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나일의 반격(3)
나일에서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항로 설정 후 이동.
GPS를 따라 이동하는 건 지금도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돌발 상황 대처였다.
“어떻게 됐습니까?”
데이비드의 말에 개발 팀장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하드웨어 쪽에서는 트리스 원을 리버싱 해서 그쪽에 붙어 있는 센싱 장비들은 전부 부착했습니다. 최대한 무게와 전력 소비를 줄이는 쪽으로요. 그런데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받쳐주질 않고 있어요.”
데이비드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남 탓.
여전히 그는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데이비드가 시선을 돌려 비서를 보며 물었다.
“새로 뽑은 소프트웨어 개발자 상태는요? 이제 적응 기간도 충분한 것 같은데.”
“네. 그래서 최근 결과물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트리스와의 비교에는 무리가 있다.”
“아쉽지만 그런 상태입니다. 개발자들 말로는 앞으로 더 시간을 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하긴 하는데…….”
데이비드가 고개를 흔들었다. 더는 그 말을 믿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따라잡겠다. 따라잡겠다. 그 말을 한 게 벌써 몇 개월입니다.”
“하지만 기술이라는 게 단 몇 개월 만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NCS도 무에서부터 하나하나 창조하다 보니 나일의 두둑한 수익원이 된 면이 있고요.”
이강철이 나타나기 전이였다면 데이비드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출현으로 데이비드의 생각도 조금 바뀌었다.
“그걸 이강철은 몇 개월 만에 해내고 있는데…… 우리는 못 한다. 그러면 앞으로 10년 뒤 나일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기술.
나일은 명확하게 기술 기업이다. 그 기술이 떨어진다면 시대에 뒤처지고, 시대에 뒤처진다는 건 곧 자멸을 의미했다.
세계 최대 웹사이트 야후.
세계 최대 SNS 마이스페이스.
세계 최고 브라우저 넷스케이프.
세계 최대 백과사전 누디피아.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서비스가 기술이 낙후돼서, 시대에 뒤떨어지는 판단을 해서 망해 버렸다.
데이비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명성을 쌓아 올리는 건 십 년이 걸리지만 그게 무너지는 데는 단 1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지금 나일의 이용자가 전 세계에 수억 명이 넘어가지만, 그들이 다른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는 건 한순간이라는 말입니다. 왜냐? 가입하고 이용하면 끝나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한 겁니다. 바로 우리가 경쟁사의 고객들을 빼앗아 온 것처럼요.”
그의 말에 회의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기 때문이었다.
온라인.
그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쉽게 떠날 수 있는 단점도 존재하는 양날의 검 같은 존재였다.
데이비드가 한층 심각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한두 달 계속 밀리다 1, 2년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면 앞으로 나일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매출, 고객, 사용자 평판 모든 점에서 윌마트에 밀리고 있어요. 반격의 실마리가 필요합니다. 그게 없다면 몰락은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데이비드의 위기의식이 절절히 드러나는 말에 회의실의 누구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로 그날의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 * *
서울에서의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디스트릭의 택배 드론 보급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100대.
200대.
250대.
300대까지.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즉시 서울로 투입되었다. 덕분에 배송 시간은 과거보다 40% 빨리 지고, 관련 비용은 30% 정도 절감되었다.
그건 곧 대산 그룹의 영업이익 증가로 이어졌다.
OPM(영업이익률) 1~3%.
대부분 유통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었다. 100원짜리 물건을 팔면 1원에서 3원이 남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DRP, DSP가 도입되고, 드론 배송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자 수익성이 빠르게 개선되기 시작했다.
유통업계 최초로 5%를 넘어서더니 7%, 10%까지.
웬만한 제조업과 비슷한 수익률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건 곧 기업가치의 상승을 의미했다.
전일대비 +5%.
전일대비 +7%.
전일대비 +1%.
이제는 일반 기업이 아닌 기술 기업이자 플랫폼 기업이라는 시장의 평가가 생겨나면서 ㈜대산의 주가는 매일매일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렇게 거침없이 상승 질주했고, 변형 인플루엔자 당시 2조였던 시가 총액이 어느새 30조까지 올라갔다.
무려 15배.
강철이 기업 운영을 맡은 지 불과 수년 만에 주가가 15배나 올라간 것이다.
여기에는 윌마트의 온라인 사업 부문을 인수한 영향도 있었다. 덕분에 대산은 세계적인 그룹으로 퀀텀 점프를 하게 되었으니까.
처음에는 우려도 컸다. 윌마트의 온라인 사업 부문을 넘겨받기 위해 대규모의 채권을 발행하고, 유상증자까지 진행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단숨에 부채비율이 확 뛰었다.
부채비율 300%.
자칫 잘못하면 부도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소액주주들이나 시장은 우려 섞인 눈으로 대산을 보았다.
하지만 강철은 제3자 배정의 유상증자를 진행해 자신이 대부분 지분을 가져와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렇게 계속 회사를 성장시켰다. 이제 대산 그룹의 시가 총액보다 비싼 회사는 한국에 10개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산만 성장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온 게임즈는 나스닥에서 현재 320억 달러의 평가를 받고 있었다. 워리어 VR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기업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다.
대산 32조.
아이온 게임즈 35조.
아이체크 6조.
현재 상장된 회사들의 가치만 따져도 70조를 넘어간다. 그런데 비상장 기업이 줄줄이 강철의 개인기업으로 존재했다.
디스트릭.
리민스.
슈퍼앤트.
아이온미디어.
딜리버리브라더스.
거기에 강철이 투자한 수백 개의 스타트업들까지.
그것들의 가치가 전부 합쳐진다면 대략 100조는 충분히 될 것이라는 게 세간의 평가였다.
1위 오성 그룹 424조.
2위 자동차 중심의 대성 그룹 234조.
3위 VK 그룹 200조.
4위 MG 그룹 137조.
…….
MG 뒤를 이어 실질적으로 국내 5위의 재벌 기업이 된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다른 회사들이 한해 한 자릿수 성장하는 것도 힘들어하지만 강철의 그룹은 매년 수십 퍼센트씩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뉴욕.
강철은 서울에서 했던 드론 시연회를 뉴욕에서 다시 진행했다.
항로.
소음.
안전성.
…….
새롭게 설정된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서울에서 한 번 진행했던 평가였다.
뉴욕에서라고 다를 리 없었다.
통과.
통과.
통과.
뉴욕시에서 제시했던 기준들을 충족시키며 택배 드론은 모든 기준 요건을 충족시켰다.
이건 서울에서와는 또 다른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뉴욕.
그곳은 미국의 최대 도시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도시인 것이다.
그 도시에서 성공리에 시연을 끝내자 디스트릭이 만들어낸 트리스 원의 위상이 또 한 단계 레벨업 되었다.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디스트릭의 기업가치는 그야말로 떡상했다. 주리룬의 표정이 싱글벙글한 이유였다.
“시장에서 평가하는 디스트릭의 가치가 35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이 정도면 DJI를 충분히 넘어서는 것이고요. 이렇게 빨리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전부 대표님 덕분입니다.”
그가 가진 지분이 30%.
즉 100억 달러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한화로 11조가 넘는 돈이었다. 불과 1년 만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기에 기쁠 수밖에 없었다.
강철이 그런 주리룬을 보며 말했다.
“상장 후 들어오는 자금으로 추가 공장 건설 및 드론을 넘어 로봇 개발에 나서보려 하는데 주리룬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주리룬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제가 먼저 제안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의 1차 목표는 DJI처럼 되는 것이었고, 그게 된다면 그 이후에는 로봇 개발에 뛰어들고 싶었거든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뉴욕 랩스를 인수해 시너지 효과를 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뉴욕 랩스.
최초 서치에서 만들어져, 소프트뱅크에 매각되었지만 다시 시장에 팔린 로봇 제작 회사였다.
로봇 한 대에 8,000만 원.
엄청난 액수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사용할 곳이 없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수천억의 적자만 지속하고 있는 회사이기도 했다.
연구 개발에 들어가는 고정비는 계속 늘어나지만 팔 수 있는 물건이 없기 때문이었다. 중간에 애완용 로봇을 판매하기도 했지만, 시장의 반향은 끌어내지는 못했다.
“흠…… 뉴욕 랩스의 기술력이 뛰어나기는 한데 저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요?”
“일단은 관련 특허라도 확보해 둘 생각입니다. 그 특허가 없다면 추후 로봇 산업에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크니까요. 또한, 해당 기술을 우리 트리스에 적용한다면 좀 더 싸지만, 기능성은 높은 택배 드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주리룬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군요.”
“네. 그럼 한번 검토해 주세요. 관련 내용은 심 비서가 전해줄 겁니다.”
“네.”
로봇.
그런 하드웨어적인 것까지 강철은 알지 못하기에 관련 일은 주리룬에게 일임했다.
그렇게 주리룬과의 대화를 마친 강철은 또 다른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데이비드 딩킨스.
나일의 CEO가 다시 강철을 찾아온 것이다.
“뉴욕 시연회는 잘 봤습니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찾아온 이유를 대충 짐작하셨을 텐데…… 어떠십니까?”
“고민을 좀 해보고 있긴 한데…… 아무래도.”
M&A.
그걸 하고 싶을 것이다. 택배 드론은 유통업계의 게임체인저라는 말을 듣고 있으니까.
데이비드가 한발 앞서 입을 열었다.
“500억 달러. 어떠십니까?”
시중에서 받는 평가보다 150억 달러 비싼 값이었다.
강철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뉴욕에서까지 비행허가를 완벽하게 받았습니다. 앞으로 베이징, 도쿄, 파리, 런던 등에 줄줄이 허가 대기가 기다리고 있고요. 500억 달러도 작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이건 팔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굳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바보가 될 순 없으니까요.”
데이비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라 해도 500억 달러에 팔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드론 시장이 더 성장하게 된다면 더 큰 기업가치를 받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 중간에 기술이 부족해 지금보다 밑으로 내려갈 수도 있지만…….
강철이 그런 데이비드를 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다만 트리스 원을 판매할 생각은 있습니다. 구매 요청이 많아 순번이 조금 밀릴 수는 있지만, 대량으로 구매하신다면 조금 앞당겨 드릴 수는 있고요.”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데이비드의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갈등했지만…….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걸 받아들일 수는 없다.’
만약 받아들인다면 나일은 더는 섹시한 기업이 아니다. 오히려 대산의 ‘빅트리’ 쇼핑몰을 더 홍보해 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데이비드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그랬기에 데이비드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거절하겠습니다.”
그걸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