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시가총액 2조 달러(2)
-3%.
-5%.
-2%.
-10%까지.
주가는 연일 흘러내렸다. 미국에서 칼을 빼 든 후 화웨이의 주가가 흘러내린 것처럼 대산의 주가도 계속 아래로 빠지기만 했다.
그건 대산의 중소 협력사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미국과 대한민국의 관계 악화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사태를 청와대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대통령이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흠…….”
비서실장이 그런 대통령에게 말했다.
“방금 들어온 첩보에 의하면 이제 대통령 사인만 남았다고 합니다. 사인하게 되면 바로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얼마 전 보냈던 항의 서한은 어떻게 됐나?”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답이 없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다시 한번 약소국의 비애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또 한 번 항의서한을 보낸다고 해서 효과가 있겠어. 아니면…… 보복 관세라도 하자는 말인가?”
보복 관세.
거기까지 간다면 돌이킬 수 없다. 완전히 적대한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당장 미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이 수출하는 물건보다 적었다. 그렇기에 보복 관세를 한다면 한국이 손해인 것이다.
비서실장이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먼저 자국 첨단 산업에 대한 면세 정책을 확대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당장 미국에 어떤 조처를 하는 건 사태가 흘러가는 추이를 지켜보며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당장 취할 방법이 많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것 말고는?”
“그 외에 외교계통을 통해 계속 항의를 하는 방법, WTO를 통해 전달하는 방법. 그리고 이건 최후의 수단이지만 중국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중국이라…… 미, 중 무역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중국 쪽에 친화적인 스탠스를 취하면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그럼 이 방안은…….”
“제외해.”
“알겠습니다.”
“일단은 최대한 나라 안에서 지원할 방안을 생각해 보고, 정 안 되면 WTO 제소나 외교계통을 통한 항의를 이어가도록 하지.”
“네.”
그렇게 둘의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국정원장이 급히 대통령 집무실을 찾았다.
“어쩐 일인가?”
“미국에서 결정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놀란 대통령이 두 눈을 부릅떴다.
“뭐?”
“대산 제재 건에 대해 마치 처음부터 없던 일이었던 마냥 모른 척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차분히 이야길 해봐.”
“아직 내막까지 파악하진 못했는데…… 로비스트 말에 따르면 미 의회 쪽에서는 대통령에게 관련 안에 대해 서명을 해야 한다고 여전히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대통령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설명이 없고요.”
“흠…….”
국정원장이 한껏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리고 유사한 시기에 이강철이 미국으로 출국을 했습니다.”
“이강철이 출국했다. 그 말은…… 둘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다.”
국정원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그 친구 이제 미 대통령과도 독대할 정도로 성장한 건가…….”
거기까지 말한 대통령이 입을 꾹 다물었다. 상황이 잘 풀린 건 다행이지만 자신이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대체 어떤 일을 벌어지고 있는 건지…….’
시간이 지나도록 대통령의 굳은 안색은 풀리지 않았다.
* * *
비슷한 시각.
강철은 미 대통령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엄청나군. 정말 엄청나. 어떻게 저런 걸 만들었나?”
“드론 택배를 전투용으로 조금 개량했을 뿐입니다.”
“트리스 원 말인가?”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현재 5까지 개발되었습니다. 이번에 선보인 제품은 7. 극비리에 개발 중인 차세대 버전이고요.”
“그걸 개량해서 이런 신무기를 만들었다.”
“네. 지난번 개발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어 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미 대통령 앨빈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그 말은 지금 뉴욕을 비롯해 미 전역에 수백 대의 무기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말이군. ”
이번에는 강철이 웃음을 터뜨렸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택배 드론은 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기능이 없으니까요.”
“누군가 그걸 가져다가 해킹을 해서 장착하면?”
“일단 내부 회로에 접근하려고 하면 드론은 바로 자기 파괴를 시행합니다. 그전에 최신 위치 정보를 본사로 전송하고요. 그리고 내부 회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의 보안 조처를 해놓았습니다. 그건 미 펜타곤에서 인정한 수준의 강력함을 자랑하고요.”
강철이 불가능함을 어필했지만, 앨빈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공학적인 지식이 없기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드론 방지법을 재검토해야겠어.’
오늘 그가 본 충격적인 모습이 망막에 새겨져 잊히질 않았다.
무인 드론 타격.
수백 혹은 수천 대가 일시에 날아올라 뉴욕 시내를 공격한다면 핵폭탄급의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그런 무기들이 미국 전역을 활개 치고 다닌다는 사실이 몸서리 처질 정도였다.
강철이 그런 표정의 앨빈을 읽었다.
‘산 넘어 산이군.’
드론 무기를 이용해 클라우드 제재를 막긴 했지만, 또 다른 장벽이 생겼다.
잡념을 털어낸 앨빈이 말했다.
“대단한 기술력이야. 이런 인재를 가진 한국이 부럽군.”
그러면서 은근한 눈빛으로 강철을 보았다. 마치 미국으로의 이민을 원하는 것 같았다.
강철이 그 눈빛을 피하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당장 미국에 이민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앨빈이 눈빛을 거두며 말했다.
“말했지만 클라우드 서비스 정지는 걱정하지 말게. 잘 해결될 테니까.”
“네.”
“그래서 말인데 드론 생산이 언제쯤부터 가능한가? 우리로서는 최대한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 같은데…….”
강철의 입가에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가격만 맞는다면 두 달 안으로 500대까지는 가능합니다. 기존의 드론을 슬쩍 바꾸기만 하면 되는 거라서요. 마침 생산공장도 미국에 있으니 바로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대당 가격이 500만 달러라고?”
“네.”
500만 달러.
500대를 판다면 25억 달러에 달하는 돈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극비리에 진행된다.
강철이 누구도 모르게 만든 개인 법인에서 이 일이 관리되는 것이다. 즉 강철의 개인 자금으로 조 단위의 돈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앨빈이 강철을 보며 말했다.
“천만 달러로 올려주고, 드론 이상 작동 시 60% 환급 조건으로 당장 250대를 만들면 어떤가.”
가격이 단숨에 두 배로 올라갔다. 거기에 드론이 이상 작동하면 60% 환급이라…….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물론 가능합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부탁하네.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 버리고 싶으니.”
강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한 달 안으로 드론 부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앨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만큼 그는 아프간과의 전쟁을 끝내고 싶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고 싶었다.
* * *
탑 시크릿.
그것의 의미는 누구도 알아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건 데이비드라 해도 다르지 않았다.
비서의 보고에 데이비드가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갑자기 취소됐다니.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세요.”
절제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깃든 분노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IT 협회장으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습니다. 추진 중이던 것들이 전부 멈췄다고요. 자기도 거기까지 밖에는 모르겠다고 합니다. 인맥을 총동원해도 아는 것이 없다는 말 밖에는 듣지 못했답니다.”
으드득.
데이비드가 이를 갈았다.
“그 말은 지금 이강철의 로비력이 우리보다 강하다는 뜻입니까? 그의 의지는 관철되었고, 우리의 의지는 통하지 않았으니. 결국 그보다 우리가 약하다?”
“드러난 상황만 보면 그렇습니다. 이강철이 어떤 수를 쓰긴 쓴 것 같은데…….”
깊은 한숨을 내쉰 데이비드가 물었다.
“어떤 로비스트를 썼는지도 확인되지 않았습니까?”
“네. 유명 로비스트는 전부 확인해 봤는데 이강철과 접점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최근에 확인한 건 이강철이 직접 미국에 왔다는 겁니다. 아마 그가 직접 활동하는 것 같은데…… 여기에서 누굴 만나고 무엇을 했는지는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 있습니까?”
“뉴욕 시내 한 호텔에 머무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그 사이 며칠간의 일정을 대략 10여 명의 실력 있는 사설탐정을 고용해 확인했지만 전부 파악해 내지 못했습니다.”
“며칠간의 일정이 오리무중이라…….”
“정부 관계자를 만난 것 같긴 한데…… 죄송합니다.”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데이비드가 창가로 걸어갔다.
도대체 무슨 수를 썼기에 미 정부까지 움직인 걸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건 기술 개발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야.’
기술은 똑똑한 머리만 있다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를 움직이는 건 완전히 다르다.
인맥.
자금.
정치력.
등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곧 이강철이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의 힘이 이토록 강하단 말인가.’
데이비드가 가장 놀란 건 그 때문이었다. 이제는 미 정부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의 권력이 생겼다. 이제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가가 된 것이다.
비서가 생각에 빠진 데이비드에게 물었다.
“로비는 계속하라 지시할까요?”
“어차피 이미 늦었습니다. 대통령이 사인을 안 하기로 했다면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특허 소송에 집중합시다. 거기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반독점법이나 301조 시행보다 강력한 효과를 낼 테니.”
비서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그게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합니까.
어차피 물어봤자 답이 없음을 자신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법무팀을 통해 해당 소송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총력 대응하라 이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
비서의 핸드폰이 드르륵거리며 진동했다. 데이비드는 진한 불길함을 느꼈다.
“네.”
“서치에서요?”
“……알겠습니다.”
서치.
그 단어만으로도 데이비드는 알 수 있었다.
“서치에서 발을 빼겠답니까?”
“네. 특허 소송에서 질 수도 있고, 역으로 자신들이 당할 수도 있다면서…….”
으득.
아마 이강철이 손을 쓴 것이리라. 두 회사는 아이온 인공지능 M&A 당시 상당한 관계를 구축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클라우드의 강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의 편이다. 더구나 IBM으로부터 넘겨받은 특허도 상당했다.
하지만.
일은 데이비드의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소송을 포기한 것이다.
결국, 나일 혼자 남았다.
* * *
한 달 후.
외신을 통해 전해진 미국의 드론 부대 활약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수백 대의 드론 부대. 아프간 전쟁의 선봉에 서다.
-완벽한 승리 작전 개시. 제2의 베트남으로 만들지 않겠다.
-아프간에서 펼쳐진 드론 작전. 탈레반 백기 투항 직전.
아프간에서 철군을 준비 중이던 미군은 드론을 앞세워 곳곳에 숨어 있는 탈레반 속출에 나섰다.
그 효과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민간인과 탈레반을 철저히 구분해 사살할 뿐만 아니라 적이 발사하는 요격 무기들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피해 나갔다.
미군 피해 무.
전쟁이 진행될수록 미군이 받는 피해는 0에 수렴했고, 탈레반이 받는 타격은 무한으로 수렴했다.
역시 미국이라는 말이 전 세계에서 흘러나왔고, 미국의 위상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미 대통령 앨빈 브라운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합참의장으로부터 보고 받았다.
“탈레반 무리 사살 400명. 미군 피해 0입니다. 현재 입실론 부대는 아프간 북동부를 향해 진격하고 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CIA 국장이 입을 열었다.
“현재 탈레반 수장으로부터 평화협정에 대한 제안이 들어온 상황입니다. 아프간 북부 일부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인정해 주면 평화협정 테이블에 나서겠다고 합니다. 확실히 급하긴 한 것 같습니다.”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주니 아주 적극적으로 나서는군.”
“맞습니다. AM-1의 위력이 정말 엄청납니다. CIA에서 가지고 있는 탈레반 관련 데이터베이스에 인물들만 어찌 그리 쏙쏙 찾아내서 사살하는지. 현지 요원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앨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친구가 말한 대로 성능이 나오고 있어. 이 정도 성능이면 앞으로 드론을 500대 정도는 더 구매해 작전을 다채롭게 진행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합참의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전적으로 찬성입니다. 드론 한 대가 대략 100여 명의 군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 대에 50억에 구매할 수 있다면 비용적으로도 상당한 이익입니다.”
앨빈이 비서실장을 불렀다.
“그 친구 다른 곳에 이 드론을 팔지는 않았겠지?”
“네. 현재 요원들의 보고에 의하면 특이 동향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합니다. 더구나 저희가 독점 권리를 가지고 있으니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맞아. 그렇긴 하지…….”
하지만 앨빈의 가슴 한편에 우려가 피어났다.
‘위력이 너무 강해도 문제군.’
이강철은 이 드론을 무기로 자신으로부터 원하는 걸 얻어냈다. 즉 이강철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겠지만 자신들도 이강철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말과 같았다.
그런 의중을 읽은 CIA 국장이 말했다.
“그리고 이건 번외 사항인데…… 현재 최고의 인력들로 드론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기계 쪽은 그대로 만들 수 있는데 문제는 내부 소프트웨어입니다.”
소프트웨어.
드론이 적지에 날아가 탈레반만 골라 사살하는 그 소프트웨어가 중요했다.
CIA 국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 측 엘리트 요원들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게 되어 있더군요. 드론도 몇 대 테스트를 해보았지만, 이강철의 말대로 자기 파괴가 시행되었습니다.”
그렇게 날린 드론만 10대.
한 대당 천만 달러에 구매했으니 1억 달러가 공중에 날아간 셈이었다.
하지만 그 액수를 걱정하는 이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흠…… 그 건은 아프간 쪽이 잘 정리된 후에 진행하도록 하지. 그리고 입실론 부대는 아프간 전쟁이 끝나면 몇 대 남중국해 쪽으로 보내지.”
그 말에 동석해 있는 모두가 놀랐다.
“자칫 군사 문제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중국 쪽으로 배치하는 건 무리입니다.”
“중국도 죽자사자 달려들 수 있습니다. 3차대전이 발생할 위험도 있고요.”
참모들의 격한 반응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앨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한국 쪽에 배치하는 건 어떤가? 입실론 일부를 주한미군에 파견해서 군사훈련을 진행하는 식으로.”
그제야 참모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중국이나 북한에서도 반발하겠지만 어차피 한국 땅에 배치하는 것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북한에도 배치하도록 하고. 그 밖에도 분쟁지역에 이 드론을 전면 배치하도록 해. 이 기회에 미국의 저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도 좋을 것 같으니. 한번 파견 지역을 추려봐.”
“알겠습니다.”
그날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고도 앨빈의 머릿속에서는 이강철이라는 이름이 떠나가지 않았다.
‘엄청난 걸 만들었어.’
그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 *
다행히 드론을 강철과 연관시키는 언론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갑작스러운 미국의 태도 변화는 상당한 쟁점이 되었다.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 제재 무. 순풍에 돛을 달았다.
-일간의 루머를 일축한 클라우드 서비스 파죽지세!
덕분에 대산의 주가는 금세 전 고점을 회복하고 빠르게 상승했다. 미국 정부에서도 더는 딴지를 걸지 않기에 거칠 것이 없었다.
+5%.
+10%.
+7%.
…….
7거래일 연속 상승하면서 전고점이었던 시가총액 150조를 뚫고, 한 주당 100만 원을 넘어섰다.
주당 100만 원.
이른바 황금주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호재만 있는 건 아니었다.
-IBM을 인수한 나일. 클라우드 기술 관련 특허 소송 대거 제기.
나일에서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 것이다.
강철은 그에 대한 준비를 하기 위해 마이클과 대책회의를 벌였다.
강철이 마이클에게 물었다.
“마이클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우리 회사에서 그쪽 기술을 침해한 게 있을까요?”
그 말에 마이클이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봤을 때는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염려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말씀해보세요.”
“DVM이나 원스 OS에 나일에서 인수한 IBM 쪽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더구나 DVM은 공개되어 있다 보니 나일에서 쉽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걸 통해 특허 소송을 제기한다면 대응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흠…….”
아직 어떤 특허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는지 확인이 되지 않고 있었다. 소송을 건다는 언론 발표만 있을 뿐 정식으로 소장이 도착한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혹시 걸리시는 게 있습니까?”
그 말에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 없습니다. 그 두 개를 개발할 당시 인터넷도 찾아보지 않고 개발했으니까요.”
강철이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직 이 머리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그 자신 넘치는 모습에 마이클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러면 별걱정이 없겠군요.”
“네. 다른 건 없습니까?”
“네. 여기서 일하며 딱히 나일이 떠오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반대를 고민해 보죠.”
“그 반대라면…….”
“나일에서 우리 기술을 침해한 건 없는지 살펴보자는 뜻입니다.”
강철이 살짝 목소리를 낮추었다.
“얼마 전 나일에서 이직한 직원들이 한 말 기억하십니까?”
마이클이 눈을 굴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아! 나일에서 DVM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 말입니까?”
“네. 그 말은 곧 나일이 우리 쪽 특허를 침해했을 수도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DVM은 오픈 소스로 공개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 대산에 적용된 최적화 버전은 아닙니다. 그 안에서 몇몇 핵심적인 기술들은 공개하지 않고, 별도로 특허 출원을 해두었습니다.”
“아…….”
“그걸 나일에서 비슷하게 구현했을 확률이 높아요. 개인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10대, 100대에서는 해당 기술이 필요 없지만 최소한 1,000대 이상이 돌아가야 하는 하이퍼 스케일 서버 구성에서는 꼭 필요한 기술이기 때문이죠.”
그 말에 마이클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평소 왜 DVM이라는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왜 오픈소스로 공개했는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런 장치가 있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조치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한번 그들의 이야기를 수렴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역으로 나일을 공격할 아주 좋은 구실이 될 겁니다.”
“네.”
“그리고 온톨로지 프로젝트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그 말에 마이클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으로 다가갔다.
“홍 대표님 덕분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미 기기들을 클라우드 상에서 연결하는 작업은 마무리되었고, 요금 체계를 개발 중입니다. 앞으로 한 달 안에 프로토 타입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게 그 구성인데…….”
슥슥.
보드마카를 이용해 시스템 구성도를 그려나갔다. 그걸 보며 강철은 때로는 칭찬을 때로는 지적하며 해당 구성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켰다.
그 둘의 토론은 2시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 * *
한편.
청와대에서 긴급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통령 황기석이 합참의장의 보고에 두 눈을 부릅떴다.
“입실론 부대의 주한미군 주둔이요?”
“네. 주한미군 주둔을 통해 중국을 견제할 속셈인 것 같습니다. 북한의 도발을 방지하는 차원이기도 하고요.”
대통령이 함께 배석해 있던 국가안보실장에게 물었다.
“그러면 북한이 도발을 감행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중국이 한한령을 강화한다든가…… 입실론 부대의 위력을 보면 둘 다 그 부대를 몹시 꺼릴 것 같은데.”
“당연히 그럴 공산이 높습니다. 미국에서도 그걸 바라고 입실론 부대를 파견하려는 것이고요. 사드 배치 그 이상의 반발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흠…….”
대통령이 고민에 빠지자 합참의장이 빠르게 말했다.
“하지만 국가 안보 차원에서 보면 엄청난 이점이 있습니다. 산악 지형이 대부분인 한반도에서 입실론 부대에서 운용하는 드론은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드론이 꼭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중국의 눈치가 보인다.”
“맞습니다.”
고민하던 황기석이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러면 세계 최고의 드론을 만드는 이강철에게 한번 만들어달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네?”
“네?”
“현재 드론 기술의 최고 권위자는 이강철 대표이지 않습니까. 마침 드론 공장도 있겠다. 제조를 부탁하면 어려울 것도 없을 것 같은데요.”
일리 있는 의견에 참석자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입니다. 만들기만 한다면 나라에서 책임지고 구매하겠다고 하면 이강철 대표로서도 손해 볼 게 없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황기석이 바로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그럼 바로 연결해 보세요. 만약 된다고 하면 굳이 주둔하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알지 못했다.
지금 입실론 부대에서 운영 중인 드론을 이강철이 만든 것이고, 그건 미국에만 독점 공급하기로 되어 있다는 것을.
* * *
수백 대의 드론이 하늘을 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총 700여 대.
이번 아프간 작전에 투입된 드론의 숫자였다. 그 드론들이 일제히 날아 작전 지역을 향했다.
위이이잉.
현장 지휘관이 드론에 달린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정제된 소음을 들으며 말했다.
“엄청나군. 마치 일사불란한 군인 같은 모습이야.”
직접 아프간에 파견을 가 있던 딘 에치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기 드론을 도입할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확실히 상상 이상입니다.”
“이걸 그 이강철이 만들었다고?”
“네. 이강철 독자 생산입니다.”
“록히드 마틴은?”
록히드 마틴.
세계적인 방산 업체였다.
“그쪽은…… 드론을 맡겨보았지만,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생산이 불가하다고 합니다.”
“앞으로 저 드론이 세계 군사 체계를 바꿀 것 같은데 못 만든 다라…….”
그 순간.
보좌관이 다가와 전장 상황을 보고 했다.
“1 지역 점령 완료했습니다.”
“2 지역 점령 시작하지.”
“네.”
보좌관이 명령 하달을 위해 무전기를 잡았고, 지휘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속도면 앞으로 1주일 안이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
벌써 아프간에 파견 나온 것도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끝없는 전쟁에 지휘관도 살짝 지쳐가던 참이었다.
지휘관이 딘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전부 자네 덕분이야.”
“하하, 아닙니다.”
“다들 지쳐가고 있었어. 끝없이 이어지는 이 전쟁 때문에…… 그걸 마무리 지어준 게 자네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걸세.”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작전은 착착 진행되었다.
타당.
타다당.
콰앙!
총탄과 폭약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미군 병사의 전사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드론이 격추되어 떨어졌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승리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외신을 통해 뉴스가 전해졌다.
-입실론 부대 완벽한 승리 작전 성공.
-탈레반 압도적 무력 앞에 항복.
-백기 투항 탈레반. 테러집단 뿌리 뽑은 역사적 순간.
-미국 아프간에서 탈레반에 완벽하게 승리했다.
연일 해외 언론을 장식하는 뉴스였다.
강철이 마우스를 움직여 뉴스를 꺼버렸다.
“일단, 상황은 잘 정리된 것 같군.”
자신이 여기에 관여한 건 비서도 모른다. 완벽히 개인적으로 움직였다. 따로 법인을 만들고, 이력이 검증된 직원들을 채용해 드론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팔린 드론이 1,000대.
대당 50억에 팔았으니 5조의 매출이 발생했다. 이 사업은 영업이익이 60%에 이르는 고부가가치 업이었다. 몇 달 만에 3조에 가까운 가욋돈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분 좋은 일만 생긴 건 아니었다. 지속적인 청와대의 요청에 강철은 골머리를 썩였다.
“만들 수 없다고 해도 만들어달라…….”
드론을 만들어달라는 끈질긴 요청이 들어오고 있었다.
할 수 없다.
그런 능력이 없다.
모른다.
그렇게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실패해도 좋다.
연구개발비를 지원해 주겠다.
세제 혜택도 주겠다.
등등의 말로 끈질기게 설득해 오고 있었다.
이쯤 되니 강철은 합리적인 의심이 생겼다.
“설마…… 정보가 새나간 건가.”
자신은 아니니 대상은 미국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이 왜?
먼저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한 건 미국이었다.
강철이 고개를 흔들며 고민을 털어냈다.
“휴우…… 모르겠네.”
일단은 한 번 더 거절 의사를 밝히는 수밖에 없었다.
강철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관련 내용을 검토할 수 없다는 태도를 전달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온톨로지 서비스.
이걸 올해 출시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의 유휴 기기를 클라우드 서비스로 엮어 컴퓨팅 파워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에 제공한다.
우버급.
어쩌면 그 이상의 파급력이 생길 것이라 기대되는 사업이었다.
서비스 개발은 완료되었고, 이제 과금 체계를 개발하고 있었다. 강철이 하는 일은 지속해서 올라오는 코드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고, 적절한 코멘트를 남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수 시간이 지났을 때.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
-오늘 끝나고 뭐 해?
이런 문자를 보낼 수 있는 건 한 명밖에 없었다. 엘리였다.
-오늘은 별거 없지.
-그럼 만나자. 나 스케쥴 일찍 끝날 거 같아.
-알았어.
그녀를 만날 생각에 문자를 보낸 강철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서렸다.
* * *
특허소송.
그걸 한번 시작하면 수년이 걸릴 정도로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자신 있었다. DVM 코드에서 IBM에서 출원한 특허를 사용한 정황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비서의 보고로 그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오히려 우리가 대산의 특허를 침해하고 있다니요?”
“소송 전 관련 내용을 대산에 전달해 협상안을 제시했습니다.”
“매출의 5%에 달하는 로열티.”
“네. 그 조건으로 제안을 했더니 역으로 이런 문서를 전달해 왔습니다.”
데이비드의 시선이 비서가 내민 문서로 향했다.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 특허 침해 건.
그런 제목을 달고 있는 문서 내부에는 여러 기술적인 내용이 장문으로 쓰여 있었다.
그중 데이비드의 시선을 끄는 항목이 하나 있었다.
-하이퍼 스케일에서의 DVM 작동을 위해서는 대산에서 자체 개발한 DS 하이퍼 알고리즘 기술이 적용되어야 한다. 현재 나일의 작동 방식을 살펴보면 해당 특허를 침해했음이 현저히 의심된다.
비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 비슷한 내용이 중국 알리바바에도 전달 되었습니다.”
“그쪽도…… DVM을 적용한 곳 아닙니까?”
“네.”
숨긴다고는 하지만 내부 개발자들의 이직이 빈번한 상황에서 완벽한 비밀은 없었다. 나일이나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서비스에 DVM이 적용된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개발팀 검토 결과는요?”
비서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게 정말이라는 뜻입니까?”
“……네. 개발팀 의견으로는 기술 침해가 맞는다고 합니다. 그걸 기반으로 법무팀에 전달하니 소송으로 갔을시 80%의 확률로 패배한다는 의견을 전달받았고요.”
“우리가 제기한 특허소송 건의 승률은 52%라 하지 않았습니까?”
“……네.”
데이비드가 마른침을 삼켰다.
“80 대 52…….”
이건 소송에서 진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하려는 일마다 번번이 이강철에게 가로막히고 있었다.
“그래서 소송 제기를 취하하자는 의견이 나온 상황입니다. 대산에서도 특허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자신들도 가만히 있겠다고 합니다. 소송 시 비용이나 기업의 이미지에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니까요.”
그 말에 데이비드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분노.
절망.
포기.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물었다.
“지난달 서비스 성장세는 나왔습니까?”
비서가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3.6%입니다.”
-5.0%.
-2.2%.
-4.0%.
-3.6%.
까지.
최근 몇 달간 한 번도 제대로 된 성장을 하지 못하고 역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대산에 온라인 쇼핑은 윌마트와의 합작품인 빅트리에 완벽하게 밀렸다.
그래서 특허소송에 반독점법까지 걸고넘어지려 했지만, 그마저도 마음처럼 안 되고 있었다.
“처참하군.”
그것보다 처참한 건 주가였다.
1.7조 달러에 달했던 주가는 30%가 떨어져 1.2조 달러대로 줄었다. 세계 1위를 위협하던 자신의 재산도 밑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전부 혁신을 거듭하며 성장하는 이강철 때문이었다.
데이비드가 씁쓸히 중얼거렸다.
“특허도 안 되고, 반독점법도 안된다…… 거기에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로는 상대도 되지 않고. 방법이 없군.”
자신들의 공세에 쓰러지던 오프라인 서점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설마 자신이 이런 상황에 부닥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비서가 그런 데이비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특허소송은 어떻게 진행할까요?”
데이비드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접어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럼 추후 조치는 어떻게…….”
“그건 고민을 좀 해보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집무실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 * *
비슷한 시각 한국의 한 레스토랑.
일반인들의 데이트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거나 좋은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강철의 데이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그 식당에 강철과 엘리 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레스토랑에는 숟가락을 움직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오늘따라 유독 말수가 적은 엘리를 보며 강철이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이제 만난 지도 몇 달이 넘었다. 서로에게 반말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우물쭈물하던 엘리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게…… 엄마가 한번 보고 싶다 하시네.”
강철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으, 응?”
“우리 만난 지도 꽤 됐고, 엄마는 나 누구 만나는지 알고 계시거든. 그래서 한 번쯤 보고 싶다고…….”
그러면서 슬쩍 강철의 눈치를 살폈다. 강철이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 그래야지. 한번 만나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
그 말에 엘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
“네가 우리 엄마한테 하는 것처럼 나도 엘리 부모님께 최소한의 것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 말에 엘리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강철을 보았다.
“고마워.”
“뭘. 네가 우리 엄마한테 한 것에 비교하면야…….”
그간 엘리는 최용희의 말동무, 쇼핑 동료 등등 강철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해냈다.
그리고 그런 엘리를 볼 때마다 이런 친구라면 정말 결혼을 해도 되지 않을까. 몇 번이나 생각했었다.
“그럼 약속 잡을게.”
“그러자. 이참에 인사드리고, 날짜도 생각해 보자.”
그 말에 이번에는 엘리가 마른침을 삼켰다. ‘날짜’라는 단어가 귀에 쏙 들어온 것이다.
“으, 응?”
“그 날. 이제 슬슬 그 날도 고민해 봐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몰래 만날 순 없잖아.”
그날은 곧 결혼이다. 엘리가 원했던 일이기도 했다.
“오빠…….”
“너라면 평생 같이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엘리가 떨리는 눈동자로 강철을 보았다. 은근슬쩍 결혼 이야기를 몇 번 꺼낸 적은 있었다.
-나는 진지하게 만나고 있다.
-30대가 되기 전에 결혼하고 싶다.
-아이는 두 명 정도를 낳고 싶다.
그런 이야기 하나하나가 결혼에 대한 암시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강철의 반응은 미적지근했었는데…….
강철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에게 다가갔다. 이내 무릎을 꿇으며 주머니에서 보석함을 꺼냈다.
“여기.”
그 안에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 있었다. 그걸 보는 엘리의 동공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강철이 거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결혼하자.”
이내 댐 문이 열리듯 엘리의 눈동자에서 맑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 * *
개발자 컨퍼런스.
애플이나 서치, 페이스북 같은 거대 IT 기업들은 매년 하는 행사로 주로 그 날짜에 신제품 출시를 알리곤 한다.
강철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컨퍼런스를 열었고, 올해의 키워드는 온톨로지 서비스였다.
-온 세상을 연결합니다.
그 주제어로 시작한 서비스 소개는 사람들이 놀랄 만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된 내용이기는 했다. 아무리 감추려 한다 해도 완벽하게 숨길 수는 없었으니까.
강철은 설명보다는 서비스가 어떻게 구동되는지 보여주었다.
-가입.
-설치.
-보상.
-구매.
딱 4단계로 끝이었다.
서비스에 가입하고, 안 쓰는 전자기기에 클라이언트를 설치한다. 그 후 해당 컴퓨팅 파워를 대산이 사용하면 코인으로 보상이 들어온다.
그걸 빅트리에서 구매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가히 클라우드 서비스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기술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건 바로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160조.
180조.
220조까지.
주가는 온톨로지라 이름 붙은 서비스의 무한한 가능성에 배팅하며 상승했다. 아직 실제 매출은 아직 미미했지만, 그 성장성만은 높게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서비스의 성장성.
그걸 조금 낮게 평가한 것이다.
서비스는 출시하자마자 사용자 백만 명을 모았고, 순식간에 누적 사용자 천만 명을 달성했다. 그리 큰돈이 모이는 건 아니었지만 설치만 해두면 코인이 쌓이는 재미에 너도나도 가입하고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생각했던 성장보다 더 큰 성장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열광했고, 당연히 큰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다시 200조에서 300조까지 가는 데 불과 몇 달도 걸리지 않았다.
덕분에 강철도 세계적인 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5위. 이강철.
작년보다 4단계 상승한 대산, 아이온 그룹의 수장.
최근 발표한 온톨로지 서비스가 사용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그의 지분 가치도 덩달아 상승 중이다. 최연소인 페이스북의 대표 뒤를 잇는 부자로…….
잡지에 나온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엘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걸 본 나은이 생글거리며 말했다.
“이야, 대표님 진짜 어마어마하다. 세계 5위라니.”
엘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이 대단하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엄청난 사람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자신을 만나면서도 이렇게 성장하다니…….
“너 이제 재벌집 며느리가 된 거네. 이 정도면 재벌집이 아니라 뭐라 해야 하나…… 슈퍼리치인가? 근데 표정이 왜 이래? 세계 5위 부자면 좋은 일 아냐?”
“너무 유명해지면.”
“여자가 붙을까 봐?”
엘리는 차마 그렇다 답하지 못하고, 탁 소리가 나도록 잡지를 내려놓았다.
나은이 그런 엘리를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보았다.
“하긴 장난 아니겠지. 할리우드의 미끈한 여배우들도 대표님을 어마어마하게 보고 싶을 거야. 아니, 그 정도가 아니지. 아마 보자마자 몸으로 밀어붙일걸.”
몸.
그 단어에 엘리의 미간이 좁혀졌다. 나은은 그 모습에 한층 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금발의 미녀가 하얀 속살을 내비치며 달려들면 정말 아찔할 거야. 그치?”
뿌드득.
엘리가 이를 갈았다. 상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었다.
나은이 한층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인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 몸으로 들이대면 대표님도 참 난감할 거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 참지 못한 엘리가 핸드폰을 들었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당장 확인하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았다.
* * *
드르륵.
드르륵.
강철이 진동하는 핸드폰을 슬쩍 흘겼다.
-엘리 : 어디야?
-엘리 : 뭐 해?
-엘리 : 궁금해…….
자신에게 집착하는 저 모습이 가히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장 연락할 수는 없었다. 눈앞에 청와대에서 보낸 국정원장이 앉아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만들 수 없다는 말이군요.”
“네. 더구나 방산 쪽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클라우드 서비스, 쇼핑, 게임을 회사의 세 축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앞에 앉아 있던 국정원장이 슬쩍 강철을 흘겨보았다.
“그 드론이 대표님이 만드신 트리스와 비슷한 형태라는 소문이 많던데…….”
떠보는 말에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미국 측에 직접 문의해 보시죠. 그리고 계속 거부했음에도 왜 이렇게까지 찾아오시는 겁니까?”
강철의 표정이 냉랭해졌다.
벌써 수 번째 거절했지만 결국 회사로 찾아왔다. 그 사실에 기분이 나빠진 것이다.
강철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 기업활동을 방해하시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국정원장의 표정도 굳어졌다.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꾸만 거부하시니…….”
강철이 싸늘하게 말했다.
“벌써 몇 번이나 거절했습니다. 이제 그만하시죠.”
국정원장의 나이가 60대가 넘는다. 강철이 현재 30대이니 나이만 해도 2배 차이가 나는 것이다. 새파란 젊은 놈이 그만하라는 말에 국정원장의 표정도 굳어졌다.
“하하, 말이 심하시군요.”
“기업활동에 심대한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당장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자꾸 군사용 드론을 만들어내라니.”
“이게 다 국익을 위해서…….”
“제가 고용하는 인원들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매년 벌어들이는 외화는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국익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만하시죠.”
국정원장이 살짝 붉어진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인제 그만하자는 뜻이었다.
국정원장이 그런 강철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외화벌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고 보겠습니다.”
그 말에 강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마 국정원장님이 퇴임하실 때까지는 문제없을 겁니다.”
국정원장의 표정이 한층 더 붉어졌다.
국정원장이 나가고.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그래도 정부 고위공직자인데…….”
“벌써 거절만 수차례입니다. 이렇게 끈질기게 나오는 데 멍청하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요.”
“그것도 맞는 말씀이십니다만…….”
비서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강철을 보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분명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실상까지 알 수는 없었다.
“우리는 만들지 못합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앞으로 더 거론하지 마세요.”
미국과 독점 계약이 맺어져 있다. 더구나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져 봤자 좋을 게 없었다.
“알겠습니다.”
“온톨로지 서비스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매달 100%의 가입자 순증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습니다. 서비스에 대한 평가도 좋고요. 아직 시작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률이 40%에 달합니다. 기획팀에서 시뮬레이션한 그대로입니다.”
“좋습니다. 그 정도면 마케팅비를 최대한 집행해서 빠르게 사용자를 모아도 되겠군요.”
“네. 지시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이온 게임에서 진행하는 차기 VR 게임 상황은 어떻습니까?”
게임.
클라우드.
쇼핑.
강철이 생각하는 기업의 3대 핵심축이었다. 그랬기에 강철이 직접 챙기는 것이다.
“진행률이 60%가량이라고 합니다. 워리어 VR보다 한층 더 사실적으로 표현해 몰입감을 더 높이고 있다 합니다.”
“베타 테스트 일정은요?”
“한 달 후로 기획 중입니다.”
“그때 직접 가서 확인해 본다고 전하세요.”
“네.”
그렇게 일련의 일이 마무리된 후에야 강철이 핸드폰을 집었다.
-일하고 있었지.
그 답장을 보내자마자 부리나케 핸드폰이 진동했다. 엘리로부터 직접 전화가 온 것이다.
-회사야?
“어. 그치 방금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그랬구나…….
“하하, 왜? 무슨 일 있어?”
-그건 아니고.
그때.
핸드폰 너머에서 익숙한 나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기대하세요~! 엘리가 드디어 각성했어요. 대표님을 완전히 녹여준데요.
-그, 그만해. 그만.
-아직 플라토닉이라면서요? 제가 엘리의 속 곳곳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는데 여자가 봐도 엄청나게 크고…… 읍…… 으읍.
나은이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멍하니 핸드폰을 든 강철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노, 녹아? 그리고 크다고?”
강철은 타는 듯한 목마름에 벌컥거리며 냉수를 마셨다.
* * *
-2%
-1%.
-3%.
역성장은 매일, 매주 계속되고 있었다.
특히나 강철이 최근 출시한 온톨로지 서비스로 인해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의 가격이 조금 더 내려가자 나일의 역성장은 한층 더 가팔라졌다.
“대표님. 이사회에 CEO 교체 건을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비서의 말에 데이비드의 표정이 구겨졌다.
“나를 축출한다.”
“…….”
“나일을 만들고 여기까지 성장시킨 나를?”
비서가 마른침을 삼켰다. 데이비드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사진에게도 피력을 해보았지만…… 도통 말을 듣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대표님에 대한 신뢰가 이제는 떨어졌다면서…….”
데이비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한숨을 안 쉬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차기 대표는 누구로 추대하려고?”
“최근 서치에서 부사장을 하고 나온 사람이 있는데 그분으로 바꾸자 합니다.”
데이비드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마치 스티브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날 때와 상황이 비슷했다. 자신이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면 나일의 몰락은 가속화될 것이다.
“이사진들 의견은 어떻습니까?”
“일부는 동의하고 일부는 찬성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들 반응이 신통치 않아 대표님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요즘 대산 동향은요?”
“온톨로지 서비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면서 사용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 정말 작업을 처리하고 있는지 클라우드 서비스 가격을 내렸고요.”
데이비드가 입안에서 혀를 굴렸다.
‘기술력이 정말 엄청나군…….’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실 자신도 궁금해서 온톨로지 서비스를 이용해 보았다. 대산에서 제공하는 클라이언트를 설치하고 나면 하루에 0.1센트 정도의 돈이 들어왔다. 엄청난 최적화를 해놨는지 딱히 핸드폰이 느려진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대로 간다면 클라우드 서비스를 접어야 할 판이야.’
가격은 낮고, 품질은 좋고.
자신이라도 당장 어떤 서비스를 선택할지 물어본다면 대산을 사용하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대산이 하지 않는 걸 해야 한다. 지금은 그게 살길이야.’
나일이 초기 성장할 때 그랬다. 나일이 하는 사업에 있는 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했다.
데이비드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강철은 상대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피해야 할 사람이라고.
“이사진 소집하세요. 사업구조 재편 관련해서 긴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데이비드의 집무실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 * *
온톨로지 서비스 덕분에 세상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넌 얼마나 쌓였냐?”
“나 오늘 한 100원 정도.”
“많이 쌓였네.”
“이거 잘 때는 어차피 안 쓰니까. 충전해 놓고, 기여율 80%까지 올리면 더 많이 쌓여.”
“아!”
“더구나 집에 안 쓰는 부모님 폰까지 내 아이디로 가입해서 돌리니까. 더 빨리 쌓이더라.”
이런 대화가 일상생활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쌓인 코인은 빅트리에서 결제가 가능했다.
블록체인 기술의 성공적인 안착의 모습이었고, 이건 곧 대산의 기업 가치를 끌어올렸다.
200조.
220조.
250조.
온톨로지 서비스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대산의 기업가치는 수직으로 상승했다. 페이스북은 수억 명의 사용자를 모으고, 8,000억 달러에 이르는 기업가치를 평가받고 있었다.
온톨로지 서비스 이용자도 벌써 1억 명.
시간이 흐를수록 가입자 수는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증권가에서는 페이스북 가입자인 22억 명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대산의 기업가치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적절한 보상.
SNS는 온종일 한다 해도 실질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온톨로지는 온종일 틀어놓는다면 적절한 보상이 들어온다.
더구나 최적화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의 핸드폰을 느려지게 하지 않으니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사용자가 곧 돈이 되는 시대다. 수십억 명을 모을 수 있다면, 그들을 상대로 다양한 비즈니스를 할 수 있었다.
270조.
300조.
오성전자를 뒤이어 시가총액 300조를 최초로 달성한 대산에 대해 여전히 저평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였다.
퇴근한 강철은 새삼 온톨로지 서비스의 위력을 느끼고 있었다. 어머니 최용희가 강철을 불렀다.
“철아. 잠깐 이것 좀 봐봐.”
“어?”
가까이 다가가니 어머니 최용희가 온톨로지 서비스 화면을 보여주었다.
“아니, 나는 왜 이렇게 돈이 안 쌓이는 건지 이상하네. 다른 집 아줌마들은 팍팍 잘 쌓이기만 하던데.”
“이걸 다른 집사람들도 해?”
최용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동네 사람들은 다 할걸.”
“그 정도야?”
“그렇다니까. 내 아들이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입이 아주 근질근질했다니까.”
그 말에 강철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러면 그냥 말하지 그랬어.”
최용희가 고개를 흔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게 돈 자랑이다. 괜히 그런 말 해서 이목 끌 필요 없잖아.”
강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돈이 많은 정도가 아닌데? 엄마 뉴스 못 봤어. 나 이제 세계 5위 부자야.”
최용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엄청난 부자가 되었음에도 아줌마를 쓰지 않고, 아직 직접 최용희가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70평대 집을 관리하는 것만 해도 하루가 금세 지나갔기에 뉴스를 자세히 살펴볼 시간이 없었다.
“5, 5위?”
한국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인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세계에서도 순위권이라…….
“어, 엄마가 하는 그 서비스 덕분에 얼마 전에 세계 5위 됐더라.”
최용희가 마른침을 삼켰다.
세계 5위 부자.
그 숫자가 체감되질 않았다.
“…….”
“그러니까. 이런 거 굳이 안 해도 돼.”
“그, 그러냐.”
“그렇다니까. 뭐, 그래도 하고 싶다면 이건 여기서 기여율을 올리면 코인이 더 많이 들어올 거야. 그걸로 빅트리에서 물건 살 수 있는 건 알고 있지?”
최용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멍하니 강철과 핸드폰을 번갈아 보는 최용희에게 강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 할 말이 있는데…….”
“뭔데?”
“엘리 있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최용희는 직감했다.
“설마 너…….”
강철이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해도 될 것 같아서.”
최용희가 기쁜 표정으로 강철을 와락 안았다.
“아이고, 그래. 잘 생각했다. 잘 생각했어. 너도 벌써 30이 넘었어. 이제 결혼해야지.”
“곧 자리 한번 마련할게.”
“알았다. 알았어. 잘 생각했다.”
최용희는 강철의 등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자식이 성공해 결혼까지 한단다. 이제야 부모로서의 짐을 한결 덜어놓는 느낌이었다.
* * *
비슷한 시각.
나일의 이사진이 싸늘한 표정으로 데이비드를 보고 있었다.
“대표님 말씀은 신사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이대로 나일에 미래는 없습니다.”
“그 말씀은 결국 나일이 대산에 밀렸다는 뜻입니까?”
데이비드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네. 클라우드 서비스는 기술 측면에서 완벽하게 밀렸습니다. 쇼핑몰은…… NCS처럼 빠르게 점령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기술보다는 시장 선점이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회사 정관을 변경해서 신사업에 디지털 헬스케어를 넣자.”
“맞습니다.”
대주주의 대리인인 조지 케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데이비드를 훑었다. 보유 지분의 30%를 정리했지만, 아직 그는 2대 대주주였다.
“그것도 이강철이 투자한 스타트업을 인수해서?”
데이비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시겠지만 이강철은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의 힘을 한 번 빌려보는 겁니다. 서치가 아이온 인공지능을 인수해서 커다란 기술 진보를 시켰듯이.”
데이비드가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이왕이면 상장사인 아이체크를 인수했으면 합니다. 거기에 스타트업 중 한두 곳을 더 인수하고요. 다들 아시겠지만, 변형 인플루엔자 사태 이후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폭발적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나일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겁니다.”
데이비드의 설명에 회의장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대표자의 입을 통해 나일이 대산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조지가 그 분위기를 깨며 툭 한마디를 던졌다.
“이강철과 적대하는 분위기를 풍기더니 이번에는 협력하자…… 그 의도가 뭡니까?”
“혹시 나일에 최초 투자하실 때가 기억나십니까?”
조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이사진들 반응도 비슷했다.
데이비드가 그런 이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괴물. 어떤 사업이든 진출하면 다 잡아먹을 수 있는 그런 괴물. 그래서 여러분들이 제게 투자를 했고, 우리는 이렇게 성공했습니다.”
그 말에 조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대산이 그렇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과거의 나일처럼 대산은 괴물이 되었습니다. 상대해서는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전부터 느끼고 있었는데 아마…… 저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싸늘하던 조지의 표정이 일변했다.
“흠…….”
“그래서 대략 플랙 Z 정도로 생각해 두었던 방안을 꺼내 든 것이다. 이강철의 언론 인터뷰나 그의 행적을 보면 게임, 쇼핑, 클라우드 서비스. 이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육성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이체크는 다른 곳에 매각할 수도 있다는 뜻이죠. 과거 여러 기업을 매각했듯이.”
조지가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금액은 얼마나 생각하십니까?”
“250억 달러. 스타트업 한 곳 가격까지 합친 것입니다. 최초 200억 달러로 협상안을 제시하고, 최고 250억 달러를 제안할 생각입니다. 물론 이강철의 전폭적인 협조도 약속받을 생각입니다.”
조지가 한층 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드의 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나일에 투자할 때 이 회사가 괴물이기 때문이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면서 지긋이 데이비드를 보았다. 이내 천천히 말을 이었다.
“CEO. 뛰어난 CEO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당신의 행보는 무척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채 역행하며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자존심만 내세우는 멍청이였습니다.”
데이비드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제가 멍청이였습니까.”
“만약 오늘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면 지분의 50%는 더 처분했을 겁니다. 대표이사 자리도 바꿨을 거고요. 다른 이사진 분들과도 이미 상의가 되어 있기도 하고.”
참석한 이사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지의 말대로 이미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조지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늘 발언을 들으니 그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당신을 믿어봐도 될 것 같군요. 전 찬성입니다.”
그가 찬성하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다른 이사들도 하나둘씩 손을 들었다.
“차, 찬성입니다.”
“찬성입니다.”
“찬성입니다.”
다른 이사진들이 전부 찬성에 손을 들었고, 신사업 의결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데이비드는 비밀리에 한국을 찾았다. 강철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이미 실무진을 통해 협상은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오늘은 최종적으로 사인 하는 자리나 다름없었다.
강철이 데이비드를 보며 말했다.
“다시 뵙는군요.”
“오랜만입니다.”
“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더군요. 당신이 꽤 대단한 기술자라는 사실을.”
“감사합니다.”
“혹시 우리 클라우드 서비스에도 관심이 있습니까? 있으면 우선 매각협상자로 선정하고 싶은데.”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되면 세계 각국에서 제재를 받게 될 겁니다. 지금도 독점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으니.”
“그건 또 그렇군요.”
“먼저 이번 협상부터 마무리하시죠. 최종금액 250억 달러. 앞으로 1년간 기술 자문.”
“맞습니다.”
“그럼 사인하실까요?”
고개를 끄덕인 데이비드가 펜을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사람에게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 협력하는 동료라 생각하자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사인을 마친 데이비드가 물었다.
“앞으로 정말 디지털 헬스케어 업종에는 진출하지 않는 겁니다?”
“하하, 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만 해도 벅찹니다.”
“그리고 한 가지 물어볼 게 더 있는데…….”
“네. 말씀하십시오.”
“정말 클라우드 서비스를 대산이 집어삼킬 수 있습니까?”
협상을 시작한 이후로 데이비드는 이강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하나가 클라우드 서비스의 미래였다.
강철은 자신만만하게 자신들의 서비스가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 했고, 데이비드는 NCS를 매각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대표님께서도 저희 서비스를 써보셨으면 아실 텐데요. 앞으로 클라우드 서비스의 세계가 어떻게 재편될지.”
자신만만한 그 한 마디에 데이비드는 결정을 내렸고, 며칠 뒤 언론에 공식 발표되었다.
-나일, 디지털 헬스케어 업종 진출 선언. 아이체크, 헬스피플 250억 달러 인수.
-NCS 매각설 솔솔. 세계 1위 클라우드 서비스를 매각하려는 나일의 속내는.
언론을 뜨겁게 달구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