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독점작의 힘
그렇다고 드론에만 신경 쓸 수는 없었다. V스토어 리뉴얼 런칭 일정이 확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뒤로 잡혔습니다.”
비서의 말에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네. 앱 자체 성능.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블라인드 테스트까지 빈틈없이 했습니다. 새롭게 출시된 V스토어가 호평을 받게 된다면 오성전자에서도 자사 대표 브랜드 마르스에 기본 탑재를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VK 통신사 반응은요?”
“VK에서도 새롭게 런칭된 앱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습니다. 기존 앱보다 속도 면에서 30%가 높아졌고,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DRP를 통한 추천 컨텐츠가 사용자들에게 꽤 괜찮은 반향을 얻고 있는 모양입니다.”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네. 그래서 VK 통신사에서도 독점 게임, 앱 아니면 The Startup. 같은 컨텐츠를 만들어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임…… 게임이라…….”
앱 스토어.
그중에서 모바일 게임 매출이 차지는 비중이 대략 80%가량으로 알려져 있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도 독점 게임 때문이었다.
V스토어도 그런 게임이 있다면 지금보다 많은 사용자가 쓰지 않을까. 그게 VK 통신사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강철의 생각이기도 했다.
“아이온 게임즈 신작 개발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현재 VR 개발자들을 대거 채용해 워리어의 VR 버전을 개발 중입니다. 그런데 일정이 예상보다 계속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얼마나요?”
“김봉수 대표님 말로는 앞으로 3달 정도는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문제는…….”
비서가 조심스럽게 강철의 표정을 살폈다. 강철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정 안에도 만들어질지 미지수라는 말이군요.”
“네. VR(virtual reality : 가상현실)로 만드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강철이 미간을 긁적거리며 물었다.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확인됐습니까?”
비서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 부분은 대외비라 저에게도 말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대표님이 직접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청담.
아이온 게임즈 사무실.
김봉수가 잔뜩 인상을 쓴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아…….”
책상에는 담배꽁초가 가득했고, 얼굴에는 근심 걱정이 가득했다. 김봉수가 서류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음성인식 성능 향상 필요.
-동작인식 성능 향상 필요.
-게임속도 향상 필요.
…….
서류는 현재 개발하고 있는 워리어의 VR 버전에 대한 사용자 평가였다. 그 평가에는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이 수두룩 빽빽이 적혀 있었다.
“이걸 전부 개선한다고 해도 3달. 그것도 아주 빡빡하게 잡은 일정인데…….”
최초 예상했던 일정에서 벌써 몇 달이 딜레이 되었다. 지금쯤이면 완료 버전이 나와 V스토어 입점이 끝나 있어야 했다.
“어렵다 어려워.”
그런 김봉수의 사무실로 직원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었다.
“대표님.”
“또 무슨 일이야.”
“이번에 새롭게 채용한 음성인식 전문가 있잖아요.”
“그 사람이 왜.”
말을 하던 직원이 대뜸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람이 코드 커밋할 때마다 사이드 이펙트가 발생해서 다른 애들이 죽으려고 합니다. 더구나 저희가 사용 중인 마이트 v2 버전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요. 그 사람 진짜 전문가 맞아요?”
마이트 v2.
서치가 공개한 머신러닝 알고리즘인 마이트를 자체적으로 개선한 버전을 말한다.
김봉수가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전문가.
그들을 뽑아놓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일을 시켜보니 X문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물론 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연봉만 높고 실제로는 실력 없는 사람도 수두룩하게 빽빽했다.
한숨을 내쉬던 김봉수가 물었다.
“자를까?”
“지금 새로 뽑으면 일정 더 늦춰지잖아요.”
대화를 나누던 김봉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럼 어쩌냐.”
“회장님께 말씀드리죠.”
김봉수가 팔짱을 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회장님.
즉 이강철에게 말해 도움을 요청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김봉수는 영 내키지 않았다. 이런 일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어떻게 한 회사의 대표라 할 수 있을까. 앞으로 회장님이 없다면 회사를 운영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런 상념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익숙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표님.”
익숙한 목소리였다.
“혼자서 전부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목소리가 포근하게 김봉수를 감쌌다. 듣자마자 근심 걱정이 사르륵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 * *
-서치 클라우드 음성 API
-나일 트랜스크라이브.
-IBM Watson Speech to Text.
…….
시중에 나와 있는 음성인식 API들이었다. 물론 현재 아이온 게임즈에서 만들고 있는 음성인식 모듈도 성능은 이에 못지않았다.
하지만.
-어둠의 칼날.
-여명의 인도자.
-공포인식.
등등의 워리어에서 사용되는 기술을 사용자가 급히 외칠 때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VR 게임이라 사용자가 스킬을 클릭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술명을 말했을 때나 행동을 인식해서 발현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음성이라는 게 전투 중 급박한 상황에 나오는 것이다 보니 발음이 이상할 수가 있어요.”
김봉수의 설명에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걸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거군요.”
김봉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문제는 서치나 나일. IBM 쪽의 음성인식 API로도 이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즉 더 고수준의 개발이 필요한 상황인데…….”
“음성은 그렇다 치고 모션 인식은요?”
“그건 그나마 상황이 좀 낮은 상황입니다. 화면에 특정 모션을 표시해 주고, 그 와 일치되는 행동을 하도록 제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경계선에 들어오지 않으면 기술이 발현되지 않고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김봉수가 내민 서류를 살폈다. 거기에는 게임의 사용자 평가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게임 성능도…….”
강철이 입을 열자 김봉수가 급히 나섰다.
“그건 저희가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습니다. 모든 걸 회장님께 맡길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전 음성인식 부분만 해결하면 되는 겁니까?”
김봉수가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네. 그 부분만 도와주시면 나머지는 최대한 자체적으로 해결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내 강철이 심 비서에게 지시했다.
“자리 세팅 좀 해주세요.”
“네.”
심 비서가 수행원들에게 눈짓하자 바로 사무실에 강철을 위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어차피 프로그래밍은 원격으로 해도 된다. 하지만 기존 코드에 대해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만든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바로 강철이 택한 방법이기도 했다.
* * *
서울 중구 VK 통신사.
그쪽도 V스토어 출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최윤아가 최종적으로 정해진 V스토어 UI를 다시 한번 더 검토했다.
“이 색은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요? 요즘은 눈이 아프지 않게 다크 모드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많잖아요.”
대기하고 있던 디자인 팀장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네. 수정하겠습니다.”
앱 화면을 유심히 살피던 최윤아가 레이저 포인터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여기 들어가 있는 마크. 픽셀이 조금 깨진 것 같은데 한 번 확인해 보세요.”
디자인 팀장은 이번에도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윤아.
그녀는 항상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잘못된 지적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었다.
UI 검토를 끝낸 최윤아가 V스토어 운영팀장을 보며 물었다.
“아이온 게임즈 독점작 출시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오늘 아침에 확인해 본 바로는 앞으로 3달 뒤나 돼야 개발이 완료될 거라고 합니다.”
그 말에 최윤아의 표정이 구겨졌다.
“3개월이요? 그거 처음에 V스토어 출시에 맞춰서 함께 나가기로 했잖아요.”
운영팀장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 아님에도 최윤아의 기세에 밀린 것이다.
“네. 그렇긴 한데…… VR이라는 게 워낙 개발이 어렵다 보니…….”
“그거 독점 출시라고 앱 스토어 수수료도 3%대로 책정하고 처음부터 전면 광고해주면서 엄청나게 힘을 실어 주려 한 게임인데…… 이러면 다른 일정도 밀리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일단 아이온 게임즈의 기존 게임들을 넣으면서 공짜 스킨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워리어의 인기는 여전하니까요.”
깊은 한숨을 내쉰 최윤아가 물었다.
“그래서 3개월 뒤에는 정말 개발된다고 합니까?”
그 말에 운영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번에 이강철 회장이 직접 개발에 나섰다고 합니다.”
최윤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강철 회장이 직접이요?”
“네. 워리어 VR 버전은 아이온 그룹에서도 사활을 거는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듣기로 개발비만 수백억이 들어가서 꼭 성공해야 하는 프로젝트라 회장님께서 직접 나서신 것 같습니다.”
“흠…….”
“아이온 게임즈 사내에서도 회장님까지 오셨으면 성공을 낙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지금까지 이강철 회장이 손대서 실패한 프로젝트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게임 업계 관계자 말을 들어보면 절대 쉽지는 않을 거라고 합니다. 이게 소프트웨어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라 VR 기기에서도 뒷받침을 해줘야 해서…….”
최윤아가 운영팀장의 말을 중간에 끊고 들어갔다.
“아마 될 겁니다.”
“……네?”
“택배 드론. 그것도 하드웨어와 결합된 거잖아요. 그런데 해냈고요.”
“아…….”
“이강철 회장이 직접 투입돼서 개발하고 있다.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긴 하군요.”
“한번 일정을 잡아볼까요? 저희 직원들도 게임 테스터 입장으로 간혹 참관하는 예도 있습니다.”
“그래요?”
“네. 실장님께서 원하시면 일정 한번 잡아보겠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최윤아가 직접 청담을 찾았다. 벌써 두 번째 찾아오는 곳이어서인지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이쪽으로.”
수행원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아이온 게임즈 본사가 있는 건물로 들어가 5층에서 내리니 10여 명의 사람이 서로를 보며 소리를 지르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미드 뭐 하는 거야!
-힐! 힐 넣어.
-어둠의 칼날 발동!
소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기기를 잡은 채 허공에 대고 손발을 휘두르고 있었다.
옆에 있던 수행직원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도 처음에는 저게 뭔가 싶었는데 한번 경험해 보면 실장님도 깜짝 놀라실 겁니다.”
최윤아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있는 사이, 테스터들이 땀에 흠뻑 절은 채 VR 기기를 벗었다.
“우와! 이거 지난번보다 더 잘 인식하는 것 같은데요.”
“이 정도 성능만 나와주면 겜 할 맛 나죠.”
“진짜 재밌어요.”
연신 호평이 터져나 왔다. 수행직원이 최윤아에게 물었다.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최윤아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기기를 착용했다.
잠시 후.
꺄아아악!
새된 비명이 테스트 장소를 가득 메웠다.
비명을 지르며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은 최윤아의 곁으로 급히 비서가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최윤아가 애써 침착을 유지하며 VR 기기를 벗었다.
“괘, 괜찮아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를 당황하게 한 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괜찮으세요?”
익숙한 목소리.
바로 강철이였다. 하필이면 자신이 추한 모습일 때 나타난 것이다.
최윤아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재빨리 말을 돌렸다.
“이거 생각보다 현장감이 더 뛰어나네요. 괴물이 진짜 눈앞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아요.”
“개발자들이 많이 노력해 준 덕분입니다.”
“사용자 반응도 좋다면서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존 워리어에 대한 게이머들의 충성도가 높아 VR 버전이 오히려 악평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뛰어난 몰입감으로 그 부분을 해결했습니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여기서 계속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자리를 이동할까요?”
최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따라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귀가 붉게 변해있었다.
회의실.
그곳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먼저 입을 연 건 최윤아였다.
“들어보니 앞으로 한 달 후면 출시 할 수 있다고 하던데 정말 아무 문제 없는 건가요?”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거의 개발 완료했습니다. 아까 확인해 보셨을 텐데요.”
“확실히…… 놀랍긴 하더군요. 제가 다른 VR 게임은 안 해봤지만 정말 현실감이 뛰어나긴 해요.”
“이 VR 기술을 기반으로 다른 게임들도 출시할 겁니다. 소니와 협력해서 플레이스테이션에도 게임들을 넣을 거고요.”
“항상 앞서가시네요. VK 통신에서도 VR/AR 관련 개발을 하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
“그냥 뭐, 열심히 하는 겁니다.”
이내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최윤아가 찾아본 볼일은 두 가지였다.
게임 확인.
일정 확인.
게임은 직접 플레이해 보며 확인을 끝냈다. 일정도 강철에게 확답을 받았다. 와서 해야 할 일은 끝난 것이다.
그런데도 최윤아는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강철이 그런 최윤아를 보며 물었다.
“하실 말씀이 더 남았습니까?”
그 말에 최윤아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쉬울 게 없다…… 이건가.’
최윤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렇다면 아쉬운 걸 만들어줘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끌려다닐 순 없으니까.
“들어보니까. 드론 택배로 동남아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요.”
“네.”
“그러면 그만큼 많은 양의 드론을 생산하고 있겠네요.”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습니다.”
최윤아가 살짝 말을 흐렸다.
“드론에 들어가는 2차전지 또한 많은 양이 필요할 테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철의 머릿속으로 한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VK 케미컬.
한국의 3대 2차전지 생산 업체였다.
선일 화학.
VK 케미컬.
오성 배터리.
이 세계 회사가 한국 2차 전지 시장을 과점하고 있었다. 그중 1위는 단연 선일 화학이었고, VK와 오성이 비슷한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다.
‘2차 전지를 공급해 주겠다. 뭐 이런 뜻인가…….’
선일 화학에서도 적극적으로 공급해 주고 있긴 했다.
하지만 수요보다 공급이 떨어지다 보니 단가가 조금 높은 편이었디. 덕분에 드론 생산가격도 올라갔다. 하지만 VK에서도 안정적으로 공급해준다면 단가를 낮추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강철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VK 케미컬도 케파가 부족한 거로 아는데요.”
“최근 신공장을 건설해서 가동률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요. 그쪽 물량을 돌리며 드론에 필요한 전지 스펙에 맞출 수 있고요.”
“그럼 우리 쪽으로 돌려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처음으로 강철과의 대화에서 우위에 섰다. 그런 생각에 최윤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많이 필요하신가 봐요.”
“달에 1,000대가량은 더 늘리려고 합니다. 매달 천 개의 전지가 필요하고요. 선일 화학에서는 더 여유가 없다 하고요.”
최윤아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늘어뜨렸다.
“제가 회사에 이야기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강철의 표정은 여전히 사무적이었다. 잠시 최윤아를 빤히 바라본 강철이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개발 막바지가 더 시간을 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조건에 따라 정말 공급해 주실 수 있다면 실무급 회의를 주선해 주세요. 그럼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더 대화를 나누었다 가는 게임 런칭 일정이 미뤄질 수도 있어서요.”
그 말에 최윤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강철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그건 V스토어에서도 싫어하실 상황 아닙니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강철이 문을 열고 훌쩍 떠나 버렸다. 최윤아가 멍하니 강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최윤아가 까득 이를 갈았다.
* * *
비슷한 시각 IJ 엔터.
트리플이 소속된 회사로 최근 주가가 가파르게 올라가는 곳이었다. 그곳의 사장 이재만이 가수 1팀 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온 그룹에서 정식 요청이 왔어.”
가수 1팀 팀장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떤 요청 말입니까?”
“이번에 VK 통신사에서 V 스토어 리뉴얼했잖아.”
그 말에 1팀 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랬나요?”
가수 1팀.
소속의 가수들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V스토어가 리뉴얼되는 건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재만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뭐, 네가 그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고, 중요한 건 거기에 트리플 관련 컨텐츠를 넣고 싶다고 하네. 이를테면 트리플과 소통할 수 있는 앱이라던가 아니면 트리플 관련 게임이라던가.”
“기획팀이랑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해봐. V스토어로 사람을 끌어모으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
“네.”
이내 이재만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건 그렇고 내가 오라고 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인데…… 그거 확인해 봤어?”
팀장이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관심이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누가? 그쪽 회장이 아니면 엘리가.”
“엘리가요.”
“그래?”
“네.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는 모양새였습니다. 매니저한테 물어보니까. 엘리가 저녁 초대도 할 만큼 적극적이라 하더군요.”
“저녁 초대?”
“네. The Startup을 핑계로 멤버들이랑 저녁 식사도 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이재만이 두 눈을 부릅떴다.
이강철.
그가 어떤 사람인가. 혜성처럼 나타나 대한민국 재계를 흔들어 버린 사람이다.
이재만도 꼭 한번 만나 개인적인 친분을 쌓고 싶은 인물이기도 했다.
“나는?”
“……네?”
이재만이 팀장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왜 안 불렀어.”
“아…… 그게. 다음에는 대표님도 부르라고 하겠습니다.”
“내가 엘리 보호자나 마찬가진데 매니저는 가고 내가 안 가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치?”
“마, 맞습니다.”
“그건 그렇고. 엘리가 이강철 회장 만나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데…… 이걸 어쩐다…….”
“저번에 말씀하신 윗선 말씀입니까?”
이재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윗선.
돌아 돌아온 이야기라 최종적으로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는 이재만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귀가 있고, 눈이 있었다. 대충 VK 그룹 쪽에서 흘러나온 것이라 짐작할 뿐이었다.
‘그쪽에 최윤아가 이강철에게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그게 사실이라면 경쟁자가 출현하는 게 싫겠지.’
팀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냥 순리대로 돌아가게 놔두도록 하죠. 괜히 압박하다가 돌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이강철 회장은 엘리에게 크게 관심 없는 눈치니까. 제풀에 지칠 겁니다.”
고심하던 이재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건 그렇게 하고, 나중에 이강철 회장 사적으로 만나게 되면 내 이야기도 꼭 꺼내라고 해. 나도 만나서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
“알겠습니다.”
이재만이 창밖 먼 산을 보며 중얼거렸다.
“만나서 할 이야기가 아주 많아…….”
이재만의 꿈은 IJ 엔터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소니 픽처스.
유니버설 뮤직.
워너미디어.
그런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의 성장이 그의 최종 목표였다. 그리고 강철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한결 쉬워질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 * *
한 달 후.
V스토어 운영팀이 부산스러웠다. 바로 오늘 워리어 VR 버전이 출시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앱 상태 최종으로 확인했어?”
“네. 문제없는 것 확인했습니다.”
“아이온에서는 뭐래?”
“현재 동접 150만까지 커버할 수 있게 준비해 놨다고 합니다.”
“워리어 모바일 버전의 최고 동접자 수가 100만이라고 합니다. 그보다 50만이나 늘어난 수치입니다.”
“너무 많이 잡은 거 아냐. 어차피 이건 모바일로 접속해서 VR 모드 켜야 플레이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려면 VR 기기도 구매해야 하는데…….”
“이번 워리어 VR 버전 때문에 VR 기기만 수만 대가 팔려 나갔습니다. 기존에 기기를 보유 중인 게이머들도 있을 테고요. VR 기기는 충분하다는 뜻이죠. 그리고 수요 조사에서도 꼭 한번 플레이해 보고 싶다는 게이머들 숫자가 엄청났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운영팀장이 중얼거렸다.
“나도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워리어 VR 버전의 성공.
그건 곧 V스토어의 성공을 의미한다.
V스토어를 출시한 지 벌써 50일이 지나가지만, 사용자의 증가는 미미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리뉴얼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위리어 VR 버전을 독점 출시한다는 본격 광고가 나가고부터 유의미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신규 가입자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점유율 19.2%.
18%대를 벗어나지 못하던 V스토어 점유율이 1% 상승했다. 위리어 VR 출시가 확정 발표되고 나타난 현상이었다.
위리어 VR 버전이 실제 출시되고, 본격적으로 게이머들의 호평을 받는다면 더 많은 사용자가 유입될 것으로 다들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워리어 VR 버전이 출시되었다.
사전 예약 100만.
그 수치가 거짓이 아니라는 듯이 출시 첫날에만 60만 명이 다운로드를 받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게임이 출시되고, 아이비디오, 게임 커뮤니티 등등에서 플레이 영상이 공개되면서 사용자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현실감, 몰입감 개 쩜.
-VR 버전 꼭 해봐라. 해보면 다른 게임은 눈에도 안 들어온다.
-아이온 게임즈에서 진짜 일냈다. 이거 갓겜이라는 말밖에 안 나온다.
사용자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이는 V스토어의 점유율 확대로 나타났다. 워리어 VR 버전은 V스토어에서만 다운로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점유율 21%.
워리어 VR 버전이 출시된 다음 날 V스토어의 대략적인 점유율이었다.
마의 20% 점유율을 깨뜨린 날이었다.
* * *
보고 받는 최윤아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V스토어 이용자가 폭증하고 있다고요?”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유입세가 엄청납니다. 신기한 건 한국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다운로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윤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해외에서 어떻게?”
“각종 커뮤니티에는 워리어 VR을 위해 V스토어를 다운로드받는 방법이 공유돼서 그걸 따라 한 모양입니다. VPN 같은 걸 써서 한국으로 인식되게 한다든지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주아주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그리고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까지 다운로드 된다는 건 다음 단계를 진행해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오성 전자에 할 말이 생겼군요.”
“네. 마르스 기본 탑재를 요청했습니다. 거기에 기본 탑재가 되면 V스토어 점유율이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의미한 수치를 기록 할 수 있습니다.”
세계.
그 단어에 최윤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자 생각은 자연스럽게 워리어 VR로 이어졌다.
“전부…… 워리어 때문이겠죠?”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V스토어 다운로드 사유의 80%가 워리어 VR이라 답하고 있는 실정이긴 합니다.”
워리어 VR.
그게 출시된 이후 뉴스는 온통 워리어 VR 관련 이야기였다.
-워리어 VR. 세계 게임 시장을 평정.
-VR 게임의 신기원 워리어.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아이온 게임즈. 확보한 VR 기술로 차기 게임 기획 중.
등등.
그런 언론 기사는 그냥 쓰이는 것이 아니다. 대중들이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뉴스가 되어 나오는 것이었다. 그건 당장 V스토어 가입 이유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워리어 게임 플레이 (80%).
압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최윤아가 지나가는 말투로 툭 물었다.
“그럼 매출도 어마어마하겠네요. 특히나 게임은 영업 이익률이 제조업과 달리 30%가 넘을 테니 팔기만 하면 돈이 되잖아요.”
“아마…… 그럴 겁니다. 엑스게임즈의 작년 영업이익이 5천억이었는데 그걸 넘어선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워리어 단독으로요?”
“아, 그건 아닙니다. 아이온 게임즈에서 제공 중인 전체 게임을 합친 금액입니다.”
“그럼 엑스 게임즈가 아이온 게임즈 자회사로 들어갔으니 연결 기준으로 하면 영업이익만 1조는 가볍게 넘겠군요.”
“네. 아마도…….”
영업이익 1조.
그걸 달성하는 기업은 국내 30개도 되지 않았다. 아이온 게임즈 하나만 해도 국내 30대 대기업이라는 뜻이었다. 거기에 아이온 그룹에 줄줄이 달린 미디어, 아이 체크, 배달업체 등등을 합친다면 영업이익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올해 대산 그룹은 사상 최대 실적을 갱신할 전망이었다. 그 이익까지 합쳐진다면…….
어쩌면 VK 그룹을 곧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 *
비슷한 시각.
강철은 축포를 터트리고 있었다.
-동시접속자 150만.
그 위업을 달성했기 때문이었다. 고무적인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스킨 매출만 오천억을 넘어섰습니다. 이게 VR 게임이다 보니 사용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꾸미는 데 더 많은 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V스토어 수수료가 3%밖에 되지 않아서 영업 이익률은 5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 순수익만 2,500억이었다. 그것도 워리어 VR 하나에서만 나오는 수익이었다.
기존 워리어 PC, 워리어 모바일을 합치고 아이온 게임즈에서 출시한 다른 게임들과 엑스 게임즈까지 합친다면 수익은 급격히 늘어난다. 비서의 보고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워리어의 인기가 상승할수록 LOL처럼 세계적인 대회를 열어 달라는 요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존에 게임 팀을 운영하는 곳들에서도 워리어 팀을 창단하고 싶다는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고요.”
“LOL 팀을 만들기 위한 가입비가 100억이었나요?”
“네. 워리어는 150억으로 책정할 예정입니다. 그런데도 전 세계에서 대기 중인 기업이 50여 곳이 넘습니다.”
50 곱하기 150억은 단순히 계산해봐도 7,500억이다. 이건 권리금 명목으로 받는 것이라 이후 팀 창단 권한을 반납한다 해도 돌려줄 돈이 아니었다.
“7,500억이 생기는 거군요.”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대회를 만들면 스폰을 해줄 테니 가장 먼저 연락해 달라는 기업들도 5곳 정도 됩니다. 뿐만 아니라 워리어에 나오는 캐릭터를 이용한 피규어 제작, 애니메이션 등등의 요구가 물밀 듯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게임 하나 잘 만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더니…….
강철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일단 워리어 챔피언 쉽 대회부터 시작하도록 합시다. LOL에 뒤지지 않게 최고 수준으로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성 전자에서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같이 워리어에 특화된 VR 기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면서요.”
“특화 기기요?”
“네. 현재 워리어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뛰어난 몰입감입니다. 하지만 일부 핸드폰이나 VR 기기에서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성 전자에서 이런 점을 지적하면서 궁극적으로 세계 최고의 VR 기기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합니다. 오성의 하드웨어 제조기술과 자사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합쳐서요.”
“VR 기기라…….”
“어떻게 할까요?”
“일단 고민을 좀 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IJ 엔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온 미디어와 트리플 관련 콘텐츠 제작 회의를 하자면서요.”
사실 마지막은 실무진끼리 알아서 하면 되는 보고였다. 하지만 평소 강철이 엘리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비서의 배려였다.
하지만 강철의 반응은 밋밋하기만 했다.
“네. 알겠습니다. 아 참. 아이온 게임즈 성과급 지급은 어떻게 됐습니까?”
“일단 기본급의 200%로 사내 공고 올라갔습니다. 앞으로 매출이 나오면 더 지급될 예정입니다.”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하게 보상해 주도록 하세요. 약간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알겠습니다.”
그걸로 그날의 보고가 마무리되었다.
* * *
서치 한국지사.
그곳의 지사장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그래프를 보고 있었다.
21%.
22%.
23%
…….
29%까지.
V스토어의 점유율이 파죽지세로 상승했다. 그럴수록 서치의 앱스토어는 점유율은 반대로 떨어졌다.
62%.
60%.
58%.
…….
50%까지.
순식간에 50%대로 떨어진 것이다.
V스토어는 아이폰에 설치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당장 서치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것이다.
“문제는 추세가 더 가팔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워리어의 충성 고객들이 30%의 수수료를 매기는 앱스토어 정책에 반대하며 자체적으로 V스토어 이용 캠페인까지 펼치고 있습니다. 게임사에 더 많은 수익이 돌아가게 해서 더 재밌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면서요.”
지사장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우리 쪽 대응책은?”
“현재는 본사 지침만 기다리는 중입니다. 한국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본사에서도 딱히 지침이 내려오질 않고 있습니다.”
“흠…….”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한 달 후면 점유율 50%도 깨질 것이라는 결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우울한 뉴스만 계속되고 있었다. 거기에 국회에서 서치 반독점 법안까지 논의되고 있었다.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워리어 VR 버전. 우리 쪽에는 언제 공급해주는지 확인해 봤어?”
“몇 번이나 아이온 게임즈에 연락했는데 확답을 피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V스토어와 독점 계약이 되어 있다면서요.”
“그것도 본사에 올려. 본사에서 아이온 게임즈랑 계약 체결해 보라고. 어차피 지사에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으니까.”
“네.”
“그리고 이강철 회장과 약속은?”
“그것도 그쪽 비서와 이야기를 해봤는데 최근 일정이 너무 많이 잡혀 있어서 당장은 힘들다고 합니다. 아시겠지만 워리어의 인기가 워낙 대단하고 더구나 기존에 만들었던 드론 택배도 초유의 히트를 기록하다 보니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양입니다.”
안 된다.
안 된다.
자꾸만 들리는 그 말에 지사장은 살짝 짜증이 치솟아 올랐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이렇다저렇다 하지 말고 방법을 말해봐. 방법을.”
부하직원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지사장이 답답함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지금 전 세계 서치 앱스토어의 점유율은 75%에 이른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점유율이 쭉 빠지고 있다.
지사장이 스트레스를 받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때.
드르륵거리며 부하직원의 핸드폰이 울렸다.
“받아봐.”
급히 연락을 받은 부하직원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어.”
“진짜?”
“기본 탑재를 공식화했다고?”
“알았어.”
전화를 끊은 부하직원이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오성전자에서 마르스 폰 기본 탑재 앱에 V스토어를 포함했다고 합니다.”
“그거야 국내 통신사 이용하면 기본 탑재되고 있었던 거잖아. 외산이나 자급제 폰에는 안되고.”
“그게…… 한국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뭐?”
“전 세계 출시 될 폰 전부 V스토어를 기본 탑재할 계획을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지사장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이거…… 우리 손 떠났다. 본사에 연락해 봐. 우리는 더는 해결할 수 없다고. 공식 탑재되기 전에 못 막으면…….”
부하직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슷한 시각.
미국 실리콘 밸리 서치 본사.
오성 전자의 발표에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당연히 서치의 CEO 앨런 파인도 회의에 참석했다.
회사의 전략기획 담당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결국 V스토어를 기본 탑재하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앨런이 기획 담당자에게 말했다.
“어차피 해외에서 V스토어를 이용할 일은 없지 않습니까?”
“그게…… 최근 워리어 독점 공급으로 그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워리어라면 아이온 게임즈에서 발매했다는 게임 말입니까?”
“네. 그 인기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VR 특유의 몰입감을 제대로 살리면서 포켓몬 고의 초기 인기를 뛰어넘어 그야말로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그 말에 앨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 말은 워리어를 하려고 V스토어를 설치하는 사람이 늘어날 거다. 라고 들리는데요.”
“맞습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라 아이온 게임즈에서 차기 VR 게임을 오성전자와 협업하에 준비 중이라는 겁니다. 그게 또 V스토어를 통해 독점 판매된다면 서치 앱스토어의 점유율이 50%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내부적인 결론입니다. 더구나 V스토어의 수수료가 저희보다 1/3가량이 쌉니다. 다른 게임사나 컨텐츠 회사들까지 그쪽으로 밀려 들어가면…….”
50%가 아니라 1위 자리를 위협받을지도 모른다. 그 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앨런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앨런이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강철 회장과 약속 잡아보세요.”
“알겠습니다.”
회의실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 * *
VR.
Virtual Reality의 줄임말로 이걸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술이 사용된다.
선명한 디스플레이.
물체인식을 위한 트랙킹.
3D 렌더링 기술.
모션, 음성, 눈동자 시선 추적 기술.
워리어 VR이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구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출시된 VR 컨텐츠들 중 최고의 그래픽에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다. 사용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VR 게임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당연히 사용자는 늘어났고, V스토어의 점유율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점유율 35%.
마의 30% 벽을 깨고 5%나 더 늘어난 것이다. 이 추세로 가다가는 40%를 뚫고, 50%를 차지하는 것도 꿈이 아니라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건 곧 워리어가 어느 정도의 파워를 가진 것인지 증명한 것이었다.
그 파워는 쇄도하는 연락에서 알 수 있었다.
“서치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워리어 독점을 푸는 상세 조건을 논의해 보자면서요. 서치 CEO가 직접 찾아오겠다고 합니다.”
“V스토어와 독점 기간이 얼마죠?”
“6개월입니다.”
“그럼 앞으로 한 2개월 남은 건데…….”
“네. 그래서 V 스토어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독점 기간을 늘리자고요. 수수료도 1%대로 낮춰주겠다고 합니다.”
강철이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소니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에 워리어를 넣고 싶다면서요. 콘솔용 게임 개발비는 전액 지원해 주겠다고 합니다.”
강철이 눈을 뜨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 사이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마이크로 소프트에서도 엑스 박스에 워리어를 넣고 싶다고 합니다. 물론 소니와 비슷한 조건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텐센트에서는 워리어 중국 서비스 협업을 해보자면서 연락이 왔고 또 넷플러스에서 워리어 영화나 드라마 판권을 사고 싶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쇄도하는 중입니다.”
비서가 현재까지 온 연락을 줄줄이 읊어나갔다.
워리어의 인기로 협업을 해보자는 회사만 10여 곳이 넘었다. 게임 하나 잘 만들었을 때 어떤 파급력이 생기는지 보여주는 일이었다.
또 한 모금 차를 마신 강철이 비서에게 말했다.
“지난번에 오성전자에서 VR 기기 개발을 같이 해보자며 연락이 왔다고 했지요.”
“네.”
“그거 우리가 직접 만들면 어떻습니까?”
“VR기기를 직접…… 이요?”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해 보니까. 이 정도 돈을 가지고 있는데 직접 못 만들 것도 없을 것 같더군요. 우리는 설계만 하고 제조는 OEM을 맡기면 되니까요.”
“흠……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VR 기기를 제작하는 회사를 하나 인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 수준이 아니라 현재 바로 생산까지 가능한 업체로요.”
“한번 섭외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데이터 센터 착공도 더 미루지 말고 바로 시작합시다. 아이온 게임즈를 비롯해서 DRP, DSP까지 사용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이번에도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네.”
“드론 택배 공장 건설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직 정부에서 검토 중인지 연락이 없습니다.”
“그럼 한 번 더 압박해 보세요. 앞으로 2주 이내로 연락이 없으면 베트남에서 착공 시작하겠다고,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알겠습니다.”
밀려드는 일을 처리한 강철이 서류를 뒤로하고 창가로 걸어갔다.
창밖 거리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벌써 또 겨울이 된 것이다.
대산.
아이온.
두 그룹을 운영하면서 벌써 수년이 되었다. 그렇게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내년이면 33살인가…….”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내년이면 박인영과 결혼해 행복한 삶을 꿈꾸던 나이였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서로 악감정만 남은 채 헤어지긴 했지만…….
어차피 이제 과거에 대한 미련은 없다. 강철은 미래만 생각했다.
“결혼하긴 해야 하는데.”
이번 생에서는 꼭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한 기반은 충분히 갖춰졌다.
하지만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려 해도 자신의 위치 때문에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당장 소개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소개팅이라…….”
잠시 그런 상상을 하던 강철이 ‘풉’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소개팅에 나간다면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일반인이라면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만한 일일 것이다.
“이래서 끼리끼리 만나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구나.”
왜 재벌이 같은 재벌이나 유명 연예인을 만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자 강철의 머릿속으로 여러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재벌, 연예인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진선미, 엘리, 최윤아.”
자신이 알고 있는 호감을 표시한 사람 명단이었다. 그중 진선미는 이미 끝났고 엘리, 최윤아가 남았다.
강철의 머릿속으로 얼마 전 엘리와 함께 한 저녁 식사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여, 여기요.
-네? 이게 뭔가요.
-그냥 고마움의 표시예요. 집에 가신 후에 펼쳐보세요.
그러면서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집에 와서 풀어보니 시계와 함께 편지가 한 장 들어 있었다.
강철의 눈에 먼저 들어온 건 편지였다. 시계야 백화점에서 자신도 살 수 있지만, 편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항상 감사합니다.
그 말로 시작한 편지는,
-다음에 또 이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다음을 기약하며 끝나 있었다. 당장 편지만 봐도 자신에 대한 호감이 철철 흘러넘쳤다.
그때를 생각하자 강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생겨났다.
“만약 엘리를 만나게 되면 난 성덕이 되는 건가.”
성덕.
성공한 덕후.
사회적으로 성공해 덕질 하는 대상을 직접 만나는 것을 뜻했다.
과거 강철은 삼촌 팬으로 엘리를 꽤 응원했었다. 이제는 반대로 엘리가 자신을 응원하며 호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강철은 지금 이 상황이 싫지만은 않았다.
“엘리…… 엘리라.”
하지만 엘리는 연예인이다. 자신과 만나고 후일 헤어졌을 때 연예인은 더 큰 타격을 받는다. 재벌이야 하던 사업을 하면 되지만 연예인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자신과 만나게 되면 과연 대중들이 사랑해 줄까? 그러자 다음 고민이 생겨났다.
“그럼 최윤아가 남은 건가.”
솔직한 심정으로 최윤아가 싫진 않았다. 예쁘고, 배경도 좋고 지금까지 본 바로는 성격도 나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강철은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일단 만나나 볼까…….”
강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팍팍한 사업만 하다가 연애할 생각을 하니 오랜만에 설렘이 느껴진 것이다.
* * *
한편.
V스토어를 담당하고 있는 최윤아의 신경이 잔뜩 날카로워져 있었다.
“수수료율을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1%로 낮췄는데도 차기 독점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고요?”
“네.”
뿌드득.
최윤아가 이를 갈았다.
“위리어 인기가 올라가니 굳이 V스토어가 아니어도 된다. 뭐 이런 생각인가.”
“아니면 수수료율은 1%보다 더 낮춰달라는 무언의 압박일 수도 있습니다.”
최윤아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자기 돈으로 V스토어에 3,000억이나 투자했으면서……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
“더구나 현재 VR 기기 업체를 섭외 중이라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워리어 VR의 인기로 데이터 센터를 자체적으로 건설하려는 움직임까지 있고요. 워리어를 지금보다 더 크게 키울 생각인 것 같습니다.”
최윤아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워리어 VR.
그 인기가 날로 높아질수록 자신은 을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V스토어에 직접 적인 지분 투자까지 요청했건만…….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는 비밀리에 서치의 회장이 한국에서 이강철 대표를 만나고 돌아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양 사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지는 않았지만요.”
“……네?”
“아무래도 워리어 덕분에 서치의 앱스토어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으니 서치에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겁니다.”
최윤아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분홍빛 입술에 피가 몰리며 붉게 변했다.
“그래서 결과는요?”
“결과는 아직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이대로 있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제가 한번 만나볼게요. 정말 수수료율은 더 낮추던 다른 혜택을 제안하던 워리어는 꼭 잡아야 하는 게임이니까.”
“그렇지 않아도 지난주부터 계속 일정 조율을 하자며 연락을 해봤습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드론 택배 공장 건설 건 데이터 센터 건설 건. VR 기기 업체 섭외 건 등등으로 바쁘다며 차일피일 미루는 중입니다.”
최윤아가 참지 못하고 불끈 주먹을 쥐었다.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섭섭함이었다.
그래도 자신과 함께한 시간이 꽤 된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호감을 표시하며 꽤 친교를 나누었다고 생각했는데 강철은 여전히 사무적으로 자신을 대했다. 그 점이 못내 섭섭했다.
최윤아의 표정을 살피던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아무래도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네?”
“VK 케미컬에 연락해서 소형전지 생산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그 말씀은…….”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선물을 들고 찾아가 봐야죠. 최대한 확보해서 이거 줄 수 있다고 하면 만나줄 겁니다.”
최윤아가 눈을 반짝였다.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아마 만나줄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최윤아는 겨우 강철을 만날 수 있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섭섭함이 밀려와 말이 곱게 나오질 않았다.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분이었군요.”
“오늘은 꼭 만나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요.”
최윤아는 자신도 모르게 본심을 툭 내뱉어 버렸다.
“저보다 소형전지가 더 중요한가 보네요.”
“그게 부족해서 생산에 차질을 겪고 있습니다. 단가도 올라가고 있고요. 꼭 그것만은 아니지만요.”
그것만이 아니다. 그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지만, 최윤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일’만 생각하는 그의 모습에 더 큰 섭섭함이 밀려왔다.
‘이…… 일 중독자!’
그리고.
반대로 강철도 최윤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나한테 관심이 있어.’
자신도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배경.
성격.
외모.
이 중 두 배경, 외모는 최상이었다. 하지만 강철이 1순위로 치는 건 성격이었다. 착하고, 못되고를 떠나서 자신과 잘 맞는 성격이 중요했다.
강철이 유심히 최윤아를 지켜보았다.
“왜…… 왜 그렇게 봐요.”
“일 이야기 마저 마무리하죠.”
고개를 끄덕인 최윤아가 빠르게 조건을 읊어나갔다.
그렇게 일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강철이 또 한 번 최윤아를 유심이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당황한 최윤아가 물었다.
“아까부터 왜 그렇게 보는 거예요.”
강철이 툭 던졌다.
“만나보면 생각보다 별로일지도 모릅니다.”
“뭐, 뭐라고요?”
“그래도 관심 있으세요?”
한층 당황한 최윤아가 말을 더듬었다.
“네, 네?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한번 최윤아 씨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펑.
최윤아의 얼굴이 붉다 못해 터져 버렸다.
* * *
리얼리티 디바이스.
VR기기 제조 업체로 세계 시장 전체 점유율은 아직 미미하지만 가지고 있는 하드웨어 기술은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전체 시장에서 점유율은 미미하지만 50만 원이 넘는 초고가 시장에서는 50%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회사의 CEO가 놀란 눈으로 서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 그러니까. 지금 50억 달러를 지불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반대편에 있던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50억 달러.
지금까지 VR기기 업체들 중 50억 달러짜리 회사는 없었다. 가장 비싼 값에 팔린 것이 페이스북이 인수한 오큘러스였다. 50억 달러는 그것보다 2배는 더 비싼 액수였기에 CEO 조지 머피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조지가 뛰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말했다.
“휴우…… 사실 좀 믿기지 않는군요.”
“리얼리티 디바이스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더구나 현재 워리어 게이머들이 평가하길 가장 적합한 기기가 RD-10이라고 하더군요.”
RD-10.
리얼리티 디바이스에서 만든 최신형기기로 소비자가격이 70만 원에 육박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군 중 가장 비싼 제품이기도 했다.
그만큼 값어치를 한다고 해야 할까? 게이머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 말에 조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생겼다.
“하긴 워리어 덕분에 판매량이 엄청나게 늘어나긴 했습니다. 지난해보다 50%가량 늘었으니까요.”
“우리가 협업하면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겁니다. 워리어 VR은 아이온 게임즈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VR용 게임이 출시될 겁니다.”
그 말에 조지가 슬쩍 농담을 던졌다.
“하하, 그러면 이거 회사 값을 더 올려받아야 하겠군요. 어차피 VR기기는 더 팔릴 테고 리얼리티 디바이스의 기업가치는 더 올라갈 테니까요.”
돈을 더 받겠다. 그 말에 강철이 피식 실소를 흘렸다. 이 사람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강철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만약 워리어 VR에서 공식적으로 RD-10은 지원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요?”
VR 기기.
그 판매량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컨텐츠다. 과거 많은 VR기기가 있었지만, 킬러콘텐츠가 없어 판매량이 지지부진했었다.
워리어 VR.
그게 발매되고 나서야 판매량이 늘어난 것이다.
‘그럼 망한다.’
그 생각이 조지의 머릿속을 잠식했다.
아마 그렇게 되면 판매량은 곤두박질칠 것이다. 당장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수 천대의 기기를 주문해 두었다. 그게 전부 취소될 테고 위약금 때문에 적자를 기록할지도 몰랐다.
강철이 그런 조지를 보며 픽 실소를 흘렸다.
“정말 협상하길 원하시는 겁니까?”
그 말이 너무 무섭게 들렸다. 조지가 손사래를 치며 급히 입을 열었다.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수천억이 오가는 협상에서 농담이라…… 심 비서.”
강철이 살짝 손을 들어 비서를 찾았다.
“네.”
“개발진에 연락해서 워리어 VR 지원 기기 목록에서 RD-10은 뺍시다. 처음부터 리얼리티 디바이스를 너무 비싼 값에 사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알겠습니다.”
그 말에 조지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닙니다. 하하, 50억 달러면 아주 후한 값인 거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농담이었습니다.”
강철이 그런 조지를 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45억 달러로 조정하겠습니다.”
“네?”
“44억 달러.”
“자, 잠시만요.”
“43억 달러.”
1억 달러면 한화로 천억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 돈이 1초마다 줄어들고 있자 조지 머피는 다급해졌다.
급히 펜을 들며 말했다.
“서, 서류 주시죠. 바로 사인하겠습니다.”
그 말에 심 비서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밀었다.
강철이 비어 있는 금액란에 43억 달러라는 숫자를 적었다. 조지가 사인했고, 뒤이어 강철이 펜을 움직였다.
이내 강철이 굳어져 있던 표정을 풀며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조지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리얼리티 디바이스 인수.
그게 시작 점이었다. 강철은 아이온 게임즈로 들어오는 막대한 현금을 공격적인 투자에 사용했다.
데이터 센터 건설.
전용 데이터 센터 건설을 발표했다. 어차피 DRP나 DSP를 운영하기 위해서 대규모 데이터 센터가 필요한 참이기도 했다. 수요는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투자 계획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 두 가지를 합친 것만큼 중요한 계획이 하나 있었다.
“중소벤처 기업부에서 연락 왔습니다. 저희 측 제안 전부 수용한다고 합니다.”
“발표하세요.”
이내 언론을 통해 택배 드론 공장 건설에 관한 내용이 배포되었다.
[총투자금액 1조.]
[연간 고용 유발 효과 1만 명.]
그 공장이 충주 산업단지에 들어서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언론이 주목한 것은 그 공장이 중소기업 관련 각종 세금 혜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1조 원에 달하는 투자가 진행되는데 어떻게 중소기업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대산 대기업.
아이온 그룹 중견 그룹.
언뜻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덕분에 수많은 언론에서 정경유착 부분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 해답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디스트릭 한국지사. 중소기업 혜택의 이면.
그 제목을 단 기사는 공장 건설 법인이 강철의 개인 법인이며 투자금 역시 개인 자금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현금 1조 원.
국내 어떤 재벌가의 인원도 포켓 머니로 현금 1조를 끌어올 능력은 없었다. 대부분 돈을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유 주식을 팔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대주주의 지위를 위협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개인 돈 1조를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강철이 그걸 해낸 것이다.
최윤아는 그게 자신의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는 게 잘 믿기지 않았다.
“정말 개인 돈으로 공장 건설한 거예요?”
“맞아요. 알겠지만 서치에 매각한 대금만 해도 수조 원이 넘으니까요.”
“그건 전부 대산 그룹 주식을 매입하는데 사용한 거 아니었어요.”
“매입하고도 남았습니다. 뭐, 주식투자도 조금 했고요.”
그 말에 최윤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식투자요? 그런 것도 해요?”
“하하, 네. 기회가 있다면 투자해야죠.”
기회.
그 말을 듣는 순간 최윤아의 입안에 ‘저도 그 기회라는 거 알려주세요’라는 말이 맴돌았다. 하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마치 내가 구걸하는 것 같잖아.’
자존심 때문이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강철이 그런 최윤아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때요?”
“여기요?”
“하하, 네. 이 카페.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곳이던데. 어렵게 섭외했습니다.”
“그냥 뭐…….”
최윤아는 그리 관심 있는 눈치가 아니었다. 강철은 그런 최윤아의 반응을 바로 캐치했다.
‘이런 일상보다는 일에 더 관심이 많은 모양이야.’
소소한 일상.
거기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긴 재벌 집 자제로 살아오면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란 좋은 것은 전부 맛봤을 것이다. 더는 새로운 것도 흥미로운 것도 없어 보였다.
그런 그녀의 관심을 끄는 것이라는 건 오로지 하나…….
“그것보다 워리어 VR 독점은 우리랑 계속되는 거죠?”
역시나 일.
즉 돈이었다.
강철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런 곳에서까지 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윤아 역시 그런 강철의 기색을 바로 알아챘다.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헤헤, 제가 너무 일 이야기만 한 건가요.”
그래도 굳어진 강철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아닙니다. 서로의 관심사는 충분히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그때.
강철의 비서가 다가와 귓속말을 전했다.
“대표님. 워리어 서버가 멈췄다고 합니다.”
“……뭐?”
“최근 진행한 이벤트 때문에 사용자가 예상치보다 30%나 더 폭증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서버가 원인 모를 증상으로 다운되는 현상이 발생했고요.”
“그래서 조치는요?”
“운영 요원들이 전부 달려들어 고치고 있긴 한데…… 사이드 이펙트 때문에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복구에 최소 1시간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귓속말한다고 했지만, 앞에 앉은 최윤아에게도 얼핏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였다.
최윤아가 급히 입을 열었다.
“어서 일어나요. 문제가 생겼으면 가서 고쳐야죠.”
오늘 만남은 자신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먼저 일어난다는 사실이 못내 미안했다.
최윤아가 눈치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전 괜찮아요. 어차피 이쪽 세계에서 이런 일은 다반사니까요.”
자신을 배려해 주는 말에 방금 언짢았던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일 이야기만 하는 게 이런 장점도 있는구나.’
세상 모든 사람이나 일에는 장, 단점이 있다.
강철은 새삼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급히 차에 올라탔다.
* * *
청담 아이온 게임즈 본사.
그곳 한쪽에 있는 운영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이야?”
“네. DB 서버 재기동했는데 그냥 죽어버립니다.”
“아이씨……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런 문제 때문에 제가 처음부터 오라클을 쓰자고 한 건데…… 비용 절감 한다고 오픈 DB 쓰니까. 문제 생겨도 물어볼 곳도 없잖아요.”
“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장은 문제 생긴 것부터 해결 해야 할 거 아냐.”
“저도 답답해서 그럽니다. 답답해서.”
오라클.
데이터 베이스 계의 절대 강자로 카피 하나에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물론 장점도 있었다. 문제가 생길 확률이 적고, 생긴다 해도 오라클에서 직접 나와 해결을 해주기 때문이었다.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이 오픈 DB였다. 오픈 라이선스를 사용하는 데이터 베이스로 이용은 공짜였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물어볼 곳이 없었다. 덕분에 문제 해결에 계속 시간이 지연되고 있었다.
“백업 디비도 같은 상태야?”
“네. 계속 네트워크 행이 걸리면서 IP 갱신만 하다가 메모리 차면서 뻗어버립니다.”
“하아……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운영팀장이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쉴 때쯤 문이 열리면서 강철이 들어오며 말했다.
“도커 스웜 네트워크 상태부터 확인해 보세요.”
“……네, 네?”
“도커 스웜을 사용하면 각 서버가 통신을 주고받으면서 계속 IP 갱신을 하게 됩니다. 이때 간혹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을 확인했어요. Git에서 코드를 확인해 보니까. 특정한 경우 데드락이 걸리면서 갱신된 IP가 계속 쌓이기만 해요. 그렇게 되면 리눅스 시스템에 부하를 주고요. 지금이 딱 그 상태인 것 같습니다.”
강철의 지시에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뒤따라 들어온 최윤아도 그 모습을 하나부터 열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내가 남자 하나는 잘 선택했단 말이야.’
그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