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장 재회 그리고 또 다른 시작!
이미화는 얼마 전 갑자기 정신을 잃은 채 누군가에게 안긴 타미르안을 보고는 무척이나 놀랐었다.
타미르안을 안고 온 그린드래곤 플랑카시아는 이미화를 보고 그녀를 단순히 레어를 지키는 가디언으로 알고는 타미르안을 침대에 눕히고 텔레포트로 사라졌다.
만약 이미화의 정체를 알았다면 아마 그녀는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타미르안은 정신을 차린 후 숨이 넘어갈 듯이 울부짖었고, 이미화는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는 그런 타미르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놀란 이미화가 무슨 이유에서 그러는 것인지 물어도 전혀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게 된 이미화로서는 그런 타미르안의 태도가 놀라울 뿐이었다.
지금 그녀는 며칠째 시름시름 앓고 있는 타미르안의 식사를 준비해 가져다주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레어 안에 밝은 빛이 모이는 것이 아닌가.
“텔레포트?”
마법을 마스터한 이미화는 이제 그 반응이 누군가가 이곳으로 텔레포트로 이동해올 때 생기는 현상임을 알 수 있었다.
번쩍!
한순간 눈조차 뜰 수 없는 밝은 빛과 함께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라이안이었다.
“어머! 라이안!”
털썩.
라이안은 텔레포트로 이동해 오자마자 바닥에 쓰러졌다.
심각한 내상과 아슬아슬했던 텔레포트로 인해 다리가 풀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에고, 죽을 뻔했네… 히유우…….”
라이안은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어머니인 이미화를 바라보았다.
“어? 엄마!”
라이안은 힘겹게 일어나려고 했으며 이미화는 서둘러 손에 들고 있던 쟁반을 다른 곳에 올려놓고 라이안을 부축했다.
“어떻게 된 거니? 그리고 이 상처들은 다 뭐고. 챠둠이 있었는데도 네가 이 꼴이라니…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구나. 혼자 돌아오신 타미르안 님도 도통 아무 말도 안 해주시니…….”
“타미르안이 지금 여기 있어요?”
챠둠과 타미르안이 같이 갔었기에 그제야 챠둠이 생각난 라이안이었다.
“그렇단다. 얼마 전 드래곤으로 보이는 분에게 안겨 오셨단다. 그리고 지금은 며칠째 시름시름 앓으며 눈물만 흘리고 계시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흠… 역시…….”
라이안은 확실히 챠둠에게 무엇인가 큰 문제가 생겼음을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타미르안이 그럴 리가 없었다. 항상 골드드래곤이 얼마나 우수한 존재인지 소리치고 다니던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며칠째 눈물만 흘리고 있다는 것은 챠둠에게 큰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선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네요.”
“그러려무나…….”
라이안은 타미르안이 누워 있는 침실로 다가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타미르안을 볼 수 있었다.
타미르안의 넋이 나간 듯한 얼굴을 본 라이안은 그의 눈 아래에 묻어 있는 눈물 자국으로 그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 있었다.
“타미르안…….”
라이안의 음성이 들려오자 멍하니 한 곳만 바라보던 타미르안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는 라이안을 보더니 또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라이안… 라이안… 크흐흐흑…….”
타미르안은 라이안에게 안겨들며 서글프게 울었다. 그리고 곧 라이안에게 무릎을 꿇으며 애절하게 말했다.
“미안하네… 크흐흐흑… 다 내 잘못이라네. 설마 그들이 그런 함정을 파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네. 크흐흐흑… 정말 미안하네… 미안해… 흐흐흐흑.”
그런 타미르안을 보며 라이안은 그의 어깨를 잡고는 굳은 얼굴로 물었다.
“이봐, 타미르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자세히 말해야 알 거 아냐! 정신 좀 차려!”
하지만 타미르안은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말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후우…….”
라이안은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 라이안을 보며 이미화가 라이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타미르안 님도 많이 지치셨을 거란다. 너무 그리 닦달하지는 말거라.”
“…네.”
라이안은 타미르안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타미르안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라이안은 아직도 표정이 굳어 있었다.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라이안은 타미르안에게 물었다.
“우선 챠둠과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봐서 챠둠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알아야겠어. 도대체 챠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미안하네…….”
타미르안의 미안하다는 말에 라이안은 버럭 화를 냈다.
“그 미안하다는 말은 좀 빼!”
라이안이 소리를 지르자 타미르안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본 라이안은 또다시 진정하고자 한숨을 쉬고는 물었다.
“후우… 더 이상 미안하다는 말은 그만해주었으면 좋겠어. 이제 말해줘.”
그런 라이안의 말에 타미르안은 라이안의 얼굴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말하기 시작했다.
“흠… 우선은 로드의 레어에 도착해서부터 이야기를 해야겠지… 그래,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로드의 레어에 아무도 없었다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기다렸지… 그것이 이토록 후회로 다가올 줄이야…….”
타미르안은 챠둠과 드래곤로드를 인사시킨 후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과 그 옮긴 자리가 바로 함정이었다는 것을 다 말했다.
자신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이 없었던 이유가 차원을 넘어온 존재를 봉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챠둠을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미 챠둠은 봉인되었다.
모든 설명을 들은 라이안의 얼굴은 심각했다.
“그랬군. 젠장… 어쩐지…….”
타미르안은 라이안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심지어 라이안이 자신의 드래곤하트를 검으로 찌른다면 아무런 저항 없이 죽어줄 생각도 있었다.
라이안의 결정만 기다리는 타미르안이었다.
“우선, 너무 힘들군. 내상부터 치료한 다음 챠둠이 봉인당한 아공간이 있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어. 가능하지?”
타미르안은 뭔가 라이안에게 좋은 생각이 있나 싶어서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뭔가 챠둠을 꺼낼 방도라도 있는 것인가?”
“그것은 아직 모르지… 우선 가보고 생각해봐야지…….”
“좌표는 이미 알고 있다네.”
타미르안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라이안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혈기공을 운기해 내상을 치료하기 위함이었다.
넓은 공간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라이안은 그렇게 운기행공을 하며 내상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데만 하루 이상이 걸렸다.
생각보다 내상의 정도가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내상 치료를 마친 라이안은 눈을 뜨며 깊은 숨을 내뱉었다.
“휴우… 이제 겨우 안정을 취했군. 역시 혈기공의 효능은 대단해… 하루 만에 이렇게 말끔히 내상을 치료할 수 있다니… 다 챠둠이 해준 것들인데…….”
챠둠이 생각나자 씁쓸해지는 라이안이었다.
라이안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옆에 놓아두었던 창을 들었다.
“으음? 이런… 금이 가고 말았군.”
수많은 오러에도 끄떡없었던 창의 손잡이 부분 중간에 금이 가 있었다.
“날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데 손잡이에만 금이 가 있군. 그러고 보니 날과 손잡이의 재질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라이안은 시험 삼아 전혀 마나를 주입하지 않은 채 창을 휘두르며 땅을 내려쳤다.
탕! 타당!
혹시나 금이 더 커지거나 한다면 수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긴 금의 크기는 그대로였다.
“우선은 이대로 써야겠네. 수리는 나중에 해야겠어.”
한쪽을 보니 타미르안이 그곳에서 라이안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갔다.
“아직 아침이라 엄마는 자는 듯하군.”
“자네를 새벽까지 지켜보다가 잠들었다네…….”
“오히려 잘됐어. 엄마가 일어나기 전에 서둘러 다녀오자고.”
“알겠네. 이동하겠네. 텔레포트!”
챠둠이 봉인되었던 한 곳에 밝은 빛이 나타났다.
* * *
챠둠이 봉인을 당했던 곳으로 텔레포트해온 라이안과 타미르안. 라이안이 타미르안을 바라보자 타미르안은 한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곳 땅에 새겨진 마법진이 보이지? 그 중앙에 아공간이 생성되었다네…….”
“마법진을 파기하면 어떻게 되지?”
“그렇다면 아공간이 사라질 수도 있다네. 물론 안에 있는 챠둠조차 없었던 것처럼 아공간과 함께 사라지지…….”
타미르안의 음성은 어두웠다. 챠둠과 라이안에 대한 미안함을 참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라이안은 자신의 턱에 손을 대고는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전체 에너지를 초분자광선포로 집중한다면 충분히 깨어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라이안도 타미르안으로부터 마법에 대한 지식을 모두 알고 있어 아공간을 깰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것이 궁금했다네… 나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네… 전혀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고… 도대체 왜 그랬는지…….”
타미르안에게는 아직도 줄어드는 아공간의 통로를 통해 보였던 챠둠의 홀로그램이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드래곤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힘이 너무 미약하고 하찮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자신이 챠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라이안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타미르안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만약 드래곤로드를 죽이게 된다면 어떻게 되지?”
“흠… 아공간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는 있으나 그 전에 그 주인이 죽는다면 아공간 역시 소멸된다네…….”
결국 드래곤로드를 설득하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는 말이었다.
“골치 아프게 되었군.”
“미안하네…….”
“아니야. 무슨 방법이 있겠지. 휴… 내 본래 힘이라도 되찾는다면 어떻게 방법이 있을 텐데…….”
이전 자신의 능력이라면 아무리 드래곤로드라도 한번 붙어볼만하겠다고 생각한 라이안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땅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으음?”
“땅 속에서 무엇인가가 올라오는 듯하네!”
타미르안 그러한 말을 하자 정말로 땅을 뚫고 올라오는 금속의 물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라이안이 처음 지구에 도착했을 당시의 챠둠과 비슷했다.
“설마! 챠둠, 너야?!”
“아니 저것이 챠둠이란 말인가?”
땅 밖으로 나온 챠둠은 공중에 살짝 떴으며 곧바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역시 주인님과 타미르안의 음성이었군요.”
“챠, 챠둠!”
타미르안은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았던 홀로그램을 보자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네… 자네에게는 정말 할 말이 없네… 내 잘못이었네… 내 실수로 자네를 그렇게 아공간 속으로 몰아넣었으니… 크흐흑…….”
챠둠은 그런 타미르안을 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아니야, 타미르안. 네가 처한 상황이 나를 도울 수 없었던 것임은 이미 다 이해했어. 그러니 이제 그만 일어나…….”
챠둠의 음성과 함께 작아진 챠둠의 우주선에서 두 개의 집게와도 같은 기계 팔이 나와 타미르안을 일으켰다. 그러한 모습을 보던 라이안이 반가움을 뒤로하고 너무도 작아진 챠둠을 보며 물었다.
“챠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모습은 또 뭐고.”
“지금의 모습은 전함 전체에서 메인 중앙 시스템을 맡고 있던 부분입니다. 인간으로 따진다면 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타미르안을 믿기는 했지만 왠지 다른 드래곤들이 의심스러워 땅에 착지했을 때 이 메인 중앙 시스템을 땅 속에 파고들게 만들었지요.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아슬아슬했습니다. 지금의 몸체가 따로 있다는 것을 그들이 모르게 하려고 마지막 아공간의 문이 닫힐 때 저의 모든 기억시스템을 간신히 이곳에 레이저로 옮길 수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그들이 그것을 알았다면 아공간에 가두어진 상태로 있었거나 저 자체가 완전히 소멸될 뻔했습니다. 저로서는 일종의 도박이었죠.”
타미르안이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아…그렇다면 그때 아공간으로부터 쏘아져 나왔던 그 빛이 바로…….”
“맞아, 타미르안. 다행히 그들이 그것에 대해 크게 의문점을 갖지 않아주어서 다행이었지.”
“그렇군… 그래서 그때 마지막으로 나를 보며 웃을 수 있었군… 다행이네… 정말 다시는 자네를 볼 수 없을 줄 알았다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그때 라이안이 챠둠을 보며 말했다.
“아공간 안에 갇히지는 않아서 정말 다행이기는 한데… 챠둠, 너로서는 너무 약해진 것이 아닌가? 너무 많은 기능을 잃었을 것 같은데… 차라리 싸워보지 그랬어?”
라이안의 물음에 챠둠의 홀로그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전투로 따진다면 더 빠르고 가볍게 움직일 수 있겠지만 그 파괴력에서는 너무도 미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베리어 또한 너무 미약하여 방어가 힘들지요. 하지만 저의 기능은 전투에 있어서만 약할 뿐이지 다른 기능들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투명화나 스캔, 인공위성의 활용은 전혀 변함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전 그들과 전투를 하고자 했을 때 제가 그들을 당해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공격하려면 에너지를 모아야 하며 그것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드래곤들의 용언 마법은 무척이나 빠르죠.”
고개를 끄덕인 라이안이 턱에 손을 대고는 다시 물었다.
“그럼, 다시 이전 소형 전함의 크기로 증식을 하려면 얼마나 걸리지?”
“흠… 저의 몸체로 이루어진 아만다리움 금속은 쉽게 제어가 가능하지 않습니다. 강도로 따진다면 이전 차원이나 지금 이곳의 금속도 아만다리움 금속을 쫓아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신비한 것이 바로 자극을 줄수록 그 크기가 커진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계속된 자극을 준다면 이 차원 자체를 먹어버릴 수도 있는 무서운 금속이 바로 아만다리움 금속입니다. 저의 제어 시스템으로도 아만다리움 금속의 증식은 제어하기가 힘듭니다. 서서히 증식하게 하며 멈추는 것은 가능하나 그 증식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아만다리움 금속을 제어할 수 있는 한도를 하나의 문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 문이 한 번 부서지면 그것을 다시 메울 수 있을지가 미지수이기 때문이죠. 이미 계산은 해봤습니다. 증식을 제어할 수 있을지 아닐지는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50대 50이었습니다. 위험도가 크다는 것이죠. 실패할 경우 저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너무 위험한 도박이라 시도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서서히 증식을 한다면 이전처럼 되는데 약 20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챠둠의 긴 설명에 라이안과 타미르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곧 그들의 표정을 환하게 만들 수 있는 얘기가 챠둠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물론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은 아만다리움 금속으로는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으음?”
“다른 금속을 모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물론 내구력이 취약하고 재생능력이 없어 파손될 경우 수리가 오래 걸리겠지만, 이전의 전투력을 갖추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라이안은 오른 주먹을 왼손바닥에 내려치며 밝게 웃었다.
“그렇구나! 그래, 굳이 아만다리움 금속으로 만들 필요는 없지? 하하하.”
타미르안 역시 그러한 말을 들으며 어떻게 하면 챠둠을 도울지 생각났다.
“금속! 그래, 금속을 모아주면 원래의 자네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지?”
“맞아, 타미르안. 네가 하던 오락들을 다시 경험할 수 있지. 후훗.”
“뭐, 오락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금속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게나! 내 이 대륙의 모든 금속을 다 모아주겠네! 암, 나만 믿게나.”
타미르안의 이 말은 즉 드워프들의 수난시대가 시작될 것이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라이안은 모든 것이 복원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말했다.
“좋아, 우선 나도 최대한 내 원래의 몸 상태를 되찾아야겠어. 우선은 타미르안의 레어로 가서 일을 진행하자고. 알았지?”
“그리 하세나. 그럼 레어로 이동하겠네. 텔레포트!”
타미르안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힘이 넘쳤다.
곧바로 타미르안의 용언마법으로 밝은 빛과 함께 사라지는 그들이었다.
* * *
타미르안의 레어 안.
밝은 빛이 모여들자 잠에서 깨어난 라이안의 어머니인 이미화는 누군가 텔레포트로 이동해 오는 것을 느끼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번쩍!
곧 밝은 빛과 함께 라이안과 타미르안, 그리고 작아진 챠둠이 나타났다.
이미화는 벌써 라이안과 타미르안이 챠둠이 봉인되었던 곳에 다녀왔음을 알고는 물었다.
“라이안… 그래, 어떻게 되었니? 그리고… 이것은 뭐하는 물건이니?”
공중에 떠 있던 챠둠은 잠시 휘청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챠둠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물건이 아니고 나다.”
“어머! 지금 그 작은 모습이 챠둠이라고요?”
“그렇게 됐어… 크으… 이거, 혁마소가 걱정이로군.”
그럴 만도 했다. 지금의 자신으로는 혁마소를 당해낼 수 없었으며 그가 분명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앞이 암담하구나…….”
최대한 빨리 자신의 힘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하는 챠둠이었다.
라이안은 친구들이 걱정스러워 챠둠에게 물었다.
“챠둠, 인공위성을 통해 몬스터의 초원을 탐색할 수 있겠어?”
“네, 가능합니다.”
“그럼, 내 친구들이 무사한지 좀 알아봐줘. 혹 나를 쫓던 자들이 그들에게 해를 가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네…….”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그들은 갈천혁과 혁마소로 인해 구출되었습니다.”
“정말?!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주인님의 기운을 찾았는지 주인님에게 가던 도중 몬스터와 싸우고 있던 그들을 만난 듯합니다.”
“휴유… 다행이구나… 어? 근데, 너 왜 그렇게 자세히 알아? 할아버지들하고는 연락이 안 된다고 했었잖아?”
라이안의 말에 챠둠은 뜨끔했다.
“험! 음… 얼마 전 그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챠둠이 당황하며 말을 더듬자, 라이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챠둠을 노려봤다.
“너! 위치 파악이 아니라 이미 할아버지들의 대화까지 다 들을 수 있나본데! 또 나한테 거짓말을 했구나!”
“그것이 아니라…….”
라이안이 손바닥을 이마에 대며 고개를 흔들었다.
“으이그… 또 혁마소 할아버지랑 싸웠군. 말만 주인님이라고 하지… 매일 속이기나 하고… 내가 미쳐.”
“크험! 거짓말을 한 적은 몇 번 되지 않습니다.”
챠둠의 발언에 라이안이 손가락으로 챠둠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애초에 거짓말한다는 것이 이상하잖아! 내가 말을 말아야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타미르안은 장난스럽게 다투는 그들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챠둠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신께 감사드렸다. 그러한 생각을 하다 문득 신언이 생각난 타미르안이었다.
“성신께서 어이하여 차원을 넘어온 존재를 죽이거나 봉인하라 하셨을까…….”
타미르안의 말을 듣자 라이안과 챠둠이 동시에 타미르안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라이안이 입을 열었다.
“흠… 이거 신이 적이라니… 힘들겠는데? 타미르안 외에 다른 드래곤들은 전부 적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골드드래곤들에게는 전부 적대시하지 말라 일러두겠네. 내가 그들의 수장이니 내 말은 들을 것이네. 그들은 아직 성신 케르디아 님의 신언을 모르고 있을 것이고.”
“그나마 다행이네. 우선 챠둠과 난 본래의 힘을 되찾아야 하니 이곳에서 힘을 길러야 할 것 같고, 친구들은 다행히 할아버지들과 있다고 하니 안심이야. 서두르자. 다른 드래곤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상대해보지도 못하고 당하고 말거야.”
타미르안은 챠둠을 보며 말했다.
“난 자네가 필요한 금속을 조달하겠네. 여기저기 퍼져 있는 드워프들에게 말하면 빠르게 많은 양의 금속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네.”
‘말하면’이 아니라 ‘갈취’였지만 역시나 갈취라는 생각을 전혀 안 하는 타미르안이었다.
“그래. 부탁할게, 타미르안.”
타미르안은 바로 텔레포트로 드워프들을 찾아가 드래곤으로 현신해 그들로 하여금 금속을 모으도록 협박했다.
그렇게 처음 거둬들인 금속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챠둠은 그렇게 모은 금속들로 가장 먼저 다른 로봇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선은 용접하는 로봇들과 커다란 철판을 찍어낼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야 했다. 당연히 많은 로봇들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최우선으로 만든 로봇은 바로 용접하는 로봇을 만들 수 있는 로봇이었다.
용접할 수 있는 로봇은 상당히 많이 필요했다. 용접은 챠둠이 하나하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챠둠 혼자서 모든 것을 하기는 힘들기에 번거롭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예전 소형 전함이었을 때는 전함 안에 그러한 시설들이 모두 만들어져 있어 순식간에 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은 며칠씩 걸렸다. 챠둠 스스로 그것들을 녹이고 부품을 만들어 조립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한 대 만들었군. 이제 이것이 알아서 용접하는 로봇을 만들 것이니 이제는 용광로와 전함에 쓰일 강판을 찍어낼 수 있게 만들어야겠지?”
챠둠이 그러고 있는 사이, 라이안은 있는 힘을 다해 힘을 소진하고 혈기공을 운기하는 것을 반복했다.
타미르안은 금속 조달을 하고 틈틈이 남는 시간에 라이안이 수련하는 것을 지켜보고는 했다.
“하앗! 환환미종보!”
스스스슥!
휘리리릭!
“풍신퇴!”
쑤아아앙!
환환미종보로 늘어난 라이안의 신형이 제각기 다른 위치에서 풍신퇴를 날렸다.
“으음?”
타미르안은 그러한 장면을 보며 신기해서 마나 디텍트를 펼쳐 어떤 라이안이 진짜인지 확인하려 했다.
“아니! 전부 진짜?!”
며칠 동안 환환미종보와 풍신퇴만을 연습하며 극의를 깨달아가는 라이안이었다. 그로서는 얼마 전 캐드 단장에게 죽을 뻔했던 것이 크나큰 위기였으며, 스스로에 대해서도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은 내기를 실으며 훈련을 거듭하는 라이안은 상당한 시간 동안 그러한 것을 반복해야 했다. 그러고는 탈진해 바닥에 누우며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허억… 허억… 허억…….”
‘몸속의 마나가 점점 원활히 돌아가고 있는 것이 서서히 느껴지는구나. 마나의 양 또한 늘어가고 있고… 하지만… 너무 느려… 이대로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몸을 일으켜 세우며 라이안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혈기공을 운기했다.
‘어쩔 수 없지… 개선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으니…….’
이제는 마나의 바람이 아닌 라이안 주위로 마나가 돌풍을 일으키며 라이안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마법의 종주 드래곤인 타미르안 역시 그러한 현상은 신기하게 보였다.
“일정 공간의 마나를 모두 집어삼키는군.”
한참동안 그런 현상이 지속되고 나서야 마나의 바람은 잦아들었고 라이안이 서서히 눈을 떴다. 그런 라이안의 눈에 문득 타미르안이 들어왔다.
타미르안을 본 라이안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나중에 드래곤들과 싸워야 할지도 모를 일… 미리 경험해봐야 나쁠 것 없겠지.’
라이안은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 타미르안에게 다가갔다.
“으음?”
“타미르안, 내 대련 상대가 되어주지 않을래?”
“대련 상대?”
“응, 골드드래곤들 외에는 전부 적이나 마찬가지잖아. 언제 드래곤들과 싸워야 할지 모르니 미리 연습을 해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힘을 소진하기도 더 쉬울 것 같고 말이야.”
“나야 도움이 된다면 좋다네.”
“고마워. 그럼 바로 시작하자.”
타미르안과 라이안의 대련은 타미르안의 레어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았다.
몇 번의 전투가 끝이 나자 타미르안의 레어 주변에는 더 이상 나무들이 보이지 않았다.
타미르안은 라이안이 버틸 수 있는 한계점까지 라이안을 몰아갔고 라이안은 금방 지쳐갔다. 용언마법 몇 가지를 연속으로 펼치는 타미르안의 마법은 라이안이 쉽게 피하고 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로 인해 라이안은 환환미종보를 극의까지 전부 깨달을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날도 여전히 타미르안과 라이안의 대련은 계속되고 있었다.
“헬 파이어!”
“빌어먹을 헬 파이어…….”
검붉은 구가 타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라이안에게 날아들었다.
“잘 피하게나! 폭!”
타미르안의 폭이라는 말을 듣자 라이안은 환환미종보의 극의를 펼쳤다.
라이안의 신형은 순식간에 20에서 40으로 그리고 100에 가깝게 늘어났다. 갑자기 공간 안에 100명의 라이안으로 둘러싸인 듯한 모습이었다.
타미르안이 폭이라고 외치자 라이안에게 날아들던 헬 파이어가 폭발했다.
파방!
슈슈슈슈슉!
헬 파이어가 폭발하며 수백의 파편과도 같은 불덩어리들이 모든 라이안들을 덮쳐들었다. 그러나 수많은 라이안들은 각자가 진짜인 듯 그 모든 불덩어리들을 피해내고 있었다.
곡예를 펼치듯 불덩어리들을 피한 라이안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며 땅에 내려섰다.
“허억… 허억… 젠장…….”
라이안의 몸에서는 약간의 연기가 나고 있었다. 폭으로 터진 헬 파이어를 모두 피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타미르안은 그런 라이안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내가 로드 이외에 가장 강하지만 로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강할 것이라 생각하네…….”
어느 정도 호흡을 진정시킨 라이안이 땅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나도 알아. 드래곤로드는 신의 선택된 대리자로서 11서클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 그리고 그것은 10서클 마법들과는 천양지차의 파괴력을 지녔다는 것도… 이거 앞이 안 보이네…….”
조금 풀이 죽은 라이안을 보며 타미르안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조금 전 피해낸 것은 9서클 이상의 마법조합이었네. 그것을 피해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자네의 발전 속도는 어마어마한 것이라네.”
“그렇겠지…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한 달 이상은 지나야 내 몸을 찾을 수 있겠어… 언제 위험이 닥칠지도 모르는데…….”
“힘을 내게나. 다른 드래곤들은 아직 챠둠 외에 자네들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네.”
“그게 내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야. 그들이 알았다면 당장이라도 쳐들어왔겠지.”
타미르안은 그런 라이안을 보며 의문을 느껴 물었다.
“그런데 자네의 본래 몸 상태라면 얼마나 강한 것인가? 솔직히 지금도 자네가 강해지는 속도를 본다면 경이로울 정도라네.”
“후훗, 아직 타미르안을 드래곤으로 현신시킬 수 있는 능력도 안 되지만 아마도 본래의 몸 상태가 된다면 타미르안이 드래곤으로 현신해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라이안의 말에 타미르안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드래곤은 천성이 자존심 강한 존재였다.
“설마 그 정도까지 강해지기야 할라고.”
타미르안의 말에 라이안은 파황혈천무를 생각했다. 아직 자신조차 그 무공의 끝이 얼마나 강할지 몰랐다.
“헤헤, 두고 보면 알 거야. 그건 그렇고 할아버지들하고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으려나… 이거 궁금하네… 루시에게 약속한 것도 지키지 못했으니…….”
라이안은 며칠 동안 챠둠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몸을 치유하는 시간도 빠듯하다고 느끼며 수련에 매진했기 때문이었다.
“챠둠이나 보러 가야겠다. 어디 얼마나 진전이 되었는지 볼까?”
“흠… 그것은 나도 궁금하군. 나도 자네와 대련하느라 챠둠 그 친구를 보지 못한 것 같으이.”
“같이 한번 가보자. 헤헤. 어?”
휘청! 털썩!
라이안은 서둘러 일어나려다가 도로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타미르안이 그것을 보며 말했다.
“이보게, 자네 마나를 너무 많이 소진하지 않았는가? 어서 마나를 모으고 몸을 추스르게나.”
“휴우… 그래야겠네. 움직이지를 못하겠어.”
결국 라이안은 혈기공을 운기하며 마나를 모아 몸을 회복한 후에 움직여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