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돈의 라이안-16화 (15/57)

제16장 대(大) 승!

에드코르 제국의 병사들은 라이안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땅 아래로 떨어지며 상당수가 다치거나 죽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함정에 뿌려놓은 기름에 불이 붙으며 군사의 절반이 타 죽고 말았다.

하이븐 후작은 자신이 아끼던 부하와 병사들이 불타 죽어 가는 것을 보며 더욱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군대를 살펴 본 하이븐 후작은 그래도 아직 히매인 왕국에 비해 더 많은 병사들과 기사들이 남아 있음을 알고 희망을 가졌다. 게다가 아직 타이탄의 손실도 없었으니 이대로 몰아붙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병사들 또한 하이븐 후작의 연설로 인해 독기를 품었고, 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설마 또 다른 기상천외한 함정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노크리 성으로 진격하며 성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하이븐 후작이었으나 말릴 새도 없이 이미 한 기의 타이탄이 성벽을 쳐내고 있었고 성벽은 순식간에 무너지며 엄청난 양의 진흙을 토해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커다란 물체 몇 개가 성문 앞에서 진흙을 휘저으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일어난 타이탄은 역시나 하이븐 후작의 타이탄이었다.

하이븐 후작은 신경질적으로 진흙들을 휘저으며 간신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이럴 수가!”

그의 눈에는 진흙의 뒤쪽으로 병사의 수가 엄청나게 줄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파묻혔단 말인가…….”

그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성 쪽을 비틀거리며 바라보는 하이븐 후작이었다.

“어찌… 어떻게 성으로 함정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이토록 절망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던 하이븐 후작의 귀에 낯익은 음성이 들렸다.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지 그래? 더 전쟁을 해봤자 너희 병사들만 죽을 뿐이야.”

그 목소리를 들은 하이븐 후작이 고개를 들어 성벽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라이안이 서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곁에서 흐릿해지며 사라지는 병사들도 볼 수 있었다.

“환상… 마법이었나… 후…후후…….”

“지금 뒤를 봐서 잘 알잖아? 절반 이상이 진흙을 뒤집어썼어. 이 추운 날씨에 하루도 버티기 힘들 거야. 그만 돌아가.”

“후후후,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보는가?”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나머지 병사들과 너의 목숨은 사라질 거야.”

약간의 기세를 담아 말하는 라이안의 목소리였지만 하이븐 후작은 그것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거칠게 웃으며 말했다.

“크그극, 이 한 목숨 무엇이 아깝단 말인가……?”

“그럼, 다른 병사들은?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야 할 거 야냐?”

“저들은 영광스러운 제국의 병사들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

“이런 답답한…….”

전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해서 싸울 생각이란 말인가?’

하이븐 후작은 모두 상처 없이 일어나는 타이탄들을 보며 소리쳤다.

“단 한 기만 나머지 군사를 엄호하여 제국으로 회군한다!”

하이븐 후작과 가장 가까이 있는 타이탄에서 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사령관님, 그럼 나머지 우리들은 어찌해야 합니까?”

“크흐흐, 이대로 돌아갈 수 없지 않은가? 나와 같이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울 자들은 남고 가고 싶은 자들은 제국으로 회군하는 군사들과 같이 가도 좋다.”

총지휘를 맡은 자신과 달리 다른 기사들에게까지 목숨을 걸 것을 강요를 하고 싶지 않은 하이븐 후작이었다.

“저는 끝까지 후작각하와 생을 함께 하겠습니다!”

하이븐 후작과 가장 가까이 있던 기사가 말했다. 하이븐 후작은 순간 그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헛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모든 기사들이 일제히 외쳤다.

“저희도 끝까지 후작각하와 생을 함께 하겠습니다!”

“저도 같이 데려가 주십시오!”

“우리 타이탄 부대는 무적입니다! 우리만으로도 저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후작각하와 끝까지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이븐 후작은 그런 기사들로 인해 진한 감동을 느꼈다.

“자네들… 고맙다, 제군들.”

그러한 말을 성벽 위에서 듣고 있던 라이안은 일이 상당히 틀어졌음을 알고서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하이븐 후작은 재빨리 사라지는 라이안을 보고는 서둘러 명령했다.

“가장 끝에 있는 타이탄만 남고 우리는 저 치졸한 히매인 왕국의 군대를 추격한다!”

“이런, 제길!”

하이븐 후작의 말과 동시에 들린 목소리는 가장 마지막에 위치해 있던 타이탄에서 들려왔다. 그도 후작과 같이 하고 싶었으나 그리 하지 못함에 억울해서 나오는 소리였다.

하이븐 후작은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타이탄 부대는 지금 당장 추격에 들어간다! 추격하라!”

쿵쿵쿵쿵.

쿵쿵쿵쿵.

하이븐 후작의 타이탄과 그 외 9기의 타이탄들이 노크리 성 안쪽으로 들어갔다.

타이탄들의 질주로 인해 아직 성 안에 남아있던 진흙무더기가 비명을 지르듯 큰 소리를 내며 옆으로 튀어나갔고 타이탄들은 히매인 왕국의 방향에 있는 성문을 열었다.

타이탄의 거대한 손에 의해 성문은 사람이 방문을 열듯이 쉽게 열렸고 타이탄들은 히매인 왕국의 병사들이 도주한 행로를 추격했다.

맨 뒤에서 그러한 장면을 보고 있던 마지막에 남은 타이탄은 남아 있는 병사들을 데리고 회군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자가 그였기 때문이다.

남아 있던 귀족들은 맨 처음 하이븐 후작의 명령으로 인해 선두에 섰던 결과 가장 먼저 진흙에 매몰되었으니 작위를 가진 기사가 그들을 이끌 수밖에 없었다.

라이안은 숲 사이에 나 있는 길을 경공술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잠시 멈추어 뒤를 돌아보는 라이안의 눈에 멀리서 큰 소리를 내며 뛰어오는 타이탄들이 보였다.

“제길, 포기라는 걸 모르는 인간이군. 속도가 사람의 10배는 되는 것 같은데… 이대로라면 반나절 만에 회군한 히매인의 군사들과 부딪치게 될 것 같은데… 얼른 가서 알려야겠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하이븐 후작도 멀리서 잠시 멈춰서 있던 라이안을 볼 수 있었다.

“스피어마스터! 이놈!”

하지만 곧 연기같이 사라져 가는 라이안을 보고는 인상을 찡그리며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는 타이탄들이었다.

쉬쉬쉬쉭!

바람과 나뭇잎이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라이안의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미친 듯이 휘날렸고 옷은 찢어질 듯 펄럭거렸다.

“다행히 상당히 멀리까지 이동한 것 같구나.”

라이안의 이런 생각도 10여 분 정도가 흐르자 다급해졌다. 라이안의 경공속도가 빠른 이유도 있었지만 정말로 반나절이면 에드코르 제국의 타이탄들에게 따라잡힐 것 같았다.

* * *

한편 케로틴 성으로 회군하던 라이안의 친구들은 라이안이 걱정되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라이안은 무사할까?”

헤인드의 말에 디로안이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노려보며 버럭 소리를 쳤다.

“당연히 무사해야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아니, 난 그게 아니고… 내 말은 또 그 녀석이 미련하게 목숨 걸고 적들을 막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지.”

“흠…….”

“하긴 라이안 오빠가 조금 미련한 것 같기는 하죠.”

모두가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누가 미련하다고?”

“누구긴 누군가? 라이안이… 헉!”

“라이안!”

“라이안 오빠!”

모두가 갑자기 나타난 라이안을 보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반가운 마음에 한마디씩을 했다.

“굉장히 빨리 쫓아왔군. 라이안!”

“당연하지 내가 좀 빠르잖아? 아! 그건 그렇고 아버님은 어디 계시지?”

라이안이 아버님이라고 할 사람은 와이파른 백작밖에 없었으므로 그것을 알아들은 헤인드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앞쪽에서 군사를 지휘하고 있다네.”

“그래? 너희도 얼른 앞쪽으로 와 나 먼저 가 있을게. 지금 타이탄들이 쫓아오고 있어서 회군속도를 올려야 하거든.”

휘리리릭.

또 다시 경공술을 펼치며 빠르게 뛰어가는 라이안을 보며 그의 남은 친구들이 놀라워했다.

“완전히 날아다니는군, 날아다녀.”

“대단하군. 저것이 바로 팔튼이 말하던 빨리 달리는 기술이겠지?”

“와, 라이안 오빠 너무 멋있다!”

그러한 생각도 잠시였다.

“앗! 지금 타이탄들이 쫓아온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우리도 최대한 앞쪽으로 가세나!”

“으악, 빨리 가야지.”

라이안은 높이 점프를 하여 앞쪽에 있는 와이파른 백작과 팔튼을 확인하고 그곳으로 착지했다. 그런 라이안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는 와이파른 백작과 팔튼이었다.

“왔구나. 라이안!”

“그래, 함정은 잘 먹혔느냐?”

와이파른 백작의 물음에 라이안이 웃으며 말했다.

“네, 함정은 확실하게 먹혔어요. 성을 잃은 것에서 우리 쪽에도 손실은 있었지만 적들에게 절반에 가까운 손실을 입혔으니 확실히 대성공이기는 하지요.”

“허허허, 그거 다행이구나. 정말 큰일을 해주었구나. 라이안.”

“하하, 뭘요. 하지만 지금 당장 회군속도를 올려야 합니다.”

와이파른 백작은 갑작스러운 라이안의 말에 의문을 나타내며 물었다.

“아니, 왜 그러느냐?”

“적들의 수장이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는지 타이탄부대를 통솔하여 지금 맹추격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속도라면 아마도 반나절이면 따라잡힐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이런, 서둘러야겠구나.”

놀라운 말을 들은 와이파른 백작이 전 군대에 그러한 소식을 알렸다. 이곳에 있는 군사들로는 타이탄을 대적할 방도가 없었기에 와이파른 백작의 목소리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적들의 타이탄부대가 추격해 온다! 회군속도에 박차를 가하라!”

“회군속도를 올려라! 추격부대가 온다!”

“회군속도를 올려라!”

곳곳에서 와이파른 백작의 말을 전달하는 자들에 의해 회군의 속도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라이안은 내심 불안한 마음에 마른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이 속도로는 붙잡히고 만다.’

“아버님, 케로틴 성에는 타이탄이 있는지요?”

라이안의 말에 와이파른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전해졌던 소식에 의하면 케로틴 성까지는 타이탄이 운반되었다고 하더구나.”

“아버님, 그렇다면 미리 빠른 말을 보내어 그곳에서 타이탄을 보내달라고 하면 되지 않겠는지요?”

“아! 그런 방도가 있었구나. 내 그리 조치를 취하마.”

라이안의 말을 들은 와이파른 백작이 연락병을 불러 하나의 서신을 쓰고는 그에게 전해주었다.

“너는 하루빨리 케로틴 성의 지휘관에게 이것을 전달해야 한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그래, 어서 출발하라.”

라이안도 연락병이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려 나가는 것을 보고는 있었으나 과연 에드코르 제국의 타이탄에게 따라잡히기 전에 히매인의 타이탄이 도착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라이안의 생각에는 약간의 오차가 있었다.

타이탄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사의 마나가 들어간다. 타이탄으로 따라잡는 시간이 몸을 움직이며 따라잡는 것보다 빠르기는 했지만 그들 또한 휴식을 취하며 마나를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하이븐 후작만이 선두에 서서 계속해서 달려 나가고 있었지만 그 외의 다른 타이탄들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적으로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모습을 본 하이븐 후작이 잠시 휴식을 알렸다.

“모두 잠시 쉬었다가 간다! 적들도 휴식을 취하지 않고 도망가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잡는 우리의 속도가 더 빠르니 내일 중으로는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취이이이익!

철컥!

철컥!

타이탄들의 앞부분이 열리더니 파이어 기사단의 기사들이 하나씩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의 모습은 지치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상당한 마나손실을 감수하고서 겨우겨우 하이븐 후작을 뒤쫓아 왔으리라.

이를 알고 있는 하이븐 후작은 라이안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분한 마음에 이를 악물었지만 당장 쫓아가더라도 힘이 있어야 싸우지 않겠는가? 그러한 생각에 꽉 쥐어진 손에 힘을 빼며 휴식을 명했다.

그때 라이안은 왜 아직도 타이탄들이 쫓아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면 자신의 귀에는 그들이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라이안은 계속해서 뒤로 천리지청술을 펼치며 적들이 언제쯤 오려는지 확인했지만 타이탄들은 아직도 상당한 거리에 있는지 들려오는 소리가 전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날이 어두워졌고, 히매인 왕국의 군사들은 뒤쪽으로 상당히 넓은 범위에 말을 탄 보초병을 배치해두고서 진영을 설치한 후 휴식을 취했다.

서둘러 노크리 성을 빠져나오는 바람에 충분할 만큼의 식량을 가지고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귀족들조차 마른 빵을 씹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휘익!

터더덕!

마른 빵을 억지로 씹어 삼키던 간테츠 백작이 인상을 찡그리며 씹던 빵을 던져버렸다. 그것을 본 피에른 남작이 간테츠 백작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백작님, 이런 빵이라도 드셔야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내가 저따위 빵이나 씹어야 한다니! 그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가지고 나온 식량이라고는 빵과 약간의 죽을 끓일 곡식이 전부이지 않습니까?”

“빌어먹을! 이것이 다 저 하찮은 평민 놈 때문이 아니냔 말이다!”

“하지만 그의 노력 덕분에 지금까지도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자네 지금 그따위 녀석을 두둔하는 것인가!”

“아니, 그것이 아니오라…….”

“됐네! 저리 가서 자네나 실컷 그 돌덩이 같은 빵이나 씹게!”

지금의 상황에 상당히 불만이 많은 간테츠 백작이었다.

* * *

한편 케로틴 성에서는 연락병의 서신을 받은 라핀 후작이 파이어 마법으로 그것을 태우고 있었다.

“재고해 보겠다고 알리거라. 그럼 이만 가보아라.”

“하지만!”

“닥쳐라! 지금 내말에 불복하겠다는 것이냐? 일개 연락병 주제에… 당장 꺼져라!”

“크윽, 알겠습니다.”

연락병이 사라지고 난 다음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간 라핀 후작이 책상을 후려치며 소리쳤다.

“이런, 빌어먹을 일이 있나! 어찌 제국이 기껏해야 오합지졸이 모인 노크리 성을 함락하지 못했단 말인가!”

라핀 후작은 이대로 히매인 왕국이 에드코르에게 넘어가버릴 경우 자신이 이곳의 공왕으로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타이탄을 보내야 할까, 아니면 보내지 말아야 할까…….”

턱을 괴고 고민하던 라핀 후작은 잠시 후 사악한 미소를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이 모든 공로가 와이파른 백작에게 넘어간다면 그는 분명 내 작위와 맞먹거나 그보다 더 큰 작위를 받을 것이다. 이번 일로 그가 상당수의 병력을 잃어야 그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니… 크흐흐!”

라핀 후작이 밖을 향하여 소리쳤다.

“밖에 누구 없느냐!”

그러자 밖에서 지키고 있던 기사들 중 한 명이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이곳에서 가장 뛰어난 기사 3명을 뽑아 미리 타이탄과 계약하라고 알려라.”

“알겠습니다.”

“후후후.”

라핀 후작의 집무실에 그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러한 라핀 후작의 계략으로 결국 타이탄 부대는 출정하지 못했다.

그렇게 라핀 후작의 욕심으로 지원군을 얻지 못한 채 아침이 되었고, 히매인 왕국의 군사들은 또다시 케로틴 성으로의 진군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가만히 병사들과 함께 걸어가던 라이안이 한쪽으로 빠지며 반지에 대고 말했다.

“야, 챠둠?”

“말씀하십시오, 주인님.”

“너 날파리들 좀 보내서 뒤쫓아 오는 타이탄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기에 아직도 안 오는 것인지 확인해봐.”

“알겠습니다.”

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이미 도달하여야 할 적들이 오지 않자 오히려 그것이 더 불안한 라이안이었다.

투명하게 변한 채 라이안의 위를 따라오던 전함에서 검은 연기와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서둘러 노크리 성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이전에 첩자를 잡기 위해 만들었던 날파리들이었다. 그리고 비록 생김새는 날파리들이었지만 그것들은 일반 새가 날아가는 속도보다 빠르게 날아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날파리에 장착된 센서에 에드코르 제국의 타이탄의 모습이 잡혔고, 그들의 말을 엿듣기 위해 몇 마리의 날파리들이 나무에 달라붙었다.

하이븐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마나는 다 보충하였는가?”

“넵! 이미 많은 휴식으로 인해 거의 다 보충되었습니다.”

“다행이군. 그럼 서둘러 다시 추격에 나선다.”

“알겠습니다!”

하이븐 후작과 파이어 기사단이 타이탄에 올라 추격을 시작했고 몇 마리의 날파리들이 그런 타이탄들을 쫓았다.

라이안은 챠둠이 말을 할 때까지 그 자리에 선 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기다리던 챠둠의 음성이 들려왔다.

“주인님?”

“응, 말해. 어때? 왜 안 오는 거야?”

“타이탄이 마나로 움직여서 마나 소비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휴식을 취하고 있던 그들이 지금 막 출발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하하, 하긴 그들이 나처럼 심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마나를 보충하는데 만 하루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구나. 그럼 얼마나 있어야 우리가 따라잡힐 것 같아?”

잠시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싶던 챠둠이 대답했다.

“아마도 저들이 주인님이 계신 곳을 치려면 한 번의 휴식을 더 취해 마나를 보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내일 아침 정도가 공격예상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잠시 생각하던 라이안이 와이파른 백작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고 곧 그에게 질문했다.

“아버님, 지금의 속도로 간다면 케로틴 성에는 언제쯤 도착할 것 같습니까?”

라이안의 말을 들은 와이파른 백작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잠시 후 입을 열었다.

“흠… 아마도 내일 점심때는 지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어지는구나.”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생각에 빠진 라이안에게 와이파른 백작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왜 묻는 것이냐?”

“그게… 저들이 아마도 내일 아침쯤엔 공격을 해 올 것 같아서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와이파른 백작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거 큰일이구나. 우리 쪽에서는 그 타이탄을 막을 방도가 없으니…….”

“지금으로서는 별 도리가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케로틴 성으로 도주하는 수밖에요.”

와이파른 백작이 서둘러 속도를 더 올리라고 명을 내리기는 했으나 잘 먹지도 못한 지친 병사들의 발걸음은 좀처럼 빨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병사들도 한계였다.

라이안은 그러한 모습을 보고 만약 적들의 타이탄에 따라잡히게 된다면 자신이 최대한 막아보이리라 다짐했다. 물론 그런 생각의 한편으로는 이미 상당한 내공을 되찾은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과연 내가 타이탄을 상대로 얼마나 잘 싸울 수 있을까… 후후…….’

결국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다가왔다.

하이븐 후작은 멀리에 보이기 시작한 히매인 왕국의 군대를 보며 냉랭한 미소를 머금었다.

“드디어 만났구나.”

다른 파이어 기사들도 타이탄에서 나와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워낙에 많은 군사들이라 멀리서도 그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모르는 라이안이 그의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라이안만 들을 수 있는 소음이 반지로부터 흘러나왔다.

“마저 식사하도록 해. 난 잠시 어디 좀 갔다 올게.”

“그리하게나.”

“하하, 소피를 보러 가는 것인가?”

디로안이 웃으며 묻자 라이안이 그 말에 긍정했다.

“어? 어… 그래.”

친구들에게서 조금 벗어난 라이안은 반지를 향해 말했다.

“무슨 일이야, 챠둠?”

“주인님, 지금 주인님이 있는 군대 뒤쪽으로 타이탄이 나타났습니다.”

“정말이야? 어느 쪽이야?”

라이안은 히매인 왕국의 군대가 있는 뒤쪽을 바라보았고 곧 챠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시 방향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라이안이 재빨리 눈에 내기를 집중하여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풀숲에 숨어 있는 타이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뒤쪽이 아닌 옆쪽을 치려고 하는 것인가? 이럴 수가! 언제 다가온 거지?”

라이안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타이탄의 발에 풀잎과 풀줄기를 묶어서 걸을 때 나는 소음을 줄였다는 것을.

라이안은 서둘러 와이파른 백작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사실을 알렸다.

“아버님, 큰일이 났습니다.”

“큰일이라니? 혹 제국의 타이탄이 근처까지 온 것인가?”

“맞습니다. 지금 기회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최대한 조용히 서둘러서 이동할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알겠다. 내 그리 하겠다.”

와이파른 백작은 서둘러 몇 명의 병사들을 불러서 그 사실을 모든 병사들에게 전달 할 수 있도록 조취를 취했다.

그 소식을 들은 병사들은 최대한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떠날 채비를 했다. 그렇게 히매인 왕국의 모든 준비가 끝날 무렵, 제국의 타이탄 부대가 정확히 히매인 왕국의 군사들이 출발하는 방향의 옆구리에 당도하였다.

그들은 그대로 히매인의 군사들을 치려했다.

그것을 눈치 챈 라이안이 급히 와이파른 백작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총사령관님, 지금 적들이 옆쪽에서 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뛰어서라도 도망가야 합니다!”

다른 기사들과 병사들이 들을 수 있는 거리인지라 라이안은 보통 때와 달리 와이파른 백작에게 아버님이 아닌 총사령관이라 칭하며 크게 소리쳤다.

이에 놀란 와이파른 백작이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든 군사들은 서둘러 케로틴 성으로 달려라! 적들이 왔다! 서둘러라!”

“적들이 근접해 있다! 서둘러라!”

“뛰어야 한다! 빨리 움직여라!”

그리고 동시에 하이븐 후작도 히매인 왕국에서 자신들의 움직임을 알아챘음을 알고는 공격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다! 대 에드코르 제국의 무서움을 보여주어라! 공격!”

“와!”

“대 에드코르 제국에 충성을!”

“공격!”

“와! 쓸어버리자!”

쿵쿵쿵쿵.

쿵쿵쿵쿵.

빠른 속도로 도망치는 히매인 왕국의 군사들이었고 그 옆을 공격해 오는 타이탄들이었다.

* * *

한편 히매인 왕국의 왕성에서는 또 다른 2기의 타이탄이 발굴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크호른 왕이 그 소식에 기뻐서 잠옷바람으로 뛰쳐나오며 물었다.

“타이탄이 2기나 나왔다는 말이 사실이오?”

필립 후작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국왕전하.”

“오오, 이 어려운 시기에 그런 행운이 있나. 그래 어떤 타이탄이오?”

“같은 모양을 한 검은색의 타이탄이옵니다. 2기의 타이탄이 똑같이 생겨서 그것을 발굴했던 자들에게는 쌍둥이 타이탄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 크기 또한 커서 지금까지 발굴된 타이탄중 성능이 가장 강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허허허, 검은색의 쌍둥이 타이탄이라…….”

필립 후작이 전시의 상황에 새로이 나타난 타이탄을 어찌해야 할지 크호른 왕에게 물었다.

“국왕전하, 새로이 나타난 타이탄을 서둘러 전쟁에 출진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래야지. 지금 바치스 공작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하오. 그에게 쌍둥이 타이탄의 하나를 주어 군사를 이끌게 할 것이오.”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그건 그렇고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나치키 영지에 나타났던 스피어마스터가 우리를 돕고 있다고 들었소. 그것이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현재 노크리 성의 총사령관으로 나가있는 와이파른 백작의 장남과 친구 되는 사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스피어마스터가 이미 제국의 마스터급의 검사인 에드먼드 후작을 단칼에 죽였다고 하옵니다.”

“허허허! 홍복이로다, 홍복이야. 이것은 하늘이 우리 히매인을 보살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국왕전하의 복이옵니다.”

크호른 왕과 귀족들이 기뻐하고 있을 때, 밖에서 누군가의 입장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치스 공작각하께서 드십니다!”

그러한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리며 바치스 공작이 들어섰다.

“신 바치스 드 스피린, 국왕전하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오오, 공작 어서 오시오.”

바치스 공작은 진즉에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고 싶었으나 지금껏 크호른 왕이 그것을 저지하여 나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스피어마스터가 나타나 히매인 왕국을 돕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크호른 왕의 생각이 바뀌어 바치스 공작을 전투에 보내려고 왕성으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변심의 이유는 스피어마스터가 도와준다면 제국의 위험에서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였다.

“바치스 공작, 그대에게 2기의 타이탄을 주겠소. 한 기는 공작이 그것을 갖고 나머지 한 기는 우리 히매인 왕국을 위해 전투를 하고 있는 스피어마스터에게 하사했으면 하오. 그대가 3만의 군대와 2기의 타이탄을 가지고 전장에 투입해주기 바라오.”

“신, 바치스. 국왕전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고맙소, 난 그대만 믿겠소.”

그리하여 바치스 공작은 두기의 타이탄과 공작영지의 군사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진군했다.

* * *

같은 시간, 제국의 타이탄으로부터 습격을 받고 있는 히매인 왕국의 병사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겁에 질린 병사들을 바라보고 있던 라이안이 빠른 속도로 창을 들고 달려 나갔다.

라이안은 공격해 오는 타이탄들을 마주보며 그들의 앞을 막아 선 채 고함을 질렀다.

“멈춰라! 내가 있는 한 이들의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그 순간 지난 이틀 내내 이를 갈며 찾던 라이안을 본 하이븐 후작이 그를 향해 커다란 타이탄의 검을 내리 꽂았다.

콰광!

“이크!”

신법으로 아슬아슬하게 그 거대한 검격을 피한 라이안이 혀를 내둘렀다.

“크기 때문에 그 파괴력도 어마어마하구나! 힘들겠어, 이거.”

라이안이 빠른 속도로 피하자 푸른빛의 타이탄이 대지를 가를 듯 옆으로 칼을 휘둘렀고 라이안은 다시 위로 뛰어 올라 피했다. 하지만 곧 다른 타이탄이 휘두른 칼이 그런 라이안을 덮쳤다.

꽝!

“크윽!”

다른 타이탄의 검을 창으로 가까스로 막은 라이안이 상당히 먼 거리까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타이탄들의 학살이 시작 되었다.

꽝!

꽝!

“크악!”

“으악!”

“살려줘!”

라이안은 날아가는 도중 천근추를 시전하여 땅으로 내려섰고 땅에 착지해서도 상당히 뒤로 밀려났다. 그만큼 타이탄이 휘두르는 검의 힘은 엄청났다.

“제길, 엄청나군!”

타이탄이 히매인 왕국의 병사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본 라이안은 눈이 뒤집힐 정도로 분노했다.

“이런 개자식들! 멈춰! 멈추란 말이다!”

라이안이 욕설을 내뱉으며 타이탄을 향해 극성의 경공술을 펼치며 날아갔다. 그리고 쉴 틈도 없이 공중에서 청룡일섬을 시전했다.

“청룡일섬!”

팡!

라이안이 창을 휘두르자 그곳에서 하나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더니 히매인 왕국의 병사들에게 칼을 내려치던 2기의 타이탄이 뒤로 튕겨져 나가 넘어져 버렸다.

펑벙!

꽈당!

꽈당!

“크윽! 이게 뭐야!”

“크윽!”

그가 시전한 것은 검강을 탄으로 쏘아 낼 수 있는 강탄이었다. 강탄을 맞은 타이탄들은 사람이 칼에 베인 것과 같은 형상으로 약간 갈라져버렸다.

그리고 하이븐 후작과 파이어 기사단이 라이안의 신통한 무위에 놀라기 바쁠 때 이미 그곳에 당도한 라이안이 빠르게 창을 휘둘렀다.

“물러나랏! 청룡풍파!”

휘리리리릭!

슈아아아악!

그 순간!

갑자기 엄청난 회오리가 생겨나더니 에드코르 제국의 타이탄을 덮쳐갔다.

카가가가강!

카가가가강!

철룡풍파로 인해 일어나는 강기의 폭풍이 타이탄을 휩쓸었고 그 강기에 맞은 타이탄에서 금속성이 들려왔다. 이전과는 다른 엄청난 크기의 청룡풍파였다.

이것이 바로 화경의 내기를 가진 청룡풍파였으니 그 위력이 산을 무너트릴 만했다.

한 번의 거센 회오리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푸른색의 타이탄과 모두 넘어진 채 널브러져 있는 타이탄들이 보였다.

“헉헉! 제길, 생각보다 단단한 물건들이군. 헉헉…….”

방금 전의 공격에 상당한 내기를 실었는지 힘겨워 하는 라이안이었다. 그러한 상황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하이븐 후작이 뒤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모두 괜찮은가, 제군들!”

하이븐 후작의 말에, 온몸에 생채기가 생긴 타이탄들이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아직 문제없이 움직입니다!”

“다행이군. 그런데 이런 엄청난 파괴력이라니. 게다가 아까 그것은 오러탄이 아닌가! 그렇다면 저자가 벌써 그랜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단 말인가?!”

하이븐 후작은 라이안이 그랜드마스터에 오른 상급 정령사라는 생각을 하자 오싹하기까지 했다.

‘어찌 인간이 저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는 이렇지 않았거늘…….’

그때 하이븐 후작의 머리를 스치는 옛 기억이 있었다.

바로 라이안을 죽이기 전에 라이안을 데려간 드래곤이 생각났던 것이다.

‘드래곤에게 교육이라도 받았단 말인가! 어찌하여 드래곤이 인간에게 저토록 많은 능력을 부여한단 말인가. 혹, 저 스피어마스터가 해츨링이라도 된단 말인가?’

수많은 의문이 있었으나 그것을 확인할 길은 없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미 목숨을 걸고 뒤쫓아 온 것이 아닌가.

‘그래, 해츨링이든 드래곤이 아끼는 인간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 목표는 저자를 죽이고 히매인 왕국을 쓸어버리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타이탄을 일으켜 세우는 하이븐 후작이었다.

라이안은 청룡풍파가 생각처럼 적의 타이탄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하자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이들을 막지 못한다면 자신의 친구들 또한 이들에게 도살당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막아서야만 했다.

그리고 만약 끝까지 이들을 저지시킬 수 없다면 할 수 없이 챠둠에게 부탁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챠둠에게 부탁한다 해도 다른 친구들과 병사들이 후퇴한 후라면, 챠둠이 이들을 쓸어버린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한 번 해보자.”

그렇게 다시 대치하고 선 라이안과 타이탄이었다.

“스피어마스터를 죽여라!”

“와! 동포의 원수!”

“죽어라!”

“너를 죽여 노크리 성의 진흙에 파묻어 주겠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라이안은 청룡창의 기수식을 취하다가 마지막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는 휘청거렸다.

“으윽, 진흙의 후유증이 심하긴 했나보군.”

곧바로 다시 청룡창의 기수식을 취하던 라이안이 청룡창의 사초인 청룡무희를 펼쳤다.

“차앗! 청룡창 제 사초! 정룡무희!”

쉬쉬쉬쉭.

쉬쉬쉬쉭.

순간 라이안의 모습이 둘에서 넷으로, 그리고 그 배수로 계속해서 늘어나 마침내 32명까지 늘어났다. 그것을 본 하이븐 후작이 소리쳤다.

“단지 환영마법일 뿐이다! 당황하지 마라!”

쉬이익!

퍽!

쉬이익!

퍽!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라이안으로 인해 타이탄들이 이곳저곳에 칼을 휘둘렀고 그 칼에 맞을 때마다 라이안의 환영이 사라져 갔다.

그렇게 반수 이상의 분신이 사라지는 순간 그들 중 한 라이안에게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청룡창 제이초! 청룡출해!”

꽈광!

퍼벅!

“크악!”

어느새 그곳까지 갔는지 마지막 줄에 있던 타이탄의 가슴에 창을 꽂아 넣은 라이안이었다. 이 광경을 본 옆의 타이탄이 라이안에게 검을 휘둘렀고, 라이안은 서둘러 창을 뽑아 그곳에서 벗어났다.

“이봐! 괜찮나?”

“크윽! 어깨가 뚫려버렸다. 제길! 크윽!”

이 소리를 들은 라이안은 약간 빗나갔음을 알고 얼굴을 찡그렸다.

“찌를 때 뭔가 막이 생긴다 했더니 실드마법에 의해 빗겨 맞았군. 제길!”

라이안은 상당한 내기의 소모를 느끼고 있었다. 아직 한참을 더 싸울 수 있었으나 그렇게 싸우다가는 자신이 먼저 지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칫!”

라이안은 히매인 왕국의 후방을 맡으며 후퇴를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심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히매인 왕국의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것을 보던 하이븐 후작은 다른 파이어 기사단을 향해 소리쳤다.

“스피어마스터가 도망간다! 잡아라!”

쿵쿵쿵쿵.

쿵쿵쿵쿵.

라이안을 쫓던 하이븐 후작은 라이안이 달려 나가는 속도에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무슨 인간이 저토록 빠르단 말인가? 하지만 저자도 인간인 이상 지칠 터, 끝까지 히매인 왕국의 군사들을 죽인다면 그도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히매인 왕국의 군대를 추격한다!”

“넵!”

“넵!”

한 기의 타이탄만이 멈칫거리며 천천히 쫓아갔고 나머지는 하이븐 후작의 뒤를 바짝 쫓았다.

라이안은 저들의 속도만 저지할 수 있다면 히매인 왕국의 병사들이 케로틴 성으로 충분히 후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땅의 상급정령인 노에스를 불렀다.

“노에스 소환!”

“불렀는가, 계약자여…….”

“노에스! 저곳에 흙의 장벽을 만들어줘!”

라이안의 말을 들은 노에스가 타이탄을 바라보았고 그 순간 타이탄의 앞에서 흙의 장벽이 올라와 타이탄들을 막아섰다. 타이탄의 허리높이까지 올라온 흙의 장벽으로 인해 가장 선두에 있던 하이븐 후작의 타이탄이 걸려서 넘어져 버렸다.

쿠과광!

“크윽! 빌어먹을 자식!”

그런 모습이 꽤나 웃겨 보였는지 라이안이 배를 잡고 웃었다. 그렇지만 다시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타이탄들이 흙의 장벽을 칼로 내려쳐 부숴버렸기 때문이었다. 라이안은 그렇게 또 다시 뒤돌아 달려 나갔다.

당황한 다른 타이탄들이 하이븐 후작을 일으켜 세워주려고 하자 하이븐 후작은 서둘러 명령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히매인의 군대를 추격하라!”

“넵!”

“넵!”

다른 타이탄들이 하이븐 후작의 명령에 급히 라이안을 뒤쫓았고 하이븐 후작이 가장 뒤쳐졌다.

그렇게 계속되는 추격전이 펼쳐졌고 그들의 악몽은 계속되었다. 라이안이 결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올 때마다 흙의 장벽을 만들어서 타이탄을 넘어트렸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타이탄에 타고 있던 하이븐 후작과 파이어 기사단은 약이 오를 때까지 올랐다. 그들은 이제 흙의 장벽이 생기기도 전에 칼을 휘두르며 뒤쫓아오기까지 하고 있었다.

“저 죽일 놈!”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개자식! 거기 안 서!”

파이어 기사단원들은 저마다 화가 치밀어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하이븐 후작도 마찬가지였으나 화를 꾹 눌렀다. 자신까지 이성을 상실한다면 또다시 라이안의 함정에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모를 위험 때문에 화를 삭인 것이다.

“모두들 정신 차려라! 지금까지의 함정들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흠…….”

“함정…….”

“치잇! 저 치사한!”

라이안의 방해로 인해 히매인 왕국의 군대와 비슷한 속도로밖에 쫓아가지 못하는 에드코르 제국의 타이탄들은 그 답답함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올 때의 마음가짐은 그토록 대단했으나 지금의 현실을 본다면 역시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라이안의 상태 또한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처음 히매인 왕국의 병사들이 도살을 당하자 그만 흥분하여 강탄을 시전했고, 곧 청룡풍파에 무리한 내기를 실었었다.

게다가 그 이후로도 계속된 정령마법을 시전함으로서 라이안의 몸속에 있는 내기는 바가지로 물을 퍼내듯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타이탄의 덩치가 상당히 큰 이유로 흙의 장벽 역시 상당히 높게 만들어야 했기에 그만큼 내기의 소모도 많았던 것이다.

“서둘러 빠진 다음에 내기를 충전해야겠다.”

라이안이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며 재빨리 노에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노에스! 흙의 장벽!”

쿠르르륵.

또다시 나타난 흙의 장벽에 멈칫한 타이탄들은 이내 악에 받혀 검을 들어 그것을 부수기에 바빴다. 내구성이 강한 흙이 아닌지라 타이탄들이 몇 번 칼질을 하자 흙의 장벽은 급격히 무너져갔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였고 그들이 그것을 다 부수고 앞으로 나아갔을 때는 이미 라이안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또 도망쳤군!”

“당장 뒤쫓아야만 합니다!”

“반드시 저 망할 것을!”

“죽여 버리겠어!”

파이어 기사단의 흥분한 고함에 하이븐 후작이 그들을 진정시켰다.

“모두 냉철하게 생각하여라! 너희들의 남은 마나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 지금 너희의 마나가 얼마나 남았느냐?”

“크윽! 거의… 바닥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파이어 기사단의 말에 하이븐 후작이 역시, 라고 생각했다.

“저자를 죽이려면 반드시 타이탄이 있어야 한다. 저자가 어찌하여 그랜드마스터에 올랐는지 그 과정은 알 수 없으나 그랜드마스터에 정령까지 부리는 그도 우리에게 계속하여 밀려서 도망치고 있지 않느냐? 저자도 상당한 마나의 손실이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하이븐 후작은 끝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에도 어쩌면 라이안은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라이안은 그대로 빠른 속도로 달려갔고 곧 히매인 왕국의 군대를 볼 수 있었다. 눈에 내기를 실어 멀리 바라보자 멀리서 산과 산 사이에 있는 하나의 성을 볼 수 있었다.

“저것이 케로틴 성이군. 흠… 지구의 시간으로 약 1시간이면 모두 피할 수 있겠어. 난 그때까지만 저들을 막으면 되는 것이군.”

라이안은 서둘러 멀리 보이는 풀숲으로 숨어들었고 혈기공을 운기하여 내기를 보충해갔다.

내기를 보충하는 사이 타이탄이 지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들이 지나가고 나서 뒤를 친다면 정곡을 찔러 한두 기의 타이탄은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마나보충을 위해 쉬는 타이탄들 사이에서 하이븐 후작이 지도를 펼쳐 케로틴 성과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인상을 찌푸렸다.

‘스피어마스터만 아니었다면 반수 정도는 죽였을 것을… 후…, 아니지. 그가 아니었다면 그토록 참담한 패배는 애초에 겪을 일이 없었겠지.’

하이븐 후작은 다시 공성전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꼈다. 하지만 기사들의 마나가 보충되어야만 타이탄을 움직일 수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그 사이 운기를 마친 라이안은 계속 풀숲에 숨어서 타이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오지 않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라이안은 회심의 미소와 함께 케로틴 성으로 달려갔다.

‘이곳에 내공심법 같은 것이 없어서 다행이군.’

라이안은 저들이 마나의 보충을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았다. 지금 저들을 기습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확실히 저들의 상태를 모르는 이상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었다.

잠시의 싸움으로도 많은 타이탄에 밀리는 자신이기 때문이다.

타이탄의 숫자가 3기 이하였다면 충분히 라이안이 처리할 수도 있었을 터이기에 그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보통은 인간의 몸으로 3기의 타이탄과 정면승부를 벌여 이길 수 있다고 한다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시각. 케로틴 성에서는 자국의 군대가 히매인 왕국의 깃발을 들고 빠르게 달려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국의 군대가 온다! 성문을 열어라!”

“자국의 군대가 온다!”

케로틴 성의 성벽에 있는 병사들의 소리에 케로틴 성의 문이 서서히 열렸고, 와이파른 백작을 포함한 모든 군대는 서둘러 성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와이파른 백작이 이끄는 모든 군사들이 케로틴 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규모로는 노크리 성보다 더 큰 성이 케로틴 성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군사들이 다 들어왔음을 확인하자 다시 성문이 닫히기 시작했고, 가장 뒤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던 와이파른 백작이 그것을 말렸다.

“아직 올 사람이 있다! 성문을 닫지 마라!”

“성문을 닫아라!”

그 말에 와이파른 백작은 자신의 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와이파른 콘 포르베가 라핀 후작각하를 뵙습니다.”

“어험, 오랜만이오.”

“후작각하 아직 우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도와준 스피어마스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부디 문을 닫으라는 명을 거두어주십시오.”

라핀 후작은 가는 눈으로 와이파른 백작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안 될 말이오. 그대들은 제국군의 타이탄들에게 쫓기어 여기까지 왔다고 들었소. 혹 그들이 먼저 당도한다면 어찌한단 말이오?”

“하지만!”

“더 말할 필요도 없소!”

라핀 후작은 말과 동시에 몸을 돌려버렸고 케로틴 성의 성문은 큰 소리를 내며 닫혀 버렸다.

그러자 팔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와이파른 백작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버님, 라이안은 어찌합니까?”

“흠… 내가 이곳까지 밀려온 이상 이곳의 총사령관은 후작각하이시다.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그런!”

헤인드와 그 외 라이안의 친구들도 와이파른 백작의 말에 반박했다.

“아버님! 하지만 라이안은 히매인 왕국을 도운 은인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처사입니다.”

하지만 와이파른 백작은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었다.

“미안하구나, 나도 어찌할 방도가 없구나. 내가 지금 후작각하에게 반박을 한다면 그것은 군법에 위배되는 상황이란다.”

“크윽!”

“그따위 법이라니!”

그들이 라이안을 걱정하며 그러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성벽 위에서 한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인가가 접근한다!”

“사람이다!”

그러한 소리를 라핀 후작도 들었는지 거북이가 기어가듯 천천히 성벽으로 올랐다. 와이파른 백작이 간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으나 라핀 후작은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라핀 후작은 성벽에 올라 멀리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라이안을 보았다.

“저 녀석이 그 스피어마스터란 말이지?”

한 기사가 라핀 후작에게 다가왔다.

“후작각하, 어찌해야 할까요?”

“성문이 열리는 일은 없다. 그리 알아라.”

“…네, 알겠습니다.”

이미 스피어마스터인 라이안의 명성은 히매인 왕국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 심지어는 라이안 혼자서 제국군의 10만을 쓸어버렸다는 소문까지 돌았으니 기사들에게는 신앙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소문을 어찌 믿으랴.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일은 없는 법. 그와 견줄 만한 활약은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라이안도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중 멀리서 성문이 닫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라? 이런! 내가 늦었다고 문을 닫아버리네?”

라이안은 태평하게 아직 자신이 잘 안 보여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칫! 지붕이 있는 집도 아니고 위는 뻥 뚫린 성인데 그렇게 정문만 닫는다고 내가 못 들어 갈 줄 아나? 그렇다면!”

더욱 빠른 속도로 질주하던 라이안이 땅에 있는 큰 돌을 박차자 그 돌이 순식간에 조각나며 그의 앞으로 발사되어 나갔고, 그것을 본 라이안은 더 빠른 속도로 땅을 박찼다.

탁! 탁! 탁! 탁!

라이안이 신형이 케로틴 성의 성벽 위를 향해 날아올랐다. 자신이 부순 후 차올린 돌들을 밟고서 초상비를 펼치는 것이었다.

“헉! 어찌 사람이 저런 속도로 날 수가 있단 말인가!”

라핀 후작은 자신을 방향으로 쏘아져 오는 라이안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쉬이이익!

하지만 뭔가 조금 부족했는지 성벽 위에 거의 다 다다른 라이안의 신형이 급격한 하강을 시작했다.

“으윽! 모자라잖아! 제길!”

하지만 하강하는 속도보다 라이안의 머리가 다른 수를 떠올리는 것이 더 빨랐으니, 순간 라이안의 머리에 하나의 경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운룡대구식!”

라이안에 의해 중원의 구파에 들었던 곤륜파의 신법이 이곳 미칼투 대륙에서 펼쳐졌다.

라이안의 신형이 용이 구름 위를 노닐듯 여러 번의 위치를 바꾸더니 케로틴 성의 성벽 위에 무사히 착지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라핀 후작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었다.

“휴~ 어라? 안녕하세요? 헤헤.”

하지만 아직도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은 라핀 후작은 라이안만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고, 이 아저씨 놀랐나 보네. 팔튼하고 친구들이 어디 갔지?”

그렇게 유유히 성벽에서 내려가는 라이안을 따라 라핀 후작의 시선만이 그의 뒤를 쫓을 뿐이었다.

‘저것이 인간이란 말인가!’

라핀 후작도 마법사인 이상 사람이 날 수 있는 방법은 마법밖에 없다고 알고 있다. 하늘을 나는데 사용하는 마법은 플라이마법으로, 사람이 뛰는 정도의 속도로 날아다닐 수 있는 마법이었다.

그런데 마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플라이마법보다 수십 배 빠른 속도로 날아올랐으니 어찌 그가 놀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라이안이 성벽 위에서 날듯이 뛰어내려오자 그를 본 친구들과 와이파른 백작이 반가워했다.

“라이안!”

“아니, 어찌 위에서 내려온단 말인가?”

“라이안 오빠, 어떻게 들어왔어요?”

모두 놀란 목소리로 묻는 말에 라이안이 투덜거렸다.

“그러게 사람이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문을 닫으면 어떻게 해? 쳇!”

그렇게 토라져 있는 라이안에게 팔튼이 설명했다.

“그것이 말이야…….”

모든 설명을 들은 라이안이 성벽 위를 째려보았다.

“그랬단 말이지? 저 아저씨가 심통을 부려서 문을 닫았다?”

라이안은 나중에 한 번 크게 골탕 먹이리라 다짐했다.

‘두고 보자!’

케로틴 성으로 들어온 귀족들과 원래 케로틴으로 파견 나와 있던 귀족들이 회의를 시작하였다.

“저들의 타이탄은 막강합니다. 한 번 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단번에 30~40명 정도의 병사들이 손 쓸 사이도 없이 당했습니다.”

와이파른 백작이 아닌 간테츠 백작이 더 나서서 열변을 토했다. 라핀 후작이 와이파른 백작의 눈치를 살피며 간테츠 백작의 말을 받았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에게도 마법사단과 3기의 타이탄이 있으니 적들도 쉽사리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오.”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와이파른 백작이 한마디 했다.

“그들에게는 일반 타이탄에…….”

“그들에게는 일반 타이탄에 비해 더 큰 타이탄이 한 기 있습니다. 일반 타이탄도 9기나 되어 3기의 타이탄으로는 벅차지 않을까 생각되옵니다.”

갑자기 간테츠 백작이 와이파른 백작의 말을 끊고 더 큰소리로 열변을 토했다. 그러한 상황에 와이파른 백작의 이마에 살며시 핏줄이 섰다.

‘저자가!’

잠시 화도 났지만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와이파른 백작이었다. 간테츠 백작의 유치한 장난에 자신까지 놀아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본 라핀 후작이 와이파른 백작을 꾸짖었다.

“아니, 와이파른 백작! 그대는 뭐가 그리 못마땅한 것인가?”

“어흠, 아닙니다. 어서 회의를 진행 하시지요.”

“회의 중에 딴청피우지 말고 잘 듣게! 자네가 저들을 막지 못하여 나까지 나서게 됐지 않은가?!”

“크음…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몇몇 제대로 정신이 박힌 귀족들은 라핀 후작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제국의 군대를 막고 겨우 10기의 타이탄만이 남았거늘 어찌 저리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지금 당장 그러한 말을 내뱉을 수는 없는 귀족들이었다. 와이파른 백작도 라핀 후작의 말에 어이가 없어 헛바람을 삼킬 뻔 했으나 겨우 참았다.

그렇게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사이, 팔튼과 라이안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모두 귀족들이 식사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와아! 이곳 음식은 정말 맛있겠는데?”

길쭉하고 커다란 상에 수많은 음식들이 놓여 있었고 몇몇 기사들과 귀족들이 그곳에서 음식을 담아서 자리로 가져가고 있었다.

“저것 봐요, 라케론도 있어요!”

라케론이라는 것은 바다에 사는 몬스터급 게였다. 그 크기가 사람의 2배나 되어 몇몇 어선은 이것에 의해 상당한 피해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라케론은 작은 게에 비해 맛이 일품이었기에 매우 고가였고, 그래서 귀족이 아닌 이상 그것을 맛볼 수 없었다.

그렇게 소란을 피우며 들어오는 라이안의 일행에게 옷을 잘 차려입은 한 귀족이 다가오며 소리쳤다.

“너희는 누구이기에 귀족식당에 와서 소란을 피운단 말이냐!”

그는 딱 보기에도 일반 병사나 평민으로 보이는 라이안과 그의 친구에게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팔튼은 제복을 입고 있었고, 그것을 본다면 이토록 무례하지는 못할 터인데 그러한 말로 싸잡아서 말하는 그로 인해 팔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간테츠 백작님의 장남인 차니엘이군.”

“아니, 자네는 와이파른 백작의 장남이 팔튼이 아닌가?”

보란 듯 거짓으로 놀람을 표하며 말하는 그 모습이 더 아니꼬운 팔튼이었다.

“어흠, 뻔히 알면서 뭐 하러 물어보는 것인가? 좀 비켜주게나 고된 전투로 피곤한 사람들이라네.”

그렇게 팔튼이 차니엘을 피해가려고 했으나 차니엘은 다시 팔튼을 막았다.

“자네는 귀족이라 괜찮을지 모르지만 자네 뒤에 있는 자들까지 이곳에 들어온다는 건 말도 안 되네. 자네가 저들과 같이 병사들의 식당으로 가거나, 아니면 저들만이라도 냉큼 돌려보내게나.”

차니엘의 말에 팔튼이 화를 내려던 순간 팔튼의 뒤에서 비꼬는 소리가 들렸다.

“팔튼, 저 쥐새끼처럼 생긴 놈이 왜 자꾸 길을 막는 거야?”

“큭큭큭.”

“푸웁!”

라이안의 말에 그 근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했으나 입 밖으로 나오는 웃음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 주위를 둘러보며 얼굴이 새빨개진 차니엘이 식당에서 검까지 뽑으며 소리쳤다.

“감히 평민 따위가 귀족을 능멸 했겠다?! 팔튼, 비켜라! 이건 너를 봐서 참을 문제가 아니다!”

“그게 무슨…….”

팔튼이 차니엘의 말에 반박하려는 순간 라이안이 그의 말을 끊고 나섰다.

“팔튼, 비켜봐. 저 녀석 교육 좀 받아야겠어. 너무 건방진데?”

“뭐라? 이런 처죽일 놈이!”

팔튼의 앞을 나서며 말하는 라이안을 향해 차니엘이 검을 휘둘렀고 라이안은 태연히 한손으로 등 뒤의 창을 잡으며 가볍게 그의 검을 막았다.

그러한 모습을 본 식당에 있던 모든 기사들과 귀족의 자녀들은 동시에 헛바람을 삼켰다.

“헛! 저것은!”

“파란색의 창!”

“스…스피어마스터!”

“저자가 스피어마스터란 말인가!”

웅성웅성.

웅성웅성.

식당이 시끄러워졌고 차니엘 또한 자신의 검을 막은 파란색의 창을 볼 수 있었다.

‘아…아닐 것이다. 병사들 중에 어중이떠중이도 전부 창을 파랗게 색칠하고 다니지 않는가.’

“너 따위 젊은 놈이 스피어마스터일 리가 없어! 죽어라!”

차니엘이 진실을 부정하며 검에 검기를 실어 라이안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하지만 곧 그의 생각을 송두리 체 뒤바꾸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스걱!

챙그랑!

“헉!”

라이안의 창에서 오러가 넘실거리며 나타났고 그것을 식당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목격할 수 있었다.

“저…정말 스피어마스터다!”

“이럴 수가 저토록 어린 자가 스피어마스터였단 말인가!”

“대…대단해…….”

사람들의 소란스러움도 라이안의 차가운 음성에 얼어붙듯 멈추었다.

“난 너 같은 재수 없는 새끼가 제일 싫어. 그 애비의 그 아들이군. 애비도 재수가 없더니만 그 자식새끼도 이렇게 지랄 맞으니, 원.”

반 토막만 남은 검을 부들거리는 손으로 잡고 있던 차니엘이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쳤다.

“네…네가 감히! 귀족을 능멸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느냐!”

그러한 차니엘의 말에 라이안이 또 다시 창을 휘둘렀다. 창의 끝이 차니엘의 목에 닿았고 차니엘은 그 날카로운 창날로 인해 목에 미세한 핏방울이 맺혔다.

“헉!”

“귀족이라고? 후훗. 팔튼? 이곳 히매인에서 바치스 공작님이 어떻게 공작의 작위에 오르셨지?”

팔튼이 라이안의 말을 듣고는 고소를 머금고 말했다.

“바치스 공작각하께서는 그토록 염원하던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들어서면서 영광스러운 작위를 받으셨지.”

라이안이 다시 얼굴에 인상을 쓰며 차니엘을 쳐다보았다.

“들었냐? 그럼 나는 최소 후작의 작위는 받을 터인데 너같이 초라한 백작의 자녀 따위가 나를 능멸했다면 나중에 내가 널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그…그런!”

“흠…….”

“음…….”

라이안의 말을 들은 식당의 모든 기사들과 귀족의 자녀들이 라이안의 말을 듣고는 침음을 흘렸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에드코르 제국의 압력으로 인해 국력을 키우지 못했던 히매인 왕국의 왕인 크호른 왕은 분명 라이안의 말대로 후작 위 이상 되는 작위를 주면서까지 그를 등용하려고 할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때쯤 팔튼이 주위를 둘러보며 일이 더 커지면 안 될 것 같아 라이안을 말렸다.

“이제 그만 하게나, 라이안. 이 자도 자신의 실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네.”

“그래, 우선은 그만 할게. 하지만 팔튼, 이 자는 저러한 습성을 절대 버리지 못할 거야. 천성이 나쁜 놈이지.”

라이안이 창을 거두며 차니엘에게 말했다.

“그만 꺼져라. 배고파서 너 따위와 말할 기운도 없다.”

“크윽! 두…두고 보자!”

차니엘이 피가 흐르는 목을 잡으며 급히 식당 문을 향해 나갔다.

“저 봐. 저 봐. 저런다니까?”

“하하하, 이제 그만 하고 식사를 하게나.”

라이안과 그의 친구들은 이내 접시가 넘칠 정도의 음식을 가져 와서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물론 라이안이 앉은 식탁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서둘러 빠져 나갔다. 라이안과 한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으리라.

“와! 라이안 오빠, 이거 먹어봐요. 무척 맛있어요.”

“응?”

“자요. 아 해봐요, 아아!”

“어…억!”

에나가 포크를 들어 그것을 라이안의 입속으로 무작정 집어넣어 버렸고 라이안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자신의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을 씹기 바빴다.

그들의 식사는 헤인드가 세 번이나 접시를 나르고서야 끝이 났다.

그들은 그래도 부족해 보이는 헤인드에게 천천히 먹고 오라며 먼저 나가 있겠다고 말했지만, 헤인드는 자신 혼자서는 이곳에 있지 못한다고 말하며 자신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그들 모두 하는 수없이 헤인드가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으아, 잘 먹었다.”

“아주 일 년치 음식을 다 먹는구나. 일 년치를 먹어.”

디로안이 혀를 내두르며 말하자 헤인드가 혀로 윗니를 핥으며 말했다.

“우리가 언제 저런 귀족들의 식당에서 식사를 해본단 말인가? 이럴 때 많이 먹어 둬야지.”

“그래요. 헤인드 오빠의 배는 그런 식탐 때문에 줄어들 날이 없지요. 에휴.”

“하하하.”

“하하하.”

에나의 한숨에 모든 친구들이 한자리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모두가 부른 배를 부여잡고 휴식을 취했고, 팔튼은 자신의 아버지인 와이파른 백작을 만나러 간다고 하며 나갔다. 그러자 라이안도 성을 구경한다며 뒤따라 나갔다.

성 안에는 이미 라이안의 소문으로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라이안이 성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저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는 피하기까지 해서 라이안이 어정쩡하게 인사를 받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라이안이 성의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성 밖이 어수선해졌고 곧바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적들이 온다!”

“에드코르 제국의 타이탄들이 몰려온다!”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어라!”

라이안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며 창문을 통해서 단번에 성벽으로 날아올랐다.

라핀 후작의 집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던 귀족들 역시도 그러한 소식을 듣고 서둘러 성벽 위로 올라와 그것을 확인했다.

“드디어 오는군.”

라핀 후작은 서둘러 귀족들에게 명을 내렸다.

“지금 당장 성벽 위에 마법사단을 배치하고 케로틴 성의 성문 앞에 타이탄을 배치하시오!”

“알겠습니다.”

몇 몇 귀족들이 서둘러 그 명을 전하러 급하게 내려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케로틴 성의 성문이 열리며 3기의 타이탄들이 성문 앞에 진을 쳤다.

에드코르 제국의 타이탄들이 공격해 오면 마법으로 일차 공격을 하고 더 접근해 올 경우 타이탄들이 에드코르 제국의 타이탄들을 저지하려는 방법인 듯했다.

와이파른 백작이 미리 성벽 위에 올라와 있는 라이안을 보며 반가워했다.

“먼저 와 있었구나.”

“네, 회의를 하고 있다고 들어서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와이파른 백작이 라이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잘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타이탄들의 전투만 생각한다면 이쪽의 상황이 전적으로 불리하지요. 마법사단이 얼마나 잘해줄지 모르지만 그것이 먹히느냐 먹히지 않느냐에 따라 막고 못 막는 것이 정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흠… 네 생각은 어떻더냐?”

“글쎄요. 저 역시 두고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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