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가상화 솔루션(2)
실리콘 밸리
미국 샌프란시스코 산호세부터 레드우드 시티까지 길게 이어진 도시를 칭하는 그곳은 전 세계의 인재들이 모이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인재란 소수이기에 인재라 불리는 것이다. 공급은 적은데 수요가 상승하니 인재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번에 입사하기로 한 인원이 다시 나일에 남기로 했다고요?”
“네. 우리 쪽에서 제시한 연봉 조건이 나일에서 제시한 것 보다 떨어진다면서…… 입사를 거부했습니다.”
강철이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나일.
바겐세일을 멈춘 그곳에서 이번에는 대대적인 인력 채용을 시작했다. 그것도 최고의 연봉을 제시하면서.
덕분에 인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은 대산이 아니라 나일이 되어버렸다.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문제는 우리 쪽 인력 중에서도 움직이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 법인 쪽에서 한 명, 두 명씩 나일로 옮기는 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나일은 중천에 뜬 태양이고 우리는 이제 막 떠오른 샛별이다 보니…….”
“결국, 미래 나일이 이길 거로 생각하는군요.”
“네. 아무래도 전통의 강호니까요. 이렇게 나일이 밀어붙이면 DVM은 자체 서비스로 끝날 거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온라인 유통 부문이야 윌마트를 등에 업고 어느 정도 선전할 수는 있지만요.”
강철은 DVM을 ‘나일의 NCS’, ‘서치의 클라우드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의 AZURE’처럼 키울 생각이었다. 변형인플루엔자 사태 이후 전 세계 클라우드서비스 수요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전염병이 가라앉고, 그 수요가 잠잠해졌느냐? 오히려 반대였다. 클라우드 세상으로의 변화를 더욱 가속했다.
백신.
치료제.
그걸 개발할 때도 클라우드 서비스가 필요했다.
Try and Fail.
그걸 현실에서 하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빠르게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면 1년 아니 1개월 만에도 데이터가 도출된다.
이제 전 세계의 정보는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 쌓이고, 그걸 활용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더구나 경쟁사인 서치나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대대적인 인력 채용에 나섰습니다. 결국, 기술이라는 게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강철이 씁쓸히 중얼거렸다.
“나일, 서치, 마이크로소프트라…… 어느 하나 만만한 상대가 없군요.”
“이미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 회사들입니다. 그러니 너무 실망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들이 위협적이라 느끼는 것 자체가 대표님이 잘하고 있다는 방증이니까요. 대표님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비서의 위로에도 강철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DVM에 타 서비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킬러 콘텐츠라도 있으면 상황이 다를 텐데…… RD-2000 때문에 빅트리를 사용하듯이 꼭 DVM을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정말 그런데 있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런 게 있다면요.”
“흠…….”
강철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처음 DVM을 만들 때는 일단 자사 서비스를 운용할 때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사용하면서 편의성을 개선해 차근차근 서비스로 출시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럴 여유가 없어졌다. 여유를 부리다간 그걸 개발할 인력들마저 사라져 버리게 생겼으니까.
생각을 마친 강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 2단계에 진행하려 했던 계획을 앞당기기로 합시다.”
“클릭 한 번으로 구성되는 시스템 말씀입니까?”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원 클릭 서비스.”
원 클릭 서비스.
이건 과거 강철이 NCS를 이용하며 느꼈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해낸 방식이었다.
서버용도 : 게임서버.
이용자 수 : 50,000.
예상 데이터 발생량 : 10GB/일.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입력만 해도 해당 형태에 알맞은 서버가 자동으로 생성되는 것이다.
“하긴 현재 NCS는 기능이 너무 많아져 초급자가 다루기 위해서는 또다시 NCS를 공부해야 한다는 게 유일한 단점이 있긴 합니다.”
“저도 처음에 꽤 고생했습니다. 서버를 만드는 간단한 작업 속에 로드 밸런스 연결, 인풋 아웃풋 포트 설정. NCS 내 네트워크망 설정, DB서버 설정. DB 백업서버 설정 등등 간단한 시스템 하나를 띄우기 위해서 설정해야 하는 것들이 수십 가지는 그냥 넘어가 버리니까요.”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강철의 비서가 되기 위해 자신도 매일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NCS에 관련된 것도 있었고, 관련 내용이 충분히 숙지된 상태였다.
“그런데 NCS에서도 원클릭 서비스를 안 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요. 그 이유가 구현의 난도가 높고, 서비스로서의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우리는 NCS와는 타깃 고객층도 차별화를 둘 겁니다. NCS가 주로 하는 B2B가 아닌 B2C 서비스로.”
“B2C라…….”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트래픽은 규모가 큰 기업이 일으키는 것들입니다. NCS의 매출도 대부분 대형 고객사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그러니까 대표님 말씀은 그런 대형고객사가 아닌 개인 고객을 타깃으로 서비스를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저희는 1인 개발자 또는 10인 이하 스타트 업들이 사용하기 쉬운 서비스를 표방하는 겁니다. 일명 코 묻은 돈으로 수익을 내는 전략이죠. 그런 쪽에서 더 원클릭 서비스를 원할 테고요. NCS를 공부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을 테니.”
“그러면 분명 효과가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차별화 포인트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DVM을 일정 부분 오픈소스로 공개해 개발자들의 관심을 끌 겁니다.”
“github에 오픈소스로 공개를 하게 되면 DVM으로는 돈을 못 벌게 되는 것 아닙니까?”
“돈은 원클릭 서비스로 벌면 됩니다. DVM은 공개하고, 그 위에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구현해 이용 시 요금을 부과하는 식으로. 도커나 하둡 github이 돈을 버는 방식으로 가는 겁니다.”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강철의 말대로 된다면 NCS와 차별점은 확실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확실히 NCS와 차별점은 있군요.”
결단을 내린 강철이 지시했다.
“그럼 이대로 진행하도록 합시다.”
일은 바로 진행되었다.
클라우드 서비스 기반을 이루는 DVM은 github에 오픈 소스로 공개되었고, 대산의 개발자들은 원클릭 서비스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일반 타사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클로즈 베타 서비스를 공개하고, 무료 이용권을 뿌리며 사용을 유도했다.
스타트 업.
그러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니콘 기업들은 NCS를 사용했지만 작은 스타트업들은 강철이 만들어낸 플랫폼으로 조금씩 옮겨 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강철이 투자한 회사들도 DVM으로 옮겼다. 맨 밑바닥에서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강철도 개발에 적극 개입해 빠르게 서비스를 개선시켜 나갔다. 그러자 아주 미미하지만 고객이 모이고 있었다.
* * *
한편.
강철이 DVM에 정신이 팔린 사이 마르스에 탑재된 V스토어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워리어 덕분에 국내 점유율은 30%까지 올라왔지만, 독점 기간이 풀리자마자 점유율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대산과 아이온 그룹의 개발 인력들이 빠져나가자마자 하나둘씩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최윤아가 V스토어 개발 총괄을 불러 물었다.
“오늘만 앱 이상 종료 건수가 121여 건이 보고 됐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겁니까?”
개발 총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서치의 앱스토어도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121여건 정도는 아주 양호한 편입니다.”
하지만 딱딱하게 굳어진 최윤아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결제하다 튕겼는데 이미 결제가 되어버린 건은요?”
개발 총괄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라 V스토어 기본 탑재된 리민스 모듈에서 처리하는 거라…….”
리민스.
강철이 투자한 블록체인 기반 결제 플랫폼 회사였다.
“우리 책임이 아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최윤아가 당황해하는 개발 총괄을 쏘아보았다.
“리민스 측에 문의해 보니 자사 서비스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더군요. 그러면서 증거 자료로 이걸 보내왔어요.”
개발 총괄이 떨리는 눈동자로 최윤아의 시선을 따라갔다.
-[701]앱의 이상상태로 결제를 종료합니다.
리민스와 연동 당시 정했던 에러 코드 중 하나로 700~799번까지는 자사 앱의 문제라는 뜻이었다.
즉.
V스토어 앱 자체의 문제라는 말이었다.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걸 대산 측에서 다시 넘겨받은 지 벌써 3개월이에요. 그간 자잘 한 패치를 진행하면서 생긴 문제만 수십 건이 넘고요. 이런 식이면 제가 어떻게 믿고 일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개발 총괄이 한 번 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최윤아는 여전히 못 미더운 눈빛으로 부하직원을 쳐다보았다.
“알았으니까. 그만 나가보세요.”
직원이 나가고.
최윤아가 비서에게 물었다.
“이걸 다시 이강철에게 넘겨야 하나 고민이야.”
“운영을 말입니까?”
최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스에 기본 탑재되면서 세계 시장 확보를 위한 발판은 마련했는데 인력은 그대로니까. V스토어가 도통 개선되질 않네. 우리에게도 세계 경험이 필요한 인력이 필요한데…….”
“그런 인력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더구나 최근 실리콘 밸리에서 이강철이 촉발한 클라우드 서비스 전쟁으로 인해 인력난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최윤아가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이강철이 움직이면 실리콘밸리도 들썩거린다는 뜻이네. 그 사람 엄청난 거물이 됐어.”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그래서 언론에서도 이강철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는 것이고요. 아직 그들에 비교해 회사 규모는 상대가 안 되지만 그가 거느린 회사들의 성장성에 실리콘 밸리 기업들도 방심해선 안 된다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온라인 사업이라는 게 그래. 제조업처럼 공장을 짓고, 인력을 채용하고 수율을 개선하는 과정이 필요 없지. 그냥 집에서 뚝딱 만들어서 출시해도 세계적인 서비스들을 이길 수 있는 게 이 시장이니까.”
말을 하는 최윤아의 표정은 밝았다. 자신이 선택한 남자가 잘나가는 모습이 못내 자랑스럽기 때문이었다.
최윤아가 묵묵히 듣고 있는 비서에게 말을 이었다.
“자리 한번 마련해. 아무래도 이강철 대표와 상의해 봐야겠어.”
“알겠습니다.”
그 말을 마친 비서가 최윤아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 문을 보며 최윤아가 붉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아직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니까 이렇게 연락하는 게 맞는 거겠지…….”
그러면서 혀로 살짝 입술을 핥았다. 그 표정에서 짙은 욕망이 느껴졌다.
하루라도 빨리 공적인 일임에도 사적으로 연락하는 사이가 되길 바라는 욕망이.
* * *
GitHub.
git이라는 코드 관리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전 세계 코드 저장소가 된 이곳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코드들이 올라온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32만의 좋아요를 받은 freeCodeCamp라는 코딩 커리큘럼 프로젝트였다.
그 외에도 웹 프로그래밍 프레임워크인 React, 머신러닝 관련 Tensorfow, Bootstrap 등이 있었다.
그 끝자락에 슬며시 DVM이라는 이름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사 서버 통합에 사용했는데 타 프로젝트에 비해 최적화가 잘돼 있습니다.
-버그가 있으면 바로 조치해 주네요. 개발자들이 열일 하는 듯.
-확실히 대산에서 만든 프로젝트라 그런가. 쓸 만합니다. 특히나 각 서버 사양이 달라도 DVM을 이용하면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서 비슷한 성능을 내는 여러 VM들을 만들 수 있어요.
IT 관련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였다. 강철의 시선이 유독 한 댓글에 멈춰 있었다.
-한 가지 단점은 속도가 조금 느리다는 거? 다른 것들에 비교해서도 조금 느린 감이 있네요.
“조금 느리다…….”
강철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사실 벤치마킹을 한 결과 타 서비스들과 비슷한 속도였다. 더 빠른 속도는 아직 개발하고 있었다. 강철이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며 의자에 기댔다.
“느려서 그런가 생각보다 사용자가 팍팍 늘어나진 않네.”
DVM을 올린 지 두 달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사용자가 드라마틱하게 늘어나질 않았다.
+1434명.
+2135명.
+1991명.
천 명에서 이천 명 사이를 움직일 뿐이었다.
이 상태가 유지된다면 DVM은 자사에서 사용하는 솔루션에 그칠 것이다. 이 정도 수치로 강철이 원하는 세계적인 서비스가 될 수는 없었다.
“뭔가 역전의 계기가 필요한데 마치 드론 택배 같은…….”
드론 택배를 통해 ‘빅트리’가 전 세계에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듯이 DVM이 존재감을 드러내 계기가 필요했다. 강철의 고심이 깊어지던 그때.
비서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최 실장님 오셨습니다.”
최 실장.
최윤아가 왔다는 말이었다.
잠시 후 강철의 집무실.
그곳에 최윤아가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다.
“소파 좋네요. 우리도 이걸로 바꿀까 봐.”
강철이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V 스토어 운영권을 넘기고 싶다고요.”
하지만 최윤아의 대답은 그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요즘 왜 이렇게 연락이 뜸해요?”
강철이 살짝 마른 침을 삼켰다. 얼마 전 엘리와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강철이 겨우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최근 워리어 월드 챔피언쉽에서부터 DVM까지 일이 많았습니다.”
짧고 간결한 대답이었다. 그것만 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도 최윤아가 그런 강철을 실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혹시 다른 여자 만난 거 아니죠?”
한 번 더 꿀꺽.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강철은 최대한 담담히 답했다.
“아직 그런 이야기까지 공유할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요.”
아직 별 사이 아니니 상관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강철의 냉정한 말에 최윤아가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강철에게 몸을 기울였다.
“아니라고는 안 하시네요.”
“맞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내 최윤아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다시 소파로 몸을 기댔다.
“하긴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무슨 사이도 아니고, 가끔 안부나 전하는 사이긴 하죠.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게 실례일 수도 있고요.”
분명 자신이 먼저 만나자고 했다. 강철은 괜한 미안함에 급히 답했다.
“……그렇게까진 생각지 않습니다. 예전보다는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윤아 씨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최윤아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 말 진심이에요?”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엄마, 동생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여성이니까요.”
“호호, 그 말은 듣기 좋네요.”
“사람 간의 관계는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서로 맞는 사이라면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될 겁니다.”
듣고 있던 최윤아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안 맞는다 해도 노력해 볼 수는 있잖아요.”
순간.
강철은 턱 하고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옛날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노력해 볼 수 있는 거잖아. 내가 더 잘할게.
-인영아! 제발 이혼만은…….
-내가 정말 노력할게.
노력.
그 단어는 과거 박인영의 이혼 요구에 자신이 사용했던 단어이기 때문이었다. 분명 자신이 노력으로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노력…… 노력이라…… 그건 그럴 수 있겠군요.”
새삼 최윤아가 다시 보였다. 재벌이 ‘노력’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최윤아가 그런 마음을 안다는 듯이 말했다.
“재벌도 많은 ‘노력’을 해요. 그게 일반 사람들 눈에 안 보일 뿐이지.”
강철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군요.”
이내 최윤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강철 씨처럼 자수성가한 사람들에게 그 노력이 하찮아 보일 수도 있지만요.”
강철이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력이란…… 아주 중요한 것이고, 마땅히 인정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윤아의 입꼬리가 새초롬하게 올라갔다. 강철의 대답이 꽤 마음에 든 것이다.
“뭐, 그럼 됐네요. 이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일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내 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주로 최윤아가 말하고, 강철이 듣는 위주였다.
-V 스토어 운영을 해보니 어렵다는 걸 느꼈다.
-능력 있는 개발자가 필요하지만 채용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기획만 할 테니, 마치 제조업의 OEM처럼 V스토어의 운영을 해달라.
그중에서도 강철의 머리를 강타한 건 이 말이었다.
-성능 개선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성능.
최윤아가 오기 전 했던 고민과 맞닿아 있는 단어였다. 근 한 시간가량 진행된 회의가 끝나고, 최윤아가 돌아간 뒤.
강철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성능이다.”
-원 클릭 서비스.
그런 기능은 부가적인 것에 불과했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조금 아쉬운 그런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고, 고객들이 가장 놀랄 그런 것은 무엇일까.
성능이 아닐까?
강철은 바로 NCS 페이지에 접속해 NC2 인스턴스를 하나 구동시켜 보았다.
1초.
2초.
3초.
…….
1분 20초.
생성이 끝나고, 해당 인스턴스에 SSH로 접속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하지만 NC2만 있다고 해서 하나의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서버 장애를 위한 백업 서버.
그 앞단에 존재하는 로드 밸런스.
데이터를 저장하는 DB.
등등.
하나의 시스템을 구동하기 위해 NCS의 여러 기능을 설정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 서버들이 기동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컨테이너 가상화 기능 같은 고급 기능까지 이용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필요한 전체 시스템을 구동시키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린다.”
원터치 서비스를 통해 설정 시간만이 아니라 이런 구동 시간까지 줄여준다면?
강철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NC2와 같은 스펙의 인스턴스를 더 싸게, 더 빠르게 구동시킬 수 있다면?”
이걸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삑.
강철은 바로 인터폰을 눌렀다.
“이번에 나일에서 넘어온 마이클 설리번있죠.”
-네.
“바로 연결 좀 해주세요. 논의할 게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잠시 후.
강철의 구상을 설명하자 마이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DVM을 살펴본 결과 이대로는 대표님이 말씀하신 방향으로 구현할 수 없습니다. DVM은 NCS처럼 구조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철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DVM을 만들며 고민한 것이기도 했으니까.
“혹시 OS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이미 NCS 최초 개발 당시부터 리눅스를 사용해서 그걸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더 빠른 속도를 위해서는 오직 가상화에 최적화된 가볍고 빠른 OS가 필요합니다. DVM 역시 그걸 기반으로 만들어져야 하고요. 그래야 대표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NCS를 뛰어넘을 성능이 구현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리눅스 위에서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흠…….”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OS 개발이라는 것 자체가 상당한 난도를 자랑하니까요. 하지만 최근 기술 트렌드를 보면 쿠버네이티스에 최적화된 코어OS가 출시되어 개발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물론 코어 OS도 리눅스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긴 하지만 타 기능은 전부 제외하고 컨테이너 가상화 기술에 특화되어 있어 빠른 속도를 자랑합니다. DVM에도 이런 특화 OS가 필요합니다.
고심하던 강철이 물었다.
“그럼 혹시 그런 OS 개발 업체를 인수한다면 개발 기간을 더 단축 할 수 있습니까?”
-물론 그럴 겁니다. 다만 해당 OS 개발자가 가상화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합니다. OS에서도 가상화 기술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OS의 중점은 가상화가 아니라 시스템의 전반적인 운영이니까요.
대화를 나누던 강철이 잠시 고개를 돌려 비서를 불렀다.
“내가 투자한 회사 목록 한 번 가져와 보세요.”
스타트 업.
강철의 보석함이었다. 어렴풋이 그 보석함 속에 OS 관련 개발을 하는 곳이 있었던 기억이 난 것이다.
마이클과 연락을 강철이 비서가 정리해온 목록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곳이 있었습니다.”
“회사명은 ONCE. 이스라엘에 본사를 둔 스타트 업입니다. 현재 리눅스보다 빠르고, 윈도우보다 사용자 친화적인 OS 개발을 목표로 연구 진행 중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철이 비서에게 지시했다.
“바로 연락하고, 비행기 표 끊으세요. 지금 바로 만나야 할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 * *
이스라엘.
유대인이 세운 국가로,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라 알려진 이들이었다. 전 세계 유명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나라를 꼽을 때 언제나 빠지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강철 역시 이곳에서 몇 군데 회사에 투자를 진행했다.
그중 하나가 ONCE.
OS 개발 업체였다.
이곳에 도착한 강철은 바로 코어 OS를 예로 들며 상황을 설명했고, ‘혹시 가상화 솔루션 쪽에 특화된 OS를 만들 수 없냐’는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 최근 리눅스에서도 드러나는 가상화 기술에 대해 이쪽에서도 연구를 진행 중이었고,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강철.
그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인재들이 힘을 합쳐 개발에 열을 올리자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일은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속도로 개발이 진행되었고, 몇 달 후 원스라는 이름으로 클로즈 베타 버전이 출시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때까지도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ONCE.
그 이름을 가진 OS가 얼마나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지를.
* * *
미국 실리콘 밸리 나일 본사.
그곳에 있는 넓은 회의실에 회사의 운명을 결정짓는 권한을 가진 이사진들이 모여 있었다.
“금년 제12회차 이사진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의장인 데이비드가 선언하자 이사진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근 진행한 과격한 세일로 인해 회사 현금이 20억 달러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CEO님의 해명을 듣고 싶군요.”
데이비드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 건은 말씀드렸다시피 경쟁사와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나일이 현재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면 현 빅트리의 성장에 제동을 걸어야 하고 20억 달러는 거기에 드는 비용이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이사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빅트리, 빅트리. 최근 그 소리가 많이 들리더군요. 어차피 한국의 조그마한 온라인 쇼핑몰 아닙니까?”
“윌마트가 빅트리에 온라인 부문을 맡기는 결정을 했습니다. 최근에는 뉴욕에서 드론 배송을 진행하며 그 기술력을 선보였고요. 조그만 온라인 쇼핑몰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차피 드론 배송이야 우리도 하는 것이고, 그게 시장의 선도기업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데요. 너무 과한 반응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 과하지 않다고 해도 무려 20억 달러입니다. 20억 달러로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배당금을 지급했으면 회사 가치가 지금보다 더 올라갔을 겁니다.”
데이비드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욕심만 많은 멍청이.’
이들의 월가의 투자자들이 심어놓은 심복이었다. 데이비드는 나일을 운영하며 부족한 자본을 월스트리트로부터 투자를 받아 진행했고, 그 결과 회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이들에게 보고하고 승인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회사에 재투자하는 것이 기업가치를 더 높이는 것이라는 제 판단입니다. 그게 바겐세일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고요. 아시겠지만 지금까지 이런 제 판단이 틀린 적도 없었고요.”
여기저기서 침음이 터져나 왔다.
“흠…….”
“음…….”
이들은 투자자다. 투자자들의 목적은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배당.
자사주 매입.
그것도 전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진행하는 일일 뿐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회사에 재투자를 진행해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그게 맞는 방향이라면 말이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 이사가 천천히 입을 뗐다.
“아직은 대표님을 믿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일이 진행되는 걸 보면 그 믿음에 의문이 가는 일들이 계속 생겨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드론 배송 개발에서부터 NCS 개발 인력의 유출까지.”
조지 케년.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자한 사모펀드의 대리인으로 자신을 제외한다면 2대 주주였다.
그 말에 순간 데이비드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건…….”
조지가 조목조목 불안한 점을 짚어나갔다.
“개발은 지지부진하고, NCS 최고 개발자는 타사 이적. 나일의 점유율 하락.”
데이비드가 급히 입을 열었다.
“점유율 하락은 만회했습니다.”
“무려 2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쓰셨죠.”
“…….”
조지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데이비드를 노려보았다.
“더구나 DVM이라는 솔루션을 개발해 NCS의 영역까지 넘본다고 들었습니다. NCS는 나일의 매출에서는 불과 15%에 불과 하지만 영업이익의 6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NCS에서 밀리게 된다면 나일의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할 겁니다. 어쩌면 적자를 보게 될지도 모르죠.”
이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툭 한마디를 던졌다.
“그에 대한 대비책은 있습니까?”
“일단 NCS와 같은 대규모의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 출시도 안 된 서비스 때문에 NCS 요금 할인을 한 겁니까?”
날카로운 질문에 데이비드가 움찔거렸다. 조지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현재의 위협상황에 대해 우리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도움을 주든지 할 것 아닙니까. 어차피 한 배를 탄 사람들이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DVM은 아직 미미한 프로젝트입니다. 요금 할인을 한 건…… 이강철 대표가 그동안 보인 행보로 봤을 때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아 선제적 조처를 한 것이고요. 한 번 NCS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면 타 서비스로 마이그레이션이 어렵습니다. 즉 DVM을 쓸 수 없다는 것이죠. 싹은 미리 밟아놓는 게 안전하니까요.”
“흠…….”
“아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잘 컨트롤하고 있으니까요. 어차피 사전에 조사를 해보셨을 것 아닙니까. DVM이 어떤 기술인지 어떤 파급력이 있을 건지.”
데이비드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별것 없지 않습니까? 원클릭 서비스를 한다지만 아직 기획만 나온 상태이고, 현재까지 나온 버전으로는 NCS보다 오히려 성능이 떨어지는 수준입니다. 이 상황에서 NCS는 더 많은 기능을 추가하며 업그레이드가 되고 있고요.”
그 말에 조지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상황을 제대로 컨트롤하고 있지 못하군요.”
조지의 말투가 절로 딱딱해졌다.
“최근 이스라엘의 원스라는 곳에서 가상화 솔루션에 특화된 OS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 쪽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NCS는 리눅스 기반. 그 때문에 성능을 향상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그걸 바꾸려면 OS 자체를 바꾸고 그 위에 가상화 솔루션을 올려야 한다.”
조지가 유심히 데이비드를 쳐다보았다.
“이강철이 그 가상화에 특화된 OS를 개발하게 된다면 아마 성능은 NCS보다 좋아질 것이다.”
그 말에 데이비드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런 데이비드를 보며 조지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게 정말 개발된다면 회사에 위협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데이비드는 쉽사리 입을 땔 수 없었다.
조지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듣기로는 거의 개발 완료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곧 정식으로 발표할 거고요. 아마…… NCS의 NC2 인스턴스보다 부팅속도가 50%가량 빠를걸요.”
조지가 말을 이어나갈수록 데이비드의 동공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사진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기에 원클릭 서비스까지 더해진다면 NCS에서 시스템 하나를 구성하는 것보다 1/2 아니 그 이상 속도가 빨라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아무 대책이 없다…….”
팔짱을 낀 조지가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무대책 CEO에게 나일의 운명을 계속 맡기는 게 맞는 일인지 의문이 드는군요. 안 그렇습니까. 이사진 여러분들.”
다른 이사진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데이비드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 *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 옆 사무실.
강철이 투자한 ONCE 스타트업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 건물에서 안에서 강철은 긴장된 눈빛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device-matching : once : version 1.03
DVM CNR mode by optimization enabled.
…….
Boot complete.
부팅이 완료되고, 강철이 재빨리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29초.
NC2의 부팅속도보다 50% 이상의 성능향상을 이뤄낸 것이다.
“됐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다.
Boot complete.
그 이후에 ‘>’ 커서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정상 작동한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수 초를 더 기다려 보았지만 ‘>’커서가 나타나질 않았다. 강철의 시선이 설치된 반대편 모니터를 향했다.
Device segmentation failed : memory.
메모리 분할 과정에서 실패했다는 말이었다.
ONCE.
그 위에 DVM이라는 프로그램이 올라간다. 마치 핸드폰에서 IOS 위에서 앱이 돌아가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그런데 IOS 자체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근무하는 건 강철만이 아니었다. ONCE의 리더가 바로 강철에게 다가왔다.
“메모리 분할 문제 방금 수정해서 올렸습니다. 다시 테스트해 보면 될 겁니다.”
“오케이.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강철이 바로 코드를 확인했다.
확실히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문제 해결 방향과 비슷했다. 아마 이렇게 보조해주는 이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으리라.
코드를 확인한 강철이 다시 빌드 과정을 거쳐 배포 후 테스트를 진행해 보았다.
똑같은 로그가 올라오고, 다시 같은 글귀가 나타났다.
Boot complete.
이내.
‘>’
기다리던 특수문자가 나타났다. 살짝 마른침을 삼킨 강철이 명령어를 날려 보았다.
>hello.
그러자.
hi. this is once.
미리 입력해 두었던 글귀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건 곧 프로젝트가 성공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강철이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다!”
그 말에 다른 개발자들도 강철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정말 성공?”
“이제 끝이야?”
“와우!”
파란 눈에 갈색 곱슬머리의 이국인들이 강철을 얼싸안았다.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지난 몇 달씩의 고생이 확연히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강철도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성공했다. 정말 성공했어…….”
다른 프로그램도 어려웠지만 ‘OS’는 특히나 힘든 과정이다.
OS란 어떻게 보면 컴퓨터 과학 분야의 전 기술을 알고 있어야 개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가상화.
커널.
어플리케이션.
DB.
스레드.
등등 수많은 기술이 접목된 것이 OS였다.
강철은 성공한 프로그램을 바로 한국에 있는 대산 개발자들에게 전송했다.
현재 테스트한 몇 대의 서버가 아니라 대용량 환경. 즉 수백 대의 서버가 운용되는 곳에서 테스트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고.
전 세계에 https://www.dvmservice.com이라는 사이트가 정식으로 오픈했다.
동시에 여러 인터넷 매체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 활동이 벌어졌다.
-완전히 새로운 클라우드 서비스가 여러분을 찾아 왔습니다.
-DVM.
-놀랄 만한 속도로 여러분께 감동을 드리겠습니다.
그 사이트가 오픈하자마자 가장 먼저 접속해 본 건 데이비드였다.
그가 급히 마우스를 움직여 회원가입을 하고, 간단히 시스템을 하나 만들어보았다.
Loading…….
Loading…….
Loading…….
Loading…….
수십 초나 기다렸지만, 로딩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역시나 자신들이 만든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그때. 앱 서버, 디비 서버, 로드밸런서, 시스템 생존체크 등등을 갖춘 하나의 완성된 형태의 시스템이 탄생했다.
정확히 1분 30초.
자신들이 운영하는 NCS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