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56화 (56/59)

4장 시가총액 2조 달러(3)

클라우드 서비스를 매각하고, 신사업에 진출한다는 소식에 하락 추세에 있던 나일의 주가가 순식간에 반등했다.

전일대비 +15%.

근 1년간 하락 추세에 있던 주가가 대규모 거래량과 함께 장대 양봉을 세우며 상승으로 반전한 것이다.

그걸 확인한 데이비드가 씁쓸히 중얼거렸다.

“결국, 시장에서는 우리가 클라우드 서비스를 접는 게 맞는다고 판단하고 있었군요.”

함께 있던 비서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건 여지없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데이비드가 비서를 보며 물었다.

“클라우드 서비스 매각 문의는 왔습니까?”

“현재까지 알리바바, 마이크로 소프트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 곳이 중국 기업.

나머지 2곳은 미국 기업이었다.

“가장 높은 금액을 쓴 회사는요?”

“알리바바입니다.”

그걸 들은 데이비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스스로 들어오는군.’

데이비드가 생각하기에 클라우드 사업은 대산으로 완전히 재편된다. 아마 알리바바는 과거의 자신이 IBM을 인수할 때처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걸 인수해 점유율을 키운다. 하지만…… 돈 낭비에 불과해.’

대산이 바이두의 사업 부문을 인수해 중국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해 있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최고 입찰가를 써낸 곳과 협상 시작해 봅시다.”

아마 천문학적인 가격을 써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은 IBM의 클라우드 관련 특허까지 대량 보유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가격을 써내고도 이익을 내지 못한다는 건.

‘망한다는 뜻이지.’

생각해 보니…… 알리바바가 인수해서 망하는 게 데이비드에게는 이득이었다.

인터넷 쇼핑.

그 세계를 과점하고 있는 것이 나일, 빅트리 그리고 알리바바였다.

만약 알리바바가 망하게 된다면 그 포지션을 자신들이 차지할 수도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알리바바가 자신들의 사업을 인수해야 하는 이유가 뚜렷해졌다.

데이비드가 다시 비서를 찾았다.

“흠…… 협상팀에 최대한 알리바바가 인수할 수 있게 유도하도록 지시하세요. 그쪽이 우리에게도 이득일 것 같으니. 이왕이면 인터넷 쇼핑 경쟁자가 사라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 말씀은…….”

“승자의 저주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절대 상대는 모르도록 하고요.”

“네.”

데이비드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이군요.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는 건.”

“그런데 기분은 좋아 보이십니다.”

“도전은 언제나 설레는 일입니다. 그 기분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어요.”

“대표님이라면 꼭 성공할 겁니다.”

“하하, 네. 그리되도록 만들어야지요.”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흐뭇한 표정으로 데이비드를 보았다.

그가 처음으로 데이비드를 만났을 때 자신만만했던 그 모습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분명 성공할 겁니다.’

그에게는 성공 DNA가 새겨져 있으니까.

* * *

주가 상승은 나일만의 일은 아니었다.

-나일 클라우드 사업 매각 추진설.

회사에서는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지 않고 있지만 그게 들리는 것만으로도 대산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왜냐하면, 나일의 철수는 대산의 강력함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현재 시장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회사가 대산이다. 그런 와중에 나일이 사업에서 철수한다는 건 그런 상대에게 꼬리를 말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부적으로 확인해 드릴 사항은 없습니다.

나일에서는 지속해서 확인 사항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시장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달랐다.

이강철의 아이체크를 인수하면서 나일은 클라우드 사업에서 철수. 이강철은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분야 진출 제한. 이런 모종의 약속이 오갔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대산이 세계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컨센서스가 형성되었다.

덕분에 대산의 주가는 또 한 번 고공 행진했다.

전일 대비 +5%.

전일 대비 +4%.

전일 대비 +7%.

7거래일 연속상승하면서 300조를 뚫고, 350조까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오성전자의 현재 주가가 500조였다.

150조 차이.

하지만 사람들은 그 정도 차이는 금세 좁혀질 거로 생각했다.

그건 강철의 생각이기도 했다.

“150조라…….”

강철도 가끔 회사 시세를 확인하곤 한다. 코스피에서 2위인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성과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그 차이가 좁혀진 것이다.

“이 정도 차이면 온톨로지, 클라우드 서비스 수익 증가에 따라 충분히 좁혀지겠어. 거기에 차기 게임이 성공적으로 런칭하면…… 아이온 게임즈의 주가도 상승할 테고 그러면…… 오성전자 정도는 넘어서겠군.”

나스닥에 상장된 아이온 게임즈.

그 회사도 신작 게임 출시 소식에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IRG +5%.

IRG는 나스닥에서 부여한 주가 명 태그로, 아이온 게임즈를 의미했다.

블리자드.

EA스포츠.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사들을 뛰어넘어 시가 총액 120조를 기록 하고 있었다.

만약 앞으로 출시될 차기작이 성공을 거둔다면 200조까지는 무난할 것이리라.

그렇게 된다면 두 회사 시가총액을 합쳐 500조에 달한다. 강철이 소유한 다른 회사들의 주가까지 합치면 대략 550조가량이다.

엄청난 돈이었지만 사실 잘 실감이 나진 않았다.

잡념을 마무리한 강철이 모니터에 집중했다.

게임의 이름은 카운터.

워리어 VR이 LOL의 상위 호환 버전이라면 카운터는 배틀 그라운드의 상위 호환 버전이었다. 실제 총을 들고 VR기기를 착용한 채 필드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이 게임이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이유는 현실과의 일치율이 한층 더 올라갔다는 점에 있었다.

-완벽한 그래픽.

-가상 캡슐 제작으로 완벽한 후각 체험 구현.

-생생한 사운드.

-뛰어난 현장감.

특히 후각을 구현했다는 점이 시장의 인정을 받았다.

향긋한 꽃 냄새.

퀘퀘한 건물 내부.

비릿한 피 냄새.

적절한 진동까지.

VR기기를 쓴 채 모형 총을 들고 캡슐 안에서 게임을 진행하면 마치 전장에 있는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강철은 그 게임이 좀 더 최적화되어 작동하도록 코드를 살펴보고 있었다. 더 현실감 있게 더 빠르게 게임이 작동하도록.

밤늦은 시간까지 강철의 작업은 계속되었다.

* * *

비슷한 시각 청와대.

국정원장의 보고에 대통령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결국, 못 만들겠다고 했단 말인가?”

“네. 자신은 절대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번 더 이런 요청을 해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도 했습니다.”

마치 매 맞고 온 아이가 부모에게 이르듯 국정원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허 참. 가만히 있지 않겠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돈 좀 벌었다고 뭐라도 된 것처럼 행세하더군요.”

그 말에 함께 있던 비서실장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뭐가 된 건 맞습니다. 코스피 기준으로 시가 총액 2위.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그의 회사들까지 합치면 오성전자에 버금가는 회사를 굴리고 있으니까요.”

비서실장이 나선 건 혹여나 대통령이 이강철을 핍박하는 허튼 생각을 할까 봐서였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다른 재벌들은 감옥에 간다고 해도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지만 대산이나 아이온은 다르다. 그가 전문 경영인이자 핵심 개발자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건 맞는 말이지. 그가 운영하는 회사가 글로벌로 인정받고 있으니.”

하지만 국정원장은 자신의 수모를 이대로 둘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교만한 자세로 정부에 협조하지 않는 이를 이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정부 정책에 반하는 목소리를 낼 위험도 있고요. 국민 여론도 이강철 쪽으로 기운 마당에 그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일견 타당한 소리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비서실장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가 충북에 드론 공장을 건설해 준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국정원장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당신이 국정운영에 부담이야.’

그 눈빛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국정원장이 눈빛을 피하며 괜한 헛기침을 했다.

“흠…… 흠흠.”

대통령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드론을 정 못 만든다고 하니 입실론 부대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하지. 이강철 건은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고.”

그러나 국정원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자신이 당한 수모가 있는데 일이 이대로 마무리된다는 것이 영 마땅찮았다.

“그렇지만 국정원 자체 조사 결과에 의하면 트리스에 사용된 부품과 해당 드론에 사용된 부품이 거의 같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강철이 만드는데 분명한데 왜 거짓말을 하는 건지…….”

하지만 국정원장은 그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만합시다.”

“……죄송합니다.”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런 엄청난 전쟁 무기를 자신이 개발했다고 떠들고 다닌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설령 정말 이강철이 만들었다고 해도 아마 말하지 못했을 겁니다. 미국이 가만히 있지도 않았을 거고요. 아무리 우방이라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무기가 생기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사람들이 아니죠.”

국정원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대통령은 이럴 때 한마디를 했다가는 더 큰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가 마지못해 겨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합시다. 미국 측에 입실론 부대 운영 허가하고, 제반 사항 준비하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대답하는 국정원장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국정원.

대한민국 정보를 총괄하는 기관으로 그곳에 수집되는 정보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곳의 수장인 국정원장이 싸늘한 표정으로 부하직원에게 지시했다.

“이강철에 대해 조사 좀 해봐.”

그 말에 대내 정보 1팀 팀장이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되물었다.

“……네?”

“이강철 대표 말이야. 드론을 만든 게 그 인간이 분명한데 계속 시치미를 뗀단 말이야. 자신은 만들지 못한다고.”

“아…….”

“지금 나라의 국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제 잇속만 챙기려고 거부를 한다는 게 말이 돼? 안 되잖아.”

“그, 그렇기야 하지만 민간인 사찰이 밝혀지면 파급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더구나 이강철 대표라면 세계적인 기업가인데…….”

국정원장이 싸늘한 표정으로 부하직원을 보았다.

“목숨 걸고 북한 잠입도 하는데 그 정도도 못 해?”

부하직원은 한 번 더 뜸을 들였다.

“할 수야 있지만 요즘 워낙 세상이 시끄럽다 보니…….”

“내가 책임질 테니까. 진행해. 그 돈을 버는데 뒷구멍이 깨끗할 리 없을 테니까.”

부하직원이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돌아서는 직원의 표정이 과히 좋지 않았다.

이강철.

그는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조사하는데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 * *

허융.

그가 알리바바의 전문 경영인으로 회사에 합류한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그런 그에게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은 없었다.

“하하, 우리가 나일의 클라우드 사업을 인수하다니. 정말 꿈 같은 일 아닙니까?”

반대편에 있던 회사의 부사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습니다. 전부 대표님 덕분입니다. 이제 알리바바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 인수 기념 회식 자리였다. 회사의 주요 임원진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임원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기에 IBM의 클라우드 기술 관련 특허도 다수 얻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걸 잘 접목하면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서비스가 더 빠른 성능을 낼 것입니다.”

허융이 불콰하게 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좋습니다. 좋아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안색이 어두운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회사의 CTO로 기술적으로 가장 해박한 ‘신시행’이었다. 그는 유일하게 이번 인수를 반대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저는 여전히 걱정됩니다.”

허융이 그런 신시행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하하, 그런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어차피 기술은 조금만 받쳐주면 됩니다.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 점유율까지 합치면 우리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포션이 47%가 됩니다. 거의 독점이나 마찬가지예요.”

47%.

나일과 알리바바가 차지하는 비중을 합쳐 나온 수치였다. 허융을 자신만만하게 만드는 수치이기도 했다.

허융이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CTO님도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나일이나 우리 쪽에서 다른 서비스로 마이그레이션이 쉽지는 않을 거라고, 그러면 기존 고객 이탈은 거의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 사이 우리 개발진과 나일의 개발진이 노력해서 서비스를 업그레이드시키면 됩니다. 저는 우리 개발진을 믿습니다. 더구나 나일의 우수한 인력들이 투입되는데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신시행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일.

그곳은 클라우드 서비스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 거기를 인수한다면 분명 기술적으로 진일보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서 스물스물 불안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일도 DVM 적용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건 곧 대산보다 기술적으로 떨어진다는 말인데…….’

나일의 기술 우위.

그 메리트가 떨어진 것 같은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나일이니까. 분명 돌파구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한 한편으로 찬성한 이유는 상대가 바로 나일이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 기술자들의 로망이자 이상향.

그곳이 바로 나일이 IT 업계에서 가지는 위상이었다.

신시행이 잡념을 털어내려 앞에 놓여 있던 고량주를 한 잔 마셨다. 독한 알코올이 식도를 적시며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허융이 그런 신시행에게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개발만 하는 샌님인 줄 알았는데 잘 마시는군요. 자 한 잔 더!”

CTO.

그 말은 곧 허융의 아랫사람으로 회사 생활을 잘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신시행이 바로 잔을 들자 허융이 술을 한 잔 떨어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의 일만 생각합니다. 무려 나일을 인수한 겁니다. 걱정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신시행이 또 한 잔의 술을 털어 넣었다. 그러자 희미한 정신 너머로 걱정이 사그라들었다.

“맞습니다. 잘될 겁니다.”

결국, 그도 마음을 틀었다.

* * *

알리바바의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 인수는 전 세계의 모든 이슈를 덮을 만큼 큰 사건이었다.

-알리바바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 부문 인수 결정.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대규모 사채 발행.

-승자의 저주가 될 것인가 승리의 발판이 될 것인가.

무려 2,000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

한화로 쳐도 200조가 넘는 금액이었다. 그 뉴스를 본 강철이 픽 헛웃음을 터뜨렸다.

“알리바바가 썩은 동아줄을 잡았군요.”

함께 있던 천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알리바바에서 관련 업무를 보던 직원이 이직했는데 오자마자 그러더군요. 그곳에 미래는 없었다고.”

“거기에서도 DVM을 쓴다고요?”

“네. DVM 2.0에 자체적으로 개발한 중천 OS를 사용하는데 최적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합니다. 그것도 제대로 개발을 못 하면서 나일을 인수하다니…….”

천준호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강철이 그런 천준호를 보며 말했다.

“나일을 인수하면 그걸 타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나일이 가진 특허에서부터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개발한 클라우드 전용 OS가 합쳐진다면 기술적으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고 보면 데이비드 대표가 확실히 사업적 수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대표님과 대적하면 패망의 지름길이라는 걸 알고 피해 가는 걸 보니.”

그 말에 강철이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옛날 천 팀장님 맞습니까? 이런 아부성 발언을 하다니…….”

그러면서 놀란 눈으로 천준호를 보았다.

“하하하, 이 정도는 해야지요. 대표님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건데.”

천준호의 현재 위치는 핵심기술개발팀의 팀장. 그가 지금까지 받은 스톡옵션 금액만 200억을 넘어간다.

200억.

천준호는 상상도 못 했던 금액이었다. 덕분에 강철에 대한 믿음은 존경을 넘어 종교 수준이었다.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 생각하면…… 정말 상상도 못 할 모습이군요.”

천준호가 살짝 몸을 떨며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그때 대표님 손을 안 잡고, 1년 뒤에 이직했으면…….”

아마 그냥저냥 개발자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연봉을 아무리 많이 받는다 해도 1억 정도? 그 정도만 해도 감사하며 지내긴 했을 것이다.

“하하, 아닙니다. 천 팀장님이 열심히 해준 덕분이죠.”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합니다. 하지만 다른 회사에서 열심히 한다고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겁니다.”

천준호가 존경 어린 눈빛으로 강철을 보았다. 살짝 부담스러워진 강철이 화제를 돌렸다.

“그럼 우리는 또 열심히 일해볼까요?”

“네. 말씀하신 카운터 쪽 VR 캡슐 최적화 코드를 살펴봤습니다. 먼저 커널 쪽 코드부터 설명 드리겠습니다.”

천준호가 표정을 일변하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핵심 기술 팀의 팀장답게 말에는 막힘이 없었다. 그간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2시간가량의 토의가 끝나고.

강철이 지적한 1차 문제가 마무리되었다. 다시 집무실로 올라온 강철은 기분 나쁜 소식을 들어야 했다.

“국정원 쪽에서 제 뒷조사를 하고 있단 말입니까?”

-네. 저희 쪽에 잡힌 정보니 확실할 겁니다.

수백조 원대 대기업의 수장.

그 위치에 있으면 여러 정보들이 알아서 들어온다. 투자를 원하는 세계 각국 정상에서부터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불특정 다수까지.

특히나 강철은 미국의 전투 드론을 만들어주고 있다. CIA에서 특별관리하고 있는 대상이기도 했다.

“갑자기 저를 왜…….”

-전투 드론 관련 내용 때문인 것 같습니다. 관련 정보에 한층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이내 뚝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전화를 끊고 나자 슬금슬금 화가 피어올랐다.

“이 사람들이 진짜…….”

아마 드론 때문이 확실할 것이다. 얼마 전에 국정원장까지 다녀갔으니.

“이걸 어떻게 한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은 뒷조사에 불과하지만 혹여 자신들의 가족을 건드릴 수도 있을 테니까.

이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무작정 ‘내 뒷조사하고 있어? 하지 마.’ 그렇게 한다면 증거도 없으니 오리발을 내밀게 빤했다.

삑.

인터폰을 누른 강철이 비서실장을 불렀다.

“심 비서 잠깐 올라와 보세요.”

억눌린 분노를 느낀 비서실장은 급히 강철의 집무실을 찾았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청와대를 발칵 뒤집는 일이 벌어졌다. 비서실장이 경제수석에게 물었다.

“그 사람. 갑자기 왜 그런 답니까?”

“모르겠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우리가 더 잘 알지 않냐면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 빅트리 물적 분할 후 나스닥 상장 추진.

-대산 지주 회사 체계로 변경. 알짜회사는 전부 미국으로?

-이강철. 기업 이민을 준비하나.

연일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내용 때문이었다.

대산에서 알짜배기는 온라인 쇼핑 및 클라우드 서비스다. 그걸 분할해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온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 경제에도 과히 좋은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다니…….”

“제가 받은 느낌은 뭔가 마음이 단단히 틀어진 것 같았습니다.”

“흠…….”

비서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척을 질 일이 없었다. 오히려 관계가 돈독해져야 한다. 지금까지 부여한 세제 혜택만 해도 어마어마했으니까.

“혹시 짐작 가시는 일 없습니까?”

경제수석의 물음에 비서실장의 머릿속으로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국정원장이…….’

최근 청와대에서 이강철에 대한 적대감을 토로했다. 비록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긴 했지만 청와대를 나설 때의 눈빛이 잊히질 않았다.

‘한번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어.’

비서실장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보좌관에게 말했다.

“국정원장 좀 보자고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수십 분이 지나고.

비서실장이 국정원장을 마주한 채 앉아 있었다.

“이강철 대표가 갑자기 나스닥 상장 결정을 언론에 흘렸습니다. 아이온 그룹사들 상장만 해도 한국에 치명적인 손실이었는데 대산 까지 상장된다면…… 상당한 국부유출이 이뤄지겠죠. 뭐 아시는 일 없습니까?”

순간

국정원장의 이마에서 식음 땀이 흘러내렸다. 그것만 봐도 비서실장은 알 수 있었다.

“똑바로 대답해야 합니다. 만약 문제 될 만한 게 나오면 자칫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순간 국정원장은 생각했다.

‘이건 나와 정보팀장밖에 모르는 일이다. 밖으로 새어나갈 구멍이 없어.’

그런 확신이 있기에 거짓을 말할 수 있었다.

“없습니다.”

비서실장이 실눈을 뜨며 국정원장을 노려보았다.

“사실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그저 통상 업무만 하고 있습니다. 이강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때.

비서실장의 핸드폰이 드르륵거리며 진동했다.

“어.”

“뭐?”

“CIA에서 직접?”

“알았어.”

뚝.

전화를 끊은 비서실장이 국정원장을 노려보았다.

“방금 어디에서 연락 온 지 아십니까.”

당연히 알고 있었다. CIA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비서실장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OP를 통해 이강철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그제야 국정원장이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비서실장을 마주 보았다.

“OP는 국정원이 운용하는 조직이고요. 그런데도 모르겠다는 말씀입니까?”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갔다.

“모르면 직무유기. 알면 직권 남용. 둘 중 하나 선택하세요.”

국정원장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 * *

서울 시내 모처.

강철이 비서실장과 국정원장을 동시에 만났다. 그 둘을 만나며 강철도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빠르게 반응이 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걸 깬 건 비서실장이었다.

“하하, 두 분 사이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 이렇게 직접 찾아오게 됐습니다. 이제 오해를 풀고, 화해하시죠.”

강철이 국정원장을 보았고, 마침 국정원장도 강철을 보고 있었다. 국정원장이 괜한 헛기침을 했다.

“흠흠…… 지난번 일은 제가 좀 과하게 반응한 면이 있었습니다. 너무 격하게 반응했던 것 같군요.”

뒷조사.

그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지난번 대화를 문제 삼을 뿐이다. 그러나 강철의 굳어진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그게 아닙니다.”

그 말에 비서실장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나 다 알고 있어…….’

민간인 사찰.

이게 밝혀지면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 더구나 그게 거대 기업의 총수라면 문제는 더 커지리라.

재벌 기업도 조사당하는데 일반 시민들은 어떨까? 그런 공포감이 퍼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비서실장은 먼저 발뺌해 보았다.

“하하, 무슨 말씀이신지.”

“그런 이야기 하실 거면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사과를 받으나 안 받으나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하지만.”

강철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쳐다보았다.

“저는 사무실에 앉아서 펜대만 굴리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 각국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교류하고 있어요. 물론 그건 한국 내에서도 마찬가지고요.”

비서실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하하, 물론입니다. 대산이나 아이온 그룹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하니까요. 그 정도는 저희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일을…….”

강철이 일부러 말을 흐리자 국정원장이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그런 국정원장을 강철이 유심히 보며 말을 이었다.

“하셨습니까.”

꿀꺽.

목울대를 꿀렁거리는 것이 훤히 보였다. 강철은 한 번 더 찔러보았다.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에 계시니 당연한 일입니까? 그런 일은 불법으로 알고 있는데요.”

불법이라는 말까지 나오자 비서실장의 표정도 변했다.

‘이 정도면 확실해. 하지만 증거는 없다. 끝까지 모른 척하고, 다른 일로 사과하는 수준으로 봉합하는 수밖에.’

비서실장이 급히 입을 열었다.

“하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원장님 어서 사과하고 마무리하시지요.”

그제야 정신 차린 국정원장이 입을 열었다.

“아, 네. 그때 일은 정식으로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입바른 말 한 번 듣고자 이 자리에 온 건 아녔다.

“일의 선 후가 틀렸습니다. 그때 일보다 더 큰 일이 벌어졌어요.”

비서실장은 직감했다.

‘이대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말이군. 그렇다면…….’

준비해온 수가 하나 있었다.

“최근 카운터라는 게임 출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카운터.

강철이 신규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게임이었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도 관련 수정을 하기도 했고.

“네. 그런데요.”

“그와 관련해서 정부에서 가상 캡슐 100대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걸 필요로 하는 곳은 한국 정부만이 아니었다.

-카운터에 러브 콜 보내는 전 세계 국가들.

-가상 캡슐 내에서의 전투 훈련. 실제보다 더 현실감 있다.

-전직 군인들의 잇따른 호평.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다.

게임으로 만들었지만, 군사 훈련용으로도 상당히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물건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이미 펜타곤에서는 선주문 1,000여 대를 했다는 소문이 흘러나오는 기기이기도 했다.

강철은 그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미 선주문 물량이 오버 되었습니다. 정부의 100대를 소화 하려면 6개월 정도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네?”

“미국, 중국, 스위스 여러 나라뿐만 아니라 자체 수요 조사 결과 일반 게이머들의 수요도 엄청납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어떤…….”

비서실장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준비해 온 비장의 한 수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 주문 5,000대. 계약금의 절반은 미리 지급하는 조건이라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파격적인 조건에 비서실장이 입을 다물었다. 강철이 그런 비서실장을 보며 말했다.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그럼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죠. 원장님의 사과는 잘 받았습니다. 그때의 무례는 이 자리에서 잊겠습니다.”

강철이 그 둘을 천천히 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 일’은 아직 제 뇌리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방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둘은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잠시 후.

강철이 떠나고, 국정원장이 까득 이를 갈았다.

“저 건방진 태도 보셨습니까? 제가 이러니까. 열불이 터지는 겁니다. 보나 마나 저 돈을 벌 때까지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했을 텐데…….”

비서실장이 그 말을 끊었다.

“그만하게.”

“실장님…….”

국정원장 그는 비서실장의 대학 후배였다. 덕분에 과거부터 서로 교류가 있었고, 둘 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도 가깝게 지내왔다.

비서실장은 오늘처럼 답답한 적이 없었다.

“이미 검찰과 국세청에서 조사한 일이야. 별일 없음이 나오지 않았나. 그런데 자네가 조사해서 더 새로운 일이 나올 것 같아?”

“사생활이 더러울 수도 있지 않습니까.”

“도덕적으로 파보겠다. 만약 저쪽에서 자네를 파고 있다면? 깨끗하다 장담할 수 있나?”

“저야 뭐 이미 검증되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수 개가 넘어.”

“…….”

“문제는 CIA도 이강철을 비호하고 있어.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국정원장은 여전히 침묵했고, 비서실장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여차하면 미국으로 가면 그만이야. 이미 대산이나 아이온의 매출에서 내수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해. 나라를 배신한다는 그런 고리타분한 말은 하지 말게.”

살짝 흥분한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이런 멍청한 후배인지 알았다면 처음부터 국정원장 자리에 추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강철이 정말 미국으로 간다면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거야. 그가 고용하고 있는 인력만 수만 명이 넘으니까. 그게 정부 때문이라는 여론이 터져 나오면 어떻게 될지 생각은 해봤나?”

결국, 국정원장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지 말고, 이 일 어떻게 수습할지나 생각해서 가져오게.”

이내 ‘휙’ 소리가 나도록 비서실장이 자리를 떠났다. 국정원장은 애꿎은 탁자를 내려치며 화를 삭였다.

* * *

그렇게 자리를 뜬 강철이 도착한 곳은 청담의 한 웨딩 샵.

유명 연예인이나 재벌가 결혼식을 주로 담당하는 곳으로 소문이 난 장소였다. 이미 그곳에는 엘리가 도착해 강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대표님!”

“오빠!”

첫 번째는 엘리.

두 번째는 나은.

세 번째는 강철의 동생 이희진이었다. 그중 이희진이 도끼눈을 뜨며 강철을 보았다.

“오늘 드레스 고르는 날인 거 몰라? 이런 날 늦으면 어째. 이거 새신랑 자세가 영 아니네.”

강철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이 좀 있어서. 미안. 엘리야. 미안해.”

“괜찮아. 일이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아쉬움이 조금 묻어 있었다. 강철은 그 표정으로 보자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다짐이 떠올랐다.

-일이 어느 정도 성공하면 가족에게 더 신경 쓰자.

과연 지금 자신의 모습은 어떤가. 그 결심이 무색한 모습이었다.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다가 더 중요한 걸 놓칠 수 있었다.

‘게임까지만 하자.’

거기까지만 하고, 후계자를 뽑아 하나씩 넘겨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자신은 회사의 역점 사업에 대해 개발만 하고.

그런 잡념에 휩싸인 강철을 누군가가 툭 쳤다.

“오빠?”

이희진이였다.

“화났어?”

“…….”

“에이, 또 왜 그래. 일하다 보면 조금 늦을 수도 있지. 내가 농담한 거야. 그런 거로 표정까지 굳어져서는.”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었나 보다.

“그런 거 아니다. 네가 맞는 말 하긴 했지.”

생각지 못한 반응에 이희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 응?”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어.”

그 말에 나은이 휘파람을 불었다.

“오, 올~ 대표님 그 말씀은 지금 일보다 우리 엘리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 맞나요?”

강철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 모습에 엘리의 볼이 달아올랐다.

나은이 이희진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오오! 희진아. 너희 오빠 킹왕짱 멋있다. 대박.”

이희진은 낯선 이강철의 모습에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다행히 그런 사담은 길지 않았다.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직원의 소리가 들렸다.

-옷 준비됐습니다.

그 말에 일행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강철이 한창 결혼 준비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카운터 개발은 착착 진행되었다.

-최초의 배틀로양 VR 게임.

-최초의 가상 캡슐 도입 VR 게임.

-최초의 현실감 넘치는 가상 현실 게임.

최초의…….

최초의…….

최초라는 타이틀만 수 개가 붙었다. 오픈베타 테스트 신청에만 순식간에 100만 명이 모였고, 그중 1,000여 명에게만 게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 1,000여 명은 게임을 하며 실시간으로 본사로 피드백을 주었고, 아이온 게임즈에서는 그 부분을 다시 업데이트해 게임을 완성해 나갔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아이 비디오에서 활약하는 대형 크리에이터였다. 그 크리에이터들이 아이 비디오에 게임 영상을 올렸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건 정말…… 엄청난 게임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해보시면 아마 입이 떡 벌어지실 겁니다.

-전장에 있는 듯한 긴장감 때문에 게임을 오래 할 순 없을 겁니다. 이 게임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체력입니다.

-놀랍다는 수식어는 부족합니다. 이건 그야말로 게임의 신기원을 이루었습니다.

각종 찬사가 쏟아졌다.

그건 곧 대중들의 기대감을 한층 더 키워주었고, 바로 아이온 게임즈의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시가총액 2,500억 달러.

한화로 270조가 넘는 금액임에도 주가는 멈추지 않고, 질주했다. 흔히 PER가 높으면 고평가되어 있다고 한다.

미국 나스닥 회사의 평균 PER가 40이다. 테슬라의 PER는 1000으로 평균보다 25배가 높았다. 그만큼 해당 회사에 대한 성장성에 사람들이 많은 기대를 본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이온 게임즈의 PER도 순식간에 80을 넘어섰다.

그리고.

아이온 게임즈는 그런 테슬라의 뒤를 잇겠다는 듯이 아직 게임을 출시하지 않았음에도 주가는 거침없이 상승했다.

3,000억 달러.

3,500억 달러.

4,000억 달러까지.

클라우드 서비스를 영위하는 대산의 시가총액을 넘어섰음에도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 * *

타앙!

탕탕탕!

캡슐 안에 들어간 강철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때마다 모형 총에서 발생한 반동이 어깨를 밀어냈다.

휴우…….

매일 출근 전 최고의 트레이너에게 코치를 받고 있다. 그렇게 단단히 쌓은 체력임에도 캡슐 안에서 2시간을 버티기 힘들었다.

강철이 땀에 흠뻑 절은 몸으로 캡슐에서 나왔다.

“이거 물건이긴 하네요.”

벌써 수년째 아이온 게임즈의 대표를 맡는 김봉수가 환한 표정으로 강철을 맞이했다.

“엄청나지 않습니까? 저도 몇 판 해보고 놀랐습니다. 이 근육들로도 오래 버티질 못한다니까요. 그 생생한 현장감에 심장이 어찌나 쫄깃하던지.”

“하하…… 네. 정말 엄청납니다.”

강철도 엄청나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만큼 카운터는 워리어 VR의 기술을 또 한 번 뛰어넘었다.

“아직 오픈 베타가 진행 중인데 예약 주문만 100만 건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걸 맞추기 위해 베트남 공장이 풀 가동 중이고요. 2차 예약으로는 300만대를 받을 예정입니다.”

가상 캡슐.

워리어 VR은 머리에 쓰는 VR 기기만 판매했다. 하지만 카운터에서는 한층 더 생동감을 자극하기 위해 캡슐까지 제작하게 된 것이다.

전부 뉴욕랩스와 드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주리룬 그리고 리얼리티디바이스를 인수한 애플의 합작품이었다. 물론 김봉수의 역할도 작지 않았다.

“고생 많았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그리고 들으셨습니까?”

“어떤…….”

“어젯자로 아이온 게임즈의 시가총액이 350조를 돌파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김봉수가 존경의 눈빛으로 강철을 보았다.

시가총액 350조.

김봉수는 자신이 만든 게임회사가 이렇게까지 성장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게임회사의 수장이 될지도 몰랐다.

당연히 김봉수도 돈방석에 앉았다. 재산이 조 단위를 넘어갔으니 방석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강철이 그런 김봉수를 보며 말했다.

“앞으로 텐센트를 넘어서는 기업이 될 겁니다.”

그 말에 김봉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 대표님을 만났을 때 하셨던 말씀이군요.”

“하하, 제가 그랬었나요.”

사실 잘 기억이 나진 않았다. 지금까지 김봉수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눴기에.

하지만 김봉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강철이 보여준 패기가 너무 충격적이기에.

“텐센트에 게임회사를 넘기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텐센트를 넘어서겠다고.”

그 말에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말을 한 것 같기도 했다.

김봉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때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허튼소리가 아니었군요.”

“하하, 허튼소리라 생각하셨다고요? 전 진심이었는데…… 이거…….”

강철이 지긋이 김봉수를 보았다. 김봉수가 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지금은 아닙니다. 저도 강철교로 전향했습니다.”

“강철교요?”

“요즘 회사에 생긴 종교입니다. 강철을 믿어라. 그를 따르면 만복이 함께할 것이니라.”

김봉수는 농담처럼 진심을 이야기했다.

실제로 강철을 믿고 회사에 투자를 한 사람들은 엄청난 이익을 거두고 있었다. 한 다리 건너면 10억을 벌었으니, 직급이 좀 되는 사람은 100억을 번 사람도 수두룩했다.

“앞으로 이게 출시되고 나면 텐센트를 넘어설 겁니다. 그러면 아직도 시가총액이 2배는 더 돼야 하고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우리 회사 주식을 사라고 하세요.”

강철의 자신만만한 말에 함께 있던 테스트 요원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분명 사라고 한 거지.’

‘콜 사인 떨어졌다. 바로 사자.’

‘아이온 게임즈 가즈아!’

하나 같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비단 아이온 게임즈 직원들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대산 지금 사야 함.

-앞으로 두 배는 더 간다고 했음.

-대표님이 자기만 믿고 따라오면 부자 만들어준다고 했다.

-믿어라. 강철교 신자라면 응당 따라야 한다.

‘잡스’라는 직장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이었다. 대산 직원들도 앞으로 대산 주가가 더 올라간다며 주식 매수를 독려하는 글을 올린 것이다.

김봉수가 그런 강철을 보며 말했다.

“네. 대표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 * *

반면.

승자의 저주가 어떤 것인지 절절히 느끼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또 역성장했다고?”

“네. 신규 고객 유입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고객들의 마이그레이션 작업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타 서비스에서 넘어오면 대산에서 인건비 정도만 내면 전적으로 책임지고 마이그레이션을 진행해 주겠다는 발표를 한 덕분에…….”

그 말에 허융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래도 나일의 데이비드와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그쪽에서 아이체크를 인수하면서 클라우드 서비스를 매각할 테니 그때까지만 마이그레이션 서비스 발표를 하지 말아 달라고.”

비서가 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 발표를 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태블릿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외국 유명 신문사에서 속보로 보낸 기사가 떠 있었다.

-Daesan, Migration service support.

이제 세계적인 기업이 된 만큼 관련 뉴스도 글로벌하게 퍼지고 있다.

그 기사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허융의 낯빛이 서서히 붉게 변해갔다.

“이 자식들이 정말…….”

설마 두 회사가 짜고 친 고스톱에 자신이 당한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고 고개를 저어보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자기 생각과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격을 내려서 고객을 잡을까요?”

기술에서 앞서지 못하면 가격이라도 싸야 한다. 하지만 비서의 의견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지금도 대산 서비스가 더 싸잖아.”

“…….”

“확실하게 하려면 대산보다 단가를 낮춰야 하는데…….”

“그러면 적자입니다.”

“하아…….”

허융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알고 인수하긴 했다. 천문학적인 돈을 쓰면서 그 정도는 파악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단점은 단시간 내에 극복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이 수준을 유지하면 서비스는 여전히 흑자였고, 들어오는 돈을 R&D에 투자하면 그 정도 기술쯤은 금세 따라잡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기술격차는 생각보다 따라잡기 힘든 것이었다.

한숨을 멈춘 허융이 물었다.

“CTO 올라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잠시 후.

알리바바 클라우드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는 CTO 신시행이 허융의 집무실로 올라왔다.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앞으로 2달 후면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성능은 확실해요?”

허융의 표정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났다. 벌써 2달째 기존 클라우드 서비스의 성능 업그레이드 작업이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확실하긴 한데…….”

신시행이 말을 흐렸다. 그 이유를 알기에 허융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대산에 비해서는 부족하다.”

“네. 마이크소프트의 클라우드 전용 OS를 적용해도 대산과의 벤치마크에서 30% 정도 성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옵니다. 최적화를 위해 개발진들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허융이 그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끊어버렸다.

“노력만 하면 뭐합니까. 결과를 가지고 와야지.”

이번에는 신시행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시하는 발언에 기분 좋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시행이 겨우 표정을 수습하고 답했다.

“죄송합니다.”

“결국, 2달 후에도 대산에 비해서는 성능이 떨어진다는 뜻이군요.”

“…….”

“나일의 그 수 많은 특허를 적용한다 해도 성능이 떨어진다.”

허융의 말이 칼날이 되어 신시행을 파고들었다.

“…….”

“나일이라는 세계적인 기업을 인수해도 이 정도라니. 그쪽이 세계적인 기업이 아니었던 겁니까. 우리 실력이 떨어지는 겁니까?”

신시행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대산이 생각보다 더 뛰어난 겁니다.’

하지만 그대로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그저 같은 말만 반복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만 하지 말고…….”

이번에는 허융이 당황했다. 신시행이 품에서 봉투를 하나 꺼냈기 때문이었다.

“네. 앞으로 그러려고 합니다.”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저는 처음부터 말씀드렸습니다. 대산의 기술은 나일을 인수한다고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 이상을 만들어낼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사표를 낸 이상 동네 아저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신시행의 입에서는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그런 신시행을 보는 허융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이러고 나가면 앞으로 이 업계에 발 디딜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지금 중국에 알리바바와…….”

“그래서 외국으로 갈 생각입니다.”

허융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오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드릴 테니.”

신시행.

중국 최고의 대학인 칭화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였다. 알리바바에 입사하자마자 여러 프로젝트를 성공시켰고, 그만큼 빠르게 승진해 CTO 자리까지 올랐다.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인재인 만큼 허융도 쉽사리 놓아주기 힘들었다.

하지만 신시행의 결심을 되돌릴 순 없었다.

“죄송합니다. 인수인계는 확실히 해놓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신시행이 사무실에서 나갔다. 허융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 문을 바라보았다. 이내 비서를 불러 말했다.

“어디로 가는지 알아봐.”

“네.”

* * *

리얼리티 디바이스.

애플에 인수된 이후 아이온 게임즈의 성장과 함께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었다. 그 성장에 또 한 번의 변곡점이 찾아왔다.

가상 캡슐.

아이온 게임즈와 협업으로 제작한 가상 캡슐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선주문만 100만대가 넘게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애플은 성장이 정체되어 있다는 오명을 벗고, 새로운 성장 엔진을 장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덕분에 대기권을 뚫었던 주가는 아이온 게임즈와 함께 우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건 곧 협력을 한층 강화해야 할 이유이기도 했다.

“대산 클라우드 이용 비율을 70%까지 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대산에서 이다음 출시할 게임에서도 우리를 1차 협력 업체로 선정할 가능성이 커질 테니까요.”

“그러면 나일 쪽에 있는 물량의 절반을 또 대산으로 몰아줘야 할 텐데…… 마이그레이션 비용도 엄청날 테고.”

“최근 알리바바가 나일을 인수하면서 이강철이 마이그레이션 지원이라는 특별 서비스를 발표했습니다.”

“그걸 이용하면 비용은 거의 없다?”

“네.”

“흠…….”

“가상 캡슐에 들어가는 M1 칩 개수가 엄청나게 늘 겁니다. 이 정도는 제공해야 협상 명분이 생깁니다.”

부하직원의 말에 애플의 CEO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대산과 협력해야 할 때다. 하물며 나일의 CEO인 데이비드도 이강철과 협력하려 애쓰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합시다.“

”네. 바로 공식 발표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발표는 알리바바의 주가를 끌어내리고, 대산의 주가를 끌어올렸다.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의 가장 큰 고객이 떠나가는 소식이기 때문이었다.

* * *

3,500달러.

가상캡슐의 최종 출시가격이었다. 그런데도 초기 물량 100만대가 사전 예약만으로 팔려나갔다.

35억 달러.

한화로 3조8천억이 넘는 매출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가상캡슐을 독점 판매하고 있는 빅트리 운영팀에 긴장감이 완연했다.

“서버 증설은 어떻게 됐어?”

“지금 50대까지 늘렸습니다.”

“야 그냥 한 100대 할당해 달라고 해. 지난번에도 보수적으로 잡았다가 접속자 수 제한했던 거 기억 안 나냐.”

“그렇긴 한데 서버 운용 쪽에서 최근 애플이 우리 쪽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을 결정하면서 타사에 제공할 자원도 부족하다면서 난색을 보여서요. 50대도 겨우 할당받았습니다.”

그 말에 팀장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자식들이 진짜. 가상캡슐이 얼마나 잘 팔리는지 모르나. 벌써 세션 유지하는 애들이 평소 5배가 넘는데.”

그 말에 부하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6배 넘었습니다. 화면 리프레시 요청도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어요.”

“알았어. 내가 직접 전화해 볼게.”

빅트리 운영팀장이 씩씩거리며 전화기를 들었다.

카운터 VR 전용 가상캡슐은 오직 빅트리에서 단독 판매된다. 덕분에 전 세계의 게임 이용자들이 아침부터 빅트리에 접속하고 있었다.

“어, 나야.”

“우리 50대. 더 할당해 줘. 어차피 잠깐이면 되. 지난번에도 5시간 만에 다 팔렸으니까. 딱 그 시간만 쓰고 반납할게.”

“그렇다니까. 5시간이 무리면 3시간만 쓰고 반납하면 되잖아.”

“알았어. 진짜 딱 3시간이야.”

3시간만 쓰고 반납.

이건 전부 클라우드 서비스로 운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잠깐 필요한 자원을 가져다 쓰고 반납하기 개념이기 때문이었다.

“오케이!”

팀장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할당받았으니까. 바로 연결해.”

“네. 알겠습니다.”

그 말에 부하직원이 바로 관리자 페이지에 접속해 할당 내역을 살펴보고, 자동 스크립트를 실행시켰다.

이제 대부분의 일은 자동화되어 있었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은 확인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1시간이 더 지나고.

대망의 오픈 시간이 되었다. 강철 역시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300만 대가 다 팔리려나…….”

그런 걱정이 조금 있었다. 말이 300만 대지 기깃값만 3,500달러였다. 매출로 치면 10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이다.

한 해 1조 매출을 올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세상에 하루 만에 10조 매출을 올릴 것이라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이 살짝 어이없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사이트가 오픈하자마자 깨지기 시작했다.

“10 만대.”

“50만 대.”

“……100만 대.”

100만 대까지 팔리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더구나 강철이 보고 있는 관리자 페이지에서 판매 수량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150만 대 돌파…….”

그리고 200만대를 돌파하는 순간.

강철의 모니터에 알람이 하나 나타났다.

-[주의] 빅트리 서버 자원 95% 이용 중.

해석해보면 엄청난 수의 사용자가 접속했다는 뜻이었다.

강철이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그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에도 판매량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일반 선형 그래프가 아닌 지수 그래프를 보는 것 같았다.

-판매 종료되었습니다.

강철이 다시 판매량에 시선을 돌린 순간 나타난 문구였다. 300만 대가 불과 1시간 만에 팔려 나간 것이다.

과거 가장 잘 팔린 게임기기인 플레이스테이션5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시간이었다.

“매출만 100억 달러…….”

강철이 마른 침을 삼키며 멍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았다.

그사이 마케팅팀은 성과 홍보에 열을 올렸다.

-1시간 만에 10조 매출. 현재까지 판매량 400만 대. 식을 줄 모르는 카운터의 인기.

-카운터 전용 PC방 속속 등장. 아이온 게임즈 전 세계에 가맹 사업 시작.

-질주하는 VR 산업. 그 선두 기업으로 우뚝 선 아이온 게임즈.

언론사를 통해 관련 뉴스가 홍수처럼 쏟아진 것이다. 그리고 그건 곧 아이온 게임즈의 주가를 가파르게 상승시켰다.

350조에서 잠시 주춤하던 주가는 카운터의 성공이 가시화되자 단숨에 400조를 넘어섰다. 거기에는 단순히 게임에 대한 기대감만 있는 건 아니었다.

VR 기술.

그 기술의 가장 선두 기업이라는 사실이 카운터라는 게임을 통해 완벽하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VR 기술이 적용될 산업은 게임만이 아니라 무궁무진했다.

교육.

제조.

일상까지.

적용 못 할 분야를 찾는 게 힘들 정도였다. 테슬라가 전기차 자율주행 자동차로서의 가능성을 보이며 PER 1500을 받는 것처럼 아이온 게임즈는 VR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초 고성장주에 이름을 올렸다.

대산의 시가총액을 아득히 넘어 4,000억 달러를 단숨에 넘어버렸다.

덕분에 강철은 테슬라 덕분에 세계 최고 부자가 된 일론 머스크를 뒤이어 단숨에 세계 2위 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 * *

강철의 결혼식 준비도 착착 진행되어갔다. 신혼여행지를 정하고, 초대 손님 명단을 작성했다. 결혼식장을 정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강철이 엘리와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지배인이 나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여기 식장을 보려고.”

그 말에 지배인이 또 한 번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지배인은 하나부터 열까지 차분히 설명해나갔다. 강철은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엘리는 아니었다.

“퇴장할 때 꽃으로 축포가 터진다고요?”

“네. 이건 뺄까요?”

“제가 귀가 조금 예민해서요. 축포는 빼도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 말을 받아 적은 지배인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장식된 꽃은 모두 생화로 유럽에서 직접 공수해 온 것으로 장식이 될 겁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화이트 앤 레드로 국내에서 결혼 연출로 가장 유명한 유민정 씨가 기획한 연출로 꾸며질 겁니다. 혹시 기획안은 받아보셨습니까?”

엘리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연예계 생활을 하며 친분이 있었기에 엘리가 결혼식 연출을 직접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네. 거기에 나와 있는 그대로 진행이 될 겁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설명해 드릴 것은…….”

그때마다 강철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게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하품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 있었다.

마지막 코스.

그건 100층 높이에 있는 스위트 룸 확인이었다. 결혼식을 하고 여기에서 첫날밤을 묶기에 확인을 위해 들른 것이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지배인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물러섰다.

“이 방은 크게 설명해 드릴 것이 없습니다. 확인 후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지배인이 나가자 강철이 창가로 다가가 서울 시내를 보았다. 자신도 꽤 높은 건물에서 근무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강남에서 강북까지.

날씨가 좋아서인지 끝과 끝이 한눈에 보였다.

“한번 봐봐. 전망이 엄청 좋…….”

말을 하던 강철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엘리야…….”

그녀가 백허그를 하며 강철에게 안겼기 때문이었다.

“오빠.”

“응.”

“우리가 정말 결혼이라니 꿈만 같다. 그치?”

“그, 그렇지.”

강철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녀의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녀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

그 인내가 폭발 직전까지 와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면 여기서 하룻밤을 보낼 테고.”

끄덕.

강철이 로봇처럼 고개를 끄덕이자 엘리가 부끄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결혼한 언니들이 다들 그러더라. 첫날밤 전에 꼭 확인해 봐야 할 게 있다고.”

꿀꺽.

조용한 룸에 강철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가 다시 용기 내 물었다.

“오빠 생각은 어때?”

이건 완벽한 신호였다.

강철도 혈기왕성한 남자다. 더는 참기 힘들었다.

와락.

강철이 몸을 돌리며 엘리를 안았다.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읍…….”

엘리도 더는 입을 열 수 없었고, 두 팔을 강철의 목에 걸치며 호응했다. 강철이 살짝 입을 떼며 엘리를 지긋이 보았다.

“…….”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고, 이내 방안에는 거친 숨소리만 가득했다.

* * *

반면.

허융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48%.

알리바바, 나일의 서비스를 합쳐 전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던 점유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허융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를 전부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상무위원과 자리를 마련했다.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를 중국에서 퇴출해야 합니다.”

허융의 앞에 있던 상무위원이자 권력 순위 5위인 차오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이유는요?”

“대산 대문에 자국 클라우드 산업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대로 알리바바가 무너진다면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세계 시장을 제패하려는 정부 정책도…….”

허융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차오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대산은 바이두와 조인트 벤처를 중국에 세웠습니다. 그 회사는 중국 회사이고요.”

“하지만 태생이 한국 기업입니다.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차오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표정에서 허융은 느낄 수 있었다.

‘설득이 쉽지 않겠어…….’

그리고 그의 직감은 어느 정도 맞아들어갔다.

“최근 미국이 동맹들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

“미국 혼자서는 중국을 완벽하게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우방인 한국에도 상당한 압박이 가해지고 있고요”

허융이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더더욱 대산을 퇴출해야 합니다. 언제 한국 편에서 중국의 등에 칼을 꽂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랬다가 한국이 현재 중립의 위치를 지키지 않고 정말 미국 편에 선다면요?”

“……네?”

“세계 3차 대전이라도 벌이지 않는 이상 고립될수록 손해 보는 건 중국입니다. 더구나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는 중국에서도 엄청난 양을 필요로 하는데 그게 수입이 안 되면 당신 클라우드 서비스 돌아갈 수 있습니까?”

그 말에 허융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차오스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더구나 이강철의 VR 기술은 중국에도 상당히 필요한 기술입니다. 그 기술에 투자한 중국인도 많고요. 오히려 그들은 알리바바가 망하길 바라고 있을 겁니다.”

차오스가 마지막 쐐기를 박는 말을 던졌다.

“위원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하지만 차오스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중간에 잘라내며 자신이 할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분명한 중국의 친구입니다. 물론 당신도 중국의 중요한 사람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니 정당하게 경쟁하세요. 정부의 힘을 빌리려 하지 말고.”

허융은 깨달았다.

‘이 카드는 끝이다. 그렇다면 더 높은 곳에 기대는 수밖에.’

차오스.

그보다 권력 서열이 높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허융의 눈빛이 그런 생각으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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