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34화 (34/59)

5장 올해의 언어

한국 청와대.

그곳의 정책실장 서종석은 갑작스러운 보고에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이온 게임즈만이 아니라 관련 그룹 전부 미국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고요?”

보좌관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코스닥이든 나스닥이든 기업의 자유로운 영업 활동이다. 정부에서 그걸 강제할 수는 없었지만 되도록 한국에서 상장하는 것이 한국 경제에 득이 되는 일이었다.

“네. 아무래도 더 많은 자금을 끌어모을 수도 있고, 미국에 상장함으로써 글로벌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것 같습니다.”

“흠…….”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라 여타 유니콘이라 불리는 기업들도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겁니다. 배달업체, 게임 업체, 여가 플랫폼 등등 대부분이 나스닥 상장을 위해 상장을 미루고 있습니다.”

보좌관이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리쇼어링(해외의 자국기업의 국내 정착 정책)의 일환으로 코스닥 상장 시 있을 수 있는 여러 인센티브를 제안해 보았지만 전부 거절당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돈은 한국에서 벌고, 세금은 미국에 내는 기업이 더 많아질지도 모릅니다.”

“심각하군.”

“네.”

보좌관이 잠시 입을 닫았다. 정책실장은 생각에 잠긴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런 정책실장을 보며 보좌관이 말을 이었다.

“사실 정부에서 강제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이건 엄연한 기업활동의 하나니까요.”

혹시나 어떤 제재를 가할까 걱정이 된 탓이었다.

현재 이강철은 떠오르는 기업인이었다. 그런 기업인과 정부가 대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정부에 득이 될 게 없었다. 그리고 그 정도 판단은 정책실장도 하고 있었다.

“나도 방해할 생각은 없어. 다만 아쉬울 뿐이지.”

“그러면 이번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회의 때 자리를 마련해 볼까요?”

“자리?”

“어차피 이강철이 제안한 투자 때문이라도 한번 만나야 했으니까요.”

정책실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한번 만나서 이야기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 이왕이면 그런 우량 기업이 국내에 정착하도록 돕는 게 정부의 역할이기도 하니까.”

“알겠습니다.”

* * *

비슷한 시각.

강철은 비서에게 나스닥 상장 관련 내용을 보고 받고 있었다.

“현재 SEC에서 관련 내용을 심사 중입니다. 기업가치는 대략 200억 달러 정도로 평가받고 있고요.”

“심사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별다른 문제 없다면 통과될 것 같다는 게 중론입니다. 신주영이나 마이클이 미국에 있는 네트워크를 지속해서 가동하고 있는데…… 하나같이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고 있다 합니다.”

강철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200억 달러.

한화 23조.

그 돈이 들어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아직 중국의 텐센트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지만 이렇게 발전시켜 나가다 보면 곧 그에 못지않은 회사가 될 수 있으리라.

“게임 반응은요?”

“현재 워리어 동시 접속자 150만까지 올라갔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200만 명도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협상이 통해서 다행입니다. 아무리 AI 뛰어나다고 해도 다른 사용자와 게임 하는 것에 비하면 떨어지는 감이 있으니까요.”

협상.

후비청 촬영본 삭제를 약속하고, 커뮤니티 센터 제거 조항을 삭제했다. 대신 중국 내에 서버를 따로 두고, 중국 사용자는 중국내 사용자만 매칭되도록 조정한 것이다.

그 전략이 주효했고, 게임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라이즈 킹덤도 일 결제 금액이 20억까지 올라왔습니다. 이 추세로 보면 올해가 가기 전에 일 결제액이 100억을 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 결제액 100억.

한 달이면 3천억이고, 일 년이면 3조를 넘기는 돈이었다. 그 정도면 강철이 중국에서 손해 본 금액을 한참이나 메꾸고도 남는 금액이기도 했다.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하겠군요.”

“그래서 김봉수 사장이 고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중국 전용 게임 스킨 개발에서부터 각종 아이템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고가 끝날 때쯤.

누군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천준호 과장이 왔습니다.

“천 과장이요?”

-네.

“들어오라 하세요.”

이내 문이 열리고 잔뜩 상기된 표정의 천준호 과장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대, 대표님.”

강철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만든 리턴이라는 언어 있지 않습니까.”

“네.”

“그게 프로그래밍 언어 협회에서 선정한 올해의 언어 후보로 올라갔습니다.”

강철이 살짝 두 눈을 부릅떴다.

올해의 언어.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영광스러운 상이였다. 노벨상만큼의 권위를 가지진 않았지만, 그 하위버전 호환 정도로는 충분했다.

“그건 몰랐군요.”

“대표님이야 워낙 바쁘시니까. 확인하실 시간도 없었을 겁니다.”

“하하, 네 뭐.”

이내 천준호가 살짝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래서 부탁드릴 게 하나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이게 최종 선정된 언어는 해당 개발자들이 언어 협회에 가서 발표해야 합니다. 그때 직접 간단한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서 시연해야 하고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천준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저희도 참가해 볼 생각입니다. 저랑 윤찬민 대리 이렇게 둘이요.”

“좋은 생각입니다. 휴가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천준호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라…… 혹시 대표님께서도 시간이 된다면 같이 가주실 수 있나 해서요. 손과 발은 저희가 할 테니 고문 역할을 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제가요?”

“네. 제가 생각할 때 대표님이 직접 가면…… 왠지 올해의 언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요.”

“아…….”

천준호가 간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정말 바쁘신 것 알고 있습니다. 이런 부탁이 실례되리라는 것도요. 하지만 거기에서 상을 받는 건 저의 어릴 때부터 꿈이기도 해서요. 그리고 시간 낭비만 하는 건 아닐 겁니다. 분명 그곳에는 엄청난 실력자들이 모일 겁니다. 그들을 채용할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실력자.

그 말에 강철이 귀를 쫑긋거렸다.

정말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숨겨져 있다. 채용공고를 낸다고 해서 뽑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대표가 직접 찾아간다 해도 거절하는 실력자들이 수두룩했다. 지금도 성장하는 IT 산업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이들은 오라고 하는 회사가 수두룩하기 때문이었다.

“흠…….”

천준호는 마치 연인에게 프로포즈 하듯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한 번 더 물었다.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강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같이 가겠다는 뜻이었다.

* * *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그곳의 심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코리 부커가 심각한 표정으로 관련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

“아이온 게임즈. 작년 매출액이 10억 달러. 영업이익이 4억 달러…… 40%라니 영업이익이 엄청나군.”

“이런 게임 산업의 영업레버리지야 이미 증명된 것이니까요.”

“EA 매출이 얼마였지?”

EA.

일렉트로닉 아츠로 가장 유명한 게임으로 피파가 있었다.

“작년에만 50억 달러였습니다.”

“그런데 시가 총액이 400억 달러잖아. 그 말은 매출 규모는 1/5밖에 안 되는데 시장 평가는 어마어마하구먼.”

“아무래도 중국 시장 진출이 투자자들의 심리를 움직인 것 같습니다.”

현재 EA의 시가 총액이 약 400억 달러.

아이온 게임즈가 장외에서 평가받는 금액이 200억 달러였다. EA보다 매출은 1/5이지만 시가 총액은 절반도 차이가 안 나는 것이다.

“뭐, 블리자드 매출이 64억 달러인데 시가 총액은 EA의 두 배인걸 보면 자네 말대로 꼭 매출로만 평가할 건 아니야.”

“하하, 네.”

SEC의 심사위원인 코리의 눈은 쉴새 없이 관련 서류를 살폈다.

여기서 자신이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한 기업의 상장 여부가 갈린다. 그만큼 신중하고 중요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서류를 살피다 보니 어느새 수북이 쌓여 있던 서류도 끝자락이 보였다.

옆에 있던 직원이 두 팔을 쭉 뻗으며 중얼거렸다.

“딱히 회계, 기업가치 추정, 앞으로 계획 등에서 문제점은 보이지 않는데요.”

코리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 질의할 게 있긴 한데…… 큰 틀에서 보면 문제 될 건 없어 보이긴 해.”

“질의라면 어떤 걸 말씀하십니까?”

“일단 매출 내역을 보면 중국 쪽으로 너무 치중되어 있어. 그런데 중국이란 나라가 사실 법과 질서보다는 정부 마음대로 아닌가.”

직원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코리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당장 내일 판호 발급을 취소해 버린다면? 그런 리스크를 어떻게 극복할 생각인지 물어볼 생각이네.”

“그럴 수 있겠군요.”

“그리고 현재 히트하고 있는 워리어라는 게임이 LOL을 넘어설 것이라며 희망찬 포부를 밝히고 있는데 그 로드맵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아. 그것도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고.”

코리가 지금 가지 심사한 기업만 수백 개였다. 그중에는 상장이 된 것도 되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 경험만큼 날카로운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경험에서 나오는 관록이 아주 적절한 질의들을 뽑아내고 있었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강철은 오랜만에 국가과학기술 자문회의에 참석했다. 몇 번 참석하곤 사의를 표명해도 되지만 기업의 규모가 점점 커질수록 정부와 척을 져서 좋을 게 없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되도록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요청을 들어주려 노력했다.

그리 특별할 게 없는 회의가 끝나고.

강철은 특별한 사람을 만나야 했다.

서종석.

청와대 정책실장.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을 행정부에 전파하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서종석입니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이강철입니다.”

인사가 끝나고, 서종석이 슬그머니 말을 던졌다.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계시다고요.”

“하하, 네.”

“최근 정부에서 자국 기업 우대를 정책적으로 추진 중이긴 한데……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코스닥.

나스닥.

두 가지 중 어디에 상장할지는 충분히 검토해 보았다. 그렇게 해서 어렵게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었다.

“여러 안을 비교해 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코스닥보다는 유동성이 풍부한 나스닥에 상장하는 것이 더 득이 된다 판단했고요.”

서종석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러시군요. 혹시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다름이 아니라 문제가 있다면 그걸 보완 발전시켜서 코스닥이 매력적인 시장으로 느끼도록 만들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강철은 바로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말씀드렸다시피 제값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값을 받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코스닥에 상장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아!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단지 최근 국내 유니콘 기업들이 하나같이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하여 정부에서도 고민하는 부분이라 고견을 구하는 것뿐입니다.”

“아시겠지만 증권 시장은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IPO를 하는 발행시장. 그리고 발행된 증권이 거래되는 유통시장.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주식의 유통시장은 투자의 장이 아닌 도박장에 비유됩니다. 그런 곳에 건전한 투자문화가 있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기업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할 수만 있다면 굳이 코스닥에 상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흠…….”

강철이 고민하는 서종석을 보며 말했다.

“그럼 끝난 걸까요?”

“아, 네?”

“죄송하지만 제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네…….”

“그리고 방금 연락이 왔는데 나스닥 상장 심사가 통과됐다고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강철은 허락을 구하지 않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일련의 행동에서 알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더 힘 있는 자는 누구인지.

* * *

강철의 자신감이 있는 행동은 서종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보좌관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그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실장님.”

“원래 저렇게 자신만만한 친구였나?”

보좌관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젊어서부터 큰 성공을 거두다 보니 목이 뻣뻣하다는 소문이 돌긴 했습니다.”

서종석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일정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더군.”

이대로 있다간 악감정이 커질 수도 있었다. 보좌관은 수습을 위해 애써 입을 열었다.

“오늘 무리해서 일정을 잡긴 했습니다. 저쪽에서 다음 일정이 있다며 미리 양해를 구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이건 아니지.”

“제가 적절히 항의해 볼까요?”

서종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 말한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그 말투에서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악감정이 쌓였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이강철과의 협력관계에 문제가 생길지도 몰랐다.

보좌관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서종석이 그런 보좌관을 보며 말했다.

“저 친구와 기초과학 투자 관련 의논을 하려 했다고?”

“네. 국가과학기술 자문위에서 나온 말입니다. 기초과학 연구에 이강철이 오천억을, 정부에서 오천억을 출연해 연구 활동을 벌이는 안이 있습니다.”

서종석이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 말했다.

“저런 친구와 협업을 할 수 있을까?”

저 말은 하지 말라는 것과 같았다. 보좌관도 굳이 상사가 싫어하는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알겠습니다. 관련 내용은 취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스닥에 상장한다고 했지.”

“네.”

“관련해서 법적 문제도 철저하게 검토하도록 해. 세금 문제도 다시 한번 검토해 보고.”

“알겠습니다.”

“돈은 한국에서 벌고, 세금은 미국에서 내고. 그런 놈들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줘야지. 그래야 또 비슷한 놈이 안 나타나.”

보좌관이 이번에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히려 안 만나니만 못한 바가 됐어.’

보좌관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꼬여버린 관계를 풀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강철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SEC 통과.

나스닥 운영위원회 통과.

나스닥 상장 시 가장 어렵다는 두 가지 절차를 마치고 곧 상장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최초 공모가는 주당 310불.

시가총액 200억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워리어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계속해서 올라가면서 상장 첫날 수십 프로의 상승이 예상되었다.

상장 전날.

강철은 뉴욕의 야경이 훤히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IPO의 주역들과 식사시간을 가졌다.

“다들 고생했습니다.”

강철이 잔을 들며 말하자 신주영과 마이클이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대표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 네. 우리 모두 고생했습니다.”

챙그랑.

맑은 잔이 부딪치며 투명한 공명음을 일으켰다. 강철은 노란빛의 샴페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알싸한 느낌이 식도를 간지럽히며 내려갔다.

강철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좋군요.”

신이 난 마이클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하, 오늘은 끝까지 달리는 겁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강철에게 둘은 존경하는 눈빛을 보냈다.

마이클.

신주영.

이번 IPO를 통해 이 둘도 큰돈을 벌었다. 이미 변형 인플루엔자 사태 때 자산이 한 단계 레벨업 했다. 그리고 이번 투자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다. 전부 강철 덕분이기 때문이었다.

신주영이 그 사실에 한 번 더 고마움을 표했다.

“아이온 게임즈 투자에 참여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거……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사모펀드를 만들 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돈은 걱정하지 마시라고.”

분명 그 말을 듣긴 했었다. 하지만 그 시점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신주영이 한 번 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정말 감사합니다.”

부담스러웠던 강철은 어색한 표정을 고개를 흔들었다.

“하하, 이러면 부담스럽습니다. 그냥 열심히 일했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하세요.”

신주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받은 보상이 일반 직장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뉴욕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 한국.

워리어를 관장하고 있는 김봉수는 컴퓨터 앞에서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 grep reboot /home/*/.bash_history

명령어를 치고 로그 내역을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별다른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뭐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때 직원이 급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NC2 또 다운됐습니다.”

“다시 살려.”

“네.”

NC2.

NCS에서 제공하는 가상 서버 서비스로 워리어의 서버는 NC2에 올라가 구동된다. 그 서버가 계속 죽는 상황인 것이다.

마른침을 삼키던 김봉수가 다른 직원에게 물었다.

“NCS에 문의해 봤어?”

“네. 그런데…….”

“그런데?”

“그냥 확인 중이라는 답변밖에 안 올라옵니다.”

“이 자식들이 우리가 매달 내는 비용이 얼만데!”

김봉수가 분을 감추지 못하고 씩씩 거친 콧김을 내뿜었다.

다행히 수십 대의 서버 중 한두 대가 계속 말썽이었다. 그래서 사용자들이 직접 느끼는 문제는 없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로드밸런서에 여러 서버 붙여 둔 참이었으니까.

문제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직원 중 한 명이 김봉수에게 말했다.

“사장님. 이럴게 아니라 회장님께 도움을 요청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회장님.

아이온 그룹의 수장인 강철을 뜻하는 말이었다. 순간 김봉수의 얼굴에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 강철에게 말하면 일의 해결책이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혹시나 능력 없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스러웠다.

“아직은 아니야. 우리끼리 해결해야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물어볼 순 없잖아. 더구나 현재 미국에 계셔. 현지 시각으로 밤 10시가 넘었을 텐데.”

“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는 해결될 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NC2 인스턴스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 군데서 발생한 문제가 번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 * *

뉴욕 새벽 5시.

곤히 잠을 자던 강철이 잠에서 깨어났다. 멍한 상태로 일어난 강철은 비서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현재 워리어 운영 서버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 소리에 강철은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문제요?”

“네. NCS 측에서 제공하는 NC2 인스턴스가 지속해서 다운되는 현상이 발생 중이라 합니다.”

“오늘 상장일이잖아요.”

비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잠을 깨우지 않으려 하다가…….”

강철은 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가운을 걸치고, 벌컥거리며 찬물을 마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팅하세요.”

“준비 끝내놨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철이 호텔 스위트 룸의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커다란 모니터.

조용하게 돌아가는 팬 소리.

맞춤형 수제 키보드.

강철이 전 세계 어디에서든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세팅된 장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철이 자리에 앉자마자 컴컴하던 모니터 화면에 김봉수가 나타났다. 안색이 핼쑥해진 김봉수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말은 일이 끝나고 해도 늦지 않아요. 문제 상황부터 말씀해 보세요.”

-네.

그렇게 10여 분 정도 문제 상황에 대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그때 시각인 뉴욕 현지 시각으로 새벽 5시 20분이었다.

새벽 7시.

강철이 눈을 비비며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로그 상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그래서 NCS 측에서도 아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가장 먼저 한 일은 NC2에 쌓여 있는 로그를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특별히 문제 될 만한 사항이 보이지 않았다.

‘해킹을 당한 건가? 그렇다면 제일 앞 단인 방화벽에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곳 로그도 살펴보았다. 하지만 거기에도 문제 사항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지……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거야.’

이제 2시간 후면 나스닥에 상장한다. 상장하는 순간 워리어 게임에 문제가 생긴다면 상장 첫날 하한가로 장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미국 장에는 하한가라는 것이 없기에 첫날 마이너스 100%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입안이 바짝 말라왔다.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강철은 차분히 현재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문제 상황 : NC2 다운.

그렇다면 NC2가 다운될 수 있는 상황은?

해킹 : 아니다.

CPU, 메모리 자원 부족 : 아니다.

사용 중인 로드 밸런스와 접속 불량 : 아니다.

쿠버네이티스 불량 : 아니다.

…….

NC2가 다운될 수 있는 상황을 고민해 보며 하나씩 선택지를 지워 나갔다. 만약 직접 서버를 운용하고 있었다면 그저 서버 하나를 새롭게 교체하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자신들이 운용하는 서버가 아니라 NCS에서 운용하는 서버였다. 자신들이 마음대로 컨트롤이 안 되는 것이다. 강철이 가장 우려하던 상황이었다.

‘이번 문제가 해결되면 바로 데이터 센터를 만들자. 마침 IPO를 통해 자금도 든든하게 쌓였으니까…….’

과거의 강철은 NCS가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세계 정상급의 기술을 가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기술이 점점 성장할수록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문제가 생긴 지 6시간이 지나고 있었지만, NCS SUPPORT 팀에서는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휴우…….’

깊은 한숨을 내쉰 강철이 다시 문제에 집중했다. 앞으로 2시간 그 안에 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 * *

NCS SUPPORT팀.

그곳 팀장이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 그를 NCS의 부사장인 로스 페로가 빤히 노려보았다.

“아직입니까?”

그 질문에 팀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네.”

“그래서 해결 일정은요?”

“그것도 아직…….”

“하아…….”

“유관 부서 개발자들이 확인하고 있긴 한데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일단 해킹을 당한 건 아니라는 말밖에 듣지 못했습니다.”

“아이온 게임즈가 어떤 고객인지 모르지 않을 텐데…… 그런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NCS 부사장 로스 페로의 질책에 팀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아이온 게임즈.

그리고 이강철.

그가 현재 IT 업계에서 가지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직원도 익히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사장까지 나서서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리라.

“그가 나서서 NCS 관련해서 몇 마디 말만 하면 우리 회사 신뢰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팀장님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아, 알고 있습니다.”

“그럼 당장 해결책을 가져오세요.”

서포트 팀 팀장이 나가고.

부사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이내 결심을 굳힌 그가 번호를 눌렀다.

“이강철 대표 지금 어딨는지 좀 찾아봐. 나스닥 상장 때문에 뉴욕에 있다는 건 들었는데…… 자세한 위치가 필요해.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서 사정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으니까.”

NCS 부사장 로스 페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접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강철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 * *

아침 8시 30분.

그때까지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신 서버를 추가하며 겨우겨우 문제를 막아 놓은 상태였다.

현재 워리어가 운용하는 수십 대의 서버가 무작위로 한두 대가 죽으면 다시 신 서버를 추가하는 식의 미봉책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랬기에 강철은 나스닥 상장행사가 끝나면 바로 다시 와서 문제 해결에 매진할 생각이었다.

옷을 다 입은 강철에게 비서가 다가왔다.

“차 대기시켰습니다.”

“갑시다.”

호텔 밖으로 나가자 검은색 세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차에 몸을 싣고 한 20분쯤 지났을까.

차는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강철이 차에서 내렸고, 신주영을 비롯해 마이클이 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인 강철이 뒤따라 뉴욕증권거래소 안으로 움직였다. 그곳에서부터는 거래소 직원들이 안내했다.

“지금부터는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네.”

직원들은 거래소 가장 안쪽 단상으로 강철을 이끌었다. 그곳에 올라가자 거래소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천장에 걸쳐진 골든벨이 눈에 들어왔다.

“거래가 시작하면 이 종을 힘차게 흔드시면 됩니다. 그러면 천장에서 종이 가루가 떨어질 겁니다.”

“네.”

“좋은 성과 있길 바랍니다.”

그렇게 직원이 단상에서 내려가고, 거래소 고위직 인원들과 간단한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고 상장 시간이 다가왔다.

“10초 전부터 카운트를 하겠습니다. 1하면 골든벨을 흔드시면 됩니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째깍.

째깍.

시간이 흐르고, 직원이 다가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20초 전입니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10초가 더 흐르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10!

-9!

-8!

-7!

…….

-3!

-2!

-1!

소리와 함께 강철이 줄을 흔들었다.

땡땡땡!

거친 벨 소리가 거래소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신호로 축포가 떠지며 하늘에서 형형 색깔의 종이가 떨어졌다.

강철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잠시 감회에 젖었다.

‘내가 나스닥 상장이라니.’

십몇 년 전.

스타트업을 만들며 꾸었던 꿈을 이루는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그저 코스닥 상장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뛰어넘어 나스닥 상장을 해냈다. 뭔가 가슴이 뭉클한 기분에 강철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런 강철의 옆으로 신주영이 다가왔다.

“상장하자마자 +30%로 시작했습니다. 이 기세라면 첫날 100%도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100% 상승.

한국처럼 상, 하한 30% 제한이 없는 미국 시장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100% 상승이면 시가 총액이 단숨에 400억 달러를 넘어간다. 강철도 놀랄 수밖에 없는 액수였다.

“100%요?”

“아이온 게임즈가 서비스 중인 워리어의 잠재력을 시장에서 높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더구나 앞으로 AR/VR 서비스도 준비 중이라고 발표하시지 않았습니까.”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이 두 가지는 미래 게임 업계의 주류가 된다. 강철은 여러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그에 대한 준비를 해왔고, 앞으로 워리어 역시 AR 형태의 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흥분한 신주영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게 시장에 먹힌 모양입니다. 만약 워리어가 AR 형태로 개발이 된다면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킬 것이다. 그런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말을 하던 신주영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정말 온갖 뉴스에서 쏟아진 기사가 가득했다.

-워리어 상장 자금으로 AR 개발 박차.

-중국 동접 180만 돌파. 워리어의 인기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아이온 게임즈 상장 첫날. 과연 그 끝은 어디인가.

대부분이 우호적인 내용이었다.

‘이거 뉴스를 내보낸 게 물량을 미리 배정받은 기관들인 것 같은데…….’

상장을 위해 신주도 새롭게 발행했다. 그걸 배정받은 기관들이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뉴스를 띄우고, 고점에서 개미들에게 물량을 넘기는 건 업계에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강철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강철이 뒤에 서 있던 비서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상장행사는 끝난 겁니까?”

“네. 오찬 초대가 오긴 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저녁에 참석한다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NCS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강철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 이야기는 차에서.”

“네.”

잠시 후.

차에 도착하자마자 강철이 물었다.

“NCS에서 연락이 왔다니. 문제가 해결된 겁니까?”

현재 강철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내용은 아니었다.

“그건 아니고 그쪽 부사장이 직접 와서 설명을 해주고 싶다 합니다.”

“설명이요?”

“네. 현재 생긴 문제 상황에 대해서요.”

“NCS 부사장이 직접?”

그 말에 비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강철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규모 면에서나 시가 총액 면에서나 NCS는 강철에 비교 불가 대상이었다. 나일의 시가 총액은 천조가 넘어가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의 부사장이 직접 온다는 것이 얼떨떨한 느낌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절 보기 위해 여기까지…… NCS 문제 생겨서 부사장이 올 정도면 매일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할 것 같은데요.”

비서가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아이온 게임즈를 비롯해 대표님께서 투자한 스타트업들이 워낙 많아 미래 잠재 고객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대표님의 위상입니다. 최근 연이어 서치와 대형 M&A를 성사시키고 아이온 게임즈를 성공리에 나스닥에 상장까지 시키면서 업계에서 대표님의 위치가 생각보다 높습니다.”

뭐가 됐든 기분 나쁜 소리는 아니었다.

“그럼 약속 잡도록 하세요.”

“네.”

잠시 후 점심시간.

누군가 호텔 방문을 두드렸다. 비서가 재빨리 나가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낯선 외국인이 서 있었다.

“NCS 부사장님.”

“네. 로스 페로입니다.”

앉아 있던 강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꽤 높은 사람이 찾아왔지만 굳어진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강철입니다.”

로스가 손을 내밀었고, 강철이 그 손을 잡았다. 로스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사과였다.

“이렇게 불미스러운 일로 찾아뵙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강철은 차마 그 사과를 받지 못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요? 해결이 된 겁니까?”

“그게 아직…….”

그 말을 듣자마자 강철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데이터 센터를 새롭게 구축한다.’

대산 D&S에서 운영 중인 데이터 센터는 이미 노후화되어 전원 관리에서부터 서버 관리까지 어려운 점이 많았다.

데이터 센터.

거기에 들어가는 전원장치, 공조장치 역시 최고의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부의 서버가 쉽게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그런 로스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어떤 건가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건에 대한 보상도 철저하게 해드릴 거고요. 그걸 약속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말에서 진심이 느껴지긴 했다.

“보상이라면 NCS를 공짜로 사용하게라도 해주신다는 걸까요?”

로스가 난감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공짜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금액을 깎아 드릴 수 있습니다.”

“얼마나요?”

“과거 해킹당했을 때 보장해 주었던 할인 혜택에 따라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확실히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부사장이 직접 온 이유를 알 것 같달까. 강철이 비서를 보며 말했다.

“우리가 이번 일로 본 손해액이…….”

말을 늘어트리자 비서는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답했다.

“최소한 그 두 배는 필요합니다.”

“그 정도라 하는군요.”

부사장은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아이온 게임즈.

거기에서 사용하는 서버 양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 고객을 확실하게 잡아야 했다.

“만약 오늘 안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두 배, 못 하면 그대로 해도 되겠습니까?”

강철은 적절한 제안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에는 자신이 문제를 찾아 해결해 주었지만, 이번은 아닐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협의를 마치고 잠시 후.

NCS 부사장이 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문제점을 찾았습니다. 아마 이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가 한국으로 연락을 취했다.

10분.

20분.

수십 분의 시간이 지나도록 정말 서버가 죽었다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NCS 부사장은 그때까지 기다려주었고, 끝까지 강철의 눈치를 살폈다.

강철 역시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위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80%.

아이온 게임즈가 상장 첫날 떡상한 것처럼 자신의 입지도 떡상해 있었다.

* * *

하루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강철은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이동했다. 프로그래밍 언어협회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언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그곳의 한 호텔에 도착하자 이미 천준호와 윤찬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철은 그들과 함께 하루 더 휴식을 취하고, 행사가 벌어지는 한 호텔로 이동했다. 행사장에는 한눈에 봐도 개발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덥수룩한 수염.

뿔테 안경.

후줄근한 체크무늬 남방.

개발자를 연상케 하는 옷차림이었다.

강철은 샴페인을 한 잔 들고 여유롭게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채용할 만한 인물은 없는지 매의 눈으로 인물 면면을 살폈다.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단상으로 올라온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올해의 언어 선정 행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저는 협회 직원 에릭 홀더입니다.”

꾸벅 인사를 한 에릭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심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내부 평가 30%, 언어 사용률 통계 조사 30%, 그리고 금일 시연회를 통한 현장 평가 40%로 수상 언어가 결정될 겁니다. 이미 내부 평가와 사용률 통계 조사는 끝마친 상황이고요.”

잠시 목을 가다듬은 직원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러면 바로 시연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언어는 lcm입니다. lcm은 굉장히 높은 생산성을 가진 언어로 파이썬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고성장하고 있는 언어입니다. 그럼 그 언어의 개발자를 이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이내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금발 곱슬머리의 남자가 단상으로 올라왔다.

lcm.

aiss.

return.

이번 시연회에 참가한 언어는 총 세 가지였다. 첫 번째 lcm이 끝나고 aiss이 끝날 때까지 총 1시간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언어별로 30분의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강철의 차례가 되었고, 옷깃을 여민 강철이 천천히 단상 위로 올라갔다.

리턴이라는 언어가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되는 순간이었다.

* * *

시연 시간 30분.

그 안에 언어에 관해 설명하고, 깊은 인상을 줘 이곳에 있는 개발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강철은 그걸 위해 특별한 쇼를 마련했다.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겁니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게 말보다는 코드로 보여줘야 한다는 걸.”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화면을 넘겼다.

“보시면 저희가 강점이라 생각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1. 속도.

2. 생산성.

3. 러닝 커브.

강철은 화면에 나타난 문구를 하나씩 읽어내려갔다.

“이게 좋다. 저게 좋다. 말로 설명해 드리지 않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20분이군요. 코드로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속도가 어느 정도 나오는지, 생산성 그리고 러닝커브가 얼마나 낮은지를.”

말을 마친 강철은 바로 전용 IDE(개발 전용 툴)를 실행시켰다. 리턴을 개발하면서 함께 만든 리턴 언어 개발에 최적화된 툴이었다.

“지금부터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 보겠습니다. 자바나 파이썬으로는 최소한 수백 줄이 필요한 대용량 데이터 처리의 가장 보편적인 예제인 ‘자연어 처리 예제’입니다. 그걸 리턴으로 구현해 보겠습니다.”

자연어 처리.

각 단어를 하나하나 떼어내 분석해야 하는 작업으로 상당한 고난이도 작업이었다. 강철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프로그래밍 언어 협회의 협회장.

그는 과거 여러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에 참여하며 ‘언어’ 그 자체에 흥미를 느껴 협회의 장까지 오른 이였다. 대학 역시 언어학과를 나와 뒤늦게 컴퓨터 과학을 배운 매우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지만 그 실력만큼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였다.

그런 그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흠…….”

옆에 있던 직원. 에릭 홀더가 물었다.

“확실히 빠르긴 하네요.”

협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간 언어의 버전이 업그레이드된 것 같군요.”

“아…… 그럼.”

“우리한테 줬던 것보다 한 단계 발전했어요. 보면 저 라이브러리 자체가 없었고, 문법이 조금 변했어요. 이를테면 객체 생성에 과거에는 new 예약어를 붙여야 했는데 지금은 빼도 되도록.”

에릭이 팔짱을 낀 채 정면을 보았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지 채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자연어 처리 프로그램이 어느새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코딩 속도가 더 빨라진 거군요.”

“그렇다고 해도 저 속도는…… 말이 안 되게 빠른 감이 있군요. 저게 사실이라면 기존 대용량 데이터 처리에 사용하던 R이나 파이썬은 버려질 정도입니다.”

에릭이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 정도라고요?”

협회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언뜻언뜻 보이는 문법을 보면 앞으로 대용량 데이터 처리가 아니라 웹 프로그래밍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해놓은 게 보입니다.”

“흠…….”

다른 이가 말했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협회장인 마틴 오맬리가 하는 말이라 더 흥미롭게 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까지 10개가 넘는 언어 개발 프로젝트에 참가해 설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온 사람이다. 언어학과에서 배운 내용을 접목하여 쉽고, 빠르고, 편리한 언어를 만들어냈다.

그가 만들어낸 것 중에 가장 유명한 언어가 Sand다. 현재 웹 프로그래밍 개발에 표준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 그가 하는 말이기에 한 마디 한 마디에 실리는 무게감이 달랐다.

“이대로 계속 발전된다면 앞으로 꽤 발전 가능성이 보입니다.”

그 말에서 에릭은 알 수 있었다.

‘올해의 언어는 리턴 차지다.’

지금까지 이런 칭찬을 입에 담은 언어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시각 미국 뉴욕.

공연을 마친 엘리가 침대에 누워 의미 없이 리모컨을 누르고 있었다.

삑.

삑.

화면을 넘겨보았지만, 딱히 흥미로운 내용은 없었다.

“뭐 해?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어?”

“아무것도.”

“아이온 게임즈 상장했더라. 그것도 미국 나스닥에.”

“……봤어.”

“내가 아무리 상식은 없어도 나스닥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인지는 알지. 우리가 사용하는 핸드폰도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 거잖아.”

엘리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그 모습을 본 동료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아, 네 님은 점점 멀리 떠나가는구나.”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렇구나. 그런 거 아니구나.”

하지만 믿지 않았다. 그저 무성의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를 놀리는 데 정신이 없었다.

다시 홱 고개를 돌린 엘리가 아무 의미 없이 리모컨을 눌렀다.

삑.

화면이 넘어가고 미국 CNN 뉴스 방송이 흘러나왔다. 바로 리모컨을 누르려던 엘리가 잠시 멈춘 채 화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

“뭐야, 이제는 뉴스에도 나오잖아.”

-올해의 언어상.

-수상자 이강철.

-아이온 그룹의 CEO 이강철이 만든 리턴이 올해의 언어에 선정되었습니다.

화면에는 상패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엘리는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함께 있던 동료도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둘 다 영어라면 익숙했기에 아나운서의 멘트를 해석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프로그래밍 언어 협회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언어는 컴퓨터 과학 업계에서 노벨상이라 불리는 영예로운 상으로 이 상을 받은 한국인은 이강철이 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료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뭐야 이제. 노벨상까지 받았다는 말이야?”

엘리는 새삼 상대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 * *

올해의 언어.

리턴.

최종 발표가 나는 순간 천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야 했다. 가슴이 벅차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옆을 보니 윤찬민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현실이죠.”

온몸이 구름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다. 금방이라도 하늘 위로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

천준호는 급히 심호흡하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축하한다.”

“축하드려요.”

둘은 서로에게 축하 인사를 나누며 단상 아래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수많은 개발자가 선망의 눈빛으로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그 말에 천준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 자신을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사람을 잠시 잊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게 다 대표님 덕분입니다.”

“하하, 아니에요. 저도 혼자서라면 여기까지 오진 못했을 겁니다. 여기 오자고 한 것도 다 천 과장 아닙니까.”

그런데도 천준호는 한사코 고개를 흔들었다.

이곳에 오자고 한 건 자신이지만 ‘올해의 언어’에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이강철 덕분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그런 천준호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수상의 기쁨을 누리면서 편히 쉬도록 하세요.”

그 말에 천준호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밤새도록 술을 마실 생각이었다.

행사가 끝나갈 때쯤.

프로그래밍 협회장 마틴이 강철을 따로 찾았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참으로 인상적인 언어였습니다. 쉽고 빠르고,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감사합니다.”

그 뒤로도 협회장의 낯부끄러운 칭찬은 계속되었다. 강철은 몸 둘 바를 몰랐다.

마틴 오맬리.

그가 업계에서 가지는 위상이 어떤지 강철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강철의 얼굴에 금칠한 마틴이 천천히 본론을 꺼냈다.

“리턴은 계속 발전시켜 나가실 생각입니까?”

“물론입니다. 저도 무척이나 애정을 품고 있는 놈이니까요.”

“그러면 혹시…… 그 언어 개발에 자리가 하나 있을까요?”

의외의 제안에 강철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면야 저희가 영광이긴 한데……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마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항상 고민해 왔던 게 하나 있습니다.”

강철이 묵묵히 듣고 있자 마틴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왜 프로그래밍 언어에는 영어 같은 게 없을까. 하나의 언어로 전부를 할 수 있는 그런 언어는 왜 없을까.”

세계에 여러 언어가 있듯이 프로그래밍 언어도 수십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영어는 만국 공통어로 어딜 가든 사용할 수 있지만 프로그래밍 언어는 용처에 맡게 다른 언어를 사용해야 했다. 그걸 한 가지 언어로 통일시키는 것이 그의 마지막 목표였다.

마틴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웹, DB, 서버, 대용량 처리, 임베디드 어디에서든 사용 가능한 언어. 어디에서든 최적화된 언어 그런 언어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계속 고민하던 중 리턴을 만나게 되었고요.”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는 언어라…….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리턴의 위상은 현재의 자바나 C를 능가하게 되리라. 그 생각만으로도 강철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이내 강철이 손을 내밀었고, 마틴이 그 손을 맞잡았다. 강철의 인맥에 마틴 오맬리가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 * *

강철의 수상 소식은 바로 한국에도 전해졌다.

-이강철, 자체적으로 만든 ‘리턴’으로 올해의 언어 수상.

-리턴. 한국이 만든 프로그래밍 언어 최초로 올해의 언어 수상.

관련 뉴스가 언론을 장식한 것이다. 집무실에서 신문을 보던 대통령 천건복의 시선도 그쪽을 향해 있었다.

“이강철 리턴으로 올해의 언어 수상. 이 친구 참 대단하군.”

대기하고 있던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기업을 운영하는 수완만이 아니라 프로그래밍 실력도 엄청난 것 같습니다. 올해의 언어는 컴퓨터 과학 업계에서 노벨상이라 불릴 만큼 파급력 있는 상이라고 하더군요.”

“흠…….”

대통령의 기색을 살피던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청와대에 한번 초청할까요?”

“나라의 위상을 드높였으니 일단은 축전을 보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가 국가과학기술 자문위원회에서 활동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이참에 그 친구가 낸 안건들을 한번 가져와 보게.”

살짝 고개를 끄덕인 비서실장이 바로 관련 부처에 연락했다. 불과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관련 문서가 집무실로 도착했다.

“여깄습니다.”

천건복은 바로 관련 문건을 읽어내려갔다. 궁금증이 생기면 바로 확인해 보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수십 분 문건을 살피던 천건복이 의자 등받이 깊숙이 몸을 기댔다.

“보니까 이강철이 오천억을 투자하고 정부에서 5천억을 출연해서 기초과학 분야를 발전시키자는 안이 있던데…… 이 안은 왜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건가? 5천억이면 상당히 큰 금액인데.”

“관련 내용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지금 바로 알아보고 보고하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으니까.”

“네.”

고개를 숙인 비서실장이 그대로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이내 관련 부처 직원들이 전부 소집되었고, 그 속에는 정책실장도 당연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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