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39화 (39/59)

3장 태국에서 생긴 일

1월 1일 새해.

누구는 집에서 올해의 계획을 세우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지만, 강철은 아니었다.

-곧 방콕 국제공항에 도착합니다.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행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윌마트의 온라인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가장 먼저 태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직접 찾은 것이다. 수행 인원과 비행기에서 내린 강철은 빠르게 입국장으로 이동했다.

입국장을 빠져나오자마자.

-꺄아아아악!

-트리플! 트리플!

-꺄아아아악! 사.랑.해.요.

어색한 한국말이 강철의 귀를 때렸다.

‘트리플?’

트리플이라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걸그룹이자 엘리가 소속된 그룹이었다.

그런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 번 비명이 들렸다.

-엘리!

-나은!

-여름!

트리플 멤버들의 이름이었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돌려보았다.

마침 선글라스를 쓴 트리플 멤버들이 입국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매니저가 살짝 고개를 숙여왔다. 강철도 마주 눈인사를 해주었다.

‘태국에서 공연이 있나 보네.’

강철의 생각은 거기에서 끝이었다. 바로 대기하고 있던 수행 요원들을 따라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막 입국장으로 들어서던 엘리의 반응은 달랐다.

뚝.

걸음을 멈춘 것이다. 변한 분위기를 눈치챈 매니저가 엘리의 어깨를 툭 쳤다.

“뭐 해. 가야지.”

“…….”

엘리는 멍하니 멀어지는 강철의 등을 보고 있었다. 매니저가 한 번 더 재촉했다.

“야, 보는 눈이 몇 개인지 알아?”

엘리가 그제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당장에라도 뛰어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매니저의 말대로 지금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잠시 고민하던 엘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럼 약속하나 해요.”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약속?”

“태국 콘서트 티켓 전달해 주세요.”

“……뭐?”

“꼭 오지 못하더라도 초대는 한번 하고 싶어요. 어차피 명분도 있잖아요. 그간 함께 촬영한 시간이 많으니까.”

“지난번에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윗선에서 안 된다고 오더 내려왔다니까.”

“저도 보는 눈이 있고, 귀가 있어요. 저분 청와대에서 대통령도 만난다면서요. 그런 사람보다 높은 사람이 어딨어요.”

“그, 그렇기야 하지만.”

“이거 안 해주면 지금 쫓아가서 제가 직접 전할 거에요.”

엘리의 협박에 매니저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거부할 수 없는 거래였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지금은 그냥 가자.”

그제야 엘리는 멈추었던 발걸음을 옮겼다.

* * *

그날 저녁.

일과를 마친 강철에게 비서가 다가왔다.

“대표님.”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엘리 측에서 콘서트 티켓 4장을 보내왔습니다.”

“콘서트라면…….”

“네. 이번 트리플 태국 공연 티켓입니다.”

“동생이 트리플 팬인데 주면 좋아하겠네.”

“그런데 매니저가 대표님도 꼭 한 번 참석했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간 촬영을 하면서 받은 것들이 너무 많다면서요.”

“흠…….”

트리플의 공연이라.

강철도 한번 가보고 싶긴 했다. 과거에도 강철은 삼촌 팬의 마음으로 트리플을 좋아했었으니까. 더구나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게 해준 그룹 아닌가.

강철이 매니저를 보며 물었다.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되지?”

“내일은 윌마트 2호점 방문이 있습니다. 이후 이곳 물류 쪽 관계자들과 대담 회가 있고요. 그게 끝나고 저녁 6시에는 태국 총리님과 만찬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태국의 벤처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부탁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공연 시작이 8시니까 빠르게 이동하면 볼 수는 있을 겁니다.”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습니다. 늦게라도 참석하도록 하죠.”

“네. 그럼 관련 준비해 놓겠습니다.”

강철이 탁자 위에 내려놓은 티켓을 집어 들며 말했다.

“이건 내가 가족들에게 전해 줄 테니까. 심 비서도 오늘은 그만 쉬세요.”

“네.”

이내 강철은 티켓을 들고 바로 옆 방으로 이동했다.

강철은 가족을 위해 호텔 최상층에 있는 최고급 스위트룸 두 개를 연달아 예약했다. 해외로 출장을 갈 때마다 이런 식으로 방을 예약해 가족과 함께했다.

어머니.

두 손이 거칠어지다 못해 지문이 닳도록 일만 하느라 평생 해외여행 한번 가보지 못한 어머니에게 못다 한 효도를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머니가 창가에 서서 방콕의 야경을 보고 있었다.

“어때?”

강철의 어머니 최용희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돈이 참 좋긴 좋아.”

“좋지.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버는 거 아니겠어.”

그런 어머니의 옆으로 동생 이희진이 착 달라붙었다.

“오빠, 여기 진짜 좋다. 뉴욕에서도 좋았는데 태국은 또 다른 분위기네.”

“좋으면 됐다. 자 이거 주려고 들렸어.”

강철이 선물 받은 티켓 네 장을 내려놓았다. 그걸 본 이희진이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 이거 트리플 콘서트 티켓이잖아.”

“이번에 태국에서 한다더라고. 나랑 The Startup 찍은 인연 때문인지 티켓을 보내왔어.”

“헐…… 진짜? 요즘 트리플 인기 장난 아닌데. 이번 신곡 내자마자 빌보드 차트 인에 아이비디오에서 조회 수 5천만 뷰 기록했잖아.”

강철이 어머니 최용희를 보며 말했다.

“엄마는 어때? 트롯이 아니라서 별로지?”

확실히 최용희는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희진이 너무 좋아해서일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아니다. 빌보드까지 올라간 노래라니 궁금하긴 하네. 마침 너랑 프로그램도 같이했고.”

이희진이 그런 최용희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 엄마 여기 꼭 가야 해.”

이희진의 말에 최용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무슨 말이니?”

“엘리 그 친구. 오빠랑 열애설 났었잖아.”

강철이 급히 입을 열었다.

“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최용희가 반색하며 강철에게 물었다.

“열애설? 정말이야?”

“아니라니까. 아무 사이도 아니야. 기자들이 가십거리가 없으니까. 뉴스 만든 거야.”

이희진의 미소가 점점 더 짙어졌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말하는 모습이 여간 얄미운 게 아니었다. 강철이 이희진을 보며 도끼눈을 떴다.

“희진아. 이번 달 카드 값이…….”

카드값.

그 한마디에 전세가 단숨에 역전되었다. 이희진이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강철의 입을 막으려 했다.

“오빠!”

“읍읍.”

강철이 힘으로 이희진의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런 유언비어 자꾸 퍼뜨리지 말자. 알았지?”

순식간에 순한 강아지가 된 이희진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하, 당연하지. 나 입 엄청 무거운 여자야.”

그러면서 검지로 입에다가 자크를 채웠다. 하지만 지금 최용희에게 중요한 건 카드 값이 아니었다.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니까. 아직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 없어.”

그 말을 듣자마자 최용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네 나이도 서른이 넘었다. 지금도 만나는 사람이 없으면 도대체 결혼은 언제 하려고.”

결혼.

이 세상 모든 부모님의 걱정거리 1순위였다. 강철의 어머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걱정 마. 좋은 사람 만나서 할 거니까.”

“그렇게 말 한지가 벌써 4년이 넘었어. 결혼은 그렇다 치고 연애라도 좀 해라. 너 모태솔로로 평생 늙어 죽을 거야?”

그 말에 강철이 픽 헛웃음을 터뜨렸다.

모태솔로라고?

내가?

전생에 결혼에 이혼까지 했었는데…….

하지만 최용희가 이런 사실까지 알 리 없었다. 강철이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엄마도 알겠지만 이런 자리에 오게 되면 가장 조심해야 할 게 사람이야. 어떤 목적으로 접근하는지 모르니까.”

최용희가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엄마도 알지만…… 너무 늦으니까.”

“난 늦는 것보다 틀리는 게 더 무서워. 결혼했다가 이혼한다? 그 후폭풍이 엄청날걸.”

그 말에 최용희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뭐, 지금까지 알아서 잘해왔으니까. 결혼도 알아서 잘하겠지.”

최용희의 포기에 강철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강철이 그런 어머니를 뒤에서 살포시 안았다. 최용희가 부끄러워하며 강철이 살짝 밀쳤다.

“얘는 다 커서 남사스럽게 뭐 하는 거야.”

아기 때는 등 센서가 붙어 있어 바닥에 내려놓은 적이 거의 없었다.

업고, 안고, 메고.

잘 때도 배 위에서 재울 만큼 품에서 놓은 적이 없는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좀 컸다고 언젠가부터 이런 포옹 한번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 어색할 뿐이지 싫진 않았다.

강철이 그런 엄마에게 작게 속삭였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정말 괜찮은 사람 데려와서 엄마처럼 아들딸 하나씩 낳아서 행복하게 살 테니까.”

최용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태국 시각 저녁 8시 30분.

1차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온 엘리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왔어요?”

대기하고 있던 매니저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대신 가족들이 왔더라.”

그 말에 엘리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가족들이라면…….”

“어머니랑 동생.”

그 말에 동료 나은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엘리의 어깨를 툭 쳤다.

“시어머니랑 시누이 왔네. 이거 잘 보여야 하는 거 아냐?”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그러면서 왜 화장 다시 고치고 있냐.”

급히 아이라이너로 눈가를 리터치 하던 엘리가 슬그머니 아이라이너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렇게 여유롭게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콘서트는 초 단위로 스케쥴이 짜져 있다.

“올라갈 시간입니다! 어서 마무리해 주세요!”

스탭의 말에 멤버들이 급히 마무리하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엘리도 비장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강철이 허리를 숙이며 관객석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이희진이 반가움에 손을 흔들었다.

“오빠! 여기야. 여기.”

그런 이희진의 눈에 강철의 뒤를 따르는 여자가 한 명 들어왔다. 그 여자는 강철의 뒤를 바짝 따라 이희진이 있는 곳까지 다가왔다.

“누구…….”

이내 강철이 그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여기는 태국 총리님의 둘째 딸. 평소 트리플의 팬이라고 해서 티켓도 한 장 남기에 겸사겸사 같이 왔어.”

하지만 콘서트의 소음에 묻혀 잘 전달 되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대.

-머리가 두근대.

-매일매일 생각이나.

트리플의 가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철이 한 번 더 목청을 키웠다.

“태국 총리 둘째 딸. 평소 트리플의 팬이래.”

그제야 이희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강철이 이희진, 최용희를 태국 총리 딸에게 소개했다.

“이쪽은 제 동생. 그리고 여기는 어머니.”

총리 딸이 어색한 한국말로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타냐 찬 오카에요.”

어색한 인사가 오가고, 다들 자리에 앉는 순간.

강철은 왜인지 모르지만 따가운 시선을 느껴졌다.

‘뭐지…….’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다 보니 초대형 스크린에 나오는 엘리와 딱 눈이 마주쳤다.

왜인지 그 눈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 * *

콘서트가 끝나고.

강철은 매니저의 배려로 가족들과 함께 대기실을 찾았다.

이희진.

타냐 찬 오카.

이 둘이 열렬한 눈빛으로 원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태국 총리는 평소 딸을 사랑하기로 정평이 나 있어. 눈도장을 찍어둬서 나쁠 건 없겠지.’

강철은 그런 생각으로 둘을 데리고 콘서트가 끝난 대기실을 찾았다. 매니저가 멤버들에게 강철 일행을 소개해주었다.

“여기는 이강철 대표님 동생분 그리고 여기는 태국 총리님 둘째 딸.”

그의 목소리가 살짝 흥분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공식 5위 부자.

태국 총리 딸.

한 명 한 명이 자신이 상대하기에는 급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늘 공연 잘 봤습니다. 이번 신곡도 좋더군요.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

트리플의 리더인 나은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앞으로 The Startup 후속작도 함께 찍어야 할 텐데 우리 엘리도 잘 부탁드려요.”

“엘리 씨야, 워낙 혼자서도 잘하셔서 제가 도와줄 부분이 없더군요. 그리고 여기 동생이랑 타냐가 사인을 받고 싶다 하셔서요. 혹시 가능할지…….”

“물론이죠.”

그 대답에 이희진이 가장 먼저 나은에게 달려들었다.

“정말 팬이에요!”

“호호, 네. 감사해요.”

총리 딸도 수줍게 나은에게 다가가 들고 온 CD 한 무더기를 내밀었다.

트리플 1집부터 3집까지.

전체 CD였다. 나은은 이 사람이 자신들의 찐 팬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은이 엘리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네 생각이 틀린 것 같은데?”

그 말에 엘리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이내 재빨리 그 CD를 받아 들며 사인을 해주었다. 간단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고마워요.”

총리 딸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어색한 한국말을 내뱉었다.

“감.사.합.니.다.”

“네.”

“호, 혹시 사진도 가능…….”

엘리.

차가운 인상의 그녀는 팬들 사이에서도 접근하기 어려워하는 스타 중 한 명이었다. 덕분에 그녀와 사진을 찍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엘리가 고개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해요.”

총리 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이희진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저, 저도요!”

이희진의 말에 엘리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네. 이분 찍고 찍어요.”

그 말에 나은이 픽 웃음을 흘렸다.

“우리 엘리 기분이 아~ 주 좋아 보이네. 아까는…….”

말을 하던 나은이 슬쩍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사진을 찍은 엘리가 찌릿 시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팬 서비스 시간이 끝나고.

돌아서서 가려는 강철에게 엘리가 말했다.

“고마워요.”

“네? 뭐가…….”

“지난번 중국에서 광고 건 해결해 주신 거요. 아직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 드린 것 같아서요.”

“괜찮습니다. 그 건은 저로 인해 벌어진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The Startup에서도 관련 지식이 전무함에도 많이 배려해 주셨잖아요.”

“하하, 네.”

“그 점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씀을 못 드린 것 같아서요.”

거듭된 인사에 강철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강철은 여전히 그녀를 사무적으로 대했다.

엘리는 그 상황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은이 그런 엘리의 어깨에 손을 턱 얹으며 눈짓했다.

‘언니만 믿어.’

순간 불안해진 엘리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후후후.’

악마 같은 미소를 지은 나은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시간 나시면 다음에 멤버들이랑 같이 밥이라도 한번 먹어요. 함께 촬영한 시간이 있는데 그 정도는 괜찮잖아요.”

갑자기 웬 밥?

그리고 기업인이 연예인과 밥을 잘 못 먹었다가 열애설이라도 나면 서로 타격을 받게 된다.

강철은 그 점을 말하려 했지만 나은이 한발 빨랐다.

“고마워서 그래요. 고마워서.”

그 말에 강철도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엘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작게 미소 지었다.

간단한 팬미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희진이 음흉한 미소로 강철을 보았다. 강철이 그런 이희진을 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또 왜.”

“역시 아니 땐 굴뚝에 난 연기가 아닌가 봐.”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엘리.”

“엘리가 왜.”

“오빠한테 관심 있는 거 같던데.”

“야, 그런 아이돌 스타가 왜 나한테 관심을 가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 말을 들은 최용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뭐? 우리 철이한테 관심을 가져? 하긴 우리 아들이 인물이 못나, 능력이 없어. 여자가 안 붙는 게 이상하긴 하지.”

“엄마, 그 잘난 아들을 아이돌 중에서도 도도하기로 소문난 스타가 짝사랑하는 것 같아.”

강철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희진을 보았다.

“이거 그 사람한테 치명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는 일이야. 너 입조심해야 해.”

“풉, 오빠만 모르고, 거기 있는 사람 다 알고 있는 눈치던데.”

강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리가 나를…….’

그러고 보니 촬영장에서도 말 수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유독 자신에게만 이것저것 물어보며 살갑게 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이희진이 잠시 상념에 빠진 강철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나이 차이가 한 9살 나나. 뭐, 요새 그 정도는 흠도 아니니까.”

최용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강철에게 말했다.

“그래. 엄마도 찬성이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제발 만나기만 해라.”

강철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태국의 환한 밤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엘리…… 엘리라…….’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출장의 목적은 엘리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것이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택배였다.

“현재 태국 소비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택배 기간입니다. 아무래도 교통망, 주소 체계 등인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은 곳이 많다 보니 택배가 유실되거나, 시간이 오래된 경우가 타 국가 대비 월등히 높습니다.”

윌마트 태국 지부 담당자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당장 우리 쪽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 일은 택배사에 일절 위임된 상태라 손을 놓고 있는 셈이죠. 만약 이 부분의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다면 태국 유통시장을 독점하는 것도 문제는 아닐 겁니다.”

배송기간.

하루 만에도 택배가 도착하는 한국과 달리 태국의 사정은 달랐다. 길면 일주일이 걸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래서 태국 온라인 쇼핑 소비자들이 꼽는 불만 사항 중 1위가 배송 기간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강철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하나였다.

“드론 배송이 되면 해결될 수도 있겠군요.”

“하하, 물론 그렇게만 되면 최선이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나일에서도 시험 배송 일정조차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겠죠.”

강철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론 배송.

말은 간단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기계 공학에서 컴퓨터 공학까지. 무수히 다양한 지식이 들어가야 한다.

프로그래밍이야 자신이 어떻게든 한다고 치지만 드론 제작은 또 누가 할 것인가…….

고민하던 강철의 머릿속으로 불현듯 한 업체가 스쳐 지나갔다.

‘아! 한 군데가 있구나.’

중국.

그곳에서 인수한 스타트업 중 하나가 드론을 제작 업체였다. 이미 세계 드론 시장의 70%는 DJI가 점유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 업체도 범용 드론 시장을 뚫겠다는 건 아니었다.

유통.

오로지 그 분야에 최적화된 드론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해서 강철이 투자한 회사였다.

“심 비서.”

“네.”

“중국 디스트릭에 연락 한번 해봐요. 개발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드론 제작 전문 업체 말씀이십니까?“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 업체 개발이 어떻게 되고 있느냐에 따라서 태국 유통시장을 장악할 수 있을지 결정될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 * *

중국 중관춘.

중국의 실리콘 밸리라 불리는 곳으로 수많은 창업가가 부푼 꿈을 안고 개발에 힘쓰는 곳이었다. 디스트릭을 창업한 주리룬도 그런 꿈을 꾸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 꿈이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직원 한 명이 들어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안 됩니다.”

그 말에 주리룬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GPS가 가리키는 주소로 찾아갈 수는 있지만, 빌딩이나 아파트 같은 경우 동 호수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드론이 건물 입구에서부터는 바퀴로 이동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함께 개발했던 직원이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거기에서 진전이 없어요.”

그 말에 주리룬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얼마 전 The Startup에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 드론이 공중에서 육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모듈을 개발했다.

마치 로봇처럼 변신해 공중은 프로펠러로, 육상에서는 바퀴로 이동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간 이후가 문제였다. 그때부터는 GPS가 아니라 마치 자율주행처럼 건물 내부를 인식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동 호수를 찾아가야 한다. 그 부분에서 나아가질 못하고 있었다.

직원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일단은 건물 앞까지 가는 거라도 됐으니까. 그걸로 출시를 해보고…….”

그 말에 주리룬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 정도는 DJII에서 이미 개발한 부분이잖아요.”

직원이 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 주리룬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좀 예민했어요. 이제 나가봐도 됩니다. 제가 방법을 좀 고민해 볼 테니까.”

“네.”

이내 직원이 주리룬을 방을 나갔다. 그러자마자 주리룬이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아…….”

최고의 택배 드론.

그 목표는 확실히 쉽지 않았다. 한발 다가간 것 같으면 또 멀어지고, 또 다가간 것 같으면 멀어졌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심호흡하며 절망을 털어낸 주리룬이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드론 하나에 라이다를 달면 비용이 너무 올라가 버려. 어차피 그 정도 수준의 센서가 필요치도 않고. 테슬라처럼 최대한 카메라로 들어오는 정보 분석을 통해 건물 내에서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뛰어난 인공지능이 필요했다. 그러자 주리룬의 머릿속으로 한 사람의 이름이 머리에서 스쳐 지나갔다.

‘아이온 인공지능의 대표였던 그라면 혹시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그때.

직원이 또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표님.”

“어, 왜요.”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약속을 잡은 일이 없었다. 그런데 손님이라니…….

그 뒤에 서 있는 남자를 보며 주리룬이 눈동자를 부릅떴다.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그곳에는 자신이 방금 이름을 떠올린 남자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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