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시가총액 2조 달러(4)
최근 대산을 다니는 직원들의 주요 관심사는 주식이었다.
“어제 또 올랐더라.”
“영끌해서 풀 베팅하길 잘했지. 안 그랬으면 어쩔 뻔했냐.”
“넌 얼마나 넣었는데?”
“신용에 전세자금까지 전부 받아서 3억?”
그러자 동료 직원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헐. 언제?”
“입사하자마자.”
그 말에 직원의 놀람은 한층 더 커졌다.
“그러면 대산이 이렇게 오르기 전이잖아…….”
옆에 있던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풀 베팅했지. 너 기억 안 나냐?”
“무슨 기억?”
동료가 입가에 가득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대표님이 신년사에서 앞으로 대산은 나일처럼 될 거라고 했잖아.”
“그, 그랬지.”
“난 그 말 믿었다.”
“……헐.”
“그 말 믿고 풀 베팅 때린 거야. 왜냐. 이강철 대표님이 어떤 분이냐. 일반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수년 만에 대산을 차지한 입지전적인 분이잖아. 그런 분이 하는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야지.”
“그래서 풀 베팅했다?”
“당연.”
동료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러면 지금 도대체 얼마냐?”
사실 자신이 가장 궁금한 건 얼마를 벌었는지였다. 그 말에 동료가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이 정도.”
“2, 2억은 아닐 테고.”
“일단 두 자리는 넘었어. 자세한 건 뭐. 나중에 알려줄게.”
두 자리.
즉 십억은 넘었다는 뜻이었다. 돈을 번 동료가 다른 동료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나일처럼 된다고 했잖아. 그러면 아직 2배는 더 가야 해. 난 월급 매달 전부 다 주식 사고 있다. 회사에 인생 걸었어.”
그 말에 동료가 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이대로 있으면 뒤처질 것 같은 위기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대산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만 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런 내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은 외부 협력사. 친척, 가족들이 전부 주식을 매수하고 있었다.
시가총액 400조.
시가총액 450조.
시가총액 480조.
그런 개미들의 노력 덕분인지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코스피 부동의 1위 오성전자 주가인 550조까지 근접한 것이다.
그리고 500조.
오성전자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시가총액 500조가 넘는 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그 시각.
강철은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연속해서 도착한 문자는 모두 시가총액 500조가 넘은 것을 축하하는 문자였다.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곧 오성전자도 뛰어넘을 수 있을 겁니다.
-500조.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산은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겁니다.
대부분이 여러 단체에서 알게 된 재벌 총수들이었다. 문자를 확인 중인 강철을 엘리가 툭 쳤다.
“뭐 하고 있어? 일?”
“하하, 아니. 결혼 축하한다고 문자가 와서.”
“하긴 오빠는 연락 올 사람이 많겠다.”
“뭐, 그렇지.”
결혼 전 엘리는 여러 사람에게서 사업 하는 사람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 그중 하나가 사업을 하면 여러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었다.
엘리가 강철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물었다.
“그러면 앞으로도 바쁘겠다. 이런 여유로운 시간은 이제 끝인가.”
그 말에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진 않을 거야.”
“응? 왜?”
“앞으로 일을 줄이려고.”
“일을 줄여?”
“난 회사 전체적인 것들만 신경 쓰고, 세세한 건 전문 CEO를 새롭게 뽑아서 맡겨야지.”
“아…….”
“이제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엘리의 두 눈이 글썽거렸다. 강철이 저 말을 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
“오빠.”
“처음부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늘릴 생각이었어. 누누이 말했지만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그저 돈을 많이 벌기 위함이 아니니까.”
이내 강철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리고 돈은 이미 엄청나게 벌기도 했고.”
쪽.
결국, 참지 못한 엘리가 강철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 행동에 강철이 엘리를 다시 침대로 거칠게 밀어붙였다.
피지의 라우살라 섬.
허가 없이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기에 더욱 사생활이 철저하게 보장되는 슈퍼리치들의 휴가 공간에 달뜬 신음이 퍼져나갔다.
* * *
비슷한 시각.
허융이 책상 위에 올라온 보고서를 보곤 책상을 탕 내리쳤다.
“언제까지 고객을 뺏기기만 할 겁니까.”
회의실에 침묵이 찾아왔다. 주요 임원진은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얼마 전 나일 인수로 축배를 든 것과 상당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허융이 목소리를 높였다.
“점유율 40% 밑으로 떨어지면 1위 타이틀도 넘어가는 거 모릅니까?”
39%.
현재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의 시장 점유율이었다. 알리바바가 43%였으니 두 회사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알리바바의 점유율은 매일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고, 대산의 점유율은 매일 그만큼 올라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임원진들이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죄송하다는 말만 하지 말고, 해결책을 가져오세요!”
이내 허융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클라우드 서비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일은 온라인 쇼핑에 대한 중국 진출을 공식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었다. 덕분에 쇼핑몰 쪽에서도 알리바바의 점유율이 줄고 있었다.
“쇼핑 쪽 한번 말해보세요.”
“네. 저희는 일단 직매입 제품을 늘리고, 대산으로부터 드론을 매입해서 빠른 배송을 적극적으로 추진…….”
“대산?”
쇼핑 부문장이 입을 다물었다. 허융이 시뻘게진 눈으로 그를 보았다.
“지금 대산의 드론을 구매한다고 했습니까?”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나일의 드론보다 성능이 뛰어난 것이 대산에서 판매하는 택배 드론이라는 건 세상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 이미 저희가 운용 중이기도 하고요.”
새삼스레 무슨 말을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허융이 그 모습을 답답하다는 듯 보았다.
“드론 개발.”
“네.”
“자체 드론은 언제 개발되는 겁니까?”
“……아직 한두 달은 더 있어야.”
그 말에 허융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도대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 건은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최대한 빨리 개발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드론 개발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돈이 있어도 개발자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럼 더 써서 뽑으면 될 거 아닙니까. 500만 위안을 줘서라도 데려다 쓰세요.”
허융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다음 클라우드 서비스 부문장님.”
허융의 부름에 클라우드 서비스 부문장이 흠칫 몸을 떨었다.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두려움이 밀려왔다.
회의가 끝나고.
허융은 여전히 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놈의 대산. 대산.”
“…….”
“대산이 없으면 쇼핑에서도 밀린다니.”
허융은 한참을 씩씩거리며 분을 삭였다.
그런 허융에게 비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약속 시각이 다 됐습니다.”
“알았어. 가지.”
“네.”
오늘 약속은 국가권력 서열 3위인 상무위원장 야오이린이었다. 권력 순위 5위인 차오스보다 2단계나 높이 있는 사람으로 허융은 그를 만나기 위해 인맥을 총동원했다.
그렇게 겨우 마련한 자리.
하지만 시작부터 일이 꼬일 조짐이 보였다.
“언제까지 국가권력에 기대 사업을 진행할 생각인가?”
만나자마자 훅 들어온 펀치에 허융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도대체 나라에서 얼마나 더 지원을 해줘야. 기업이 스스로 이익 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지 묻는 걸세.”
“그건…….”
“지금도 자국 산업 보호 정책에 불만을 가진 나라들이 너무 많아 우리도 감당이 안 되는 실정인데.”
허융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국가권력 3위.
조금이라도 반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 땅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죄송합니다.”
야오이린이 언짢은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인가?”
약간의 염려가 섞인 목소리에 허융은 반전의 기운을 읽었다.
“네.”
“클라우드 아니면 쇼핑?”
둘 다 어렵긴 했다. 하지만 허융은 그렇게 말했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클라우드 서비스입니다.”
살짝 한숨을 내쉰 야오이린이 말했다.
“알았네. 한번 알아보지.”
“감사합니다.”
“이번 딱 한 번만이네.”
허융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네.”
이내 야오이린이 자리를 떠났지만 숙인 허융의 고개는 펴질 줄을 몰랐다.
* * *
중국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은 매년 수십 프로씩 성장하는 폭발력을 가진 곳이긴 하지만 강력한 쇄국정책 때문에 진출하기 어려운 곳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바이두와 합작회사를 세웠고, 여러 관료와 친분을 맺어 사업을 확장시켜 왔다.
하지만.
그 사업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운영 중인 데이터 센터에 보안 점검을 나온다.”
“네. 갑자기 왜 그런 지시가 내려온 것인지 전혀 확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비서의 보고에 강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보안 점검을 하게 되면 데이터를 전부 까볼 테고…… 거기에는 중국 기업들의 영업비밀이 담겨 있는데 그걸 전부 개방하라니…….”
“비밀 보장은 해주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작업을 진행하는 인원이 수십이 넘는데 절대 비밀 보장이 될 리 없습니다. 그게 외부에 퍼지면 회사 신뢰도가 떨어질 테고요.”
강철이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신혼여행에서 복귀하자마자 이런 일이 터지다니…….
고심하던 강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 수 없습니다. 적극…… 협조하라 전하세요.”
“……네?”
“어차피 중국 사업은 이런 위험을 떠안고 시작한 겁니다. 더구나 중국 내 데이터 센터는 중국 기업만 사용하고 있으니 해외 기업에 영향을 미칠 리도 없고요.”
“그렇기야 하지만 회사 이미지에 손상이 갈 위험이 생깁니다.”
“정말 보안 점검으로 끝난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우리 보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니까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강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차피 사업을 철수해야 합니다.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면 끝이 없으니.”
비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얼마 전 서치도 클라우드 서비스를 중국에서 완전철수했더군요. 나일 역시 마찬가지고요. 우리야 탁월한 기술력으로 조금씩 사업을 확장하긴 했지만…… 정 나가라 하면 나가야지 별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일로 사업 철수했을 때 누가 손해일지는 두고 보면 알 겁니다.”
강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한 번 편리함에 맛을 들였는데 그걸 포기하기 쉽진 않을 겁니다. 거기에 기대보는 수밖에요.”
“흠…….”
그런 강철의 생각은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갔다.
-대산이 보안 불시 점검을 당했다면서?
-이거 당에 찍힌 거 아냐. 불안한데…….
-그렇다고 알리바바 쓸 수도 없잖아. 가격만 비싸고 속도는 느린데.
-하긴 그거 썼다가 고객들한테 클레임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휴우…… 이거 어쩐다.
중국에서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 * *
은밀히 전해진 소식에 허융은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대산 쪽 데이터 센터에 대규모 공안 요원들이 출동했단 말이지.”
비서의 입가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네. 보안 점검 차원이라고 합니다.”
“보안 점검…… 보안 점검이라…….”
허융의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 말이 보안 점검이지 탈탈 털다 보면 문제 한두 가지 나오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업정지를 먹이거나 벌금을 먹이거나, 합법적으로 여러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갑자기 당국에서 태도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업계에서도 드디어 대산이 퇴출되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말에 허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군. 아주 좋아.”
“덕분에 최근 저희 쪽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문의를 하는 고객사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아마…… 대산은 곧 중국에서 퇴출될 것 같습니다.”
비서의 보고에 허융의 입가가 귀에 걸렸다. 잘하면 역성장을 멈추고 다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 기회니까. 적자 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세일 진행하라고 해.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선물 하나 준비하자고.”
선물.
허융의 은어로 고위공직자에게 제공하는 뇌물을 의미했다. 비서가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네. 얼마나 준비할까요.”
“큰 거 한 장 정도로 절대 뒤탈이 나지 않는 놈으로.”
“알겠습니다.”
“아마 길게는 진행하지 못할 거야. 보안 점검을 한 달 동안 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진짜 만약의 경우에 점검 결과 큰 문제가 없다면 영업정지까지는 안 갈 수도 있어.”
“그러면…….”
“그러니까 큰 거 한 장 준비해야지. 작은 문제도 크게 부풀리려면.”
“알겠습니다.”
살짝 고개를 숙인 비서가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뒤탈이 나지 않는 놈으로 큰 거 한 장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 * *
중국 바이두 데이터 센터.
그곳에서 수십 명의 공안 요원들이 삼엄한 눈빛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그곳은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가 운영되는 곳이었다.
“철저히 확인해 봐. 보안상에 조금의 문제라도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점검 팀장의 지시에 요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데이터 센터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별문제 없겠죠?”
그러자 그 옆에 있던 그룹사 보안 최고책임자인 홍재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없습니다. 최고 수준의 보안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으니까요.”
하지만 센터장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까지 공안 요원이 출동해 아무 문제 없이 끝난 경우가 없기 때문이었다.
타닥.
타다닥.
고요한 가운데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때.
보안 요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안 돌아가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보안 요원이 손을 들었다.
“팀장님. 엑스툴이 안 먹힙니다.”
“뭐?”
엑스툴.
공안에 근무하는 최고 엘리트들이 만든 보안 점검 프로그램이었다.
“관리자 권한을 부여받아서 프로그램을 돌리려는데 데이터 베이스 서버 접근을 거부당했습니다.”
그 말을 통역을 통해 전해 들은 홍재준이 둘에게 다가왔다.
“아…… 데이터 베이스는 루트 권한만으로는 외부에서 접근이 불가합니다. 자체 방화벽이 있어서요.”
요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팀장을 보았다.
엑스툴.
그건 그 정도 방화벽은 무력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더구나 데이터 센터 안에서 돌린다면 어떤 방화벽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코드가 내장되어 있었다. 그게 막혔다는 것은 상대의 실력이 자신들보다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홍재준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방화벽 꺼드릴까요?”
이번에는 팀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엑스 툴 실행.
방화벽 무력화.
보안 점검 지적.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점검은 지금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지적사항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순서가 처음부터 막혀 버린 것이다.
팀장이 겨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좀 더…… 확인을 해보죠. 방화벽이 있는 상태에서도 보안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니까요.”
홍재준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필요하면 또 불러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팀장이 다시 보안 점검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는 직감했다.
‘쉽지 않겠어.’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비서가 황급히 허융의 집무실로 뛰어들어왔다.
“방금 보안 점검이 끝났는데…….”
“그런데?”
“문제점이 없다고 합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설명을 해봐.”
“공안요원 수십 명이 출동해서 불시 보안 점검을 실시했는데 문제점이 단 하나도 발견이 안 됐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쪽에서 구축해 놓은 보안 시스템이 너무 훌륭해서 배울 점이 많다고…… 공안 보안팀장이 칭찬을 하고 있다 합니다.”
허융이 상소를 토했다.
“……이런 미친.”
아마 야오이린도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저 보안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는 말로 슬며시 흘렸을 것이고, 부하직원들이 알아서 움직일 테니까.
공안의 보안 점검 팀장은 으레 하는 작업인 줄 알고 점검을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안 점검을 벌여 한 건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기업은 없으니까.
허융이 믿기지 않아 다시 물었다.
“정말 한 건도 없었어?”
“있긴 합니다만 주의 정도에 불과한 사안들입니다. 비밀번호 관리나 보안 점검 주기 이행. 보안 점검표 비치 같은…… 시스템 운영에 관해서는 단 한 건도 안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벌금조차도 매길 수 어렵게 됐다고…….”
그 말에 허융이 까드득 이를 갈았다. 이건 자신의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그때.
드르륵거리며 허융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여기까지.
발신자 미확인으로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허융은 그 문자를 보자마자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제는 알아서 하라는 뜻인가…….”
허융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다.
그런 허융에게 비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최근 신시행 CTO의 퇴사 이후 클라우드 서비스 쪽 직원들의 퇴사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어제도 중견 급 개발자 5명이 동반 퇴사했습니다.”
“어디로?”
“신시행이 이직한 대산 클라우드 미국 법인 같습니다.”
“이 자식들이 진짜…….”
퇴사 러쉬.
신입사원들이야 퇴사를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견 개발자는 다르다. 회사를 떠받치는 허리인 것이다. 그들이 없다면 실제 업무를 처리할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연봉을 약하게 주는 건 아닌데 도대체 왜.”
“일단…… 대산의 연봉이 저희보다 20% 더 높습니다. 그리고 과거 나일이나 페이스북. 서치에서 근무하는 것이 개발자들의 로망이었다면 이제는 아이온 그룹이나 대산에 근무하는 것이 그들의 로망이 되었습니다.”
“…….”
“그래서 세계 최고 수준의 개발자들이 끊임없이 그쪽으로 밀려들고 있습니다. 최근 CTO 자리 때문에 저희가 접촉한 하버드, MIT 쪽 인원들도 대산으로 이동한다며 제안을 거절했고요.”
허융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비서가 참담한 표정으로 허융을 보았다.
“……젠장! 젠장!”
허융도 고함을 지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 *
강철은 속보로 들어온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 점검 결과 아무 이상 없다고 합니다. 중국 당국에서도 끝까지 꼬투리 잡을 생각은 아니었는지 문제가 없자 순순히 물러났다고 합니다.”
“큰 문제는 없었던 겁니까?”
“네. 몇 가지 지적사항이 있긴 한데 너무 미미한 거라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그리고 특이사항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쪽 공안 팀장이 홍재준 대표님께 강의 요청을 했습니다.”
“강의요?”
“보안 시스템이 워낙 잘돼 있다 보니 어떻게 구성했는지에 대해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다면서 이런 요청을 해왔습니다.”
“흠…….”
“수락할까요?”
“회사 기밀 사항만 퍼지지 않는다면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을 것 같군요.”
“네. 그럼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일이 일단락되자 강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었던 참이었다.
살짝 한숨을 내쉰 강철이 물었다.
“새로운 CEO 후보군은 정해졌습니까?”
그 말에 비서가 서류를 몇 장 내밀었다.
“여기 후보군입니다.”
강철이 천천히 서류를 보았다. 이미 각 자회사는 CEO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아이온 게임즈를 김봉수가 운영하는 것처럼.
이번에 채용하는 두 명의 CEO는 대산과 아이온 지주사를 운영하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죠.”
“네. 그리고 이건 클라우드 서비스 점유율 현황입니다.”
40%.
드디어 점유율 40%를 달성했다는 보고서였다.
“이러면 알리바바와 차이가 얼마나 되는 겁니까?”
“이제 3% 차이로 좁혀졌습니다. 기획실 예상으로는 앞으로 3개월 내로 점유율 역전 현상이 일어날 거라 합니다. 이미 신규 가입자는 대부분 대산 쪽으로 오는 상황이고, 기존 고객들 역시 마이그레이션 서포트 서비스 덕분에 빠르게 이동 중입니다. 덕분에 이용자가 너무 많아 인력 확충을 해달라고 합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20% 정도 더 충원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회의를 마치고 강철은 CEO 후보군 검토에 나섰다. 서류에는 과거 경력 사항에서부터 주변 평판까지 아주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대산의 주가는 오르고 있었다. 매달 보고되는 클라우드 서비스 점유율은 철저한 대외비였다.
하지만 스마트 머니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대산의 주식을 매수했다.
3%.
2%.
5%.
매일 1, 2%이지만 꾸준히 상승했다. 500조의 1%면 5조다. 하루에도 대산의 가치는 수조 원이 올라간 것이다. 그렇게 올라가던 주가는 550조에서 멈췄다.
오성전자.
그걸 넘어선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의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애플의 발표가 그 심리를 완전히 뒤집었다.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로 80% 이상 이전 하겠다.
공식 루트를 통해 발표된 내용으로 인해 저항선이던 550조를 뚫고 단숨에 600조에 안착했다.
아이온 게임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상 캡슐은 불티나듯 팔려나갔고, 전 세계에서 카운터 VR 게임의 가맹점이 되겠다는 곳이 넘쳐났다. 실적은 매월 사상 최고를 경신했고, 그건 바로 주가에 반영되었다.
5,000억 달러.
5,500억 달러.
6,000억 달러까지.
파죽지세로 달려나간 것이다. 덕분에 강철은 1,000조가 넘는 기업의 수장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이온 게임즈나 대산이 거기에서 멈출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온 게임즈 적정가치 : 1조 달러.
대산 그룹 적정가치 : 1조 달러.
시가 총액 2조 달러를 예상하는 증권가 보고서들이 속속 흘러나온 것이다.
* * *
알리바바 클라우드 서비스 개발팀.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루하오는 최근 계속되는 야근에 죽을 맛이었다.
“이거 오늘도 야근해야겠네.”
“왜 문제 생겼어?”
루하오가 고개를 흔들었다.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해결이 안 되니까.”
“성능?”
루하오가 거뭇거뭇한 다크써클이 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산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 마소 쪽 OS로 아무리 최적화해도 대산이랑 벤치마크를 돌려보면 30%가 차이 나. 이게 좁혀지질 않네.”
그 말에 동료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이 작업에 투입된 지도 몇 달이 넘어가지만, 작업에 진전이 없었다.
동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도 이직이나 할까? 대산이랑 합작한 바이두 쪽에서 클라우드 서비스 인원 엄청 뽑던데.”
하지만 루하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꼭 그래야 하나……. 그래도 우리 회사에서 나일까지 인수했는데 결국 우리가 이기지 않을까?”
“네가 직접 만들어 봐서 알잖아. 지금 기술로는 우리회사에 미래가 없는 거.”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나일을 인수했는데…….”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
한때 세계 1위였던 회사를 인수했다.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고난이 끝나고 봄이 올 거라 믿었다. 나일은 그 정도의 저력이 있는 회사니까.
“나일도 언제 나일이냐. 이강철이 DVM을 출시한 이후에 판이 완전히 뒤집힌 거 몰라?”
“…….”
동료가 한층 목소리를 낮추었다. 거의 속삭이듯 루하오에게 말했다.
“사실 난 이력서 냈다. 요즘 많이 뽑긴 하는데 경쟁률이 너무 세서 서류 통과도 어렵다 하더라고.”
“그, 그래?”
“어. 안 그러면 여기서 계속 야근이나 하다가 해고당할 것 같아서. 너도 알잖아. 우리 쪽 점유율 계속 떨어진다는 소문 도는 거.”
루하오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알리바바 클라우드 서비스.
그 점유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회사에서 공식 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지만, 직원들은 전부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잘 생각해. 미국 나일 연구소에서도 퇴사자 속출하고 있다고 하니까.”
그러나 둘의 대화는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팀장이 루하오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루하오. 내가 시킨 거 다 했어?”
“방금 코드 커밋 했습니다.”
“일단 확인할 테니까. 퇴근하지 말고 남아.”
“네.”
급히 답한 루하오가 입을 다물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도무지 일에 집중되지 않았다.
‘하긴 신시행 CTO님이 퇴사할 정도면 말 다 한 건가…….’
신시행.
루하오에게 신시행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알리바바 클라우드 서비스를 여기까지 키운 실력자. 그런 실력자가 퇴사했다는 건 회사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리라.
모니터를 보고 있는 그의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비단 루하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알리바바 클라우드 서비스 부문에 근무하고 있는 대부분 직원의 생각이었고, 그건 곧 매달 퇴사로 이어졌다.
“……또 퇴사하겠다.”
“네.”
비서의 보고에 허융이 으드득 이를 갈았다.
클라우드 서비스 개발자는 시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특히나 대산과 합작 회사를 세운 바이두는 공격적으로 관련 개발자를 채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중견 직원들을 넘어 실무자급인 대리, 사원들의 이직 러쉬가 벌어지고 있었다.
“벌써 70명이 퇴사했는데 또 퇴사한다고?”
비서가 살짝 마른침을 삼켰다. 분노한 허융의 표정이 당장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것처럼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 당장 다음 달만 20명의 퇴사 요청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서비스를 운용할 인력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연봉 인상해 주고, 복지 늘려서 인력 최대한 확충해. 이대로 사업 접을 게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허융이 잔뜩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서비스 업그레이드는 도대체 언제 되는 거야? 일주일 전에 완료한다 하지 않았어?”
“개발팀 말로는 신시행 CTO가 퇴사하는 바람에 시기가 조금 늦춰졌다고 합니다.”
“어차피 CTO가 직접 개발하는 것도 아니잖아. 만드는 건 실무진들이 하는 거 아냐?”
비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신시행의 경우는 설계에서부터 직접 개발에 참여하며 많은 부분을 공여했다 합니다. 덕분에 직원들 사이에서 인망도 높은 편이었고요. 그래서 직원들이 퇴사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허융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신시행을 어떻게 해서든 잡았어야 했나. 그런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퇴사한 사람. 이제는 끝난 일이었다.
후회를 털어낸 허융이 물었다.
“고객 변동 추이는?”
“들으셨겠지만 애플의 대규모 이동 이후…… 고객 이동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애플이 대산 쪽으로 이동하는데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고객들 사이에 퍼져 나가면서…….”
비서는 끝까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허융이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려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줄어들고 있다?”
“……네.”
“이 추세가 이어지면 다음 주 대산에 점유율 역전을 당할 것 같은데…….”
“맞습니다.”
허융이 주먹을 꽉 쥐었다. 손등에는 푸르스름한 힘줄이 오돌토돌 돋아났다.
“그런데도 우리한테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안 좋은 소식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만약 여기서 고객 이탈률이 5%만 더 늘어나면 나일도 적자로 변하게 됩니다.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대비해 만들어둔 데이터 센터를 놀리게 돼서.”
승자의 저주.
그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일은 대규모 서비스를 하는 만큼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이 없으면 그 센터는 놀아야 하고, 그건 곧 적자를 의미했다.
“잡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객들 잡으라고 해!”
“알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비서가 조용히 집무실을 나왔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다.
* * *
비슷한 시각 이탈리아 샤르데냐.
환상의 섬으로 이름 날 만큼 유명한 곳으로 매해 여름이 되면 엄청난 수의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곳이기도 했다.
그 해변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커다란 요트가 한 대 정박해 있었다. 바로 강철이 휴가를 위해 대여한 요트였다.
이희진이 요트에 올라서며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우와~ 대박이다. 진짜. 이거 TV에서나 보던 건데. 엄마 여기 와봐. 요트 안에 수영장도 있어.”
신이 난 이희진이 최용희를 이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보던 강철이 엘리의 옆에 서 있는 중년 여성에게 말했다.
“장모님도 둘러보세요.”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하하, 편하게 생각하고 즐기세요. 생각보다 얼마 안 해요.”
하지만 엘리의 어머니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하룻밤에 10억.
이 요트에서 하룻밤 자는 값이었다.
엘리로부터 들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 가격이 부담스러워 쉽사리 발을 떼기 힘들었다.
그러자 강철이 엘리에게 눈빛을 보냈다.
‘장모님도 구경시켜 드려.’
‘고마워.’
‘이제 가족인데 고맙긴.’
이내 엘리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저기 뱃머리 가보자. 엄청 좋아 보인다. 엄마 사진 찍는 거 좋아하잖아.”
엘리가 잡아끌자 어머니가 못 이기는 척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뱃머리 너머로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엘리의 어머니도 못 이기는 척 걸음을 옮겼다.
“그, 그럼 가볼까.”
“어서 가자.”
그렇게 일행은 요트를 돌아다녔다.
3단 구조로 되어 있는 요트는 14명이 묵을 수 있는 손님 숙박 시설과 30명의 선원을 수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만큼 큰 규모의 요트는 하루 10억 그 돈값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요트 안에서 최고급 요리사의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희진이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는 순간 흥분해 목청을 높였다.
“오오! 랍스터에 스테이크까지!”
랍스터.
스테이크.
캐비어.
푸아그라까지.
없는 요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메뉴판에는 세계 여러 진미가 가득했다.
이희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철에게 물었다.
“오빠. 이거 아무거나 시켜도 돼?”
“그래도 되는데 단 먹을 만큼만 시켜.”
“당연하지. 누굴 돼지로 아나. 엄마는 뭐 먹을래?”
최용희가 메뉴판을 뚫어져 보았다. 한글이 하나도 없는 메뉴판이 그녀를 당황 시킨 것이다.
그걸 눈치챈 강철이 말했다.
“엄마는 채소 좋아하지?”
“그, 그래.”
“그럼 채소랑 고기 적당히 섞여 있는 메뉴로 시킨다.”
그 말에 최용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장모님도 그렇게 시킬까요?”
“그, 그게 좋겠네.”
그렇게 주문이 끝나고.
직원들이 음식을 가져왔다. 이희진은 음식을 한 입 먹을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야 이거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엄마도 한입 먹어봐. 진짜 대박이다.”
이희진의 권유에 최용희도 고기를 하나 넣었다.
사실 입이 그리 고급이 아니라 엄청나게 맛있는 건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들이 열심히 번 돈으로 준비한 것이라는 걸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맛있는구나. 사돈도 드세요.”
“네. 사돈.”
그렇게 엘리의 어머니 김숙희도 고기를 한 점 먹었다.
뭐랄까 처음 먹어보는 맛이랄까. 하지만 거북하지는 않았다.
“맛있구나.”
그 말에 강철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열심히 돈을 벌어 가족들에게 대접하니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식사시간이 시작되었다. 식당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일품이었다. 여기서 밥을 먹으면 생쌀을 씹어 먹어도 맛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그건 강철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여기 진짜 좋다.”
엘리의 말에 강철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지? 앨런 파인이 한번 가보라고 알려주더라.”
앨런 파인.
현 서치 CEO이자 서치를 창업한 사람.
강철의 입에서 그런 사람의 이름이 스스럼없이 나왔다. 처음에는 엘리도 적응이 잘 안 되었지만, 이제는 서서히 적응하고 있었다.
“그랬어? 지난번 신혼여행 장소는 데이비드가 소개해 줬다고 했잖아.”
데이비드.
나일의 창업자이자 CEO로 아이체크 인수 건을 계기로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이제는 종종 사담을 나눌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그치. 그 사람도 좋은데 많이 알더라. 결혼한다고 하니까. 추천해 주더라고.”
그 말에 엘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문득 그녀의 머릿속으로 결혼식 날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 이분은 앨런 파인. 현 서치 CEO.
-이분은 데이비드 딩킨스 나일 CEO.
-그리고 이분은 애플 CEO 또 이분은 너도 알지? 넷플러스 CEO.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회사의 CEO들이 총출동했었다.
그때 엘리의 긴장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새삼 엘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과 결혼했는지 실감했다.
잠시 후.
잡념을 털어낸 엘리는 시선을 돌려 창가를 보았다. 바닷물에 반짝이는 햇살이 마치 다이아몬드 같았다.
“진짜 좋다.”
강철 역시 바깥을 바라보며 넋을 놓았다.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서 밥을 먹고 있으니 지금까지의 고생이 전부 보답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도.”
엘리가 그런 강철의 팔에 몸을 기댔다. 불그스름한 노을이 장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 * *
강철이 휴가 중에도 주가는 열심히 올라갔다. 놀고 있는데도 돈이 벌리는 신기한 상황인 것이다.
예상치 못한 주가 상승에 증권가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타깃 프라이스를 더 올리겠다고? 그러면 펀드에도 더 많이 넣겠다는 말이잖아.”
“네. 목표주가를 100만 원으로 40% 상향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대산 시가총액이 얼만지는 알지?”
“1,000조.”
그 말에 팀장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부하직원이 한 번 더 팀장을 설득했다.
“이거 진짜 1,000조 갑니다. S증권 최 과장님이 괜히 1,200조 지른 게 아니에요. 우리도 TP(목표주가) 올리고 펀드에 더 편입해야 합니다.”
“야, S증권 최 과장이 그렇게 TP 올리고 펀드 편입해서 팀장한테 얼마나 깨졌는지 몰라? 그리고 지금 주가가 600조인데 천조?”
하지만 부하직원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 나스닥에 상장된 아이온 게임즈가 시장에서 받는 PER이 90을 넘었습니다.”
“그거야 워낙 VR 기술의 강자이기도 하고…….”
직원이 그 말을 끊고 들어갔다.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는요?”
“그, 그야. 클라우드 서비스의 강자지.”
직원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시네요. 나일도 기술력에서 밀린다고 판단해 사업부를 알리바바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알리바바 상황이 어떤지 아십니까?”
“어떤데?”
“대규모 퇴직 러쉬.”
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퇴직? 누가?”
“그쪽에 근무하는 제 친구 놈 말에 의하면 신시행 CTO에서부터 휘하 직원들이 대규모 이직을 했다 합니다.”
“그게 뭐 어쨌다고.”
부하직원이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팀장님. 신시행 CTO는 알리바바 클라우드 서비스 초기부터 일해온 관련 전문가입니다. 그가 이직했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십니까?”
“……설마.”
“네. 그 회사에 미래가 없다고 보는 겁니다. 지금 알리바바 주가 보십시오. 매일같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서비스 고객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대산에 대한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고요.”
“흠…….”
“곧 점유율 50%를 넘기는 건 일도 아닐 겁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 70%도 가능할 거라 봅니다.”
그 말에 팀장이 두 눈을 부릅떴다.
“70%? 그건 좀 비약한 거 아니냐.”
직원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도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입니다. 이미 서치의 클라우드 서비스는 자사 이용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입니다. 나일은 알리바바에 서비스를 넘겼고, 알리바바는 승자의 저주로 인해 곧 적자 상황에 접어들 것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그러면 경쟁자는 마이크로소프트만 남는데.”
“마소는 상대가 안 된다?”
“물론입니다. 이미 우리 IT 서비스 팀이 거래 시스템을 대산에서 운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하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뭔데?”
“대산이 짱이다.”
“…….”
“다른 서비스는 절대 못 쓴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대산 쪽으로 왕창 옮긴 거고요.”
“그러니까. 네 말은 그런 이유들로 목표 주가를 상향해야 하고, 펀드에도 대거 편입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대산은 충분히 많아. 오성전자 만큼 편입하고 있으니까.”
“그것보다 많이 넣어야 합니다. 무조건.”
열정적인 직원의 말에 결국 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그렇게 확신이 있다면 한 번 마음대로 해봐.”
“알겠습니다.”
펀드 매니저는 바로 트레이더에게 주문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대산의 잠정 영업 실적이 발표되었다.
-MoM +5%.
미국이나 대만 기업의 경우 매월 잠정 영업실적을 발표하고, 월 배당을 지급하는 기업이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 매월 잠정 영업실적을 발표하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번 월부터 월 배당 실시를 결정했습니다.
-이번 월 배당은 시가배당율 0.16%로 이뤄질 것입니다.
영업실적 발표와 함께 시가의 0.16%에 달하는 배당금을 발표했다.
년으로 치면 1.92%에 이르는 배당금으로 성장하는 기업에서는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회사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돈이 투자에 소요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주주친화적인 모습은 주가를 끌어올리기 충분했다.
-전일 대비 +10%.
월 배당 정책을 발표하자마자 주가는 로켓처럼 날아올랐다. 그 광경을 본 펀드매니저는 당연히 쾌재를 불렀다.
“팀장님 보셨죠?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거기에 배당 상향까지. 삼 박자가 아니라 오 박자가 갖춰진 거.”
그 말에 팀장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월 배당 하는 기업이 지금까지 있었나.”
“없죠. 오성이 최초로 분기 배당을 시작했지만 월 배당의 경우는 미국에서도 그렇게 많진 않습니다.”
“대산이…… 대단하긴 하네. 월 배당이라니. 이렇게 대산이 먼저 시작해 버리면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정말 월마다 들어오는 배당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생겨나겠어.”
“그렇게 돼야죠. 그게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니까요.”
“하여간 너 대박 났겠다. 보니까. 오늘만 10% 오르던데.”
펀드매니저가 두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제가 테슬라는 놓쳤지만 대산은 안 놓칠 겁니다. 어디 얼마나 가는지 끝까지 지켜보려고요.”
그 말에서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 * *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한 강철은 간단한 업무 보고로 일과를 시작했다.
“지시하신 대로 월 배당 계획 발표했습니다.”
“앞으로도 배당금은 별도기준 순이익의 20% 내에서 집행하도록 하세요. 이제 클라우드 서비스는 성숙 산업이라 투자할 곳도 많지 않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CEO 건 관련해서 천준호 팀장에게 한번 문의를 해봤습니다. 고민을 해보겠다 했고, 오늘까지 연락을 주기로 했습니다.”
“데이터 센터 추가 건설 건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유럽, 미국, 일본에 각 1곳씩 추가 건설 시작했습니다. 인텔, 오성전자, VK 반도체 등과 협상을 벌이는 중이고요. 아마 금년 중으로 아무리 되고 물량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서류를 살피던 강철이 물었다.
“지난번 말했던 자체서버 제작 건은요.”
자체서버.
페이스북이나 서치에서는 그걸 만들어 데이터 센터를 운용하고 있었다. 대산에서도 현재 개발 중에 있었다.
“그 건은 앞으로 3달 정도가 더 걸린다고 합니다. 아무리 ARM 기반의 CPU라지만 내부 설계가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라.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라.”
“흠…… 그러면 관련 인원을 더 확충하도록 하죠. 브루스 캘러라고 얼마 전 알게 된 분이 있는데 우리 쪽 일에 관심을 보이더군요.”
“브루스 캘러라면…….”
브루스 캘러.
인텔, AMD, 애플, 서치 등등 세계적인 기업에도 너도나도 데려가려 하는 하드웨어 설계. 특히나 컴퓨터의 두뇌인 CPU 설계의 천재였다.
“미국에서 컨퍼런스 참가했다가 알게 됐습니다. 한번 같이 일을 해보고 싶다 해서 우리 쪽에 이런 일을 진행 중이라 하니 한번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다 하더군요.”
“만약 그분이 오시면 일이 빠르게 단축될 겁니다.”
“연봉은 대략 20억. 거기에 주식을 스톡옵션으로 제공하는 조건으로 먼저 말해보세요. 더 요구하는 게 있다면 최대한 수용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비서가 나가고, 강철은 천준호를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대표님 부르셨다고.”
“앉아보세요.”
“네.”
천준호가 자리에 앉고, 강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리턴 언어 개발은 어디까지 됐습니까?”
“현재 버전 8.0까지 올라갔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도 14% 이상 차지하면서 자바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고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DVM 3.0 프로젝트는요?”
“그것도 성과가 아주 좋습니다. 전 세계에 사용되는 휴대전화가 대략 50억 대로 추정되는데 저희 DVM 플랫폼이 설치된 휴대전화만 15억대가 넘습니다. 기획팀에서 현재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고민이 한창인 것으로 파악 중입니다.”
이번에도 강철은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통해 획득한 코인으로 빅트리 결제 하는 것도 문제없습니까?”
천준호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답했다. 처음 대표실을 올라오며 낯빛에 서려 있던 긴장감은 사라지고 없었다.
“네. 홍재준 대표님 덕분에 아주 정상적으로 작동 중입니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코인 거래만 해도 벌써 월 100억을 넘었습니다. 이제 곧 리민스라는 이름으로 부여되는 포인트가 전 세계 윌마트 오프라인 지점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그것까지 된다면 월 이용금액 500억은 단숨에 넘을 것으로 기대 중입니다.”
그리고 몇 번을 더 강철이 질문을 던졌지만, 천준호는 막힘 없이 답했다.
강철이 그런 천준호를 흐뭇한 표정으로 보며 말했다.
“회사 일에 대해 모르는 게 없군요.”
“하하, 뭐, 이 정도는 알아야죠. 대부분 제가 손댄 프로젝트이니.”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천 팀장님에게 CEO 자리를 제안한 겁니다.”
그 말에 천준호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CEO라니…… 그 말을 듣기는 했지만, 아직 제가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해서…….”
그 말을 강철이 잘랐다.
“저는 30살이 되기도 전에 시작했던 일입니다. 이제 30대 중반을 넘은 천 팀장님이라면 충분합니다.”
“…….”
“말씀하신 대로 지금까지 대산의 시스템에 천 팀장님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습니다. 그걸 가장 잘 이해해서 유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천 팀장님이고요.”
천준호가 또 한 번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대산의 CEO라…….’
한 번쯤 꿈꿨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이었고, 이렇게 급작스럽게 올 건 아니라 생각했다.
대산.
이제는 시가총액 600조 원을 넘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회사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거대 기업을 운영할 자질인 내게 있을까…….’
막대한 책임감이 밀려왔다. 자신의 어깨에 있는 직원만 해도 수만 명이다. 자신의 결정 하나에 수만 명의 삶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었다. 천준호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제안은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천 팀장님이 제격입니다. 제 눈을 믿으신다면 더 고민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잘해볼까. 그걸 고민해 주세요.”
강철이 너만 믿는다는 표정으로 천준호를 보았고, 그 눈빛을 본 천준호도 더는 거절만 할 순 없었다.
강철이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도와 드릴 테니.”
그렇게까지 말하자 천준호도 마냥 거절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정말 한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이내 강철이 손을 내밀었고, 천준호가 그 손을 꽉 잡았다.
“천 팀장님만 믿겠습니다. 아니, 이제 CEO인가요.”
CEO.
막상 그 말을 듣자 천준호의 입가에서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새어 나왔다.
* * *
[CEO 교체 공고]
어느 날 대산 사내 홈페이지에 올라온 인사공고에 직원들은 일시적으로 패닉에 휩싸였다.
이강철이 뒤로 물러나고, 새로운 CEO가 선임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몇 개월 전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 강철이 아직 젊기는 하지만 좀 더 기술적인 부분에 집중하고자 뒤로 물러나겠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직원들이 놀란 건 그 이름 때문이었다.
[천준호]
[30대 중반]
[경력 10년]
나이 어린 팀장이 바로 CEO로 올라섰기 때문이었다. 그런 우려는 직원들만 하는 게 아니었다.
-전일 대비 –5%.
-전일 대비 –2%.
-전일 대비 –3%.
새로운 CEO가 발표되자마자 주가에 파란색 불이 켜졌다. 그게 며칠이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천준호의 취임 일성은 파란불을 다시 붉게 만들기 충분했다.
-온톨로지 이용자의 리민스 코인 전 세계 윌마트 지점 이용 방안.
윌마트.
빅트리와 나일이 온라인 쇼핑을 양분하고 있다면 윌마트는 오프라인 시장의 절대 강자였다.
DVM을 통해 획득한 리민스 코인을 전 세계 윌마트 지점에서 이용할 수 있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대산의 주가는 반등했다.
전일 대비 –5%에서 +7%까지.
흔히 주식은 기대감을 먹고산다고 한다. 천준호가 사람들에게 그 기대감을 심어준 것이다.
거기에 천준호가 불을 지폈다.
-온톨로지 서비스로 확보된 이용자를 이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
그 안까지 발표되자 사람들은 천준호의 이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DVM 1.0 개발 참여.
-빅트리 개발 참여.
-리턴 언어 개발 참여.
-온톨로지 서비스 핵심 개발 참여.
개발 참여, 개발 참여…….
대산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 혁혁한 공을 세웠고, 강철과 보조를 맞춰온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생뚱맞은 인물이 아주 적합한 인물로 변신하는 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려갔던 주가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 올라가 있었다.
그렇게 회사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순간.
강철은 아이온 그룹이 있는 청담동에 도착했다.
청담역.
그 역에서부터 반경 500m 내에 있는 수많은 빌딩에 아이온 그룹사가 입주해 있었다.
아이온 게임즈.
리민스.
아이온 미디어.
아이온 벤처투자.
…….
등등 여러 간판이 빌딩에 걸려 있었다. 이제는 청담이 아니라 아이온 거리로 사람들에게 불리는 곳이기도 했다.
차에서 내린 강철이 아이온 게임즈 본사로 들어섰다. 이미 나와 기다리고 있던 김봉수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네. 이제 이렇게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하시는 데 방해될 텐데.”
“하하, 아닙니다. 이렇게 대표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제 일인데요.”
둘은 담소를 나누며 빌딩의 위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김봉수가 바로 일 이야기를 꺼냈다.
“카운터 VR의 반응이 엄청납니다. 벌써 캡슐 기기만 1,000만 대를 팔았습니다. 게임 이용자는 그보다 많고요.”
천만 대.
엄청난 숫자였다. 개당 가격이 3,500달러였다. 가상캡슐로만 35조 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이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영업이익률이었다.
“더구나 캡슐 기기 판매 영업이익이 30%니 그것만으로도 벌써 영업이익이 10조를 넘겼습니다. 거기에 가맹점 수익금. 워리어 VR까지 합쳐지면 올해 수익만 15조가 될 것으로 예상 중입니다.”
15조.
이 숫자가 천 조를 향해가고 있는 아이온 게임즈의 시가총액을 정당화시켜 주고 있었다.
김봉수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더구나 전 세계에 가맹점이 5,000여 곳으로 늘었습니다. 그 가맹점 추이를 보니 지난번 말씀드린 복합문화쇼핑 공간을 건설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지난번 말씀하신 VR 체험 테마파크 말입니까?”
“하하, 네. 디즈니랜드를 뛰어넘는 아이온 랜드. 가상캡슐이라는 좁은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상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김봉수가 준비한 서류를 꺼내 설명을 이어나갔다.
대산 X 아이온 게임즈.
쇼핑과 VR 컨텐츠를 합친 것으로 복합문화쇼핑 공간으로 입장하는 순간부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획 중이었다.
이를테면 옷을 살 때 굳이 밀폐된 공간에서 입고, 벗어보지 않아도 VR로 그 옷을 입었을 때의 내 모습을 볼 수 있다거나, 초등학생들이 공룡시대 체험을 할 수 있다거나.
그런 식으로 쇼핑과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강철이 보기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강철이 한창 설명에 매진하고 있는 김봉수에게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런데 아이온의 CEO 자리를 맡아보는 건 어떻습니까.”
“특히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건 ‘카운터 아레나’입니다. 그곳에서 아이온에서 출시하는 게임들을 완벽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네, 네?”
설명을 이어나가던 김봉수가 고개를 모로 꺾으며 강철을 보았다.
“아이온 게임즈가 아니라 아이온 그룹 전체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아이온 그룹.
그 밑에 수많은 자회사가 존재했다. 물론 그중에서 아이온 게임즈가 가장 볼륨이 크긴 했지만 최근 블록체인 기반 결제시스템인 리민스가 온톨로지 서비스 덕분에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다.
놀란 김봉수가 되물었다.
“그, 그룹을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장 적임자는 김 대표님이십니다. 저는 한발 뒤로 물러나 기술개발에만 힘쓰려 합니다. 대산에서 한발 뒤로 물러난 것처럼요.”
“그래도 전 아직 경험도 능력도 많이 부족한데…….”
“대산에 천준호 팀장이라고 아십니까?”
김봉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온 게임즈 관련해서 함께 개발 관련 이야기를 나눈 적이 많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들어서 아시겠지만 이번에 대산 CEO가 됐습니다.”
이미 뉴스를 통해 들었다. 개발 능력은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했다.
강철이 지긋이 김봉수를 보며 말했다.
“전 김 대표님도 충분히 그 정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개발 쪽은 천 대표보다 조금 못할지 몰라도 경영능력은 탁월하시니까요. 김 대표님이 아이온 게임즈를 맡은 이후로 회사 가치가 수십 배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김봉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도 한때는 개발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사회에 나와보니 저보다 날고 기는 사람이 많더군요. 대표님을 비롯한 천 대표님도 실력이 상당하시고.”
강철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김 대표님도 차고 넘치는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는 경영능력이 더 뛰어납니다. 아마 천 팀장님보다도 낫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그 말에 김봉수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니 이제 그룹 전체를 운영해 보라.”
“네. 저는 좀 더 개발 쪽으로 포지션을 옮기려 합니다.”
잠시 고민하던 김봉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 대표님을 믿습니다. 대표님이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죠.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하, 네. 그럼 아이온 게임즈를 운영할 후임자는 대표님이 추천해 주세요. 크게 무리만 없으면 그 안 그대로 가져갈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이내 강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김봉수가 그 손을 꽉 잡았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이온 그룹을 이끌어갈 새로운 CEO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 *
비슷한 시각.
강철이 후계자를 정하며 착착 일을 진행해 나갈 때 알리바바의 허융은 승자의 저주가 무엇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점유율 하락으로 인해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 부문이 적자 전환했습니다. 문제는 이 추세가 쉽사리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적자 폭이 더 커지게 됩니다.”
비서의 보고에 허융이 두 눈을 감았다. 그런 허융에게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전에 인력을 감축하거나 데이터 센터 매각하는 방안을 지금부터 검토해야 한다고 합니다.”
“…….”
“이 건은 대표님의 결정이 필요한 건으로…….”
비서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허융이 주먹으로 의자 손잡이를 내려쳤기 때문이었다.
“그만.”
비서가 입을 다물자 허융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결국, 사업을 접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시기라는 뜻 아닌가.”
“아직 그 정도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규모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이번에도 비서는 중간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게 그거지. 세계 1등이 되려고 나일을 인수했는데 1위 자리를 내주고, 사업 규모를 축소하라니.”
“……죄송합니다.”
“적자는 얼마나 되는데?”
“현재는 1억5천 위안 수준입니다. 다만 이 추세가 앞으로 계속 이어지면 10억 위안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10억 위안.
한화로는 1,700억이 넘는 돈이다. 알리바바로서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거기서 끝이야?”
비서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이건 앞으로 1년 전망치를 뽑은 것으로 5년 치를 보면 100억 위안까지 올라갑니다.”
100억 위안이라는 말에 허융이 두 눈을 감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 정도면 앞으로 알리바바 본업이 위험할 수 있는 금액이기 때문이었다.
“업그레이드 개발은?”
“……앞으로 석 달 더.”
한 달 더.
두 달 더.
석 달 더.
벌써 수개월을 주었지만 일은 도무지 진척이 없었다.
“못 한다는 뜻이군.”
“현재 서비스되는 시스템보다 성능이 빠르게는 만들겠지만 대산 보다는 느리다고 합니다. 최종 목표인 대산보다 더 빠르게 만드는 건 현재로서…….”
“불가능하다.”
“네. 그게 개발팀의 의견입니다.”
“휴우…….”
허융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일만 인수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뛰어난 기술자들과 그들이 가진 특허로 단숨에 대산을 뛰어넘을 것으로 생각했다. 속으로 점유율 1위인 서비스를 매각하는 데이비드를 멍청한 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멍청한 건 자신이었다.
‘이게 승자의 저주인가…….’
이대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떠안고 있다가는 본업까지 망칠 수 있었다.
고심하던 허융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데이터 센터 매각부터 알아보지. 인력 감축안도 마련해서 가져와 봐.”
“알겠습니다.”
얼마 뒤.
회사에서는 대대적으로 인력감축 계획 및 데이터 센터 매각안을 발표했다. 그건 곧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대산에 패배했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알리바바의 주가는 올라갔다.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난 것이라 시장이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대산의 주가도 상승했다. 이제 확실하게 클라우드 사업 부문 세계 1위임을 시장이 인정한 것이다.
650조.
700조.
750조까지.
오성전자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대산이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