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50화 (50/59)

6장 거세지는 견제(2)

DA 개발자 컨퍼런스.

강철의 지시로 인해 대산, 아이온 두 그룹이 힘을 합쳐 매년 펼치는 행사였다.

그 행사의 시작은 항상 자사 최신 기술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DVM.

화면에 떠 있는 건 DVM이었다.

그걸 본 개발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DVM이 출시된 지도 벌써 수개월이 지났기에 최신 기술이라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개발 과정을 소개해 주려나.”

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 개발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내 생각에는 아마…… 대대적인 업데이트가 된 것 같은데. 이강철이 기존에 나와 있는 기술이나 소개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래? 이강철이 그런 사람이야?”

동료 개발자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자 화면이 조금 변했다.

-DVM 2.0.

2.0이라는 글자가 나타난 것이다.

이내 강철이 자리로 올라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자 다시 화면에 또 다른 문구가 나타났다.

-High Availability.

-High Speed.

-Parallel Computing.

그리고 강철이 마이크를 잡았다.

“DVM. 이미 관련 분야의 선두에 있는 오픈스택을 제치고 올해 가장 많은 개발자의 관심을 받은 솔루션이 아닐까 합니다.”

삑.

강철이 들고 있던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다시 화면이 전환되었다.

“DVM의 단점으로 느린 속도가 계속 지적됐습니다. 대산에서는 ‘원스’라는 OS를 만듦으로써 그 단점을 제거했지만 오픈 소스로 공개되어 있는 DVM의 성능은 저의 최대 화두 중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삑.

다시 화면이 전환되며 이번에는 나일의 논문이 나타났다.

-NVA.

“나일이 공개한 오픈 소스입니다. NCS 초기 이용했던 가상화 솔루션으로 알려져 있죠. 이 논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보니 머릿속으로 한가지 생각이 번뜩였습니다. 그걸 DVM에 적용했고, 2.0 버전을 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DVM은 원스 OS에서만이 아니라 기존 리눅스 환경에서도 빠른 속도로 작동할 것입니다. 일단 시연부터 보시겠습니다.”

강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개발자들이 투입되어 DVM 2.0 시연회를 선보였다.

설치에서 운용까지.

기존 대비 40% 이상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 속도에 행사에 참석한 개발자들이 놀란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현재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에도 DVM 2.0 적용이 테스트 중입니다. 해당 테스트가 완료되면 서비스 속도는 당연히 높아질 것이고요. 어느 정도로 빨라지는지 간단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내 강철이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 테스트 페이지에 접속해 원클릭 서비스 메뉴를 클릭했다.

거기에 각종 설정 정보를 입력하고 ‘만들기’ 버튼을 클릭하자.

-서비스 생성 중…….

화면이 나타났다. DVM 2.0이 적용되기 전에는 이 화면에서 수 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속도만 빨라진 게 아닙니다. 안정성, 내부 처리 속도, 편의성 모든 편에서 성능 개선을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사 서비스 홍보로 넘어갔다.

그 모습을 아이비디오를 통해 데이비드도 보고 있었다. 그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비서에게 물었다.

“벤치마크 결과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아이비디오의 스트리밍으로 내부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결과 자사 NCS 서비스보다 30% 정도 속도가 더 빠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가상화 OS를 적용해도 말입니까?”

“네.”

데이비드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한발 다가섰다고 생각했더니 한 발 멀어져 버렸다.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대산 쪽에서도 클라우드 서비스의 가격을 또 내렸습니다.”

“……뭐요?”

“할인 폭은 10%가량. 이번 DVM의 성능 개선을 통해 운영비 절감 효과를 이뤄냈다는 명분입니다.”

데이비드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고도 OPM이 유지가 된단 말입니까?”

비서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극비 정보라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현재 NCS의 영업이익율은 29%다. 계속되는 할인으로 40~45%를 오가던 영업이익율이 확 깎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산에서 또 한 번 할인을 해버렸다. 그것도 NCS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데이비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만약 우리도 여기서 또 깎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나일 전체로 보면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큽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일어나는 출혈 경쟁을 NCS가 막아내고 있는데 그 마지노선이 29%니까요.”

데이비드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적자라니…….’

지금까지 몇 번 적자가 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경쟁사의 출현 때문이 아니었다. 막대한 투자로 인해 발행한 고정비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성장을 위한 진통이랄까.

이번 경우는 다르다. 상황이 이렇게 된다는 건 사업 구조적으로 적자 흐름이 지속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할 말을 잃은 데이비드에게 비서가 말했다.

“인피니티에서 3%에 달하는 지분을 블록딜로 넘기기로 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다른 투자자들도 동요하고 있습니다. 최근 주가 상승에도 제동이 걸려 2% 하락하고 있고요.”

악재의 연속이었다. 데이비드의 한숨이 깊어졌다.

반대로.

대산 그룹의 주가는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전일 대비 +4%.

전일 대비 +5%.

전일 대비 +2%.

전일 대비 +12%.

매일 상승을 거듭하다 DA 컨퍼런스날 발표한 DVM 2.0 덕분에 12%가 올라 버렸다.

주식시장에는 PER라는 수치가 있다. 한국시장에서 10이면 보통 적정 PER라고 하는데 ㈜대산의 PER는 30이었다.

이는 미국의 유명인 나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들에 근접하는 수치였다. 그리고 높은 PER를 받고 있다는 건 곧 시가총액이 높다는 뜻이기도 했다.

시가총액 60조.

국내 코스피 시장에서도 3번째에 달하는 액수였다. 강철의 개인 자산도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이었다.

그 자산을 상세하게 알고 있는 건 신주영이었다.

“대표님 개인 명의의 자산이 50조를 돌파했습니다.”

50조.

오직 신주영만이 알고 있는 액수였다. 사모펀드나 차명 계좌로 들어가 관리되는 돈까지 합쳐진 숫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액수는 세계에서도 순위권 안에 드는 액수였다.

신주영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최근 대산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게 주효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신주영의 들뜬 음성에 강철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감사합니다. 신 대표님이 잘 운용해 주신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대표님이 기술 개발을 잘하신 덕분이지요. 저는 뭐 숟가락 하나 얹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주영의 입가에도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강철 덕분에 신주영도 불과 수년 만에 천만장자를 넘어서 500억 정도의 자산을 일궜기 때문이었다.

“다름이 아니고 지난번 말씀드린 것처럼 아이온 그룹사 나스닥 상장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때가 무르익은 것 같아서요.”

그 말에 신주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현재 연방준비은행에서도 공식적으로 당분간 제로 금리를 유지한다고 한 덕분에 시중 유동성이 엄청나게 풍부합니다. 최근 IPO를 한 여러 회사들이 실제 기업 가치보다 높은 평가를 받으며 나스닥에 입성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고요. 덕분에 저희가 운영하는 사모펀드들도 큰돈을 벌었습니다.”

신주영이 앞에 높은 술잔을 들이켜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물론 대표님이 해당 회사들의 기술을 검증해 주신 덕분이기도 하고요.”

“하하, 네. 그래서 아이체크를 비롯해서 리민스. 딜리버리브라더스, 슈퍼엔트, 디스트릭까지. 최대한 빨리 진행할 수 있게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내 강철이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리고 IBM 쪽 클라우드 사업부문과 델이 가지고 있는 VM웨어를 인수할 수 있는지도 동시에 살펴봐 주시고요.”

“상장 자금을 이용해서 인수를 하시려고…….”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이왕 시작한 거 NCS는 꺾어봐야죠.”

신주영이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 * *

신주영에게 지시를 내린 강철의 다음 행보는 바이두의 대표를 만나는 것이었다. 바이두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강철은 기존 중국 내 인맥을 총동원해서 바이두의 CEO를 만났다.

“반갑습니다. 타오주입니다.”

“이강철입니다.”

“저희 클라우드 서비스를 인수하고 싶다고요?”

“네. 바이두의 주력은 온라인 검색이니까요.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싶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강철이 지긋이 타오주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보면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곧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가 중국에 진출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바이두의 서비스가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오만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타오주는 입을 꾹 닫을 뿐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강철이 타오주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를 잃어가게 될 겁니다. 지난번 발표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자사의 성능은 압도적입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이미 중국 내 서비스도 시작했고, 사용자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입니다. 그걸 단숨에 수용하는 데는 바이두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인수하는 게 빠를 것이라 판단했고요.”

타오주가 강철을 만나고자 한 건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 아니었다.

타오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표님.”

“네.”

“오히려 그 반대의 제안을 제가 드리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반대라 하시면 저희 서비스를 인수하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타오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재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서비스가 6,000억 위안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대산의 성장세가 무섭기는 하나 매출은 알리바바 클라우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략 그 절반인 3,000억 위안. 어떻습니까?”

3,000억 위안.

한화 50조에 달하는 돈이었다. 하지만 강철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군요. 세계 최고의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가진 NCS보다 뛰어난 성능의 서비스입니다. 그런 서비스가 고작 3,000억 위안이라니. 더구나 몇 달 전 다른 회사로부터 4,000억 위안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원스나, DVM 2.0을 개발하기 전에요. 그걸 생각하면 최소 8,000억 위안은 됩니다.”

8,000억 위안.

바이두의 시가총액을 아득히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바이두의 대표인 타오주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강철이 그런 타오주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저희에게 팔지 않으면 사업을 접어야 할 겁니다. 적자는 지속되고, 우리의 기술은 계속 발전할 테니까요.”

강철이 살짝 손을 들자 비서가 태블릿을 가져왔다.

“여기 그 근거들입니다.”

이내 동영상이 하나 플레이되었다. 그건 DVM 2.0이 완벽하게 적용된 대산의 클라우드 서비스 벤치마크 영상이었다. 그 영상을 보자 타오주는 이를 꽉 다물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안 되는군…….’

강철의 말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 * *

알리바바.

중국 내수를 기반으로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성장한 회사였다. 그곳의 현 CEO인 허융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강철이 바이두 대표를 만나고 있다?”

“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바이두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인수하려는 것 같습니다.”

허융이 턱 주변을 만지작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가 중국에서 정식 출시하고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마당에 바이두까지 인수한다니 사업을 크게 키울 모양이야.”

“중국은 내수만 해도 세계 시장에 못지않은 규모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바이두를 인수함으로써 규모를 단번에 키울 수도 있고요.”

“그게 쉽지 않을 텐데 그 뒷배경에 차오스가 있다고?”

“네. 차오스를 비롯해 광전총국 책임자인 리환과도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워리어의 중국 내 유통에도 그 둘이 힘을 실어줘서 판호 발급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비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둘을 시작으로 중국 내에 공고한 인적 네트워크를 쌓고 있다 합니다. 더구나 이강철이 개인 자본으로 중국 내 스타트업에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디스트릭이고요. 그런 사례가 있다 보니 이강철을 한번 만나보고 싶어 하는 고위직 자제들이 발이 차일 정도라 합니다. 그런 현상도 그의 인적 네트워크를 단단히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고요.”

“그래서 결론은 대산이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을 전개하는 데 장애물이 없다.”

“네. 만약 바이두의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인수하게 된다면 단숨에 중국 내 3위 사업자로 올라서게 될 겁니다. 물론 1위인 자사 서비스와 격차는 상당하겠지만 그 격차는 빠른 속도로 좁혀질 것이라는 게 전략실의 결론입니다.”

허융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전략실의 보고서를 읽었다. 그리고 최근 고난을 겪고 있는 나일의 사례 역시 똑똑히 보고 있다. 알리바바 역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중국 고위층 인맥은 우리가 더 많을 텐데…… 우리에게 직접 지분 투자를 한 경우도 많고.”

“그래서 이강철도 클라우드 서비스의 경우 조인트 벤처 형식으로 진출하는 것 같습니다. 지분의 40%가량은 중국 쪽 투자를 받아서요. 투자만 하면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그 투자를 진행하겠다는 인원들도…….”

“엄청나겠군.”

“네. 투자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서 고위층에서도 적극적으로 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강철이 손대는 것마다 성공시키다 보니 투자하려 줄을 서는 상황입니다.”

탁.

타닥.

탁탁.

허융이 검지로 탁자를 두드렸다. 고민이 있을 때면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그쪽 서비스 벤치마크 결과가 어떻다고 했지?”

“벤치마크 조사 업체인 클라우드 스페이스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종합 점수 91점으로 대산이 압도적 1위입니다. 2위가 NCS 3위가 애저 4위가 서치 클라우드 서비스 그리고 5위가 자사 서비스입니다.”

“4단계 차이라…….”

4단계에 불과하지만 점수는 20점가량 차이가 난다. 기술 격차로 따지면 2년가량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기술 격차 2년.

그 정도면 IT 업계에서는 단기간에 따라가기 힘든 수치였다. 그 사실을 허융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 관련 분야 인원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격차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외 유수 기업을 인수하는 겁니다. 인력 채용에도 한계가 명확하다 보니 이미 기술이 입증된 회사의 기술과 인력을 한꺼번에 인수하는 게 최선입니다.”

이내 비서가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여기 리스트입니다.”

-클라우드하모니

-메프

-퍼킷

-엔진 클라우드

…….

등등 거기에는 최근 뜨고 있는 관련 스타트업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순서대로 기술 평가에서 상위점을 받은 기업들입니다. 그만큼 인수금액은 늘어날 테고요.”

허융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바로 추진해. 성장 산업은 시장을 선점하는 게 중요하니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인수해서 우리 쪽에 적용할 수 있게 하고.”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알지 못했다. 이들이 투자하기로 한 기업들이 이미 누구 손에 들어가 있는지를.

* * *

한국.

다시 회사로 돌아온 강철이 창가에 서서 바깥을 보고 있었다.

“알리바바에서 제가 투자한 클라우드 관련 회사를 사겠다고 했다는 말입니까?”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상당합니다. 백지수표를 받은 스타트업도 있습니다.”

“어차피 그닥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회사니 팔아도 상관은 없으니까. 기존 가치보다 한 10배쯤 불러 보세요. 사면 그만이고 안 사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알겠습니다.”

“바이두에서는 연락이 왔습니까?”

“아직 고민 중인 것 같습니다.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이 8%밖에 안 되기는 하지만 시장 자체가 급성장하고 있어 먹을 파이가 많으니까요.”

창가에 서 있던 강철이 검지로 창문을 퉁 두드렸다.

“……그러면 좀 더 압박을 가해야겠군요. 사업부를 팔지 않을 수 없게끔.”

“플랜 C를 실행할까요?”

플랜 C.

바이두가 사업 부문을 매각하지 않을 때를 대비해 마련해 둔 대책으로 그 중심에는 이강철이 있었다.

The Startup.

중국에서 방영된 방송 덕분에 강철은 스타트업의 상징 같은 인물이 되어 있었다. 플랜 C는 그런 강철을 적극 활용하는 기획이었다.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 시 강철의 기술 자문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패키지 상품 출시. 강철이 지금보다 바빠지겠지만 효과는 확실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네. 상품 출시합시다. 바이두는 확실하게 제쳐야 할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유관 부서에 연락을 취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본격적인 광고가 시작되었다.

성능, 가격.

거기에 플러스 알파까지.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중국에서 미국 제품 불매를 외치던 중 소비자들도 애플의 아이폰은 사용한다. 확실하게 고개를 끌어당길 매력이 있다면 결국 사용한다는 말이었다.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가 그랬다.

첫 시작은 점유율 +0.5%에 불과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중국 내 점유율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점유율 +1.0%.

점유율 +2.0%.

점유율 +4.0%.

바이두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바이두의 회장 타오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비서에게 물었다.

“점유율 격차가 너무 빨리 좁혀지는 거 아닌가?”

“그게…… 대산에서 이강철 대표의 기술자문을 상품을 내걸면서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특히나 거대 IT 기업들이 이강철 대표에게 앞다투어 기술 자문을 받고 싶어하다보니 상황이 급반전된 것 같습니다.”

타오주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술자문을 받으면 기술을 빼앗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알아서 자신들의 기술을 가지고 찾아 들어간다고?”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보면 이강철이 오픈소스로 공개한 DVM이나 리턴 언어. 그리고 그가 앞으로 좋게 보는 기술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기회로도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서치에 매각한 아이온 인공지능까지. 그가 한 발 걸치지 않은 분야가 없다 보니 꽤 많은 그룹에서 서비스 이용을 문의하고 있습니다. 사용 액수가 커질수록 자문 시간도 길어지니까요.”

타오주가 으득 이를 갈았다. 그런 타오주를 향해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강철의 자문도 자문이지만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를 한 번 사용해 보면 타 서비스는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하다고 합니다. 사용자들의 반응이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그래서 우리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

“……네.”

타오주가 깊은 한숨을 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클라우드 서비스.

변형 인플루엔자 이후 관련 산업의 성장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 과실을 따기 위해 열심히 준비해 왔건만…….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이강철의 말대로 고정비도 감당이 안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비서가 고심하는 타오주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략팀에서는 차라리 사업부를 넘기고, 지분을 가져오는 게 미래 더 큰 투자수익을 낼 수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한번 들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사업 부문을 팔자는 말이었다.

“전략 실장 올라오라고 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야기해 보고 결정하자.”

“네.”

비슷한 시각.

강철은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많이 드세요. 여기가 오마카세 맛집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머니 최용희가 회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확실히 맛이 다르기는 하구나.”

사르륵.

입안에 들어간 최고급 참다랑어가 마치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평생 밥, 국, 김치만 먹다가 최근 먹기 시작한 고급 요리는 최용희를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했다.

“많이 드세요. 다음에는 또 다른 데 모시고 갈게요.”

최용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항상 고맙다. 아들 덕분에 이런 좋은 음식도 먹어보고.”

대화를 나누던 강철이 안절부절못하며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는 이희진에게 물었다.

“뭐 해, 안 먹고?”

이희진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어…… 그, 그게.”

“먹어. 여기 네 용돈으로도 못 오는 데야.”

이희진이 어색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어…… 어어.”

이내 초밥 한 점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하지만 초조한 기색을 금치 못했다. 강철이 그런 이희진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너 진짜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식은땀을 흘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이희진이 막 입을 떼려는 순간 강철의 시선에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엘리.

그녀가 자신이 앉아 있는 맞은 편에서 걸어온 것이다.

‘회식을 하러 왔나…….’

그런 생각도 잠시.

엘리의 눈가에서 맑은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져 내렸다.

한 방울.

두 방울.

그렇게 눈물을 떨어뜨리며 강철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이 한없이 슬퍼 보여서 강철은 쉽사리 말을 걸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뒤를 나은이 급히 쫓아갔다.

“엘리야. 어, 안녕하세요. 대표님.”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저…….”

강철이 채 물어보기도 전에 엘리는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철이 궁금증 가득한 눈빛으로 둘이 나간 통로를 바라보았다.

그 사건이 끝나고 나서야 이희진도 살짝 한숨을 내쉬며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강철이 이희진을 지긋이 쳐다보며 물었다.

“짰지?”

“……뭐?”

“말해봐. 이번에는 또 뭔데.”

이희진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짜긴 뭘짜.”

“지난번에는 노래더니 이번에는…… 연기?”

그 말에 이희진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강철이 그런 이희진을 보며 생각했다.

‘보기보다 귀엽네…….’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이 과히 싫지만은 않았다.

* * *

갑작스러운 소식에 데이비드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우리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 대산이 점유율 14%를 차지했다는 말입니까?”

비서가 심각한 표정으로 답했다.

“네. 바이두의 클라우드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걸 중국 정부에서 용인해 준다고요?”

“아쉽지만…… 그렇습니다.”

데이비드는 잘 믿기지 않아 한 번 더 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중국.

거기가 어떤 나라인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하는 나라다. 대산은 분명 자국 산업에 해가 될 기업인데 허락해 준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저도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확인해 봤지만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NCS처럼 중국 내 서버를 두고, 서비스를 해야 하는 제약이 있는 건 마찬가지였지만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리 쉽게…….”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NCS에서도 몇 번이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좀처럼 점유율을 높이지 못했다. 그래서 강철이 한 것처럼 M&A를 시도했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 강철이 하자 빠르고 쉽게, 모든 일이 처리된 것이다.

“중국의 상무위원들과 깊은 인연을 만들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 내 활동이 다소 자유로운 편이고요. 물론 과거 중국 내 스타트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한 것도 주효한 것으로 보입니다.”

까득.

데이비드가 이를 갈며 말했다.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는 건 곧 고객이 늘었다는 뜻이고, 비록 할인을 통해 가격은 내렸지만, 결과적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어나겠군요.”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벌써 증권가에서 어닝 서프라이즈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합니다.”

하아…….

한숨 나오는 이야기밖에 들리지 않았다. 자신들은 자칫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설 만큼의 위기 상황인데 상대는 반대라니.

비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강철이 바이두의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 부문을 넘겨받으면서 중국에 세운 조인트 벤처에 엄청난 양의 중국 고위급 자본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중국 고위급의 자본이요?”

“아시겠지만 해외 자본 100%로 중국 내에 회사를 설립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일부 중국 자본을 받아들이는데 거기에 중국 고위급 관리들이 대거 참여한 것입니다. 이강철이 하는 사업은 무조건 성공하리라 보고요.”

“그렇게 되면 정부 차원에서 더 함부로 할 수 없겠군요.”

“네. 아마 그걸 노리고 진행한 것 같습니다. 고위급 자본이 많을수록 그 회사의 중국 내 입지는 탄탄해질 테니까요. 그리고 아이온 자회사들에 대한 나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있습니다.”

“아이온 자회사라면…… 아이체크, 리민스 뭐 그런 회사들 말입니까?”

“네. 주관사를 선정하고, 회사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이온 게임의 폭발적 성장으로 사내 현금이 두둑하게 쌓여 있을 텐데도 IPO를 진행한다는 건 M&A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데이비드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아 되물었다.

“바이두 클라우드를 인수하는데도 큰돈을 썼을 텐데…… 또 인수를 한다는 말입니까? 어떤 회사를 왜?”

“현재 들리는 풍문으로 IBM 쪽 클라우드 사업 부문과 VM웨어를 인수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아마 쉽지는 않을 겁니다. IBM이나 델이 쉽게 내놓을지도 미지수고, IPO를 한다 해도 VM웨어만 해도 500억 달러에 달하는 가치를 평가받고 있어 자금이 부족할 테니까요.”

IBM.

델.

전통의 강자들이었다. 그 두 개 사업 부문의 가치만 해도 800억 달러는 족히 넘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데이비드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강철은 자기 생각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클라우드 서비스에 사활을 걸었군요.”

“IBM에 VM웨어까지 인수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도 가파르게 상승할 겁니다. 어쩌면 정말 NCS를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요. 따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단숨에 30%로 올라올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데이비드는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가는 느낌에 벌컥거리며 냉수 한 잔을 마셨다. 현재 NCS의 시장 점유율이 36%이다. 30%면 언제든지 1위를 빼앗겨도 이상하지 않은 숫자였다.

“이제는 인력 채용이 아니라 M&A 전쟁을 하자는 뜻인가…….”

데이비드의 중얼거림에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벌써 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알리바바에서 클라우드하모니, 메프, 퍼킷 이 세 개 사를 인수하기 위해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합니다.”

“한 번에 그 세 개를 전부?”

“가만히 있다가는 중국 시장을 그냥 내줘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쪽도 조급증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건 남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고조되던 위기감이 더 강하게 밀려왔다.

데이비드는 남아 있던 냉수의 한 방울까지 털어 넣었다. 그의 마음에도 조급함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 * *

비슷한 시각.

강철도 비서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각각 5억 달러, 4억 달러, 6억 달러로 협상이 완료되었습니다.”

합계 15억 달러였다.

자신이 저 세 개 회사에 투자한 금액을 합치면 천만 달러가량이었다. 150배에 달하는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다.

“알리바바에서 급하긴 한가 보군요. 총 15억 달러라니, 지난번 시리즈 B 투자를 진행했을 때 받은 평가가 5천만, 4천만, 6천만 정도였는데.”

“현재 중국 내 상황이 그만큼 안 좋다는 방증일 수 있습니다. 알리바바의 점유율은 계속 떨어지고, 자사의 점유율은 올라가는 상황에서 반전의 카드가 필요할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 쪽 점유율은요?”

“지난주 자체조사 결과 20%를 웃도는 것으로 파악 중입니다. 대표님의 기술자문이 제대로 먹혔습니다. 거기에 서비스의 품질이 워낙 좋다 보니 고객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고요. 한 번 쓴 사람들은 다른 걸 못쓰겠다는 평이 파다합니다.”

강철이 뿌듯한 표정을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 만들었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신주영 대표에게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온 자회사들의 나스닥 상장은 잘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고,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상장일을 정해주시면 최대한 그 일자 주변으로 정하겠다고 합니다.”

“한번 고민해 보고 연락해 준다고 하세요.”

“네. 그럼 그 건은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VM웨어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일단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요. 액수는 저희 요구 수준보다 올라갈 수도 있는데…… 한번 먼저 만나보시겠습니까?”

“지금은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사업을 빠르게 확장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른 시일 내에 약속 잡겠습니다.”

“IBM에서는요?”

“거기에서는 아직 내부적으로 결정을 못 한 것 같습니다. 어제 문의했을 때까지도 잠시 기다려 달라고만 했습니다.”

“그러면…… 바이두 때와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도록 합시다. 더 늦으면 기회가 없다. 가격은 더 내려갈 것이다. 너희들도 보고 있겠느냐. 우리 쪽 점유율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이건 너희에게 오히려 기회를 주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압박 전략을 사용하겠습니다.”

그것 외에도 몇 건의 결정이 더 필요했다.

-본격적인 중국 공략을 위한 중국 내 데이터 센터 건설.

-차세대 드론 양산 관련 보고.

-DSP(재고 관리 시스템), DRP(추천 관리 시스템) 버전업 관련 보고.

등등 강철이 인지해야 할 내용은 차고 넘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가량 비서의 보고가 끝나고.

강철은 겨우 짬을 내 핸드폰을 켰다. 엘리에게서 온 연락 때문이었다.

-지난번에는 죄송했어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그 문자를 보자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강철은 연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아닙니다. 그때 울고 계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좀 괜찮아지셨나요?

-아, 네…… 많이 좋아졌어요.

-다행이네요. 걱정했습니다.

거기까지 문자를 보낸 강철은 더는 문자를 보낼 수 없었다.

띠리리리.

울리는 인터폰 너머에서 급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핸드폰 반대편.

유심히 톡을 보던 엘리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나은을 보았다.

-걱정해 주셨다니 고마워요. 정말 별일 아니에요.

그 메시지를 보낸 후로 답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은의 이마에서 삐질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왜…… 답장이 없지. 그때, 네 모습을 보면 당연히 궁금해서라도 연락이 와야 하는데…….”

엘리가 질끈 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차피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한 일일 뿐이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쉽게 될 거였으면 진작 잘됐겠지…….”

나은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이상하다. 네 눈물에도 이렇게 밋밋한 반응을 보일 수가 없는데…… 그걸 보고도 가만히 있다니 이 사람 혹시 고, 고…….”

나은은 그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옆에서 이희진이 날카롭게 노려 보았기 때문이었다.

“언니! 우리 오빠 그런 거 아니거든. 오빠 컴퓨터에 어떤 영상이 있는지 말해줬잖아.”

“하긴 그럴 수가 없겠구나.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 된단 말이지…… 이렇게 밋밋한 반응이라니.”

이희진이 긍정의 고갯짓을 보냈다.

자신이 보고 있기에도 눈물이 떨어지는 엘리의 모습은 고혹적이었다. 여자도 한눈에 반할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흔들림이 없다니…….

대학 시절 예쁜 여자만 보면 눈이 돌아가던 오빠는 어디 갔단 말인가. 나은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하긴 이제 재벌 총수가 돼서 더 이쁜 여자를 많이 봤으려나…….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엘리는 실의에 빠졌고, 나은은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희진이 앞에 있던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고민하는 둘에게 툭 내뱉었다.

“그냥 정공법으로 나가는 건 어때?”

나은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정공법?”

“직접 만나서 고백해. 좋아한다고. 혹시 나랑 사귈 거냐고.”

직접 적인 그 말에 엘리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희진이 한층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질질 끌 거야. 그냥 확 고백하고 끝내. 받아들이면 사귀고, 안되면 그냥 깨끗하게 포기하고 맘 접는 거지. 내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하고.”

일리 있는 말에 나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이희진이 한층 용기를 얻은 표정이었다.

“이렇게 질질 끌다가 일도 제대로 안 되고, 사랑도 놓치고. 그렇게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결국, 엘리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은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최후의 고백 작전을 시작해 볼까?”

엘리는 괜한 불안감이 밀려왔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 * *

서울 중구 VK 그룹 본사.

최서훈이 보고 있던 신문을 접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야. 바이두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인수하고, IBM까지 탐내고 있다니…….”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 바이두 사업 부문 인수.

-중국 시장 점령 내게 맡겨라!

-IBM 클라우드 서비스 인수설 모락모락.

근래 경제 신문을 장식하고 헤드라인이었다. 하나같이 강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최서훈이 맞은편에서 차를 마시는 최윤아에게 말했다.

“우리 클라우드 사업부는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요. 죽 쓰다가 접기 일보 직전이죠.”

“그 SNS 서비스처럼?”

최윤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쯧쯧, 소프트웨어 쪽은 영 젬병이구만. 이것도 넘길까?”

최윤아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다 사업을 전부 넘기려고요?”

최서훈이 마땅찮은지 혀 차는 소리를 냈다.

“에잉. 소프트웨어 같은 고부가 가치는 도대체 왜 못 하는 거야.”

“제가 V스토어를 운영해 보니 알겠어요.”

최서훈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이유가 뭔데?”

“개발 능력.”

“……응?”

“프로그램 개발 능력이 부족해요. 주입식 교육 때문인지 뭔지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개발 능력이 부족한 것만은 확실합니다. V스토어도 강철 씨가 손봐주지 않았으면 아마 진작 망했을 거예요.”

V스토어.

그 단어에 최서훈의 표정이 밝아졌다.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긴데 그 V스토어 말이다. 요즘 잘나간다면서?”

“그냥 뭐 밥벌이는 하는 중이에요.”

“그 정도가 아니라던데…… 워리어 단독 런칭으로 사람 엄청나게 끌어모으고, 수익률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고 하던데…… OPM이 30%를 넘는다면서?”

점점 낮아지는 목소리에 최윤아는 직감했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최서훈이 사업을 탐내고 있었다.

“이건 저 주시기로 결정 끝났잖아요. 물적 분할까지 다 한 마당에 그걸 다시 합치시려는 건 아니시겠죠? 줬다 뺏으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에잉…… 정 없는 년.”

최윤아가 또 한 모금 차를 마시고,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보조를 맞추듯 최윤아가 입을 열었다.

“그런 이야기 하실 거면 저 이만 일어나 볼게요.”

“아직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안 했어.”

최윤아는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알고 있었다.

“아직이에요.”

최서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너 정도면 차고 넘치리라 생각하는데.”

“그걸 알면 벌써 끝났겠죠?”

“쯧쯧, 남자란 자고로 술을 먹이고…….”

최서훈은 그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아빠! 내가 무슨 술집 여…….”

최윤아는 차마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최서훈이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이제 공적인 이야기가 끝났다. 최윤아는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 존대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자꾸 그놈의 술술. 술 이야기 좀 그만해. 그 사람이 아빠처럼 매일 술집이나 들락날락하면서…….”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는 줄 알아?

최윤아도 차마 그 뒷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부녀가 서로 살짝 한숨을 내쉬며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먼저 입을 연 건 최윤아였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어차피 사적인 이야기다. 최윤아는 더 앉아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찬바람이 일도록 자리에서 일어나 최서훈의 집무실을 나와 버렸다.

최윤아의 사무실.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보았다.

“안 그래도 요새 연락이 너무 뜸 하단 말이지…….”

최근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연락이 뜸하기만 하면 이렇게까지 속앓이를 하진 않을 것이다. 일이 많은 재벌의 경우 연락이 안 되는 경우는 부지기수이기 때문이었다.

최윤아의 맘에 걸리는 건 한 가지 소문이었다.

-엘리 짝사랑 중.

그 상대가 이강철이라는 게 문제였다. 비서를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업계에 이미 소문이 널리 퍼졌다고 했다.

엘리가 적극적으로 이강철을 짝사랑한다고.

최윤아가 까득 손톱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정말 그년이랑 만나고 있는 거 아냐…….”

그런 걱정이 종일 머릿속에서 떠다녔다. 그렇다고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없었다.

“문제는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해도 나한테 마음을 돌린다는 보장이 없다는 거야.”

지난번 어머님 옷을 선물을 사드렸을 때도 고맙다며 다시는 이런 거 안 보내도 된다는 짧은 대답이 끝이었다. 이걸 구실로 만남을 이어가려 했지만 통하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한다…….”

이제 돈은 강철이 더 많았다. 능력도 강철이 더 좋았다. 외모는…… 객관적으로 봐도 엘리가 더 예쁘긴 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매력 어필 수단이…….

고심하던 최윤아의 머릿속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일로 도움이 된다면 한층 호감을 주지 않을까.”

자신도 나름 해외 유수의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다. 더구나 VK 그룹의 차녀라는 직함으로 세계 유명 그룹들과 돈독한 관계도 만들어두었다.

“최근 이강철이 IBM 클라우드 서비스에 관심이 있다 했지…….”

그리고 IBM이라면 VK 그룹과 꽤 인연이 깊었다.

잘하면 자신이 중간에서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VM웨어.

델 테크놀로지스가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가상화 솔루션 중 하나로 전 세계 클라우드 시스템 관리 부문 점유율 20%를 자랑하는 솔루션이었다. 그만큼 매출이나 영업이익 또한 높았고 이 수치 또한 매년 성장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델의 사장 샌퍼드 리시는 절대 500억 달러 이하에 팔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강철의 생각은 달랐다.

“400억 달러. 그 이상은 안 됩니다.”

그 말에 샌퍼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옆에 있던 보좌진들도 마찬가지였다.

샌퍼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격과 너무 큰 차이가 나는군요. 이런 상황에 더 대화를 나눠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에 강철이 고개를 흔들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VM 웨어의 현 위치가 언제까지 갈 거로 생각하십니까?”

샌퍼드의 표정이 한층 더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오픈 스택 그리고 그걸 뛰어넘는 기술이라 평가받는 DVM 2.0. 공짜로 풀린 이 솔루션들이 클라우드 시스템 관리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습니다. 덕분에 당장 VM 웨어 매출 상승이 제한적이라는 뉴스가 속속 흘러나오는 와중이고요.”

샌퍼드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VM 웨어 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팔고 싶어 하는 이유가 강철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서서히 점유율은 떨어질 겁니다. 이걸 알고 계시기 때문에 VM 웨어를 팔려고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내 강철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서버 시장에서 리눅스가 어떻게 윈도우 OS를 앞질렀는지를 아신다면 이렇게 뻣뻣하게 나오실 수 없을 거라 생각되는데요.”

개인용 PC에서는 여전히 윈도우가 압도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서버 시장에서는 이미 리눅스가 50%를 넘었다.

그러한 현상이 가상화 솔루션 시장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오픈스택이나 DVM이 빠르게 VM웨어를 따라잡고 있었다.

강철의 입가에서 점점 미소가 번져 나갔다.

“사실 400억 달러도 후하게 쳐 드리는 겁니다. 저희가 자체적으로 계산한 VM 웨어의 향후 10년간의 현금 흐름은 현재에서 마이너스 40%가 되니까요. 400억 달러도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샌퍼드가 옆에 있던 다른 임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 임원이 애써 입을 열었다.

“대표님, 그건 너무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 같습니다. 이미 VM 웨어는 탄탄한 고객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객사들을 대상으로 자체 설문 조사 결과 오픈소스로의 마이그레이션을 하겠다는 곳은 10%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강철이 픽 헛웃음을 터뜨렸다.

“저희가 조사한 바와는 조금 다르군요. 아시겠지만 대산에서는 DVM 2.0을 출시하면서 기업용 서비스도 함께 출시했습니다. 출시하자마자 여러 회사에서 이용 문의가 오더군요.”

이내 강철이 회사 이름을 하나 말했다.

“일단 오성.”

오성이라는 말에 샌퍼드가 움찔거렸다. 강철이 천천히 다음 회사를 읊었다.

“그리고 VK 그룹 SAP, UPS, 액센츄어.”

VM 웨어의 주 고객사였다.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들로 이들이 단번에 빠져나간다면 매출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리라.

강철이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이들이 전부 문의를 해오고 있는 회사명입니다. 이들로서는 당연한 선택입니다. DVM을 사용할 때는 기술 자문료 밖에는 들지 않지만 VM 웨어를 사용하면 솔루션 이용요금에서부터 유지보수 비용까지 비용적으로만 대략 50%가 넘게 차이가 나는데 성능은 더 떨어지지 않습니까.”

샌퍼드의 보좌진들이 긴급히 움직였다. 강철이 한 말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이내 샌퍼드에게 빠르게 귓속말을 전했다. 그걸 전해 들은 샌퍼드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사실입니다.

전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눈치로 그 사실을 알아낸 강철이 최후통첩을 날렸다.

“말씀드렸지만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곧 DVM 3.0까지 발표가 된다면 VM웨어의 가치는 지금보다 더 떨어질 테니까요. 자,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샌퍼드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미국 뉴욕의 호텔.

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강철이 신주영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미국에서 진행 중인 아이온 자회사들의 나스닥 상장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신주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대표님이 잘해주신 덕분이죠.”

“그래도 신 대표님이 잘 홍보해 준 덕분에 아주 좋은 값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크게 한 것도 없습니다. 대표님의 명성과 아이온 게임즈가 발전하는 모습을 본 월가에서 너도나도 투자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니까요.”

“하하, 그랬습니까?”

“네. 유명 기관투자자들이 쌈짓돈을 들고 찾아와서 따로 홍보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 말에 강철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수록 나스닥에 상장되는 회사는 높은 가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앞에 놓인 위스키를 따라 마시며 말했다.

“그럼 그 돈으로 이제 IBM 클라우드 사업 부문을 인수하는 것만 남았군요.”

신주영이 한껏 목소리를 낮추었다.

“VM웨어 건은 협상이 잘 끝난 건가요?”

“오늘 협상을 마무리했는데…… 아마 잘 될 것 같습니다. 팔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줬으니까요.”

DVM 3.0.

그게 출시된다면 VM 웨어는 정말 설 자리를 잃게 될 테니까.

마침 비서가 강철에게 다가왔다.

“대표님, 연락 왔습니다.”

강철의 입가에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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