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36화 (36/59)

7장 경쟁 상대(2)

서울 제일 호텔.

서울에 존재하는 유일한 7성급 호텔로 최근 강철이 진선미에게 넘긴 호텔이기도 했다.

그곳 입구가 아침부터 분주했다. 오늘 이곳에서 두 거대기업의 수장이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여기 먼지 떨어져 있잖아. 한 톨도 없이 깨끗하게 하란 말 못 들었어.“

총지배인이 직접 뛰어다니며 상황을 진두지휘했다.

”저기 카펫은 각 잘 잡아. 저기 비뚤어졌잖아!“

이강철.

최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이었다.

그리고 넷플러스 CEO 테드 하트리.

변형 인플루엔자 덕분에 사용자가 폭발하면서 시가총액 200조가 넘는 기업의 수장이 이곳으로 오기로 되어 있었다. 일은 비밀리에 추진되었기 때문에 딱히 기자들이 나와 있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게 총지배인이 분주히 뛰어다닌 결과.

호텔 입구는 완벽하게 정리되었고, 검은색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이 호텔 주변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강철이 호텔로 들어섰다.

”테드 하트리는요?“

”공항에서 이쪽으로 바로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조건으로 사전 조율은 끝난 겁니까?“

비서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네. 최종적으로 NRP를 2,500억에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대표님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사기로 했습니다. 그게 대략 500억가량의 가치를 평가받았습니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 제작 시 추가 인센티브가 있고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철이 약속 장소인 호텔 꼭대기 층으로 이동했다. 일박에 500만 원이 넘는 방으로 세계 유수의 기업인들이 한국을 찾을 때 거쳐 가는 방이었다.

거기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

테드 하트리가 방으로 들어섰다. 강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오랜만입니다. CEO님.“

테드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마지막으로 헤어졌을 때와는 사뭇 다른 자세였다. 그때의 고압적인 태도는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강철은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애써 참았다.

”계약부터 진행할까요?“

”네.“

이내 비서진들이 분주히 서류를 준비해 두었고, 둘은 차분히 서류를 살폈다. 끝까지 서류를 읽어내려간 테드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기술 기업이 아닌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입니다. 선택과 집중을 위해 NRP를 매각하는 것이고요.“

”네. 충분히 숙지했습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대표님이 가진 기술보다 대표님의 상품성입니다.“

”들었습니다. 저의 가치를 500억 정도로 측정하셨더군요. 그래서 NRP의 가격도 그만큼 깎아주신 거고요.“

”하하, 네. 이를테면 전속계약금이라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앞으로 대표님을 모티브로 만들어지는 드라마, 영화, 만화 등등의 계약에서 저희가 우선시 되는 것을 조건으로 드리는 계약금이요.“

기존에 협상한 그대로였다.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둘은 사인을 마치고 두 손을 맞잡았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인을 마치자마자 테드가 비서에게 손짓했다.

”준비한 거 가져와.“

”네.“

이내 강철의 앞에 또 다른 서류가 놓였다.

”이건 말씀드린 대로 앞으로 The Startup 시즌 10까지. 전속 계약서입니다. 그리고 그 뒷장은 The Startup의 영화화 제작 계약서고요. 제목은 추후에 바뀔 수 있습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들처럼 대표님의 이름이나 회사명으로요.“

자신을 모티브로 영화가 만들어진 다라…….

강철은 그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앞에 놓여 있는 계약서는 이게 사실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영화 계약서군요.“

”네. The Startup이 초유의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영화나 애니메이션 화를 해도 상당한 인기를 얻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더구나 저나 회사에서 볼 때 앞으로 대표님의 활약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고요. 그 전에 대표님을 잡고 싶은 거죠.“

”흠…….“

강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드 하트리가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제 막 30대 시니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아닙니까?“

강철이 움찔했다. 테드의 말이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테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일들이 성과를 거둘수록 대표님의 인지도는 높아지고, 저희가 만든 컨텐츠의 가치도 올라갈 겁니다. 유명 기업인의 인기가 웬만한 연예인보다 나은 시대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강철이 펜을 움직여 사인을 마쳤다.

하지만 아무리 조용히 처리한다고 해도 이것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관련 내용이 빠르게 언론을 통해 퍼져 나갔다.

-대산 그룹. 넷플러스 추천 플랫폼 사업 부문 2.2억 달러 인수.

-넷플러스 NRP 2.2억 달러에 매각.

뉴스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강철 M&A 광폭 행보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다. 필리핀, 태국, 일본, 인도 등지의 온라인 쇼핑몰 인수 타진 중.

-빅트리, 아시아 온라인 쇼핑몰의 패자를 노린다.

-한국의 쇼핑몰. 전 세계를 향해 선전포고하다.

강철이 비서에게 지시한 내용도 언론을 통해 흘러나간 것이다. 일반 시민들에게야 별 상관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주식 시장은 아니었다.

+17%.

뉴스가 터진 날 17%나 상승한 대산 그룹의 주가는.

+5%.

+7%.

그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일주일 사이에 50%가 넘게 상승한 것이다.

그전에 지분을 매각한 진선미로서는 당연히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비슷한 수준의 재벌가 지인의 생일 파티에 참석한 그녀가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이유였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기도훈.

영화만 출연했다 하면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을 수 있는 티켓 파워를 가진 연예인이었다. 그만큼 수려한 외모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말에도 진선미의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

”오늘은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네요.“

”하하, 네.“

그 말에 기도훈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기도훈이 물러나고, 이번에는 한 중견그룹 장남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선미 씨.“

하지만 진선미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싸늘하게 몸을 돌리는 것으로 대화를 거부했다. 그 역시 한발 뒤로 물러나고, 이번에 다가온 것은 VK 통신사의 차녀 최윤아였다.

”언니, 오랜만이에요.“

”왔구나.“

그제야 그녀의 미간이 조금 풀렸다.

”뉴스 봤어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벌이던데요?“

그게 무엇인지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느낌이야. 뭐, 이미 알고 있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용민 오빠 길길이 날뛸 모습이 상상되네요.“

냉랭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진선미가 처음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 그건 쌤통이다.“

”두 분 사이는 여전하네요.“

”달라질 일이 없으니까.“

이내 진선미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최윤아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너 V 스토어를 이강철한테 맡기기로 했다면서.“

최윤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번에 회사에서 V 스토어 프로젝트를 맡게 됐는데 일 한번 크게 벌여보려고요.“

진선미가 고개를 모로 넘기며 물었다.

”흠…… 그게 다야?“

최윤아가 태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럼요.“

하지만 진선미는 믿지 않았다. 최윤아가 얼마나 여우 같은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쉽지 않을 거야. 나도 몇 번이나 도전했는데 실패했거든.“

그 말에 최윤아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진선미의 콧대가 얼마나 높은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적극적으로 대시를 한다면 무너지지 않을 남자가 없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연예인 부럽지 않은 외모에, 한국 최고의 재력을 가진 그녀를 거부할 남자는 없었으니까.

”하긴 강철 씨 정도면 언니 눈에 들긴 하겠네요.“

진선미가 들고 있던 샴페인을 한 잔 마셨다. 그러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내가 나이만 좀 어렸어도…….“

그러면서 슬쩍 최윤아를 보았다.

”어쩌면 너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최윤아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네? 호호,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그 말에 진선미가 살짝 눈을 흘겼다.

”내가 널 모르니? 솔직하게 말하면 몇 가지 알려줄 수도 있는데…… 진짜 관심 없어?“

최윤아가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벌컥 샴페인을 한 잔 마시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진선미가 그런 최윤아의 어깨를 툭 쳤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관한 이야기인데…… 나도 몇 번이나 차이면서 겨우 알아낸 거야. 너도 알다시피 그의 개인사에 관해서는 세간에 알려진 바가 없잖아.“

최윤아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 그녀를 보며 진선미가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뭐, 진짜 관심 없으면 됐고.“

고심하던 최윤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강철은 VK 통신사 본사를 찾았다. 최윤아와 했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발표는 함께 온 천준호가 담당하였다. 강철은 어렵거나 난처한 질문이 나오면 답해주기 위해 온 것이었다.

하지만 천준호는 이렇게 큰 규모에서 발표는 처음이었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천 과장님이라면 잘할 수 있습니다. ‘리턴’에 대해서라면 저만큼 잘 아시니까요.“

”열심히 하긴 했지만…… 제가 개발만 하다 보니 이런 일에는 영 익숙하질 않아서.“

”이렇게 익숙해져 가는 거죠.“

용기를 북돋아 주다 보니 어느새 대회의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V 스토어 핵심 개발진 30여 명가량이 앉아 있었다. 간단한 인사가 오가고 바로 발표가 시작되었다.

”그, 그럼 지금부터 ‘리턴’ 언어 설명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천준호의 말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용을 틀리게 말하거나, 별다른 실수를 하진 않았다.

그렇게 발표가 끝나고 마지막 순서인 Q&A가 시작되었다. Q&A를 하자마자 한 남자가 손을 들며 물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적은 양의 코딩으로 많은 양의 작업을 처리하기 위해 컴파일러가 무거워질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프로그램의 규모가 커질수록 컴파일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참고로 V 스토어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서버의 경우 코드 용량만 100메가 가까이 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라서요.“

”아, 그건 마이크로서비스로 만들어 우회하면 됩니다. 어차피 하나의 대규모 프로젝트에는 여러 기능이 들어가 있으니 그걸 독립적인 수준으로 나눈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리고 차기 버전에서는 그런 문제점도 사라질 거고요. 그걸 해결한 방식은…….“

흥분해 핵심 기술을 유출하려는 듯한 모습을 강철이 제지했다.

”네. 거기까지.“

그 말에 천준호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이내 또 다른 개발자가 손을 들었다.

”먼저 발표 잘 들었습니다. 저도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그렇게 몇 번의 티키타카가 오갔지만, 천준호가 대답하지 못할 질문이란 없었다.

강철이 그런 그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 자신이 관여하지 않아도 충분히 제 할 일을 해내고 있었다.

* * *

회의가 끝나고.

강철은 빌딩 꼭대기 층에 있는 최서훈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얼마 전 그의 비서로부터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비서의 안내에 따라 집무실로 들어서자마자 TV에서나 보던 익숙한 얼굴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철에게 다가왔다.

“반갑네.”

“이강철입니다.”

“하하, 그래. 요즘 자네 이름을 모르면 간첩이지. 앉아.”

자리를 권한 최서훈이 비서를 불렀다.

“여기 차 좀 내와. 특별한 손님이니까 신경 좀 쓰고.”

“네.”

잠시 후 비서가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차를 한 잔 내왔다. 최서훈이 그 차를 들며 말했다.

“8582칭빙이라고 80년대에 생산된 보이차야. 오래된 만큼 깊이가 있어.”

8582칭빙.

시장 유통가격만 2천만 원이 넘는 최고급 차였다. 최서훈이 아끼는 사람이 왔을 때만 대접하는 차이기도 했다. 그만큼 강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였다.

흐릅.

한 모급 마신 강철이 감탄을 흘렸다.

“좋군요.”

차에 대해 잘 모르지만, 심신이 안정되면서 온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차가 아닌 약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게 아주 귀한 거야. 구하고 싶다고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소위 부르는 게 값이라 할 수 있는 거지.”

“감사합니다.”

“자네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네. VK 통신사의 한 단계 레엘업을 위해서 V스토어의 활약이 꼭 필요해. 그 활약에 자네는 중요한 키맨이고.”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상호 좋은 결과가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자네가 최선을 다해준다니 마음이 놓이는구만.”

그렇게 몇 분 정도 담소가 오갔다.

강철도 이 자리에 특별한 의미를 두진 않았다. 이런 식으로 친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재벌가의 연락은 수도 없이 받았으니까.

하지만 최서훈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일하기에는 어때? 사실 윤아가 자존심이 센 녀석이라 일을 할 때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그 말에 최서훈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강철을 보았다.

“하하, 그래?”

“네. 대부분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뤄지는 요구사항들이라 잘 조율하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내 최서훈이 흐룹 하는 소리와 함께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둘이 죽이 착착 맞는다는 말이군.”

찻잔을 잡아가던 강철이 순간 멈칫거렸다. 저 말이 너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설마 나랑 딸을 엮어보려는 건가…….’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진탕 술을 먹은 것도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강철이 슬쩍 운을 띄웠다.

“하하, 네. 조금 과하긴 하지만 전생에 부부였다 해도 좋을 정도로 착하면 척이더군요.”

‘부부’라는 말에 최서훈은 오히려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 정도였어? 이거 아주 좋은 소식이구만.”

대부분의 딸 가진 부모라면 외간 남자의 ‘부부’라는 말에 거부감을 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서훈은 오히려 이 말을 반기는 느낌이었다.

강철의 직감에 확신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확실해. 나와 최윤아를 이어주고 싶어 하는군.’

이제 이런 일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대산 그룹 VIP 행사.

청와대 오찬 행사.

어디를 가든 자신을 가족과 엮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천지였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다행스러운 일이죠.”

“그래. 앞으로 잘해보자고, 어려운 점 있으면 서슴없이 이야기하고.”

강철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상대의 패 한 가지를 본 듯한 기분에 찻잔을 내려놓는 강철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강철이 회사로 돌아가고.

최윤아가 최서훈의 집무실로 올라왔다.

“부르셨어요.”

“그래. 내가 잘 이야기했어. 그 친구도 널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더라.”

이곳은 회사다. 최윤아는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

“뭐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몇 마디 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그 친구가 먼저 너랑 전생에 부부였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죽이 척척 맞는다고 하더라.”

최윤아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 아주 좋은 소식이라 하고 말았지.”

그 말에 최윤아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강철이 어떤 생각을 하고 돌아갔을지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마 아빠가 날 자신과 엮어주려 하는 거로 생각했겠지.’

최윤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업에 관해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람이 딸에 관해서는 어쩜 저렇게 바보 같을 수 있을까. 이해가 잘 안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서훈은 잔뜩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 손잡이를 탁탁 두드렸다.

“걱정하지 말고 아빠만 믿으라고 했잖아. 그 녀석도 관심 있다니까. 앞으로 잘될 일만 남았다.”

최윤아는 깊게 한숨을 내쉴 뿐, 더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 * *

미국 실리콘 밸리 넷플러스 본사.

회사로 돌아온 테드 하트리는 강철과의 계약 내용을 직원들에게 공유해주었다.

“우리는 종합 엔터 회사입니다. NRP 매각은 비주력 사업 부문에 대한 매각이고요. 앞으로 여러분들도 그 점에 유의해서 일을 처리해 나가기 바랍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NRP를 매각함으로써 생긴 수입에 대한 투자 방향에 관해 설명했다. 그 설명이 전부 끝나고, 회의에 참석한 이사가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해 보세요.”

테드의 말에 운영 이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앞으로 회사는 종합 엔터 회사로 나아간다는 말씀이군요.”

“네.”

“그러면 기존 시스템 운영도 에어비앤비처럼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겁니까? 추천시스템은 자체 시스템을 접고 DRP를 쓰게 되는 거고.”

테드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NRP를 매각하면서도 고민하고 있던 문제였다.

자체 추천시스템.

그건 NRP와는 달랐다. 외부에 공개하는 추천 플랫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관련해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찬성입니다. 어차피 엔터 회사로 가고자 한다면 거기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IT 기술 인력에 대한 인건비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이들만 잘라내도 회사의 고정비가 지금보다 1/3은 줄어들 겁니다. 그 돈을 컨텐츠에 투자한다면 더 많은 양의 질 좋은 컨텐츠가 탄생할 겁니다.”

하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넷플러스는 엔터 회사이자 기술회사입니다. 빠르고, 쾌적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현재 기술 수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현재 수준의 인력을 유지해야 하고요. 여기서 더 자른다면 넷플러스만의 특징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제 말은 전부 다 자르자는 게 아닙니다. 일단 추천 시스템도 DRP를 사용하면 되니까. 그 부분도 매각하면 어떻겠냐 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사실 같은 성능에 더 싼 서비스가 있는데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부터 추천 성능을 1%, 2% 올리는 비용 대비 효과는 그렇게 나오지도 않습니다. 거기에 서비스 운영 역시 클라우드로 옮기고 비용을 절약해 보자. 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한동안 갑론을박이 계속되었다. 잠자코 대화 내용을 듣고 있던 테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도록 하죠.”

테드가 자신이 생각한 절충안을 제안했고, 그 안은 회사 중역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강철은 넷플러스 한국 지사에 도착해 있었다. 한국 지사장이 버선발로 나와 강철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입니다.”

“하하, 네.”

살짝 고개를 숙인 강철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이쪽이 화상 회의실입니다.”

강철이 지사장의 안내에 따라 이동했다. 오늘 회의는 넷플러스 측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졌다.

-혹시 대산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추천시스템의 성능이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대략적인 성능 수치를 말하자.

-그러면…… 그걸 우리 쪽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까?

-DRP의 성능은 우리 쪽 요구수준을 맞추지 못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런 연락이 도착했다.

추천시스템의 명가 넷플러스.

그곳에서 자사의 추천 시스템 운용 일체를 맡기겠다는 내용이었다. 넷플러스까지 DRP를 사용하게 되면 서비스의 파급력이 더 높아질 것이 자명했다.

그만큼 중요한 회의였기에 강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럼 화상회의 시작하겠습니다.”

회의 시작을 이야기하자마자 전면의 화면이 분할되며 넷플러스 측 인사들이 나타났다. 자사의 추천 시스템 개발 핵심 인력들이었다.

강철이 그들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먼저 DRP 프리미엄 서비스의 성능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강철이 데려온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고객 데이터 입력하겠습니다.

-각 고객별 비디오 스트리밍 가상 데이터 입력하겠습니다.

-분석 시작했습니다.

-결과 나왔습니다.

입력한 가상데이터는 전부 넷플러스 측에서 제공한 것이었다. 그걸 이용해 데이터를 가공하고, 결과를 뽑아내 넷플러스의 검증을 받는 것이 이번 회의의 목적이었다.

일련의 작업이 끝나고 강철이 화면에 보이는 인물들에게 말했다.

“이미 안내해 드린 주소에서 결괏값을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그 말에 화면에 보이는 인물들이 브라우저를 실행시켰다.

조지 머피.

넷플러스 추천 시스템을 만드는 핵심 인력으로 과거 영화감독을 꿈꿨을 정도로 영화광이었다. 그런 그가 브라우저에 나타난 추천 결과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조지 머피 님을 위한 추천 영화 목록.

-타이타닉.

-이프온리.

-500일의 썸머.

-그린 마일.

…….

조지는 마우스를 움직여 추천 목록을 마우스로 클릭했다. 추천한 내용이 마음에 든다는 뜻이었다.

-도그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기생충.

조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자사의 추천 시스템이 결괏값을 뽑아냈어도 이 정도로 추천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와중에 슬쩍 옆자리의 동료를 살펴보았다.

“……너도?”

동료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이거 우리 거랑 성능이 비슷한 거 같은데.”

그 말을 들은 조지가 입맛을 다셨다.

“이러다 우리…… 다 잘리는 거 아니냐?”

“잘리긴. 너도 들었잖아. DRP 쪽으로 이동한다고 그럼 오히려 더 좋은 거지. 요즘 미스터 리가 준비하는 로켓에 타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말에 조지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NRP가 넘어간다 했을 때 솔직한 심정으로 자신도 함께 넘어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조지가 마우스를 움직여 나머지 추천 데이터를 확인했다.

…….

-시카고

-식스 센스.

최종적으로 총 50개 데이터가 추천되었고, 그중 22개의 데이터가 자신의 취향과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넷플러스보다도 뛰어난 성능이었다.

넷플러스의 추천 부문이 완전히 강철에게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 * *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

엘리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엘리를 옆에 있던 동료 나은이 유심히 바라보았다.

“또 그거 보는 거야?”

엘리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한 번 집중하면 외부와의 감각이 완벽하게 차단되는 탓이었다. 나은은 이 상황을 익숙하게 받아들었다.

쑥.

머리를 내밀어 엘리가 보고 있는 화면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대산 그룹, 넷플러스의 추천 부문 완전히 인수.

-넷플러스-대산 그룹 전략적 협력관계 체결.

-이강철. 미국의 심장부에 국산 기술을 꼽았다.

-현재 대산은 플랫폼 기업으로의 변신 중.

모두 대산 그룹 관련 내용이었다. 정확히는 강철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제야 눈길을 알아차린 엘리가 급히 핸드폰을 감추었다.

“뭐 하는 거야.”

“또 보네.”

“…….”

“이번에는 또 무슨 내용인데?”

엘리가 새침한 표정으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지난번에 V스토어 협력 뉴스에 나오는 여자 보고선 하루 종일 속상해했잖아.”

“언니!”

“거기 뉴스에 같이 나왔던 여자가 최윤아였나…….”

하지만 나은은 끝까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엘리가 급히 입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앞 좌석에서 그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매니저가 한껏 목소리를 낮추었다.

“엘리야.”

“…….”

매니저가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회사에서 지침이 하나 내려왔다.”

엘리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대충 알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다른 말이었다.

“다른 사람은 전부 되는데 이강철은 안 돼.”

그 말에 놀란 건 나은이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연애는 되는데 이강철은 안 된다?”

매니저가 난처한 표정으로 볼을 긁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잠시 생각을 정리한 매니저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너희들도 다 성인이니까. 이 정도는 알아도 되겠지. 윗선에서 엘리가 혹시 이강철과 관계가 있는지 확인을 해왔어.”

엘리는 관심 없는 척 창밖을 보고 있었다. 오히려 놀라 반응한 건 나은이었다.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윗선이라뇨.”

“윗선이 어딘지는 나도 모르겠다. 검찰인지, 정치권인지 아니면 또 다른 재벌인지.”

“그, 그래서요?”

“그래서 아무 관련 없다고 했지. 그랬더니 한 마디 덧붙이더라. 이강철은 안 된다고. 괜히 관계를 만들었다가 오히려 다칠 수 있다고.”

나은의 입이 떡 벌어졌다.

“헐…….”

창밖을 보던 엘리의 입가도 미미하게 뒤틀렸다.

“회사에서도 다른 사람은 아무 상관 없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그 만 포기해.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야.”

엘리가 으득 이를 악물었다. 매니저가 한 번 더 물었다.

“알았지? 잘못하면 네가 다칠 수도 있어. 너도 알지? 이쪽 세계 소문 한번 잘못 나면 끝장나는 거.”

이번에도 엘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한 매니저도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매니저는 알지 못했다.

‘내가 포기하라면 포기할 줄 알고.’

엘리는 자신이 쉽게 가질 수 있는 것보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더 집착한다는 사실을.

* * *

비슷한 시각.

강철도 차 안에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최윤아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식 들었어요. 넷플러스 추천 부문을 완전히 인수하셨더군요.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더구나 DRP 프리미엄 버전을 공급하기로 했다니. 그 말은 즉 세계적인 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뜻도 되니 겹꼉사네요.”

“V스토어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호호, 네. 저도 큰 기대를 걸고 있어요.”

둘이 차를 타고 가는 곳은 오성전자였다. 이미 최윤아가 깔아놓은 판인 오성전자 핸드폰 브랜드 ‘마르스’에 V스토어 기본 탑재 관련 MOU 계약을 위해서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대화를 마치려 했건만 최윤아는 강철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날 아버지 말은 다 잊으세요. 들어보니 흰소리를 조금 하셨더라고요.”

“네.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그 말에 최윤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말이 자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건 이것대로 기분이 나쁘네…….’

공적인 자리에서 그런 티를 낼 순 없었다.

“네. 다행이네요.”

하지만 말이 조금 차가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둘은 오성전자 본사 빌딩에 도착했다.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회의실에 도착하니 오성전자 MC 사업부문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철은 한 회사의 대표이고, 최윤아는 재벌가의 일원이지만 오성전자 MC 사업부문장도 매출 수십조의 사업부를 이끄는 수장이었다. 둘과 비교해도 결코 격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이미 사전 협의는 끝나 있었다. 오늘 만남의 주목적은 MOU(업무협약) 체결을 하며 서로 안면이나 트자는 정도였다.

그랬기에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MOU 계약서에 사인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20분.

나머지 시간은 친교를 목적으로 한 사담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사담의 대부분은 강철에 관한 것이었다.

“The Startup.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그게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투자가 되고, 회사가 발전하고, 엑시트까지 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배울 점이 많더군요.”

MC사업부문장의 칭찬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최윤아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내가 왜 이러지…….’

스스로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칭찬을 받는데 왜 자꾸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그리고 뉴스에서 보니까. 넷플러스의 추천 부문을 완전히 인수하셨더군요. 뿐만 아니라 DRP 서비스를 넷플러스 측에 공급하기로 하셨다면서요.”

“네. 추천 성능이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하하, 저희도 마침 추천시스템이 필요한 곳이 많았는데 잘됐습니다. 넷플러스 측에서 인정할 정도면 적극 도입을 검토해 봐야죠.”

“감사합니다.”

또 배시시.

최윤아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최윤아 정신 차려!’

살짝 입술을 깨물며 올라가려는 입술을 막았다. 이강철을 칭찬하는데 자신이 웃는다면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만방에 알리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의 대화는 이어졌다.

“DSP도 오픈 베타를 진행 중이라 들었습니다. 이미 윌마트에는 연동 테스트 중이고요.”

“네. 자사 재고 관리 최적화를 위해 만들었는데 이게 타사에도 서비스하면 좋을 것 같아서 외부 API를 제공 중입니다.”

“그거 저희도 한번 살펴볼 수 있을까요? 나름 재고 관리를 하고 있기는 한데…… 더 나은 서비스가 있다면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네. 한번 검토해 볼 수 있게 돌아가서 조치해 놓겠습니다.”

“하하, 네 감사합니다.”

또 배시시.

강철이 인정받을 때마다 최윤아는 입가를 비집고 새어 나오는 미소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설마…….’

아직 알아가는 단계라 생각했다. 약간의 호감 정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그게 아니라는 걸 절절히 깨달아 버렸다.

그때.

잠시 방심하는 사이 MC 사업부문장과 두 눈이 딱 마주쳤다. 아직 입꼬리는 위를 향해있었다.

“기분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당황한 최윤아가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아하하…… 네. 이렇게 오성전자와 좋은 협력관계를 가지게 되었으니까요.”

“네. 저희도 기대가 큽니다.”

“하하…… 네.”

최윤아는 자신의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오히려 더 크게 웃으며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 * *

회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강철이 옆자리에 앉은 최윤아를 빤히 보았다.

처음부터 조금 이상하다 느꼈다. 각자 차를 타도 되건만 굳이 이야기할 게 있다면서 같은 차를 타고 이곳에 왔다.

이상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왜 자꾸 웃은 거지…….’

아까 회의를 할 때 보니 자신을 힐끔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그런데 아까부터 왜 그렇게 빤히…….”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요.”

그 말에 최윤아의 볼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네?”

두근.

두근.

뛰는 심장 소리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최윤아의 예상과 다른 질문이 날아들었다.

“어디서 내려드리면 될까요?”

“아…….”

순식간에 긴장이 탁 풀리며 김이 촥 빠졌다. 뛰던 가슴도 사그라들었다.

“회, 회사로 돌아갈 거라 종로 쪽에 내려주시면 돼요.”

“네.”

이내 차가 서울 시내로 진입했고, 차 안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강철이 지나가는 투로 툭 물었다.

“그날 기술 관련 회의는 잘 끝난 것 같은데 내부 반응은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아요. 개발 팀장이 직접 리턴을 사용해 보고 있는데 적용 가능성을 크게 평가하는 것 같았어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걸 꼭 적용해야 서치의 앱스토어 속도를 능가할 수 있습니다.”

“네.”

“그리고 30% 지분 인수 계약은 언제쯤 진행하실 건지.”

“그건 아버지가 직접 하실 거라…… 대략 앞으로 한 달 안에 관련 준비가 될 것 같아요. 30%면 못해도 3천억은 넘을 텐데 자금은 준비되신 건가요?”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정도는 충분합니다.”

“넷플러스 추천 부문 인수에 앞으로 아시아 쇼핑몰 인수까지 계획하고 있다 들었는데…… 문제가 없다. 역시 자금 동원력이 상당하시네요.”

“다른 계열사 IPO를 진행할 생각이니까요.”

그렇게 한 번 일 이야기로 물꼬를 트자, VK통신사 본사가 있는 곳까지 일 이야기를 하며 그리 어색하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이내 차가 멈추고, 앞 좌석의 비서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차 문이 열렸지만, 최윤아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도착했습니다.”

강철이 한 번 더 말하자, 망설이던 최윤아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다짜고짜 같은 생각이라니…….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강철이 되물었다.

“……네?”

“얼마 전에 선미 언니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대표님 관련해서도 여러 이야기를 나눴어요. 대표님의 그 생각에 저도 동의한다는 말이에요.”

강철은 여전히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고, 최윤아는 재빨리 차에서 내리며 속삭였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이내 멀어지는 차를 보며 최윤아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도 제 생각하면서 골머리 좀 썩어보세요.”

하지만.

차로 돌아가는 강철의 머릿속에서 그 생각은 지워진 지 오래였다.

오성전자에서도 DSP를 요구했다. 최대한 빨리 개발을 완료해 서비스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 * *

대산 그룹 본사.

DSP의 개발도 막바지에 달하고 있는 만큼, 관련 팀원이 전원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위치별 재고 결괏값 도출되었습니다.”

“과거 데이터와 비교해 봐.”

“네.”

이내 개발자가 비교 프로그램을 돌렸다.

잠시 후.

-평균 일치율 75%.

-상세 내역.

-휴지 : 74%.

-콜라 : 75%.

-맥주 : 80%.

-기저귀 : 74%.

-면도기 : 79%.

…….

-프링글스 : 82%.

각 품목별 일치율이 나타났다. 과거 수집된 파라미터 값을 이용해 당시 실제 판매된 상품의 양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비교하는 것이다.

일치율 : 100%.

만약 그렇게 된다면 유지하고 있는 재고가 전부 판매된다는 뜻이었다.

즉 일치율은 높을수록 좋은 수치였다.

“평균 75%입니다.”

“흠…… 한 5% 정도만 더 올리면 좋을 것 같은데…….”

5%.

그걸 올리면 80%였다. 과거 윌마트의 재고 일치율이 대략 65~70% 사이에서 움직였다.

일치율이 75~80이 되고 비용이 20% 정도 더 싸진다면 DSP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자면 알고리즘 수정이 필요합니다.”

그 말에 테스트를 진행하던 김정민이 슬쩍 뒤를 보았다. 그곳에서 강철이 유혜인, 최수철을 데리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최수철이 보드마커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라이스터 회귀분석으로 최적의 재고량을 추천해 주려고 저희도 여러 알고리즘을 적용시켜 가면서 변형해보고 있지만, 한계에 부딪힌 상황입니다.”

“아이작 벡터머신이 적용된 상태인데도 안되는 겁니까?”

“네. 더그 교수님도 아이작 벡터머신은 라이스터 알고리즘이 전체 평균치가 틀어지는 걸 막는 수준이라 현 단계에서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획기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지난번 드린 마이트 변형본은요?”

마이트 알고리즘.

서치에서 만들어낸 오픈 소스 머신러닝 알고리즘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기도 했다. 그걸 강철이 성능을 향상시켜 내놓은 것이다.

“적용해 봤지만 괄목할 만한 변화는 없었습니다.”

“흠…….”

“아이온 인공지능에 들어간 걸 사용하면 어떻습니까?”

그 말에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걸 그대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서치에 매각한 자산이니까요.”

“내용을 알려주시면 변형을 해보겠습니다. 저희 시스템에 맞게요.”

“그걸 라이스터 회귀분석과 합성한다.”

“네. 어차피 이대로는 일치율 80%는 요원합니다. 알고리즘 성능 1% 높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대표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5% 정도면 완전히 다른 알고리즘을 만들어야 할 수준입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설명은 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해가 쉽지 않아서…….”

최준철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괜찮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해할 테니까요.”

강철의 시선이 유혜인을 향했다. 그녀도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하지만 강철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이 둘을 보았다.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한 척 헤이글이 만들어낸 알고리즘이다.

자신도 이해를 하는 데 시간이 꽤 필요했는데 이 둘이 이해한다?

그런 의심은 불과 두 시간 만에 현실이 되었다.

“…….”

회의실에 적막감만이 가득했다. 최준철은 믿기지 않아 되물었다.

“그, 그게 정말 된다고요.”

“네. 그리고 서치가 바보도 아니고 안 되는 걸 사진 않았을 겁니다.”

최준철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유혜인은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칠판을 보고 잇었다.

D=ßE∂ = ⅗*(3.151)*x

K*µ/yx≒K

…….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수식들이 가득 차 있었다.

한국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고, 시험을 보면 항상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두뇌 싸움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그 자신감이 단박에 박살이 나버렸다.

그런 둘의 반응을 보며 강철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건 제가 따로 살펴보겠습니다. 논의를 하며 진행할 상태가 아닌 것 같네요.”

최준철의 목소리가 바닥으로 기어 들어 갔다.

“……죄송합니다.”

유혜인도 마찬가지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어차피 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차마 그 말은 할 수는 없었다. 살짝 한숨을 내쉰 강철이 일에 집중했다.

* * *

비슷한 시각.

대산 그룹 IR 팀.

IR 자료 담당자가 전 부서에서 취합된 자료를 살펴보고 있었다.

매출 QoQ(전 분기 대비) +80%.

영업이익 QoQ(전 분기 대비) +110%.

당기순이익 QoQ(전 분기 대비) +110%.

DRP 서비스의 성장률이었다. IR 담당자도 놀랄 만한 숫자였다. 담당자는 다시 한번 기획실에 연락을 넣었다.

“DRP 서비스 +80% 정말 맞는 숫자예요?”

-네. 전 분기 대비 매출이 80% 올라갔습니다. 하드웨어 장비도 감가상각이 진행되면서 수익률은 더 좋아졌고요.

“그래서 수익률은 더 좋아졌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대산 그룹 IR 담당자 장선우가 잠시 입을 떡 벌린 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80.

110.

그 숫자가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 숫자를 보던 IR 담당자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말 엄청나구나…….”

옆에 있던 과장이 물었다.

“뭐가.”

“4분기 IR 자료 작성 중인데 DRP 서비스 성장률이요. 얼만지 들으셨어요?”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들었지. 80, 110.”

“정말 폭발적이네요…….”

“어디 그것뿐이야. DRP 덕분에 회사 OPM(영업이익률)도 엄청 좋아졌잖아.“

“하긴 최저가 판매가 워낙 많아서 우리 회사 OPM이 2, 3% 왔다 갔다 했었죠.”

“그래. 그런데 DRP 덕분에 마진이 7%까지 올라왔잖아.”

“정말 나일 같은 포지션으로 가고 있네요.”

그 말에 과장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그래서 월급 다 털어서 매달 주식 사는 중이다.”

“아! 저도 말씀 주시지.”

“내가 지난번에 말했잖아. 걱정 말고 사라고.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어서 사. 곧 DSP 개발 완료되잖아.”

“그런데 그거 성능 문제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일치율이 75%에서 안 올라간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CTO님이 직접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잖아.”

장선우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과장을 보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풉. 넌 그래서 안 돼.”

장선우가 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뭐가요.”

“CTO님에 대한 믿음이 아직도 없잖아.”

“…….”

“난 옛날에 CTO님이 전 회장님 앞에서 발표할 때부터 이거다 싶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자사주를 계속 샀고.”

장선우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부터 샀다면 수익률이 50% 이상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장선우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DSP 개발 실패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지금까지 실패한 적 있어?”

장선우가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다.

실패.

지금까지 CTO가 직접 개입해서 ‘실패’ 판정을 받은 프로젝트는 없었다. 그래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과장이 그런 장선우를 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풉, 이번에는 다르다? 웃기지 마라. 그래.”

마른침을 삼킨 장선우가 바로 핸드폰에서 ‘오성증권’ 앱을 실행시켰다.

지금 당장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 * *

윌마트.

그곳의 CEO인 피셔 에임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DSP 연동은 어떻게 됐나?”

반대편에 앉아 있던 연동 책임자 마크가 바로 입을 열었다.

“현재 프로토콜을 넘겨받아서 최종 마무리 작업 중에 있습니다.”

“자네 생각에는 어때? 이걸 적용하는 게 회사에 득이 될까?”

마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까지 테스트해 본 바로는 자사에서 구축한 시스템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비용은 20% 절감되니 적용해서 나쁠 건 없다고 봅니다.”

“이미 DRP도 이용하고 있는 마당에 DSP까지 사용하게 된다면 너무 대산 쪽에 종속되는 건 아닐까?”

연이은 질문에도 마크는 침착하게 답했다.

“그건 회사가 지향하는 바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오프라인 사업에 집중한다면 적용하는 게 맞고, 그게 아니라면 적용하지 않는 게 낫다?”

마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그 비슷한 고민을 넷플러스에서도 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자사의 추천 시스템을 완전히 대산 쪽에 맡겼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한 거죠. 윌마트도 회사의 포지션을 확실하게 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피셔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변형 인플루엔자.

그 이후 세상은 완벽히 변해 버렸다. 오프라인 사업은 저물고, 온라인 사업으로의 전환이 더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수많은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오프라인 사업을 강화한다? 아마 다들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크가 그런 CEO를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나일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오프라인 사업에 집중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 ‘온라인’ 세상이 아닙니다. 오프라인으로 사고자 하는 최소한의 수요는 존재한다는 말이죠. 더구나 최근 전염병 사태로 인해 여러 업체가 문을 닫고 있습니다. 1등 업체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게 되면.”

“더 큰 기회가 있다.”

“네. 전 차라리 대산 쪽에 온라인 부문을 맡기고 절감한 비용으로 오프라인 쪽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피셔는 깊은 한숨을 내쉴 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회사가 망할 수도, 지금보다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선택과 집중이라…….”

“이미 느끼고 계시겠지만 온라인 세상에서는 상위 1%의 엔지니어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윌마트에는 그런 상위 1%의 인재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여기로 올 유인도 없다는 겁니다.”

피셔가 으득 이를 악물었다.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온라인 사업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유명하다는 개발자들을 찾아다녔지만 윌마트에 오려 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 CEO에게 마크가 쐐기를 날렸다.

“우리는 IT 기업이 아니니까요.”

고심하던 피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이강철 대표를 다시 한번 만나보고 결정하도록 하지.”

그때.

마크의 핸드폰이 드르륵거리며 진동했다.

“어.”

“DSP 재고 평균 일치율이 80%까지 올라왔다고?”

“알았어.”

마크가 피셔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표 수치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러면 자사 시스템 성능을 넘어섰습니다. DRP와 패키지로 이용하면 비용은 20% 절감되고요.”

피셔의 결심을 한층 더 단단해지게 하는 말이었다. 피셔는 바로 비서를 호출했다.

“약속 잡아.”

“네.“

* * *

서울 송파구.

LD 그룹 본사 대회의실에서 사장단 회의가 열렸다.

그룹 회장 박성구가 사장단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산 그룹이 계속 치고 나가는 군.”

“…….”

그 말에 사장단이 침묵했다.

“그런 마당에 우리는 변형 인플루엔자 사태 이후 오프라인 매출이 꺾이면서 매장을 하나둘 폐점하고 있고 말이야.”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LD 그룹의 사장들은 알고 있었다. 목소리가 낮아질수록 회장인 박성구의 분노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디 입이 있으면 말을 좀 해보지.”

그러자 LD 그룹 IT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LD데이터 시스템 사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재 자사에서도 LD 숍 리뉴얼, LD 페이 출시, 물류 자동화 시스템 개발 등으로 대응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룹 차원에서 기술 부문에 대한 투자가 너무 인색합니다. 이건 인력 사업이 아니라 기술 사업입니다. 기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줘야 함에도 마트나 백화점 쪽에서 과거의 M/M로 사업 단가를 설정해 데이터 시스템의 이익을 깎아 먹었고, 그로 인해 양질의 인력을 채용할 비용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박성구가 두 손을 깍지 끼며 턱을 괬다.

“그래서?”

“그래서 앞으로 LD 데이터 시스템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 금액 책정 방법을 변경했으면 합니다. 해당 방안을 이미 마트 백화점 쪽에 제출했는데 반려시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말에 LD 마트 사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건 백화점 담당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박성구의 시선이 그 둘을 향했다.

“그렇다는데?”

LD 마트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데이터 시스템이 제공하는 ERP에서 얼마나 많은 에러가 나는지 알면 절대 저런 말을 하지 못할 겁니다. 저들이 먼저 불편하고, 사고가 발생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런 단가가 책정됩니다.”

그러자 LD 백화점 사장도 가만이 있지 않았다.

“맞습니다. ERP만이 아니라 재고 관리, 물류 등등에서 수시로 문제가 생겨서 컨플레인을 건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더구나 현재 지급하는 M/M 단가도 외주 비용에 비해 1.3배를 더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런 말을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흠…….”

백화점 사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열변을 토했다.

“더구나 현재 백화점이 지급하고 있는 프로젝트 단가는 과거 대산 그룹이 자회사인 대산 D&S에 제공했던 단가입니다. 그들과 같음에도 데이터 시스템에서 다른 결과물을 내고 있는 겁니다.”

궁지에 몰린 데이터 시스템 사장이 앞에 놓여 있는 물을 벌컥거리며 마셨다.

“그, 그건…….”

박성구가 데이터 시스템 사장의 입을 막았다.

“그만.”

회의실에 적막감이 흘렀다. 가라 앉은 분위기에 누구하나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사장들의 시선이 일제히 박성구의 입을 향했다.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대산 그룹 변화의 시발점은 ‘이강철’ 그였어.”

그러자 사장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우리도 그런 사람을 영입하면 될 거 아닌가.”

이번에도 가장 먼저 입을 연건 데이터 시스템 사장이었다.

“그래서 추천 드릴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누구?”

“대산 그룹 하진기라는 친구입니다. 최초 이강철이 그의 밑에서 일을 시작했고, 지금 하진기는 임원으로서 대산 그룹 시스템 전반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박성구가 턱을 문지르며 관심을 표했다.

“호오…….”

“대산 그룹이 변해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친구이니 분명 LD 그룹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박성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든다는 뜻이었다. 거무죽죽하게 변해가던 데이터 시스템 사장의 표정이 처음으로 밝아졌다.

“좋군. 그래서 섭외할 자신은 있고?”

“하하, 제가 그 친구 대학 선배입니다. 조건만 맞으면 바로 올 겁니다.”

“그래, 추진해 봐.”

박성구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묘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데이터 시스템 사장은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박성구를 마주 보았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회사에 한 가지 소문이 돌았다.

-LD 그룹에서 인력 빼가기를 하려 한다.

-하진기 이사.

-김정민 부장.

-이 둘에게 오퍼가 왔다.

강철은 그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하진기를 불렀다. 이내 하진기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그 한마디에서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흠…… 사실이 아니길 바랐는데 죄송하다는 걸 보니 이미 결심은 굳히신 것 같군요.”

하진기가 또 한 번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여기에 그대로 계셨어도 후에 계열사 하나 정도는 맡겨볼 생각이었는데…… 아쉽습니다.”

하진기가 딱딱한 표정으로 답했다.

“물론 대표님이 그러실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표님이 하시는 일에는 더 젊고 능력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조금 달랐다.

‘계열사를 맡게되는 건 먼 미래의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직 하면 당장 연봉이 2배 올라가. 이게 맞는 선택이다.’

LD 그룹에서 현 연봉의 2배를 제시했다. 하진기로서는 물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현재 받는 돈도 3억이 조금 넘어갔다. 그런데 그 2배라니.

6억이면 거의 전무급 대우였다.

“김정민 부장도 같이 데려간다고 하시던데…….”

“네. 일단 김 부장이 같이 퇴사를 할 것 같습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자유의사를 존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막는다고 될 일은 아니니까요.”

강철이 무리를 해서라도 붙잡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넷플러스의 온라인 기술 부문을 인수하기로 했어. 거기에 근무하는 세계적인 인재들을 쓸 수 있다는 말이지. 더구나 윌마트에 DSP를 공급하게 되면…… 회사 규모는 더 커지고 더 능력 있는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캐시플로가 생긴다.’

그런 강철의 생각은 모른 체 하진기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건승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잠시 후.

면담을 마친 하진기가 사무실로 내려와 김정민을 찾았다.

“천 과장이나 윤찬민이랑 이야기 좀 해봤어?”

이야기.

자신과 함께 나갈 인원을 찾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김정민의 표정은 어둡기만했다.

“그 둘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

“연봉을 2배 제시해도 여기 있는 게 좋다면서…….”

하진기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유혜인이나 최준철은?”

“그 친구들도 비숫한 반응이었습니다.”

“흠…….”

“아무래도 주축들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진기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할 수 없지. 그럼 되는 친구들만 데리고 가자.”

“네.”

대화를 나누는 하진기의 표정이 어두웠다.

연봉 2배.

그 숫자에 눈이 멀어 빠르게 일을 진행시켰다. 그런데 자신이 생각하기에 똑똑하다는 친구들은 전부 남는 걸 택했다. 그리고 평범한 친구들은 돈에 따라 이직을 택했다.

그 점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잘못 선택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강철은 미국에서 건너온 윌마트의 CEO 피셔 에임스를 만나고 있었다.

-DSP 연동.

처음에 그 건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피셔가 꺼낸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다.

“추천이나 재고관리만이 아니라 IT 부문 일체를 맡기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내부 논의 끝에 우리가 하는 것보다 이 부문을 이체 대산에 맡기는 게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저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아직 추천, 재고관리밖에 없는데…….”

“그래서 생각한 방안이 빅트리와의 연동입니다.”

의외의 제안에 강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네?”

“과거 한국에 진출했던 윌마트를 인수한 게 대산이었습니다. 그게 현재의 대산마트가 된 것이고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산마트의 역사는 자신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피셔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때의 매각이 지금 돌이켜 보면 아주 좋은 결정이었습니다. 한국은 한국만의 특색이 있어. 미국 방식으로 영업을 해봤자 통하지 않으니까요.”

끄덕.

이번에도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대산 마트도 중국에 진출했지만 실패했다. 중국은 중국만의 방식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내린 결론이 온라인도 온라인만의 방식이 있다는 겁니다. 나일이 온라인 쇼핑몰로 승승장구하지만 윌마트는 더 나아가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요.”

“흠…….”

“이를테면 사용자의 접속 지역이 미국이라면 윌마트의 상품이 빅트리에 나오는 겁니다. 빅트리에서는 그걸 파는 거고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제안이었다.

강철의 고심이 깊어졌다. 그런 강철을 보며 피셔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대산 쪽에도 나쁜 제안은 아닐 겁니다. 최근 아시아 쪽 온라인 쇼핑몰 인수설을 들었습니다. 빅트리. 그걸 크게 키우고 싶으신 거겠죠.”

강철이 꾹 입을 다물었다. 언론을 통해 기사가 나가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미국만이 아니라 남미, 유럽, 일본, 아프리카에도 유통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협업한다면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꿀꺽.

강철이 마른침을 삼켰다.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이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오프라인 매장을 진출시킬 생각은 없다. 온라인으로만 진출할 생각이었는데…… 윌마트와 협업을 통해 진출한다면 더 빠르게 정착시킬 수 있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득이었다.

“일단 세부 사항을 협의해 봐야겠지만 큰 그림에서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강철의 승낙에 피셔가 환한 미소를 보였다.

“하하, 감사합니다.”

이내 둘은 손을 맞잡았다.

관련 내용은 언론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대산 그룹, 윌마트 온라인 사업 부문 인수.

-윌마트, 온라인 부문은 빅트리에 완전히 넘긴다.

-빅트리-윌마트 손잡고 세계 진출.

-이강철 그의 M&A는 현재 진행형.

넷플러스의 주요 시스템 운영에 이어, 윌마트의 온라인 사업 부문 인수 소식이 터진 것이다.

당연히 인수인계 중이던 하진기의 귀에도 그 소식이 들어갔다.

“이사님!”

“……들었어.”

김정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진기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직 의사를 밝혔을 때 느껴졌던 불길한 감정이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괜찮아. 어차피 우리는 연봉 2배를 받고 간다. 윌마트랑 협업한다고 해서 연봉이 두 배 올라가진 않아. 회사원은 월급이 다니까.”

김정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톡옵션을 주면요?”

“…….”

“CTO님이 과거에 말씀하셨던 목표 기억 나십니까?”

“기억나지. 우리의 경쟁 상대는 국내 기업이 아니다. 나일을 뛰어넘겠다.”

“윌마트 온라인 사업부문을 인수하고, 아시아 쪽 온라인 쇼핑몰을 M&A하면.”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하진기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가능할지도.”

김정민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to be continued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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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KIN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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