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장 다가오는 어둠
에드코르 제국의 어느 산속.
깊은 산속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크기의 저택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위의 풀들이 크게 자라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늦은 밤중이라 더욱 음침한 기운이 흘렀고 풀들 사이로 싸늘하게 흐르는 바람들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갑자기 잔잔한 바람이 급격히 거칠어진다고 보이는 순간 풀들로 가득 찬 저택의 앞마당에 밝은 빛줄기가 여러 개 생겨났다.
그리고 그 강렬한 빛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 빛 속에서 10여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검은 색의 로브만 입고 있는 이 사람들의 몸에서는 어둡고 괴기스러운 기운이 흘렀다.
로브를 입지 않고 있는 이 한 사람은 바로 에드코르 제국의 황제인 오리닌 황제였다. 로브를 입은 자들 중 가장 지위가 높은 듯한 사람이 오리닌 황제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황제폐하, 안으로 드시지요.”
조용하고도 음침한 그의 목소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것만 같았다.
“그래, 준비는 완벽히 되었겠지?”
“당연합니다. 저희에게는 오랜 숙원이 달린 일인 만큼 어찌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흠…그렇겠지…….”
오리닌 황제는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오리닌 황제는 어둠에 둘러싸인 곳이라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문에 검은 연기와도 같은 것이 맴돌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문 앞으로 다가선 그들은 좀 전 오리닌 황제에게 말을 걸었던 자가 무엇인가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가 문 앞으로 다가가 문에 손을 대며 주문을 외웠다.
“어둠의 힘으로 봉인되어진 문이여… 어둠의 자식을 자처하는 나의 힘을 확인하여 봉인을 풀지어다…….”
어둠의 자식!
그랬다. 이들은 스스로가 어둠의 자식을 자처한다는 흑마법사들이었다.
이들은 발크르스 마왕과 계약되어진 자들로 흑마법사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져 있는 자들이었다.
흑마법의 장점이라 하면 공격마법과 저주마법이 백마법에 비해 월등히 강하다는 것이었다. 이들 개개인의 힘이 공격력으로 따진다면 7서클의 백마법사들과 비슷하니 가히 엄청난 전력이었다.
곧 검은 기운이 걷히고 문이 양 갈래로 조용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을 연 자가 앞장을 섰으며 그 뒤를 로브를 입은 자들이 오리닌 황제를 호위하며 뒤따랐다. 안으로 들어선 그들은 곧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걸었다.
그들이 걸어가는 곳은 이전에는 문이 달려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는 지하통로였다.
“황제폐하, 발을 조심하십시오.”
“흠… 알겠네.”
곧 몇몇 사람이 지하통로 바로 앞에 미리 준비하고 있던 등에 불을 붙였고 앞서서 지하통로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모두가 따라서 지하통로로 내려갔다.
지하통로의 길이는 오리닌 황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했다.
“아직 멀었는가?”
“아닙니다. 조금만 더 가시면 됩니다.”
하지만 그 지하통로는 내려온 만큼 더 내려가서야 끝이 났다.
지하통로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곳에서 수많은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지하 끝에 다다르자 그 소리는 짜증을 느낄 만큼 커졌다.
지하통로의 끝에 도착해서 약간의 답답함이 해소되는 것 같았던 오리닌 황제는 다시 등 뒤의 지하통로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되돌아가려면 그 긴 거리를 다시 올라가야 했으니 다리가 상당히 아플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우선은 해야 할 일이 있어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린 오리닌 황제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많이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흠… 준비는 완벽하게 된 것 같군.”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하게나, 케리어스.”
케리어스!
오리닌 황제의 입에서 나온 이 이름은 상당히 유명한 이름이었다.
대륙에 알려지기에도 피의 마도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 자는 포스안 제국의 대마법사 가시네이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졌었다.
한 마을을 초토화시키다시피 하며 생체실험을 일삼던 케리어스였다.
그곳은 포스안 제국의 영지 안에 있는 마을로, 포스안 제국에서는 케리어스를 잡고자 상당한 수의 성기사들을 보냈지만 오히려 살아 돌아온 자들이 반도 되지 않았다.
문제의 심각함을 느낀 포스안 제국에서는 대륙 최고 마법사인 가시네이스와 네 명의 천사장을 보내 케리어스를 섬멸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가 아직도 살아있단 말인가…….
순간 케리어스의 눈을 보게 된 오리닌 황제는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리치의 눈은 보면 볼수록 역겹군.’
케리어스가 오리닌 황제의 표정에서 그 심기를 읽고서는 괴기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클클클, 저곳으로 올라가시면 이 아래의 상황을 모두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케리어스가 뼈만 남은 팔을 들어 올려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가 말한 것처럼 그곳은 아래의 상황을 모두 볼 수 있을 정도의 좋은 위치였다.
오리닌 황제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케리어스는 계단을 오르는 오리닌 황제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지금은 나를 경멸하겠지만 그것도 지금뿐일 것이다. 클클클.’
계단을 거의 다 올라간 오리닌 황제는 아래에 있는 다섯 개의 커다란 마법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마법진 위에는 100명씩의 아기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케리어스가 손을 올리자 무엇인가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마법진 위로 떠 있는 둥근 기둥이 아래로 서서히 내려왔다.
그그그그그그.
그그그그그그.
다섯 개의 기둥이 다 내려오면 그곳에 있는 아기들은 어찌한단 말인가!
이들은 100명의 아기들의 피를 바침으로서 마족을 소환하는 의식을 치루기 위하여 이와 같은 끔찍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죄 없는 아기의 부모들이 이 상황을 본다면 눈을 뒤집고 기절하리라.
거의 다 내려온 기둥 때문에 그늘이 지자 아기들은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아직 지각이 없는 아기들임에도 마치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는 듯했다.
기둥으로 인해 아기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보였음에도 기둥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투둑! 툭!
툭! 투둑!
무엇인가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수도 없이 들려왔고 아기들의 울음도 그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어찌 인간이 이토록 잔인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기둥과 마법진의 둘레로 아기들의 피가 조금씩 솟아올랐다. 그리고 곧 케리어스의 손이 다시 올라간 순간 멈추었던 기관의 소리가 다시 들려오더니 마법진을 덮은 기둥들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법진은 이미 핏물로 인해 애초에 마법진이 있었는지도 분간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단지 그곳에 아기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올라가는 기둥에 달라붙어 있는 작은 팔다리의 뼈들로서만 알 수 있었다.
올라가고 있는 기둥에서는 수십 방울의 피들이 계속해서 마법진 위로 떨어져 내렸고 겨우겨우 붙어있던 아기들의 뼈들 또한 하나둘씩 떨어졌다.
오리닌 황제는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약간의 매스꺼움을 느꼈다.
‘반역자의 목도 그 자리에서 단숨에 잘라버렸던 나다. 이런 것쯤은…….’
스스로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최면을 걸듯 마음을 굳게 다잡는 오리닌 황제였다.
“의식을 시작하라!”
케리어스의 거친 음성이 울려 퍼지자 각각의 마법진에 로브를 입은 다섯 명의 흑마법사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섰다.
곧 룬어로 추정되는 목소리들이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소환의식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읽어가는 주문은 마족을 불러내는 주문답게 그 음침함이 극에 달해 있었다.
라이안이 이러한 주문을 들었다면 전신의 닭살로 인해 몸을 부들부들 떨었을 것이다.
그들은 주문을 쉬지 않고 오랜 시간 외우고 있었다.
마침내 한참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던 마법진의 피들이 서서히 일렁였다. 그리고 피들로 인해 가려졌던 마법진이 붉은 빛을 내뿜으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핏속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빛의 향연은 누가 봐도 무척이나 화려한 광경이었다.
오리닌 황제가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눈부시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섯 개의 마법진의 한가운데에 무엇인가 둥근 공과도 같은 것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은 공이 아닌 사람의 머리였다. 머리부터 해서 목이 올라왔고 곧 어깨가 보였다.
“오… 드디어……!”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흑마법사들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올라오는 사람의 형상은 제각기 그 크기가 달랐다.
어느 한 형태는 근육질에 덩치가 컸지만 어떤 형태는 어린 아이와도 같이 작은 몸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몸은 서서히 발끝까지 모두 올라왔고 마법진 위에 살며시 떠있었다. 그리고 곧 그들의 몸에 묻어있던 피들이 조금씩 증발하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으.
피가 증발하며 점점 또렷하게 그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스팟!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 동시에 두 눈을 떴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 떠 있는 상태로 한 곳으로 모여 바닥에 내려섰다.
또각! 또각!
쿵!
다른 자들은 살며시 내려섰으나 덩치가 큰 자는 상당한 소리를 내며 내려섰다. 그들 중 적당한 체격을 가지고 있던 자가 입을 열었다.
“제대로 온 것 같군. 후후.”
케리어스가 그들에게 다가가 무릎을 굻고 고개를 조아렸다.
“발크르스 님의 노예인 케리어스가 마계의 전사님들을 뵙습니다.”
케리어스의 소개에 다섯 명의 마족이 그를 바라보았다.
“후후후, 네가 케리어스로군. 발크르스 님에게 이미 얘기는 들었다.”
아마도 적당한 체격을 가진 자가 이들의 리더로 보였다.
“앞으로 제가 성심성의껏 모실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선 상황부터 들어야겠지. 어떤 인간이 발크르스 님을 귀찮게 한다지, 아마?”
“그렇습니다. 그보다 먼저 자리를 옮기시지요.”
“그러지.”
그들이 그러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오리닌 황제가 마족들을 보며 다가왔다.
“허허허, 드디어 너희들이 나를 돕기 위해 왔구나!”
“으음?! 하찮은 인간이……!”
덩치가 큰 자가 오리닌 황제에게 뭐라고 하려고 할 때 리더로 보이던 자가 그를 말렸다.
“발크르스 님께서 그의 말을 들으라 하셨다.”
“크흠…….”
오리닌 황제도 그들의 분위기가 자신을 따를 것 같지 않자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발크르스 님께서 나를 도우라 너희를 보낸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내 명을 따라야 할 것이다!”
“알고 있다, 오리닌 황제.”
“뭐라?! 알고 있는 것이 그따위 태도인가!”
반말로 말하는 그가 괘씸한 오리닌 황제였다. 하지만 마족의 리더는 마기를 흘리며 냉정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마신님과 일마왕이신 발크르스 님 외에는 존대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두 마왕에게도… 이곳에서의 행동은 너의 말을 따를 것이나 존대 따위는 바라지 말라.”
마족의 말투가 상당히 거슬렸으나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압력에 서있기도 힘든 오리닌 황제였다. 하지만 곧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크게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앞으로 내 일을 도울 수 있겠지! 암.”
자신의 명령만 잘 듣는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우선 소개부터 하겠다. 내 이름은 칸드다.”
자신을 칸드라 말하는 마족의 리더가 다른 이들의 이름을 알려주려 하자 그들이 먼저 스스로 자신들의 이름을 말했다.
“베이모스다.”
덩치가 커다란 마족의 이름이었다.
그 뒤로 마른 체격의 사람부터 칸드와 비슷한 체격의 사람과, 어린소녀와도 같은 마족이 순서대로 이름을 말했다.
“치카다.”
“바테르다.”
“난 팰렌이야. 잘 부탁해 황제. 헤헤.”
마지막으로 소녀마족인 팰렌이 웃으며 오리닌 황제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칸드, 베이모스, 치카, 바테르, 팰렌…….
이들은 발크르스휘하에 있는 자들 중 가장 강한 마족이었다. 상급 마족이나 다른 상급 마족들과는 그 강함의 등급이 다른 자들…….
이들 둘이 있다면 제삼마왕인 하비마고에게도 이길 수 있었으며 이들 다섯이면 제이마왕인 체리아나와 하비마고가 동시에 달려든다 하여도 이길 수 있는 자들이었다.
확실히 1대1로 붙는다면 삼마왕을 이길 수는 없으나 그 정도로 그들과의 힘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케리어스를 따라서 텔레포트를 하려던 찰나 칸드가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열 중 삼 정도의 힘을 쓸 수 있는 것인가…….”
스팟!
칸드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몇몇 흑마법사들을 남기고 사라져가는 그들이었다.
칸드가 말한 열 중 삼 정도라는 것은 중간계에서 쓸 수 있는 힘이었다.
중간계는 마계와 같이 마기가 충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계와 중간계를 잇고 있는 문을 통과하지 않는 한 그들은 자신 본연의 힘을 다 가지고 이곳에 올 수 없었다.
그나마 그들은 높은 경지의 흑마법사들과 100명이라는 순수한 아기의 생명을 제물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그 정도의 힘이라도 가지고 올 수 있음을 다행이라 여겨야 했다.
물론 그들 자신들의 힘을 모두 가지고 올 수 있는 방법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계와 중간계를 잇고 있는 문을 부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불가능이었다. 그 문은 주신인 라피네가 만든 결계석이 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발크르스마왕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주신인 라피네가 만든 결계석을 부실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혼돈의 무녀가 가지고 있는 혼돈의 옥석이었다.
* * *
히매인 왕국의 왕성에서는 은밀하면서도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몇몇 중요 인물들이 루시 공주가 포스안 제국으로 떠나는 것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던 라이안은 고개를 흔들며 크호른 왕을 찾았다.
“성안이 이토록 시끄럽다면 루시 공주가 포스안 제국으로 떠난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주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최대한 믿을 수 있는 자들에게만 은밀히 공주가 포스안 제국으로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하라 일렀습니다만…….”
“하지만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복도를 걷던 저조차 성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타국에서 히매인 왕국의 동태를 살피고자 보낸 첩자가 있다면 분명히 그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겠지요. 국왕전하, 적이란 밖에 있는 적보다 내부에 있는 적이 더 위험한 법이랍니다.”
“흠… 내부에 있는 적이라…….”
라이안의 말을 들은 크호른 왕이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럼 어찌해야 좋을까요? 그렇다고 공주를 호위하는 기사들과 시녀들을 붙이지 않을 수도 없고…….”
공주가 위험에 빠졌을 때를 대비해 최소한의 준비는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크호른 왕이었다.
그러자 곧 라이안의 입에서는 크호른 왕이 생각하던 것과 정 반대의 소리가 나왔다.
“기사들과 시녀들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크호른 왕이 라이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그리고 따님을 둔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걱정이 크신 것도 당연하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은 곧 광고를 하며 돌아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히매인 왕국에서도 다른 나라에 심어놓은 첩자들이 상당하지 않습니까?”
“흠…….”
물론 많이 있다는 말이었다.
히매인 왕국에도 정보기관은 있었으며 그 정보원들은 각각의 나라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상태였다.
물론 히매인 왕국의 정보원들이 다른 나라에 침투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에서도 히매인 왕국에 첩자를 심어놓았다는 것은 그 첩자가 누군지만 모를 뿐, 분명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출발은 본래 저의 여행 친구들과 루시 공주만 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헛! 6명으로 호위가 가능하겠습니까?”
이미 라이안에 대한 조사를 끝낸 크호른 왕이었다.
확실히 중요한 인물이라 그 주위의 정보를 미리 습득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정보는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라이안이었다.
“6명이 아니라 5명이 호위할 것입니다. 저도 아쉽지만 팔튼은 빼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팔튼은 이 나라의 귀족이라 할 일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크호른 왕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라이안을 바라보았다.
“라이안 님이 이미 그랜드마스터의 실력을 가지셨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이안 님의 친구 분들은 익스퍼드급도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드마스터인 팔튼 경이 같이 간다 해도 너무 적은데 그조차 놔두고 가신다면 어찌하려고 하십니까?”
라이안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크호른 왕에게 말했다.
“그렇지요. 전력상 제가 적에게 묶였을 경우 지금의 제 친구들이 루시 공주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팔튼이 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익스퍼드 중급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제부터 한 단계 더 성장하여 지금쯤 소드마스터 중급의 경지를 가졌을 거라 생각되어지는군요.”
“그, 그 말이 사실입니까?”
팔튼이 이미 바치스 공작을 뛰어넘었다는 말에 크게 놀란 크호른 왕이었다.
라이안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하며 강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비록 제 친구들이 지금 당장은 마나조차 느낄 수 없는 상태이나 여행 도중 소드마스터 이상의 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크호른 왕 또한 팔튼이 라이안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라이안의 말처럼 많은 수의 사람들이 성에서 나간다면 어무래도 눈길을 많이 끌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결국 라이안의 말처럼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정을 내린 크호른 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힘없이 입을 열었다.
“라이안 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떠나는 날을 변경하겠습니다. 이미 우리가 떠날 날짜도 첩자에게 알려졌을지 모릅니다.”
“그럼 그 날을 언제쯤…….”
“내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루시 공주님에게는 지금부터 방에서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라고 말해주십시오. 식사는 시녀들에게도 문 안을 절대 못 보게 하며 들여 주고요.”
“흠… 항상 공주가 방안에 있다는 것을 알리려 하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공주가 언제 떠났다는 것을 모르게 하여 적에게 혼란을 주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루시 공주님은 제가 알아서 잘 모셔갈 것이니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취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도 가서 준비를 하겠습니다. 여행에 쓰일 음식들 좀 좋은 것으로 준비해 주십시오. 하하.”
라이안이 말하며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크호른 왕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라이안 님…….”
하지만 이미 문을 닫고 나간 라이안이었다.
크호른 왕의 입에서 걱정스러운 중얼거림이 나왔다.
“잘되어야 할 텐데…….”
라이안은 친구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곧바로 병사들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병사들의 숙소에 도착한 라이안은 헤인드와 디로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근처에 있던 병사에게 물었다.
“저기…….”
“헛! 라이안 님이 아니십니까?”
병사들 중 헤인드와 유독 친하게 말을 주고받던 사람이라 라이안의 기억에도 그 사람이 있었다.
“헤인드와 디로안이 보이지 않는군요. 혹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아시는지요?”
“아이쿠, 한발 늦으셨군요. 그들은 몇몇 기사 분들이 오셔서 데려갔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라이안 님이 머무시는 방 근처로 안내된다고 하더군요.”
“아, 그렇군요. 알려줘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감사는 뭘요. 오히려 라이안 님과 대화할 수 있었던 제가 영광이지요.”
라이안은 살며시 미소 지으며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국왕전하께서 미리 조취를 취하셨나보구나.’
자신을 편하게 해주려고 하는 크호른 왕의 생각을 알 것도 같았다.
“하아, 이거 헛걸음 했잖아? 국왕전하도 이렇게 챙겨주는데 가장 도움을 주어야 할 녀석이 도움을 안 주는군.”
라이안의 말에 찔끔하던 물체가 있었으니 바로 챠둠이었다. 하지만 챠둠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쭈? 챠둠!”
“네, 말씀하십시오.”
“너 요즘 나한테 너무 무신경한 거 아니야? 뭐 바쁜 일이라도 있어?”
“주인님께서 이전에 망가뜨리신 로봇을 수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 그래? 그렇군…….”
자신이 봐도 여기저기 상당히 찌그러져 보였으니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곧 이상함을 느끼며 챠둠에게 말했다.
“야, 근데 그거 왜 처음부터 강하게 안 만든 거야? 처음부터 방어갑을 강하게 만들었다면 부서지는 일도 없었잖아?”
“그것은 인물화를 그릴 때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애초에 무기로서의 로봇이 아닌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로봇 자체를 현실화시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휴우… 그래, 그래.”
라이안은 챠둠에게 하나의 취미가 생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인간이 그러한 장난감 로봇을 손수 손으로 만들 듯…….
“그래도 앞으로 내가 헛걸음을 할 것 같은 건 지적 좀 해주지 않을래?”
“알겠습니다. 주인님의 친구 분들은 주인님이 머무시는 방 오른쪽으로 두 번째 방에 모여 계십니다.”
“모여 있다고?”
“그렇습니다. 4명이 모여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리로 가야겠군. 알겠어. 그럼 하던 거 해.”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던 라이안은 문득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근데 왜 국왕전하께서 그런 말을 안 해주셨지?”
라이안이 그것을 떠올리고 의아해하고 있었을 때, 크호른 왕 또한 자신이 그런 말을 안 했다는 것을 알고는 아차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라이안 님에게 친구들의 거처를 옮겼다는 것을 말 안 해드렸군…….”
* * *
방 안에 모인 헤인드와 디로안, 그리고 에나와 라드이라는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 포스안 제국으로 가는 일에 대하여 상의하고 있었다.
“에나는 어떻게 생각해?”
디로안이 에나의 생각을 물었고 에나는 생각하듯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흠… 뭐 저라고 따로 할 일도 없고 하니 따라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에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헤인드가 라드이라에게도 생각을 물었다.
“라드이라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라드이라는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전 수행을 위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수행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으니 동참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차피 제가 가야 할 곳이 포스안 제국이니까요.”
“하긴, 그렇군. 라드이라가 주신 라피네님의 신관이니까.”
디로안이 적절히 지적해서 이야기하자 라드이라 또한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워낙에 표정의 변화가 없는 라드이라인지라 그가 미소를 지었다는 것은 그곳에 있던 친구들 모두가 몰랐다.
그때 문이 열리며 라이안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디로안이 라이안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 라이안 이제야 오는군. 한참 기다렸다네.”
“그래? 난 너희들이 여기에 있는지 모르고 병사들 숙소까지 찾아갔지 뭐야.”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안 해주었나보군.”
“뭐, 안면이 있던 병사에게 너희가 기사들과 같이 갔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한참 찾아다녔을 거야. 그건 그렇고, 어떻게 에나와 라드이라에게 이야기는 해주었어?”
라이안의 말에 헤인드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우리야 뭐 만장일치로 동의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그거 다행인 걸?”
라이안이 그들이 앉아있는 쇼파에 같이 앉으며 여행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선 포스안 제국까지의 여행은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들만 가는 것으로 할 거야.”
그 말에 디로안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그럼, 팔튼은 같이 가지 않는다는 말인가?”
“휴… 나 역시 팔튼과 같이 가고는 싶었지. 그런데 여기 있는 동안 가끔 팔튼을 만나러 갔을 때마다 녀석은 상당히 바쁜 생활을 하고 있더라고. 갑자기 큰 직책을 부여받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팔튼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이니 같이 떠나기에는 문제가 있겠지. 그리고 다른 귀족들도 갑자기 지위가 오른 팔튼을 곱게 안 보는 상태야. 팔튼이 앞으로의 인생에 적응하려면 그를 두고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그거 안타깝군.”
라이안의 말에 에나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머! 라이안 오빠, 우리들만 간다는 말은 공주를 호위하는 기사들이 따로 붙지 않는다는 이야기 인가요?”
“응, 맞아.”
너무도 간결한 대답에 모두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흠…….”
“음…….”
디로안이 역시나 너무 위험한 것이 아니냐는 듯 입을 열었다.
“라이안, 아직도 적들이 루시 공주님을 노리고 있을 것인데 호위가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네.”
디로안의 말에 동의하는 듯 헤인드 역시 밝은 표정을 지우고 말했다.
“나 역시 디로안과 생각이 같다네. 휴… 솔직히 이야기 하지. 라이안의 실력이야 한 기사단이 몰려온다 한들 걱정될 일이 없겠지. 그리고 에나 또한 나이에 비해 상당한 마법실력을 갖추고 있으니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외의 우리 세 사람은 전투에 있어서 전혀 도움이 안 된단 말일세.”
사실을 이야기하는 헤인드 자신으로서는 너무도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디로안 역시 헤인드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라이안은 더욱 밝게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래서 너희가 더욱 강해져야지. 자. 자. 모두들 힘내라고! 우리의 행로는 몬스터의 초원이 될 거야. 거기가 몬스터가 가장 많은 곳이라며?”
라이안의 말에 헤인드가 놀라며 소리쳤다.
“이보게 라이안! 그곳은 에드코르 제국에서도 토벌하지 못한 곳이라네. 아니 토벌이 아닌 단 하루 만에 몬스터들에게 학살당했다는 것이 바른 말이겠군. 히매인 왕국이 몬스터의 초원과 붙어 있으면서도 안전했던 것은 몬스터의 초원과 히매인의 사이에 높은 절벽과 산맥들이 많아서라네. 아직도 에드코르 제국과 동맹국가인 칸보리치 동맹은 몬스터의 초원에서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막는데 막대한 병력과 예산을 소비하고 있는 실정이지. 그런 위험한 곳을 정말로 뚫고 가자는 말인가? 휴… 차라리 변장을 하고 에드코르 제국을 통해 가는 것이 더 안전하겠군…….”
모두가 동의 한다는 듯 고개를 빠르게 아래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라이안은 닥치기도 전에 겁부터 먹는 그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 녀석들… 벌써부터 이러면 수련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쯧쯧쯧.’
그랬다. 라이안이 일부러 몬스터의 초원으로 가자고 했던 것은 그들의 수련을 위한 것이었다.
“여행과 동시에 너희에게 검술을 가르쳐줄 생각이야. 강해질 수 있다면 한 번쯤 목숨을 걸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이안의 말에 이제야 어느 정도 라이안의 생각을 눈치 챘는지 수긍하는 디로안과 헤인드였다.
‘아…….’
‘수련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군.”
“강해질 수 있다면야…….”
라이안은 그제야 그들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야 좋은 얼굴이 나오는군. 그런 각오가 있다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지. 암!’
하지만 에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겁이 났던 것이다.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는 귀로 듣는 것만으로 충분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에나가 무서워하는 것이 역력한 표정을 짓자 라이안은 난처함을 느꼈다.
‘이거, 이래서야… 아! 혹시 이렇게 하면……!’
라이안이 뭔가 대안이 생각났는지 친구들에게 말하며 문밖으로 나갔다.
“잠시만 기다려봐. 금방 다시 올게.”
헤인드와 디로안은 강해질 수 있다는 것에 강한 집념을 보이며 라이안이 무슨 말을 하고 나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에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라이안이 그러한 말을 하고 나갔다는 것은 라드이라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문 밖으로 나온 라이안은 반지를 통해 챠둠을 불렀다.
“챠둠, 혹시 거기 아직도 타미르안 있어?”
“있습니다. 제가 만들어준 게임의 방에서 며칠 동안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
“타미르안에게 용무가 있으신지요?”
“응, 마법서 좀 빌려볼까 해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불러 오겠습니다.”
챠둠의 음성이 끊기고 몇 분의 시간이 지나자 곧 타미르안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 무슨 용무가 있는가? 빨리 말하게. 지금 막 이 게임의 왕으로 추정되는 노부나가라는 놈하고 싸우기 직전이란 말일세.”
“에휴, 타미르안 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며칠 동안 게임만 하고 있잖아.”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라이안에게 타미르안은 호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걱정하지 말게나. 대 골드 드래곤족의 수장이 바로 나일세. 한 달을 이렇게 지낸다 한들 내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 암!”
“그래, 뭐 자신이 그렇다고 하면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없지. 내 용무는 쓸 만한 마법서 좀 구해 달라는 거야. 해줄 수 있겠어?”
타미르안이 턱을 만지며 말했다.
“흠… 500년 전에 이름을 날렸던 제프리스의 마법서가 있었던 것 같군.”
타미르안의 말에 라이안이 어린아이같이 기뻐했다.
“그래? 그럼 그거 몇 서클까지 서술되어 있는 거야?”
“내가 알기로는 9서클까지 서술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네. 하지만 자네에게는 이것이 필요 없지 않는가?”
라이안은 이미 드래곤만이 쓸 수 있다는 용언마법으로 10서클의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하, 내가 쓸 게 아니야. 여하튼 그거 좀 나한테 보내주라. 응?”
“뭐 어렵진 않다네.”
라이안은 다시 친구들이 있는 방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딜 갔다 온 것인가?”
헤인드가 갑자기 밖으로 나간 이유를 라이안에게 물었다.
그러자 라이안이 미소를 지으며 에나에게 다가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건네주었다.
“에나에게도 선물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선물이요?”
에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라이안이 주는 한 권의 낡은 책을 받아 펼쳐보았다.
[이 책을 보는 자, 나와의 인연이 있음이로다.
나의 이름은 제프리스다.
한 때 파이얀 제국의 대 마법사로 모든 미칼투 대륙의 사람들이 나를 화염의 마법사라 불렀다…….]
에나는 이러한 책의 첫 머리를 읽더니 팔을 부르르 떨며 주저앉고 말았다.
“에나야 괜찮아?”
라이안이 살며시 잡아주기는 했지만 이미 에나는 힘없이 땅에 엉덩이를 붙이고는 계속해서 몸을 부르르 떨뿐이었다.
헤인드와 디로안도 에나의 이상한 반응에 걱정을 하며 에나의 주위로 몰려들었고 라드이라가 심각성을 느끼며 에나에게 신성력을 쏟아 부었다.
“에나야!”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라피네신 님을 섬기는 어린양이 라피네신 님의 힘을 빌려 상처 입은 생명을 치유하나이다.”
쏴아아아.
라드이라의 손에서 하나의 밝은 빛이 퍼져나가며 에나의 몸을 감쌌다.
그제야 에나의 몸이 차차 안정을 찾으며 떨림을 멈추어갔다.
“하아…하아…하아…하아…….”
하지만 아직도 거친 숨을 내쉬는 에나로 인해 그 주위사람들의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좀 진정이 되니? 도대체 갑자기 왜 그러는 거니?”
라이안이 조금은 안정을 찾은 에나의 등을 토닥이며 조심스레 물었다. 에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훌쩍거렸다.
“흐윽…흐윽… 그럼 오빠 같으면 이런 엄청난 물건을 받고도 멀쩡하겠어요? 이건 500년 전 미칼투 대륙에서 최고 강성했던 파이얀 제국의 대마법사인 제프리스의 마도서란 말이에요. 500년 동안 모든 마법사가 갖기를 원했던 보물 중에 보물인데 이런 물건을 갑자기 선물이랍시고 덥석 주면 심장이 멈춰버리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흐윽…….”
에나의 그런 말에 헤인드가 뒷머리를 긁으며 물었다.
“그 책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헤인드의 그런 말에 에나가 또 다시 흥분을 하며 소리쳤다.
“가치로 따진다면 지금 우리가 있는 히매인 왕국의 영토의 삼분의 이를 살 수 있는 가치라고요! 돈으로 따지면 금화 천 억 개와도 맞먹는다면 이해가 가겠어요?!”
“헉! 처…처…천 억!”
헤인드는 에나의 말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아직도 자신의 머리로는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 계산이 안 되는지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런 헤인드와는 달리 머리가 좋은 디로안은 식은땀을 흘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흠… 정말 엄청난 물건이군. 나도 제프리스의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 제프리스라면 우리가 어렸을 때 신화에나 나오는 영웅으로 어른들에게 이야깃거리로 듣고는 하는 것이거든. 그는 당시 적이었던 나이타지 제국의 기사들을 단신으로 천 명을 넘게 무찔렀다고 하더군. 기사로 따진다면 그랜드마스터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고 마법사로서는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궁극의 경지라고들 했지.”
“하하… 그래…….”
라이안은 어색하게 웃으며 이 상황을 어찌 설명해야할지 곤란해 하였다. 그런 라이안에게 역시나 디로안이 예리하게 물어왔다.
“라이안, 자네는 도대체 이런 굉장한 물건을 어떻게 구한 것인가?”
“흠… 역시 그냥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좋겠지?”
그런 라이안의 말에 모두가 라이안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라드이라까지 궁금증이 생기는지 라이안을 정면으로 쳐다볼 정도였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디로안과 헤인드만 수련을 시켜주면 다른 사람들은 헛된 여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라드이라에게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미안하지만 에나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너희도 내가 골드 드래곤과 친구라는 것은 알고 있지?”
“그거야 뭐…….”
“들리는 말로는…….”
그들도 라이안이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선뜻 물어보기가 뭐한 것이라 그것에 대해서는 먼저 물어보는 일이 없었다. 그 이유는 그러한 배경을 생각한다면 라이안을 자신들의 친구로 생각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쓸 만한 마법서 좀 달라고 했더니 그걸 주더라고…….”
“크으, 쓸 만한 것이 이런 것이라니… 그렇게 내던져주는 물건으로 인해 이 인간세계가 엄청난 혼란에 휩싸이는 것을 모르나보군.”
디로안이 쓴웃음을 지었지만 타미르안은 그러한 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이미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의 보스를 어떻게 잡는지를 몰라 몇 번을 죽었기 때문이었다.
이기고자 하는 집착이 강해져 그러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에나는 가슴에 책을 꼭 끌어안으며 라이안에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던졌다.
“정말 이거 제가 가져도 되는 물건인가요? 너무 굉장한 물건이라…….”
말은 부담스럽다는 뜻으로 했지만 행동은 더욱 강하게 책을 끌어안았고 눈은 간절히 원하는 눈빛이었다.
그러한 에나의 모습에 모두의 머리에 아주 커다란 땀방울이 맺혔다.
‘전혀 부담스러워 하고 있지 않군.’
‘나 욕심쟁이에요, 라고 대놓고 말을 하지…….’
‘에나 님에게도 이러한 모습이 있었군.’
헤인드와 디로안 그리고 라드이라의 속마음이었다.
그들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대 라이안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에나야 내가 그것을 선물이라고 말하며 너에게 준 이상, 그 책의 권한은 이미 너에게 있는 거야. 만약 그 책을 준 드래곤이 나중에라도 그 책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면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것을 막을 것이니 절대 걱정하지 말고 잘 사용하길 바란다.”
“라이안 오빠…….”
에나가 라이안을 황홀한 듯 쳐다보자 디로안과 헤인드가 살며시 귓속말로 중얼거렸다.
“저 녀석 저러다가 라이안에게 달려들겠군.”
“음… 어쩌면 노리고 있는지도…….”
그러한 목소리를 듣지 못할 라이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소리를 에나도 들었는지 순식간에 뜨거워졌던 에나와 라이안의 사이는 차가운 바람이 지나갔다.
방 안에서 웬 바람…….
하지만 정말 그러한 바람이 지나갔고 에나의 불타는 눈빛은 헤인드와 디로안을 향하게 되었다. 그들을 태워버리겠다는 듯.
“뭐라고요?! 지금 말 무슨 뜻이죠? 다시 말해봐요!”
그렇게 소리치며 에나는 한 손에 살며시 불덩이가 일렁거리며 파이어 볼까지 만들어 냈고, 그제야 위기감을 느낀 헤인드와 디로안이었다.
“헉! 이…이봐!”
“야! 너…너무 위험하잖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들의 그런 말에 에나는 멈추지 않고 파이어 볼의 크기를 늘려갔고 헤인드와 디로안은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도망가자!”
“튀어!”
헤인드와 디로안이 창문을 통해 몸을 던졌고 그 순간 에나가 소리치며 한 손을 휘저었다.
“어딜!”
휘익!
화르르르르.
헤인드와 디로안의 뒤로 파이어 볼이 작렬했고 곧 폭발이 일어났다.
퍼펑!
챙그랑.
다행히 겨우 몸을 피했는지 아래로 뛰어내린 헤인드와 디로안이 있는 힘껏 다른 곳으로 도주했고, 에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방의 문을 급히 열고 그들을 뒤쫓았다.
방 안에 남은 라드이라와 라이안만이 이 어이없는 상황에 어지러워하고 있었다.
“이게 뭔 일이래…….”
“흠… 한동안 조용하다 했더니 터질 게 터지는군요.”
“에? 그 말은 나와 만나기 전에는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는 거야?”
“보시는 대로죠.”
“이거… 내가 큰 실수를 한 게 아닌가 싶네… 잘못하면 희대의 말괄량이 대마도사가 탄생하는 거 아냐?”
* * *
라이안 일행이 그렇게 포스안 제국으로 떠나려는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에드코르 제국의 어전은 상당히 시끄러웠다.
그 이유는 바로 오리닌 황제의 양 옆으로 도열해 있는 4명 때문이었다.
요르민 공작은 목이 쉬는지도 모르게 오리닌 황제에게 간청을 했다.
“황제폐하, 듣도 보도 못한 저자들을 어찌 믿으시고 곁에 두신단 말씀이십니까. 게다가 공작위 아래로 무조건 저자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니요. 말도 안 되는 일이옵니다.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요르민 공작의 간청에 다른 귀족들 또한 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한 상황에 오리닌 황제의 얼굴이 붉어졌고 곧 그것이 폭발했는지 검을 뽑아들며 소리치는 그였다.
“감히 짐의 명을 거역하겠다는 말인가! 내가 너희들의 말을 듣는 것은 지금까지 만으로 하겠다. 지금 이후에 따로 토를 단다면 공작이라 한들 그 자식들까지 씨를 말려버릴 것이니 절대 이유를 묻지 말라! 이유 불문으로 이들을 공작 이상의 위치로 올려놓을 것이니 그대들은 단지 그렇게 알고 따르기만 하면 될 것이다!”
오리닌 황제가 이렇게 검까지 빼들고 소리치자 그 말에 토를 달 수 있는 귀족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 안건은 이것으로 마치고 그만 퇴실하라. 회의를 마치겠다.”
오리닌 황제의 축객령으로 모든 귀족들이 어전을 퇴실했다.
어전을 나온 귀족들은 그곳을 나와서야 서로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도대체 황제폐하께서는 어찌하려고 그러시는지…….”
“확실히 요즘 황제폐하께서 정신이 이상해지시는 것 같지 않소?”
“흠… 확실히…….”
그들이 그러한 이야기를 나눌 때 요르민 공작이 급히 화를 내며 그들을 나무랐다.
“지금 무슨 말들을 하는 것인가! 어디 감히 황제폐하의 위신을 깎는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그대들이 정령 죽고 싶은가 보구나!”
요르민 공작의 흥분된 목소리에 그러한 말을 나누던 귀족들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공작각하, 저희는 그것이 아니오라…….”
“공작각하께서 오해를 하신 듯하옵니다…….”
하지만 요르민 공작은 괘씸한 그들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됐소! 모두들 허황된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시오. 어서 돌아가기나 하시오!”
“알겠사옵니다…….”
“그럼 평안히…….”
모든 귀족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그곳에 남은 사람은 요르민 공작과 로빈스 공작뿐이었다.
로빈스 공작이 아직도 화가 난 듯한 요르민 공작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 그들을 나무라지는 마시오. 저들 또한 불안함에 저러는 것이니…….”
“휴… 로빈스 공작, 나 또한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황제폐하의 위상이 땅에 떨이질 수도 있소이다. 처음부터 그 싹을 자르지 않는다면 그 잡초 같은 싹은 끝없이 자라 제국의 땅을 어지럽힐 것인데, 그것을 어찌 보고만 있으란 말이오.”
그에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로빈스 공작이 대답했다.
“나 또한 자네의 걱정을 이해한다네. 하지만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없는 것 같으이… 저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난 계속 저들이 황제폐하의 곁에 있다면 황제폐하께서 더욱 안 좋게 변하시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더 걱정이라네.”
“흠… 나라가 어찌 돌아가려고 하는지… 이제는 대륙을 휘어잡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늘 어찌 점점 어두운 구름만 모여든단 말인가…….”
“우선은 조금 더 지켜 보세나…….”
그리고 그 시작. 어전에서는 오리닌 황제와 4명의 마족들이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조치를 취하면 그대들이 움직이기가 더 편해지겠지?”
오리닌 황제의 말에 칸드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매우 만족스럽다, 황제.”
그 사이에 팰렌이 끼어들었다.
“와! 놀랬어, 오리닌 황제. 보통은 신하들과 상의해서 일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리닌 황제는 그들을 쥐어 잡던 걸? 대단한 자질이야.”
팰렌의 말에 오리닌 황제는 얼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황제라는 직위는 그 나라 안에서는 신과도 같은 존재가 아닌가?”
정말로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오리닌 황제를 그들은 속으로 비웃었다.
‘겨우 인간 따위가 지위 같은 것이 있어봐야 벌레인 것을. 크크크.’
‘이용가치가 사라지지 않기만을 바라야 할 것이다. 후후.’
칸드가 그들의 앞으로 살며시 나오며 이제부터 해야 할 일들을 설명했다.
“우리의 임무는 발크르스 마왕님의 소환마법진을 망가뜨린 자를 없애는 것과 혼돈의 무녀를 찾는 것이다. 혼돈의 무녀를 찾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혼돈의 힘이 깃든 물건을 찾아야만 한다. 혼돈의 힘이 깃든 물건들은 그것을 가진 사람들도 모르게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 있으니까.”
칸드의 잠시 말을 끊자 바테르가 질문을 했다.
“그럼 혼돈의 힘이 깃든 물건들은 어떻게 찾지? 그것도 문제가 아닌가?”
“이미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팰렌은 신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깡충깡충 뛰었다.
“와! 그럼 일이 오크 죽이기보다 편하겠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건 왜? 어디 있는지 알았으니 그것을 가지고 혼돈의 무녀를 찾으면 되는 거잖아?”
“그 물건이 상당히 꺼려지는 곳에 있으니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오리닌 황제도 그 혼돈의 힘이 깃든 물건 중 하나가 어디 있는지 궁금하여 칸드에게 물었다.
“나도 궁금하군. 도대체 그 혼돈의 힘이 깃든 물건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발크르스 마왕님께서 그 물건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셨다. 그곳은 포스안 제국이라고 하시더군.”
“뭐라! 포스안 제국!”
오리닌 황제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팰렌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칸드에게 떼를 쓰듯 물었다.
“왜? 왜? 뭔데? 포스안 제국에 강한 놈이라도 있어?”
팰렌의 말에 칸드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곳이 주신 라피네신을 섬기는 신성국가라는 것이다.”
“신성국가!”
“빌어먹을… 중간계에는 꼭 그런 나라가 하나씩 존재한다니까… 젠장!”
칸드가 곤란해 하는 그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모두 내 이야기를 더 들어라. 확실히 우리 마족들로서는 신성력이 넘치는 곳이라면 힘을 발휘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팔라딘의 경지에 들어 있는 자가 많다면 상당히 귀찮게 될 수도 있다.”
“그냥 가서 모조리 다 죽여 버리면 되는 거 아냐?”
팰렌이 일이 어려워진다는 말에 짜증을 부리며 말했고 칸드는 평소처럼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것이 너의 말대로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팰렌. 내가 확인 한 결과 우리는 십 중 삼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그 힘만으로도 한 나라 정도는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그 힘은, 신성력이 넘치는 그곳에 갔을 경우 절반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칸드의 말을 듣고 있던 오리닌 황제도 크게 문제되는 점을 지적해 말했다.
“큰 문제로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칸드가 오리닌 황제의 말에 그 이유를 물었다.
“뭔가 걸리는 것이 있는가?”
“지금의 포스안 제국은 그 나라가 생긴 이래 가장 강성한 시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현재 그곳에는 신의 전사라고 하는 사천사장이 있다.”
“사천사장이라… 그렇다면 4명의 팔라딘이 있다는 말이 되는군.”
“그렇다.”
“좋지 않은 시기에 중간계로 와버린 것 같군.”
베이모스가 이러한 말들이 귀찮다는 듯 발로 땅을 내려쳤다.
쿵!
그러한 베이모스의 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따분하군. 뭔가 다른 방도를 찾아야겠다.”
칸드가 그의 말을 인정하며 긍정했다.
“베이모스의 말이 맞다. 이대로 쳐들어가기에는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 비록 그들이 우리 5명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여도 그곳에는 신관들과 다른 성기사들이 있으니 혼돈의 힘이 깃든 물건을 탈취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바테르가 손을 어깨 정도 올리며 질문했다.
“아, 한 가지 더…….”
“뭔가 바테르?”
“그 혼돈의 힘이 깃든 물건은 어떻게 생긴 것이지?”
“그렇군. 그것을 말하지 않았군. 그 물건은 검의 자루라고 알고 있다. 혼돈의 신인 카오스가 자신을 스스로 봉인할 때 자신이 다시 돌아올 상황에 쓰려고 자신의 무기인 검을 이곳 중간계에 3개로 나누어서 떨어뜨렸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도 그것을 손에 넣는 사람이 그토록 큰 힘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해놓은 안전장치겠지.”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좌중을 한 번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중 하나가 검의 자루이며 다른 두 개가 검의 날과 검의 자루 중앙에 끼워지는 옥석이라고 하더군. 발크르스 마왕님께서는 혼돈의 무녀에게 있는 혼돈의 옥석이야말로 혼돈의 힘이 집약된 물건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혼돈의 검날과 옥석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이상 우리는 반드시 그 혼돈의 칼자루를 손에 넣어야만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상의하도록 한다.”
팰렌은 칸드의 마지막 말에 속이 후련하다는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휴우, 난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게 제일 싫어. 지루해. 따분해. 바테르, 우리 놀러 가자. 응?”
그러나 바테르는 차갑게 팰렌을 바라보며 말했다.
“싫다.”
“아잉, 바테르~ 놀러 가자~아~.”
“싫다.”
모두가 흩어지고 어전 안에서는 팰렌과 바테르가 말싸움을 하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칸드는 어전을 나와 복도를 걸으며 창을 통해 하늘에 떠 있는 달들을 보았다.
“후후, 중간계의 볼거리는 저것밖에 없는 것 같군.”
아마도 칸드는 밤을 비추고 있는 달들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한참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칸드는 늦은 시간 희미하게 기합성이 들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약한 인간들의 수련인가? 후후후, 그래봐야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지…….”
칸드가 복도에서 밖으로 나오며 한 기사수련장의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곳에 그려져 있는 하나의 표시를 보았다.
“어두운 그림자의 검이라… 마음에 드는군.”
칸드가 문을 열며 자신의 존재감을 감춘 채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라이안에게 동료를 잃고 치욕까지 당했던 블랙섀도우 기사단이 맹훈련을 하고 있었다.
칸드는 어둠과 자신을 동화시킨 상태로 그들의 훈련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가끔씩 그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양쪽으로 흔들던 칸드는 구석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있다가 갑자기 강렬하게 검을 휘두르는 한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으음?”
근근이 움직임이 끊어지기는 했지만 그 검로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강렬하고 힘이 있었다.
칸드는 그에게 흥미가 생긴 듯 그의 움직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법이군.”
칸드가 그를 보며 이들 중 가장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무렵, 그의 검에서 하나의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 빛 무리들은 곧 하나의 또 다른 검을 만들어갔다.
“호오, 오러블레이드로군. 검을 형상화하는 것을 보니 상당히 능숙한 듯하군. 인간치고는 굉장하다고 해야 하나?”
칸드가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던 그 남자는 바로 블랙섀도우 기사단의 단장인 캐드 단장이었다.
그들은 히매인 왕국과의 전쟁이 끝이 나기도 전에 라이안에게 당한 수치심 때문에 제국으로 돌아와 버렸고 그 이후 동료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계속된 맹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칸드가 캐드의 검술을 감상하고 있을 때 캐드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추어졌다. 그 이유는 훈련을 하던 기사 중 한 사람이 검을 땅바닥에 집어던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젠장! 이렇게 죽어라고 수련하면 뭘 해!”
창그랑!
주위에서 같이 검을 부딪치고 있던 기사들이 캐드 단장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 한마디씩 했다.
“이보게, 테르.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인가? 단장님도 계신데 이게 무슨 무례란 말인가?”
“훼인의 말이 맞네. 우린 기사가 아닌가?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이런 식으로 화를 내뿜는 것은 아니라고 보네.”
그들의 말을 들은 테르는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엎드려 흐느끼기 시작했다.
“크흐흑,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하여도 복수의 길이 너무 멀단 말이야! 흐흐흐흑… 자네들도 이야기는 들었지 않은가? 타이탄이 몇 대가 달려들었는데도 그자 하나를 어쩌지 못했다는 말을. 그런 자에게 어떻게 복수를 한단 말인가? 소드마스터가 되어서? 크흐흐흐…….”
테르가 흐느낌을 견디지 못해 이제는 미친 듯 웃기 시작했다.
“타이탄 한 기라면 몇 명의 소드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단 말이지… 크흐흐흐. 정말 웃기지 않은가? 게다가 드래곤의 수호까지 받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그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누군들 말이라도 좀 해보란 말이야! 빌어먹을… 빌어먹을… 으아아! 빌어먹을!”
테르는 참기가 힘든 듯 결국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고 캐드 단장 또한 동료를 잃은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른 기사들 역시 테르와 같은 마음인지 마음속의 물컹거리는 느낌을 없앨 수 없었다.
훼인은 검을 있는 힘껏 잡으며 중얼거렸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강해질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를 죽일 수만 있다면 이깟 목숨 따위 어찌되든… 빌어먹을…….”
훼인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으나 그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한 기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모두가 허탈한 듯 가망성 없는 말에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리라.
그렇게 한참 침울함이 고조되어 있을 때 어둠 속 어느 한 부분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 정말인가?”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든 기사들이 검을 바로잡고 어둠을 향해 기수식을 취했다.
“누구냐!”
캐드 단장 또한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느끼며 기사들의 가장 선두에 서며 검을 바로잡았다.
“나와라. 이곳은 황제폐하 외에는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말은 차갑게 했으나 캐드 단장은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처음부터 우리의 상황을 다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위험할지도…….’
캐드 단장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사람은 바로 최상급 마족인 칸드였다.
“이제는 황제폐하 외에 5명이 이 황성 그 어떤 곳에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알아야 할 것 같군.”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기사들 중 하나가 칸드가 거짓을 늘여놓는다 생각하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하지만 캐드 단장이 그를 급히 말렸다.
“가만히 있어라. 쉽게 볼 인물이 아니다.”
캐드 단장의 말에 칸드는 역시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확실히 어중이떠중이들 중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라 내게 어떤 힘이 있는지 짐작이 가는가 보군.”
칸드는 고개에 힘을 주며 하늘을 향해 턱을 한 바퀴 돌리며 말을 이었다.
“황제폐하의 어명으로 결정된 사항이니 그건 누군가 한 사람이 가서 알아보면 될 일이고. 내가 지금 너희의 앞에 나타난 것은 다른 용건이 있어서란 말이지… 후후후.”
캐드 단장은 뒤로 돌아보며 한 기사에게 턱짓을 했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그 기사는 급히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캐드 단장은 다시 칸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용건이란 것이 무엇이냐?”
“후후후. 지금 너희의 실력으로는 현재 라이안이라는 인간을 죽일 수 없다. 그는 이미 그랜드마스터라는 경지에 오른 듯하더군.”
칸드의 말에 그곳에 있던 기사들의 표정이 살며시 찌푸려졌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재차 캐드 단장이 물었다.
“내가 너희를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단 말이지. 그것도 아주 단시간에.”
“너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단 말인가?”
솔직히 캐드단장으로서는, 아니 그곳에 있는 모두에게는 그 말이 헛소리일지라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후후후.”
캐드 단장의 물음에 단지 웃음만을 짓는 칸드였다.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너희에게는 경각심만 줄뿐이 아닌가? 확인하러 간 인간이 지금 돌아오고 있으니 기다렸다가 이야기하는 것이 더 빠를 것 같군.”
캐드 단장은 칸드의 말에 귀에 마나를 집중했으나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저자에게는 그의 발자국소리가 들린단 말인가?’
캐드 단장으로서는 지금 눈앞에 있는 칸드의 기량이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단 하나만은 그도 암암리에 느끼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가 덤빈다 하여도 저자의 상대가 못된다.’
물론 상대해봐야 알 수 있는 문제였지만 그는 소드마스터였다. 상대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전혀 틈을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캐드 단장이 이것저것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기사연무장의 문이 열리며 확인을 위해 갔던 기사가 돌아와 캐드 단장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돌아온 기사의 말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는지 캐드 단장의 표정은 수시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가 알아온 정보를 다 들은 캐드 단장은 칸드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의 말에 거짓된 정보는 없는 듯하군. 그래, 당신 이외에 4명이 더 있다고?”
“그렇다.”
“그렇다면 그들 또한 당신과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나?”
“후훗,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그중에서는 내가 가장 강하다. 하지만 나 역시 망신창이가 되겠지.”
“그 말의 뜻은 개개인의 실력 차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군.”
“그렇다.”
캐드 단장은 검을 바로 잡으며 칸드를 노려봤다.
“당신, 마족이군.”
“호오?”
칸드는 의외라는 듯 웃으면서도 상당히 놀란 듯한 행동을 보였다.
“용케도 알았군. 대단해. 칭찬해주지.”
캐드 단장으로서는 그러한 말이 조롱으로도 들릴 수 있었으나 그의 행동에서는 전혀 흥분의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너희가 황제폐하를 조종하는 것이냐?”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나와 싸우기라도 할 건가?”
“만약 너희가 황제폐하를 인질로 삼고 있다면 비록 상대가 안 될지라도 목숨을 걸 것이다.”
캐드 단장이 이러한 말을 하며 검을 바로잡고 언제라도 공격할 듯 얼굴 옆으로 검을 들어 칸드를 향해 겨누었다.
“하하하하하.”
캐드 단장의 말에 칸드는 연무장 전체가 울리게 웃었다. 그런 칸드의 행동에 캐드 단장의 오른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한참을 웃던 칸드가 서서히 웃음을 멈추며 손을 흔들더니만 말했다.
“아아, 이거 미안하군. 내가 너무 웃어버렸나? 우선 오해는 하지 마라. 우리를 부른 건 오히려 황제니까. 그리고 오히려 명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 쪽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면 좋겠군.”
“너희를 소환한 것이 황제폐하라는 말이냐?”
“그렇다.”
“흠…….”
지금의 이러한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캐드 단장이었다. 그리고 칸드의 말에 캐드 단장의 뒤에 있던 기사들의 동요도 만만치 않았다.
“황제폐하께서 마족을 소환하시다니…….”
“그러게… 이유가 무엇일까…….”
“마족이 중간계에 소횐되어 오려면 상당한 제물이 필요한 거 아니었어? 그리고 오랫동안 있을 수도 없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 맞아. 나 역시 소환에는 시간제약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갖갖이 의문점을 말하는 기사들의 목소리는 캐드 단장의 손이 올라가자 그쳤다.
“우린 황제폐하를 지키는 기사다. 황제폐하가 그 어떤 일을 행하시더라도 그것을 따르는 것이 기사된 도리이다.”
캐드 단장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칸드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캐드 단장이 칸드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대가는 무엇이냐?”
“후후후,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
“얼마나 강해지느냐에 따라…….”
“아마도 지금의 열 배는 넘으리라 본다.”
“여…열 배!”
“그 정도라면!”
캐드 단장도 열 배라는 말에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지만 밖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기사들의 상황은 달랐고, 강한 갈망이 그들의 눈 속에서 이글거렸다.
“다시 묻지. 대가는?”
캐드 단장이 가장 중요한 계약의 대가를 물었고 칸드가 곧바로 말했다.
“이후 너희들의 영혼은 천 년 간 내게 귀속된다. 이것이 너희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계약의 대가다.”
“천 년…….”
“그렇다. 계약하겠는가?”
“영혼을 갖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군.”
“후후, 난 그렇게 매정한 마족이 아니거든.”
“좋다. 나만 계약하겠다.”
캐드 단장의 말에 뒤에 있던 기사들이 캐드 단장의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단장님!”
“말도 안 됩니다!”
“저희도 계약할 겁니다.”
“형제들은 잃은 것은 단장님뿐만이 아닙니다. 어찌 혼자 그 모든 짐을 다 지고 가려 하십니까!”
캐드 단장은 극도로 흥분하며 자신에게 따져드는 그들로 인해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고 기사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열 배 정도나 강해진다면 나 혼자라도 충분히 그를 제거할 수 있다. 그러니 굳이 너희들까지 마족에게 영혼을 팔지는 않아도 된다.”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말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이 달리 고민을 해보기도 전에 칸드의 음성이 그들 모두의 귓속에 파고들었다.
“난 영혼을 가진다고 한 적이 없으니 영혼을 판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군. 난 단지 천 년만 영혼을 귀속한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놓아 줄 것이니 천계로 흘러들겠지.”
캐드 단장은 그러한 말을 하는 칸드에게 인상을 썼다.
“쓸데없는 말로 이들에게 혼동을 주지 마라!”
캐드 단장이 칸드에게 그렇게 소리쳤으나 칸드는 자신은 실수 한 것이 없다는 듯 말했다.
“하하하! 누가 뭐라고 했다고 그러는가? 난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하지만 역시나 다른 기사들에게는 칸드의 말이 뇌리에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천 년쯤이야…….’
‘형제들의 고통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그렇게 떠나 보내고 그들의 가족이 얼마나 피 눈물을 흘렸던가!’
이미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 자와 계약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사들 중 수련 도중에 극도로 화를 내었던 테르가 캐드 단장 앞에 서며 입을 열었다.
“전 힘을 갖고 싶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에게 형제들에 대한 대가를 받아낼 것입니다. 단장님께서 허락하지 않는다 하여도 제 결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장님께서 우리를 이끌지 않는다면 우린 개별적으로 움직여서라도 그를 죽일 것입니다. 하지만 전 믿습니다. 단장님께서 저희를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단장님과 함께라면 그깟 천 년쯤 하루보다 짧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죽을 때까지 형제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마지막에는 약간의 울먹이기까지 하며 소리치자 다른 기사들은 숙연함에 고개를 숙였고, 캐드 단장은 하늘을 보며 이미 죽어 없어진 다른 단원들의 얼굴을 상상했다.
“기사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다. 눈물을 거두어라.”
마음을 정한 캐드 단장이 칸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앞에 서며 말했다.
“좋다. 우리 블랙섀도우 기사단 전체는 너와의 계약을 승낙한다.”
그의 강한 어조에 캐드 단장의 뒤에 있던 기사들은 희망의 빛이라도 얻은 듯 환호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블랙섀도우 기사단 만세!”
“블랙섀도우 기사단 만세!”
“형제들의 복수를 하자!”
“이야아아아아!”
기사들이 환호하고 있을 때 캐드 단장이 칸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영혼의 귀속은 언제부터인가?”
“후후후, 시간은 여유롭게 주지. 너희들이 생을 마감한 그 순간으로…….”
칸드가 말하는 ‘그 순간으로’라는 말은 캐드 단장의 귀로 메아리와도 같이 울려 퍼졌다.
기사들의 환호에 묻힌 채…….
<4권에 계속>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