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가상화 솔루션(3)
대본을 읽어내려가던 엘리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풉, 정말 이런 대사도 했단 말이야?’
-널 좋아하고 있어. 정말이야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엘리가 보고 있는 대본의 제목은 ‘디벨로퍼’. 강철을 모티브로 넷플러스에서 제작하고 있는 영화였다. 엘리는 거기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상태였다.
“자, 씬 21번 가겠습니다.”
감독의 말에 남 주인공이 방금 엘리가 보고 있던 대사를 소리 내 읽었다.
-널 좋아하고 있어. 정말이야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잔뜩 감정을 이입한 엘리가 입술을 움직였다. 다음 대사는 여주인공인 자신이 할 차례이기 때문이었다.
“너도 알고 있잖아. 우리는 안 된다는 걸. 너는 항상 일 생각밖에 없고, 난 네 생각밖에 없는걸.”
이건 이강철의 역사에 없는 허구였다. 약간의 각색을 거쳐 재구성한 것이다. 그걸 모르는 엘리는 생각했다.
‘이 여자. 누군지는 모르지만 좋았겠다…….’
영화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남자 주인공은 대사를 멈추지 않았다.
-이제부터 잘할게. 알잖아. 나 한번 하면 하는 사람인 거.
“알지. 아주 잘 알지. 그래서 한 번 돌아간 마음을 돌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눈앞에 얼마 전 만났던 강철이 스쳐 지나갔다.
얼마 전이라고 하지만 그게 벌써 몇 달 전이였다. 한국으로 복귀했을 때 위문공연을 해주었던 게…….
문득 그리움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에도 대본 연습은 계속되었다.
-난 똑같아. 변한 건 네 마음이라고…….
그리고 순간 엘리의 입에서 대사와 다른 소리가 튀어나왔다.
“보고 싶다.”
순간 대본 리딩 현장에 정적이 찾아 왔다. 바로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매니저가 엘리의 허리를 쿡 찔렀다.
정신을 차린 엘리가 어색한 미소를 띠며 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죄, 죄송합니다.”
엘리가 급히 고개를 숙였고, 사람들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엘리를 바라보았다.
대본 읽기 1차 연습이 끝나고.
매니저가 급히 엘리를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
“너 정신 안 차릴래?”
“죄송해요.”
“사람들이 엄청나게 쑥덕거리는 거 몰라? 이러다 진짜 열애설이라도 터지면 어쩌려고.”
엘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터지면 할 수 없죠.”
“뭐?”
“이 대표님이 그랬어요. 만약 자신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기면 죄책감이 들 것 같다고. 만약에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이, 이강철 대표님이?”
“네.”
하지만 그런 둘의 대화는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아까 그거 내가 생각하는 거 맞지?
귀에 익은 목소리에 매니저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건 엘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것 같더라. 엘리 그거 아주 발랑 까졌어.
-벌써 빽 하나 든든히 잡았다. 뭐 이런 건가 보네.
-하여간 요즘은 어린애들이 더 무섭다니까.
-벌써 스폰이라니 쯧쯧.
함께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조연 배우들이었다. 매니저가 엘리를 보며 눈을 치켜떴다.
이거 봐봐. 이런 말 들리잖아.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엘리가 코웃음을 치며 속삭였다.
-그래서 뭐. 어쩔건데요. 저렇게 뒷담화하는 애들은 어차피 오래 못 가요.
매니저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정말 끝까지.
하지만.
엘리의 말이 맞기라도 하듯 둘의 대화가 뚝 멈추었다. 이내 진중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말씀은 자제 부탁드립니다. 저희 대표님이 두 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게 불쾌하군요.
그 목소리에 매니저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JBS 방송국에서 아이온 미디어로 이직해 최근 대표 자리에 오른 양기형이 서 있었다.
대본 리딩 현장을 찾아온 양기형은 전체 배우, 제작진을 비롯한 스태프를 한자리에 모았다.
거기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고개를 숙이는 일이었다.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넷플러스와 논의 결과 영화 대본을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사전에 공지를 받은 작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실 이런 식으로 수정해서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배우들의 표정도 좋진 않았다.
양기형이 그런 전체 스태프를 보며 말했다.
“늘어난 일정에 대해서는 당연히 합당한 보상을 해드릴 것입니다. 각 매니지먼트사와 이번 출연계약 건에 대한 금액 인상을 논의 중입니다.”
그때.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손을 들었다.
“혹시 무슨 일 때문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 네. 마침 그 부분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이번 영화는 홍보 목적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엔딩 부분을 수정하려 합니다. 아이온 게임즈의 성공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클라우드 서비스의 성공으로 마무리되는 것으로요. 이번에 저희가 나일보다 뛰어난 클라우드 서비스를 개발해서 그걸 홍보할 필요성이 있어서요.”
양기형의 말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말대로 이번 영화는 최초 기획 의도에서부터 약간의 홍보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걸 알고서도 다들 출연을 결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막으로 보상은 섭섭지 않게 돌아갈 것입니다. 제작진분들께는 늘어난 일정에 대해서는 일당의 1.5배를 배우분들께는 만약 다른 스케쥴과 겹치는 것이 있어 출연하지 못하게 된다면 해당 스케쥴에서 받으시는 출연료를 전액 보상해 드릴 테니까요.”
돈.
그거 하니만큼 확실하게 보장해 주었으니까.
* * *
한국.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 운영팀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픈 베타 서비스 시작하겠습니다.”
함께 자리에 있던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운영팀장이 부하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서버 올려.”
“네.”
그 지시에 따라 직원이 자리에 앉아 서버 시작 버튼을 클릭했다.
1번 서버 Booting.
2번 서버 Booting.
3번 서버 Booting.
…….
6300번 서버 Booting.
데이터 센터 내에 있는 전체 서버가 리부팅을 시작했다. 아직 시스템 이전을 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DRP.
DSP.
워리어.
아이체크
등등.
최초 강철이 운영하는 수많은 서비스가 새롭게 만들어진 데이터 센터로의 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DVM의 기능 향상을 위해 전체 일정을 뒤로 미루면서 새롭게 OS부터 개발한 것을 적용한 것이다.
수천 대의 서버가 하나둘씩 부팅을 마치고, 서버에 초록 불이 들어왔다.
정상작동.
강철의 눈이 빠르게 모니터링 화면을 훑었다.
“가동률 100%.”
현재 데이터 센터에 들어가 있는 서버는 6천 대였다.
총 1만5천 대가 들어갈 수 있지만 일단 6천 대만 들여놓은 것이다. 그 6천 대가 전부 정상 가동 중이라는 표시가 뜬 것이다.
“서비스 이전해 보라고 하세요.”
“네.”
이내 운영팀장이 다른 팀으로 연락을 취했다.
가장 먼저 이전을 시작한 건 사내 ERP였다. 문제가 생긴다 해도 내부적으로 처리하면 되기에 1차 이전 대상이었다.
-원클릭 서비스.
그걸 이용해 사내 ERP 시스템이 재구성되었다. 가장 먼저 네트워크가 구성되고, DB, 어플리케이션 서버, 도메인 설정 등이 차례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코드가 올라갈 시스템이 구성되는 데 걸린 시간이 대략 4분가량 필요하였다. 그 시간을 확인한 강철이 주먹을 꽉 쥐었다.
“빠르다.”
그리고 빠르게 전체 서버 로그가 수집되는 화면을 훑어보았다.
-ERROR.
그게 뜬다면 메인 화면에 나타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화면에 ERROR 표시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문제없이 구동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나고.
운영팀장이 강철에게 다가왔다.
“대산 사내 DRP, 아이온 그룹 사내 ERP, 현재 개발 중인 DRP V 3.0까지 이상 없이 이전했습니다. 자체 테스트를 해봐도 다른 문제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2단계 진행합시다.”
“네. 시작하겠습니다.”
2단계.
가장 규모가 큰 워리어나 DRP, DSP 같은 대형 시스템이 아닌 미들급 시스템을 이전하는 것을 뜻했다.
앞서 한두 시간 만에 이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일주일 정도가 필요 되는 시스템들이 2단계 이전 대상이었다. 운영팀장이 강철의 지시를 각 팀에 전파했고, 새로운 환경으로의 시스템 이전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때.
비서가 빠르게 강철에게 다가왔다.
“대표님. 애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강철이 놀란 눈으로 비서를 바라보았다.
“네? 애플에서 왜…….”
“우리 쪽 가상화 솔루션에 관심이 있다고,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합니다.”
강철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만약 애플을 잡을 수 있다면 단숨에 NCS를 따라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에서 애플은 영향력이 큰 고객이었다. 강철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만나보도록 하죠.”
* * *
기술을 뽐내기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광고?
내가 가장 잘났다고, 수 없이 광고해봐도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게 광고라는 걸.
시연회?
이건 광고보다는 나은 방법이었다. 실물을 사용자들이 보고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보다 좋은 방법이 하나 있었다.
타인의 인정.
특히나 돈으로도 섭외할 수 없는 사람의 인정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그게 ‘애플’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강철이 화상통화로 연결된 애플의 클라우드 서비스 책임자를 보며 말했다.
“당사의 테스트를 통과한다면 우리 쪽 서비스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네. 아시겠지만 우리는 아이클라우드, 스마트홈, 음악스트리밍 등등 수많은 서비스를 NCS 기반으로 제공 중입니다. 덕분에 매달 들어가는 사용료만 4,000만 달러가 넘고요.
강철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사용해 달라고 찾아가고 싶은 고객이 제 발로 찾아 왔다. 내심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러던 차에 비용은 더 저렴하면서 속도는 더 빠른 서비스가 출시 된다고 하더군요. 귀사의 DVM?
“네, 맞습니다.”
-하하, 네. 그래서 우리가 요구하는 성능 테스트를 통과한다면 충분히 사용할 용의가 있습니다. 우리도 어느 한쪽으로 의존도가 심화 되는 걸 원치는 않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아마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능이 나올 겁니다.”
-그럼 테스트 계정을 받아 볼 수 있습니까? 거기에 접속해서 확인을 좀 해보고 싶은데.
강철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심 비서.”
“네.”
“여기 계정 발급해 드리고, 테스트할 수 있게 미국 지사에서 보조 인원 붙여 드리세요. 사용하는 데 불편하시지 않게.”
“알겠습니다.”
이내 세계 최대 핸드폰 제조사의 성능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아무리 비밀스럽게 진행한다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이 일이 경쟁사인 나일의 귀로 흘러 들어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 * *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 후로 일주일이 지나도록 애플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시스템 구성에 도움을 주고 있는 직원의 말로는 열심히 테스트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건지 아닌 건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아 자신도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었다.
-긍정적인 신호.
테스트를 진행하는 개발자들이 작업할 때마다 참 편하게 만들어져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그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1인 개발자.
소규모 스타트 업.
벤처.
중소기업까지.
빠른 속도와 저렴한 가격에 NCS에서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동했다. 시스템 규모가 작아 이전이 쉬운 곳부터 빠르게 이동이 일어난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다.
강철은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책정해 신문, 방송, SNS, 동영상 플랫폼 등을 통해 대대적인 광고를 송출했다.
광고를 통한 고객 유입.
현금흐름창출.
다시 광고를 통한 고객 유입.
이라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강철은 거기에 기름을 붓는 정책을 시행했다.
매출 10억 미만 스타트업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 무료.
NCS에서도 무료 이용 기간이 있었다. 1년 또는 720시간 동안 NCS의 대표 서비스인 NC2가 무료였다.
하지만 이렇게 매출액 단위로 무료 티켓을 발급해 준 적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소규모 고객들은 빠르게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동했다. 그건 곧 서비스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나타났다.
MoM +120%.
매달 2배의 폭발적인 성장률을 보인 것이다. 물론 아직 규모가 작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는 나일에 위협이 될 만했다.
데이비드가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비서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대산에서 홍보 효과를 위해 매달 성장성 발표를 하는데 이번 달 성장률이 120%가 나왔습니다. 전 월 대비 2배 이상 성장한 수치입니다. 다행히 아직 규모가 작아 2배 성장했다고 해도 전체 규모에서 보면 NCS의 상대가 안 되지만…….”
“문제는 애플이다.”
“네. 애플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고 있지만 대산의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그게 애플에서 준비하는 차기 서비스 인지 아니면 기존 서비스 중 하나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요.”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가능성은?”
“아무래도 그쪽 서비스 이용 단가가 더 낮고, 속도는 더 빠르다 보니 애플에서도 진지하게 고려 중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능성을 크게 평가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애플에서 서비스를 옮긴다…….”
“내부에서도 NCS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올라가는 것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나 서치의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도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 대산 쪽으로 결정되는 분위기입니다.”
데이비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이용 규모는 파악된 겁니까?”
비서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규모까지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NCS보다 비용이 저렴하다 보니 이용 물량의 30% 정도는 가지 않을까 하는 게 현재 예상치입니다.”
데이비드는 밀려오는 짜증을 참기 힘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번에 우리도 할인행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마른침을 삼킨 비서가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대산 비용은 그거보다 30% 저렴합니다.”
“……네? 그게 말이 안 되지…….”
안 된다고 하려다 입을 닫았다.
현재 NCS의 영업이익률이 50%를 넘어간다. 만약 이강철도 비슷한 환경을 구축했다면 이익률을 낮추면서 비용을 낮게 책정할 여력이 충분했다.
“마진을 최대한 조금 남긴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애플에서도 대체재가 생겨 우리 쪽으로 단가 인하 요청을 할 계획인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가 으득 이를 갈았다.
대체재.
그건 곧 경쟁자가 생겼다는 것을 뜻한다.
경쟁자가 생기면 NCS는 가격결정권을 잃어버린다. 기존에는 서치나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가격결정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강철의 출현으로 그걸 잃어버린 것이다.
“더구나 이강철이 만든 서비스의 성능이 NCS 대비 40% 이상 뛰어나다 보니 점점 여러 고객사가 관심이 있습니다. 작은 스타트업들은 원클릭 서비스 때문이라도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려 하고요. 아이비디오에 올라온 벤치마크 영상은 조회 수만 수천만 건을 기록하며 이슈 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쇼핑에서도 자신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더니 이제는 NCS까지.
돈이 얼마가 들어갔어도 그때 확실히 눌러왔어야 했다. 이사진의 방해로 일 진행을 멈춘 것이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 없었다.
한숨을 내쉰 데이비드가 물었다.
“현재 우리 쪽 가상화 전용 OS 개발 진행 상황은요?”
“현재 개발 중입니다.”
데이비드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드론도 개발 중이고, OS도 개발 중이고…… 개발된 건 없습니까?”
비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서 있었다. 데이비드가 회한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쩌다 우리가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에서 다른 기업을 따라가는 회사가 된 건지…….”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나일 최고의 개발자들이 열심히 만들고 있으니까요. 아무리 이강철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분명 한계는 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쉽지 않아 보이는군요.”
“물론 쉽지 않긴 합니다. 하지만 아직 늦은 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내 데이비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멍하니 있다가 당할 수는 없었다.
“바로 전체 개발 팀장 소집하세요. 이대로 멍하니 있다가 당할 수는 없으니까.”
“네.”
지시를 받은 비서가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아주 약간이지만 패배의식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과연 될까?’
그 생각은 회의가 시작되고도 사라지지 않았다.
* * *
비슷한 시각 애플 본사.
그곳에서 클라우드 서비스 운영을 맡은 제리 샌더스가 ‘탁’ 소리가 나도록 마우스를 누르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확실히 편하긴 편해.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서버뿐만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생성되니까.”
그러자 옆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이제 이거 쓰다가 다른 거 쓰라고 하면 못 쓰겠더라. 너무 편해. 그리고 NCS보다 빠르고. NCS는 뭐 하나 만들려고 하면 설정하는 데만 해도 한세월이라.”
“나도 그래서 짜증 났었다니까. 클라우드 포메이션으로 하면 원클릭 서비스처럼 만들어지긴 하지만 그건 만드는 자체도 일이니까. 더구나 시스템 하나 만들면 시간은 또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로딩하는 데만 수십 분이지. 그런데 이건 마우스로 달칵 클릭하면.”
잠시 후.
서버가 하나 생성되었다. 그 빠른 속도에 동료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빨리 생성되어 버리니.”
“내 주변 애들도 대산으로 옮겨간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전이 너무 어려워서 검토 중이래.”
“그래서 이번 보고서에 그 내용 넣었어. NCS에서 대산 클라우드로 간편하게 이전할 수 있는 서비스는 없냐. 그쪽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하던데.”
“오오, 그거 좋다. 그것도 원클릭 서비스로 개발하면 진짜 대박이겠는데.”
둘은 그렇게 담소를 나누며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해 나갔다.
그런 둘에게 운영팀장이 다가왔다.
“지금까지 테스트 결과는 어때?”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가 확실히 성능 면에서 뛰어납니다. 지금까지 운영해 본 결과 문제도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고요.”
“그럼 NCS랑 대산이랑 둘 중 회사에서 채택한다면 어느 걸…….”
팀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테스트를 진행하던 두 개발자가 입 모아 말했다.
“당연히 대산이죠.”
“그렇단 말이지.”
“네. 이거 쓰다가 NCS 쓰라면 못 쓸 정도예요.”
고개를 끄덕인 팀장이 자리를 옮겼다.
필립 윌리암스.
애플에 입사한 지 10년이 넘은 최고 기술 책임자였다. 클라우드 서비스 팀장이 필립의 앞에 서 있었다.
“현재까지 테스트 결과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가 압승입니다. NCS를 비롯한 마이크로소프트나, 서치의 서비스보다 속도, 가격에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자네 생각도 같고?”
“네. 저도 직접 사용해 봤지만, 확실히 타사대비 모든 면에서 우수합니다. 현재 NCS에서 운영 중인 시스템들도 이곳으로 마이그레이션 했으면 할 정도로요.”
“그 정도야?”
팀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장 이전에 어려움은 있겠지만 비용 측면으로만 봐도 매달 백만 달러 이상은 절약될 겁니다. 거기에 속도는 더 빠르지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죠.”
“흠…….”
“대산에서는 이전 솔루션 개발까지 해주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태입니다.”
“알겠어.”
보고를 마친 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가야 한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필립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한 발 더 나간다니?”
“이번 IOS 버전 업데이트를 원스와 함께 하는 방안을요. 아니면 원스를 인수해서 적용해도 되고요.”
필립이 묵묵히 듣고 있자 운영팀장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CTO님이 사용해 보시면 알겠지만, 속도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가상화에 특화된 OS를 이렇게 잘 만든 걸 보면 모바일에 특화된 OS도 잘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현재 고민 중인 많은 것들이 풀릴 수도 있습니다.”
“고민이라면…… 혁신이 멈춰 있다는 그 이야기 말인가?”
“네. 애플은 혁신이 멈췄다.”
하지만 필립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IOS 버전을 업데이트하는 것과 혁신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운영팀장이 그 이유를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아시겠지만 원스는 이강철이 투자한 회사입니다.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그가 만든 것들이 시장에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드론 택배, 워리어 VR 등등 이제 그는 혁신의 아이콘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원스를 핑계로 그와 협업을 하자.”
“대산 클라우드를 대량 구매해주고, 원스 인수 의사까지 밝히면서 호감 표시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족한 부문에 대해 자문한다면 그도 충분히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일 겁니다.”
“흠…….”
운영팀장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부에서 안 된다면 외부에서라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에 필립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여전히 아이폰이나 맥북은 잘 팔리는 스테디 셀러였다.
하지만 혁신.
그게 사라졌다는 소리를 벌써 수년째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해결하는 게 자신의 첫 번째 임무였다.
그걸 해결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필립의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이다.
* * *
한국 강철의 집무실.
비서가 기쁜 표정으로 강철에게 보고했다.
“애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강철의 비서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지만 확인차 되물었다.
“뭐라고 하던가요?”
“계약하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월에 천만 달러가 더 많은 양을 계약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한 2백억가량을 계약한다는 말입니까?”
“네. 대략 그 정도 금액입니다.”
한 달에 200억.
년으로 치면 4,200억에 달하는 돈이었다. 현재 구입한 서버의 감가상각비에 직원들 인건비까지 해서 매출원가를 따져보면 정확히 손익 분기점을 넘어서는 돈이었다.
강철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애플 고객 하나를 잡음으로써 BEP를 넘겼군요.”
“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제안해 왔습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가 말을 이었다.
“원스를 인수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원스를요? 그쪽은 어차피 IOS도 있으니 필요가 없을 텐데…….”
“정확히는 ‘혁신’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원스는 일종의 보상이고요.”
강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비서가 자세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뭔가 새로운 걸 만들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당신과 논의를 해보고 싶다.
-원스 인수를 통해 IOS 쪽에 변화를 주고 싶다.
-윌마트와 협업을 통해 상생한 것처럼 우리와 새로운 것에 대해 한 번 고민해 줄 수 있나.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걸 들은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최근 충성 고객에게 제품을 파는 것 말고, 새로운 게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있긴 하지.’
하지만…….
애플은 애플이다. 강철이 살던 시대에도 애플은 여전히 건재했다. 아이폰을 팔고, 워치를 팔고, 이어폰을 팔았다. 물론 지금보다 성능은 뛰어났다.
“원스는 우리가 사용해야 할 소프트웨어니까. 팔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거절할까요? 그래도 대산 클라우드를 쓰긴 쓰겠지만 규모가 조금 줄어들 수는 있습니다.”
“차라리 리얼리티 디바이스를 팔도록 하죠. 아마 애플이라면 더 좋은 제품을 더 합리적인 가격에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애플도 VR/AR 기술에 관심이 많으니 그쪽 분야를 함께 연구해서 성과를 낸다면 우리 워리어 VR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될 테고요.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만한 부분이 많아요.”
“대표님이 구상하시는 가상현실 게임 말씀입니까?”
“하하, 네. 최종적으로 워리어가 나아갈 방향.”
가상현실 시스템.
강철이 살던 시대에도 아직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았던 시스템이다.
하지만 애플과 함께 연구하다 보면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 방향으로 의견을 타진해 보겠습니다.”
“네.”
* * *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VR은 워리어 VR로 인해 시장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여러 업체가 관련 연구에 매진하는 중이었고 애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가격이 문제였다. 이미 워리어 VR 게임을 통해 리얼리티 디바이스는 상당한 영업이익을 내는 회사였다.
1억 달러.
올 한해 예상되는 영업이익이었다.
거기에 성장성까지 고려해 책정된 기업가치는 50억 달러를 요구했다.
처음에는 난색을 보이던 애플도 리얼리티 디바이스에 대한 기업실사를 진행하며 점차 긍정 신호를 보내왔다. 회사의 기술력을 인정한 것이다.
그 계약이 성립되자마자 애플에서는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을 발표했다.
자세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강철은 그 비슷한 액수를 슬며시 흘렸다.
-5년간 10억 달러 수준.
그 금액은 시장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애플이 이용하는 클라우드 서비스.
그 타이틀이 애플이 아닌 다른 고객까지 끌어당긴 것이다.
나일의 데이비드에게는 열통이 터질 일이었다.
* * *
나일 본사.
최근 발생한 이슈로 다시 이사진 회의가 열렸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애플과 사이가 틀어진 겁니까?”
깊은숨을 들이쉰 데이비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저 애플 자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묵묵히 듣고 있던 조지 케년이 입을 열었다.
“아직도 시장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제대로 파악을 못 하고 계시군요.”
그의 말에 데이비드가 마른침을 삼켰다.
2대 주주.
그 타이틀만이 아니라 500조를 굴리는 미국 최대 사모펀드 인피니트의 대리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1대 주주이자 창업자이다.
“제대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애플이 이강철의 리얼리티 디바이스를 인수한다는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데이비드는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그만큼 대외비를 유지하며 일이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네?”
“50억 달러에 애플에서 인수하기로 잠정 결론이 났다고 하더군요. 곧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리얼리티 디바이스는 VR 기기 업체였다.
그걸 인수하는 것에 나일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 이유는 이내 밝혀졌다.
“그러면서 플러스 알파 계약을 맺어졌습니다. 애플과 이강철이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VR/AR 관련 분야를 공동 연구하기로요. 결국, 두 업체가 힘을 합쳤다는 소리지요. 그렇다면 추후 NCS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애플이 계속 NCS를 사용할까요?”
데이비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앞으로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률이 높아진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서 서버에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고 성능이나 가격에서 우수한 그쪽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조지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애플이 NCS에서 시스템을 뺄 거라는 말입니다. 애플이 NCS에 의존하는 만큼 NCS에서도 이익의 상당 부분을 애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확 줄어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익이 줄어든다. 당연한 소리를 물어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질책.
조지는 데이비드를 질책하고 있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회사가 굴러가면 인피티니에서는 투자금 회수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나일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찍고 살짝 내려온 상태였다. 변형 인플루엔자 덕분에 세상이 변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내부는 서서히 곪아가고 있었다.
조지가 데이비드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제 CEO님의 계획을 듣고 싶군요.”
일순 데이비드는 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데이비드에게 조지가 최후통첩을 날렸다.
“앞으로 2주 후에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면 말씀드린 계획을 실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도 이왕이면 주가가 높을 때 투자금을 회수하는 게 이득이니까요.”
그 말에 다른 이사진들도 동요했다.
“흠…… 흠흠. 그럼 우리도 투자금을 회수해야겠군요.”
“우리도…….”
데이비드가 우려한 사태였다.
인피니트가 발을 빼면 다른 재무적 투자자들도 투자금을 회수하려 할 것이다.
주가하락.
신용도 하락.
자금 조달 어려움.
회사채 금리 상승.
회사가 재무적으로 어려워지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호황 속 파산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찌릿 조지를 노려본 데이비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2주 뒤에 다시 뵙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데이비드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쾅.
주먹으로 아무리 탁자를 두드려도 화가 가시질 않았다.
“차라리 나가주는 게 이익일 수도 있겠어.”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현재 보유 지분만 11%입니다. 그런 투자자가 빠져나간다고 하면 회사에 미치는 파급력이 엄청날 겁니다. 다른 투자자들도 동요할 게 뻔하고요.”
데이비드가 다시 주먹을 꽉 쥐었다.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습니까?”
“조지 케년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곧 계약 발표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내부 이사 중에서도 최고위급들만 알고 있는 극비사항이라고 합니다.”
데이비드가 화를 삼키며 앞에 놓여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모습을 확인한 비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최근 애플 내부에서 새로운 제품에 관한 연구 개발이 활발했지만, 기존의 아이폰을 조금 업그레이드하는 수준으로밖에 일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 CTO가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모양입니다.”
“그 전문가가 이강철이고, VR 기기업체 인수는 그 시작이다?”
“네. 그래서 앞으로 VR/AR 개발에 힘을 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2030년 4,000억이 넘어가는 시장으로 성장하는 분야니까요.”
“어쨌든 중요한 건 애플이 이강철과 협력을 한다는 말이군요.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도 본격적으로 이용하고.”
“맞습니다. 확실히 큰 문제이긴 합니다. 고객들이 본격적으로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를 선택지에 올릴 테니까요.”
이제 문제는 확인이 됐다. 해결책을 내놔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건 비서도 마찬가지였다.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나도 모르겠다.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데이비드는 그대로 말할 수 없었다.
“일단…… 고민을 좀 해보죠.”
드론 택배에 NCS까지.
데이비드의 고민이 깊어졌다.
* * *
비슷한 시각.
강철은 서울 시내의 한 영화관에 도착했다.
디벨로퍼.
그 정식 개봉 전 시사회 때문이었다. 사실 안 와도 되지만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참석을 결정했다.
이강철.
자신에 관한 관심은 곧 회사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질 테고, 그건 서비스 매출로 이어질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촤라라라락.
촤라라락.
강철이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수의 기자들이 몰려 취재 열기를 뿜어댔다.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를 애플에서 사용하기로 한 게 사실입니까?
-애플에 리얼리티 디바이스 매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앞으로 대산의 운영 방안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질문에는 회사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꼭 튀는 기자들이 한두 명 있었다.
-이번 영화에 많은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아는데요.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혹시…….
말을 흐리는 그 뒷말에 어떤 게 나올지 강철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반응을 보이면 안 된다. 그러면 오히려 더 큰 의심을 살 뿐이었다.
강철은 빠르게 그 기자를 지나쳐 영화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잊은 건 아니었다.
강철이 비서에게 물었다.
“어딥니까?”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정식으로 항의하세요. 뜬소문으로 취재하지 말라고.”
“알겠습니다.”
물론 진실과 뜬소문 그 경계에 있긴 했다. 엘리와 아무 관계가 아닌 건 아니었으니까.
마침.
엘리도 도착해 영화관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하얀색 원피스가 그녀의 외모를 한층 더 빛나게 만들어주었다.
영화관으로 들어온 엘리가 곧장 강철을 향해 다가왔다.
“오셨어요.”
강철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 네.”
엘리가 빤히 강철을 쳐다보았다.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을 기세였다.
보다 못한 매니저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가야지.”
엘리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움직였다.
“조금 있다 다시 봬요. 꼭.”
그 눈빛에서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 * *
-성공입니다.
담담하게 내뱉는 남자 주인공의 말에 여자 주인공인 엘리가 와락 달려들며 안겼다.
이내 둘은 기쁨의 키스를 나누며 화면이 전환되었다. 그걸 보는 강철의 두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내가 저랬다고?’
여자친구는커녕 여자 사람 친구도 거의 없는 생활이었다. 각색한다고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강철의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엘리가 살짝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어때요?’
그렇게 물어보는 입 모양에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해 주었다.
이내 지금까지 강철이 벌인 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영화가 진행되었다.
천재 개발자.
희대의 벤처인.
투자계의 미다스 손.
등등 강철에게 붙어 있는 수식들이 생겨난 이유가 지나간 것이다. 연애 부분만 빼면 대부분이 사실과 비슷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서인지 확실히 재밌었다.
한참 몰입해서 영화를 보던 강철은 문득 다른 이들의 반응이 궁금해 슬쩍 고개를 돌려 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보는 사람.
얼굴을 쑥 앞으로 내밀며 보는 사람.
팔짱을 낀 채 집중한 사람.
그중에서 졸거나 관심 없어 보이는 이는 없었다.
‘나만 재밌는 건 아닌가 보네…….’
아이온 미디어의 수장.
양기형이 자신이 아는 최고의 감독에 제작진에게 일을 맡겼다고 했다. 그 말은 대중들은 잘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랬기에 강철도 모르는 감독이었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니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영화가 끝나기 전.
강철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화가 끝나고 괜히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릴까 염려해 미리 빠져나가려 한 것이다.
그러자.
바로 앞 좌석에 앉아 있던 엘리가 그 기색을 느끼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끝나고 보자고 했잖아요.’
그 눈빛이 마치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낀 강철이 주변을 둘러보며 눈짓했다.
‘보는 시선들이 너무 많아서요.’
그러자 엘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연락 꼭 받아야 해요.’
‘하…… 하하, 네.’
짧은 순간에 여러 말이 오가고, 강철이 경호원들의 안내에 따라 완전히 자리를 떠났다.
그 빈자리를 엘리가 씁쓸히 바라보았다.
* * *
-재벌 마케팅이라는 비판 속에서 ‘디벨로퍼’ 순항 중.
-디벨로퍼. 한국 영화 사상 최단기간 100만 돌파.
-천재 개발자 이강철의 일대기 디벨로퍼. 인기 비결은?
-한국 영화 역사상 또 하나의 천만 관객 탄생하나.
최단기간 100만을 돌파한 디벨로퍼는 200만, 300만을 단숨에 뚫고 500만 고지를 점령했다. 곧 천만 관객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재벌 마케팅이다.
친재벌 영화다.
상업성에 올인했다.
이강철 위인전이냐.
그런 무수한 비판 속에서도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재미.
영화적 재미가 대중들에게 통했고, 관객을 끌어모은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그런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강철 아저씨 알지? 네가 하는 워리어 만든 사람. 그 사람 나오는 영화야. 너도 게임만 하지 말고 그분처럼 돼야지.
-노상 게임만 하지 말고, 영화나 보자. 너 평소에 이강철 존경했다면서.
-너 워리어 프로게이머 된다면서 그러면 이 영화는 봐야지.
교육적인 목적으로 영화관을 찾는 부모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영화관을 찾았다.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이다.
그건 곧 관람객 수로 이어졌고, 500만을 넘어 최단기간 천만 관객을 기록하는 대업을 달성했다.
그리고 천만이 달성하는 순간.
강철은 엘리와 함께 레스토랑을 찾았다.
-1,000만 되면 식사 한번 하는 거예요.
천만을 달성하면 식사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엘리가 앞에 있는 고기를 썰며 말했다.
“영화 재밌게 보셨어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다들 연기를 잘하시던데요.”
“최고의 배우분들이 총출동했으니까요.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엘리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정말 여자친구한테 제발 한 번만 만나달라고 애원했었어요?”
그 말에 달그락거리던 소리가 뚝 멈추었다. 강철이 당황한 눈동자로 엘리를 보며 되물었다.
“네?”
“아니, 영화 속에서 막 애원하시잖아요. 대표님의 그런 모습이 잘 상상이 안 돼서요. 여자한테 애원하는 강철…… 오…… 오…….”
엘리는 마치 버퍼링이 걸린 로봇처럼 ‘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러더니 결국 그 뒷말을 해내고야 말했다.
“오…… 빠 라고 해도 되나요?”
그 말에 강철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오빠.
도대체 얼마 만에 들어보는 말인가.
대표님.
회장님.
강철 씨.
CTO님.
등등 수많은 말들이 붙어 있었지만 ‘오빠’라는 말은 동생 말고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당황한 강철이 볼을 붉히며 급히 벌컥거리며 물을 들이마셨다.
“그, 그럼요. 펴,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 편하게.”
“네. 오…… 빠.”
엘리는 한번 말하고 나자 그리 어렵지 않게 오빠라는 내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게 정말 맞나…….’
나은 그리고 이희진이 적극적으로 코치를 해주었다.
-무조건 오빠라고 불러라.
그 코치 때문에 겨우 입을 열었건만 반응이 영 신통치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엘리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오빠라는 말에 강철의 심장이 두 근 반 세 근 반 뛰고 있기 때문이었다.
동상이몽 속에서 빠르게 식사시간이 지나갔다. 볼이 붉어진 강철은 엘리를 똑바로 바라보지조차 못했다.
“왜 그래요? 얼굴이 붉어졌어요. 이마에서 식은땀까지. 어디 아프세요?”
“괜찮습니다.”
“오빠, 진짜 괜찮아요?”
또다시 나온 오빠라는 말에 강철은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 * *
천만 관객.
그 위업을 달성한 디벨로퍼는 한국을 제외한 세계 전 지역에 넷플러스를 통해 동시개봉 되었다. 이미 사전에 넷플러스와 강철에 대한 영화 판권을 넷플러스가 선 구매한 덕분이었다.
-Developer.
라는 타이틀로 서비스된 영상은 넷플러스의 전폭적인 마케팅 지원으로 단숨에 넷플러스 내 조회수 1위를 차지했다.
그러자 연관 검색으로 The Startup이 나타났고, 아직 The Startup을 보지 못했던 시청자. 한 번 더 보려는 시청자가 더해지며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Developer.
The Startup 시즌 3.
The Startup 시즌 2.
The Startup 시즌 1.
강철이 출연한 프로그램으로 일명 줄 세우기가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건 곧 대산의 매출로 직결되었다.
비서의 보고에 강철의 입가에 웃음기가 활짝 폈다.
“전월 대비 매출이 전사적으로 상승 중입니다. 국내, 외를 가릴 것 없이. 마트를 비롯한 빅트리 온라인 쇼핑몰.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 아이온 그룹에서 제공하는 아이체크, 워리어 VR까지. 매출이 대폭 성장했습니다.”
“그게 다 영화 때문이다?”
“네. 물론 기존에도 성장하고 있긴 했지만, 그 기울기가 가팔라진 건 분명 영화가 크게 한몫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대로 지속한다면 올해 전사 매출액은 10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입니다. 영업이익은 대략 15조가량으로 예상되고요.”
매출 100조.
영업이익 15조.
고무적인 부분은 매출과 이익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로써 국내 그룹 매출 기준으로 5위에 랭크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산 클라우드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번에 무리를 해서 영화 마지막 부분에 해당 영상을 넣었는데.”
“덕분에 1인 개발자를 비롯해 스타트업들의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애플이 대규모 이용을 약속하면서 거대 기업들의 이용 문의도 폭증하고 있고요. 현재 인력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수준입니다.”
“신규 채용 절차 바로 진행합시다.”
“네. 그럼 2차 채용 공고 내겠습니다. 그리고 내부에서 이제 제2 데이터 센터를 건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정도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내년이면 센터에 더는 서버 넣을 공간이 나오지 않을 겁니다.”
“흠…….”
“부지선정에서부터 정부 허가에 건설까지 하려면 최소 1년 이상은 걸릴 테니까요.”
“그럼 제2 데이터 센터는 미국에 짓는 게 어떻습니까? 우리 매출의 절반이 해외에서 발생하기도 하고. 우리도 해외에 거점이 있어야 레이턴시를 낮춰 더 빠른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고요.”
“바로 기획실에 검토 지시하겠습니다.”
“이미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의 성능은 확인했으니, 공격적으로 투자를 진행합시다. 미국에 하나 유럽에 하나. 이렇게 두 개를 동시에 건설하는 거로.”
강철의 지시에 비서가 분주히 움직였다. 아무래도 오늘도 늦은 밤까지 일해야 할 것 같았다.
* * *
-디벨로퍼, 넷플러스 부동의 1위.
-영화의 영향인가.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해 전 세계적 관심이 쏠리다.
-애플 대산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 공식 발표.
-이강철 50억 달러 M&A 또다시 성공. 그가 투자한 기업들이 이토록 위대한 성과를 내는 이유는?
-이강철의 공격적인 데이터 센터 건설. 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한국 언론만이 아니라 미국 언론에서도 강철에 관한 내용을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그 소식을 접한 데이비드가 까득 이를 깨물었다.
“NCS 이용률이 최초로 전 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역성장했다는 말입니까?”
“네. MoM –1.3%이긴 하지만 NCS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터라…….”
역성장.
NCS가 성장 궤도로 올라선 이후에 한 번도 벌어진 적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조지 케년이 자신들의 지분을 사줄 투자자를 알아보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아마 투자자만 나타나면 바로 지분을 매도할 생각으로 보입니다.”
데이비드는 2주 안에 이렇다고 할 만한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고, 조지는 경고했던 대로 지분 매도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보유지분 11%.
그 지분을 전부 판다면 170조에 달하는 돈이었다.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덕분에 주가도 시외에서 –6%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려했던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어…….’
그렇다고 요금 할인은 쉽지 않았다. NCS 요금을 한 번 할인하기 시작하면 다시 올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객들의 가격저항력이 강해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돌파구가 필요했다.
‘애플이 외부 자문한 것처럼 나도…….’
고심하던 데이비드가 결론을 내렸다.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좀 만나야겠습니다. 그들도 대산의 공격으로 피해를 받고 있을 테니.”
“알겠습니다. 약속을 잡아보겠습니다.”
데이비드의 눈동자가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