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33화 (33/59)

4장 거대한 중국 시장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혹시나 중간에 진동만이 깨어난다면 계획을 그르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바로 청와대로도 흘러 들어갔다.

대산 그룹 진동만.

그의 동태는 정부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경제수석에게 아주 중요한 이슈였다.

“진동만이 쓰러지고, 진선미가 움직였다. 이 말이지?”

“네. 아무래도 계열 분리를 실행할 것 같습니다.”

“계열 분리라면…….”

“예전에 말씀드린 대산 플랜 A입니다.”

경제수석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산 플랜 A.

이강철이 대산 그룹을 차지한 이후 앞으로 대산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였다. 그 결과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이 계열 분리였다.

마트.

백화점.

대산의 핵심 사업 두 가지를 이강철 대표가 가져가고 나머지 계열사를 원주인에게 돌려준 후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시나리오였다.

“역시나 그렇게 흘러가는군.”

“백화점이야 ㈜대산이 가지고 있으니 문제가 없지만, 마트는 자칫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경제수석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가 쓰러진 지금이 기회이기도 하고요.”

“하하, 이강철 대표에게 운이 따라다니는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강철…… 이강철 그의 이야기가 요즘 엄청나게 들려.”

그러자 보좌관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 정말 활약이 엄청납니다. 최근 국가 과학기술 자문위원에 합류했는데 신재생에너지나, 언택트 사업 개발에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기초과학에 돈을 써야 한다 주장하고 있습니다. 수학이나 물리 학문이 없다면 AI도 없다며. 그 목소리에 학계 중진들도 동조하고요.”

“누가 몰라서 못 하나. 당장 성과가 안 나타나니 문제지.”

“그 문제점을 말하니까 정부가 도와준다면 자신이 직접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의사까지 전달해 왔습니다.”

“투자?”

“네. 각 대학에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연구실에 자금을 대겠다고 합니다. 물론 그 성과는 공유하고요.”

“얼마나?”

“오천억. 자신에게 전권을 준다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오천억, 정말 오천억이라 했어?”

말이 오천억이지 실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걸 들은 경제수석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AI의 미래는 수학에 있다는 것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물론 수학에만 투자하는 것은 아니고, 수학, 화학, 물리, 천문 등등 여러 학문에 투자하겠다고 합니다.”

“요즘 돈을 많이 벌더니 확실히 통이 크긴 하군.”

“정부에서 오천억. 자신이 오천억을 대서 1조짜리 재단을 설립해 그 돈으로 기초과학에 직접 투자를 진행하고 싶다 하더군요. 연구비를 헛되이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면접을 보고, 연구비 지원할 사람을 정하겠다고 합니다. 계획이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흠…….”

보좌관의 목소리가 한껏 낮아졌다.

“이건 충분히 고려할 만한 제안입니다. 아시겠지만 이강철에 대한 여론이 대단히 호의적입니다. 거기에 편승할 기회이기도 하고요. 몇몇 언론에서 이 내용을 기사화했더니 이강철에게 밀어주라는 의견도 상당했습니다.”

경제수석이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정도야?”

“네.”

경제수석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변형 인플루엔자 사건.

그 이후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의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국민의 반응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재탕, 삼탕 된 계획에 말만 번지르르하게 가져다 붙였다는 비판이 상당했다.

그 점을 경제수석도 충분히 느꼈다.

“휴우…….”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추진해 볼까요?”

“일단 정책실장님과 이야기를 해보고.”

“알겠습니다.”

하지만 보좌관은 알고 있었다.

이강철.

결국, 그를 잡을 수밖에 없을 거란 것을.

* * *

12시간.

각종 자료를 확인하고, 계열사 기업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진씨 일가가 가진 지분을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확인해야 할 내용만 수백 가지가 넘어갔다. 그 내용을 대산 기획실의 인재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최종협상안이 진용민 측에 전달되었다.

협상안을 확인한 진용민이 진선미를 보며 물었다.

“이게 최종협상안이란 말이지?”

진선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가 사전에 이야기 한 대로 백화점, 마트는 이강철이 나머지 계열사를 우리가 가지는 것으로 되어 있어.”

“넌 패션, D&S를 가져가고, 난 편의점, 프리미엄 아울렛, 커피트리를 가지고.”

“오빠가 키운 사업이니까.”

진용민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커피트리.

한 해 매출만 2조 원이 이르는 알짜배기 커피 체인이었다. 편의점은 아직 순위는 낮지만, 점점 성장하고 있었고, 프리미엄 아울렛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생각한다면 내가 가진 지분 가치 이상이다.’

이성적으로는 수긍이 되는 안이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수긍하기가 힘들었다.

원래.

이건.

전부.

내 것이었다.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걸 눈치챈 진선미가 말했다.

“아버지도 쓰러지신 마당에 끝까지 가보고 싶어?”

“…….”

“그건 마치 뭐랄까. 짚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격이랄까. 오빠도 알잖아. 지금 이강철이 가진 현금만 얼마인지. 거기에 아이온 그룹 계열사 나스닥 상장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

“나스닥?”

“최소한 조 단위 평가를 받을 거야. 그 돈을 다시 투자한다면 더 성장할 테고. 그럼 이강철은 또 어마어마한 돈을 벌겠지. 알잖아. 우리나라에서 돈이 깡패인 거.”

“하지만 권력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거다. 우린 지난 세월 동안 구축한 권력이 있어.”

그 말에 진선미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풉. 미안. 비웃으려고 한 건 아닌데.”

“…….”

“지금 코스피에 상장된 기업을 시가총액 순으로 나열해 보자. 그리고 그걸 10년 전 순위와 한번 비교해 봐.”

진선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오성전자를 빼고, 남아 있는 기업 있어?”

진선미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없지. 그럼 그 기업들은 어떻게 된 걸까? 그 기업 회장들이 가진 권력은 어디로 간 걸까? 지금은 돈이 곧 권력이야. 그게 없으면 권력도 없는 거라고.”

진용민은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심 진선미의 말이 맞는다는 걸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이강철은 엄청난 권력자지. 그래서 청와대에서 주시하는 중이고. 더구나 검찰, 국세청에서 탈탈 털었지만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었어. 겨우 벌금 천만 원이었나? 그 두 집단이 우리를 털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쯤 되자 진용민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다.”

“지분 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질 거야. 계열사들은 비상장 기업이니까. 회사를 잘 운영해서 상장시킨 후 시세차익도 노려볼 수 있고. 즉 기회는 아직 있다는 뜻이니까. 너무 상심하진 마.”

그걸로 둘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바로 언론을 통해 관련 내용이 가시화되었다.

-(주)대산 지분 정리 본격 시작.

-백화점, 마트 이강철이 타 계열사는 진씨 남매에게로.

-이강철 ㈜대산을 완전히 장악하다.

관련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공식화가 되자 회사 내에서 희비가 갈렸다. 마트, 백화점은 환호를 타 계열사 직원들은 울상이었다. 그건 직장인들이 속내를 올리는 ‘잡스’라는 사이트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었다.

대산편의점.k**** : 사내 분위기는 다들 대산이나 대산 마트 쪽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사실 진용민이 능력이 있기는 한데 이강철에 비해 부족한 게 사실이니까요. 결과적으로 아직 마렵다.

대산프리미엄아울렛.h**** : ㈜대산으로 전배 신청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지금 사내에서는 전배 신청을 거의 받아주지 않습니다. 학벌이 엄청나게 좋거나. 우수사원 표창을 최소 3회는 받아야. 대산이나 대산 마트로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인재들이 다 그쪽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뜻이죠.

대산D&S.l**** : 그나마 진선미 전무는 깨어있어서 다행. 편의점이나 프리미엄 지원하던 애들 혹시나 그쪽으로 같이 넘어가게 될까 봐 벌벌 떠는 중.

그런 사내 분위기를 강철도 고스란히 전달받고 있었다.

“전배 신청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최대한 선별에서 최소한의 인원을 받고 있기는 한데 이러다 대규모 퇴사나 이직, 아니면 1인 시위라도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비서의 우려에 강철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은요?”

“사내 법무팀과 이앤박이 충분히 검토해봤지만, 법에 저촉될 사항은 없었습니다.”

“그럼 일정대로 밀고 나가도록 하세요. 잡음이 발생하는 건…… 매니저급들에 전달해서 잘 설득하도록 하고요. 어차피 법적으로 다른 회사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그보다 ㈜대산, 대산 마트를 아이온 밑으로 이동시키는 건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그 부분도 현재 법률 검토 중입니다. 법률 검토 끝내면 이사회에 상정해서 주주총회 통과될 것 같습니다.”

㈜대산, 대산 마트.

강철은 이 두 개 회사도 자신이 만든 아이온의 계열사로 편입시키고자 했다. 지배 구조를 깔끔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진씨 남매에게서 지분이 넘어오면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 건은 그렇게 하면 될 것 같고…… 앞으로 일주일 내에 남은 큰 건은…….”

“중국 출장 건이 있습니다. 지수철 사장이 중국 판호 발급을 위해 상무위원과도 약속을 잡아 놨다고 합니다.”

강철이 턱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알겠습니다.”

* * *

며칠 뒤.

중국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비행기에서 내린 강철이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을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그때마다 카메라 수 대가 붙어서 강철을 찍었다.

시즌 1이 초유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시즌 2에서는 강철의 개인적인 모습을 더 담아내기 위한 넷플러스 측의 기획이었다.

강철은 차창 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국은 판호 발급이 0건이었지만 다른 나라에는 100여 건 이상의 판호가 발급됐어. 그리고 발급된 게임은 하나같이 캐쥬얼 게임이었다.’

출장을 오기 전 강철은 중국의 판호발급 현황을 상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유의미한 내용을 알아챌 수 있었다.

바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여부.

그게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판호 발급이 갈린 것이다.

‘중국은 해외 SNS까지 차단하며 정보 차단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말은 우리 게임에도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없애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야.’

강철이 도출해 낸 결과였다.

‘거기에 중국에 대규모 투자까지 약속한다면.’

판호 발급도 불가능한 것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준비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지수철의 조언에 따라 플러스알파를 준비했다.

‘일단 가보자.’

이내 강철이 탄 차가 빌딩 숲 사이로 사라졌다.

* * *

호텔에 도착한 강철은 바로 비서, 넷플러스 직원, 트리플의 엘리가 참석한 가운데 전체 일정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촬영은 지난번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총 2주간의 일정동안 12군데의 회사를 돌아다니게 될 거고요. 그중에는 대표님이 말씀하신 포니 라이드로 섭외해 두었습니다.”

말을 하던 직원이 강철의 눈치를 살폈다. 이곳의 실질적인 결정권자는 강철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강철이 승낙하자 직원이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촬영방식에는 크게 변화는 없습니다. 시즌 1에서처럼 회사를 방문하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대표님께서 문제점을 해결해 주시는 방식입니다. 그게 극적인 모습을 연출하기 좋아서 그대로 가기로 했습니다. 특히나 해당 구간에 대한 시청자 몰입도가 높더라고요.”

이번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강철에게 쏠렸다.

그의 최종 수락.

그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엘리도 강철을 보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두 달 만인가…….’

대산 백화점 행사.

그때 이후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너무 오랜만이어서일까. 그의 얼굴에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

그런 엘리에게 넷플러스 직원이 말했다.

“엘리 씨? 엘리 씨?”

그 말에 매니저가 엘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화들짝 놀란 엘리가 급히 답했다.

“아, 네.”

“하하, 말씀드렸다시피 이번에도 리액션 위주로 해주시면 됩니다. 일반인 관점에서 궁금한 것들을 한없이 물어봐 주시고요. 엘리 씨의 질문 덕분에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의견이 많아요. 감초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계십니다.”

엘리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렇게 한 시간여 정도를 더 하고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엘리는 편하게 쉴 수 없었다. 매니저가 그녀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 그런 자리에서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어떻게 하냐.”

“네?”

“아니, 아까 회의시간에 기억 안 나?”

순간 엘리의 입술이 바짝 말라 버렸다. 이내 심장이 쿵쾅거리며 빠르게 뛰었다.

그런 엘리를 보며 매니저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다 봤어. 너 누구 보고 있는지.”

“…….”

“설마 그런 건 아니지?”

엘리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우며 재빨리 답했다.

“아니에요.”

“그래. 너 이제 막 물오르는 중이야. 상대는 국내 부호 5위? 3위? 오성 전자 다음으로 불리는 사람이고. 애초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했다.”

그 말에 엘리가 고개를 모로 돌리며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촬영도 같이하는데 뭐 그렇게까지야. 나도 한 인기 하는데…….”

“야. 그런 말이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알아요. 알아.”

“하여간 조심해. 비록 중국이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까. 곧 한한령도 풀릴 것 같은데 슬슬 중국 활동 준비도 해야지. 이럴 때에 스캔들 터지면 치명타다.”

엘리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엘리를 보며 매니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너도 좋고, 저분도 좋으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이강철 대표가 일반 사람도 아니고, 너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연예인이 재벌가와 엮여서 잘된 케이스. 난 본 적이 없다.”

그러자 엘리의 입 삐죽 앞으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자수성가한 사업가와 결혼한 사람들은 다 잘 살던데요? 엑스게임즈 지수철 사장님이랑 결혼한 언니랑 얼마 전에 만났었거든요. 행복하다고 하던데.”

매니저가 살짝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그리고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매니저는 이제 완전히 포기한 얼굴이었다.

“어련하겠어.”

대화를 마친 엘리는 호텔 창밖 너머 거대하게 솟은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자신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 * *

다음 날.

강철은 호텔에서 지수철을 만났다. 그가 어렵게 마련한 자리 때문이었다.

“오늘 만날 사람은 2명입니다.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 국장 리환 그리고 중국 권력 순위 5위인 차오스 상무위원입니다.”

강철은 둘 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누가 더 높은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럼 차오스의 마음에 들면 되는 겁니까?”

“네. 둘 중에서는 당연히 차오스의 마음을 사는 게 더 좋긴 합니다. 하지만 리환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승인해 주는 건 그 사람이니까요.”

강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요. 판호 발급 현황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캐주얼 게임이더라고요.”

지수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른 사용자와 연결이 없는 캐주얼 게임은 정보 통제가 쉬우니까요. 아마 그래서 그럴 겁니다.”

“그래서 아이온 게임즈의 게임들도 커뮤니티 기능을 없앤 버전을 제안할까 합니다.”

지수철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그랬을 때 생길 수 있는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게임의 재미가 반감되지 않겠습니까? 워리어나 라이즈 킹덤은 전부 타 사용자와의 교류에서 재미가 느껴지는 게임인데…….”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전설의 기사에 들어간 게임 전용 인공지능. 그걸 계속 발전시켜 오고 있었습니다. 이번 아이온 인공지능의 기술까지 도입해 가면서요.”

“아…….”

아이온 인공지능.

지수철도 익히 알고 있는 회사였다. 그 회사가 어떤 기술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서치가 120억 달러에 인수했다는 사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정도면 일반 사용자들에게 충분히 재미를 줄 정도는 될 거로 생각합니다.”

지수철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럼 그 문제는 해결됐군요.”

“나머지 하나는 한국이라서 그런가요?”

“네. 아무래도 양국 간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요.”

“그럼 아이온 게임즈가 미국에 상장한다면요?”

“그러면 그나마 조금 더 여지가 생길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이 두 가지를 강조하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지수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의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진행하면 판호 발급에 우호적인 여건이 생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준비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네. 그리고 준비한 선물도 있으니 충분히 가능할 거로 보입니다.”

순간.

둘에게 강철의 비서가 다가왔다.

“약속 시각입니다.”

강철은 비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둘은 중국 시내 한 호텔의 VIP실에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판호발급을 담당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 국장과 중국 내 권력 순위 5위에 해당하는 상무위원 중 한 명인 차오스가 앉아 있었다.

강철은 먼저 리환 국장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이강철입니다.”

“리환입니다.”

그가 두꺼운 손을 내밀었다. 강철이 그 손을 맞잡는 순간 묵직한 힘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내 옆에 서 있는 차오스를 보았다.

중국 내 8명밖에 없는 상무위원.

그중에서 권력서열 5위를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이강철입니다.”

“차오스.”

그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답했다. 약간은 얼어 있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지수철이 급히 입을 열었다.

“하하,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약소하게나마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최근 피로감을 많이 느끼신다고 들었는데…….”

“뭐, 그냥 그렇소.”

“그래서 제가 한국산 산삼을 직접 공수해 왔습니다. 이건 돈으로도 구하기 어렵다는 100년근 산삼입니다.”

지수철이 손짓하자 비서가 기다란 박스를 들고 왔다.

그 안에는 수십 가닥의 잔뿌리가 붙어 있는 천종산삼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위 부르는 것이 값이라고도 알려진 산삼이었다. 지수철이 준비한 회심의 선물이었다.

“호오…….”

차오스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산삼을 보았다. 그렇다고 선물을 하나만 준비한 건 아녔다.

“여기 이건 국장님을 위한 것입니다. 평소 그림을 모으는 게 취미라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비서가 커다란 그림을 하나 들고 왔다. 지수철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김홍도의 풍경화입니다.”

풍경화를 본 리환 국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한 사람은 산삼을 보며, 한 사람은 그림을 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한결 유해진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그제야 지수철이 본론을 꺼냈다.

“두 분 다 마음에 들어 하셔서 다행입니다. 아시겠지만 여기 이분은 이강철이라고 한국에서 사업을 하시는…….”

차오스가 말을 끊고 들어갔다.

“알고 있습니다. 벌써 서치에 2개의 회사를 매각한 인물 아닙니까.”

“하하, 네. 이분이 게임 사업도 하고 있는데 중국에서 판호를 발급받고 싶어 하십니다.”

그다음 말을 강철이 이어받았다.

“게임은 중국 현지 사정에 맞춰 커뮤니티 기능을 없애고, 출시될 예정입니다. 다른 게임들처럼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지킬 테고요.”

“흠…….”

“또한, 아이온 게임즈는 한국 회사라기보다는 미국 회사입니다. 한국이 아닌 나스닥 시장에 상장시킬 거라서요.”

미국.

그 말에 차오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최근 미, 중 무역 전쟁으로 인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 회사란 말인가?”

“완전한 한국 회사는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흠…….”

하지만 차오스는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산삼.

커뮤니티 기능 폐지.

미국 회사.

이것만으로는 발급해 주기에 부담이 있었다. 차오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근 중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방송 촬영을 한다고 하던데.”

“네. 맞습니다.”

이내 차오스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얼마나 투자할 생각인가?”

그 말에 강철의 입가에 씩 미소가 그려졌다. 돈이라면 자신 있기 때문이었다.

“최소 2천억 정도를 생각 중입니다. 필요하다면…….”

강철은 일부러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말을 늘였다. 차오스를 비롯해 리환 국장까지 강철의 입을 주시했다. 강철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서로 간에 입장이 조율된다면 더 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에는 엄청난 성장성을 가진 여러 기업이 존재하니까요.”

모국을 칭찬하는데 화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차오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투자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다만……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는데.”

“네.”

“듣자 하니 이미지 인식 분야에서도 전문가라도 들었는데 맞습니까?”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차오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희가 그 기술이 좀 필요합니다.”

판호와 이미지 인식 기술을 맞바꾸자는 말이었다. 결국, 아이 체크의 핵심 기술을 달라는 말과 같았다.

이런 부탁을 저렇게 당당하게 하는 걸 보니 확실히 중국이 다르긴 달랐다. 살짝 인상을 찡그린 강철이 생각에 잠겼다.

‘만약 알고리즘을 넘긴다고 치면 게임으로 최소한 1조 이상 순이익을 뽑아내야 수지 타산이 맞는데…….’

강철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당장 답을 줄 순 없었다. 머릿속에서 계산한 것과 실제 데이터를 돌려보는 건 다르기 때문이었다.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한 강철은 바로 한국에 연락해 ‘아이체크’ 기업가치 평가서를 보내라 요청했다. 이미 나스닥 IPO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보고서는 바로 도착했다.

-아이체크 기업가치 15억 달러.

여기에는 다양한 요소가 들어가 있었다.

-이미지 인식 알고리즘 : 4억 달러.

-확보한 회원 가치 : 5억 달러.

-브랜드 가치 : 2억 달러.

등등.

아이체크에 대해 아주 세부적으로 나눠놓은 내용이었다.

강철의 시선이 한 부분에 멈춰 있었다.

“흠…….”

-이미지 인식 알고리즘 : 4억 달러.

이걸 중국에 넘겨준다면 4억 달러 이상의 돈을 벌어야 한다. 판호를 발급받고 그 정도의 이익을 내지 못한다면 오히려 손해였다. 그래서 만든 것이 판호 발급에 따른 이익 추정치다.

-워리어 : 연간 2,500억.

-라이즈 킹덤 : 연간 1,500억.

과거 중국에 진출했던 게임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연간 추정치였다.

총 합쳐서 4천억. 이미지 인식 알고리즘과 비슷한 이익이었다.

“어떻게 한다…….”

만약 두 가지가 압도적인 차이가 났다면 결정이 쉬웠을 것이다. 승낙하거나 거부하면 될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애매하게 차이가 나는 덕분에 결정이 쉽지 않았다.

“여기에 앞으로 아이온 게임즈에서 출시될 게임 두 가지 판호를 신속 발급해 준다는 조건을 달면 확실히 내게 이익이긴 한데.”

들어 줄지가 의문이었다. 자칫 어설프게 협상을 신청했다가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고민하던 강철이 전화기를 들었다.

“네. 이강철입니다.”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요.”

“협상을 좀 해보려고 하는데 괜찮은지 해서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지수철과의 통화는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 * *

중국에 온 주목적은 넷플러스 촬영.

강철은 그 촬영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정말…… 이게 되는 거였군요.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도 개발 할 수 있었다니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저희도 리턴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겠습니다.

가는 곳마다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고,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스타트업의 기술, 규모에 따라 수십억에서 수백억까지 투자를 진행했다.

그걸 보는 엘리의 매니저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또 500억을 투자한다고?”

얼마를 투자할지.

그 금액은 사전에 누구도 알지 못했다. 강철이 실제 기업 실사를 진행해보고 최종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엘리의 매니저는 들을 때마다 새롭고 놀라웠다.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도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쓴 돈만 3,000억 넘지 않아요?”

“그, 그런가.”

“우리 회사 시가총액이 8,000억이었나…… 그랬던 거 같은데 확실히 저분이면 우리 회사 같은 건 몇 개를 살 수 있겠네요.”

“그렇다마다.”

“그런데 매니저 오빠도 이미 눈치채셨죠?”

촬영장을 보고 있던 매니저의 목이 끼긱 거리며 돌아갔다. 그러곤 검지로 입술을 가리며 말했다.

“쉿.”

“이미 촬영장에 소문 쫙 퍼졌던데요.”

스타일리스트가 손으로 엘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렇게 쳐다보는데 어떻게 몰라요.”

그곳에는 대화를 나누는 강철을 멍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엘리가 있었다.

촬영장.

잠시 쉬는 시간에 강철은 포니 라이드의 사장 마진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진짜 큰 도움이 됐어요.”

“하하, 아닙니다. 이런 투자기회를 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드리죠.”

대화를 나누던 마진산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아주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 회사로 에이스테크놀러지를 가신다고요?”

“네. 내일모레 예정되어 있습니다.”

마진산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

“아마 조금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갑작스러운 말에 강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 회사나 사장에게 문제가 조금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뭐 아닐 수도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에이스테크놀러지.

중국 정부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AI 회사 중 하나였다.

‘뭔가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 데…….’

강철에게도 익숙한 회사였다. 그런데 그 이유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유념하겠습니다.”

“하하, 네. 실제로는 별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이런 의견이 있다는 정도로만 생각해 주세요.”

강철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굳어진 표정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그런 강철을 보고 있던 엘리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긴 중단발에 레이어드 된 머리가 살짝 찰랑거렸다.

“뭐 해?”

“어…… 언니.”

“너 너무 쳐다보는 거 아냐?”

엘리가 재빨리 고개를 흔들었다.

“안 봤어요.”

스타일리스트가 고개를 모로 꺾으며 물었다.

“뭘?”

엘리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엘리에게 스타일리스트가 한 층 더 얼굴을 가까이 댔다.

“우리 엘리가 뭘 안 봤을까아.”

그녀의 짓궂은 표정에 엘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스타일리스트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항상 조심해야 해. 그게 연예인의 삶이야.”

엘리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순간.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에 스타일리스트도 입을 닫고, 엘리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었다. 더는 그 내용으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 * *

촬영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강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런 강철에게 비서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사항에 대해 조사를 해봤습니다. AI 기술이라는 것이 워낙 보안을 요하는 일이고 중국 정부까지 개입되어 있다 보니 실제 기술 검증은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다만?”

“마진산의 말대로 주변 평판 중에 해당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수백억의 투자금을 받아서 하드웨어 장비 확충에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런 장비들은 보이지 않고, 비싼 아파트에 매일같이 여자가 들락날락해서 말이 많습니다.”

슬쩍 강철의 눈치를 살핀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뜬소문에 불과할 수도 있고요. 이런 소문들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흠…….”

강철이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한 번쯤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로 생각했다. 돈이 있는 곳에 파리가 꼬이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이 회사와 사장 이름은 자신이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오늘 예정된 파티에 후비청도 참가한다고 하니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후비청.

마지막 투자 예정 회사인 에이스테크놀러지의 사장이자 AI 개발자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 말에 강철의 눈이 반짝였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오늘 파티에 참석한 다라…….”

“네. 중국 정부 돈도 에이스테크놀러지에 들어가 있으니까요.”

강철이 여전히 창밖에 시선을 던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기술을 가졌는지 아닌지 곧 알게 될 것이다. 그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실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었으니까.

* * *

그렇게 몇 시간 후.

강철이 베이징 시내 한 호텔에서 샴페인 잔을 들고 서 있었다. 그런 그에게 차오스가 다가왔다.

“음식은 입에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이대로 중국에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다행이군요.”

그러면서도 강철은 파티장 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차오스는 그런 강철의 기색을 빠르게 알아챘다.

“혹시 찾으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그 말에 아까 비서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중국 정부에서도 투자했다. 그래서 차오스가 개최하는 파티에 초대된 거고.’

오늘 모임의 이름은 ‘미래 기술 포럼’이었지만 사실상 차오스의 인맥을 관리하는 파티나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참석자 대부분이 그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강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후비청이라고 에이스 테크놀러지 CEO 분이 궁금합니다. 앞으로 투자가 예정된 기업이기도 하고요. 직원들이 만나보긴 했는데 아직 제가 직접 보진 않아서요.”

“아! 후비청. 아주 유능한 친구죠. 하긴 아이온 인공지능을 만드셨으니 AI 기술에도 관심이 아주 많으시겠습니다.”

“하하, 네.”

“마침 잘됐군요. 그 친구가 오늘 왔을 텐데…….”

그가 살짝 손을 들자 대기하고 있던 거의 비서가 바로 후비청을 찾아왔다.

그 역시 샴페인 잔을 하나 들고 있었고, 바로 옆에는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아주 예쁜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기술자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힘든 모습이었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후비청입니다. 절 찾으셨다고요.”

그리고 후비청이 다가와 인사를 하는 순간.

강철의 머릿속으로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후비청. 기억났다.’

미국을 이길 수 있는 AI 기술을 가지고 있다며 중국 정부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한국에서도 AI 포럼에 몇 번이나 참석했던 희대의 사기꾼.

바로 그였다. 중국 정부조차도 사기를 당할 정도로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멍하니 있는 강철에게 차오스가 말을 건넸다.

“하하, 실제로 보니 아주 놀란 모양입니다.”

“아, 네. 진짜…… 정말 놀랐습니다. 전 이강철입니다.”

“하하, 저도 이름은 들었습니다. 최근 서치에 아이온 인공지능을 매각하셨다고요. 그리고 내일모레 투자를 위해 찾아오시기로 약속이 되어 있기도 하고요.”

강철은 그의 얼굴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강철이 천천히 입을 뗐다.

“네. 최근 가장 뛰어난 AI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여 아주 궁금합니다.”

“하긴 우리 에이스테크놀러지의 AI 기술은 세계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최고 수준이긴 합니다. 서치? 그들도 우리 인공지능 ‘에이스’ 앞에서는 몇 수 접어줘야 할 겁니다.”

그 말에서는 허세가 잔뜩 느껴졌다.

“그렇군요. 사실은 시간이 괜찮으시면 기술 관련해서 몇 가지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하하, 전 일은 사무실에서만 하자는 주의라.”

강철이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들어보니 dbscan 알고리즘을 개량해서 사용하신다고 하는데…….”

강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비청이 단숨에 샴페인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곤 옆에 있는 여자의 허리를 감싸며 호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오늘은 파티를 즐기시죠. 어차피 일 이야기는 내일모레 하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강철은 그를 보내지 않았다.

“아니요. 지금 이 자리에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안을 불러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 말에 파티장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가장 당황한 건 강철의 앞에 서 있던 후비청이었다.

“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강철이 한 번 더 강조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기술이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잠시 당황하던 후비청이 재빨리 표정을 지우며 미소 지었다.

“푸하하, 가짜요? 농담이 너무 과하시군요.”

강철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후비청.

에이스테크놀러지.

완전히 기억이 났다. 강철이 살던 시대에서 중국 정부를 골탕 먹인 희대의 개발자로 한국 개발자들 사이에서 밈으로 사용되던 남자였다.

강철이 한 번 더 단호하게 답했다.

“제가요? 전 농담을 하지 않습니다.”

그제야 장난이 아님을 깨달은 후비청의 표정도 굳어졌다. 그가 강철을 향해 한발 다가서며 말했다.

“농담이 아니면 근거가 있습니까? 아직 저희가 보유 중인 기술을 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떤 알고리즘을 사용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개발했는지 아십니까?”

강철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후비청이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이라니. 무례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군요.”

옆에 있던 차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현재 강철은 조금 무례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강철의 태도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거짓은 거짓이니까요.”

그러자 후비청의 급변했다. 이내 목청을 키우며 강철에게 한 발 더 다가갔다.

“이 사람이 진짜!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야!”

하지만 강철의 태도는 여전히 담담하기만 했다.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자.

바로 후비청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滚你妈的.”

당연히 중국 말이었다. 옆에 있던 통역사가 곤란한 표정으로 바로 번역해 주었다.

욕을 들은 강철이 픽 코웃음을 흘렸다. 그에게는 그저 성난 멍멍이가 떠들어대는 거로 보였다.

“그렇다고 욕까지 하실 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후비청이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강철을 노려보았다. 주먹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강철에게 주먹을 날릴 기세였다.

그러자 함께 있던 차오스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

“그만!”

그 말에 후비청이 깊은숨을 내쉬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강철은 그때까지 미동 한 번 하지 않았다.

차오스가 그런 강철을 보며 말했다.

“방금 한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당장 회사로 가서 같이 확인할까요?”

후비청은 코웃음을 쳤다.

“풉. 그 말은 지금 우리 AI 기술을 훔쳐보겠다는 말입니까? 당신 산업스파이지?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 다른 회사 기술 훔쳐가는 스파이.”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데 왜 기술을 보여달라고 해.”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어디서 남의 기술을 탐내. 뭐? 기술을 보여줘. 이게 어중이떠중이한테나 보여주는 기술인지 알아.”

대화하던 후비청이 이번에는 차오스를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위원님. 이 자식 스파이입니다. 기술을 빼가려는 스파이요. 저런 놈을 회사에 들이면 안 됩니다. 인공지능 ‘에이스’는 앞으로 중국의 미래를 책임질 녀석입니다.”

고심하던 차오스가 어렵게 입을 뗐다.

“기술을 노출하지 않는 선에서 설명을 하면 되지 않습니까. 어차피 촬영이 예정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 선에서 설명하면 어떻습니까?”

후비청의 태도는 강경하기만 했다.

“이런 불순한 목적을 가진 놈에게 우리 기술은 1도 보여주면 안 됩니다.”

그러자 차오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후비청을 노려보았다.

“정말 그게 다입니까?”

잠깐 움찔했던 후비청이 급히 답했다.

“네. 전 정말 결백합니다.”

차오스가 이번에는 강철을 쳐다보았다.

“이 친구가 사기를 치고 있다고요?”

“네.”

“그 말씀 책임질 수 있습니까?”

“뉴스를 보니 중국 정부에서도 미래 기술 기업으로 선정해 투자를 진행하셨더군요. 제가 이런 자리에서 굳이 분란을 일으킨 건 위원님께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함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회사에 직접 찾아가서 정말 사기인지 아닌지 밝혀 줄 수도 있습니까?”

“네. 어차피 촬영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니까. 그 자리에서 명명백백 진실을 밝히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깐 고심하던 차오스가 고개를 끄덕였고, 후비청의 낯빛이 서서히 흑백으로 변해갔다.

* * *

이틀 뒤.

촬영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후비청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고, 점점 시간이 지나 기술 검증만이 남았다.

그전에 참석한 차오스의 대리인이 참관하는 가운데 후비청이 직접 기술 설명에 나섰다.

“이미 설명해 드렸듯이 우리 ‘에이스’는 밀도 기반 클러스터링 알고리즘인 DBSCAN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여기에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앉아 있던 강철이 바로 입을 열었다.

“데이터 입력 순서에 따라 결과가 변하고, 데이터의 특성을 모르면 적절한 변숫값을 설정하기가 어렵죠. 그래서 인공지능 기술에 도입을 잘 않기도 하고요.”

강철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물론 다른 알고리즘들도 다 장, 단점이 있지만, 특히나 DBSCAN은 뛰어난 장점이 있지만, 그 보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 에이스테크놀러지에서 그 단점을 해결했다고 알려져 있고요.”

까득.

이를 악문 후비청이 이를 갈았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맞습니다. 그러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냐. 여기서부터 저희 자체 기술입니다. 하지만 이 기술은 보안상 자세한 설명을 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하게 개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먼저 입력되는 순서에 따라 결괏값이 달라지는 문제는 아이니클 알고리즘을 사용해 해결했습니다.”

강철이 턱을 문지르며 집중했다.

“그건 각 데이터를 특징별로 빠르게 분류해주는 알고리즘인데…… 그걸로 해결했다.”

“네 그걸 이용해서 입력된 데이터를 한 번 더 분류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강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고민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후비청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물론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아이니클 알고리즘은 데이터의 분류 체계가 늘어날수록 속도가 느려진다는 단점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 역시 해결했습니다.”

“해결했다고요?”

“하하, 네. 어떻게 해결했냐 하면…….”

후비청이 채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강철이 그 말을 끊었다.

“거짓말을 하시는군요.”

“……네?”

밝아지던 후비청의 표정이 단박에 어두워졌다.

“그 부분은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해결할 수 없다니요. 그거 저희가 해결했습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강철이 화이트 보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빠르게 수식을 적어나갔다.

“여기 제가 적은 게 아이니클 알고리즘의 뼈대입니다. 이걸 사용하고 계신다니 아실 거로 생각합니다.”

후비청이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장면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했다. 후비청의 이마에서 또르륵 한 방울의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강철이 수식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이 부분이 데이터 분류 체계가 늘어날수록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부분입니다. 지금 대표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이 부분을 수정해서 적용했다고 하셨는데 맞습니까?”

후비청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마자 강철이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몇 가지 수식을 빠르게 적은 후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그게 왜 불가능한 일인지 증명해 보겠습니다.”

회의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후비청의 눈동자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 * *

중국 베이징 시내.

후비청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최고급 보이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강철이 후비청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왜 불가능한 것인지 증명하고 있다.”

“네. 그쪽에 파견 가 있는 직원이 보내온 내용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결과는?”

“현재 해당 수식을 사진으로 찍어 베이징 대학에 근무하는 교수들에게 자문해놓은 상태입니다.”

“그 말은 정말 후비청이 거짓말했을 가능성도 있단 말이군.”

옆에 서 있던 비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차오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거짓말이라니… 인공지능 ‘에이스’가 거짓말이라…….”

인공지능 에이스.

이건 중국 정부의 천인 계획에 따라 대규모 투자가 수반된 프로젝트였다. 후비청의 말은 곧 중국 정부가 후비청에게 속았다는 뜻이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오스의 목소리가 조금 올라갔다.

“그런 회사를 10대 기술기업에 선정하고, 투자까지 진행했단 말인가?”

“워낙 난해한 알고리즘이라 평가 부서에서도 제대로 파악을 못 한 모양입니다.”

“관련자가 누구야?”

“벤처투자집행부 부장입니다.”

“당장 대기시키고, 후비청이란 어떤 연관 있는지 조사해 봐. 만약 정말 거짓으로 밝혀지고 연결 고리가 있다면…….”

차오스의 얼굴에 살기가 서렸다. 그 표정만으로도 비서는 바로 알아들었다.

“알겠습니다.”

차오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콧잔등을 긁적거렸다.

“이거 자칫 잘못하면 단단히 창피를 당하게 생겼어.”

“후비청의 실력은 이미 다른 인공지능 기술자들도 인정할 만큼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강철이 실수를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비서의 말에도 차오스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후비청이 보여준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개발 중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조금만 있으면 프로토 타입이 완성된다.

그런 말들로 시간만 끌어왔다. 하지만 강철은 이미 결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둘 중 강철에게 믿음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흠…….”

차오스가 차를 한 잔 마셨다. 이것 말고도 신경 써야 할 일이 태산이었다.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낸 차오스가 오늘 올라온 보고서를 살피려는 순간.

비서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네.”

“그래요?”

“정말입니까?”

“크로스 체크는요?”

“칭화대나 베이징대 말고, 정 안되면 미국 쪽에라도 연락을 해보세요.”

“일단, 알겠습니다.”

그런 비서를 차오스가 바라보자 비서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일단 증명이 완성됐다고 하는데…… 그걸 확인하는 데만 이틀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도움을 받더라도 최대한 빨리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확인에 이틀이나 걸린다고?”

“그만큼 내용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리고 일단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증명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

순간 차오스의 표정에 새겨진 살기가 짙어졌다.

* * *

늦은 저녁.

호텔 VIP룸에 지수철, 차오스가 앉아 있었다. 차오스가 강철을 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큰 신세를 졌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도 투자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꼭 확인해 봐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덕분에 방송 촬영분도 톡톡히 챙겼고요.”

그러자 차오스가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그것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해당 방송분을 삭제해 주셨으면 해서요.”

부탁의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강철이 받아들이기에는 아주 고압적인 태도였다. 취소해 주지 않으면 상당한 불이익을 줄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그걸 읽어낸 지수철이 급히 중재에 나섰다.

“저도 현장에서 봤는데 위원님과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후비청 건은 조용히 처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강철이 입을 꾹 다물었다.

‘중국 정부의 체면이 떨어지는 걸 막고 싶은 거겠지.’

중국.

미래에도 중국은 비슷했다. 자신들의 체면이 떨어지는 일을 극도로 싫어했다. 강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송 촬영은 넷플러스 측에 한 거라 제가 이래라저래라 할 권한은 없습니다. 다만.”

다들 강철의 입만 바라보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강철이 말했다.

“말을 전달해 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흠…….”

차오스가 팔짱을 낀 채 강철을 보았다.

넷플러스는 엄연한 미국회사였다. 중국 정부에서도 건드리기 까다로운 상대라는 뜻이었다.

강철도 차오스를 마주 보았다. 이미 수도 없는 협상 과정을 경험했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 해도 무조건 머리를 숙인다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없었다.

먼저 입을 연 건 강철이였다.

“아마 넷플러스에서는 다시 회사를 섭외하고, 촬영 스케쥴을 잡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겁니다.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죠.”

그 말에 차오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약 말을 잘 해주신다면 당장 내일 판호가 발급되도록 도와 드리겠습니다. 물론 제가 이래라 저래할 권한은 없습니다. 다만.”

잠시 뜸을 들이던 차오스가 강철이 했던 말을 반복했다.

“말을 전달해 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차오스가 희미한 미소를 띠며 강철을 보았다. 강철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장 내일.

그 정도면 촬영을 한 번 더 하는 수고로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미소를 본 차오스도 마주 웃었다. 이내 강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그럼 지금 바로 말을 전하도록 하죠.”

“하하, 말이 잘 통해서 좋군요.”

“감사합니다.”

둘은 표정을 풀고, 술잔을 마주했다.

* * *

다음 날.

연락을 받은 넷플러스 관계자는 곤란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찍은 마지막 편. 아무래도 폐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폐기요?”

“이거 잘만하면 시청률 엄청나게 나올 것 같은데 왜…….”

회의 참석자들이 하나같이 의문을 표했다.

“그게 갑자기 이강철 대표가 내용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해 왔어요. 그 이유는 알려주지 않고요.”

회의에 참석한 엘리 매니저의 표정도 굳어졌다. 이내 손을 들곤 물었다.

“그럼 다음 업체 섭외하고, 촬영 진행해야 하는 겁니까?”

넷플러스 관계자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촬영이 늘어지겠군요?”

“네. 최소한 일주일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니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엘리는 당장 내일모레 광고 촬영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게 끝나면 콘서트 일정도 있고요.”

넷플러스 관계자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런 사태가 일어날까 봐 몇 번이나 일정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런 돌발 변수는 예상범위 밖의 것이었다.

“어떻게 조율이 안 되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엘리의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아니면 촬영을 아예 한 달 후로 미루는 건 어떻습니까? 그쯤 되면 저희도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

그때.

강철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 때문에 회의가 잡혔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늦게 오게 돼서 죄송합니다.”

말을 하는 강철의 입에서 알콜 냄새가 확 풍겼다. 어제 차오스와의 술자리 덕분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크게 인상을 찡그리지 않았다.

“아, 아닙니다.”

“어쨌든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넷플러스 관계자가 손사래를 쳤다.

“하하, 아닙니다. 뭐, 상황이 변했으면 촬영분을 취소할 수도 있긴 한데…….”

그 이유를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강철은 차오스와의 약속에 따라 말하지 않았다. 그저 말을 돌리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관련해서 여러 스케쥴 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넷플러스 관계자가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하하, 네 뭐. 조율 중입니다.”

“그 조율 얼마면 될까요?”

“네?”

“아까 들어보니 엘리 씨는 CF가 예정되어 있다고요?”

엘리의 매니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 네.”

“제가 위약금을 드리고, 비슷한 금액으로 CF 건 하나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될까요?”

“아……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위약금을 주신다면야…….”

“CF건은 아마 아이온 게임의 워리어가 될 것 같습니다. CF 금액도 이번에 계약하신 금액보다 더 많이 드리겠습니다.”

“그, 그렇게까지 해주시면…….”

대충 정리를 한 강철의 시선이 넷플러스 관계자를 향했다.

“그리고 벤처 회사 섭외도 제가 따로 봐둔 회사가 있으니 거기에서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회사 섭외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맞나요?”

“네. 그렇게만 해주시면야…….”

“그리고 또 해당 기간의 체류비용, 비행기까지 전부 제가 대도록 하죠. 그리고 별도로 관광비용도 추가할 테니 하루 정도 쉬면서 관광도 다녀오시고요.”

그 말에 침침했던 회의장이 환하게 밝아졌다. 회의에 참석한 제작진들의 표정이 밝아졌기 때문이었다.

“들었어? 관광비용까지 대주신데.”

“헐…….”

“우리 관광도 갈 수 있는 거야?”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은 강철이 쐐기를 박았다.

“심 비서.”

“네.”

“자유여행 말고, 패키지 원하시는 분도 있을 테니까. 당장 코스 하나 짜서 소개해 드려요.”

“알겠습니다.”

강철이 회의에 참석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상황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다시 숙소로 올라온 매니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엘리에게 말했다.

“촬영 이틀 후에 다시 하기로 했어. 그때까지 체류비용에서부터 비행기까지 전부 이강철 대표가 지급하기로 했고.”

그러자 엘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때 CF 잡혀 있잖아요.”

“그것도 이강철 대표가 위약금 대신 내준다고 하더라. 거기에 아이온 게임즈 CF건 우리한테 준대. 취소된 계약보다 더 많은 돈으로 계약하자더라.”

옆에서 듣고 있던 스타일리스트가 입을 떡 벌렸다.

“역시…… 재벌 클라스…….”

“다른 사람들 체류비용도 전부 댈 테니까. 내일 하루는 관광 즐기라고 하더라. 일이 이렇게 돼서 죄송하다면서.”

그러자 스타일리스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 중국 정부가 요청한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매니저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넷플러스가 미국 회사잖아.”

“그런데요?”

“그런데 중국 정부에서 그런 식으로 압력을 가한다는 게 알려지면 안 그래도 미, 중 사이가 안 좋은데 어떻게 되겠어?”

스타일리스트가 살짝 눈을 감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 모르겠고요. 쉽고, 짧고 단순하게.”

“간단하게 말해서 이강철 대표가 요청해서 촬영 바꾸는 식으로 한 것 같다. 중국에서는 이 대표에게 당근을 제시했을 테고.”

“그러니까. 이강철 대표가 뒤집어쓰기로 했다.”

“뭐, 대충 그런 셈이지.”

매니저의 설명에 엘리가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내일모레 또 볼 수 있다는 말이네.”

그걸 들은 매니저가 바로 되물었다.

“……뭐?”

“아니에요. 늦었는데 어서 자요. 어쨌든 뭐 잘 해결된 거잖아요.”

그 말을 끝으로 엘리는 자신의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남아 있는 스타일리스트도 매니저에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관리 잘해야겠어요. 한다고 될지 모르겠지만.”

홀로 남은 매니저의 표정이 어두워져만 갔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한국 언론을 통해 아이온 게임즈의 판호 발급 소식이 대대적으로 다뤄졌다.

-워리어, 라이즈 킹덤 중국 판호 발급.

-아이온 게임즈 날개를 달다.

-중국 진출 신호탄. 과연 한국 다른 게임회사들에도 볕이 들까.

이미 중국 진출 준비는 단단히 되어 있었다. 게임을 출시만 하면 되는 것이다.

판호가 발급되자마자 강철이 아이온 게임즈의 사장 김봉수에게 지시했다.

“중국 출시 진행하세요.”

“네.”

중국은 모바일 게임의 경우 자체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받아야 한다. 그곳들에 심사를 넣고, 출시를 기다렸다. 원래는 그 기간도 상당하나 최우선으로 처리되었다. 차오스의 도움 덕분이었다.

그리고 바로 대대적인 광고를 쏟아부었다.

한 달.

반응이 오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이미 전 세계인을 상대로 게임성을 인정받은 게임들이었다.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동시접속자 50만.

동시접속자 80만.

동시접속자 120만.

게임에 접속하는 사람은 급속도로 늘어났고, 그만큼 아이온 게임즈의 매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IPO.

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상황이 마련된 것이다. 강철은 바로 미국에 있는 신주영에게 연락했다.

“나스닥 IPO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세팅 끝내놨습니다. 지시만 내리시면 바로 가능합니다.

“그럼 바로 진행하세요.”

-네.

전화를 끊은 신주영이 함께 일하고 있는 마이클에게 살짝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온 게임즈부터 상장 시작하자.”

“네.”

마이클의 표정도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둘 다 강철의 배려로 아이온 계열사들의 지분을 조금씩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온 게임즈의 기업가치가 높아질수록 둘의 재산도 늘어난다. 마이클은 최선을 다해 대표 주관사를 선정하고, 상장 예비심사를 신청했다.

그렇게 증권신고서까지 제출되고 난 이후에 진행되는 것이 수요예측이다.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수요가 많을수록 가격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아이온 게임즈는 중국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를 발판 삼아 541대 1이라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사상 최고의 경쟁률은 아니지만, 시가총액을 높이기에는 충분했다.

예상 시가총액은 200억 달러.

무려 23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평가받았다. 강철이 시장에 유통한 지분은 40%가량.

대략 9조 원에 달하는 현금이 회사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알고리듬.

-아이온 인공지능.

-아이온 게임즈.

이 3개 회사를 매각하고, IPO라면서 강철이 벌어들인 돈만 수십조에 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철의 국내 부호 순위가 한 단계 더 올라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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