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장 드래곤들의 추격, 그리고 전투
그렇게 세 마족이 혼돈의 칼자루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3대의 마차가 포스안 제국의 수도의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차 위로 하나의 금빛 광체를 휘날리며 날아가는 무엇인가가 있었으니 바로 라이안이었다.
라이안이 마차 위로 내려앉으며 말했다.
“잠시 마차를 멈추시오.”
라이안이 말하자 마부들이 이즈리스 남작에게 물었다.
“어찌 할까요? 지금 성기사들이 추격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부가 뒤를 돌아보며 마차 안에 있는 이즈리스 남작에게 묻자 마차 안으로부터 이즈리스 남작의 대답이 들려왔다.
“형님에게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 세우게나.”
“알겠습니다.”
이히히히힝.
이히히히힝.
가장 앞에 있는 마차가 급히 멈추려 하자 그 뒤에 있는 마차들도 차례대로 멈추었다.
마차가 멈추자 마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마차에서 내렸다.
라이안은 마차 위에서 살며시 뛰어내려 땅에 착지했다.
하루 넘게 마차에 앉아 달려와서 그런지 루시 공주와 에나는 상당히 지쳐보였다. 그런 그녀들에게 라드이라가 다가갔다.
“제가 체력을 조금 회복시켜 드리겠습니다.”
라드이라가 그녀들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려놓았다.
스아아아아.
라드이라의 손에서 나온 하얀 광체가 서서히 그녀들에게 흘러들었다.
그녀들은 신성력이 자신들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편안함을 느꼈다.
그것을 바라본 라이안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얼마 안 있으면 우리 뒤로 성기사들이 쫓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연락을 받은 자들이 앞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요.”
라이안의 말에 혁마소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깟 놈들 모조리 쓸어버리면 되는 것이 아니냐? 그 놈들이 무엇이 무섭겠느냐?”
혁마소의 말에 라이안이 그를 보며 말했다.
“물론 그들이 무섭지는 않지요. 그들은 우리에게 절대 피해를 줄 수 없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마족이에요. 얼마 전 그들이 지나갈 때 힘을 측정해본 결과 현경의 힘을 느꼈었지요.”
라이안의 말에 갈천혁도 긍정했다.
“나 역시 그 정도로 느껴지더구나.”
갈천혁의 말에 라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만약 성기사들과의 싸움 때문에 약해져 있어서 그랬던 것이라면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과 싸우면 안 돼요.”
라이안의 말에 혁마소가 반론을 제기했다.
“아니, 그것이 무엇이 문제더냐? 겨우 저딴 놈들에게 피해를 입어 도망칠 놈들이라면 별 걱정 안 해도 될 성 싶거늘…….”
그런 혁마소의 말에 라이안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혁 할아버지, 그것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야 해요. 왜냐하면 그들은 대신성전 근처에서는 엄청난 힘의 감소를 느껴야 하거든요. 일류고수가 독연이 가득 찬 곳에서 독공을 사용하는 자와 싸우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흠… 일류고수 정도라면 마나로 독이 몸속에 침범하는 것을 막을 것이나 중독은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독공으로 공격당한다면 그 피해는 더욱 심해지겠지…….”
“그렇지요. 마족들에게는 신성력이 독이나 마찬가지랍니다. 그런 그들이 그런 피해를 입었을 때 그 정도의 힘이라면 힘을 회복했을 때 어떠한 힘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저들과 싸우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혁마소의 물음에 라이안이 몸을 돌려 뒤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족들의 목표는 마왕의 소환을 돕는 것이라고 들었어요. 그리고 모든 인류는 그것을 막기 위해 루시에게 해를 끼치려 하지요. 우리가 루시를 끝까지 보호하고 시간을 끌어간다면 마족들은 루시에게 손을 떼고 다른 방법으로 마왕을 소환할 거예요. 그렇다면 인류에게는 위험이 닥칠 것이고 그런 마왕과 마족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포스안 제국의 기사들이지요.”
“지금 우리도 힘들어 곤란할 지경에 저들까지 걱정하자는 것이냐?”
혁마소는 조금 답답하다는 듯 물었고 라이안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루시를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지만 나중에 마왕이 소환된다면 우리 역시 그들과 힘을 합쳐 마왕과 싸워야 할지도 몰라요. 굳이 지금 인류의 힘을 축소시킬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라이안은 타미르안으로부터 들었던 것이 생각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발크르스 마왕이 소환된다면 전 드래곤들이 달려들어도 그를 막기 힘들다고 했다.
라이안의 말이 끝날 무렵 헤인드와 디로안, 그 외의 사람들은 라이안의 말을 들으며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라이안과 갈천혁, 혁마소는 고개를 돌려 마차의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이 오는군요.”
갈천혁이 마차의 앞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쪽에서도 오는 듯하구나. 말발굽 소리로 보아 약 200 이상이로구나. 반 시진(1시간) 정도면 당도하지 않을까 생각되는구나.”
라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할 겁니다. 이곳은 그들의 나라이니만큼 수정구를 통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미리 통보했겠지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그럼 어찌하는가?”
“뭐야, 이거 또 피 터지게 싸워야 하는 거야?”
디로안과 헤인드의 말을 들은 라이안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아니야, 굳이 그들과 싸울 필요는 없어. 우리는 여기서 사라질 것이니까.”
“사라진다고?”
“무슨 수로?”
라이안의 말에 에나가 뭔가 알아차린 듯 말했다.
“그러한 방법은 텔레포트밖에 없지 않나요?”
에나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직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할 수 없기에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라이안은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에나네. 맞아, 텔레포트로 히매인 왕국까지 이동할 생각이야.”
“네? 이곳에서 히매인 왕국까지라면 엄청난 거리인데요? 그 정도 거리를 텔레포트 할 수 있는 사람은 이곳 포스안 제국의 가시네이스 님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뭐,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할 줄 알고 그에 충분한 마나만 가지고 있으면 되지 않나?”
“그것도 그렇지만…….”
아직 라이안이 완전히 회복되었을 때의 힘을 보지 못해 이렇게 말하는 에나였다.
그녀는 알 길이 없었다. 이미 라이안은 타미르안을 능가하는 마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라이안은 잠시 한쪽으로 벗어나 천천히 허공에 손을 저었다.
에나는 라이안의 손길을 따라 허공에 그려지는 마법진을 보고는 경악했다.
“서, 설마! 심벌마법!”
8서클 이상은 되어야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다만 인간의 마법을 배웠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드래곤의 용언마법을 배운 라이안은 7서클 마스터임에도 불구하고 심벌마법을 펼칠 수 있었다.
따라서 인간의 범주를 생각하고 있는 에나로서는 그런 라이안의 행동이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심벌마법은 가시네이스 님밖에 펼칠 수 없는데…….”
에나가 멍하니 라이안을 보며 중얼거리자 헤인드가 궁금해 물었다.
“뭐야? 저게 뭐하는 건데?”
디로안 역시 지식이 부족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몰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라드이라가 그들에게 답해주었다.
“심벌마법은 그 어떤 곳에서든 마법진을 새길 수 있는 마법이야. 8서클 이하는 사용할 수도 없는 마법이지.”
라드이라의 말을 들은 헤인드가 크게 놀랐다.
“헉! 그럼 라이안이 8서클 마스터란 말이야?”
헤인드의 말에 디로안이 중얼거렸다.
“저런, 괴물 같은 놈…….”
한참을 허공에 무엇인가를 그린 라이안은 준비를 마쳤는지 곧 소리쳤다.
“심벌!”
라이안의 외침과 동시에 허공의 그려진 마법진의 크기가 늘어났다. 그리고 허공에 손을 들어 빠르게 땅으로 내리꽂자 허공의 있던 마법진이 땅에 박혀들었다.
그런 라이안의 행동에 에나는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문 없이도 하다니… 설마 용언마법!”
심벌마법은 허공에 그렸을 때 그것을 다른 곳에 새기려면 또 다른 주문이 필요했다.
하지만 라이안은 단지 말로 그것을 행했다. 그리고 실제로 땅에 마법진이 새겨진 것이었다.
라이안은 땅에 새겨진 마법진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은 뒤 일행을 돌아보았다.
“다 된 것 같네. 나도 처음 하는 것이라 어떻게 될지 몰랐거든. 뭐, 마법가루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라이안이 혼자 텔레포트를 한다면 굳이 이러한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으나 마차 전체를 텔레포트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큰 마법력과 마법진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법진이 있어야 용언마법이라도 마나를 적게 사용할 수 있기에 이러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자, 모두 이 마법진 안으로 들어와요. 마부들도 마차를 이 마법진 안쪽으로 몰아주시오.”
라이안의 말에 따라 일행들이 마법진 안으로 몸을 옮겼고 마부들 역시 말을 몰아 마법진 안으로 들어갔다.
상당한 크기의 마법진이라 3대의 마차가 다 들어가도 충분한 크기였다.
“좌표는 히매인 왕국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잡았습니다. 그럼 출발합니다. 텔레포트!”
번쩍!
그들은 밝은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들이 그렇게 사라지고 난 후 아주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그들이 있는 곳에 텔레포트를 이용해 나타난 세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붉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런, 늦었군.”
한 사람이 중얼거리자 또 다른 사람이 땅을 바라보며 말했다.
“레지드라, 그래도 흔적은 아주 자세히 남아 있군.”
“마법진이군. 그것도 용언이 적힌…….”
“그럼 마법을 사용한 존재가 드래곤이란 말인가?”
“미켈리아스, 네 생각은 어때?”
레지드라가 미켈리아스를 바라보며 물었고 미켈리아스는 곧 다른 사람을 보며 물었다.
“이 정보를 가져 온 것은 제미리스잖아. 제미리스가 잘 알겠지?”
레지드라와 미켈리아스가 제미리스를 바라보았고 제미리스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분명 라이안이라는 인간은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소문나 있어. 히매인 왕국의 귀족에게 들은 말이니 분명할 거야. 용언이 적힌 마법인 것을 보니 그와 함께 다닌다고 소문난 그 골드드래곤이겠군.”
제미리스의 말에 미켈리아스가 말했다.
“분명 류마사미엘 님이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를 봉인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 라이안이라는 인간도 봉인된 존재와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인가?”
“그럴지도…….”
류마사미엘이라면 바로 레드드래곤의 수장이 아닌가?
그랬다.
이들은 바로 레드드래곤들이었고 제미리스가 유희 중 들은 소식에 그것을 확인하고자 라이안을 추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미켈리아스가 마법진의 위로 올라서며 말했다.
“마법진도 새겨져 있겠다. 뭐, 이대로 가면 되겠네. 우선 잡아다가 류마사미엘 님에게 끌고 가면 뭔가 나오지 않겠어?”
“좋아, 이동하자.”
레지드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곧 그들은 마법진의 좌표를 따라 이동했다.
레드드래곤들이 이동하고 한참이 지나고서야 양쪽의 길로부터 말을 탄 기사들과 병사들이 조우할 수 있었다.
기사들은 각자를 알아보며 말을 세웠다.
이히히히힝.
이히히히힝.
“그대들은 댄지 영지에서 온 성기사들인가? 난 수도로부터 혼돈의 신녀를 추격한 성관 직속 성기사인 케이브라고 한다. 혹 혼돈의 신녀를 보지 못한 것인가!”
“전 댄지 영지의 기사단장 애스틴입니다. 저희가 온 방향에서는 정보에 따른 마차를 보지 못했습니다.”
케이브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을 때 레인져로 보이는 자가 말에서 내리며 땅을 만졌다.
“케이브 님, 분명 마차가 이곳에 온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에서 마차의 움직임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저기 저것을 보십시오.”
케이브가 레인져의 말대로 한 곳을 바라보자 한쪽 땅에 마법진이 새겨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법진이군. 마법사는 앞으로 나오시오!”
케이브의 말을 들은 뒤쪽에 있던 몇 명의 마법사가 앞으로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저기에 있는 마법진을 확인해주시오.”
“알겠습니다.”
3명의 마법사는 말에서 내렸고 서둘러 마법진을 살폈다.
“이럴 수가… 이것은 혹 용언이 아니오?”
“부, 분명 용언이 확실하오. 하지만 용언은 인간이 해석할 수 없는 것이 아니오?”
마법사들이 마법진에 새겨진 언어가 룬어가 아닌 용언이라는 것을 서둘러 케이브에게 알렸다.
“케이브 님, 마법진에 새겨진 언어가 용언으로 적혀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드래곤과 접촉을 한 듯합니다.”
“뭐라? 드래곤? 제길… 그렇다면 저 마법진이 텔레포트 마법진이겠군.”
세상에 나온 용언은 많았으나 아직도 인간이 해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케이브는 더 이상 그들을 추격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는 암담함을 느꼈다.
“우선 성관님께 알려야겠소. 마법사들은 통신마법을 준비해주시오.”
“알겠습니다.”
* * *
히매인 왕국의 수도 근처의 숲에서 갑자기 밝은 빛과 함께 나타나는 사람들과 마차가 있었으니, 바로 라이안 일행이었다.
이히히히힝.
이히히히힝.
마차를 끌던 말들이 텔레포트로 인해 놀랐는지 투레질을 했다. 이에 마부들이 서둘러 고삐를 잡아 말들을 진정시켰다.
“워워…….”
모두가 텔레포트의 경험이 없었는지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아이고, 어지러워라. 근데 여기가 어디쯤이지, 라이안?”
“여기는 히매인 왕국의 수도에서 반나절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야. 물론 걸었을 때 그렇다는 것이고 마차를 타고 간다면 그보다 더 빨리 도착하겠지?”
라이안의 말에 이즈리스 남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형님, 왜 곧장 수도로 가시지 않았는지요?”
“우선 알아볼 것이 있어서… 히매인 왕국은 그리 강한 나라가 아니야. 과연 우리에 대해 히매인 왕국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본 후에 수도로 가려고 생각 중이야.”
이들의 대화를 듣는 루시 공주는 계속해서 침울한 상태였다.
자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하나 때문에 너무도 힘들어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나약한 루시 공주로서는 라이안이 가장 큰 힘이었으며 더욱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라이안이 그렇게 서글픈 얼굴을 하고 있는 루시 공주에게 다가와 말했다.
“루시, 우선 근처에 있는 마을에 들러 쉬기로 해요. 그 마을에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소문이라도 듣고 움직이는 것이 좋을 듯해요.”
“네, 알겠어요.”
힘없이 말하는 루시 공주가 안타까운 라이안이었다.
그런 루시 공주에게 갈천혁과 혁마소가 다가와 말했다.
“힘 내거라, 아가야.”
“걱정 말거라. 너에게 누가 해를 끼치려 한다면 내가 모조리 혼내주도록 하마. 이 할애비를 믿지?”
혁마소의 말에 루시 공주가 미소를 지었다.
“네, 혁 할아버지만 믿을게요. 갈 할아버지도 고마워요.”
“허허허, 그렇게 웃으니 얼마나 좋으냐? 다 잘될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두 할아버지가 루시 공주를 격려해주자 라이안도 할아버지들이 고마웠다.
라이안은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선 가까운 마을을 찾아서 쉬도록 합시다. 헤인드, 근처에 가까운 마을이 없을까?”
라이안의 물음에 헤인드가 주위에 있는 산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말했다.
“아… 여기라면 저 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적당한 마을이 나올 거야.”
헤인드가 한쪽 길을 가리키자 라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얼른 출발하자. 모두 들었다시피 저쪽으로 가면 마을이 나온다고 하네요. 이동합시다.”
라이안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마차에 올랐다.
곧 마부들이 말의 위치를 돌려 헤인드가 말했던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헤인드는 계속해서 라드이라의 표정을 살폈다.
라드이라의 표정이 마차를 타고 오는 내내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라드이라 역시 라피네 신을 모시는 신관인데… 설마 허튼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
헤인드는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는 듯 고개를 흔들며 잠을 청했다.
하지만 헤인드의 생각과 달리 라드이라는 엄청난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라피네 신을 모시는 신관이거늘… 어찌한단 말인가… 신탁을 이행해야 정상이 아닌가… 하지만… 어찌 그런단 말인가? 지금까지 생사를 함께 한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찌 해를 가할 수 있단 말인가…….’
라드이라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 자체가 모시는 신에게도,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에게도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고뇌에 빠져 있었다.
그때였다.
라이안과 갈천혁, 혁마소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번쩍!
마차 뒤쪽으로 상당량의 마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밝은 빛과 함께 나타난 존재들은 바로 라이안이 심벌 마법으로 새겼던 마법진을 통해 똑같은 위치로 텔레포트해온 세 드래곤들이었다.
세 드래곤은 텔레포트로 도착하자마자 앞쪽에 있는 마차를 발견했다.
“저것인가 보군.”
레지드라가 3대의 마차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에 제미리스가 대답했다.
“포스안 제국의 대신성전에서 3대의 마차가 도망쳤다고 했으니 맞아떨어지지 않겠어? 게다가 지금 우리가 텔레포트해온 이곳에 있으니 정확하지.”
“그럼 어서 잡자고.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지 확인해봐야지?”
라이안은 갈천혁에게 전음을 보냈다.
-뭔가 강한 존재가 나타난 듯합니다. 그것도 세 존재로군요.
라이안의 전음을 들은 혁마소 역시 라이안에게 전음을 보냈다.
-우리 역시 느꼈단다. 아마도 우리를 쫓아온 것 같구나.
-저들의 마나로 보아 혼자서는 힘들 것 같네요.
-우선 이들을 미리 보내고 갈가와 같이 상대하자꾸나.
-네, 그러는 것이 좋겠어요.
대화를 마친 라이안이 마차에서 내렸다.
이즈리스 남작과 같이 타고 있던 갈천혁과 혁마소가 동시에 이즈리스 남작을 보았다. 혁마소가 다시 갈천혁을 보자 갈천혁이 이즈리스 남작에게 설명했다.
“이즈리스야, 지금 밖에 무엇인가가 우리를 추격해온 듯하구나. 우리는 그것을 막을 터이니 너는 마차를 이끌고 이들을 마을로 안전히 이끌어라.”
갈천혁의 말을 들은 이즈리스 남작은 놀라며 물었다.
“추격자라니요?”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구나. 나중에 설명할 터이니 그리 알고 어서 떠나거라.”
갈천혁의 말이 끝나자 이즈리스 남작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먼저 가 있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이즈리스 남작의 말에 갈천혁이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마차에서 내렸고 혁마소 또한 갈천혁의 뒤를 따랐다.
라이안은 이미 마차에서 내려 마차의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갈천혁과 혁마소 또한 같은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곧 이즈리스 남작이 마부에게 명령했다.
“우선 우리는 먼저 출발한다. 서둘러라!”
“알겠습니다.”
이히히히힝.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루시 공주가 창을 통해 세 사람이 마차에서 내려 멀어지는 것을 보고는 에나에게 물었다.
“아니, 왜 마차가 그냥 떠나는 거죠? 아직 라이안과 할아버지들이 타지도 않았잖아요?”
하지만 루시 공주와 같이 타고 있던 에나는 그것에 대답해주지 못한 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어, 엄청난 마나… 이것은 드래곤?!”
이제 상당한 경지에 오른 에나였다.
게다가 마법사인지라 쉽게 마나를 느낄 수 있기에 드래곤들이 나타나자마자 그 마나의 양을 어느 정도 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 대의 마차가 출발하자 멀리서 마차를 지켜보던 드래곤들이 허공에 살짝 뜬 채 마차로 빠르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들은 마차에서 내린 세 사람으로 인해 막힐 수밖에 없었다.
“멈추어라!”
라이안 그리고 갈천혁과 혁마소가 드래곤들의 길을 막자 미켈리우스가 드래곤 피어를 사용했다.
우선 굴복시키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드래곤 피어를 날렸으나 상황은 그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겨우 그깟 살기로 누굴 죽이겠다는 것이냐? 우습군.”
“인간 주제에 피어를 견디다니… 보통 인간이 아니로군. 혹 너희 중 다른 세계에서 온 자가 있는가?”
라이안이 미켈리우스의 말을 들으며 중얼거렸다.
“피어라… 그렇다면 드래곤이겠군.”
‘귀찮게 돼버렸군. 설마, 이들 말고 드래곤들의 수장들과 로드까지 알아버린 것인가?’
라이안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레지드라가 거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 우린 위대한 레드드래곤족이다. 하찮은 인간의 실수라고 생각하며 용서해줄 것이니 어서 무릎을 꿇어라. 그리하면 목숨은 살려주마.”
라이안은 레지드라의 말을 들으며 가볍게 웃었다. 타미르안에 비하면 이들은 아기들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용서는 너희가 아닌 우리가 해야 할 것 같은걸? 그런데 각 수장들과 로드는 어디 있지?”
이 말에 세 드래곤이 동시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제미리스가 낮은 어조로 말했다.
“건방진… 너희 따위를 잡는 것은 수장께 알릴 필요조차 없다. 잡고 나서 끌고 가면 당연히 아실 일이니까…….”
라이안은 제미리스의 말에 속으로 크게 안심했다. 그리고 강한 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너희가 우리를 쫓아온 것은 실수다. 우리에 대해 안 이상 너희는 살아 돌아갈 수 없다.”
라이안의 말에 세 드래곤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크게 웃었다.
“하하하, 저 인간이 미친 것이 아닌가?”
“크하하, 감히 우리처럼 위대한 존재들에게 살아 돌아갈 수 없다? 웃기는군.”
“아주 재미있는 인간이야. 가지고 놀 만하겠어. 크흐흐.”
그때 옆에서 가만히 듣기만 하던 혁마소가 라이안에게 물었다.
“라이안아, 드래곤이라면 도마뱀 같이 생겼다는 그 파충류가 아니냐? 저놈들이 그것들이라는 것이냐?”
“네, 맞아요. 마법 좀 사용한다고 인간들을 괴롭히는 아주 나쁜 요물들이죠.”
“저놈들 오래 사느냐?”
“네, 약 일만 년 가까이 살아간다고 알고 있어요.”
“크흐흐, 그렇다면 저놈들도 내단을 가지고 있겠구나. 흐흐흐.”
갈천혁은 그렇게 말하는 혁마소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그 정도 강해졌으면 됐지 얼마나 강해지려고 그러는지… 쯧쯧쯧.”
“닥치거라. 내 이번에 저놈들의 내단을 흡수해서 챠둠 그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것이다, 크험.”
드래곤들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강하게 피어를 날렸다.
“이 건방진 것들이…….”
“아무래도… 류마사미엘 님에게 저것들의 시체를 보여드려야겠군.”
“그래… 산 것이나 죽은 것이나 보여드리기만 하면 될 거야. 류마시미엘 님의 귀를 더럽혀서는 안 되지.”
세 드래곤이 동시에 일으킨 데다 이전보다 더 강한 피어였다.
그러나…….
혁마소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저놈들 왜 저리 째리고만 있누?”
혁마소의 말을 갈천혁이 받았다.
“눈싸움이라도 하자는 게지.”
라이안이 할아버지들의 대화를 들으며 웃었다.
“지금 저것은 일종에 공격과 같아요. 살기로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억압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미켈리우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하는 그들을 보며 더욱 분노했다.
“내 너희의 목만 잘라서 술을 담그리라…….”
미켈리우스가 공격을 하려는 찰나 그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라이안이었다.
순간 라이안의 모습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미켈리우스의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런!”
푸욱!
“커억!”
미켈리우스의 앞에 순식간에 나타난 라이안은 미켈리우스의 가슴에 창을 꽂아 넣었다.
그에 분노한 미켈리우스는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마법을 시전했다.
“이 처죽일 놈! 헬 파이어!”
미켈리우스와 라이안의 중간에 갑자기 검붉은 구가 생겨났고 그 구는 순식간에 엄청난 크기로 변해갔다.
레지드라와 제미리스는 갑자기 헬 파이어를 시전하는 미켈리우스의 곁을 빠르게 피했다.
“블링크!”
“블링크!”
헬 파이어가 바로 곁에서 터진다면 그것은 정면으로 공격받는 것과 같은 타격이었다. 따라서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상태에서는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자리를 피한 것이었다.
라이안 또한 몸에 창이 찔린 상태에서 마법을 시전할 줄은 생각지 못했기에 서둘러 창을 뽑으며 뒤로 빠르게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 헬 파이어가 라이안을 쫓듯 날아왔다.
라이안은 아슬아슬하게 근거리 순간이동 마법을 펼치며 그 자리를 피했다.
“이크, 블링크!”
콰과과광!
헬 파이어가 터지자 숲의 나무들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 쓸려갔고 바위들도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이 세상 어떤 물체가 지옥의 불을 견디겠는가?
스팟.
스팟.
한참 위의 허공에 나타난 레지드라와 제미리스는 아래에서 터지는 헬 파이어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미켈리우스 녀석 단단히 화난 모양이군. 말리기 힘들겠어.”
“그보다… 아까 그 인간의 움직임 봤어? 근거리 전투를 한다면 폴리모프를 한 상태에서는 잡을 수 없는 움직임이야.”
“흠… 그렇군.”
그들은 곧 멀리서 나타나는 세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라이안의 몸에서는 헬 파이어의 뜨거운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몸에서 약간의 연기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혁마소가 그러한 라이안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엄청난 열양기공이군.”
혁마소의 말에 라이안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마법의 일종이죠. 할아버지들도 될 수 있으면 막지 말고 피하면서 상대하셔야 해요. 이들은 용언마법을 사용하여 시전 시간도 짧고 강한 마법을 사용하거든요. 정면으로 맞는다면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요.”
라이안은 설명을 해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 지면에는 아직도 헬 파이어의 불길이 걷히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헬 파이어가 시작된 곳에서 붉은 마나가 솟구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붉은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 사람의 모습이 크기를 더하며 모습을 변형시켜갔다.
바로 미켈리우스가 폴리모프를 해제하고 드래곤의 본 모습으로 돌아오려는 것이었다.
혁마소는 그렇게 드래곤의 모습을 갖추는 미켈리우스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래에서 폴리모프를 해제한 미켈리우스가 서서히 고개를 들며 라이안을 보았다.
“이제 살아 돌아갈 생각은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건방진 인간!”
“그것은 오히려 내가 할 말인데? 말로만 하지 말고 먼저 덤비지 그래?”
“크르르르!”
푸아아악.
우아아악.
미켈리우스의 날개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곧 그의 커다란 몸체가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굳이 날갯짓을 하지 않아도 자체적인 마나로 떠오를 수 있었으나 그러한 행동은 본능과도 같았다.
레지드라와 제미리스의 곁까지 떠오른 미켈리우스는 라이안을 보며 그들에게 말했다.
“아까 보았듯이 상당히 빠른 놈이다. 게다가 8서클의 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깨부수었고 말이야. 나머지 놈들은 어떤 능력이 있는지 모르니 너희도 신중히 상대해야 할 것이다.”
미켈리우스는 이미 한 번의 공격으로 인해 긴장을 늦추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에도 최선을 다하듯 그 역시 그러한 다짐을 한 것이다.
라이안은 뒤에 있는 갈천혁과 혁마소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 마리씩 맡으면 될 것 같네요. 전 저기 가운데 드래곤으로 현신한 녀석을 맡을게요.”
“난 오른쪽을 맡으마.”
“그럼 난 왼쪽을 맡아야겠군.”
갈천혁과 혁마소가 각기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자 레지드라와 제미리스 역시 그들을 따라 이동했다.
결국 그 자리에는 미켈리우스와 라이안만이 남게 된 것이다.
“크흐흐, 멍청한 것들. 같이 모여서 방어를 했다면 좀 더 목숨을 연장시킬 수 있었을 것을…….”
“멍청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너희다. 지금 나의 할아버지들을 따라간 너의 친구들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라이안은 허공에 떠 있는 상태로 청룡창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깟 창 하나로 드래곤을 막으려 하는가! 천뢰!”
미켈리우스의 선공이 시작되었다.
라이안은 머리 위가 찌릿찌릿함을 느끼며 급히 자리를 피했다.
“블링크!”
콰르르르릉!
쿠과과광!
엄청난 크기의 낙뢰가 라이안이 있던 곳을 지나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그 주위에 있는 흙들이 모두 녹아내렸다.
10서클의 궁극의 마법이었다.
라이안이 사라지자 미켈리우스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소리쳤다.
“마나 디텍트!”
주위에 있는 마나를 감지하는 마법을 사용한 미켈리우스는 빠르게 자신의 뒤에서 다가오는 커다란 마나를 느끼며 급히 마법을 시전했다.
“청룡일섬!”
“블링크! 인비져빌리티!”
스팟!
미켈리우스가 자리에서 사라지듯 모습을 감추었고 그가 있던 자리를 하얀 섬광이 지나갔다.
그렇게 사라진 미켈리우스를 보며 라이안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후훗, 제법이군.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무공을 배울 때 공격하고자 하는 상대의 마나를 감지하는 것은 필수적으로 배운 라이안이었다.
모습은 사라졌지만 라이안은 미켈리우스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곧 모르는 척하다가 그 방향으로 창을 던졌다.
“차앗!”
“크윽!”
창이 날아오자 급히 다시 블링크로 자리를 피한 미켈리우스가 다른 방향에서 나타나며 라이안을 공격했다.
“멍천한 놈! 무기를 던졌으니 이제 무엇으로 싸울 것이냐! 익스플로전!”
라이안은 순간 자신의 주위로 빠르게 마나가 모여들고 있음을 느끼며 초광속으로 있던 자리에서 피했다.
콰과광!
“이크!”
익스플로전의 폭발 범위에서 겨우 벗어난 라이안이 미켈리우스를 바라보자 미켈리우스는 연속적으로 익스플로전을 시전하며 계속 공격했다.
“언제까지 피해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익스플로전!”
미켈리우스는 힘겹게 피해 다니는 라이안을 보더니 자만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공격만 계속 한다면 라이안이 먼저 지쳐 쓰러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번 익스플로전을 피하던 라이안에게 헬 파이어를 날리려 하던 미켈리우스는 순간 라이안의 입가에 생기는 미소를 보게 되었다.
“미친놈! 헬 파이… 크헉!”
푸학!
헬 파이어를 날리려던 미켈리우스의 가슴으로 갑자기 날카로운 창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크헉! 어떻게…….”
고통스러워하는 미켈리우스에게 웃음을 짓던 라이안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창을 받으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이기어창술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너희 위대하다는 드래곤도 따라할 수 없는 기술일 것이다.”
드래곤 역시도 물체를 옮길 수 있는 마법들은 많았으나 그 물체에 오러를 생성시킨 채 움직일 수는 없었다.
라이안은 일부러 미켈리우스에게 당하는 척했다. 창이 미켈리우스가 눈치 채지 못하게 되돌아와 그를 공격할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라이안이 타미르안에게도 써먹었던 방법이었다. 타미르안 역시 어느새 자신의 목 뒤에 떠 있는 라이안의 창으로 인해 여러 번 놀랐다.
미켈리우스는 급히 자신의 몸을 치료했다.
출혈이 심했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져 왔지만 오히려 가슴으로부터 타오르는 분노가 그의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그레이트 힐!”
미켈리우스의 손이 자신의 가슴에 닿는 순간 흘러나온 밝은 빛에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라이안이 아니었다.
“어딜!”
라이안은 다시 한 번 창을 던졌고 손을 움직이며 청룡창을 하나하나 시전했다.
미켈리우스는 겨우 출혈을 막을 수는 있었으나 미처 상처를 다 치료하지 못한 채 창을 피해 다니기 바빴다.
“블링크! 블링크!”
미켈리우스는 계속해서 근거리 순간이동 마법을 펼쳤으나 창은 자신이 나타날 곳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빠르게 쫓아왔다.
이에 미켈리우스는 계속된 회피마법을 사용하기 바빴다.
“이런 빌어먹을! 파이어 스톰!”
역시나 드래곤은 드래곤이었다.
용언마법으로 빠르게 9서클 마법인 파이어 스톰을 라이안의 창에 시전하며 창의 공격범위에서 빠져나가는 미켈리우스였다.
“헬 파이어!”
파이어 스톰에 헬 파이어를 섞자 불의 돌풍은 더욱 강력해졌다. 라이안의 창을 아주 녹여버리고자 마음먹은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너에게는 무기가 없을 것이다! 크하하하!”
“무기가 없다고 해서 내가 약해질 것이라 생각하느냐! 풍신퇴!”
스악!
스사사삭!
라이안이 빠르게 몸을 휘돌리며 몇 번의 발을 휘두르자 라이안의 발에서 수많은 강기들이 날아갔다.
미켈리우스는 계속해서 파이어 스톰에 마나를 공급해주지 못하고 급히 방어마법을 펼쳤다.
“실드!”
콰광!
콰광!
쩌적!
쩌저저적!
“크윽! 실드가!”
미켈리우스는 실드가 금이 가며 깨어지려고 하자 크게 놀라며 겹겹이 더욱 강한 방어마법을 펼쳤다.
“그레이트 실드!”
콰광!
콰광!
하지만 역시 큰 충격파가 전해졌고 결국 막던 것을 포기한 미켈리우스가 블링크를 시전하며 그 자리를 피했다.
“블링크!”
스팟!
다른 방위에서 나타난 미켈리우스는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허억… 허억… 뭐 이딴 인간이 다 있단 말인가…….”
역시나 라이안은 미켈리우스가 어떤 위치에서 나타날지 알고는 그 자리를 미리 쳐다보았다.
미켈리우스 역시 그런 라이안과 눈이 마주쳤다. 놀랄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위이이이잉.
붉게 변한 라이안의 창이 여전히 멀쩡한 모습으로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저것이 무슨 오르하르곤 금속이라도 된단 말인가?”
오르하르곤은 신의 금속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그 금속을 다듬을 수 있는 드워프 역시 대륙에 한둘뿐이었다.
라이안 역시 자신의 창이 얼마나 튼튼한지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놔두었던 것이다.
미켈리우스는 아직 열기가 식지 않아 붉어진 창에 더욱 위협을 느꼈다.
역시나 창은 흐릿해지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그것에 위협을 느낀 미켈리우스는 미리 최고 보호마법을 펼쳤다.
“그, 그레이트 실드!”
콰광!
바로 옆에서 날아온 라이안의 창이 미켈리우스가 펼친 그레이트 실드에 부딪치자 주위로 충격파가 날아갔다.
콰광!
콰광!
라이안의 창은 여러 번 미켈리우스의 그레이트 실드를 때렸고 미켈리우스는 겨우겨우 버티며 인상을 찡그렸다.
‘빌어먹을… 어떻게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미켈리우스는 결국 하나의 생각을 하고 말았다.
‘파워 워드 킬이라면 죽일 수 있다. 하지만…….’
미켈리우스는 이것조차 실패할 경우 더 이상 자신에게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진땀을 흘렸다.
파워 워드 킬은 대단히 강한 체력이나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벗어나기 힘든 마법이었다. 하지만 마법이 실패할 경우 그 데미지가 곧바로 자신에게 전해져오기 때문에 잘못하면 의지를 상실할 수도 있었다. 바로 백치 드래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대로 있어봐야 오히려 내게 불리할 뿐이다!”
미켈리우스는 절대 자신이 라이안에게 정신적 힘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 누가 드래곤의 정신력보다 강한 정신력을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미켈리우스 일생 최대의 실수였다.
라이안이 보통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안은 미켈리우스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압박만 하고 있었다. 미켈리우스가 파워 워드 킬을 시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이 하다하다 안 되면 그것을 사용할 텐데… 조금 더 압박을 줘야 하나?’
라이안의 계획은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의 깨달음이라면 아직 이천 살도 먹지 않은 미켈리우스에게 밀리지 않으리라 자신하고 있었다.
라이안은 드래곤 로드가 파워 워드 킬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그 마법이 두렵지 않았다. 심지어 타미르안에게도 그러한 시험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타미르안은 어지러움에 며칠을 누워 있어야 했다.
약하게 걸었던 마법이 그 정도였던 것이다.
라이안이 예상하기에 미켈리우스는 전력을 다해 파워 워드 킬을 사용할 것이었다. 지금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녀석이 백치가 되어버리면 챠둠에게 데려가서 거짓 기억을 주입하라고 한 뒤 부하로 삼아야겠어. 마법에 대한 것 역시 타미르안이 있으니 기억만 전이시켜주면 잘 쓸 수 있을 것이고… 크흐흐.’
충직한 부하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라이안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물론 싸우던 도중에 생각해낸 것이었다.
타미르안은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마구 부려먹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매번 부탁하는 것도 미안하던 차였다. 하지만 드래곤의 능력은 여기저기 써먹을 곳이 많았기에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미켈리우스가 라이안의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심을 마친 미켈리우스는 근거리 순간이동 마법을 펼치며 라이안의 창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방위에서 나타났다.
역시나 라이안의 창이 미리 미켈리우스가 나타날 곳으로 날아들었지만 미켈리우스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라이안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소리쳤다.
“파워 워드 킬! 죽어버려!”
“크윽!”
미켈리우스의 머리로부터 물결치듯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흘러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라이안의 머리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너무 강한 그들의 정신력에 공간이 일렁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파동은 서로 부딪치며 주위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크윽, 아… 안 돼……!”
라이안의 정신적 파동이 점점 강해지며 미켈리우스의 정신적 파동을 잠식해가는 것이 아닌가?
미켈리우스는 이러한 상태라면 분명 자신의 정신이 파괴되고 말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며 악을 썼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미 너무도 커져버린 라이안의 정신적 파동이 순식간에 미켈리우스를 덮쳤다.
바로 얼굴 앞까지 밀려온 파동을 보며 미켈리우스는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안 돼에에에!”
파방!
미켈리우스는 마치 물벼락이라도 맞는 듯 몸 전체를 움찔했다.
라이안의 정신적 파동은 미켈리우스의 몸을 지나 뒤로 흩어졌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라이안 역시 힘겨웠는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휴우… 이길 수는 있었지만 힘든 것은 어쩔 수 없군. 역시, 다시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이야.”
말은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다른 생각을 해보는 라이안이었다.
‘흠… 모든 드래곤을 이런 식으로 내 부하로 삼는다면 드래곤 로드를 상대하기 편해질지도… 그리고 마왕이 현신한다 해도 같이 합심하면 현신한 마왕을 소멸시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라이안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미 정신이 파괴된 미켈리우스는 땅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 미켈리우스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손을 내민 라이안이 부유마법으로 미켈리우스가 땅에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게 만들며 서서히 땅에 내려놓았다.
“이런, 할아버지들이 그들을 죽이기 전에 같은 방법으로 그 녀석들도 이렇게 만들어야겠다.”
라이안은 부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다다익선! 다다인선…….”
이러한 생각으로 성격이 급한 혁마소가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돌리려던 라이안은 멀리서 천천히 자신이 있는 곳으로 날아오는 그를 볼 수 있었다.
라이안은 혁마소를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미 혁마소의 손에는 붉은 무엇인가가 들려 있었고 그의 손은 피범벅이었기 때문이었다.
혁마소의 손에 들린 것은 바로 혁마소를 쫓아갔던 제미리스의 드래곤하트였다.
그런데 다른 방향을 보니 갈천혁 역시 혁마소와 같은 것을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크윽, 갈 할아버지도 드래곤하트를 빼온 거예요?”
“어흠, 뭐… 혹시 몸에 좋을까 해서…….”
갈천혁이 어색한 듯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라이안에게 거의 다 다가온 혁마소가 그런 갈천혁을 보며 말했다.
“갈가야, 너 역시 나와 다를 바가 없구나. 크하하하.”
혁마소가 갈천혁을 보며 놀렸지만 갈천혁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
‘이즈리스에게 이것을 준다면 큰 진전이 있겠지… 허허허.’
오히려 제자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드래곤하트를 뽑아온 갈천혁이었다.
이즈리스 남작의 마차가 도착한 마을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수도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데브릭 공작가의 영지성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이 마을 역시 데브릭 공작가의 영지 안에 속해 있는 곳이었다.
마차가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마을에 있던 상인들이나 마을 사람들의 이목이 마차에 집중되었다.
이즈리스 남작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았을 때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헤인드와 디로안, 그리고 라드이라와 같은 마차에 탄 이즈리스 남작은 그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무래도 마차는 팔거나 버려야 할 것 같군.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이즈리스 남작의 말을 들은 디로안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미 마을 사람들 중 마차를 본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목을 피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그들은 텔레포트를 이용해 이동해 왔기에 아직까지는 자신들이 왔다는 소문이 퍼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멀리서 몸을 숨긴 채 마차를 주시하던 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급히 벗어났다는 것을 이들이 알 리 없었다.
이미 각 나라의 정보처에서는 포스안 제국으로부터 도주한 마차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상태였다. 포스안 제국에서 모든 정보를 개방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던 자들은 바로 데브릭 공작의 사람이었다. 아마도 빠른 시일 내에 이 사실이 데브릭 공작의 귀에 들어가리라.
이즈리스 남작은 마차는 그렇다 쳐도 이대로 모습을 보이며 돌아다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의류점에 가서 후드를 몇 벌 사는 것이 좋겠군. 이대로 들어간다면 여관에 가서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거야. 루시 공주님과 에나의 미모가 상당하니 파리들도 많이 꼬이겠지.”
이즈리스 남작의 말에 디로안이 동의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우선 의류점에 들렸다가 각자 한 벌씩 입을 만한 후드를 사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차는 의류점 앞에 섰다. 그리고 마부만 내려 몇 벌의 후드를 사서 마차 안으로 건넸다.
그리고 묵을 곳을 고르다가 그나마 마을에서 가장 좋은 여관 앞에 섰다.
마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창을 통해 조심스레 확인한 뒤 내렸다. 모두 후드를 깊이 눌러 쓴 상태였다.
마구간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두 사내가 다가오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여관에 머무실 겁니까?”
“그렇습니다.”
대화는 대부분 이즈리스 남작이 맡아서 했다.
“저희가 말을 맡아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말과 마차의 관리는 여기 이 사람들이 할 것입니다. 말을 넣을 위치만 가르쳐주십시오.”
이즈리스 남작이 자신의 마부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마구간을 담당하는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즈리스 남작과 일행은 같은 색의 후드를 걸친 채 여관 안으로 들어섰고 마부들은 말과 마차를 챙겼다.
일행들이 여관 안으로 들어서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범한 여행자로 보았는지 금세 다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관은 생각보다 넓고 좌석 또한 많았다.
나라 안이 상당히 어수선한지 그들은 제각기 나라와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즈리스 남작이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종업원으로 보이는 소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서 오세요. 숙박과 식사를 같이 하실 건가요?”
“그래. 2인실 하나와 3인실 두 개, 그리고 4인실 하나를 줬으면 좋겠다. 식사는 고정이 아닌 선택으로 할 것이니 매번 따로 계산하마.”
숙박과 식사를 동시에 하는 경우에는 정해진 음식이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조금 더 저렴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용병들이 그러한 것을 선호했다.
반면에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여행자는 식사를 매번 따로 선택할 수 있었다. 돈이 있으니 굳이 질이 떨어지는 식사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저녁때가 다 되었는데, 식사는 지금 하실 건가요?”
“그러도록 하마.”
“그럼 방의 열쇠를 가져올 것이니 저쪽에 앉으셔서 미리 메뉴를 골라주세요.”
그들은 한쪽의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둘러앉았다.
얼마 안 있자 소년이 다가오며 방의 열쇠를 주었다.
일행들은 간단한 오리 고기와 빵, 그리고 따뜻한 스프를 시켰다.
그들은 주위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앉은 오른쪽 테이블에 앉은 세 명의 남자는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술이 올라 있는 듯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고 하는지 원! 제국이 뭐가 아쉬워 마족과 손을 잡느냐 말이야!”
“그러게 말이야. 에드코르 놈들의 머리에는 똥만 찬 것인지… 마족들이야 당연히 마왕을 소환하려는 것이 목적 아니겠어? 그렇다면 이 대륙 전체가 위험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어리석은 족속들 같으니라고.”
이즈리스 남작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일행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들의 말을 들으니 에드코르 제국이 마족과 손잡았다는 소식만 알고 있는 듯하군. 포스안 제국에서의 일이 이곳까지는 전해지지 않은 것 같다.”
라드이라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소문이라는 것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열흘은 있어야 이곳까지 전해지겠지요.”
모두가 라드이라의 말에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에나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확실히 라이안 오빠는 대단해요. 이렇게 장거리 텔레포트를 하려면 정말 엄청난 마나가 필요한데 말이에요. 아마 포스안 제국의 가시네이스 님도 이 정도의 텔레포트를 했다면 상당히 지치셨을 것이에요. 그런데 라이안 오빠는 너무도 멀쩡했잖아요? 무사…하겠죠?”
에나의 말속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런 에나에게 이즈리스 남작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님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스승님과 혁마소 어르신께서는 거의 신과도 같은 힘을 가지고 있으신 것 같다. 그분들이라면 추적자들이 드래곤이라 해도 이기고 돌아오실 거야.”
에나를 진정시키고자 이즈리스 남작이 한 말에 루시 공주 또한 안심한 듯 굳은 표정을 약간 풀었다.
그런데 역시나 공을 들여놓으면 초를 치는 사람이 있었으니 헤인드가 딱 그러했다.
“그런데 세 사람 모두 내릴 정도면 추적자가 상당히 강했나봐?”
헤인드의 말에 일행 모두가 고개를 돌려 헤인드를 쳐다봤다.
“응? 왜? 내가 뭐 잘못 말했어?”
일행들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행동하는 헤인드였다.
디로안이 고개를 흔들며 그런 헤인드의 어깨를 잡았다.
“너는 어째서 발전이 없는 것이냐? 다들 그게 걱정되어서 이런다는 걸 모르겠냐? 내린 사람들 하나하나가 일당 수만의 검사인데 그들이 다 내렸다면 당연히 그만큼 큰 상대라는 것을 몰라서 우리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잖아?”
이제야 분위기를 깨달은 헤인드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일행들에게 사과했다.
“아… 미, 미안… 다들, 미안… 그런 것이었구나…….”
그런 헤인드를 보던 일행 모두가 고개를 숙이더니 세차게 흔들었다. 정말 못 말린다는 표현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고개를 흔들고 있을 때 식사가 나왔다.
역시나 헤인드는 다시 표정이 밝아지며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디로안이 한심하다는 듯 헤인드를 쳐다보았다.
“식신의 재림이로구만… 에휴…….”
그들은 식사를 하며 다른 테이블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다. 작은 것 하나라도 최대한 정보를 모아야 했기 때문이다.
에드코르 제국이 마족과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했던 테이블의 바로 옆에서는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데브릭 공작이 계속해서 사람을 모으고 있다고?”
“전방에 있는 우수한 기사들도 다른 사람으로 채워 넣고 다 불러들이고 있다는 말이 있던데? 벌써 모인 기사만 해도 수백이라고 하더군.”
“그럼, 뭐야? 데브릭 공작이 역모라도 꾸미고 있는 것인가?”
털이 덥수룩한 사내가 말하자 양 옆에 있던 두 사내가 서둘러 털이 덥수룩한 사내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쉬이잇! 자네, 미쳤는가? 어디 함부로 역모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인가?”
“그러게 말이네. 누가 들으면 자네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지도 모른단 말일세.”
주위를 둘러보며 경계를 하던 세 사람은 후드를 눌러쓴 일행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자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어, 어서 나가세나.”
“그러자고. 여기 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두렵군.”
“제미르! 여기 돈 놔두고 가마.”
제미르라고 불린 종업원 소년이 급히 그들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벌써 가시게요? 아직 술하고 음식도 다 안 드셨잖아요?”
하지만 그들은 제미르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문을 열고 사라져 버렸다.
제미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웬일이래, 매번 술과 음식이 적게 나온다고 성을 내던 사람들이?”
제미르는 의문을 풀지 못하고 테이블의 접시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루시 공주는 조금 전 나간 세 사람의 말을 듣고는 불안함을 느꼈다.
‘설마 데브릭 공작이 역모를?’
디로안이 루시 공주의 표정을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데브릭 공작이 아무리 사병과 기사들을 모은다고 해도 쉽게 역모를 하기는 힘들 겁니다. 국왕파의 바치스 공작님과 와이파른 후작님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팔튼이 있으니 안심해요, 루시.”
하지만 갑작스럽게 큰일을 겪기 시작한 루시 공주로서는 매번 어떠한 일이 닥칠 때마다 몸이 떨려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팽팽했던 세력이 저로 인해 변해가고 있어요. 어딜 가도 저 때문에 싸움이 그치질 않아요. 아버지께서 저로 인해 화를 입지는 않으실지 걱정돼요…….”
그렇게 잔잔한 떨림을 멈추지 못하는 루시 공주의 어깨를 뒤에서 잡아주는 손이 있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바로 라이안이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따뜻한 손이 자신의 어깨를 감싸자 루시 공주는 잠시 흥분되었던 마음이 가라앉음과 동시에 편안함을 느꼈다.
“라이안…….”
루시 공주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갈천혁과 혁마소, 그리고 라이안이 있었다.
그들을 확인한 일행들은 크게 반가워했다.
“라이안, 돌아왔군.”
“라이안 오빠!”
“돌아 오셨군요, 형님. 스승님들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갈천혁이 웃으며 이즈리스 남작의 인사를 받았다.
“걱정했나 보구나.”
“세 분이 모두 내리셔서 추적자가 상당히 강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리 돌아오셔서 천만다행입니다.”
“허허허, 별로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단다. 오랜만에 몸을 풀었을 뿐이지. 그건 그렇고 너에게 줄 선물이 있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선물이요?”
“그런 것이 있단다. 나중에 가르쳐주마.”
“알겠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혁마소는 잠시 뜨끔했다.
‘저 늙은이가 저런 속셈으로 그랬단 말인가?’
갈천혁은 제자를 걱정해 뽑아온 드래곤하트였지만 자신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뽑아온 것이었다.
이전에 갈천혁에게 자신과 같은 생각으로 드래곤하트를 취했다는 소리를 한 것이 부끄러워지는 혁마소였다. 그리고 이즈리스 남작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주친 갈천혁의 눈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크포민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꼬…….’
갈천혁과 이즈리스 남작이 너무 친근하게 지내자 그것이 부러워지며 아크포민이 생각나는 혁마소였다.
그 시각 데브릭 공작의 병사와 기사들은 왕성을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한 소식을 들은 바치스 공작은 크게 노하며 데브릭 공작이 있는 집무실의 문을 부술 듯 쳐들어왔다.
“이게 무슨 짓이오! 그 누가 있어 왕성을 포위한단 말이오? 도대체 목적이 무엇이오!”
흥분한 바치스 공작에게 데브릭 공작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타국들이 우리 히매인 왕국을 넘보고 있으니 내 당연히 충신으로서 국왕전하를 보호하고자 왕성을 호위하라 일렀소. 그게 무슨 잘못이란 말이오?”
데브릭 공작의 말을 들은 바치스 공작은 실핏줄이 터질듯 붉어진 눈으로 데브릭 공작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타국이 위협을 가한다면 당연 국경의 수비를 더욱 강화해야 하는 것이 아니오! 당장 왕성 주위를 포위한 군사들을 물러가라 하시오!”
“아마도 그대와 내가 생각하는 충성은 다른 것인가 보오. 나는 왕성을 지키며 국왕전하를 모실 터이니 바치스 공작은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그대의 군사를 국경에 배치하면 되는 것이 아니오?”
“이잇!”
주먹으로 데브릭 공작의 면상을 한 대 쳐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바치스 공작은 꾹 눌러 참으며 생각했다. 바치스 공작도 바보는 아닌지라 데브릭 공작의 속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역모를 꾸미려 한단 말인가? 이자가 진정!’
이미 데브릭 공작의 병사가 왕성의 성벽을 차지했으며 그 성벽 밖의 둘레로 병사들과 기사를 배치했다. 이러한 형태는 왕성 안에서 밖으로 나가기도 힘들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는 것이었다. 성안에 있는 모든 귀족들이 성이라는 큰 감옥에 붙잡힌 것과 같았다.
바치스 공작은 자신이 왕성을 벗어나 자신의 영지에 있는 군사들을 이끌고 왕성을 탈환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대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오! 두고 보시오!”
쾅!
콰직!
바치스 공작이 데브릭 공작의 책상을 주먹으로 치자 약간의 금이 갔다. 그렇게 바치스 공작은 성을 내며 데브릭 공작의 집무실을 벗어났다.
바치스 공작이 나가고 나자 한쪽 책장 뒤가 열리더니 라핀 후작과 간테츠 백작 등 여러 귀족들이 걸어 나왔다. 아마도 음모를 꾸미던 중 급히 자리를 피했던 모양이었다.
라핀 후작이 데브릭 공작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아무래도 시행해야 할 듯싶습니다.”
“시행이라… 이미 내 사람들에게 소식을 들었소, 라핀 후작. 이미 일을 마치고 그들을 잡아두었다고 하더군.”
라핀 후작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허허허, 이미 아셨습니까? 저는 미리 일을 치르고 나중에 말씀드리려고 했었답니다.”
역시나 데브릭 공작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라핀 후작, 내 그대가 마음에 드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런 빠른 일처리 능력이 아니겠소? 후후후.”
도대체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알 길이 없는 자들이었다.
밤이 되자 왕성은 깊은 어둠에 싸였다.
왕성은 침입자를 대비해 낮과 같이 밝아야 했지만 웬일인지 오늘은 더욱 어둡기만 했다.
크호른 왕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창을 내다보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데브릭 공작이 상당한 강수를 두는군. 미리 대처할 생각을 못한 것이 잘못이었구나.”
크호른 왕은 몇몇 국왕파 귀족들의 신분 상승으로 어느 정도 귀족파보다 우위에 섰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신분이 상승했다고 해도 짧은 시간에 규정된 군사를 모으기는 힘든 것이었다.
지금껏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던 귀족파의 귀족들은 오랫동안 사병들을 유지해왔으며 근근이 그 수를 속여 어둠속에 숨겨두기까지 했었다.
신분의 우위를 점할 수는 있었으나 군사적으로는 아직 너무도 부족했던 것이다.
크호른 왕이 자신의 잘못을 탓하며 걱정하고 있을 때 문 밖에 있는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왕전하, 침소에 드실 시간이옵니다.”
왕족의 경우에는 항상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활동을 해왔다. 그래야 언제든 기사들과 중요 귀족들이 왕을 보호하기 위해 모일 수 있지 않겠는가?
크호른 왕이 왕성의 성벽에서 차마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눈을 감고 몸을 돌려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크호른 왕이 침소에 들 시간임을 안 여러 하녀들과 기사들이 그런 크호른 왕을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자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크호른 왕은 침실로 이동하면서도 계속해서 한숨을 쉬었다.
하나의 깨끗하고 하얀 문이 있는 방에 도착하자 하녀들이 문을 열었다.
엘리디아 왕비가 창가를 보던 것을 멈추고 크호른 왕이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엘리디아 왕비를 보는 크호른 왕 또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셨습니까?”
크호른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들어온 하녀들을 물러가게 했다.
“너희는 나가 있거라. 왕비와 할 말이 있느니라.”
본래 왕의 침소에는 또 다른 안쪽 방이 있었다.
바로 왕과 왕비가 필요로 할 때 빠르게 그 말을 이행하기 위함이었다.
하녀들이 나가자 엘리디아 왕비는 크호른 왕에게 다가와 그에게 안겼다.
와락!
“왕비…….”
크호른 왕에게 안겼다가 고개를 든 엘리디아 왕비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왜 기사들이 성벽에 저리도 많이 서 있는 것인가요? 하녀들 말로는 데브릭 공작의 소행이라고 들었답니다. 혹, 그가 흑심을 드러낸 것이 아닌지요?”
엘리디아 왕비 또한 데브릭 공작의 입지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기에 불안해하는 것이었다.
크호른 왕은 그런 왕비의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오.”
“정말 그럴까요?”
“바치스 공작이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강구한다고 했으니 안심해도 될 것이오. 게다가 그의 곁에는 와이파른 후작과 팔튼 후작이 있지 않소? 다 잘될 것이오.”
엘리디아 왕비가 떨어지자 크호른 왕이 창가로 다가가며 말했다.
“삭막한 저들만 있어서 그런지 왕성 내부가 무척이나 어둡구려… 내 왕성이 이리도 어두울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소.”
그런데 그 순간!
크호른 왕은 창가로 비치는 광경을 보며 크게 놀랐다.
엘리디아 왕비가 얼굴의 살갗을 벗기며 칼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얼굴 살이 벗겨지자 나타난 얼굴은 마른 체형의 남자였다. 그는 바로 암살자였다.
크호른 왕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진정해야한다. 지금 문 밖에는 기사들이 있으니 조금만 잘 대처한다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크호른 왕은 창을 바라보며 칼을 들고 있는 그가 무엇인가 종이 같은 것을 찢는 것을 보며 몸을 빠르게 옆으로 날렸다. 그리고 벽에 걸려 있는 칼을 집어 들고는 빠르게 뽑으며 소리쳤다.
“네놈은 누구냐! 왕비는 어찌한 것이냐!”
그런데 흐늘거리며 고개를 돌려 크호른 왕을 쳐다보는 암살자는 너무도 침착했다.
“흐흐흐, 어찌되기는 뭘? 침대 밑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잖아?”
암살자의 말을 들은 크호른 왕은 미처 보지 못했던 침대 방향을 돌아보았다.
침대 아래의 한 부분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네, 네 이놈! 거기 아무도 없느냐! 침입자다! 어서 이자를 잡아라!”
크호른 왕은 목이 쉴 듯이 외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사들은 왕의 침소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크호른 왕이 침입자와 침소의 문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을 때 암살자가 약간 긴 단검의 날을 긴 혀로 핥으며 말했다.
“크흐흐, 내가 왜 네놈이 움직일 때 그것을 잡지 않았다고 생각해? 그것은…….”
암살자의 목소리는 느끼하게 늘어졌고 곧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조금 전에 찢은 종이가 마법스크롤이었거든… 흐흐흐.”
암살자는 무척이나 즐거운 듯이 웃었다.
크호른 왕은 몸 전체에 소름이 돋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긴장한 그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문까지만 이동하면 된다. 마법은 분명 방음마법일 것이다. 저기까지만 가서 문을 연다면 기사들이 알아서 처리해줄 것이다.’
크호른 왕은 검을 든 채로 바로 오른쪽에 있는 꽃병을 들어 암살자에게 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몸을 날려 문 쪽으로 달렸다.
푸욱!
“컥!”
크호른 왕은 분명 암살자가 아주 부드럽게 꽃병을 피하기는 했어도 자신이 문 지척에 다다랐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손이 문의 손잡이에 다다랐을 때 성공했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은 크호른 왕의 착각이었다.
자신을 죽이러 온 암살자가 이미 수천 번의 암살을 이행해온 특급 암살자임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크호른 왕이 암살자에게서 눈을 돌려 문의 손잡이를 바라본 순간 그는 자신의 심장이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무엇인가 파고드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제야 크호른 왕은 볼 수 있었다.
암살자가 아주 안정적인 자세로 자신의 심장에 꽂은 칼을 잡은 채 웃고 있는 것을…….
크호른 왕은 자신의 심장에 꽃인 칼을 보며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오늘 왕성이 그토록 어두웠던 이유가 바로 암살자를 들여보내기 위함이었구나… 크윽!’
크호른 왕은 서서히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끼며 쓰러졌다.
암살자는 부드럽게 자세를 바로 잡으며 중얼거렸다.
“나를 너무 쉽게 봤어, 크호른 왕. 크흐흐흐.”
크호른 왕은 쓰러진 채로 마지막으로 힘들게 중얼거렸다.
“루시… 루시를 지켜야 하거늘… 라이안 님…….”
이 말을 마지막으로 크호른 왕의 눈에서는 생기가 사라졌다. 죽은 것이다.
히매인 왕국의 19대 왕인 크호른 왕은 이렇게 어이없게 암살자에 의해 생을 마감했다.
암살자는 곧 연기가 사라지듯 사라졌다.
왕의 침소는 피 냄새로 진동했다.
어젯밤의 일은 악몽이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창가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두 명의 하녀가 왕의 침소로 걸어와 왕의 침소를 지키고 있던 네 명의 기사들에게 각기 미소를 보이며 인사했다. 기사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명 중 한 하녀가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국왕전하, 기침하셔야 할 시간이옵니다.”
하녀는 그 말을 끝으로 조금 기다렸다. 안에서 아무런 말이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가끔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하는 하녀였다.
“국왕전하, 기침하셔야 할 시간이옵니다.”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말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기사들도 뭔가 이상하여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녀도 다른 하녀를 보았고 곧 한숨을 깊게 들이마시다가 내뱉은 뒤 크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
“국왕전하, 그럼 무례를 무릅쓰고 들어가겠나이다.”
하녀가 문을 열자 왕의 침소 안쪽에서 비릿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근위기사들은 그 냄새가 무슨 냄새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피 냄새다.”
“설마!”
한 근위기사가 말함과 동시에 안으로 들어선 하녀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근위기사들이 하녀들을 밀치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이, 이럴 수가!”
“비상! 국왕전하께서 피살당하셨다!”
“국왕전하께서 피살당하셨다!”
히매인 왕성 전체가 이 일로 발칵 뒤집혔으나 그것은 데브릭 공작의 군사들로 둘러싸여 있는 왕성 안에서의 일일 뿐이었다.
왕성 밖에서는 단지 왕성의 경비가 강화되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바치스 공작은 소식을 듣자마자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리고 국왕의 침소에서 금빛의 천으로 싸여 들려나오는 시신을 볼 수 있었다.
몇몇 귀족들은 국왕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으나 데브릭 공작과 라핀 후작 등은 오히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본 바치스 공작은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창!
“네 이놈! 데브릭! 네놈이 진정 이 나라의 신하란 말이냐!”
바치스 공작이 흥분하며 검을 뽑아들자 데브릭 공작의 옆에 있던 몇몇의 기사들 또한 검을 뽑았다.
“검을 거두십시오! 바치스 공작각하!”
“네, 네놈들이!”
바치스 공작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공격하려던 찰나 데브릭 공작이 기사들을 보며 말했다.
“검을 거두어라. 그래도 명색이 이 나라의 공작위에 있는 분이 아니시더냐?”
처러럭!
척!
데브릭 공작은 크게 흥분한 바치스 공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듯하오, 바치스 공작. 왜 나에게 검을 들이댄단 말이오?”
“네놈이 국왕전하를……!”
흥분한 바치스 공작의 말을 데브릭 공작이 가로챘다.
“증거 있소?! 뭔가 타당한 증거를 가지고 와야 할 것 아니오? 내가 무얼 어찌했다고 이러는 것이오?”
“이잇!”
바치스 공작은 결국 참을 수밖에 없었다.
심증은 있었다. 그러나 증거가 없다. 아니, 증거가 있다고 한들 이미 데브릭 공작을 벌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데브릭 공작…….”
바치스 공작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대는 곱게 죽지 못할 것이오. 내 반드시! 이 일을 밝혀내고 말 것이오.”
“그래주시면 나 역시 고맙겠소. 하루빨리 범인을 밝혀내시길 바라오.”
데브릭 공작은 말과 함께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 나갔다. 그를 따르던 귀족들 역시 그를 따라 나갔다.
바치스 공작은 서둘러 금빛 천에 싸인 채 옮겨지고 있는 시신을 따라가 기사들에게 명했다.
“잠시 멈추어보아라! 잠시… 멈추거라…….”
걸음을 멈춘 두 기사는 바치스 공작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바치스 공작은 시신에 다가와 천을 살짝 들어올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말하던 크호른 왕의 얼굴이 보였다.
바치스 공작은 크호른 왕을 보자 더 이상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크흐흑, 어찌하시다가… 어찌하시다가 이리 되셨습니까… 제게 미리 도움을 청하셨어야죠… 흐흐흑… 죄송합니다.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형님…….”
그랬다.
바치스 공작과 크호른 왕은 어렸을 때부터 절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어린 시절 사냥을 같이 다닐 때에도 바치스 공작이 늘 말했었다.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형님을 지키겠다고…….
그렇게 한참을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던 바치스 공작은 한 팔로 눈물을 닦고 언제 울었냐는 듯 일어나며 말했다.
“신 바치스 드 스피린, 반드시 국왕전하의 복수를 하겠나이다. 부디 편히 가시길…….”
잠시 고개를 숙여 묵념을 하던 바치스 공작은 크호른 왕의 시신을 다시 천으로 덮었다.
크호른 왕의 시신을 옮기던 기사들도 그런 바치스 공작을 보며 측은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되었다. 국왕전하를 뫼시어라.”
“알겠습니다.”
기사들이 다시 이동을 시작하자 바치스 공작은 점점 멀어지는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야 국왕전하의 복수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바치스 공작은 오늘 저녁 왕성을 벗어나고자 마음먹었다.
같은 시간, 라이안 일행은 여관은 아래층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후드를 걸치고 있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조금 음침했다.
갈천혁은 그런대로 조용히 스프를 먹고 있었으나 혁마소는 인상이 잔뜩 찌그러진 상태였다.
“이거 굳이 이렇게까지 하고 있어야 하는 거냐? 이거야 원, 불편해서.”
혁마소의 말에 디로안이 웃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답니다, 혁 할아버지. 이렇게 하고 다녀야 남의 이목을 덜 받아요. 그리고 나중에 도보로 이동할 때 후드를 벗으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후드를 입었던 사람들인지 못 알아볼 테니까요.”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혁마소는 못마땅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 천마가 이런 구질구질한 후드를 입고 쥐새끼처럼 숨어 있어서야 원…….”
혁마소는 이렇게 자신을 숨기고 다니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그때 라이안이 할 말이 있는 듯 일행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전 잠시 왕성의 상황이 어떠한지 둘러봐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다녀올 때까지 모두들 이곳에 머물러 있어요. 어제 데브릭 공작의 사병들이 왕성으로 모여들었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그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네요. 알아보고 난 후 왕성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겠어요.”
라이안의 말에 역시나 가장 먼저 쳐다보는 것은 루시 공주였다.
루시 공주는 현재 모든 일에 깜짝깜짝 놀랄 만큼 쇠약해져갔다. 그래서 별일 아닌 것 하나에도 과하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 것을 알기에 라이안이 먼저 왕성의 상황을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었다.
라이안은 루시 공주의 시선을 받으며 말했다.
“걱정 말아요. 왕성에 아무런 일도 없다면 우린 오늘 중으로 왕성으로 입궐할 수 있을 거예요.”
“네…….”
루시 공주는 자신의 아버지인 크호른 왕이 걱정되었다. 혹시나 변을 당한다면 그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만 없었다면… 나만 없었다면…….’
이러한 생각으로 루시 공주는 점점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식사가 끝난 후 헤인드와 디로안은 무기를 점검하러 대장간으로 갔다. 에나는 루시 공주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시장에 나갔다.
에나 역시 6서클 마스터의 경지에 있었기에 아무도 단둘이 나가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호위병으로 6서클 마스터라면 거의 국왕급 호위가 아닌가?
현 히매인 왕국의 궁정마법사로 있는 라핀 후작이 6서클 마스터였다.
여관에는 갈천혁과 혁마소, 이즈리스 남작과 라드이라만이 남았다.
갈천혁은 자신이 얻게 된 드래곤하트를 이용해 이즈리스 남작의 경지를 올려주고자 이즈리스 남작과 라드이라가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문을 열려고 할 때 이즈리스 남작과 라드이라의 목소리가 들려와 자신도 모르게 대화 내용을 듣게 된 것이다.
심각한 듯한 대화 내용에 발길을 돌리려던 갈천혁은 라드이라의 목소리를 들었다.
“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라피네 신을 모시는 신관인 제가 어찌 해야 하는지…….”
갈천혁 역시 포스안 제국이 신성국가이며 주신인 라피네 신을 믿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다.
이즈리스 남작은 라드이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어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네는 절대로 루시 공주님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네. 그리고 주신이신 라피네 신이 자네에게 직접 신탁을 내린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모든 신도들이 신탁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즈리스 남작은 라드이라가 얼마나 큰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 어찌 팔라딘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즈리스 남작은 라드이라에게 조금 잔인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는 아무래도 한 가지 선택을 해야 할 것 같군. 자네가 모시는 신인지 아니면 자네의 친구인지… 자네 역시 이것으로 고민하고 있겠지만 별 방도가 없는 것 같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군.”
“아닙니다. 어차피 제가 겪어야 할 고난입니다.”
이즈리스는 풀이 죽어 있는 라드이라를 보며 물었다.
“혹, 자네의 신성력에 문제라도 있는가? 신성력이 줄어든다거나… 뭐 그런 것 말일세.”
이즈리스 남작의 말에 라드이라는 잠시 이즈리스 남작을 바라보다가 창가로 보이는 하늘을 보았다.
“라피네 신께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 큰 뜻을 어찌 제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이러한 고충을 겪고 있는 저의 신성력은 과할 정도로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라드이라의 말을 들은 이즈리스 남작도 라드이라가 바라보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과연 라피네 신은 어떠한 생각으로 자네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설마, 루시 공주를 해하라는 뜻은 아닐까요?”
라드이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이즈리스 남작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어찌 그런 한 가지 뜻으로만 생각한단 말인가? 만약, 루시 공주를 해할 생각이 있다면 차리라 이곳을 떠나게. 라이안 형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한 것 아닌가… 그 다음은… 자네와 우리 모두가 적으로 만나게 되겠지…….”
이즈리스 남작은 라드이라가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길 바라며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리고 나가기 직전 한 가지 말을 남겼다.
“만약 자네가 떠나야 한다면… 떠나서 우리와 적이 되고자 마음먹었다면… 지금 라이안 형님이 안 계실 때가 적기라네. 부디 신중히 생각하게나.”
터덕.
이즈리스 남작이 나가고 문이 닫히자 라드이라는 더욱 큰 고뇌에 빠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앙심과 라이안… 이 둘 중 하나는 버려야 했기에…….
이즈리스 남작은 방문을 닫으며 갈천혁을 볼 수 있었다.
“스, 스승님?”
“미안하구나. 잠시 너를 만나러 왔다가 이야기를 들어버렸구나.”
“아닙니다. 그러실 수도 있는 것이지요.”
“잠시 나와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알겠습니다.”
갈천혁이 복도를 통해 아래로 내려가자 이즈리스 남작 또한 그 뒤를 따라갔다.
여관의 건물 뒤에는 공터가 있었고 누군가 쉴 수 있도록 몇 개의 의자도 만들어져 있었다.
갈천혁과 이즈리스 남작이 건물을 돌아 뒤로 왔을 때 공터에서는 여관에 머물고 있는 용병들로 보이는 몇몇의 사람들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갈천혁이 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내 옆으로 앉으려무나.”
“네, 스승님.”
갈천혁은 검술을 연마하는 용병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너의 생각으로는 어떠하더냐? 그 아이가 돌아설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이즈리스 남작은 말을 하기 힘들어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갈천혁은 먼 곳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듯 입을 열었다.
“흠… 라이안은 외로운 인생을 살아왔단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약 100년 이상을 홀로 살아왔지. 같은 환경의 비슷한 사람들과 살아왔다면 그럴 일이 없었겠지만 라이안은 조금 특별하단다.”
“특별하다니요?”
“보통 인간보다 좀 더 오래 살아간다는 말이란다. 약 천 년 가까이 살아가는 듯하더구나.”
이즈리스 남작은 갈천혁의 말을 듣고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천 년이요? 마치 엘프와 같군요. 천 년이나 살 수 있다니…….”
“라이안은 평생을 외로움 속에서 살아왔단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 했으니 오죽하겠느냐? 그런 라이안이 이곳에 와 저 아이들에게 정을 붙였으니 라이안에게는 가족과 같이 소중할 것이다. 난… 그런 라이안이 그들에게서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갈천혁의 말을 들은 이즈리스 남작이 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 역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심각해지는 듯하자 갈천혁이 서둘러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엘프라는 것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구나.”
“아, 잘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엘프라는 종족은 인간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 지능종족입니다. 그리고 숲의 종족이라고도 한답니다. 숲을 가꾸며 정령을 부리고 활을 아주 잘 쏘지요.”
“다른 종족이라…….”
갈천혁은 이전의 세계에서 흑인과 백인, 그리고 황인으로 나누듯 그런 차이로 이해했다.
“차라리 라이안이 그 엘프라는 종족과 가장 먼저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그런 외로움을 느낄 필요도 없었을 덴데…….”
이즈리스 남작 역시 궁금하여 물었다.
“스승님이 사시던 곳에는 인간만 있었습니까?”
“그러했지. 피부색이 다르기는 했지만 모두 같은 인간이었지.”
고개를 끄덕인 이즈리스 남작이 이곳에 사는 종족들을 설명했다.
“여기와는 다르군요. 이곳은 세 지성종족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바로 드워프, 엘프, 그리고 인간이지요. 드워프들은 땅의 종족이라고 하며 광산에서 광물을 캐내며 살아간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무기나 세공품은 인간이 사는 곳에서 엄청난 고가에 팔릴 정도로 인간들이 따라갈 수 없는 대단한 장인들입니다. 엘프 종족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숲의 종족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인간들이 있는 것이지요.”
갈천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곳의 드래곤이라는 요물도 상당한 지성을 가지고 있더구나. 그것들은 어떠한 것들인지 혹, 아는 것이 있느냐?”
“드래곤은 요물이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요물이라는 것을 혼혈로 인해 이상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들에게 붙이지, 드래곤에게는 그러한 말을 하지 않거니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인간들에게 있어서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이죠. 드래곤 역시 모든 지성 종족들과 같이 처음부터 주신이 만든 창조물이며 이곳 중간계의 균형을 지키라는 주신의 뜻을 가지고 있지요.”
“…….”
“물론 그만큼 엄청남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 마계로부터 소환되는 마왕들을 드래곤들이 막고 물리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알고 있는 것들도 옛 문헌으로 내려오는 것들에서 알게 된 것들입니다.”
“흠… 그렇구나.”
갈천혁은 왠지 자신이 전날 드래곤을 죽인 것이 실수가 아니었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즈리스 남작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럼 드래곤하트라는 것은 인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드래곤하트라는 말에 이즈리스 남작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드래곤하트요? 그것은 보물 중 보물입니다. 제국에서도 한 개 정도 가지고 있을까 말까한 대단한 물건이지요.”
드래곤의 심장을 물건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했던 갈천혁이 다시 되물었다.
“흠… 물건이라… 그렇다면 그 제국들은 어떻게 드래곤하트를 얻게 되는 것이지?”
“이야기로 듣기로는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힘을 합쳐 갓 성룡이 된 드래곤을 잡음으로써 얻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인간들의 피해는 엄청나지요. 심지어 전멸하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합니다.
“점멸…….”
“옛날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몇 명의 드래곤 헌터들이 악한 드래곤을 사냥하고 그 드래곤의 심장을 제국에 바쳤다는 이야기도 있었지요. 하지만 모든 것이 소문일 뿐 실제로 제국에 드래곤하트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더 어렸을 때 잡으면 되는 것이 아니더냐? 혹, 그 드래곤하트의 효능이 떨어져서 그러는 것이냐?”
“아닙니다. 드래곤의 새끼를 해츨링이라고 하는데 그 해츨링의 드래곤하트 역시 인간에게는 크나큰 보물이지요. 하지만 드래곤들에게는 하나의 율법이 있습니다. 성룡이 죽는다면 그것을 그의 운명이라 생각하지만 해츨링을 건드리는 존재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어느 한 국가가 해츨링을 죽이면 수많은 드래곤이 나서서 그 국가를 한순간에 멸망시킨답니다. 그것이 해츨링을 건드리지 않는 이유이지요.”
갈천혁은 이즈리스의 말을 경청했다.
“실제로 5천 살이 넘는 웜급의 드래곤 하나면 보통 한 왕국 정도와 비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드래곤과 싸운 나라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니 쇠약해질 것이고 곧 주변 나라들의 침략으로 인해 망하게 되는 것이니, 그 어떤 나라도 드래곤에게는 굽힐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이것 또한 전쟁을 했을 때입니다. 실제로 드래곤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수도로 들어온 뒤 드래곤으로 현신한 다음 왕성에 브레스 한 방 날리면 그냥 거기서 끝나는 것이죠.”
이즈리스 남작의 설명을 들은 갈천혁은 자신이 드래곤을 잡은 것이 그리 큰 잘못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안심했다. 그리고 자신의 품속에 손을 넣으며 남들이 보지 못하게 품 안에서 무엇인가를 이즈리스 남작에게 보여주었다.
“여긴 남들 눈이 있으니 우선 이렇게 보거라. 내가 너에게 주려고 하는 선물은 바로 이것이란다.”
갈천혁의 말에 잠시 고개를 숙여 그의 품에 있는 물체를 본 이즈리스 남작은 순간 헛바람을 내뱉었다.
“헉! 그, 그것은! 읍!”
갈천혁은 이즈리스 남작이 실수를 할까 봐 급히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놀라는 것을 보니 이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보구나. 우선 진정하거라. 남의 시선이 많지 않느냐?”
이즈리스 남작이 눈알을 돌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갈천혁이 그가 알아들었음을 알고 입에서 손을 떼었다.
이즈리스 남작은 급격한 흥분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스승님, 그것이 설마 그것인지요? 책으로만 보았던 그것이 정말 그것입니까?”
보는 눈이 많아 드래곤하트라고 말할 수 없는 이즈리스 남작은 답답할 뿐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느니라. 다른 녀석들은 벌써 검강을 시전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 가는데 너만 너무 더딘 것 같더구나. 그래서 도움이 될까 싶어 이것을 주려고 한단다.”
놀랍기는 했지만 이즈리스 남작은 드래곤하트가 자신의 경지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있으면 어떠한 마법도 시전할 수 있다는 것은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검사의 경지를 높일 수 있다는 말을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갈천혁은 이즈리스 남작을 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허허허, 그것은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지 안 되는 것은 아니란다. 우선 방으로 올라가자꾸나.”
이즈리스 남작은 자신의 경지를 빠르게 올릴 수 있다는 말에 흥분된 마음으로 갈천혁을 따라갔다.
갈천혁은 이즈리스 남작을 자신과 혁마소가 있는 방으로 데려갔다.
갈천혁의 뒤를 따라 방을 들어온 이즈리스 남작은 가만히 명상을 하고 있는 혁마소를 보며 행동을 조심히 했다.
갈천혁은 침대 아래로 앉으며 이즈리스 남작을 쳐다봤다.
“이리 앉거라.”
“알겠습니다.”
보통 이곳 사람들은 바닥에 앉지 않았지만 이즈리스 남작은 갈천혁의 말이라면 불구덩이라도 들어갈 듯 그를 따랐기에 아무런 말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네가 그들과 다른 것이 무엇이라고 보느냐?”
주저 없이 묻는 질문에 이즈리스 남작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곧 입을 열었다.
“혹, 마나를 속성으로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닌지요? 그것이 아니라면… 저의 재능이 부족한 것일지도…….”
“그렇다면 그들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느냐?”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라드이라는 이미 갓블레이드를 시전하는 것을 보았기에 마스터급의 검사이고 헤인드와 디로안은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에 들어선 듯싶었습니다.”
이즈리스 남작의 말을 들은 갈천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아직 네가 마나를 제대로 느낄 수 없기에 잘못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곳에서 말하는 경지는 누가 더 많은 마나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듯하더구나.”
“거의 그렇게 판단합니다. 용병들이나 검사들은 마나를 다룰 줄 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이곳의 단순한 검술로 본다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겠지. 힘으로 겨루는 검술이 대부분이니 역시 마나가 많은 쪽이 힘이 넘칠 것이고 먼저 마나가 떨어지는 자가 지게 되겠지.”
이즈리스 남작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뇌리를 스쳐가는 기억이 있었으니 바로 로커스 호텔의 지하 연무장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이즈리스 남작이 순간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얼마 전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기지 못하나 강함도 부드러움을 이기지 못한다.’ 라는 말이었지요. 그로 인해 저는 강한 힘을 제가 원하는 흐름대로 흘려보내는 기술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상대할 수 없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거의 대등한 결투를 벌였지요.”
이즈리스 남작의 말을 들은 갈천혁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말했다.
“허허허, 흘려내기를 배웠던 것이구나. 이곳에서는 싸우는 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배워야만 한단다. 강함은 이 드래곤하트에게서 취하거라. 그리고 부드러움은 앞으로 내가 가르쳐주겠다.”
갈천혁의 말을 들은 이즈리스 남작은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빠르게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부족한 제자, 스승님의 가르침을 성심성의껏 배우겠습니다.”
“좋다. 우선 헤인드와 디로안의 경지는 네가 보는 익스퍼트 상급이 아니란다. 아마도 얼마 안 있으면 너희가 말하는 마스터급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갈천혁의 말에 이즈리스 남작은 크게 놀랐다.
“그렇다면 그들이 익스퍼트 최상급에 올라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뭐, 검술의 경지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우선 마나로 따진다면 그렇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오래지 않아 너희가 오러라고 부르는 것을 시전할 수 있게 되겠지.”
이즈리스 남작은 갈천혁의 말에 큰 부러움을 느꼈다.
그런 이즈리스 남작을 보며 갈천혁이 말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말해보자꾸나. 내가 보기에 너는 그들보다 검에 있어서 조금 더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단다. 하지만 저들은 라이안에게 배운 심법이 있지. 마나를 속성으로 모으는 방법이 말이다.”
갈천혁의 말을 들은 이즈리스 남작은 이전 로커스 호텔에서 디로안이 마나를 빠르게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디로안이 라이안 형님에게 마나를 속성으로 모으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 역시 너에게 그러한 심법을 가르쳐주겠다.”
이즈리스 남작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그러나… 나 역시 라이안과 같은 금제를 가할 수밖에 없단다. 너를 믿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니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말거라.”
이즈리스 남작은 디로안에게 들어 금제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에게는 전해줄 수 있으니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스승님의 은혜,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기억하며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구나. 심법을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단다. 그리고 특히 너처럼 마나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보다 쉽게 진전을 보일 수 있는 것이지. 우선 나를 등지고 앉아보아라. 내 너에게 마나가 흐르는 길을 가르쳐주겠다. 구결로서 말해주면 더욱 편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는 글자 한 자 한 자에 뜻이 있어 자세히 알려주기는 힘들구나.”
이즈리스 남작은 갈천혁이 말하는 대로 돌아서 앉았다.
“지금부터는 아무런 말도 해서는 안 되니 명심하도록 하거라. 그리고 나의 마나가 너의 등을 통해 몸으로 들어갈 것이니 절대 저항해서도 안 된다. 단지 내가 이끄는 마나의 흐름을 잘 기억하고 내가 통제하는 너의 몸의 상태와 호흡을 기억하면 되는 것이란다. 이것은 천뢰신공이라고 한다. 앞으로 네가 오러를 사용하게 된다면 너의 검 하나하나에서 번개가 칠 것이며 빛과 천둥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이즈리스 남작은 갈천혁의 말을 들으며 차차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고 곧 무아지경에 빠지기 시작했다.
한 동안 이즈리스 남작의 몸속에 있는 마나를 움직여주던 갈천혁은 서서히 그의 등에서 손을 떼어 그의 상태를 유심히 살폈다.
현재 이즈리스 남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운기행공을 하고 있었다. 갈천혁의 몸의 호흡과 마나의 흐름을 각인시켜주자 그의 몸이 그것을 받아들여 스스로 숨을 쉬듯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갈천혁은 이즈리스 남작을 자세히 바라보다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런 갈천혁의 등 뒤에서는 언제 눈을 떴는지 혁마소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너무 높은 상승무학을 전하는 것이 아니냐? 이곳의 마나량으로 보아서는 이전 중원보다 10배, 아니 수십 배 빠른 진전을 보일 것이다. 아주 매일 영약을 입에 물고 사는 것과 같겠지…….”
그런 혁마소의 말에 갈천혁이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생각이 있어서 이러는 것이라네. 무조건 내 제자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란 말이네. 자네는 느끼지 못했는가? 뭔가 불안한 이 느낌말이야…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점점 더 무엇인가가 다가오는 것만 같더군.”
“쳇! 네놈도 느꼈나보군. 아무래도 운명적인 위험 같은 것이겠지… 우리조차 감당하기 힘든…….”
“아마 우리가 보통 인간이었다면 선인의 경지에 도달했을 것이라네… 그래서 그런지 아주 조금이나마 앞에서 다가오는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
“그래서 그 녀석을 강하게 만들어 죽지 않게 하려는 것인 게냐?”
“꼭 그런 것만이 아니라네. 라이안이 위험해진다면 우리는 목숨을 다해 그 아이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혹, 우리가 잘 못되고 나면 그 아이를 도울 사람들은 바로 이 아이들밖에 없지 않겠는가…….”
갈천혁의 말에 혁마소가 갑자기 성을 냈다.
“거,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마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지만 미리 방비를 해놔서 손해 볼 것은 없지 않겠는가?”
갈천혁의 말에 혁마소 또한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그 역시 하루하루 기분이 찝찝해지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안이 히매인 왕국의 수도로 떠나고 날이 어두워졌다.
늦은 시간.
황제가 죽던 날과는 다르게 다시 평소처럼 밝아진 왕성 한 구석에 빛 그림자 사이로 숨어 있는 한 사람이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바치스 공작이었다.
‘오늘이 아니라면 왕성의 경비가 더더욱 강화될 것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들이라도…….’
바치스 공작은 기사들이 돌아다니는 가운데 재빠르게 움직이며 서서히 왕성의 남문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왕성의 벽까지만 가면 된다. 이제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며 기사들의 동태를 살피던 공작이 다시 앞으로 치고 나가려는 그 순간!
갑자기 남문 쪽으로 약 30여 명의 기사들이 오는 것이 아닌가?
‘빌어먹을, 들킨 것인가?’
몸을 낮춰 모습을 감춘 바치스 공작은 자신이 들킨 것인 줄 알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기사들은 바치스 공작이 있는 곳이 아닌 왕성의 남문만 막고 있을 뿐이었다. 뒤쪽에서도 기사들이 돌아다니고 있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젠장, 하필이면…….’
마법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모습을 감추는 것이 쉬운 일이었으나 왕성에 있는 마법사는 모두 라핀 후작의 명령을 따랐기에 도움을 받기란 어려웠다.
‘어쩔 수 없군. 날이 밝는다면 이런 기회조차 오지 않으니…….’
바치스 공작은 자신의 품에서 세 개의 칼날을 꺼냈다.
‘팔튼 후작이 가르쳐준 것이 잘 될지 모르겠군. 거리가 상당해서 어려울 듯한데…….’
바치스 공작은 자신의 한 손으로 칼날을 잡은 다른 손의 손목을 잡으며 모든 마나를 한곳에 집중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곧 세 개의 칼날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치스 공작은 너무 강한 빛이 흘러나가지 않게 더욱 마나를 집중했다. 그러자 빛의 농도는 점점 강해져갔고 칼날들은 짙은 오러에 둘러싸였다.
‘이 정도면 되었다. 너무 강하면 칼날이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린다고 했으니…….’
바치스 공작은 조용히 고개를 올려 기사들을 보고는 목표를 정했다.
‘이 거리로는 안 되겠구나. 차라리 달려들어 저들이 나에게 공격을 하도록 만들어야겠군.’
바치스 공작은 곧 눈을 감았다가 빠르게 뜨며 왕성의 남문을 향해 달렸다.
어느 한 기사가 바치스 공작을 어둠 속에서 발견했는지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
창! 창!
차장!
다른 기사들 또한 바치스 공작이 달려드는 것을 보며 검을 뽑았다.
“멈춰라!”
하지만 말을 들을 리 없었다.
기사들 또한 바치스 공작을 저지하고자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서로 가까워질수록 기사들은 바치스 공작을 알아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바치스 공작각하!”
왕성을 탈출하려고 하는 사람들 중 가장 힘겨운 상대였다.
기사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속도를 멈추며 소리쳤다.
“멈추십시오! 바치스 공작각하! 왕성은 아무도 나갈 수 없습니다!”
“건방진! 감히 일개 기사 따위가 공작위에 있는 나에게 명령을 하는 것이냐! 너희를 하극상으로 간주하여 처단하겠다! 챠앗!”
슈슈슉.
바치스 공작은 오러에 둘러싸인 세 개의 칼날을 던졌다.
기사들로서는 그저 어떠한 빛줄기가 날아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가장 앞줄에 서 있던 기사들은 놀라며 서둘러 검을 들어 바치스 공작이 던진 세 개의 칼날을 쳐내고자 했다.
그러나…….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야 정상이었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무엇인가 잘려나가는 소리였다.
스걱! 스걱!
푸부부북!
푹! 푹!
“컥!”
“크억!”
앞줄에 있던 기사들은 그나마 빛줄기라도 봤지만 그 뒤에 있던 기사들은 그것을 볼 기회도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가슴에 꽂혀 있는 칼날만을 볼 수 있었다.
“끄르륵!”
“이게… 어떻게…….”
털썩.
털썩.
바치스 공작이 던진 칼날은 앞줄에 있던 세 명의 기사들의 검과 갑옷을 뚫고 그 뒤에 있는 기사들에게까지 박혀든 것이었다.
단번에 6명의 기사를 쓰러뜨린 바치스 공작은 허리 옆에 있던 검을 뽑으며 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내 앞길을 막는 자, 죽음으로 그 죄를 물을 것이다! 챠앗!”
오러블레이드를 생성시키며 달려드는 바치스 공작은 기사들눈에 악귀와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데브릭 공작의 편에 붙기로 마음먹은 기사들은 입술을 깨물며 바치스 공작과 접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물러나십시오! 바치스 공작각하!”
“자신 있다면 막아보아라!”
스걱!
스걱!
“크악!”
“커걱!”
바치스 공작과 첫 대면을 한 기사 둘의 몸이 순식간에 갈라졌다.
기사들도 소드 마스터와는 똑같은 방법으로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바치스 공작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공격할 때 바치스 공작은 오늘이야말로 자신의 모든 검술을 보이겠다고 다짐하며 한 마리의 야수와도 같이 기사들을 공격해갔다.
스걱!
“크헉!”
또 한 명의 기사가 쓰러졌다.
기사들은 바치스 공작의 이동경로를 따라 포위한 채 계속해서 공격해갔다.
아래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본 성벽위의 병사가 급히 뿔피리를 불었다.
바치스 공작은 뿔피리의 소리를 들으며 잠시 표정이 굳어졌다가 펴졌다.
‘다른 기사들이 몰려오겠군. 제길… 아니지, 차라리 잘된 것일지도…….’
스윽.
“큭!”
싸움 도중 다른 생각을 해서였을까…….
바치스 공작의 어깨에 한 기사의 검이 스쳤다.
바치스 공작은 자신의 어깨에 상처를 입힌 기사에게 달려들며 그 기사의 목을 날려버렸다.
스윽, 스윽.
“크윽! 이놈들!”
스걱!
“크악!”
기사들은 바치스 공작의 주위를 둘러싼 채 치고 빠지는 전법으로 공격해왔다. 이에 바치스 공작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갔다.
약 절반 이상의 기사들을 죽였을까?
이제 10여 명밖에 남지 않은 기사들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바치스 공작을 둘러싸고 있었다.
서로 지친 그들은 잠시 숨을 고르며 대치하고 있었다.
한 기사가 숨을 고르며 바치스 공작에게 말했다.
“하아… 하아… 공작각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왕성으로 돌아가십시오!”
바치스 공작 또한 그 말을 한 기사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네놈의 직급이 무엇이기에 나에게 명령을 한단 말인가! 나를 공격한 것이 하극상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저희는 데브릭 공작각하의 명령을 따를 뿐이옵니다. 포기 하십시오.”
“네 이노오옴!”
바치스 공작이 크게 소리치며 말하던 기사에게 달려들었다.
창!
챙그랑!
바치스 공작과 기사의 검이 부딪쳤지만 검은 이전처럼 잘리지 않고 부러졌다. 바치스 공작의 오러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기사는 다행히 부러져 반만 남은 검을 가지고 뒤로 빠지며 바치스 공작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창!
푸욱!
“크헉!”
계속된 싸움으로 기사들은 차차 쓰러져 갔고 이제 5명의 기사만 남아 있었다.
바치스 공작의 몸은 이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허억… 허억… 너희는 익스퍼트 상급의 검사들이거늘 어찌 그 능력을 나라를 위해 쓰지 않는단 말인가… 너희에게는 추잡한 욕심이 더 중요하단 말인가!”
바치스 공작은 지쳐 쓰러질 듯했다.
5명의 기사들은 서서히 지친 몸을 이끌고 뒤로 물러났다.
그때서야 너무 주위를 살피지 않고 싸웠다고 생각한 바치스 공작이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왕성 위에서는 병사들이 자신에게 활을 겨누고 있었으며 주위로는 여러 명의 기사들이 계속해서 그 수를 늘려갔다.
심지어 중간 중간 마법사까지 끼어 있어 이제 그가 탈출할 길은 묘연했다.
“젠장…….”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바치스 공작의 이마에서는 베어진 상처로 인해 피가 흘러내렸다.
흘러내리는 피를 거칠게 닦은 바치스 공작은 곧 한쪽에서 걸어오는 데브릭 공작을 볼 수 있었다.
“바치스 공작, 어딜 그렇게 쥐새끼처럼 도망가려고 하는 것이오?”
비릿한 미소와 함께 말하는 데브릭 공작을 보자 바치스 공작은 또다시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내 발로 나가겠다는데 그대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데브릭 공작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옆으로 걸었다.
“아니지, 아니지. 내가 보기에 그대는 도망을 치고 있었던 것 같소. 그렇지 않소?”
“내가 무엇이 무서워 도망을 친단 말이냐!”
데브릭 공작은 바치스 공작을 빤히 쳐다보더니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바치스 공작, 그대가… 국왕전하를 시해하고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 군사들을 이끌고 온다… 어떻소? 앞뒤가 맞아 떨어지지 않소?”
“네 이노오옴! 네가 감히! 국왕전하를 시해한 것이 바로 네놈임은! 이곳에 있는 모든 이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더냐! 이 처죽일 놈아!”
바치스 공작이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검을 들어 데브릭 공작에게 달려들었다.
“죽더라도 네놈만은 데려가고 말 것이다아아!”
바치스 공작이 데브릭 공작에게 가까워지려 할 때 데브릭 공작의 옆에 있던 라핀 후작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주위 여러 곳에서 마법사들이 마법주문을 외쳤다.
“홀드!”
“홀드!”
여러 명의 마법사가 동시에 바치스 공작에게 홀드마법을 시전하자 바치스 공작은 몸이 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바치스 공작의 행동이 둔해졌다고 생각한 기사들 몇 명이 곧 몇 개의 쇠사들을 던졌다.
촤르르륵!
촤르르륵!
날아온 쇠사슬들은 바치스 공작의 검을 묶었다.
“이놈드으으을!”
악을 쓰며 소리를 치고는 있었지만 발조차 말을 듣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홀드마법 정도는 기합만으로도 떨쳐버릴 수 있었으나 이미 많은 마나를 소진한 상태인 바치스 공작으로서는 그 조차 불가능했다.
두세 명씩 쇠사슬을 들고 나온 기사들이 곧 다른 쪽에 있는 기사들에게 쇠사슬을 던지며 바치스 공작을 묶어갔다.
바치스 공작은 더더욱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한 기사가 빠르게 무엇인가를 들고와 바치스 공작의 두 손목을 채웠다. 바로 마나수갑이었다.
마나수갑에서 약간의 빛이 흘러나오자 바치스 공작은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감을 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크윽…….”
데브릭 공작이 이제야 조용해진 바치스 공작에게 다가오며 비웃었다.
“후후후, 그러게 조용히 있었다면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 아니오?”
“모든 것이… 네 놈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바치스 공작이 핏기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자 데브릭 공작은 순간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곧바로 바치스 공작의 얼굴을 발로 밟았다.
퍽!
“크윽!”
털썩.
데브릭 공작이 자신의 발길질에 쓰러진 바치스 공작을 쳐다보며 비아냥거렸다.
“지금 자신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음을 아직도 인식하지 못했는가? 쯧쯧쯧, 어리석기는…….”
데브릭 공작이 살짝 고개를 돌려 누군가에게 명을 내렸다.
“데리고 오너라.”
쓰러진 채 데브릭 공작을 노려보던 바치스 공작은 곧 멀리서 누군가 끌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끌려오는 그들을 알아본 바치스 공작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아니, 어떻게……!”
끌려오는 사람들은 바로 바치스 공작의 부인과 딸이었다.
바치스 공작이 허튼 수작을 부릴 경우 그를 협박하고자 미리 그들에게 거짓 서신을 보내 왕성으로 오게 만든 후 납치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라핀 후작이 데브릭 공작의 명이 떨어지기도 전에 했던 일들이었다.
멀리서 바치스 공작을 알아본 그의 부인과 딸이 바치스 공작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아버지!”
데브릭 공작은 그들을 보다가 바치스 공작의 앞에 와서 앉으며 말했다.
“네놈이 가만히 있었다면 그냥 안전했을 인질들이거늘… 이제는 네놈이 도망치려 했다는 이유로 국왕 시해범으로 몰 수 있으니 일가족이 참수되겠구나. 크하하하하!”
그렇게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던 데브릭 공작에게 갑자기 한 기사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데브릭 공작각하! 큰일 났습니다!”
데브릭 공작은 기분 좋은 얼굴로 급히 달려오는 기사를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그것이…….”
기사는 데브릭 공작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곧 데브릭 공작은 얼굴을 굳히며 화를 냈다.
“뭣이! 어찌 그들이 사라지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단 말이냐! 빨리 잡아라! 당장 잡지 않으면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단 말이다! 어서!”
“넵!”
“넵!”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기사들과 병사들이 일제히 움직이면서 상당한 소음을 냈다.
바치스 공작은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데브릭 공작을 비웃었다.
“크흐흐, 내가 말했지 않느냐? 모든 것이 네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하하하.”
“이잇!”
퍽!
데브릭 공작은 곧바로 바치스 공작의 얼굴에 발길질을 해버렸다.
“닥쳐라, 이놈!”
하지만 바치스 공작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와이파른 후작… 팔튼 후작… 이제 이 나라의 운명은 그대들의 손에 달렸소…….’
그랬다.
바치스 공작이 남문을 통해 탈출을 시도할 때 와이파른 후작과 팔튼은 북문을 통해 탈출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성공이었기에 바치스 공작이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개처럼 끌려가는 자신의 부인과 딸에게는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히매인 왕국의 수도는 혼란에 휩싸였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왕성 자체를 둘러싸고 귀족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괴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바로 바치스 공작이 반역을 꾀하였고 그것을 막고자 데브릭 공작이 군사를 일으켜 왕성을 포위하여 바치스 공작을 잡아 감옥에 넣었다는 소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데브릭 공작의 술수였다. 일부러 소문을 퍼트릴 이야기꾼들을 섭외해 이와 같은 말들이 서서히 퍼져 나가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 어수선한 수도의 구석에서 한 청년이 팔짱을 낀 채 멀리 있는 왕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라이안이었다.
“바치스 공작님이 그러실 리가 없어. 왕성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팔튼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기에…….”
바치스 공작이 어떠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 라이안이었다.
그는 크호른 왕에게 얼마나 충직한 신하였던가?
“뭔가 더 알아봐야겠군. 안에서 와이파른 후작님과 팔튼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무턱대고 쳐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라이안은 좀 더 주변이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보고자 했다.
라이안과 루시 공주가 왕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그 시각, 다시 포스안 제국으로 들어선 세 마족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나도 모르겠어.”
바테르가 펠랜에게 물었지만 그녀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몰랐다.
혼돈의 칼자루가 계속해서 포스안 제국의 수도 방향을 가리키다가 돌연 반대방향을 다시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칸드는 손을 턱에 괴고는 말했다.
“알 수 없군. 혼돈의 칼자루가 왜 다시 방향을 바꾸었을까… 혹시, 우리가 뭔가를 놓치고 지나쳐온 것은 아닌가?”
라이안이 텔레포트를 이용해 히매인 왕국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혼란을 겪고 있는 이들이었다.
펠랜은 왠지 자신이 틀린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미안함을 느꼈다.
칸드 역시 잘하는 방법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하지만 확인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혼돈의 칼자루가 방향을 바꾼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가 이곳까지 오면서 알아보았던 장소를 되짚으며 이동해보자. 만약 그곳에서도 혼돈의 칼자루가 포스안 제국을 가리킨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반대로 지금과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면 그것은 아마도 혼돈의 신녀가 어딘가로 이동했다는 것을 의미하겠지.”
“갈 거면 빨리 가자. 이곳은 더 이상 있기 싫은 곳이야.”
펠랜이 포스안 제국의 땅 안에 있는 것 자체가 싫은지 빨리 이동할 것을 청했다.
“좋아, 가자.”
스스슥.
스스슥.
칸드의 말과 함께 그들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잔상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 * *
포스안 제국과 에드코르 제국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
에드코르 제국의 황성에 있는 오리닌 황제는 답답함에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니, 왜 연락이 없단 말인가? 그대는 아는 것이 없는가?”
오리닌 황제의 앞에는 마족 중 하나인 치카가 있었다.
“혼돈의 칼자루를 탈취하면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언제냔 말이다! 모든 나라가 우리 에드코르 제국을 적대시하며 쳐들어오려고 하는 이 순간에! 벌써 돌아왔어도 당연할 그들이 왜 아직도 안 오는지 그것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급함에 침이 마르게 소리치는 오리닌 황제였지만 역시나 치카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을 같았다.
“모른다.”
그랬다.
이미 에드코르 제국이 마족과 손을 잡았다는 것은 대륙 전체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각각의 나라들이 군사를 일으켜 에드코르 제국을 둘러싸고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리닌 황제는 자칫 잘못하면 대륙의 황제가 되어보기도 전에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걱정이었다.
“이 일을… 이 일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의논할 상대도 없었다.
충성심 있는 귀족들이 오리닌 황제에게 찾아와 마족과의 결탁을 다시 생각하라는 말을 하였을 때 그 자리에서 칼을 내리쳐 목을 잘라버린 오리닌 황제였다.
요르민 공작도 있었으나 오리닌 황제는 항상 그를 만나기를 거부했었다.
결국 요르민 공작도 포기하고 자신의 영지로 돌아간 지 오래였다.
그렇게 불안에 떨고 있는 오리닌 황제에게 치카가 말했다.
“무엇이 걱정인가? 포스안 제국과 싸우고 있는 군대를 불러들이면 되는 것이 아닌가?”
치카의 말에 오리닌 황제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포스안 제국이 그토록 만만한 상대라고 생각하는가? 그들과의 대치 상태에서 아주 조금의 병력만 이동해도 그들은 기회를 노리고 몰아쳐올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치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럼 리치와 흑마법사를 이용하면 될 것이 아닌가?”
그제야 흑마법사들이 생각난 오리닌 황제였다.
“그래, 그들이 있었지?”
“나와 그들이 힘을 합친다면 몬스터들을 조종해 군대와 같이 부릴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어떤 시기에서든 마족들이 써먹는 방법이었다.
오리닌 황제는 서둘러 리치인 케리어스와 마법통신을 하고자 황급히 지하로 내려갔다.
치카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중간계에 있는 모든 인간들은 마족의 노예가 될 것이거늘…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 너는 단지 가축을 지키는 사육사의 위치밖에 못될 것이다, 오리닌 황제. 크그그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