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돈의 라이안-8화 (7/57)

제8장 새로운 수련

자신이 먹으면서 흘린 음식들이 침대 시트에 묻은 것을 본 라이안은 타미르안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더러워졌는데 어쩌지?”

“하하하, 걱정하지 말게나. 쉬운 방법이 있다네. 운디네!”

타미르안이 운디네라고 외치자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들더니 수줍은 표정을 한 여자아이가 되어 타미르안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와! 저건 뭐야? 저것도 마법이야?”

“아니라네, 이것은 정령술이라고 하지.”

“정령술?”

“우선 청소부터 하고 설명해 주겠네. 운디네, 이쪽 침대에 묻은 것들을 깨끗이 해주렴.”

타미르안의 말에 침대로 다가간 운디네는 다시 물방울로 화해 침대에 주위로 퍼졌다. 그러자 금세 시트가 깨끗해졌고, 그녀도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음식 찌꺼기가 묻었던 곳을 바라보던 라이안이 신기한 듯 소리를 높였다.

“와! 이거 대단한데? 그리고 너무 귀엽다. 너.”

“아니, 라이안은 이 정령이 눈에 보이는가?”

“어? 아주 잘 보이는데?”

“그럴 수가, 어느 정도 정령과 친숙한 사람도 흐릿하게 존재감만 느끼는 게 전부일 텐데 대단하군. 라이안.”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그렇다네, 흐릿하게나마 그 존재감만 느낀다고 하여도 훌륭한 정령술사의 자질을 가졌다고 할 수 있지. 정령과 계약을 했을 경우에나 그 정령을 뚜렷이 볼 수 있는 것이지. 이러한 인간들은 대부분 인간세상에서 정령술사로 활동하며 대단히 귀한 대접을 받는다네.”

“호오? 그런 거야?”

“어떤가, 정령술을 배워보겠는가?”

“어! 배우고 싶어!”

큰 소리로 대다한 라이안이 운디네에게 손을 뻗자, 그녀는 수줍은 듯 살짝 몸을 돌렸다.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깜찍한 운디네의 모습에 라이안은 다시 한 번 꼭 정령술을 배우리라고 다짐했다.

라이안은 몸 상태부터 점검하고자 운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고통이 거의 없잖아? 그리고 상당한 기운이 돌아온 것 같은데?”

챠둠이 옆에서 그런 라이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인님의 몸에 쌓인 사혈을 어느 정도 빼냈습니다. 물론 많은 양을 빼지는 못했지만요. 그런 후 대체혈액을 주인님의 몸속에 투입했습니다. 이제 내공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차후 주인님의 골수에서 만들어지는 혈액의 양이 늘어나게 되면 대체혈액은 저절로 운기를 할 때마다 땀으로 배출될 것입니다. 현재 주인님께서는 이쪽세상에서 말하는 경지로 소드 마스터 상급의 마나를 활용할 수 있으실 겁니다. 대체혈액이 받아들이는 내공의 양이 실제 주인님의 혈액에 못 미쳐 아직 그 정도까지가 한계인 듯싶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본래 혈액이 돌아올 것이니 차차 내공의 양이 많아지심을 서서히 느끼게 되실 겁니다.”

“하하, 다행이야. 이정도도 지금은 만족스러운 걸? 검강을 사용할 수 있었을 때 그것만으로도 너무 자만하고 있던 내가 너무 부끄러울 지경이야.”

그렇게 말하며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는 라이안이었다. 그런데 라이안이 갑자기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몸 상태가 조금 나아졌으니 땀 좀 흘려볼까?”

“타미르안, 이곳에 수련할 만한 공간이 없을까?”

“수련할 만한 곳이라… 아! 있다네. 그곳으로 가지. 우선 내손을 잡게나.”

“어? 왜 손을 잡아야 해?”

“그럴 이유가 있다네.”

타미르안은 라이안의 손을 잡고선 텔레포트를 외쳤다. 그러자 그들의 몸이 사라지더니만 다른 공간에서 나타났다. 라이안은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야! 이것도 마법이야?”

“그렇다네.”

“마법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유용한 것이구나.”

“그런데 라이안 자네가 마법을 배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어? 그건 왜?”

“사실 조금 전에도 어느 정도 실험을 해본 것이라네. 사실 자네가 다쳤을 때 자네의 몸은 치유마법을 거부한 일이 있다네. 아마도 몸이 마나를 거부하는 것 같더군. 하지만 텔레포트가 가능한 것을 보니 마나가 몸 안에 투입되는 것만 안 되는 것이었나 보군.”

“아, 그렇구나…하지만 내공과 마나는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내 친구 중 신관인 라드이라가 있는데 내 몸 신력도 있다고 하더라고.”

“아니, 라이안! 신력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고 들었어. 라드이라가 내 몸을 치유하려고 했을 때 그 반발력으로 튕겨나가는 일이 있었거든. 그런 것을 보면 소지는 가능한데 남한테 받는 것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흠… 그럴 수도 있겠군.”

작은 운동장만 한 공간이 마음에 드는 라이안이었다.

“여기면 충분하겠는데? 그런데 여기는 왜 아무것도 없이 이렇게 넓기만 한 거야?”

“어험, 그것이… 여기는 내 침실일세.”

“어? 뭐라고?”

“내… 침실이라네…….”

“여기가 침실이라고? 이곳 전부가?”

“허허허, 평소에는 인간의 모습이나 엘프의 모습으로 수면을 취하지만 우리 드래곤에게는 수면기라는 것이 있다네. 그때는 폴리모프를 해제한 후 본래의 모습으로 이곳에서 100년에서 200년의 수면기를 갖는다네.”

“흠… 드래곤이 욕심쟁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욕심쟁이에 잠꾸러기로군.”

“헛! 어느 누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인가?”

“왜? 알면 가서 때리려고?”

“어험, 누가 가서 해코지 한다고 했는가? 그냥… 그런 정확치 않은 얘기는 퍼트리고 다니지 말라고 곱게 말만… 한다는 거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윈드커터의 마법으로 사지를 잘라버리려고 했던 타미르안이었다.

“오호? 말만 한다고 하면서 살기를 일으키네?”

“크험! 흠……그런 것도 느끼는가?”

“하하하, 타미르안은 참 재밌는 드래곤 같아.”

“크하하, 내가 한유머 한다네.”

놀리는 것인지도 모르는 타미르안이 칭찬인 줄 알고 라이안을 보고 따라 웃었다. 그때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린 라이안이 아쉬움을 나타냈다.

“아니, 왜 그러는가?”

“그게 말이지… 내가 가지고 있던 무기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참 좋은 창이었는데…….”

“창? 혹시 이것인가?”

타미르안이 아공간을 통해 짙은 파란색의 창을 꺼냈다.

“앗! 맞아. 바로 그거야!”

“너무 눈에 띄는 물건이라서 내가 아공간에 보관하고 있었다네. 그런데 자네 물건이었군.”

타미르안이 약간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라이안에게 창을 넘겨주었다.

“왠지 모르게 애착이 가는 물건이야. 어쨌든 무기도 생겼겠다. 몸 좀 풀어볼까?”

라이안은 넓은 공간의 중앙으로 가서 청룡창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리고 청룡일섬부터 시작해서 일초부터 오초까지 그 모든 것이 시전되었다.

타미르안은 라이안이 펼치는 무공의 현란함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청룡창의 이초인 청룡출해의 수많은 찌르기가 하나의 막을 형성하는 것부터 해서 삼초인 청룡승천의 초식에서는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 나타나니 타미르안은 그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찌 오러로 저러한 것을 만든단 말인가!”

그것에 이어 청룡창의 오초인 청룡풍파를 펼치는 라이안이었다. 라이안의 주위로 엄청난 회오리가 형성되었고, 강기의 회오리로 변했다. 닿기만 하면 가루가 되어 갈기갈기 찢겨나갈 것만 같았다.

“대단하군, 대단해.”

타미르안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놀라움도 마지막으로 펼치는 이것에 미치지는 못했으니… 엄청난 강기의 회오리바람이 서서히 사라진다고 생각한 순간, 고요가 찾아왔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던 라이안이 감았던 눈을 뜨며 소리쳤다.

“청룡창! 묘의! 멸천뢰!”

쿠아아아앙!

우르르르르르!

엄청난 크기의 번개가 타미르안의 레어 안에서 생성되며 바닥을 때렸고, 레어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리고 눈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먼지가 가득해졌다.

“윈드 윙!”

타미르안의 마법에 그곳에 있던 먼지들이 모두 걷히자, 참상이 나타났다.

“헛! 보호마법이 걸린 이곳을 이정도로 만들다니!”

타미르안조차 마지막 멸천뢰의 초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실드를 펼치며 뒤로 물러났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침실(?)은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과 같은 형상이었으니 말로 설명해서 무엇하랴…….

라이안은 청룡창의 모든 것을 펼친 후인지라 지친 기색으로 사과했다.

“이런, 청룡창을 전부 펼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전 해본 것인데… 미안해, 타미르안.”

타미르안은 아직도 이 엄청난 광경에 멍해 있었다.

“타미르안? 타미르안!”

“아, 아! 그래… 말하게.”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네 침실을 다 망가트렸잖아.”

“아, 아니라네. 이쯤이야 땅을 정령을 시키면 순식간에 복구된다네. 다시 방어 마법을 새겨야 하는 것이 문제지만. 노움!”

타미르안은 땅의 정령인 노움을 소환시켰다. 그러자 땅에서 흙으로 이루어진 작은 할아버지가 나타나 타미르안에게 인사했다.

“이곳의 땅을 본래의 모습대로 평평하게 만들어라.”

타미르안의 그 말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노움이 땅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다음 순간, 땅이 물결을 치더니만 이내 평평하게 다듬어졌다.

그 신기한 광경에 라이안이 감탄했다.

“와! 대단해! 저것도 정령이야?”

“응, 그렇지. 정령은 네 가지의 특성을 가진다네. 바람, 땅, 물, 불. 그리고 그 정령들은 각각 하급부터 해서 중급, 상급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현재는 드래곤만이 소환시킬 수 있다는 정령왕이 존재한다네.”

“정령의 종류도 꽤 많구나.”

“라이안 자네는 정령에 대한 친숙도가 인간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네. 그러니 배우면서 하나씩 익혀가게나.”

“응! 잘 부탁해.”

그러한 몸 풀이가 끝이 나자 챠둠이 라이안의 어머니인 이미화를 데리고 왔다. 라이안의 멀쩡한 모습을 본 이미화는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로 뛰어왔다.

“정운아!”

“어, 엄마!”

그녀는 라이안을 안고 쉼 없이 눈물을 흘렸다.

“으흐흑,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흐흐흑.”

“걱정하게 해서 죄송해요.”

“아니다. 이렇게 살아 있는 모습을 본 것만 하여도 그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정말 다행이야…….”

라이안은 어머니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다시는 이렇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모자 상봉이 끝난 후 다음날부터 라이안의 정령마법과 마법에 대한 학습이 시작되었다.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마나를 느끼는 것이 우선이었는데 라이안이 그것을 순식간에 해내자 타미르안은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본래 라이안은 온몸이 하나의 단전이라고 할 수 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곳에 가상으로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고 생각을 하자 심장 근처에 하나의 공간이 생성되었고, 그곳으로 마나도 느낄 수 있었다. 마나란 자연의 기와 같아서 그것을 느끼는 것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타미르안이 가만히 앉아 있는 라이안을 보며 말을 하였다.

“본래 검사는 꾸준한 수련을 통해 몸 전체에 받아들여진 마나를 이용하나 마법사의 경우는 심장으로 마나를 느껴서 사용 한다네. 그 이유는 바로 인간에게 마법을 전수해준 것이 우리 드래곤이었기 때문이지. 우리 드래곤들은 심장 쪽에 드래곤하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방식으로 인간들에게 흘러들어간 것이라 말할 수 있다네. 그래서 인간도 마나를 심장으로 모아서 마법을 사용하게 된 것이지. 마법사는 미리 심장에 마나를 느끼기 때문에 검사보다 마나를 많이 모을 수 있는 것이지. 이제 느껴지는 마나를 심장으로 흘러들어 온다고 생각하며 공명을 시켜보게나. 그러면 마나가 심장으로 모일 것이며, 그 마나의 양과 정신의 경지가 올라갈 경우 하나의 서클이 생성된다네. 한번 시도해 보게나.”

“응, 그렇게 해볼게.”

타미르안의 말대로 시도해 본 라이안은 아주 적은 양이지만 마나가 확실히 심장 쪽으로 모임을 느꼈다. 하지만 그 양이 너무 적어 답답한 나머지 라이안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나왔다.

“타미르안, 이거 마나가 너무 조금 모이는데?”

타미르안이 라이안의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그것은 당연하다네. 본래 드래곤들은 드래곤하트로 마나가 저절로 모이지만 인간들의 경우는 그 양이 극히 적지. 그것이 생각처럼 순식간에 모이고 사용할 수 있다면 그 누구든 다 신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럼 내가 타미르안이 아까 했던 그 텔레포트를 하려면 얼마나 걸리는 거야?”

“텔레포트를 하려면 본래 7서클은 넘어야 한다네. 땅에 마법진을 그려서 사용해야 하지. 하지만 7서클부터는 약간의 주문으로 마법진을 생성시키고 생각하는 좌표로 이동할 수 있다네.”

“주문? 아까 타미르안은 그냥 텔레포트라고 말만 하지 않았던가?”

“허허허, 내가 사용하는 것이 용언마법이기 때문이지.”

“그것과 이것이 무엇이 다른데?”

“우리가 인간들에게 가르쳐준 마법은 인간이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어준 것이고 우리 드래곤들이 사용하는 용언마법은 우리가 본래 사용하고 있던 마법이지.”

“역시 짝퉁보단 원조가 좋다는 것이구나?”

“짝퉁은 무엇인가?”

타미르안이 궁금한 듯 물었다.

“아! 그건 진짜 같은 가짜를 말하는 거야. 내가 있던 곳에서는 꼭 좋은 진짜 물건을 만들고 나면 짝퉁이라는 가짜 물건이 나왔는데 생김새는 거의 똑같아서 쓰는데 전혀 지장이 없지. 하지만 짝퉁은 나중에 뭔가 문제가 생기거나 아니면 그 기능이 하나씩 부실하다고나 할까?”

“허허허, 그런다면 자네가 말하는 것이 인간과 드래곤의 마법을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군. 인간들이 사용하는 마법은 확실히 부족한 점이 많지. 하지만 인간들은 그것을 자신들이 사용하기 편하게 발전시키고 그 경지를 높여가더군. 확실히 그러한 점에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네. 기껏 해야 100년 정도 사는 종족이 지식을 전수해 가면서 그 경지를 높여가는 점에서는 말이지.”

라이안은 타미르안이 인간의 수명에 대하여 말하자 드래곤의 수명이 얼마나 되기에 저러한 소리를 하는지 궁금해졌다.

“드래곤의 수명은 길어?”

“당연히 길지 않겠는가. 드래곤이란 중간계의 조율자이니 수명이 길 수밖에 없지. 길게는 인간의 100배 정도 산다네.”

“헉! 인간의 100배? 그럼 드래곤은 만 년을 넘게 산다는 거야?”

“그렇지.”

“와… 진짜 오래 사는구나…….”

어느 정도의 궁금증이 풀린 라이안은 다시 마나를 모으는 것에 대하여 물었다.

“이거… 뭔가 속성법 같은 것이 없을까?”

“흠, 드래곤하트가 없는 한 방법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군.”

“그래? 흠… 혈기공으로 대체해서 해볼까나…….”

“혈기공? 그것은 또 무엇인가?”

“잠시만. 한번 해보고.”

라이안은 혈기공을 통하여 몸 전체를 단전으로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이용해 모여드는 마나를 심장으로 이끌어 준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게 되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정운이 정신을 집중하며 혈기공을 운기 했다. 그러자 온몸의 모공이 열렸고, 그곳을 통하여 바람이 부는 듯 마나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헛!”

그러한 현상을 본 타미르안은 경악했다. 주위에 있는 마나가 요동을 치며 라이안에게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였던 것이다.

라이안의 몸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빨려 들어왔고, 그것들은 라이안의 의지대로 심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모일 때마다 하나의 고리를 만들어 나갔다.

하나의 고리가 만들어지자 그것은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둘레로 희미한 고리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또다시 하나의 선명한 고리가 생겨났다. 그러한 현상이 시간을 들여 반복되었다.

타미르안은 라이안의 상태가 궁금하여 마나 디텍트를 사용하여 라이안의 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했다.

“헛! 어찌 마나의 고리가 저토록 빠른 속도로 생성될 수 있단 말인가!”

드래곤의 지식으로도 현재 라이안의 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챠둠의 홀로그램도 갑자기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 타미르안. 갑자기 이상한 에너지의 반응이 이곳에…….”

챠둠의 홀로그램이 라이안의 모습에 말을 멈추었다.

“타미르안! 주인님의 상태가 위험한 것이 아닌가?!”

“그것은 아니라네. 그러니 걱정하지 말게나. 지금 라이안은 마법수련 중이라네.”

“흠…….”

챠둠은 전함으로부터 하나의 탐사구를 현재 있는 곳으로 워프 전송시켰고, 그것을 혹시나 하는 걱정으로 라이안의 몸 주위로 이동시켰다. 그 탐사구들은 라이안의 몸 안에 흐르는 에너지를 판독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으음? 심장에 고에너지 반응이 생성되고 있군. 그리고 점점 그 크기가 커지고 있군. 정말 위험한 것은 아닌가? 타미르안?”

“나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이지만 저 상황은 위험하지는 않은 것 같군.”

그렇게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하여 챠둠과 타미르안이 계속해서 라이안의 몸에 흐르는 마나를 관조해갔다.

2개의 고리가 생성될 때까지는 순식간이었으나, 3개째의 고리가 형성되는 데에는 4시간도 더 걸렸으며, 이제 4개째의 고리가 하루를 지나 계속해서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그것을 말없이 지켜보던 타미르안이 챠둠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 주인은 정말 대단하군. 어찌 4서클을 단 하루에 이룬단 말인가?”

“혹시 다른 인간 중 이러한 일이 있었던 사람은 없는가?”

“절대로 없다네. 그리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네. 이것은.”

“그렇군, 우선 지켜보는 수밖에…….”

그렇게 아무것도 먹지 않고 3일이 흘렀고, 라이안의 몸 안에는 5개의 고리가 형성되었다.

그의 어머니도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렇게 앉아 있는 아들이 걱정되어 두 손을 꽉 맞잡고 라이안만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안의 몸에서 5개의 고리가 완전히 형성되자 흘러 들어가는 마나의 양이 줄면서 사라져 갔고, 주위의 모든 마나의 움직임도 멈추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서서히 라이안이 눈을 떴다.

“후…….”

한층 더 맑아진 눈으로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라이안이었다.

“어라? 왜 모두들 모여 있는 거지?”

“라이안, 자네 괜찮은가?”

“주인님, 몸에 이상은 없으신지요?”

“정운아 어디 아프지는 않은 것이냐?”

모두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며 한마디씩 하자 라이안은 어리둥절해 했다.

“내가 이러고 있던 것이 얼마나 흘렀지?”

그 말을 타미르안이 받았다.

“벌써 4일째라네.”

“헛! 4일이나 지났다고? 난 겨우 한 시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심장에 무리가 가는 느낌은 없는가?”

“응, 전혀…….”

“그렇다면 다행이군. 자네의 몸에 갑자기 엄청난 마나의 흐름이 집중되더니 심장에 마나의 고리가 빠른 속도로 생성되었다네. 그리고 벌써 그 고리가 5개나 된다네. 허허허, 이상이 없다면 축하하네. 5서클 마스터가 된 것을.”

“어? 나 5서클이 된 거야?”

그 말을 하며 라이안은 몸 안의 마나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자신의 심장에 5개의 마나 고리가 생성된 것이 느껴졌다.

“헛! 정말이네? 마나의 고리가 5개나 만들어져 있어!”

“깨달음을 통해서 한 단계씩 올라갈 수 있는 경지를 한 번에 올라가다니. 자네의 지식과 깨달음의 경지가 상당한 모양이군.”

“그럼 나 이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거야? 타미르안?”

“허허허, 활용 방법만 알면 당연히 사용할 수 있다네. 자네에게는 내가 인간의 마법이 아닌 용언마법을 가르쳐 주겠네.”

“아… 그러면 배우는데 상당히 오래 걸리겠구나. 후…….”

또 뭔가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에 한숨짓고 있는 라이안을 보고 타미르안이 다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네. 9서클마법 중 지식이전 마법이 있다네. 그러니 내가 그냥 마법으로 전이시키면 되는 것이지.”

“앗! 그럼 그거 지식주입기하고 비슷한 방법이네?”

“지식 주입기?”

타미르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것에는 챠둠이 대답을 해주었다.

“지식 주입기란 어떠한 지식을 배우지 않고도 한순간에 기억에 새겨놓을 수 있는 기계지.”

“허허허, 역시 과학은 대단하군. 우리 세계에서 9서클에 해당되는 마법을 과학은 너무도 손쉽게 이루어내니…….”

또 한 번 과학의 우수함을 느끼게 되는 타미르안이었다. 그 사이에도 라이안은 타미르안을 졸랐다.

“타미르안! 나 그거 빨리 해주면 안 될까? 나 빨리 마법을 사용해보고 싶어.”

“그렇다면 잠시 이곳에 앉아보게나.”

그러자 라이안이 재빨리 앉았다.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후후후, 그거 참 사람 하고는…….”

라이안의 머리에 손을 얹은 타미르안이 눈을 감으로 라이안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하고 나면 잠시 어지러울 수 있다네.”

“응, 알았어.”

라이안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타미르안의 손에서 하얀 빛이 흘러 나왔다.

“큭!”

타미르안이 약간의 반발력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으응?”

“왜 그러나 타미르안?”

라이안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일어났고 챠둠도 타미르안에게 물어왔다.

“그것이… 지난번 라이안에게 치료마법을 펼쳤던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군…….”

타미르안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자, 라이안이 울먹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럴 수가…….”

역시나 세상은 생각하는 것처럼 마음대로 되지만은 않는 듯했다. 그러자 타미르안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생각난 것이 있는지 손가락을 퉁겨 딱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앗! 그것을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네만? 그 지식 주입기 말일세.”

“그렇군!”

“어? 그럼 방법이 있는 거야?”

챠둠이 가능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 먼저 타미르안이 다른 매개체에게 지식을 전이해준 다음 그것을 주인님에게 지식 주입기를 통해 전이시켜주면 될 것 같군.”

“그럼 그 매개체는 어떻게 구하지?”

타미르안의 그 말을 끝으로 모두의 시선이 조용히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이미화에게로 향했다.

이미화는 뭔가 불안함을 느끼며 그들을 보았다.

“저…저는 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렇군, 이미화에게도 무공을 배우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법을 배우도록 하면 되겠군.”

“와! 그럼 엄마가 마법사가 되는 거야?”

라이안은 또 다시 찾은 마법에 대한 희망에 불타올랐고, 이미화는 뜻하지 않은 능력을 부여받게 되었다.

“약 10여 분 정도면 다 만들어질 것 같군.”

챠둠이 지식 주입기를 제작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워프로 전송되었다.

“그럼 모든 준비는 끝났으니 라이안의 어머니께서는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챠둠의 주인까지는 평대를 하였으나 그 주인의 어머니까지는 평대를 할 수 없는 노릇인지라 존대하는 타미르안이었다. 이미 타미르안은 이들을 인간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불안한 표정을 한 이미화가 주춤거리며 걸어와 앉았다.

“그렇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약간 어지러움만 느낄 것이니 편안히 있으면 됩니다.”

“아… 네…….”

타미르안이 이미화의 머리에 손을 얹었고, 손에서 희미한 빛이 생성되었다. 그 빛은 그곳에 머물러 있다가 서서히 이미화의 머리로 흡수되듯이 사라져 갔다.

타미르안이 이미화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이제 다 되었습니다.”

“벌써요?”

이미화는 뒤를 돌아보다가 타미르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일어나려고 했다.

“아…….”

“엄마!”

일어나자마자 타미르안의 말대로 어지러움을 느낀 이미화는 쓰러질 듯 휘청거렸고, 그것을 급히 라이안이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음… 그런 거 같구나… 조금 어지러웠던 같으니…….”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 기억들이 차차 자리를 잡아갈 것입니다.”

챠둠이 안정을 찾은 이미화를 보고는 라이안에게 말했다.

“주인님께서는 어서 이미화에게 지식 주입기를 씌우십시오.”

“알았어. 챠둠, 그런데 이거 하고 나서도 엄마한테는 이상이 없는 거지?”

“그렇습니다. 전혀 뇌에는 이상이 없도록 만들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주인님께서 평소에 자주 사용하시던 것이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행이구나… 엄마, 잠시만요.”

라이안이 조심스럽게 지식 주입기를 이미화의 머리에 씌어주었다.

“작동 시작!”

위이이이이잉.

미약한 진동소리를 내며 지식 주입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지식 주입기는 마치 모자와 같은 모양으로, 그 가운데에 디지털방식의 숫자가 깜빡였다. 그리고 진행상태를 나타내는 듯 숫자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타미르안이 마법을 전수하는 데는 약 10여 분 정도 걸렸지만 지식 주입기를 통한 것은 그것의 두 배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야 100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지식 주입기의 작동 소리가 줄어들었고, 챠둠이 확인한 후 라이안에게 말했다.

“이제 완료되었습니다.”

챠둠의 말을 들은 라이안이 이미화의 머리에서 지식 주입기를 풀어주었다.

“괜찮으세요?”

라이안의 말을 듣고 살며시 눈을 뜨는 이미화가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구나. 그러니 걱정하지 말거라.”

살짝 웃으며 말하는 이미화의 말에 라이안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도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서 그것을 머리에 씌우려고 했다.

“이제 내 차례군. 이거 그냥 씌우기만 하면 되는 거지?”

“그렇습니다. 이미 분석하여 마법에 대한 기억만 남겨 두었습니다. 지금 쓰셔도 됩니다.”

“그래, 알았어.”

라이안은 챠둠의 말을 듣고 그것을 머리에 썼다. 그러자 이미화와 같은 상황으로 진행상태가 숫자로 표시되기 시작했다.

약 20여 분 정도가 지나자 숫자의 진행상태가 마무리 되었고, 지식 주입기의 미약한 진동소리가 사라지자 라이안이 스스로 지식 주입기를 벗었다.

“어떠십니까?”

“어떤가?”

“괜찮니 얘야?”

그들의 물음에 앉은 자리에서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조금 복잡하다고나 할까? 그냥 그렇네… 여하튼 기분이 좀 찜찜해.”

타미르안이 물었다.

“그래, 마법은 생각이 다 나는가? 어떻게 사용할지는 알겠는가?”

“잠시만… 정리 좀 하고…….”

말을 마친 라이안은 약 5분 정도 눈을 감았다. 생각은 다 나지만 아직 머릿속에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들을 책을 정리하듯 순서대로 정리해 나갔다.

“이제 되었군. 그럼 한번 시험해 볼까?”

“정말인가? 그럼 우선 밖으로 나가서 시험해 보게나.”

타미르안은 라이안의 손을 잡고 레어 밖으로 텔레포트를 했다. 이제 겨우 정리해 놓은 자신의 침실(?)이 망가지는 일은 없어야 했다.

타미르안의 레어 근처에서 밝은 빛과 함께 나타난 타미르안과 라이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와~ 여기 상당히 괜찮은데? 왜 이런 곳을 놔두고 그때는 거기로 갔었던 거야?”

“흠… 그냥 내가 내 무덤을 판 것이라고 생각하게나…….”

“하하하, 내가 그렇게 망쳐놓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지?”

“그렇지… 그러니 어서 마법이 되는지 실험해 보게나.”

아픈 기억에 대한 화제를 돌리고자 타미르안이 재촉했다. 과학으로 이동된 자신의 마법기억이 과연 사용될 수 있을지도 무척 궁금했다.

“흠… 그러면 우선 파이어 볼을 해볼까? 파이어 볼!”

화르르르륵!

쉬이이이.

꽈광!

순식간에 라이안의 손에서 불로 만들어진 공이 만들어졌고, 그것을 한쪽 나무로 던지자 나무가 한순간에 불타올랐다.

“프리즈 브리드!”

이어서 라이안의 손에서 이번에는 물의 공이 휘돌며 생성되었고, 그는 그것을 불타오르는 나무로 던졌다.

치이이이이.

나무에 부딪혀서 터진 물의 공은 삽시간을 불을 꺼트렸다.

“이야! 이거 정말 재밌는데?”

라이안은 자신이 마법이라는 것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을 무척이나 기뻐했다. 타미르안도 라이안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과학에 대한 열정을 품었다.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눈앞의 인간인 라이안 역시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다른 차원에서 왔다고는 하나 인간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아름다운 창술과 단 하루 만에 이루어낸 5서클 마스터의 경지였다. 과연 그 어떤 인간이 이러한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세계에서 만약 이러한 인간이 나온다면 이 세계는 인간들이 주가 되는 세계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저곳에 마법을 난사한 라이안은 모였던 마나가 고갈되었는지 상당히 지친 기색으로 주저앉아버렸다.

“에구, 힘들어라.”

“허허허, 당연하지. 아무리 마나가 많아도 수십 번이나 마법을 사용하면 지치기 마련이지. 인간이라면…….”

인간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여운을 남기는 타미르안이었다.

“그런가? 내공은 그대로 있는데 왠지 몸에 힘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야… 에잇! 운기로 보충해야겠다.”

라이안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하자 그의 몸으로 마나의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나자 마나의 바람이 잠잠해졌다.

그 순간 라이안이 벌떡 일어났다.

“야호! 이제 다시 원상복구 됐다!”

“파이어 볼! 프리즈 브리드! 프리즈 에로우!”

본래 상태로 돌아오자 라이안은 또다시 마법을 사용했다.

또다시 파이어 볼과 프리즈 브리드를 시험해 본 그는 이번엔 한층 더하여 프리즈 에로우를 날렸다. 얼음의 창이 나무에 부딪치자 그 부분이 움푹 파이다가 나무 전체가 얼어버렸다.

“으하하, 얼음 동상이닷! 얼음 동상!”

장난기 가득한 라이안의 모습에 놀라움으로 고개를 젓는 타미르안이었다.

‘대단하군. 한순간에 마나를 급속으로 충전시키다니… 보통 인간 마법사들이 봤으면 기절을 천 번을 하고도 또 하겠군.’

그렇게 여기저기 나무로 된 얼음 동상을 만들고 한 번을 더 마나를 끌어 모았다. 라이안이 그러한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할 것 같아서 미리 말리는 타미르안이었다.

“라이안, 이제 그만 하세나. 이러다가 이 숲에 있는 동물들이 모두 터전을 잃어버릴 것 같네.”

“어? 앗! 그렇구나! 이런… 이거 너무 내 생각만 했군.”

사실은 동물들보다는 몬스터였지만… 만약 타미르안이 몬스터의 터전이라고 말했다면 라이안은 며칠이나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몬스터에 대하여 좋지 않은 생각을 품고 있던 라이안이었기에.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라이안이 귀여운 손자같이 보이는 순간, 타미르안은 그러한 생각을 했던 자신에게 한 번 더 놀랐다.

‘허허허, 헤즐링조차 귀찮아서 만들지 않았었거늘…….’

타미르안은 챠둠의 과학을 더 깊게 알고 싶었고, 라이안이 과연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 인간인지를 보고 싶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이미 확인했으니 이제는 정령과 계약을 해보세나.”

“앗! 그래, 정령이 있었지! 빨리 해보자.”

라이안이 또다시 초롱초롱한 눈으로 타미르안을 바라보았다.

“우선 정령을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마법진을 만들어 주겠네.”

타미르안이 주문을 외우자 하얀 빛 무리가 허공에서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순간 땅으로 하강하며 땅에 무엇인가를 새겼다. 원이 하나 그려졌고, 그 안쪽에 수십 개의 언어가 쓰였다. 라이안도 그것이 룬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타미르안의 기억을 전이 받았기 때문이다. 지식을 전이 받으며 대륙공통어와 함께 엘프어 등 수많은 언어를 습득한 것이다.

“이제 되었다네. 저 마법진 안에 들어가게나.”

“이렇게?”

“그곳에서 앉아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서 정령들을 상상하며 의지를 보내면 된다네.”

“흠… 의지라…….”

라이안은 가부좌를 틀어 앉고 눈을 감았다.

“정령들아 이리로 오렴… 정령들아 이리로 오렴… 정령들아 이리로 오렴…….”

그 모습에 타미르안이 어이없어 하며 한숨을 쉬었다.

“후… 굳이 말로 부를 필요는 없다네. 속으로 불러도 되는 것이라네.”

“아, 그런 거였어?”

그때서야 다시 조용해진 라이안이 속으로 정령을 부르고자 자신의 마음을 정령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딱히 어떤 정령을 부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누구라도 와달라는 마음을 전달하려고 집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타미르안에게도 작은 정령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흠, 역시 친화력이 높아서 바로 오는군. 헛! 하나가 아니라 둘? 앗 셋! 아니 넷! 한 번에 오는가!”

갑자기 네 개의 무엇인가가 라이안의 눈앞에 나타나더니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물의 정령 엔다이론. 나와 계약을 맺겠는가…….”

“나는 불의 정령 샐라임. 나와 계약을 맺겠는가…….”

“나는 바람의 정령 실라이온. 나와 계약을 맺겠는가…….”

“나는 땅의 정령 노에스. 나와 계약을 맺겠는가…….”

타미르안은 놀란 눈으로 그 네 존재를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아무리 친화력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4대 정령을 한 번에 부를 줄이야… 게다가 모두가 상급!”

라이안도 눈앞에 선명히 보이는 존재들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앗! 그런데 그 작은 아이는 안 오는 거야? 난 그 애랑 계약하고 싶었는데…….”

타미르안은 상급정령들이 계약을 맺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빨리 계약을 맺도록 하고자 라이안에게 서둘도록 했다.

“라이안! 상급 정령들과 계약을 맺으면 자연스럽게 하급정령도 부를 수 있도록 되어있다네!”

“아, 그런 거였어? 그럼 나 계약할게.”

“태초의 맹약에 따라 그대와의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알린다.”

정령들이 동시에 같은 말을 하자 라이안은 자신의 몸에서 상당량의 마나가 빠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엇! 상당한 마나를 가져가는군.”

상급 정령들이 희미한 모습으로 사라져 갔다. 라이안이 약간 지친 모습으로 땅에 주저앉았고 라이안이 있던 자리의 마법진 또한 사라졌다.

타미르안이 계약을 마친 라이안에게 다가왔다.

“라이안, 괜찮은가?”

“어, 괜찮아. 단지 몸에 힘이 없을 뿐이니까. 다시 운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앉은 자리에서 자세를 가다듬고 운기를 시작했다.

역시나 혈기공을 운기하자 빠른 속도로 마나의 바람이 라이안 쪽으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상급 정령들이 심장에 있는 마나를 가져가지 않고 몸 전체에 있는 마나를 가져가서 무척이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라이안이었다. 심장에 있는 마나였으면 아마도 마나의 양이 모자랐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마법실험과 정령의 계약이 끝난 후에야 타미르안과 라이안은 다시 레어로 돌아왔다.

라이안의 어머니가 이미 밥을 차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와! 밥이다! 그러고 보니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렸구나. 해가 질 때가 되었으니.”

이미화가 라이안에게 물었다.

“갔던 일은 잘된 거니?”

“네, 엄마. 엄마도 이제 마법을 배울 수 있으니 앞으로 잘 배워 보세요. 정말 재미있어요.”

“호호호, 우리 정운이가 많이 기쁜가 보구나?”

“당연하죠. 여기는 정말 즐거운 것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아요. 헤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고생도 많이 했고, 친구를 도우려다 목숨도 잃을 뻔했지만 하나하나가 다 새롭고 즐거운 라이안 이었다.

그러다 문득 팔튼과 헤인드 일행이 걱정이 되었고 할아버지들이 보고 싶어졌다.

“챠둠,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들이 왜 계속 안 보이시지?”

“흠, 그것은 저 역시 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노인네들은 어디서든 굶어 죽을 인간들이 아니니까요?”

“으잉? 어디 계시는지 모른단 말이야?”

“어떤 위치에 떨어트렸는지 기억은 하고 있지만 그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습니다.”

그 말에 라이안이 음식을 먹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에휴, 너 또 혁 할아버지랑 싸웠구나?”

라이안의 그 말에 챠둠의 홀로그램이 어색한 행동을 보이며 우기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역시 내 말이 맞구나. 넌 아직 거짓말이 서툴단 말야.”

“흠…….”

“가만히 있지 말고 어서 할아버지들에게 나 찾았다고 말씀드려. 그분들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시는지 내가 알고 있는데 그렇게 걱정시켜 드릴 수는 없잖아.”

“알겠습니다.”

갈천혁과 혁마소는 실제 인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뼈는 강철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뼈에는 기계적인 장치가 있었으니, 통신의 기능과 위치추적은 물론, 그들이 말하고 듣는 것까지 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맨 처음 챠둠이 지구로 왔을 때 지구가 어떠한 곳인지 알기 위해 만든 사람들이 그들이었기에 그러한 기능을 갖추어야만 했다.

하지만 역시 처음 만든 것에는 오차가 있는 법이었다. 어느 정도 의무감을 심어주어 맡은바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했었지만 역시 과격한 마교 쪽으로 간 혁마소에게서 문제가 나타났다.

갈천혁은 강직하며 온순한 성격을 가진 반면 혁마소는 마공을 익히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고, 마공에 물들어 마인이 되어 미쳐버린 것을 겨우 갈천혁에게 잡아오라고 해서 고쳐놓기도 했었다. 그 이후… 통제불능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폐기처분 시킬까 생각도 했지만 갈천혁이 그동안 생긴 정으로 그것을 말렸고. 그것을 방치한 결과 자신의 주인과도 깊은 정을 나누게 되었으니 이제는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싸우면서 정이 든다고 했었던가? 챠둠 역시도 갈천혁과 같이 미운정이 생겨 버려서 어쩔 수 없었지만 허구한 날 싸우고 또 싸웠으니 머리가 없는 챠둠조차 두통을 앓을 지경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