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라이안 사랑을 느끼다
어느 화려한 방 안.
짹! 째잭! 짹!
작은 새들이 추운 겨울에 먹이를 찾느라 일찍부터 움직이는지 시끄럽게 고생스러운 소리를 냈다.
“으음…….”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이 침대로 비춰지자 이내 얼굴을 찡그리고 눈을 부비며 일어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라이안이었다.
“아이고, 머리야…….”
라이안은 전 날 과음을 한 덕분에 머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손을 이마에 댄 채 머리를 흔들던 라이안이 전날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어제 내가 어떻게 이 방에 들어온 거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자신이 어떻게 방에 되돌아 올 수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기로 주독을 몰아내는 건데… 그만 헤인드의 꾀에 넘어가서는…….”
지난 밤 라이안은 헤인드의 술 대결을 받아들여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술을 마셨다.
‘편법은 사용하기 없기다! 순수 자신의 육체로만 견디는 것이 규칙이야. 알았지? 라이안!’
헤인드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라이안을 보아왔던 헤인드로서는 라이안의 능력을 측정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혹 라이안에게 술을 잘 마시는 어떠한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했던 말이었다.
확실히 내기로 주독을 태워 날려 보낼 수도 있었던 라이안이었으나, 그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고 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지금의 상황이었다.
“내가 진 건가? 흠… 졌다고 생각하니 이거 은근히 기분 나쁜데? 나중에 다시 대결해 보자고 해야겠군.”
헤인드와의 재대결을 굳게 다짐하고 있던 라이안의 귀로 두 명의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들이군. 이제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으로 보아 몸 상태가 급격히 좋아져가는 것이 느껴지는군. 다행이야.”
라이안은 눈이 보이지 않다가 이제야 서서히 보이는 것과 같은 상쾌함을 느꼈다.
“그래도 감각수련은 다시 해봐야겠어. 이렇게 무뎌져 있어서야…….”
육감에 대한 수련을 생각하던 라이안의 귀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라이안의 시중을 들던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안 님, 일어나셨는지요?”
“응, 일어났어. 들어와.”
또깍.
끼이이익.
곧 문이 열리고 라이안의 시비들이 무엇인가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으음?”
시비들이 들고 있던 것이 궁금했던 라이안이 의문을 표현하자 시비들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라이안 님이 씻으실 물입니다.”
“아, 그렇구나. 이 시대에는 물을 끌어올리는 시설이 없어서 힘들겠네.”
“물을 끌어올리다니요?”
“아무것도 아니야. 아마 너희는 얘기해도 모를 거야. 그리고 수고해 주어서 고맙긴 한데 말이야… 다음부터는 아침에 씻을 물 같은 걸 가져 오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그러면 몸이 더러워지지 않습니까? 그리고 곧 욕조에도 물을 채워 넣을 것이니 우선 손과 발부터 씻으시지요. 저희가 씻겨드리겠습니다.”
그녀들이 라이안에게 다가서자 라이안은 급히 일어나 손사래를 쳤다.
“아아아! 그럴 필요 없다니까?”
“하지만, 라이안 님이 지저분한 얼굴로 밖으로 나가시면 저희가 혼납니다.”
“어휴. 그럴 필요가 없는 이유를 가르쳐 줄게, 기다려봐. 운디네 소환!”
라이안의 말과 함께 곧 귀여운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는 운디네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녀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라이안 님, 지금 무엇인가를 소환하신 것인가요?”
“어? 너희들 눈에는 이것이 안 보이는 것인가?”
“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아주 약간의 마나만 다룰 수 있다면 정령을 보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전혀 마나가 없는 그녀들로서는 운디네를 볼 수 없었다.
“저도 아무것도…….”
“흠… 그럼 잠시만 이쪽으로 와볼래?”
라이안이 와보라는 말에 곧 그녀들이 다가왔고 라이안 두 손을 들어 그녀들의 눈을 가렸다.
“잠시만 눈을 감아봐. 그냥 편히 있으면 돼.”
라이안은 마나를 손에서 그녀들의 눈으로 흘려보냈고 곧 그녀들은 눈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
“아…….”
“이정도면 됐겠지?”
라이안이 눈에서 손을 때자 곧 그녀들이 눈을 떴다.
“눈이 정말 시원해요. 앗!”
“정말로 그러… 어머!”
“이제 보이지?”
라이안이 그녀들의 눈으로 흐르는 기의 길을 열어주어 그녀들 또한 정령을 볼 수가 있게 되었던 것이다.
“어머, 너무 귀여워요. 정령은 처음 봐요.”
“아… 한 번 만져 봐도…….”
한 시비가 손으로 운디네를 만지려고 하자 운디네가 급히 라이안의 뒤로 숨어버렸다.
“후훗, 정령은 자연에 친숙한 사람이나 자신을 소환한 사람이 아니면 그 사람을 멀리하거든. 심지어는 그 외의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으니 보이더라도 쉽게 만지거나 하면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아, 그렇군요.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뭐… 죄송할 것은 없어. 모르고 한 건데 뭘. 헤헤.”
라이안이 웃자 그녀들도 덩달아 같이 웃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귀족들조차 어려워하는 라이안이 너무도 편하게 느껴지는 그녀들이었다.
라이안은 곧 운디네에게 돌아서며 부탁을 했다.
“운디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몸이 찌뿌듯하네. 내 몸을 깨끗이 씻어주지 않을래?”
라이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운디네가 라이안의 몸을 빙빙 돌기 시작하더니 몸 전체를 물로 감쌌다. 그리고 잠시 후 몸을 감싼 물들이 사라지며 깨끗해진 라이안의 모습이 나타났다.
약간의 회복력도 가지고 있는 물의 정령이라서 그런지 전날의 숙취도 말끔히 사라진 것 같아 기분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와아! 정말 신기해요!”
“대단해요!”
그녀들은 운디네의 화려한 움직임에 감탄했다. 그리고 금방 깨끗해진 라이안의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해 보였다.
“이제 알았지? 내가 왜 물 같은 것이 필요 없는지? 고마워, 운디네. 이제 돌아가도 좋아.”
약간의 아쉬운 표정을 짓던 운디네가 라이안의 주위를 빙빙 돌다가 서서히 사라져 갔다.
한참을 정령에 정신이 홀려있던 시녀중 하나가 순간 깜빡 했다는 듯 말했다.
“아차! 대시녀장님께서 라이안 님에게 전해드리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응? 무슨 말?”
“국왕전하께서 라이안 님에게 아침식사를 초대하셨습니다. 어서 서둘러 옷을 갈아입으시지요.”
하지만 곧 귀찮다는 듯 침대에 걸터앉는 라이안이었다.
“에휴, 그 아저씨하고 단 둘이 무슨 재미로 밥을 먹는다고…….”
보통 다른 사람이 이러한 말을 들었다면 목이 달아났을 상황이었지만 그 말을 한 상대가 라이안이었으니 그 말을 들은 시녀들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왕비전하와 루시 공주님도 함께 하실 것인데요?”
시녀의 말에 라이안의 귀가 살짝 움직였다.
“어흠, 그럼 슬슬 준비해 볼까?”
“후훗.”
“풋.”
역시라고 생각하는 라이안의 시녀들이었다.
루시 공주라면 히매인 왕국에서 제일 미녀였으니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옷을 갈아입고 시녀들을 따라나선 라이안은 그녀들의 안내를 받고 어떤 방으로 추정되는 문 앞에 도착했다.
‘여기가 식당인가?’
똑똑.
“라이안 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어서 드시라고 말씀드리게나.”
라이안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크호른 왕임을 알았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선 라이안은 세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역시나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루시 공주가 있는 곳이었다.
식당은 상당한 크기였다. 그리고 식탁 또한 무척이나 길었으며 그곳에 올라와 있는 음식들도 가짓수를 세기가 힘들 정도로 많았다.
왕의 양쪽으로 왕비와 루시 공주가 있었으며 왕의 반대편 끝에 의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앉을 자리임을 알고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맛있는 것들이 많군요.”
“허허허.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라이안이 자리에 앉으려고 하자 크호른 왕과 나머지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크와 칼의 위치가 정갈하게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올 때까지 기다린 듯 보였다.
‘아, 하나의 예의인가 보구나.’
“앉으시지요.”
“아, 네… 알겠습니다.”
크호른 왕의 말에 라이안이 자리에 앉았고 곧 세 사람이 동시에 같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곧 식사를 시작했다.
라이안이 여러 개의 포크와 칼을 사용 방법에 따라 제대로 사용하자 크호른 왕이 궁금하여 물었다.
“라이안 님께서는 식기의 사용법을 잘 아시는 듯 보입니다.”
“아, 이곳에서는 처음 써보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하지만 제가 전에 살던 곳에서도 이러한 문화를 갖춘 민족이 있었지요. 그곳에서도 식기에 대한 사용법이 있었는데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라이안은 식사를 하던 중 루시 공주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계속해서 크호른 왕이 말을 걸어와 그것이 가능치 않았다.
“라이안 님은 이곳에서 어떠한 일을 하고 싶으신지요?”
크호른 왕의 질문에 라이안은 곰곰이 생각하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것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친구들이 이곳에 있으니 친구들과 같이 있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계속 우리 히매인 왕국에 남아 주실 수 있으십니까?”
“오래는 못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유가 있으신지요?”
크호른 왕이 이유를 묻자 라이안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이곳에 오게 된 계기가 바로 따분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모험이었고요. 사실 시작이 무척 위험하긴 했지만 이렇게 무사히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 이곳 세상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대륙을 여행하고 싶으신 것이군요.”
“맞습니다.”
크호른 왕은 라이안이 계속해서 히매인에 남아주길 원했지만 그것이 어려울 것임을 느꼈다. 그러고는 루시 공주를 바라보는 크호른 왕이었다.
‘루시로 저분을 잡을 수 있다면…….’
크호른 왕이 다시 라이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부탁을 한 가지 드리고 싶습니다.”
“부탁이라니요?”
라이안은 괜히 이곳저곳 끼어드는 것을 가장 싫어했지만 루시 공주 앞에서 그것을 나타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잠자코 크호른 왕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여러 해 전, 공주가 많이 아팠던 일이 있습니다.”
루시 공주의 이야기가 나오자 왠지 관심이 가는 라이안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크호른 왕 또한 그것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신관을 불러 치료를 부탁한 일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 신관은 루시 공주를 고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루시 공주에게도 신성력이 깃들어 있다는 이유였지요. 신성력이란 서로 다른 신의 힘을 밀어내기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 하다고 하였습니다.”
“흠… 그런 일이 있었군요…….”
라이안 또한 자신에게 있었던 일과 비슷한 상황임을 알고는 그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며칠 뒤에 루시 공주의 건강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루시 공주에게 깃든 신성력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자 한다면 루시 공주가 직접 주신의 성지로 가야하기 때문이지요.”
“주신의 성지요?”
“그렇습니다. 주신의 성지는 주신이신 라피네신 님을 모시는 신성국가 포스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에드코르 제국의 위협을 받고 있던 히매인 왕국인지라 루시 공주를 쉽사리 그곳에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루시 공주가 에드코르 제국의 습격을 받을 때 그것을 도왔던 것이 라이안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은 이해가 갔기에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그래서 라이안 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바로 루시 공주에게 깃든 신성력을 알아보는 것이지요.”
“루시 공주를 포스안까지 호위해 달라는 것이군요?”
크호른 왕이 딱 잘라 말하는 라이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루시 공주가 또다시 건강이 상했을 때 어떠한 신성력이 깃든지 알아야 그 신성력을 부여받아 몸을 치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크호른 왕에게는 또 다른 속셈이 있었으니 그것은 포스안까지 가는 동안 루시 공주와 라이안의 관계가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전날 연회장에서 라이안이 히매인 왕국을 지켜준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라이안이 여행을 다닐 때 이곳에 오려면 상당히 시간이 걸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못을 박고 싶은 심정이 있었던 것이다.
드래곤 나이츠인 라이안이 히매인 왕국을 수호한다면 에드코르 제국도 쉽사리 히매인 왕국을 건드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루시 공주를 언제 포스안으로 보내실 생각이시죠?”
“부탁을 들어 주시는 것입니까?”
크호른 왕이 라이안의 말에 기쁨을 표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그렇다고 보셔도 됩니다. 어차피 저야 여기저기 보고 싶은 것도 있고, 그곳을 포스안으로 정해도 되는 것이니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라이안 님.”
“대신…….”
크호른 왕은 뭔가 전제조건이 따른다는 첫마디 말에 잠시 긴장했다.
“떠날 시간은 제가 정하겠습니다. 괜찮으신지요?”
“그것이야 라이안 님 마음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언제쯤으로 시기를 잡으실 것인지요?”
날짜가 아닌 시기라는 말은 몇 달을 뜻했다. 그 정도는 있다가 떠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 시기는 크호른 왕이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이나 빨랐다.
“앞으로 5일 후에 출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네?!”
라이안의 말에 앞에 있던 세 사람이 동시에 놀랐다.
“아아, 배부르다. 아침 잘 먹었습니다. 그럼 전 이만 친구들에게나 놀러가야 할 것 같네요. 그럼 이만… 아! 루시 공주도 같이 갈래요?”
라이안의 말에 루시 공주가 놀라며 라이안을 바라보았고 곧 다시 크호른 왕을 쳐다보았다. 크호른 왕은 서둘러 루시 공주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서 나와요. 밥 먹고 계속 앉아 있으면 살찐단 말이에요. 헤헤.”
라이안의 말에 잠시 얼굴이 붉어진 루시 공주가 천천히 라이안을 따랐다.
그들이 나가자 크호른 왕이 살며시 미소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떻소, 왕비?”
“무엇이 말인가요?”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니요? 허허허.”
“그럼 당신… 설마 일부러……?”
왕비의 말에 아무런 말없이 라이안과 루시 공주가 나간 문만을 바라보는 크호른 왕이었다.
식당을 나선 라이안과 루시 공주는 나란히 정원을 걸었다.
그러던 중 곧 루시 공주가 걸음을 멈추었고, 조금 앞서 걷고 있는 라이안의 등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
“전 아무리 과식해도 살 안 쪄요.”
“으음?”
루시 공주의 말에 라이안이 루시 공주를 뒤돌아보았고 곧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하하하, 지금 그것 때문에 화나서 말도 안 하고 그냥 걷기만 한 거였어요?”
루시공주는 라이안의 말에 점점 입술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입술을 삐죽이는 그 모습이 왜 자꾸만 사랑스럽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는 라이안이었다.
“알았어요. 취소할게요, 그 말.”
“치…….”
하지만 여전히 토라져 있는 루시 공주였다.
“그러지 말고 갑시다. 제가 친구들을 소개시켜 줄게요. 아주 재미있는 친구들이거든요.”
라이안이 말을 하며 루시 공주의 손을 잡았고 곧 성벽으로 날아올랐다.
“앗!”
“무서워하지 말아요. 일종의 마법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것 또한 마나를 이용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루시 공주가 놀란 것이 다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라이안은 알 수 없었다.
‘그가 내 손을 잡았어…….’
검을 잡는 대부분의 기사들은 손이 거칠다고 생각해왔던 루시 공주였다.
하지만 루시 공주의 손에 느껴지는 라이안의 손길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그리고 라이안과 같이 하늘을 날며 맞는 바람은 너무도 시원했다.
그 시각, 병사들이 머무는 숙소에서 헤인드와 디로안이 머리를 흔들며 비틀거리듯 걸어 나오고 있었다.
“으… 죽을 것 같아…….”
“헤인드, 자네 어제는 정말로 무리를 했다네. 설마 라이안이 그토록 술을 잘 마실 줄 누가 알았겠는가?”
헤인드가 다시 한 번 머리를 흔들었다.
“아이고, 머리와 뇌가 따로 움직이는구먼. 그래, 어제 승부는 어떻게 된 것이지?”
헤인드의 물음에 디로안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먼저 뻗어도 한참을 먼저 뻗었지. 그리고 난 왜 이렇게 떡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으음? 그러고 보니 자네는 어제 술을 많이 안 마셨던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힘들어 하는 것인가?”
“다 이유가 있다네… 자네와의 술 대결에서 이긴 라이안이 취한 나머지 나에게 무리한 대결을 권해 오더군.”
“무리한 대결?”
“그렇다네, 자신과의 술 대결에서 이긴다면 빨리 달리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디로안의 말에 헤인드가 놀라며 디로안의 어깨를 잡았다.
“그래서! 승부는 어떻게 되었는가?”
“다 말해줄 터이니 이건 놓게나. 사람 참…….”
“어서 말해 보게.”
“라이안이 이미 한참을 취해 있었던지라 난 분명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네. 그리고 라이안이라면 아무리 술에 취한 상태로 말을 했어도 자신이 말 한 것은 지키는 사람이 아닌가? 정말 자신했었는데… 결국 내가 마지막으로 쓰러지기 직전의 기억은 라이안이 비틀거리며 끝까지 서 있는 모습이었다네. 그 뒤로는 기억이 안 나는군.”
“진 것이군. 후… 하여간 정말 괴물 같다니까, 그 녀석은?”
디로안이 헤인드의 말에 긍정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멀리서 두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여어, 일어나 있었네?”
“헛!”
“루시 공주님?!”
디로안과 헤인드가 급히 한쪽 무릎을 굽히며 부복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라이안이 갑자기 그들의 행동에 놀라며 말했다.
“어? 이봐. 너희들 왜 그래?”
그때 루시 공주가 라이안보다 먼저 한 발짝 앞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두 분 다 일어 나셔도 됩니다. 저는 오늘 공주가 아닌 라이안 님의 친구로서 라이안 님의 친구 분들을 보기 위해 온 것이니까요.”
“하지만…….”
평민인 그들로서는 공주라는 신분이 바라볼 수도 없는 높은 위치였으니 그러한 행동이 당연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히매인 왕국 병사의 신분으로 있지 않은가.
“괜찮다고 하잖아. 그만 일어나.”
라이안도 지금의 상황이 어색한지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어색한 시간이 지나가고 라이안은 며칠 뒤 루시 공주를 호위하고 포스안 제국으로 떠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헤인드와 디로안에게 해주었다.
“그것이 정말인가?”
“흠… 아직은 에드코르 제국의 위험이 모두 걷힌 것은 아닌데…….”
디로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루시 공주 또한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라이안이 헤인드와 디로안에게 온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래서 말인데… 너희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어보려고 왔어.”
“흠…….”
“음…….”
“이제 전쟁도 끝났겠다, 에드코르 제국이 히매인 왕국을 다시 치는 일은 없을 것 같고… 팔튼도 이제는 위험할 일이 없잖아?”
라이안의 말에서 뭔가를 느낀 디로안이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우리에게 포스안에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인가?”
“역시 디로안은 눈치가 빠르네? 헤헤.”
“아, 그런 것이었나?”
그제야 그 말을 꺼낸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는 것을 안 헤인드였다.
라이안이 그들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전에 너희들에게 말했던 게 있잖아. 다음에 만날 때에는 너희를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전쟁 때문에 바빠서 그럴 수 없었지만 포스안까지의 여행을 하면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이 세상에서 보지도 못했던 검술을 너희에게 줄게. 어때?”
헤인드와 디로안이 라이안의 말을 들으며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라이안, 자네…….”
“라이안…….”
“에이, 징그럽게 왜 그렇게 불러.”
루시 공주도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그들만의 따스한 정을 느꼈지만 라이안이 하는 말에 조금은 놀랐다.
아무리 하찮은 기사가문이라도 자신의 검술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가르쳐주지 않은 법이었다. 그런데 마스터급의 검사가 자신의 검술을 가르쳐준다고 했으니 그것은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이분… 정말 다정하신 분이구나…….’
라이안이 자신의 말에 감동한 헤인드와 디로안을 보며 뒤로 걸었다.
“그럼 나는 같이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다? 그러니까 5일 뒤까지 준비하고들 있어. 아! 그리고 에나하고 라드이라에게도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봐주고, 알았지? 우린 이만 가볼게!”
말을 마치자마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며 헤인드와 디로안이 동시에 하늘을 보았다.
“우린 진정 희망의 날개를 잡은 것이 아닌가 싶군…….”
“그렇군… 희망의 날개라… 희망의 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