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장 추격하는 검은 그림자
음침한 기운이 도는 한 지하실에서 검은 갑옷을 입은 자들이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희열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바로 블랙섀도우 기사들이었다.
“힘이 넘친다… 이 정도 힘이라면… 이 정도 힘이라면 그를 죽일 수 있어… 크흐흐.”
“이것이 내 몸이란 말인가…….”
“크흐흐… 크하하하하!”
각자 자신들의 몸속에서 흐르는 기운을 느끼며 희열에 빠져 있을 때 그곳에 검은 연기와 같이 나타난 존재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마족 팰렌과 바테르였다.
“어때? 힘이 마음에 들어?”
“최고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수백 기사들이 덤벼도 모조리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크흐흐.”
마기를 주입받은 덕택에 힘이 월등히 상승한 듯 보였으나 그 힘은 그들의 심성까지 사악하게 변화시킨 듯했다.
“다행이네. 지금부터 너희가 그토록 죽이고 싶어 하던 스피어마스터라는 놈을 죽이러 갈 거야. 그러니 모두 준비들 해.”
구석에 앉아 있어 잘 보이지 않던 자가 일어나며 대답했다.
“잘 됐군. 그놈을 죽이고 싶어 힘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다.”
음침하게 걸걸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자의 몸은 마치 그가 마족이라도 된 듯 마기가 풀풀 흘러넘쳤다.
그는 바로 캐드 단장이었다.
팰렌은 그런 캐드 단장을 보며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했다.
“정말 대단한데? 그 정도까지 마기를 흡수할 수 있을 줄이야… 엄청난 집념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을 거야. 내가 보기엔 당신 혼자서도 그를 죽일 수 있을 것 같군.”
팰렌의 칭찬이 기쁜지 캐드 단장이 비릿하게 웃었다.
“후후후, 그렇지 않다면 너희에게 영혼을 팔 이유가 없었지… 어디로 가는 것인가… 히매인 왕국으로 가는 것인가?”
“아니야, 그는 이미 그곳에 없어.”
팰렌의 말에 캐드 단장이 당장이라도 찢어죽일 듯 쳐다봤다.
“후훗, 넌 내 상대가 못 된다. 그러니 그런 눈빛을 보낸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팰렌의 말에 인상을 찡그린 캐드가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있는가?”
팰렌은 건방진 캐드 단장의 태도를 고쳐주고 싶었으나 그와 라이안 중 어떤 자가 이길지 궁금했기에 그만 두기로 했다.
‘휴… 도구가 망가지면 곤란하니 내가 참아야지…….’
“너희 에드코르 제국의 정보에 따르면 그가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곳이 자이라 영지라고 하더군. 그리고 너희의 정보국이 방향을 따져본 결과 몬스터의 초원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하고 추정하던데?”
“몬스터의 초원이라…….”
“그래, 아마도 그는 이곳 에드코르 제국의 반대편으로 가볼 생각인가 봐.”
“그럼 우리 또한 몬스터의 초원으로 가야 하겠군.”
“응, 맞아.”
“크흐흐! 기다려라, 스피어마스터!”
그날 저녁, 황성 근처의 술집은 괴담으로 시끄러웠다. 황성에서 악마와도 같은 자들이 말을 타고 나갔다는 것이다. 그들을 본 자들은 그들의 눈에서 이상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고 입 다투어 말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없었으니 곧 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갈 수밖에 없었다.
* * *
침낭을 거두고 아침 식사를 하던 라이안의 친구들은 라이안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라이안은 침울해 있기도 하고 어쩔 땐 심각해져 있기도 했다.
그는 항상 밝았다. 따라서 지금과도 같은 모습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라이안에게 디로안이 무엇인가 결심한 듯 물었다.
“라이안, 어제 꿈이 그렇게 안 좋았어? 도대체 왜 그래?”
“음……?”
라이안은 갑작스런 디로안의 물음에 고개를 들었고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왜? 왜 그래, 다들?”
“왜긴, 뭐가 왜야? 다 너 때문이지. 너 왜 그렇게 심각해져 있는 거야? 설마 꿈 때문에 계속 그렇게 있을 리는 없고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거야?”
답답해하던 헤인드가 참다못해 속에 있던 말들을 꺼내놓았다.
라이안은 그때서야 자신이 너무 내색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나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구나. 그래, 잊자. 쉽게 당할 챠둠이 아니니까 곧 연락이 오겠지…….’
“아, 다들 왜 그러는 거야? 내가 심각하게 있었던 건 어떻게 하면 너희를 더 강하게 훈련시킬 수 있을까 해서 고민하고 있었던 거야? 알아?”
헤인드와 디로안은 라이안의 말을 듣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 그런 거였어?”
“난 또 그런 것도 모르고… 네가 꿈 때문에 걱정하고 있나싶었지.”
라이안이 그들의 말을 듣고는 활기차게 일어나며 양 허리에 손을 짚었다.
“뭐야? 내가 겨우 그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는 거야? 이것들이! 그래, 안 되겠어! 오늘부터 며칠간은 이곳에서 계속 야영한다. 주위에 냇가도 있고 근처에 산도 있으니 훈련하기에 안성맞춤이로군.”
“여기서?”
“뭐, 나쁠 건 없지만… 이 정도면 생활하는 건 상당히 편할 테고…….”
헤인드의 말로 인해 라이안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편한? 흠… ‘편한’이라…….”
‘편한’ 이라는 말에 라이안은 루시 공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왕 편할 거… 조금 더 편하면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어차피 훈련도 해야 하고… 큭큭.’
생각을 마친 라이안이 헤인드와 디로안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좋아! 지금부터 헤인드와 디로안, 둘은 지금 이곳에 보이는 나무들을 모두 잘라.”
“여기 있는 나무를 전부 말인가?”
“이봐, 라이안! 그건 하루 종일 해도 불가능하단 말이야!”
헤인드와 디로안이 말도 안 된다며 따지고 들었지만 라이안은 자신의 창을 꺼내 한쪽에 서서 창을 휘둘렀다.
“청룡일섬!”
쑤아아아아악!
스걱! 스걱! 스걱!
하나의 금빛줄기가 한쪽으로 뻗어 나갔고 곧 십여 개의 나무들이 스르륵 쓰러지기 시작했다.
꺼걱! 꺼거거걱!
퉁! 투둥! 퉁!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라이안의 앞쪽에 있는 모든 나무들이 쓰러져버렸다.
디로안과 헤인드,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모두가 라이안의 신위에 입을 벌렸다.
“무, 무식한 놈…….”
“대단해…….”
라이안은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지를 만한…….
“이렇게 되고 싶지 않은 거야?”
라이안의 말을 들은 헤인드와 디로안의 눈에는 화산이 타오르는 듯 불이 붙었다. 그들은 아무런 말없이 자신의 검을 뽑아 근처의 나무를 향해 휘두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턱!
“으아아아!”
턱!
야영을 하던 자리 근처에서는 하루 종일 이러한 소리가 끊이질 않고 들려왔다.
에나도 그들의 수련모습을 보고는 제프리스의 마도서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헤인드와 디로안이 나무를 베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라드이라였다.
그런 라드이라를 본 라이안은 자신의 머리를 양손으로 눌렀다.
‘아차… 그러고 보니 라드이라에게도 검술을 가르쳐 준다고 했었는데… 크흐…….’
라드이라에게 큰 미안함을 느낀 라이안은 높이 뛰어 올라 목검으로 쓰기에 적당한 나무줄기를 찾아 수강으로 잘라냈다.
터덕!
“으쌰…….”
라이안이 땅에 내려서자 잘려진 나무가 그 후에 떨어졌다.
탁!
라이안은 나무줄기를 잡아채 수강으로 매끄럽게 손질했다. 나무는 순식간에 라이안의 손에서 목검으로 탈바꿈 되었다.
루시 공주는 그것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와! 대단해요.”
“헤헤, 뭘요…….”
루시 공주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라이안과 친구들의 훈련을 구경하는 것뿐이었다. 따라서 근근이 라이안의 이런 행동에 신나하는 것은 당연했다. 손에 오러를 생성시킬 수 있는 사람이 대륙 천지 어디서 쉽게 볼 수 있겠는가.
라이안은 헤인드와 디로안의 수련을 구경하고 있던 라드이라에게 다가갔다.
“라드이라, 너도 오늘부터 수련을 시작 해야지?”
라이안의 말에 뒤를 돌아본 라드이라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저, 정말 저도 수련을 시켜 주시는 겁니까?”
“그래, 그러기로 약속했잖아. 내가 너를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신관으로 만들어 줄게… 대신! 힘든 훈련이 될 테니까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거야. 알았지?”
“알겠습니다! 정말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라드이라는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랐다. 라이안은 라드이라의 그러한 미소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 우선 이거 받아. 앞으로 네가 쓸 검이니까.”
라드이라는 처음 만져보는 검이기에 그것이 나무인들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검을 들었다는 것에 한껏 기뻐하며 팔을 부들부들 떨뿐이었다.
그가 그렇게 뿌듯해 하고 있을 때 라이안은 라드이라에게 가장 적합한 검법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휴… 가르쳐 준다고는 했는데 뭘 가르쳐줘야 할까? 아직 신성력과 마나를 같이 움직이는 방법도 모르는데…….’
라이안은 하는 수없이 초식부터 가르쳐 주기로 했다.
신관들은 보통 체력이 부족한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라드이라 같은 경우 용병생활을 해서 그런지 보통 신관에 비하면 좋은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민첩함을 위주로 하는 검법이 좋겠군… 빠르고 적의 급소만 노릴 수 있는…….’
그때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었으니 타미르안으로부터 얻은 마법에 대한 지식이었다. 바로 마법무구였다. 힘을 두 배에서 세 배까지 늘려주는 힘의 장갑이라든가 발의 움직임을 빠르게 해줄 수 있는 민첩의 부츠 같은 것이었다.
‘호오…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보법을 읽힌 상태에서 민첩의 부츠라는 것을 신으면 얼마나 빨라질 수 있을까?’
“큭큭큭, 그거 실험해볼 만한데?”
라드이라는 자신의 앞에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렇게 큭큭거리고 웃는 라이안을 보며 의아해 했다.
라이안은 눈만 말똥거리며 서 있는 라드이라에게 물었다.
“라드이라, 신성력이 사용되는 것은 어떤 종류가 있지?”
“신성력이 사용되는 거요?”
“응, 뭐랄까… 신성력에서도 공격과 방어에 대한…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 해서.”
“신성력의 전투력은 대부분 언데드에 대한 방어와 공격이 있습니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람은 언데드에 있어서만큼은 그 어떤 마법사나 기사들보다 월등한 공격력을 보이죠. 이를 사용할 때는 밝은 빛이 흘러나오는데 그것은 엔데드형 몬스터에게 치명적이며, 그들에게 공격당할 때에도 마법사의 실드와 같은 효과를 보입니다. 물론 그 신성력의 실드를 공격한 엔데드는 소멸당하는 것이 보통이죠.”
라이안은 라드이라의 말을 들으면서 신성력의 종류가 하나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다른 신성력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라피네 신 외에도 다른 신들이 있을 거 아냐?”
라드이라는 라피네 신을 믿는 신관으로서 라이안의 말이 조금 언짢았다. 라피네 신만이 제일 신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라이안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그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언데드형 몬스터에는 대부분의 신성력이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신의 힘 자체가 밝은 빛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네크로맨서들이나 흑마법사는 마신이나 마왕의 힘을 빌려 어둠의 속성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계약을 통해서요. 어둠 속성의 마법은 언데드를 부릴 수도 있고 보다 높은 힘을 부여할 수 있는 반면, 신성력은 그것을 정화하는 힘이 있습니다. 즉, 모든 신성력은 언데드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공격력이 강한 신성력도 있나?”
“있습니다. 바로 전쟁의 신 아레스 님이시죠.”
“아…있기는 하구나…….”
라이안은 라드이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라드이라는 별로 마음에 안 든 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대륙에서 전쟁의 신 아레스 님을 모시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니, 상당히 배척 받는다고 할 수 있지요. 사람들은 실제로 전쟁을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피를 부르는 전쟁의 신인만큼 마신과 같은 취급을 한답니다.”
“그거 상당히 편파적이군. 흑 아니면 백이라는 말인가?”
“피를 즐기면서도 피를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니까요.”
라이안은 갈수록 라드이라가 말하는 신성력에 빠져들었다.
“그럼 가장 강한 신은 누구지?”
라이안의 물음에 라드이라는 당연하다는 듯 강하게 말했다.
“그야 당연 주신이신 라피네 님이시죠.”
“그래? 주신이라는 것은 어떤 거야?”
“주신께서는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이 차원 전체를 만드신 분입니다. 주신께서는 마계와 신계, 그리고 정령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중간계를 창조하셨지요.”
“차원 전체라… 그럼 내가 온 곳에서도 그 차원을 만든 신이라는 것이 있었겠군. 어? 그럼 다른 차원을 만든 신과 라피네 신 중 누가 더 강한 거야?”
라드이라는 라이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흠… 고대의 문언에 따르면 차원을 만들 때 얼마나 큰 힘을 들였나에 따라 다르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힘을 소비한 신이 더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전 차원계의 신을 만드신 창조주와 같이요…….”
“창조주와 같다니? 창조주가 전 차원계의 신들을 만들었다면 당연히 그가 가장 강한 것 아닌가? 창조주가 너무 많은 힘을 사용해서 다른 차원계의 신들보다 약해지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당연히 창조주께서는 모든 차원계를 관장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라이안 님의 말대로 힘으로 따진다면 당연 제일이시죠. 그런데…….”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었습니다. 고대의 문헌에 혼돈의 신인 카오스가 창조주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말이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혼돈의 신 카오스라…….”
쿠궁쿠궁!
‘뭐지?’
라이안은 갑자기 혼돈의 신 카오스라는 말을 듣자 자신의 심장이 크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것은 심장이 아니라 영혼 전체가 진동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몸에서 무엇인가가 살짝 빠져나와 자신의 몸 위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때!
라이안은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팔위로 하나의 희미한 또 다른 팔이 얹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라이안은 급히 놀라며 자신의 머리 위를 바라봤다.
휘익!
“헉!”
갑자기 알 수 없는 형태가 자신에게 업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형태는 라이안이 제대로 분별하기도 전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라드이라는 갑작스런 라이안의 행동에 이상해 하며 물었다.
“라이안 님, 왜 그래요?”
라이안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주위를 급히 둘러보다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분명히 그다. 명상수련에서 보았던 그가 틀림없어…….”
“누구라는 거죠? 전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요?”
라드이라가 라이안의 심각한 표정을 보며 물어왔다.
라이안은 다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 아침부터 컨디션이 별로네.”
라이안의 둘러대는 모습에 라드이라는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라이안은 라드이라의 어깨를 툭툭 치며 활기차게 말했다.
“우선 신성력의 사용은 잘 모르니까 어쩔 수 없고 검술의 초식부터 연습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좋아, 넌 항마의 효능이 있는 무당의 검법을 배우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살았던 곳에서 귀신, 즉 고스트를 소멸하거나 하늘로 돌려보내는 사람들이 쓰던 검술이야. 항마의 효능이 있으니 아마도 어둠 속성의 무리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따라서 너에게 가장 적합한 검법이 되지 않을까 해. 어때?”
“라이안의 말대로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검법이라면 신관인 저에게 있어 날개를 다는 것과도 같은 것이겠지요.”
만족스러워 하는 라드이라의 말을 들으며 라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배우게 될 것은 항마칠검이야. 총 일곱의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지. 우선 한 번 보여 줄 테니 잘 보도록 해. 네 검을 줘봐.”
라이안은 라드이라에게 검을 받고는 조금 벗어나 항마칠검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러자 심심하게 풀을 뜯으며 손장난을 하던 루시 공주도 라이안이 앞으로 할 행동이 궁금해 그를 바라봤다.
“마천참광유!”
라이안이 몸을 낮추었다가 아래에서 하늘을 긋듯이 베어갔고 검은 밝은 빛과 함께 땅에 떨어졌다.
콰르르르릉!
“마화일섬!”
라이안의 검로에서는 하나의 꽃봉오리가 환상처럼 생겨났으며 화려한 검로를 따라 꽃봉오리가 활짝 펴졌다.
루시 공주와 라드이라는 라이안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침음성을 삼켰다.
“대, 대단하다.”
“아…아름다워…….”
그러나 활짝 펼쳐진 꽃을 라이안이 검광과 함께 단칼에 잘라버림으로써 그들은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밝은 검광을 내며 꽃을 베어서 그런지, 그 꽃은 처음부터 검은색이었던 것처럼 검은 꽃잎을 뿌려댔다.
“마유장거!”
라드이라는 분위기가 일순간 바뀐 라이안의 검에서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만약 자신이 라이안의 검 앞에 있었다면 그 검에 베일까봐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항마영멸!”
라이안의 검은 이제 하나의 빛이 되었다.
금빛의 오러블레이드는 평소의 그것이 아닌 더 밝은 성광을 나타냈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뜨고 보지 못하게 할 정도의 빛이 흘러나왔다.
“항마강압!”
몸을 띄운 라이안의 검이 항마의 기운을 담고 대기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듯 땅을 내려쳐왔다.
콰과과광!
“천세마수!”
땅에 내려선 라이안이 검에서 갑자기 빛이 사라졌다. 주위의 환경 또한 원래 밤이었던 것처럼 어두워졌다. 그러나 이내 어둠속을 가르는 라이안의 검에서 빛이 터져 나왔고 그 빛으로 인해 어둠은 검은 연기가 바람에 날려가듯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쑤하하하학!
“천지광조!”
검을 뻗은 채 몸을 휘감는 라이안의 신형은 곧 서서히 하늘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몸이 어느 정도 정점에 오른 듯하자 라이안은 태양이 되더니 곧 하늘과 동화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라이안이 있던 곳에서 구름을 찢고 빛이 대지를 비추는 듯 밝은 빛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과과과과광!
그 빛의 수는 수십에 이르렀으니 라드이라와 그것을 보고 있던 루시 공주는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나무를 자르던 헤인드와 디로안 역시도 라이안의 신위에 놀라며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에나 또한 라이안을 바라보며 희열을 느낀 듯 하늘만을 쳐다볼 뿐이었다.
서서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라이안의 옷은 거칠게 펄럭였고 그것은 라이안이 땅에 내려선 후에야 멈추었다.
“후…….”
모든 초식을 마친 라이안이 자신의 몸속에 있는 마나를 다스리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감겨 있던 눈을 뜨자 약간의 마나가 흘러나오는 듯 번뜩였다가 점점 사라졌다.
그렇게 안정을 취한 라이안이 라드이라를 바라보았다.
“어때? 지금 내가 보여준 것이 항마칠검이라는 거야. 마음에 들어?”
라드이라는 아직도 넋을 잃고 있었다. 아니,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멍하니 라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드이라? 라드이라!”
“아, 네!”
라이안이 몇 번을 부르고 난 뒤에야 대답하는 라드이라였다.
“항마칠검을 견식한 느낌이 어떠냐니까?”
“정말 제가 그것을 배울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그것을 배우면 정말 라이안 님처럼 그런 검술을 펼칠 수 있는 것입니까?”
라드이라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라이안에게 물었다.
라이안은 라드이라의 물음에 눈초리를 살짝 올리며 생각을 한 후 입을 열었다.
“흠… 글쎄… 신성력은 더 밝은 빛을 나타내니 조금 전 내가 보여준 것 보다 더 화려하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다만 숙제라고 한다면… 그 신성력을 어떻게 하면 검에 담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닙니다… 제가 그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뿐입니다.”
“좋아! 그럼 앞으로 확실히 수련해 보자고!”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드이라의 말이 불씨가 되었는지 다른 사람들도 더 열심히 수련을 하고자 마음먹게 되었다.
그날 이후 라드이라는 라이안을 따라 항마칠검의 초식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라드이라의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항마칠검의 초식을 익히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헤인드와 디로안은 며칠 동안 나무를 베었고 라드이라의 뒤에서 항마칠검의 초식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항마칠검이 무척이나 멋있어 보였던 모양이었다.
라이안이 다른 할 일이 있다고 하고선 그곳을 벗어나자 가장 먼저 항마칠검의 초식을 모두 익힌 라드이라가 헤인드와 디로안에게 항마칠검의 초식을 가르쳐주었다.
다른 기사나 용병이 그러한 모습을 보았다면 무척이나 놀라워했을 것이다. 신관이 검사에게 검술을 가르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쪽으로 벗어난 라이안은 헤인드와 디로안이 베어낸 나무를 보며 정령들을 불러냈다.
“좋아, 이제 시작해 볼까?”
“계약자여… 무엇을 하면 되는 것인가…….”
땅의 상급정령 노에스가 라이안에게 물어오자 라이안은 노에스를 보며 웃었다.
“지금 이곳에 작은 집을 지을 생각이야. 그러니 지금 내 앞에 있는 이곳을 평평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어.”
“쉽군…….”
구구구구구!
노에스 말을 마치자마자 라이안이 말한 곳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곳의 땅은 약간의 진동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평평해졌다.
라이안은 그러한 모습을 보며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했다.
“자, 그럼 이제 내가 나무를 땅에 올려놓을 때마다 이 정도 만큼 땅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줘.”
라이안이 나무의 어느 정도 높이를 손으로 짚으며 말하자 노에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안이 마나를 이용하여 커다란 나무를 번쩍 들어 땅 한곳에 수직으로 올려놓을 때마다 노에스는 그 나무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땅에 심었다.
그렇게 하나씩 나무들이 심어지기 시작하자 몇 개의 나무를 반으로 잘라 그 안쪽으로 깔아 넣었다. 집 안쪽에 바닥을 만들고 나머지 나무를 심어 벽을 만들었다.
숲속의 나무들은 상당한 높이였기에 절반씩 잘라서 기둥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넓은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지붕까지 만들어 끼워 맞춘 라이안이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춘 집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거 상당히 넓은 집이 만들어 졌네? 노에스, 수고 했어. 이제 돌아가도 좋아.”
“알았다…….”
노에스는 라이안의 말에 뭔가 언짢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돌아갔다.
“내가 너무 단순 노동만 시켰나? 하하…….”
라이안도 그렇게 돌아가는 노에스에게 왠지 미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라이안은 수강을 이용하여 몇 개의 나무를 반듯하게 자르고는 집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햐… 이거 상당한 넓이인데? 한 50평은 되겠어.”
아직은 지구에 살았을 때의 계산이 좋은지 ‘평’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라이안이었다.
“그럼 우선 곳곳에 벽을 만들어 볼까?”
라이안은 자신이 가지고 들어온 나무를 이용해 집 안쪽에 또 다른 벽을 대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구멍을 만들어 끼어 맞추는 방식으로 잘라놓았기 때문에 오두막집은 마치 블록 장난감을 맞추는 듯 손쉽게 만들어졌다.
방을 만들고 방마다 침대를 만들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한 라이안은 자신이 만든 것들을 보며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했다.
“와… 이거 내가 만들어 놓고도 멋진데? 근데… 뭔가 좀 부족한 거 같기도 하고…….”
나무로 만들어진 침대 그대로 잠을 잔다면 너무 딱딱할 것이 뻔했으며 식기가 너무 부족했다.
“이거, 나 혼자서라도 마을에 다녀와야 할 거 같은데…….”
라이안은 이왕 편하게 지내는 거 더 편하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흠… 내가 지금 초광속을 펼칠 수 있을까나…….”
라이안은 잠시 자신의 몸에 있는 마나를 측정해 보았다. 결론은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좋아, 우선 시도해 보는 거야 문제가 안 되지. 중간 중간 혈기공을 운기하면 빠르게 마나를 보충할 수 있으니까…….”
생각을 마친 라이안은 오두막집에서 나와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오두막집을 만든 곳이 친구들이 야영하는 곳과 조금 거리가 있어 그들은 라이안이 오두막집을 지었다는 것조차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정령을 이용해 아주 빠른 시간에 오두막집을 지었으니 그들이 그것을 보았다면 무척이나 놀라워했을 것이다.
라이안이 야영하던 곳으로 걸어가자 그곳에는 아직도 라드이라를 따라 항마칠검을 연습하는 디로안과 헤인드가 보였다.
에나는 제프리스의 마도서를 판독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루시 공주는 지루했는지 나무에 기대어 잠을 청하고 있었다.
라이안은 항마칠검의 초식을 연습하는 라드이라와 그 외 학생(?)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난 잠시 마을에 다녀올 테니까 다들 걱정하지 말고 연습하고 있어. 해가 지기 전까지는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
“마을?”
“마을을 다녀온다니? 여기서 마을이 얼마나 먼데 마을을 다녀온다는 거야?”
“그래, 우리가 여기 들어온 지도 열흘이 넘었잖아?”
하지만 라이안은 그들을 바라보며 웃기만 할 뿐이었다.
“어쨌든 해가 지기 전까지는 올 테니까 그리 알고 연습들이나 해.”
“뭘 어쩌려고…….”
그들이 보기에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몬스터와 전투를 하며 들어왔다고는 하나 마을에 갔다 오는 데만 해도 족히 열흘은 넘게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라이안은 그들에게 등을 보이며 돌아서며 몸속의 마나를 다스렸다.
‘휴우… 초광속 경공은 시전할 때 보다 시전할 때가 더 많은 마나를 가져갔었지? 시전만 가능하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거야… 게다가 몸속의 마나를 끝까지 다 써가며 보충하면 그만큼 마나가 늘어 가는데 가속을 붙일 수도 있고…….’
요즘 들어 몸이 급격히 호전되면서 아침과 저녁에 하는 운기만으로도 상당한 마나가 늘어났기에 할 수 있는 시도였다.
“좋아, 해보자!”
헤인드와 디로안은 도대체 라이안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 라이안을 바라봤다.
라이안이 초광속을 시전하려고 하자 라이안의 몸에서 알 수 없는 빛이 흘러나와 라이안을 감싸기 시작했다.
구우우우우웅!
“오러가 전신을 감싸다니!”
“뭐야! 저럴 수도 있는 거야?”
호신강기를 극성으로 펼치자 호신강기 자체가 몸 주위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둥근 원처럼 라이안을 감싸버렸던 것이다.
라이안의 몸이 빛에 감싸지더니 서서히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어…….”
“어, 뜬다!”
헤인드와 디로안이 서로 어어거리며 놀라고 있을 때 라이안의 몸은 점점 허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갈천혁과 혁마소가 사용하는 경공이었다.
라이안의 몸이 어느 정도 나무들보다 더 높은 높이까지 올라간다 싶었을 때 대기를 찢는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파방!
그리고 라이안은 하나의 빛이 되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고 헤인드와 디로안, 그리고 라드이라는 혀를 내둘렀다.
“저렇게 빨리 날아갈 수도 있는 거야?”
“가끔 보면 나도 저놈이 사람인지 의심스러워.”
“저 정도 속도면 해가 질 때까지 충분히 자이라 영지에 갔다 올 수 있겠네요.”
라드이라의 마지막 말에 헤인드와 디로안이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초광속 경공으로 날아가던 라이안은 곧 마나의 고갈로 속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땅으로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
쑤우우우웅!
휘리리리릭!
터덕!
“헉…헉…….”
라이안은 땅에 내려서자 서 있기도 힘든 듯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역시… 헉… 아직은 무리구나. 헉헉…….”
라이안의 몸속에는 아주 약간의 검기조차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마나만 존재했으니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었다.
상당한 시간 동안 호흡을 조절한 라이안은 겨우 안정이 되었는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우웁! 하아아아아… 어서 혈기공을 운기해야겠다.”
라이안은 혹시라도 몬스터가 나오지는 않을 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은 기원을 펼칠 마나조차 없었기에 소리와 육감으로 판단해야 했다.
안전하다고 판단한 라이안이 자리에 앉았다.
“이거 만약 몬스터라도 덤벼든다면 꼼짝없이 당하는 거 아냐? 휴우… 다음부터는 조금의 마나는 남겨 두고 멈춰야 되겠어. 강식장갑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마나는 남겨 둬야 하니까…….”
강식장갑을 사용한다면 미량의 마나가 있더라도 마스터급 이상의 움직임을 보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몬스터에게 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은 라이안이 곧 운기에 들어서자 주위에 있던 상큼한 공기들이 라이안에게 흘러들어왔다.
라이안에게 몰아치는 마나들은 이전과는 달리 상당한 돌풍을 만들었다.
라이안의 몸 주위는 고요 그 자체였으나, 밖에서 이를 본다면 라이안이 마치 아주 작은 회오리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엄청난 마나가 라이안에게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라이안의 운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구의 시간으로 약 이십 분 정도 걸렸으니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번쩍!
갑자기 눈을 뜬 라이안의 눈동자에서 맑은 금광이 번뜩였다.
“후훗, 이거 위험부담을 한 보람은 있는데? 마나가 늘어난 것이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야. 아직 현경 정도는 아니지만 거의 근접해 있는 것 같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던 라이안은 도로 초광속을 펼치며 하늘로 날아갔다.
자이라 영지는 영주가 바뀌었다는 소문이 전체에 퍼지자 축제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심한 착취가 사라졌으며 세금이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상업영지여서 장사를 하면 그만큼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었지만 그럴수록 데르미크 남작이 더 많은 세금을 요구해 왔었다.
장사를 하는 영지민으로서는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을 퍼 붓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펠리언이 영주가 되면서 장사를 하는 영지민들의 숨통이 확 트이게 되었으니 이제 그들도 노력만 한다면 상당한 제물을 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몬스터의 초원을 가로막고 있는 높은 성벽 위에 몸을 낮추어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초광속으로 날아온 라이안이었다.
라이안은 높은 곳에서 영지를 둘러보며 뭔가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와… 평소보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더 활달해진 것 같은데? 펠리언이 잘하고 있나보네? 후훗!”
라이안은 성벽에 내려서며 영지의 내성인 영주성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라이안은 자신의 뒤로 하얀 새 한 마리가 날아드는 것을 보지 못했다.
라이안이 자이라 영지에 들어섰을 무렵…….
자이라 영지의 근처에서는 커다란 검은 기운들이 모이더니 약 십여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평범한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두 명의 사람들은 바로 인간의 피부색으로 변신한 팰렌과 바테르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온 검은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들은 역시나 마옥의 힘으로 엄청난 힘을 얻은 블랙섀도우 기사단이었다.
캐드 단장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높은 성벽이 있는 영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고는 그곳을 바라보며 두 마족에게 물었다.
“이곳이 자이라 영지인가?”
캐드 단장의 물음에 팰렌이 대답해 주었다.
“흠… 오리닌 황제로부터 받은 좌표로는 분명 이곳이 자이라 영지가 맞아. 아마도 저기가 자이라 영지겠지?”
팰렌이 눈에 보이는 영지를 바라보더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럼 우선 가봐야겠군.”
그들은 라이안이 와있는 자이라 영지로 걸음을 옮겼다.
펠리언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확실히 도둑길드를 운영할 때보다 한 영지를 운영하는 것이 벅차기는 했다. 그러나 펠리언은 아주 충실히 그 모든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딸깍!
“으음?”
갑자기 펠리언이 있는 집무실의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뭔가 이상해 하던 펠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가려고 하는 순간!
끼이이이익!
“으챠! 나, 또 왔어”
“헉! 라이안 님!”
갑자기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나 창문으로 들어왔으니 그것은 바로 라이안이었다.
펠리언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왜 문으로 들어오시지 않고 창문으로…….”
“그게 말이야… 귀찮아서 그렇지… 헤헤. 내성 안쪽으로 들어오려면 병사들에게 말해야 하고 그러고 나면 또 누군가에게 안내를 받으며 홀에서 대기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또 펠리언에게 알리러 가면 그때까지 또 기다려야 하고… 너무 복잡하잖아? 그래서 그냥 내가 찾아온 거야. 절차는 간소해야 좋은 거 아니겠어?”
“하…하하… 그, 그렇지요. 절차는 간소 할수록 좋지요.”
펠리언은 라이안의 말에 허탈한 듯 웃어버렸다.
‘절차가 귀찮아서 담을 넘고 창문으로 들어오시다니… 크… 역시 라이안 님이시군.’
펠리언이 곧 뒤로 물러서며 라이안에게 말했다.
“우선 자리에 앉으시지요.”
“응.”
라이안은 소파를 돌아가는 것도 귀찮은지 한 손을 짚으며 번쩍 뛰어 넘으며 소파에 앉았다.
펠리언은 그런 개구쟁이 같은 라이안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허… 이런 분이 검은 사신이라니… 누가 이분을 검은 사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라이안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보면 펠리언의 속마음대로였다.
소문에 따르면 검은 사신은 바로 전투의 사신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과장된 소문에 의하면 검은 사신은 단신으로 80만 에드코르 제국의 군사들에게 뛰어들어 그들을 도륙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라이안의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겨 소파에 앉은 펠리언이 라이안에게 물었다.
“무엇을 준비해 드리면 되겠는지요?”
“어? 내가 뭔가를 가지러 왔는지 어떻게 알았어?”
“허허허, 라이안 님만 혼자서 돌아 오셨으니 분명 뭔가 빠뜨린 것이 있거나 필요한 게 있으신 것이겠지요. 그리고 가장 먼저 저를 찾아오신 것을 보면 그 필요한 것들을 빨리 구하고 싶은 것이고요.”
“햐아… 이거 아주 잘 알고 있는데? 펠리언 말이 맞아. 확실히 내가 직접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펠리언이 사람을 시켜 그것을 준비해 주는 것이 더 빠르고 편하니까. 헤헤, 잘 부탁해.”
“허허허, 말씀만 하십시오. 라이안 님의 명이시라면 제 목숨이 걸린 일이라도 해드릴 것입니다.”
“에이…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는 일이야. 그냥 단순한 이불이나 나무침대에 깔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해. 그리고 간단히 조리를 할 수 있는 식기와 약간의 야채 정도?”
펠리언은 라이안의 말을 들으며 웃었다.
“허허허, 몬스터의 초원에 무슨 오두막집이라도 지으셨습니까? 나무침대에 깔 수 있는 침구와 식기들이라니요. 허허허!”
그냥 웃자는 소리로 물어보는 농담이었다.
“와, 펠리언은 정말 점집을 차려도 굶지는 않을 것 같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혹시 미행이라도 붙인 거야?”
라이안의 말에 인자하게 웃고 있던 그의 표정이 황당하다는 듯이 변해버렸다.
“헉! 정말로 그곳에 오두막집을 짓고 생활하실 생각입니까?”
“집은 이미 다 지었지. 그래서 필요한 게 지금 내가 가져갈 것들이고.”
“헐…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뭐… 라이안 님이시니…….”
“하하하, 몬스터들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몬스터들은 내가 지은 집 근처에 올 수 없거든. 그 근방에 이곳에서 말하는 결계 같은 것을 설치해 두어서 말이지. 후훗.”
라이안의 말을 들은 펠리언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안이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덴조를 마법으로 구하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아… 라이안 님은 마법도 하실 수 있었었지… 결계 마법이라면 적어도 7서클 이상이거늘…….’
펠리언은 라이안의 마법력도 7서클 이상이라고 판단하게 되어었다.
사실은 아직 6서클이었지만…….
펠리언은 라이안이 부탁대로 필요한 물건들을 빠르게 구하라고 부하에게 지시했다.
라이안은 집무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덴조와 베일은 어때?”
라이안의 말에 펠리언이 약간 불만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참… 생각하면 어이가 없습니다. 한 번 들어보십시오.”
펠리언의 불만은 이것이었다.
라이안에게 무엇인가를 받은 덴조와 베일은 펠리언이 급한 일을 도와달라고 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수련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목숨 보다 아끼던 그들이 어떻게 저에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라이안은 펠리언의 이야기에 만족스러운 듯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잘하고 있는 것 같군. 후훗!’
펠리언은 라이안의 눈치를 보며 생각했다.
‘역시 그건 라이안 님과 관련된 일이었군. 크…….’
힘든 일과를 마치고 나면 친구들과의 술 생각이 간절했던 펠리언이었다.
그런데 털끝조차 보여주지 않은 그들의 행동이 라이안 때문임을 알게 된 펠리언은 쓴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라이안은 덴조와 베일이 수련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기사 수련장에나 갔다 올게.”
“아, 덴조와 베일을 보시려고요?”
“응, 그래도 왔는데 한 번은 보고 가야 할 거 아냐?”
“허허허, 알겠습니다. 라이안 님이 오실 때쯤이면 아마도 가지고 가실 물건들이 도착해 있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응, 알았어. 가져갈 것들이 준비되면 큰 보따리나 준비해줘. 아무래도 부피가 상당히 있을 테니까. 아, 그리고 팔에 낄 수 있는 무거운 팔찌와 발찌도 좀 구해줘. 3인분으로!”
라이안이 말과 함께 다시 창문으로 다가가 뛰어내렸다.
“저, 저기! 라이안 님!”
펠리언이 라이안을 불렀지만 라이안은 이미 창문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문으로 나가시지… 참… 후훗, 하긴… 저런 모습이 어쩌면 더 라이안 님다운 모습일지도… 아무래도 라이안 님에게 힘들게 구했던 그것을 드려야겠군.”
펠리언이 말하는 그것은 무엇일지…….
이전에 와봤던 기억이 있어 라이안이 기사 수련장을 찾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개의 담을 넘은 라이안은 몇몇의 기사들이 수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각자가 짝을 지어 대련을 하는 모습에 라이안은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쯧쯧쯧, 저렇게 훈련해서 어떻게 강해지겠다는 건지… 그러고 보면 하이븐 후작은 대단한 천재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군.”
라이안은 에드코르 제국의 하이븐 후작이 잠시 생각났다.
마스터급과 익스퍼트급의 실력 차이야 심하겠지만, 하이븐 후작은 마치 중원의 도를 사용하는 사람처럼 검의 포물선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수직으로 공격하는 것보다 포물선을 그리며 공격하는 것이 상대에게는 더 위협적이며 피하기 어렵게 한다. 마나의 길만 깨닫는다면 수직보다 포물선이 더욱 빠른 검을 만들기도 했다.
“하긴… 저들 중에서도 혹 마스터급에 들어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것을 하나씩 깨닫게 되겠지…….”
라이안이 말하는 그러한 것들은 팔튼이 변의 깨달음으로 얻은 천환이나, 하이븐 후작이 속도에 대한 깨달음으로 얻은 쾌검을 말하는 것이었다.
라이안은 덴조와 베일을 찾았지만 그들을 찾을 수 없었다.
“어디 간 거지?”
라이안은 성의 담에서 그들의 기운을 기억해 내고는 기원을 펼쳤다.
“보자, 어디 있나…….”
기원이 기사 수련장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라이안은 덴조와 베일이 기사 수련장의 뒤편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저기는 정원 아니었나?”
담을 뛰어 넘어 그곳으로 다가간 라이안은 약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실소를 터뜨렸다.
“하! 열흘 동안에 정원을 밀어버리고 수련장으로 만들어버린 거야? 그것 참.”
그곳은 그들이 수련하기 좋게 여기저기에 그늘이 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이를 본 라이안은 그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까지 만들어 가면서 수련을 하고 있다니… 역시 가르쳐 주길 잘했네, 월영비술을…….”
월영비술!
그것은 이전 라이안이 루시 공주를 히매인 왕국의 왕성에서 데리고 나올 때 썼던 월영천자의 운신법이 아니던가.
약간의 달그림자만 있어도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몸을 숨길 수 있는 궁극의 비술…….
그것이 월영비술이었다.
월영비술은 운신법과 경공술이 겸비된 비술이었다.
월영비술을 완벽히 사용한다면 바로 앞에 있는 사람조차 월영비술을 시전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으므로 중원에서도 신비의 비술이라 알려져 있었다.
라이안의 눈에는 그들의 움직임이 아직 너무나 미숙해 보였다.
하지만 여기저기 벽을 타고 운신하며 경공을 펼치는 술법이라 그들의 움직임은 이미 익스퍼트급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때 라이안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큭큭큭, 어디…….”
손가락에 강기를 씌운 라이안이 담의 돌조각을 몇 개 파더니 수련을 하고 있는 덴조와 베일에게 던진 것이다.
휘익!
휘익!
약간의 튀어나온 돌 그림자 사이에 운신하며 숨어있던 덴조가 다시 다른 그늘로 숨어들려고 빠르게 날아가고 있을 때, 그에게 하나의 돌이 날아들었다.
빠각!
“컥!”
라이안이 던진 돌은 덴조의 머리를 정확히 가격했다.
덴조는 다음에 운신하려던 곳의 튀어나온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땅에 떨어졌다.
쿵!
“크억!”
털썩!
“끄으으으으…….”
그러한 상황은 베일도 마찬가지였다.
베일 또한 벽에서 튀어나온 미세한 돌을 이용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 라이안이 던진 돌에 맞았다. 그 역시도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휘익!
빠각!
“켁!”
휘리리릭!
쿠궁!
“으…….”
쓰러져 있는 그들을 본 라이안은 담 위에서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큭큭큭큭큭…….”
덴조와 베일은 서로 동일한 무엇인가에 공격당했다고 생각하며 급히 검을 뽑아 들었다.
창!
창!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덴조와 베일은 서로 등을 붙이고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라이안이 완벽한 월영비술을 사용하며 숨었기 때문에 그들이 라이안을 찾기란 불가능 했다.
라이안은 여기저기 숨어가며 몇 개의 돌을 주웠고 그것을 다시 붙어 있는 덴조와 베일에게 던졌다.
휘익!
휘익!
하지만 다행히 긴장을 늦추고 있지 않았는지 그들은 검을 사용하여 돌을 쳐냈다.
탕!
탕!
자신들의 검에 맞고 떨어지는 돌을 확인한 그들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젠장, 도대체 어떤 자이기에 저렇게 작은 돌멩이가 이런 파괴력을 낸단 말인가?”
“찾을 수가 없다. 분명 돌이 날아온 곳을 확인했는데…….”
그렇게 서로의 말을 들은 덴조와 베일의 머릿속을 번개 같이 스치는 사람이 있었으니…….
“라이안 님!”
“라이안 님!”
바로 라이안이었다.
라이안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자신들을 죽이려는 마음을 먹고 한 행동이었다면 첫 공격에서 단검을 던져 죽일 수도 있었다.
그들의 외침을 들은 라이안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에이… 뭐야? 벌써 알아낸 거야? 쳇, 재미없어.”
덴조와 베일은 라이안의 얼굴을 보자 크게 반가워하며 라이안에게 달려왔다.
“역시 라이안 님이셨군요!”
“다시 돌아오신 겁니까?”
라이안은 각자 머리에 혹을 하나씩 달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그들로 인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돌아온 것은 아니고 그냥 잠시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들른 것뿐이야.”
“아… 그러셨군요.”
혹시나 라이안이 아주 와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기대했던 그들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짧은 시간에 좋은 움직임을 보이던데? 게다가 정원을 밀어버리고 이렇게 좋은 수련장까지 만들다니… 노력이 눈에 보이는군. 후훗!”
“하루라도 빨리 라이안 님의 힘이 되어드리려면 더한 훈련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최대한 빨리 강해져서 저희들도 곧 라이안 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라이안이 뒤쪽으로 눈짓하며 말했다.
“그럼 저기 있는 펠리언은 어쩌고?”
라이안이 펠리언의 이름을 말하자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덴조가 말했다.
“펠리언 님에게는 영지 내의 기사들도 있고… 저희가 없더라도 충분히 영지와 도둑길드를 잘 이끌어 가실 겁니다.”
“흠… 요즘 펠리언은 너희와 같이 있을 수 없다고 서운해 하던데… 이 말을 들으면 펠리언이 많이 슬퍼하겠는 걸?”
“하지만…….”
덴조가 뭔가 말하려고 할 때 라이안이 중간에 그의 말을 끊었다.
“그만! 됐어. 수련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중요한 법이야. 지금 너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펠리언이야. 그러니까 펠리언에게도 신경 좀 쓰고 그래… 갑작스러운 직책으로 그도 많이 힘들어 하고 있으니 가끔 너희가 그를 위로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라이안의 말에 그들은 서로 깊은 생각을 하는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자이라 영지 안으로 들어온 펠랜과 바테르, 그리고 그들을 따라온 블랙섀도우 기사들은 자이라 영지의 입구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물건을 내놓고 흥정하는 장사꾼들로 인해 무척이나 붐볐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일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였다.
캐드 단장이 그것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상업적으로 뛰어난 영지라고 하더니… 역시로군.”
그러나 펠랜은 길을 막고 있는 인간들이 귀찮은지 손에 마기를 모으며 말했다.
“뭐야, 저 귀찮은 것들은. 그냥 다 쓸어버리고 갈까?”
펠랜은 손에 모은 마기를 금방이라도 앞으로 쏘아 보낼 듯한 기세였다.
캐드 단장은 급히 팔로 가로막으며 말했다.
“의미 없는 살상은 자제해라. 너의 행동은 적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갖게 만들 수도 있다.”
캐드 단장이 막아서자 펠랜은 무표정한 얼굴로 캐드 단장을 바라보다가 마기를 거두었다.
“쳇, 알았어.”
굳은 얼굴을 하던 펠랜이 한마디 하고는 앞으로 걸어가버렸다.
그것을 보던 바테르가 조용히 캐드 단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조금 전 펠랜의 표정은 무엇인가를 죽이기 전에 짓던 표정과 같았으니까. 항상 웃고 있던 얼굴이 굳어졌을 때 그녀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너뿐 아니라 나조차도 조심하고 있는 문제다.”
펠랜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캐드 단장이 다시 바테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지.”
그때 그들에게 다가오는 마른 체격의 젊은 상인이 있었다.
“하하하, 보아하니 아주 진귀한 물건을 찾고 계신가 보군요? 제가 아주 좋은 물건들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한 번 보시겠습니까? 보시고 마음에 안 드시면 그냥 가셔도 됩니다.”
그 상인의 접근이 귀찮을 법도 했지만 캐드 단장은 그것을 너무도 쉽게 승낙했다. 그의 가슴에 하얀 깃털이 꼽혀 있었기 때문이다.
“좋다.”
캐드 단장의 말에 바테르의 한쪽 눈이 꿈틀거렸다.
“뭐하자는 것이냐? 우리는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그렇다. 우선은 따라가 보지. 진귀한 물건이 될지 중요한 정보가 될지는 모르는 것이니까.”
캐드 단장의 ‘중요한 정보’ 라는 말에 바테르는 그때서야 자신들에게 접근한 상인이 바로 에드코르 제국의 정보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블랙섀도우 기사들은 자연스럽게 캐드 단장을 따랐다.
바테르는 앞쪽에서 인간들이 장사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 펠랜을 찾아낸 후 그들의 뒤를 따랐다.
라이안은 덴조와 베일의 수련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때 펠리언의 부하 그들을 찾아왔다.
“말씀하신 물건이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라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펠리언의 집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물론 덴조와 베일의 아쉬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말이다. 라이안은 쓴웃음을 남기고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딱칵!
“준비가 다 됐다면서?”
라이안이 펠리언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묻자 펠리언은 그를 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네, 다 준비되었습니다.”
“그래?”
라이안은 고개를 돌리며 자신이 가지고 갈 물건들을 찾았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갈 것들은 어디 있는 거야?”
라이안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탁자에 놓인 작은 가죽 배낭뿐이었다.
“바로 이것입니다.”
“으음? 그건 그냥 가죽 배낭이잖아?”
“그렇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가죽 배낭이지요. 후후.”
“설마…….”
라이안은 설마 하는 생각으로 눈에 마나를 집중해 가죽 배낭을 바라보았다.
“어! 그건!”
라이안의 눈에는 배낭 전체에 흐르는 마나의 기운이 보였던 것이다.
“짐작이 가시는 모양이군요. 맞습니다. 이것은 바로 무한의 주머니입니다.”
“와아아! 이게 정말 무한의 주머니야? 나도 머릿속으로 떠올라서 그러한 것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보는 건 처음인데?”
보통은 ‘말로만 들었지 처음 보았다’ 고 하겠지만, 라이안은 이미 타미르안에게서 지식을 전이 받았으므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라이안은 무한의 주머니를 들어보았다.
“가볍기까지 한 걸로 봐서 중량감소 마법까지 걸려 있는 것 같네? 이건 어떻게 구한 거야? 이런 건 드래곤이 아니고서는 만들 수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랬다.
무한의 주머니는 인간의 마법능력으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주머니 안쪽에 아공간을 만들어 놓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오래 전 마도시대에는 인간도 무한의 주머니를 만들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마법이 많이 퇴보되었다가 다시 발전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인간에게는 이미 잊힌 마법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인간이 할 수 있는 마법은 공간 확장 마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약 2~3배의 공간을 늘리는 것에 불과했다. 거기에 무게를 줄일 수 있는 마법을 동시에 부여하기는 힘들었다.
라이안은 등에 배낭을 메고 요리조리 움직여보았다.
“움직이기도 편하고 어떤 드래곤이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정말 잘 만들었어. 아주 좋아. 하하!”
“만족하신다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펠리언은 라이안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라이안은 배낭을 살펴보다가 다시 펠리언에게 물었다.
“이거 구하기도 힘들거니와 무척이나 비싼 물건인데 나한테 이렇게 막 줘도 되는 거야?”
“뭐, 괜찮습니다. 어차피 어흠한 물건이고 라이안 님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어흠? 아, 아! 그렇구나. 하하하!”
펠리언이 이상하게 헛기침 한 것은 바로 훔친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라이안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펠리언의 전 직업을 생각하며 웃었다.
“부피가 상당히 있을 것 같아서 어떻게 들고 갈까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네. 고마워, 정말 잘 받을게. 헤헤!”
라이안은 무척이나 흡족해하며 다시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열었다.
“그럼…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겠지만, 잘 지내.”
“자주 오셔도 되니 언제고 제가 필요하실 때에는 꼭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응. 나, 간다!”
그렇게 라이안은 빠른 속도로 성의 담과 담 사이를 넘었고 곧 성벽을 밟음과 동시에 펠리언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모쪼록 안전한 여행이 되시길…….”
펠리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라이안이 사라진 방향으로 고개를 숙였다.
* * *
팰렌과 바테르, 그리고 블랙섀도우 기사단은 한 젊은 상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곧 호화스러운 저택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 들어오시지요. 이곳은 저희 상단이 자이라 영지에 올 때마다 중요 물품을 저장하는 곳입니다.”
주위에는 상당히 훈련을 잘 받은 듯한 사람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대충 보기에는 그냥 일개 용병처럼 보였으나 그들을 바라보는 캐드 단장은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옷차림만 용병이지 기사라는 티가 너무 많이 나는군. 쯧쯧쯧.”
캐드 단장의 작은 목소리에 앞서가던 젊은 상인이 쓴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마스터급의 실력자 눈은 속일 수 없군.’
이미 수정구를 통해 소식을 전달 받은 그는 캐드 단장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으나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곧 건물 안으로 들어선 그들은 넓은 탁자가 있는 소파에 앉았다. 간사한 웃음을 짓고 있던 젊은 상인은 주위에 있던 시녀와 시종들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 때!
툭!
철컹!
철컹!
철컹!
몇 명의 시녀들과 시종들이 여기 저기 줄을 잡아당기자 밝은 빛이 들어오던 창문 위에서 철판이 내려오며 창 전체를 막아버렸다.
그리고 어두워진 저택 내부는 촛불로 밝혀졌다.
젊은 상인은 둘러보며 주위를 확인하고는 캐드 단장에게 다가와 정식으로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캐드 단장님. 전 이십 기 정보원 웨버라고 합니다.”
“이십 기 정보원이라…….”
이십 기라고 한다면 에드코르 제국에서 히매인 왕국으로 넘어온 지 이십 년이 넘었다는 말이었다.
“상당히 어렸을 때 넘어왔군. 고충이 많았겠어…….”
웨버의 나이가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니 기껏해야 8살 정도에 넘어왔다는 말이었다.
“아닙니다. 제국으로부터 상당히 많은 도움을 받아 왔으며 지금은 작은 상단을 운영하고 있지요. 이 모든 것이 제국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하하.”
웨버의 말에 캐드 단장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정보원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택 안에서 용병인 척 경비를 서고 있는 기사들 또한 정보원을 호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또한 감시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이러한 체계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으며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이유는 언제 변심할지 모르는 그들의 마음 때문이었다.
몸과 마음이 깃들면 그곳이 고향이라고 했던가.
캐드 단장은 직설적으로 웨버에게 물었다.
“이야기는 들었을 것이네. 그들에 대한 정보는 있는가?”
캐드 단장의 물음에 웨버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열흘 전 이곳 자이라 영지에는 많은 일이 생겼지요. 병사들의 횡포가 사라졌으며 세금이 낮아졌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이곳 영지의 변화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다. 요점만 말하라.”
캐드 단장이 웨버를 날카롭게 쏘아보자 웨버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연관이 있어서 드리는 말씀이니 끝까지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캐드 단장은 묵묵히 웨버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모두의 시선이 웨버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시선에 웨버는 더욱 강한 중압감을 갖게 되었으므로 소매로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 이유는 바로 이곳의 영주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전 영주는 죽었으며, 현 영주는 이곳 자이라 영지의 도둑길드 지부장입니다.”
“그런 일이 가능한가? 히매인 왕국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캐드 단장의 물음에 웨버는 곧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왕국 수도에서 당장 기사들이 몰려와 그들을 도륙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러한 일에 라이안이라는 자가 개입되어 있어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듯 무마되었습지요.”
“라이안이라면, 그 스피어마스터의 이름이었던가?”
“맞습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
웨버는 캐드 단장의 음산한 목소리에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며칠 전 이곳을 떠났습니다.”
“어디로 갔는가?”
“몬스터의 초원으로 들어갔습니다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웨버의 입에 집중되어 있었다.
“오늘 저희가 빠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조련한 비둘기가 날아왔고 비둘기에 매달려 있던 서신에는 바로 오늘 그자가 다시 이곳 자이라 영지로 돌아왔다는 것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아직 이곳에 있단 말인가?”
캐드 단장이 급히 일어나며 물었고 다른 섀도우 기사들 또한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렇습니다. 아직 이곳에 있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그에게는 일행이 있었습니다. 혼자만 이곳 영지로 돌아왔다는 것은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아직 자이라 영지를 벗어났다는 소식이 없으니 그가 아직 이곳에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들을 통해 그의 위치를 파악하라!”
“알겠습니다!”
캐드 단장은 끓어오르는 피를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그가 이곳에 있다… 크흐흐흐.”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캐드 단장뿐이 아니었다. 섀도우 기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에 몸을 떨고 있었다.
대화가 끝나자 저택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택 밖으로 빠져 나갔다. 그리고 비둘기들이 자이라 영지 전체로 날아갔다.
캐드 단장은 저택에서 나와서 다른 섀도우 기사들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모두 흩어져 그의 위치를 찾는다. 단! 절대 혼자 상대할 자가 아니니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복수는 모두 함께 한다. 알겠나!”
“옙!”
“옙!”
섀도우 기사들은 검은 기운을 흘리며 빠른 속도로 주위로 흩어져갔다.
그 무렵 이미 라이안은 자이라 영지와 몬스터의 초원을 가로막고 있는 성벽 위에서 자이라 영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데? 갑자기 이곳에 어두운 기운이 느껴지는 게 어째…….”
라이안은 잠시나마 섀도우 기사들의 움직임을 느꼈고 그들의 기운이 무척이나 어둡다고 생각했다.
“흠…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뭐, 별일이야 없겠지?”
라이안은 발길을 옮기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불안함이 밀려왔다.
“챠둠이라도 있었으면 계속해서 이곳을 주시할 수 있었을 텐데… 챠둠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하지만 지금은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어 그 어두운 기운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마음을 굳힌 라이안은 초광속 경공을 시전하여 몬스터 초원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라이안이 초광속 경공을 펼친 그 때!
펠랜과 바테르는 라이안이 날아간 방향을 동시에 쳐다보았다.
“바테르, 느꼈어?”
“그렇다. 상당히 강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혹시 드래곤일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우리가 찾는 그 라이안이라는 자가 아닌가 싶군.”
캐드 단장의 시선이 급히 바테르에게로 옮겨졌다.
“그게 정말인가!”
펠랜도 다급함을 느끼고는 바테르에게 물었다.
“뭐야? 그럼 빨리 추격해야 하는 거 아니야?”
“무척이나 강한 마나 파동이라 그 파동만 쫓아간다면 문제없을 것 같다.”
캐드 단장은 서둘러 섀도우 기사들을 모았다. 그리고 곧바로 라이안이 사라져간 방향을 추적하며 몬스터의 초원으로 들어갔다.
라이안은 초광속 경공을 시전하다가 지쳤는지 땅에 착지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역시 한 번에 가기에는 힘들구나. 헉헉…….”
처음 시전할 때보다는 상당히 멀리 오기는 했으나 계속해서 초광속 경공을 펼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현경의 중간 경지는 들어서야 초광속 경공을 펼치는데 문제가 없으리라.
라이안이 혈기공을 운기하고 다시 초광속 경공을 펼쳐 친구들에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태양이 산 끝에 걸려 날이 어두워지기 직전이었다.
“핫!”
“핫!”
라이안이 자신이 설치했던 진법을 넘어 일행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아직도 라드이라를 따라 수련을 하고 있는 헤인드와 디로안의 모습이 보였다.
항마 7검을 연습하던 그들은 이미 전신이 땀범벅이 된지 오래였다.
“모두 열심이네. 어때, 잘 돼가?”
“라이안!”
“벌써 자이라 영지에 다녀온 것인가?”
“굉장해요, 라이안!”
라이안은 자신을 반기는 그들에게 밝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루시 공주와 에나를 쳐다봤다.
에나가 라이안에게 걸어가 물었다.
“벌써 자이라 영지에 다녀온 건가요?”
“응, 펠리언에게 이것저것 좋은 것도 많이 받아왔어. 앞으로 이곳에서 수련하려면 상당히 많은 게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근데, 루시는 아직도 자고 있는 거야?”
“루시 혼자만 아무것도 할 게 없으니 지루했나 봐요.”
“흠… 하긴, 루시가 가장 심심하겠네.”
라이안은 조용히 루시 공주에게 다가가 그녀를 깨웠다.
“루시, 그만 일어나요. 이제 해가 질 것 같아요. 루시?”
“으음… 라이안? 아… 깜빡하고 졸았나보네요.”
살며시 눈을 뜬 루시 공주가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키자 라이안이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에나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루시 공주를 부드럽게 바라보던 라이안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루시 공주에게 말했다.
“이제 조금은 편한 곳에서 잠 잘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그만 잠에서 깨고 이리로 오세요. 모두 이쪽으로 와봐! 보여줄 게 있어!”
그들은 영문을 몰라 서로를 쳐다보다가 곧 라이안과 루시 공주를 따라갔다.
몇 개의 나무를 지나 나타나는 광경…….
“와아아아!”
“대단해! 언제 이렇게!”
“언제 집까지 지은 거야?”
모두가 라이안이 지은 넓은 오두막집을 보고는 탄성을 자아냈다.
“어때, 모두들? 마음에 들어?”
라이안의 물음에 헤인드가 집을 둘러보며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히야아아! 모두들 안으로 들어와 봐! 굉장히 넓은 걸?”
헤인드를 따라 에나와 디로안이 안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정말 대단해요! 탁자와 의자에, 방까지 세 개나 되요!”
즐거워하는 그들을 바라보던 루시 공주가 뿌듯하게 웃고 있는 라이안을 보며 물었다.
“도대체 이런 건 언제 다 만든 거예요?”
“뭐, 어려울 것도 없어요. 헤헤, 우리도 얼른 들어가요. 모두 출출할 텐데 식사도 하고 쉬어야죠.”
오두막집에 들어간 모두는 각각 방을 배정 받고는 식사준비를 했다.
그런데 역시나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부족한 식기였다.
하지만 곧 라이안의 등에 메고 있던 배낭에서 수많은 식기와 음식들이 나오자 그들은 까무러칠 듯 놀랐다.
“뭐, 뭐야! 이거 무한의 주머니잖아!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구한 거야?”
헤인드가 무한의 주머니 안쪽에 팔뚝 끝까지 팔을 집어넣으며 방정을 떨었다.
디로안과 라드이라는 음식과 식기들을 나르기 바빴다.
모두 가족이 된 듯 맛있는 식사를 끝내자, 라이안이 물의 정령 운디네를 불러 설거지를 시켰다.
그들은 간만에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편안한 잠자리에 누울 수 있어 행복했다.
헤인드와 디로안 그리고 라드이라가 한방을 배정 받았고 나머지는 에나와 루시 공주가 쓰게 되었다.
라이안은 이것저것 수련할 것이 많다고 말하며 방 하나를 독차지 했지만 그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에나와 루시 공주는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와아아… 원단이 굉장히 부드러워요.”
“그러네요. 왕실에서나 쓸법한 최상급 원단이에요.”
“오늘은 편하게 잘 수 있겠네요. 호호.”
처음 누워보는 최상급 원단을 깐 침대인지라 에나는 계속해서 자신의 팔을 문질러 보았다.
오늘 하루가 무척이나 힘겨웠던 모양인지 모두가 그렇게 죽은 듯 수면을 취했다.
에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루시, 자나요?”
“아직요. 이제 자야죠.”
조금의 정적이 흐른 뒤, 에나가 다시 조심스럽게 루시 공주에게 물었다.
“루시는 라이안 오빠를 어떻게 생각해요?”
라이안의 이름이 나오자 루시 공주는 몸을 돌리며 환하게 웃었다.
“정말 멋있는 사람이에요. 너무도 다정하면서 가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을 때면 마치 아기를 보는 것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에나도 루시 공주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루시 공주가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라이안 오빠를 사랑하나요?”
“네?”
루시 공주는 에나의 물음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곧 수줍어하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런 것 같아요…….”
“역시, 그랬구나…….”
“‘역시’라니요?”
“호호호, 루시가 라이안 오빠를 바라보는 표정에서 항상 느낄 수 있었거든요.”
“아…….”
루시 공주는 자신이 티를 너무 많이 냈나 싶어 얼굴을 붉혔다.
그런 루시 공주를 바라보던 에나가 다시 등을 돌리며 말했다.
“둘이 정말 잘 어울려요… 잘 자요, 루시.”
루시 공주는 그런 에나의 말에 크게 기뻐했다.
“고마워요, 에나. 에나도 잘 자요.”
하지만 루시 공주는 모르고 있었다. 등 돌린 에나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 * *
그들이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는 그 시간!
라이안의 마나의 파동을 쫓아온 두 명의 마족과 섀도우 기사단이 한 나무아래에 나타났다.
“마나의 파동이 사라져 가는군. 이렇게 빨리 이동하다니 대단한 인간이로군.”
바테르의 말에 캐드 단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럼 추격을 더 이상 못한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방향이 거의 일직선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까지 온대로만 가면 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은 희미해진 마나의 파동을 쫓는 수밖에…….”
그들의 움직임은 상당히 빨랐다.
근근이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펠랜과 바테르의 가벼운 손짓 하나에 고기가 썰리듯 조각났다.
가장 약한 자가 마스터급의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강하기로 소문난 몬스터 초원의 몬스터라 해도 그들의 앞을 막을 수는 없었다.
* * *
아침이 되자 모두들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일어났다.
남자들은 모두 개울가로 달려갔다. 찬 물에 몸을 씻어 잠을 깨기 위함이었다.
“야호!”
촤좌좌좍!
헤인드가 바위로 올라가 가장 처음 몸을 던졌다.
라드이라는 물이 차가울 것을 염려해 조심히 발을 내밀어 물의 온도를 살폈다.
라드이라가 그러고 있는 사이 그의 등을 밀어버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디로안이었다.
“빨리 안 들어가고 뭐해?”
“으악!”
첨벙!
“으, 차가워!”
그렇게 괴로워하는 라드이라를 보며 디로안도 몸을 날려 몸을 적셨다.
첨벙!
모두 씻고 개울가에서 나오자 라이안이 물의 정령인 운디네를 불러 그들의 몸에서 물기를 없애주었다.
“자, 자. 이제 모두 수련을 시작해야지!”
“좋아!”
“어서 시작하자고!”
“기대됩니다!”
라드이라 또한 앞으로 받을 수련에 들떠 있었다.
라이안은 곧 자신 앞에 있는 세 사람을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후후후, 수련은 상당히 혹독할 것이니 그렇게 알아.”
라이안은 무한의 주머니에서 몇 개의 철 덩어리들을 꺼냈다.
쿠궁!
쿵! 쿵!
쿠궁!
역시나 소리만큼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설마, 그것을 끼고 훈련을 하라는 건… 으음… 맞구나.”
말을 하던 디로안이 라이안의 웃은 표정을 보고는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음을 알았다.
“지금부터 너희가 하게 될 것은 건곤구공이라는 수련법이야. 이 수련법은 주로 눈의 힘과 발놀림을 키우기 위한 기공법이야. 너희가 이 기공법에 익숙해지면 날듯이 달리게 되며, 적의 품에 자유자재로 잠입하는 경공의 기술을 간단하게 할 수 있게 될 거야. 즉, 헤인드와 디로안이 알고 있는 용호풍운보를 보다 능숙하게 시전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지.”
라이안은 앞에 떨어진 철 팔지 하나를 들며 말했다.
“내가 먼저 해볼 테니 잘 보고 따라해. 알았지?”
우선은 어떤 수련인지 몹시 궁금했던 그들이었기에 모두 고개만 끄덕였다.
“먼저 앞으로 나가며 한 손으로 이것을 위로 던지고 다른 손으로 받아내야 해.”
라이안은 왼손으로 철 팔지를 던져 너무나 쉽게 오른손으로 받았다. 그리고 다시 오른손으로 던져 왼손으로 받는 것을 반복했다.
“어때?”
시범이 끝나자 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뭐, 그리 어려울 것도 없겠는데?”
“쉬울 것 같군.”
“…….”
라드이라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헤인드와 디로안만 라이안이 너무나 쉽게 해내는 것을 보며 간단하다 느꼈던 것이다.
“좋아, 우선은 첫날이니까 이걸 하나씩 들고 내가 보여준 방법으로 저기 앞에 있는 산까지 갔다 와. 먼저 오는 사람이 먼저 식사할 수 있을 거야. 알겠지?”
세 사람의 시선이 라이안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헉!”
“저기 꼭대기까지 갔다 오란 말이야?”
“컥!”
너무 높았다.
지금이 아침이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저곳을 오른다면 분명히 저녁은 다 되어서 내려올 수 있으리라.
“다들 뭐해? 꼴지는 저녁밥 없을 줄 알아!”
“헉! 그건 안 돼!”
저녁밥을 안 준다는 라이안의 말에 헤인드가 쏜살같이 팔지를 들고는 건공구공의 방법대로 던지며 달려갔다.
디로안 역시 그런 헤인드를 보며 뒤를 따랐고, 라드이라도 이를 악물고 마지막으로 출발했다.
라드이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라이안은 그가 걱정스러울 뿐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헤인드와 디로안만큼 따라가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드이라는 최대한 빨리 체력을 길러야 했다.
“라드이라가 저기 산꼭대기까지 다녀오면 그에게도 용호풍운보를 가르쳐 줘야겠군.”
라이안이 집으로 돌아오자 에나는 방 안에서 제프리스의 마도서를 탐독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루시 공주는 신기하다는 듯이 야채와 과일을 다듬고 있었다.
“뭐해요, 루시?”
“라이안, 이것 봐요. 이거 내가 다 했어요. 처음 하는 것이라 미숙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것 같아요. 오늘 저녁에 먹을 고기에 얹으려고 하는데 어떨 것 같아요?”
“후훗, 느끼함을 없애주는 데에는 아주 좋을 것 같네요.”
“그렇죠? 헤헤.”
루시 공주가 팔 끝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라이안은 그녀의 그러한 모습까지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루시 공주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루시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지금은 어려울 것 같네요.”
“괜찮아요. 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이참에 저도 음식이나 배워 보죠, 뭐…….”
루시 공주의 말을 들으며 작은 미소를 짓던 라이안이 곧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라이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루시 공주의 마음은 달랐다.
‘라이안, 당신에게 아침마다 맛있는 음식을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자신이 생각해도 부끄러웠는지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방에 들어온 라이안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자신의 몸 내부를 관장하기 시작했다.
‘내 몸 안에 있는 마나와 아직 어떤 신의 힘인지 모르는 신성력… 마나는 빠르게 늘어가고 있지만 신성력은 아직 한 번도 움직여 보지를 않았지… 우선은 신성력이 마나처럼 움직일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겠어.’
라이안은 아직 한 번도 움직여 보지 않았던 신성력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을 찾아도 그 신성력이라는 힘은 쉽사리 느껴지지 않았으며 어디에 있는지조차 찾기 힘들었다.
‘분명 신성력이 있다고 했는데… 몸 전체를 살펴도 보이지 않으니…….’
한참을 고심하고 있던 라이안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신성력은 신에 대한 믿음으로 나오는 것이니 정신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그렇다면 상단전!’
라이안은 급히 상단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당한 시간을 찾아 헤맨 후에야 아주 약간이나마 신성력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 숨어 있었구나! 좋아.”
신성력이라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느끼자 라이안은 신성력을 마나와 같은 방법으로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신성력을 움직이려고 하면 자꾸만 자신의 마나가 움직여 그것들을 별개로 생각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이거 어려운 걸?’
하지만 라이안이 누군가?
라이안은 질긴 노력 끝에 드디어 신성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됐다!’
갑자기 눈을 뜬 라이안의 눈동자에 회색빛이 감돌았다.
“신성력도 마나와 같은 흐름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렇다면 라드이라는 상단전을 주 단전으로 삼고 신성력을 마나와도 같이 사용한다면 충분히 익스퍼트급 이상으로 싸울 수 있어! 하하하. 라드이라가 이것을 알면 크게 기뻐하겠는 걸?”
라이안은 활짝 웃으며 돌아와 기뻐하게 될 라드이라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데!
갑자기 큰 마나의 파장이 울려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라이안은 급히 기원을 펼쳤다. 그리고 그 마나의 파장은 바로 옆방에 있는 에나에게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녀석, 벌써 5서클 유저에 들려고 하는 거야? 이럴 수가… 얼마 전 4서클 마스터에 들었던 것 같은데…….”
제프리스의 마도서를 보지 않은 라이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 마도서에는 속성으로 마나를 늘려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라이안은 축하할 일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계속해서 즐거워했다.
하지만 이들이 이처럼 축하할 날도 며칠 남지 않았음을 라이안은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