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국내 1위가 세계 1위(2)
서치에서 인공지능 부서 기술을 총괄하고 있는 노먼 라이스는 최근 깊은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더 적은 서버 자원을 사용하면서 성능을 높이려면 현재 구조로는 안 돼.”
서치에서 만든 인공지능 성능은 아이온 인공지능과 합쳐지면 한 단계 레벨업 했다. 그건 AI 퍼포먼스 테스트에서도 나타났다.
최종적으로 92점. 전보다 20% 이상 향상된 수치였다. 하지만 노먼은 더 높은 점수가 되길 원했다.
95점.
그 점수가 돼야 인터넷 연결 없이도 인공지능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려면 프로그래밍 언어부터 바꿔야 할 것 같은데…….”
현재 딥 체인저 주 언어는 ‘서플’이다. 서치에서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위해 특별히 만든 언어로 서치의 많은 시스템에 적용되어 있었다.
옆에 있던 부하직원이 노먼에게 말했다.
“요즘 ‘리턴’이라는 언어가 뜨고 있던데 한번 검토해 볼까요?”
“리턴이라면…… 마틴이랑 이강철이 합작해서 만들고 있는 언어?”
“네. 이번에 버전 5.0으로 업데이트가 되었습니다. 대대적인 변화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C 언어처럼 컴파일러 레벨에서 기계어로 번역하는 거더군요. 덕분에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진 것으로 추측되고요.”
노먼이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 버그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잖아. 개발 속도도 느려지고.”
“물론 일반적으로는 그렇죠. 그런데 리턴은 오히려 그 반대에요.”
“뭐?”
“어셈블리 레벨에서 다른 언어가 하는 일들을 전부 해내더라고요.”
노먼이 생각하기에 그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랬기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번 봐봐.”
노먼이 직원이 보고 있던 모니터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리턴의 스펙에서부터 설계 방향, 그리고 패치 노트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걸 빠르게 읽어 내려간 노먼이 중얼거렸다.
“진짜네…….”
“그래서 몇 가지 테스트 시스템을 구동해 봤는데 속도가 엄청납니다. 대용량처리에도 헬로우 월드처럼 단어 찾기 테스트 있잖아요.”
단어찾기 테스트.
100mb 정도 되는 파일에서 특정 단어를 찾아내는 테스트 코드로 이걸 통해 해당 언어가 대용량 데이터 처리에 얼마나 특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노먼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직원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거기에서 서플보다 성능이 40% 정도 더 빨리 나왔어요. 한번 보세요.”
-result : 3.5s.
3.5초가 걸렸다는 말이었다.
“저도 테스트하면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서플이 한 5~6초 사이 나오는데 이건 그것보다 훨씬 빠르니.”
“이거…… 진짜야?”
“네. 그렇다니까요. 벌써 각종 커뮤니티에서 반응이 엄청나요. 안정화만 되면 도입하겠다는 사람이 대다수고요. 더구나 대산 측에서 리턴 5.0을 이용해서 DVM 3.0 개발 막바지라는 내용이 기술 블로그에 올라오면서 이미 도입을 시작한 곳도 많습니다.”
“이걸 도입하면…… 우리 인공지능도 꽤 빨라지긴 하겠는데…….”
직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대로 검토해 볼까요?”
노먼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해보자.”
그건 비단 서치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세계 각국에서 개발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건 github에서 코드의 인기 순위를 봐도 알 수 있었다.
-1. DVM 2.0
-2. return project.
…….
1, 2위를 전부 강철이 올린 프로젝트가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이건 오픈소스로 공개된 것이기 때문에 코드를 받아간다고 해서 돈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있었다.
-DVM 2.0 기술 자문.
그걸 통해 들어오는 돈이 상당했다. 전담팀을 만들어 운용했고, 조언만 해주면 되기에 영입이익률은 50%에 달했다.
그야말로 노다지 사업인 것이다. 리턴 언어는 직접적인 수익은 없지만 다른 쪽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홍보.
별도의 홍보가 없어도 사람들이 대산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서비스를 이용했다. 그건 곧 매출로 이어졌고,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의 점유율도 30%를 돌파했다. 나일을 턱밑까지 쫓아가게 된 것이다.
점유율 30%.
그 수치에 데이비드는 위기감이 턱밑까지 엄습했다. 나일이 고속 성장할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대산의 점유율이 30%를 돌파했다고요?”
“네. 매달 진행하는 자체 조사 결과에서 그 정도 수치가 나왔습니다. 전 달 대비 2%가 또 올랐습니다.”
“이렇게 되면…… 1년 안에 완전히 따라잡는다는 말인데…….”
비서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데이비드의 입에서 깊은 한숨을 흘러나왔다.
“NCS 2.0 개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현재 DVM 2.0을 기반으로 테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기존 NCS 대비 성능이 30%가량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이 시점에서 대산에서 DVM 3.0 출시를 예고했습니다.”
데이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리턴 5.0이 적용된 솔루션 말이군요.”
“네. 마틴과 협업해 만든 리턴이라는 언어로 DVM 3.0을 개발했고, 그 성능은 DVM 2.0과 비교해 40%가량 향상되었다고 합니다. 리턴이라는 언어 자체가 성능상에 대폭 개선을 이뤄 이런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데이비드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자신들도 기존의 개발을 뒤엎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DVM 3.0도 오픈 소스로 공개될 테고…… 그럼 우리도 리턴 5.0에 DVM 3.0 조합으로 다시 바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기존 개발의 전부 갈아엎어야 합니다. 물론 노하우가 쌓여 개발 기간이 조금 단축되기야 하겠지만요.”
데이비드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패스트 팔로워의 비애.
이런 문제점이 있어서 기술 선도 기업이 되려 했는데……. 한번 빼앗긴 왕좌를 되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잔뜩 굳어 있는 데이비드를 보며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재개발 지시할까요?”
아마 개발자들의 반발이 극심할 것이다. 회사의 중점 사업이기에 CEO의 리더쉽은 타격을 받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기술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일단 다시 개발 팀장들 전부 회의 소집하세요. 의견을 한번 들어봐야 할 것 같으니까.”
고개를 숙인 비서가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표정은 과히 좋지 않았다.
‘정말 침몰하는 건가…….’
세간에 흘러나오는 ‘침몰하는 배 나일’ 그 평가가 현실이 되고 있었다.
* * *
비슷한 시각.
강철은 DVM 3.0의 막바지 테스트에 열중하고 있었다.
“54회차 통합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개발 팀장의 말에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미 수차례 해보는 일이었다. 실수는 용납될 수 없었다.
“3.0 로딩 끝났습니다. 서버 생성 시나리오 시작합니다.”
-Server Instance Creating…….
시간은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기존 DVM 2.0에 비해 한 번 더 압도적인 성능 개선을 이뤄냈기 때문이었다. 그걸 보는 강철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서렸다.
강철이 개발 팀장을 맡은 마이클을 향해 수고의 말을 전했다.
“고생 많았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대표님 덕분에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마이클 설리번.
나일의 NCS 설계를 맡아온 그의 실력은 확실히 뛰어났다. 그의 능력에 강철의 조언이 더해지자 탄생한 것이 DVM 3.0이었다.
“그래도 마이클이 없었다면 이렇게 이른 시간 안에 만들어 내진 못했을 겁니다.”
DVM 2.0이 출시되고, 1년도 되지 않아 3.0 개발이 완료되어 갔다. 가상화 솔루션 분야에 대해서라면 강철보다도 다양한 지식을 가진 마이클 덕분이었다.
마이클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로 완성도가 높으면 앞으로 한 달 안으로 출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마이클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한 2주면 완벽히 준비될 것 같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말에 강철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하하, 좋습니다. 그때를 런칭 일로 해서 준비해 봅시다.”
“네.”
이후 담소를 나누는 강철에게 비서가 살짝 다가와 말을 전했다.
“대표님 잠시.”
강철의 집무실.
조용한 곳에 도착한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
“최근 나일과 알리바바에서 이직한 직원들에게서 이상한 소문이 들리고 있습니다. 그쪽에서 클라우드 서비스 아키텍처에 DVM 2.0을 채택하기로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말에 강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NCS, 알리바바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DVM 2.0을 채택했다고요?”
“네. 가장 윗선에서 추진하는 일이라 아직 소문이 퍼지지는 않은 모양인데 거의 확실하다고 합니다. 그게 아니면 대산의 성능을 이길 수 없다면서 결정한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들은 강철이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타 회사의 오픈 소스를 자사의 핵심 서비스에 차용한다라…… 결국 기술력으로는 우리보다 한 단계 아래라는 걸 인정한 셈이군요.”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바로 언론 배포 자료 준비할까요?”
강철이 검지로 탁자를 두드렸다. 언론을 통해 슬며시 이 사실을 흘리면 당장 해당 회사들에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완전한 적용이 끝난 시점쯤에 배포하도록 하죠. 그래야 다시 바꿀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때쯤 되면 우리는 3.0을 적용해 한 발 더 앞서 나간다는 식으로 홍보를 하고요.”
“알겠습니다.”
“아 참, 드론 생산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수율이 92%까지 올라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천 팀장님께서 밤낮없이 매달리신 덕분입니다.”
“천 팀장에게는 이번에 스톡옵션을 좀 더 부여해주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 후로도 한동안 회사 이야기가 오갔다.
아이온 게임즈.
리민스.
슈퍼앤트.
대산 마트.
대산 백화점.
VM 웨어.
이런 대형 회사들만이 아니라 강철이 투자한 스타트 업들 중에서 특이 동향이 생기면 알아두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장 말미에 비서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던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임지에서 올해의 인물에 선정하고 싶다면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습니다.”
“응하도록 하세요. 타이밍이 좋군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소개하는 자리로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비서가 물러가고, 강철이 핸드폰을 들었다. 그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지금 끝났어요.
여느 직장인처럼 퇴근 후 연인을 만나기 전의 설렘이었다.
* * *
전일 대비 +5%.
대산이 DVM 3.0을 공식 출시하고, 클라우드 서비스에 적용을 발표하자 주식시장에 나타난 변화였다.
비상장 사인 ㈜아이온의 시가총액은 시장에서 확인할 수 없었지만 ㈜대산은 바로바로 확인 가능했다.
그렇게 확인한 시가총액이 130조.
VK 그룹사 전체를 합산한 금액보다 큰 금액이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최서훈의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끝났다고?”
최윤아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끝났어.”
최서훈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왜?”
“왜긴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지.”
“그러니까 왜 네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러자 최윤아가 눈가를 찡그렸다.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럼 내가 구질구질하게 찾아가서 왜 내가 싫냐고 물어봐야겠어?”
최윤아의 폭풍 같은 한탄에 최서훈이 ‘깨갱’ 하며 입을 다물었다.
“내 결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빠는 신경 쓰지 마.”
엄포를 놓은 최윤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공적인 일이라면 이렇게까지 행동하진 못했겠지만 이건 엄연한 사적인 일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던 최윤아가 한 번 더 목청을 높였다.
“분명히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다. 더 개입하면 진짜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이내.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최윤아가 완전히 집무실을 빠져나가자 최서훈이 표정을 굳히며 비서에게 물었다.
“어떻게 일이야?”
“이강철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 같습니다.”
“누구?”
“엘리라고 트리플이라는 아이돌 그룹 멤버입니다.”
최서훈의 미간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아이돌?”
“네. 최근 빌보드 순위에도 오르면서 인지도가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The Startup 촬영을 같이하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파악 중입니다.”
최서훈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쯧, 하여간 고추 달린 놈들한테 이쁜 여자를 붙여놓으면 안 된다니까.”
비서가 시립한 채 가만히 대기하고 있자 최서훈이 말을 이었다.
“어차피 잠깐 놀려고 만나는 거 아냐? 실컷 놀고 나면 제 자리로 돌아오겠지.”
그 말에 비서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강철 대표의 어머니와 쇼핑에도 동행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동생 이희진과는 말할 것도 없고요. 주변에서 소문으로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 합니다.”
결혼이라는 말에 최서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결혼까지?”
“네. 상당히 진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강철 대표도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입니다.”
“진짜 이 자식이!”
순간 손 등에 힘줄이 돋아날 정도로 화가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자 이렇게 자신이 화낼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긴 내 딸과 아무 사이도 아니긴 하지만…….’
수십 년간 재벌로서 생활하며 자신의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정부.
언론.
기업.
등등 자신의 지시 한 마디면 죽는시늉도 하는 시대를 살아왔는데…… 마음대로 안 되는 놈을 만난 것이다.
‘이놈을 어떻게 한다.’
이강철 그놈은 도대체 자신의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비서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잘못 건드렸다가는 그쪽과 애써 만들어온 관계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최서훈이 코웃음을 쳤다.
“관계가 무너져? 그렇다고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오늘부로 대산의 시가총액이 130조를 넘었습니다. 미국에 상장되어 있는 아이온 그룹의 자회사들을 전부 합치면 200조가 넘고요. 현재 명실상부한 국내 2위 대기업의 수장으로서…….”
비서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최서훈의 표정이 썩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잠시 멈추었을 뿐이다.
비서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강철과 손을 잡지 않으면 사업을 못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고요. 그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 수장들은 떨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말에 최서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떨고 있다?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왜?”
“혹시나 자신의 사업영역에 진출할까 봐서 그렇습니다. 나일의 성장 역사를 기억하십니까?”
그 말에 최서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일의 성장.
그 역사를 자신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 국내 기업의 회장들이라면 다들 한 번쯤 읽어보았을 것이다.
“나일은 초기 대형 서점이 공고히 자리를 잡은 서적 시장을 차지하며 사업의 규모를 키웠습니다. 그다음 유통, IT까지 진출하는 사업마다 백전백승했고 무수한 회사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무너졌습니다.”
비서가 자신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의미는 간단했다. 최서훈이 그걸 모를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었다.
“이강철이 그렇다?”
“엄청난 기세를 타고 상승 중인 사람입니다. 함부로 그 기세에 반했다가는 오히려 타격을 입을지도 모릅니다. 아시겠지만 지지부진하던 V스토어의 성장이 그와 손을 잡고 추진하자 순식간에 세계적인 서비스로 성장했습니다. VK 그룹이 소프트웨어에 손을 대서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이기도 하고요.”
“흠…….”
“더구나 공격적인 데이터 센터 건설로 DRAM 구매의 큰손이 됐습니다. 그쪽에서 우리 쪽 반도체를 사주지 않으면 VK 그룹도 타격을 입게 될 게 뻔합니다. 그리고 현재 드론들이 이용하고 있는 VK 통신 이용료는 또 어떻습니까.”
거기까지 듣고 나자 최서훈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알아들었으니까. 그만해.”
“네.”
“그러니까 척을 질 게 아니라 협력 해야 할 상대라는 거잖아.”
“맞습니다.”
분명 그게 맞는 일이다. 하지만 딸 아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반대로 여자 쪽을 한 번 알아봐.”
“트리플의 엘리 말씀입니까?”
“그래, 엘리인지 엘사인지. 감히 내 걸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알게 해줘야지. 어차피 몇 다리 건너서 건드리면 누군지도 모를 테고 말이야.”
비서도 이것까지 말릴 수는 없었다. 최서훈이 말린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었고.
“알겠습니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연예인이라니까. 뉴스 몇 개 터뜨려 봐. 그러면 그놈도 다시 생각하겠지.”
살짝 고개를 숙인 비서가 자리를 떠났다.
이내 VK 그룹이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정보망이 빠르게 가동되었다.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는 VK 그룹이 움직이자 엘리에 관한 사소한 내용도 놓치지 않고 수집되었다.
* * *
비슷한 시각.
강철은 엘리와 세 번째 만나고 있었다. 최근 힘든 일상 속에서 그녀를 만나는 건 일종의 힐링이 되고 있었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달까.
“컴백이 언제라고요?”
“앞으로 3달 후에요. 컴백하게 되면 많이 못 볼 수도 있는데…….”
엘리의 목소리에서는 잔뜩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그런 엘리가 귀여워 강철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연락 많이 할게요. 그럼 되죠. 뭐.”
“대표님은 저보다 더 바쁘잖아요. 그래서 그러죠. 이제 저까지 일하게 되면 만날 시간이 없을까 봐…… 오늘도 어렵게 만났잖아요.”
강철은 괜히 입맛을 다셨다. 엘리의 말대로 자신이 너무 바빠 약속을 어긴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엘리에게 일을 그 만두고 자신만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최대한 시간을 낼 테니까.”
강철의 다정한 말에 굳어져 있던 엘리의 표정이 조금씩 풀렸다. 그러곤 강철을 빤히 보며 물었다.
“그런데 대표님은 언제까지 저한테 존댓말 쓰실 거예요.”
그 눈빛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강철도 빤히 엘리를 보았다.
후욱.
서로의 숨소리가 닿는 거리에서 둘은 서로를 빤히 보았다. 강철은 참을 수 없는 갈증을 느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공간을 잠식했다. 하지만 강철의 시도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드르르륵.
엘리의 핸드폰이 미친 듯이 진동했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엘리가 당황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알았어요. 한번 확인해 볼게요.”
연락을 받은 엘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강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 생겼어요?”
“갑자기 언론에 기사가 났다고 해서요.”
언론.
기사.
그 두 단어에 강철은 직감했다.
‘올 게 왔구나.’
막는다고 막았지만, 언제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밝혀졌어야 할 일이었다.
“괜찮아요. 저는 준비됐습니다.”
하지만 강철의 그 말에도 엘리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강철의 시선이 엘리가 보고 있는 핸드폰 화면을 향했다.
-트리플 엘리. 충격 비화!
-차가운 표정의 엘리에게 대중들은 열광했다. 냉정한 엘리의 행동에 그녀의 아버지는 절망했다.
-하나뿐인 아버지에 대한 엘리의 경악스러운 행동이 폭로돼 대중들에게 경악을 일으키게 만들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 최 모 씨는 하나뿐인 딸이 더는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본지에 단독 제보를 통해 그녀의 실상을 밝혔다.
…….
기사의 내용만 보면 그녀는 천하의 몹쓸 불효녀였다. 그걸 본 엘리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아니야…… 아니라고…….”
강철이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엘리의 어깨에 슬며시 손을 얹었다.
“괜찮아요?”
“저, 정말 아니에요. 아, 아버지가 있긴 한데 알코올 중독자에 매일 술을 먹고 들어와 집안 기물을 다 부수기나 하던 그런 사람이에요. 무, 물론 제가 아버지에게 쓰레기라고 한 적이 있지만 그건 엄마를 너무 때려서…… 그, 그래서 엄마가 병원까지 가게 돼서…….”
순간.
엘리의 눈가에서 툭 하고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 내렸다.
보다 못한 강철이 살짝 손을 들자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다가왔다.
“지금 기사 난 거 한번 알아보세요. 최대한 빨리.”
“알겠습니다.”
비서가 돌아가고, 강철은 자신의 품에서 울고 있는 엘리의 등을 내려다보았다.
‘설마…….’
연예인들은 연기를 잘한다. 즉 기사가 사실이고 지금 이 모습이 연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엘리의 모습을 거짓이라 믿고 싶진 않았다.
강철이 차가운 말투로 한 번 더 지시했다.
“빨리, 최대한 빨리 알아오세요.”
그 한마디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같은 뉴스를 최윤아도 보고 있었다.
“……설마.”
뉴스를 보는 순간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빠?”
아버지 말고는 이런 뉴스를 낼 사람이 없었다. 엘리가 강철과 만난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데도 간 크게 강철에 관한 기사를 낼 언론은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뭐,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네.”
기사에서 엘리는 천하의 불효 년이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와 직접 증언까지 했으니 대부분이 사실일 가능성이 컸다.
그 말은 즉 엘리의 연예계 생활은 이걸로 끝이라는 말과도 비슷했다.
“과연 이강철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렇게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인터넷 기사를 보던 최윤아가 눈을 반짝였다.
“……응?”
어느새 자신이 보고 있던 기사가 내려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제목의 기사가 새롭게 업로드되어 있었다.
-정정보도
-안녕하십니까. 이번 엘리 관련 기사를 쓴 이동우 기자입니다.
-관련 내용에 몇 가지 오류가 있어 정정 기사를 올립니다.
-1. 엘리와 아버지 최 모 씨는 이미 10년 전부터 절연 관계에 있었습니다.
-2. 엘리의 욕설은 과거 아버지 ‘최 모 씨’가 가정폭력을 행사할 때 나온 것으로 일종의 정당방위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
마지막 말이 압권이었다.
-사실관계에 미흡한 점이 있었음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그 문장에 최윤아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쉽게?”
새삼 강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to be continued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
8
SOKIN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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