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나일의 반격(2)
지구 반대편.
최종 테스트를 마치고,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고 있던 강철이 두 눈을 부릅떴다.
-엘리 : 한국으로 오시면 드릴 선물이 있어요. 오시면 꼭 연락해 주세요∼♡
하트 이모티콘.
그걸 본 강철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 하트?”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네. 감사해요.
-수고하세요.
-점심 먹었어요?
-네 저도 잘 먹었어요.
이런 무미건조한 내용의 향연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트라니…….
당황한 강철은 아무런 답장도 못 하고, 한동안 멍하니 메신저를 바라보았다.
그때.
드르륵 핸드폰이 진동하며 톡 하나가 날아들었다.
-최윤아 : 일이 잘 끝났다니 다행이네요. 이제는 연락되는 거예요?
최윤아였다. 강철은 갑자기 입안이 바짝 타는 듯한 느낌에 옆에 있던 물을 벌컥거리며 마셨다.
“휴우…… 괜히 찔리네.”
-이강철 : 네. 일은 잘 끝났어요.
답장을 보내자마자 바로 연락이 도착했다. 미국은 낮이지만 한국은 새벽 시간일 텐데도 최윤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연락을 보내왔다.
-최윤아 : 다행이네요. 뉴스는 봤어요. 판매금지도 해제되고, 디스트릭에서 새로운 제품도 출시했더군요. 다 이 일 때문이겠죠.
-이강철 : 맞아요. 빠르시네요. 일이 잘 풀렸어요.
-최윤아 : 그 일 무척이나 궁금하네요.
-이강철 :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윤아 : 뭐, 할 수 없죠. 운명이구나 하고 받아들여야지.
무미건조한 대화가 오갔다.
그렇게 한창.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정리를 마친 딘 대령이 강철에게 다가왔다.
“테스트 마무리됐습니다.”
“네. 그럼 이제 전 돌아가 봐도 되는 건가요?”
“하하, 네. 이제 공식적인 일정은 정말 끝입니다. 호텔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강철이 긴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호텔로 돌아가 푹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잠시 후.
호텔로 돌아와 한숨 자고 일어나니 5시간이 지나 있었다.
씻고 나와 간단한 식사를 하자마자 비서가 강철에게 다가왔다. 보고해야 할 일 이 많기 때문이었다.
“지시하신 대로 디스트릭에서 드론 라인업을 발표하고, 택배 드론을 제외한 드론을 윌마트와 빅트리를 통해 판매를 진행 중인데 수량이 부족해 판매를 못 할 상황입니다. 그래서 제1공장이 아직 완공 안 됐음에도 제2공장을 건설하자는 의견이 지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1공장 완공 예정일은요?”
“앞으로 2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그러면…… 일단은 현재 공장을 증축하는 식으로 진행하도록 합시다. 지금의 열풍이 계속 이어질지도 미정이고, 당장 미국에도 공장을 지어야 할 판에 한국에 공장을 더 짓는 건 고정비가 너무 늘어나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 건은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KJ 택배에서 택배 드론과 시스템 전체를 구매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판매가 가능하다면요.”
이건 이미 고민해 본 사안이었다.
“일단은 독점을 공고히 하고 이후 판매합시다. 트리스 1, 2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나오면 과거 버전을 다른 택배 회사에 넘기는 식으로.”
“업그레이드 버전을 말씀하셔서 드리는 내용인데요. 아이 체크의 이미지 인식 API 연동 과정이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합니다. 이제 곧 등록 이미지를 통해 주문자의 얼굴인식이 가능할 거라고 합니다.”
얼굴인식.
강철이 트리스에 탑재한 기능이었다. 혹시나 배달을 가는 와중에 주문자를 만나면 지나치지 말고, 전해 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팀원들에게 고생 많았다고 전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 밖에도 보고 사항이 첩첩산중 쌓여 있었다. 브리핑은 두 시간이 지나서야 마무리되었다.
털썩.
침대에 누운 강철이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최윤아 : 뭐, 할 수 없죠. 운명이구나 하고 받아들여야지.
이게 마지막 대화였다. 그리고 아직 엘리에게는 답장조차 보내지 못했다.
하트.
거기에 어떻게 답장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트를 보냈는데 담담히 보내는 건 좀 정 없어 보일 것 같고, 마주 하트를 보내자니…….”
아직 감정이 없는데 오해를 할 것 같았다.
강철의 정신은 결혼에 이혼까지 겪은 유부남이다. 그런 유부남에게 오랜만의 이런 설렘은 신선한 자극이 되어 주었다.
“이모티콘 정도면 되겠지.”
결정을 내린 강철은 메신저 내에서 제공하는 기본 이모티콘을 사용해 답장을 보냈다. 연락이 온 지 수 일이 지난 후에야 겨우 보낸 답장이었다.
하지만.
최윤아 때와 비슷하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답장이 도착했다.
-엘리 : 일이 잘 끝나셨나 봐요.
다시 밋밋한 내용이었다. 뭔지 모를 묘한 아쉬움을 느끼며 강철이 답장을 쳐나갔다.
-하하, 네. 다행히 잘 마무리됐습니다.
-다행이에요. 연락이 안 돼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기신 건 아닐까 걱정했거든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지금 한국이세요?
-아니요. 아직 미국이에요.
-아…… 한국 오시면 꼭 연락해 주세요. 노래 좋아하신다고 해서 준비한 게 있거든요.
-(이모티콘) 네. 그럴게요.
그걸로 엘리와의 연락도 마무리되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강철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휴우…….”
아직 심장의 두근거림이 가시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윤아와는 연락하거나 만나도 이렇게까지는 두근거리지 않았다. 편안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엘리는 달랐다.
삼촌의 팬심인지, 너무 예쁜 외모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슴이 쉼 없이 뜀박질을 해댔다.
“편안한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인가.”
강철의 마음이 아주 조금이지만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 * *
위이이잉.
드론에 달린 프로펠러가 서서히 멈추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내.
툭.
하고 빌딩 앞에 멈춰선 드론이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 택배 주소지를 찾아갔다.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데이비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벌써 몇 번이나 트리스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사무실로 직접 택배를 배달시켜 보았다. 그때마다 저런 기술을 가지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기술이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움직이던 드론이 별안간 ‘뚝’ 걸음을 멈춘 것이다. 그러곤 바퀴를 움직여 곧장 자신을 향해 달려왔다.
-택배 도착했습니다.
이내 익숙한 기계음이 들렸다. 놀란 데이비드가 되물었다.
“내, 내 거?”
-네. 데이비드 딩킨스 고객님이 주문하신 사과입니다.
철컥.
소리와 함께 포장용지를 쥐고 있던 기계 팔이 풀렸다. 데이비드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포장재를 집어 들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그래.”
-배달 완료.
그 말이 끝나자마자 택배 드론이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멍하니 사과를 집어 든 데이비드가 급히 비서를 불렀다.
긴급회의는 바로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만으로 새로운 기능이 탑재되었다는 말입니까?”
“네. 트리스 원 같은 경우는 카메라를 비롯해 충격감지 센서, 온, 습도 센서 등등 여러 센서들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그걸 이용해 이번 기능을 구현한 것 같습니다.”
“길 가다가 주문자를 만나면 물건을 전해주는?”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맞습니다.”
“우리도 관련 기술은 이미 개발되어 있잖아요. NCS Recognition의 성능이 상당이 뛰어난 거로 아는데 우리는 왜 저런 게 안 되는 겁니까?”
그 말에 새로 온 드론 개발 팀장이 입을 열었다.
“방금 경험하셨겠지만 트리스는 그 찰나의 순간 얼굴을 인식해서 주문자를 판단합니다. NCS Recognition의 성능도 물론 뛰어나지만 저렇게 빠른 속도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현재 적용되어 있지 않고요.”
그 말에 데이비드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한마디로 우리 쪽 이미지 인식 시스템의 성능이 떨어진다는 말이군요.”
“아쉽지만 그렇습니다. 사실 하드웨어는 이미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트리스에 들어가는 각종 센서들을 나일 드론에도 장착해 두었습니다. 소프트웨어만 뒷받침해 두면 되는데 이거 영 속도가 안 납니다.”
한마디로 자기는 잘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쪽에서 뒷받침을 해주지 않고 있다. 이 말이었다.
데이비드는 이 개발 팀장이 오기 전 조사했던 평판을 떠올렸다.
-하드웨어 개발 능력이 뛰어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뿐이에요.
-개발이라도 잘하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금세 잘려나갔을 겁니다.
그 평판대로 확실히 그는 뛰어난 기술자 일지 망정 뛰어난 리더는 아니었다.
데이비드가 비서를 보며 물었다.
“지난번 채용한 서치 쪽 인공지능 개발자. 결과물 아직 안 나왔습니까?”
“네. 아직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합니다. 당장 서치 쪽과 사용하는 언어도 달라서 우리 쪽 시스템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고요.”
“하아…… 그래서 언제까지 그 시간이 필요하답니까?”
“한, 두 달 정도면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데이비드가 까칠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한, 두 달 후에 트리스가 또 업그레이드되어 있으면요?”
일순 비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데이비드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비서에게 말하는 건 그저 스트레스 해소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사실 비서가 잘못한 건 없다. 일하는 건 담당 실무자들이었으니까.
데이비드가 잔뜩 짜증 섞인 태도로 말했다.
“알았으니까. 나가들 보세요.”
* * *
한국 인천국제공항.
하루에도 수많은 비행기가 오가는 그곳에 강철이 탄 비행기도 도착했다. 수행비서와 단둘이 조용히 입국한 강철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바로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갈까요?”
강철이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청담 재즈 스테이션으로 가주세요. 심 비서는 거기에서 바로 퇴근하시고.”
“네.”
청담 재즈스테이션.
엘리에게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바로 이곳으로 와줄 수 없냐는 연락이 왔다.
조금 피곤했지만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꼭 오늘 선물을 주고 싶다는 말에 승낙한 것이다.
-한국 도착했습니다.
중간에 최윤아에게 연락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최윤아 : 수고했어요. 일단은 먼저 푹 쉬세요.
알았다는 답장을 보내고, 강철은 좌석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어버렸다.
“도착했습니다.”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어렴풋이 들리는 말에 강철이 부스스 눈을 떴다.
“아, 네.”
“여깁니다.”
비서의 말에 강철이 차에서 나와 가게를 올려다보았다.
Jazz Station.
이라는 글자의 조명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뭔가 분위기 있어 보인달까. 차에서 나온 강철이 지하에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하고 컴컴한 계단.
그 끝에 있는 문고리를 잡고 돌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잔잔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간주 소리가 아주 익숙했다. 그리고 허스키한 보이스가 간주 소리 위에 살포시 얻어졌다.
또 하루 멀어져…….
자신이 힘들 때마다 들었던 ‘김광석의 서른즈음’이었다.
그걸 엘리가 라이브로 부르고 있었다.
* * *
최윤아가 입맛을 다시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오늘 보자고 할 걸 괜히 쿨한 척했나…….”
그걸 듣고 있던 그녀의 가장 친한 언니라 할 수 있는 진선미가 언더 락 잔을 흔들었다. 잔 안에 들어 있던 차가운 얼음이 부딪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왜? 혹시 다른 여자 만나고 있는 건 아닌지 찝찝해?”
“언니도 참.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닌데, 뭘 그런 거로 찝찝해.”
“너도 참 어렵게 산다. 좋으면 그냥 좋다고 막 달려들어. 세상에 이쁜 여자 싫다는 남자 없다. 특히나 너나 나는 이쁘기만 한 게 아니잖아.”
최윤아가 풉 웃음을 터뜨렸다.
“네?”
“왜 객관적으로 보면 너나 나나 괜찮잖아. 내가 조금만 더 어렸으면 더 달려들겠는데 솔직히 10살 차이는 이강철도 부담스럽겠지. 그래서 너한테 양보한 거야. 안 그랬으면 끝에 있는 가지 물고 늘어졌지.”
그 말에 최윤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선미가 남자 보는 눈이 얼마나 깐깐한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예요?”
진선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남자 볼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했었냐.”
“능력?”
“호호, 물론 그건 기본이고, 그다음.”
“바람.”
“그래. 바람. 사실 그걸 안 피운다는 보장만 있어도, 누구와도 결혼할 생각이었어. 나도 결혼이라는 걸 그렇게 싫어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진선미가 말을 흐렸다. 최윤아가 언더락 잔 안에 가득한 황금빛 물결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지금까지 사건 사고 없는 놈이 없더라. 술집에서 난장 부른 놈. 여자 낙태시킨 놈. second, third, forth는 기본이고 열 손가락으로도 관리가 안 되는 놈 등등.”
“잘 알죠…….”
최윤아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재벌가 자제 중 세컨드 없는 사람이 없었다.
돈.
권력.
명예.
태어날 때부터 그 모든 걸 가졌기 때문인지 장성한 후에는 향락에 집중했다.
그나마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제대로 된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미 결혼을 하거나, 나이가 너무 많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진지하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었다.
진선미도 위스키를 한 모금 머금었다.
“그나마 이강철은 괜찮은 것 같더라. 능력도 되고, 바람피울 것 같지도 않고. 나도 나름대로 조사해 봤었는데…….”
“깨끗하죠?”
“그래. 술도 잘 안 먹더라. 약도…… 안 하고.”
그랬기에 최윤아는 이강철을 꼭 잡고 싶었다.
사랑?
재벌에게 그런 단어는 사치다.
그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끼리 조건 맞춰서 사는 게 결혼이었다. 그리고 ‘바람’은 최윤아에겐 양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술 한 잔이 들어가자 그 생각이 더 진하게 들었다.
“잘 쉬고 있으려나…….”
하지만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대답이 없었다.
* * *
비슷한 시각.
강철은 재즈 스테이션에 홀로 앉아 있었다. 엘리가 준비한 선물은 위문 공연. 아예 가게를 통째로 빌려 자신만을 위해 공연을 해준 것이다.
김광석 서른 즈음.
유재석 말하는 대로.
이승열 날아.
한희정 내일.
자신이 과거 힘들 때 들었던 노래였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살포시 마이크를 내려놓은 엘리가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어두운 조명.
그 아래에서 걸음을 옮기는 엘리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어두운 조명에 검은색 원피스가 조화를 이루며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이내 강철의 앞에 도착한 엘리가 살짝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노래 어때요?”
“조, 좋았어요. 노래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이거 제가 다 좋아하는 노래들인데 어떻게 아시고…….”
“희진이가 알려줬어요.”
“아…….”
“미국에서 너무 고생하신 것 같아서 준비해 봤어요. 시계나 옷 같은 건 이미 많으실 테니까.”
매력적인 자태에 강철의 말이 떨려왔다.
“하, 하하, 네.”
두근.
두근.
아까부터 심장이 자기 마음대로 나대고 있었다. 엘리를 보는 순간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예쁘다…….’
물론 예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감미로운 노래.
그 노래가 강철의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어 버렸다.
“다행이네요. 준비한 노래가 마음에 들어서.”
“아, 저도 선물 하나 준비했습니다. 그냥 받을 수만은 없을 것 같아서요.”
강철이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보석함을 꺼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 목걸이. 한눈에 봐도 한두 푼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목걸이잖아요.”
“네. 그냥 무난한 것 같아서요. 지난번에도 시계만 받고 아무것도 준비를 못 해서.”
엘리의 입가에는 싱그러운 미소가 피어졌다.
“걸어주실래요?”
“아, 네.”
강철이 목걸이를 걸기 위해 엘리의 목이 팔을 걸쳤다. 어쩌다 보니 포옹하는 듯한 자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향긋한 향수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러자 타는 듯한 목마름이 느껴지며 호흡이 가팔라졌다.
‘진정하자. 진정해.’
이대로 조금만 더 있었다가는 육신이 통제를 벗어날 것 같은 두려움에 강철은 황급히 목걸이를 채우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다, 다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긴장한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수조 원짜리 M&A를 체결할 때도 이렇게까지 긴장하진 않았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잘하고 다닐게요.”
“하하, 네.”
그런 둘을 두 쌍의 눈이 음흉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잘될 거 같지?”
“그러네. 언니 아이디어가 정말 통했어.”
“말했잖아. 내가 큐피트 나은이라고.”
“후후, 하지만 내가 오빠 최애곡을 알아내지 못했다면 아무 소용 없었을걸.”
“그래 그건 인정한다.”
“어쨌든 엘리 엄청 좋아 보인다. 완전 사랑에 빠진 소녀 모습이야.”
나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봐도 그래. 연습생 때부터 봐왔는데 저렇게 좋아하는 건 아마 데뷔 확정됐을 때 빼곤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 정도야?”
“그렇다니까. 저기 손 가리면서 눈웃음치는 거 보이지? 저거 찐 일 때 나오는 표정이거든.”
이희진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묘한 눈빛으로 멀리 보이는 한 쌍의 남녀를 바라보았다.
“우리 오빠 못생겨서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
“나도 네 오빠 정도면 엘리 줘도 안 아까울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인물도 저 정도면 괜찮고, 능력은 더 괜찮고. 성격도 좋잖아.”
나은은 그 둘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언제 저렇게 좋아하는 사람 만나보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강철은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잠시 휴식 시간에 아이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 비디오의 뛰어난 알고리즘은 강철을 한 영상으로 인도했다.
-제목 : 트리스 원 VS 나일 드론.
각각의 택배 드론이 어떤 식으로 운용되는지 비교한 영상이었다. 전 세계 구독자가 200만 명이 넘는 크리에이터가 올린 영상이라 그런지 조회 수도 천만 회를 넘어 있었다.
-나일 드론. Fast. Fast. Fast.
-장점은 이것밖에 없다.
-특히나 건물 안으로 배달 오지 못하는 건 치명적이다.
그 말에 강철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우리 드론에 비교할 바가 아니지.”
이내 영상에서 트리스 원에 관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그에 비교해 트리스 원은 5㎏까지 택배 배송이 가능하며 건물 안에서도 배송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일 택배 드론보다 느리다는 단점이 있지.
-그걸 보완해 트리스 투를 출시했어. 무게는 3㎏. 비행속도도 나일보다 10%가 더 빠르고, 건물 안에서도 자율 기동이 가능하고.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그럼!”
절로 기분 좋아지는 이야기였다. 이건 댓글을 안 달 수가 없었다.
-이강철 : 좋은 비교 영상 감사합니다.
그리고.
인기 영상임을 인증이라도 하듯 댓글을 달자마자 대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건 찐이다. 위로 올리자.
-영.
-차.
-영.
-차.
-우와! 이강철 회장이 직접 와서 댓글 달았네. 이제부터 여기를 성지로 임명합니다.
-이러면 나일 데이비드 딩킨스 회장도 나와야 하는 ‘각’ 아님?
-회장님 흐뭇해하시네.
-얼리답터 님 떡상 각이다. 이강철 회장이 직접 픽했어.
그리고.
이 영상을 지구 반대편에서 나일의 CEO 데이비드 딩킨스도 보고 있었다.
“…….”
비교 영상에 나오는 내용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개선을 위해 오늘도 개발자들이 밤낮없이 작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통 일에 진전이 없었다.
된다. 된다. 말만 하고 결과물은 가져오질 않았다.
“그냥 회사를 인수하는 게 빠르려나…….”
결국, 마지막 생각에 다다랐다.
당시 이강철이 팔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돈 앞에서는 장사 없다고 생각했다.
300억 달러.
아니면 그 이상인 400억 달러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 세계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DJI의 기업가치가 250억 달러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것보다 50억 달러나 많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한 달, 앞으로 한 달 안으로 성과가 안 나오면…….”
디스트릭 매각 제안을 해볼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에 불을 댕긴 건 최근 올라온 보고서 때문이었다.
-고객 증감 : -3%.
-매출액 : -5%.
윌마트는 트리스 원을 도입한 이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었다.
배송비는 내려가고. 배송량은 늘어나고, 배송 시간은 줄어들었다. 덕분에 소비자들이 같은 가격이면 윌마트 온라인 몰에서 주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강철이 윌마트의 온라인 사업 부문을 넘겨받으면서 대대적인 개선 작업을 통해 UI, UX, 성능 등. 모든 부분을 개선했다. 덕분에 온라인 이용자도 폭증하는 상황이었다.
휴우…….
세계 최고 온라인 쇼핑몰 나일의 CEO 데이비드 딩킨스의 한숨이 깊어졌다.
“이대로는 안 돼.”
그의 고심이 깊어졌다.
그로부터 한 달 후.
하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하여 갔다.
-고객 증감 : -7%.
-매출액 : -10%.
고객은 더 줄었고, 그와 함께 매출도 줄어들었다.
드론 택배.
그 파급 효과가 점점 폭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나일에서는 트리스를 따라잡을 만한 성능을 가진 드론을 출시하지 못했다.
그때.
데이비드에게 낭보가 하나 날아들었다.
-제목 : 규제에 막힌 혁신.
-내용 : 드론 택배로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디스트릭이 항공법에 따라 서울 시내 비행이 가로막혀 도입되지 않고 있다. 강북은 국가 주요시설이 많아서, 강남은 사람이 많아 비행이 금지된 것이다. 세계 최고의 드론이 규제에 가로막혀 정작 대한민국 중심지인 서울에서는 운용될 수 없는 환경에 처한 것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이강철 회장이 노력하고 있지만, 상황은 쉽게 변하지 않고 있다.
(중략).
그 뉴스를 보자마자 데이비드의 머릿속으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내가 못 하면, 너도 못 하지. 그리고 뉴욕도 비행금지 구역이 있단 말씀.”
바로 뉴욕시에 트리스 원이 비행금지구역을 비행한다는 청원을 제기한 것이다.
비슷한 시각.
강철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러니까. 서울 시내 대부분이 군사적 목적으로 비행금지 구역으로 묶여 있다. 그래서 서울에서의 드론 운용은 허락할 수 없다.”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상당히 완강합니다.”
“부산이나 대구는요?”
“그쪽도 비슷한 반응입니다. 대도시의 경우에는 대부분 드론 운용이 안 되고, 특히나 비행장이 있는 경우는 절대 불가 견해를 고수 하고 있습니다.”
“원주나 창원 같은 소도시는 괜찮고요?”
“네. 인구 밀집도가 낮은 지역의 경우에는 상관없다고 합니다.”
강철이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규제에 대한 걱정으로 출시 전부터 정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해 왔다.
규제 샌드박스.
그 말을 믿고 적극적으로 투자를 진행했건만 또다시 규제에 가로막혔다. 강철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푸념했다.
“사업을 해보니까 알겠네. 우리나라에 정말 규제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걸…….”
비서도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정부의 규제.
가장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된다는 논리에 말문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때 비서의 핸드폰이 드르륵거리며 진동했다. 재빨리 전화를 받은 비서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네.”
“뉴욕이요?”
“갑자기 뉴욕은 또 왜요.”
“하아…….”
“알겠습니다. 일단 전달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
“뉴욕시에서도 트리스의 항로에 대해 딴지를 걸어왔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트리스가 비행금지 구역을 침범하고 있다면서 협상이 완료되기 전까지 비행을 일시 정지하라고 합니다.”
“갑자기요?”
“아무래도 9.11테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보니 실제 수많은 드론이 날아다니는 것에 시민들이 거부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건데…… 자세한 내막은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초 협의 시에는 그런 말이 없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는 비서도 답을 할 수 없었다. 강철이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다시 비행할 수 있을지 협의해 보도록 하세요. 지금도 공장은 지어지고, 중국에서 트리스가 엄청나게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게 무용지물이 된다면 우리도 파격이 있어요.”
“최대한 빨리 확인해 보겠습니다.”
강철의 집무실 분위기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협상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이온.
대산.
그 두 개 그룹 덕분에 먹고 사는 사람만 수만 명이 넘었다. 정부에서도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할 민원인 것이다.
그건 뉴욕도 마찬가지였다.
윌마트.
그 마트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갑론을박을 벌인 결과 최종안이 도출되었다.
항로 설정.
공중에 길을 그려 그 길로만 드론이 다닌다면 허락해 주겠다. 그리고 그 비행 정보를 뉴욕시와 공유해라.
그것이 뉴욕의 조건이었다. 그 협상안을 가지고, 서울시와 국방부를 찾아가 다시 설득했다.
-뉴욕에서도 항로를 설정하고, 그 길로만 다닌다면 괜찮다고 수락했습니다.
-물론 드론의 이동정보를 정부와 실시간으로 공유하고요. 마치 비행기처럼 운영하겠다는 겁니다.
-9.11 테러를 겪은 곳에서도 허락했는데 비행금지구역이라는 규제로 묶어놓고 무조건 반대하는 건 규제를 위한 규제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협상과 동시에 언론을 통해 여론몰이를 시작했다.
-규제로 묶인 4차산업.
-이대로는 발전이 없다. 혁신기업을 가로막는 규제들.
-드론 산업 양성한다면서 규제로 묶여버린 드론 산업?
그러자 정부에서도 전향적인 태도로 협상에 나섰다.
비행기처럼 항로를 정한다.
이동정보는 공유한다.
드론 관련 사고 발생 시 ‘선 보상 후 처리’로 진행한다.
거기에 강철은 한 가지 조건을 더해주었다.
4. 중앙관제탑 시설 기부.
앞으로 이렇게 드론이 자율비행을 통해 날아다닐 일이 많아질 거다. 그렇게 되면 중앙에서 통제할 시설이 필요할 테니 그 건물을 기부하고 시스템을 공짜로 만들어주겠다. 마지막 제안에 정부로서도 더는 버티기만 할 수는 없었다. 혁신을 가로막는 이미지는 지지율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결국.
서울, 뉴욕 두 군데서 모두 조건부 승인이 떨어졌다. 이제 남은 건 빌딩 안에서 자율 배송하는 것처럼 정해진 항로를 따라 드론이 비행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요즘 강철이 매일 같이 청담에 있는 디스트릭 본사를 찾는 이유였다.
“GPS 수신 모듈 개발 완료했습니다.”
그 말에 데브 옵스 팀원이 답했다.
“트리스 원 포팅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포팅이 끝나자 품질 팀에서 바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확인 끝났습니다. GPS 수신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하나의 기능을 개발할 때마다 분업화된 팀들이 각각 상태를 확인하고 일을 진행해 나갔다. 당연히 일은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강철이 새롭게 채용한 드론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팀장을 보며 물었다.
“앞으로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자율비행 기능을 제외하면 앞으로 2주 정도면 개발 완료될 것 같습니다.”
답을 한 개발 팀장이 슬쩍 강철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자율비행 기능 쪽은 언제쯤…….”
드론 자율비행.
빌딩 안에서 자율 기동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자율적으로 항로를 따라 날아가는 기능을 의미했다.
얼핏 보면 쉬울 수도 있었다.
GPS 입력.
해당 GPS 위치를 따라 이동.
이 두 가지 루틴만 따라가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항로를 날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빌딩풍에 휘말릴 수도 있고, 새와 부딪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행동 지침을 입력한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자율비행 능력이 필요했다.
그게 현재 강철이 하는 일이었다.
“앞으로 1주일이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살짝 고개를 숙인 개발 팀장이 자리로 돌아갔다. 자율비행 쪽은 핵심 기능이다 보니 강철을 비롯해 사내 핵심 인력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다.
성골 그중에서도 강철이 직접 지목한 이들만이 코드에 접근할 수 있었다. 입사 때부터 함께한 유혜인, 윤찬민, 천준호 등이었다.
이번 자율비행 기능을 같이 개발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모니터를 보던 강철이 사내 메신저를 실행시켰다.
-이강철 : 방금 커밋한 코드 215번 라인에 있는 함수. 제가 의도 했던 거랑 다릅니다.
-천준호 : 네? 카메라로 들어온 영상 정보를 서버로 보내 판독하는 부분이잖아요.
-이강철 : 거기에 하나가 빠져 있어요. 판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일차적으로 장착된 이미지 체크 모듈에서 한 번 검사하고 서버에게 요청해야 하는데 그게 빠져 있습니다.
-천준호 : 아……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강철 : 네. 바로 확인하고 말씀 주세요.
현재 일이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설계.
확인.
설계.
확인.
코딩.
간간이 시간이 날 때마다 코딩에도 직접 참여했다. 개발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 * *
얼마 뒤.
서울 시청 광장.
그곳에 엄청난 수의 기자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강철 회장. 자신감이 어마어마하네. 만약 시연회에서 단 한 건이라도 경로를 이탈하거나 실패하면 서울에서 이 사업 접겠다고 했다면서.”
“나도 두 귀를 의심했다니까. 서울에서 사업 안 하겠다는 거는 한국에서 사업 접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잖아.”
“테슬라도 시연 장소에서 망치로 창문 두드렸다가 깨지는 수모를 당했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기자들은 궁금증을 가득 담은 눈으로 전면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내 장내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를 통해 사회자의 안내음성이 들렸다.
“잠시 후 드론 택배 시연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귀빈 여러분께서는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서서히 장내의 소란스러움이 잦아들었다. 사회자는 빠르게 식순을 진행했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드론 배송 시연회가 시작되었다.
원주.
그 작은 도시에서 열렸던 과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였다.
서울 시청은 서울에서도 중심지였다. 중심지라는 말은 드론이 수많은 빌딩 숲을 헤치고 배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하나같이 깃든 의심이었다.
이건 시민들 사이에서도 꽤 논란이 된 일이었다.
비행금지 구역 해제 vs 비행금지 구역 유지.
온라인상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었다. 오늘 제대로 성공한다면 그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이다.
잠시 후.
위이잉.
상자를 잡은 드론이 서서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내 목적지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다.
그러자.
뒤이어 다른 드론이 물건을 집어 들더니 앞서간 드론을 따라잡았다.
그다음 드론도.
그다음도.
드론들은 마치 한 무리의 철새처럼 무리 지어 이동했다. 그 모습이 장관을 이루었고,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나 왔다.
“우와…….”
그러나.
놀라운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이 한 무리의 비둘기 떼를 드론 중간에 날린 것이다.
그러자 드론들이 일제히 산개하며 비둘기를 피해 빌딩 숲을 헤쳐 나갔다. 그 모습이 시청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낱낱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이야. 봤어? 대박인데.”
“아무리 짜고 친다 해도 비둘기를 조종할 수는 없을 텐데…….”
“신기하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탄성이 끝나기도 전에 대기하고 있던 살수차가 드론을 향해 물을 쏘아댔다.
그런데도 드론은 순식간에 살수차가 쏘아내는 물을 피하며 전진했다.
주문자가 기다리는 그곳으로.
* * *
그 모습이 아이 비디오를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혹시나 망신당할까 염려한 비서진과 기획실 직원들이 말렸지만, 강철은 단호히 말했다.
-전부 생중계로 방송하세요. 제대로 배송되지 않는다면 정말 서울 입성은 포기할 생각이니까.
덕분에 전 세계 사람 누구나 정해진 항로를 따라 이동하는 드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국 시간으로는 늦은 밤이었지만 데이비드는 회사에서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항로를 정하고, 그대로 날아다닌다…….”
설마 이렇게까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반성했다.
“빌딩 안에서 자율 기동이 가능하면 빌딩 밖 하늘에서도 저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했는데…….”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저 정도면 400억 달러도, 거절할 만해.”
최종 제안 400억 달러.
그것마저 거절당했다. 처음에는 미친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미친 건 자신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드론 택배에서는 자신이 완패했다는 것을.
-성공.
-성공.
-성공.
-총 300여 건의 택배를 이상 없이 배달했습니다.
-조건부 승인의 기준치를 통과한 것입니다.
-이로써 서울 시민들도 드론 택배의 편리함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면에서는 연신 배송 성공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
7
SOKIN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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