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다음 날 아침, 정운의 집 일대에 진도 5도가 넘는 지진이 일어났다. 하지만 다행히 주위의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다.
지진은 챠둠의 기체가 정운의 집을 붕괴시키고 날아오름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었다. 전국은 지구에 외계인이 숨어 있다가 탈출한 것이라는 뉴스와 신문 보도로 떠들썩했다.
한편 하늘에서 순식간에 워프로 이동한 챠둠은 문제의 블랙홀 앞에 와 있었다.
“저것이군.”
“괜찮을지 모르겠구나.”
“흥! 갈가야, 무서우냐?”
“윽! 누, 누가 무섭다고 그러느냐, 이놈!”
역시나 그 순간에도 싸우는 천마와 무림천황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로는 싸우고 있어도 그들의 시선은 저 멀리 보이는 어두운 블랙홀의 모습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또다시 챠둠의 홀로그램이 나타나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선체전체에 초강화 배리어를 가동시켜 블랙홀로 진입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모두의 안전을 위해 무중력상태로 선내를 변형시키겠습니다.”
그러자 사람들 모두의 신형이 떠올랐고 전부 수영하듯 움직이며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한 챠둠이 진입을 알렸다.
“홀 진입!”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에 혁마소와 갈천혁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서서히 다가와 입을 벌리고 있는 블랙홀에 긴장을 했던 것이다.
“어흠!”
“어흠!”
서로 반대로 고개를 돌리며 자신은 전혀 긴장 안 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한 행동이 웃긴 정운이었다.
“풋!”
한 시대를 호령했던 절대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조차 이런 모험에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서히 빙빙 돌고 있는 블랙홀에 다가서자 전함은 한순간 블랙홀로 빠져들었다.
스팟!
“크윽!”
“으윽!”
순간 전함 내에 엄청난 압력이 생겨났다. 신화경에 이른 사람들조차 고통을 호소할 정도의 압력이라면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최대한 호신강기를 유지해야 할 것 같다. 모두 호신강기를 운용하도록!”
혁마소가 소리치자 세 명의 몸에서 금빛의 막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세 사람의 몸에서 조금씩 금빛이 흘러나와 이미화의 몸도 감쌌다.
시간이 지나면서 압력은 조금씩 줄어들기는 했으나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 챠둠 또한 갈리스 행성이 있던 곳에서 이곳으로 올 때 일어났던 상황과는 너무도 다른지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대속도로 진입하겠습니다. 모두 단단히 각오하십시오.”
쿠아앙!
전함 뒤에서 원래 있던 불꽃의 다섯 배가량의 불꽃이 나타났다. 처음보다 무서운 속도로 어둠속을 헤쳐 나가는 전함이었다.
“크윽!”
“크억,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단 말인가… 윽!”
벌써 하루의 시간이 지난 듯했다. 바닥나지 않을 것 같은 내공은 벌써 절반이나 날아갔다. 그것은 엄청난 압력을 견뎌내고 있단 증거였다.
콰광!
“울컥!”
“울컥!”
네 사람 모두가 엄청난 충격에 입에서 울컥 피를 쏟아냈다.
“크윽! 무슨 일인가, 챠둠!”
“엄청난 크기의 운석이 선체에 박혔습니다. 배리어조차 찢고 들어온지라 운석을 빼내지 않는 이상 재생, 복구가 불가능할 듯합니다.”
그때였다. 선체가 갑자기 방향을 잃고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뜻하는 곳에 가지도 못하고 영원히 블랙홀 안에서 미아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아니, 지금 현 상황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선체 내 구멍으로 인해 산소가 급격히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선체의 산소가 바닥날 것입니다!”
정운은 생각했다. 저 운석을 빼어내지 않는다면 지금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이다.
“나 때문에…….”
그 순간 정운이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험합니다!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주인님!”
“저 운석부터 빼내야 재생될 것 아냐!”
“안 된다, 정운아!”
“그래, 너무 위험해!”
“치잇!”
정운은 이것이 모두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 하나만 죽어지냈으면 괜찮을 것을, 자신으로 인해 모두가 죽을 위험에 처해 있었다.
중앙선실을 빠져나와 뒤쫓아 나오던 할아버지들을 본 정운은 챠둠에게 말했다.
“챠둠! 명령이다. 중앙선실의 문을 닫도록!”
“크윽! 알겠습니다.”
위이이잉!
철컥!
“안 된다, 이놈!”
“챠둠! 어서 이 문을 열지 못하겠느냐!”
닫힌 문의 창문으로 정운의 얼굴만이 보였다. 문을 열어보고자 혁마소가 권강을 일으켜 주먹으로 문을 쳐보았으나 역시나 아만다리움 금속은 흠집만 살짝 날 뿐이었다.
“할아버지들… 죄송해요…….”
“아니다, 네가 죄송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무모한 짓 하지 말고 어서 이 문을 열거라. 어서.”
갈철혁이 안타까운 얼굴로 타이르듯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운석만 빼내고 들어올 것이니까요.”
“이, 이런! 정운아 그것은 우리가 해도 되니 어서 이문을 열어보아라, 제발!”
“안 돼요, 갈 할아버지. 이건 제가 해야 돼요.”
그 말을 끝으로 멀어지는 정운이었다.
“어허… 어찌할꼬, 이 일을… 내가 이토록 쓸모없는 늙은이였단 말인가.”
“이런 염병할!”
갈천혁의 한탄과 혁마소의 욕지기가 중앙선실을 울려 퍼졌고 엄마인 이미화의 얼굴엔 눈물만이 흘렀다.
그동안 운석이 박힌 가장 가까운 출입구로 이동한 정운은 챠둠에게 강화로프를 준비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것을 허리에 장착한 후 챠둠에게 명령했다.
“이제 문을 열어, 챠둠.”
“위험합니다.”
“명령이다.”
“주인님, 제발…….”
“반복하지 않는다! 명령이다!”
“네… 알겠습니다.”
지이이이잉!
철컥!
쑤아아아아아!
문이 열리자 어마어마한 압력이 정운을 끌어당겼다. 정운은 온몸의 내공을 끌어올려 저항을 하며 서서히 전함 밖으로 나갔고, 정운이 나가자 선체의 문이 닫혔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약 30여 미터 앞에 운석으로 보이는 집채만 한 바위가 보였다.
“끄으윽!”
그는 압력을 이겨내며 틈새와 틈새를 잡고서 운석으로 이동했다.
‘도대체 무엇이기에 배리어까지 찢고 아만다리움 금속을 이 지경까지 만든단 말인가… 그리고 재생조차 막고 있으니…….’
온몸의 모공을 열어 단전 전체를 개방시킨 그는 온힘을 다해 운석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몸으로 느끼는 블랙홀의 압력에 큰 힘을 낼 수는 없었다.
끼기긱!
끼긱!
조금씩 빠져나오는 운석을 보고 정운은 힘겹지만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떠한 빛이 선체 앞쪽에서 날아와 운석에 부딪쳤고 그 운석은 빛에 의해 절반이나 칼로 자른 듯 반듯하게 잘려버리고 말았다.
‘이럴 수가! 아만다리움조차 찢은 운석이 이토록 쉽게 잘리다니… 생각보다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군, 이곳은…….’
식은땀이 안 흐를 수가 없었다. 벌써 등줄기에서 두세 번이나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운석을 자르고 지나간 빛줄기가 전함에 맞았다면 모두가 이 세상에서 하직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것이다.
“빠져라! 이 빌어먹을 운석아!”
있는 힘껏 마지막 발악을 해가며 운석을 움직이자 가벼워진 운석은 마침내 손쉽게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운석이 빠져나오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정운의 발조차 전함에서 떨어져버린 것이다. 안에서 그것을 보고 있던 할아버지들과 챠둠은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강화로프가 이어져 있어서 그는 무사할 수 있었고 다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챠둠은 빠른 속도로 강화로프를 끌어당겼다.
정운조차 자신의 몸이 전함에서 떨어지자 당황했지만 이내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로프로 인해 안심할 수 있었다.
번쩍!
“저 빛은!”
순간 하나의 빛이 정운과 전함 사이를 지나갔다. 운석을 잘라냈던 그 빛줄기와 비슷한 것이 강화로프를 끊어버린 것이다.
“아, 안 돼!”
“안 돼!”
“정운아!”
서서히 정운과 전함이 멀어져갔고 그 순간 정운은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기 전 모두의 부름을 들은 듯한 그는 살며시 웃음 지을 수 있었다.
‘다행이야… 제발 모두 살 수 있기를…….”
그렇게 순식간에 정운의 신형은 멀어지며 사라져갔다.
그런데… 그러한 위험한 상황에서 정운의 몸을 통해 하나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곧 회색의 사람 형태로 변했으나 그것의 모습은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나의 인연자여… 그대 또한 나처럼 혼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정운은 정신을 잃은 가운데 꿈을 꾸듯 그러한 소리를 들었다. 그는 정신 속으로 파고드는 소리를 들으며 물었다.
‘누구……?’
정운은 어둡고 캄캄한 정신 속에서 홀로 있었다. 그런데 곧 그의 앞으로 커다란 하나의 형체가 나타났다.
‘헉! 누, 누구시죠?’
정운이 놀라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그 존재는 서서히 정운을 바라보며 다가왔다. 정운은 그것을 보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그것조차 잘되지 않았다.
‘두려워 말라, 인연자여… 난 곧 너이고 너 또한 나이거늘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네가 위험한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살아생전에 나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을…….’
정운은 눈앞으로 다가온 존재에 당황했으나 이상하게도 그 존재에게서 친숙함이 느껴졌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이곳은 어디죠?’
‘나는 혼돈… 태초의 혼돈이다. 그리고 이곳은 너의 정신 속이다.’
‘혼돈…….’
앞에 있는 존재가 말하는 말 중 혼돈이라는 말이 끌리는 정운이었다.
혼돈이란 무엇인가 뒤죽박죽 마구 뒤섞여 있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을 뜻했다. 정운 또한 마음속의 혼돈 때문에 이 위험한 곳으로 오지 않았는가.
‘제가 죽은 것인가요?’
정운은 자신이 죽어서 그와 대화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다, 넌 죽지 않았다. 하지만 네가 죽는다면 나의 존재도 사라질 터, 어쩔 수 없이 내가 너의 앞에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네가 들어온 이곳은 차원의 틈이다.’
‘차원의 틈이라…….’
정운은 챠둠으로부터 다른 차원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떠난 길이었다. 이것으로 챠둠의 이론이 확실해진 것이다.
‘그렇다. 차원의 틈이자 차원의 함정이 바로 이곳이다.’
‘함정이라고요?’
이곳이 함정이라는 소리에 정운은 눈이 커지며 놀랐다.
‘그렇다. 간혹 신과도 같은 능력을 갖게 되는 존재들이 있고는 하지. 그러한 존재들이 함부로 차원을 넘나들 수 없도록 만든 곳이 이곳이다.’
‘그렇다면 가끔씩 날아드는 그 빛이 차원이동을 하는 존재들을 막고자 하는 것 중 하나인가요?’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계속 일어날 일들에 비하면 너무도 작은 것이다.’
정운은 그 말에 할아버지들과 엄마가 떠올렸다. 그들이 지금 크나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혼돈’이라고 칭하는 존재가 정운의 생각을 읽은 듯 정운에게 말했다.
‘그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은 무사하다. 하지만 계속 이곳에 있게 되면 그들은 차원의 먼지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면 되는 것입니까?’
‘이것도 너와 내가 이어져 있어 생긴 인연… 내가 도와주겠다. 너를 태초에 가장 먼저 생긴 차원으로 보내주겠다. 아마도 그곳은 네가 본 인간이 있는 곳일 것이다.’
‘잠깐만요! 그럼 할아버지들과 엄마는요?’
‘그들 또한 너와 같은 곳으로 보내주겠다. 하지만 지금 너와 내가 만난 잠깐의 기억은 내가 가져가겠다. 동의하는가?’
정운에게는 생각할 것조차 없는 것이었다. 잠깐의 필요 없는 기억이 사라지는 것으로 가족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지워도 된다고 생각했다.
‘좋습니다. 저의 가족들을 구해주십시오.’
‘좋다. 언제 다시 만날지는 모르지만… 네가 다시 나를 보게 될 때 그 기억들은 돌아올 것이다.’
혼돈이라는 존재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운은 자신의 몸이 어디론가 빨려드는 느낌을 받으며 어지러움을 느꼈다. 회색의 존재와 교감이 사라지면서 또다시 정신을 잃은 것이다.
그 순간 아까 전의 빛이 정운의 몸으로 날아왔고 그와 동시에 생겨난 오색 빛의 공간 속으로 정운은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날아온 빛은 정운을 그냥 지나쳐 갔다.
같은 시간, 겨우 파손된 부분을 재생한 챠둠의 앞에도 오색으로 된 공간이 생겨났다. 챠둠은 갑자기 생겨난 공간에 위험을 느끼고 회피하려 했으나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곳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 * *
어둠의 숲 정상. 하늘에 닿을 듯한 나무들과 풀들이 즐비한 곳.
이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곳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검은 머리에 특이한 옷차림을 한 소년이 쓰러져 있었다. 아니, 그는 소년이라 하기에는 조금 나이가 많고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린 듯 보이는 사람이었다.
너무도 높고 울창한 나무들 틈 사이로 들어오는 아주 적은 양의 햇빛에 의해,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누워 있는 그의 눈 주의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신음을 뱉으며 살며시 눈을 떴다.
“크윽!”
누워 있는 상태에서 상체를 일으키는 것조차도 무척이나 힘들어 보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정운이었다.
블랙홀에서 겪은 일로 인해 큰 내상과 부분기억상실증에 걸린 정운.
“여긴 어디지?”
정운이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뭔가 아무렇지도 않으면서도 이상했던 것이다. 아… 말!
“내가 왜 이런 말을 사용하고 있지? 정운아, 정운아, 생각해보자꾸나. 내가 이러한 언어를 알았던가? 불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세계 모든 언어를 알고 있는 나다. 그런데 이런 언어는…….”
정운 자신이 절대 배워본 적이 없는 언어였다. 챠둠이 언제 이런 언어까지 나한테 주입했었던가? 그것은 아니었다. 아이큐로 따지면 200이 넘어가는 정운이 그런 사소한 것조차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는 아마도 차원의 경계를 넘어오면서 생긴 변화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챠둠은 어디 있는 거지? 또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뭔가 이상했다. 생각을 더듬어보자 머리가 아파왔다. 정운은 자신이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할아버지들도 자신을 이렇게 숲 중간에 놔두고 두고 볼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상함을 느낀 그는 주위에 대고 소리쳤다.
“챠둠! 챠둠~ 치둠! 피돔! 야이! 콘돔아!”
하지만 그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챠둠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했으니 챠둠이 근처에 있다면 가만있지 않을 텐데…….
정운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았다.
“헉! 내, 내공이 없다!”
어쩐지 몸을 움직일 때 너무 힘이 들어 이상하다고 생각는데 그에게 내공이 없었던 것이다.
정운은 큰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재의 상태는 무방비 상태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허둥대던 것을 멈추고 급히 길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아무리 걷고 걸어도 다 똑같은 풍경이었다. 그리고 나무들은 뭐가 이리도 크단 말인가.
“크윽!”
그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혈맥이 뒤엉킨 듯 걸을수록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왔고 눈앞이 희미해졌으며 숨이 가빴다.
잠시 몸을 숙여 무릎에 손을 얹은 그는 황당함을 느꼈다. 언제 이렇게 숨이 가빠왔던 적이 있었던가… 전혀 없었다.
그는 이미 스파르타 교육과 어마어마한 영약으로 어린 나이에 신화경에 들어섰다. 물론 아기였을 때부터 할아버지들의 노력으로 전혀 탁기가 없는 신체를 유지하며 무공을 익힌 것, 즉 벌모세수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그렇기에 정운은 여태껏 힘들이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제길, 도대체 어디가 어디야……?”
다시 천천히 걸어 내려가고 있는 정운의 눈에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옷을 입은 듯한 물체가 움직인 것이다.
그것을 보고 사람이라고 생각한 정운은 반가운 마음에 소리치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이보시오! 잠시만 기다리시오!”
“취익?”
“취익?”
순간 그 물체가 정운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이상한 소리를 냈고 정운이 의문을 가지며 그 말을 따라했다.
정운이 다가서 정체불명의 물체를 살펴보니 분명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바로 건장한 성인 덩치에 돼지머리를 가진 짐승이었던 것이다.
“헉! 돼지가 걸어 다닌다!”
“취익! 돼지?”
“헉! 말하는 돼지다!”
기분 나쁜 표정으로 정운을 째려보는 그것은 바로 오크였다. 오크는 갑자기 손에든 칼을 들며 소리쳤다.
“취익! 나 말하는 돼지 아니다! 취익! 위대한 큰머리 부족의 취익! 위대한 오크전사다. 취익!”
“아아,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니 일단 그 칼부터 좀 내려놓자. 응?”
그러자 오크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눈 꼬리가 위로 올라가더니 쉬익 웃으며 정운을 바라보았다. 더 웃긴 건 그러면서 주르륵 입에서 무엇인가를 흘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침이었다.
“뭐, 뭐야? 너 왜 그래?”
“취익! 인간…….”
“응? 나 인간 맞아. 근데 그게 뭐?”
“취익! 으흐흐… 취익! 먹는다. 취익!”
“아, 그 취익 소리 좀 빼고 말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뭘 먹는다고?”
그때였다. 언제 다가왔는지 한발 다가선 오크가 갑자기 칼을 휘두를 태세를 취했다.
그에 놀란 정운이 본능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리려 했으나 내공은커녕 한 움큼의 핏물만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내 머리로 날아오는 칼…….
“이런 제길!”
뭔가 막을 것이 필요했다. 그의 몸은 현재 일반인만도 못한 둔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현재 정운이 입고 있는 옷은 챠둠이 특별 제작한 아만다리움으로 만든 옷이었는데, 그것에 정운 특유의 내공을 불어넣을 경우 강식장갑으로 온몸을 둘러싸는 갑옷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밤톨 만큼의 내공도 운기할 수 없었기에 위기 중의 위기였다.
휘익!
퍽!
“취익?”
“으응?”
다행히도 오크가 칼로 그의 머리를 내려치려는 위기의 순간 정운은 그것을 팔로 막았다. 때문에 싹둑 잘리는 소리가 아닌 퍽! 하는 소리가 나왔다.
“앗! 패왕철기신공!”
“취익? 그게 뭐냐, 취익?”
오크의 말에 정운은 갑자기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긴, 니가 죽는 소리지!”
퍼버버버벅!
“꾸에에에에엑!”
“죽어라, 이 돼지 놈아! 감히 사람을 죽이려고 들어!”
일다경이 지났을까… 정운은 가쁜 숨을 쉬며 앉아 있었다.
다행히 외가기공의 최고봉인 철무린의 패왕철기신공을 익혔었던 것이 이런 상황에서 빛을 냈다.
외공은 내가기공과는 다르게 특별히 운기하는 것이 아닌 피부 자체에 기가 집약되어 있는 것이어서 그것은 현재 정운의 몸 안의 상황과는 별개로 이루어졌다.
“아이고 힘 들어라. 헉헉 미치겠구나… 헉헉.”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한 몸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패왕철기신공 덕분에 목숨은 부지했지만… 어떻게 해서든 내공을 되찾아야만 한다.’
그는 다시 가부좌를 틀고선 혈기공을 운기했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났을까? 정운의 이마에 이미 땀이 맺히다가 흐르기 시작했다.
‘크윽! 너무 무리한 것인가? 피가 역류하고 있다. 게다가 곳곳이 따로따로 돌고 있어. 이러다간 혈맥이 터져 죽는다. 제길! 어떻게 해서든 몸 곳곳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피들을 한곳에 모아야 한다!”
지금 정운의 몸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 잠재우려고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잘되지 않았다.
혈맥이 뒤엉키고 엄청난 내상이 있어서 그런지 그것이 더욱 힘들었다. 혈기공을 운기하면 운기할수록 고통은 급격히 커졌다.
그 순간… 정운의 머릿속에 생각하는 하나의 구절이 있었다. 할아버지들이 항상 말해주던 것이었다.
-나와 자연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사람의 몸 또한 자연에서 온 것인데 어찌 별개라 느끼는가. 바람도 부는 방향이 있고 물 또한 흐르는 방향이 있듯 모든 기운은 하나의 흐름을 가지며 생겨나는 것. 유에서 무가 되고 무에서 유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야 무엇을 하겠는가.
그 말은 곧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억지로 변화를 가져오지 말라는 의미였다. 즉,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흘러가는 방향이 있듯 모든 기운의 순리대로 따르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떠오르자 정운은 혈기공을 운기하되 기운을 억지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금씩 고통이 해소되어갔다. 즉, 자신의 몸을 관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하루의 시간이 지나갔다. 하지만 정운은 여전히 자신의 몸을 관조하고만 있었다.
녹색 눈사람 같은 이상한 괴물 같은 것들이 이곳에 얼마나 많이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때문에 이곳이 어딘지 모르는 상황에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것은 힘! 바로 내공이었다.
그렇게 3일의 시간이 흐르자 마침내 몸에서 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물론 어떠한 움직임을 유도하는 것이 아닌 끝없는 관조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혈기공의 소주천은 다른 무공과는 달랐다. 혈액 하나하나를 몸의 세포 전체로 운기하는 것이 바로 혈기공이었다.
반응이 오기 시작하는 것은 심장에서부터였다. 꽉 조이는 듯한 힘으로 인해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또한 모공이 따끔거리면서 피부로 내공이 아주 미약하게 몰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으로 인해 힘들어하던 그 순간!
울컥! 푸헉!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갑자기 정운이 어마어마한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가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운은 많은 양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 * *
포르베 영지의 가장 큰 저택.
그곳에서 한 청년이 여러 사람들 앞에 서 있었다.
“팔튼, 몸 조심히 잘 다녀오거라.”
“알겠습니다, 어머니.”
팔튼이라 불리는 청년의 어머니는 그가 걱정스러운지 눈가에 근심이 가득했다. 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의 중년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어흠, 진정한 기사로 거듭나기 위한 수행임을 잊지 말거라. 네가 우리 히매인 왕국에서 알아주는 천재 검사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만 절대 그러한 것으로 우쭐해져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팔튼에게 말한 사람은 현재 히매인 왕국의 백작위를 가진 와이파른 백작이었고 포르베 영지의 영주였다.
포르베 가문은 몇 백 년 동안 히매인 왕국의 충신을 배출한 무가 가문이었으며 항상 익스퍼트급의 검사를 배출하여 정통 기사가문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 이곳 포르베 백작가의 장남인 팔튼 콘 포르베가 기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수행인 ‘예비기사의 여행’이라는 수행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중이었다.
백작가에 있던 모든 기사들과 식솔들이 나와 떠나는 팔튼을 배웅했다.
“도련님, 잘 다녀오십시오.”
“도련님! 빨리 돌아오셔서 저와 대련을 계속해주셔야 합니다!”
팔튼은 그렇게 배웅해주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말을 타고 가면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영지를 벗어날 수 있을 테지만 걸어서 하는 여행이었기에 서둘러 떠나야 이틀 뒤에 영지 끝에 있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때문에 이별의 인사는 짧아야 했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팔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팔튼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고 옆에 있던 와이파른 백작이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겨 살며시 안아주었다.
* * *
이미 날은 어두워졌지만 정운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미칼투 대륙의 3개의 달이 지고 다시 첫 번째 달이 떠오를 때였다.
“으…….”
그제야 조금씩 의식이 들어오는 정운이었다. 어찌 된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제길… 죽지는 않았군.”
여전히 내공을 운용할 수 없으니 그는 앞으로가 너무도 막막했다. 그렇게 정운이 낙심하고 있는 순간!
“하… 내공을 운용할 수… 있어?”
이상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뭔가가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조심스레 운기를 하여 몸을 탐색하자 어느 정도 내공을 운용할 수 있었다.
극히 미소량의 내공이라 생각되었지만 그것은 정운만의 착각일 뿐 검기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이었다. 원래가 너무도 방대한 내공을 가지고 있던 정운인지라 정운이 생각하기에 너무도 작은 것이라고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적긴 하지만 이게 어딘가. 앞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으니 말이야. 하지만… 혈기공을 운기하면 소용돌이치는 피는 어찌한다? 왜 이런 상태가 되는 것인지 실험하기에는 목숨이 위태롭고… 어제의 일은 정말 운이 좋았기에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어.”
혈기공을 운기할 때마다 엄청난 고통과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것에 정운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혈기공은 특별히 운기를 하지 않더라도 부족한 내공을 모공 하나하나가 빨아들인다는 장점이 있었다. 때문에 움직일 때도, 잘 때도, 그 어떠한 순간에도 저절로 운기가 되는 것이었다.
단지 정운이 아쉬워하는 것은 정말 위험할 때의 일이었다.
원체 적은 양의 내공인지라 다 쓰더라도 한 시간 정도면 자연히 차겠지만 급히 필요할 때는 고통을 감내하며 운기를 해야 했다. 저절로 차는 내공에 비해 혈기공을 운기하면 열 배의 빠른 속도로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숨을 쉬며 하늘을 보는 정운은 또 한 번 놀랐다.
“헉! 달이 세 개?!”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지구에 달이 세 개라니… 게다가 하나는 다른 것들보다 세 배나 크다!’
처음부터 이것저것 이상한 것들이 너무 많다고는 생각했다. 돼지머리를 한 괴물도 그렇고 너무도 큰 나무들… 처음 보는 것투성이였다.
그중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어제 만난 괴물이 인간이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이곳이 어떤 세상이건 자신과 같은 인간이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래, 우선 사람을 찾아보자.”
우선 운용될 수 있는 내공을 살펴본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유운유령신법의 경신법을 펼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핫!
“유후! 되는구나!”
정말 다행이었다. 많은 양의 내공을 운용할 수 없어서 평소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엄청난 속도로 산을 내려갈 수 있었다.
내려가는 도중 정운은 정말 많은 것들을 만났는데, 마치 신화 속에나 나오는 것들 같았다. 소머리를 하고 있는 사람 같은 것이 있질 않나, 얼굴이 헐크같이 생긴 덩치가 무려 5미터나 되는 괴물도 있었다.
나중에야 안 것이지만 그것은 미노타우르스와 오우거였다. 그 덩치로 인해 그들의 상대는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모두들 두려움부터 가졌다. 정운 역시 그 덩치에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노타우르스는 딱 보기에도 며칠 전 만난 오크보다 훨씬 강해 보이고 무리까지 짓고 있었다. 때문에 정운은 몰래 나무에 숨어서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산을 내려오곤 했다.
그리고 오우거를 만났을 때는 그 녀석이 어찌나 영특한지 한참 고생했다. 너무도 큰 덩치에 놀라서 나무에 숨었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를 듣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에 정운은 숨소리조차 들릴까 두려워 귀식대법까지 펼친 채 숨어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오우거는 정운이 숨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결국 없다고 확신을 했는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쿵쿵 소리까지 내며.
그 모습을 한참 쳐다보고 있던 정운이 귀식대법을 풀고 나무에서 내려가려고 하는 순간! 그는 놀라서 나무에서 떨어질 뻔했다. 덩치가 무척이나 커서 발소리가 클 거라고 생각했던 오우거가 정운이 숨어 있었던 나무 아래로 슬금슬금 소리 내지 않고 지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영악한 건지, 똑똑한 건지 하여간 대단한 괴물이었다.
그것 때문에 다시 귀식대법으로 숨어 있던 정운은 2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무에서 내려와 아래로 이동했다. 언제 오우거가 슬금슬금 다시 나타나 뒤에서 덮칠지 몰라 정운은 목뒤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하… 내가 이토록 내공에만 치우쳐 있었단 말인가? 한심하군.”
처음부터 강한 내공을 가질 수 있는 특권으로 내공을 어찌하면 더 이롭게 사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것이 실수라고 후회하는 정운이었다.
지금은 적은 내공으로 인기척조차 느끼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감각수련 같은 고된 수련을 하지 않았던 정운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지 현기증도 나고 정신도 너무 어지러웠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이 화근이었다.
3일 동안 주위의 과일을 따먹으며 내려오던 그는 작은 연못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무척이나 황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각종 괴물들이 싸우지 않고 물을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 역시 생명체여서 물의 소중함은 알고 있나 보다.
“영특한 건지, 지혜로운 건지 여기서 싸워 피를 흘려 물이 더러워지면 좋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한참 물을 마신 그가 그곳을 벗어나 다시 얼마간 내려가자 이번에는 오우거 3마리와 오크 40여 마리가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역시나군. 조금만 벗어나도 이러한데…….”
정운은 얼른 그곳을 피해 다시 길을 내려갔다.
이렇게 그는 산을 내려가면서 식사는 과일로 때우고 잠은 항상 나무 위에서 잤다.
그렇게 또 며칠을 더 내려간 그가 가장 높은 나무로 생각되는 곳에 올라가서 주위를 살필 때였다.
그의 눈에 그토록 찾고자 했던 것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야호! 마을이다!”
너무 기쁜 나머지 정운은 귀신같은 경신법으로 나무에서 내려오다가 너무 무리를 했는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쿵!
“켁! 아이고 머리야… 이거 아픈 건 아닌데 뇌가 다 흔들리는군. 에구… 제길 아직 내공이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느려. 뭐, 처음부터 다른 무공을 연마하는 것보다야 몇 배나 빠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거 너무 답답하군. 아직 초상비조차도 사용할 수 없으니…….”
정운은 초상비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몬스터들을 피해 다닐 일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주 가벼운 것을 밟고도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초상비라면 나무 위의 풀잎만 밟고도 더 빠르게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정운의 생각일 뿐이었다. 하늘에는 최강의 몬스터 와이번이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초상비를 사용해 나아갈 수 없으니 그가 위험할 때는 챠둠이 개조해준 교복을 이용해야 했다.
저번에 오크를 만났을 때는 내공을 사용할 수 없어서 작동을 시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의 내공을 찾아서 교복을 변형시킬 수 있었다.
금강불괴의 신체를 가진 정운이 혹시나 다른 위험으로부터 다칠 것을 염려한 챠둠이 아주 적은 양의 내공을 주입하면 교복의 옷감이 금속보다 단단해지면서 갑옷으로 변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교복은 옷깃이 변하면서 머리 전체를 감쌌고 팔꿈치와 무릎에서는 30센티미터 정도의 날카로운 칼날이 나왔으며, 주먹에서도 약 5센티의 칼날이 나왔다. 챠둠은 만화를 참고로 그것을 만든 것이었다.
또한 이것은 철저하게 정운의 내공으로만 작동되게 만들어졌다. 기계적인 장치를 만들어서 작동이 되었을 때는 위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즉, 만약 교복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고 그가 악한 자일 경우 심각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정운만 착용할 수 있는 갑옷이었으며 이 갑옷을 착용하게 되면 내공 없이도 일반인의 20배가 넘는 점프력과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나무 위에서 발견한 곳에 접어든 정운은 매우 허술한 목책을 볼 수 있었고, 그는 그것을 가볍게 뛰어넘어 마을로 들어섰다.
놀랍게도 마을은 ‘로빈후드’나 ‘카멜롯의 전설’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중세시대의 집들이 지어져 있는 것을 본 정운은 자신이 과거의 서양으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아주 잠시 했다.
정운이 한참이나 마을을 돌아다니니 곳곳에서 빵을 굽는 아주머니와 과일을 파는 아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또한 거리를 지나다니는 아가씨들이 정운을 보고 걸어가다가 돌부리에 넘어지는 진풍경이 보이기도 했다.
“어머, 어머! 얘, 저 사람 너무 아름답지 않니?”
“너무 잘생겼다아!”
정운이 지나가자 이런 말들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원래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의 정운이었지만 처음 보는 이곳에서는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흠…….”
그때였다. 두 가지 소리가 그의 귀에 한 번에 들려왔다. 그것 중 하나는 자신의 뱃속에서 나는 꼬르륵 하는 소리였고 또 하나는 중세시대의 병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다가오며 자신을 부르는 소리였다.
그들은 이 마을의 치안병이었다.
“이봐! 넌 누구지?”
“그러게, 못 보던 얼굴인 걸?”
“수상한데… 근데 여자야, 남자야?”
그 순간 정운의 이마에 빠직 힘줄이 돋았다. 정운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말하는 것 중 여자 같다는 말을 가장 싫어했다. 그도 자신의 얼굴이 좀처럼 보기 힘든 잘생긴 얼굴이긴 하지만 약간 여자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기분 나쁜 건 나쁜 거였다.
“음… 음… 저, 전 여기 오늘이 처음인데요.”
“그래? 어디서 왔지?”
“저쪽 숲에서요.”
정운은 한 방향을 가리키며 시선을 돌렸고 그에 5명의 치안병들 역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잠시 후 치안병들의 표정은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어투로 정운에게 말했다.
“너 저쪽에서 왔다고? 정말이야?”
“네… 정말인데요?”
“마,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이 녀석아!”
놀란 얼굴을 한 치안병들이 눈을 크게 뜨고 대놓고 정운을 위아래로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 중 뒤에 있던 검은 수염을 기른 30대 중반의 치안병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아이야, 저곳이 어둠의 숲이라는 것은 알고 있느냐?”
“어둠의 숲이요?”
“이런… 역시 모르고 있었군. 저곳은 말이지, 우리 히매인 왕국에서 몬스터가 가장 많기로 소문난 곳이란다. 그래서 이곳은 다른 외곽 마을보다 다섯 배나 많은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지. 그러니 우리가 너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니.”
“흠, 어쩐지… 초록 괴물도 많고 사람보다 다섯 배는 더 큰 괴물도 무지 많더라니…….”
“뭣?”
“오우거까지 봤단 말이냐?”
“이, 이런…….”
그곳에 있던 치안병들이 모두 놀라며 정운을 바라보았다. 물론 정운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오우거요? 아, 그 덩치 크고 얼굴 부운 괴물이 오우거구나. 저기 그럼 소머리처럼 머리 양쪽에 휘어진 뿔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뭐죠?”
“헉! 미노타우르스까지 봤다니! 자세히 아는 것을 보니 정말 본 것 같은데…….”
“너 미쳤구나! 이 녀석아! 도대체 어디까지 들어갔던 거야!”
검은 수염의 치안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강한 용병들이 가끔 재료상인에게 미노타우르스를 파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을 보니 정말 보긴 봤나 보구나. 그것은 일반인들이 보기 힘든 몬스터이니 말이다.”
“몬스터요?”
“그렇단다. 우리는 그것을 몬스터라고 하고 그 미노타우르스는 오우거만큼 무서운 존재란다.”
이때 빼빼 마른 치안병이 갑자기 화를 내며 소리을 질렀다.
“다신 거기 들어가지 말거라, 이 녀석! 알았냐? 어어? 왜 대답이 없어!”
“네? 네…….”
그러고는 다 같이 어느 한곳으로 걸어가더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그러게 말이야. 아직 어려서 잘 모르고 들어갔다가 나온 모양인데 정말 천운이군. 거길 들어가서 미노타우르스하고 오우거까지 보고도 살아서 돌아왔으니…….”
“그러게 말일세.”
그때였다. 또 한 번 정운의 뱃속이 배고프다고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꼬르르륵…….
“아이고 배고파…….”
그에 정운이 배를 부여잡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데 한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치며 달려왔다.
“몬스터다!”
“오크 떼가 나타났다!”
“모두 피해!”
그 모습을 본 몇몇 치안병들이 한쪽에서 달려오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어디야! 어디서 나타난 거야!”
“어둠의 숲입니다! 지난번 습격 때 부서졌던 좌측 목책을 부수고 쳐들어왔습니다!”
“이런 제길! 거긴 아직 미완성된 곳이잖아!”
“이보게들! 어서 가보세나!”
“그래!”
수많은 치안병들이 황급히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
한편 정운 역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오크라는 말이었다. 얼마 전 큰머리 부족이라는 자신에게 맞아죽은 오크가 생각났던 것이다.
“무슨 일인지 한번 가봐야겠군.”
그렇게 마음먹은 정운은 사람들이 달려오는 방향과 반대되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사람들과 반대로 나아가고 있어 그들과 어깨를 부딪치는 바람에 빨리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렇게 지나가다가는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 것 같아 결국 정운은 유운유령신법을 펼쳐서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사람들을 피해서 갔고 그 속도에 깜짝 놀란 사람들은 그를 피하면서 지나갔다.
한편 포르베 영지의 마지막 마을에 도착한 팔튼은 식사를 하던 도중 소란스러움에 이상함을 느꼈다.
“으응? 무슨 일이지?”
팔튼은 손에 든 포크를 내려놓고 식당 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마을 중심으로 뛰고 있는 것이 그에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을 목격했으니, 그것은 검은 머리에 이상한 복장을 한 여자같이 생긴 남자아이였다.
그 남자아이는 다른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뛰면서도 하나도 부딪치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헉!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잠시 멍하니 있던 팔튼은 검은 머리의 소년인 정운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검사 집안에는 대대로 내려져오는 보법이 한 가지씩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레 그 검술을 사용함에 있어 편하고 완숙한 걸음걸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팔튼은 지금 그러한 것을 초월한 엄청난 것을 본 것이다. 눈앞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는 저 남자아이가 사용하는 그러한 몸놀림만 배울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동안 막혀왔던 것들이 풀어질 것만 같았다.
“이런… 잠시 비켜들 보시오!”
툭! 툭!
하지만 근근이 부딪치는 사람들 때문에 팔튼은 도저히 정운을 쫓을 수가 없었다. 정운이 달려 나가는 속도가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자신의 속도보다 두 배는 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재 히매인 왕국에서 가장 총망 받는 인재 중 하나인 팔튼은 20세라는 젊은 나이로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들어섰기에 왕국 전체의 귀족들이 주요 인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현재 기사수업 중 하나인 ‘예비기사의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포르베 영지의 마지막인 이곳을 지나 나치키 영지와 바치스 공작의 영지를 둘러볼 예정이었다.
이런 팔튼에게 정운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편 마을 외곽의 산에서 30여 마리의 오크들이 꾸역꾸역 마을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치안병의 숫자는 고작 50여 명에 불과했다. 그들이 일반인과 다른 점이라면 그저 창과 검을 능숙하게 쓸 줄 안다는 것뿐, 때문에 그들은 2명이서 오크 한 마리를 겨우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국 치안병들은 하나하나 무너져갔다. 이미 10여 명이 머리가 잘리고 으깨지고 허리가 반쯤 잘려 나간 상태였다.
이 모습을 목격하게 된 정운은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사악한 존재로 인식되어버린 오크들… 몸을 떨던 정운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극소량만 찾은 내공을 최대한으로 운용하여 현재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한편 겨우 사람들의 틈에서 빠져나온 팔튼은 멀리서 잠시 멍하니 서 있는 정운을 찾았다. 그에 ‘겨우 따라 잡았구나’하고 생각한 팔튼!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순간적으로 몸에 소름이 돋았다.
살짝 뜬 정운의 몸이 허리를 중심으로 활처럼 뒤로 휘더니 엄청난 속도로 치안병들과 오크들의 접전에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팔튼의 눈에는 너무도 빠른 속도로 쏘아져 가는 정운이 꼭 날아가는 듯 보였다.
“헉! 팔튼…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어찌 사람이 떠서 저리 빨리 갈 수 있단 말인가… 마법사인가? 아, 아니다. 5서클의 플라이마법은 저렇게 빨리 날 수 없다. 절대로… 그리고 5서클은 저 나이에 불가능해. 8서클 마스터 대마도사 치르밀도 30살에 겨우 이룬 경지인데…….”
팔른의 눈에 보이는 동양인의 모습을 한 정운은 자신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사실 챠둠이 한국을 택한 것도 또한 정운이 동양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팔튼이 더 경악한 것이 있었으니…….
그는 보게 되었다. 그의 무위를. 보기에는 자신보다 낮은 소드 익스퍼트 초급의 검기. 그러나 검술의 완숙도를 따지자면 너무도 완벽했다. 깔끔한 움직임은 너무 빨라 보였다. 경지가 올라갈수록 더욱 다잡아지는 검술, 힘 그리고 낼 수 있는 검기의 농도.
그러나 정운은 검기만 소드 익스퍼트 초급일 뿐 움직임은 꼭 마스터급으로 보였다.
팔튼은 자신이 저자와 붙는다면 이길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았다. 검기와 힘, 그것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자신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피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공격한다면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가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약 15명의 치안병이 다치거나 쓰러져 있을 때 치안병들 역시 갑자기 달려든 검은색의 인형을 보았다. 그에 그들은 놀랐으나 오크들을 막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이 오크들 사이사이를 스쳐 지나가며 무엇인가를 휘두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것은 미친 짓이라고…….
“저자가 미친 것 아닌가! 이 위험한 순간에 오크들 사이에 들어가 어찌 저리 춤을 출 수 있는가.”
그러나 정운이 스쳐 지나가고 난 자리마다 오크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리고 약 1초 후 머리가 후두둑 떨어져 내리고 몸이 반으로 갈라졌으며 다리가 잘려 몸통만 앞으로 쓰러졌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꾸에엑!
꾸엑!
“미, 믿을 수 없다.”
“어찌 저런!”
“대, 대단하다.”
한편… 정운은 상념에 젖어 오크를 베어 넘기고 있었다.
“어찌 사람을 그리 죽이는가… 처음 보았다. 이것들은 무엇인가… 악마인가?”
한국에 있을 때 SF물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괴물이었다. 그곳에서는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거나 숙주로 삼고 잔인하게 죽였었다.
그런데 이 오크들이 지금 정운에게 그러한 괴물로 인식되어지고 있었으며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을 직접 목격하고 있었다.
“죽여야 한다. 사람을 죽이는 괴물들…….”
그러한 상념에 빠져든 상태에서 정운은 20여 마리의 오크를 베었다. 그동안 치안병들 역시 10여 마리의 오크를 처리했다.
그리하여 상황 종료.
모든 오크들은 쓰러져 있었다. 초록색 피가 팔 군데군데 묻어 있는 정운만이 오크들의 시체들 중앙에 서 있을 뿐이었다.
“와~! 이겼다!”
“오크들을 물리쳤다!”
사람들은 모두 좋아서 소리를 질렀다. 도저히 막아내지 못할 것만 같았던 오크들이었는데 갑자기 달려든 한 청년으로 인해 그것들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정운에게 다가와 말했다.
“자네 정말 대단하구만!”
“맞아, 맞아! 어떻게 그렇게 빠른지 움직이는 것조차 안 보이더라니까!”
“정말 고마우이. 자네가 아니었다면 우린 다 죽었을 거야.”
“그래 맞아! 정말 죽는 줄 알았다니까. 고맙네, 고마워.”
“아! 혹시 귀족은 아니신지…….”
“아!”
“헉! 이런 실수를…….”
그 순간 어느 한 사람의 말 한마디로 인해 모두들 정운에게 실수를 한 듯 갑자기 주춤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는 젊은 나이에 강한 자들이 거의 대부분 귀족가의 자식이었으며 검가의 귀족은 특히 높은 위치의 귀족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귀족? 전 귀족이 아닌데요?”
급히 정신이 들은 정운이 말을 꺼냈다.
정운의 말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큰 실수는 범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정운에게 다시 말을 꺼냈다.
“아휴… 귀족이 아니라서 다행이구만. 자네가 귀족이었다면 우린 여기서 목이 떨어져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니 말일세.”
“하하하! 어쨌든 우리 마을을 구해준 영웅이야 자네는!”
이때 한 노인이 다가오더니 정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렇고말고. 오늘 이 청년을 위해 잔치를 벌입시다! 모두 어떠신가!”
“좋죠!”
“촌장님 말대로 잔치를 벌입시다!”
“아이고, 그럼 이것저것 빨리 준비해야겠네.”
잔치를 벌이기로 하자 주위에 있던 아낙들이 급히 자신들의 집으로 달려가며 무엇을 준비할지 상의했다.
“그래, 어디 묵을 곳은 있는가?”
촌장이라고 불리는 노인이 묻자 정운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그럼 잘되었구만. 우선 우리 집에서 머물도록 하게.”
사실 딱히 갈 곳이 없는 정운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파악하기 전까지 있어야 할 곳이 필요하기는 했다.
“그,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뭘… 신세는 우리 마을을 구해준 우리가 진 게 아닌가. 허허허.”
“제가 한 것이 있어야지요.”
“자자, 가세나 어서.”
“네…….”
그렇게 촌장의 집으로 향하던 정운은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 자신이 죽인 오크들의 시체가 즐비해 있었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고, 어찌 된 영문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몇몇 죽은 자들의 가족으로 보이는 자들이 치안병들과 같이 시신을 옮기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어느 한 아이는 시신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또 한쪽에서는 아까 정운에게 말을 걸었던 사람들이 죽어 있었다. 너무도 안타까웠다.
“괴물들이 사람을 죽이는 세상이라…….”
고개를 양쪽으로 흔들며 그는 촌장의 뒤를 따랐다.
그때였다. 누군가 정운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게!”
“으응?”
“헉헉헉. 잠시 물어볼 게 좀 있다네. 잠시만 기다려주게나. 헉헉헉.”
팔튼이 급히 뛰어오면서 정운과 촌장을 붙잡았다. 그러자 팔튼을 확인한 촌장이 급히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아이고, 이거 팔튼 도련님 아니십니까?”
“아아… 촌장님, 오랜만입니다.”
“여긴 어쩐 일로…….”
“잠시 이 청년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요.”
“제게요?”
정운은 갑자기 달려와서는 물어볼 것이 있다는 이 팔튼이라는 사람에게 의문이 생겼다.
“내 자네를 저기 마을에서부터 지켜보고 있었다네. 그런데 자네가 달리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더군. 그것을 본 이상 도대체 어떻게 그런 빠른 움직임이 나오는지 도저히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리고 자네의 스승은 누군가? 어떻게 그런 무위를 가질 수 있는 거지? 검기로 봐서는 분명 익스퍼트 초급 같은데… 정말 초급인가, 아니면 최소량의 검기만 방출한 것인가?”
“저, 저기요! 잠깐만요!”
“엥?”
“이것 봐요, 한 가지씩 물어봐요! 그것을 한 번에 어떻게 다 말해요, 정말!”
“아… 그렇군. 하하하! 이거 내가 실례를 한 것 같은데?”
팔튼이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재빨리 정운에게 다시 질문했다.
“그건 그렇고, 자네 검집은… 헉!”
없었다. 그랬다. 팔튼이 정운을 쫓아올 때도 정운은 분명 맨몸이었다. 또한 갑자기 몸을 뛰어 오크들에게 달려들 때도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정운이 쏘아져 나가면서 스쳐 지나가던 나무는… 설마!
팔튼의 시선이 정운의 허리에서 그의 손으로 옮겨갔다.
‘헉! 얇다… 푸른색… 오크들의 피… 저건… 나무!’
아무도 보지 못했던 것을 팔튼은 보고 말았다.
말하다 말고 입을 쩍 벌린 채 말도 못하고 있는 팔튼의 모습은 미친놈이라고 할만 했다. 그러다 정운이 나무를 떨어뜨리니 그는 그리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팔튼은 한없이 땅만 바라보았다.
“이상한 사람이군요. 그만 가죠, 할아버지.”
“그, 그러게…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도련님.”
그러나 팔튼은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저 입만 벌리고 한곳만 무심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쯧쯧쯧 …원래 저런 분이 아니었거늘 언제 저렇게…….”
“예? 누구요?”
“아, 아니네. 저기 보이는 집이 내 집이라네. 저리로 가세나.”
그러면서 촌장은 뒤로 살짝 돌아보더니 집으로 향했다.
팔튼이 경악한 이유는 정운이 나무에 검기를 실었다는 것에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육체의 수련으로 마나를 모으고 그 모인 마나를 순간순간 활용함으로서 육체의 빠름과 검의 속도와 내구도를 조절한다. 그리고 하나의 깨달음을 얻은 자들이 극히 소수로 검에 검기를 실을 수 있게 되는데 그들을 소드 익스퍼트라고 한다.
또한 그전의 단계를 소드 유저라고 칭하는데 어린 나이에는 나무 검을 사용하고 나이가 15세 이상이 되면 날이 없는 철검을 사용하며 수련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에서 나무 검에 검기를 생성하려고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 검기를 사용하자마자 나무 검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팍 하고 터져버렸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검기를 생성시킬 수 있는 것은 금속, 즉 철검만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나무 검이 터지면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것은 자신들이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팔튼이 본 정운은 그 나무 검도 아닌 나뭇가지에 검기를 실었다. 게다가 터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세세한 혈도를 이용하고 세심하고 날카로운 무공을 사용하는 정운에게 그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사실 그 옛날 중원에서도 그러한 경지는 쉽게 오를 수 없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술이며 높은 경지였다. 화경을 지나 현경의 경지에 들어서고 나서야 미세한 내공을 조절할 수 있기에 갈대로도 내기를 실을 수 있었다.
아무튼 비록 대부분의 내공은 잃고 극히 미세한 내공만 남았지만 그러한 기술까지 잊어버리지 않은 정운에게는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팔튼에게는 경악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렇게 팔튼은 해가 지기까지 그렇게 멍하니 입만 벌리고 나뭇가지만 쳐다보고 있었다.
* * *
하늘에서 이상한 공간이 열리며 커다란 묵빛의 물체가 나타났다. 그리고 곧바로 땅으로 추락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혼돈이라 칭하던 존재로 인해 안전하게 차원을 넘어온 챠둠이었다.
“모두 충격에 대비하라!”
정운의 어머니인 이미화는 의자에 앉은 채 몸을 움츠려 머리를 감쌌고 아직도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혁마소와 갈천혁은 근처에 있는 모서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인두루인 제국의 속국인 제루이판에서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제루이판의 왕인 말카인 왕은 왕비와 담소를 나누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간만에 정원에 나오는 것이라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성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콰과광!
우르르르르.
챙그랑!
“어헉!”
“꺄악!”
탁자가 흔들리며 찻잔이 부르르 떨다가 떨어졌다. 성은 무너질 듯 곳곳에서 먼지가 흔들리며 심하게 흔들렸다.
“국왕전하, 괜찮으시옵니까?”
“이게 무슨 일인가! 당장 알아보도록 하여라!”
“넵!”
왕의 분부에 근위기사 두 명이 급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왕비, 다친 곳은 없소?”
“저는 괜찮습니다, 전하.”
“어허… 도대체 무슨 일인고 이것이… 지진이 단 한 번도 안 일어났던 곳에서 이토록 큰 지진이라니…….”
한편 왕궁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아크포민 공작은 이것이 무슨 일인가 싶어 나오다가 왕의 명령으로 이 일을 알아보려던 왕실근위기사들을 만났다.
“자네들은 어찌하여 국왕전하의 신변을 보호치 않고 이리 급하게 어딜 가는가?”
“공작각하를 뵈옵니다. 저희는 국왕전하의 명으로 지진이 어찌하여 일어났는지 알아보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아크포민 공작은 자신 또한 그러한 이유로 급히 나왔으니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가? 그럼 나와 같이 가세나.”
“넵!”
반면 왕성에 머물러 있던 여러 귀족들은 혹시나 왕성이 무너질까 무서워 지진의 원인을 알아보기는커녕 급히 성을 빠져나가기 바빴다.
왕성에서 어찌하면 좀 더 국왕을 구워삶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디바인 공작도 갑작스러운 지진과 굉음에 놀라 시종을 불렀던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냐!”
“왕성 한쪽이 무너졌습니다!”
“뭣이? 어찌하여 그리된 것이!”
“그, 그것은 잘…….”
“에잉, 쓸모없는 것 같으니라구. 어서 마차를 준비하지 않고 무엇 하느냐!”
“네넵!”
항상 국왕의 옆에서 국왕을 생각하는 단 하나의 충신인 양 아양을 떨던 디바인 공작도 왕성에 큰 변이 생기자 이렇게 자신의 한 몸을 지키기 위해 피하기 바빴다.
아크포민 공작은 혹시나 성에 변이 생길까 해서 근위기사들로 하여금 국왕을 보호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끌고 있는 은빛기사단 50여 명과 크릴기사단 50여 명을 이끌고 성 한쪽 뿌연 먼지가 날아다니는 곳으로 달려갔다.
푸스으으으으.
앞이 안 보일 정도의 먼지가 흩날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금속으로 된 물체가 있었으니… 그것은 갑자기 나타나 추락을 멈추지 못해 제루이판 왕국 왕성의 한쪽 성벽을 무너뜨린 챠둠이었다.
전함의 선실 안에서는 정운을 잃은 마음에 침울해 있는 세 사람이 있었다.
“정운이… 정운이 죽다니, 크흑.”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마라! 어찌하여 정운이 죽었다고 하는 것이냐! 난 정운의 시신을 보기 전까지는 절대 믿지 못한다. 절대로!”
“으흐흐흑.”
모두가 그렇게 슬퍼하고 있을 때, 순간적으로 아주 미세한 신호가 잡혔다.
삐빅!
“모두 가만!”
챠둠의 목소리에 모두가 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신호를 확인했다.
“이것은!”
“무, 무슨 일인가, 챠둠?”
“주인님이… 주인님이 살아계신다!”
“무엇이!”
“그게 사실인가!”
“어디 있단 말인가!”
갈천혁과 혁마소가 번개같이 일어나 챠둠의 홀로그램을 죽일 듯이 휘저었다. 잡히지도 않을 홀로그램을…….
“아주 잠깐이지만 주인님이 팔에 차고 있던 팔찌의 신호가 잡혔다. 그것은 주인님이 이 세계에서 내공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즉, 주인님은 살아계시고… 우리와 같은 세계에 있을 가망성이 크다!”
“아…….”
“다,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그럼 뭐 하고 있는 것인가! 어서 정운을 찾지 않고!”
정운이 살아 있다는 말에 혁마소가 급한 성격을 내비치며 챠둠을 닦달했다. 여전히 잡히지 않는 홀로그램을 휘저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신호가 너무 미세하여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가 없다. 이 세계는 우리가 있던 곳과 다르게 신호가 아주 미세하다.”
“그, 그런!”
“고물 컴퓨터 같으니…….”
그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차가운 기계음이 들렸다.
“말이 심하다, 혁마소!”
“그럼 찾아라!”
“그건…….”
“역시…….”
“윽!”
챠둠도 할 말이 없었다. 비록 다른 세계라고는 하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우선 너희는 이곳의 상황과 안전한 곳인지 조사하라. 난 인공위성부터 만들어 이 행성 어디에서든 주인님의 신호를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
“좋아! 알았다.”
위이이이잉!
철컥!
전함의 문이 아래로 내려오며 땅을 때렸다. 그리고 두 명의 신형이 아래로 걸어 내려왔다.
“흠… 먼지가 많군.”
“덩치만 커가지고… 에잉!”
그 소리에 한 번 더 울컥했던 챠둠이었지만 우선 정운이 이 세계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참고 넘기기로 했다.
갈천혁과 혁마소가 내려서자 전함이 서서히 날아올랐고 더 많은 먼지를 흩날렸다. 그리고 곧 투명화기능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때문에 그저 미세한 소리를 통해 전함이 멀어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때 아크포민 공작은 모든 기사단을 이끌고 무너진 성벽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저쪽이다!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고 이동한다!”
“넵!”
“넵!”
기사들은 훈련이 무척이나 잘된 듯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모두 무기를 빼고 서서히 앞으로 진군했다. 하지만 이때 앞에 서서히 걷힐 것 같았던 먼지가 다시 부유하면서 엄청나게 흩날렸다. 그것은 챠둠이 움직이면서 만들어내 것이었다.
“쿨럭! 쿨럭!”
“에취!”
모든 기사들이 손으로 앞을 휘저으며 좀 더 앞을 자세히 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여전히 걷힐 줄 모르는 먼지뿐이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소드 마스터에 오른 아크포민 공작은 그의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랏!”
“어허, 그놈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에잉, 쯧쯧쯧.”
잠시 후, 서서히 먼지가 걷히기 시작하며 곧 혁마소의 얼굴이 나타났고, 그 뒤로 중후한 무게를 잡으며 갈천혁이 나타났다.
“뭐, 뭐야! 그냥 노인들이잖아.”
“그러게?”
“뭔가 대군이라도 몰려온 줄 알았더니 원…….”
하지만 아크포민 공작은 그들에게 뭔가 있을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단 노인들뿐이지만 그들은 지금 직경 400피르(미터)나 되는 구덩이에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분명 저 노인들과 이번 지진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갈천혁 또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보게 마소, 우리가 쓰는 말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헛! 뭐, 뭐야! 내가 왜 이런 말을 쓰고 있는 거지?”
“정말 이상하군. 흠… 차원을 넘어오면서 뭔가 이상한 일이 생긴 것 같으이.”
“그럴 수도 있겠구만. 블랙홀에서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났었으니…….”
블랙홀 안에서의 일을 떠올리는 두 사람은 순간의 생각만으로도 등 뒤에 식은땀이 흘렀다.
자신들은 자연조차 거스를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블랙홀에서는 자신들의 힘이 밤톨만큼도 되지 못함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나약하고 비참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챠둠의 보호를 받으며 가만히 있는 것이 다였다. 그들이 언제 이토록 무능함을 느껴보았겠는가.
“그보다 저 아해들이 지금 왜 철 쪼가리를 들고 우리 앞에 있는고?”
“허허허. 이보게나 마소, 눈앞에 무너진 벽이 있진 않은가. 보아하니 중세시대와 비슷한 시대인 모양이군. 성의 벽을 우리가 이렇게 허물어놓았으니 모든 사람들이 놀라지 않았겠는가.”
“그것도 그럴 수 있군. 하지만 저것들 지금 우릴 치려는 거 아냐?”
“나도 그렇게 보이는군.”
아크포민 공작은 상황을 두고 보고자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으나 소드 마스터에 들어서며 높은 청력을 가질 수 있었던 그에게는 똑똑히 들려오는 말이 있었다. 바로 ‘성의 벽을 우리가 이렇게 허물어놓았으니.’ 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평범한 자들이 아니다. 아무리 대마법 헬 파이어를 날린다 해도 이 정도의 파괴력과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큰 지진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공작은 이들에게 좀 더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무장을 갖추고 정렬해 있도록!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는 움직이지 말라!”
“넵!”
“넵!”
그 말과 함께 아크포민 공작이 두 사람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그것을 본 갈천혁과 혁마소는 그가 이곳에 대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 아이가 대장인 듯하이…….”
“내가 봐도 그런 것 같군.”
아크포민 공작은 두 사람과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는 거리가 되자 말을 꺼냈다.
“두 분께서는 어떻게 오신 분들이신지요.”
“허허허, 처음과는 다르게 예의가 바른 아이로군. 호! 그러고 보니 일류 고수를 넘어 다음 경지를 바라보고 있군. 축하할 일이군그래. 허허허.”
“그렇군.”
“헛!”
아크포민 공작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들이 말하는 일류 고수라는 말은 소드 마스터를 뜻하는 듯했는데, 그 말이 맞다면 저들은 지금 자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경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 중급의 오러를 만들어내어 국왕전하께서 크게 기뻐하며 자신에게 마법갑옷 헤르시안을 내리지 않았는가.
‘역시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군.’
“두 분께서는 마법사이십니까?”
“마법사? 그건 또 뭐지?”
“마법사가 아니시란 말이십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 왕성의 벽을 허무셨는지요.”
“아, 그건 어쩌다 보니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이니 미안하게 되었구나.”
“죄송하지만 미안하다는 말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도 한 나라를 지키는 기사였으며 한 나라의 공작의 신분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로서는 이들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떠나 이들이 저지른 일이 엄청나다는 것은 숙지하고는 있었다. 그래서 조금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에잉, 그깟 벽 좀 허물었다고 너희가 우리를 핍박하겠단 말이냐!”
“어허. 이보게, 마소. 우리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 않는가. 그래, 그럼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고?”
“저희와 같이 가셔서 조사를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나수갑을 차주셔야겠습니다.”
“수갑?”
마나수갑이란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고위범죄자들에게 내리는 조취였다. 7서클 마도사가 만든 물건이라 6서클 이하의 사람들은 이것을 찰 경우 마나를 다룰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마나를 다룰 수 없는 사람이 그 마나수갑을 찬다면 쇠로 된 그것을 풀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익스퍼트 이상의 검사는 그냥 쇠로만 된 수갑이라면 마나를 이용해 부술 수 있었다. 물론 날카로운 무엇인가를 이용해야 했지만, 그러한 것을 방지하고자 만든 것이 바로 마나수갑이었다.
능력 있는 범죄자들을 보다 쉽게 수용하기 위해.
그 말을 듣고 자신들을 범죄자 취급하겠다는 뜻으로 안 혁마소가 분노했다.
“갈!”
“크윽!”
“윽!”
“악!”
혁마소의 천마후에 아크포민 공작은 내부가 진탕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뒤에 있던 기사들은 모두 피를 흘리며 무릎 꿇고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1천 년 동안 보이지 않았다던 드래곤의 포효와도 같았다.
‘이럴 수가… 단지 한 번 소리친 것뿐이거늘 이러한 충격을 받다니… 크윽! 그리고 몸을 움직일 수가… 드, 드래곤 피어인가!’
혁마소가 기세를 내뿜자 그 압력에 아크포민 공작조차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크포민 공작이 모르는 사이에 혁마소가 의문 중에 암경을 펼쳐 그를 옭아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옆에서 보고 있던 갈천혁이 고개를 흔들며 못마땅한 듯 말했다.
“어허, 이놈의 늙은이가 노망이 들기는 들었구나.”
“뭐, 뭐야!”
“왜 약한 아이들을 가지고 그리 핍박하는가. 자네는 아직도 자네보다 약하다 싶으면 그렇게도 괴롭히고 싶은가?”
“어흠!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면서 살며시 암경을 풀었다. 그리고 암경이 풀리자 휘청거리던 아크포민 공작을 부축하며 갈천혁이 말했다.
“이보게나, 괜찮은가?”
“네? 네… 감사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아크포민 공작이었다. 자신을 부축해주는 눈앞의 사람이 자신 뒤에 있는 왕성보다도 더 크게 느껴진 것이다.
“우리는 이곳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포박을 받을 의향은 없다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아, 알겠습니다.”
“그놈,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군.”
혁마소가 뒤에서 아크포민 공작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 누가 제루이판 왕국 안에서 그에게 핀잔을 준단 말인가.
하지만 아크포민 공작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후 사건의 진상을 알아오라던 국왕의 부름을 받고 아크포민 공작이 국왕의 집무실로 갔다.
“어찌 그들을 잡아들이지 않은 것이요, 공작!”
“송구하오나 그들을 잡아들일 수 없습니다.”
“무, 무엇이! 지금 내 명에 불복하겠다는 것이오?!”
“그것이 아니오라…….”
뜸을 들이는 아크포민 공작을 본 말카인 왕은 그가 말을 꺼내기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진정한 다음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래, 어찌 된 일인지 소상히 말 좀 해보게나.”
“그것이… 그들은 저희들의 능력을 벗어난 존재인 듯하옵니다.”
“아니, 자네보다 강한 자들이란 말인가? 그보다 기사단도 있지 않은가?”
“그것이… 그렇다 해도…….”
“어허, 얼마 전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들어선 자네가 그리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군. 도대체 어떤 자들이기에 그렇다는 것이오. 제발 속 시원하게 말 좀 해보란 말이오.”
“그럼 송구하오나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드래곤일 수도 있습니다.”
아크포민 공작은 혁마소가 시전한 천마후가 드래곤의 피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드! 드래곤!”
“그, 그렇습니다.”
놀란 나머지 순간 벌떡 일어났다가 허탈한 듯 의자에 철퍼덕 앉아버리는 말카인 왕이었다.
“정녕 그 말이 사실이오?”
“저 역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 그랜드 마스터급의 사람들임은 틀림없습니다. 낮게 잡아도 소드 마스터 최상급입니다.”
“그 그랜드 마스터… 어디서 그런 자들이…….”
“저의 소견으로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기보다 크게 대우하시어 포섭함이 옳을 듯하옵니다.”
“그래, 그럼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 저의 저택으로 모셨습니다.”
“모셨다라… 자네는 벌써부터 그들을 존대하는군. 그것도 내 앞에서 말이야.”
“그것이 아니오라… 자신들이 검사라고 말씀하신지라…….”
“허허허, 검사라면 자네가 그럴 수도 있지, 암! 그래, 이 일은 그들을 지켜본 다음에 결정하도록 하고… 밖에 누구 없느냐?”
“넵! 부르셨습니까!”
“그래, 지금 당장 내무장관 디파인 후작을 불러오도록!”
“넵!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기사 하나가 뛰쳐나갔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 하구려. 하지만 그들을 너무 믿지는 말고 감시를 철저히 하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는 했지만 말카인 왕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아크포민 공작은 검사 중의 검사였다. 검사에게 그랜드 마스터란 꿈의 경지이자 존경의 대상이고 신적인 존재였다. 때문에 그들을 감시하겠다는 생각을 공작이 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 * *
왕성을 빠져나오는 마차가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마차에는 카크카론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아크포민 드 카크카론.
이것이 아크포민 공작의 풀네임이었다.
은빛기사단의 단장 마스픈 단장에게 극진히 모시라고 잘 당부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신비의 두 노인이 그것에 만족할지 공작은 걱정이 되었다.
“조금 더 빨리 가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하앗!”
아크포민 공작의 말에 마부가 더 강한 채찍질을 가했다.
이히히힝.
두구두두두두.
그 시각 이미 카크카론 공작가에 도착한 두 노인은 마스픈 단장의 안내로 저택에 들어섰다. 마스픈 단장이 앞장서자 저택 앞에서 경비를 서던 병사들이 일제히 인사했다.
“충! 마스픈 단장님을 뵙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수고들 하는군.”
이 말과 함께 몇몇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데 그것이 멋있어 보였는지…….
“수고들 하는군. 어흠!”
“……?”
마스픈 단장의 행동을 따라하는 혁마소였다.
처음 보는 노인이 자신들에게 이렇게 대하자 병사들은 기분이 나빴다. 마스픈 단장과 함께 와서 범상치 않은 사람 같기는 했지만 자신들이 누구란 말인가, 바로 대륙에 9명밖에 없는 소드 마스터인 대 공작가의 병사들이 아닌가.
하지만 기분이 언짢음을 표현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아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누구…신지요?”
병사 중 하나가 그렇게 되묻자 마스픈 단장이 급히 나섰다. 이들은 아크포민 공작조차도 극진히 대하는 사람들이었으니 병사들이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이분들은 공작각하의 손님들이다! 너희는 이분들을 보거든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공작각하를 대하듯 해야 한다! 알겠느냐!”
“고, 공작각하를 대하듯이 말입니까?”
아무리 아크포민 공작의 손님이라고는 하나 이 정도의 대우를 받는 사람은 드물었다. 아니, 국왕전하가 아니고서는 없었다. 그런데 공작각하를 대하듯 해야 한다니.
“그렇다! 이분들에게 행여나 실수를 한다면 목이 날아갈 것이다!”
“헉!”
“허걱!”
“어허, 이사람 말이 좀 심하군. 어험!”
혁마소는 이러한 대접을 받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만 들어가세나.”
“이쪽으로 오십시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미리 서신을 보내 공작각하가 친히 모시는 분이 온다는 연락을 받은 집사가 나와서 그들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시녀들이 손님들의 방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너희는 이분들을 잘 모셔야 한다.”
노인들이 저택의 안쪽으로 들어서자 호화로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택 내부에 자리한 장식품 하나하나가 고풍스러웠으며 귀중해 보였다.
“허허허, 집이 좋군.”
하지만 역시나 그들 또한 한때 절대자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인지라 그 말이 다였다.
보통 사람들이었으면 처음 이곳에 들어섰을 때 갖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짧은 표현으로 말을 끝냈다. 그에 확실히 범상치 않은 이들임을 다시 한 번 느낀 마스픈 단장이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어험! 그래, 수고했네. 아! 그건 그렇고, 아까 그 녀석은 언제 오는가?”
“그 녀석…이라니요?”
“아 왜, 그 양쪽 어깨에 금 새를 걸친 녀석 말이야.”
“헉! 고, 공작님 말씀이십니까?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얼굴이 빨개지며 단장이 말을 가리라고 했지만 그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혁마소였다.
“내가 뭐?”
마스픈 단장은 아크포민 공작의 포부와 기사도에 반하여 들어온 자로, 그 충성도가 남다른 자였으니 이런 반응이 나올 만도 했다. 하지만…….
“휴, 일단 편히 쉬십시오. 공작각하께서는 곧 오실 것입니다.”
마스픈 단장조차 그들의 능력을 보았지 않은가. 그렇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자신 또한 혁마소의 고함에 작은 내상을 입었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혁마소가 내지른 함성은 일종의 천마후로 그것을 버티려면 최소 초절정 고수는 되어야 했다.
여기서 초절정 고수란 현경에 이른 자를 뜻한다. 현재 이 미칼투 대륙에서는 일류 고수가 소드 마스터의 경지이며 절정 고수가 이들이 꿈꾸는 그랜드 마스터였다. 즉, 화경의 경지를 말한다.
그나마도 혁마소가 그들을 생각해서 줄였던 것이 그 정도였다. 만약 있는 힘껏 천마후를 펼쳤다면 모두 내부가 진탕되어 터져 죽었을 것이다.
시녀를 따라간 혁마소와 갈천혁은 각각 다른 방을 배정받았다. 그 방 역시 호화롭기는 마찬가지였다.
“흠… 좋군.”
혁마소를 안내한 시녀는 눈앞의 노인이 신기하기만 했다. 너무도 볼품없어 보이는 붉은색의 신기한 옷차림을 한 노인이 이토록 호화롭고 대단한 방을 보고는 단지 한다는 말이 ‘좋군.’일 뿐이었다. 그에 궁금증이 일기는 했으나 잘못 물어봤다간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기에 함구할 뿐이었다.
자신은 단지 노예일 뿐이었다. 존귀한 손님에게 실수라도 할 시에는 다른 나쁜 곳으로 팔려가든가 아니면 목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이곳의 시녀들에게는 공작가의 노예로 들어왔다는 것이 큰 행운이었다.
혁마소는 답답한 느낌이 들어 우선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침대로 가서 앉았다.
“호오?”
그는 침대가 무척이나 푹신거려 흡족해했다.
그의 옆방에 들어온 갈천혁 역시 들어서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은 저택 뒤에 있는 정원이었다.
“허허허… 누가 가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솜씨가 좋구나.”
전에 있던 세계에서도 항상 정원은 자신이 가꾸었던 갈천혁이었다. 그것의 그의 유일한 낙이었으며 취미였다.
“정원은 따로 정원사가 있으나 대부분 공작각하께서 친히 가꾸고 계시옵니다.”
시녀가 옆에서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호오? 그 친구가 그런 취미가 다 있었군. 허허허… 마음에 드는군.”
순간 그는 자신과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아크포민 공작이 무척이나 달리 느껴졌다.
보통 검사의 경우 조경과 관련된 취미는 갖고 있지 않은데, 이렇듯 공작이 자신과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으니 공감대가 형성되는 듯했다. 그것은 곧 아크포민 공작에 대한 흥미로 이어졌으니…….
그것을 시작으로 이 세계에서 또 하나의 그랜드 마스터가 출현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 시녀를 대동하고 혁마소가 갈천혁의 방으로 들어섰다.
“어떤가, 방은 마음에 드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군. 자네도 그런가?”
“나도 마찬가지일세. 잠시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네.”
그렇게 말하고 혁마소가 시녀들을 바라보자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눈치 빠른 그녀들은 고개를 숙이고는 문밖으로 나갔다.
“허허허. 고 녀석들, 기특하구나.”
“그러게 말일세. 그건 그렇고, 정운이 때문에 온 것인가?”
“그것 말고 내가 노린내 나는 네놈과 이야기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어흠, 언제쯤이나 그 말투를 고칠 것인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면서 하여간 헛먹었어, 헛먹고말고.”
“뭐, 뭣이?”
“어흠… 뭐, 됐네. 그건 그렇고 할 이야기나 하세나.”
갈천혁은 혁마소와 이런 식의 싸움이 얼마나 무모한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지라 라이벌의식이 있어서 그런지 혁마소가 시비를 걸어오면 상대를 안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끌려가곤 했다. 다른 곳에서는 격장지계 같은 것에 절대 안 넘어갔으나 혁마소에게는 그것이 잘 안 되는 갈천혁이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많이 생각해보았지만 우리가 만난 공작이라는 아이가 생각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 같으이.”
“흠… 나도 그렇게 느꼈다네. 아무래도 어떤 한 나라의 고위직을 맡고 있는 듯하더군.”
저택에 있는 군사들을 본 그들은 병사들이나 기사들이 한 나라에 소속된 군졸들임을 느꼈다. 그리고 저택의 규모나 병사들에 비해 유난히 강한 기사단으로 볼 때 아크포민 공작이 높은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이다. 그들이 공작이라는 신분을 전혀 몰랐으니 이렇게 추측으로 판단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갈천혁이 물어왔다.
“그래서 어쩔 셈인가?”
“큭큭큭. 그 녀석을 제자로 삼아볼 생각이네.”
“제자?”
“그렇다네. 자넨 내가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게. 큭큭큭.”
“자네 혹시 제자로 받은 다음 그 녀석을 부려먹을 작정인가?”
“부려먹기는! 그냥 약간의 도움만 청할 뿐이지. 어흠!”
“흠… 그게 그거구만.”
“여하튼 방해나 하지 말게나!”
“허허허. 그래, 한번 잘해보게나. 안 그래도 그 녀석 보통 근골이 아니더군.”
“역시 늙었어도 아직 눈이 붙어 있기는 하군.”
갈천혁이 혁마소를 말리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자신들은 처음 이곳에 와서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큰 권력을 가진 자를 아래로 두면 당연히 모든 일이 수월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과연 어떤 거래를 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 생각하는 것이 늘 사악하다고 생각했던 혁마소가 그래도 좋은 묘안을 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