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게임 체인저
카메라를 통한 지형지물 인식.
그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체크 앱에서처럼 단순히 사물을 인식하여 무엇인지 판단하는 수준이 아니라 움직이는 물체를 감지하여 회피할지 직진을 할지 판단이 되어야 한다.
판단.
컴퓨터가 자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즉 인공지능적 요소가 가미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어려웠다. 사고와 판단은 인간의 영역이었으니까.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영역을 침범하는 컴퓨터들이 나왔다. 바로 이강철 같은 기술자들을 통해서.
강철이 디스트릭의 전체 개발진들을 모아놓고,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아이체크 앱에 적용된 카메라 인식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 기술을 이용해 사물을 인식하고, 저희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알고리즘을 적용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보입니다. 그러니 너무 실망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 걱정은 이 부분이 아니라 디스트릭의 1차 개발 목표였던 드론 변신에 대한 부분입니다.”
주리룬이 손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부분은 완료했습니다.”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미 비서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찾아온 건 실제 작동 모습을 보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볼 수 있을까요?”
주리룬이 눈짓하자 몇몇 개발진들이 개발된 드론을 들고 들어왔다. 주리룬이 그 드론을 들고 설명했다.
“이 드론의 이름은 트리스 원입니다. 최대 5㎏의 짐까지 이동시킬 수 있으며 작동방식은 택배 기사가 배송지 근처로 이동 후 이 드론에 물건을 장착시켜 보내면 됩니다.”
“그러면…… 당장 택배 기사가 사라지진 않겠군요.”
“네. 최초에는 택배 기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걸 점점 발전시켜 나가면서 최종적으로는 택배 기사가 없어도 되는 모델을 개발할 겁니다.”
“한번 보죠.”
고개를 끄덕인 주리룬이 드론을 들고 앞장섰다. 이내 강철이 그 뒤를 따랐다.
빌딩 바깥.
주리룬은 근처 공원에서 드론에 물건을 장착시켜 띄웠다.
휘리리리릭.
드론의 프로펠러가 빠르게 돌아가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여기 화면을 보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철이 화면에 집중했다.
하늘을 날아가던 드론은 정확하게 주리룬이 나온 빌딩 문 앞에 도착했다. 이내 날개가 멈추며 장착된 바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드론에서 팔이 하나 튀어나와 정면의 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주리룬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안에서부터는 엘리베이터를 찾아가 버튼을 누르고, 해당 호수로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부분에 대한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개발이 안 된 상황입니다.”
강철이 턱 주변을 문지르며 물었다.
“그럼 버튼을 누르는 부분은 개발이 된 겁니까?”
버튼.
그건 사람의 눈높이에 장착되어 있다. 50㎝ 크기의 드론이 누를 수 있는 높이가 아니다.
그 말에 주리룬이 컨트롤러의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조금 전처럼 드론에서 기다란 팔이 하나 뻗어 나왔다.
“이게 버튼을 누르게 될 겁니다.”
“좋군요.”
“사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은 간단합니다. 그 앞에 떨어뜨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빌딩이나 아파트는 관련 동, 호수를 찾아가야 해서 난도가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트리스 원은 그 부분을 중점으로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고요.”
강철은 그 밖에도 생각나는 문제점에 대해 꼼꼼히 따져 물었다. 그때마다 주리룬은 하나하나 시연해 보이며 설명했다.
주리룬의 말대로 빌딩이나 아파트 같은 건물 안에서 주행 부분만 해결되면 당장 사용해도 될 만큼 성능이 뛰어나 보였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던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건물 내부에서의 작동 부분만 개선되면 당장 사용해도 손색이 없군요. 다만 택배 기사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게 아쉽긴 한데…….”
“저희가 자체적으로 계산해 본 바에 따르면 트리스 원 5대가 추가 된다면 처리할 수 있는 물동량이 40% 정도 늘어납니다.”
그 말에 강철은 당연한 의문을 꺼내 들었다.
“그만큼 비용 절감이 된다고 치면 트리스 원의 생산 비용은요? 그게 서로 맞아야 상용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비싸면 도입하지 않으니 못하니까요.”
주리룬이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일단은 개발에 집중하느라. 생산 비용까지 신경 쓰진 못했습니다. 다만…… 가장 많은 제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배터리 부분이 될 것 같습니다. 최근 2차 전지 제조 비용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대부분 자동차용이라 이런 소형 드론용 전지는 고가입니다.”
잠시 고심하던 강철이 물었다.
“그 전지가 드론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요?”
“저희가 제작했을 때 35% 정도 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부분도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자신이 가장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두 부분을 해결해 준다는 말에 주리룬의 표정이 확연하게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강철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단 공짜는 아닙니다.”
그 말에 주리룬이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 * *
120조.
태국 유통시장에서 점유율 50%를 가져가면 60조 원이다. 그중에서 7%의 마진만 남겨도 4조 원이 넘는 이익이 매년 발생하는 것이다.
나일의 사장 데이비드 딩크스에게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었다.
“윌마트가 대산 그룹과 손을 잡고 태국 온라인 시장 진출을 선언해다 고요?”
데이비드의 질문에 CSO(최고 전략 책임자)가 답했다.
“네. 그래서 얼마 전에 이강철이 직접 태국 현지를 방문해 유통시장 현황을 파악해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과는요?”
“최근 파악된 소식으로는 중국에서 있다고 합니다. 그쪽에서 택배 전문 드론 개발 스타트업을 하나 인수했는데 거기에서 관련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개발에 매진한다는 말은…….”
“네. 직접 개발하는 모양입니다.”
“흠…….”
“거기 업체명이 디스트릭이라고 하는데 저희도 유심히 지켜보던 업체 중 한 곳이었습니다.”
데이비드가 미간을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아마 공중과 육상을 결합한 드론 배송을 하겠다고 했던 곳 같은데…….”
“맞습니다. 그곳 창업자인 주리룬이 뛰어난 공학도 출신으로 일반 단독주택만이 아니라 빌딩에서 택배 배송이 가능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게 개발된 겁니까?”
“일차적으로는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이강철이 가 있는 거고요.”
데이비드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강철.
최근 업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인물로 그가 관여해서 실패한 프로젝트는 단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그가 보유한 기업들의 가치가 수직으로 상승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개발 가능성은요?”
CSO가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
“실패한 지점이 어떤 부분인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해서 개발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판단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극비 프로젝트인지 내부 정보가 통제되는 상황이라…….”
데이비드의 근심이 깊어졌다.
강철.
그가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 유통 업계의 판도가 달라질 것 같은 직감이 계속 들기 때문이었다. 고심하던 데이비드가 물었다.
“우리 쪽 드론 배송 개발은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현재 클로즈 베타 테스트 중으로 연방항공청(FAA)에 드론 항공 허가까지 받았습니다. 시험 비행은 올해 중순쯤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쪽 스펙이 2.5㎏의 물건까지 배송 가능한 것이었죠?”
“맞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으로 디스트릭은 5㎏까지 배송 가능했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CSO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다만 해당 기능 구현을 위해 드론 제조 단가가 올라갈 겁니다. 더 무거운 물건을 들기 위해서는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드론에 장착되는 2차전지 비용을 고려한다면 상용화시키기 쉽지 않을 겁니다.”
CSO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주리룬이 말한 대로 빌딩 안에서도 배송할 수 있으려면 자율주행과 비슷한 성능이 구현되어야 합니다. 드론이 알아서 엘리베이터를 찾아 버튼을 누르고, 해당 호수를 찾아가 물건을 배달해야 하니까요. 그 부분 구현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만만치 않다.
CSO는 그 부분을 강조했지만, 데이비드의 머릿속에서는 한 사람의 이름이 떠나가질 않았다.
‘이강철은 아이온 인공지능을 개발해 서치에 매각할 만큼 인공지능 전문가다. 그렇다면 그런 기능도 결국 개발될 것 같은데…….’
다만 안심이 되는 부분은 상용화 여부였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너무 값이 비싸다면 현실에서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
데이비드는 그 부분을 위안 삼으며 걱정을 덜어냈다.
* * *
비슷한 시각.
강철은 중국에서 택배 드론 개발에 힘쓰고 있었다.
“이곳에 인공지능 칩을 더 넣으면 단가가 너무 올라가 버립니다. 통신 칩은 무조건 들어가야 하니 그걸로 외부에서 제어하는 편이 낫습니다.”
“하지만 빌딩 내부나 아파트로 들어가서 순간적으로 통신이 끊기게 됐을 때 문제가 발생할 텐데요.”
“그래서 현재 들어가 있는 칩으로 그 정도 행동은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걸 못해서…….”
주리룬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고려가 필요하군요.”
“네.”
대화를 나누던 중.
강철의 핸드폰이 드르륵거리며 진동했다.
“네.”
“어, 개발 완료했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1차 테스트해 보죠. 바로 원격 포팅 준비해 주세요.”
전화를 끊은 강철이 주리룬을 보며 말했다.
“아이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1차 테스트 진행해도 될 것 같다는군요.”
놀란 주리룬이 되물었다.
“벌써요?”
한 달.
강철이 중국에 온 지 한 달 만에 1차 테스트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발이 진척되었다. 자신들은 거의 포기하고 있던 일을 단 한 달 만에 하다니.
주리룬은 이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관련 연구를 계속 진행 중에 있었습니다. 덕분에 빨리 개발할 수 있었고요.”
주리룬이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아…… 하긴 서치에 아이온 인공지능을 매각하셨으니…….”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전에는 게임의 인공지능을 중국 게임회사에 팔았고, 대산의 추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면서 계속 관련 기술이 축적되었다.
그렇게 기술의 내재화가 있었기에 한 달이라는 시간 만에 1차 테스트가 가능한 모듈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어서 테스트 준비부터.”
“네.”
이내 빠르게 관련 준비가 세팅되고, 드론이 힘차게 프로펠러를 움직이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빌딩 앞에 멈춰 선 드론이 내부에 숨겨져 있던 팔을 뻗어 빌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강철이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모니터에 집중했다.
-I found the elevator.
-move.
-move.
-I'll push the button.
이내 기대하던 메시지가 로그 창에 나타났고, 드론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드론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터치하는 순간, 개발진들 사이에 환호성이 터져 나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 * *
청와대.
그곳에는 세상의 모든 정보가 모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강철이 요청한 드론 택배 허가 요청에 관련한 내용도 올라와 있었다.
장관급 직책이자 외교·안보를 제외한 경제·사회·교육 등 국가 정책 전반을 관리하는 정책실장 서종석의 귀에도 이 사실이 들어갔다.
“드론 택배?”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중국 스타트업에서 개발 중인데 실제 환경에서 테스트가 필요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시범 운영을 하려고 하는데…… 도시 한 곳을 정해달라고 요청해 왔다고 합니다.”
“드론 사업은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대상이잖아.”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대상.
우선 허용 사후 규제 대상으로 기업에서 일단 사업을 해도 되는 산업의 일종이었다.
“그렇긴 한데 이게 일반 가정집을 대상으로 택배가 날아다니다 보니 군사지역으로 걸리거나 항공로에 드론이 나타나거나 하는 문제가 있어서 검토를 요청한 것 같습니다. 특히나 빌딩 같은 경우에는 헬리콥터 비행 지역과 겹칠 수도 있으니까요.”
“흠…….”
“최대한 빨리해 달라는 특별 요청이 있는 걸 보니 개발이 거의 다 완료된 것으로 보입니다.”
“제출한 시나리오는 확인해 봤어?”
그 말에 보좌관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게 진짜 놀랍습니다.”
“어떤데?”
“일단 택배차에 드론을 싣고 가다가 대상 지역 근처에 도착하면 드론에 짐을 실어 날립니다.”
“그러면?”
“그러면 드론이 짐을 싣고 날아가다가 해당 빌딩이나 아파트 앞에서 자동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로비 문을 열고 들어가 해당 호수에 물건을 내려놓는 겁니다. 드론이 자동으로요.”
정책실장이 들어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건 마치…… 자율주행 느낌인데?”
흥분한 보좌관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갔다.
“맞습니다. 아시겠지만 자율주행도 단계가 있듯이 이런 드론 인공지능에도 단계가 있는데 꽤 고수준의 기술인 것 같습니다.”
“흠…….”
“관련해서 드론 제조 공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에서 줄 수 있는 혜택도 함께 물어왔습니다. 만약 별다른 혜택이 없다면 중국이나, 베트남 쪽에 생산 기지를 만들 생각인 것 같았습니다.”
“공장이 만들어지면…….”
“고용유발 효과가 상당할 겁니다. 더구나 드론 시장은 중국의 DJI가 전 세계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익률 또한 높아서 고부가 가치 산업군에 속하고요.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도와줘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서종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이강철’ 그 친구를 계속 마주치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보좌관이 생각에 빠진 정책 실장을 보며 말했다.
“이건 꼭 잡아야 합니다! 만약 생산 공장을 유치할 수 있다면 국민 여론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 밖에도 여론 홍보용으로도 좋고요. 세계 최고 드론 택배 상용화 및 생산. 멋들어지지 않습니까.”
서종석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중국 중관춘.
강철은 요즘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다시피 하며 드론 개발에 열중하고 있었다.
1차 테스트.
2차 테스트.
3차 테스트.
4차 테스트.
수많은 N차 테스트를 직접 총괄하며 개선해 나갔다.
게임체인저.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드론이 유통 시장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빌딩 앞 도착했습니다.”
“엘리베이터 탔습니다.”
“8층 눌렀습니다.”
“해당 호수로 이동 중입니다.”
“배송 성공했습니다.”
성공.
성공.
성공.
분명 테스트 도중 실패하는 때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성공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처음에는 1:9의 비율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4:6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성공으로.
“이번 성공으로 5:5로 올라왔습니다.”
강철이 주먹을 꽉 주었다.
“좋습니다. 지금 성공 확률이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으니 이대로 가면 앞으로 2달 후면 9:1 비율까지 되겠군요.”
“네. 그런데 그 정도로도 출시는 할 수 없습니다. 테스트 과정에서 10%가 유실된다면 실제 출시를 했을 때 얼마나 많은 고객 상품이 유실될지 상상도 되지 않으니까요.”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입니다. 100%가 될 때까지 출시는 안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100%가 된다고 해도 특정 지역에서 충분히 필드 테스트를 거친 후에 본격 출시할 예정이고요.”
대답을 들은 주리룬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생각에 주리룬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고 있었다.
* * *
선일 화학.
국내 2차 전지 제조 업체 중 단연 1등 업체로 최근 전기차 시대의 도래로 가파르게 상승세에 있는 회사이기도 했다.
최근 이곳의 전지사업 본부 본부장 홍지웅에게 깊은 고민이 하나 생겼다.
“대산 그룹의 요청을 거부할 수도 없고…… 현재 케파로는 그쪽에 공급할 물량까지 생산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데 말이야…….”
그 밑에 있는 부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재 전기차 대응을 위한 증설만 해도 여력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소형 전지 쪽 케파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흠…… 하지만 요청자가 이강철 회장이란 말이지…….”
이강철.
최근 재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성이었다. 그는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의 요청을 거부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드론 배송이라는 게 현재 나일에서도 아직 상용화하지 못한 시스템인데 어떻게 그 사람이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조금 부정적입니다.”
그 말에 홍지웅이 고개를 흔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이강철에 대해 제대로 찾아보긴 했어?”
신경질적인 반응에 당황한 부장이 말을 더듬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지금까지 이강철이 진행하는 사업. 다들 실패한다고 했어. DRP, DSP, 인공지능, 게임, 아이체크 등등등.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하나같이 성공했지.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부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데 실패할 거라는 말이 나오냐? 오히려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냐? 어휴 내가 널 데리고 지금까지 일을 해온 게 신기하다.”
“죄, 죄송합니다. 다만 그쪽에서 하는 말이 워낙 허무맹랑하다 보니…… 다른 팀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홍지웅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그가 하는 일 중에 허무맹랑하지 않은 게 어디 있었어. 너라면 서치에 인공지능 관련 업체를 매각한다는 게 믿기냐? 나스닥에 게임 업체를 상장시키는 건?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재벌로부터 기업을 빼앗는 게 믿겨?”
부하직원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일투성이기 때문이었다.
홍지웅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는 그런 믿기지 않는 일들을 해낸 사람이야. 그렇기에 이번 사업 성공을 점치는 사람이 많아.”
부하직원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회장님께 그대로 보고 하면 되지 왜 애꿎은 절 달달 볶으십니까. 본부장님도 잘 믿기지 않으니까 그러시는 거 아닙니까.’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굳이 내뱉지 않았다. 그게 부하직원의 미덕이기 때문이었다.
본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게 두 눈으로 확인이 되면 좋겠는데…….”
그러면서 슬며시 부하직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부장이 그 의미를 알아듣고 바로 입을 열었다.
“그쪽에 말해서 제가 중국 출장 한 번 다녀올까요? 실제 실물이 있고 그대로 작동한다면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는 거니 공장 케파를 그쪽에 투입해도 될 것 같은데.”
홍지웅이 슬며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럴래?”
“하하, 당연히 그래야죠.”
부장이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중국 중관춘.
출장을 나온 선일 화학 손민수 부장이 빌딩 앞에 내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3시까지 여기로 오라고 한 것 같은데…….”
그런 손민수 부장의 눈에 한 무더기의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 얼핏 강철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저긴가 싶어 몇 걸음 옮기다 보니 위이잉 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멀리서 드론 하나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어, 저게 맞는 것 같은데…….”
드론 택배.
손민수가 이곳에 온 건 그게 정말 제대로 작동되는지 보러 온 것이다. 그리고 저 드론이 자신이 생각하는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거대한 짐을 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드론은 곧장 자신에게 날아왔다.
“어…… 어…….”
곧장 충돌할 것 같아 피하려 하자 드론 역시 회피 기동을 하며 손민수를 피했다.
놀란 손민수가 드론을 보고 있자 일순 기계음이 들렸다.
-죄송합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고 끼익 소리와 함께 기다랗고 얇은 철제 팔이 하나 뻗어 나왔다. 그 팔이 곧장 문손잡이를 잡고 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놀란 손민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내 손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 드론을 따라갔다.
빌딩 안에서는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 비켜주시겠습니까.
택배 드론은 연신 사과 음을 내며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나갔다.
손민수는 그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보았다. 하지만 아직 클라이막스는 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택배 드론이 또 한 번 팔을 뻗어 버튼을 누른 것이다.
“헐…….”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이내.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왔고, 택배드론은 익숙하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손민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놀라움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택배 드론이 팔을 뻗어 8층을 누른 것이다.
“그게 진짜였어…….”
택배 드론의 놀라운 모습을 자신의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보고 있었다. 손민수는 직감했다.
‘이건 잡아야 한다. 엄청나게 팔릴 거야.’
이내 엘리베이터는 8층에 도착했고, 드론은 알아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한 집 앞에 멈춰선 드론이 등 뒤에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았다.
-택배 도착했습니다.
기계음을 내뱉은 드론이 돌아서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러 갔다. 손민수는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마른침만 꿀꺽 삼킬 뿐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손민수가 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네. 성공하는 거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회장님께 보고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거 진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제품입니다.”
“아닙니다. 이건 테슬라만큼 혁신적인 제품입니다.”
“네.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손민수가 멍하니 드론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드론은 유유히 그 위에 올라타 사라졌다.
손민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 * *
100%.
현재까지 총 300번의 테스트를 진행했을 때 나타난 결과였다. 단 한 건의 배송 오류도 없이 정상적으로 배송에 성공해 낸 것이다.
“성공했습니다.”
강철의 그 말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그간의 고생이 단 한 순간에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주리룬이 환한 표정으로 강철에게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회장님이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주리룬도 수고 많았습니다. 이건 하드웨어가 없다면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저 만의 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주리룬이 벅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
그 한 글자를 위해 수년간 달려왔다. 이제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필드 테스트를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대산에 적용해 보고 싶으시다고요?”
“네. 그게 잘되면 태국, 중국, 미국 이런 식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드론 배송이라는 게 당국의 허가도 받아야 하니까요. 아직 여러 난관이 남은 셈입니다.”
주리룬이 그런 강철을 보며 말했다.
“그 점은 회장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강철이 픽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힘든 건 제게 맡기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하, 제 속마음을 들켜 버렸네요. 뭐랄까요. 회장님이 맡아주시면 뭐든 해결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든달까요.”
지난 몇 달간.
함께 동고동락하며 드론 개발에 매달렸다. 덕분에 둘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진 것이다.
주리룬이 신뢰 가득 찬 눈빛으로 강철을 보았다.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문제가 생겼는데요.
-이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테스트를 진행하며 수없이 터져 나왔던 말들이다. 그때마다 강철이 나섰고, 문제는 해결되었다. 주리룬이 강철을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런 둘 사이로 낯선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선일 화학에서 나온 손민수 부장이라고 합니다. 드론에 들어가는 2차 전지 건 때문에 왔습니다.”
“아! 하긴 오늘 온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하하, 네. 맞습니다. 2차전지 단가 협상 전에 실물을 한번 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수량을 어느 정도나 예상하는지 등등 여러 협의할 사항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강철이 손을 들어 비서를 호출했다.
“심 비서!”
하지만 심태선은 강철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취재진을 비롯해 다른 회사 관계자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살짝 한숨을 내쉰 강철이 손민수를 보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눌까요.”
“네.”
손민수는 결심했다. 이 드론 택배는 미래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이 건은 무조건 성공시켜야 한다고.
* * *
아이온미디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아이비디오에 만들어진 채널명이다. 이 채널은 아이온 그룹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그룹의 주요 기술을 소개하는 채널이었다.
거기에 새로운 동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이 드론의 택배 운송법.
그런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에서는 트럭에서 날아오른 드론이 빌딩 숲을 가로질러 고객의 집까지 안전하게 배송하는 영상이 플레이되었다. 그걸 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최정은 : 역시 이강철 일낼 줄 알았다.
-놀다가다 : ㅎㅎ이제 택배기사 일자리 사라짐 인정?
-한량놈 : 09:13 드론 귀엽다.
-붉은소리 : 이거 시범 지역 선정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우리 집으로 왔으면 좋겠다.
-ak44 : 이제 택배 기사들 어쩔.
수많은 댓글이 달리며 조회 수가 순식간에 천만 뷰를 넘어섰다. 그뿐만 아니라 이 영상을 기반으로 언론사에서도 연일 기사를 뿜어댔다.
-이강철 회장 또 한 번 혁신을 만들어내다.
-한국의 일론 머스크 이강철. 이번에는 드론 택배로 세계시장 공략.
-DJI가 독점 중인 드론 시장. 택배 드론으로 도전장을 내밀다.
등등의 제목을 달고서.
그리고 이 영상을 한국인들만 보는 건 아니었다. 나일의 회장 데이비드 딩킨스도 영상을 보고 있었다.
“…….”
영상을 본 데이비드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직 택배기사가 없어도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영상만 보면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드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기능성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데이비드에게 비서가 말했다.
“필드 테스트 일정은 한 달 후라고 합니다. 한국 정부와도 긴밀한 협조가 되었는지 일정이 빠르게 잡혔습니다.”
“테스트 지역은요?”
“원주라고 강원도 소도시 중 한 곳입니다. 문제는 미국, 태국,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 동시다발적으로 시험 비행 허가 요청이 확인되었습니다.”
데이비드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곧 자신 있다는 뜻 같은데…….”
“네. 공식 발표에 의하면 최종 테스트에서 단 한 건의 택배 유실 없이 정상 배송했다고 합니다.”
“흠…….”
“우리 쪽 개발진들에게도 시험 비행 일정을 앞당기라고 할까요?”
데이비드는 비서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영상에 집중했다. 혹시나 자신이 놓친 문제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몇 분을 살펴봤지만 별다른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디스트릭에서 말하는 시나리오는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고심하던 데이비드가 물었다.
“혹시…… 인수 문의는 넣어봤습니까?”
“1년 전에 한 번 문의를 해봤지만, 저희가 투자를 진행하기 전에 이미 이강철이 지분을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아니 그때 말고 지금.”
“아, 지금은 아직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강철이 보여온 행보를 보면 인공지능부터 게임사, 압축 알고리즘 회사까지. 여러 회사를 키운 후에 매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회사도 매각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가격이 문제일 것 같습니다. 이건 이미 상용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아마 엄청난 액수를 부를 게 확실합니다.”
그 말에 데이비드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물류는 쇼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분야에서 선두를 빼앗기게 되면. 온라인 쇼핑의 왕좌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몰라요.”
데이비드의 단호한 말에 비서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액수를 얼마나…….”
“DJI가 150억 달러 정도로 평가받고 있으니 한 100억 달러부터 제안해 보세요.”
100억 달러.
11조 원이라는 엄청난 돈이었다.
하지만 비서는 왠지 강철이 팔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이 듣기로 넷플러스로부터 DRP 매각 제안을 받았지만 팔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것도 비슷하게 되지 않을까.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약 가격 협상 자체가 안되면 어떻게 할까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데이비드는 고민해 봤지만 당장 어떤 수가 떠오르진 않았다. 단 하나의 방법이 있긴 했다.
“우리 개발자들을 독려해서 택배 드론을 더 빨리 만들라고 하는 수밖에.”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회의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 * *
비슷한 시각 한국.
강철은 오랜만에 밟은 한국 땅에서 깊이 숨을 들이켰다.
“휴우…….”
태국을 거쳐 중국까지.
몇 달을 외국에서 지나다 보니 한국이 그리웠다. 멀리서 김치 향이 느껴지는 듯한 그 느낌이 심신을 안정시켜주었다.
강철은 경호원들의 안내에 따라 입국장을 빠져나와 빠르게 차가 대기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막차에 타려는 그때.
누군가 강철을 불렀다.
“이강철 씨.”
고개를 돌린 강철이 동그랗게 눈을 떴다.
“최윤아…… 씨? 여기까진 무슨 일이십니까.”
“도통 연락이 안 되니 직접 찾아올 수밖에요.”
“아…….”
개발.
그걸 하는 동안 다른 연락은 일절 받지 않았다. 어차피 아이온 그룹은 각 계열사 사장이 존재한다.
대산 그룹도 마찬가지다. 바지사장이긴 하지만 능력 있는 외국인 CEO가 있었다. 그들이 있기에 강철은 안심하고 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다.
최윤아가 날카롭게 비서를 보았다.
“비서분에게 몇 번이나 연락했지만, 개발에 집중하고 계셔서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 와중에 아주 엄청난 걸 들고 오셨고요.”
그 말에 강철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서서히 사람들이 모이며 핸드폰을 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차에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
강철의 차 안.
강철은 굳은 표정으로 창밖을 보았다. 덕분에 차 안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여기까지 찾아오신 걸 보니 무척이나 급한 일이신가 보군요.”
그 말은 곧.
급한 일 아니면 알아서 해라.
최윤아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물론이에요. V스토어 협업 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중국에서 드론 개발하는 동안 계속 딜레이 되고 있어요.”
“그건 대산 쪽 개발자들 V스토어 앱 리뉴얼을 비롯해서 DRP 연동 개발까지 진행 중인 것으로 아는데요.”
“그거 말고 지분 투자 건 말이에요. 아이온 그룹에서도, 대산 그룹에서도 대표님이 안 계시다고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고 있잖아요.”
아…….
지분 투자.
그리 급한 건이라 생각지 않았기에 뒤로 미뤄놨던 작업이었다. 그제야 굳어져 있던 강철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심 비서. 지분 투자 건 가치 측정은 끝났습니까?”
“네. 최종적으로 3,400억으로 V스토어 측과 협상 마무리했습니다.”
그 말에 최윤아가 턱을 치켜들었다.
“거봐요. 내 말이 맞잖아요.”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건은 그럼 사인만 하면 되는 겁니까?”
“네. 일정 잡을까요?”
강철이 최윤아를 슬쩍 보며 말했다.
“네. 최대한 빠르게 잡으세요. 이러면 됐습니까?”
최윤아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그려졌다.
“좋아요. 진작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요.”
하지만.
강철은 최윤아가 단순히 이 건을 처리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설마 자신을 보러 온 건가? 그런 생각도 조금 들었다. 재벌가의 예쁜 딸이 자신을 만나러 공항까지 온다…….
강철도 그리 싫진 않았다. 그랬기에 말이 절로 부드럽게 나갔다.
“볼일이 끝난 겁니까?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더 남은 겁니까.”
“만드신 드론 있잖아요.”
“네.”
“내부에 인공지능 칩을 넣어서 사용하려면 불가능할 테죠? 단가가 너무 올라가니까.”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최윤아가 입가를 씩 올리며 말했다.
“그럼 외부와 통신을 해야 하는 건데…… 통신사 어디 쓰실 거예요?”
…….
자신과의 관계 때문에 이곳까지 찾아왔나 잠시 착각하긴 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최윤아는 재벌 집 딸다웠다.
“VK 통신사를 사용하면 어떤 혜택이 제공됩니까?”
“호호, 아마 들으시면 깜짝 놀랄 겁니다. 가장 먼저 500라인 개설 시부터 혜택이 제공되는데…….”
최윤아는 마치 영업사원이라도 된 것처럼 관련 서류를 잔뜩 꺼내 브리핑을 해나갔다.
강철이 묻는 말에도 한 치의 빈틈 없이 답했다. 과히 재벌 집 둘째 딸다웠다.
* * *
다음 날.
오랜만에 회사에 복귀한 강철은 자리에 앉자마자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결제문서 : 94건 대기 중.]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문서가 재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개발 도중 가끔 중요 건에 대해 결제를 처리했음에도 이 정도였다.
“후우…….”
깊은숨을 내쉰 강철이 빠르게 문건을 처리해 나갔다.
그것만으로도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점심을 막 먹고 올라오자 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비서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큰 건 이라는 뜻이었다.
“나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역시나 자신의 예상대로였다.
“어떤 일입니까?”
“디스트릭을 인수하고 싶다. 100억 달러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강철이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흔들었다.
“거절하세요. 이건 파는 사업이 아니라고.”
“알겠습니다.”
비서의 말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청와대에서 면담 요청이 왔습니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제조 공장 투자 관련 내용으로 공장 부지에서부터 세금 혜택까지. 도움 줄 수 있는 부분을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에다가 공장을 지어달라고 합니다. 이게 첫 번째 안건입니다.”
“그리고요?”
“두 번째 안 건은 트리스 원이 원주에서 첫 번째 배송하는 순간을 대통령님께서 직접 축하해 주고 싶다 합니다. 그래서 관련 일정을 조율하자 합니다.”
“대통령님이 직접 오신다고요?”
“네. 드론도 4차 산업의 핵심 분야 중 하나라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았습니다.”
“대통령님이 직접 오신다라…… 홍보 효과는 확실하겠군요.”
“네. 아무래도.”
“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네. 이 두 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비서는 물러나지 않았다. 보고해야 할 사항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할 말 있으면 지금 바로 하세요.”
“KJ 택배에서 드론 판매가 가능한 건지 문의해 왔습니다. 드론 판매에 대한 CTO님 결정이 필요합니다.”
드론 판매.
디스트릭에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대산 마트 입장에서는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 차별성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할까…….
예전부터 고민해 봤지만 당장 결론을 내리기 힘들었다.
“그건 한 번 고민해 보겠습니다.”
“네. 그럼 그 건은 보류 하겠습니다. 그리고 트리플 매니저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식사 자리 한번 마련하고 싶은데 일정이 어떻게 되냐면서.”
“아! 식사.”
몇 달 전 태국에서 했던 약속이었다. 강철이 잠시 잊고 있는 약속이기도 했다.
“그것도 하긴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밥을 안 먹고 살 수는 없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정 잡아보세요.”
“알겠습니다.”
강철이 지친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 끝입니까?”
비서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비서가 딱딱 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시작입니다. 아이온 그룹 나스닥 상장 준비가 완료되어 최종 결정이 남아 있습니다. 서류 검토를 하셔야 하는데 그게 저기 옆에 쌓여 있는 서류입니다.”
비서가 탁자 위에 차곡히 쌓여 있는 서류를 가리켰다.
강철이 질린 눈으로 그 서류를 보았다. 비서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비서의 말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강철은 속사포 같은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차라리 개발할 때가 좋았구나…….’
확실히 높은 위치로 올라가니 알아야 할 것도, 해야 할 일도 너무 많았다.
* * *
VK 통신사 빌딩 최서훈의 집무실.
그곳에서 그의 딸 최윤아가 최서훈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뭐라고 하든?”
“일단은 생각해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V스토어 지분 투자 건은 다음 주에 사인하기로 했고요.”
“흠……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단 말이야. 중국에서 몇 달 뚝딱뚝딱하더니 드론 택배? 그런 걸 만들어서 나타나다니.”
“능력이 있다는 뜻이겠죠.”
최서훈이 눈을 가늘게 뜨며 최윤아를 보았다.
“너…… 그 친구한테는 엄청 호의적이다. 다들 재벌집 자제들 소개시켜 줬을 때는 콧방귀만 뀌더니. 능력이 있다는 뜻? 네가 그런 칭찬을 한 걸 본 적이 없는데.”
“그가 가진 능력을 회장님도 보셨잖아요.”
최서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봤지. 아주 능력 있는 놈이라는 걸 그리고…….”
꽤 괜찮은 생각을 가진 놈이라는 걸.
하지만 그 뒷말은 굳이 딸에게 하지 않았다.
“이 드론 때문에 유통․택배 업계가 들썩이고 있어요. 이걸 운영하는 곳이 물동량, 속도 면에서 다른 업체들과 비교가 안 될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다른 업체들은 말라 죽겠지.”
“네. 그리고 정부에서도 드론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정부에서?”
“군에서 사용하기 제격이잖아요. 폭탄을 나른다거나, 폭탄을 제거한다거나. 지금까지 나온 드론 중에 이토록 높은 자율성을 가진 드론이 없었으니까요.”
최서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대부분의 드론이 사용자가 직접 컨트롤 했어야 하니까. 자율 운행이 가능하다면 사용성이야 엄청나겠지.”
“이건 마치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능처럼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고 있어요. 얼마 전 아이비디오에 올라온 영상은 벌써 수천만 뷰를 기록했고요. 그만큼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는 뜻이겠죠.”
“그거 혹시 우리 쪽에도 사용할 방안이 없을까?“
최윤아가 들고 있던 서류를 한 장 내밀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당연히 있죠. VK 캅스. 거기에서 매번 순찰도는 인력을 드론으로 대체한다면 인건비 절감 효과가 상당할 겁니다. 사고 시 출동 인력만 유지하면 되니까요.”
그 말에 최서훈이 손잡이를 탁 쳤다.
“맞네!”
“VK 캅스 비용 구조를 보니까. 70%가량이 인건비더군요. 그게 절감된다면 이익률이 엄청나게 개선될 거예요.”
최서훈이 연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야. 이참에 그것도 한 번 문의해 봐. 드론으로 순찰이 가능한지.”
“이미 그 날 문의해 봤어요. 그거야 택배 드론보다 훨씬 간단하다고 하던데요. 이미 드론에 카메라를 비롯한 각종 센싱 장치들이 붙어 있으니까요. 문제는 도심지에서 대규모로 드론을 운용하려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하더라고요. 택배와는 용도가 다르니까요.”
최서훈이 딸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역시 내 딸이다.”
“그래서 회장님은요?”
“으,응? 뭐가 말이냐.”
“강철 씨 만나본다면서요. 만나보고 어떻게 됐는지 왜 말씀이 없으세요.”
순간 최서훈의 이마에서 삐질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이번에는 최윤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최서훈을 보았다.
“그, 그건…….”
“설마 VK 그룹의 회장님께서 그냥 만나기만 하고 아무런 결과도 못 가져오신 건 아니시겠죠?”
“아, 아니지.”
“그럼 말씀해보세요. 어떻게 됐는지.”
처음이었다. 최윤아가 남자에 대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이. 최서훈이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내가 아주 중요한 걸 알아왔어.”
최윤아가 고개를 끄덕였고, 최서훈이 말을 이었다.
“그 녀석 아주 대찬 놈이더구나. 생각이 바른 놈이야.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하고 싶다고 하던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길 원한다면서. 절대로 비지니스로 하고 싶진 않대. 어떠냐? 이 정도면 엄청난 정보 아니냐? 이건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그놈의 속내야.”
그 말에 최윤아가 픽 코웃음을 흘렸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네요.”
결혼.
행복.
이런 내용은 재벌가에서도 아주 친밀한 사람들에게나 내보이는 사적인 영역이었다.
그걸 안다는 말은 사적으로 친하다는 뜻이었다. 놀란 최서훈이 물었다.
“벌써 그 정도로 친해진거냐? 그러면 아주 좋은 징조인데…….”
최윤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선미 언니 알죠?”
“알지. 진가 놈 딸 아니냐.”
“그 언니도 관심이 있어서 한 번 관심을 보였는데 대차게 차인 모양이더라고요. 그때 그런 말을 했데요.”
“아…….”
“하여간 회장님도 그게 다란 말이네요.”
그런 최서훈을 보며 최윤아가 결정타를 날렸다.
“그래도 엄마랑 정략결혼하고 뒤늦게 새 사랑을 찾은 아빠보다는 낫네요.”
최서훈이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사회에서는 세상 누구보다 성공하고 인정받는 재벌이지만 가정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랬기에 딸이 진정한 사랑을 만나 결혼하길 원했다.
최서훈은 미안함에 그런 마음을 더해 최윤아를 바라보았다. 최윤아도 입을 다문 최서훈을 마주 보았다.
“그럼 먼저 일어날게요.”
최서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나일 미국 본사.
데이비드의 최근 주요 관심사는 오직 하나 드론 택배였다.
“매각을 안 하겠다고?”
“네. 금액도 제안을 안 한 걸 보니 아예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소식에 과히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면 최대한 우리 쪽 드론 개발을 서두르는 수밖에 없겠군요.”
데이비드의 시선이 회의실에 앉아 있는 택배 드론 개발 팀장을 보았다. 팀장이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재 시운전 막바지 단계입니다. 앞으로 세 달 이후면 필드에서 시험 비행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말에 데이비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쪽에서는 더 뛰어난 기능으로 한 달 이내에 필드 테스트를 진행한다는데 우리는 기능도 떨어지면서 석 달이나 걸린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데이비드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갔다. 흥분했다는 뜻이었다.
뒤쳐짐.
그건 데이비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고, 나일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개발 팀장이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일정을 두 달이나 당기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개발 팀장이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데이비드가 끊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한 달입니다.”
개발 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일정을 당겨서 앞으로 한 달 안으로 오픈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기능은요?”
“현재 상태에서 트리스 원과 비슷한 기능을 구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자칫 예상치 못한 문제 상황에 당면할 수 있어서…….”
그런 개발 팀장을 데이비드가 찌릿 노려보았다. 그 날카로운 눈초리에 개발팀장이 몸을 움찔 거렸다.
“그래서 안 된다.”
개발 팀장의 목소리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고양이 앞에 쥐 같은 그 모습이 안쓰러운 지경이었다.
“네. 그건 정말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아…… 알겠어요. 그럼 한 달 안으로는 무조건 시험 비행 할 수 있도록 진행하세요. FAA(연방항공청) 측에도 통지하고.”
“네.”
그렇게 한 달 후.
미국 실리콘 밸리와 한국 원주에서 동시에 시연회를 가졌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데이비드는 인상을 구겼고, 강철은 자신만만한 웃음을 보였다. 온라인 쇼핑계의 절대 강자 나일이 최초로 체면을 구긴 날이었다.
* * *
한국 원주.
강철이 환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 화면에는 막 배송을 끝낸 드론이 다시 택배 트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내.
-배송 완료.
그 문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러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상 첫 드론으로 배달한 택배였다.
함께 있던 대통령 천건복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정말 대단하군요. 놀랍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걸 불과 수 개월 만에 만드셨다고요?”
“이미 만들어 둔 것에 수저를 얹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 스타트업을 알아보고 투자를 한 것도 대표님이라 하더군요.”
강철이 민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하, 네. 뭐.”
천건복이 환한 표정으로 강철을 보며 말했다.
“대표님 덕분에 대한민국의 장래가 아주 밝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드론 택배의 성공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드론이 직접 택배를 배송했다. 전 세계에서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지만, 상용화가 된 건 이게 최초였다. 그만큼 행사장의 분위기는 축제를 방불케 했다.
잠시 후.
대통령이 자리를 떠나고, 여러 기업인이 축하 인사를 전해왔다.
택배.
유통.
관련 기업에서부터
로봇.
드론.
관련 기업들까지.
수많은 기업인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앞으로 대량 생산될 드론 택배는 블루 오션이나 마찬가지다. 거기에 한 발 걸치기만 해도 돈방석에 앉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러 기업인과 한참 동안 인사를 나누고, 대략 마무리가 되었을 때쯤. 정책실장 서종석이 강철에게 다가왔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오늘 자리는 약속된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둘은 조용한 곳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앉았다. 서종석은 그리 달갑지 않은 상대였기에 바로 일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정부에서도 리쇼어링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공장을 건설하고, 제조업을 영위하는 사업자들에게 최대한의 혜택을 주려고요.”
“네. 하지만 인건비가 저렴한 다른 나라에 비교해서는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인건비에서 절약되는 비용과 한국에 공장을 건설했을 때의 차이를 비교해 보면 대략 30%의 비용 증가가 예상되니까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충주 쪽 산업단지 부지를 싼값에 제공할 예정입니다. 지자체에서도 동의했고요. 그뿐만 아니라 드론은 4차산업 핵심 분야이기 때문에 5년간 법인세도 30%가량 절세가 될 겁니다. 그 밖에도 운영비용인 수도, 전기, 가스 등등의 비용 감면 혜택이 있을 겁니다.”
강철이 턱을 만지작거렸다.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대졸 노동자의 한 달 평균임금이 320달러입니다. 그에 반해 한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인력 채용을 진행했을 때 최저 임금이 그 열 배를 넘어갑니다. 그에 비교해 주어지는 혜택은 너무 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군요.”
10배.
그래서 많은 기업이 베트남에 공장을 지으려고 한다. 손익 계산을 따져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혜택은 베트남에서도 제공하는 것들이었다.
강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방금 말씀하신 내용보다 더 좋은 혜택을 베트남에서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서종석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 베트남으로 가.’
그 말이 목구멍까지 솟아올랐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드론 택배.
앞으로 세상을 바꿀 이 제품을 꼭 메이드 인 코리아로 만들라는 대통령의 특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종석이 한 번 더 간청했다.
“인건비 부분은 저희로서도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공장 용지 법인세 혜택 각종 인허가 절차. 앞으로 드론이 전국 도시에 퍼질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절차 도입 등등에서 최대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강철이 기다렸다는 품에서 서류를 한 장 꺼냈다.
“이건 내부적으로 논의한 요구사항입니다. 말씀하신 규제 사항들에 관한 내용과 현재 법에서 허용하는 내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을 나열해 두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고 가능하면 한국에서의 공장 건설을 진지하게 검토해보겠습니다. 비용이 많이 든 만큼 한국 공장을 짓는 것에 대한 장점도 분명 있으니까요.”
그 말에 서종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 알겠습니다. 바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서종석은 바로 서류를 펼쳐보았다.
-창업중소기업 세액감면 : 4년간 법인세 50% 적용.
-연구개발비 지원 : 투자금 40% 공제.
-인건비 지원 : 인건비 10% 보조.
…….
지원 사항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전부 중소기업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었다. 그랬기에 의아했다.
“그런데 이건 전부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대표님의 아이온 그룹이나 대산은 해당이 안 될 텐데요…….”
“디스트릭은 제가 개인 자금으로 투자한 회사입니다. 아이온이나 대산의 돈은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즉 일절 상관이 없다는 뜻이죠. 규모도 중소기업이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아…… The Startup. 그럼 거기에서 투자하신 돈이 전부 대표님 개인 자금…….”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서종석이 꿀꺽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국내 재벌들의 재산은 현금이 아니라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지분 가치에 따라 재산이 큰 폭으로 오르기도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강철은 아니다. The Startup을 전부 개인 돈으로 투자했다면 적어도 수천억이 넘는 현금이 있다는 것이다.
‘하긴 서치에 매각한 기업가치만 해도 몇조가 되는구나…….’
서종석은 생각했다. 어쩌면 한국 제일의 현금 왕이 바로 눈앞의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 * *
반면.
미국 실리콘밸리 나일 본사 분위기는 침통하기 그지없었다.
“테스트 끝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데이비드의 문책에 드론 개발 팀장이 입을 꾹 닫았다. 데이비드가 그런 개발 팀장을 보며 말했다.
“말씀을 좀 해보세요. 답답하게 조용히만 있지 말고.”
“일단 코스트 다운을 위해 저가형 센서를 사용한 것이 1차 원인입니다. 해당 센서들이 갑작스러운 이상 작동을 하는 바람에 드론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개발 팀장의 변명에 데이비드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또 말씀해 보세요.”
“그리고 아직 자율비행 기능이 성숙 되지 않았습니다. 인공지능 전문가를 여럿 뽑아 고도화를 시켰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가상 환경에서는 그 부분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러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길 수 있는 필드 테스트에서 드러나게 된 겁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회오리에 드론이 정신 못 차리고 바닥으로 추락했다는 말입니까?”
개발 팀장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회오리까지 구현해 가면서 테스트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경쟁사 제품 출시를 따라잡기 위해 일정까지 앞당기면서 서두르느라 기존 테스트 시나리오도 체크가 안 된 게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변명에 데이비드는 끓어 오르는 화를 겨우 참아냈다.
“후우…… 끝났습니까?”
아직 몇 가지가 더 있었다. 하지만 개발 팀장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았다.
“…….”
그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데이비드가 CHRO(최고인사책임자)에게 말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이내 CHRO가 문을 열자 뿔테 안경에 곱슬머리의 사내가 나타났다. 데이비드가 새롭게 나타난 사내를 보며 말했다.
“인사하세요. 여기 새로운 드론 개발 팀장.”
그 말에 기존 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표님.”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을 계속 같은 자리에 앉혀 두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잘 아시잖아요.”
이번에는 기존 드론 개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시간을 끌면 자신만 추해질 뿐이었다.
드론 개발 팀장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인수인계는 어떻게 할까요?”
“여기 이분에게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기존 개발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떠나 버렸다. 이내 그 자리에 새롭게 온 사람이 앉았다.
데이비드가 그 사람을 보며 말했다.
“드론 분야에 전문가라 들었습니다.”
“하하, 맡겨만 주십시오. 영상 보니까 별것도 아니더군요. 금방 됩니다.”
남자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견 허세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결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MIT 수석 졸업.
-서치 자율주행팀 근무.
-페이스북 AI 하드웨어 개발팀 근무.
-애플 칩 설계부문 근무.
등등 이력이 화려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그랬기에 데이비드도 자신만만한 그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네. 앞으로 2달 안에 결과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굳어진 데이비드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이강철은 이미 성공했다. 더 늦어서는 안 돼.’
그러면 정말 나일의 아성이 위협받는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 * *
나일이 드론 개발에 매진하는 사이.
강철은 드론 택배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당장 가지고 있는 생산 시설이 없으므로 그전까지는 중국 제조 업체에 OEM을 맡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1차 초도 물량이 500대.
그걸 전부 원주 시내에 투입했다. 택배 기사들의 업무는 줄어들었고, 배달 속도는 빨라졌다.
빅트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중 소비자들이 만족하는 ‘지정시간’ 배송. 이 서비스는 택배 인력의 한계로 일찍 마감되곤 했다.
하지만 드론이 도입되면서 점점 지정시간으로 배송할 수 있는 양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물론 간혹가다가 문제가 생기는 예도 있었다. 하지만 드론 택배를 운용함으로써 생기는 이득이 더 컸기에 양산되는 족족 배송에 투입했다.
덕분에 원주에서 빅트리 이용자는 한 달 만에 2배가 폭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강철은 그 모델을 그대로 태국으로 가져갔다. 태국 총리는 놀라운 기술에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하며 관련 규제를 확실하게 풀어주었다. 기존에 닦아두었던 관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택배 배송 시간은 타 업체보다 2배가량 빨라졌고, 그건 곧 윌마트로의 소비자 이동을 의미했다.
-MoM +30%.
매달 30%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하며 태국 시장을 잠식해 버린 것이다.
강철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사업모델을 그대로 동남아시아 전역에 도입했다.
태국을 기점으로.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교통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동남아에서 드론 택배가 도입됨으로써 배송 시간이 비약적으로 빨라 졌고, 그건 곧 윌마트의 온라인 사업 부문이 가파른 상승을 의미했다.
나일의 아성이 실제로 위협받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