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돈의 라이안-41화 (40/57)

제41장 대륙 전체를 적으로

라이안은 앞으로 루시 공주의 신성력 테스트를 받고 나면 히매인 왕국에 머물며 친구들과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행복하게 살아갈 꿈에 젖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간 그들은 각자 씻고 몸단장을 했다. 대신성전에 가기 위함이었다.

소문이 흉흉했기에 루시 공주는 하루빨리 자신의 신성력을 테스트하고 히매인 왕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래에 모인 일행은 다시 마차를 타고 대신성전으로 이동했다.

일행은 마차 밖을 바라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군.”

디로안이 굳은 얼굴로 말하자 헤인드가 맞장구를 쳤다.

“왠지 음침해 보이지 않아?”

그런 헤인드를 보며 디로안이 말했다.

“그러는 네 얼굴이 더 음침해 보인다. 제발 그 배 좀 치워라. 네 배만 봐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단 말이다.”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헤인드의 배였다.

마차를 타고 한참을 가서야 멀리 대신성전이 보였다.

이즈리스 남작이 그런 대신성관을 보며 말했다.

“병사들의 경비가 삼엄하군요. 정말로 어제 무슨 일이 있기는 했나봅니다.”

마차가 대신성전에 다다르자 병사들이 팔을 벌리며 마차를 막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지금은 대신성전에 출입할 수 없습니다.”

병사의 말에 이즈리스 남작이 마차에서 내려 병사에게 말했다.

“우리는 신성력 테스트를 위해 왔소. 들어갈 수 없겠소?”

신성력 테스트라는 말을 듣자 병사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성기사님을 모셔오겠소.”

한 병사가 급히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안 있어 은빛 갑옷을 입은 한 명의 성기사가 같이 나왔다.

성기사는 이즈리스 남작을 보며 물었다.

“신성력 테스트를 위해 오셨다고 들었소. 테스트를 받을 사람이 누구요?”

성기사의 말을 들은 루시 공주가 마차에서 내리며 성기사에게 다가갔다.

“신성력 테스트를 받을 사람은 저입니다. 전 히매인 왕국의 공주 루시 폰 세쿠론입니다.”

성기사가 루시 공주의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진정 루시 공주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이 반지가 저희 왕가의 문장입니다.”

루시 공주는 반지에 새겨진 문장을 보여주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확인해보겠습니다. 잠시 반지를 빼 주실 수 있겠는지요?”

성기사의 말에 루시 공주가 반지를 빼서 그에게 전해주었다.

급히 달려간 성기사는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나왔다.

“문장을 확인하였습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일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신성력 테스트를 받을 수 있겠는지요?”

성기사는 마차에서 내려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루시 공주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신분이 증명되지 않았기에 함께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마족들의 침입으로 인해 더욱 강화된 경비 때문이었다.

헤인드가 성기사의 말을 듣고 라이안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봐, 라이안. 자네의 신분증 하나면 다 될 것 같은데, 어떤가?”

라이안이 헤인드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어째 나보다 네가 더 잘 써먹는 것 같다?”

정말로 라이안의 특급 용병패는 그들 모두를 대신성전에 들어갈 수 있게 하였다.

대신성전은 검은 사신의 출연으로 또다시 시끄러워졌다.

“검은 사신이 이곳에 왔다는 것이 사실이오?”

성관들도 검은 사신의 출현에 크게 놀랐다.

“정말인 듯합니다. 성기사 중 한 명이 그의 특급 용병패를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이라 하오?”

“그는 히매인 왕국의 루시 공주를 호위한 것 같습니다. 지금 신성력 테스트를 위해 온 루시 공주의 신성력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중입니다.”

“흠…….”

검은 사신인 라이안이 왔다는 말은 대성관의 귀에도 들어갔다.

“흠… 에드코르 제국의 가장 큰 적이 그이니만큼 그를 의심할 여지는 없겠지. 그에게 내가 보기를 원한다고 전하라.”

“대성관님께서 직접 그를 보신단 말씀이십니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성관의 생각은 달랐다.

“만약 그자가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면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곳 대신성전의 전력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아마도 그가 소문대로의 실력을 갖추었다면 얼마든지 이곳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어서 말을 전하거라.”

“알겠습니다.”

마족의 침입으로 너무도 많은 전력이 손실되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성기사가 나가자 대성관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가 도와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인데…….”

대성관은 지금 라이안을 설득해 에드코르 제국을 무너뜨리자고 말할 작정이었다.

루시 공주가 한 신전으로 들어가고 대신관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라이안은 지루함을 느꼈다.

이제 루시 공주만 나오면 여행은 끝난다. 그 뒤에는 텔레포트로 한 번에 히매인 왕국으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물론 동생인 이즈리스 남작을 집에 데려다준 뒤에 말이다.

그렇게 즐거운 상념에 잠겨 있던 라이안에게 한 성기사가 다가오며 고개를 숙였다.

“라이안 님,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신지요?”

라이안은 성기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저희 대성관님께서 라이안 님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라이안도 대성관의 위치가 황제나 다름없음을 알고 있었다.

“이거 부담스러운데…….”

라이안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에이! 뭐,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우선 만나보겠습니다. 안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라이안은 그를 따라가며 갈천혁에게 부탁했다.

“갈 할아버지, 루시가 나오면 잘 좀 챙겨주세요. 알았죠?”

“걱정 말고 다녀 오거라.”

성기사를 따라간 라이안은 계단을 오르며 여러 가지 흔적들을 발견했다.

‘피로군. 그것도 상당히 많은 양의… 마족의 짓인가…….’

하지만 그것을 묻기에는 조금 뭣했다.

한참을 가서야 성기사가 어느 방문 앞에 멈추더니 문 안쪽에 말을 걸었다.

“라이안 님을 모셔왔습니다.”

성기사가 말하자 방 안쪽에서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서 모셔라.”

“들어가시지요.”

성기사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라이안도 그를 따라 들어갔다.

라이안은 60대의 노인을 보며 그가 대성관임을 알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라이안이라고 합니다.”

“허허허, 나이가 조금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어리시구려. 어서 오시오. 내가 바로 이곳 포스안 제국의 대성관으로 있는 사람이라오.”

“저를 만나고 싶으셨다고요?”

“그렇소.”

“무엇을 위함인지요?”

“대륙의 안전을 위함이오.”

“마족들에 대한 것이군요.”

대성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정하지 않겠소.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그대는 대륙의 실정이 어떠하다고 생각하시오?”

“물은 알아서 잘 흐르는 법이지요.”

대성관은 라이안의 말을 들으며 인상을 굳혔다.

“그것이 잘못된 곳으로 흘러간다 하여도 말이오?”

“그 물이 어디로 흐르든 굳이 그것을 알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성관은 라이안의 말에서 자신은 어떠한 일에도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느꼈다.

“에드코르 제국은 마왕과 손을 잡았소. 그것도 제 일마왕인 발크르스와 말이오. 그가 중간계에 나타난다면 중간계는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할 것이오.”

“중간계에는 중간계의 평행을 유지하는 드래곤들도 있지 않습니까?”

대성관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발크르스 마왕은 소환이 아닌, 중간계와 마계를 잇는 문을 혼돈의 힘으로 부수어 넘어오려고 하고 있소. 그리된다면 드래곤들이라고 한들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오.”

“흠…….”

라이안은 드래곤로드도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강한 존재가 나타난다고 하니 믿기지가 않았다.

“도와주시오.”

한 제국의 대성관이 라이안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대륙은 그대의 힘이 절실하다오.”

라이안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젠장, 편할 날이 없군. 막지 않으면 평탄한 생활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고…….’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한편, 루시 공주와 함께 한 신전에 들어온 대신관은 루시 공주에게 성수를 떠오며 말했다.

“이곳에 손을 담그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신성력을 일으켜주십시오.”

“신성력을 일으키라고요? 하지만… 전 한 번도 신성력을 사용해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관은 의문을 가지며 루시 공주에게 물었다.

“그럼 어찌하여 공주님 자신에게 신성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인지요?”

“그건 제가 심하게 아팠던 때였습니다. 신관을 불러 신성력으로 치유하려고 했는데 그 신관은 저를 치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에게 다른 신성력이 부여되어 있어 자신의 신성력을 밀어낸다고 하더군요.”

“어떤 신을 모시는 신관이었는지요?”

“성신이신 케르디아 님을 모시는 신관이었습니다.”

“흠…….”

대신관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신관과 루시 공주가 이야기 하고 있을 때 한 성관이 신전의 문을 열고 들어와 뒤쪽에 앉았다.

대신관은 그런 성관을 보며 몸을 숙였고 성관은 살며시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 공주 역시 자신의 앞에 있는 대신관의 행동에 잠시 뒤를 돌아보았지만 곧 대신관의 말에 고개를 앞으로 돌려야 했다.

“방법은… 루시 공주님의 신성력이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루시 공주님에게 신성력을 부여하면 당연히 루시 공주님의 신성력이 그것을 밀어내려고 하겠지요. 그때 성수에 닿은 신성력의 색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대성관은 라이안의 마음을 돌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신탁에 대한 이야기와 어제 마족이 혼돈의 물건인 혼돈의 칼자루를 탈취해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라이안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흠… 혼돈의 신녀를 죽여야 대륙이 살 수 있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중얼거렸으나 곧 심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문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대성관님!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대성관이 들어오라고 하기도 전에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성관 중 한 명이었다. 예의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이었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인 듯했다.

그는 라이안을 보지 못한 채 대성관을 향해 소리쳤다.

“혼돈의 신녀가 나타났습니다! 루시 공주입니다! 바로 혼돈의 신녀가 루시 공주였습니다!”

순간 라이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성관은 계속 정신없이 말을 토해냈다.

“신탁이 사실이었습니다! 혼돈의 신녀가 스스로 이곳을 찾아온다는 신탁이 맞아떨어졌습니다!”

대성관도 크게 놀라며 라이안을 쳐다보았다.

대성관의 눈을 본 라이안은 급히 들어온 성관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젠장…….”

대성관은 라이안을 보며 물었다.

“라이안, 루시 공주를 죽여야 하오.”

대성관의 말에 라이안이 살기를 풍기며 그를 바라봤다.

“말도 안 돼는 소리하지 마시오!”

대성관과 그 옆에 있던 성관은 너무 강한 살기를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크윽!”

“컥!”

밖에 있던 성기사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이런 살기가…….”

대성관은 신성력을 일으켜 감당할 수 없는 살기를 막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견딜 만하자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도 듣지 않았소? 루시 공주를 죽여야만 이 중간계가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이오.”

대성관의 말을 들은 라이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다니… 말도 안 돼… 기껏 해 신성력을 알아보러 왔더니 혼돈의 신녀라니… 죽어야 한다니…….”

대성관은 반드시 라이안을 설득해야만 한다고 마음먹었다. 라이안이 끝까지 루시 공주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상당히 난처하기 때문이다.

‘설득해야한다. 그와 싸우게 된다면 또다시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한다…….’

생각을 마친 대성관이 라이안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오. 단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이 대륙 전체가 살 수 있단 말이오. 이 대륙의 수많은 여인들과 아이들을 생각해보시오. 그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소? 그녀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나 대륙의 운명이 달린 일이오.”

하지만 라이안은 그런 대성관의 말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라이안은 허탈하게 웃었다. 웃고 있었으나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는 그렇게 웃으며 조용히 대성관의 방을 나갔다.

대성관은 그런 라이안을 막을 수 없었다.

성기사들 역시 무릎을 굻은 채 라이안이 지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성관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성관에게 물었다.

“어찌해야 합니까? 당장 성기사들로 하여금 저들을 잡으라고 명해야 하지 않습니까?”

성관의 물음에 대성관은 얼굴을 굳히며 신음을 내뱉었다.

“흐음…….”

신전에서는 대신관이 떨리는 몸으로 루시 공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시 공주는 그런 대신관이 이상해 물었다.

“대신관님, 왜 그러시죠? 제 신성력이 무엇인가요?”

“그, 그것이…….”

대신관은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루시 공주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며 다시 물었다.

“다시 여쭙겠어요. 제 신성력이 어떤 신성력이죠?”

대신관은 뛰쳐나간 성관이 서둘러 성기사들을 데리고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을 끌기가 힘들다고 느꼈다.

“후우… 루시 공주님, 이 일은 무척이나 심각하답니다.”

“심각하다니요? 제 신성력에 뭔가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요?”

대신관이 루시 공주의 물음에 마음의 결정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루시 공주님의 신성력은… 바로 혼돈의 신성력입니다. 다른 여러 신들의 신성력은 모두 무지개의 색들로 나타나지요. 붉은 색은 전쟁의 신이고 초록색은 평화의 신인 것처럼 저마다의 색이 신들의 신성력을 나타내어준답니다. 그런데 루시 공주님께서는…….”

루시 공주도 보았기에 이야기를 들으며 말했다.

“회색이었지요.”

루시 공주의 말에 대신관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색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회색이 혼돈의 신성력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죠?”

대신관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혼돈이란 아직 결정되어지지 않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이전을 나타내며 모든 세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을 뜻하기도 한답니다. 색으로 따진다면 밝음과 어둠이 나누어지기 이전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대신관의 설명을 들은 루시 공주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검은색과 흰색을 섞으면 회색이 나오지요. 나누어지기 전의 색이라…….”

뭔가 생각하던 루시 공주는 다른 의문이 들어 다시 물었다.

“그런데 혼돈의 신성력이 무슨 문제이지요? 아까 뒤에 계시던 분은 성관님이 맞지요? 그분이 왜 저의 신성력을 보고 그리도 황급히 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제 신성력에 뭔가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요?”

“그것은… 흠… 죄송합니다. 그것은 제가 말씀드리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선 나가셔서 기다리시지요.”

대시관은 루시 공주와 같이 있는 것 자체를 곤란하게 느꼈다.

‘이분이 죽으셔야만 대륙을 구할 수 있다니… 라피네 신이시어… 어찌하여 그런 가혹한 신탁을 내리셨나이까…….’

대신관은 뒤돌아 라피네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루시 공주는 그런 대신관을 보며 몸을 돌려 신전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갈천혁과 혁마소, 그 외 일행들은 루시 공주가 나오는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어찌 되었느냐?”

갈천혁의 물음에 루시 공주가 조금 찝찝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성력이 무엇인지는 알아내었어요. 그런데 대신관님의 표정이 이상하더라고요. 뭔가 저의 신성력이 문제가 되는 것 같은데 숨기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루시 공주를 갈천혁이 안심시키려 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그렇겠죠?”

루시 공주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그런데 라이안은 어디 갔지요?”

루시 공주의 물음에 디로안이 답해주었다.

“라이안은 아까 성기사 한 분이 와서 같이 갔습니다. 금방 올 겁니다.”

헤인드가 멀리서 걸어오는 라이안을 발견하며 말했다.

“아, 저기 오는군요.”

멀리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라이안을 일행 전체가 바라보았다.

일행들에게 다가온 라이안은 굳은 얼굴로 일행들에게 말했다.

“모두 서둘러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어서요. 서둘러요.”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라이안의 얼굴은 심각했다.

혁마소가 그런 라이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라이안아,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 것이냐?”

혁마소의 물음에 라이안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그리고 그런 라이안의 시선은 루시 공주에게로 옮겨졌다.

“루시…….”

“네? 왜 그래요?”

루시 공주가 이상해진 라이안을 바라보며 말하자 라이안은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 자! 다들 서둘러요. 이유는 나중에 말해줄 것이니 어서 여기를 벗어납시다!”

라이안이 서둘러 떠날 것을 강조하자 다른 일행들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라는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마차에 올랐다.

3대의 마차가 그렇게 급히 대신성전을 나가려고 입구에 다가설 무렵.

척척척척척.

척척척척척.

“멈추시오!”

대신성전의 입구를 수많은 성기사들이 정렬하여 막는 것이 아닌가?

이히히히힝.

말이 투레질을 하며 급히 멈추자 마차 안에 있던 라이안은 표정을 굳혔다.

‘루시는 반드시 지킨다.’

라이안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같이 타고 있던 디로안과 헤인드, 라드이라는 자신들의 목에 시퍼런 칼날이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차는 순식간에 성기사들에게 에워싸였다.

그들의 비해 조금 더 화려한 갑옷을 입은 자가 앞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사천사장인 로빈슨이었다.

“대성관님의 명으로 그대들은 이 대신성전을 빠져나갈 수 없소! 당장 마차에서 내려 무기를 땅에 내려놓으시오!”

로빈슨의 외침에 혁마소가 마차의 문을 열었다.

“저 놈이 도대체 뭐라고 하는 것인가?”

갈천혁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답했다.

“무슨 인인지 우선 내려 알아보세나.”

갈천혁이 혁마소를 따라 내리자 이즈리스 남작 또한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서둘러 내렸다.

헤인드와 디로안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성기사들을 보며 오싹함을 느꼈다.

“이자들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우선 두고 보는 수밖에 없군. 라이안, 자네는 이들이 무슨 이유에서 이러는지 알고 있겠지?”

디로안이 급히 떠나려고 했던 라이안을 보며 물었다. 라이안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 알고 있어. 이들은 지금 루시 공주를 죽이려고 하는 거야.”

루시 공주 또한 마차에서 내리며 라이안의 말을 들었다.

에나가 루시 공주의 몸을 가리며 성기사들을 노려보았다.

“라이안 오빠, 이유가 뭐죠?”

에나의 물음에 라이안은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것은 저 대성관이 대답해줄 거야.”

대성관은 계단에서 내려오며 라이안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았다.

그의 옆에 있던 성관은 급히 대신관들에게 명해 성기사들에게 신성력을 부여할 준비를 하라 일렀고, 상당수의 대신관들이 성기사들의 뒤쪽으로 이동하며 자리를 잡았다.

대성관이 오자 성기사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라이안과 같이 있던 일행들은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성관이 라이안 일행을 바라보며 신성력을 담아 소리쳤다.

“얼마 전 라피네 신께서 신탁을 내리셨소. 그리고 난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신탁을 공개하려고 하오.”

신탁의 내용은 성관들과 몇몇 주요 인사들만 아는 것이었다.

성기사들은 자세히 모르고 있었기에 라이안 일행들에게 설명하면서 같이 듣게 하려는 의도였다.

“신탁의 내용은 바로 혼돈의 신녀를 죽이지 않으면 중간계는 어둠에 싸일 것이라는 것이었소. 그리고 바로 어제 마족들이 혼돈의 신녀를 얻기 위해 대신성전에 침입하여 혼돈의 칼자루를 탈취해갔소. 마족들은 혼돈의 신녀를 잡아 그녀의 힘으로 일마왕인 발크르스를 소환하려 하고 있소. 신탁의 내용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고 혼돈의 신녀는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 있소. 바로 루시 공주가 혼돈의 신녀라오.”

대성관의 말에 주위에 있던 성기사들과 대신관들, 그리고 그 밖으로 막고 있는 병사들이 혼란에 휩싸였다.

“루시 공주라면… 히매인 왕국의 공주잖아?”

“그렇다면 루시 공주가 죽어야 마왕이 소환되지 않는다는 거야?”

“루시 공주가 혼돈의 신녀라고 했으니 그런 거 아니겠어?”

여기저기서 크게 웅성거리자 대성관은 손을 들며 다시 소리쳤다.

“발크르스 마왕이 중간계에 소환된다면 설사 그것이 드래곤이라고 해도 막을 수 없을 것이오. 루시 공주, 그대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나 그대가 죽지 않는다면 그대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죽게 될 것이오. 부디 이 대륙을 위해 죽어주시오.”

그 말과 함께 무릎을 꿇는 대성관이었다.

“대성관님!”

“대성관님, 일어나십시오!”

“어이해 대성관님께서 이러셔야 한단 말이십니까!”

“대성관님께서는 신의 대리자이십니다! 신의 뜻이 그러하니 대성관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대성관의 주위에 있던 성기사들이 대성관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으나 대성관은 그들의 손을 자신의 몸에서 떼어내며 루시 공주를 바라보았다.

“포스안 제국의 대성관인 나 베리어스가 이렇게 간곡히 부탁하오. 부디 이 대륙 모든 인간들을 대신해 죽어주시오.”

그렇게 말하며 고개까지 숙이는 대성관이었다.

그런 대성관의 행동에 성기사들은 가슴으로부터 뭉클함과 동시에 분노를 느꼈다. 신의 뜻이니 그 일을 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성기사들이 제각기 검을 잡았다.

루시 공주는 다시 고개를 올려 입을 열려고 했다.

“나, 난… 난…….”

루시 공주는 자신의 신성력이 이토록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줄 몰랐다.

그렇게 어쩔 줄 모르는 루시 공주의 앞을 하나의 등이 가렸다. 바로 라이안이었다.

“허튼 소리! 다른 사람을 대신해 죽어달라니 그것이 말이나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대신관 당신이 직접 이 대륙을 위해 목을 내놓아보아라!”

라이안의 말에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분노했다.

“무엄하다!”

“감히 대성관님께 그따위 망발을 하다니! 네가 이 자리에서 목을 내놓고 싶은 모양이구나!”

“대성관님께서 무릎까지 꿇으시고 부탁하시거늘! 신의 뜻을 받아들여라!”

“신의 뜻을 받아들여라!”

“신의 뜻을 받아들여라!”

모든 성기사들과 대신관들, 그리고 그 둘레에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똑같이 외치자 루시 공주는 무서움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이, 이 모두가… 이 모두가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어… 어떻게…….”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 중 그 누가 죽고 싶겠는가?

루시 공주 또한 앞으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라이안과의 사랑을 꽃피우고 싶은 한 여인에 불과했다. 그런 밝은 미래만을 꿈꾸던 그녀에게 있어 지금의 상황은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그녀의 떨리는 어깨를 잡아주는 사람은 역시나 라이안이었다.

“루시, 걱정 말아요. 내가 있잖아요.”

라이안은 겁먹은 루시 공주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에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에나, 우리가 싸우는 동안 루시를 부탁해.”

라이안의 말에 에나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아요. 루시는 제가 꼭 지킬게요.”

에나의 말을 들은 라이안은 대성관을 향해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갔다.

뒤에 있던 혁마소가 그 상황을 보고 무섭게 인상을 썼다.

“일이 아주 더럽게 되었구나.”

혁마소의 말을 갈천혁이 받으며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손녀 며느리가 될 아이가 아닌가? 허허허, 우리 손녀 며느리에게 함부로 손을 대게 할 수는 없지.”

“당연한 것이 아니냐? 암, 누가 감히 우리 손녀 며느리를 건드린단 말이냐?”

루시 공주의 양 옆에 선 갈천혁과 혁마소로 인해 루시 공주 또한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앞으로 걷다가 걸음을 멈춘 라이안이 마나를 담아 소리쳤다.

“대성관, 당신이 말 한 것은 모두 이해했소. 하지만! 난 내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그녀를 보호할 것이오. 대륙의 모든 인간들이 죽는다 하여도! 난 내 친구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것이오!”

라이안의 말에 대성관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적이 될 것이오.”

“그렇다면 덤비는 모든 자들을 죽일 것이다.”

“발크르스 마왕은 그대라 한들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오.”

“내가 그녀를 끝까지 지킬 것이니 그 존재가 소환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흠… 당신이 끝내 그리 말한다면 희생을 치르더라도 어쩔 수 없구려…….”

그 말을 끝으로 대성관이 뒤로 빠지자 성기사들이 다시 그 자리를 메웠다.

성관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대신관들이 성기사들에게 신성력을 부여했다.

쏴아아아아.

쏴아아아아.

라이안의 일행 주위로 밝은 신성력이 넘쳐났다.

신성력을 부여받은 성기사들은 모두 긴장했다.

그랜드마스터라고 알려진 자와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믿고 있었다. 라이안이 아무리 그랜드마스터급의 전사라 해도 자신들이 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사천사장인 로빈슨이 있으며 자신들 또한 대신관의 신성력을 부여받아 갓블레이드를 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하다 한들 한 사람이 어찌 한 나라의 군대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신성력을 부여받은 성기사들은 일제히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들의 검에는 밝은 빛이 감도는 또 하나의 검이 생성되었다.

루시 공주가 몸을 움츠렸다.

라이안은 성기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바로 갈천혁과 혁마소에게 전음을 보냈다.

-루시 공주와 다른 사람들을 마차에 태우고 길을 열어주세요. 뒤는 제가 맡겠어요.

-알겠다. 걱정하지 말거라.

갈천혁과 혁마소가 일행에게 말을 전했고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마차에 올랐다.

그러한 모습을 본 라이안은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창을 잡아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성기사들을 보며 말했다.

“당신들은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것이오.”

조용히 중얼거리는 라이안의 말을 들었음인가?

성기사들이 소리치며 일제히 라이안과 마차로 달려들었다.

“신의 뜻을 이행하라!”

“신의 뜻을 이행하라!”

라이안 역시 빠르게 성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부딪치기 직전 몸을 띄운 라이안이 빠르게 회전했다.

“풍신퇴!”

슈슈슈슈슉.

라이안의 몸이 세기 힘들 정도로 돌자 수많은 강기들이 성기사들을 덮쳤다.

콰과과과광!

“크악!”

“으악!”

무엇인가 폭발하듯 성기사들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그들 또한 많은 마나가 담긴 무엇인가가 날아오자 갓블레이드로 막았지만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성기사들이 있는 곳에서 먼지가 피어올랐지만 곧 성기사들이 그 먼지들을 뚫고 라이안에게 달려들었다.

라이안은 표정 없이 성기사들을 상대했다.

차장창창창!

성기사들의 검이 라이안에게 날아들었지만 라이안은 유유히 창을 휘돌리며 모든 성기사들의 검을 막았다. 그리고 그 순간 또 하나의 초식을 읊었다.

“청룡창 사초! 청룡무희!”

환환미종보와 함께 사용하자 라이안의 분신이 순식간에 엄청나게 늘어갔다.

창자창창!

창!

“뭐, 뭐야!”

“저, 전부 진짜란 말인가!”

“모두 정신 차려! 환영일 뿐이다!”

이미 환환미종보의 오의를 깨달은 라이안이었다.

분산될 힘일지라도 각각의 라이안을 상대하는 성기사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늘어난 라이안과 싸우는 각각의 성기사들은 혼란스러워 하며 크게 밀리고 있었다.

사천사장인 로빈슨은 그런 라이안을 바라보면서도 루시 공주에게 다가갔다.

‘그녀만 죽는다면 이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성전의 입구를 막고 있는 성기사들 역시 검을 뽑고 마차를 막았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수많은 줄기들이 하늘로 올라가더니 이내 마차가 있는 쪽으로 날아들었다.

화살이었다.

슈슈슈슈슉.

슈슈슈슈슉.

그것을 보고 있던 혁마소가 급히 마차를 향해 소리쳤다.

“모두 들어라! 각자 마나를 끌어올려 귀를 보호해라! 아니면 평생을 귀머거리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화살이 거의 다다랐을 무렵 다시 물었다.

“모두 준비됐느냐!”

혁마소가 물었지만 그들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혁마소의 말을 잘 이행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제 안심을 한 혁마소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아주 빠르게 앞으로 휘어졌다.

“크아아아앙!”

바로 극강의 마기가 담겨있는 마교 최고의 음공인 천마후였다.

물결치듯 울려 퍼진 공기가 화살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한 대기의 물결은 성기사들과 그 뒤에 있던 병사들에게도 퍼져 나갔다.

“크윽!”

“으윽!”

성기사들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고통스러움에 귀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들은 대신관들이 부여해준 신성력으로 보호되어 있어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다. 성기사들 뒤에 있는 병사들은 속속 죽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퍽!

퍼벅!

대기의 물결이 병사들을 지나갈 때마다 그 곳에 있던 병사들이 죽어갔다. 수십, 아니 수백의 머리가 천마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그 뒤로 그나마 멀리 있는 병사들은 귀속에서 무엇인가 터지는 느낌을 받으며 쓰러졌다. 고막이 찢어지다 못해 터져나갔기에 모든 병사들이 귀에서 피를 쏟아냈다.

슈슈슈슈슉.

슈슈슈슈슉.

투두두둑!

투둑!

화살이 방향을 바꾸어 쓰러져 있는 병사들에게 날아들었지만 성기사들의 바로 뒤쪽에 있는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화살이 떨어진 쪽의 병사들은 모두가 죽거나 실신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성기사들 역시 귀를 막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바로 핏빛의 무엇인가가 자신들을 향해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분혼마라장!”

마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장법의 이름이 혁마소의 입으로부터 튀어나와 성기사들을 덮쳤다.

콰광!

“크악!”

“크악!”

성기사들 사이에서 터진 분혼마라장이때문에 그들의 몸은 여기저기로 날아가기 바빴다.

신화경에 이른 존재의 장법이었으니 그 위력이 엄청난 것은 당연했다.

아무리 대신관의 신성력을 부여받았다고 한들 혁마소의 분혼마라장을 받기에는 크게 부족했다.

그들의 힘 차이는 절정고수가 전혀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에게 장법을 날린 것과 같았으니,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성기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모습을 본 사천사장 로빈슨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저, 저자가 인간이란 말인가!”

빠르게 나아가 루시 공주가 탄 마차에 신성력이 담긴 검강을 쏘아내려 했던 로빈슨이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로빈슨이 다시 빠르게 마차로 달려들었다.

“그대에게 원한은 없지만 어쩔 수 없소! 하앗!”

하지만 로빈슨은 미처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어딜!”

퍼벙!

“컥!”

하얀 무엇인가가 로빈슨에게 달려든다 싶더니 로빈슨이 마차로 다가올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혁마소가 로빈슨의 가슴에 장법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단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로빈슨을 본 성기사들도 놀라기 바빴다.

혁마소가 몇 차례의 분혼마라장을 쏘아내자 앞의 길이 열렸다.

“마차를 몰아라! 이곳을 벗어난다!”

혁마소가 앞으로 전진하며 검강을 날려대자 여기저기서 병사들의 몸이 갈라지고 터져나갔다.

“크악!”

“크악!”

덜컹.

덜컹.

길이 터져나가며 땅이 거칠어졌고 마차는 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속도를 낮추지 않고 앞으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로빈슨은 몸이 땅에 떨어지고 뒤로 상당히 밀려나갔지만 곧 검을 지탱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슴을 본 그는 더욱 놀라워했다.

“드, 드워프가 만든 갑옷이 이렇게 쉽게 구겨지다니…….”

그의 가슴에는 깊게 파인 손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갈천혁은 마차의 뒤를 따르며 뒤쪽에서 공격하는 모든 것을 막고자 했다.

로빈슨은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모두 말을 준비하라! 저자들을 쫓을 것이다!”

라이안과 대치하던 성기사들이 하나씩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스걱!

스걱!

푹!

“컥!”

“크윽!”

“커걱!”

대성관은 그렇게 쉽게 죽어나가는 성기사들을 보며 암담함을 느꼈다.

“진정 신께서는 우리를 버리신단 말인가…….”

대성관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미 포스안 제국의 모든 힘은 국경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대신성전에 있는 힘은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타이탄 몇 기를 맨몸으로 상대한 라이안이 아니었던가?

라이안의 분신들이 성기사들을 하나씩 쓰러뜨리자 남아 있는 성기사들은 더 이상 라이안에게 덤빌 수 없었다.

“이렇게 강할 줄이야…….”

“마법까지 부린단 말인가? 어찌 싸우는 모든 분신들이 진짜와 같단 말인가…….”

더 이상 성기사들이 덤벼들지 않자 라이안은 대성관에게 다가갔다.

저벅저벅.

멀리서 성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로빈슨이 그런 라이안을 보고는 급히 달려와 대성관의 앞을 막으며 라이안에게 칼을 들이댔다.

“멈춰라!”

“꺼져라…….”

“이잇, 얕보지 말라!”

로빈슨은 자신을 무시하는 라이안을 향해 모든 신성력을 담아 일검을 날렸다.

핏!

빠르게 날아들던 검이 일순간에 멈추어졌다.

“헉! 어, 어찌 손으로……!”

라이안이 맨손으로 갓블레이드가 생성된 검을 잡아냈기에 그것을 보고 있던 로빈슨과 대성관은 크게 놀랐다.

라이안의 다른 손이 검의 중간을 쳤다.

텅!

“크악!”

휘이이이익.

쾅!

곧 검 중간이 터져나가듯 부러졌고 그 힘을 버티지 못한 로빈슨이 대신성전 건물의 문에 부딪치며 쓰러졌다.

대성관은 그런 라이안을 바라보며 몸을 일으켰다.

“할 말이 있는 것이오?”

대성관은 라이안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두렵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을 죽일 수도 있소.”

“알고 있다오.”

“그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소.”

대성관은 라이안의 말을 들으며 이미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마차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누구였소?”

갈천혁과 혁마소를 말하는 것이었다.

“내게 검을 가르쳐준 스승이면서 나의 조부모 되시는 분들이오.”

“흠…….”

대성관은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그랜드마스터… 아니, 그랜드마스터 이상의 힘을 지닌 자가 이자 하나가 아니었단 말인가… 아니, 그럼 혹시!’

대성관은 눈을 뜨며 하나의 사건을 기억해냈다.

바로 에드코르 제국과 히매인 왕국의 대치 상황에서 에드코르 제국을 습격한 정체불명의 두 노인의 이야기였다.

‘이들은 한 나라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구나…….’

이들이라면 루시 공주를 마족에게서 지켜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족들은 이곳의 신성력으로 인해 몸이 약해졌던 것이오. 이곳을 벗어난 그들의 힘은 드래곤도 압도할 것이오. 진정 지켜낼 수 있겠소?”

라이안은 대성관의 말을 들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라이안의 등을 바라보던 대성관은 라이안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미 드래곤과 싸워보았소. 그리고 이겼소. 난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오.”

대성관은 라이안의 말을 들으며 라이안이 바로 드래곤 나이트라는 것을 기억했다.

“드래곤들도 당신들을 공격할지 모르오. 지금 이곳을 떠나는 그대들은 전 대륙 모든 존재들의 적이 되는 것이오. 알고 있소?”

라이안은 멀리 사라져가는 태양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미 각오는 되어 있소… 끝까지 지켜낼 것이오.”

말과 동시에 라이안의 몸에서 금광이 흘렀다.

대성관은 서서히 떠오르는 라이안의 몸을 볼 수 있었다.

로빈슨 역시 몸을 일으켜 그렇게 계속 떠오르는 라이안을 바라만 보았다.

한참을 계속 떠오르던 라이안의 모습은 곧 빛과 함께 마차가 사라진 방향으로 쏘아져갔다.

대성관은 그렇게 사라진 라이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부디… 마족으로부터 공주를 지켜내시오…….”

대륙의 혼란기.

대륙 전체가 혼란에 휩싸였다.

마족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져나갔고 곧 발크르스 마왕이 소환될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퍼졌다.

대륙 전체의 인간들은 제각기 공통된 질문을 던졌다.

‘어찌하면 그것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포스안 제국이 그 답을 말해주었다. 각 나라에 정보를 보냈고 곧바로 사신단을 형성해 각 나라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정보를 미리 보낸 것은 하루 빨리 알아야 하기에 그리한 것이었고 사신단을 보내는 것은 절차였으며, 더 정확하게 사태의 심각성을 상기하라는 뜻이었다.

각 나라의 수장들은 사신들로부터 더욱 자세한 내용을 듣게 되는 것이다.

정보의 내용은 이러했다.

-난 포스안 제국의 대성관 베리어스요. 이것은 인류의 존망이 걸린 일이니 만큼 빠른 조취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해 미리 보내는 정보요. 그러니 각 나라의 수장들께서는 신중한 조취를 취해주시오. 우리는 얼마 전 마족의 습격을 받았으며 그들에게 혼돈의 물건을 탈취당했소. 그들은 강했소. 우리도 막기 힘들 만큼 말이오. 마족들은 아마도 혼돈의 힘을 이용해 마계와 중간계의 문을 열려고 하는 듯하오. 마족들의 목적은 발크르스 마왕을 중간계에 현신시키려는 것이오. 우리가 퇴치한 한 마족으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니 확실하오.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막아야하오. 현재 에드코르 제국은 그런 마족들을 돕고 있으며 우리는 신의 이름으로 그들과 맞서 싸우고 있소. 대륙 전체의 존망을 위해 각 나라의 수장들께서는 군사를 일으켜주시오. 마족의 꼭두각시가 된 에드코르 제국을 반드시 섬멸해야하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소. 현재 포스안 제국의 극비인 신탁을 공개하겠소. 신탁의 내용은 “혼돈의 신녀를 죽이지 않으면 대륙은 어둠에 둘러싸일 것이다.”라오. 마족들이 혼돈의 물건을 탈취한 것은 바로 혼돈의 신녀를 찾기 위함이오. 혼돈의 신녀가 가진 힘을 이용해 마계와 중간계의 문을 열려는 것이 확실하오. 하지만 운 좋게도 혼돈의 신녀는 우리 포스안 제국에 나타났으며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었소. 바로 히매인 왕국의 공주인 루시 공주라오. 그녀가 죽지 않으면 대륙은 멸망할 것이오.

이러한 대성관의 말은 전 대륙의 나라로 퍼져나갔다.

인두루인 제국, 제루이판 왕국, 그리고 공동 동맹국인 칸보리치 동맹에 이러한 대성관의 말이 전해졌으며 심지어 루시 공주의 모국인 히매인 왕국에도 전해졌다.

각 나라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이유는 포스안 제국에서 모든 정보를 모두 공개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각 나라에서도 그 정보가 거짓이 아님을 자신들의 첩자들로 하여금 전해 받았다.

인두루인 제국은 현재 마시리온 황제가 죽고 그의 아들인 18세의 크라우스 태자가 황제로 등위했다.

마족의 침입으로 인해 나라의 중요한 역할은 하던 많은 인재들을 잃었지만 그는 부모를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나라의 제정을 살피며 인재를 받아들여 혼란스러운 나라를 안정시켰다.

인두루인 제국 이곳저곳에서 폭동이 일어날 뻔했지만 크라우스 황제의 빠른 대처로 안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크라우스 황제는 정보를 담당하는 블리브트 백작으로 하여금 포스안 제국의 서신을 받아보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크라우스 황제의 표정은 고요한 듯 굳어 있었으나 눈은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다.

크라우스 황제는 분노의 감정이 치밀어 올랐으나 겨우 누르고 있었다. 자신의 부모를 죽인 존재의 정체가 바로 마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라우스 황제는 어전에 모인 모든 귀족들을 둘러보며 곧 입을 열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포스안 제국도 대신성전에 마족이 침입했다고 하는군요. 그들과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상당수의 마족들이 침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족을 퇴치했다는 것이고 우리는 몇몇 왕족들을 피신시키며 거의 몰살당했다는 것이지요. 후후후.”

크라우스 황제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우리 인두루인 제국이 이토록 형편없었습니까? 겨우 마족 하나도 잡지 못하고 황제를 잃어야 할 만큼 약해빠져 있다니 이것이 말이나 되느냐 말입니다!”

지금까지 냉철하게 나라를 안정시킨 크라우스 황제가 가슴속으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런 크라우스 황제의 말에 헤르츠 공작이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황제폐하, 소신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포스안 제국의 대신성전은 엄청난 신성력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마족들이 그러한 곳에서 힘을 못 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리고 성기사들이 사용하는 신성력은 그들에게 크나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절대 저희가 약한 것이 아니옵니다.”

“그만 두세요!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크라우스 황제의 말에 헤르츠 공작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크라우스 황제는 어전 내를 둘러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크라우스 황제의 이름으로 어명을 내립니다.”

“어명을 받들겠나이다.”

어전의 모든 귀족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크라우스 황제는 그런 귀족들을 바라보며 더욱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당장 포스안 제국을 도와 에드코르 제국을 총 공격하시오. 우리가 에드코르 제국을 공격하느냐 마느냐하는 상황에서 마족이 우리 황성을 피로 물들였소. 이것은 곧 에드코르 제국이 연관되었다는 것이오! 우리 인두루인 제국은 피로써 그 대가를 받아낼 것이오!”

“어명을 받들어 수행하겠나이다.”

“어명을 받들어 수행하겠나이다.”

귀족들이 동시에 어명을 받들 것을 말하자 크라우스 황제는 포스안 제국의 대성관이 보낸 서신의 아래를 다시 읽으며 말했다.

“그리고 히매인 왕국에 압력을 넣고 우리 제국 전체에 공문을 내리시오. 루시 공주를 죽이는 자에게는 백작위의 직위와 영토를 내릴 것이며 귀족이더라도 그 포상은 같을 것입니다.”

마족으로부터 황성이 피로 물들었기에 크라우스 황제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그런 인두루인 제국의 행동에 다른 나라들 역시 동참하기 시작했다.

제루이판 왕국의 아크포민 공작은 왕성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었다.

“스승님께서 이런 일에 연루되게 될 줄이야…….”

포스안 제국으로부터 모든 정보를 받은 아크포민 공작은 루시 공주를 호위하는 일행에 자신의 스승인 혁마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고뇌에 빠져 있었다.

그때 그의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들어오라.”

아크포민 공작의 목소리는 상당히 어두웠다.

곧 문을 열고 한 기사가 들어왔고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공작 각하, 국왕전하께서 공작 각하를 보길 원하십니다.”

“흠… 알겠다.”

아크포민 공작은 국왕인 말카인 왕이 왜 자신을 부르는지 알고 있기에 침음성을 흘렸다.

기사의 뒤를 따라 왕의 집무실 문 앞에 도착한 아크포민 공작.

왕의 집무실을 지키는 기사들이 아크포민 공작을 보며 자세를 잡았다.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고해주게나.”

기사가 곧 문을 향해 말하려고 했으나 먼저 안으로부터 말이 들려왔다.

“들어오게나.”

단 한마디였지만 아크포민 공작은 말카인 왕의 음성을 듣는 것이 지금까지의 그 어떤 상황보다 어려웠다.

딸깍.

“국왕전하의 부름을 받아 왔습니다.”

“격식은 됐네. 이리 와서 앉게나.”

말카인 왕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소파로 옮겼고 아크포민 공작에게 앉기를 권했다.

아크포민 공작이 굳은 얼굴로 소파에 앉자 말카인 왕이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자네도 내가 왜 자네를 불렀는지 알 것이라고 생각하네.”

“알고 있습니다.”

“지금 모든 귀족들에게 어전회의를 알렸다네. 그에 앞서 자네에게 묻고자 하네. 자네는 그와 싸울 수 있는가?”

아크포민 공작은 쉽게 말 할 수 없었다.

말카인 왕이 말하는 그는 역시 혁마소였다.

“자네가 그를 스승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네. 자네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 되겠지…….”

아크포민 공작의 눈썹 사이에 ‘川’자가 생겨났다.

생각을 하는 아크포민 공작을 본 말카인 왕은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자 아크포민 공작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국왕전하께서 질문하신 것에 늦게 대답함을 용서해주십시오.”

“아니라네. 그래, 생각은 마쳤는가?”

“그렇습니다. 스승의 연을 맺은 분을 어찌 쉽게 생각하겠습니까? 하지만… 전 한 나라에 충성을 한 기사입니다. 가족이 걸린 일이라도 나라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대답이었다. 직접적으로 싸우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스승의 연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말카인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흠… 알겠네… 어서 가서 어전회의를 준비하게나.”

* * *

히매인 왕국은 혼돈의 신녀가 루시 공주라는 소식에 번개를 맞은 듯 흔들렸다.

히매인 왕국 역시 이러한 소식을 듣자마자 어전회의에 들어갔다.

루도르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크호른 왕에게 말했다.

“국왕전하, 이것은 대륙의 존망이 걸린 문제이옵니다. 루시 공주를 죽이셔야 합니다.”

그런 루도르 백작의 말에 와이파른 후작이 급히 일어나 소리쳤다.

“지금 그게 무슨 망발이오! 지금 그 말은 반역을 하겠다는 뜻이오?”

“바, 반역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앞서 말했듯 대륙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루시 공주를 받아들인다면 모든 나라에서 우리 히매인 왕국을 공격할 것임은 이곳에 모인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말은 사실이었다.

루시 공주가 혼돈의 신녀인지라 그녀를 얻으려고 에드코르 제국에서도 루시 공주를 노릴 것이며 다른 모든 나라들은 루시 공주늘 죽이려고 덤벼들 상황이었다.

크호른 왕은 한쪽 팔로 머리를 잡고 의자에 기대며 괴로워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루시가 혼돈의 신녀라니…….’

크호른 왕은 마치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차라리 포스안 제국으로 보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나 때문이로구나… 내가 루시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어…….’

라이안에게 부탁해 루시를 포스안 제국으로 보낸 자신을 원망하는 크호른 왕이었다.

궁정마법사인 라핀 후작도 일어나며 크호른 왕에게 말했다.

“국왕전하,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루시 공주가 이곳에 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죽이셔야 합니다.”

그런 라핀 후작의 말에 급히 일어나 말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얼마 전 후작위에 오른 팔튼이었다.

“어찌 국왕전하께 그리 잔인한 말을 한단 말입니까! 당신이라면 자신의 자식이 죽게 생겼는데 그것을 보고만 있겠소?!”

“그런 하찮은 감정 따위로 국사를 논하지 마시오! 나라가 무너진단 말이오! 수많은 국민들이 목숨을 잃을 판에 한 사람의 희생으로 그것을 막을 수 있다면 다행이 아니오?!”

“닥치시오! 그것은 반역이오!”

“국왕전하께 묻는 것이 어찌 반역이 된단 말이오! 지금 국왕전하의 선택을 기다리고자 여쭙는 것이 어찌 반역이 된단 말이오!”

라핀 후작의 ‘하찮은 감정’이라는 말에 크호른 왕이 무서운 눈으로 라핀 후작을 노려보았다. 이에 라핀 후작은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볼 뿐이었다.

크호른 왕도 분노가 치솟았지만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라핀 후작은 팔튼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그대가 아직 작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돼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나 보구려. 정녕 그대가 후작위의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고 보시오? 어디 그따위 생각으로 나라의 큰일을 하려는지…쯧쯧쯧.”

그런 라핀 후작의 말에 팔튼 역시 반론했다.

“당신 같은 마법사 따위는 알지 못할 것이오! 신하된 도리로 한 나라의 왕과 왕족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오? 설사 나라가 망할지라도 왕족이 보존 되어야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냔 말이오!”

“뭐라! 마법사 따위라! 지금 말 다 했소?!”

크호른 왕이 라핀 후작과 팔튼의 논쟁에 손을 들어 저지했다.

“그만, 그만들 하시오!”

크호른 왕이 소리쳤으나 어전 내는 소란이 그칠 줄 몰랐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바치스 공작이 인상을 쓰며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소리쳤다.

“멈추시오! 지금 이곳은 어전이오! 어디 어전에서, 그것도 국왕전하께서 자리한 곳에서 목소리를 높인단 말이오!”

어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바치스 공작의 목소리에 모두가 바치스 공작과 크호른 왕의 눈치를 살피며 어정쩡하게 자리에 앉았다.

크호른 왕이 바치스 공작을 바라보며 고마움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고 곧 어전 전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에게는 단 하나밖에 없는 딸이오. 그리고 내가 죽는다면 부왕을 받아들여 왕족을 계승해야 할 한 나라의 공주요. 즉, 왕자로 따지면 태자의 위치에 있는 존재란 말이오! 그런데 그런 존재에게 죽음을 내리라니!”

크호른 왕의 말에 라핀 후작이 일어나 말했다.

“하오나 국왕전하…….”

“닥치시오! 그대는 지금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이오!”

“흠…….”

크호른 왕의 호통에 하핀 후작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부터 어명을 내리겠소!”

“어명을 받드옵니다.”

“어명을 받드옵니다.”

모두가 고개를 숙여 어명을 기다렸다.

“공주가 히매인 왕국으로 들어온다면 모든 군사를 동원해서라도 공주를 보호하여 이 왕성으로 오게 만드시오. 우리는 그 어떤 나라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오!”

“어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하지만 어명을 받들겠다는 말은 그 소리가 너무 작았다. 아니,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수가 적은 것이었다.

그것을 안 크호른 왕이 더욱 호통을 쳤다.

“지금 어명을 거역하겠다는 것이오!”

눈에 핏발까지 세우며 말하는 크호른 왕의 말에 데브릭 공작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국왕전하, 그것이 아니오라 한 가지 걱정이 되어 그렇사옵니다.”

“무엇이 말이오?”

데브릭 공작의 말에 크호른 왕은 거칠게 물었다. 고울 리 없었다.

데브릭 공작은 바치스 공작의 반대파로 귀족의 수장이었으며 왕의 권위에 사사건건 도전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작위가 오른 와이파른 후작과 팔튼으로 인해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비슷했으나 언제고 기회만 있으면 왕당파의 귀족들을 몰아내려고 음모를 꾸미는 자였다.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국왕전하의 말씀대로 루시 공주님을 우리 왕국에 받아들이는 것은 좋으나 과연 루시 공주님께서 그 먼 포스안 제국으로부터 이곳 히매인 왕국까지 무사히 오실 수 있겠습니까? 오시기도 전에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은 판단이라 사료되옵니다.”

크호른 왕은 데브릭 공작의 말에 화가 났지만 그것을 꾹 눌러 참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것은 걱정할 필요 없소. 루시 공주를 호위하는 분이 바로 라이안 님이기 때문이오. 난 믿고 있소. 그분이시라면 반드시 루시 공주를 무사히 히매인 왕국으로 데려다줄 것이오. 그대들도 알고 있지 않소? 라이안 님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그분의 곁에 누가 있는지 말이오.”

크호른 왕의 말에 데브릭 공작이 침음성을 흘렸다.

“흠… 골드드래곤…….”

주위에 있는 귀족들 역시 데브릭 공작의 말을 들으며 서로 중얼거렸다.

“라이안 님도 강하신데 골드드래곤까지 있다면야…….”

“그랬지? 라이안 님의 곁에는 골드드래곤이 있었지?”

귀족들의 반응을 본 크호른 왕이 못을 박았다.

“그러니 루시 공주가 우리 히매인 왕국에 온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시오. 그리고 어명을 어기는 자, 국법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니 각오들 하시오! 그것은 공작의 작위라 한들 반역의 이름으로 벌할 것이오!”

즉, 데브릭 공작도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크호른 왕의 말에 데브릭 공작은 무엄하게도 크호른 왕을 노려보았다.

“회의를 마치겠소.”

크호른 왕이 말과 함께 데브릭 공작을 노려보던 것을 멈추고 퇴실했다.

크호른 왕이 왕좌에서 일어나 퇴실하자 귀족들 역시 어전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라핀 후작은 데브릭 공작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공작 각하, 이러다가 우리 히매인 왕국이 망하는 것이 아닙니까? 국왕전하께서 저토록 어리석으시니… 쯧쯧쯧.”

데브릭 공작이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훑어보며 말했다.

“목소리를 낮추시게.”

조용히 말하는 데브릭 공작의 말에 라핀 후작도 주위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자네 말대로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 히매인 왕국이 망하고 말 것이야…….”

“그럼 어찌해야 하는지요?”

라핀 후작의 물음에 데브릭 공작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취를 취해야지, 조취를…….”

라핀 후작은 순간 데브릭 공작의 말에 오싹함을 느꼈다.

데브릭 공작은 그렇게 한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라핀 후작은 조취라는 말을 심각하게 생각하며 데브릭 공작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들이 자리를 벗어나고 문 뒤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와이파른 후작과 팔튼이었다.

“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구나.”

“그렇다 한들 저들이 루시 공주님에게는 손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루시 공주님의 곁에는 국왕전하의 말씀대로 라이안이 있으니까요.”

와이파른 후작이 그런 자신의 아들을 보며 웃었다.

“허허허, 라이안에 대한 너의 믿음이 상당히 크구나.”

와이파른 후작의 말을 들은 팔튼 역시도 같이 웃었다.

“라이안의 능력을 아버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 팔튼의 말에 와이파른 후작이 존칭을 사용하며 그를 놀렸다.

“팔튼 후작, 궁 안에서는 존칭을 사용하셔야 하는 것이 아니오?”

“아무도 안 보지 않습니까? 놀리지 마십시오. 어흠.”

그런 팔튼을 보며 와이파른 후작이 웃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라고 왜 너와 같지 않겠느냐? 그래도 저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말고 주시하여야한다.”

팔튼 역시도 복도 끝에서 사라져 가는 데브릭 공작의 등을 보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말과 함께 그들 역시 어전의 복도를 벗어났다.

* * *

포스안 제국에서 조금 벗어난 어느 숲속.

그곳의 어느 한곳으로부터 검은 연기와도 같은 것이 넘실거렸다.

그 주위의 풀들과 나무들은 마치 썩어 들어가는 듯 힘을 잃었고 결국 약한 풀들은 다 말라버려 재처럼 공기 중에 흩어졌다.

세 명의 존재가 각각 나무에 기대 앉아 눈을 감고 있었으니 그들은 포스안 제국으로부터 혼돈의 신물을 탈취한 마족들이었다.

칸드가 눈을 뜨더니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야 어느 정도 힘을 되찾은 듯하군.”

그의 손에는 캐드 단장과 블랙 섀도우 기사들에게 주었던 마옥이 들려 있었다.

“이것을 가져오길 잘했군. 그렇지 않았다면 힘을 보충할 길이 없었을 것이니…….”

칸드는 고개를 돌려 펠랜과 바테르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손에도 각각 마옥이 들려 있었고 마옥으로 하여금 흘러나오는 마력은 그들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칸드의 시선이 다시 한곳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곳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여 무엇인가를 주웠다.

그가 손에 들린 것의 헝겊을 풀자 곧 혼돈의 칼자루가 모습을 나타냈다.

“이것이 그렇게 큰 힘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전 포스안 제국을 벗어날 때 생겼던 현상이 생각나는 칸드였다. 라이안과 그의 일행이 아래로 지나갈 무렵 혼돈의 칼자루로 하여금 빛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마치 무엇인가와 공명하는 듯했는데…….”

칸드가 그러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펠랜과 바테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우… 이제야 살 것 같네.”

“조금만 회복하면 될 것 같군.”

칸드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깨어났군.”

펠랜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듯 움직이다가 곧 칸드가 들고 있는 혼돈의 칼자루를 보며 물었다.

“그걸로 어떻게 혼돈의 신녀를 찾는 거야?”

바테르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방법은 알고 있는가?”

하지만 그들은 곧 실망스러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른다. 이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혼돈의 신녀를 찾을 수 있는지…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혼돈의 물건을 찾을 수 있다고 들었다.”

“막연하군.”

펠랜은 한 손을 고개에 대고는 혼돈의 칼자루를 바라보다가 칸드에게 다가갔다.

“잠깐 줘봐.”

펠랜의 말에 칸드가 혼돈의 칼자루를 그녀에게 주었다.

“뭔가 방법이라도 생각난 건가?”

“그냥 혹시나 해서… 이것이 혼돈의 물건이나 신녀가 있는 곳의 방향을 가르쳐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지 않는가?”

펠랜은 혼돈의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다가 칼자루의 중심에 손가락을 대고 다른 부분으로부터 손을 놓았다.

그냥 막연히 혹시나 해서 해본 행동이었다.

“어?”

펠랜은 자신의 손가락 위에서 혼돈의 칼자루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왜 그러지?”

“잠시만.”

칸드의 물음에 펠랜이 뭔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금 모서리가 튀어나와 있는 돌을 찾았고 그 위에 혼돈의 칼자루를 올려놓았다.

칸드와 바테르 역시 그런 펠랜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펠랜이 돌 위에 혼돈의 칼자루를 균형 있게 올려놓자 혼돈의 칼자루가 마치 나침반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이들이 나침반의 원리를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우연히 생각해본 펠랜의 행동은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혼돈의 칼자루가 한 방향을 나타냈다.

그것을 본 칸드와 바테르가 서둘러 혼돈의 칼자루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설마 이것이 혼돈의 신녀가 있는 곳을 가리킨단 말인가?”

“나도 잘 몰라. 그냥 혹시나 이러한 방법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해봤을 뿐이야.”

펠랜이 말을 하며 혼돈의 칼자루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그리고 손을 놓는 순간 혼돈의 칼자루는 다시 돌아가며 이전과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맞는 것 같군. 대단한데, 펠랜?”

바테르가 뭔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이거 너무 단순한 방법 아닌가? 이것의 무게가 조금 앞쪽으로 쏠려서 그럴 수도 있다고 보는데? 아니면 돌이 한쪽으로 기울었다거나.”

“그럼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기울이고 해볼까?”

펠랜이 날카롭게 손톱을 세웠다. 그 위로 혼돈의 칼자루를 올려놓고 바테르의 말처럼 오히려 혼돈의 칼자루 아래쪽 부분으로 겨우겨우 균형이 이루어질 만큼의 위치에 자리를 잡게 만들었다.

그런데 혼돈의 칼자루가 또다시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바테르가 다가와 혼돈의 칼자루를 돌렸다.

그의 행동에 혼돈의 칼자루는 돌아갔고 그 돌아가는 속도는 천천히 느려지며 멈추었다.

그것을 본 바테르가 입을 열었다.

“어이없기는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바테르의 말에 칸드가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손해 볼 것은 없다고 본다. 우선 이것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보는 수밖에.”

칸드의 말에 펠랜이 혼돈의 칼자루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데 칸드… 지금 이 혼돈의 칼자루가 가리키는 방향 포스안 제국 쪽이야.”

칸드 역시 그것을 깨닫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군.”

“나, 가기 싫어.”

펠랜이 울상을 지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가보는 수밖에.”

펠랜은 그 순간 왜 자신이 이러한 방법을 생각해냈을까 하고 후회했다.

“휴… 그냥 가만히 있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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