리고 타미르안, 혁 할아버지를 얕보면 안 될 거야. 혁 할아버지는 나와 비슷한 경지에 계신 분이시거든.”
라이안의 말에 그들은 서로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지난번 만났던 드래곤이 새끼였을 뿐이라… 그렇다면 상당히 강하겠군.’
‘라이안과 비슷한 경지라… 만만치 않겠어.’
서로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공통된 생각이 있었으니, 바로 싸워보면 알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나가자 라이안은 갈천혁을 바라봤다.
“갈 할아버지는 타미르안하고 안 싸우실 거죠?”
“허허허, 난 어린 아이가 아니란다. 난 그와 한번 잘 지내볼 생각이란다.”
그렇게 웃으며 걸어 나가는 갈천혁이었다.
물론 혁마소와 타미르안이 어떻게 싸우는지 싸움 구경을 하러가는 것이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며 따라 나갔다.
혼자 남겨진 라이안도 살며시 피식 웃은 뒤 그들을 따라 나갔다.
타미르안과 혁마소의 결투는 끝끝내 무승부로 종결되었다.
타미르안은 결국 폴리모프를 풀어 본래의 모습으로 현신해야 했으며 혁마소 또한 연속적으로 날아오는 마법들에 옷이 모두 찢어져 거지꼴이 되었다.
끝까지 싸운 그들이었으나 목숨을 건 것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에서 선을 그어야 했다.
“내가 심검을 펼쳤다면 너의 드래곤하트 또한 내 것 되었을 것이다.”
“웃기지 마라, 혁 인간. 브레스 한 방이면 넌 이미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결국 누가 높고 낮음을 가리지 못했으며 친구도 되지 않았다.
마치 챠둠과 혁마소의 관계와 비슷했다.
다음날부터 수련을 시작하는 라이안과 그의 친구들은 앞으로 다가올 암흑의 시대에 대비했다.
그들이 그렇게 수련을 시작하고자 마음먹고 있을 그 시각 다른 장소에서는…….
혼돈의 칼자루를 이용해 혼돈의 신녀를 찾고자 하던 세 마족들은 결국 에드코르 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히매인 왕국과 포스안 제국 가운데 에드코르 제국이 있으니 혼돈의 신녀가 있는 방향을 쫓던 그들이 이곳에 온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세 마족은 치카를 보며 지금까지의 정황을 모두 이야기 했다.
치카는 포스안 제국에서 베이모스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슬퍼하지도 않았다.
마족에게 정이라는 것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치카는 그 누구에게도 정이 없었다.
치카는 혼돈의 칼자루를 만지며 신기해했다.
“이것이 혼돈의 신녀가 있는 위치를 가르쳐준다는 것이지?”
치카의 말에 칸드가 대답했다.
“우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까지만 해도 히매인 왕국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던 것이 또 방향을 바꾸었다. 칸보리치 동맹쪽으로.”
“그렇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 때나 방향을 바꾸니 그 혼돈의 칼자루가 가리키는 방향에 정말로 혼돈의 신녀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치카의 말에 칸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있음은 우리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혼돈의 신녀가 어떤 커다란 힘에 의해 위치를 옮기고 다닌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치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커다란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지?”
칸드는 자신 있게 말했다.
“드래곤이다.”
“드래곤?”
“그렇다. 우리가 있는 포스안 제국에서 이곳 에드코르 제국의 중앙 이상은 평범한 인간이 텔레포트를 할 수 없다. 가시네이스라는 인간 외에는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가 없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답은 하나이다. 드래곤이 혼돈의 신녀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
“흠…….”
그들이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오리닌 황제가 마족들이 도착했음을 알고 급히 달려왔다.
여러 국가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에드코르 제국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오리닌 황제로서도 엉덩이에 불이 붙을 만했다.
“이제 돌아왔는가? 그래, 어찌 되었는가? 혼돈의 신녀는 찾았는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에 혹시나 혼돈의 신녀를 찾아다닌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오리닌 황제였다.
하지만 마족들로부터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혼돈의 칼자루는 손에 넣었으나 혼돈의 신녀는 아직 행방이 묘연하다.”
칸드의 침착한 말투에 오리닌 황제는 크게 화를 냈다.
“지금 그게 말이라고 하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망하기 직전이란 말이다!”
“조금만 더 버텨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언제란 말인가!”
“시끄럽군.”
“뭐, 뭣이! 이잇!”
오리닌 황제는 크게 흥분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마족들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너희는 내 명령을 따라야 한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 혼돈의 신녀를 잡아와! 알았나!”
칸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다.”
오리닌 황제는 오리려 칸드의 그런 말투에 더 화가 났다.
“빌어먹을 마족들 같으니…….”
오리닌 황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치카가 그런 오리닌 황제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이제 죽여 버려도 되지 않나?”
지금이라도 손을 쓰고 싶은 치카였다.
그런 치카의 말에 칸드가 치카의 앞에 서며 말했다.
“아직. 혼돈의 신녀를 찾을 때까지는 필요한 인간이다.”
“쳇, 알았어. 그건 그렇고 언제 출발하지?”
“지금.”
* * *
약 열흘의 시간이 지났다.
타미르안의 레어 안은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헤인드와 디로안의 대련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들 만큼 격렬했다.
텅!
터덩!
파지지직!
그들의 검에서는 이미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오러블레이드가 넘실거렸다. 그리고 오러블레이드끼리 부딪칠 때마다 무엇인가가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로의 오러블레이드가 서로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아주 조금만 덜 피했어도 목이 날아가고 팔이 날아갈 아찔한 순간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수련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격렬한 대련을 하고 있을 때 혁마소가 멀리서 소리쳤다.
“검을 무서워해서야 어찌 적과 검을 맞대고 싸울 수 있겠느냐! 검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면 죽을 일도 없거니와 검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좀 더 똑바로 하지 못할까!”
핏!
순간 디로안의 오러블레이드 날이 헤인드의 볼을 스치자 헤인드의 볼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이것이 익숙한 듯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이미 예전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빠르면서도 강했으며 또한 부드러웠다.
혁마소가 본격적인 가르침을 주기 시작하자 이들의 경지는 날로 늘어갔다. 혁마소가 이들에게 상승무학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깨달음을 깨우칠 때마다 한 경지가 올라가고 있었으니 얼마 후면 마스터급을 벗어날지도 몰랐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즈리스 남작과 라드이라가 맞붙고 있었다.
라드이라가 항마칠검의 일초를 시전했다.
“마천참광유!”
상대를 아래에서 베어간 후 그 탄력을 이용해 섬광과도 같은 일검을 날리는 초식이었지만 그것은 이즈리스 남작의 검에 막혀버렸다.
“뇌력검! 사초! 낙뢰!”
이즈리스 남작의 검은 번개와도 같았다.
순식간에 라드이라의 검을 막아낸 이즈리스 남작은 검은 이미 하나의 번개와도 같았다.
그 번개는 순식간에 라드이라의 몸을 뚫을 듯 공격해왔다.
“뇌력검! 오초! 뇌력충전!”
“크윽!”
라드이라는 다급함을 느끼며 급히 몸을 틀었다.
하지만 이즈리스 남작의 번개는 끝까지 라드이라를 쫓아가려는 듯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라드이라 역시 끝까지 피해 다닐 수는 없어 허공에 하나의 꽃을 그려갔다.
이즈리스 남작의 번개가 꽃의 중앙에 다다랐을 때 꽃을 가르는 섬광이 있었다. 그리고 곧 그 섬광과 함께 커다란 파공음이 들려왔다.
퍼벙!
“크윽!”
“크윽!”
취이이이익.
취이이이익.
둘은 서로 뒤로 튕겨져 나갔고 이즈리스 남작의 번개는 사라졌다.
그들의 격돌은 파공음만큼이나 컸기에 그들이 밀려난 거리도 상당했다.
둘은 다시 거리를 좁히더니 서로의 대한 예의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것은 갈천혁이 항상 상대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말라는 의미에서 가르친 예의였다.
갈천혁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의 실력이 갈수록 일취월장하는구나.”
“다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허허허, 지쳤을 텐데 어서 운기조식을 취하거라.”
“알겠습니다.”
운기조식을 하려던 그들은 각자 하나의 주머니를 가지고 왔다. 그러고는 곧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즈리스 남작과 라드이라는 각자 자신의 주머니에서 반으로 쪼개어진 붉은 물체를 꺼내 두 손으로 그것을 잡고는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전 레드드래곤의 드래곤하트였다.
이들이 이토록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드래곤하트의 효능이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모두 부작용 없는 천고의 영약을 매일 먹고 있는 것과 같았으니 발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었다.
그리고 타미르안의 레어 중 챠둠의 전함이 만들어진 곳은 현재 라이안의 수련 장소가 되어 있었다.
물론 챠둠의 전함은 모두 완성되었다. 챠둠은 많은 인공위성을 만들며 이 대륙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찰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라이안은 현재 어떠한 기계실 같은 곳 안에 갇혀 있었다.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밖에서 누군가 열어주기 전까지 나올 수 없는 장치가 되어 있었다.
자력으로 나가려면 그곳을 파괴해야 했다.
라이안은 조용한 가운데 명상에 잠겨 있었다.
며칠 전 챠둠으로부터 우주의 삼라만상에 대한 깨달음과 이치에 대해 지식을 주입받은 이후로는 이러한 명상만을 계속해야 했다.
명상을 통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명상만 한 지도 벌써 오일 째인 라이안은 조용히 눈을 떴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챠둠이 만들어준 검을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챠둠이 만들어준 검은 묵빛이었으나 차차 붉은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본래 검강을 시전하면 금광이 나타나던 라이안이었으나 이상하게도 파황혈천무를 시전하면 붉은 강기가 솟았다.
라이안이 검을 느릿하게 움직이자 검 주위로 붉은 가루들이 떨어지는 듯 반짝였다.
그 반짝임은 곧 라이안이 들고 있는 검으로 몰려들었고 오러블레이드를 형성시켰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오러블레이드와는 달리, 마치 라이안이 들고 있는 검 위로 수정이 덧씌워진 모습과 같았다.
라이안이 차차 춤을 추기 시작했다.
느릿하던 그의 손이 이미 사라져 다른 방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여러 번 한자리를 지나가는 것이 너무 빨라서 오히려 느리게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라이안의 검에서 곧 가는 실과도 같은 것이 뻗어 나왔다.
그 실은 곧 숫자를 더하며 늘어갔다.
치지지직!
라이안의 검으로부터 나온 붉은 실들은 라이안이 있는 곳 벽에 부딪치며 강한 스파크를 만들어냈다.
라이안이 이곳 세계로 넘어오기 전에 들어섰던 경지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라이안은 여기서 좀 더 강해져야 했다.
그의 눈에서도 핏빛 혈광이 흘렀다. 그리고 들고 있던 검에서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실과도 같은 붉은 강기가 하나로 뭉쳐지는 것이 아닌가?
라이안은 검을 움직여 붉은 강기를 조정했다.
붉은 강기는 라이안의 뜻대로 움직였다. 마치 채찍과도 같았으나 라이안은 다른 무엇인가가 가능함을 느꼈다.
그리고…….
강하게 검을 앞으로 찌른 순간!
붉은 강기가 세 가닥으로 나누어지며 찔러지는 것이 아닌가?
다른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아직 파황혈천무는 만들어지기만 했을 뿐 어떠한 무공인지는 갈천혁도 혁마소도 몰랐다. 심지어 챠둠조차 어떠한 무공이 될지 모르고 있었다. 단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설 만한 무공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강기는 라이안의 몸 앞에서 멈추었다.
라이안은 강기가 부채처럼 펴지길 원했다.
파밧!
단지 생각만 했을 뿐인데 정말로 붉은 강기가 얇게 펴졌다.
“의지력인가… 파황혈천무 5성의 경지는 의지력이로군. 강기의 흐름 하나하나를 나의 의지대로 조정할 수 있다라… 역시 대단해…….”
라이안은 검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의지력으로 붉은 강기가 길어지도록 만들었다.
치직!
파캉!
“후훗, 역시…….”
챠둠은 라이안이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서 파황혈천무 4성 이상의 힘을 쏟아야만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놓았었다.
그런데 지금 라이안이 그것을 파괴하고 밖으로 나오고자 첫 시도를 했다.
곧 강기가 펴지길 원하자 그가 충분히 나갈 수 있을 만큼의 통로가 만들어졌다.
갇혀있던 곳을 나가며 라이안은 곰곰이 생각했다.
“잘하면 허공에서도 강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그리고 그 수가 많아진다면 하나의 강한 공격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이안은 더 이상 파황혈천무에 있어 형태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욱 발전을 하고자 한다면 좀 더 창조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라이안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그토록 기대했던 경지를 드디어 이룬 것이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라이안은 며칠 만에 루시 공주를 만나러 가고자 했다.
루시 공주는 이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에나는 타미르안으로부터 마법을 전수받고 있어 바빴기에 루시 공주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은 라이안의 어머니인 미화밖에 없었다.
라이안은 루시 공주가 있는 방으로 가서 노크를 하려고 손을 들었다가 곧 그만두었다. 그녀가 안에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지? 타미르안, 에나…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의 마나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다니… 이 또한 높아진 경지의 효능인가?”
이전에도 이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집중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달랐다.
지금은 굳이 집중을 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루시 공주와 자신의 어머니인 미화가 부엌에 있는 것을 안 라이안이 그곳으로 이동했다.
“루시, 여기 있었네요?”
“아, 라이안, 수련은 끝난 건가요? 며칠 동안 그 안에만 있었는데 배는 안 고파요?”
미화역시 라이안에게 묻고 싶은 말이었으나 이미 루시 공주가 말했기에 살짝 웃으며 라이안의 대답을 기다렸다.
“흠… 뭐 맛있는 것 좀 있을까요?”
자리에 앉으며 거만한 척을 하는 라이안에게 루시 공주가 손가락을 들며 말했다.
“어머! 그것은 음식을 받아먹는 사람의 태도가 아닌데요? 너무 불순해욧.”
“하하하, 그랬어요? 미안해요. 배가 너무 많이 고파서 그런데 맛있는 것 좀 만들어줄래요?”
“원하신다면.”
“하하하하.”
“호호호호.”
라이안은 밝아진 루시 공주를 보며 너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루시 공주가 모든 것을 다 극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밝아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히매인 왕국에 대한 말을 꺼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라이안이었다.
인간들이 이곳을 쳐들어올 일은 절대 없었으니 마족들로부터만 루시 공주를 보호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강해진 자신의 힘에 조금은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라이안이 한 단계 성장했을 무렵 마족들은 혼돈의 칼자루가 가리키는 방향을 찾아 칸보리치 동맹의 프리마메다 왕국에 도착해 있었다.
“이곳이 확실한가?”
치카의 물음에 펠랜이 자신의 손가락 위에 혼돈의 칼자루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방향은 바뀌지 않았어. 이쪽이 분명해.”
“그쪽이 맞는다면 조금 골치 아프겠군.”
치카의 말에 칸드가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치카?”
“그래, 에드코르 제국에서 너희가 말했던 것이 드래곤이 개입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지?”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가려는 곳은 드래곤들 중에서 두 번째로 강한 골드드래곤이 있는 곳이야. 에이션트급의 드래곤.”
“6천 살 이상의 드래곤이 상당히 강하긴 하지. 하지만 치카,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평범하게 소환되지 않아 상당량의 힘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가?”
“그렇기는 하지만 왠지 부담스러운 놈이야.”
“드래곤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우리 중 둘이면 충분히 그 드래곤의 껍데기를 벗겨낼 수 있다. 그러니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바테르의 말에 치카가 두 손을 양 옆으로 들며 말했다.
“누가 뭐래? 가보자고.”
챠둠의 전함은 늘 타미르안의 레어 위에 떠 있었다.
라이안은 타미르안의 레어 위에서 하늘을 보며 말했다.
“챠둠, 지금 대륙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지?”
“현재 포스안 제국이 에드코르 제국의 일정량의 땅을 점령하는 했으나 그것은 포스안 제국뿐입니다. 인두루인 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오히려 몬스터 군대로 인해 그 힘이 밀려가고 있습니다. 인두루인 제국도 겨우 유지만 가능한 듯합니다. 포스안 제국만이 월등히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그들이 신성력을 사용해서라고 판단됩니다.”
“하긴, 마력으로 움직이는 몬스터라면 신성력이 독이겠지. 포스안 제국에 갔을 때 내 신성력도 뭔지 알아보고 올 것을… 지금은 안 해주겠지?”
“나무에 매달아 불태워 죽이지 않으면 다행일 것입니다.”
“마녀사냥 같이? 하하하, 그건 그렇고 마족들이 나타난 흐름은 못 찾았어?”
“인공위성으로는 그러한 움직임을 찾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벌레와 같은 로봇들을 많이 만들 예정입니다. 어디서든 사람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그래, 전 대륙에 벌레 로봇을 퍼트린다면 마족들이 있는 곳과 그들이 하는 대화도 들을 수 있겠지. 그들이 우리를 찾지 못하게 할 수도 있겠고.”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무슨 말이야?”
“초분자광선포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아, 이곳의 금속으로는 그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초분자광선포 자체를 사용할 수 없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라이안은 누웠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에구…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하냐? 아만다리움 금속이 증식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말이야.”
라이안이 그렇게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을 그때였다!
챠둠으로부터 경고의 말이 들려왔다.
“주인님, 이곳 산 아래로부터 침입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음? 몬스터가 아니고?”
“레이져 빔으로 공격해보았으나 적이 너무도 빠릅니다. 오히려 로봇이 격추됐습니다.”
“젠장, 설마 마족인가?”
“그것은 알 수 없으나 숫자는 셋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혼돈의 물건이 루시가 이곳에 있음을 가르쳐주었나 보군. 빌어먹을. 자리를 옮겨 다녔어야 했어.”
라이안은 서둘러 레어 안으로 텔레포트했다. 그리고 타미르안을 찾았다.
“타미르안! 침입자가 있어! 아마도 마족인 것 같아.”
타미르안 역시 라이안의 말을 들으며 인상을 굳혔다.
“너무 빠르군. 그들의 숫자는 알고 있는가?”
“챠둠이 셋이라고 알려줬어.”
“우선 그자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없네. 일대일도 어려울지도 몰라. 갈천혁과 혁 인간을 같이 데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혁마소의 이름을 끝까지 ‘혁 인간’이라고 말하는 타미르안이었다.
“아니야, 한 사람은 루시 공주를 지켜야해. 셋이 가는 것이 좋겠어.”
“알겠네.”
타미르안이 급히 라이안을 잡고는 갈천혁과 혁마소가 있는 곳으로 텔레포트했다.
갑자기 나타난 라이안이 급하게 갈천혁과 혁마소를 불렀다.
“할아버지, 마족들이 나타났어요. 혁 할아버지는 루시 공주를 지켜주시고 갈 할아버지는 저와 같이 마족들을 막으러 가야겠어요.”
“알겠다. 어서 가자꾸나.”
타미르안이 텔레포트를 하려다가 잠시 멈추고 혁마소에게 한마디 했다.
“혁 인간, 똑바로 지켜라. 텔레포트!”
“이 노랑머리 놈이!”
뭐라고 욕을 하고 싶었지만 벌써 사라지고 난 후였기에 화를 풀 대상이 없는 혁마소였다.
그때 헤인드가 혁마소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무슨 일이죠?”
퍽!
“크헉!”
“모른다, 이놈아!”
혁마소가 헤인드의 뒷머리를 때리더니 곧 루시 공주가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이유도 모르고 날벼락을 맞은 헤인드는 아픈 머리를 만지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칸드와 펠랜, 그리고 바테르는 로봇들이 레이져를 쏘며 공격해오자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신기한 물건이군. 이것들은 드래곤이 만든 것인가?”
로봇들 하나하나를 부수며 산을 올라오는 그들은 곧 한곳에서 마나가 모여드는 것을 느끼며 경계했다.
파밧!
마족들은 당연히 드래곤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곳에서 라이안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펠랜과 바테르였다.
“어! 저 인간은 라이안이라는 스피어마스터잖아?”
칸드가 펠랜의 말을 들으며 라이안을 보고는 다시 되물었다.
“저자가 확실한가?”
“그렇다니까?”
“후후후, 이곳에 와서 두 가지 임무를 모두 완수하게 되겠군. 발크르스 마왕님께서 기뻐하시겠어.”
라이안 또한 나타나자마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그들을 보며 대화 내용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랐으나 그들이 발크르스 마왕이라는 말을 하자 확실히 눈앞에 있는 자들이 마족들임을 알아봤다.
“너희는 마족들인가?”
“그렇다. 이전에는 잘도 빠져나갔더군. 하지만 그 운도 오늘로 다했으니 불쌍하군.”
“그 운이 사라진 것이 누구인지는… 두고 봐야지.”
칸드는 라이안의 말투를 들으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인간, 너무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나? 지금 그 옆에 있는 드래곤이 너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난, 내 힘을 믿을 뿐이다.”
라이안이 서서히 허공으로 떠오르자 칸드가 놀라워했다.
“부유력을 갖춘 인간이라… 제법이군.”
칸드 역시 라이안을 따라 허공으로 떠올랐다.
“나와 정면 대결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어서 너를 죽이고 다른 녀석들도 죽여야지.”
“하하하, 정말 재미있는 인간이로군.”
“과연 그럴까?”
사삭!
퍽!
“크헉!”
순식간에 라이안의 몸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칸드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리고 곧 고개를 바로 하는 그의 코로 검은 피가 흘렀다.
“뭐지, 지금 네가 한 것인가?”
“그럼 여기에 누가 또 있겠어?”
“흠… 보통 인간이 아님은 인정하지. 하지만 전투 형태로 돌아간 나라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투두둑!
투둑! 툭!
투두두둑!
칸드의 몸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투 상태로 변신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의 변신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중간계로 넘어와 두 번째로 변신하는 칸드였다.
깔끔한 이미지에 검은 새의 날개를 가진 칸드는 자신의 날개를 펴며 라이안을 노려봤다.
“후회하게 될 것이다.”
“말이 많군.”
칸드가 자신의 한쪽 다리에서 날카로운 검과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다른 사람이라면 사라졌다고 생각했겠지만 라이안의 눈에는 칸드의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그리고 어느새 등 뒤에 있던 창을 오른 손에 쥔 라이안이 허공을 막았다.
창! 창!
차장!
칸드는 빠르게 움직이며 라이안을 공격했다. 그러나 라이안은 조금씩 뒤로 가며 너무도 여유롭게 그 공격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펠랜과 바테르는 그런 라이안을 보며 황당해했다.
“저 인간이 저렇게 강했어?”
“대단하군. 그때는 단지 인간치고 조금 강한 상태밖에 되지 않았거늘…….”
펠랜과 바테르는 라이안이 칸드와 대등하게 싸우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타미르안 역시 라이안을 보며 뭔가 더욱 커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내가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군.’
이전에는 밀리기는 했지만 싸울 만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타미르안은 라이안과 자신이 싸울 경우 순식간에 승부가 나버릴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한 생각을 하던 타미르안은 마족들을 보며 폴리모프를 해제했다.
곧 타미르안의 몸에서 골드드래곤 특유의 금빛이 흘러나오더니 그 크기가 늘어났다. 그리고 빛이 번뜩인 순간 타미르안이 현신한 모습이 나타났다.
타미르안이 싸우기도 전에 현신한 이유는 전력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마족들의 능력을 견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펠랜과 바테르 역시 마족 특유의 전투 형태로 변신했다.
갈천혁은 그들을 보며 처음과 다르게 생각했다.
‘이것이 마족이로구나. 마치 지옥 속의 악귀가 튀어나온 듯하구나.’
갈천혁은 혁마소 이후로 전력을 다해 싸울 수 있는 존재가 눈앞에 있음을 느꼈다.
그런데…….
그들이 루시 공주를 지키기 위해 마족을 막고 있을 때 타미르안의 레어로 들어오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그 그림자는 빛의 그늘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며 이동해갔고 가끔씩 한곳에 머무르기도 했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혁마소는 루시 공주와 함께 그녀의 방에 있었다.
헤인드와 디로안,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다 같이 루시 공주를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혁마소가 끝까지 그것을 말렸다. 자신이 지킬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도 지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루시 공주는 조금 두려운 듯 침대 위에 쭈그려 앉아 이불을 덮어 쓰고 머리만 내놓고 있었다.
혁마소는 그녀의 침대 아래에서 조용히 명상에 잠긴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챠둠의 센서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온도를 감시하는 센서 역시 그랬고 레어 내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에도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챠둠은 잠시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카메라에 찍힌 한 부분의 그림자가 살짝 일렁이는 것이 포착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계속된 반복 재생으로 그것을 확인하려 애쓸 뿐이었다.
그림자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는 검은 그림자는 곧 하나의 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
바로 루시 공주와 혁마소가 있는 방이었다.
검은 그림자는 서서히 문 아래를 통해 방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침대 위에 있던 루시 공주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는 가운데 혁마소가 눈을 감은 채 한마디 했다.
“어두우면서도 사악한 기운이로구나. 아무리 어둠에서 살아가는 자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반드시 악할 필요는 없는 것이거늘…….”
혁마소의 말에 검은 그림자가 움직임을 살짝 멈추었다.
루시 공주 또한 혁마소의 말을 들으며 왠지 방 안에 무엇인가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혁마소가 번개 같이 움직이며 검은 그림자에 칼을 꽂아 넣었다.
“나오너라! 이 사악한 놈아!”
스팟!
순간 그림자를 통해 무엇인가가 혁마소의 검을 피하며 그림자에서 뛰쳐나왔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존재는 바로 치카였다.
치카의 한쪽 팔에서는 검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혁마소의 검이 스친 듯했다.
“보통 인간이 아니로군. 내 몸에 상처를 입히다니.”
“네놈 역시 보통 놈은 아니지 않느냐?”
“후후후, 그렇기는 하지. 이봐, 인간. 거래를 하는 것이 어떻겠나? 그녀를 나에게 넘기면 네 목숨을 살려주는 것으로 하지. 어때?”
“미친놈이로구나. 이곳에서 당장 꺼지거라. 그럼 내, 너의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살려주겠다고 해도 죽겠다고 하는 인간들이 의외로 많기는 하지.”
“갈!”
약간의 사자후 섞인 커다란 일갈이었다.
치카는 순간 혁마소가 미쳤나 생각하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차! 이 인간이 동료를 부르는 것이었구나!’
이에 마음이 급해진 치카였다.
“빌어먹을 인간!”
치카가 자신의 손톱을 세우며 혁마소를 공격해갔다.
혁마소는 검을 들어 치카의 공격을 막아내고는 천마삼검을 펼쳤다.
“천마현신! 섬!”
“크윽!”
치카의 손톱 몇 개가 잘려나갔다.
치카는 마치 자신의 살이라도 베인 것처럼 고통스러워했다.
루시 공주는 혁마소와 치카가 싸우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루시 공주가 순간 침대를 돌아 피하려고 하는 그때였다.
혁마소는 루시 공주의 비명을 들었다.
이에 그녀를 걱정하는 혁마소는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루시 공주가 검은 그림자와도 같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혁마소는 급한 마음에 루시에게 달려들었으나 그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치카였다.
푸욱!
그의 날카로운 손톱이 혁마소의 가슴을 뚫고 나온 것이었다.
“끄윽! 이 잡것이!”
파앗!
치카가 손톱을 뽑자 혁마소의 등으로부터 많은 피가 흘러나왔다.
혁마소가 분노에 휩싸여 치카를 공격하려고 할 때 치카는 루시 공주를 삼킨 검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검은 그림자는 문틈을 향해 도망쳤다.
“커억! 이런 실수를 하다니…….”
밖에서 여유롭게 칸드를 상대하던 라이안은 혁마소가 갈이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설마!”
마음이 급해진 라이안은 서둘러 타미르안의 레어로 날아가려고 했으나 그 순간 칸드의 예리한 공격이 들어왔다.
창! 차장!
갑자기 강해진 공격을 받은 라이안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지금까지 전력을 다해 싸운 것이 아니었군. 교활한 것들!”
“크하하, 우리가 교활한 것이 아니라 너희가 멍청한 것이다!”
칸드의 집요한 방해에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라이안이었다.
라이안은 순간 의지력을 사용하고자 했다.
칸드가 공격해오자 라이안이 의지력을 발동하여 강기로 하여금 칸드의 공격을 막아내도록 만들었다.
카강!
“크윽!”
갑자기 너무도 강해진 라이안의 힘에 칸드가 놀라워하고 있을 때였다. 하나의 강기가 몇 개로 늘어나며 순식간에 칸드를 덮쳐갔다.
“이런!”
푹!
“끄악!”
몇 개의 강기는 피했으나 하나의 강기가 칸드의 어깨를 뚫었다. 칸드는 고통스러워하며 서둘러 뒤로 피했다.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내 능력 중 하나다!”
라이안은 순간 칸드에게 날아들며 몇 줄기의 강기로 칸드를 공격해갔다.
칸드가 잠시 놀라 뒤로 피한 그 순간!
라이안이 그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텔레포트!”
“이런! 치카가 성공했으려나?”
순식간에 루시 공주와 혁마소가 있던 방에 도착한 라이안은 가슴에 상처를 입은 혁마소를 보았다.
“할아버지!”
“라이안아, 미안하구나. 쿨럭! 쿨럭! 내가… 내가 지키지 못했어…….”
“말씀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라이안은 서둘러 챠둠의 전함 안으로 텔레포트했다. 그러고는 수술대 같은 곳에 혁마소를 눕히며 소리쳤다.
“챠둠, 어서 수술 준비해!”
“이미 준비해놓았습니다.”
순간 하나의 유리관이 혁마소를 덮었고 푸른색의 액체들이 그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혁마소를 걱정하는 라이안의 귀로 챠둠의 음성이 들려왔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어서 루시 공주를 찾으십시오.”
라이안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타미르안의 레어로 다시 텔레포트했다.
그곳에는 이미 조금의 상처를 입은 갈천혁과 별달리 상처가 없는 타미르안이 있었다.
“마족들은?!”
“그냥 도망치더군. 루시 공주와 혁 인간은 어디 있는가?”
타미르안의 말을 들은 라이안은 좌절에 빠졌다.
“루시가… 루시가 잡혀 갔어…….”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은가?”
라이안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눈을 감으며 모든 것을 느끼고자 했다.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루시의 마나를 느껴야해… 제발…….’
라이안은 식은땀까지 흘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어디… 어디야?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그 순간 작은 불빛이 보였다. 라이안은 감았던 눈을 번개처럼 떴다.
“찾았다!”
그는 곧바로 초광속을 시전하며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갈천혁 역시 그런 라이안을 따라 초광속을 시전하며 뒤따랐다.
도망치는 마족들의 속도는 라이안의 초광속만큼이나 빨랐다.
“칸드, 괜찮아?”
펠랜이 칸드의 상처를 보며 물었다. 이에 칸드는 간단히 대답했다.
“견딜 만하다.”
치카가 칸드의 상처를 보며 물었다.
“그 인간이 그렇게 강했나? 네가 그렇게 될 만큼?”
“강하기도 했지만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더군.”
“그래? 난 그런 능력으로 하나 죽였는데. 큭큭큭, 혼돈의 신녀가 잡히자마자 크게 당황하더군. 그 순간 뒤를 공격했지.”
치카의 말을 듣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칸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멀리서 두 개의 불빛이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정말 특이한 인간들이군. 인간 같지 않게 강하거니와 우리를 찾아내는 능력 또한 대단하군.”
“끈질기군.”
방향을 잡기는 했으나 루시 공주의 마나가 너무 미약하게 느껴졌기에 이내 라이안은 루시 공주가 있는 방향을 잊어버렸었다.
그러나 곧바로 챠둠에게서 연락이 왔다. 덕분에 인공위성을 통해 마족들이 이동하는 경로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추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마족들이 알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마족들이 빠르게 도주하기는 했으나 속도에 있어서는 라이안과 갈천혁의 초광속이 훨씬 앞섰기에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당장 루시를 내놔!”
거의 따라잡힌 마족들은 어찌할 것인지 의논했다.
“둘은 제단으로 혼돈의 신녀를 데려가고 둘은 저들을 막는 것이 어떤가?”
바테르의 말에 치카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필요 없어.”
치카의 말에 칸드가 물었다.
“그럼 무슨 방법이 있는가?”
“너희는 왜 혼돈의 신녀가 필요한 것인지 정확히 모르지?”
“발크르스 마왕님께서는 혼돈의 신녀만 찾으면 된다고 하셨다.”
치카가 고개를 끄덕였다가 도로 흔들었다.
“맞아, 그런데 맞으면서도 틀렸어.”
“말장난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확실히 말하라.”
“좋아, 말해주지. 중간계와 마계의 문을 여는 데는 혼돈의 신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심장 안에 있는 혼돈의 옥석이 필요한 거야. 그 옥석 안에 혼돈의 힘이 잠들어 있는 것이지.”
“어차피 죽는다는 것이군. 그것과 저들을 저지시키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는가?”
“인간들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무엇인가가 죽으면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게 되거든?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것만 가져가면 돼. 그리고 저자에게는 저자가 필요한 것을 주면 된다는 말이지.”
“효과가 있을까?”
낮은 어조로 말한 바테르는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족들은 곧 도망치는 것을 멈추고 라이안과 갈천혁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라이안은 크게 흥분된 상태였다.
“그녀를 돌려줘!”
혼절한 루시 공주를 들고 있던 치카가 라이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돌려주지. 대신 돌려주고 나면 우리를 쫓지 않는 거다?”
“좋다. 약속은 지키지.”
“후훗, 그래. 그런데 있잖아… 약속을 지키는 데에는 필요한 조건이라는 것이 있는 거야. 바로 이렇게!”
치카는 한 손으로 루시 공주의 목을 잡고 한 손에는 손톱을 세웠다.
“뭐하는 거야! 안 돼!”
푸화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루시 공주의 가슴을 뚫고 나온 치카의 손에는 루시 공주의 심장이 들려 있었다.
루시 공주의 심장은 강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커억!”
커다란 고통에 정신을 차린 루시 공주는 자신의 가슴으로 뚫고 나온 피 묻은 손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라이안…….”
라이안은 한 단어만 계속 중얼거렸다.
“안 돼… 안 돼… 안 돼…….”
루시 공주가 남은 힘을 다해 마지막 한마디를 했다.
“사랑해요…….”
치카는 루시 공주의 몸을 먼 곳으로 던졌다.
라이안은 그렇게 떨어지는 루시 공주를 빠르게 움직여 잡아냈다.
“이러면 안 돼… 흐흐흑… 루시, 이대로 가지 말아요… 제발… 제발… 흐흐흐흑…….”
루시 공주의 몸은 라이안의 품에서 서서히 식어갔다. 하지만 라이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갈천혁 역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라이안은 강하게 끌어안고 있던 떨리는 손을 잠시 풀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루시… 으아아아아아아!”
<7권에 계속>
7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