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갈천혁과 혁마소의 분노
라이안이 다시 함정을 파는 곳으로 가고 나자 와이파른 백작은 기사들을 불렀고 에드코르 제국의 진영에 기습공격을 시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위험한 임무를 내리는 와이파른 백작도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꼈으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은밀히 노크리 성의 성문이 열리고, 그곳으로 50여 명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나갔다. 병사들을 시키기에는 기동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사들이 기습공격을 하기로 했다.
그들이 말의 발에 두꺼운 천을 감싸고 에드코르 제국의 진영으로 서서히 다가가고 있을 때, 그들의 앞에 2명의 노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나타났다.
“자네들 보았는가?”
잠시 움직임을 멈춘 기사들이 서로 바라보며 자신들이 본 것이 헛것이 아닌지 확인했다.
“나도 보았다네. 분명히 하늘에서 떨어졌어.”
“자네도 그렇게 보았는가?”
“우선 저들로 하여금 우리의 기습공격이 들킬 수도 있으니 이곳에 잠시 자세를 낮추고 대기하자.”
“알겠네. 그런데 저 노인들은 어떤 자들이기에…….”
궁금증이 일어났으나 그것을 확인하기에는 목숨이 100개라도 모자랐다. 단지 저 앞에 도열한 수많은 병사들을 향해 걸어가는 2명의 노인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에드코르 제국 진영.
철저한 경비체제를 갖춘 병사들의 눈에 붉은 옷을 입은 노인과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웬 노인들이야?”
“그러게 말일세.”
“설마 히매인에서 저따위 노인들로 하여금 대 제국군을 상대하라고 보낸 것은 아니겠지? 큭큭큭.”
“하하하, 설마 미치지 않고서야 그러겠는가?”
몇몇 병사들이 웃으며 두 노인들을 조롱하고 있을 때 그들이 밝은 빛이 있는 곳으로 나왔고 얼굴이 드러났다.
그들은 바로 혁마소와 갈천혁이었다!
라이안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 복수를 위해 에드코르 제국으로 떠났던 그들이 이곳에 나타났던 것이다.
몇 명의 병사가 창을 들이대며 소리쳤다.
“이런 미친 늙은이들 같으니라고!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오는 것이냐!”
“미친것들, 미치려면 곱게 미칠 것이지!”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감히 우리 대 에드코르 제국군에 오다니 노망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구나!”
그 말을 들은 혁마소의 눈에서 순 식간에 혈광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병사들이 있는 앞으로 걸어갔다. 손으로 그들의 창을 살짝 걷어낸 한 노인의 입이 열렸다.
“너희가 에드코르구나.”
“이런 미친!”
슈아악!
한 병사가 혁마소에게 창을 찔러갔다.
턱!
하지만 혁마소는 찔러오는 창을 순식간에 잡아챘다. 병사는 그 창을 빼려고 온힘을 다 썼으나 끙끙대기만 했다.
“이! 꼼짝도 안 해… 끙!”
“건방진!”
“어억!”
그 순간!
퍽!
팽그르르르.
꽈당탕!
혁마소가 창을 자신 쪽으로 당기며 딸려오는 병사의 뺨을 살짝 치는 듯했다. 그런데 맞은 병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휘돌면서 날아가 한곳에 처박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니 이미 목이 돌아가 즉사한 듯했다.
다른 병사들이 이 어이없는 장면을 보고는 잠시 동안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다급히 소리치며 혁마소에게 달려들었다.
“이잇! 죽여랏!”
“이런 미친 늙은이가!”
점점 많은 수의 병사들이 몰려들었고 수많은 창들이 혁마소에게 날아오고 있었으나 혁마소의 얼굴은 이미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혈광을 내뿜고 있었다.
“똑똑히 듣거라! 내가 바로 십만 마교의 창시자인 천마니라! 천마지공!”
슈아아아악!
천마 혁마소가 손을 뻗자 그 손가락 끝에 핏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붉은 빛이 모이더니 일시에 병사들에게 쏘아져 나갔다.
“크악!”
“켁!”
“으악!”
혁마소에게 달려오던 20여 명의 병사들은 몸에 꿰뚫린 채 쓰러져 갔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 병사들의 비명소리를 들은 다른 병사들이 그곳에 수도 없이 몰려들며 소리쳤다.
“습격이닷!”
“기습이다!”
하지만 그러한 소란스러움은 자신들과 별개인 양 계속해서 에드코르 제국군 진영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는 혁마소와 갈천혁이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많은 병사들이 그들을 감쌌고, 그 수는 이내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멀리서 그것을 보고 있던 노크리 성의 기사들이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 대단한 것인지… 미친 것인지…….”
“자네들 보았는가? 저 노인의 손에서 나온 붉은 빛을?”
“너무 순식간이라 단지 그렇다고 느꼈을 뿐이라네.”
“나도 그렇군. 빛이 엄청난 속도로 뻗어나간 것 같더니 순식간에 쓰러지는 병사들이라니…….”
“마법사일까? 아니, 그것보다 그들은 무슨 일 때문에 에드코르 제국군에 단 두 사람으로 쳐들어간단 말인가?”
“지금 그거 나한테 묻는 말인가?”
말을 꺼낸 기사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대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보다 저 노인들이 에드코르 놈들을 더 크게 교란시킨다는 것이군…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원…….”
“우선 끝까지 살펴보는 것이 좋겠군. 저 노인들이 죽고 나면 우리가 또 다시 에드코르 놈들을 기습공격해서 교란시켜야만 하니.”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에드코르 제국의 진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기사들로서는 그들이 이미 인간의 틀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챠둠이 노크리 성과 에드코르 제국군을 모두 감시하에 두고서 살펴보고 있을 때, 챠둠 또한 혁마소와 갈천혁을 보았다.
“으음? 저것들이 저기 왜 갔지?”
하지만 역시 그 이상 신경 쓰지 않는 챠둠이었다. 자신의 가벼운 장난으로 인하여 애꿎은 에드코르 제국군이 갈기갈기 찢기고 있는 것을 모르는 챠둠이었다.
그때 타미르안이 그렇게 혼자말로 말하는 챠둠의 홀로그램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이보게 챠둠, 뭐 다른 게임은 없는가? 이제 보글보글과 스노우부르스는 질려 가는군.”
“그래? 그럼 이것을 한번 해보지 그래. 바로 귀무자라는 것인데 아마도 이것을 깨려면 며칠쯤 걸릴 거야.”
“그 게임은 재미있는 것인가?”
“지금까지 했던 것은 장난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허허허, 어서 그것을 주게나. 빨리 해보고 싶다네.”
“먼저 줄 것이 있지 않나?”
“흠… 알았다네, 지금 당장 내 보석의 백분의 일을 준다는 서류를 써줄 것이니 어서 그것을 할 수 있게 해주게나.”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귀무자라는 것은 보글보글과 같은 수준이 아니야. 그 실감도가 실제와도 같이 생생한 생동감을 주는 게임이라는 것이지. 그것으로는 안 되겠군.”
“아니, 자네 정말 이러긴가?”
“거래는 거래이지 않은가? 내가 그냥 하게 해준다고 했을 때 위대한 골드드래곤은 대가 없이는 그 무엇도 받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 타미르안 자네였어.”
“크음… 그럼 얼마의 가치를 원하는가?”
“후후후, 그것은 자네가 정했으면 하는군. 알다시피 난 그러한 게임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그 수를 나타내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지금 하게 해주는 귀무자의 가치는 타미르안 네가 매겨봐.”
타미르안은 재밌게 즐긴 다음 적은 가치를 주면 된다는 생각에 챠둠의 말을 서둘러 동의하였다.
“알겠네, 그러니 어서 그것을 하게 해주게나.”
“후훗, 입력시켜 놓을 테니 그곳에서 기다리게.”
타미르안은 서둘러서 조금 전 나온 방으로 블링크를 써가며 이동했다.
챠둠은 이미 게임폐인이 되어버린 타미르안에게 조금씩 보석과 진귀한 것들을 갈취하고 있었으니… 게임폐인이 되어버린 드래곤의 말로(末路)였다.
* * *
에드코르 제국군의 총사령관 움막에서는 귀족들이 모여서 심각하게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 함정이라는 것을 찾지 못하다니! 이를 어찌한단 말이오?”
“우리의 수가 얼마인데 그깟 함정을 무서워한단 말이오?”
“함정이 있다면 우리 군대의 피해도 만만치 않소! 앞으로 대륙을 평정할 우리이거늘 이런 작은 일에 병력을 잃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귀족들의 논쟁에 하이븐 후작이 나섰다.
“노리닌 황제폐하께서는 이 전쟁을 오래 끄는 것을 원치 않으시오.”
“음…….”
“흠…….”
황제라는 말에 모두 침음성을 흘리는 귀족들이었다.
“그럼 총사령관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한 귀족의 물음에 하이븐 후작이 귀족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함정이라는 것이 나도 거슬리기는 하나 어쩔 수 없소. 내일 해가 뜨면 노크리 성을 함락시킬 것이오.”
역시 귀족들도 그 길밖에 없음을 알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밖으로부터 소란스러운 소리와 비명소리가 섞여들어 왔고 한 기사가 움막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총사령관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습격입니다! 지금 우리 제국군이 도살당하고 있습니다! 어서 나와 보십시오!”
“뭣이!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냐!”
기사의 말을 들은 귀족들과 하이븐 후작이 황급히 움막 안에서 나와 밖을 보았다. 그들은 낯선 노인 2명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병사들과 기사들을 도살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헉!”
“저, 저럴 수가!”
천마가 혈광을 흘리며 손을 뻗었다.
“천마폭(天麻爆)!”
콰과과광!
천마 혁마소가 창안했던 장법이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펼쳐진 것이었다. 혁마소의 손에서 손과도 같은 강기가 쏘아졌고 그것에 닿는 땅은 여기저기 터져나갔다.
“크하하! 감히 너희가 나의 손자를 죽이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죽이리라! 모두 쳐 죽일 것이다! 크하하하! 천마삼검 제일식! 천마현신(天麻現身)!”
꽈과과과과광!
혁마소가 한 기사에게서 빼앗은 검으로 천마삼검을 펼치자 그의 검에서 수십의 강기가 쏘아졌고, 또 다시 여기저기의 땅과 병사들이 터지고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귀족들은 그러한 혁마소를 보고 중얼거렸다.
“이, 이런 일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악몽이야.”
“저것이 사람이란 말인가…….”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도 금빛의 커다란 손이 여기저기로 뻗어나가고 있었으니 바로 갈천혁이 소림의 무공인 대수인을 펼치고 있었다. 대수인을 맞은 기사들과 병사들은 모두 피를 토하며 튕겨나갔다.
“내 본래 피를 즐기지 않는다만! 오늘만은 참지 않을 것이닷!”
펑!
퍼벙!
“크악!”
“으악!”
“살려줘!”
그러한 비명소리에 드디어 정신을 차린 하이븐 후작이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저들도 사람이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활을 쏴라!”
하이븐 후작의 말에 수많은 병사들 중 활을 담당하는 병사들이 모두 활을 겨누었으나 차마 쏘지는 못했다. 그것을 보던 귀족중 하나가 그들을 독촉했다.
“무엇하는 것이냐! 어서 쏘지 않고!”
“하지만… 여기서 쏘게 되면 저희 병사들에게도 피해가 가게 됩니다!”
“상관치 말고 쏴라! 쏘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의 목을 벨 것이다!”
“크윽! 쏴라! 사정없이 쏴라!”
슈루루루룩!
슈루루루룩!
수백 발의 화살이 혁마소와 갈천혁에게 쏟아졌고, 그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황급히 이탈했다. 계속 그곳에 있게 된다면 자신들 역시 꼬치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흥! 그따위로 무엇을 한다고!”
타다다다다당!
타다다다다당!
하지만 수백 개의 화살들은 혁마소와 갈천혁의 몸에 닿기도 전에 화살촉이 깨지며 더 강하게 튕겨나갔고, 오히려 그것들을 피해야만 하는 병사들이었다.
“크아악!”
“크악!”
하이븐 후작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어이가 없었지만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모두 뒤로 물러나라! 병사들은 모두 뒤로 물러나라!”
혁마소와 갈천혁으로부터 모든 병사들이 공포를 느끼며 멀리 벗어났다.
혁마소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괴기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끌끌끌, 겨우 이정도로는 안 되지. 어서 덤비거라! 모두 죽여주겠다!”
하이븐 후작이 인상을 찡그리며 마법사들과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파이어기사단은 앞으로 나서라!”
“넵!”
“넵!”
두두두두두두두.
약 50여 명의 기사들이 엄청난 빠르기로 정렬하며 그곳에 나타났다.
“마법사단은 파이어기사단의 뒤에 정렬하라!”
“넵!”
“넵!”
타다다닥.
슈우우웅.
투둑! 투둑!
몇몇 마법사는 플라이마법을 이용해 날아서 왔고 몇몇은 거리가 가까웠는지 빠르게 달려와 파이어기사단의 뒤로 일사천리하게 정렬했다.
그것을 본 갈천혁이 웃으며 말했다.
“제법 행색을 갖추는구나. 후후후.”
그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손자를 잃은 슬픔에 냉소를 흘렸다. 그 말을 들은 혁마소도 괴기스럽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야 더 죽일 맛이 나지 않겠느냐? 끌끌끌.”
하이븐 후작은 눈앞에 있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는 몰랐지만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하이븐 후작은 파이어기사단이라면 자신아 있었다. 이들은 블랙섀도우 기사단처럼 암암리에 길러지지 않고 밖으로 들어난 자들로서 모두에게 헤르시안이 내려진 최고의 기사단이었기 때문이다.
“파이어기사단은 모두 헤르시안을 착용하라!”
차창! 차창!
차창! 차창!
붉은 빛이 도는 헤르시안을 착용하자 파이어기사단은 말 그대로 불타오르는 듯했다.
“마법사단은 마법을 준비하라! 훈련받은 대로 제2전투법으로 공격한다! 모두 공격!”
“와!”
“제국군 만세!”
“제국군을 위해!”
“에드코르 제국에 충성을!”
“와!”
“와!”
동시에 공격해 들어오는 파이어기사단에게 혁마소와 갈천혁이 하는 말이 있었으니.
“아주 지랄을 하는구나!”
“가소로운 것들!”
그들이 냉소를 흘리며 우습게보고 있을 때 파이어기사단의 뒤쪽에 있던 마법사단이 동시에 뛰어오르며 마법을 퍼부었다.
“파이어 볼!”
“플레어 랜스!”
생전 처음 보는 불의 공과 불의 창이 날아오자 잠시 당황하던 혁마소와 갈천혁이었다.
“으응?”
“아니!”
우선 그것들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이상 막기보다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그들이 위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들이 뛰어오를 줄 미리 예상했는지 마법사단의 몇몇 마법사가 교대로 뛰어올라 공중에 떠 있는 그들에게 또 다시 마법을 퍼부었다.
“아이스 볼!”
“아이스 애로우!”
“라이트닝 볼트!”
퍼버버버벙!
퍼버버버벙!
지지지지직!
혁마소와 갈천혁은 떠오르자마자 날아오는 수십의 마법을 몸에 맞았고, 그것을 보던 에드코르 제국군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환호했다.
“와! 물리쳤다!”
“우리가 이겼다!”
“이겼다!”
갑자기 들이닥친 노인들이 굉장한 능력으로 자신들을 공격했을 때는 그 공포에 서로 피하던 그들이 손을 번쩍 들며 그 공포로부터 벗어났음을 기뻐했다.
그때 뭔가 미심쩍은 하이븐 후작이 마법이 터지며 흘러나오는 연기를 보며 파이어기사단에게 소리쳤다.
“아직 그들이 어떤지 모른다! 파이어기사단은 그들이 떨어질 때 공격을 강행하라!”
“넵!”
“넵!”
역시나 그 순간! 아래에서 혁마소와 갈천혁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기사들에게 연기 속에서 강기의 다발이 쏟아졌다.
펑! 퍼벙!
서걱! 서걱!
“크악!”
“으악!”
“크아아악!”
상당수는 피할 수 있었으나 미처 그러지 못한 10여 명의 기사들은 그 빛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그리고 그 시체 위로 천천히 내려서는 혁마소와 갈천혁이었다.
“후후후, 요란하기만 할뿐 그리 강한 것이 아니었구나.”
“크그그, 갈가야 겁먹었었구나?”
“으윽! 누가 저딴 것에 겁먹었단 말이냐!”
“끌끌끌.”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는 혁마소의 웃음이 더욱 기분 나쁜 갈천혁이었다.
그들의 느긋함과는 달리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파이어기사단의 기사들은 헤르시안의 마나증폭기능이 없었다면 절대 그 공격을 피하지 못했을 것을 알기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라고 또 뒤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하이븐 후작도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웠다.
“어디서 저런 자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놀라움으로 어지러움을 느꼈던 하이븐 후작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스쳐가는 단어가 있었으니.
“헉! 설마! 그, 그랜드 마스터?!”
하이븐 후작이 설마하며 놀라고 있는 사이 마법사단이 또 다시 그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홀드!”
“파이어 웰!”
“익스플로전!”
혁마소와 갈천혁은 순간 뭔가 끈적거리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자신들의 몸을 둔하게 만들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그들의 발아래로부터 불의 장벽이 올라왔고, 익스플로전으로 인해 온몸 곳곳에서 무엇인가 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크흐흐, 이거 따뜻한 걸?”
“흠, 툭툭 치는 것이… 안마까지 되는구나.”
“그래도 끈적거리는 것이 거슬리는군. 챠앗!”
혁마소가 순간 기합성을 내지르자 주위로 광풍이 몰아쳤다. 불이 꺼지면 바로 공격하려고 대기하고 있던 파이어기사단도 그 기합성에 몸이 얼어붙음을 느꼈다.
“흠… 전이 더 좋았거늘…….”
갈천혁의 말이었다. 이들에게는 3서클마법인 파이어 웰과 5서클마법인 익스플로전조차 그저 따뜻하게 느껴지고 누군가 안마를 해주는 듯한 느낌밖에 줄 수 없었다. 이미 수화불침의 그들에게 불의 뜨거움은 아무런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야!”
“공격!”
“핫!”
파이어기사단이 피가 흘러나올 듯 이를 악물고 그들을 공격해 나갔다. 그러나 40여 명의 합공도 역시나 너무도 쉽게 막아내고 있는 그들이었다.
멀리서 그 장면을 보는 병사들에게는 파이어기사단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정작 공격을 당하는 자들은 꼭 정원에서 기분 좋게 꽃들과 춤을 추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사람의 팔과 몸뚱이가 사방으로 날아다녔으니 그것을 지켜보던 병사들은 공포에 몸을 떨었다.
“저것은 인간이 아니다!”
“맞아, 어찌 저것이 사람이란 말인가!”
“비, 빌어먹을… 우린 다 죽을 거야…….”
“크윽! 이 무슨 냄새지?”
근처에서 누군가 오줌을 지린 듯 역한 냄새까지 났다.
하이븐 후작은 급하게 통신마법사를 찾았다.
“지금 당장 수도로 연락을 넣어라!”
“알겠습니다!”
통신마법사가 수정구에 마나를 흘려보내자 그 수정구에서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곳은…….”
“지금 그럴 시간 없다! 난 하이븐 후작이다! 어서 요르민 공작각하를 모셔 오거라! 급하다!”
“에, 옙!”
잠시 후 곧바로 요르민 공작의 얼굴이 수정구로 나타났다. 자다가 나온 듯 잠옷차림으로 급하게 달려온 모습이었다.
“무슨 일인가! 하이븐 후작!”
“큰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가? 좀 진정하고 말해보게나”
“그랜드 마스터급의 이상한 자들이 나타나 저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뭣이! 지금 그랜드 마스터라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지금 제국의 군대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 자들이 왜 우리를 공격한단 말인가!”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타이탄은 아직입니까? 그들을 상대하려면 타이탄밖에 없습니다!”
“이런… 타이탄은 그곳으로 약 열흘 전에 떠났다네. 아직 하루나 이틀이 더 걸릴 것이네.”
“그럼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란 말입니까?!”
“이보게 하이븐 후작! 진정하고 군사를 물려 그들과 대화를 시도해보게나”
“크윽! 아, 알겠습니다.”
“내 타이탄 운송부대에 급히 알려 운송속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해 놓겠네. 최대한 버티게!”
요르민 공작의 말을 끝으로 통신이 끝이 났고 하이븐 후작은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하이븐 후작이 밖으로 다시 나왔을 때, 파이어기사단은 이미 반수 이상 주위에 쓰러져 있었다. 확인하지 않더라도 죽었으리라…….
“모든 군대는 뒤로 물러나랏! 파이어기사단과 마법사단은 뒤로 물러나라!”
파이어기사단이 경계를 풀지 않고 혁마소와 갈천혁을 바라보며 뒷걸음질로 황급히 물러섰다. 60만 대군과 단 두 사람의 대치상황이었다.
혁마소와 갈천혁의 뒤로 엄청난 숫자의 시체가 보였다. 그 수가 약 10만에 이르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빽빽이 모여 있는 병사들은 혁마소와 갈천혁의 손짓 한 번에 30여 명이, 칼질 한 번에 100여 명이 단번에 터져나갔으니 더 이상 설명해봐야 무엇하랴.
이미 기사들도 100여 명이나 희생되었고 파이어기사단조차도 이제는 20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60만이었거늘… 대 에드코르 제국의 60만 제국군이었거늘 어찌 단 2명에게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당한단 말인가!’
하이븐 후작이 속으로 한탄하였으나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혁마소와 갈천혁이 있는 곳으로 소리쳐 말했다.
“나는 에드코르 제국군의 총사령관 하이븐 드 간슬란이다! 너희는 어째서 우리를 공격한단 말인가!”
하이븐 후작의 말에 혁마소가 대답했다.
“끌끌끌, 어린놈이 싸가지가 없군. 그것을 모른단 말이냐? 크그그극, 정녕 모른다면 내 친히 말해주마! 얼마 전 너희는 히매인 왕국에서 스피어 마스터란 자를 죽이지 않았느냐! 그는 우리의 손자였다! 감히 우리의 하나뿐인 손자를 죽인 너희를 용서할 수 없단 말이다!”
이 무슨 말이란 말인가! 에드코르 제국군은 이 황당한 소리에 어안이 벙벙했다. 오늘 낮에 바로 그 스피어 마스터에게 이곳 부사령관이 목숨을 잃었는데 스피어 마스터를 죽였다는 이유로 공격한다고 하니 어찌 황당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이븐 후작도 그 어이없는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하고 있었다.
갈천혁이 앞으로 손을 뻗으며 혁마소에게 말했다.
“저깟 피라미들에게 물어봐야 무엇이 나오겠는가. 왕을 족쳐야지.”
갈천혁이 뻗은 손의 방향에서 갑자기 한 병사가 빨려오듯 갈천혁의 손으로 날아왔다. 고도의 허공섭물(虛空攝物)이었다.
“어어?! 으악!”
턱!
그 병사의 목을 쥔 갈천혁이 병사에게 물었다.
“너희의 왕은 어디에 있느냐?”
“끄어억!”
“말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목을 부러뜨리겠다.”
“끄어억! 소…소…….”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가 보구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있던 혁마소가 갈천혁에게 말했다.
“멍청한 갈가야, 손을 느슨하게 풀어줘야 말을 할 것 아니냐, 쯧쯧쯧.”
“크윽!”
혁마소나 할 법한 실수를 자신이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그 창피함에 얼굴까지 붉어지는 갈천혁이었다.
“크험, 그래 이제 말해라?”
갈천혁의 물음에 손이 풀렸음에도 병사는 말을 하지 못하고 오줌을 지렸다. 그리고 간신히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더러운 놈 같으니! 에잇!”
그러자 용무가 끝났다는 듯 오줌을 지린 그 병사를 다른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던져버리는 갈천혁이었다.
방향을 안 갈천혁이 혁마소에게 말했다.
“이딴 놈들보다 이놈들의 왕을 족치세.”
“끌끌끌, 그것이 더 좋군. 무엇이든 윗대가리들을 족쳐야지. 암 그렇고 말구.”
그러한 대화로 순식간에 하늘로 떠오르며 에드코르 제국의 수도로 날아가는 그들이었고, 그렇게 떠나가는 그들을 에드코르 제국군은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마지막 왕을 치러 간다는 말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하이븐 후작은 저들보다 자신이 만났던 스피어 마스터의 정체가 더욱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자이기에 드래곤의 수호를 받는데다가 그랜드 마스터가 나타나 그를 보호한단 말인가. 이 전쟁을 어찌 하라고… 크윽!”
그들은 지금 노크리 성을 함락해야 할 시점에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방금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간 자들의 손자인 스피어 마스터가 있다고 했다.
스피어 마스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죽여야 할 자이지만 그를 죽이면 또 다시 저들의 공격을 받아야 하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복잡한 심정의 하이븐 후작이었다.
“신이시어, 진정 우리 에드코르를 버리시나이까.”
하이븐 후작이 자신은 몰랐지만 정말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그 스피어 마스터가 살아 있다고 말했어야 했던 것이다.
* * *
지상에서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동안 라이안도 지하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어라? 이 기의 느낌은? 상당히 익숙한 건데?”
쿠구구구구.
그리고 곧 점점 강해지는 진동에 라이안이 파고 있는 지하 함정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와! 밖에서 아주 난리를 치고 있는데? 이정도면 절대 들키는 일은 없겠군. 도대체 어떻게 소란을 일으키기에 이 정도의 진동을 일으키는 것이지? 흠, 너무 많은 피를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무 것도 모른 채 지상의 소란스러움에 만족을 하며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라이안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에드코르 제국의 진영을 교란시키고자 했던 노크리 성의 기사들은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럴 수가, 벌써 해가 뜨는군.”
“도대체 저곳에 간 노인들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선은 돌아가서 이 상황을 백작님에게 알려야겠네.”
“그렇군. 어서 성으로 이동하세나. 우리가 할 일은 이미 사라진 것 같으니…….”
에드코르 제국의 진영을 교란시키려던 기사들은 아무 것도 한 게 없이 돌아왔다. 성 외벽에 있던 병사들은 에드코르 제국의 진영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똑똑히 보았다.
병사들은 히매인 왕국에서 출전한 기사들이 공을 세운 줄 알고 그들을 맞이했다.
“와!”
“히매인 왕국 기사단 만세!”
“히매인 왕국 만세!”
“우리 히매인 왕국의 기사들이 저렇게 강했다니. 자네 아까 멀리서 번쩍번쩍하는 거 보았는가?”
“보았다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에드코르 녀석들 아주 난리가 났더군.”
“몇 개의 빛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그 퍼버벙 하고 터지는 것이 아주 볼만하더군.”
“그런데 우리 교란작전을 위해 나간 기사들 중 마법사도 있었던가?”
“에이, 아무러면 어떤가? 에드코르 놈들에게 피해를 주고도 기사들이 저토록 멀쩡히 돌아왔으니 그것이 더 기쁜 것 아닌가?”
“하긴 그렇군.”
성으로 들어오는 기사들도 뭔가 어정쩡한 느낌이었고, 한편으로는 상당히 부끄러웠다. 자신들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기사들은 그렇게 자신들이 머무는 곳으로 이동했고, 몇몇은 총사령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사령관의 집무실을 찾았다.
“총사령관님! 임무를 마치고 온 기사들이 보고를 위해 뵙기를 청합니다!”
“그런가! 어서 들이게나!”
“들어가 보게나.”
“어험, 그럼 수고하게.”
자신들은 전혀 한 것이 없는데 모든 사람들이 소리높여 칭송하니 그들로서도 상당히 곤욕스러웠다.
집무실로 들어가자 와이파른 백작이 기사들을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아주 잘해주었네. 자네들이 이토록 잘해낼 줄은 정말 몰랐다네. 그래, 에드코르 진영을 그 정도로 혼란에 빠트렸다면 우리 쪽도 상당히 피해가 있었겠군?”
와이파른 백작은 기사들의 행색이 너무도 깔끔한 것이 조금 이상했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지저분한 것을 모두 닦고서 온 것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에드코르 진영의 소란스러움이 이곳까지 들릴 정도였으니 기사들의 피해도 막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지금 이곳에 온 4명의 기사들이 살아서 돌아온 기사들의 모두는 아닌가 싶은 생각에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부터 물은 것이었다.
“그것이… 우리 기사들의 피해는 전혀 없습니다.”
안쓰러운 표정을 짓던 와이파른 백작의 표정에 의아함이 들어찼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 쪽 사상자가 전혀 없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기사의 말을 들어가는 와이파른 백작의 표정은 수시로 변했고 점점 그 놀라움에 입이 벌어졌다.
“아니 그것이 정말인가? 전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군. 어찌 단 2명의 노인이 에드코르 제국의 정예 군사들을 쑥대밭으로 만든단 말인가?”
“믿지 못하시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리고 제 부족한 판단으로는…….”
“아니, 또 무엇이 있는가?”
“그것이 제가 보기에는 그들이 혹 전설 속에 나오는 그랜드 마스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 지금 그, 그랜드 마스터라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저희들 모두가 그들이 싸우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엄청난 소란스러움에 저희도 모르게 에드코르 제국의 진영으로 다가가게 되었었습니다. 저희가 본 장면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검을 사용하고 있었고 그 검에선 오러가 터져 나와 수십의 적들을 날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손에서조차도 오러가 뻗어 나왔는데 그 파괴력이 가히 경이로웠습니다.”
“그 말이 정녕 사실인가?”
제차 확인하려는 와이파른 백작의 말에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기사들이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곳에 있는 기사들 전부가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하니 와이파른 백작도 그 믿어지지 않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그런 일이…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왔단 말인가? 그랜드 마스터라는 존재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와이파른 백작의 말에 기사들이 모두 크게 놀라며 말했다.
“아니, 그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으음? 무엇을 말인가?”
“그랜드 마스터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것 말입니다.”
“지금 그랜드 마스터가 하늘에서 갑자기 뚝 하고 떨어져 에드코르 놈들을 잡아 죽였다고 말하고 있는가?”
“맞습니다! 정말로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져 내렸습니다.”
“헐, 이거 내가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으니… 과연 이 보고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이제는 눈앞에 있는 기사들이 자신을 놀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와이파른 백작이었다. 하지만 기사들은 기사들대로 그 존재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상당히 곤욕스러운 상태였다.
* * *
진영을 둘러보던 하이븐 후작은 참담함을 느꼈다.
여기저기 찢긴 시체와 완전히 뭉그러진 시체들이 즐비했다. 단 2명에게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한 결과였으니 그 마음이 어떻겠는가.
‘타이탄만 있었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타이탄이 절실해지는 순간이었으나 정작 필요할 때 없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산을 타고 올라오는 태양을 바라보던 하이븐 후작이 고개를 양쪽으로 흔들며 움막으로 들어왔다. 옆에서 그를 바라보던 귀족들도 어정쩡한 모습으로 하이븐 후작을 따라 들어왔다.
“어찌해야 합니까?”
“스피어 마스터는 노크리 성에 있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그를 죽였다는 이유로 우리를 공격했을까요?”
“그러게 말이오. 정말 이 어이없는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하이븐 후작이 귀족들의 말을 듣고는 자신이 짐작하던 것을 말했다.
“귀공들이 모르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소.”
“그것이 무엇입니까?”
“저희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라니요?”
모든 귀족들을 둘러보며 하이븐 후작이 자리에 앉았다.
“내 말해줄 것이니 우선 자리에 앉으시오.”
귀족들은 하이븐 후작의 말에 서둘러 자리에 앉았고, 모두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하이븐 후작이 말을 이었다.
“귀공들은 이번 전쟁을 내가 지휘를 맡게 된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오.”
“흠… 그것은 총사령관님께서 히매인 왕국에서의 임무를 부여받아 가셨을 때 스피어 마스터와 싸우시다 블랙섀도우 기사단을 잃으신 것 때문이 아닙니까?”
“바로 맞추었소. 그러한 이유 때문이오. 하지만 나도 어제서야 그가 살아 있었다는 것을 알았소. 내 검이 부족했던 이유였겠지만… 그래도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상처를 입었던 그가 죽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소.”
“아니, 그럼 그들이 우리를 공격했던 이유가 한치 앞에 그 스피어 마스터가 멀쩡히 살아있는 줄도 모르고 그랬단 말입니까?”
“아마도 그런 것 같소… 짐작이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하이븐 후작은 이들에게 차마 그 스피어 마스터를 놓친 이유가 드래곤 때문이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더 큰 혼란만 야기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시였고, 황제폐하의 명을 지켜야 하는 사명감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 귀족들 중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며 하이븐 후작에게 말했다.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말해보시오. 엘던 백작.”
엘던 백작이라 불리우던 귀족이 하이븐 후작에게 고개를 숙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 하실 것인지요? 우리는 현재 히매인 왕국을 점령해야 하며 그보다 먼저 노크리 성을 함락시켜야 합니다. 그러한 싸움에서 당연히 그 스피어 마스터가 끼어들게 되지 않겠습니까?”
“흠…….”
“으음…….”
모든 귀족들이 엘던 백작의 말을 듣고 침음성을 흘렸다.
“엘던 백작의 걱정은 스피어 마스터를 제거했을 경우, 또 다시 그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오?”
“맞습니다.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모르나 우리가 진짜로 그 스피어 마스터를 제거했을 경우 또 다시 습격을 당한다면 어떻게 대처할지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흠…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어째서입니까?”
“요르민 공작각하의 말씀에 따르면 지금 현재 수도에서 이곳으로 타이탄이 이송되고 있다고 하오.”
“오오!”
“오오……”
하이븐 후작의 말에 모든 귀족들의 표정이 환해지며 탄성을 내뱉었다. 그들도 타이탄이 온다면 괴물 같은 두 존재를 상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엘던 백작도 하이븐 후작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군요. 타이탄이라면 인간이 맨몸으로 상대할 물건이 아니지요. 그렇고말고요.”
“그들이 언제 또 다시 이곳으로 쳐들어올지는 모르나 내일이면 이곳에 타이탄이 올 것이오. 애초에 10여 기가 온다고 했었으니 그들이 멋모르고 우리를 공격한다면 큰코다칠 것이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저 노크리 성을 함락하는 것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을 것이니 귀공들도 그렇게 알고 노크리 성을 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주기 바라오.”
“어제는 하루 종일 서큐버스(몽환마족)에게 홀린 듯했지만 오늘에서야 정말 해볼 만하겠습니다. 하하하!”
“정말 그렇지요. 어제 일은 잊어버리고 어서 저 쥐새끼 같은 히매인을 칩시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약해졌던 자신들의 마음을 다잡았다.
다른 귀족들이 그렇게 마음을 굳건히 하고 있을 때도 하이븐 후작은 역시나 함정이라는 것이 거슬렸다. 게다가 첩자로부터의 연락이 두절되어서 불안함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 * *
한편 노크리 성에서는 라이안이 함정 만들기를 마치고 지하 굴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런 라이안을 팔튼과 그의 친구들인 헤인드 일행이 맞이했다.
“이제 전부 끝난 것인가?”
“응, 이제 저곳에 기름만 갖다 부으면 될 거야.”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데.”
팔튼의 걱정스러운 말에 라이안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팔튼. 저들은 우리를 공격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저들이 공격해오지 않으면 더 좋은 거 아니겠어?”
“그렇군.”
그 두 사람의 말을 듣던 중 에나가 라이안에게 말했다.
“라이안 오빠, 제가 안에 잠깐 들어갔을 때 그 공간이 장난이 아니던데요. 혹 먼저 무너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하, 지지대를 받치기는 했지만 에나의 말대로 무너질 수도 있기는 하지. 하지만 그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최대한 땅의 정령으로 버티게 하면 되니까.”
그 말에 모두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 것 같은 일도 왠지 모르게 라이안이 이야기하면 다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청난 크기의 함정에 노크리 성에 있는 모든 기름을 다 쏟아 부어졌다.
어차피 오늘 에드코르 제국을 막지 못한다면 그 이후에는 히매인 자체가 넘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지막 저지선인 스피린 영지가 있기는 했으나 겨우 한 영지가 제국의 힘을 버티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와이파른 백작도 함정이 걱정이 되었는지 멀리서 몇몇 기사들과 함께 라이안이 있는 곳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오셨습니까. 총사령관님!”
“총사령관님을 뵙습니다!”
라이안과 팔튼,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와이파른 백작에게 인사를 했다. 역시나 기사들과 함께 있는지라 호칭을 붙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 준비는 완벽히 되었느냐?”
와이파른 백작의 물음에 라이안이 대답했다.
“예, 지금 병사들을 시켜 기름까지 모두 쏟아 부었습니다. 이제 저곳을 매몰하고 성안에서의 방비만 철저히 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보여 집니다.”
“그렇구나, 수고가 많았다.”
와이파른 백작의 얼굴에서 근심을 발견한 라이안이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물었다.
“혹 근심이 있으신지요?”
“흠… 마법부대와 타이탄이 올 때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는구나. 우리 정보에 따르면 에드코르 제국은 8기 이상의 타이탄을 발굴했다고 알려져 있단다. 물론 더 많은 수의 타이탄을 발굴했겠지만… 저들이 타이탄을 이용해서 쳐들어온다면 성의 문도 그리 오래 버티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수도에 마법통신을 넣었더니 출발하기는 했다고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그렇군요.”
라이안도 근래에 들어서 그 타이탄이라는 것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타이탄은 그 옛날 마법이 가장 발달했던 마도시대 때 어느 한 신의 모습을 따서 만든 거인병기라 했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책을 통하여만 알려진 것이다.
모두는 그것을 전설이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으나 에드코르 제국에서 우연히 던전을 탐험하면서 거인병기 타이탄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와이파른 백작의 걱정대로 본래 타이탄의 이송 시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이 히매인 왕국의 왕성에서 며칠 전 일어났었다.
“지금 당장 타이탄을 최전방인 노크리 성으로 이송시켜야 하지 않겠소!”
크호른 왕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쳐 말했지만 귀족들의 반발도 상당했다.
“국왕전하, 노크리 성에만 전력을 집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됩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라핀 후작!”
라핀 후작! 그는 바로 에드코르 제국의 요르민 공작과 내통하고 있던 자다. 현재 6서클 마스터의 궁정마법사를 맡고 있는 그가 모든 것을 저지하고 있었으니 지원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견고한 노크리 성이라고는 하나 결국은 에드코르 제국의 대군에 의하여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니! 그러니 지금 당장 노크리 성으로 서둘러 지원을 해야 하지 않겠소!”
“그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국왕전하.”
“허어, 답답하구려. 속 시원하게 그 이유를 말해보시오.”
“저뿐만 아니라 모든 귀족들의 일치하는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리 지원을 잘해준다고는 하나 노크리 성이 과연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조만간 무너지겠지요.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옵니다. 에드코르 제국의 대군이 에드코르 제국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들은 군량미의 부족을 느낄 것이며, 혹독한 추위에 점점 약해질 것이옵니다. 노크리 성 이외에 케로틴 성도 있으니 다음 방어선에 전력의 집중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되옵니다.”
“아니, 그럼 지금 노크리 성에 있는 군사들을 모두 죽이자는 말이오?!”
“그것만이 우리 히매인 왕국이 살 길이옵니다. 그리고 스피린 영지의 군사들도 서둘러 케로틴 성에 배치시키는 것이 옳을 듯하옵니다.”
크호른 왕은 왕의 권위는 항상 지키는 자였으나 그 또한 겁이 많은 자였다. 모든 병력을 노크리 성으로 집중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혹시나 하는 생각이 있었으니, 라핀 후작의 말대로 노크리 성이 무너지게 된다면 자신이 피할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왕의 잘못된 판단과 귀족들의 비협조에 의해 이 위급한 전시 상황에 노크리 성으로 가는 지원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마법부대와 타이탄이 노크리 성으로 지원을 가기로 결정이 나기는 했으나 그 시기가 더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에드코르 제국보다 하루나 지체되게 생겼으니 이 또한 노크리 성의 위기였다.
* * *
에드코르 제국의 진영에서는 서둘러 출전을 준비했다. 바로 오늘이 결전의 날이기 때문이다.
하루 사이에 에드코르 제국의 진영은 피곤에 지친 병사들로 가득했다. 갑자기 나타난 스피어 마스터로 인해 죽은 에드먼드 후작과 밤이 되자마자 쳐들어온 2명의 절대자들.
하지만 곧 타이탄이 온다는 말에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가 권토중래(捲土重來)하는 병사들이었다.
총사령관인 하이븐 후작의 명령으로 서서히 진군을 하던 전 군은 가장 앞에 선 하이븐 후작의 손이 올라가자 일제히 진군을 멈추었다.
엘던 백작이 의아한 듯 하이븐 후작에게 다가왔다.
“총사령관님, 무슨 일이신지요?”
“아무래도 난 그 함정이라는 것이 아직도 거슬리는군.”
“하지만 그렇다고 지체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엘던 백작, 그 함정이라는 것이 어떤 특성의 함정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땅을 팠다고 했으니 무엇인가 땅이 내려앉거나 그러한 것이 아닐 런지요?”
“그렇지? 기껏 땅을 팠다고 해도 우리의 진군 속도를 늦추는 수단밖에 안될 것이거늘.”
“그렇지요. 기껏해야 진군속도만 늦출 수 있을 뿐 그것으로 우리에게 큰 피해를 주기는 힘들지요.”
“흠, 그렇다면 갑자기 나타났다는 이상한 물건은 무엇이란 말인가. 여하튼 우선 약간의 기마병을 동원해 전진할 땅을 검사했으면 좋겠군.”
“어제도 수색대를 보내어 이미 검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옛 말에 아무리 견고한 다리라도 밟아보고 지나가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조심해서야 나쁠 것이 없다네.”
“알겠습니다. 우선 소수의 기마병으로 하여금 노크리 성으로 접근하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이븐 후작에게서 또 하나의 지시를 받은 엘던 백작이 기마병에게 명을 내렸다.
“제1기마대와 제2기마대는 앞으로 나와라!”
“하!”
“하!”
일제히 동시에 큰소리를 내며 신속정렬하게 움직이는 기마대였다. 그들이 대군의 앞으로 이동하자 엘던 백작이 말을 타고 그들의 앞으로 이동했고 이내 소리쳐 명령을 내렸다.
“적들이 함정을 팠다는 정보가 있다. 어떤 함정인지 모르니 너희가 먼저 진군하여 함정의 특성을 알아오라!”
말이 좋아 함정의 특성을 알아오라는 말이었지 결국은 기름을 지고 불에 뛰어들라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상당히 훈련이 잘 되었는지 그 누구도 그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그 명령을 반드시 수행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기마대였다.
“하! 맡겨만 주십시오!”
“너희의 건투를 빈다! 출진하라!”
“출진!”
“와!”
“와!”
기마대는 넓게 일렬로 서더니 노크리 성으로 진격했다.
성의 외벽에서 적 기마대의 행군을 바라보는 와이파른 백작은 입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것을 느꼈다. 행여나 저들만의 진격으로 함정이 무너지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걱정스러움에 옆에 있던 라이안에게 물었다.
“저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로구나. 혹 저들의 움직임으로 함정이 무너지지는 않겠느냐?”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약하게 만들지는 않았으니까요. 저 정도는 충분히 버틸 것입니다.”
“흠…….”
라이안을 믿고 있는 와이파른 백작이었으나 그래도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기마대가 상당히 가까이 오자 팔튼이 명령을 내렸다.
“적들이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화살을 쏜다! 준비하라!”
“넵!”
“넵!”
성벽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자신들의 옆 한쪽에 놔두었던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다.
“명이 있을 때까지는 화살을 쏘지 말라!”
“대기하라!”
팔튼은 예리한 눈으로 기마대의 거리를 재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소리쳐 명을 내렸다.
“지금이다! 쏴라!”
“와!”
“와!”
슈수수수수숙!
일제히 날아오는 화살에 몇몇 기마병이 쓰러졌다. 대부분의 화살들이 기마병들의 갑옷에 튕겨졌으나 갑옷의 이음새에 파고든 화살로 인해 쓰러지는 기마병들도 상당수 늘어갔다.
“퇴각하라! 퇴각하라! 이정도면 충분하다! 퇴각하라!”
제 1기마대의 기마대장이 서둘러 퇴각명령을 내렸고 그들이 물러가는 것을 본 노크리 성의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에드코르 제국의 진영에서 하는 행동을 본 와이파른 백작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들기 시작했다.
“저…저……!”
에드코르 제국의 마법부대가 플라이마법으로 하늘로 솟구치더니 땅의 여기저기로 마법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라이안도 그것을 보고 급히 땅의 정령을 불렀다.
“노에스! 소환!”
순식간에 갈색의 기운이 모이더니 땅의 상급정령 노에스가 나타났다.
“계약자여, 나를 불렀는가.”
“노에스! 지금 저기 보이는 곳의 땅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텨줘! 어서 빨리!”
“알겠다. 계약자여.”
노에스의 갈색 기운은 성벽을 타고 내려가 땅에 닿자마자 퍼져 나갔다.
퍼버버벙!
에드코르 제국의 마법부대가 날려 보낸 마법들이 땅에 퍼부어졌고 엄청난 소음이 들렸다. 하지만 땅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견고한 땅인 듯 마법부대의 마법에 별로 큰 파임이 없을 정도였다.
이것이 바로 하이븐 후작이 엘던 백작에게 시킨 두 번째 지시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찌 알았겠는가. 상대편에는 땅의 상급정령이 있다는 것을.
엘던 백작이 먼지가 걷히고 난 후의 땅을 보며 하이븐 후작에게 말했다.
“총사령관님, 이곳의 땅은 상당히 견고한 듯 보여집니다. 저들이 함정을 팠다고 하여도 우리에게 그리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짐작됩니다. 그리고 기마대가 진군한 결과 우리 앞쪽의 땅에는 전혀 함정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나도 보았다네. 그럼 이제는 진군을 해도 되겠군. 어서 공격명령을 내리게나.”
“드디어 시작이군요. 알겠습니다.”
엘던 백작이 앞쪽으로 나서며 마법부대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마법부대는 훈련받은 대로 마법을 난사하여 성의 문을 부숴라!”
“넵!”
200여 명의 마법사들이 모두 기마대의 말 뒤에 타고 노크리 성으로 진군했다.
노크리 성에 있던 그 지휘관들과 병사들은 또 다시 소수의 병력만이 공격해오자 인상을 찡그렸다. 함정을 써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또 기마병을 보내는군. 이미 확인은 다 했을 것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도대체 무슨 속셈일까요?”
“흠…두고 보면 알겠지…….”
노크리 성의 어느 한쪽에서 간테츠 백작과 나머지 귀족들에게서 걱정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그들도 라이안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었지만 지금 현 상황은 그가 만든 함정에 사활을 걸어야만 했으니 어찌 걱정이 되지 않았겠는가……
라이안은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눈에 기를 집중하여 에드코르 제국의 진영까지 바라보았고, 기마대의 뒤에 마법사들이 타고 있는 것까지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흠… 저런 방식으로 공격을 하는군. 누가 훈련시켰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전략을 쓰는데?”
팔튼이 처음 방어했던 방식으로 병사들에게 화살에 시위를 걸도록 하려고 하는 것을 라이안이 말렸다.
“모든 병…….”
“팔튼! 기마병들의 뒤쪽에 마법사들이 탔어! 모두 공격에 대비해 몸을 수그리도록 지시해!”
“헉! 기마병들의 뒤에 마법사들이 탔단 말인가!”
“이제 곧 공격할거야! 어서!”
라이안의 말을 들은 팔튼이 서둘러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모든 병사들은 몸을 숙여라! 적들이 마법공격을 해온다!”
팔튼의 말에 병사들도 그 의미를 깨닫고 얼른 몸을 수그렸다.
현재 마법부대가 도착하지 않은 노크리 성으로서는 에드코르 제국의 마법공격을 막을 여력이 없었다. 와이파른 백작도 라이안의 말을 듣고 함정을 발동시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라이안이 손을 앞으로 내밀더니 말했다.
“이러면 마나의 소비가 너무 심한데… 쳇! 어쩔 수 없지. 물의 정령 엔다이론 소환!”
라이안의 말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헛바람을 삼키며 놀라워했다. 와이파른 백작도 그것을 보고는 하나의 희망이 생겼다.
“물의 상급정령이군!”
“헉! 엔다이론!”
“이럴 수가!”
“어찌 그런!”
“왜? 왜? 뭐 때문에 그러는가?”
몇몇 기사들과 병사들이 놀라워하고 있을 때 지식의 폭이 짧은 한 병사가 그 옆의 병사에게 물어왔다.
“자네는 뭐하던 사람이기에 그것을 모른단 말인가?”
“나? 난 용병이었는데?”
“이런 멍청한! 용병일 하다가 저승 갈 친구로군! 엔다이론이라면 바로 물의 상급정령이란 말일세. 공부 좀 하고 살게!”
“헉! 물의 상급정령!”
그들의 눈에도 존재감이 강한 엔다이론이 약간 흐릿하게 일렁거릴 정도로 보였으니 그 놀라움은 더욱 컸다.
“계약자여… 나를 불렀는가…….”
라이안은 여신 같은 모습인 에다이론의 말을 듣고 그에게 부탁을 하였다.
“응, 엔다이론. 지금 저기 보이는 저들이 마법을 날려 오면 이곳 성벽에 물의 장막을 펼쳐주길 바라는데 할 수 있겠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모든 병사들이 엎드려서 라이안만 쳐다보고 있을 때 근처에 다다른 기마대에서 마법부대들이 일제히 플라이마법으로 떠올라 마법을 퍼부었다.
“파이어 볼!”
“익스플로전!”
“매직 애로우!”
200여 명의 다다르는 마법사들이 쏘아내는 마법들은 하나로 뭉쳐 날아오는 빛처럼 노크리 성을 향해 퍼부어졌다.
“지금이야! 엔다이론!”
라이안의 말에 엔다이론이 바람을 불 듯 불자 엔다이론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물줄기가 흘러나와 성벽 전체를 감쌌고, 마법부대의 마법들이 엔다이론이 처논 물의 장막에 부딪치며 엄청난 굉음을 냈다.
콰과과과과과광!
물의 장막은 날아온 마법들과 상쇄되어 순식간에 사라져 갔고 물과 불이 만난 곳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수증기에 안개가 형성될 정도였다.
마법부대의 마법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물의 장막을 보며 몹시 놀라워했다. 개다가 자신들의 모든 마법까지 막아냈으니 이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저럴 수가!”
“적들에게 상급 물의정령이라도 있단 말인가!”
멀리서 그 장면을 목격한 하이븐 후작도 지금 자신이 본 장면이 사실인지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이럴 수가! 히매인 왕국에 상급 정령사가 있었다니!”
마법사들이 또 다시 마법을 퍼부었고 라이안은 계속해서 엔다이론을 이용하여 그것을 방어해 나갔다.
마법사들은 50명씩 교대로 떠올라 성벽을 공격하며 상급 정령사가 지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예상대로 엔다이론이 계속해서 물의 장막을 만들 때마다 라이안의 몸에서는 서서히 마나가 줄어들고 있었으니 몇 번의 공격이 더 이어진다면 라이안이 지칠 상황이었다.
“크윽! 저것들이 언제까지!”
있는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라이안을 옆에서 보던 병사들이 오히려 자신이 버티고 있는 양 이빨을 깨물며 온몸에 힘을 줄 정도였다.
“라이안 님! 힘내십시오!”
“라이안 님! 힘내십시오!”
병사들이 라이안을 응원해오자 오히려 밖에서 마법을 쏘아 보내던 마법사들이 그 기세에 눌릴 정도였다. 마법사단장조차 이제 더 이상 마법을 쓸 여력이 없어 할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괴물 정령사 같으니라고! 크윽! 마법을 아직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남아 있느냐?”
“이젠 무리입니다! 더 이상 마법을 사용했다간 모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입니다!”
“젠장!”
마법사단장이 손을 흔들자 마법사단 전체가 후퇴를 시작했다.
“크억! 헉헉… 엔다이론, 이제 그만 돌아가. 고마웠어.”
“알겠다. 계약자여.”
엔다이론을 보내자 그나마 겨우 버티고 있던 라이안이 털석 주저앉아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와이파른 백작고 팔튼이 라이안에게 서둘러 다가왔다.
“괜찮으냐?”
“라이안! 괜찮은가?”
“응, 괜찮아. 겨우 버틸 수 있었네. 지독한 놈들, 치사하게 번갈아 가면서 마법을 퍼붓다니…….”
라이안의 말에 팔튼이 라이안을 쳐다보았다.
“자네도 정말 대단했었네. 마법사단을 단 혼자의 힘으로 막아낼 줄이야.”
지금 같은 상황은 라이안이 아니었다면 꿈에도 상상하기 힘든 일임을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현재 제국에 있는 물의 정령사는 초급마스터 정도의 마나를 가지고 상급 정령을 겨우 몇 번 사용하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상당량의 마나를 되찾은 라이안은 이미 마스터 최상급의 마나를 소유하고 있었으니 그가 아니라면 그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라이안이 일어나려고 하자 팔튼이 서둘러 라이안을 부축했다.
“난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
“그러게나. 저들도 바로 공격해 올 것 같지는 않으니…….”
이미 에드코르 제국의 마법사단도 상당히 지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팔튼이었다. 그러니 마법공격이 더 이상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기에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와이파른 백작도 서둘러 라이안이 쉬기를 권고했다.
“안색이 무척이나 안 좋구나. 우선 방으로 가서 좀 쉬거라.”
“네, 알겠습니다. 그리 오래 쉴 필요는 없으니 적들이 공격해 오거든 서둘러 불러주세요.”
“알겠다. 내 그리 하겠다.”
팔튼의 부축을 받으며 성벽에서 내려가는 라이안이 무척이나 고마우면서도 안쓰러운 와이파른 백작이었다.
“저 아이에게 모든 짐을 지우다니… 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목숨을 걸고 히매인 왕국을 지키기 위해 솔선수범하여 이곳에 왔으나 정작 자신이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에 안 와이파른 백작은 약간의 회의를 느꼈다.
팔튼은 자신이 쉬고 있던 방으로 라이안을 안내했다.
“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일을 해. 팔튼.”
“정말 괜찮겠는가?”
“알잖아. 이쪽 세계에서는 너와 나만이 가지고 있는 심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렇군. 그럼 어서 금방 털고 일어나게나.”
“훗, 그래. 난 너와는 달리 상당히 좋은 심법을 가지고 있거든? 그러니 금방 소비한 마나를 채울 수 있어. 어때? 부럽지?”
라이안의 말에 팔튼이 정색하며 말했다.
“헉! 아니네. 난 그렇게 피까지 토하면서 좋은 심법을 배우고 싶지는 않군. 지금 있는 것으로도 만족한다네.”
그렇게 말하며 두 손을 흔드는 팔튼이었고, 라이안은 손을 이마에 대며 한숨을 쉬었다. 팔튼은 아직도 심법 자체가 피를 토하며 수련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선 그건 나중에 말하고 난 이만 운기를 해야겠어.”
“으응? 그리하게나. 난 이만 일을 보러 가겠네.”
무엇인가 의문점이 들었던 팔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방문이 닫히자마자 바로 반지에서 챠둠의 음성이 들렸다.
“주인님, 왜 그리 힘들여 가면서까지 이곳을 보호하는 것이죠?”
“왜기는? 여기에 내 친구들이 다 있잖아. 그들을 도와주려고 그러는 것이지.”
“친구분들을 도와주시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굳이 주인님께서 무리를 해가며 조금 전 같은 일을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후훗, 그렇지. 챠둠이 딱 한 번만 힘을 써준다면 지금 노크리 성 밖에 있는 저들을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겠지.”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지요?”
챠둠은 라이안이 너무 무리하는 것에 대하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흠, 그것은 뭐랄까… 현재 포크레인과 드릴머신의 존재도 저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잘 둘러대면 누구나 믿을 수 있게 설득이 가능해. 하지만 네가 광선포를 사용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에드코르 제국의 멸망? 사람의 죽음? 후훗, 난 왜 그런지 잘 모르지만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죄책감이나 그런 것은 없어. 하지만 내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게 될까? 절대자? 신? 아직은 내 주위사람들이 너라는 존재가 나의 조력자라고만 생각하고 있을 거야.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사실이고. 그리고… 너무 멀어지잖아, 그러면. 내가 저들과 너무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잖아.”
라이안은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이 가장 두려웠던 것이다.
“무슨 말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너무 큰 힘을 드러내서 일을 진행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겠죠? 그렇죠?”
“무슨 말인지 모른다더니? 다 알고 있으면서.”
“서둘러 운기를 하십시오. 저들이 곧 또다시 공격해 올 것입니다.”
“아! 그렇군. 그런데 저들을 어떻게 끌어들이지? 계속 마법으로만 공격하면 어떻게 하지?”
“적들을 유인하면 되지 않을까요? 오지 않는다면 미끼를 던져 끌어들이면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어떠한 미끼를 쓸지도 문제지만 말이죠.”
잠시 턱에 손을 대고 있던 라이안이 이상한 웃음을 흘렸다.
“으흐흐흐흐.”
“왜… 왜 그러시는지요?”
“으흐흐흐흐”
“주, 주인님? 괜찮으신가요?”
“아주 재밌는 게 떠올랐어. 으흐흐흐.”
“흠?”
“후훗, 여하튼 챠둠 네가 나서서는 절대로 안 돼. 그러면 너무 재미없지 않겠어?”
“재미라…….”
챠둠은 어쩌면 라이안이 이 상황을 하나의 놀이로 즐기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더욱 재미있게 즐기도록 도와주는 것도 챠둠의 의무라면 의무였다.
챠둠과의 대화를 마치고 서둘러 운기에 들어가는 라이안이었다. 바닥에 앉아서 눈을 감고 서서히 혈기공을 운기했다.
그러자 역시나 혈기공을 운기할 때마다 나타나는 반응이 있었으니, 방 안에 서서히 조금씩 소용돌이가 휘돌았고 주위에 있던 마나들이 요동치며 라이안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마스터급에 오른 팔튼은 순간 느껴지는 귀감에 계단을 오르다가 멈춰 서서 뒤를 바라보았다.
“굉장한 마나로군, 라이안.”
팔튼은 라이안을 생각하며 이전 날에 대하여 회상했다. 그리고 그 때 라이안을 만나게 해준 신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라이안은 지금 현재 가장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며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자체가 너무도 뿌듯했다.
“나도 더 노력해야겠군. 어라이안을 따라잡으려면…….”
그리고 자신의 목표이기도 했다.
팔튼은 성벽으로 나가 멀리 에드코르 제국 진영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와이파른 백작이 인기척을 느끼며 말했다.
“라이안은 어떠냐?”
“금방 올라올 것입니다.”
“그렇구나. 정말 대단한 아이를 친구로 두었구나.”
“그렇죠. 정말 대단한 친구이지요.”
와이파른 백작의 말에 대답하는 팔튼에게서 힘이 느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