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돈의 라이안-6화 (6/57)

제6장 여행, 그리고 위기

라이안은 평화로운 마을이 너무도 좋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촌장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며 촌장에게 말을 꺼냈다.

“이제 떠나야 할 것 같아요, 촌장님.”

그 말에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촌장이 물어왔다.

“그래,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이오?”

“그보다… 팔튼이 귀족인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촌장은 조금 놀랐으나 근래에 팔튼과 가깝게 지내는 라이안이 팔튼에게 들어 그것을 알았을 수도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팔튼 도련님이 말하지 말라고 해서 숨긴 것이니 너무 개의치 말게나.”

“하하하, 괜찮습니다. 이번에 저는 팔튼이 하려는 ‘예비기사의 여행’에 따라나서 볼까 합니다. 팔튼은 용병으로 각각 영지를 떠돌며 나라 안을 살피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같이 다니다 보면 제가 잊은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같이 가려 합니다.”

“흠… 그럼 그렇게 하시게나.”

촌장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팔튼이 2층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라이안의 말을 들었는지 곧 입을 열었다.

“아직 자네에게 배울 것이 많아 안 그래도 그것을 부탁할 참이었네.”

“하하하, 그런가?”

“당연하지 않은가? 자네가 같이 가주지 않는다면 나 역시 이곳을 벗어날 수 없으니 말일세.”

촌장이 라이안에게 물어왔다.

“그래, 언제 떠날 생각인가?”

“아침을 먹자마자 떠나려고 합니다. 생각함과 동시에 행동해야 마을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덜 슬프지 않겠습니까?”

“아니, 지금 당장 말인가?”

“그렇습니다.”

“흠… 아쉽구만.”

그에 팔튼이 재빨리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움냐움냐, 그럼 빨리 짐을 싸야겠군.”

“헉! 이봐, 팔튼. 음식 먹으면서 말하니까 빵조각이 다 튀어나오자나!”

“거참, 뭐가 튀어나온다고.”

끝까지 말을 하며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팔튼이었다.

이윽고 그동안 아무 말도 없다가 갑자기 떠나려는 라이안을 마을 사람들 전부가 나와서 배웅했다.

“이보게, 라이안. 몸조심하게나.”

“그동안 고마웠다네.”

“아이고, 이렇게 가버리면 어쩌누?”

그동안 친해졌던 마을 주민들이 서운하다며 말해왔고 이렇게 갑자기 떠나보냄을 아쉬워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이곳에 올 것이니 그때 다시 웃으며 보면 되지요. 후훗!”

“그래그래, 조심히 잘 가게.”

“하하하, 다음에 또 만나요.”

마을 사람들과 그렇게 인사를 하고 있는 사이 촌장은 급히 집에 들어갔다가 손에 가죽주머니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라이안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니, 촌장님,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동안 자네가 사냥해온 동물들의 가죽을 팔아서 마련한 돈일세. 자네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여행 경비로 쓰게나.”

“감사합니다, 촌장님.”

“그래, 어서 떠나게. 도련님께서 기다리시니… 이보게들! 자네들이 어서 보내줘야 라이안이 떠나지 않겠는가!”

오래 붙어 있으면 더욱 아쉬운 마음만 들까 봐 촌장은 서둘러 마을 사람과 떨어트렸다.

팔튼과 라이안이 시야에서 멀어졌지만 마을 사람들은 들어갈 줄 몰랐고 라이안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렇게 다른 곳을 혼자 여행하는 것이 처음인 라이안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서 길을 재촉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길을 걷다 팔튼이 말했다.

“난 우선 나치키 영지로 가볼까 생각한다네. 그곳을 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안전한 길을 이용해 돌아서 가는 방법과 아랜 산맥을 넘어서 빨리 가는 방법이 있지. 하지만 아랜 산맥은 몬스터가 상당히 많이 출몰하는 곳이라네.”

팔튼은 수련한 것을 실전에 적용해보고 싶어 아랜 산맥을 타고 가고 싶었으나 라이안까지 굳이 편치 않은 길로 갈 필요는 없었기에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몬스터라… 거기 혹시 오우거도 나오나?”

“깊은 산길을 타다 보면 나올 수도 있네. 위험할 수도 있고.”

“하하하, 팔튼 너도 이제 내 실력을 알잖아? 나도 처음에는 오우거가 무서웠지만 지금은 한번 싸워보고 싶어. 아랜 산맥으로 가자.”

“하하하, 그렇지. 아무리 오우거가 나타나도 소드 마스터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지.”

그렇게 둘은 행로를 아랜 산맥으로 잡고 여행을 시작했다. 팔튼도 혼자서는 아랜 산맥을 통하여 여행할 생각이 없었다. 안전한 길로 가더라도 가끔 출현하는 것이 오크들이었다. 몇몇 오크야 팔튼 혼자서도 거뜬했기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아랜 산맥으로 가게 되면 그야말로 몇몇 오크가 아닌 20마리 이상의 오크 떼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작은 용병대보다 더 막강한 조력자가 있었으니 아랜 산맥도 그리 위험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산길을 지나간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지 산에는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들은 팔튼이 가져온 고가의 지도를 보아가며 길을 잡았다.

그러다 점심때가 되었고, 그들은 불을 지펴 스프를 끓여 마을에서 가져온 빵조각과 곁들여 먹었다.

그렇게 음식을 먹는 사이, 라이안의 육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내력을 돋우어 눈에 집중하여 살펴보니 한 마리의 오크가 멀리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크군.”

“뭐?!”

라이안이 보고 있는 방향을 팔튼이 바라보자 정말 한 마리의 오크가 있었고 라이안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재빨리 도망을 쳤다. 그에 팔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자기 혼자서는 우리를 어쩌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도망가는군.”

“과연 그럴까?”

“무슨 말인가?”

“후후후,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야. 기다려봐.”

“……?”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팔튼이 다 먹은 음식과 식기구들을 챙겼다. 그리고 지도를 확인한 다음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약 한 시간가량 가고 있던 차에 라이안의 귀감에 뭔가가 또 잡혔는지 그는 다시 멈추어 섰다.

“역시… 아까 그 녀석은 정찰을 하던 놈이었군.”

“앞에 뭐가 있는가?”

“어, 오크 무리가 있는 것 같아. 300피르 밖에서 20여 마리 정도가 우리가 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군.”

팔튼은 그토록 먼 거리에 있는 오크들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궁금했으나 헛말을 할 라이안이 아님을 알기에 믿기로 했다.

“흠… 역시 아랜 산맥은 오크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군.”

“뭐, 걱정할 숫자는 아니니 가보자고.”

“그렇게 하세나.”

팔튼은 지도를 보곤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현재 자신들이 있는 곳은 돌아가자면 커다란 돌산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어려움이 따랐다. 때문에 오히려 오크 무리와 싸우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었다.

그들이 오크 무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자 오크 무리는 주위 양 갈래로 숨어서 습격하려고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라이안의 눈에는 그것이 다 보였다. 위쪽에서는 5마리의 오크가 큰 바위를 들고 있었는데, 그들은 라이안과 팔튼이 지나가는 찰나에그것을 던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조용한 목소리로 오크 무리의 대장이 말했다.

“취익! 가까이 오면 돌을 던진다. 취익!”

“아, 알겠다. 취익!”

돌을 들고 있던 오크는 돌의 무게가 무거운지 무척이나 힘겨워하며 더듬더듬 말했다.

한편 그것을 보고 있던 라이안은 웃음을 지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것이다.

“잠시 여기서 멈추자고.”

“이 주위에 있나?”

“응, 위쪽에서 우리한테 큰 돌을 던지려고 준비하고 있군. 뭐, 숨으려고 노력한 것 같긴 하지만 내 눈에는 저렇게 적나라하게 보이니…….”

“그럼 지나가다가 피하면 되지 않은가?”

“크그극, 오크라는 몬스터가 머리가 좋은가?”

“그건 아니라네, 지능이 어린아이 정도라고 알고 있다네.”

“역시 그렇군. 그럼 만약 우리가 계속 여기 있게 된다면 저 멍청한 오크들 중 돌을 들고 있는 놈들은 계속 들고 있게 되지 않을까?”

“하…하하하.”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허탈하게 웃으며 라이안을 바라보는 팔튼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아무리 멍청하다고 하나 내려놓고 있다가 다시 들어서 던지겠지.”

“하하하, 이곳 대륙에서 말하는 소드 마스터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보다 시야가 길거든? 지금 보이기에도 계속 그 돌을 들고 있다는 말이지. 큭큭큭.”

그때 오크 무리의 대장은 왜 두 명의 인간이 자신들이 공격하지 직전의 거리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는지 몰랐다. 속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어서 맛있는 인간고기를 먹고 싶어서 자꾸만 침이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크 무리의 대장보다도 더욱 미칠 것 같은 오크가 있었으니 아직도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5마리의 오크들이었다.

“끄응, 더 이상 못 참겠다. 취익.”

“나도 더 이상 못 들고 있겠다. 취익, 그냥 덮치자. 취익.”

그들의 성화에 대장오크가 소리치며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취익! 바로 앞까지 왔으니 금방 올 것이다. 취익!”

“끄응!”

그러나 팔튼과 라이안은 움직일 줄 몰랐고 더 이상 큰 돌을 들고 있을 수 없는 오크들이 돌을 떨어뜨렸다.

쿵! 쿵! 쿠궁! 쿵!

그것이 너무도 크게 들려서 라이안은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하면서 소리쳤다.

“어라! 이게 무슨 소리지? 큰 돌이 떨어지는 소리네! 누가 큰 돌을 우리한테 던지려고 했나 보네!”

라이안의 목소리를 들은 오크 무리의 대장이 돌을 들고 있던 오크들을 째려보다가 이미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공격명령을 내렸다.

“취익! 모두 공격이닷! 취익!”

“취익! 공격~!”

그것을 보던 라이안이 어느 한 나무 아래에 있던 나뭇가지를 들었고 팔튼이 자신의 검을 뽑았다.

쳉!

그렇게 공격하던 무리는 인간 중 하나가 검을 꺼내자 잠시 주춤했고 그렇게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오크 무리의 대장이 앞을 나서며 말했다.

“취익, 저항하지 않는다면 안 아프게 먹겠다. 취익!”

그 말이 어이가 없는 팔튼이 소리쳤다.

“저거 미친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야! 이 미친 오크야. 너 이리 와봐. 내가 너 물어볼게. 아픈지 안 아픈지 말해봐.”

“물면 당연히 아픈 거 아니냐, 바보 인간아! 취익!”

“헉! 저, 저 멍청한 오크가! 감히 나보고 바보라고!”

그렇게 오크와 팔튼이 말싸움하는 것이 너무도 웃긴 나머지 라이안이 배를 잡고 웃었고 그에 또다시 얼굴이 빨개지는 팔튼이었다.

“큭큭큭… 팔튼, 너는 오크한테도 바보 소리를 듣는구나. 하하하!”

“이익! 너 이상하게 생긴 오크 놈! 곱게 죽이지 않겠다!”

화가 나 얼굴이 빨개진 팔튼이 오크들에게 달려들었다.

캉! 카강!

쉬익! 스윽!

“꾸엑!”

“꿱!”

처음에는 검으로 공격하는 팔튼을 오크들이 막았다. 그에 그는 라이안이 가르쳐준 유운유령신법으로 오크들 사이사이를 파고들며 그들을 간단히 베어 넘겼다.

단전에 있는 마나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지 엉성했지만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다.

오크들 중에는 칼조차 제대로 못 들며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가장 먼저 팔튼의 목표물이 되어 쓰러졌다. 그들은 아마도 무거운 돌을 들었던 오크였던 듯했다.

정운은 무리하게 싸우는 팔튼을 보며 고개를 저었고 가만히 한쪽 나무에 기대어 구경을 했다.

“취익, 후퇴하자! 강한 인간이닷!”

“너 이 자식! 어딜 가! 거기 안 서!”

“내가 미쳤냐, 바보 인간아! 후퇴!”

그에 더욱 화가 난 팔튼이 오크들을 쫓아가려고 했으나 도망가는 오크들이 어찌나 빠른지 벌써 먼 거리까지 도망갔다.

물론 신법으로 쫓아간다면 순식간에 쫓아가서 전멸시켰을 것이나, 그리 되면 라이안과도 멀어지고 숲 속 깊이 들어가게 될 경우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지라 그는 쫓는 것을 멈추었다.

“헉헉! 저놈을 가장 먼저 요절을 냈어야 했는데… 헉헉!”

아직도 화가 가라않은 팔튼이 성을 냈다.

“됐으니 그만 가자. 큭큭큭!”

“우, 웃지 말게나! 어험!”

창피한지 빨개진 얼굴을 돌려버리는 팔튼이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웃겨 라이안은 계속해서 웃어댔고 그에 무안한 팔튼이 어쩔 줄 몰라 했다.

“빌어먹을 오크 놈들! 걸리기만 해봐라! 퉤엣!”

배낭에서 수건을 꺼낸 팔튼이 투덜거리며 칼과 옷에 묻은 오크의 피를 닦아냈다.

그런 팔튼의 모습을 보며 라이안이 말했다.

“그래도 보법이 많이 능숙해진 것 같은데?”

“그렇지? 앞으로 나가는 것과 순간순간 움직임을 바꾸는 것은 내가 봐도 엄청난 것 같네.”

장족의 발전을 한 팔튼은 라이안의 칭찬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현재 팔튼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 높은 경지에 오른 상태였다.

현재 히매인 왕국의 수많은 무가 집안에서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는 수백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는 경지였다. 또한 그렇게 나오기 힘든 소드 마스터라는 것은 남작의 위치에서 순식간에 후작으로 오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실제로 히매인 왕국의 바치스 공작이 그랬다.

40세의 나이로 익스퍼트 최상급에 올라 왕국에서도 눈여겨보았으나 약 20여 년 동안이나 검술에 발전이 없어 그것이 바치스 공작의 한계라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바치스 공작조차도 허탈한 듯 그렇게 노력하던 검술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던 시점에 그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고 순식간에 바치스 공작은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 백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던 바치스를 공작의 작위로 올려줄 만큼 대단한 일이었다.

히매인 왕국은 에드코르 제국의 침공을 받아 전쟁에서 패한 이후 거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실정이었고, 실제로도 에드코르 제국에 매년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점점 쇠퇴해가는 히매인 왕국은 망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전의 영광을 되살리고자 히매인 왕국의 국왕인 크호른 왕이 국력을 되살려보고자 했으나 언제나 에드코르 제국의 압력으로 그조차 실행할 수가 없었다.

그런 찰나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소드 마스터가 생겨났으니 안크호른 왕은 그것에 크게 기뻐하며 공작의 작위를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200년 만에 나타난 히매인 왕국의 소드 마스터조차도 40세의 나이에 겨우 이룬 경지인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팔튼이 20대 초반의 나이에 올랐으니… 팔튼 자신도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황홀감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라이안을 생각하면 자신은 산 아래에 있는 작은 조약돌일 뿐이기에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팔튼이 라이안에게 들었던 내용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가 있던 곳에서는 철로 된 차라는 것이 엄청난 속도록 달리고 비행기라는 것이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했다.

그것을 들은 팔튼은 아카데미에서 마법에 대응하며 싸우는 법을 배우기 위해 들었던 마법강의가 생각났다. 그것 중 마법사들이 꿈에 그리는 경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차원의 문을 여는 방법’이었다.

팔튼은 라이안이 이곳과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들었기에 그가 분명 차원을 이동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다시 산길을 걸으며 팔튼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라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팔튼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응? 아, 아니라네.”

“근데 왜 그렇게 쳐다봐?”

“그냥… 자네를 볼 때마다 신기해서 그렇지.”

“뭐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는가?”

“응.”

“어험, 그것이… 자네가 온 곳은 이곳과 다른 세상이라고 했는데 혹시 그곳 사람들도 다 자네처럼 모두 강한가?”

“하하하! 그것이 그렇게 궁금했던 거야?”

“뭐, 조금…….”

“내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오기 전의 그곳에는 여기서 말하는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어. 뭐, 아주 조금의 마나를 움직이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그 양이 아주 미세했고, 다루는 것도 다룬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경지였으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지.”

“흠… 그렇군. 그런데 어째서 자네만 그렇게 강할 수 있는 건가?”

그 말에 챠둠과 할아버지들이 생각난 라이안이 추억을 회상하며 말했다.

“나의 경우는 조금 특별했어. 하긴, 내가 있던 곳도 몇 백 년 전까지는 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더군. 심지어 내가 오기 1천 년 전에는 이곳에서 말하는 소드 마스터라는 경지의 사람들이 몇 천을 넘었었다고 하더군.”

“헉! 소드 마스터가 몇 천! 확실한 건가?”

“그래, 맞아.”

“이, 이럴 수가…….”

“팔튼, 너에게 가르쳐준 심법보다 더욱 마나를 빠르게 모을 수 있는 심법들이 수만 가지나 있는 세상이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배운 심법 같은 것이… 수만 가지라고?!”

“응, 그보다 백 배 더 뛰어난 심법이 수만 가지였어.”

“대단한 세상이었군. 그런데 그런 곳에서 어째서 그렇게 갑자기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사라져간 거지?”

“그것은 과학의 발전 때문이었지. 그곳에서는 총으로 시작해 폭탄이라는 것과 미사일이라는 것이 생겨났거든. 그로 인해 더 이상 검술이라는 것이 필요 없어졌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지. 때문에 지금은 잔존의 그림자만이 남아 있을 뿐이지.”

“과학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가?”

“응, 단 하나의 미사일이 한 나라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으니 무서울 수밖에.”

“그, 그렇군. 이거 살 떨려서 그런 곳에 살 수나 있겠나.”

“후훗, 뭐, 일단은 그곳에도 법이라는 것이 있으니 남발하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이군.”

심각한 얼굴로 안심하고 있는 팔튼을 라이안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 순간! 라이안의 귓가에 또다시 무엇인가가 들렸다.

그것은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무엇인가가 터지는 소리였다. 라이안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자 팔튼이 물어왔다.

“왜 그러나?”

“앞쪽에서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군.”

“음? 그렇다면 얼른 가보세나.”

“그러세.”

팔튼과 라이안이 신법을 사용하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신속히 이동했는데 그 속도가 일반 사람이 뛰는 속도의 세 배는 되었다. 이렇게 팔튼의 경지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 * *

어느 숲 속.

2마리의 오우거와 4명의 사람들이 싸우고 있었다.

“핫! 에나! 지금이야!”

“알았어요! 파이어 볼!”

꽝!

쿠오오오오!

검사인 듯한 한 남자가 공격을 하다가 재빨리 피하며 신호를 보내자 마법사인 듯한 여자가 파이어 볼을 날렸다. 그러나 오우거는 그것을 팔로 막았다. 그의 몸에는 약간의 그을음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것에 분노한 여자가 분노하며 공격하려 하자 또 다른 검사가 재차 막으며 소리쳤다.

“조심해! 헤인드!”

“쳇! 너나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하며 뒤로 살짝 물러나는 헤인드는 뒤에서 뭔가의 압박감을 받고서는 급속히 허리를 숙였다.

“이크!”

그러자 다른 한 마리의 오우거가 커다란 몽둥이를 휘둘렀고 아슬아슬하게 헤인드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그것을 본 또 한 명의 검사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는 앞뒤로 공격을 가해오는 오우거에 당황한 나머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양쪽에서 동시에 날아오는 두 오우거의 몽둥이를 피하지 못하고 그가 떡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안 돼! 디로안!”

“꺄악!”

또다시 마법을 준비하던 여자가 그것을 보며 차마 못 보겠다는 듯 눈을 감으며 소리쳤다.

‘크윽! 제길… 이대로 죽는가.’

검사가 죽음을 앞두고 체념하는 순간, 이상한 소리가 흘렀다.

스윽!

스윽!

꽝! 꽝!

“괜찮아요?”

이제 죽는구나 생각했던 디로안은 눈앞에 검은 머리의 소년이 나타나자 당황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놀란 듯한 눈으로 손잡이만 남은 커다란 몽둥이를 잡고 있는 오우거들에 더 놀랐다.

“누, 누구시오?”

“그보다 잠시 물러나 있어요. 이봐, 팔튼. 나머지 한 마리는 네가 맡아!”

“알겠네. 이 정도야 굳은 빵을 씹는 것보다 쉽지!”

그렇게 말하며 소년은 다른 쪽에서 나타난 건장한 남자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랬다. 그들은 오우거와 싸우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달려온 팔튼과 라이안이었다. 그것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지만 위험함을 느끼며 물러서는 헤인드와 디로안이었다. 뒤쪽에는 이미 마법사인 에나와 신관인 라드이라가 피해 있었다.

오우거에게 달려드는 그들을 보고 있던 헤인드가 두 사람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소리쳤다.

“당신들만으로는 힘들…….”

그렇게 소리치려고 했지만 순간 말이 더 나오지 않았다. 그도 용병이기 이전에 검사였다. 그토록 열심히 검을 수련했지만 마나를 느낄 수 없었고 검기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눈앞에 그런 꿈의 경지가 있었던 것이다.

부우우웅!

부우우용!

헤인드를 도와주었던 라이안은 완벽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팔튼은 조금 부족하지만 거의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 듯 말 듯 넘실대는 오러를 방출하고 있었다.

“그럼 한번 해볼까?”

“그러세나! 차앗!”

두 사람의 기세에 잠시 놀랐던 오우거들이 제차 작은 나무를 뽑으며 휘둘렀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것을 귀신같이 피하며 들고 있던 나무를 잘라냈고 라이안은 오우거의 목으로 팔튼은 오우거의 다리로 달려들었다.

쿠루루룩!

쿠오오오오!

쿵!

펄썩!

스윽!

쿵!

펄썩!

라이안은 한 번에 오우거의 목을 잘라내어 쓰러뜨렸고, 팔튼은 다리 한쪽을 잘라내고, 쓰러지는 오우거에게 다시 재빨리 검을 휘둘러 목을 잘라 쓰러뜨렸다.

그것을 본 라이안이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게 아니지, 팔튼! 바로 아래로 피하며 다리를 자르기보다 한 번 우회하며 뛰어서 목부터 잘라내면 한 번에 끝낼 수 있잖아.”

“그렇군. 아직 서툴러서 그러니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말게나. 후훗.”

단번에 오우거 두 마리를 쓰러트리며 이런 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지켜보던 4명은 땅에 닿을 듯 입을 벌리고만 있었다.

“대, 대단하다. 오러 블레이드… 소, 소드 마스터…….”

“이럴 수가… 저 사람도 최상급 이상이라니…….”

“어디서 이런 엄청난 사람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그렇게 정신이 하나도 없는 4명에게 다가간 라이안이 물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나요?”

“아… 네! 없습니다!”

“아이고, 저 귀 안 먹었어요. 그렇게 소리치지 마세요.”

소리쳐 말하는 헤인드 때문에 라이안이 급히 두 귀를 막았다.

한편 에나의 눈에는 그토록 꿈에서만 나타나던 왕자님이 나타난 듯했다. 언젠가 자신이 위험할 때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어려서부터 해왔던 것이다.

에나의 나이는 이제 소녀라기엔 과한 20살이지만 여자의 마음은 아이와 같다고 누가 그랬던가.

‘아… 너무 잘생겼구나. 그런데… 내 가슴이 왜 이리 두근거리지?”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팔튼의 한마디에 가슴속 깊이 숨겼다.

네 사람을 바라보던 팔튼이 다시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 4명이서 이곳을 들어온 것입니까?”

팔튼의 말에 디로안이 재빨리 말했다.

“아… 네, 맞습니다. 저희는 아로스에서 나치키 영지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네 사람이라는 적은 파티로 아랜 산맥을 지나려 한단 말이오. 너무 무모하지 않소?”

겨우 두 사람이서 아랜 산맥을 지나가는 팔튼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실력을 보았으니 그것을 충분히 수긍하는 일행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뭔가 사정이 있었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며 머뭇거렸다.

“그것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팔튼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쓰러져 있는 오우거의 시체에서 역한 냄새가 퍼져 나가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말했다.

“우선 이곳은 오우거의 시체로 인해 피 냄새를 맡은 몬스터들이 곧 들이닥칠 것이오. 자리를 피하고 이야기합시다.”

“알겠습니다.”

일정 거리를 벗어나자 뒤쪽에서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수많은 몬스터들이 몰려들었을 것이고 서로 먹이를 빼앗고자 싸우고 있을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몸서리치는 4명이었으나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개를 돌려 라이안을 뒤따랐다.

해가 지려 하자 그들은 서둘러 야영할 자리를 물색했고 마침내 적당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팔튼이 나무를 모으자 나머지 4명의 용병들도 서둘러 나뭇가지들을 모았다. 나무가 다 모이자 에나가 마법으로 불을 붙이려고 했다.

“제가 불을 붙이겠어요.”

“아니에요, 그냥 쉬고 있어요. 이건 원래 제 당번이거든요.”

“하지만…….”

그녀가 마법으로 쉽게 붙일 수 있다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화르르륵!

“앗!”

갑자기 라이안이 가지고 있던 나뭇가지에서 불이 솟아올랐다. 그것을 본 에나는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라이안은 삼매진화를 일으켜 나무를 태운 것이다. 그는 불이 전혀 뜨겁지 않다는 듯 모아놓은 나무에 불을 붙인 나무를 올려놓았다.

탁! 따닥! 딱!

모아놓은 나무에 불이 붙었고 타들어가며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들은 불이 붙은 나무보다 라이안이 더욱 신기했다.

에나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혹시, 마검사이신가요?”

그러자 다른 세 명의 용병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마검사가 무엇이죠? 팔튼, 너는 알아?”

팔튼은 마검사를 몇 번 본 적이 있었기에 이들이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팔튼 자신도 처음에는 라이안이 마검사가 아닐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법과 검을 동시에 사용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네. 보통 마법과 검을 동시에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지가 낮지. 하나의 길을 가기도 힘든데 어찌 두 개의 길을 동시에 가려 하면서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겠는가? 때문에 자네를 처음 보는 이들은 자네를 신기하게 생각할 것이네.”

“아,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한 것이 마법이라고 생각한 거구나?”

“하하하, 그렇지. 나도 솔직히 처음에는 마법이라고 생각했으니.”

라이안이 붙인 불이 마법으로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듯한 의미로 말하자 어리둥절해 있던 에나가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럼 그것이 마법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어떻게 불을 만들어낼 수 있죠?”

그러자 라이안이 피곤해질 것을 생각해 팔튼이 끼어들었다.

“이 친구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으니 너무 알려 하지 마시오.”

그 말에 라이안이 에나를 보고선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었다.

“하하하, 설명하기 힘든 문제인 듯하네요. 후훗.”

마법사들은 궁금증을 참기 힘들어하는 족속들이었다. 에나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라이안이 살며시 웃자 천상의 미소를 본 듯 이내 얼굴이 발개지면서 황홀한 듯한 표정을 나타냈다.

그것을 본 헤인드가 사악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엇! 에나 얼굴이 빨개졌잖아! 혹시 에나가 저 친구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

“뭐, 뭐예욧!”

마음을 들켰는지 화들짝 놀라며 소리치는 에나였다. 그들의 행동이 재밌어 보고 있던 라이안이 그들을 진정시키려는 듯 말을 꺼냈다.

“자자, 그만 하시고요. 우리 통성명이나 하죠?”

“앗! 그렇군. 이제 보니 서로 이름도 모르잖아?”

디로안이 이제야 그것을 알았는지 서둘러 일어났고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디로안이라고 한다네. 나이는 25살이고 보시다시피 실력은 없지만 검을 쓴다네.”

처음과 다르게 존대를 쓰지 않는 디로안이었으나 그것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용병이라는 사람들이 대부분 털털했기 때문이다.

디로안에 이어 이번에는 헤인드가 손을 들며 말했다.

“난 헤인드, 저 친구와 같이 검을 쓰지. 나이는 26살이지만 디로안과는 친구로 지내기로 했지.”

“전 라드이라입니다. 라피네 신을 모시고 있는 신관입니다.”

“전 에나예요. 나이는 20살, 마법사고 3서클 마스터랍니다. 헤헤.”

자랑하는 듯한 에나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렇게 4명의 소개가 끝났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라이안과 팔튼에게로 집중되었다.

“아, 전 라이안이라고 합니다. 팔튼, 너 몇 살이라고 했지?”

“올해 23살이 되는군.”

“저렇다고 하는군요. 뭐, 팔튼과 저는 나이가 비슷해서 우리도 친구로 지내기로 했죠. 그리고 보시다시피 우리도 검을 사용합니다.”

그 말을 들은 에나가 나서며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라이안은 나이가 저보다 어려 보이는데요? 팔튼 오빠와 정말 비슷한 나이인가요?”

팔튼이 자신보다 확실히 나이가 많아 보였는지 금방 오빠라고 호칭을 붙이는 에나였다.

“하하하! 그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혹시 나이를 속이는 거 아닌가요?”

에나가 꼭 알아내겠다는 듯 라이안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추궁했다. 그것을 본 팔튼이 장난기가 발동하여 말했다.

“이봐요, 에나. 그러다가 우리 어르신 심장마비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시나? 앞에 있는 사람이 실제로는 60살도 넘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인데?”

그 말에 에나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에에? 설마! 거짓말이죠?”

“큭큭큭!”

“팔튼 너 이 자식! 그건 말 안 하기로 했잖아!”

팔튼은 계속 웃고 있었지만 라이안의 그 말에 모두가 또다시 라이안을 쳐다보았다.

“정말입니까?”

“정말인가요?”

그들이 갑자기 다시 존대로 말투를 바꾸면서 물어오자 라이안이 이마에 손을 올린 채 한숨을 쉬었다.

“에휴, 그냥 우리 남자들은 모두 친구로 지내는 것이 어떻겠어요?”

“우리야 뭐, 그렇게 하면 말하기 편하지.”

역시나 빠른 적응력을 보이는 헤인드였다.

“앗! 그럼 나는요?”

에나가 급히 끼어들자 라이안이 웃으며 말했다.

“에나는 그럼 저기 보이는 헤인드처럼 털이 북실북실하고 아저씨 같은 사람하고 친구로 지내고 싶어?”

“후웅… 싫어요, 그건.”

“켁! 아니, 어찌 비교 대상이 나란 말인가!”

그 말을 듣고서 확신이 섰는지 에나가 말했다.

“그럼 전부 오빠라고 할게요. 헤헤.”

“크윽, 털이 북실북실하고 아저씨 같은… 아저씨…….”

헤인드가 충격을 먹었는지 중얼댔고 모두들 그 모습을 모고 웃기 바빴다. 외향은 그랬지만 헤인드도 총각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 웃음이 멈추자 팔튼이 아까부터 궁금했다는 듯 그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네 사람이서 이곳에 들어왔는가?”

그 물음에 디로안이 대답했다.

“뭐, 자네들처럼 두 사람이서 이 위험한 숲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듣기에는 이상한 소리지만 우리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네.”

그 말에 팔튼과 라이안이 서로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고 디로안이 말을 이었다.

“처음 우리는 8명의 파티를 이루어 이곳에 들어왔다네. 그런데 불침번을 포함해 4명이 짜고서는 우리가 자고 있는 사이, 식량과 돈을 훔쳐 달아난 것이 아닌가. 아침에 일어난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선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네. 지도까지 빼앗긴 상황이라 길조차 헤매게 되었지. 그러다 두 마리의 오크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다음 상황은 자네들도 알 것이네. 내 이놈들을!”

또다시 생각나 화가 솟구치는지 땅을 치며 화를 내는 디로안이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세 사람도 똑같이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오빠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우린 다 죽었을 거예요.”

“맞아, 자네들을 만난 것이 천운이었어.”

팔튼이 그래도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자네들이 우리가 지나가려던 곳에서 멀리 있지 않아서 다행이었군. 아차! 자네들도 나치키 영지로 간다고 했으니 우리와 동행을 한다면 되겠군.”

“다행히도 같은 방향이군. 하지만 만약 같은 방향이 아니더라도 우린 자네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네.”

“하하하, 그런가?”

꼬르르륵.

꼬르륵.

“어험!”

그때 마침 일행의 배 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그에 헤인드가 창피한 듯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식량을 모두 빼앗겨 지금껏 아무것도 못 먹고 있었기에 무척 허기져 있었다.

“하하하, 우선 밥부터 먹자.”

“그러세나, 하하하. 그 말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는가?”

“저도 배고파요. 히잉!”

“하하, 그럼 오늘은 내가 힘 좀 써볼까?”

라이안이 일어나 나뭇가지 하나를 잡아 몇 번 비벼대니 날카로운 나뭇조각 몇 개가 생겨났다. 그것을 든 그가 갑자기 풀숲으로 들어가려 하자 일행이 놀라며 말렸다.

“라이안, 이 시간에 숲에 들어가면 위험하다네!”

“후훗, 괜찮으니 그냥 보고만 있으라고. 팔튼, 몬스터가 나타나 벅차다 싶으면 휘파람을 불도록 해.”

“뭐, 그렇게 위험한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러도록 하지. 조심하게.”

“조심은 무슨, 그럼 움직여볼까?”

스팟!

라이안이 잔잔한 그림자만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지자 그를 보고 있던 나머지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지… 정말 신기한 친구군.”

“그러게 말이네, 정말 대단한 친구를 만난 것 같군.”

그러자 팔튼이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 나도 처음 저 친구를 만났을 때 저런 움직임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직도 생생하다네. 나는 언제쯤 저렇게 될지…….”

그 말에 헤인드가 하나의 의혹을 가지며 말했다.

“혹시 저렇게 빠른 움직임을 낼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이 있는가?”

그러자 역시나 물어볼 줄 알았다는 듯 팔튼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것을 보세나.”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그는 라이안과 같은 빠름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속도로 순식간에 헤인드의 뒤를 점했다.

“헉!”

“어때, 대단하지?”

“대, 대단만 하겠는가! 소름이 다 돋는군.”

“나도 얼마 전에 라이안에게 배운 것이라네.”

“저, 정말인가?”

“사실이라네. 내가 저 친구를 따라다닌 이유가 이것을 배우기 위해서였으니…….”

“아…….”

한순간 라이안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라이안이 사라진 방향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절로 욕심이 생겼으니, 자신들도 그러한 움직임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눈에 보였는지 팔튼이 말했다.

“한번 잘 말해보게나. 자네들이 악의만 없다면 가르쳐줄 수도 있을 것이네.”

“정말인가?”

“나도 배울래요, 나도!”

“어허, 그건 라이안에게 물어보라니까?”

“흠…….”

에나의 가장 큰 약점은 주문을 외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 약점만 극복하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법사는 주문을 외우는 동안 움직일 수가 없기에 주문을 빨리 외우는 것이 중요했다. 그들에게는 공격을 당하기 전에 많은 거리를 벌려놓은 다음, 빠르게 주문을 외워 공격하는 것만큼 좋은 공격 방법이 없었다.

“무엇을 그렇게 재미나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엇! 그것은 멧돼지가 아닌가?”

쿵!

어느새 돌아온 라이안이 커다란 멧돼지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쏘는 것이니 마음껏 먹어.”

“하하하, 이거 아랜 산에서 최고의 음식을 먹게 생겼군.”

군침이 도는지 헤인드가 침을 삼켰다.

하지만 디로안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라이안을 보며 말했다.

“이보게 라이안, 이것을 먹는 것은 좋지만 조리해 먹으려면 구워야 하지 않겠나? 이것을 여기서 굽는다면 몬스터들이 그 냄새를 맡고 들이닥칠 것인데 요리가 가능하겠는가?”

“아마도 그렇겠지? 하지만 이렇게 하면 되지.”

땅에 있는 주먹 크기만 한 돌들을 하나씩 줍던 라이안이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온 그가 손을 털며 말했다.

“이제 됐어. 냄새는 거의 퍼지지 않을 거야. 그리고 설사 몬스터들이 냄새를 맡는다 해도 이곳으로 오지는 못할 거야.”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이곳에 진을 설치했거든”

“진?”

“진이 무엇인가?”

“진이라는 것은 일정 지역에 적이 침범치 못하게 하거나 적에게 혼란을 주는 것이야.”

그것을 들은 에나가 놀라며 일어났다.

“앗! 그건 결계마법 아닌가요? 결계마법은 7서클 마도사가 아니면 펼치기 힘든 것인데!”

디로안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어 급히 일어나며 물었다.

“정말 주위에 결계를 친 것인가?”

“마법은 아니지만 확실한 건 지금 아무도 이곳에 올 수 없다는 것이네. 그러니 안심하고 먹자고.”

“흠…….”

“어허, 나를 믿으라니까? 설사 몬스터가 온다 해도 내가 다 처리할 것이니 걱정 말고 어서 가죽이나 벗기자.”

“가죽은 내가 벗기지.”

팔튼이 나서서 한쪽으로 가더니 작은 칼을 꺼내서 멧돼지의 가죽을 벗겼다. 조리할 준비가 다 되자 라이안이 멧돼지를 받아 들었다.

팔튼이 나뭇가지를 더 모아서 불을 크게 지폈다. 그리고 다른 디로안과 헤인드가 불 주위에 멧돼지를 올릴 수 있게 나무를 고정시켰다. 그런데 어디서 구했는지 라이안이 철로 된 무엇인가를 멧돼지 몸에 꽂았다.

“하하하, 역시 능력도 좋구만. 어디서 그런 것을 구해왔는가?”

“정말 그렇군.”

라이안이 그것을 불에 올리자 모두들 군침을 삼키며 멧돼지가 익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정도 익어가자 라이안이 팔튼에게 말했다.

“팔튼, 소금하고 후추 있지?”

“아, 조금만 기다리게.”

그 말을 들은 네 사람이 놀라며 말했다.

“아니! 소금과 후추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네. 왜 그러는가?”

팔튼이 무엇이 잘못되었냐는 듯한 말투로 말하자 헤인드가 존경의 눈빛으로 팔튼을 쳐다보았다.

“자네 굉장히 잘사는 모양이군. 소금과 후추의 값어치는 그 양의 세 배나 되는 금과 같지 않은가?”

“흠… 나도 그렇게 된다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군.”

“허, 자네 참 귀하게 살아온 듯하군. 정말 부럽군. 부자에 그 정도의 실력까지 갖추었다니.”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나. 아무튼 맛있게 먹으면 된 것 아닌가?”

“그건 그렇지.”

배낭에서 무엇인가 주섬주섬 찾던 팔튼이 소금과 후추를 찾았는지 그것을 꺼냈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 허전함이 느껴졌다.

“헉! 내, 내 검이 어디 갔지?”

“아니, 자네 검을 잃어버렸단 말인가?”

“조금 전까지 자네를 봤을 때는 검을 차고 있었는데?”

라이안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었고 주위를 잘 살피는 에나가 뭔가를 눈치 챘는지 말했다.

“저기, 혹시 저거 아닌가요?”

모두가 에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곳에는 멧돼지를 꽂아놓은 철 꼬챙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팔튼의 검이었다.

“헉! 안 돼! 내 검!”

“이검을 멧돼지 꽂는 꼬챙이로 쓰다니…….”

“휴… 내 검을 안 써서 다행이군.”

팔튼은 울부짖으며 손을 내저었고 헤인드와 디로안은 자신들의 옆에 찬 검이 무사함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모두가 배터지게 고기를 먹고 있을 때 팔튼은 눈물을 흘리며 불에 그을린 검만 닦고 있었다.

정말로 고기를 다 먹을 동안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주 멀리서 몬스터로 추정되는 포효소리는 들렸으나 그것이 전부였다. 그 덕에 모두가 불침번 없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이 되자 그들은 전날 남았던 고기로 영양 만점인 멧돼지 고기스프를 만들어 먹고는 떠날 준비를 했다.

“이쪽으로 가면 되겠군.”

자신의 검을 품에 안고 가는 팔튼이 말했다. 그것을 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라이안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야, 팔튼. 너 그거 너무 아끼는 거 아냐?”

“쳇! 다신 안 빼앗길 것이니 넘보지도 말게나!”

“속 좁은 놈.”

“잇!”

팔튼이 뭐라고 반문하려 했으나 라이안에게 말해봤자 이계에서 온 그가 이쪽 세상의 실태를 알 리 없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다른 일행이 팔튼이 불쌍하다고 여겼으나 라이안의 시선이 자신들의 무기로 옮겨지자 모두가 팔튼과 같이 무기를 잽싸게 가슴으로 안았다.

“뭐야, 다들? 내가 치사해서 검 하나 마련하고 만다. 에잇!”

심통이 난 듯 라이안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고 모두 그의 뒤를 따랐다. 각자의 무기를 품에 꼭 안은 채.

* * *

한편 우주전함 챠둠은 골드드래곤 타미르안의 도움으로 인공위성을 만들어 하늘로 쏘아 올렸다.

부슈우우우!

수아아아앙!

타미르안이 그것을 보며 말했다.

“저거 잘 날아가는데? 어디까지 날아가는 것인가, 챠둠?”

“대기권을 넘어 우주공간으로 날아가는 거야.”

타미르안과의 타협으로 정운과 같은 말투로 말하는 챠둠이었다. 챠둠의 말을 듣고 있던 타미르안이 너무 신기하여 물었다.

“우리 드래곤들조차 일정 높이 이상 올라갈 경우, 숨쉬기가 힘들고 몸이 얼어버릴 것 같아서 끝까지 올라간 드래곤이 없었는데 저것이 끝까지 올라갈 수 있단 말인가?”

타미르안 앞의 말에 그의 앞에 인간의 형태로 된 홀로그램이 나타나 타미르안을 보며 말했다. 이미 챠둠이 타미르안의 레어 근처에 챠둠의 홀로그램이 나타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저것은 타미르안 네가 본 것처럼 전체가 금속으로 이루어진 것이야. 우주란 곳은 원래가 영하 몇 백 도가 넘기에 어떠한 도움이 있기 전까지는 생물체가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지. 하지만 금속으로 이루어진 것에 도움을 받는다면 너보다 수만 배 약한 인간들도 저곳에서 버틸 수 있어.”

“과학이란 건 정말 대단하군.”

“마법이란 것도 대단하더군. 하지만 그것은 일정 경지에 들어서면 그것의 숙련도만 늘어날 뿐, 발전이 없어 보이더군.”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네.”

그것이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듯 타미르안이 말했다.

드래곤은 해츨링부터 8서클 이상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종족이었다.

대부분 용언마법을 사용하는 드래곤들로서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종족으로, 중간계의 조율자로서 신의 권능을 받은 중간계의 절대자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10서클 이상의 경지는 넘어갈 수 없었다. 물론 고룡이 될수록 드래곤하트의 마나량이 늘어가면서 똑같은 마법을 쓸 경우 그 파괴력이 훨씬 강한 면은 있었으나 그것은 마나를 더 많이 집약시킨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챠둠이 말하는 과학이라는 것의 발전은 끝이 없을 정도임을 안 타미르안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챠둠이 타미르안의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과학은 내가 생겨나기 이전에도 끝없이 발전해온 것이야. 그리고 나조차 과학으로 인해 만들어졌으나 그 발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가 없어.”

타미르안은 과학이라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전지를 만드는 초보적인 과학부터 해서 태양열을 받아들여 에너지로 사용한다는 것에는 혀를 내둘렀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태양이 무한대의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것을 알자 과학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되었다.

챠둠 역시 마법이라는 것을 배울수록 그 활용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워프와 탤레포트 등과 같은 것이 순수 생물체의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래서 더더욱 마법에 빠져들었다.

얼마 후, 인공위성은 우주로 나가서 움직임을 준비했고 활짝 펴진 날개로 태양에너지를 받아들이며 작동이 시작됐다.

위이이이이잉.

척! 척!

챠둠은 위성으로부터 신호를 받았다. 그에 챠둠은 그것으로 정운의 신호를 찾아내려 했으나 역시나 미흡한 너무 점이 많았다. 전파가 흐를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뭐가 잘 안 되나?”

챠둠의 홀로그램을 보던 타미르안이 물었다.

“역시 하나의 위성으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그럼 더 많이 쏘아 올려보지 그러나?”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광물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 구해줄 테니 자네는 인공위성을 만드는 것에만 힘쓰도록 하게나.”

“고마워, 타미르안.”

“고맙긴, 우린 친구 아닌가.”

그 말과 동시에 자신의 구역 내의 드워프들에게로 탤레포트한 타미르안이었다.

스팟!

드워프 마을 중앙에 갑자기 나타난 인간의 모습을 한 타미르안을 본 드워프들은 기겁을 했다.

타미르안의 근처에 있던 드워프들은 모두 엎드려 그에게 절을 했다.

“위대한 종족을 뵙습니다.”

이때 이 모습을 본 나이 많은 드워프가 급히 뛰어왔다.

“거친 망치의 부족장 필탄이 위대한 종족을 뵙습니다.”

“어험! 오랜만이군, 필탄.”

“어인 일이신지요, 위대한 분이시여.”

“광물을 얻으러 왔다.”

“헉! 얼마 전에 전부 가져가시지 않았습니까?”

“지금 내말에 토를 다느냐!”

엄청난 고함소리와 드래곤피어로 인해 그곳에 있던 모든 드워프들이 몸을 바들바들 떨며 바닥에 바짝 엎드렸고, 족장인 필탄도 공포에 떨며 부들부들 떨며 무릎을 꿇었다.

“아닙니다, 드, 드리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어험,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너희가 몬스터로부터 안전한 것이 누구 때문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

그 말을 들은 족장 필탄이 속으로 뇌까렸다.

‘도둑놈 같으니라고!’

“필탄, 설마 날 도둑놈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헉! 어찌 제가 그런 허황된 생각을 하겠습니까… 이보게들, 어서 가져다드리게. 어서!”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모든 드워프들이 마을에 있는 모든 광물과 금속을 타미르안 앞에 쌓아두었다. 그것을 모두 아공간에 집어넣은 타미르안이 필탄에게 말했다.

“얼마 뒤에 또 올 것 같으니 이보다 더 많이 구해놓아야 할 것이다. 어험!”

스팟!

텔레포트라고 말하며 순식간에 사라지는 타미르안을 본 필탄이 분노를 터뜨렸다.

“빌어먹을 드래곤 같으니!”

레어로 돌아온 타미르안은 갑자기 귀가 가려운 듯 손가락으로 귀를 후벼 팠다.

“누가 내 욕을 하나? 어험!”

역시나 그런 것은 귀신같이 느끼는 타미르안이었다.

타미르안이 공급해준 광물을 열심히 녹여서 또다시 인공위성 제작에 들어가는 챠둠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옆에서 보기만 하는 타미르안은 어린아이처럼 똘망똘망한 눈으로 구경하기 바빴다.

“이것이 위로 올라가면 그 주인이라는 인간을 찾을 수 있다고 했지?”

“그래, 맞아.”

“그럼 그것으로 어떻게 찾는 거지?”

“내가 주인님에게 드린 물건 중 몇 가지는 내공을 사용하게 될 경우 그것이 전력화되어 나에게 신호를 보내오게 되어 있어. 그중 팔찌가 대부분 통신의 주된 용도였지. 전에 있던 곳에서는 인공위성들이 많아서 팔찌를 통한 통신을 이용하곤 했는데 이곳에서는 힘들군. 만약 주인님이 강식장갑을 사용하게 될 경우 더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이 사용된다면 그만큼 주인님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이니 사용하시길 바랄 수만도 없는 문제지.”

“그렇군.”

* * *

위험한 아랜 산맥을 벗어난 라이안 일행은 넓은 초원을 걷기 시작했다. 들판길이 나타나자 그곳에는 사람과 마차가 많이 지나다닌 듯이 길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곳이 바로 팔튼이 안전하게 가자고 했던 길과 마주치는 길이었던 것이다.

“휴, 이제 좀 살 것 같군.”

“그러게 말이네.”

헤인드와 디로안의 말을 들은 라드이라가 불쑥 말했다.

“그건 그렇고, 그들도 나치키 영지로 간다고 했었습니다.”

그것을 본 라이안이 놀라며 소리쳤다.

“헛! 누구세요?”

“하하! 라이안, 원래 이 친구가 존재감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네.”

“아니, 난 오면서도 한참이나 말이 없기에…….”

“미안합니다.”

“아… 뭐, 미안할 것까지는 없고…요.”

갑자기 존대로 말해오는 라드이라의 말에 조금 당황한 라이안이었다. 그것을 본 헤인드가 말해주었다.

“라드이라는 원래 항상 존대를 하는 녀석이야. 그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아, 그래? 그럼 난 편히 말해도 되나…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래.”

“큭큭큭, 라이안도 우리 용병들만큼이나 화끈하군.”

“그런데 그들이라고 하면 너희들 등쳐먹고 도망간 놈들 말하는 거지?”

“그렇다네. 내 그놈들을 보면! 휴…….”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에나가 지루한지 팔튼에게 물었다.

“팔튼 오빠, 이제 얼마나 남은 거죠? 나 다리 아픈데…….”

“흠… 글쎄?”

배낭에서 지도를 꺼내어 살펴보던 팔튼이 지도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이 이 정도 위치인 듯한데? 아마도 이틀만 더 가면 도착할 것 같군.”

“에에? 이틀이나요? 에휴…….”

라이안이 그것을 보고는 에나에게 물었다.

“에나가 다리가 많이 아픈가 보구나?”

“저는 마법사라고요. 체력에는 정말 자신 없어요. 히잉!”

“그럼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갈까?”

“앗! 좋아욧! 헤헤.”

디로안이 그 소리를 듣자 한마디 했다.

“라이안, 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쉬는 것인가? 그러면 시간이 너무 많이 늦어진다네.”

그것에 에나가 디로안을 째려보며 소리쳤다.

“디로안 오빠! 오빠는 이 연약한 동생이 다리가 아프다는데 그렇게 강행하고 싶어욧?”

“응.”

“헉! 너, 너무해… 흑흑.”

에나가 눈물을 찔끔거리자 라이안이 나서서 중재했다.

“자자, 우리 막내를 위해 조금만 쉬었다가 가자고. 알았지?”

“흠… 그럼 저쪽 나무 아래에서 조금 쉬면서 밥이나 먹고 가지.”

“헤인드! 조금 전에 밥 먹었잖아!”

“아? 밥 먹으려고 쉬는 거 아니었나?”

“됐다. 먹어라, 먹어.”

“흐헤헤. 고맙네, 라이안.”

결국 참까지 먹으며 휴식을 취하게 되는 일행이었다.

주저앉아 손으로 열심히 다리와 발목을 주무르는 에나가 안타까웠는지 라이안이 에나에게 다가갔다.

“에나야, 많이 아프니?”

“그냥 조금이요. 헤헤.”

“발을 이리 줘보렴.”

“네? 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는 에나는 조심스럽게 발을 내밀었다. 이윽고 라이안이 기를 이용해 에나에게 흘려보내자 에나는 갑자기 발전체가 시원해짐을 느꼈다.

“우와! 라이안 오빠, 어떻게 한 거죠? 신기해요?”

“하하. 이제 일어나봐, 어떤지.”

그러나 재빨리 일어나더니 통통 뛰어보는 에나였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아프던 발이 하나도 안 아팠다.

“와! 오빠 치료술사 해도 되겠어요.”

에나도 힐이라는 마법은 사용할 줄 알았지만 그것은 상처치유에만 효과적이지 근육통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물론 신관인 라드이라가 신력을 사용한다면 되었지만 그 역시 체력에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럴 때 신력을 사용한다면 단 한 걸음도 못 걷게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에나 또한 라드이라에게 부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일행에게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10여 명의 기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의 마차를 호위하며 급히 달려 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마차 안에서 살며시 커튼을 옆으로 밀면서 밖을 내다보는 소녀가 라이안과 눈이 마주쳤다.

지이이잉.

“……!”

“앗!”

찰나의 순간이었다. 눈이 마주친 것은 2초 정도였는데 그 순간이 마치 1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서로가 이상한 느낌을 받으며 머리가 울리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무엇이지, 이건?”

헤인드가 바로 옆에서 라이안의 말을 들고는 물었다.

“왜 그러나?”

“응? 아, 아니야, 아무것도.”

팔튼이 지나가는 마차를 유심히 보더니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상하군. 저 마차는 왕가의 문장이 달려 있는데 왜 저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이지?”

라이안이 팔튼의 말에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쫓기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맨 앞에서 네 번째로 달리고 있는 기사가 다쳤더군. 그는 팔을 베인 듯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어. 아마도 저들이 지나간 자리를 보면 피가 떨어져 있을 거야. 그런데… 일행 중 하나가 저렇게 다쳤는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급히 갈 만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흠…….”

헤인드가 촐랑거리며 마차가 다녀갔던 자리로 뛰어갔다. 이리 저리 살펴보던 헤인드가 놀라며 소리쳤다.

“정말이야! 여기 핏자국이 있어!”

“와! 오빠 대단해요! 그렇게 빨리 달리는 마차를 자세히 관찰하다니!”

모두가 일반 평민이었고 용병인지라 나라의 누가 쫓기고 죽는다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팔튼만은 백작가를 이을 사람이었기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왕가의 문장이 달린 마차가 쫓긴다라…….’

* * *

급하게 달리는 마차의 상태는 무척이나 심각했다. 마차의 문은 이미 반이나 부서져 있었고 마차의 뒤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검으로 여러 번 내려친 듯 나무가 부서지고 뜯어져 있었다.

마차를 끌고 있는 말 또한 어깨와 엉덩이 부분에 검상을 입어 마차를 끌고 달리는 것조차 신기해 보일 정도였다.

두두두두두.

“단장님! 네이드의 상처가 심각합니다!”

“이런, 하지만 지체할 수 없다! 그들에게 잡힌다면 공주님이 위험하다! 간악한 에드코르 놈들!”

단장이라고 칭하는 사람의 입에서 에드코르 제국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즉, 히매인 왕국의 공주를 쫓고 있는 자들이 에드코르 제국이라는 말이었다.

그때였다. 단장의 눈에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용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그들이 나무에 가려져 있어 매복인가 싶어 자세히 보았지만 음식을 먹으며 자신이 있는 곳을 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매복은 아니었다.

한편 공주 역시 커튼은 살짝 젖혀 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지이이이잉.

“아…….”

그녀는 밖을 내다보자마자 라이안과 눈이 마주쳤고 머릿속에서 작은 울림이 일었다.

“내가 왜 이러지? 저 사람은…….”

단순히 라이안의 외모가 뛰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라이안의 외모가 무척이나 뛰어난 것은 사실이었지만 왕실에도 외모가 출중한 사람들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공주는 문득 뭔가가 생각났는지 단장에게 말했다.

“아자드 단장님, 저들에게 네이드를 맡기면 안 될까요?”

공주가 걱정되는 말투로 묻자 단장이 말했다.

“안 됩니다, 공주님! 에르코르 놈들이 우리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또한 용병들에게 네이드를 맡기면 네이드도 죽을 것이고 우리를 만난 저들도 죽을 것입니다.”

“아… 어찌 이런 일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 괜찮습니다.”

네이드가 최대한 고통을 이겨내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더욱더 마음이 쓰리는 공주였다.

“공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아자드 스 키니칼이 목숨을 걸고 공주님을 지킬 것이옵니다. 이제 곧 나치키 영지를 지나 바치스 공작각하가 계신 스피린에 도착할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자드 단장님을 믿어요.”

“차앗! 속도를 더 올린다!”

두두두두두.

* * *

한편 충분히 휴식을 취한 라이안 일행은 또다시 나치키 영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걸은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갑자기 검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 30여 명이 말을 타고 그들 곁을 지나가며 소리를 쳤다.

“비켜랏! 하찮은 것들!”

“으응?”

그냥 뒤만 보라보던 라이안을 헤인드가 급히 팔을 잡으며 옆으로 이끌었다.

“이보게, 라이안. 기사들로 보이는 자들의 길을 막아서는 안 되는 것이네. 이리로 오게나.”

이때 검은색 갑옷을 입은 자들 중 중간 정도쯤에서 가던 사람이 라이안을 유심히 보았다.

‘강한 자로군. 저 나이에 어찌 저런…….”

그가 보기에 라이안의 기도가 상당히 날카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급히 선두를 뒤따랐다.

라이안이 그들을 보며 투덜거렸다.

“뭐 저런 사람들이 다 있어? 이 길이 자기들 것인가?”

“라이안, 저런 사람들은 대부분이 기사들이라네. 건드려봐야 손해라네.”

“하지만 우리 히매인 왕국에는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단이 없는데…….”

팔튼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가 수긍하는 듯했다.

“그렇군.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디로안, 너는 본 적 있어?”

“아니, 나도 못 본 것 같군. 우리 왕국에 검은 갑옷의 기사단이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인데?”

그들은 그렇게 하나의 의문점을 안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들은 하루를 더 노숙을 한 다음 나치키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은 역시 경비병들이 없어서 편하군.”

“맞아, 경비병들이 있으면 이것저것 트집을 잡으니 원.”

나치키 영지에는 치안병과 몇 몇의 기사가 있을 뿐, 영지의 통과를 막는 경비병은 없었다.

헤인드와 디로안의 말을 들으며 팔튼이 라이안에게 작게 말했다.

“이봐, 라이안. 우선 자네 신분을 입증할 것이 없으니 적당한 숙소를 정하고 용병길드로 가서 용병신청을 해야 할 것 같군.”

“아마도 그래야겠지?”

그들은 숙소를 헤인드가 자주 가는 곳이라고 말한 곳으로 정했다.

숙소로 정한 곳의 입구로 들어서니 12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웃으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시죠? 숙박과 식사를 같이 하실 건가요?”

“이 녀석! 나다, 헤인드 형이다. 하하하!”

“앗! 헤인드 아저씨!”

“컥! 아니, 이놈이!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라니깐!”

“하하하!

“호호호!”

종업원으로 보이는 소년과 헤인드의 인사에 저마다 웃는 일행이었다. 하지만 헤인드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같이 파티를 맺고 있던 놈들에게 모두 강탈당하여 수중에 있는 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눈치 챈 팔튼이 나섰다.

“꼬마야, 1인용 방 하나와 2인용 방 두 개를 주었으면 하는구나.”

“전 꼬마가 아니라 지오예요.”

“하하, 그래. 미안하구나, 지오. 숙식을 같이 할 것이니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네, 알았어요. 헤헤.”

“어험… 고맙네, 팔튼.”

“고맙기는, 친구끼리 왜 이러는가. 우선 밥부터 먹지.”

그렇게 모두들 음식을 먹고자 한곳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그런데 그들을 유심히 쳐다보는 일행이 있었다. 그리고 곧 그들 중 덩치 큰 한 명이 다가와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호오, 이거 상당한 미모의 여성이 있군. 어때, 그런 기생오라비 같은 놈들보다 우리랑 같이 노는 게?”

헤인드가 눈을 꿈틀거리며 뭐라고 소리치려고 빠르게 고개를 돌렸으나 그 상대를 보고는 오히려 놀라며 소리쳤다.

“헉! 넌 토르만!”

“어? 날 알아? 하하하! 그럼 말이 빠르겠군. 조용히 꺼져주실까?”

“치잇!”

“이거 놓지 못해요! 파이어… 앗!”

큰 덩치에 안 맞게 순식간에 에나의 팔에 무엇인가를 채우는 토르만이었다.

“크흐흐, 아가씨 같은 복장을 한 자들은 대부분이 마법사지. 하지만 이 마나수갑에는 어떻게 안 될걸?”

“이잇! 이거 놔욧!”

“하하하! 그래, 그렇게 앙탈을 부려야 재밌지.”

이런 일을 상당히 많이 해본 솜씨의 토르만이었다. 그것을 보던 토르만 일행 10여 명이 일어났다.

“크흐흐… 이봐, 토르만. 어서 데리고 가서 재미보고 넘겨달라고.”

“다음은 나라네.”

토르만은 히매인 왕국에서 알아주는 용병이었다. 소문이 좋지 않은 자였지만 그 실력만큼은 익스퍼트 초급에 해당하고 실전경험이 많아서 웬만한 기사들도 이길 정도였다.

그것을 알고 있는 헤인드와 디로안은 쩔쩔매며 라이안과 팔튼만 바라보았다. 억울했지만 자신들이 어떻게 해 볼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때 라이안이 조용히 말했다.

“그 손 놔라, 돼지.”

그것을 못 들었을 토르만이 아니었다.

“뭐라고? 하하하! 어린 것이 미쳤구나! 여기가 무슨 영웅놀이 연극하는 곳인 줄 아느냐? 하하하!”

“하하하!”

“크그그극,”

토르만의 말에 그의 일행이 배를 잡고 웃었다.

“역시 말로는 안 되는군.”

팔튼이 웃으며 일어나려 하자 라이안이 그것을 막았다.

“안 돼, 팔튼 넌 움직이지 마. 다 내 꺼야.”

“흠… 알아서 하게나”

“뭐, 뭐얏! 이것들이!”

“꺅!”

토르만이 화를 내며 잡고 있던 에나를 옆으로 내던졌다. 한쪽에 던져놓고 이들을 처리한 다음 재미를 볼 심산이었다.

털석!

“헛!”

“어느 사이에!”

그 순간, 순식간에 토르만의 눈앞에서 사라진 라이안은 어느새 에나를 받아 들며 내려놓았다. 에나는 가까워져 있는 라이안의 얼굴 때문에 황홀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 너무 행복해.’

“에나야? 에나?”

라이안이 에나를 불렀으나 황홀함에 빠진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때문에 그녀가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라 생각한 라이안이 드디어 분노했다.

“너희들, 오늘 크게 실수했어.”

그 말을 들은 토르만이 코웃음을 쳤다.

“흥! 한 가닥 재주는 있는 듯하다만 오늘 여기서 죽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애송이!”

“과연 그럴까?”

말을 하며 앞으로 한발 앞으로 나온 라이안은 순식간에 토르만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엇! 어, 어디 있느냐!”

토르만 일당이 전부 라이안의 모습을 찾고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스팟!

“여기다 멍청이!”

퍽!

그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토르만의 옆에 나타난 라이안이 공중에서 몸을 띄우며 돌려차기로 토르만의 면상을 후려쳤다.

“크악!”

쿠당탕탕!

라이안의 두 배는 됨직한 큰 덩치를 가진 토르만의 몸이 공중으로 살짝 뜬 상태로 날아갔고 많은 식탁을 부수며 쓰러졌다.

그래도 맷집은 좋았는지 코피를 잔뜩 흘리는 얼굴로 정신 차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며 재빨리 일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흔들리는 신형이었다.

“빌어먹을! 전부 저 새끼 갈아버렷!”

“와!”

“죽여라!”

모두가 소드와 도끼를 뽑아 들어 라이안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부 용병으로 잔뼈가 굵은지라 덩치가 대부분 라이안의 두 배가 넘었다.

주위에서 갑자기 터진 싸움에 몸을 구석으로 피한 사람들이 그것을 지켜보며 라이안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저, 저런!”

“저 친구 저러다 죽겠구만.”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일은 전개되었다.

라이안이 그들이 휘두르는 소드와 도끼를 모두 피해가며 마지막으로 덤빈 사람까지 지나친 후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이다.

“어, 어디지!”

“어디 있어!”

“뒤, 뒤닷!”

그에 한참을 두리번거린 용병들은 라이안이 공격명령을 내렸던 토르만의 옆에 있는 것을 보았다. 또한 그들의 시선에 토르만도 그제야 어지러운 정신을 다잡던 것을 멈추고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한 대 가지고는 안 되지 않겠어?”

“윽!”

순식간에 일그러진 토르만의 표정을 본 라이안이 사악한 미소를 띠우며 공격했다.

자세를 낮추며 뒤로 돌면서 토르만의 다리를 걸었다. 그로 인해 또다시 공중에 떠버린 커다란 덩치의 토르만이었다.

“으헉!”

하지만 신음을 흘릴 새도 없이 공중에 몸을 뉘었다 싶었던 순간 복부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토르만이었다. 토르만과 같이 몸을 떠올린 라이안이 토르만의 복부를 다리로 내려 찍어버린 것이다.

퍽!

꽈과광!

나무로 된 식당의 바닥이 움푹 파이며 부서져 나갔고 주위로 먼지가 퍼져 나갔다.

그것이 걷힌 순간 바닥 깊숙이 박힌 토르만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모습이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였으니 그들의 놀란 입으로 많은 먼지가 들어감을 막을 수 없었다.

“대, 대단하군.”

“정말 그렇군, 우리 같은 사람들은 눈으로 그 속도가 보이지 않으니.”

“아… 멋있다.”

그중 한 여성은 라이안에게 한눈에 반한 듯했다.

이때 용병들 중 그래도 강단이 있다는 사람 한 명이 주위에 있는 일행에게 소리쳤다.

“모두 정신 차려! 우린 10명이고 저놈은 혼자닷! 전부 달려들어!”

“와아!”

“그래! 이길 수 있어!”

“저놈을 찢어죽이자!”

그렇게 또 한 번 모든 용병이 일제히 라이안에게 달려들었고, 가장 먼저 소리치며 용병들을 주도했던 자가 검으로 라이안의 머리를 쳐왔다. 그에 모두가 라이안의 머리가 갈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다른 소리가 들렸으니…….

깡!

“어?”

“무슨 일이지?”

“헛! 저길 봐!”

그들이 보는 곳에는 또다시 달려들던 용병들도 모두 움직임을 멈춘 채 그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먼저 덤볐던 용병의 칼을 손으로 잡고 있는 라이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손에 수강을 맺은 채였다.

이곳에서 말하는 오러를 손에 형성시킬 수 있는 사람은 만 년에 한 번씩 나온다는 말이 있었으니…….

“피, 피스트 마…스터.”

“이럴 수가! 피스트 마스터가 나타났다!”

“대, 대단해! 저렇게 젊은 나이로 피스트 마스터라니!”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그것을 확인하고 있을 때 라이안을 공격했던 용병들에게 혼란이 일어났다.

“말…도 안 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피스트 마스터라니…….”

“나, 난 그만둘래!”

용병중 하나가 그런 말을 하면서 식당을 뛰쳐나갔다.

“나도 그만둘래. 역시 이건 아닌 것 같아!”

“나, 나도!”

구당탕!

우르르르.

순식간에 먼지를 일으키며 그곳에서 도망치는 용병들이었다. 라이안에게 검을 휘두른 용병조차 라이안에게 잡힌 검을 버린 채 도망을 쳤다.

마음만 먹으면 그들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라이안은 쫓지 않았다. 비록 자신에게 험한 말을 했지만 그 발단이 되었던 것이 토르만이었으니 그 하나만 응징하고자 했던 것이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헤헤.”

그런 말을 하면서 일행에게 브이 표시를 한 라이안이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그들이었으나 어쨌든 그것은 너무도 멋있고 위대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한동안 미칼투 대륙을 유행하게 되는 파이팅 포즈가 되었다.

“오빠! 너무 멋있어요!”

“자네… 역시 대단하군.”

“소드 마스터에 피스트 마스터라니, 정말 대단해.”

팔튼조차도 몰랐다는 듯 라이안을 보며 말했다.

“자네는… 정말 시간이 지날수록 날 놀라게 하는군.”

“그런데 피스트 마스터가 무엇이지?”

“헉!”

“켁!”

“어머!”

그런 말을 하는 라이안이 이상하다는 듯 놀라며 일제히 라이안을 쳐다보는 일행이었다.

“자네, 지금 자네가 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단 말인가?”

헤인드가 그것을 자세히 물었다.

“뭐가? 아! 검을 수강으로 잡은 거?”

“수강? 하여간 그것이 어떤 기술의 이름인지는 모르지만 자네는 손으로 오러를 일으키지 않았나?”

“오러? 오러라… 아! 검강을 오러 블레이드라고 하니까 수강도 오러라고 하는 거구나! 그렇다면 헤인드 네가 말하는 것이 맞아.”

“헐… 자네라는 사람은 어찌 그런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는 것은 쥐뿔도 없단 말인가.”

“어험, 그래 나 무식하다. 어쩔래!”

라이안이 삐친 듯한 표정을 내비치며 볼을 부풀렸다.

“아하하, 그런 뜻은 아니었으니 그 볼의 바람 좀 빼게나.”

다른 일행에게는 삐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을 다르게 보는 사람도 있었으니…….

‘아… 너무 귀여워, 라이안 오빠.’

에나의 눈에는 그런 뾰로통한 표정의 라이안이 너무도 귀여워 보였던 것이다.

라이안이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부서진 식탁과 의자들이 보였다.

“저거 어떻게 하지?”

난처한 표정으로 라이안이 일행을 바라보자 팔튼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말게나, 저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곳의 주인이 어떤 분이신가요?”

잠시 후 숙소 주인이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엉거주춤 나왔다.

“제가 이곳의 주인입니다만…….”

“아! 그러시군요. 여기 이 돈으로 부서진 것들에 대해 보상을 하고 싶습니다.”

팔튼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하나의 금화를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그것을 본 주인은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이건 너무 많습니다. 손님들이 부순 것도 아닌데 이런 큰돈이라니요.”

“아닙니다. 우리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으니 당연히 지불해야지요. 부담 가지지 마시고 받아두십시오.”

이곳의 일반 가정에서 사용되는 돈은 한 달에 약 은화 20개였다. 금화 하나면 은화가 100개였으니 부유하게 살았던 팔튼으로서는 호의로 주는 적은 돈이었으나 평민인 그에게는 엄청난 돈이었던 것이다.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던 주인이 말을 꺼냈다.

“정 그러시다면 숙박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아니오. 그러시면 우리가 너무 미안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이 돈이면 부서진 것들을 교체하고 숙박비를 모두 충당하고도 남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계속 거절하시면 저도 손이 무안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주인의 순박한 모습에 팔튼도 웃으며 승낙했다.

“이렇게 심성이 좋으신 분이 거친 용병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하하하, 그렇게 하지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는 저희가 드려야죠.”

그 모습을 지켜본 일행은 일이 잘 풀렸다고 웃으며 안도했다.

“아이고, 그 녀석들 때문에 배고파 죽겠군. 이보게, 주인! 여기 우선 밥부터 주게나.”

“하하!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오늘 실력 발휘를 해 보이겠습니다.”

“하하하, 벌써부터 군침이 고이게 만드시니 오래는 못 기다립니다!”

일행은 다시 자리에 앉았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렇게 해서 다시 원활한 식당의 분위기가 돌았고, 이윽고 오리와 타조고기가 나왔다.

라이안은 푸짐한 음식에 맛있게 먹으며 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음식을 다 먹고 나자 모두의 배는 둥근 달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들은 후식으로 맥주에 마른 생선포를 곁들여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헤인드의 조심스런 물음에 팔튼이 말했다.

“우선 라이안이 신분을 증명할 것이 하나도 없다네. 그래서 용병길드로 가서 용병신청을 하려고 한다네.”

“아니, 신분증명을 할 것이 없다니? 유령도 아니고…….”

헤인드가 궁금해 하자 팔튼이 어색하게 웃으며 라이안을 바라보았고 라이안은 이야기해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라이안이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그렇다네.”

“어머! 라이안 오빠 기억상실증에 걸린 거예요? 그런 건 어떤 큰 충격을 받았을 때나 걸리는 거잖아요. 이렇듯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가 어떻게 기억상실증 같은 것에 걸리게 된 거죠?”

마법사답게 역시나 궁금증을 쉬지 않고 털어놓는 에나였다. 그에 라이안이 웃으며 말했다.

“에나, 그것도 기억이 안 나니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아… 그렇겠구나.”

헤인드가 잘됐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잘됐군. 우리도 어차피 용병길드로 가서 일거리를 찾아야 했거든. 가진 것을 모두 털렸으니 움직일 돈을 벌어야지 하지 않겠는가? 길드까지는 내가 이곳의 지리를 알고 있으니 내가 안내하겠네. 같이 가세나.”

“그렇게 하는 게 좋겠군.”

모두가 그렇게 짐들을 잡았던 방에 가져다 놓고 용병길드로 이동하기 위해 식당을 나섰다.

그런데 식당을 나서던 에나의 눈에 밖의 한구석에 쓰러져 있는 토르만이 보였다. 누군가 식당에 있던 그를 끌어다 놓은 듯했다.

“치잇! 파이어 볼 하나 날려버릴까?”

아까 일이 화가 났는지 주문을 외우려는 에나를 팔튼이 말렸다.

“아서라, 에나. 저 상태로 그것을 맞으면 바로 죽을 텐데 여기도 치안병이 있어. 살인자로 쫓기면 큰일이지 않겠니?”

“네…….”

팔튼의 말에 생각 없이 말했던 에나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듯한 태도도 잠시!

퍽! 퍽!

“나쁜 놈! 나쁜 놈!”

“끄르륵… 끄르륵…….”

토르만에게 다가가 옆구리를 발로 차는 것이 아닌가.

그에 헤인드가 주위를 둘러보며 얼른 달려가 에나를 들쳐 업고 왔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일행은 서로를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순간 모두가 한 공통된 생각은 이것이었다.

‘에나가 은근히 잔인한 구석이 있군.’

이렇게 한바탕 소동이 있은 후 그들은 다시 용병길드로 이동했다. 그러던 중,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해서 일행에게 집중됨을 느낀 에나가 심통을 냈다.

“라이안 오빠, 후드라도 씌워야겠어요. 시선이 집중되어서 부담스럽잖아요.”

다른 여성들이 라이안의 외모를 볼 때마다 시선을 떼지 않는 것을 본 에나가 질투가 난 것이다. 그 말에 라이안은 웃으며 미안해했다.

“에나, 그러면 내가 너무 무안하잖니. 헤헤.”

“엇! 라이안 오빠! 그렇게 귀엽게 웃지도 말아요. 저기 안 보여요? 지금 라이안 오빠가 그렇게 귀엽게 웃으니까 저기 두 명이 쓰러져버렸잖아요!”

설마 하는 생각에 에나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 일행은 놀라고 말았다. 정말로 그곳에 두 명의 여성이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라이안의 외모는 매력적이어서 한 번 보면 눈을 뗄 수 없었다. 때문에 지나가는 남자들은 기생오라비 같은 외모라며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여성들은 무척이나 황홀한 표정으로 라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저런 소동에 일행이 빠르게 자리를 피하던 중 팔튼이 소리쳤다.

“잠깐!”

“엇! 왜 그래, 팔튼?”

“왜 그러나, 팔튼?”

팔튼이 급하게 검을 손으로 꽉 쥐자 일행 모두가 누군가 공격을 하려는 줄 알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경계를 했고 각자 무기에 손을 가져다댔다.

“무슨 일이지?”

“아무도 없지 않은가?”

라이안도 역시 경계하며 주위를 기세를 느껴보려고 했으나 어떠한 투기나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팔튼이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곳은 무기점이었다.

“아! 무기점! 역시 그랬군.”

“흠… 그럴 만도 하지.”

“나도 이해한다네.”

“팔튼 오빠가 너무 불쌍해요.”

“……?”

눈치 없는 라이안만 이해를 못하고 있을 뿐, 모두가 팔튼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간다는 듯 한마디씩 했다.

“왜? 뭐가?”

일행은 동시에 고개를 흔들며 팔튼이 향한 방향으로 따라갔고 에나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라이안의 옷을 잡고 이끌며 말했다.

“모르면 그냥 따라오기나 해요. 에휴.”

팔튼이 무기점으로 들어서자 주인인 할아버지 대신 무기점을 맡고 있던 서론이 팔튼에게 영업용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최강 무기점에 잘 오셨습니다. 어떠한 종류의 무기를 찾으시는지요?”

팔튼의 심각한 표정을 본 서론이 짐짓 불안해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손님께서 찾으시는 무기가 있으신지요?”

“이 무기점에서 가장 좋은 무기를 주시오. 불에 아무리 오래 올려놓아도 손상되지 않는 검을 말이오.”

“아, 검을 찾으시는군요. 그럼 상당히 견고한 검을 찾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등품은 무척 고가의 상품입니다만…….”

“가격은 상관없소.”

“하하.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지요. 현재 이곳에 있는 것은 중하급의 종류만 있습니다. 상등급의 물건은 안쪽에 특별히 진열되어 있습지요.”

그때 무기점 안으로 헤인드와 디로안이 들어왔고 말이 없던 라드이라가 그 뒤로 들어왔다. 또 다른 손님인 줄로 안 서론이 급히 다시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최강 무기점에 잘 오…….”

“일행이요.”

“아… 일행이셨군요.”

약간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던 서론이 다시 영업용 미소를 띠었다. 상당히 노련한 구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천성이 상인인 듯 보였다.

“그럼 이분들 모두가 무기를 구입하시는 것인지요?”

“아니오, 우린 따라 들어온 것이니 신경 쓸 것 없소.”

“아, 그러시군요. 그럼 손님께서는 저를 따라오시지요.”

그때 또다시 무기상점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고, 다시 급히 인사를 하려는 서론이 여성과 상당히 마른 체격의 어린남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시죠?”

그렇게 퉁명스레 말하는 서론에게 뒤에 있던 팔튼이 말했다.

“그들도 일행이오. 지금 살 무기의 주인이 될 사람이오.”

서론은 상당히 건장한 체격의 팔튼이 무기를 구입하려는 것으로 알았으나 비쩍 마른 체격의 어린 소년에 가까운 사람이 무기를 구입하는 것에 대하여 놀라워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같이 이쪽으로 오시지요.”

“우린 여기서 다른 무기나 구경하고 있겠네. 팔튼.”

라이안과 팔튼이 서론을 따라서 무기점 안쪽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일행은 여러 가지 진열되어 있는 무기들을 구경했다.

방 하나를 더 지나 아주 작은 방에 들어선 서론이 바지를 주섬주섬 뒤지며 하나의 열쇠를 꺼냈다. 그리고는 바닥에 깔린 카펫을 한곳으로 말자 그곳에 지하로 내려가는 또 하나의 문이 눈에 나타났다.

상당히 고가의 물건이 있는지라 어느 정도 이러한 조치를 취한 듯싶었다. 문을 열쇠로 열고 위로 올리자 위쪽에 그것의 고리가 있었는지 열린 상태로 고정이 되었다.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이쪽으로 내려오셔야 합니다. 이 아래쪽에 상등품의 무기를 진열해놓았기 때문입니다.”

“개의치 않으니 안내하시오.”

그때까지 아무런 질문이 없던 라이안이 궁금한 듯 팔튼에게 물었다.

“팔튼 너 무기 사려고?”

“아니.”

“그럼 여기 왜 들어온 거야?”

“자네 것을 사려고 하는 것이라네.”

“앗! 지난번에 네 검 꼬치로 썼다고 삐져서 그러는 거야?”

“아, 아니네! 단지… 자네의 무기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 그러니까 용병길드에 가자면 시험을 볼 것이고 무기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 가기 전에 마련하려고 하는 것이라네. 어험.”

“아, 그런 거였어? 하하, 이거 고마울걸?”

“고, 고맙기는. 우린 친구 아닌가. 자네가 나에게 베풀어준 은혜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것이니 좋은 것으로 고르게나.”

“응, 알았어.”

서론은 그들의 말을 듣고서는 어이없어했다.

서론이 살짝 살펴보기에 팔튼이 사용하는 검에는 손잡이에 귀족가의 문장이 있었다. 그리고 칼집이나 모든 것을 살펴보아도 분명한 명검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러한 검을 꼬치로 썼다는 말에 어린 쪽의 청년이 미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는 귀족가의 문장이 달린 칼을 가지고 용병 차림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예비기사의 여행’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검을 찾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나이 어린 청년이 귀족가의 청년을 용병으로 오인하고 저러한 실수를 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는 서론이었다.

또한 일반적인 경우, 귀족이 그러한 경우를 당했다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서라도 사지를 잘랐을 일인데 그냥 넘기고 있으니 자신의 앞에 있는 건장한 청년이 생김새만큼이나 착한 심성을 지녔다고 생각되는 서론이었다.

서론을 따라 내려온 팔튼과 라이안이 탄성을 질렀다. 그냥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무기들의 날에서 예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와! 여기 있는 무기들 상당히 좋아 보이는데?”

라이안의 말에 서론이 웃으며 말했다.

“아까 밖에 진열되어 있는 무기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무기들입니다. 자 그럼 한번 골라보시지요.”

팔튼도 라이안을 보며 손짓했다.

“골라보게나.”

“자, 얼마나 좋은 게 있나 볼까?”

라이안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무기들을 하나하나 고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서론이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흥! 대충 보아도 검의 검자도 못 들어본 초짜가 이곳에 있는 무기를 보고 얼마나 좋은 게 있나 본다고? 웃기는군.’

그러나 서론의 그 생각이 큰 오산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하나 살펴보는 라이안의 중얼거림을 들었기 때문이다.

“흠… 이건 날은 세웠지만 만들다 만 것이군. 앗! 이것은 재질은 좋지만… 쯧쯧, 장인이 너무 실력이 없었군. 무기란 재질만 좋은 것을 사용한다고 해서 무기의 특성까지 좋아지는 것이 아닌 것을…….”

이러한 말을 들은 서론은 놀라서 자지러질 뻔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서론의 할아버지는 대장장이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무기를 만들다가 들어 올리더니 인상을 쓰며 실패작이라며 내동댕이쳐버렸던 물건이 바로 라이안이 처음 본 검이었다.

가져다 버리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몰래 자신이 날을 세워서 그곳에 진열해놓았던 것이었는데 그것을 정확히 맞추는 라이안이 새롭게 보이는 서론이었다.

서론은 필기구까지 가져와 라이안이 말하는 것을 적기 시작했다. 어떠한 감정사보다도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는 라이안의 조용한 중얼거림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듯 자세히 적었다.

자신은 상인이었기에 물건을 하나 팔려면 물건이 어떠한 이유로 좋은지 설명할 수 있어야 했고 그것을 알아야 더 높은 가치의 가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에는 서론조차 모르는 선조 때부터 들여온 무기들도 있었는데, 할아버지에게 최고의 무기들이라는 말만 들었지 그동안 얼마나 좋은지는 판명해내기 힘들었다. 때문에 라이안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중요한 정보나 다름없었다.

30분쯤 시간을 들인 후 라이안은 창 하나를 눈여겨 봤다.

“이것은?”

라이안이 하나의 창을 보고서 그것을 들어 올리려던 찰나, 서론이 급히 말렸다. 무척이나 무거운 무기였기 때문이다.

“저, 저기 손님! 그것은 무척이나 무거운 물…….”

하지만 놀랍게도 라이안은 너무도 쉽게 그것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옷이 더러워지는 것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옷으로 창에 묻은 먼지를 닦아냈다.

그 순간 그는 빛이 일렁이는 창날에 이상한 느낌을 느꼈고 푸른색의 창이 이내 부르르 진동을 일으켰다.

위이이이잉.

“공명이라… 드디어 그 물건이 진정한 주인을 찾았군그래. 허허허.”

“앗! 할아버지!”

그때 뒤에는 언제 계단을 내려왔는지 80세도 넘었을 법한 노인이 서 있었다.

팔튼이 이곳의 세계에는 없는 종류의 무기를 보며 노인에게 물었다.

“저것은 창처럼 생겼으나 조금 생김새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일반 창은 기다란 창대에 최대한 깊게 파고들 수 있게 얇은 날이 있는 것이 보통이지. 하지만 저것은 날이 일반 검의 절반 정도나 되는 것이니 다르다면 다른 것이지.”

그 말에 팔튼이 의아한 듯 다시 물었다.

“하지만 창대가 길면 휘두르는 것의 범위가 늘어날 것이며 쉽게 막을 수 있는 단점이 될 것인데 저것은 어찌하여 저렇게 만들어진 것입니까? 그러기에 창은 찌르기 위한 무기가 아닙니까?”

“허허허, 무기의 활용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친구로군. 자네의 말이 맞네. 하지만 그것도 쓰는 사람에 따라서 그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네. 그리고 그 물건은 나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그 유래를 모르니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네.”

“흠…….”

더 이상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노인의 말에 질문을 마친 팔튼이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라이안이 창에 내기를 불어넣자 공명음이 멈추었다. 모두가 그러한 신기한 현상을 바라보고 있을 때 라이안이 팔튼을 보며 말했다.

“팔튼, 나 이걸로 할래.”

“하지만 그것은!”

“아니야, 난 꼭 이것으로 해야 할 것 같아.”

“흠… 자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나.”

무기를 고른 라이안과 팔튼이 일행이 있는 상점의 카운터 쪽으로 올라왔다. 그것을 본 헤인드가 물었다.

“무기는 잘 골랐는가?”

그 말을 들은 팔튼이 못마땅한 듯 말했다.

“고르기는 했는데…….”

“왜 그러는 것인가?”

팔튼의 대답이 시원찮게 생각하던 그들은 라이안이 잡고 있던 무기로 시선을 옮겼다.

“흠? 창은 창인데…….”

“어머? 그것이 뭐죠?”

“창칼인가?”

“신관인 저도 처음 보는 무기로군요.”

하지만 그러한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라이안은 옷으로 창을 닦기 바빴다. 일행이 보기에도 무척이나 흐뭇해하는 표정의 라이안이었다.

한편 서론은 카운터 쪽으로 와서 라이안이 고른 무기의 값어치를 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사실 라이안이 고른 무기는 그 누구도 고르지 않을 것 같은 무기였다. 게다가 이곳에서 창은 일반병사들이나 쓰는 하급무기라고 취급받고 있었다.

하지만 무기를 산 사람이 저렇게 마음에 들어 하니 상당히 고가를 부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서론은 속으로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할아버지의 한마디가 있었으니…….

“그 물건은 제 주인을 만난 것이니 돈은 받지 않겠네.”

“헉! 하, 할아버지!”

“넌 조용히 하고 있거라!”

“네…….”

그 말을 들은 팔튼이 놀라며 노인에게 물었다.

“아니 어찌하여 그러시는 것인지요. 저희에게도 충분한 돈이 있으니 금액을 말씀해주십시오.”

“난 자네에게 그것을 준 것이 아니라네.”

“하지만…….”

“장차 하늘과도 같은 위치에 서게 될 분을 이렇게 미리 보게 되어서 영광이옵니다.”

갑자기 노인이 라이안에게 존대를 하며 고개를 숙이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론과 일행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라이안도 정색하며 얼른 노인의 허리를 일으켰다.

“어, 어찌 이러십니까? 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시간이 그것을 알려줄 것입니다. 그것은 저의 작은 선물이니 부디 큰일에 사용해주십시오.”

“하지만…….”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의 부탁을 거절하실 생각이십니까?”

“흠… 정 그러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습니까?”

“허허허, 그렇다고 몇 번을 말씀드려야 되겠습니까. 아이고, 허리야… 나이를 먹으면 말하는 것도 힘드니…….”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서론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으나 이미 할아버지의 말이 떨어졌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뜻이 저러하시니 그냥 가셔도 됩니다.”

“이거 죄송해서…….”

“아닙니다. 그럼 이만…….”

그곳에 있으면 더욱 아쉬운 생각이 날 것 같아 서론 역시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주인 없는 상점에 있을 수 없던 일행은 무기점을 나왔다.

헤인드가 입이 귀에 걸린 라이안을 보며 물었다.

“이보게, 라이안. 그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려 하는가? 내가 보기에는 일반 창의 역할밖에 못할 것 같은데…….”

“후후후… 그것은 두고 보면 알게 될 거야.”

“자네 창도 쓸 줄 아는가?”

“아니.”

“헉!”

“헉! 뭔가, 그럼 쓸 줄도 모르는 무기를 샀단 말인가?”

모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라이안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라이안은 그런 일행의 시선을 무시한 채 창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직은 사용 못하지만 사용하는 방법은 알고 있지. 후훗.”

그의 말에 정말 못 말리는 친구라고 생각하며 팔튼이 고개를 흔들 때 라이안의 머리에서 번개같이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창의 명문이었던 청룡문… 그곳의 무공을 쓴다면 이 창의 특성을 살릴 수 있을 거야. 그곳도 이것과 같은 창날이 긴 특이한 창을 썼으니.’

라이안이 생각하는 청룡문은 구파일방에 끼지는 않았지만 그들조차 자신들보다 낮은 문파가 아님을 인정하는 곳이었다.

이곳 청룡문은 대부분 조정에 진출하는 문파로, 무림에 문파가 설립되어 있기는 했지만 주로 나라에 충성하며 전쟁에 앞장서는 장군을 많이 배출하는 문파였다.

라이안은 다음 장소인 용병길드로 이동하면서 계속해서 눈을 감고 이동했다. 일행이 뭐라고 말을 걸어왔지만 무표정으로 눈을 감고 아무런 말없이 따라오자 그러려니 하며 걸어갔다. 신기하게도 눈을 감고 있지만 조금도 일행과 떨어지지 않고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안은 머릿속으로 청룡문의 무공인 청룡창의 구결을 살피며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청룡창의 초식을 연마하고 있었다.

청룡창의 초식은 총 5초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 활용이 무척이나 변화무쌍하여 무림에서도 그 상대자가 없었던 무공이 이곳 미칼투 대륙에서 펼쳐지려 했다.

일초식… 청룡출해, 이초식… 청룡일섬, 삼초식… 청룡승천, 사초식… 청룡무희, 오초식… 청룡풍파가 있었고 그 궁극의 무공, 청룡창의 묘의인 멸천뢰가 있었다.

이러한 것을 머릿속 가상의 공간에서 펼치고 있는 라이안의 이마는 어느새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약 30분 정도 걷자 일행의 눈앞에 용병길드의 간판이 나타났다. 그에 도착했다고 말하려던 헤인드가 라이안을 보며 당황한 듯 말했다.

“아니, 라이안! 자네 어디 아픈가!”

라이안은 얼굴과, 가슴과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것을 본 일행은 모두 걱정된 눈으로 라이안을 쳐다보았다.

“라이안 오빠, 정말 어디가 아픈 건가요?”

“이럴 게 아니라 라드이라에게 치료를 받게나.”

라드이라 역시 심각함을 느꼈는지 급히 라이안에게 신력을 쏟아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라드이라가 어떠한 충격을 받아 뒤로 튕겨 나가버린 것이다.

“크윽!”

“라드이라! 자네 괜찮은가?”

“라드이라 오빠!”

뒤로 넘어져 있던 라드이라를 급히 일행이 일으켜 세워주었다. 라드이라의 이마에는 땀이 흘렀으며 그의 표정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어떻게 된 거죠?”

“갑자기 튕겨나가다니…….”

라이안도 그것이 이상하여 말했다. 자신에게도 무엇인가 반발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몸속에서 무엇인가 충격이 있었는데 나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라드이라는 뭔지 알겠어?”

그에 라드이라가 굳은 얼굴로 라이안을 보며 말했다.

“라이안, 그것은… 신력입니다. 즉, 당신의 몸에 신력이 있기 때문에 제가 튕겨나간 것입니다.”

“헉!”

“신력이라니!”

“라드이라 오빠! 정말 라이안 오빠한테 신력이 있어요?”

“어찌 그럴 수가!”

팔튼조차 그 말에 놀라워했다. 이들 중 가장 오랫동안 라이안을 보아왔지만 신력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라이안도 이상함을 느끼며 말했다.

“내 몸에 신력이라니… 그 신력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이지?”

“신력이란 어떠한 신에 대하여 세례를 받고 충실한 기도와 믿음으로 얻게 되는 힘입니다. 신력으로 신의 능력을 아주 조금 빌려 사용할 수 있지요.”

“신? 난 신 같은 거 믿은 적 없는데?”

“세례 같은 것도 받으신 적이 없으신가요?”

“글쎄… 나에겐 잃어버린 기억이 있긴 하지만 그런 것은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

“신기하군요. 어찌 그런 일이… 여하튼 지금 저의 능력으로는 라이안의 신력과 저의 신력인 충돌하니 치료를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라이안은 명상수련을 하다가 심력의 소비로 인해 일어난 상황에 겸연쩍어했다.

“아, 이것은 그냥 내가 어떤 수련을 하다가 그러한 것이니 조금만 쉬면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 다를 걱정하지 마.”

그 말에 헤인드가 물었다.

“아니, 자네는 눈만 감고 따라오기만 했는데 무슨 수련을 했다는 것인가?”

“후훗, 그런 것이 있어. 명상수련이라고 해서 상상의 공간속에서 수련하는 방법이야. 너희도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면 더 나은 경지로 올라설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한번 해봐.”

“흠… 육체의 단련만이 더 높은 경지로 올라설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군.”

“그래 아직은 그럴 거야. 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거야. 불필요한 근육이 더 높은 경지로 올라서는 길을 막는다는 것을.”

그렇게 수많은 의문점을 뒤로한 채 용병길드로 향한 일행이었다.

일행이 용병길드 안으로 들어서자 상당한 미모의 여성이 접수처에서 그들을 맞았다.

“용병길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용병등록을 하려고 왔습니다.”

“아, 그래요? 그러시면 용병등록을 하실 분의 성함을 이곳에 적어주시고 어떤 클래스의 시험을 치루실지도 써주세요.”

그 말에 라이안이 신청서에 무엇인가를 쓰려고 펜을 들었다가 이내 행동을 멈췄다. 그러자 팔튼이 의아한 듯 물었다.

“왜 쓰지 않고 있는 것인가?”

“그게 말이지… 나 말은 어떻게 할 줄 아는데 글은 하나도 모르겠어. 히잉.”

라이안이 눈물을 글썽이며 애처롭게 팔튼을 쳐다보며 말하자 팔튼이 이마에 손을 드리운 채 한숨을 쉬었다. 접수처에 있던 미모의 여성도 라이안의 그러한 모습에 얼굴을 붉혔다. 모성애를 느낀 것이다.

옆에 있던 에나도 그런 라이안의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접수처에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곤 이내 인상을 구겼다.

“에휴… 펜을 이리 주게나. 내가 대신 적어주겠네.”

“고마워, 팔튼.”

팔튼은 우선 신청서에 ‘라이안’이라고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클래스를 적으려고 하던 찰나, 잠시 고민을 하더니 라이안에게 물었다.

“라이안, 클래스는 어떻게 썼으면 좋겠는가?”

“응? 그냥 사실대로 쓰면 되는 거 아닌가? 그거 자신의 능력치 적는 거 아니야?”

“그것은 맞네만… 알겠네.”

그는 급히 뭔가를 적고서 접수처의 여인에게 그것을 주었다. 하지만 접수처의 여인은 라이안의 얼굴에만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고, 에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소리쳤다.

“이봐요! 접수 안 받아요?”

“앗! 죄송합니다.”

그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여인이 다시 얼굴을 붉히며 팔튼이 쓴 것을 읽어나갔다.

“이름이… 라이안 씨군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다시 한 번 라이안의 얼굴을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에나가 화가 나서 다시 소리칠 찰나, 접수처의 여인이 놀라며 헛바람을 삼켰다.

“헛! 트, 특급이라고요?”

혹시 잘못 적은 것이 아닌지 팔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라이안은 특급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을 뜻하는지 몰라 팔튼에게 물었다.

“팔튼, 특급이 뭐지?”

“일종의 급수를 말하는 것이라네. 용병의 급수는 5급부터 1급까지 있고 가장 높은 등급을 특급이라고 한다네. 참고로 난 2급 용병패를 가지고 있다네.”

“와! 그럼 좋은 거네?”

“좋은 거지.”

접수처의 여인이 놀라며 다시 물었다.

“지금 적으신 게 정말 잘못 적으신 것이 아닌가요?”

그 말에 팔튼이 자신의 용병패를 꺼내며 말했다.

“이것을 보시오. 난 2급 용병이오. 지금 2급 용병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시오? 어서 용병심사를 볼 수 있도록 준비해주시오.”

“네… 넵!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녀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2급 용병은 익스퍼트급의 검사로,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검사를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 *

용병길드의 지부장인 배드락은 오늘도 사무실에서 평소처럼 요청된 의뢰를 어떤 용병단에게 맡길지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을 서류에 파묻혀 있던 그는 그제야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지개를 켜려는 찰나, 갑자기 캐서린이 사무실 문을 부술 듯이 차고 들어왔다.

“지부장님! 큰일 났어요!”

“아니, 케서린! 무슨 일인가?”

케서린은 매우 급하게 뛰어온 나머지 호흡을 한참 가다듬더니, 침을 꿀꺽 삼키면서 말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특급 신청을 하러 온 사람이 있어요!”

배드락은 그 말을 듣고 놀라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그게 사실인가!”

“그럼 내가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여요?”

“어험, 가끔 그렇게 보인다만… 우선 같이 가보세.”

배드락은 서둘러 가자며, 케서린의 등을 밀면서 재촉했다. 과연 접수처에는 특급 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한 무리가 있었다.

“특급 신청을 하러 오셨다고요? 전 이곳에서 지부장을 맡고 있는 배드락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심사를 해야 하니 이쪽으로 오십시오.”

“알겠습니다.”

배드락을 따라서 용병길드의 뒤쪽에 있는 연무장으로 이동한 무리는 바로 라이안 일행이었다. 그들이 연무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을 때, 어디에서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특급 신청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면서?”

“그렇다고 하는군.”

“이거 대단한데?”

“여보게 너무 밀지 말게!”

“조…조금만 비켜주게나. 나도 보고 싶단 말이네.”

사람들이 그렇게 점점 늘어나면서, 연무장을 꽉 채우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팔튼은 자신이 실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연무장의 한쪽에 선 지부장인 배드락이 라이안 일행에게 물었다.

“어떤 분이 특급 신청을 하셨지요?”

조심스럽게 묻는 배드락의 말에 천진난만하게 대답하는 젊은 청년이 있었으니, 바로 라이안이었다.

“전데요?”

“으음? 당신이 특급 신청을 했다고요?”

베드락은 놀라움과 동시에 지금 이 사람들이 용병길드에 와서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배드락의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팔튼이 나서서 말했다.

“난 2급 용병인 팔튼이라고 하오.”

“아! 2급 용병이셨군요. 그런데 지금 이분이 특급 신청을 하신 분이 확실…한 건지?”

“확실하오. 우선 저를 보증인으로 하시고,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하지요.”

“흠… 알겠습니다. 2급 용병이 보증인으로 서신다면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닐 테니, 시험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응시자께서는 연무장 가운데로 와주십시오.”

팔튼이 라이안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 사람 말대로 가운데로 가서 서게나.”

“응? 저리로 가면 되는 거야?”

“그렇다네.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 것이네.”

“그래, 알았어.”

라이안은 천천히 걸어서, 연무장 가운데로 갔다. 그런데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니, 뭐야? 저거 풋내기잖아?”

“아직 햇병아리 같은데?”

“저 녀석 저거 시선 끌려고, 용병 길드에 와서 장난치는 거 아니야?”

“에잇! 괜히 왔잖아!”

“그래도 가운데 와서 서는 것을 보니, 뭔가 재롱을 피울 것 같은데 구경이나 하세나.”

“그러게 말이야. 하하하!”

라인안을 조롱하는 말이 오갔지만, 라이안이나 라이안 일행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라이안이야 원래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라이안 일행은 저들이 지금은 저렇게 말하고 있지만, 조금만 있으면 분명히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배드락이 라이안의 앞으로 가서 말했다.

“보통 익스퍼트 최상급까지는 대련을 통해서 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1급까지의 이야기죠. 혹시 지금 들고 있는 것이 당신의 무기입니까?”

“네, 그런데요?”

“특급 용병의 시험은 다른 시험보다 간단합니다. 바로 오러를 보여주시면 됩니다. 마스터의 상징인 오러를 보여 주십시오. 우선 그 무기로는 오러를 나타내기 어려울 테니, 저희 쪽에서 검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배드락은 이곳 세계에서는 오러를 나타내는 데 검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검은 기사의 상징이며, 오러를 나타낼 수 있는 물건은 검밖에 없었다. 아직 그 누구도 검이 아닌 다른 무기에 오러를 나타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배드락이 뒤를 돌아서 어떤 사람에게 검을 가지고 오라고 시키려는 찰나 그것을 라이안이 막았다.

“검은 필요 없어요. 전 이것으로 할게요.”

배드락은 뜻밖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 창같이 생긴 물건으로 오러를 나타내겠다는 것입니까?”

“네, 맞아요.”

“미친… 어흠!, 그럼 한번 해보시오.”

배드락의 입에서 미친놈이라는 말이 나오려다가 말았다. 배드락의 생각에는 아무리 2급 용병이 보증을 선다고 해도,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니, 지금 이곳을 지키고 있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드락은 만약 이 햇병아리가 장난을 친 것이라면, 뒤에 있는 사람을 시켜서 가만두지 않을 작정을 하고 연무대 중앙을 벗어났다. 어느새 구경꾼들의 웅성대던 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배드락은 라이안을 지켜보면서, 몇몇 남자들에게 속삭였다.

“저놈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팔다리를 분질러 놓아라.”

“저희가 알아서 주무를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맞습니다. 저런 애송이가 특급 시험이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분명히 사람들의 시선을 얻고자 허세를 부리는 것이겠지요. 크크크.”

“우선 무슨 장난을 치나 지켜보기로 하지.”

그제야 배드락은 연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라이안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나서, 눈을 감고 이곳에서 자신이 명상을 수련했던 초식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서서히 창을 가슴으로 끌어와서, 청룡창의 기수식을 취했다.

“하앗! 청룡창 일초, 청룡일섬!”

창을 뒤로 휘두르며, 창의 가운데와 뒤를 잡고 앞으로 내지르자, 금색의 빛과 함께 창의 날과 같은 길이의 강기가 형성되었다.

슈아아아악!

파바바박!

단 한 번 창을 휘두른 것뿐인데도 라이안 앞쪽의 바닥이 뜯겨 나갔다. 사람들은 창으로 오러를 일으키는 라이안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헉!”

“이…이럴 수가! 정말 오러라니!”

“내가… 오러를 보다니…….”

“오…오러닷!”

“정말 오러다!”

“와! 스피어 마스터다!”

“스피어 마스터가 나타났다!”

연무장은 사람들의 함성으로 날아갈 듯했고, 배드락은 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은 듯 라이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스피어… 마스터라니.”

라이안도 그들의 함성과 온갖 감탄성을 들었지만, 다른 세계의 일인 듯,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의 창무를 추기 시작했다.

“청룡창 이초! 청룡출해!”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빠른 속도로 라이안의 앞쪽에 늘어났다. 그리고 수만 번의 찌르기를 엄청난 속도로 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라이안의 앞에 빛으로 된 막이 형성되었다고 느꼈고, 그것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청룡창 삼초! 청룡승천!”

그것에 이어 라이안이 삼초를 시전하자, 하나의 용이 하늘로 승천하듯 솟아올랐다. 그 형태가 정말로 금빛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 같았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용에게 시선을 두다가 뒤로 자빠지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이어서 엄청난 바람과 압력이 퍼져 나갔다.

쿠오오오오오!

용이 하늘로 승천하며 울부짖는 것까지 실제로 봤으니, 혹시 그것이 소환수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순식간에 오러와 함께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저것이 오러로 형성시킨 것이라고 알 수 있었다.

“대단하다!”

“엄청나다!”

“이건 분명히 꿈이야…….”

“저런 것을 사람이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오러로 드래곤을 만들다니!”

용의 머리가 이곳의 드래곤의 형태를 닮아서 그런지 이곳의 사람들은 용이 아닌 드래곤이 승천하는 모습으로 생각했다.

한 마리의 용을 승천시키고, 바닥에 내려선 라이안이 다음 초식을 전개했다.

“청룡창 사초! 청룡무희!”

그러자 갑자기 라이안의 몸이 2개가 되고 4개가 되었다. 그렇게 8명의 라이안이 생겼고, 모두 같은 움직임으로 화려한 춤사위를 펼치기 시작했다. 몇 명의 라이안이 똑같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춤을 추자, 연무대가 화려한 금빛으로 변했다.

그 화려함에 사람들의 눈이 몽롱해질 정도였다. 만약 이것이 전투였다면, 그들은 그런 몽롱함을 느끼기도 전에 목이 날아갔을 것이지만, 옆에서 구경만 하는 이들은 운이 좋아서 그 화려함을 즐길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멍하니 있을 때, 라이안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오초를 시전하고 싶었으나, 내기의 소모가 심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사용할 수 있는 양의 내기가 다 소모되었는지, 벌써 혈류가 역류하기 시작했고,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으음… 여기까지가 한계로군.”

움직임을 멈춘 라이안 앞에 일행이 다가왔다.

“오빠 굉장해요!”

“자네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군.”

“자네, 도대체 못 쓰는 무기가 뭔가?”

팔튼도 라이안이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오러를 사용하는 마스터 경지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초급의 경지이겠거니 생각했는데, 특급 시험을 치르면서 보여준 능력은 라이안이 중급 이상 경지라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아직도 그 놀라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팔튼이 물었다.

“라이안, 도대체 능력의 끝은 어디인가?”

“응? 겨우 이 정도 가지고 왜 그리 호들갑이야?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이것으로 끝낸 건데. 몸이 다 나으면 지금 보여준 이런 것쯤은 바다 앞의 물웅덩이 정도일걸?”

“휴… 자네라는 사람은 알면 알수록, 놀라운 사람 같군.”

라이안이 일행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배드락이 급히 다가오며 말했다.

“정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신 분이군요.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우선 저의 사무실로 가도록 하지요. 특급 용병패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따라가자. 라이안.”

“그래.”

“와! 라이안 오빠 덕에 특급 용병패를 구경할 수 있게 됐네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특급 용병패는 처음 봐.”

“소문으로는 황금으로 되어 있다고 하던데?”

“그래? 그거 굉장한데?”

모두는 배드락을 따라서 시끄러운 연무장을 벗어났다.

연무장을 벗어나서 배드락은 사무실로 라이안 일행을 안내했고, 금고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철로 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이것이 특급 용병패입니다. 성함이 라이안이라고 하셨죠? 지금 당장 이름을 새겨드리겠습니다”

배드락이 조각칼로 그곳에 이름을 새기는 것을 라이안을 제외한 모두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지켜보았다.

“이제 다 되었습니다. 받으시지요.”

“와! 이것이 특급 용병패구나!”

“히야! 이거 보고만 있어도 두근거리는데?”

그때 그것을 받아들던 라이안이 배드락에게 물었다.

“이거 금인가요?”

“그렇습니다. 특급 용병패는 전체가 순금입니다.”

“하하, 이거 팔면 돈 좀 되겠는데?”

“헉!”

“라…라이안!”

“오빠 미쳤어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라이안의 모습에 모두 놀라서 소리쳤다. 배드락도 라이안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어이가 없었다.

“그것을 팔다니요? 용병패의 가치는 어마어마합니다. 정말 모르시고 말씀하는 것입니까?”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거예요?”

“물론 당연하고말고!”

팔튼이 고개를 내저으며, 배드락에게 말했다.

“지부장님이 백 번, 천 번을 이야기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분명 이 녀석은 돈이 떨어지면 뒤도 안 돌아보고 팔아먹을 녀석이니까요.”

“그…그럴 수가.”

특급 용병패는 지부마다 단 하나씩 보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언제 어느 곳에서 특급 용병이 나타날지 모르기에 그렇게 조치한 것이다.

일반 귀족 중에는 특급 용병패를 그저 수집용으로 가지려고 자신의 성까지 내놓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일반 성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인 특급 용병패였으니, 부연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런 용병패를 라이안은 배고플 때, 팔아서 맛있는 것이나 사먹을 생각을 하다니, 라이안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디 잃어버리지 않고 잘 지키기 바랍니다. 그 용병패는 귀족들만 들어갈 수 있는 호텔도 저지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대단한 물건이니까요. 그러니 파신다는 생각은 부디 버리길 바랍니다.”

“뭐 어쨌든 가지고 있으면 혜택이 많다고 하니 팔지는 않을게요.”

배드락이 정색을 하며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으나, 라이안으로 부터 겨우 이 정도의 다짐만 받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허탈한 표정을 짓던 용병길드의 지부장인 배드락을 뒤로 하고 라이안 일행은 용병길드를 벗어났다.

라이안이 아직도 그 중요성을 모르고 아무렇게나 용병패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보고, 헤인드가 말했다.

“정말 신분증 한번 어마어마하게 만들었군. 하하하.”

“그러게 말이네.”

“전 너무 놀라서 벌써 허기가 져요. 우리 얼른 여관으로 돌아가요.”

그렇게 말하는 에나에게 디로안이 핀잔을 주었다.

“너 그러다가 살찐다. 살찐 에나는 라이안이 싫어할 텐데.”

“앗! 난 아무리 먹어도 살 안 쪄요!”

디로안이 라이안을 들먹이며 말하자, 에나는 얼굴을 붉히며 라이안의 눈치를 살폈다. 정말로 라이안이 살 찐 사람을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하하, 난 살찐 에나도 예뻐할 거니까, 우리 에나는 많이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는데?”

“거봐요! 들었죠? 역시 라이안 오빠가 최고야. 헤헤.”

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대담하게 라이안의 팔짱을 끼는 에나였다.

“자, 나도 많이 움직였더니 배가 고프네! 어서 여관으로 가자.”

“아이고, 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은 것 같은데 빨리 뛰어가자고!”

역시 가만히 못 있는 헤인드였다. 일행보다 먼저 헐레벌떡 뛰어가는 모습이 지금까지 배고픔을 겨우 참고 있었던 사람처럼 보였다.

“하하하.”

“호호호.”

“하하하.”

“천천히 가게나 헤인드!”

* * *

라이안이 용병길드에서 벌인 일로 나치키 영지는 엄청난 소문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바로 피스트 마스터와 스피어 마스터가 나타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각각의 주인공이 동일 인물인 줄 모르고, 곧이어 히매인 왕국 전체가 모든 시선을 나치키 영지에게 돌렸다.

그리고 히매인 왕성 안에서도 그런 일로 소란이 일었다.

“그 말이 사실이오?”

크호른 왕이 신하들에게 확인하듯 물었고 트니스 후작이 그 말을 받았다.

“그렇다고 하옵니다. 정말로 나치키 영지에 피스트 마스터와 스피어 마스터가 나타났다고 하옵니다.”

“어허, 이런 복이 있나… 왕국이 멸망하려는 이 시점에 하늘이 우리 히매인을 도우려고 하는 것 같군.”

“이게 다 국왕 전하의 복이옵니다.”

“그대들은 어서 진상을 파악하고, 그들을 왕궁으로 데려오시오. 절대로 에드코르에서 그들을 먼저 알아서는 안 되오! 알겠소?”

크호른 왕의 말에 신하들이 덧붙여 말했다.

“히매인 왕국의 충성스러운 신들이 국왕 전하의 명을 받드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귀족들이 다급하게, 왕궁을 빠져 나왔고 수많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나치키 영지를 향해 내달렸다. 가장 먼저 마스터를 데리고 가는 사람에게 큰 입지가 생기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수정 구슬을 통해 마나를 흘려보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라핀 후작이었다. 얼마간 마나를 흘려보내자 수정구 안에서 하나의 얼굴이 나타났다.

“에드코르 제국 정보부 마법사 필런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난 히매인의 라핀 후작이오.”

“아! 오랜만에 뵙습니다. 진행 중인 일은 잘되고 있는지요?”

“지금 블랙섀도우가 쫓고 있으니, 조만간 일이 성사될 것이오. 급히 전할 이야기가 있으니, 요르민 공작각하를 불러주시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얼굴이 수정구에 나타났다.

“라핀 후작, 이거 오랜만이군.”

“요르민 공작각하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그 말을 들은 요르민 공작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것을 말이라고 하는 것인가? 블랙섀도우까지 보냈는데, 아직도 진척이 더디니 무척 답답하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우리 대사에 지장이 생길 것이오. 그리고 물론 라핀 후작에게 줄 수 있는 지위가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크음… 그들이 바치스 영지로 가고 있기는 하나 블랙섀도우들이 바로 뒤까지 따라붙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어험, 난 자네만 믿고 있겠네. 그래야지, 자네에게 공왕의 자리를 줄 수 있을 것이야.”

그랬다. 에드코르의 요르민 공작과 라핀 후작이 내통하여 흉계를 꾸미고 있었으니, 앞으로 히매인 왕국에 암운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급한 일이 무엇인가?”

요르민 공작의 물음에 라핀 후작이 말했다.

“지금 우리 히매인 왕국의 나치키 영지에서 두 명의 마스터가 나타났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뭣이! 마스터가 두 명이나 나타났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어찌 마스터가 두 명이나 나타날 수 있단 말이오. 혹 잘못된 정보는 아니오?”

“국왕 전하께서 알려주신 정보라서 확실합니다.”

“흐음…….”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한참 고민하던 요르민 공작이 입을 열었다.

“그들이 히매인 왕국의 중요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우리의 대사가 그르칠 수가 있소. 그들이 히매인 왕국의 요인들과 만나기 전에 그들을 우리가 먼저 포섭을 하던지, 포섭하기 어려울 시에는… 블랙섀도우를 이용해 제거하시오.”

“흠… 알겠습니다.”

“히매인 왕국의 국력이 강해진다면, 우리의 대사에 금이 갈 것이오. 그러니 명심하고 일을 진행하시오.”

그 말을 끝으로 수정구에서 요르민 공작의 얼굴이 사라졌고, 바로 라핀 후작은 중얼거렸다.

“흠… 포섭이 아니면 제거라…….”

* * *

한편, 여관에 도착한 라이안 일행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식사부터 했다.

“아… 배부르다.”

“하하, 헤인드 자네 배에 나무를 심으면 산이 될 듯한데?”

“이봐, 디로안. 너도 만만치 않게 배가 나왔어. 이거 왜 이래?”

“쳇! 오빠들, 그거 도토리 키 재기인 거 알아요?”

모두 식사를 대충 마치자, 헤인드가 말을 꺼냈다.

“용병길드에서 나오기 전에 하나의 의뢰를 받았다네.”

“응? 어떤 의뢰를 받았지?”

“저도 궁금해요. 헤인드 오빠.”

그 말에 헤인드는 라이안과 팔튼의 눈치를 살폈다. 그것을 눈치 챈 팔튼이 헤인드에게 말했다.

“뭔가 할 말이 있나. 헤인드?”

“그게 말이지… 사실 용병길드 지부장이 자네들과 우리가 같은 파티냐고 물어서, 그냥 그렇다고 말했네. 사실 일거리도 없고… 쉽게 큰 금액을 벌 수 있는 기회라서 바로 의뢰를 받아드렸는데…….”

헤인드가 말끝을 흐리자, 라이안이 답답한 듯 끼어들었다.

“그게 뭐? 나도 용병이 되려고 용병시험을 치른 것인데, 용병 일을 같이 하면 좋은 거 아닌가?”

라이안의 말을 듣자, 헤인드의 잔뜩 어두웠던 얼굴이 다시 희망에 찬 듯 밝아졌다.

“정말 우리와 같은 파티를 이루겠는가?”

팔튼도 어차피 한동안 용병생활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승낙했다.

“나는 별로 상관없다네. 친구끼리 뭘 그런 것으로 눈치를 보고 그러나?”

“정말 다행이군. 하하하.”

“그래, 그런데 의뢰 내용은 뭐야?”

라이안의 물음에 헤인드가 설명을 했다.

“그게 말이지. 보상이 큰데 비해 굉장히 쉬운 일이야. 바치스 공작가에게 상자만 하나 전달하면 된다더군.”

“어떤 물건이지?”

“그건 비밀이라는데… 단지 상자라고만 했다네. 그래서 내일 용병길드에서 물건을 받고, 전달하기로 했는데 팔튼과 라이안은 괜찮겠는가?”

“나도 상관이 없다네.”

“나도.”

“하하하, 그럼 내일 용병길드에 들렸다가 물건을 받고 이동하기로 하자고.”

“그런데 헤인드 오빠, 보상이 얼마나 되기에 크다고 하는 거죠?”

“아!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었군. 특급 용병을 그 누가 쉽게 움직일 수 있겠는가? 운송만 해주는데, 자그마치 20골드나 받기로 했어.”

“와! 20골드라고요?”

에나가 그 금액을 듣고 놀라워했다. 팔튼 또한 20골드는 적지 않은 돈이라고 생각했지다. 하지만 히매인 왕국에서 단 하나뿐인 특급 용병인 라이안에게 있어 그 정도의 돈은 적으면 적었지, 결코 많은 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일반 가정의 경우 20골드는 10년은 먹고 살 수 있는 돈이었으니 평민에게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우선 의뢰를 마쳐야 돈을 받을 수 있으니,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자고.”

라이안 일행은 그렇게 다음 날 아침 용병길드에 다시 들러 의뢰 물품을 받은 다음 나치키 영지를 떠났다.

라이안 일행이 떠나자 상당수의 기사와 마차가 용병길드로 몰려들었다.

두두두두두두.

이히히히힝.

말들이 거친 투레질을 하며 멈춰 서자, 한 명의 기사가 말에서 내려와 마차의 문을 열었다.

“이곳이 용병길드입니다. 세우코 남작님.”

“그렇군, 이곳이 마스터가 나왔다는 곳이군. 어서 길드장을 데려오너라.”

“네! 알겠습니다.”

몇 명의 기사가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갔고, 용병길드의 지부장인 배드락이 급히 뛰어나왔다.

“아이고, 세우코 남작님께서 어인 일이신지요?”

“이곳에 마스터급의 실력을 갖춘 자가 나타났다고 들어서 이렇게 왔네.”

세우코 남작의 말에 배드락이 허리를 굽히며 황급히 대답했다.

“아! 어제 이곳에서 배출한 특급 용병을 말씀하시는군요. 맞습니다. 확실히 마스터급이었습니다.”

“그것도 스피어 마스터라고?”

“네, 저도 그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래, 그럼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빨리 말하게 그 일 때문에 지금 왕국 안이 들썩이고 있으니, 아마 며칠 뒤면 상당수의 귀족이 들이닥칠 것이야. 그들보다 내가 먼저 만나야 하니 어서 말해 주게.”

세우코 남작은 자신의 영지에서 마스터가 나와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왕궁으로부터 온 마법통신이 아니면 알지 못하고 넘어갈 뻔한 큰일이었는데, 그것이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영지 안에서 발생한 일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영지 안에 있으니 자신이 가장 빠르게 그를 만날 수 있고, 그를 포섭하게 된다면, 국왕에게 큰 신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그것이… 그는 오늘 아침 의뢰를 받고 스피린으로 떠났습니다.”

“뭣이! 이…이런 젠장! 지금 당장 그를 따라나선다!”

“넵!”

“모두 스피린 영지로 출발한다!”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세우코 남작과 그의 기사들은 라이안 일행을 찾기 위해 수많은 먼지를 일으키며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 하지만 라이안 일행은 일부러 수행을 위해 산길로 이동했고, 세우코 남작은 일반인이 다니는 평로로 이동을 했으니, 그들이 마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라이안 일행은 가끔 10여 마리의 오크를 만나는 것 외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산길을 걸었다.

라이안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운동을 하는 셈 친다고 맨주먹으로 오크들을 상대했고, 일행은 그 모습을 웃으며 구경했다. 그렇게 가볍게 산길을 걷고 있을 때, 앞쪽에서 수많은 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몬스터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앞쪽에 몬스터들이 있다.”

“정말인가?”

“응, 오우거와 트롤이 싸우고 있는 것 같군.”

“그렇다면 조금 우회해서 지나가야 할 것 같군.”

“그렇게 하자.”

몬스터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돌아서 가는 동안에도 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영역 싸움인가? 쳇!”

“영역 싸움이던가 아니면 먹이 싸움이겠지.”

“먹이 싸움? 영역 싸움?”

라이안이 물어보자, 헤인드가 웃으며 말해주었다.

“몬스터들도 자신들의 일정한 구역이 나누어져 있다네. 그리고 아무리 몬스터들이라고 해도, 배가 고플 때만 싸우는 것들이지, 인간처럼 식량을 모아놓는 습성이 없다고 할까? 구역 싸움이 아니면 어디서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거겠지.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오크나 고블린들은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무리를 형성하고 사냥한 것을 모아놓는다고 들은 적이 있네. 그리고 확실히 오크나 고블린의 경우는 사람들을 습격해서 그들의 무기나 장비를 착용하기도 하니 상당히 지능적인 존재들이지.”

“그럼 몬스터를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본능에 충실하다는 것이구나?”

“그렇다고 볼 수 있다네.”

산길을 한참 돌아가고 있을 때, 앞쪽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그것이 라이안의 예민한 귓가에 들렸다.

“앞쪽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아니, 누가 이 깊은 산속에서 싸운단 말인가?”

“우선 거리를 두고서 지켜보자.”

“흠… 위험하니 최대한 멀리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네.”

라이안 일행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갔다.

숲 속 깊은 곳에서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로 보이는 자들이 몇 명의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안쪽에는 피를 흘리고 있는 5명의 기사와 그 가운데 갓 소녀티를 벗은 여자가 하나 있었다.

그들은 히매인 왕국의 공주인 루시 공주와 붉은 독수리 기사단과 아자드 단장으로, 나치키 영지로 향하던 길에 위험에 처한 것이다.

검은 갑옷을 입지 않은 두 명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아자드 단장에게 말했다.

“붉은 독수리 기사단은 역시 듣던 대로 상당한 실력을 갖췄군. 우리 기사를 둘이나 죽였으니… 하지만 여기까지가 끝이오. 포기하시오. 아자드 단장.”

그 말에 아자드 단장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닥쳐라! 간악한 에드코르 놈들! 어찌 남의 나라에 와서 한 나라의 공주를 위협한단 말인가! 그러고도 너희가 기사라고 할 수 있는가!”

“흠… 기사도를 따진다면 확실히 치사한 행동이라는 것은 알고 있소. 아자드 단장… 하지만 기사도에 앞서 나는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했기에 그 뜻에 따를 수밖에 없음을 알아주시오.”

“닥쳐라! 루시 공주님은 절대로 내어줄 수 없다!”

“역시… 그렇다면 힘으로 공주님을 모셔가야 하겠군. 할 수 없지.”

그 말을 끝으로 그가 뒤로 조금 벗어나자, 그 자리를 검은 갑옷의 기사들이 메웠다. 검은 갑옷의 기사들은 에드코르 제국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최고의 기사들로, 블랙섀도우 기사단이라고 불리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모두가 소드 익스퍼트 중급 이상으로 알려졌으나, 대부분 상급을 이상의 능력을 가진 최고의 실력자들이었다.

벌써 붉은 독수리 기사단은 20명 중에 15명이 죽고 5명이 부상당한 상태였다.

반면 블랙섀도우 기사단은 붉은 독수리 기사단과 인원이 같았지만, 겨우 4명의 사상자만 났을 뿐이니, 상당한 전력 차이가 났다고 할 수 있었다.

블랙섀도우 기사단이 아자드 단장과 붉은 독수리 기사단을 압박해서 공격해 들어갔고, 그렇게 서서히 붉은 독수리 기사단의 밀리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팔튼이 그것을 목격하고 뛰어나가려고 했다. 그런 그를 헤인드가 급히 말렸다.

“저것은?”

“여보게 팔튼, 자네 미쳤나! 어딜 가려고 하는가?”

“이것 놓게. 루시 공주를 지켜야 하네.”

“저기에 끼어들면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저들은 기사들이라네. 자네가 강한 것은 알고 있지만, 상대가 너무 많아서 가망이 없단 말일세. 게다가 저건 귀족들의 일로 보이는데, 평민인 우리가 끼어들어 봐야 이득 될 것이 없지 않은가?”

헤인드의 말에 팔튼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헤인드, 본의 아니게 ‘예비기사의 여행’을 위해 용병으로 위장했다네. 난 사실 포르베 백작가의 장남이라네. 내 이름은 팔튼 콘 포르베란 말일세. 나라의 왕족이 다른 나라 기사에게 위험에 처했는데, 장차 이 나라의 기사가 될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끼어들지 말게나. 나 때문에 자네들이 위험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네.”

팔튼의 말에 어느 정도는 짐작했던 헤인드였다.

“흠… 확실히 자네의 행동이나 씀씀이를 봤을 때, 귀족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랬군.”

“자네들의 처지야 워낙 나와 다르니까.”

팔튼은 그 말을 끝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팔튼은 싸움이 벌어지는 곳으로 뛰어들자마자, 신법을 이용해서 블랙섀도우 기사단의 허점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힘껏 마나를 내뿜으며, 기사 한 명을 정확히 단 한 수로 목을 잘라낼 수 있었다. 바로 삼재검법의 지의 초식으로 아주 깔끔한 가로베기를 한 것이다.

푸화홧!

“웬 놈이냐!”

갑자기 자신의 기사단을 공격하려는 자가 뛰어들자 블랙섀도우 기사단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미 허점을 찔렸고, 자신들의 동료를 베어낼 때 내뿜었던 기세가 대단했기에 팔튼을 허술하게 볼 수 없었다.

“난 히매인 왕국 포르베 백작가의 장남 팔튼 콘 포르베다! 에드코르 놈들이 어찌 히매인 왕국의 공주님을 핍박하는 것이냐!”

“하하하, 용기는 가상하다만 너 하나가 더 끼어든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젊은 혈기로 쉽게 목숨을 버리려 하다니… 모두 공격해라!”

“쉽게 물러서진 않겠다! 하앗!”

부이이유융.

“헛! 익스퍼트 최상급!”

“그 나이에 최상급이라니, 믿는 구석이 있었군. 하지만 그것으로 과연 얼마나 버틸까? 자! 처리해라!”

거리를 점점 좁혀오는 블랙섀도우 기사단을 보고, 팔튼은 아자드 단장과 기사들에게 다가가 진형을 이루었다.

“도와줘서 고맙소. 하지만 이 위기를 타개하기는 어려울 듯하오. 내가 길을 열어 볼 테니, 공주님을 모시고 탈출하시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자들은 모두가 기사입니다. 길을 열어봤자, 언젠가 잡힐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모두 당하자는 말이오? 지금은 젊은 혈기로 오기를 부릴 때가 아니오. 급한 상황이지 않소. 내 말대로 해주시오. 공주님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소!”

그 말을 들은 검은 갑옷을 입지 않은 두 명의 기사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그렇게는 안 될 것이오! 이중결진을 형성하라!”

“넵!”

“넵!”

블랙섀도우 기사들이 공주 일행을 이중으로 에워쌌다. 그들 모두가 빈틈없이 거리를 두면서, 움직이고 있어서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크윽! 이젠 틀렸군. 같이 라피네 신의 품으로 가겠군. 거기서 보세나.”

“그렇겠군요. 하지만 그가 도와준다면 이 위험에서 빠져나갈 수도 있을 것을…….”

이렇게 붉은 기사단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전투가 시작됐다.

깡! 까강! 스악!

스윽! 푸화핫!

“크윽!”

“끄악!”

“이런 제길!”

그나마 남아있던 4명의 기사들이 쓰러지면서, 블랙섀도우 기사들에게 갈기갈기 찢겼다. 뒤쪽 수풀에 숨어 있던 헤인드가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굴렸다.

“이거 어떻게 하지?”

“우린… 저곳에 끼어든다고 해도 도움이 안 된다네… 크윽.”

“젠장! 내가 좀 더 강했다면…….”

한참 발을 동동 구르던 헤인드가 생각을 굳힌 듯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헤인드, 참아. 죽기만 할 뿐이야.”

“라…라이안! 하지만!”

“내가 있잖아. 나를 믿어. 대신 너희는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해, 그래야 저들을 구출할 수 있어.

저쪽 뒤에 있는 두 사람은 보통 실력자가 아니거든.”

“자네에게도 위험한 자들이란 말인가?”

“응, 저들도 아마 이곳에서 말하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일 거야.”

“아니! 저들 두 명 다 말인가?”

“응,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팔튼은 내가 데리고 갈 테니까, 스피린 영지에 만나자.”

“아, 알겠네.”

“그래, 그럼 어서 출발하도록 해.”

“오빠, 조심해요.”

“걱정하지 마, 에나! 후훗.”

“조심하게나.”

“응.”

그렇게 네 명은 그곳을 빨리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헤인드와 디로안은 쉽게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그것을 눈치 챈 라이안이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헤인드, 디로안… 강해지고 싶지?”

“크흑…….”

“크흑…….”

친구가 처한 위험을 도와주지 못해서 헤인드와 디로안은 자신의 무능함에 끝내 눈물만 흘렸다.

게다가 팔튼과 라이안은 자신들의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그런 그들 중 팔튼이 위기에 처했는데, 그것을 그냥 두고 가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 그 눈물이 너희를 강하게 만들어 줄 거야 앞으로… 우리를 지켜주고 싶지? 그리고 도와주고 싶지? 검은 꼭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야. 그 지키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항상 가슴속에 간직하도록 해. 나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혹 스피린 영지에서 너희를 만나게 되면… 내가 반드시 너희를 강하게 만들어 줄게.”

“라이안, 자네… 크흑… 고맙네.”

“크흑… 미안하네… 라이안. 정말 미안하네… 크흐흐흑.”

“아니야, 먼저 길을 떠나 아무래도 지금 나서지 않으면, 팔튼이 위험하겠어. 에나! 네가 이 못난 오빠를 데리고 가렴.”

“라이안 오빠.”

“걱정하지 말고. 어서.”

“알았어요, 몸조심하세요.”

헤인드와 디로안이 흘리는 눈물에 라이안도 잠시 마음 한구석이 짠해졌다. 라이안은 살며시 미소를 짓다가 번개같이 사라졌다.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는 이제 팔튼과 아자드 단장만이 남아서 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스쳐 지나가는 검에 군데군데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렸다.

“크윽!”

“제길! 팔튼이라고 했나? 이제 한계인 것 같군.”

“조심하세요!”

십여 개의 검이 날아드는 상황인지라 더 말을 할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아자드 단장은 더 이상 검을 들 힘이 없었는지, 힘없이 말을 했고, 팔튼은 아자드 단장의 목으로 빠르게 날아드는 검을 보았다.

“젠장!”

까깡!

사사사삭!

스억!

“크악!”

“컥!”

“크윽!”

아자드 단장의 목이 날아갔다고 생각한 순간, 그 검을 막는 것이 있었다. 아자드 단장의 앞에 엄청난 속도로 금색의 빛이 일더니, 기사 세 명의 몸을 스쳐 지나갔고, 기사들은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누…누구시오!”

“라이안!”

갑자기 앞에 나타난 사람을 보고 아자드 단장은 놀라서 물었고, 그것이 누구인지 아는 팔튼이 라이안을 불렀다.

“바보 같은 녀석… 너 혼자 그렇게 뛰쳐나가면 어쩌겠다는 거냐?”

“자네가 지금 나를 돕겠다는 것인가?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데…….”

“당연하잖아, 우린 친구인 걸… 이쪽 세계에서 가장 처음 만든 친구를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잖아?”

“그렇군. 우린 친구로군… 고맙네, 라이안…….”

아무리 친구로 지내기로 했지만 오래 만난 사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 친구라는 이유로 도와줄 수 있는 친구는 무척이나 드물 것이다.

“아쭈? 야, 팔튼! 너 우냐?”

“아…아니네! 누가 운단 말인가?”

“야, 너 눈가에 눈물 고였어.”

“이 친구…….”

라이안이 나타나서 3명이나 순식간에 베어 넘기자,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블랙섀도우 기사단이 포위의 폭을 넓혔다.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들의 기사를 기습한 라이안을 본 아자드 단장이 그 무의에 놀라며 팔튼에게 물었다.

“아는 사람인가?”

“네, 친구입니다. 이제 한번 해볼 만하겠습니다.”

“저자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알겠으나, 아직 저들의 수가 많지 않은가?”

“그렇지만… 두고 보시지요.”

블랙섀도우 기사단을 이끌고 왔던 두 명의 사람 중 하나는 에드코르 제국의 에드먼드 후작이었다.

그는 이제 50대에 접어든 사내로 대륙에 익스퍼트 최상급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소드 마스터 초급의 경지에 들어선 자였다. 나머지 한 명은 하이븐 후작이었다.

그는 가장 기사다운 기사라고 세상에 알려졌고, 성격이 강직하기로 유명했다. 게다가 대륙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실력 있는 소드 마스터 중급으로 알려졌다.

에드먼드 후작이 예리하게 빛나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섰다.

“일전에 나치키 영지 근처에서 만났던 자군.”

“응? 나 알아?”

“후후훗, 건방진 놈.”

“내가 보기에는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닌데?”

“하하하, 그렇지. 네 말이 맞군… 그냥 죽이면 되는 것을.”

에드먼드 후작은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칼을 뽑아들었다.

“너희는 물러서거라! 내가 상대하겠다!”

“후작각하! 하지만!”

“멍청한 것들! 너희가 상대할만한 자가 아니다! 그는 마스터급의 실력자라고!”

“마…마스터급!”

블랙 섀도우 기사들이 모두 물러서자, 에드먼드 후작이 라이안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럼 한번 해 볼까? 호오? 그대는 창을 쓰는가 보군. 후후후, 창 따위로 마스터급에 오르다니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이 세계에서는 창으로 마스터급에 오른 자가 단 한 명도 없었었기에 에드멘드 후작으로서는 라이안이 신기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후훗, 무기란 단지 팔의 연장인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자에게 설명해 봐야 내 입만 아프지 뭐. 만류귀종(萬流歸宗).모든 것은 절정에 올랐을 때 그 흐름이 같은 것을…….”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소드 마스터라는 경지에 올랐으면 이제 어느 정도 느낄 때가 되지 않았나? 무기라는 것은 검을 사용하든 창을 사용하든 그 경지가 올라갈수록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된다는 것을?”

“웃기는군. 어디서 그따위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냐!”

“됐다. 너랑 말 안 한다. 그냥 덤벼.”

“건방진 놈! 챠앗!”

하이븐 후작은 라이안의 말에 뭔가 느끼는 듯, 깊은 생각에 빠졌다. 라이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드먼드 후작은 있는 힘껏 오러를 끌어올려서 라이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레드먼드 후작은 라이안의 옷깃조차도 건드릴 수 없었다.

“쥐새끼 같은 놈! 피하기만 해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당연하지.”

“뭣이!”

“네가 그러다가 지치기라도 하면, 내가 더 유리해질 수 있는 거잖아. 너는 바보인가?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야? 그리고 넌 상대방이 어떤 생각으로 싸우고 있는지조차 살피고 있지 않잖아. 너 따위는 나한테 상대도 안 돼. 왜인 줄 알아? 바로 이런 것 때문이지!”

“어억!”

에드먼드 후작이 라이안의 틈을 발견하고, 검을 깊게 내질렀다. 하지만 라이안은 그것을 살짝 피하면서 창으로 검날을 짓눌렀다. 에드먼드 후작은 검과 창을 떼어놓으려고 있는 힘껏 힘을 주었지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무…무슨 짓을 한 거냐!”

“검사라는 자가 이런 간단한 이치도 모르는 게 신기하군. 이것은 바로 착이라는 기술이다. 꽉 잡고 있는 게 좋을 걸?”

“어…어!”

휘익!

쩡거러렁!

“이… 이럴 수가 내가 검을 놓치다니!”

라이안이 착의 묘를 살려 에드먼드 후작의 역 흐름을 타며 한 바퀴 회전시켜서 창끝을 강하게 던지자, 에드먼드 후작이 들고 있던 검이 자석에 붙은 듯 딸려 나왔다. 그 원심력의 힘 때문에 에드먼드 후작이 그만 검을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너희는 이런 것을 잘 모른다는 거야. 오러 같은 거는 힘이나 스피드일 뿐인데, 너무 그런 것에 의존하거든.”

에드먼드 후작이 그렇게 멍하니 서 있는 사이 라이안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블랙 섀도우 기사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스악! 스악!

푸화하학!

“크악!”

“컥!”

에드먼드 후작이 갑자기 돌변한 라이안에게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 이런 치사한!”

순식간에 다섯 구의 시체가 늘어나며 블랙 섀도우 기사들이 반수밖에 남지 않았다. 하이븐 후작도 너무 갑작스러운 라이안의 공격에 움직이려고 했으나, 이미 라이안이 그들을 베고 제자리로 돌아간 후였다.

“치사하다고? 너희는 그 많은 기사로 저들을 공격했던 것이 아닌가? 그건 치사한 것이 아니고 뭐야?”

“비겁한 놈! 어찌, 마스터급의 실력자가 일대 일의 승부를 하면서, 허점을 노린단 말이냐!”

“난 원래 그래. 보이는 걸 어떻게 하나?”

에드먼드 후작은 힘으로나 기술로도 라이안에게는 실력이 턱없이 쳐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심계에서도 떨어졌으니, 그는 라이안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안 하이븐 후작이 앞으로 나섰다.

“여보게 에드먼드. 라이안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네. 우리 같이 상대하세나.”

“뭐? 자네와 내가 저자를 동시에 상대해야 할 정도란 말인가?”

“그렇다네. 내 느낌은 틀리지 않네. 그리고 이미 블랙섀도우의 피해가 너무 크네. 시간 또한 너무 지체되어서 늦어질 수 있네.”

“빌어먹을!”

라이안은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드먼드 후작을 충분히 조롱하는 동시에 블랙 섀도우 기사들을 제거하면서 팔튼과 아자드 단장을 탈출시킬 구멍을 만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뒤에 있는 하이븐 후작이 너무 일찍 나선 것이다.

“너희는 저들을 처리해라.”

“넵!”

“넵!”

“어딜!”

라이안이 그들을 막아서며 창을 찔러갔으나, 하이븐 후작은 그것을 검 면으로 막았다.

‘이자… 만만치 않은 자로군. 이대로 오래 끌고 있다간 힘들겠어.’

“팔튼! 최대한 버텨!”

까깡!

펑! 퍼벙!

“다른 사람 생각할 때가 아닌 듯싶은데!”

역시 라이안의 생각처럼 하이븐 후작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신법을 최대한 발휘하며 라이안은 하이븐 후작에게서 떨어지려고 했으나 에드먼드 후작이 방해해서 그조차 쉽지 않았다.

“제길! 청룡창 제오초! 청룡풍파!”

“피하게! 에드먼드!”

콰과과과과광!

푸아아아앙!

라이안의 주위로 엄청난 회오리가 형성되었고 그 회오리를 타고 수많은 강기들이 퍼져 나갔다. 하이븐 후작은 위험을 느끼고 재빨리 피했지만, 라이안의 움직임을 상대하려고 했던 에드먼드 후작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옆구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크윽!”

“자네, 괜찮은가?”

“제길! 약간의 생채기가 났을 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에드먼드 후작은 점점 상처가 난 부위가 벌어지는지, 피의 양이 점점 늘어났다.

“헤르시안을 사용하게!”

“이런… 그것까지 사용하게 될 줄이야…….”

에드먼드 후작과 하이븐 후작은 환한 빛이 나는 보호 장비를 갖춘 갑옷을 입었다. 바로 마법무구 헤르시안이었다.

헤르시안은 수만 년 전 마법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마도 시대의 물건이었다. 어떤 이유인지, 마도 시대의 갑작스러운 멸망으로 모든 유물이 땅속에 묻혔는데, 근래에 던전이 발견되면서 빛을 보게 된 마법무구였다.

그것은 보호마법으로 실드마법이 새겨져 있으며, 상등급의 헤르시안의 경우에는 몇 번의 오러 블레이드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견고했다.

갑옷이 몸 전체를 감싸고 있어서 움직임이 힘들 것처럼 보였으나 착용만 해도 편한 옷을 입은 것 같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물론, 마나 또한 두 배나 증폭시킬 수 있는 마법진이 내부에 새겨져 있었다. 가히 무적의 갑옷이며, 기사들이 꿈에 그리는 보호 장비인 것이다.

“쳇! 갑옷을 입었단 말인가?”

라이안은 그들이 갑옷을 입자, 위기의식을 느꼈다. 심지어 에드먼드 후작조차 가볍게 보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갑옷이라는 것이…….”

라이안도 겉옷을 벗었다. 그리고 그들을 보며 소리쳤다.

“너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강식장갑!”

취아아아악!

철컥! 철컥!

라이안은 몰랐지만 순간 먼 곳에 있던 챠둠의 센서가 반짝였다.

<2권에 계속>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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