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라이안의 함정
와이파른 백작의 말에 그곳에 있던 팔튼과 라이안, 그리고 헤인드 일행이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후 노크리 성 총사령관의 집무실에 라이안과 팔튼, 그리고 그의 친구들 모두가 모여 앉았다.
“자네가 바로 나치키 영지에 나타났었다고 하던 그 스피어 마스터군.”
와이파른 백작의 말에 팔튼이 입을 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도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나치키 영지에서 나타났다던 마스터급이 둘로 되어 있더군요.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사실입니다. 그 누구도 몰랐겠지요. 그들이 한 사람일 줄은요.”
“뭐라? 그렇다면 피스트 마스터라고 알려진 자 또한 이친구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대단한 친구이지요.”
“허허허, 정말 너의 말대로 대단하구나. 하나도 도달하기 힘든 경지를 둘이나 이루다니…….”
그 말에 라이안이 쑥스러움을 느끼며 말했다.
“하하, 이거 너무 띄워주니 부끄럽습니다.”
“허허허, 사실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닌가? 팔튼이 마스터급에 들어선 것도 모두 자네의 가르침이라고 하더군.”
“아닙니다. 모두 팔튼이 스스로 노력한 결과이지요.”
“팔튼이 참으로 겸손한 친구를 두었구나.”
팔튼은 라이안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싶었으나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지를 몰랐다.
“라이안에 대하여 그 능력만 따져본다면 수를 셀 수도 없을 것입니다.”
팔튼의 말에 와이파른 백작이 라이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보게, 라이안. 이번 전쟁에서 우리를 좀 도와주면 안 되겠나? 내 아들인 팔튼을 들먹이려고 이러는 것은 아니네만… 지금 우리 히매인 왕국은 상당히 좋지 않은 국면에 처해 있다네. 자네가 도와준다면 비록 승리는 아니지만 왕성까지야 지켜내지 못하겠는가. 내 이리 부탁함세.”
한 왕국의 총사령관인 그가 라이안의 손을 잡으며 간절히 부탁했다.
팔튼이 에드코르 제국에 일기토를 신청할 때 그 역시도 성 안에서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와이파른 백작도 라이안의 신위를 보았던 것이다.
와이파른 백작의 눈에는 그가 마치 하늘에서 자신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강림한 신인 듯했다. 그래서 자신의 지위나 체면을 따지지 않고 라이안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아닙니다. 부탁이라니요. 제가 당연히 취해야 할 행동을 부탁이라고 말씀하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라이안이 팔튼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게 있어서 팔튼은 목숨과도 같은 친구이지요. 아니 지금 이곳에 있는 저의 친구들을 위해서라면 저는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이들의 나라가 아닙니다. 제 친구의 나라는 곧 제 나라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부탁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라이안의 말에 감동 받은 그의 친구들도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들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보십시오. 모두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이곳에 모인 것입니다.”
“고맙군, 정말 고마워. 자네가 도와준다고 하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군 그래. 허허허!”
“하지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청이라니? 그래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앞으로 저를… 그리고 이곳에 있는 저희 모두를 다 같은 자식으로 대하여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허허허! 그 말 참으로 듣기 좋은 소리구나. 그래! 좋아! 아주 기분 좋구나! 우리를 향해 칼을 겨눈 에드코르 놈들이 저 앞에 있으나 내게 이토록 든든한 아들과 딸들이 생겼으니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느냐. 내 앞으로 너희를 팔튼과 같이 허물없이 대할 것이야. 암! 그렇고말고! 허허허!”
“감사합니다. 아버님!”
“가, 감사합니다. 아버님!”
“그래, 이렇게 좋은날 저 나쁜 놈들이 밖에 있으니 마음대로 기뻐하지도 못하는구나. 이 상황을 어찌해야 좋을지…….”
그 말을 들은 라이안이 와이파른 백작에게 물어왔다.
“적들의 병력이 어떻게 되는지요?”
이미 라이안을 아들같이 생각하게 된 와이파른 백작이 라이안에게 말을 편히 했다.
“첩지가 날아오기로는 기사가 500에 병사들만 60만에 이른다고 하는군.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이란다…….”
“그렇다면 우리의 병력은 어찌되는지요?”
“그것이… 우리의 병력은 기사가 100에 징집한 병사가 겨우겨우 10만을 채운 상태지…….”
“아버님, 그렇다면 우리의 병사는 반수 이상이 오합지졸이라는 말씀이시군요?”
라이안의 말이 정곡을 찔린 듯 와이파른 백작이 침음성을 내며 말했다.
“크흠, 그런 셈이지. 가장 큰 걱정이 바로 기사들이란다. 그들 중 상당수가 헤르시안을 착용하고 있을 것이니 비슷한 실력의 우리 기사들이라고 해도 싸워봐야 낙엽처럼 쓰러질 것인데…….”
그 말을 듣고 있던 라이안이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절대로 이곳의 병력으로는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그렇다면 기습이나 함정을 파야 하는데…….’
“앗! 그 방법을 쓰면 되겠군!”
와이파른 백작이 라이안의 말에 놀라며 물었다.
“뭔가 묘안이 있느냐?”
“으흐흐흐, 두고만 보십시오. 으흐흐흐.”
라이안이 눈과 입 꼬리를 올려 음흉하게 웃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온몸에 소름을 돋는 것을 느꼈다.
“아니, 도대체 어떤 방법이기에…….”
그러자 라이안이 자신의 반지 중앙을 누르며 말했다.
“어이, 챠둠! 듣고 있냐?”
“누,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가?”
“라이안?”
“라이안 오빠…….”
모두 라이안이 순식간에 정신이상자가 된 듯한 느낌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하지만 곧바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반지에서 사람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모두가 그 놀라움에 경악을 했다. 라이안은 그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너 뭐하고 있냐? 바쁘냐?”
“네, 저 바쁩니다.”
“으잉? 뭐 하고 있기에 바쁘다고 하는 거야?”
“지금 타미르안이 만든 타이탄과 제가 만든 로봇 중 누구의 작품이 더 강한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크윽! 겨우 장난감놀이 하느라고 바쁘다고 하는 거야?”
반지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와이파른 백작은 혼란스러운 정신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지, 지금 반지에서 나오는 말이 무엇이란 말인가? 타…타이탄을 만들었다고! 아니 누가 있어 마도시대에나 존재했던 유물을 만든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믿을 수 없는 소리에 와이파른 백작은 정신을 가다듬고 그 소리에 집중했다.
“뭔가 급하게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챠둠의 귀찮다는 말에 라이안이 눈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 아주 급한 일이 있으니까 지금 당장 그거 그만둬.”
“말씀하십시오.”
“중장비 같은 공사 장비를 만들려면 얼마나 걸리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길게 잡아야 2시간이면 제작이 끝날 것입니다.”
“그래? 그럼 땅을 파고 들어갈 수 있는 드릴머신 같은 거랑 포크레인을 만들어서 전송해봐. 현재 내 위치 알고 있지?”
“네, 현재 주인님의 위치를 인식했습니다. 2시간 뒤에 그곳으로 워프전송시키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럼 하던 거 해라.”
그렇게 라이안과 챠둠의 통신이 끝나자 와이파른 백작과 모든 친구들이 한꺼번에 모여들어 물어왔다.
“아니, 지금 말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타이탄을 만들다니! 그것이 사실인가? 누가 타이탄 같은 고대 마법병기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라이안 오빠! 그 통신 어떻게 한 것이죠? 어떻게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통신이 가능한 것이죠?”
“라이안,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가?”
“드릴머신과 포크레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모두가 자신의 궁금증을 쉬지 않고 물어오자 라이안이 여기저기를 쳐다보며 정신이 없었다.
“자, 잠깐!”
당황한 라이안이 소리를 쳐 사람들을 떨쳐냈다.
“으흐흐흐. 기다리면 알 겁니다. 으흐흐흐.”
라이안은 뜻 모를 표정과 웃음소리를 남기고 나가버렸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만이 남았다. 라이안은 자신만의 함정놀이를 시작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고, 과학의 힘으로는 순식간에 만들 수 있는 함정을.
* * *
엄청난 크기의 제조공장에서 자동 로봇들이 부품을 찍어내고 볼트가 끼워지는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타미르안이 챠둠의 홀로그램을 보며 말했다.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
“주인님께서 시키신 일이야.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현재 우리가 이곳에 넘어오기 전의 세상에서 토목이나 건설장비로 쓰이던 기계들이지. 저기 무엇인가 담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보여?”
“흠, 그렇군. 앞부분에 몇 개의 날이 있는 것을 보니 무엇인가를 파내기 위한 물건인 듯하군.”
“정확히 봤어. 저것이 바로 한 번의 움직임으로 사람의 30배에 해당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물건이야. 하지만 몇 시간으로 따진다면 100명이 하지 못할 일도 할 수 있지.”
“참으로 편리한 물건이군. 그럼 저것은 무엇인가?”
드릴머신의 앞부분을 손으로 가리키며 묻는 타미르안이었다.
“저것은 내가 지구에 있을 때 주인님과 같이 보았던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기계야. 그 영화에서는 저 기계를 이용해 행성의 중심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더군. 그것을 기준으로 만들었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하던 타미르안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이보게, 챠둠. 그런데 저러한 물건들이 이 세계에서 움직이면 이곳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라네.”
“그것은 걱정하지 마, 타미르안. 왜냐면 지금 만드는 물건들은 주인님과 내가 아니면 전혀 작동을 시킬 수 없게 조취를 취해 놓을 거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있어봐야 그림이나 마찬가지야.”
“그나마 다행이로군…….”
그래도 혹시나 하는 걱정으로 찝찝해 하는 타미르안이었다.
“이제 거의 다 만든 것 같으니 워프로 주인님이 계신 곳으로 이동해야 할 것 같아.”
“아, 나도 따라가도 되겠는가? 라이안이 저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한번 보고 싶군.”
“마음대로 해.”
타미르안의 레어 옆에 있던 전함이 서서히 떠올랐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싶더니 한순간에 사라졌다.
라이안은 성의 꼭대기에서 하늘을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올 때가 됐는데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지? 이 자식 아직도 타미르안하고 놀고 있는 거 아냐?”
라이안이 하늘을 보며 이제 기다리는 것이 짜증이 난 듯 중얼거리고 있을 때 반지로부터 챠둠의 음성이 들렸다.
“절대 아닙니다.”
“엇! 온 거야?”
라이안의 표정이 상당히 즐거운 어린아이처럼 변했다.
“지금 주인님이 계신 곳의 상공에 투명화 하여 대기하고 있습니다.”
“라이안이 이 아래에 있는가?”
갑자기 또 하나의 음성이 반지에서 흘러나왔고, 라이안은 그것이 타미르안의 음성임을 알았다.
“어? 타미르안도 같이 왔어?”
“허허허, 그렇다네. 자네가 궁금해서 같이 왔다네. 그리고 챠둠이 만든 기계가 어떻게 쓰이는지도 보고 싶기도 하고…….”
“하하, 그렇구나.”
“챠둠, 우선 내가 밑에서 그것들을 내려놓을만한 공간을 만들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
“알겠습니다.”
라이안이 제비 같은 몸놀림으로 빠르게 총사령관의 회의실로 날아갔다. 엄청난 속도로 회의실의 문으로 다가가자 2명의 기사가 라이안을 막으며 소리쳤다.
“지금은 회의 중입니다.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응? 나 들어가야 하는데?”
“죄, 죄송합니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아, 진짜 나 거기 들어가야 한다니까?”
밖에서 그러한 소란스러움을 느낀 안쪽의 귀족들이 와이파른 백작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저자를 너무 믿으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마스터급이라고는 하나 저렇게 예의가 없어서야… 크험.”
“피에른 남작과 간테츠 백작의 생각은 잘 알고 있으나 난 저 아이를 믿소.”
“어찌 그리 무조건 믿는단 말입니까?”
그러자 같은 지위에 있는 간테츠 백작이 와이파른 백작에게 따져 물었다.
사실 간테츠 백작도 야망이 강한 자였다. 시기심도 많고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자인지라 자신과 같은 지위의 와이파른 백작이 총사령관의 자리에 앉고 자신은 부사령관에 앉자 사사건건 참견을 하는 중이었다.
“아니 그런 말이 어디 있는가? 지금 우리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단 말인가? 단 한 명의 손도 부족한 마당에 마스터급이 도와준다고 하는데 그것에 불만을 품으면 어쩌자는 것인가!”
와이파른 백작이 버럭 화를 내며 그들에게 말했다.
“크험, 평민 따위가 실력 좀 있다고 저렇게 오만방자해서야…….”
모든 귀족들 역시도 사태의 심각성보다 자신들의 자존심과 지위의 월등함만으로 체면만 차리고 있었으니 와이파른 백작으로서도 참으로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래, 이제 더 이상 회의 할 건의사항이 없으니 이쯤에서 회의를 마치도록 합시다.”
“그러도록 합시다. 어험!”
10여 명의 귀족들이 회의실의 문을 열고 나갔고, 그곳에는 아직도 기사들과 승강이를 벌이고 있는 라이안이 있었다. 귀족들이 그러한 라이안을 보고는 한마디씩 했다.
“흥! 건방진 평민주제에…….”
“역시 예의도 모르는 천박한…….”
“에잉……하찮은…….”
기사들과 승강이를 벌이다가 문을 열고 나오는 귀족들의 말에 잠시 그 움직임을 멈추고 귀족들을 쳐다보는 라이안이었다. 그들의 말이 상당히 거슬렸던 것이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귀족들을 쳐다보며 묻는 말에 귀족들이 화가 난 듯 소리쳤다.
“어디 평민 따위가 귀족에게 눈을 똑바로 뜨며 그따위 말을 하느냐!”
“이런 쳐 죽일!”
“건방진 놈!”
그 말에 라이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후후후, 귀족들이라 이건가? 겨우 그런 지위로 지금 나를 평민이라 깔보며 병신 취급하는 것인가?”
“뭐라!”
“이런 건방진 놈! 겨우 그런 지위라니!”
“네놈이 당장 죽고 싶은가 보구나!”
모든 귀족들이 라이안의 말을 듣고 분노하여 소리쳤다. 그 말에 화가 난 라이안이 냉랭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닥쳐랏!”
라이안이 암경을 펼치며 그곳에 있는 귀족들과 기사들에게 압력을 가했다.
“커헉!”
“컥!”
“으헉!”
모든 귀족과 몇몇 기사들은 라이안이 펼친 암경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귀족들은 그제야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제국의 마스터를 한순간에 죽인 마스터급의 전사라는 것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라이안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귀족들에게 혈광을 흘리며 살기를 내비치자 한 귀족은 두려움에 오줌까지 지렸다. 지금 라이안의 모습은 악귀와도 같았으니 그 어떤 자가 떨지 않겠는가.
“그만 하거라, 라이안. 네가 참았으면 좋겠구나.”
밖의 상황을 눈치 챈 와이파른 백작이 어색하게 웃으며 그곳으로 나와 라이안을 말렸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철퍼덕!
꽈당!
펄석!
라이안이 암경을 풀자 모든 귀족들과 기사들이 모두 쓰러졌다. 기사들은 갑옷을 입고 있어서 쓰러질 때도 상당히 큰소리가 났다.
“그만 들어 오거라. 내게 할 말이 있지 않느냐?”
“아! 말씀 드릴게 있었어요.”
그 말에 라이안은 다시 원래의 라이안으로 돌변하였고, 웃으며 집무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의 문이 닫히자 그곳에 있던 귀족들은 치욕에 몸을 떨었다.
특히 간테츠 백작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으니…….
“내 반드시! 저 하찮은 평민 놈에게 복수하리라! 크윽!”
주먹을 너무 강하게 쥐어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간테츠 백작이었다.
와이파른 백작을 따라서 쇼파에 앉은 라이안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
“드디어 도착한 것 같아요.”
“아니, 무엇이 말이냐?”
“하하하, 아까 제가 말했던 것들이요.”
라이안은 혼자 자신만 웃으며 나갔던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난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구나. 도대체가 무엇이 왔다고 하는 것인지…….”
“흠, 직접 보시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아요. 우선 저와 같이 나가시죠?”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만 네 말대로 하자꾸나.”
“하하하, 보시면 놀라실 거예요.”
재미난 장난을 준비한 꼬맹이처럼 신이 난 라이안은 와이파른 백작을 대리고 성 앞에 있는 공터로 나갔다.
“우선 이곳에 있는 것들을 다 치우고 넓은 자리 좀 만들어 주시겠어요?”
“그래. 알았다.”
와이파른 백작이 주위에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곳 공터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치우도록 해라!”
“넵! 총사령관님!”
“알겠습니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움직이며 그곳에 있던 나무와 마차를 치웠다. 그러한 소란스러움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팔튼과 헤인드 일행도 그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이보게, 팔튼. 도대체 무슨 일인가?”
“나도 잘 모른다네. 단지 라이안이 무엇인가를 가져왔다고 하는데… 가져왔다는 그것은 아직 보이지 않는군.”
그 말에 에나가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아! 혹시 아까 반지에 대고 말했던 그것들을 누군가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닐까요?”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군.”
“도대체 무엇이기에…….”
병사들로 하여금 깨끗하게 치워진 공터를 바라보며 와이파른 백작이 말했다.
“이 정도 공간이면 되느냐?”
“네 충분할 것 같아요”
“그래, 도대체 어디서 무엇이 온단 말이냐? 아직 성루에 있는 정찰병으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질 않느냐?”
“하하, 그것은 당연해요. 그것들이 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동경로로 오는 것이 아니니까요.”
와이파른 백작에서 설명하고 있을 때 팔튼과 헤인드 일행이 조심스럽게 다가왔고, 라이안은 반지의 중앙 부분을 누르며 말했다.
“챠둠, 준비됐지?”
“네, 이상 없습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여전히 반지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신기하기만 했다. 특히 마나를 누구보다 잘 느끼는 에나의 호기심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이상하네? 마나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데.’
“챠둠, 그것들을 지금 앞에 보이는 공터로 옮겨줘.”
“알겠습니다. 워프 전송!”
스팟!
슈우우우우.
한순간 공터에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바람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들은 빛이 사라지고 이내 생겨난 물건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헉! 저게 뭐야?”
“이상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생겨난 거지?”
“뭐, 뭐야! 마법이야?”
그곳에 나타난 것은 라이안이 챠둠에게 제작을 요청한 드릴머신과 포크레인이 있었다.
와이파른 백작도 그것들을 보고 놀라 라이안에게 물었다.
“어…어떻게 저렇게 큰 것들이 한순간에 온 것이냐?”
“그것은 설명을 드리기가 조금 복잡하네요. 그것보다는 저것들이 어떤 물건인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렇구나.”
“우선 설명을 하자면 길어질 것이니 들어가서 이야기해드릴게요.”
“그러자꾸나.”
와이파른 백작과 다시 들어가려고 할 때 드릴머신과 포크레인에서 눈을 못 때고 있던 팔튼과 헤인드 일행을 본 라이안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도 저게 뭐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알고 싶으면 얼른 따라와.”
라이안의 말에 팔튼과 헤인드 일행도 서둘러 라이안을 따라갔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면서.
다시 회의실로 들어온 모두를 앞에 두고 라이안이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아요. 저것들은 모두 땅을 파기 위한 물건들이죠.”
“저것들로 땅을 판다고?”
“맞아요. 엄청난 속도로 순식간에 땅을 팔 수 있죠. 그것은 즉 단시간 내에 커다란 함정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죠.”
“함정을 만들자는 말이냐?”
“맞아요. 지금 우리의 전력으로는 공성전을 한다고 해도 내일 단 하루 만에 무너지고 말거에요. 그렇지 않은가요?”
참담한 현실이었지만 그 말은 틀리지 알았다.
이곳 대륙에서는 무기의 질이나 병사들의 훈련도가 승패의 주원인을 차지했다. 그러니 무조건 숫자가 많으면 그것이 승리의 조건이 되기도 했다.
“길게 버텨야 이틀이겠지. 저들의 병력은 잘 훈련된 병사들로만 60만이 넘으니.”
“그러니 우리는 함정을 만들 수밖에 없어요.”
“그래 어떻게 말이냐?”
“라이안, 도대체 어떤 함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그래요. 라이안 오빠. 저들의 숫자로 봐서는 웬만한 함정의 크기로는 그 수가 줄어들지도 않을 거예요.”
에나의 그러한 말에 라이안이 웃으며 말했다.
“에나, 너의 말이 맞아. 그러니 저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의 함정을 만들어야지. 그것도 저들이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게.”
“그것이 가능한가요?”
“지금 밖에 있는 저것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우선 드릴머신이라는 기계로 적들과 우리가 있는 성 사이의 공간을 모두 파버릴 거야. 물론 전부 파버리고 나면 무너질 수 있으니 지지대를 받치고 있어야겠지? 그리고 다 파고 남은 그곳에 기름을 채워 넣을 거야. 적들이 함정에 걸려 매몰되고 난 후에도 살아남은 자들이 상당수 될 것이고, 그들은 또 다시 우리의 적이 되겠지. 그러니 그 누구도 살아 돌아가는 사람은 없어야 해. 마지막으로 성벽위에서 허둥거리고 있는 적들에게 몇 발의 파이어 볼이나 파이어 웰을 사용하면 그곳은 아마도 불바다가 될 거야.”
와이파른 백작이 턱에 손을 대고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라이안, 너의 말대로라면 엄청난 함정이 될 수 있겠구나. 하지만 그렇게 단시간 내에 땅을 파면 저들이 눈치 채지 않을까 걱정이구나.”
와이파른 백작의 말에 라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확한 지적이에요. 아버님. 그렇게 단시간에 함정을 파자면 상당한 진동과 소음이 따르겠죠. 그러니 우린 아래에서 함정을 만드는 동안 저녁을 틈타서 저들에게 여러 차례 기습공격을 가해야만 해요. 그러한 소란이 적들로 하여금 귀를 가리게 만드는 것이죠. 그렇게 한다고 하여도 마법사들의 경우 그것을 느낄지 모르니 또 하나의 안전장치로서 땅의 정령을 이용해 보려고요. 땅의 진동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거예요.”
그러한 설명을 듣던 중 헤인드가 놀라며 물었다.
“이보게 라이안. 땅의 진동을 최대한 줄인다는 것은 좋은데 그 땅의 정령은 어떻게 부리려는가? 이곳에 혹 땅의 정령사가 있는지는 확인해본 것인가?”
헤인드의 말에 들은 와이파른 백작이 입을 열었다.
“아직 이곳 노크리 성에 마법사부대와 정령사들이 도착하지 않았단다. 그리고 정령사들이라고 해봐야 그 수가 너무 적고 하급정령을 겨우 다룰 수 있는 수준이라 땅의 진동을 줄이는데 전혀 쓸모가 없지. 우리 히매인 왕국에 텔레포트마법진만 있었어도… 제길!”
“그렇군요. 레이모스 님만 살아계셨어도…….”
30년 전에는 히매인 왕국에도 7서클 마스터의 마법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레이모스였다.
마법사는 7서클부터는 마도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데, 그 때부터 텔레포트마법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레이모스가 그러한 경지에 오르자마자 에드코르 제국의 습격이 있었고, 그는 그것을 막고자 자신의 목숨을 던져 헬 파이어를 시전했다.
히매인 왕국에 있는 모든 마정석을 모아 마법진에 사용해 간신히 성공한 레이모스는 그 일로 자신의 모든 힘을 소진하여 연기로 사라져갔던 것이다. 그 후 히매인 왕국에는 마도사급의 마법사가 나타나지 않았고 텔레포트마법진도 가질 수 없었다.
지금 현재의 상황도 텔레포트마법진만 있으면 더욱 빠른 시간 내에 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워하는 와이파른 백작이었다.
회의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열악한 히매인의 상황에 실망하고 있을 때 라이안이 말했다.
“어? 상급정령이면 어느 정도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와이파른 백작이 조금 답답한 듯 라이안에게 말했다.
“라이안, 현재 대륙에 상급 정령사는 제국에나 하나나 둘 정도 있을 정도로 귀한 존재들이란다. 그리고 현재 상급 정령사들 중에서 땅의 정령을 부리는 사람은 없다고 알려져 있단다. 그만큼 귀한 존재들이지. 그런데 지금 우리가 어떻게 상급 정령사를 구한단 말이냐.”
“하하, 그럼 이거 난 상당히 운이 좋았던 것이네요?”
“무엇이 말이냐?”
와이파른 백작의 물음에 라이안은 땅의 기운을 생각하며 말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운이 좋다는 거지요. 노에스 소환!”
휘리리리릭.
수아아아아.
갑자기 먼지와도 같은 갈색의 기운이 모이며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그 존재감의 압력에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약간의 갈색 연기와도 같은 커다란 존재가 라이안의 앞에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곧 그 존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약자여… 나를 불렀는가…….”
그 광경에 모두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꿈은 아닌지 자신의 뺨을 한 번씩 때리고 꼬집고 있었다.
“헉!”
“크헉!”
“이, 이럴 수가! 상급 정령!”
“땅의 상급정령이라니!”
“마…말도 안 돼! 마스터급에… 상급정령까지 부리다니!”
모두의 경악 속에서도 라이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상급 정령인 노에스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노에스? 내 친구들이 너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불렀어.”
“내가 할 일은 없는 것인가?”
“뭐 아직은 특별히… 아참! 하나 물어볼게 있어. 땅속에서 큰 진동이 일어나는 것을 지상에서는 모르게 만들려고 하는데 그곳도 가능해?”
“지진 같은 진동이라면 어려울 것이나 어느 정도 진동을 줄이는 것이라면 고요 그 자체는 힘들지라도 최소화 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하핫,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해. 그럼 이따가 다시 부를게. 이만 돌아가 줘.”
“알겠다…….”
사아아아아아.
갈색의 기운은 먼지가 흩어지듯 사라져갔다. 팔튼이 라이안에게 다가와 어이없는 듯 물었다.
“라이안, 자네 도대체 정령술은 언제 익혔단 말인가? 그것도 상급이라니?”
“아,정령술은 내가 다쳐서 너희들에게 못 오고 있을 동안 새로 만난 친구가 가르쳐줬어. 그 친구의 말로는 내가 정령과 상당한 친화력을 지녔다고 하더군.”
“정말 자네라는 친구는… 보면 볼수록 나를 놀라게 하는군.”
라이안이 팔튼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앞으로 큰일을 해야 하는데 겨우 이것 가지고 놀라면 어떻게 하냐?”
그 소리를 들은 에나가 말했다.
“그건 라이안 오빠가 당사자니까 모르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요.”
“그런 건가?”
또 한 번 라이안의 능력에 혀를 내두르는 모두들이었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지자 노크리 성의 사람들은 함정을 파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먼저 성안에서부터 드릴머신으로 노크리 성의 오른쪽에 있는 산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갔다. 그곳까지 파고 들어가면서 상당량의 먼지를 일어났으나 라이안이 상급 물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 먼지가 많이 피어오르지 못하게 막았다.
옆에서 그것을 보던 팔튼과 그의 친구들이 모두 기절할 듯 놀랐다. 그들은 라이안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서서히 머릿속에 각인되어가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투구구구구.
나무의 뿌리들이 뽑히며 몇 개의 나무들이 옆으로 휘어졌고 그곳에 드릴머신이 나타났다. 드릴머신의 안에서 라이안과 일행이 문을 열고 나왔다.
생전 처음 보는 드릴머신의 성능에 모두들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모두의 공통된 생각은 ‘이런 물건이 도대체 어디서 왔단 말인가!’라는 것이었지만 아무리 물어봐도 라이안은 단순히 웃음으로 넘어가고는 했다. ‘비밀’이라면서.
상당히 큰 지하굴이 만들어지고. 100여 명의 병사들이 그곳을 통해서 산으로 이동해왔다. 라이안이 기사들을 시켜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든 병사들은 들어라! 지금부터 이곳의 나무를 벨 것이다. 적군이 이곳의 위치를 눈치 챌지 모르니 경계를 철저히 설 것이며, 나머지는 모두 이곳에서 벌목작업을 한다! 우리는 저 간악한 에드코르 제국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 함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니 질문은 받지 않을 것이다. 자, 모두 작업을 시작하라!”
몇몇 기사들이 그들을 지휘했고, 병사들에게 설명했던 기사가 라이안에게 달려왔다.
“라이안 님, 이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까?”
노크리 성에 있던 모든 사람이 라이안의 능력을 보았고, 몇몇 기사들은 마스터급에 오른 라이안에게 존경심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 기사들은 라이안을 극진히 대우했다.
“네, 그래요. 우리는 노크리 성과 저들의 군영사이의 땅 지하를 파게 될 거예요. 벌목한 나무로는 지하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려고 하는 것이죠. 우선 땅을 지탱할 수 있는 지지대가 많이 필요해요. 그리고 최대한 은밀히 작업해야 하고요.”
“이미 병사들로 하여금 적들의 군영을 감시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곳이 상당히 우거진 숲이라 절대로 적들에게 들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행이네요.”
* * *
에드코르 제국의 진영에서는 수많은 병사들이 빠른 속도로 군막 등을 설치하고 진영을 갖추어 나가고 있었다. 상당히 큰 군막이 지어졌고, 그곳에 에드코르 제국의 귀족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그자는 누구란 말이오?”
“거리가 멀어서 자세히는 못 보았지만 상당히 어려 보였는데…….”
“그런 나이에 마스터급이라니…….”
“부사령관님이 한순간에 당하시다니… 크윽!”
귀족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아직도 심란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하이븐 후작이 입을 열었다.
“그자는 얼마 전 히매인 왕국에 나타났었던 스피어 마스터요. 대단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으며, 최소 마스터 중급은 될 것이오.”
귀족들이 그 말을 듣고 서로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그중 검은 갑옷을 입은 한 기사가 하이븐 후작에게 물었다.
“그자가 나의 기사들을 몰살시킨 자입니까?”
“그렇소. 케드 단장.”
하이븐 후작에게 말을 걸어온 자는 바로 블랙섀도우 기사단의 단장인 케드였다. 아직 그 어떤 국가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자로서, 에드코르 제국 내에 그의 존재를 알고 있는 귀족들도 몇 안 될 정도였다.
그가 바로 모든 블랙섀도우 기사들을 대부분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에 이르도록 훈련시킨 사람이며, 현재 마스터 상급의 경지를 지니고 있었다. 황제의 직속 기사단이라 특별한 귀족의 작위가 있지는 않았지만 이곳의 총사령관을 맡고 있는 하이븐 후작조차도 그에게 쉽사리 대할 수 없었다.
“그자의 목숨은 내가 끊을 수 있게 해주시오.”
“그자는 내가… 헛!”
하이븐 후작은 조금 전에 평생의 지기를 잃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일은 꼭 자신이 해야 한다고 말하려던 순간 케드 단장이 하이븐 후작에게 무릎을 꿇었다.
케드 단장의 그러한 행동에 그곳에 있던 모든 귀족은 물론 하이븐 후작도 놀라며 얼른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아, 아니! 이거 왜 이러시오?”
“부탁이오. 후작도 친구를 잃은 슬픔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소. 하지만 그가 죽인 나의 기사들은… 나의 가족이나 같은 자들이었소. 이렇게 부탁하겠소. 그자와의 전투가 있을 때는 내가 그를 맡을 수 있도록 해주시오.”
“으음… 아, 알겠소.”
“고맙소.”
하이븐 후작도 그의 기사들을 지휘했던 것이 자신이었던지라 그 일에 대해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으니 자신의 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허락을 받은 케드 단장이 조용히 일어나더니 움막에서 나가버렸다.
귀족들은 황제 이외에 절대 무릎을 꿇지 않는 케드 단장이 하이븐 후작에게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며 그가 얼마나 자신의 기사들을 아껴왔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그러한 케드 단장이 나간 곳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한 병사가 급히 그곳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짓이냐! 지금 귀족회의 중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네놈이 죽고 싶은가 보구나!”
그곳에 들어온 병사는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노크리 성에 있는 첩자로부터 들어온 정보입니다! 지금 노크리 성에 이상한 물체가 나타나서 땅을 파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함정을 파고 있다는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뭣이!”
“함정!”
“어떠한 함정이라고 하더냐?”
하이븐 후작이 굳은 얼굴로 병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것은 아직…….”
“흠, 알았다. 그만 나가 보아라.”
“넵!”
하이븐 후작은 함정이라는 것이 상당히 거슬렸지만 그보다 더 거슬렸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라이안을 데려갔던 드래곤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를 그때 제거했어야 했거늘! 에드먼드… 빌어먹을!”
꽝!
하이븐 후작이 탁자를 때리며 울분을 삼켰다.
* * *
태양이 산허리에 걸리자 라이안은 서서히 드릴머신을 이용하여 노크리 성의 앞부분부터 파기 시작했다.
드릴머신이 땅을 파고 들어가면 그곳에 포크레인이 따라 들어가 주위에 있는 흙을 병사들이 가져온 수많은 수레에 담았고, 병사들은 수레에 담긴 흙을 밖으로 옮겼다.
아직은 에드코르 제국의 군영에서 상당한 거리에 있기 때문에 전혀 들킬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도 안일한 생각이었으니…….
팔튼이 드릴머신을 이용해 땅을 파고 있는 곳으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라이안! 급히 상의해야 할 내용이 있네! 잠시 나와주게!”
쿠구구구구구.
슈우우우우우.
드릴머신이 땅을 파는 소음이 줄어들면서 엔진의 시동음이 멈추었다.
“어? 팔튼, 무슨 일이야?”
“이곳에서 말하기가 조금 어렵다네. 우선 총사령관님의 집무실로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하세.”
확실히 전시의 상황이며 군대인지라 다른 곳에서는 아버지가 아닌 총사령관으로 칭하여 말하는 팔튼이었다.
“그래? 다른 사람들이 들어서는 안 되는 내용인가 보군. 그래, 우선 가서 이야기 하자.”
라이안이 팔튼을 따라서 와이파른 백작의 집무실로 걸어갔다.
2명의 기사가 문을 지키고 있었고 팔튼과 라이안을 보자 자세를 잡으며 인사했다.
“팔튼 님과 라이안 님을 뵙습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총사령관님의 부름을 받고 온 것이라네. 안에 알려주게나.”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팔튼 님과 라이안 님이 총사령관님을 뵙고자 합니다!”
한 기사가 문 안쪽으로 큰소리로 말했고 곧바로 안에서 와이파른 백작의 음성이 들렸다.
“어서 안으로 들이거라.”
“알겠습니다!”
“들어가시지요.”
“고맙네. 그럼 수고하게나.”
“감사합니다.”
기사가 문을 열어주었고 팔튼과 라이안이 안으로 들어갔다.
와이파른 백작이 하던 일을 멈추고 팔튼과 라이안을 바라보았다.
“어서 오너라. 우선 이쪽으로 앉거라. 라이안 너와 급히 상의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불렀단다. 그래 하던 일은 잘 진행되고 있느냐?”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내일 아침까지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거예요”
“그거 다행이구나. 그런데… 아무래도 적들이 우리가 만드는 함정을 눈치 챈 것 같구나. 이를 어찌해야 할지…….”
“네? 확실한 건가요?”
라이안이 와이파른 백작의 말에 놀라며 일어났다.
“우선은 진정하고 앉거라. 그래야 이야기를 하지 않겠느냐.”
“아, 네…….”
다시 엉거주춤 자리에 앉으며 표정이 굳어지는 라이안이었다. 확실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적들이 알아챈다면 내일 아침 노크리 성은 쑥대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첩자로부터 들어 온 정보란다. 그에 의하면 에드코르 제국의 군영에서 몇 명단위로 수십 명의 병사들이 땅을 수색하고 다닌다 하는구나.”
라이안이 와이파른 백작의 말을 듣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으니…….
“이쪽에도 적의 첩자가 있다는 것이군요.”
“내 생각도 그렇단다. 하지만 그 첩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지금 이 난관을 해결할 방도가 없구나. 어찌하면 좋겠느냐?”
“저들이 만약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자세히 알고 있다면 지금 당장 쳐들어왔을 것입니다. 저들이 단지 수색만 하고 있다면 아직 우리의 일을 완전히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이죠.”
라이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와이파른 백작이었고 라이안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는 것은 현재 우리 쪽에 있는 첩자만 잡으면 해결되는 것이겠죠?”
“첩자를 잡을 방도가 있느냐?”
“후훗, 없으면 만들어야지요. 첩자에 대한 것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저를 믿고 계속해서 일을 진행해 주세요.”
“지금 나에게 있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팔튼과 너란다. 부디 잘 처리해주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헤헤.”
역시나 심각한 분위기가 싫었던 라이안이 장난스럽게 경례를 하며 웃었다. 라이안의 마음이 와이파른 백작에게 전해졌는지 백작 역시도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라이안은 와이파른 백작의 집무실에서 나오자마자 경공술을 이용해 노크리 성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바로 반지의 가운데 부분을 누르며 말했다.
“챠둠, 아직 거기 있지?”
“네, 아직 주인님이 계신 곳 상공에 있습니다.”
“후훗, 타미르안은 뭐하고 있어?”
“그는 지금 제가 만들어준 컴퓨터게임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으잉? 으이그, 이곳에 최초로 게임폐인이 나타나게 생겼구나. 다름이 아니라 네가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 있어.”
“무엇을 말인지요?”
“후훗, 그것이 뭐냐면… 바로 날파리야.”
“날파리는 무엇에 쓰시려고요?”
“이곳에 첩자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날파리를 이용해 그 첩자를 잡으려고 해.”
“감시카메라와 도청장치 대신으로 사용하려는 것이군요?”
“그래, 바로 맞췄어. 날파리를 수백 마리 정도 만들어서 이곳에 뿌려봐. 그리고 수상한 움직임이 있을 때 그것을 나에게 알려줘. 네가 바로 수상한 움직임을 발견해도 되겠지만 그 첩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정보를 유출시키는지 모르니까 그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나중에도 상당히 유용하게 쓰일 것 같고.”
챠둠이 내려다보면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 정보유출의 내용이 소리나 특별한 암호로 전해질수도 있었기에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날파리를 만들어 이곳에 풀어놓겠습니다.”
“그래, 부탁할게. 난 할 일이 있어서.”
챠둠은 라이안의 말대로 작은 날파리만 한 기계를 만들어 날파리와 똑같은 모양으로 고무를 씌웠다. 그렇게 제작된 날파리들은 약 500여 마리가 되었고 그것들은 어두워진 하늘에서 내려와 노크리 성 전체로 퍼져나갔다.
라이안은 서둘러서 드릴머신으로 하고 있던 작업에 몰두했다. 땅의 정령인 노에스를 이용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작업을 하였지만 근근이 쉬어가며 운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노에스는 상급정령으로 소비되는 마나가 상당히 컸다. 상급정령을 몇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다루려면 엄청난 마나가 필요했다. 하지만 혈기공을 20여 분간 운기하면 필요한 마나를 모두 채울 수 있었으니 그것 또한 라이안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 * *
노크리 성의 성벽 구석에서 평범히 순찰을 하던 병사가 있었다. 그는 에드코르 제국으로부터 넘어와 몇 년 동안이나 히매인 왕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스칸이었다.
스칸이 순찰하고 있던 곳으로 은밀히 몇 명의 병사들이 모여들었고 조심히 주위를 살폈다.
“그래, 뭐 건진 것은 있는가?”
스칸의 말에 그곳에 모인 몇 명의 병사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적은 것을 모두 나에게 주게.”
그들이 각자 모은 정보들을 작은 쪽지에 적었는지 스칸이 그들에게서 각각 하나씩의 쪽지를 받았다. 그리고 작은 검은색 통에 그것들을 말아서 끼웠고, 다시 한 번 주위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스칸이 자신의 가슴팍에서 작은 비둘기를 꺼냈다.
비둘기의 다리에 쪽지를 담은 통을 매달고 서둘러 하늘로 날려 보내며 스칸이 모두에게 한마디 했다.
“내일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된다고 한다. 모두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키도록. 건투를 빈다.”
또 다시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 병사들이 서로 주위를 살피며 흩어졌다.
스칸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순찰을 하려다가 갑자기 손으로 눈앞을 휘저었다.
“에잇, 이 추운 날씨에 웬 날파리지?”
쉬익, 쉬익.
그렇게 몇 번을 날파리를 쫓으며 손을 휘젓던 스칸은 그곳을 떠나갔다.
비둘기가 성벽을 넘어서고 있는 것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막 성벽을 넘어서 에드코르 제국의 진영으로 날아가려는 비둘기를 빠르게 따라잡는 검은 연기와도 같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날파리들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빠르게 날아가는 비둘기를 날파리들이 더욱 빠른 속도로 덮치는 것이 아닌가!
비둘기는 하늘에서 잠시 허우적거리다가 핏물로 변하며 뼈만 남아 떨어져 내렸으니, 그 징그러운 모습을 누군가 보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그리고 비둘기의 뼈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작은 날파리들은 하나의 작고 검은 통을 들고 노크리 성 방향으로 사라져갔다.
어느 정도 땅을 파던 드릴머신이 이상하게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라이안이 드릴머신의 시동을 멈추고 그 이유를 살피기 위해 내려섰다.
“어라? 시간 없어 죽겠는데 이거 왜 이러지?”
라이안이 드릴머신의 드릴을 확인하여 보았지만 그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드릴의 앞을 향해 손을 내밀어보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라이안이 그것에 놀라며 주먹으로 살짝 치자 그 막은 라이안의 주먹을 튕겨냈다.
“이게 도대체 뭐지?”
라이안이 일을 진행시키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을 때 반지로부터 챠둠의 음성이 들려왔다.
“주인님, 첩자를 찾았습니다.”
“어? 진짜? 첩자가 얼마나 되지?”
“확인된 결과 총 6명입니다.”
“그렇군. 그들이 있는 위치는 잘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잘했어, 챠둠. 참! 지금 거기서 이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봐 줄래? 이상하게 생긴 막이 앞을 가려서 일을 진행할 수 없거든”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그곳을 투시해 보겠습니다.”
챠둠이 라이안의 위치를 잡고 그 앞으로 투시해 에너지원이 생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주인님, 그곳에 마나가 아닌 뭔가 다른 에너지원이 생성되어 있습니다. 그 에너지원은 마공과도 같은 어두운 속성을 가진 듯 판단됩니다. 그리고 생김새는 원형의 마법진과 같은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 도대체 이게 뭐지?”
챠둠과 라이안이 이러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타미르안이 피곤한 듯 고개를 돌리며 중앙 조종실로 걸어왔다.
“겨우 마지막 왕을 죽였군. 역시 골드드래곤의 위대함을 누가 따라오겠는가… 크흐흐.”
자화자찬하며 걸어오던 타미르안이 챠둠이 확인하던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으응? 소환마법진?”
타미르안이 궁금증에 더 가까이 다가와서 그것을 바라보다가 순간 경악했다.
“이것은!”
“이것에 대해 알아?”
챠둠의 물음에 타미르안이 급하게 설명해 갔다.
“저것은 마계 소환마법진일세. 저 정도의 크기라면 분명 마왕급의 소환 마법진이라네. 어서 저것을 파괴하지 않는다면 중간계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걸세… 문양이…….”
마법진을 자세히 살피며 마왕의 표시를 확인하던 타미르안이 또 다시 놀라며 소리쳤다.
“허걱! 마계 공작 발크르스! 어떤 미친놈이 저런 짓을!”
“위험한 것인가?”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네. 발크르스가 소환되면 우리 드래곤들이 전부 달려들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일이라네. 어서 저 소환마법진을 파괴해야만 하네! 어서!”
타미르안의 그러한 말을 들은 라이안이 투명하게 잘 보이지 않는 막을 째려보았다.
“흠, 그렇게 위험한 것이라고?”
“라이안, 그것을 파괴시킬 수 있겠는가?”
“글쎄? 한번 해볼까?”
라이안이 등 뒤에 있는 창을 앞으로 잡아갔다. 청룡창의 기수식을 취한 라이안이 최대한의 내공을 집중하여 검강을 형성시켰다.
“청룡창 일초! 청룡일섬!”
부우우우욱.
스아아아아.
하나의 긴 황금빛이 사선으로 공간을 찢듯이 갈라갔고 투명한 막이 이불에 칼을 휘두른 듯한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찢어졌군.”
라이안의 말을 들은 타미르안이 또 다시 급하게 소리쳤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네! 어서 그 소환마법진 중앙에 끼워져 있는 마정석들을 파괴하게! 어서!”
“이건가?”
라이안이 붉은 혈선으로 그려진 듯한 마법진의 가운데에서 검붉은 빛이 나는 돌을 보았고 창으로 그것을 수직으로 찍어서 부숴버렸다.
빠각!
스으으으으.
그러자 반지에서 챠둠의 음성과 타미르안의 한숨이 섞여 들려왔다.
“그곳에 있던 에너지원이 완전히 흩어졌습니다.”
“휴, 정말 다행이군.”
* * *
마계의 가장 강한 자들만 있다는 마왕의 탑.
그곳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자가 바로 마계 공작 발크르스였다. 제1마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는 소환마법진을 앞두고 괴기스럽게 웃고 있었다.
“크흐흐흐, 이제 얼마 안 남았군.”
“10만 영혼의 피로 중간계에 현신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힘을 반 이상 가지고 현신할 수 있게 되니… 크흐흐… 중간계는 곧 내 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중간계를 자신만의 마계로 만들려는 생각을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그 순간!
쩌저적!
갑자기 소환마법진을 통하여 중간계로 갈 수 있는 문이 금이 가며 깨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헉! 이, 이럴 수가!”
“이런! 빌어먹을! 감히 어떤 놈이 소환마법진을 손상시켰단 말인가! 크아악! 그토록 기다려왔던 일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이런! 오리닌! 철저히 준비를 했다더니! 크아아악!”
마왕의 탑 꼭대기에서 계속된 발크르스의 비명이 울려 퍼졌고 그 소리에 근처에 있던 마족들이 몸을 떨었다.
발크르스가 저토록 화가 나 있을 때 그의 눈에 띄는 것은 곧 목숨을 잃는다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족들은 서둘러 마왕의 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자 했다.
* * *
라이안은 소환마법진을 파괴하고 바로 와이파른 백작의 집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총사령관의 집무실을 지키던 기사들이 다가오는 라이안을 보며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라이안 님.”
“응, 안녕? 총사령관님에게 내가 뵙기를 청한다고 말해줘.”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라이안 님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어서 들이거라.”
“들어가시지요.”
“응, 고마워. 그럼 수고해.”
“별말씀을요. 감사합니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와이파른 백작이 자신의 책상에서 일어나 라이안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래, 뭔가 내게 볼일이 있느냐?”
“네, 아버님 첩자를 발견했습니다.”
“뭣이! 그것이 정말이냐?”
“제가 아버님께 왜 거짓을 고하겠어요. 사실이에요”
“이, 이런 쳐 죽일 놈들! 그래 그놈들이 어떤 놈들이냐?”
“하하하…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진정하세요. 그러시다가 건강 상하시겠어요.”
“흠, 그래. 내가 주책을 부렸나 보구나. 어떤 놈들인지 소상히 말해 보거라.”
라이안이 한 장의 쪽지를 그에게 넘겼다.
“이곳에 각각 그들의 근무부서와 이름이 적혀 있어요. 그들 중 스칸이라는 자가 그들을 이끌고 있는 듯하니 그를 집중적으로 취조하시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래, 알겠다. 이거 네게 어려운 부탁만 해서 미안하구나.”
“뭐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걸요. 아! 그리고…….”
“또 뭔가 있는 것이냐?”
“네, 지금부터 적 진영으로 기습공격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부터 파게 될 땅은 그들에게 들킬 가능성이 있거든요.”
“흠… 상당한 출혈이 생기겠구나…….”
“제가 하고 싶지만 땅을 파는 것에 최대한 소음을 줄이려면 정령이 필요한지라 어쩔 수 없네요.”
“아니란다. 노크리 성은 지금도 네가 아니라면 당장에 무너질 곳이란다. 너에게 너무 큰 짐만 주는 것 같아 내 마음이 불편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