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가상화 솔루션(1)
데이비드가 돌아가고, 강철이 비서를 불렀다.
“나일에서는 드론을 사지 않겠다고 하는군요. 그것도 아주 단호하게. 뭔가 단단히 결심한 눈치였습니다.”
“아마 자체 개발 중인 드론에 힘을 실을 모양입니다. 최근에 관련 분야로 대규모 인력 충원을 하면서 연구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고 들었습니다.”
“나일 드론의 성능은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 아는데…….”
“네. 그래서 우리 쪽 드론 사업을 꼭 인수하고 싶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오늘 자리를 위해서 저를 비롯해 주리룬 쪽으로도 상당한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걸 거절했으니 조금 화가 날 법도 하군요.”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거절하겠습니다.
데이비드는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답한 후 떠나갔다. 어쩐지 그 목소리에 ‘두고 보자’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데이비드 딩킨스의 스타일상 이대로 물러나진 않을 테고, 여러모로 압박이 가해져 올 겁니다. 자존심이 상당히 강한 인물이니까요.”
강철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나가면 되니까요. 그것보다 뉴욕 랩스 인수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팔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새였습니다. 현재 상용화된 제품은 전무하고, 최고급 연구인력을 유지하기 위한 고정비는 계속 들어가는 상황이니까요.”
“가격은요?”
“대략 1조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바로 인수하도록 하죠. 관련 특허 확보하고, 주리룬에게 관련 기술 중 트리스에 적용할 만한 것은 없는지 검토하라고 하세요.”
“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데이터센터 오픈 행사가 있습니다. 참석하시겠습니까?”
데이터센터.
강철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설을 지시했고, 그게 곧 완공된다는 말이었다.
“거기에 DSP, DRP, 드론 통제 시스템 등등이 들어가게 되는 겁니까?”
“네. 뿐만 아니라 기존 NCS 서비스를 이용하던 모든 시스템들이 모이게 될 겁니다. 혹시 다른 지시사항이 있을까요?”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최초 말한 대로 구성하도록 하세요. 추후 NCS를 이겨낼 전초기지가 될 테니.”
“알겠습니다. 관련 사항 준비해 두겠습니다.”
* * *
일주일 후.
강철은 데이터 센터가 만들어진 천안에 도착해 있었다.
부지 20만 평.
총 공사비 1조5천억.
물과 소비 전력을 최소화하는 구조에 최대한 태양광 시설을 이용해 100%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구축되었다.
또한, 세계적인 건축가를 초빙해 단순한 콘크리트 더미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을 완성했다.
그 장대한 모습에 강철도 탄성을 터뜨렸다.
“잘 만들었군요.”
그 말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데이터센터장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최초 설계 시부터 유명 건축가들에게 설계 초안을 받아 단순히 데이터 센터로써의 기능만이 아니라 일종의 예술 작품이 되도록 구상했습니다. 보시면 주변에는 태양광 패널들을 설치해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했으면 조경에도 특히 신경을 써서 이곳의 근무자들이 타지 근무로 우울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배려했으며…….”
데이터 센터장은 자신의 공을 알리기 위해 적극 노력했다.
하지만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데이터 센터는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으니까.
이내 강철이 건물 가까이 이동했다. 강철이 온다는 소식에 사내 많은 사람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그 인파를 경호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정리하며 강철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네.”
비서의 안내에 따라 강철이 걸음을 옮겼다. 간혹 관련 직원들에게 눈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데이터센터 내부였다. 아직 서버들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아 고요했다.
“아직 전원은 켜지 않았습니다. 오늘 대표님께서 직접 최초 전원을 켜주시면 그때부터 시스템 이전이 시작될 겁니다.”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바로 전원 오픈 행사를 하러 가죠.”
“네.”
비슷한 시각.
대산 그룹 가상화 솔루션 담당 직원들이 긴장된 낯빛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곧 서버 전원 올린답니다.”
“휴우…….”
솔루션 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상화 솔루션.
속칭 DVM 이라는 솔루션이 데이터 센터 전체에 설치되어 있었다.
OS.
DVM.
그 위에 각 어플리케이션들이 설치되는 것이다. 당연히 DVM이 잘못되면 다른 시스템들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상화 솔루션 속칭 DVM(대산 버추얼 머신) 팀의 팀장이 긴장하고 있는 이유였다.
“전원 올라갔습니다. 서버 전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모니터에도 하나둘 초록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원이 켜지고, OS가 구동된 후 자동으로 DVM이 실행되게 되어 있었다.
녹색 불.
그게 들어온다는 것은 DVM이 정상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없지?”
“네.”
부하직원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동률 100%.
DVM은 주기적으로 중앙서버로 생존신고를 보내게 되어 있었다. 100%라는 뜻은 전체 서버에서 생존신고를 정상적으로 보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가동률 99.9%.
오픈 초기.
팀장은 0.1%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거 왜 이래.”
“서버 한 대가 꺼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왜?”
“현재 센터 내부 엔지니어가 확인 중이라고 합니다.”
“확인되는 대로 보고하라고 해.”
“네.”
하지만 10분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0.1% 떨어진 가동률도 여전했다.
팀장이 부하직원을 재촉했다.
“아직 확인 안 됐어?”
“그게…… 서버 엔지니어가 확인해 봤는데 서버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DVM에서 Alive Check 신호를 못 보내는 것 같다고 해서 로그 좀 확인해 보고 있었습니다.”
“야! 그러면 바로 말을 해줘야지. 당장 내일부터 시스템 이전 시작되는 거 몰라?”
부하직원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로그 좀 보고 확인되면 말씀드리려고.”
“하아…… 알았다. 알았으니까. 어느 쪽인지 알려줘 봐. 그 로그 나도 같이 볼 테니까.”
“네.”
이내 부하직원이 중앙 로그 수집소의 위치를 링크로 보냈고, 팀장도 해당 로그를 보며 원인을 분석해 나갔다.
본사가 그렇게 바쁠 때.
강철은 전원을 올리고, 중앙 제어실에 도착해 있었다.
“이게 모니터링 화면입니까?”
“맞습니다. 전체 애플리케이션 서버, DB 서버, 네트워크 장치 등등 모든 하드웨어를 이곳에서 모니터링할 수 있습니다.”
“DVM 설치는요?”
“전 서버에 완료했습니다.”
그 말에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DVM은 패스트 테스터 당시 개발했던 가상화 솔루션을 업그레이드시킨 버전이었다.
오라클의 버추얼 머신.
EMC의 VM웨어.
마이크로소프트의 하이퍼-V.
등등.
이제는 이런 가상화 솔루션 없이 서버를 운용하는 곳은 없었다.
적절한 자원 배분에서부터 편리한 관리까지.
수백 수천 대의 서버를 관리하기 위해 기존의 데디케이트 구성으로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나온 방법이었고, 이 방법을 강철도 차용한 것이다. 강철이 데이터센터장을 보며 물었다.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네. 어제 테스트를 할 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모니터를 보며 대답하던 데이터센터 장이 말을 흐렸다.
가동률 99.9%.
그 숫자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눈 깜박하는 순간 변해버렸다.
가동률 100%.
그리고 100이라는 숫자에 안심하는 순간 한 번 더 숫자가 변했다.
가동률 99.9%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확실했다. 강철의 시선도 그곳을 향해 있었다.
“문제가 조금 있긴 한 모양이네요.”
“하…… 하하. 네.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강철도 완전히 문제가 없이 100% 완벽할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그랬기에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해 줄 수 있었다.
“네. 한번 확인해 보세요.”
그 확인을 하는 본사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Failed to open virtual machine: cpu 100%.
어느 순간 CPU가 100%가 되며 DVM 프로세스가 뻗으며 재시작되어 버리는 문제였다.
분명 다 같은 서버에 다 같은 DVM을 설치했는데 왜 몇 개의 서버에서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팀장은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이거…… 서버 불량 아닐까?”
“서버 불량이요?”
“아니 그렇잖아. 지금 데이터센터에 전원이 들어와 있는 서버만 몇 개야.”
“오천 대요.”
“그래. 그런데 지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건 15대잖아.”
부하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서버 문제일 확률도 있겠네요.”
“당장 협력사 쪽에 해당 서버 확인 한 번 해달라고 해봐.”
“네.”
한 협력 사당 서버를 수백 대씩 구매했다. 대산은 협력사 측면에서 보면 슈퍼 갑이였다. 당연히 그들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협력사에서 몇 번이나 확인해 봤지만, 서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더구나 각 시스템 이전이 시작되고 실제 애플리케이션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문제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DVM 팀의 팀장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각 서비스 팀에서 DVM을 못 믿겠다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불안해서 서비스를 돌리지 못하겠다고요.”
“우리 이거 몇 번이나 테스트했잖아. 각 서비스 올려보면서.”
“네. 그렇게 하긴 했는데…….”
실상황은 또 다르죠.
부하직원은 그 말이 올라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대신 다른 말로 팀장을 설득했다.
“아무래도 저희끼리는 해결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미 사태가 이 정도 됐으면 대표님을 비롯해 사내 개발 총괄팀에서도 이 사실을 알았을 테고요.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데…….”
개발 총괄 팀.
이 팀은 사내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서비스에 관여할 권한을 가진다. 큰 권한을 가진 만큼 뛰어난 인재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팀이었다.
“휴우…… 알았어. 일단 개발 총괄 쪽에 연락해 보자.”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팀장이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개발 총괄팀원들을 데리고, 직접 사무실을 찾아왔다.
“문제가 꽤 커진 것 같습니다. 이상민 팀장님.”
“죄, 죄송합니다. 최대한 해결을 해보려고 했는데…….”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습니다. JIRA에 지금까지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술해 놓으셨더군요. 그것만으로도 책임은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게 항상 예기치 못하는 문제는 발생하게 마련이니까요. 절차만 제대로 지켰다면 책임을 추궁할 생각은 없습니다.”
뒤돌아선 강철이 DVM 팀 쪽을 보며 말했다.
“지금부터는 제가 직접 컨트롤하겠습니다. 보고 사항이 있으면 제게 가져오세요.”
이내 비서가 자리를 세팅했고, 강철이 코드를 살펴 나갔다.
DVM.
이건 앞으로 나일의 NCS나 마이크로소프트의 Azure에 버금가는 서비스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랬기에 강철은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했다.
* * *
DVM.
그것의 기원은 패스트 테스터라는 테스트 툴이었다.
당시 테스트 툴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가상 머신이 필요했고, 그때 개발한 가상 머신을 기반으로 DVM으로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다.
나일의 NCS.
강철은 DVM이 미래 NCS처럼 되길 원했다.
매년 11조의 이익을 회사에 가져다주는 알짜배기 사업 부문.
그런데 그게 첫발부터 삐걱거리고 있었다.
뚜둑.
뚝.
강철이 손가락 관절을 풀며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그때 이후로 가상 머신 관련 코드를 잘 안 봤더니 문제가 많긴 해.”
한동안 드론 개발에 매진했다. 그전에는 아이온 VR 개발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물론 다른 이들의 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강철이 보기에는 아직 부족한 면이 많았다.
“그렇다고 이걸 내가 하나하나 참견할 수도 없고…….”
회사 일만 해도 결제하고, 확인해야 할 게 한둘이 아녔다.
가끔은 휴식도 하고, 신사업 연구도 하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고심하던 강철은 당장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흠…… 그건 일단 이번 일을 마무리해놓고 고민해 보자.”
일단 당면한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로 한 강철이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문제에 집중해 나갔다.
커널 연동 문제.
코드 최적화 문제.
자원 배분 효율화 문제.
상호 간섭 문제.
…….
문제는 한두 가지가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런 문제들을 안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강철은 개발 총괄팀과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그때마다 기존 개발 팀장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뭐야, 메모리 커널이랑 연동해서 자원 배분할 때 병목현상이 있었어?”
“그, 그건 저도 잘…….”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리고 메모리 할당하고 해제하는 코드는 왜 안 넣은 거야? 이거 자바가 아니야. 직접 해제해 줘야지.”
“…….”
팀장의 지적에 이번에도 부하 직원은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부하 직원도 꽤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부하 직원이 팀장을 따라갈 실력이 없었을 뿐이다.
“내가 이런 걸 믿고…… 지금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니.”
팀장이 답답한 표정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다. 가봐.”
팀장의 시선이 다시 모니터를 향했다.
그 순간에도 강철은 새롭게 코드를 올렸고, 그걸 확인한 팀장은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DVM.
그건 수백, 수천 줄을 넘어 수만 줄짜리의 프로그램이다. 그 코드 한 줄 한 줄을 팀장이 확인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팀원들이 팀장 같은 실력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나자.
당장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을 정도의 상태는 되었다. 이제 마이너한 문제들만 남은 것이다.
자동설치.
Alive Check.
로그 처리.
등등의 당장 프로세스를 돌리는 데 문제가 없는 그런 문제들이었다. 깊은 한숨을 내쉰 강철이 개발 총괄팀의 팀장인 천준호에게 말했다.
“나머지는 천 팀장님이 처리해 주세요.”
이제는 팀장이 된 천준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이 건은 이렇게 처리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런데요?”
“이번에 대표님도 느끼셨겠지만, 직원들의 실력이 들쑥날쑥한 면이 있습니다. 팀장급의 실력은 저도 직접 면접에 참여해 뽑았지만, 일반 직원들은 잠재력을 보고 뽑는다는 느낌으로 진행해서요.”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서 약간 실눈을 뜨며 천준호를 보았다.
“그런데…… 천 팀장님이 그런 말을 하실 줄은 몰랐네요.”
천준호가 피식 웃을 흘렸다.
“저도 제가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혼자 잘난 맛에 천방지축 날뛰다가 팀장이 되어보니 생각해야 할 게 많더군요.”
“하하, 천 팀장님이 이렇게 변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네요. 팀장 자리에 일찍 앉히길 잘했군요.”
천준호가 어색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하하, 네. 뭐. 중요한 건 그래서 사내 직원 양성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강철이 팔짱을 끼며 천준호의 말에 집중했다. 천준호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이를테면 코세라 같은 강의를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하고, 평가를 진행하는 식으로요. 우수 평가를 받는다면 인사에도 적극적으로 반영했으면 합니다. 또한, 애초에 직원을 뽑을 때 잠재력보다는 서치처럼 다면 면접을 통해 철저히 실력이 있는 직원들을 채용하는 게 더 좋은 방법 같습니다.”
“흠…….”
“채용하는 인원은 줄어들겠지만, 오늘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일단은 인사팀에 검토해 보라고 하겠습니다.”
그 말에 천준호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CTO님도 아시겠지만, 대기업 인사팀의 일 처리는 검토에만 몇 날 며칠이 걸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 이건 시급을 다투는 일입니다. 안 그러면 오늘 같은 문제는 계속 발생할 겁니다. 종국에는 시스템이 다운되어 버릴 수도 있고요. 그렇게 되면…….”
“네 말씀해 보세요,”
천준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마 시작도 전에 위약금만 물어주다가 끝나게 될 겁니다.”
강철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관련해서 코드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모든 프로젝트를 살펴볼 수는 없으니까요.”
“아…… 그 비슷한 걸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메소드 위에 TO-DO를 서술해 놓으면 관련 내용을 git과 스택오버플라이에서 학습한 코드와 매칭해 자동으로 생성해 주는 식으로요. 하지만 아주 큰 단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떤 것 말입니까?”
“완전히 새로운 것은 만들어내지 못했고 또한 DVM같은 서비스들의 경우 코드가 공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학습을 하지 못했고 자동으로 만들어내지도 못했습니다. 뭐, 인공지능으로 만들어낸다면야 할 말이 없겠지만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공지능.
정말 완벽한 인공지능이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자신의 생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이 건은 천 팀장의 말대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리고 한국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미국에 지사를 세우고 그쪽에서 대대적으로 인력 채용을 한번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천준호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하하, 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마이크로소프트나 NCS 쪽 인력이 우리 쪽으로 합류해 준다면 프로젝트가 더 빨리 성공하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조치하도록 하죠.”
이내 며칠 뒤.
미국 실리콘 밸리에 법인이 하나 세워지고, LinkedIn, Indee, GlassDoor 등등에 대대적인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DVM Application Developer.
-IoT Architect.
-Senior Partner Development Developer.
-DevOps Engineer.
…….
대략 수백 명에 가까운 대대적인 인력 채용이었다.
그리고 그건 실리콘 밸리를 들썩거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대산이 실리콘 밸리 인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 * *
사실 직원 개개인의 인사이동은 데이비드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근무하는 직원만 만여 명이 넘어가는데 그걸 일일이 보고 있을 순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데이비드의 관심 있는 인물이 몇몇 있었다.
“마이클이 퇴사를 한다고요?”
비서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DVM 쪽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들어보고 싶다면서요.”
으드득.
데이비드가 이를 악물었다.
마이클 설리번.
NCS의 최초, 최고 개발자이자 Chief Engineer로써 엔지니어 그룹의 최상위 단계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NCS의 핵심 개발자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이직을 결정한 것이다.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시겠지만 코딩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학 졸업한 사람들을 가져다 놓고 시키면 됩니다. 하지만 마이클 설리번처럼 NCS의 구조를 전체적으로 설계하고, 향상할 수 있는 건 그밖에 없는데…… 난감하게 됐습니다.”
대체 불가 인력.
그중 하나가 마이클 설리번이었다. 데이비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같은 회사도 있는데 하필이면 왜 거기로 간다고 합니까?”
“그런 대기업은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DVM은 처음부터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설계할 수 있을 것 같아 재밌을 것 같다면서 퇴사를 결심한 모양입니다.”
“연봉은요?”
“그건 비밀 유지 각서로 인해 말하지는 않지만, 관련 주식을 대량으로 받을 것으로 파악 중입니다.”
“그것보다 더 준다고 해도 안 된다고 합니까?”
“네. 인사팀과 먼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데 제시할 수 있는 최고 레벨을 제시했지만, 거절했다고 합니다.”
데이비드는 깊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과거 그는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근무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전에는 서치에서 근무했었고.
그 이력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돈이나 일이 자신과 맞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걸 알기에 데이비드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마이클이 나가면 그 친구가 운영하던 팀원들도 동요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관련 팀원 중 퇴사 의사를 밝힌 게 3명 정도가 됩니다.”
“알겠습니다. 후임자를 한번 물색해 보도록 하세요.”
“네.”
그렇게 비서가 물러나고, 데이비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빨라도 너무 빨라.”
최근 강철은 빠르게 나일의 영역을 파고들고 있었다.
드론.
유통.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그리고 그 모든 분야에서 나일은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대산과 아이온에 밀리고 있었다.
아직은 기존에 이룬 규모의 경제로 버티고 있지만 이대로 기술이 계속 낙후된다면 10년 후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 위기감이 데이비드의 온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넘본다…….”
그렇지 않아도 경쟁자인 마이크로 소프트의 애저 서비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거기에 DVM이라는 서비스까지 더해진다면 경쟁은 더 심화하고, 이익률은 가파르게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나일은 한순간에 적자로 돌아설 수도 있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있다는 건 그만큼 매달 나가는 고정비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치킨 게임을 시작할 때인가.”
치킨 게임.
규모의 경제를 이룬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막대한 현금으로 경쟁사를 고사시키는.
“일단 쇼핑에서부터 NCS까지 요금 할인 정책을 강력하게 펼치고, 인력 채용을 과감하게 진행한다. 막 자라는 새싹을 죽이는데 돈보다 강력한 건 없으니까.”
결심한 데이비드가 다시 비서를 찾았다.
며칠 후.
나일 전사에 강력한 프로모션이 진행되었다.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획기적인 바겐세일이.
* * *
DRP.
이 기능은 NCS에서도 제공하고 있었다. 다만 조금 더 불편하고, 조금 더 성능이 떨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온라인 쇼핑몰.
윌마트가 가진 건 신선식품 부문이었고, 나일은 공산품에 장점이 있었다.
애초에 사업 영역이 조금 달랐지만 빅트리가 윌마트의 온라인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공산품 쪽으로도 사업 영역을 넓혀왔다.
택배 드론.
그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서.
그런데 그 공격에 강력한 제동이 걸렸다.
“NCS 모든 서비스를 당분간 가격을 20%가량 할인하기로 했다고요?”
“네. 곧 있을 블랙 프라이데이에 맞춰 자사 서비스를 할인을 해주겠다고 합니다. 아마…… 저희가 클라우드 서비스 진출을 위해 개발자를 모집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최대한 자사 서비스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놓는다면 추후 고객이 우리 쪽으로 오는 데 어려움이 있겠군요.”
“네. 다른 클라우드 서비스도 마찬가지지만 NCS는 타 서비스로의 이전이 더 불편하게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할인을 통해 고개를 끌어가는 전략이라…….”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나일의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할인 행사요?”
“네. 덕분에 미국에 진출한 빅트리의 점유율이 13%를 고점으로 계속 아래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사실 드론을 이용한 빠른 배송이 큰 강점이긴 하지만 하루 또는 몇 시간 만에 배송받고 싶어 하는 고객이 그리 많진 않으니까요.”
강철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서의 말 대로였다. 드론 배송이 시간, 비용을 절약해 주는 건 맞지만 고객을 엄청나게 늘려주지는 못했다.
+10%.
+7%.
+3%.
그건 고객 증가 추이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강철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결국, 자금력으로 밀고 들어오겠다 이 말이군요.”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마 전.
자신들도 LD 마트를 상대로 비슷한 작전을 펼쳤다.
아주 간단하면서 효과적인 방법이었고, 결국 LD 그룹이 오프라인 마트를 포기하게 했다.
그 똑같은 방법에 자신이 당하게 생긴 것이다.
“우리 쪽 보유 현금이 어떻게 됩니까?”
“현재 대산이 가지고 있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조가량 됩니다.”
“나일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군요.”
“나일이 가지고 있는 현금만 60조 원으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거기에 비하면…….”
거의 20배가 차이 나는 금액이었기에, 비서는 차마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강철이 살짝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아이온 그룹이 가지고 있는 현금은요?”
“아이온은 대부분 IT 베이스라 현금이 훨씬 많습니다. 대략 6조가량 될 겁니다.”
합쳐서 10조.
물론 각종 유형자산을 처분하고 최대한 현금을 끌어모은다면 그 이상도 마련할 수 있었다.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현금도 많이 사용하긴 했지만, 아직 조 단위로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60조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한없이 부족하군요. 나일에서 계속 쿠폰을 발생하고, 배송비를 깎아주는 정책을 펼치면서 가격 경쟁을 유도하면 우리는 밀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마 우리 쪽 고객은 계속 줄어들게 될 겁니다. DSP는 저희만 하는 서비스라 상관이 없지만 DRP 같은 경우도 NCS에서 반값 할인을 제공한다면 당장은 아니지만 넘어가는 걸 검토하는 고객들이 생겨날 겁니다.”
“흠…….”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국내 사업은 그 영향권 밖에 있다는 겁니다.”
다행히 국내 사업이 위협받진 않았다. 국내 마트 시장은 과점시장이었으니까.
아이온 게임즈도 마찬가지였다. 나일은 게임회사가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해외에 진출해 있는 빅트리였다.
윌마트 온라인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덩치가 수 배로 부풀려져 있기에 일정 매출이 나오지 않으면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비서가 심각한 표정의 강철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단은 빅트리에서 세일 전략을 펼칠까요?”
“그건 어차피 상대가 안 됩니다. 우리가 2%를 깎으면 상대는 3%, 4%를 깎으면서 역마진이 나도 버티겠다는 생각인 것 같으니까요.”
자신이 LD 마트를 상대할 때 그랬다.
역마진이 나도 LD 마트가 항복할 때까지 밀어붙였다.
아마 나일도 비슷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우리만 제공할 수 있는 제품이 필요합니다. 빅트리에서만 팔 수 있는 차별화된 제품이. 가격 경쟁만으로는 이길 수 없어요.”
잠시 고심하던 강철의 머릿속에 한 가지 제품이 떠올랐다.
강철이 급히 입을 열었다.
“리얼리티 디바이스 제품 개발이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아마…… 이 주 후면 차기 버전이 나올 겁니다. 최근 프로모션을 기획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거 빅트리에서 독점 판매하면 어떨까요?”
그 말에 비서가 반색했다.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워리어 VR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하니 관련 하드웨어도 아마 엄청나게 팔릴 겁니다. 그리고 그걸 빅트리에서만 독점 판매한다면 고객 모집 효과도 분명할 테고요.”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워리어 월드 챔피언쉽이 얼마 안 남았던 것 같은데 그건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금 전 세계에서 예선전이 진행 중입니다.”
“그럼 본선 경기에서 RD-2000을 선보이면 되겠군요. 홍보도 될 테고.”
“알겠습니다. 관련 준비해 놓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가격으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서비스, 제품의 차별화로 버텨야 합니다.”
“네. 그러면…… 이참에 디스트릭에서 판매하는 드론도 빅트리로 창구를 단일화할까요?”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군요. 당분간 빅 트리로 단일화하세요. 최근 물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알겠습니다.”
그나마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강철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 * *
1억 5천만.
아이온 게임즈에서 가장 최근 밝힌 사용자 숫자이다.
그 숫자 이후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최소한 이용 유저가 2억은 넘을 것이라고.
그 이유는 명확했다.
-WWC(Warrior World Championship)
그 게임의 공식 시청자 수가 1억 5천 만을 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리얼리티 디방이스의 최신 VR기기 RD-2000이 공개되었다.
-더 강력해진 사운드.
-더 강력해진 그래픽 처리.
-더 강력해진 조작감.
-워리어 VR을 완벽하게 즐길 단 하나의 기기가 드디어 출시합니다.
이내 RD-2000을 통행 위리어 VR을 즐기는 영상이 플레이되었다.
RD-2000에 맞춰 위리어의 그래픽도 한층 업그레이드시켰기에 영상은 화려하다 못해 탄성을 자아냈다.
그건 수많은 게이머의 가슴속에 불을 지피기 충분했다.
-빅트리 독점 판매.
그 문구를 확인한 전 세계 게이머들이 빅트리에 접속을 시도했다.
“10번 서버까지 가득 찼습니다. DVS 10대 추가 하겠습니다.”
DVS.
대산 버추얼 서버의 준말로 나일의 NC2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거기에 디비 서버도 한 4대 정도 추가해 이대로는 뻗을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RD-2000 출시에 맞춰 빅트리 운영팀이 바쁘게 움직였다.
최근 나일의 거센 가격 경쟁 공격으로 사용자가 미세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던 차 이루어진 RD-2000의 독점 판매는 빅트리 팀원들에게 올해 인센티브 걱정을 덜게 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독점 판매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디스트릭 드론 차기 모델 독점 판매.
-아이체크 연동 헬스체크 밴드 독점 판매.
등등.
강철은 자신이 투자한 회사들과 연계해 관련 제품을 빅트리에서 독점 판매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가격 경쟁과 차별화된 전략을 펼친 것이다.
그 효과는 단숨에 나타났다.
빅트리의 사용자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매출도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반대로 나일의 사용자와 매출이 줄어드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 * *
나일 본사.
데비이드 딩킨스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현재까지 3조가량의 현금을 사용했습니다. 아직 사내 유보 중인 현금이 57조 정도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당장 3조를 들인 것을 생각해 봤을 때 큰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데이비드가 으득 이를 갈았다.
“이사회에서 말이 나오고 있다고요?”
“네. 이렇게 허무하게 현금을 날리면서 점유율 상승은 미미하다 보니 CEO님의 결정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는 상황입니다.”
데이비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긁적거렸다.
“지금 빅트리를 죽이지 않으면 앞으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습니까?”
“네. 충분히 설명했지만…… 말이 통하질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CEO님께서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이사회.
한국과 달리 미국의 이사회에는 기업 오너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거수기 집단이 아니었다.
이사진 한 명, 한 명이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하고, 회사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른 시일 내에 이사진 회의 한번 소집하도록 하세요.”
“네.”
이내 비서가 고개를 숙이며 사무실을 나가고, 데이비드가 털썩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나일 관리자 화면.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웹 페이지에는 현 나일의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총 유료 가입자 수 : 1억 5천만 명.
-총 매출 : 2,805억 달러
-전 달 대비 유로 가입자 증감 : -0.3%.
-전 달 대비 매출 증감 : -0.1%.
돈을 쏟아부으며 플러스로 확 돌아섰던 매출이 RD-2000 출시 이후 미미하지만 마이너스로 바뀐 것이다.
그걸 확인한 데이비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돈으로도 통하지 않는다.”
아마 돈을 투입하지 않으면 점유율을 야금야금 갉아먹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수년 내에 나일이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보유하고 있는 현금만 400억 달러가 넘으니까.
하지만 데이비드가 걱정하는 건 10년 후의 미래였다.
“저쪽은 계속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는데 우리만 정체되어 있다면 미래는 불투명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그게 데이비드의 가장 큰 걱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시장이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한때 시가총액 1.6조 달러를 넘어섰던 기업 가치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이사진도 그걸 보고 자신과의 회의를 요청한 것이리라.
이사진의 가장 큰 책임 중 하나가 주가 부양이기도 하니까.
“이사진까지 개입했으니 더는 의미 없이 현금을 사용할 수는 없다. 그러면 남은 방법은…….”
기술 경쟁.
그것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현재 가장 자신이 없는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생각을 마친 데이비드가 인터폰을 눌렀다.
삑.
소리가 나며 최고 인사책임자로 바로 연결되었다.
“준비한 채용 공고 바로 진행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기술을 만드는 건 사람이다. 나일에서도 대대적인 인력 채용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