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돈의 라이안-45화 (44/57)

제45장 처단

히매인 왕국 왕성에 있는 데브릭 공작은 정보를 담당하는 브로넌 백작을 급히 불렀다. 이에 브로넌 백작이 데브릭 공작의 집무실을 찾았다.

똑똑똑.

“브로넌 백작님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라 이르게.”

딱칵.

곧 문이 열리며 하얀 수염에 덩치가 좋은 브로넌 백작이 안으로 들어와 데브릭 공작에게 인사했다.

“부르셨습니까?”

“그렇소, 루시 공주에 대한 소식은 어찌 되었소?”

“아직 들어온 소식이 없습니다. 포스안 제국에서 사라지고 난 후 그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허… 시간을 너무 오래 끌어간다면 이곳을 탈출한 와이파른 후작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거늘… 그래, 그들의 동태는 어떤가?”

“대대적으로 군사를 모으고 있는 듯합니다. 국왕파 귀족들이 인질로 잡혀 있어 그들의 영지에서는 병력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들이 병력을 내어준다면 인질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런데…….”

“뭔가 들어온 정보가 있는 것인가, 브로넌 백작?”

브로넌 백작이 난처한 듯 혀로 입술을 적시더니 조심히 입을 열었다.

“아마도 바치스 공작이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전해준 듯싶습니다. 팔튼 후작의 지휘에 따라 스피린 영지의 군사들이 수도로 몰려오고 있다 합니다.”

“뭐라?! 어찌 팔튼 후작이 스피린 영지의 군사들을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그것이… 제가 생각하기로는 조금 전 말씀드렸듯이… 바치스 공작이 무엇인가 군사들을 움직일 수 있는 증표를 주지 않았나…….”

쾅!

데브릭 공작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자 브로넌 백작은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바치스 공작… 그자가 끝까지 내 일을 방해하는구나.”

브로넌 백작이 데브릭 공작의 심기를 살피며 말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들의 병력은 우리 병력에 미치지 못합니다.”

“내가 가장 처음 바치스 공작을 잡으려 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네. 그의 군사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 히매인 왕국에서 내란이 일어난다면 그 이후 타국의 침략을 받을 것 아닌가? 그것을 어찌 막는단 말인가?”

데브릭 공작의 걱정은 당연했다.

내란은 스스로 병력을 소모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른 나라에게 하여금 더욱 맛있는 먹이가 될 수 있도록 자처하는 행위였다.

바치스 공작을 제거하고 서서히 스피린 영지를 자신의 아래로 흡수하려고 했던 데브릭 공작이었다. 그러나 뜻하는 대로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때 바치스 공작의 말이 생각나는 데브릭 공작이었다.

-모든 것이… 네 놈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갑자기 바치스 공작의 이 말이 생각난 데브릭 공작은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지우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브릭 공작각하! 급한 마법통신이 와 직접 적어왔습니다.”

“어서 들어오너라!”

문이 열리자 한 병사가 급히 데브릭 공작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올려 서신을 전해주었다.

서신을 읽어 내리는 데브릭 공작의 눈은 점차적으로 커져만 갔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서신을 구기며 말했다.

“이 멍청한 로드퍼드 놈이! 어찌 내게 미리 알리지 않았단 말인가!”

부아악.

부아악.

데브릭 공작은 서신을 찢어버리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 힘들어했다.

그런 데브릭 공작의 행동에 브로넌 백작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내용입니까, 데브릭 공작각하?”

“크으… 루시 공주가 내 영지에 나타났었다고 하는군. 아주 멍청한 인간이 그들을 잡으려다가 놓쳤고. 병사들은 수십이 죽었으며, 기사들은 아직도 혼절하여 깨어나지 못한다고 하네…….”

“아니, 루시 공주의 곁에는 라이안 그자가 있지 않습니까? 그자를 잡으려면 몇 기의 타이탄과 수백의 기사들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데브릭 공작도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차며 소파에 앉았다.

“내 말이 그 말이라네.”

순간 데브릭 공작은 번개와도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구나. 어서 수도 전체에 병사들을 배치시키고 외성 성벽에 마법사부대를 배치하시오. 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타이탄으로 성문을 막으라고 이르시오! 그자가 올 것이오. 지금 그자가 오고 있을 것이오.”

데브릭 공작이 아는 라이안은 무서운 존재였다.

힘도 힘이었지만 지략 또한 뛰어나다는 것을 이전 전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데브릭 공작의 명을 받은 브로넌 백작은 서둘러 그 명을 전달하러 방을 빠져 나갔다.

데브릭 공작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가장 걱정해야 할 것은 포르베 영지의 군사와 스피린 영지의 군사가 아니다… 바로… 그자를 막는 것이다.”

데브릭 공작의 목소리는 상당히 떨려오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라이안의 위력을…….

데브릭 공작의 명령은 빠르게 왕성 전체로 퍼져나갔다.

왕성의 일급 창고에는 총 5기의 타이탄이 있었다.

그 중 2대는 바치스 공작과 팔튼이 계약한 쌍둥이 타이탄이고 나머지 3대는 보통의 타이탄이었다.

이미 한 번 계약한 타이탄은 그 주인이 죽기 전까지 다른 사람과 계약을 할 수 없었다. 그러하기에 결국 3대의 타이탄만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부대는 배치 명령이 떨어지자 불평을 해댔다.

“아니, 우리가 일반 병사들도 아니고 어찌 항시 대기하란 말인가?”

“그러게 말이야. 마법사부대의 체면이 있지 원.”

“그런데 자네, 들었는가? 지금 왕성에 전체 비상이 걸린 이유가 바로 라이안 님이 오시기 때문이라던데?”

“뭐? 라이안 님이? 그럼 우리가 라이안 님과 싸워야 한단 말인가?”

이들 마법사부대도 케로틴 성에 있을 때 본 것이 있었다.

“그분의 타이탄을 보았지 않은가? 우리가 어찌 그분을 이겨?”

“나도 모르겠네. 이거 원… 에드코르 제국이 쳐들어올 때보다 더 떨리는군.”

다른 마법사부대의 일원들 역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과 기사들은 그나마 외성의 성문 앞에 나타난 3대의 타이탄으로 인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데브릭 공작은 내성에서 외성으로 이동하며 생각했다.

‘루시 공주가 나타난다면 왕성 안으로 들여보내지 못할 명분이 없다. 루시 공주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면 내가 한 행동들은 진정 반란이 되겠지.’

데브릭 공작은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루시 공주를 들어오게 한 후 라이안과 떨어지게 만들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현재 데브릭 공작에게는 명분이 있었다.

크호른 왕의 시해범을 찾기 위해 누구도 왕성의 출입을 함부로 할 수 없게 하고, 나라의 최고 직위로 자신이 그것을 관리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왕성을 도주하려는 바치스 공작을 국왕 시해범의 일 순위로 만들어놓았지 않은가? 국왕파 귀족들 역시 억울했지만 데브릭 공작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데브릭 공작이었으니…….

하지만 루시 공주가 온다면 말이 달라진다.

루시 공주가 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위이며 여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히매인 왕국에는 여왕에 대한 전례가 많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데브릭 공작은 선택해야 했다.

‘와이파른 후작과 라이안이 합세한다면 아무리 공성전이라 한들 승산이 없다. 명분을 이용해 공주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이대로 공성전을 해야 할까…….’

국경에 있는 군사들을 제외하고 자신이 끌어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군사들을 모은 데브릭 공작이었다.

‘아무리 그자가 강하다 한들 막지 못할 리가 없다.’

데브릭 공작은 우선 상황을 보기로 했다.

외성 성벽에 거의 도착한 데브릭 공작은 방어의 상태를 정비하고자 했다.

그는 성벽 위의 궁수부대와 마법사부대를 확인했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타이탄의 위엄에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수백의 병사들이 수도로 나가며 진을 쳤다.

병사들은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가도록 이끌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오? 이유라고 말해줘야 할 것 아니오?”

“일반인은 알 것 없소! 들어가시오!”

수도의 국민들은 불만을 토하며 병사들에게 반항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수도 끝 부분에 세 개의 점이 보였다.

마법사부대를 이끄는 라핀 후작이 그것을 보고는 마법을 시전했다.

“뭐지? 이미지 줌 인!”

곧 라핀 후작의 앞에 물결치듯 둥근 거울 형태가 나타났다. 그는 멀리 있는 세 개의 점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한 라핀 후작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그, 그자다.”

라핀 후작이 서둘러 데브릭 공작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공작각하! 그자가 왔습니다!”

“라핀 후작, 경망스럽게 그 무슨 추태인가? 누가 왔다는 것인가?”

데브릭 공작은 자신의 영지에서 이곳까지 적어도 이틀, 빠르면 하루 정도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귀로 그가 꿈에도 바라지 않는 일이 들려왔다.

“그자, 라이안! 검은 사신이 왔습니다!”

“뭣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오? 거기서 여기까지의 거리가 얼만데?”

데브릭 공작의 심장은 말 무리가 밟고 지나가기라도 한듯 거칠게 뛰었다.

“거짓이 아닙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라핀 후작은 또다시 장거리 확대 마법을 펼쳤다.

“이미지 줌 인!”

또다시 물결 같은 거울 형태가 나타났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세 개의 점이 확대되면서 세 사람이 걸어오는 장면이 나타났다.

데브릭 공작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검은 머리와 그의 등에 달려 있는 파란 색의 창을…….

“어찌 이리도 빨리 올 수 있단 말인가? 이곳까지 텔레포트라도 했단 말인가?”

그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으니.

“드, 드래곤 나이트…….”

잊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데브릭 공작은 라이안의 곁에는 드래곤이 항상 함께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라핀 후작 역시 데브릭 공작의 말을 들으며 얼굴을 굳혔다.

데브릭 공작이 혹시나 싶어 라이안의 양 옆에 걸어오는 자들을 자세히 살폈다.

“이보게, 라이안 그자의 곁에서 함께 하는 자들을 더 확대해보게.”

금발인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금발이 아니로군.”

잠시 안심한 데브릭 공작이었다.

“그런데 왜 루시 공주는 보이지 않는 것인가?”

들어왔던 정보와는 달리 루시 공주와 다른 인원은 보이지 않았다.

“같이 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데브릭 공작은 빨리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지 눈치 챈 라핀 후작이 물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드래곤은 절대 자신의 머리색을 바꾸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 말이 맞는가?”

“그들의 자존심이라고 들었습니다. 또 서로 종족을 확인하는 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흠…….”

데브릭 공작은 한참을 생각했다.

라핀 후작은 라이안이 수도 중심까지 다가왔다는 것을 알고는 데브릭 공작에게 물었다.

“왕성에 거의 다 왔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라핀 후작의 말에 데브릭 공작이 곧 결단을 내렸다.

“드래곤과 함께 있지 않다면 저자를 죽여도 상관없다. 드래곤은 해츨링을 건드리지 않는 한 복수를 하지 않는 종족이지 않는가? 게다가 저자는 우리 히매인의 사람도 아니다.”

데브릭 공작이 한쪽 볼을 떨며 말했다.

“모든 군사들에게 알려라! 왕성 근처에 다다르는 자는 적의가 있는 자로 간주하고 즉결 심판하겠다! 가까이 오는 자는 무조건 죽여라!”

데브릭 공작의 말을 들은 전령들 수십 명이 순식간에 왕성 전체로 퍼져나갔다. 밖으로 나가는 전령들도 상당했다.

멀리서 이미 철저히 준비되어 있는 히매인 왕국의 왕성을 바라본 라이안이 살심을 일으켰다.

이미 생각만으로도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경지에 이른 라이안이었다.

그의 몸 주위로 공기가 타오르듯 이글거렸다.

“진정하거라, 라이안아.”

갈천혁의 말에 걸어가던 라이안은 더욱 강한 살기를 뿜으며 왕성을 노려보았다.

“저들은 루시의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전 이곳에 돌아오면 루시에게 청혼하려고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저자들이 제 장인 되실 분을 죽였다고 하는군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루시 공주를 위해서도 반드시 처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라이안이었다.

혁마소가 라이안의 말을 들으며 동조했다.

“그렇군. 그러고 보니 우리 사돈어른을 죽인 것이 아닌가? 저런 처죽일 것들 같으니!”

돌연 덩달아 흥분하는 혁마소였다.

갈천혁 역시 ‘사돈어른’이라는 말에 정감이 갔다.

“흠… 살아계셨다면 가족 같이 잘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을…….”

갈천혁은 왠지 오늘 많은 피를 보게 될 거라 예상했다.

혁마소는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듯했다.

라이안이 들어서자 병사들이 수도에 남은 사람들을 모두 집으로 몰아넣었다.

병사들이 곧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국민들은 크게 저항했다.

“아니, 왜 우리 히매인 왕국의 영웅을 공격한단 말이오! 이것은 말도 안 돼는 일이오!”

“잔말 말고 들어가!”

퍽!

“크억!”

병사들은 수도의 국민들을 폭행해서라도 들여보내고자 했다.

“제길, 우리도 좋아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병사들은 멀리서 걸어오는 라이안을 보며 몸을 떨었다.

“어떻게 검은 사신을 막으라는 것인지… 젠장.”

병사들도 라이안이 히매인 왕국을 위해 에드코르 제국과 맞서 싸웠던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전장에서 싸움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목이 쉴 정도로 환호성 지르던 자신들이 아니었던가?

막을 수도 없었지만 막기도 싫었다.

그러한 사실은 기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젠장! 저분은 단신으로 목숨을 다해 우리 히매인 왕국을 지켜주신 영웅이시거늘… 우리가 저분을 공격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이봐, 그렇다고 명을 어길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그렇다 한들 조국의 영웅에게 등을 돌린단 말인가!”

기사들 또한 의견이 다르기는 병사들과 같았다.

라이안을 공격하고 싶지 않은 자들이 더욱 많았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라이안을 막아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라이안 또한 천리지청술로 상대의 지략을 탐색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병사들과 기사들의 대화에 살심을 걷어냈다.

“저들 또한 나를 공격하고 싶어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구나. 저들이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단지 명을 따르는 일개 병졸일 뿐이거늘…….”

라이안은 생각했다.

‘과연 회복된 내가 암경을 펼친다면 그 힘은 어디까지나 가능할까…….’

라이안이 최대한 피를 안 보고 끝내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병사들의 시야에 라이안 외에 그의 뒤로 걸어오는 두 노인이 들어왔다.

아직 먼 거리여서 먼지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두 노인을 알아보는 한 기사가 있었다.

“이럴 수가… 저, 저 사람들은!”

“왜 그러는가? 라이안 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고 있는 것인가?”

옆에 있던 기사가 물었으나 갈천혁과 혁마소를 알아본 기사는 대답은커녕 몸을 부르르 떨 뿐이었다.

“우리는 저들을 막을 수 없어…….”

“이봐! 정신 차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난 에드코르 제국이 우리 히매인 왕국을 쳐들어왔을 때 라이안 님이 함정을 다 만들 때까지 그들을 기습하여 시간을 벌라는 임무를 받은 적이 있다네… 그런데 그때 두 노인이 나타났었지…….”

그 뒤의 내용은 소문이 돌았던 것이기에 그것을 물었던 기사 또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 그렇다면 지금 라이안 님의 곁에 오는 두 노인이 그때의 그랜드마스터란 말인가?”

“저들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을 거야…….”

의지를 상실해가는 기사를 보며 그 주위에 있던 기사들 또한 사기를 잃어갔다.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성벽 위에서 보고 있던 데브릭 공작은 가슴이 타들어갔다.

“아니, 저것들이 뭐하고 있는 것인가! 어서 공격 명령을 내려라! 어서!”

명을 받는 기사대장 또한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나라의 녹을 먹는 이상 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그는 서둘러 성벽의 중앙으로 가며 병사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공격 신호를 보내라! 공격이다!”

부우우우우.

부우우우우.

성문의 위에 있던 병사가 하나의 뿔피리를 불자 다른 곳에서도 같은 소리를 내었다. 바로 전체적인 공격 명령이었던 것이다.

기사들은 공격신호를 듣고 점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러한 것은 기사들보다 병사들이 더했다.

라이안은 처음에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죽이려고 했었다. 하지만 병사들과 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니 라이안 또한 그들을 공격해야 하는 상황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자신은 살귀가 아니다.

라이안은 뒤에서 걸어오는 갈천혁과 혁마소에게 말했다.

“성 밖에 있는 기사와 병사들은 놔두시고 저기 보이는 타이탄과 성벽 위에 있는 마법사들을 맡아주세요. 최대한 피를 적게 보도록 해주세요.”

라이안의 말을 들은 혁마소가 멀리 보이는 타이탄을 보며 말했다.

“저기 보이는 깡통 같은 것이 타이탄이라는 것이냐? 저것은 내가 맡으마. 재미있겠구나.”

갈천혁 역시 성벽 위를 보며 말했다.

“저기 이상한 옷을 입은 것들이 사술을 부리는 것들이로구나. 저들은 내가 상대하마.”

라이안은 잠시 두 할아버지를 보다가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장 나쁜 놈들의 측근 부하이니만큼 그들은 얼마든지 죽이셔도 됩니다.”

조금 잔인한 말이었지만 그나마 살심을 죽이며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시작하자꾸나.”

혁마소가 몸을 날렸다.

화살과도 같이 쏘아져 오는 혁마소로 인해 성 밖을 지키던 병사들과 기사들이 서둘러 그를 막고자 달려들었다.

“막아라!”

“화살을 쏘아라!”

슈슈슈슉.

슈슈슈슉.

티딕, 틱.

티디딕.

하늘을 가릴 듯 수많은 화살이 날아왔다. 하지만 혁마소에게 부딪친 화살들은 모두 그의 호신강기로 인해 튕겨나갈 뿐이었다.

“역시 괴물이로구나!”

수많은 기사들은 부서질 듯 이를 악물며 혁마소에게 달려들었다.

“쉽게 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그자!”

기사들이 동시에 검을 들고 혁마소를 내려쳤다.

하지만 혁마소가 누군가?

과거 중원에서 천마라 불리며 마교를 일으켜 세운 장본인이 아닌가?

신화경에 오르기 전이었다 해도 이들에게 당할 혁마소가 아니었다.

“비켜라, 이놈들! 귀찮구나! 우아아아아!”

혁마소가 몸을 띄워 땅에 떨어지며 검으로 땅을 강하게 때렸다. 아니, 기사들 눈에는 단지 빛줄기가 땅으로 파고드는 것으로만 보였다.

순식간에 번뜩였지만 그 파괴력은 굉장했다.

콰과과광!

푸아아앙!

“크악!”

“으악!”

기사들이고 병사들이고 할 것 없이 혁마소 주위로 몰려들던 모든 자들이 하늘을 날았다. 마치 많은 눈이 쌓인 곳을 강하게 밟으면 그 주위로 눈이 날리며 더 큰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같았다.

혁마소가 때린 땅 주위로는 단 하나의 병사도 없었다. 그들 모두 일정 범위까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쑤아아아아.

쉬이이이이.

혁마소가 만든 바람과 먼지는 왕성의 성벽까지 몰아쳤다.

성벽에 있던 귀족들과 마법사들은 서둘러 소매를 올려 자신의 눈을 가렸다.

“이, 이게 뭔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먼지바람은 한참이 지나서야 자연적으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걷히고 있었다. 그리고 나타난 현상을 본 성벽 위의 모든 사람들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혁마소 주위로는 둥글게 기사들과 병사들이 쓰러져 있었다. 앞으로는 마치 벼락이 하늘을 갈라놓듯 땅이 타이탄 근처까지 갈라져 있었다.

혁마소가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둘러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피라미들은 나서지 마라! 난 저 철 덩어리들을 가지고 놀 것이니!”

타이탄을 검으로 지목한 혁마소가 다시 엄청난 속도로 경공을 시전하며 성문 앞에 있는 타이탄에게 달려들었다.

데브릭 공작은 성벽 위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수염을 떨었다.

“이보시오, 라핀 후작.”

“…네.”

“지금 내가 본 것이 진정 인간이 행한 것이오?”

“저자가 인간인지 아닌지는 소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라핀 후작 역시 어안이 벙벙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순간 정신을 차린 데브릭 공작이 라핀 후작을 닦달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소! 무엇하는 것이오! 어서 공격하라 이르시오!”

“예? 예, 알겠습니다. 궁수부대는 저자가 왕성에 다다르지 못하도록 활을 쏴라! 마법사부대 또한 저자를 저지하라!”

라핀 후작 또한 데브릭 공작의 말을 들으며 퍼뜩 정신 차렸다. 그러고는 서둘러 성벽 위에 있는 병사들과 마법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궁수부대들이 활을 쏘고 마법사들이 마법을 영창했다.

타이탄들 역시 혁마소가 다가오자 검을 들고 혁마소와 접전을 벌일 준비를 했다.

타이탄과 혁마소가 부딪치기 직전 마법사들이 모두 주문을 외웠는지 마법을 퍼붓기 시작했다.

“파이어 볼!”

“아이스 볼!”

“익스플로전!”

수많은 불덩어리들과 얼음덩어리들이 혁마소가 있는 곳을 공격했다.

너무도 빠르게 움직인 혁마소는 요리조리 날렵하게 마법들을 피해갔다.

중간 중간 그나마 속도를 줄이게 만드는 마법이 익스플로전이었다.

갑자기 특정 위치에서 폭발하는 익스플로전 마법은 혁마소가 처음 겪는 마법인지라 예측하기 힘들었다.

성벽에 있는 마법사들 중 5서클 마스터가 상당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뭔가가 터지고 나면 혁마소가 먼지로 인해 사라졌다가 다시 먼지를 뚫고 나오는 것이 몇 번 지속되자 데브릭 공작은 애가 탈 지경이었다.

“어찌 저자 하나를 막지 못한단 말이오!”

라핀 후작 역시 크게 난처해하며 마법사들을 닦달했다.

“모두 움직임을 막는 마법으로 저자를 저지하라!”

라핀 후작의 명이 떨어지자 마법사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마법을 영창하고 손을 앞으로 뻗어냈다.

“홀드!”

“글라스 반도!”

“트리 스템!”

혁마소는 홀드 마법으로 인해 뭔가 자신의 몸을 압박해간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이 드는 순간 갑자기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기다란 풀들과 나무줄기들이 무성해지는 것이 아닌가?

혁마소는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하나의 숲이 들어서자 혹시 자신이 진법에 갇힌 것은 아닌지 착각까지 했다.

데브릭 공작과 라핀 후작이 조금 당황해하는 혁마소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하얀 무엇인가가 날아왔다.

“너희들의 상대는 나다! 혼원일기세!”

허공에서 날아온 갈천혁이 마법사들을 향해 손을 내뻗자 그의 손에서 연기와도 같은 무엇인가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마법사들이 있는 곳이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콰과과광!

“크악!”

“으악!”

갑작스러운 갈천혁의 공격에 라핀 후작이 급히 데브릭 공작을 안고 레비테이션을 시전해 자리를 피했다.

“너희에게는 자비가 필요 없을 터! 우조천답지!”

갈천혁의 손이 성벽 아래를 때리자 성벽이 종이 찢어지듯 갈라졌다. 이에 그 위에 있던 궁수들과 몇몇 마법사들이 떨어져 내렸다.

마법사들은 부유마법인 레비테이션을 시전해 겨우 땅에 내려설 수 있었으나 궁수들은 높은 성벽에서 떨어지며 목이 돌아가고 몸이 터져 내장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몇몇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내려선 곳에서 그러한 시체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뭐, 저런 괴물들이 다 있단 말인가!”

한 마법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지만 그의 말에 대답해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마법사들은 부유마법으로 허공을 떠다니며 갈천혁을 공격해갔다.

“익스플로전!”

갈천혁 역시 갑작스럽게 자신 주위에서 무엇인가가 터지자 당황했으나 곧 익숙해졌다.

“터지기 직전에 주위에 마나가 모여드는군. 그렇다면 피하기 쉽지.”

“파이어 볼!”

“어리구나. 아직도 불장난이라니!”

신형이 사라졌다 판단한 순간 순식간에 허공에 떠올라 있는 마법사의 등 뒤에서 나타난 갈천혁.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갈천혁이 갑자기 마법사 등 뒤에서 나타났다가 곧바로 사라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갈천혁에게 등을 보인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땅에 떨어져 내렸다. 아래에서 공격을 하던 마법사들 역시 푹푹 쓰러져갔다.

그들은 갈천혁에게 등을 보일 때마다 그렇게 조용히 죽어갔다. 갈천혁이 그들의 사혈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사혈은 일반인도 잘못 건드리면 쉽게 죽을 수 있는 위험한 혈이었다.

혈도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갈천혁으로서는 마법 외에는 움직임이 둔한 마법사들의 사혈을 누르는 것이 무척이나 쉬웠다.

외성 안으로 들어온 갈천혁에게 곧바로 화살이 날아들었다.

석궁을 들고 있던 몇몇 병사들이 날린 것이었다.

슈슈슈슉.

슈슈슈슉.

화살들은 갈천혁의 몸을 관통할 듯싶었으나 어찌 갈천혁이 그따위 공격에 당하겠는가?

“어림없다! 하앗!”

갈천혁은 두 손을 모아 강한 기합을 내질렀다.

휘리리릭!

턱, 턱.

척.

갈천혁의 기합으로 인해 그의 주위로 돌풍이 몰아쳤다. 화살들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 박혔다.

갈천혁은 자세를 바로하고 자신에게 석궁을 쏜 병사들을 노려보았다.

“이놈들……!”

“히익!”

석궁을 쏘던 병사들은 그런 갈천혁을 보고는 오줌을 지리며 도망쳤다.

한 기사가 도망가는 병사들을 보며 인상을 쓰고는 혁마소에게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노인네!”

다른 기사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고 동시에 갈천혁에게 달려들었다.

텁!

창!

차자자장!

하지만 갈천혁은 가장 먼저 공격해온 기사의 검을 맨손으로 잡더니 방향을 틀어 다른 기사들의 검을 막았다.

“크윽!”

갈천혁의 손에 검을 잡힌 기사는 검을 당기려고 있는 힘을 다했지만 검은 요지부동이었다.

갈천혁이 잡은 검으로 인해 공격이 실패한 다른 기사들은 서둘러 검을 거두고는 다시 갈천혁을 공격해갔다.

갈천혁은 아주 빠르면서도 부드럽게 움직였다.

마치 신선이 산보를 나온 듯 신비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검이 지나가면 여유롭게 검을 피하고 가볍게 밀어내는 것을 반복하는 갈천혁이었다.

그의 행동으로 보아 마치 태극권을 사용하는 듯했다.

하지만 갈천혁이 가볍게 밀어내는 것은 다른 사람이 볼 때나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밀리는 기사는 몸이 뜨며 성벽에 처박히더니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휘익! 텅! 퍽!

휘익! 텅! 퍽!

갈천혁에게 덤벼드는 기사들 하나하나가 계속해서 여기저기로 날아다녔다.

물론 쓰러진 기사들은 일어날 수 없었다.

갈천혁이 외성 안으로 들어가 그러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혁마소는 자신의 앞을 가린 나무줄기들과 나무를 노려보며 손을 모으고 있었다. 그러자 혁마소의 손 주위로 붉은 기운과 함께 뜨거운 무엇인가가 모여들었다.

천천히 모여들던 붉은 기운은 차차 회전했고 점점 그 속도가 빨라졌다.

“단천열화장!”

혁마소의 외침과 함께 그의 손에서 회오리 같은 불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타이탄을 몰고 있던 기사들은 자신들의 앞과 뒤가 막힌 이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단지 지금 자신들의 위치를 지켜야만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한 타이탄을 몰던 기사가 막힌 나무들 사이로 붉은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그래서 잠시 앞으로 나아가며 그것을 확인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푸아아아악!

펑!

“끄아악!”

꽈광!

순식간에 엄청난 열기를 동반한 무엇인가가 나무와 풀들을 헤치고 날아와 타이탄에 작렬했다. 그것을 맞은 타이탄은 뒤로 날아가 성문을 부수며 쓰러졌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다른 두 타이탄에 타고 있던 기사들은 영문을 몰라 하며 빛줄기가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서는 혁마소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타이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 만났다, 깡통들… 너희를 보니 왠지 못된 깡통 놈이 생각나서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챠둠을 말하는 것이었다.

혁마소가 타이탄을 상대하자 성 밖에 있던 기사들과 병사들은 혁마소를 공격할 의지를 상실했다.

“저런 자들이 세 명이나 있었다니…….”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야.”

한 병사가 놀라며 다른 병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자네 괜찮은가? 아까 굉장히 높이 떠올랐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조금 까진 상처 빼고는 아무렇지 않다네. 신기한 일이군. 그 높이에서 떨어졌으면 어디가 부러졌어야 당연한데 말이야.”

그들이 다치지 않은 이유는 라이안에게 있었다.

그들의 몸이 떠오를 것을 예상한 라이안이 순간 바람의 정령을 불러 그들이 크게 상하지 않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라이안이 어디로 갔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바람과도 같이 사라진 라이안이었다.

왕성 밖에서는 혁마소가 날뛰고 있었으며 외성 안에서는 갈천혁이 기사들을 던져대고 있었다.

데브릭 공작과 라핀 후작은 서둘러 내성으로 몸을 피했으나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이토록 강할 줄이야…….”

“그들에게는 공성전 같은 것이 전혀 소용없었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마법사들을 죽이는 자들이라니…….”

“이곳도 안전하지는 못하네. 어서 자리를 피해야겠네.”

“공작각하, 제가 왕성 근처에 안전한 가옥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곳이라면 아무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역시 라핀 후작이로군. 그래, 어서 안내하게나.”

데브릭 공작이 라핀 후작을 따라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고 할 때 몇 명의 귀족들이 그들이 있는 방으로 급히 들어왔다.

“데브릭 공작각하, 이제 어찌해야 하는지요? 이미 타이탄들은 모두 찢겨지듯 조각나 있으며 내성을 지키는 기사들 또한 모두 죽거나 혼절해 있습니다!”

말을 하는 자는 바로 간테츠 백작이었다.

“간테츠 백작, 우선 모든 병사들을 동원해서라도 끝까지 그들을 저지하게!”

“아니, 어딜 가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이대로 왕성을 포기하시는 것입니까!”

간테츠 백작이 데브릭 공작의 앞길을 막자 데브릭 공작이 그를 밀치며 소리쳤다.

“비키게! 아직도 상황을 모르겠는가? 몸을 피한 후 후일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는가!”

데브릭 공작이 말과 함께 방을 나서려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을 열자 나타나는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라이안이었다!

“히엑!”

데브릭 공작과 라핀 후작이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뒷걸음질을 쳤다.

“우리를 어쩌려고 이러는 것이냐!”

데브릭 공작이 겁에 질린 채 라이안에게 소리쳤다.

라이안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방 안에 있는 귀족들을 둘러보았다.

“이 나라의 썩은 귀족들은 죄다 이곳에 모여 있군.”

라이안을 본 간테츠 백작은 라이안과 자신의 인연이 지독하다 생각했다.

‘이자가 이토록 대단한 자일 줄이야…….’

그리고 그때 미리 알아서 모셨더라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 후회했다.

라이안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방의 문이 저절로 닫혔다.

쾅!

“헉!”

“흡!”

귀족들은 문이 닫히는 소리 하나에도 마치 심장마비에 걸릴 듯 놀랐다.

라이안은 그런 귀족들을 보며 비웃었다.

“후후후, 어찌 그런 콩알만 한 간덩이로 나쁜 짓이라는 나쁜 짓은 죄다 하고들 다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귀족들에게 있어 라이안의 웃음은 악귀의 것과도 같았다.

얼굴에서 웃음을 지운 라이안이 데브릭 공작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국왕전하를 시해하고 반역을 꾀한 죄, 죽음으로 갚아라.”

데브릭 공작은 흥분하며 뒤로 물러났다.

“무, 무슨 말이냐! 난 그런 적 없다! 무슨 증거로 그따위 망발을 한단 말이냐!”

“증거라…….”

“그렇다! 내가 국왕전하를 시해했다는 증거도 없거늘 어찌 내게 그런 대역죄를 뒤집어씌운단 말이냐!”

라이안은 강한 살기를 내뿜었다.

방 안에 있는 귀족들은 라이안의 살기를 버텨낼 능력이 없었다.

귀족들이 하나씩 라이안의 살기를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으며 몸을 떨었다. 그러한 것은 데브릭 공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부들거리는 다리를 억누르며 겨우 한 손으로 의자를 잡으며 버티고 있었다.

라이안이 데브릭 공작을 보며 살기를 거두었다.

“생각해보니 당신 말대로 증거가 없군.”

“그것 보아라! 내가 왕성을 점령한 이유가 바로 국왕전하의 시해범을 잡기 위함이었으며 그것이 나의 명분이다! 난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

데브릭 공작의 말을 들은 라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라이안이 몸을 돌려 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라이안의 행동에 데브릭 공작은 살았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이 위험에서 벗어난다면 강한 흑마법사들과 손을 잡아서라도 라이안을 반드시 퇴치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데브릭 공작의 귀로 또다시 라이안의 낮은 어조가 들려왔다.

“그런데…….”

“무, 무엇이 또 남았느냐?”

등을 돌린 라이안의 숙여졌던 고개가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난 증거 따위 필요가 없더군… 나의 심증이 네가 국왕전하를 죽였다고 하고 있으니까.”

“그것이 무슨 말이냐!”

스악!

푸하하하학!

털컹.

라이안의 몸이 빠르게 돌려졌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데브릭 공작의 목이 몸에서 떨어지며 그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히익!”

라핀 후작은 자신 역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창그랑!

라핀 후작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며 마법을 실행했다.

“레비테이션!”

빠르게 날아서 도망치려는 라핀 후작이었지만 곧바로 라이안의 작은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디스펠.”

그러자 곧 창문 밖에서 라핀 후작의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더니 비명이 들려왔다.

“어, 흐악! 으아아아악!”

라이안이 마법취소 주문을 외웠고 라핀 후작은 자신의 마법이 취소됨과 동시에 땅으로 추락해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한 나라를 집어삼키려던 자들이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라이안은 방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 나가려던 것을 멈추고 방 안에 있는 귀족들에게 다가갔다.

간테츠 백작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라이안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한참을 그렇게 눈을 감고 있어도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간테츠 백작은 살며시 눈을 떴고 곧 자지러지게 놀랐다.

“흐엑!”

라이안이 정면에서 간테츠 백작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이안은 조용히 말했다.

“너.”

“예! 말씀하십시오!”

높은 사람을 대하듯 군기까지 갖추며 대답하는 간테츠 백작이었다.

“자식 교육 똑바로 시켜라.”

“예! 알겠습니다!”

간테츠 백작의 말을 들은 라이안이 몸을 돌려 방을 나섰고 곧 내성을 빠져나갔다.

라이안이 나가자 밖에서 갈천혁과 혁마소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주위를 둘러본 라이안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가고 나면 나머지는 팔튼이 알아서 하겠지…….”

라이안은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하나의 구슬을 꺼냈다.

바로 타미르안이 주었던 스크롤의 일종이었다.

“제 어깨를 잡아주세요. 이것을 깨트림과 동시에 다른 곳으로 이동될 거예요.”

갈천혁과 혁마소가 라이안의 어깨를 잡았다.

라이안이 구슬을 깨자 그들은 밝은 빛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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