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돈의 라이안-24화 (23/57)

제24장 라이안, 도둑길드를 손에 넣다

라이안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드디어 라이안의 기원에 기다리던 움직임이 잡혔다.

“이거 운이 좋은걸? 정말 제때 나타나 줬어. 후훗, 그럼 한 번 움직여 볼까?”

라이안의 음성과 함께 라이안의 신형은 방안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복면을 한 상당수의 사람들이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지나치게 능숙한 동작의 두 사내가 라이안 일행 중 남자들의 방 문 양쪽에 갈라섰다. 나머지는 모두 에나와 루시 공주가 있는 방으로 이동했다.

방 문 양쪽으로 갈라선 그들은 남자들이 눈치를 채고 나왔을 때를 대비해 매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복면한 한 사내가 다른 사내에게 속삭였다.

“준비는 다 됐겠지?”

“네. 마차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혹시나 싶어 여자들을 데려가는 길 중간에도 매복을 시켜 놓았습니다. 일이 터지면 그들이 나서서 정리하며 쫓는 자들을 지연시킬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저히 준비했군. 좋아. 그럼 시작하지.”

그들 중 두목으로 보이는 자의 이름은 피카르였다. 그는 이곳 자이라 영지의 도둑길드 지부장인 펠리언의 오른팔이었다.

그의 옆에서 항상 보조해 주는 자는 리파라는 자로 돈과 호색을 즐겼다. 그는 다른 도둑들과는 달리 일처리가 깔끔하여 피카르가 상당히 신임하는 자 중 하나였다.

피카르가 손짓을 하자 몇몇이 자루를 준비했고 한 사내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안쪽이 고리로 잠겨 있기는 했으나 그가 가지고 있는 얇고 기다란 철사로 그것을 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으음? 이상한데요? 고리를 올렸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뭐라고? 이런 멍청한 놈! 그럼 문을 부수어라!”

어차피 여관에는 라이안 일행을 외에 다른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상관없었다.

꽝!

“으억!”

발로 문을 부수려던 사내가 오히려 뒤로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뭐야! 그것도 하나 못 부수냐! 도대체 쓸 만한 놈들이 하나도 없어! 저리 비켜!”

피카르는 답답한 나머지 화를 내며 문 앞에 있던 사내를 밀치고 문을 강하게 걷어찼다.

꽝!

“으헉! 이거 뭐야!”

이미 루시 공주와 에나가 깨어났는지 안에서도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 뭐야!”

피카르는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우리 여관 문이 이렇게 튼튼했나?”

문을 열지 못하니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천장에서 하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당연히 안 열리지. 너희가 올 줄 알고 내가 미리 홀드포탈마법(잠금 마법)을 걸어놨거든.”

“누구냐!”

휘익!

터덕!

그림자가 천장에서 떨어져 바닥에 착지한 후 얼굴을 들었다. 그토록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라이안이었다.

“너희는 주로 이렇게 작업하나 모양이지? 흠… 조금 엉성하네. 그렇게 실력 있는 놈들도 아니고.”

피카르가 인상을 찡그리며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뭐해! 저놈 잡아!”

“후후후, 우선은 손 좀 봐줘야 정신을 차리겠지?”

헤인드와 디로안도 밖의 소란스러움에 이미 깨어나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신들의 방문은 열리지가 않았다.

“이거 왜이래? 문이 안 열려!”

“밖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양손에 단검을 쥔 도둑들이 라이안에게 달려들었다.

“어린놈이 빨리 죽겠구나!”

“과연 그럴까?”

쉬익쉬익!

도둑들이 들고 있는 단검은 달빛에 비쳐 예리한 포물선을 그리며 라이안에게 날아들었다. 라이안은 유연한 몸놀림으로 그것을 피하며 그들을 공격했다.

퍽! 퍼벅!

“끄악!”

“끄어억!”

라이안의 공격은 무척이나 단순했다.

하나의 단검을 피할 때마다 한 번의 손놀림으로 도둑들이 얼굴을 때리고 배를 강타했다.

라이안의 가벼운 주먹질에 의해 맞은 자들은 여관의 나무 벽을 뚫고 박혀들 정도였으니 그들로서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라이안은 두목인 피카르에게로 점점 다가갔다.

“저, 저놈 뭐하는 놈이야?! 야, 인마! 너 제대로 알아보기는 한 거야?!”

“부, 분명 마나는 한 사람에게서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이건 저도 모르는 일이란 말입니다!”

“이런 빌어먹을! 모두 후퇴해!”

순식간에 반 수 이상이 당하자 모두 도망치려고 했다.

라이안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저놈이 두목인가 보군. 그렇다면 머리를 잡아야지. 후후.”

도둑들은 아래에 미리 준비되어 있던 마차를 타고 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랴아아아!

이히히히힝!

“빨리 출발해!”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라이안으로 인해 너무도 크게 놀란 도둑들은 라이안이 쫓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깊은 숨을 내뱉었다.

피카르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지 옆에 있던 리파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이런 개자식!”

빡!

“크억!”

“내가 제대로 알아보라고 했잖아! 아까 그 검은 머리의 녀석이 마나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내가 보기에는 최소한 익스퍼트 중급 이상이다, 이 멍청한 녀석아!”

“하지만 마법사는…….”

“시익시익, 그 마법사라는 녀석이 도대체 어떤 놈이야?! 내가 그 녀석을 아작 내버리고 말겠어!”

도둑들은 혹시나 싶어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고 라이안이 보이지 않자 따돌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라이안은 마차가 달려가는 왼편 집들의 지붕위로 은자술을 사용하며 경공을 펼쳤다. 그 속도가 그들에게 보일 리 없었다.

라이안은 볼 수 있었다.

‘호오? 근처에 매복까지? 이것들 그렇게 허술한 놈들은 아닌데? 조금만 교육시켜 놓으면 상당히 쓸 만하겠어.’

라이안이 그들을 잡지 않고 뒤쫓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본거지를 찾기 위함이었다.

보다 높은 자를 잡아야 이곳 자이라 영지의 도둑길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차는 한참을 달리다가 이미 지났던 길을 다시 맴돌았다. 미행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쪽 코너를 돈다싶었을 때 속도가 줄어든 마차에서 몇몇이 뛰어내렸다.

마차만을 쫓던 라이안은 순간 마차에서 흘러나오는 기의 파동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따라온다는 것을 들켜서는 안 되므로 상당한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으음? 사람이 줄었군. 중간에 빠져나갔다는 뜻인데… 이러다 본거지는 찾지도 못하는 거 아냐? 그럼 곤란한데… 할 수 없군. 기원을 최대로 펼치는 수밖에.”

라이안은 간만에 자신의 최대 능력치를 발휘했다. 그의 주위로 서서히 일렁이던 대기가 점점 주위로 퍼져나갔다. 고위급 마법사가 아닌 이상은 미약하게 대기로 퍼져나가는 라이안의 마나를 감지할 수 없으리라.

기원이 얼마 펼쳐지지도 않았을 때 라이안은 도둑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미 도둑들의 기를 인식하고 있는 그였기에 기원으로 그들을 찾아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호오? 그럼 아까 마차를 꺾을 때 뛰어내렸다는 건가?”

도둑들이 마차에서 뛰어내려 사라진 곳으로 이동한 라이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이곳에서 뛰어내려 아래로 내려간 것은 확실한데 흔적이 전혀 없다니…….”

라이안은 조심히 풀이 모여 있는 곳을 만져보았다.

“이것은! 일루전!”

일루전 마법은 환상마법으로서 그곳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환영만 볼 수 있게 만드는 마법이다. 바로 그 마법이 그곳에 걸려 있었다.

“도둑들 중에도 마법사가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이정도 일루전마법이라면 최소 4서클 정도는 될 텐데… 뭐 우선 들어가 보면 알겠지.”

라이안은 곧바로 환영마법 안으로 뛰어들었다. 누군가가 지키고 있다면 큰일이지만, 이미 그곳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라서 대담해질 수 있었다.

아래로 내려간 라이안은 그곳에서 하나의 마정석을 볼 수 있었다.

“일루전을 지속시키는 마정석이로군. 하긴, 마법사가 계속해서 마나를 부여할 수는 없으니… 물론 저것도 훔친 거겠지?”

라이안은 인비져빌리티 마법(투명화마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 갈수도 있었지만 월영비술이 더 편해서 그림자에 숨어 자신의 모습을 가렸다.

지하는 상당히 견고하게 만들어진 통로였다. 그 통로는 한참을 직진으로 이어지다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또 하나 있었다.

“왜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라이안은 의문을 품었다.

도둑이라면 은밀히 움직이면서도 의심 또한 많아야했다. 그런 그들이 이러한 비밀통로에 사람을 배치하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라이안은 그 이유를 생각하다가 표정이 갑자기 변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사람이 없다는 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겠지. 뭘까? 마법? 함정?”

라이안은 ‘이 통로를 어떻게 지나갈까?’ 하는 생각을 하던 중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함정은 보통 발을 밟는 지점이나 손으로 건드릴 수 있는 벽에 설치되어있지. 그렇다면 천장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되니 천장을 타고 가면 되겠군. 후후, 너희가 아무리 날고 뛰어봐야 나에겐 하찮은 장난일 뿐이다!’

라이안은 조바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일루전이 걸려있던 곳 밖으로 나가서 몇 개의 풀잎을 주워왔다.

그러고는 다시 아래로 내려와 함정이 있을만한 곳 앞에서 기원을 펼쳤다. 혹 마나의 느낌이 있다면 마법함정일 수도 있기에 점검을 해보는 것이었다.

곧 마나의 느낌이 잡히지 않자 아래로 내려가는 곳에 매달려 조금 전에 주워 온 풀잎을 던졌다.

휘리리릭!

마나를 머금은 풀잎은 아주 빠르게 날아갔다. 곧 라이안이 그 풀잎을 쫓아가듯 빠르게 날아갔다.

라이안의 신형이 속도를 잃고 점점 아래로 내려가려고 할 때 라이안보다 먼저 날아간 풀잎이 마나의 힘을 잃었는지 하늘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라이안은 다시 그 풀잎을 밟고는 더 빠른 속도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초상비를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최대한 천장에 붙어서 날아가다가, 순간 두 손으로 천장의 벽을 강하게 긁었다. 그러자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갈 수 있었다. 마찰력을 이용한 것이다.

계속해서 그 마찰력으로 빠르게 쏘아져 나가던 라이안은 자신의 몸이 하강할 때마다 풀잎을 날렸다. 이를 초상비의 묘로 밟으며 다시 떠올라 앞으로 나아가고를 반복했다.

피카르는 어느 정도의 지점을 넘어오자 벽에 손을 대고는 몇 개의 벽을 눌렀다. 그러자 순서대로 벽이 움푹 들어가다가 도로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함정을 멈추고 다시 가동시키는 장치리라…….

“가자. 지부장님에게 이 사실을 빨리 알려야 한다.”

피카르는 서둘러 지부장인 펠리언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더 많은 부하들을 동원할 계획이었다.

피카르가 보았던 라이안의 실력은 정말 만만치 않았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가 어찌 알겠는가…….

무의 최고 경지라는 그랜드마스터이며, 검은 사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가 라이안이라는 것을.

피카르는 급히 문을 두드렸다.

“지부장님! 저 피카르입니다.”

“들어와.”

딸깍!

끼이이이익!

문은 상당히 기이한 소리를 내며 열렸고, 그들이 들어서자 곧 자동으로 닫혔다.

지부장인 펠리언이 책상에 앉아 있었으며 양 옆으로는 두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있었다.

“지부장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큰 일?”

“부하는 모두 당하고 저희만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펠리언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피카르를 쳐다보았다.

“그들 중 상당한 실력자가 있었나보군. 그런데… 자네가 그런 실수를 하다니 별 일이군. 사전에 조사하지 않은 것인가?”

펠리언의 물음에 피카르 똥마려운 표정으로 리파를 노려봤다.

“그것이… 마법사를 통해 마나를 탐색해 보았는데도 그것에 걸리지 않은 자가 있었습니다.”

피카르의 말에 펠리언은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펜을 보며 생각했다.

“마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나가 탐색되지 않은 자라…….”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강해 보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최소 익스퍼트 중급정도는 돼 보였습니다.”

“그렇지.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라면 자네 밑에 있는 애들로는 불가능하지.”

“지금 저희 애들이 위험합니다. 도와주십시오.”

피카르의 도와달라는 말에 펠리언은 양쪽에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자네들이 나서줘야 할 것 같군.”

“알겠습니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며 피카르가 들어설 때처럼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이익!

“으음?”

“뭐, 뭐야?”

펠리언은 단지 의문만 느낄 뿐이었지만 피카르는 급히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 이곳에 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펠리언의 오른팔인 피카르라 해도 허락 없이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펠리언의 양 옆에 있던 두 사람이 빠르게 움직여 문 앞에 섰다.

움직임으로 봐서는 익스퍼트 급의 검사들이었다.

하지만 그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열려있는 문 앞의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펠리언은 오히려 그것이 더 걱정스러웠다. 그는 곧 피카르를 보며 말했다.

“자네, 오늘 실수가 무척이나 많군. 꼬리를 달고 오다니.”

피카르는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전 분명 함정을 작동 시켰습니다!”

모두가 열려있는 문을 주시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곳의 방문은 항상 자동으로 닫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닫히지 않고 계속 열려있으니, 그들 모두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문 앞에 있던 두 명의 복면인 또한 이상한 느낌이 드는지 서서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 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문 밖으로 하나의 그림자가 일렁거리며 나타났다.

“헉! 너…너는!”

“이럴 수가! 어떻게 들어왔단 말인가!”

그를 확인한 피카르와 리파는 크게 당황했다.

나타난 사람이 바로 라이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펠리언과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복면인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펠리언은 지금의 상황이 짐작이 되는 지 고개를 끄덕이며 라이안에게 말했다.

“이곳에 오는 민간인은 자네가 처음이 아닌가 싶군. 안으로 들어오겠는가?”

펠리언의 말에 라이안은 짧게 대답했다.

“좋지.”

하지만 문 앞에 지키고 있는 검은 복면인들은 전혀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그만 비켜주게”

“흐음… 알겠습니다.”

라이안은 방 안에 들어서며 피카르와 리파를 노려보았다.

펠리언은 라이안의 모습을 보고 처음부터 매우 신기했다. 라이안이 무척이나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

“상당히 젊은 나이에 높은 경지에 올랐군. 우선 앉게나.”

라이안은 펠리언의 권유를 마다하지 않고 펠리언의 정면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지금 이곳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을 타개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곳에 온 목적은 무엇인가?”

펠리언의 물음에 대한 라이안의 대답은 간단했다.

“저들을 잡으러. 그리고… 이곳의 도둑길드를 내가 가져볼까 해서지.”

“뭐라? 이곳을 갖겠다고?”

“그래.”

펠리언은 처음의 말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둑길드의 한 지부 자체를 자신이 갖겠다고 하니 상당히 거슬렸다.

펠리언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우리가 너를 못 죽여서 여기 앉힌 줄 아는 것이냐?”

“물론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착각일 뿐이지만.”

“큭큭큭, 어리석은 놈. 너는 처음부터 이 방에 발을 들여놓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펠리언이 자신의 책상 어딘가를 누르자 라이안의 머리 위에서 하나의 철창이 떨어져 내렸다.

차르르르르! 차캉!

라이안은 철창이 떨어지기 전에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펠리언 일당은 라이안이 잡혔다고 생각하며 통쾌하게 웃었다.

“크하하, 멍청한 놈! 우리가 아무런 방비도 없이 너를 이 방에 들여놓았다고 생각했느냐! 뭐라? 이곳을 갖겠다고? 미친놈.”

펠리언이 야비한 표정을 지으며 라이안에게 말했다.

라이안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피카르 역시도 가소롭다는 듯이 라이안에게 소리쳤다.

“네놈 때문에 내 아이들이 얼마나 다친 줄 아느냐! 빌어먹을 놈 같으니. 어떠냐? 괜히 쫓아왔다가 당한 기분이! 크흐흐.”

피카르의 음성을 들은 라이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고는 서서히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창을 집어 들었다.

그것을 본 펠리언은 입 꼬리가 올라가게 웃었다.

“창인가? 하하하! 요즘 검은 사신인가 뭔가 하는 놈이 창을 들고 다닌다 해서 개나 소나 창을 쓴다더니만, 너 역시도 그런 놈이었구나. 크흐흐. 이봐, 피카르! 겨우 이따위 놈에게 당하다니 창피한 줄 알아라!”

같이 통쾌함을 즐기던 피카르의 표정이 또다시 똥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라이안의 창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하얀 천에 감겨 있었다.

라이안은 고민했다. 천을 풀어야 할지 말아야 할 지.

그리고 곧 그 결정을 그들에게 맡겼다.

“한 가지 묻지. 내가 이 천을 풀면 너희는 다 죽어야 한다. 어찌하겠는가?”

펠리언은 라이안의 섬뜩한 목소리가 상당히 거슬렸다.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로구나. 크흐흐, 병신 같은 놈! 그 철창이 평범해 보이느냐? 그것은 중죄인에게나 쓰이는 마나철창이다. 보통 죄인에게는 마나수갑만을 채우지만 중죄인이면서 증인이 될 수 있는 자는 마나철창에 가둔다. 그 안에서 마나를 쓸 수 없음은 물론, 어떠한 힘도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다. 돈을 너무 많이 들였다고 후회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쓰일 줄이야. 아주 재미있군. 흐하하하하.”

마나철창이 쓰이는 경우는 펠리언의 말 그대로였다.

그 안에서는 마나가 흐를 수 없게 하는 것은 물론 내부의 마나를 억압하는 기능까지 있었다. 그리고 중죄인 증인의 신변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으니, 수도에서도 가끔 쓰이는 물건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라이안은 곧 자신의 머릿속에서 타미르안이 전해준 지식을 떠올렸다. 그리고 해답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군. 하지만…….’

“다시 한 번 묻겠다. 이것을 본 자는 죽는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펠리언은 라이안이 객기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크흐흐, 네 마음대로 해 보거라. 지랄을 하든 말든 넌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굶어죽게 될 테니까 말이다. 흐하하하.”

“그렇다면 결정은 이미 내려진 것이로군. 이것을 본 자는 어쩔 수 없이 제거해야 하니까.”

라이안의 창을 알아보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앞으로의 여행에 큰 지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안은 자신의 정체를 밝혀서는 안 된다.

하지만 증거를 인멸(湮滅)한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라이안은 서서히 창에 감긴 천을 풀었다. 라이안의 손길을 따라 파란색 창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펠리언은 무엇인가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보석이 진짜인지 아닌지, 그리고 골동품이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잘 알아보는 게 진짜 도둑이라 할 수 있다.

펠리언의 눈은 라이안이 가지고 있는 창은 보통 물건이 아니니 더 자세히 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저건… 절대 허술히 만들어진 창이 아니다. 빌어먹을! 설마…….”

라이안은 마나철창 안의 의자에서 서서히 일어나며 차갑게 말했다.

“너희가 자초한 일이다. 난 분명히 경고했다.”

라이안의 말을 듣는 순간 펠리언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전부 튀어! 검은 사신이다!”

“헉! 검은 사신!”

“거, 검은 사신?”

모두가 놀라고 있는 사이 이미 펠리언은 검은 두 복면인들에게 눈치를 주며 자신 뒤의 벽 중 한 곳을 눌렀다.

두 복면인이 순식간에 펠리언에게 다가오자 펠리언과 두 복면인은 위로 열린 탈출로로 몸을 날렸고 곧 그 탈출로는 닫혀버렸다.

라이안은 펠리언이 그렇게 빠른 판단을 할 줄은 전혀 몰랐다.

“이런! 하아아아앗!”

라이안은 마나를 이끌어낼수록 마나가 억압받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그랜드마스터의 경지에 들어선 라이안에게 있어 마나철창은 미미한 움직임의 제약만 줄 뿐이었다.

“청룡풍파!”

라이안은 5초식인 청룡풍파로 마나를 폭발시켰다.

콰과광!

파방!

“크악!”

“으악!”

폭발로 인해 조각난 마나철창은 주위로 찢어지듯 날아갔다. 방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고 먼지로 인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 먼지들은 라이안이 살며시 든 손으로 인해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마나로 먼지자체를 걷어버리는 것이었다.

먼지가 걷히자 나타난 방 안의 상황은 참혹했다.

방 안에 있던 피카르와 리파, 그리고 그 외의 도둑들이 모두 마나철창의 철 조각에 여기저기 찔려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본 라이안은 인상을 찡그리다가 이내 표정을 바로하고는 착잡한 듯 한마디 내뱉었다.

“어차피 죽어야 할 자들이었으니…….”

라이안은 곧 펠리언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놓쳐서는 안 되지.”

라이안은 벽을 향해 빠르게 창을 휘둘렀다.

휙! 휘리리릭!

투두두둑!

창이 휘둘리는 소리와 동시에 펠리언이 도망친 탈출로가 무너져 내리자, 라이안의 신형이 곧 사라졌다.

펠리언은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다. 펠리언을 따르는 두 복면인은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라이안이 따라올 것에 대비했다.

“빌어먹을! 설마 진짜 검은 사신일 줄이야…….”

펠리언도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검은 사신이 그랜드마스터의 경지에 들어섰으며 그가 착용하는 헤르시안은 타이탄을 능가한다는… 그리고 검은 사신의 타이탄은 신의 힘과 필적할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전 대륙에 퍼져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런 소문을 전부 믿지는 않았지만 이것만은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을.

펠리언은 자신이 지나온 길의 함정을 최대한 가동시키며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여러 번 같은 행동을 할 때 마다 가까이에서 함정이 폭발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퍼버벙!

우르르르르!

폭발과 함께 통로 전체가 흔들렸고 그것은 라이안이 얼마나 가까운 곳까지 쫓아왔는지 자세히 알려주고 있었다.

라이안은 근근이 날아오는 화살과 아래로 꺼져버리는 바닥 때문에 짜증이 밀려왔다.

“젠장! 도대체 함정을 얼마나 설치한 거야?”

점점 신경질이 나는지 라이안은 온몸을 호신강기로 둘러싸고 마나탄을 날려 함정을 부수면서 전진했다.

펠리언을 쫓던 라이안은 곧 몇 개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그의 얼굴은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좋군. 정말 좋아. 이정도의 준비성이라면 정말 쓸 데가 많을 것 같아. 하지만 교육은 확실히 해야겠지?”

라이안은 곧 반지의 한 부분을 누르며 말했다.

“야, 챠둠!”

라이안의 상황을 알고 있는 챠둠이 곧바로 대답해왔다.

“네, 그들은 세 번째 통로로 이동했습니다.”

“그렇군. 그보다 지금부터 그들이 가는 방향을 홀로그램으로 나타내줄 수 있겠어?”

“주인님의 말과 동시에 이미 스캔을 끝냈습니다. 약 5초 후에 주인님의 반지로 그들의 위치가 전송될 것입니다.”

“좋아.”

곧 몇 초가 지나자 라이안의 반지를 통해 하나의 지도가 나타났다. 지하탈출로의 지도였다. 그 지도에서는 붉은 빛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펠리언의 위치였다.

“후후, 그리 멀리는 못 갔군. 챠둠, 계속해서 그들의 위치를 파악해줘.”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뭐 할 말이라도 있어?”

“네, 그렇습니다. 타미르안이 저에게 드래곤로드를 만나볼 것을 권했습니다. 어찌하면 좋겠는지요?”

“그래? 굳이 만나야 할 이유라도 있는 건가?”

“있습니다. 타미르안과 계속 같이 다니지 않는 한 다른 지역드래곤들과의 마찰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드래곤로드에게 저와 주인님의 존재를 미리 알린다면 불필요한 마찰은 생길 리 없겠지요.”

“흠… 그도 그렇겠군. 그래, 알았어. 이놈들만 잡고 타미르안과 같이 다녀와.”

“알겠습니다.”

“그럼, 슬슬 놈들을 추격해 볼까?”

라이안은 위치를 안 이상 시간을 끌어봐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라이안은 곧 자신의 몸 주위로 최대의 호신강기를 펼쳤다. 그러고는 앞에 보이는 것을 있는 대로 파괴하며 빠른 속도로 펠리언을 뒤쫓았다.

“으아아아아아!”

“와랴아!”

콰과과광!

“와랴아!”

콰과과광!

지하통로의 막바지에 이른 펠리언은 급히 하나의 장치를 작동시켰고 곧 천장의 벽이 열렸다.

그그그그극!

투둑툭두둑!

천장의 한 부분이 열리자 그곳에서 크고 작은 돌들이 떨어져 내렸다. 펠리언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렸다.

콰과과광!

콰과과광!

뒤쪽에서는 무엇인가 폭발하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펠리언은 그러한 상황에 인상을 찌푸렸다.

“괴물 같은 놈! 그런 함정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같은 속도로 이동하다니…….”

펠리언과 복면인들은 서둘러 위로 올라갔다.

펠리언이 도착한 곳은 영지에서 조금 벗어난 숲속이었다. 지하통로가 상당히 길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대로…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 아직 아내와 딸의 복수도 못했거늘… 이대로는 절대…….”

펠리언의 목소리에는 피맺힌 한이 서려있었다. 그에게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할 사정이 있는 듯했다.

펠리언과 복면인들은 서둘러 정해진 루트를 찾아 도망쳤다. 그런데 한 줄로 나란히 도망치는 것이 무척이나 특이했다. 똑같은 곳만 밟으며 걸었으므로 한 명의 발자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후 펠리언이 있던 그곳에서는 큰 폭발이 일어났다.

콰과과광!

휘리리릭!

터덕!

그리고 폭발과 함께 라이안의 신형이 하늘 높이 올랐다가 지면 아래로 내려섰다.

“후훗, 이제는 잡기가 쉬워지겠군.”

라이안이 반지의 파란색부분을 누르자 펠리언의 위치가 화살표로 나타났다.

“이거 완전 내비게이션이 따로 없군. 상당히 편리한데?”

사람이나 레인져는 도망자를 추격할 때 도망자의 흔적을 찾아가며 뒤쫓기 마련이다. 그리고 도망자는 자신이 도망가는 방향을 자주 바꾸기 마련이다. 한 방향으로만 도망치는 것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이거나 무척이나 멍청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추격하는 자들 중에는 특별히 흔적을 잘 알아보는 훈련을 한 자들이 끼어있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그 방법도 무척이나 힘들었다.

하지만 라이안에게는 챠둠이 있다. 상당한 높이에 있는 챠둠은 그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다.

라이안이 그러한 편리함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 순간!

휘리리리릭!

타닥! 탁! 타닥!

“이크!”

여기저기서 무수히 많은 화살이 날아오자 라이안은 놀라 뒤로 몇 바퀴나 휘돌며 그것을 피했다. 그러나 화살은 쉬지 않고 날아왔다.

이곳저곳으로 간단한 보법을 펼치며 피하던 라이안이 곧 패턴이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 화살이 날아오는 곳을 향해 마나탄을 날렸다.

“하앗!”

퍼벙!

펑!

퍼벙!

수십 개의 마나탄을 날리고 나서야 날아오는 화살의 수가 줄어들더니 곧 멈췄다.

“히야… 이제는 함정이 끝난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군. 이거 보통사람이었으면 순식간에 벌집이 되었겠는 걸? 이정도면 갓 마스터급에 오른 자도 잡을 수 있겠어.”

날아오는 화살의 수가 만만치 않았기에 하는 말이었다.

만약 마스터급에 들어선지 얼마 안 된 검사였다면 분명히 화살 하나하나를 검으로 쳐내며 피했을 것이다. 아무리 마스터급의 검사라 한들 화살을 언제까지고 쳐낼 수는 없다. 화살을 쳐내다가 마나가 고갈되든지 운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라이안은 곧 자신이 처음 밟았던 자리를 살폈고 발로 그곳을 살짝 걷어보았다.

“풀을 역어 함정을 교묘히 가려놓았군. 이거 아주 귀엽게 노는데?”

그러한 말은 나무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로 인해 막히고 말았다.

“크흠, 전혀 귀엽지 않군.”

화살 끝에 독이 묻어 있었던 것이었다.

라이안은 살며시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마나를 점검했다. 함정을 파괴하면서 상당한 마나를 소비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무모하게 뒤쫓았나보군. 마나를 너무 심하게 소비했어.”

라이안은 잠깐 한숨을 쉬고는 다시 중얼거렸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 차라리 몇 분 운기를 한 다음 뒤쫓는 편이 더 빠르겠지?”

라이안은 곧 주위의 기척을 확인하고는 가부좌를 틀고 그 자리에 앉아 혈기공을 운기했다.

독연기가 근처 이곳저곳에서 흘러들었지만 이미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인 라이안에게는 전혀 해를 입히지 못했다.

라이안이 혈기공을 운기하자 곳곳에서 바람이 흘러들었다. 그렇게 흘러드는 마나의 바람으로 인해 주위에 퍼져있던 독연기도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운기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나의 바람이 사라져가자 라이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

“휴우… 점점 몸이 좋아지는 게 느껴지는데? 회복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라이안은 어느 순간부턴가 운기를 할 때 심장을 조여 오는 고통이 사라졌다. 게다가 운기를 할 때마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마나가 크게 늘어감을 느끼고 있었으니, 이제 곧 현경(화경=그랜드마스터, 화경 다음의 경지가 현경이다)에 도달하리라.

현경에 도달하면 이기어 검술(以氣馭 劍術-칼에 엄청난 내공을 불어넣어 손에 칼을 쥐지 않고도 마음먹은 대로 칼을 날리거나, 돌아오거나, 휘두르게 할 수 있는 전설의 무공)을 사용할 수 있으며 궁극의 무공인 심검을 펼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최상급 경공을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능공허도(凌空虛道)는 물론 몸을 띄워 빠르게 날아가는 경공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몸 상태가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짓던 라이안은 곳 펠리언이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 * *

라이안 일행이 묵고 있던 여관 앞에 몇몇의 기사들과 약 오십여 명의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어느 한 기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병사 중 하나를 쳐다보며 거칠게 물었다.

“여기가 맞느냐?”

“그렇습니다. 우리 자이라 영지의 병사를 죽인 자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메르지아를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메르지아라면 라이안이 도왔던 소녀다. 설마 그녀가 그러한 사실을 고발했단 말인가!

“좋다. 모두 잡아들여라!”

“옙!”

“병사들은 여관을 수색한다! 용의자들은 두 명의 여자와 네 명의 용병이다! 용의자는 나중에 판별할 것이니 우선 이곳에 있는 모든 자들을 잡아들인다!”

“옙!”

“수색을 시작하라!”

우르르르르.

꽝!

타당탕!

콰지직!

기사들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여관의 문을 부수며 들어갔다.

안쪽에 들어선 병사들이 여관 이곳저곳을 부수는지 상당한 소음을 냈다.

* * *

한편,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치던 펠리언과 복면인들은 숨이 가빠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뒤를 돌아본 한 복면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펠리언에게 말했다.

“헉헉, 이제 안 쫓아오는 것 같은데… 헉헉… 조금 쉬시지요.”

옆에 있던 다른 복면인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듯 겨우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렇습니다. 헉헉… 그는 아마도 우리가 온… 헉헉… 방향조차 잡지 못할 것입니다. 헉헉…….”

하지만 펠리언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직감이 있다. 남다른 직감을 가지고 있는 펠리언으로서는 도망치면 도망칠수록 점점 불안감이 더해왔다. 그러한 직감은 지금까지 자신을 한 영지의 지부장으로 만드는데 공헌했으니 무시할 수 없었다.

“아니다. 그놈은 분명히 우리를 쫓고 있을 것이다. 헉헉, 계속 움직여야만 한다… 헉헉… 계속 움직여야 해… 헉헉…….”

그들은 지금 쓰러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들에게 사신의 목소리와도 같은 말이 들려왔으니…….

“이제 그만하지 그래? 보아하니 더 이상 도망칠 힘도 없어 보이는데.”

“헉!”

“컥!”

“설마! 벌써 따라잡혔단 말인가… 빌어먹을… 아직 복수도 못했는데… 하늘에 있는 아내와 딸아이에게는 뭐라 변명을 한단 말인가… 크흑!”

복면인들은 심장이 멎을 듯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기에 바빴다.

펠리언은 곧 체념한 듯 무릎을 꿇으며 한탄했다.

그러한 펠리언의 한탄은 라이안의 가슴까지 울려오는 듯했다. 라이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수?’

라이안은 곧 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라이안의 모습을 확인한 복면인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칼을 뽑아들었다.

그들 나름대로 저항을 해보려는 듯했다.

두 복면인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지부장님만은 살려야 한다.”

“나도 알고 있다. 이미 내 목숨은 펠리언 님의 것이니까…….”

“그렇지… 나 역시 펠리언 님께 목숨을 빚 졌으니… 하늘에서 보세.”

“후훗, 그러지.”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라이안에게 달려들었다.

두 복면인이 라이안에게 달려드는 것을 그제야 알아챘는지 펠리언이 뒤를 돌아보며 말리려고 했다.

“안 돼! 자네들이 상대할 자가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두 복면인은 펠리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더 빠른 속도로 라이안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하앗!”

창! 차장!

“받아라!”

창!

그들은 라이안의 양 옆으로 공격해 왔다.

라이안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볍게 막아냈다.

“아직 미숙하군.”

“크윽! 얕보지 마라! 하앗!”

창!

한 명이 라이안의 상체를 공격해 오면 다른 한명은 자세를 낮추며 라이안의 다리를 공격해 왔다.

하지만 라이안은 창을 회전시키며 너무도 자연스럽게 공격을 막아냈다.

라이안의 다리를 공격하며 몸을 날렸던 자가 라이안의 뒤를 점하고는 라이안의 등을 베려고 하던 찰나, 그는 더 빠르게 뒤로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퍽!

“크헉!”

쿵!

뒤로 날아간 자는 곧 나무에 부딪치며 피를 토했고 곧 라이안의 등을 확인했다.

라이안의 왼쪽 어깨 아래에는 이미 창의 뒷부분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가 날아간 이유는 바로 창의 뒷부분에 가슴을 강타 당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라이안의 앞에 있던 자가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며 급히 라이안을 찔러왔다.

하지만 라이안의 창은 더욱 빠른 속도로 정면에 있는 자를 찔러갔다.

그때!

라이안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창을 찌르는 속도를 조금 줄였다.

푸욱!

라이안의 눈앞에 있는 자는 자신의 왼쪽 가슴이 관통당하면서도 라이안을 공격하고자 계속해서 자신의 검을 찔러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동귀어진(同歸於盡)!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저자를 지켜야 한다는 것인가! 저자가 어떤 자이기에…….’

라이안의 가슴에 검이 다다랐을 때 그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애써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공격이 성공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탁!

라이안이 손으로 그가 찔러오는 검을 잡아버렸기에 검은 라이안의 가슴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보며 좌절하던 그는 곧 정신을 잃으며 중얼거렸다.

“제기랄…….”

라이안은 쓰러지는 그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 너머로 뒤쪽에 있 펠리언의 모습을 보았다.

“대단한 결의로군.”

라이안은 자신의 창을 더욱 강하게 찌르며 창에서 손을 놓았다. 창은 엄청난 속도로 라이안의 앞에 있던 복면인의 가슴을 뚫고 펠리언의 머리위로 날아갔다.

터더어어엉!

창은 곧 펠리언의 뒤쪽에 있는 나무에 박혀들었고 가늘게 진동했다.

라이안이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이미 머리를 관통 당했으리라…….

라이안은 자신에게 안겨있는 자를 바닥에 누이고는 빠른 손놀림으로 그의 혈도를 쳐나갔다.

투둑툭투둑!

그러자 곧 그의 가슴으로 흐르던 피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라이안은 자신의 앞에 쓰러져 있는 복면인의 복면을 벗기고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약 삼십대 중반의 나이로 마치 옆집 아저씨처럼 순한 인상이었다.

“도둑이나 할 사람은 아닌 듯한데… 실력도 기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고…….”

라이안은 그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의 충성심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힐링!”

라이안은 곧 그에게 회복마법을 펼쳤다.

라이안의 손에서 흘러나온 밝은 빛이 쓰러져 있는 복면인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관통당한 복면인의 가슴이 서서히 아물자 빛은 점점 사라져갔다.

상처를 확인한 라이안이 입을 열었다.

“목숨은 건지겠군.”

이를 보는 펠리언은 더욱 놀라워했다.

“마, 마법까지…….”

라이안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며 펠리언에게 다가갔다.

펠리언도 이미 체념한지 오래인지 라이안이 다가오는 것에 더 이상은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펠리언의 앞에 다다른 라이안은 펠리언의 머리위에 박혀있는 창을 뽑아들며 펠리언에게 말했다.

“아주 충직한 부하를 뒀군.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야.”

펠리언은 라이안의 뒤쪽에 쓰러져 있는 복면인을 바라보며 웃었다.

“덴조를 살려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이안에게 가슴을 관통당한 복면인의 이름이 덴조인 듯했다.

“그는 부하가 아닙니다. 저의 절친한 친구이지요.”

“친구?”

“그렇습니다. 저들은 목숨을 다해 저를 모실 것이라 하지만 저에게는 가장 힘이 되는 친구들입니다.”

처음 나무로 날아가 처박힌 복면인이 몸을 비틀거리며 걸어와 라이안의 뒤쪽에서 무릎을 꿇었다.

“부탁합니다. 제발 펠리언 님의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대신… 대신 저의 목숨을 가져가시고 펠리언 님의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이렇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라이안은 살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뒤에 있는 복면인에게 물었다.

“왜지? 이자를 반드시 살려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펠리언 님은 저의 목숨을 구해주셨고 저희들의 복수를 해주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복수를 해준다… 좋아, 이야기나 한 번 들어보지. 네가 이자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이유를 말이야. 그것이 합당하다면 네 목숨을 이자의 목숨 대신 가져가겠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를 들은 펠리언이 손사래를 치며 소리쳤다.

“안 되오! 아니 되오! 이보게 베일, 왜 이러는 겐가? 내가 어찌 자네의 목숨을 받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절대 안 되네. 검은 사신이시어, 그냥 저를 죽여주시고 베일의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저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대로 죽어서는 아니 될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크흐흑.”

라이안은 그들의 행동을 보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그리 나쁜 자들은 아닌 것 같군. 뭐…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자 했던 자들은 이미 죽어버렸고…….’

라이안은 우선 사연부터 들어보고자 더 냉랭하게 연기하며 펠리언에게 말했다.

“둘 중 한명은 살려주겠다. 그것은 내가 결정할 것이니 넌 끼어들지 마라.”

차가운 라이안의 목소리에 펠리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곧 복면인 말했다.

“자, 그럼 네가 이자를 살려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보아라. 듣고 나서 결정하겠다.”

“알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15년 전…….”

15년 전 펠리언은 평범한 과일 장수였다.

그는 영지 내에서 가장 정직하며 충실하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하지만 어느 날 펠리언의 인생을 짓밟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으니…….

늘 펠리언에게 점심을 가져다주던 펠리언의 부인 코루나는 딸과 함께 펠리언의 과일가게로 찾아왔다. 펠리언은 늘 수고해주는 부인이 고마웠고 어머니인 코루나가 이곳에 오는 동안 지루할까봐 항상 같이 오는 착한 딸이 너무도 예뻤다.

그런데…….

그때 데르미크 남작의 마차가 펠리언의 과일가게를 지나가게 되었다. 마차는 곧 멈춰 섰다.

데르미크 남작이 마차에서 내리자 모든 영지민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가 펠리언의 과일가게로 오는 게 아닌가?

펠리언과 그의 부인, 그리고 딸은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펠리언은 남작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

“남작님을 뵙습니다. 어인일로 이 누추한 곳에…….”

“내가 내 영지를 돌아다니는데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왜? 자네는 내가 여기 온 것이 불만인가?”

“아이고, 아닙니다. 절대 아니고말고요. 마음에 드는 과일이 있으시면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가장 좋은 과일로만 포장해 드리겠습니다.”

데미르크 남작은 과일 한 개만 만지작거리며 펠리언의 뒤쪽을 힐끔힐끔 바라 볼 뿐이었다.

펠리언이 그 눈길을 따라가 보니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자신의 부인이었다. 그 순간 불안이 엄습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데르미크 남작이 땅바닥에 있는 벌레를 집더니 과일 한 곳을 씹고는 그곳에 벌레를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아, 아니 영주님……?”

곧 데르미크 영주의 행동이 급변했다.

“이게 뭐냐! 내가 먹는 과일에 이토록 더러운 벌레가 있다니! 네가 일부러 나에게 이 과일을 먹인 것이렸다! 이놈을!”

펠리언은 갑자기 돌변한 데르미크 남작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 남작님. 그 벌레는 지금 남작님께서 주워 그곳에 넣지 않으셨습니까? 어찌 저에게…….”

“닥쳐라! 이놈! 이놈이 이제는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는구나! 여봐라! 뭣들 하느냐! 당장 이놈과 이놈의 가족들을 잡아들여라!”

“넵!”

“이리 오너라, 이놈!”

데르미크 남작의 명에 기사들이 펠리언을 포박하려했다.

이렇게 되자 펠리언의 마음은 다급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고, 남작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눈이 삐었었나 봅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펠리언은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알기보다 먼저 빌고 봐야 할 것 같아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펠리언과 그의 가족들은 개처럼 끌려가고 말았다.

물론 마을에는 펠리언이 이곳의 영주인 데르미크 남작을 능멸했다고 소문이 퍼졌고 사건은 그렇게 잊혀졌다.

펠리언은 영주성의 옥에서 고문을 당하듯 맞고 또 맞았다.

펠리언을 때리는 병사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며 펠리언에게 몽둥이만 날릴 뿐이었다.

몽롱한 정신에 기절하기 일보직전이던 펠리언은 자신을 때리고 있는 병사의 중얼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큭큭큭, 남작님께서 아직도 네 놈의 마누라를 안고 계시는 모양이구나. 우리에게 주지 않는 걸 보니. 크그그극.”

펠리언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무, 무슨 말이냐. 그렇다면! 그 작자가 내 부인을 탐하기 위해 나에게 이러한 짓을 했단 말이냐!”

“크흐흐, 그렇지. 아마도 네 마누라는 네 목숨만 살려달라며 남작의 가슴에 안겨 있을 것이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네 딸은 남작님 측근의 기사들이 돌려가며 윤간하고 있다더군. 물론 일이 다 끝나고 나면 이 아래까지 내려올 것이니 내 친히 네 앞에서 그녀들을 탐해주마. 크흐흐흐.”

그러한 말을 듣던 펠리언의 눈은 마치 짐승의 눈처럼 붉게 변했고 곧 피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드으으을! 너희가 진정 인간이란 말이냐! 죽여 버리겠어… 모두 죽여 버리고 말겠어어어어! 으아아아아아!”

결국 펠리언의 부인과 딸은 마지막으로 병사들에게 윤간을 당하며 혀를 깨물고 죽었다. 감옥은 펠리언의 절규로 가득했다.

펠리언은 반병신이 되어서야 풀려났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고 영지성을 바라보며 복수를 다짐했다.

“반드시 죽이리라… 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너를 죽이고 말리라… 크흑.”

그러고 나서 펠리언이 들어간 곳이 바로 도둑길드였다. 그곳에서 몸을 추스른 펠리언은 한 마리의 짐승이 되고자 그들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두 명의 기사가 영지성에서 쫓겨나는 것을 목격했다. 그들은 이미 온몸이 칼로 난자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들을 펠리언이 데려와 치료해 주었고 정신을 차린 그들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데르미크 남작의 아들에게 자신들의 부인이 겁탈 당했으며, 아내를 구하기 위해 덤벼든 그들은 결국 이 꼴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펠리언은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안고 있는 그들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셋은 그렇게 같은 고통을 안고 복수에 대한 결의를 다졌고 기사였던 덴조와 베일이 펠리언을 도와 그를 도둑길드 지부장의 자리까지 올려놓았던 것이다.

힘을 얻기 위해… 복수를 하기 위해…….

라이안은 그들의 사연을 듣고 몸서리를 쳤다.

“어찌 그런 파렴치한들이 있단 말인가!”

“크흐흐흑…….”

“흐흐흐흑…….”

라이안의 분노한 음성에 그들은 더욱 흐느꼈다.

아마도 그때의 고통스런 기억이 또 다시 떠올랐으리라.

라이안은 자신의 분노를 조금 낮추고 펠리언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찌 아직도 복수를 하지 못한 것인가?”

“15년의 세월동안 이 자이라 영지가 엄청나게 발전된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만큼 데르미크 남작의 세력이 확장되었으니, 그 방어선을 뚫을 방도가 없어 아직도 이렇게 움츠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물론 계속해서 자객을 고용하기는 했으나 매번 실패했습니다.”

라이언은 펠리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이 힘을 키우면 키울수록 그 또한 더 큰 힘을 얻었다는 것이로군.”

라이안의 말에 그들은 땅만 쳐다볼 뿐이었다.

라이안은 옆으로 살짝 걸어 나오며 그들의 정면에 섰다.

“아까 지하에서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나?”

“네? 무엇을…….”

“내가 너희 도둑길드를 갖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아…….”

그때서야 생각났는지 둘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희의 복수를 해준다면 너희는 나에게 충성을 다할 수 있겠느냐?”

라이안의 말은 그들에게 있어 광명과도 같았다.

“그, 그것이 정말이십니까!”

“정말 그렇게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너희가 나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너희가 검은 사신이라고 부르는, 나 라이안이 너희의 복수를 대신해 주겠다.”

펠리언과 베일은 몸을 떨었다.

얼마나 소망했던 일이었던가!

‘검은 사신이라면… 검은 사신이라면 가능하다! 복수를 할 수 있어!’

생각을 마친 그들은 곧 라이안에게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저 펠리언! 라이안 님께 목숨을 다 바쳐 충성할 것입니다!”

“저 베일! 기사로서 평생 라이안 님만을 모실 것을 맹세합니다!”

“좋다, 너희의 복수… 내가 접수하겠다. 곧 다시 너희를 찾을 것이다. 다친 자를 보살피고 은신처에 가있어라.”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며 라이안에게 부복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라이안이 사라진 뒤였다.

“드디어… 드디어 이룰 수 있단 말인가…….”

라이안은 여관으로 돌아가면서 ‘펠리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고 생각했다.

‘펠리언과 같은 고통을 당한 자들이 한 둘은 아닐 터… 데르미크 남작… 너무도 큰 죄를 지었음에도 참으로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그 대가는 내가 치르게 해주마.’

라이안이 그러한 상념에 빠져 있을 때 반지를 통해 챠둠의 음성이 들려왔다.

“전 이제 타미르안과 드래곤로드를 만나고 오겠습니다.”

“아, 그러기로 했었지? 그래, 알았어. 다녀와.”

“워프를 이용해 최대한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혹시 가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최대한 힘을 아끼는 게 좋을 거야. 천천히 다녀오도록 해.”

“알겠습니다.”

워프 시스템을 이용하면 텔레포트처럼 순식간에 다녀올 수 있었지만, 드래곤이 쉽게 텔레포트 마법을 펼치는 것과는 달리 챠둠의 워프는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라이안은 빠르게 여관으로 달렸고 타미르안은 전함에서 그런 라이안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제 된 것인가?”

“허락이 떨어졌으니 최대한 빨리 다녀와야 하겠지.”

“알겠네. 위치를 알려주겠네.”

챠둠이 홀로그램으로 미칼투 대륙 전체를 타미르안에게 보여주었다.

“손으로 원하는 위치를 찍으면 붉은색으로 그 위치가 저장될 거야.”

“이건 보면 볼수록 신기하군.”

타미르안이 미칼투 대륙 행성 전체를 돌면서 한 곳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바로 이곳이라네.”

“그렇군. 이곳도 제국 중 하나 아닌가?”

“맞네. 드래곤로드께서는 인두루인 제국에 계신다네.”

“그럼, 출발하지.”

타미르안의 말을 들은 챠둠은 빠른 속도로 전함을 움직여 인두루인으로 향했다.

* * *

드래곤로드인 티모스탄은 평소처럼 자신의 레어에서 차를 즐기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티모스탄의 앞쪽에 밝은 빛과 함께 어떠한 형체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설마!”

반응으로 보아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현상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티모스탄이여…….”

티모스탄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희미한 빛의 형태로 나타난 여성을 향해 몸을 낮추며 무릎을 꿇었다.

“드래곤의 로드인 티모스탄이 성신이신 케르디아 님을 뵙습니다.”

성신!

주신아래에 있는 마신과 성신, 그 중 성신이란 말인가!

“너에게 신언을 전하려 한다…….”

“시, 신언!”

성신이 이렇게 직접 로드에게 나타나는 것은 몇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직접 신언을 전할 줄이야…….

티모스탄은 드래곤의 로드로서 몇 번 신계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성신인 케르디아는 높고도 높은 존재.

멀리서 한 번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런 성신이 직접 자신의 앞에 나타나 신언을 전한다고 하니 티모스탄으로서는 정신이 없을 만했다.

하지만 역시나 드래곤로드였다.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인지하고는 성신의 신언을 귀담아 들었다.

“저 드래곤로드인 티모스탄… 성신 케르디아 님의 신언을 경청하겠나이다.”

티모스탄을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성신 케르디아가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얼마 전… 차원의 틈을 통해 중간계로 이상한 존재가 들어왔다. 차원의 틈은 주신이신 라피네 님 외에는 아무도 지나갈 수 없는 함정이거늘.”

성신 케르디아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곧 다시 이었다. 차원의 틈은 자신조차 지나갈 엄두를 못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통해 들어온 존재는 분명히 범상치 않은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전혀 알 길이 없다. 너도 알 것이다. 신은 직접 중간계를 조사할 수 없음을… 그래서 중간계의 조율자인 네가 그것을 조사해 주었으면 한다.”

신은 마왕보다 중간계에 오기가 더욱 힘들었다. 가끔 신녀를 통해 신언을 전하는 것이 전부였으니, 이것만 보더라도 신들이 중간계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얼마나 미약한지 알 수 있었다.

티모스탄은 위험한 존재가 중간계에 해를 끼칠 것이라 생각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티모스탄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성신 케르디아의 신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우리는 중간계의 변화를 원치 않는다. 그러니 티모스탄 네가 그 차원을 지나온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확인해 주었으면 한다. 만일 그 존재가 중간계의 균형을 무너뜨릴 만한 존재라면 필히 그 존재를 봉인하라.”

“알겠습니다. 성신 케르디아 님의 신언을 명심하겠나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티모스탄은 성신 케르디아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고는 불안을 느꼈다.

“어둠의 후예가 중간계에 들어섰다.”

“마족이 말입니까? 하지만… 마족이라면 저희 드래곤만으로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합니다. 몇몇 드래곤들을 보내 다시 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그리 쉽게 볼 일만은 아니더구나. 그들은 발크르스 마왕의 심복인 최상급 마족들이다. 게다가 어떤 아둔한 인간들이 상당한 힘을 들여 그들을 소환한 것 같다. 그들 각각이 드래곤 이상의 힘을 가지고 중간계에 들어온 게 아닌가 싶어 심히 걱정이 되는 구나…….”

“바, 발크르스 마왕의 심복이라면, 다른 마왕급과 실력의 차가 크지 않다는 그들 말입니까?”

티모스탄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성신 케르디아는 마지막 말을 마쳤다.

“너에게 차원의 틈을 지나온 존재와 마족들에 관한 처리를 맞기겠다.”

“중간계의 조율자인 티모스탄이 중간계의 평행을 유지하겠나이다.”

티모스탄의 마지막 말과 함께 성신 케르디아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를 확인한 티모스탄은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흠… 차원의 틈을 지나온 존재가 있다니… 과연 그것이 무엇일지…….”

티모스탄은 차원의 틈을 지나온 존재가 혹 마신이나 성신급의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선은 드래곤들의 수장들을 모아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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