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돈의 라이안-5화 (5/57)

제5장 아크포민 공작, 혁마소의 제자 되다

그렇듯 라이안이 자신의 몸을 추스르고 있을 동안 제루이판 왕국의 카크크론 공작가 저택에서는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문제는 역시나 천마 혁마소였다. 갈천혁과 혁마소가 담소를 나누고 있는 동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신화경에 다다른 그들은 누군가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

똑똑똑!

“들어오시게.”

그러자 갈천혁의 시중을 들던 시녀가 들어오더니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말했다.

“카크카론 공작부인께서 아크포민 공작각하의 손님들과 같이 저녁식사를 하고자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안 그래도 시장기가 돌던 참이었다.

“알겠네.”

그들은 시녀를 따라 1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3층으로 이루어진 저택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또한 이곳 중앙 저택뿐만 아니라 주위에 몇 개의 건물들이 더 있는 것도 그들은 보았었다.

주택의 크기가 어마어마한 만큼 방도 무척이나 많았는데, 어림잡아 약 50여 개는 되는 듯했다.

아크포민 공작의 저택은 중앙 저택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물 하나, 왼쪽에 두 개의 건물이 더 있었다.

오른쪽 건물은 대부분 시녀들과 노예들이 머무는 곳이었고 왼쪽에 있는 두 개의 건물은 은빛기사단의 숙소와 무기고로 사용되고 있었다. 저택에 변고가 있을 시, 기사들이 빠르게 저택을 보호할 수 있도록 건물은 적당한 위치에 새워져 있었다.

혁마소는 식당으로 이동하던 중, 창문으로 보이는 연무장에서 있는 기사들을 보았다.

“쯧쯧쯧, 애들이 검술은 안 익히고 칼 가지고 장난을 하고 있구먼.”

“그래? 어디…….”

혁마소의 말에 갈천역 역시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것이 저들의 수련인 듯 보이는군.”

“으잉? 저렇게 단순하게 수련을 한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는 장난치는 것 같은데?”

“허허허, 두고 보면 알겠지.”

하얀 수염을 더듬으며 시녀를 따라가는 갈천혁이었고 혁마소는 다시 한 번 창문을 바라보다 그 뒤를 뒤따라갔다.

식당에 다 왔는지 한 문 앞에서 시녀가 멈춰 서며 말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수고했네.”

문 앞에서 시녀가 약간 큰 소리로 문에 대고 말했다.

“아크포민 공작각하의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모시도록 하여라.”

안에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시녀가 문을 열었다.

그것에는 상당히 긴 식탁이 있었고 한쪽에 중년의 여성과 날카롭게 생긴 소녀가 앉아 있다가 살며시 일어났다.

그것을 본 두 사람이 식탁 앞으로 다가갔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어험, 그럼 실례하겠소.”

그들은 자리에 앉아 서로를 살폈다. 그러다 카크카론 공작부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공작각하의 손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뭐, 그냥 초대에 응했을 뿐이라오.”

“우선 시장하실 텐데 식사부터 하시지요.”

“어험, 그럼…….”

그렇게 말하고 식사를 하려고 했으나 두 사람은 잠시 머뭇거렸다. 젓가락이 없었던 것이다. 젓가락 대신 앞에 8개의 칼과 포크가 있었는데 이것으로 어떻게 먹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것을 본 아크포민 공작의 딸인 마리안이 얼굴을 찡그렸다.

“어머니, 전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손님 앞에서 이게 무슨 무례냐!”

“손님이라니요, 이들이 하는 것 좀 보세요. 딱 봐도 평민인 것이 보이잖아요. 우리 카크카론 공작가가 언제부터 저 따위 평민들과 같이 식사를 했지요? 그리고 저들이 들어오고부터 자꾸 이상한 냄새도 난단 말이에요.”

“얘! 마리안, 아버지의 손님들에게 말이 지나치지 않느냐. 어서 사과드리거라.”

“사과라니요, 어머니.”

그것을 들은 혁마소가 얼굴을 팍 찡그리며 말했다.

“아크포민이라는 녀석이 자식농사는 엉망으로 지었군. 에잉!”

그 말을 들은 공작부인도 화들짝 놀랐다. 마리안이 역시 놀라 소리쳤다.

“감히 나의 아버지를 모욕하는 것이냐! 어디 평민 주제에 감히 공작각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린단 말이냐!”

“건방진 계집아이야, 소화 안 된다. 그만 앉거라.”

“이…이… 밖에 누구 없느냐! 당장 이들을 끌어내어 목을 쳐라!”

마리안의 말에 밖에서 경비를 서던 병사 5명이 급히 들어왔고 공작부인이 당황하여 머뭇거리고 있을 때 마리안이 소리쳤다.

“당장 저들을 끌고 나가 목을 쳐랏!”

“넵!”

“넵!”

병사들은 마리안의 명령으로 갈천혁과 혁마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세 명이 그들에게 창을 들이댔고 두 명이 밧줄로 그들을 묶으려고 했다.

하지만 갈천혁은 못 말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혁마소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흔들며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포크를 잡고 음식을 먹어댔다.

살며시 일어난 혁마소는 냉기를 풀풀 흘리며 병사들을 보았다.

“크그그극, 완전 창 든 농사꾼이나 다름없군.”

그 누가 감히 천마를 밧줄로 묶으려 든단 말인가. 천잠사로 천마 혁마소를 묶는다 해도 그것을 끊고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먹을 인간이 혁마소였다.

병사들을 쳐다보며 그가 살며시 손을 흔든다고 생각하는 순간 병사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엇!”

“헉!”

“윽!”

그가 순식간에 지풍을 날려 병사들의 혈도를 점한 것이었다. 이것을 모르는 마리안을 일을 행하지 않는 병사들을 닦달했다.

“지금 무엇 하는 것이냐! 저 건방진 평민을 어서 끌어내지 못하겠느냐!”

“마리안, 그만 하거라. 아버지가 아시고 화라도 내시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공작부인도 평민이 공작이라는 지위에 있는 아크포민 공작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 것은 잘못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죽이는 것은 너무 과한 처사라 생각해 마리안을 말리고 있었다.

그때 혁마소가 유유히 병사들을 지나쳐 마리안에게 다가갔다. 그에 놀란 마리안이 병사들을 보며 소리쳤다.

“네 이놈들! 저자를 당장 잡지 않고 뭐 하고 있는 것이냐!”

혁마소가 가까이 다가오자 잠시 겁을 먹은 마리안이었다. 천마가 다가가던 것을 멈추고는 마리안을 바라보았다.

“감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올챙이가 나 천마에게 그 따위 말을 하다니!”

한순간의 위압감에 마리안이 몸을 떨었다.

“네 이놈! 감히 평민이…….”

“갈!”

마리안이 또다시 뭐라고 말하려 하자 혁마소가 말을 잘랐다.

“너는 이 어르신에게 공부를 배워야 할 것 같구나. 크그그극… 환상천마령!”

“헉!”

순간 혁마소의 눈에서 붉은빛이 번뜩였다. 그 순간 마리안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뒤로 넘어졌다. 그녀는 혁마소가 시전한 환상천마령으로 인해 엄청난 공포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까아악! 살려줘, 엄마! 아빠! 까아악!”

“얘야! 마리안아! 왜 그러느냐!”

눈앞의 환상으로 인해 공포에 질린 듯 비명을 지르는 마리안을 본 공작부인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마리안의 몸을 흔들었다.

마리안이 보고 있는 환상은 이러했다.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갑자기 식당의 문을 부수고 들어와 병사들을 씹어 먹고 있었다. 입에는 이미 몸의 반이 잘린 병사가 물려 있었으며 양손으로는 다른 한 병사의 몸을 두 손으로 찢고 있었다. 그러고 난 후 두 손에 있던 것을 입으로 집어넣고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환상에 눈이 풀리며 오줌까지 지리는 마리안이었다. 그것을 본 혁마소가 환상천마령을 거두고선 괴이하게 웃으며 마리안에게 말했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보다 너의 오줌 냄새가 더 지독하구나. 에잉, 더러운 것. 크그그극.”

그때 어느 정도 음식을 먹은 갈천혁이 일어나 혁마소에게 다가왔다.

“자네는 어찌 밥 먹는 곳에서 그런단 말인가. 쯧쯧쯧.”

“아니, 이 늙은이가 혼자 다 먹고서는 와서 한다는 말이!”

“어흠, 여기 있기는 틀린 듯하니 그만 나가세나.”

“이런 찢어 죽일 놈의 늙은이 같으니라고.”

그렇게 갈천혁이 마리안을 살짝 보고는 문을 나서려고 했고 그 뒤를 혁마소가 욕을 하며 뒤따랐다. 그런데 그 순간 식당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급하게 달려온 아크포민 공작이었다.

“아니 어르신들, 어디를 가시는지요?”

“이보게, 자네! 자식농사 똑바로 짓게나! 어흠!”

“아, 아니, 어르신!”

그렇게 지나치는 혁마소와 갈천혁을 불러 세우려 했지만 그냥 지나쳐 가는 그들이었다. 원인을 모르는 아크포민 공작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오줌을 지린 채 공작부인의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마리안이 보였다.

나가면서 혁마소가 말하던 것이 순간 생각난 공작은 자신의 딸을 이렇게 만든 것이 그들임을 알고 분노했다. 그러나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님을 알고는 잠시 진정한 다음 공작부인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아니, 부인! 이게 어찌 된 일이오!”

“그것이…….”

상세한 공작부인의 설명을 들은 아크포민 공작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딸이 존귀한 분들에게 크나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이 어리석은 것! 어찌 그런 행동을 했더란 말이냐!”

“다, 당신…….”

“아, 아버지… 흐흐흑.”

마리안은 아버지가 그들을 혼내줄 것이라고 믿고 그가 들어서자 더욱더 서럽게 울었다. 하지만 상황을 듣고 난 후 공작은 오히려 자신에게 화를 냈다.

“그분들을 어서 다시 모시고 와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공작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카크카론 공작가의 저택에서 나온 혁마소와 갈천혁이 저택에서 완전히 나가고자 대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자네, 저 녀석이 아깝겠구만.”

“아깝긴 하지만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이곳에 더 이상 있을 수는 없네.”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이러한 말을 하면서 대문에 가까워지려는 순간 뒤쫓아 온 아크포민 공작이 재빨리 갈천혁과 혁마소의 앞을 막았다.

“아니, 어르신들 이대로 가시면 어찌합니까?”

“그럼 너는 우리가 이런 대접을 받고 이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느냐!”

시끄러워진 공작가 저택 안에서 기사들과 병사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아크포민 공작이 두 노인에게 공손히 대하며 사정을 하고 있는 것에 무척이나 놀라며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 딸아이가 미처 어르신들을 못 알아보고 실수를 했습니다. 못난 제가 대신 사과드릴 터이니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어르신.”

“됐다, 이놈! 우린 떠날 것이니 그만 비키거라!”

아크포민 공작에게 화를 내며 나가려는 혁마소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 아크포민 공작이 결심을 굳혔다.

“부디 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면서 두 노인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헉!”

“고, 공작님이!”

“이럴 수가…….”

저택에 있는 모든 기사와 병사들은 놀라서 기절할 듯했다. 국왕이 아닌 그 어떤 자가 공작이라는 신분을 무릎 꿇게 한단 말인가.

뒤따라온 마리안과 공작부인 역시도 그것을 보고 순간 멍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마리안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의 부친이 다른 사람에게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져 이내 쓰러져버렸다.

혁마소는 눈앞에 있는 아크포민 공작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비키지 않는다면 돌아서 가도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크포민 공작의 딸은 버릇없고 하는 짓이 괘씸했지만 눈앞에 있는 아크포민 공작이 하는 짓은 너무도 기특했기 때문이다.

“좋다. 그렇다면 네가 나의 일초를 받아낸다면 내 모든 화를 풀겠다.”

“일초를 말입니까?”

“그렇다. 하겠느냐?”

“하, 하겠습니다. 그런 것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어흠! 그건 두고 볼 일이다만… 지금 이곳에서 하겠느냐?”

“아닙니다. 제가 적당한 자리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지켜본 카크카론 공작가의 식솔들이 모두 은빛기사단의 연무장으로 이동했다.

아크포민 공작의 안내로 연무장에 들어선 혁마소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너무도 순식간에 지어진 미소는 사라지고 아크포민 공작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펼칠 초식은 ‘멸해’라는 것이다.”

“최대한 막아보겠습니다!”

아크포민 공작이 어떤 공격이 오더라도 막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소리쳐 말했다.

은빛기사단의 단원들은 눈앞의 노인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으나 아크포민 공작이 누구란 말인가. 얼마 전 소드 마스터 초급의 벽을 허물고 검의 크기만큼이나 되는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그런 그가 지금 초라한 행색의 붉은 옷을 입고 있는 노인 앞에서 공격을 막아보겠다며 서 있었다.

“너는 막지 못할 것이다.”

“막아 보이겠습니다. 핫!”

부우우웅!

그는 마나를 있는 힘껏 모았다. 그러자 아크포민 공작이 들고 있는 검만 한 길이의 푸른 검이 검 끝에서 생겨났다.

“쯧쯧쯧… 기를 그렇게 사용하면 엄청난 낭비인 것을… 받아보아라! 멸해!”

고오오오오오!

구구구구구구!

혁마소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서 ‘멸해’라고 소리치자 연무장 전체가 흔들리며 땅이 울렸다.

그것을 본 아크포민 공작은 엄청난 공격이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눈앞의 상황을 보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헉! 어, 어마하다… 어찌하여 이곳에 해, 해일이…….”

높이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해일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무엇이든지 쓸어버릴 듯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해일에 어찌해야 할지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너무도 작았다. 자기 자신이 너무도 작다고 생각하는 아크포민 공작이었다.

‘이대로 죽는가. 한평생 검에 미쳐 살았거늘… 아, 아크포민… 넌 이토록 무능한 자였단 말인가.’

이러한 생각을 하며 체념하고 있던 순간 거짓말처럼 해일이 사라졌다.

“헛?”

“어찌하여 그리 체념하고 있단 말이냐! 그 자신감은 어디로 갔단 말이냐!”

그런데 아크포민 공작이 더욱더 놀란 것이 있었다. 아직도 혁마소의 검이 위로 올라간 상태에서 내려오지 않은 것이다.

아크포민 공작을 쳐다보며 혁마소가 검을 내렸다. 그리고 아크포민 공작에게 다가갔다.

“막을 수 있었느냐?”

“막을 수 없었습니다.”

“왜 막지 못했느냐?”

“그것은…….”

“무엇을 보았느냐?”

“해일을 보았습니다. 그 높이가 보이지 않을 높이의 해일을…….”

“클클클, 그래도 재능이 있어 보이는구나.”

“네?”

“저들을 보아라.”

혁마소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은빛기사단과 식솔이 있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기사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지?”

“글쎄… 그냥 연무장이 조금 흔들리고 땅이 울린 것밖에 모르겠는데?”

“그런데 왜 공작님이 검을 내렸지?”

“그러게 말이네.”

기사들의 들은 아크포민 공작은 어이가 없었다. 어찌하여 그리도 큰 해일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

그 크기가 자신의 저택조차도 한순간에 쓸어버릴 만큼 크기였다. 그런데 저들은 그것을 못 본 듯 말을 하고 있었다.

아크포민 공작의 표정을 보고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한 듯 말하는 혁마소였다.

“네가 본 것은 저들이 보지 못했다.”

“네? 제가 본 것을 저들이 보지 못했다니요?”

“네가 본 것은 나의 기세였다.”

“기세요? 기세만으로 그런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네가 본 것은 하나의 무공이자 가능성이다.”

“가능성…….”

“크게 보아라. 그리고 다시 느끼며 상상하여라. 네가 더 크고 거대한 것을 느끼려 할수록 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흠…….”

공작은 갑자기 신음성을 내면서 그 자리에 살며시 앉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조금 전에 느낀 해일을 또다시 상상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기사들과 같은 장소에 있던 갈천혁이 아크포민 공작을 보고는 흐뭇해했다. 그의 눈에는 보였던 것이다. 아크포민 공작의 기운이 변해가는 것이.

그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듯 혁마소가 혜광심어로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소리쳐 쫓아 보냈고 아크포민 공작은 그렇게 꼬박 하루를 앉아 있었다.

걱정이 되어 공작부인이 그를 찾아왔지만 갈천혁이 걱정하지 말라면서 그녀를 설득하고는 되돌려 보냈다.

다음 날, 점심때가 돼서야 공작은 눈을 떴다. 혁마소는 그가 눈을 뜰 때까지 처음 있던 장소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었다.

서서히 일어나는 아크포민 공작을 보며 혁마소가 물었다.

“그래, 느낀 것은 많이 있느냐?”

“어르신의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기특한 녀석이구나.”

아크포민 공작은 너무도 큰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실제 모든 사람들이 아크포민 공작이 소드 마스터 중급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아직 그 벽을 넘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넘쳐나는 마나로 그와 비슷한 경지로 만들어낼 수 있기만 할 뿐, 그 시간이 길게 지속될 수는 없었다.

그런데 혁마소로 인한 깨달음으로 완숙한 소드 마스터 중급에 들어섰으며 중급의 중간 이상의 경지를 바라볼 수 있었으니 그 감회가 엄청났다. 그에 감사함을 느끼며 또다시 혁마소에게 무릎을 꿇었다.

“너무도 큰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부족하오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허허허, 나를 사부로 모실 수 있겠느냐?”

“성심을 다하여 모시겠습니다!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좋다, 너의 기개가 마음에 드는구나. 그렇다면 나에게 스승의 대한 예로 아홉 번 절하여라.”

혁마소가 제자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며 아크포민 공작에게 구배지례를 시켰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아크포민 공작이었으나 스승과 제자가 될 수 있는 절차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며 그에 따라 혁마소에게 아홉 번의 절을 했다.

그렇게 절을 다 한 그는 주위에 나와 있던 은빛기사단에게 소리쳐 말했다.

“나 아크포민 공작은 내 옆에 계신 이분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했다! 너희는 앞으로 이분의 말을 내가 말하는 것과 똑같이 생각할 것이며 추호의 망설임 없이도 이분을 모셔야 한다. 알겠느냐!”

“충으로 모시겠습니다!”

“충으로 모시겠습니다!”

“와~! 공작각하 만세!”

“공작각하 스승님 만세!”

이렇게 기사들의 기쁜 환호성이 아크포민 공작가 전체를 울려 퍼졌다.

아크포민 공작은 혁마소와 갈천혁을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스승님,”

“어험, 그래.”

“저기… 스승님의 친구 분께서는 성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제자가 생겼다고 웃으며 소파에 앉은 혁마소를 보고 갈천혁은 약이 올랐다. 그러나 그에게도 생각은 있었다.

“허허허, 그냥 갈 할아버지라고 부르거라.”

“네에?”

“무슨 수작이냐, 노망난 늙은이야!”

혁마소가 낌새가 이상하여 갈천혁을 노려보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아크포민 공작만 바라보았다.

“아니, 왜 그러느냐?”

“그것이 아니오라… 제 나이도 나이인지라…….”

“네 나이가 올해 몇이냐?”

“제 나이 올해 62세가 되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 문제가 된다고 하느냐? 내 나이가 이미 너의 몇 배가 넘어섰거늘. 어험!”

“헉! 몇 배라 하심은?”

“200이라는 숫자는 넘겼으니 그리 알고 갈 할아버지라고 부르거라.”

“아, 알겠습니다, 가, 갈 할아버님.”

“허허허… 좋구나, 좋아!”

그것을 본 혁마소가 냉소를 날렸다.

“좋긴 뭐가 좋단 말이냐! 그럼 우리 정운이는 어떻게 하고!”

“그거야 당연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 형을 하면 될 것이 아닌가?”

“치사한 늙은이 같으니라구. 어째 가만히 있는다 싶었더니 이런 남의 제자를 날로 먹으려고 하는군.”

혁마소가 냉소를 날렸으나 갈천혁은 더 짙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아크포민 공작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운이 실제 나이는 150을 넘었으나 외형은 19살 소년이라는 것을.

그렇게 한순간에 나이 많은 동생이 생겨버린 라이안이었으나 그것을 알 길은 없었다.

그것을 듣고 있던 아크포민 공작이 물어왔다.

“찾으시는 분이 계신지요?”

갈천혁과 혁마소가 서로를 한 번씩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손자 녀석을 찾기 위함이다. 오는 도중 불가피한 일이 생겨서 헤어지게 되었는데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구나.”

“흠…….”

잠시 고민하던 아크포민 공작이 생각을 마치고 말했다.

“국왕전하께 아뢰어 국가정보기관을 사용할 수 있도록 윤허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찾으시는 분의 인상착의를 말씀해주시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에 혁마소의 얼굴에 빛이 감돌았다.

“그것이 정말이냐?”

“스승님의 바람을 어찌 제자가 그것을 가만 보고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허허. 고맙구나, 고마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